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이 66세에 그린 ‘압구정’(31.0×20.0㎝). 압구정동·옥수동 일대의 18세기 모습이 담겼다(사진 왼쪽), 전시작 중 가장 오래된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6세기 중반, 국보 제72호·오른쪽).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언제봐도 고혹적인 신윤복의 여인, ‘미인도’(45.5×114.0㎝)가 처음으로 간송미술관 밖에서 전시된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조선 대표 미인의 첫 나들이-. 간송미술관의 외부 전시인 ‘간송문화(澗松文華)’전 2부 ‘보화각(?華閣)’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7월 2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관객을 맞는다.
말할 듯 하지 않는 입술, 그리움으로 가득한 눈빛, 탐스런 얹은 머리에 가녀린 어깨의 주인공. 공들여 묘사한 화가는 이런 제화시(題畵詩)를 곁들였다. “화가의 가슴 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 그림이 전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후예들은 화가를 아예 남장 여자로 설정한 소설과 드라마를 만들며 열광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은 DDP 개관과 함께 시작한 첫 외부 전시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를 77일만에 마무리하고 재단의 대표 명작 위주로 꾸민 2부 전시를 연다. 1부 전시는 보화각 설립 76년 만의 첫 외부 전시이자 훈민정음혜례본의 첫 일반 공개로 화제를 모았다. 12만명(하루 평균 1460명)이 다녀갔다.
2부 전시에는 ‘미인도’를 비롯해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압구정(狎鷗亭)’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5만원권 지폐 뒷면 도안으로 실린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의 ‘풍죽(風竹)’ 등 44점의 간송 소장품이 새로 공개된다. 다만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국보 제70호)’, 심사정의 긴 두루마리 산수화 ‘촉잔도권(蜀棧圖圈)’ 등 1부에서 소개됐던 주요작품들도 그대로 전시된다. 총 114점의 전시작 가운데 가장 오랜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국보 제72호)’을 비롯해 국보가 12점, 보물이 8점이다.
재단 산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국보와 보물 중 옮겨올 수 없었던 탑 두 개(보물)를 제외한 국가지정 문화재가 총출동했다”며 “항간에 간송미술관 소장품만으로도 한국미술사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은 “첫 외부 전시로 43년간 이어오던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의 봄 정기전은 쉬었지만 올 가을 정기전은 예전처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대가들이 남긴 걸작들 가운데서 눈길을 끈 것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만년의 예서 대련이다. 타계하기 두 달쯤 전인 1856년 8월에 이렇게 썼다. “좋은 반찬은 두부·오이·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옆에 작은 글씨로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라고 적었다. 죽음을 앞둔 대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평범한 일상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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