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황사묘회(皇寺廟會)’가 올해 39회를 기록하며 화평구 북시장(北市場)에서 거행되였다. 음력 초하루부터 8일간 이어진 행사는 말그대로 인산인해, 문전성시였다.
300년을 이어온 심양 ‘皇寺廟會’는 관동문화(關東文化)의 정수(精髓)이며 령혼(靈魂)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묘회’ 기간 이곳에서는 관동의 대표적인 먹거리들과 전통극, 골동품, 서화, 시버족, 만족 전통문화 등이 전시되면서 해마다 연인수로 200만명 이상이 다녀가고 있다.
음력 초닷새(2월 20일) 이곳을 찾은 기자의 눈앞에는 놀라운 경관이 펼쳐졌다.
수백메터 이어진 먹거리 전시장에 우리의 전통음식—찰떡이 나타난 것이다.
해마다 심양 ‘皇寺廟會’를 둘러보지만 우리 찰떡이 여기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였다.
흐뭇했다.
그것도 찰떡가게가 3개나 되였다.
‘조선족찰떡(朝鮮族打糕)’,’연변찰떡(延边打糕), 지어는 ‘정통연변찰떡(正统延边打糕)’이라는 간판을 높이 내걸었다.
가게마다 떡메를 휘두르는 소리가 쩡쩡 메아리쳤다.
판매는 호황이였다. 가게마다 싱글벙글, 일손이 모자랐다. 주인이 높이 웨치는 호가(呼價) 소리가 즐거운 비명으로 들렸다.
8일간 200만명이 다녀간다고 생각하면 매출을 상상할 수 있을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이들중에 조선족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맛도 모양도 만드는 방법도 우리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이것이 우리 찰떡의 발전이고 승화라고 해야 할가?
전에는 찰떡을 먹는 날이 곧 설날이였다. 찰떡을 먹기 위해 설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설날 아침, 아버지와 삼촌이 떡메를 번갈아 휘두른다.
눈덩이같이 하얀 찰떡을 어머니가 식칼로 주먹만큼씩 베여낸 후 저가락 두가락에 꿰여 고물을 푹푹 찍어주면 그것을 들고 온 동네를 돌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커다란 대국사발에 넘쳐나게 담아주며 이웃집에 가져가라고 하면 그 심부름만큼은 그렇게 신날수가 없었다.
최근년간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찰떡은 수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그때문일가. 찰떡은 우리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금년 설 친척친구들이 서로 자랑하며 위챗에 올린 설날 음식상을 보면 찰떡이 없는 상이 허다했다.
이것을 먹거리가 풍부한 대륙에 사는 조선족의 행운이라고 해야 할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습관이 변하고 풍속도 변하고 선택의 여지가 많은 요즘 찰떡과 멀어진다고 뉘라서 누구를 탓하련만
우리가 잠간 외면하는 사이
우리의 것인, 정말 우리의 것인 찰떡이
남의 손에 의해
맛도 모양도 문화적인 속성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아하... 도무지 아닌것 같다.
료녕신문 김룡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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