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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황희정 기자] [10대 소녀들부터 60대 노구까지…독립운동의 주인공 또는 조력자로서 해방을 이끈 '철의 여인'들]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인기리에 방영 중인tvN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고애신(김태리 분)의 대사다. 낮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대부 애기씨'지만 거사가 있는 날 밤엔 양복을 입고 중절모로 얼굴을 가린 '의병'이 된다. 실제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은 여성이 많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외에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국가보훈처는 올해 73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177명을 포상했다. 이중 여성은 26명이다. 이번 포상으로 독립유공자는 총 1만 5052명으로 증가했는데 이중 여성은 2.16%(325명)에 불과하다. 올해 공식 인정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꼭 기억해야 할 '철의 여인'들을 따라가 봤다.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된 배화여학교 학생 6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희경, 안옥자, 소은명./사진=국가보훈처◇3·1 운동 이후 1년…"조선 독립 만세" 외친 10대 소녀들=3·1운동 1년 후인 1920년 3월1일. 서울 배화여학교에서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소녀들의 외침이 있었다. 소녀들은 3·1운동을 재현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고 등교하자마자 기숙사 뒤편과 교정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경찰에 검거됐는데 대부분 10대 후반 소녀였고 가장 어린 소녀는 고작 16세였다.
이들 중 옥고가 확인된 김경화·박양순·성혜자·소은명·안옥자·안희경 6명은 이번 광복절에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됐다. 보훈처는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일제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경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어린 여학생들이 과감하게 결행한 만세시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 선생(왼쪽)과 허 선생의 구술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사진=국가보훈처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독립군의 어머니=독립군들이 일본에 맞설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어머니들의 뒷바라지 때문이다. 중국 서간도에서 독립군의 항일투쟁을 도와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허은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며 독립유공자로 올해 공식 인정받았다.
허 선생은 독립운동가와 서로군정서 대원들의 군복을 만들고 조석을 조달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허 선생의 구술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는 한평생 독립운동을 벌인 여성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선생도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 독립운동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10년 일가족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힘을 보탰다. 1919년엔 베이징으로 건너가 남편과 현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했고 1925년 귀국해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이은숙 선생(사진 왼쪽)과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사진=국가보훈처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도 대표적 '독립군 어머니'다. 슬하에 3남 1녀를 뒀는데 자녀들을 모두 독립운동가로 길러냈다. 특히 장남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검거된 뒤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아들에게 항소보다 죽음을 택하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뒤에서 묵묵히 독립열사 지원한 '부인'들=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소속 최복길·김경신·김화자·옥순영·이관옥 선생도 이번에 포상을 받아 독립유공자로 공식 인정됐다. 최복길 외 4인은 1919년 음력 10월 평안남도 순천에서 비밀결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를 조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원조할 목적으로 독립운동 자금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총을 든 남자현 열사(왼쪽)와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선생./사진=국가보훈처 ◇총 들고 비행기 조종하고…남자보다 강했던 '투사'들=총을 들고, 비행기 조종석에 앉고, 여느 남성들보다 더 강하고 거칠게 살았던 여성 투사들도 기억해야 한다. 영화 '암살' 속 안옥윤(전지현 분)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남자현 의사는 1896년 남편 김영주가 전사하자 임신한 몸으로 의병활동에 참가했다. 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에 여자 대원으로 입단해 군사들을 뒷바라지했다. 1925년 사이코 마코토 조선총독부 총독을 암살하려 했으나 삼엄한 경계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남편의 원수를 갚을 마지막 기회라며 재만주일본전권대사 격살 계획에 나섰다가 검거됐다.
'하늘의 독립군' 권기옥은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다. 숭의여학교 재학시절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운남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 공군에서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로 복무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해 한국여성들을 독립운동 전열에 참가시키고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 대통령표창을 하고 1977년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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