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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역사 분기점에 아슈케나지가 있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5월13일 07시34분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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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스라엘, 그 발명된 신화들]홀로코스트, 시오니즘, 미국으로의 집단이주와 세력 강화 등 세 갈래 물줄기로 이어져1903년 키시네프에서 일어난 ‘포그롬’(유대인에 대한 물리적 박해)으로 유대인 49명이 숨졌다. 희생자들이 장례식에 앞서 ‘탈리스’라고 불리는 기도용 숄로 덮여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갈무리

20세기 전야 전세계 유대인 인구를 보면 그중 80%는 동유럽계인 아슈케나지였다. 1900년 전후 유대인 1127만여 명 중 러시아에 390만 명, 폴란드에 131만 명, 헝가리에 85만 명, 미국에 150만 명이 있었다. 미국 유대인의 절대다수가 독일과 동유럽에서 이주한 아슈케나지였다. 당시 러시아에서 유대인은 전체 인구 중 3.17%, 폴란드에선 무려 16.25%나 됐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원했다는 유대인이 어떻게 2천 년이 지나 유라시아 대륙 서쪽 초원의 유목 접경지대에 절대다수가 거주하게 됐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아슈케나지의 대부분은 언어학적으로 ‘고지 독일어’(High German)로 분류되는 독일어 방언 이디시어를 써서, 이들이 독일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주류 유대사가들의 일반적 해석이다. 이디시어는 독일어권 남동쪽인 중부 유럽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히브리어와 슬라브 계통 언어와 혼합된 것으로 분석된다.

돼지와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

근대 이후 아슈케나지는 사실상 유럽의 유대인과 동의어가 됐다. 19세기부터 아슈케나지를 둘러싼 사건은 홀로코스트, 시오니즘(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운동), 그리고 현대 유대인의 고향이 된 미국에서 유대인 세력 강화라는 근대 이후 유대인 역사의 큰 물줄기로 이어졌다.

주류 유대사가들은 독일 유대인이 중세 이후 박해를 피해 폴란드로 이주한 것을 동유럽 아슈케나지의 기원으로 삼는다. 11세기 십자군 운동 때부터 집단적 박해를 받아온 서유럽 유대인들은 14세기 들어 번진 흑사병 등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때 이들이 발걸음을 돌린 곳이 폴란드였다. 1385년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이 결성돼, 동유럽 최대 왕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Polish-Lithuanian Commonwealth1569~1795)으로 발전한다.

폴란드 왕실과 귀족들은 주변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으로 넓힌 영지를 관리해줄 사람을 유대인에게서 찾았다. 문해력이 높고 상업적 경험이 풍부한 유대인은 교육과 금융, 왕실·귀족 영지 관리, 세금 책정과 징수 등을 맡았다. 물론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도 많은 유대인이 행상이나 노점, 대금업 등 천시받는 업종에 종사했다.

카지미에시 대제(1333~1370)는 유대인의 집단 거주를 허락하고, 유대인 박해를 금지했다. 유대인은 ‘카할’이라는 독립적인 공동체를 운영하는 혜택을 받았다. 새 안식처로 떠오른 폴란드로의 유대인 이주가 가속화했다. 18세기 초에 폴란드 전체 인구 1270만 명 가운데 유대인은 80만 명으로 늘어났다.

유대인은 폴란드가 16세기에 병합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남동 지역에 주로 거주했다. 유대인은 우크라이나·폴란드 농민들에게 조세를 징수하고, 지주들의 방앗간을 운영하고, 삼림을 관리해 목재를 팔고, 양조장이나 술집을 운영했다. 폴란드 봉건귀족들의 착취가 심해지면서 유대인이 그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더 심했다. 유대인은 가톨릭 교도인 폴란드인보다 더 이질적인데다, 폴란드 압제자들을 대신해 지대와 조세를 거두는 착취자였다.

1648년 우크라이나 하급 귀족의 아들인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봉기가 일어났다. 코사크족·타타르족과 연합한 흐멜니츠키는 폴란드 지주, 가톨릭 사제, 우크라이나 신교도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했다. 봉기는 유대인이 밀집한 폴란드 남동부 지역을 휩쓸어서, 유대인은 돼지와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됐다. 봉기는 1654년까지 계속돼, 유대인은 약 5만 명이나 희생됐다. 몇십 년 동안 흐멜니츠키 봉기 잔불이 우크라이나 지역에 남아, 추가로 유대인 7만5천 명이 사라지는 박해를 받았다.

집단거주지, 폴란드에서 러시아로

1772년, 1791년, 1795년 세 차례에 걸쳐 폴란드는 러시아 등 세 강대국에 의해 영토가 분할돼 지도에서 사라졌다. 유대인이 많이 살던 동부와 동남부 지역이 러시아로 병합되면서, 러시아는 갑자기 유대인의 최다 집단 거주지가 됐다. 적어도 유대인 80만 명을 떠안게 됐다. 기존의 추방과 금압 정책은 한계에 이르렀다. 계몽군주를 자처한 예카테리나 2세는 처음에 병합된 지역에서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이민족을 자신의 신민으로 수용해 그들의 이전 지위를 보장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러나 유대인이 주변 농민층 사이에 ‘기생적’이고 ‘착취적’인 활동을 한다는 비난은 러시아에서도 비등했다. 특히 유대인이 거의 독점하던 술 제조와 판매업이 대표적이었다. 폴란드 시절, 유대인은 추수한 곡물과 감자를 사서 주정과 증류주를 만들었다. 확실한 술 소비자였던 농민은 유대인에게 좋은 장사 대상이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농촌 지역을 유대인에게서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러시아 내지에서 유대인 거주를 금지하는 정책을 선포했다.

예카테리나 2세는 폴란드 1차 분할을 한 지 10여 년 만인 1783년에 이어 1791년, 1794년 세 차례에 걸쳐 유대인 거주를 폴란드에서 합병한 지역으로 제한하는 칙령을 내렸다. 유대인은 특별한 허가를 받지 않고는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유대인 격리 지정거주지(Pale of Settlement)’는 폴란드가 통치했던 우크라이나·벨라루스·리투아니아·베사라비아 등을 포함해 당시 러시아의 북서·남서 지역 15개 주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러시아 내지와 유럽 사이에 놓인 지대였다. 유대인은 지정거주지 내 주요 도시에서도 거주가 제한됐다. 일부 유대인만이 지정거주지를 벗어나 살 수 있었다. 거대한 게토인 유대인 격리 지정거주지는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존속됐다.

19세기 들어 서유럽에선 유대인 해방의 물결이 일었으나, 러시아는 유대인에 대한 고삐를 더욱 죄었다. 유대인을 ‘기생적인’ 직업에서 분리하기 위해, 농촌 지역에서 유대인의 술 사업도 금지했다. 또한 유대인의 직업을 상인, 읍민, 수공업자, 농부 4개 중 하나로 등록하게 했다. 차별적인 징집령도 선포됐다. 니콜라이 1세는 1827년 유대인 징집령을 발동해, 유대인 남자는 12살부터 징집할 수 있게 했다. 유대인은 청소년 시절에 정식 징집돼 기초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 징집을 둘러싼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는데, 가난한 유대인이 희생양이 됐다. 심지어 8살짜리가 징집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 수는 1800년에 100만 명을 넘기 시작해 1834년 120만 명 그리고 1855년 320만 명, 1887년에는 550만 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이전까지 통계에 잡히지 않던 러시아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퍼져 있던 유대인들이 아슈케나지 공동체에 합류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된다.

늘어나는 유대인 수에 비례해 주변 기존 주민과의 갈등도 증폭됐고, 이는 ‘포그롬’이라는 유대인에 대한 물리적 박해 사태로 귀결됐다. 포그롬은 러시아에서 유대인 최대 공동체가 있던 오데사에서 1821년 처음 발생했다. 1871년까지 네 차례나 계속된 오데사 포그롬은 그리스계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 사이의 분쟁 성격이 컸다. 상권을 놓고 다투던 두 공동체의 경쟁과 증오가 발단이었다.

오데사 포그롬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전형적인 포그롬으로 발전했다. 석탄과 곡물이 풍부한데다 철도가 건설되고 하천 통행이 수월한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몰려든 농노 출신 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하면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주민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졌다.

유대인이 기독교도 때린다는 유언비어

러시아 정교회 부활절 축제 마지막 날인 1881년 3월15일 엘리사베트그라드(현재 키로보그라드)에서 술 취한 주정꾼이 유대인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싸움을 벌였다. 이는 곧 유대인이 기독교도를 때린다는 유언비어로 퍼져 유대인 상점들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폭동으로 비화했다. 곡물 교역 중심지인 엘리사베트그라드에서 유대인은 주민의 3분의 1을 차지해 곡물 교역을 장악했다. 축적되던 유대인에 대한 분노가 이 폭동으로 폭발해, 우크라이나 남부 전역에선 여름내 포그롬의 물결이 일었다. 8월16일에야 포그롬 파고는 진정됐다. 유대인 사망 40명, 부상 3천여 명, 성폭행 200명, 4천~5천 가구와 상점이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민스크 등 유대인 지정 거주 구역의 북서 지역 도시에서도 유대인 거주지에서 방화가 일어나 유대인 1만여 명이 집을 잃고는 파산했다. 결국 1213일 바르샤바에서 대형 포그롬이 발생했다. 유대인 가옥, 상점, 유대교 회당 등 건물 1500채가 약탈됐다. 다음해인 1882년 3월 말 발타와 포돌리아의 유대인 마을에서 가옥과 상점 절반이 파괴되고 나서야, 포그롬은 1년 만에 진정됐다.

1881년 포그롬을 시작으로 1903년 키시네프, 1905년 키예프, 1906년 비알리스토크 등에서 대형 포그롬이 벌어졌다. 포그롬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때까지 계속됐다. 혁명 뒤에도 1918년 리비우, 1919년 키예프에서 내전 와중에 포그롬이 계속됐다. 1881년 포그롬은 또 그 책임을 유대인에게 물어서, 차별과 억압을 강화한 이른바 ‘5월 법령’ 발동을 낳았다.

1882년 5월 발동된 5월 법령에 따라, 유대인은 유대인 격리 지정거주지를 포함해 러시아 전역의 농촌지대에서 신규 정착이 금지됐다. 이는 사실상 거주 이전을 제한해, 유대인의 재산권 행사조차 막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마찰이 심해지는 도시 지역에서 탈출할 통로가 봉쇄됐다. 유대인의 도시화를 가속했고, 도시 내에서 유대인 게토화가 심화됐다. 19세기 말이 되자, 러시아 유대인의 40%는 자선단체의 구호에 의지해야 했다.

1881년 포그롬은 현대 유대인 역사에서 빅뱅이었다. 이후 유대인 역사를 규정하는 큰 세 가지 물결을 자아냈다.

물리적 박해 ‘포그롬’ 이후 시작된 변화

첫째,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서 유대인의 엑소더스(탈출)를 촉발했다. 동유럽 유대인들은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대대적으로 이주했다. 1881년부터 1914년까지 러시아, 루마니아, 갈리시아(폴란드 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 등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은 24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동유럽 유대인 3명 중 1명꼴이다. 미국은 유대인의 새로운 고향이 됐고, 유대인은 미국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둘째, 반유대주의의 격화다. 이는 결국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로 가는 길이 됐다. 포그롬이 자아낸 난민 사태는 서유럽에서 유대인 문제로 나아갔다. 동유럽에서 몰려든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서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기존 편견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적인 마찰과 긴장을 더했다.

셋째, 시오니즘을 본격화했다.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게 자신들이 종교적 공동체가 아니라 인종·민족적 정체성을 갖는 집단이라는 대응을 불렀다. 종교적 차원이던 ‘시온’(예루살렘 성지의 언덕)으로의 귀환인 시오니즘을 세속에서 현실화하는 운동을 점화했다. 유대인의 고토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국민국가를 세우는 것이 반유대주의를 극복하는 생존책이라는 시오니즘이 시작됐다.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이 시오니즘의 대상이 됐고, 현대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중추가 됐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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