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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폰 ‘갤럭시’는 중국 시장에서 통하는 대표적 한국 브랜드다. 1990년대 말 시작된 ‘애니콜 신화’ 이후 중국 핸드폰 시장을 주도해왔다. 한때 20%대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2%대 지키기도 버겁다. ‘갤럭시의 굴욕’이다. 또 다른 한국의 대표 브랜드 ‘시엔따이(現代)’자동차 역시 흔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따른 갈등 때문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새로 형성되는 중국시장 생태계
90년대 출생 젊은 소비자가 주도
무섭게 올라온 중국기업 도전에
브랜드 맹신 가고 가성비가 우선
품질 10% 차이나도 가격 30% 싸
가성비 나쁘면 퇴출은 시간문제
중국 베이징 출장길에 만난 대기업 주재원 김 과장은 최근 인터넷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샀다고 한다. 한데 물건을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도, 징둥(京東)의 JD닷컴도 아닌 샤오미(小米)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유핀(有品)’에서 주문했다는 것이다. 샤오미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다고?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샤오미가 지난해 4월부터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오픈해 운영 중이다. 가격은 199위안, 우리 돈 약 3만 8000원짜리였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아무리 싸게 사더라도 아마 5만원은 넘을 겁니다. 디자인과 품질도 마음에 듭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가 바로 ‘유핀’입니다.” 김 과장의 말이다. ‘유핀’은 샤오미 생태계의 터전이다. 샤오미가 직접 제조과정에 관여해 만든 ‘小米’ 브랜드 제품과 투자 또는 브랜드 제휴로 묶은 기업의 상품 등이 그 밭에서 자라고 있다. 김 과장은 “유핀에서 파는 상품은 플랫폼만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타오바오와는 달리 샤오미가 제품 선별을 해주니 믿고 살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샤오미는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선정하고, 투자 또는 브랜드 제휴는 무얼 잣대로 맺는 걸까? 답은 하나다. 바로 가성비(중국어로는 ‘싱자비·性價比’)다. 가격은 비싸지 않으면서도 품질은 좋고, 디자인이 예쁜 제품만을 골라 유핀에 올려놓는다. 그게 샤오미의 일관된 경영 원칙이다. 샤오미가 중국 소비 패턴을 ‘브랜드 중심’에서 가성비 위주로 바꾼 것인지, 아니면 샤오미가 가성비를 중시하는 중국의 소비 흐름에 잘 적응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중국 젊은 소비세대의 등장과 함께 ‘브랜드 맹신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중국인들은 외국 브랜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의 명품 상점 앞에 장사진을 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젠 옛날얘기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지난해 말 공개한 ‘2018년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성향’ 보고서는 중국의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17개 소비품목을 대상으로 로컬(중국)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의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해외 브랜드의 선호 비중이 높았던 건 와인과 분유에 불과했다.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라고 무턱대고 좋아하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이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색조 화장품의 경우에도 로컬 브랜드와 해외 브랜드의 선호도는 각각 51:49로 역전됐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가 긴장해야 할 이유다. 대형 가전제품과 개인 전자 제품, 보습 화장품 등도 치열한 ‘선호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의 소비 흐름을 보면 해외 브랜드가 로컬 브랜드에 점점 밀리는 양상이다. 개인 디지털 용품의 경우 전체 시장에서 해외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63%에서 2017년 43%로 낮아졌다. 스마트폰도 그중 하나다. 개인 보건 용품의 경우 중국 로컬 브랜드 비중은 2012년 61%에서 2017년 76%로 높아졌다. 최근 화장품협회가 주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황민자 중국쑤저우페이아이 부사장은 “젊은 세대, 특히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90后)가 소비시장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패턴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며 “해외 유명 브랜드라고 콧대 세우다가는 중국 시장에서 쪽박 차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서 중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온 제품 중 하나가 바로 ‘하오리유파이(好丽友派)’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는 오리온 초코파이입니다. 그러나 많은 중국인은 이 브랜드가 한국에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단지 싸고 맛있으니 살뿐입니다. 어느 중국 기업도 그 가격에 더 맛있는 파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게 오리온 초코파이의 롱런 이유입니다.” (황재원 코트라 동북아사업단 단장) 중국 소비시장은 지난 수년 동안 혁명적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은 단순한 개방식 전자상거래를 넘어 제조와 유통이 묶이는 방식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샤오미의 ‘유핀’, 왕이(罔易)의 ‘옌쉔(嚴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생태계에 끼어들 수 있느냐에 따라 중국 시장 진입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저변의 큰 흐름이 바로 ‘가성비’ 중심의 소비 패턴이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제 ‘로컬 브랜드냐, 해외 브랜드냐’를 따지기보다 얼마냐 실속 있느냐를 더 강조한다. “삼성폰은 사드 갈등과 ‘노트7 발화 사태’와 같은 악재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중국 시장에서 로컬 폰에 강한 압박을 받는 처지였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이 가성비에 눈을 뜨면서 중저가 폰이 약진했고, 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뒤처지기 시작한 겁니다. 현대자동차의 부진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품질은 10% 정도 차이 나지만 값은 30%나 비싼데, 누가 현대차를 사냐?’라는 인식이 시장에 널리 퍼지고 있었습니다.” (황민자 부사장)
DA 300
중국 주요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JD닷컴에서 갤럭시8 가격은 4999위안(약 82만5000원) 수준이다. 반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중국 로컬 브랜드인 ‘오포’의 최고 사양(R11s)제품은 3299위안(약 54만5000원)에 팔린다. 약 28만원 차이다. “오포 핸드폰 써보면 기능상 별로 차이가 없어요. 디자인도 많이 좋아졌고요. 중국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품질을 따라잡으면서도, 가격을 묶어두는 비결을 터득했거든요. 갤럭시8과 오포 R11s의 품질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28만 원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알량한 기술, 브랜드 우월감에 젖어 있다가는 LG처럼 시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중저가 화장품브랜드 ‘카라카라’를 운영하는 이춘우 대표는 “3~4년 전부터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 삼성폰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중국 시장에서의 최후 승자는 결국 치열한 가격 싸움에서 이기는 회사가 될 것”이라는 게 90년대 말 이후 중국 시장을 관찰해온 이 대표의 지론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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