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중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중견작가 10여 명이 참여하는 '중국 예술인 마을'이 조성된다. 3만3천㎡의 대지에 개인 작업실, 조각공원, 아트호텔, 전시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이는 중국 현대미술계가 인정하는 조선족 작가 최헌기(54) 씨다. 베이징의 중국국립미술관, 서울·부산 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공은 충분히 확인된다.
한국 작가의 중국 진출을 돕거나 중국 작가의 한국 전시에도 힘을 써온 그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중국 예술인 마을 조성에 심혈을 쏟고 있다"며 "창작 활동과 전시 등을 통해 양국 미술계가 활발히 교류하는 대표적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 씨는 "1차로 입주하겠다는 작가들은 중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톈진미술대, 노신미술대 교수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인사"라며 "이들의 창작 활동과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중국 관광객만으로도 마을 내 호텔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마을이라면 접근성도 중요한데 도시가 아닌 강원도 산골에 조성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자극과 격려가 됩니다. 전국을 돌며 후보지를 물색했는데 양양에는 중국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세워진 낙산사라는 사찰도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고대에는 불교가 전해졌다면 이번에는 중국 미술이 알려질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1차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지를 더 매입해 중국 작가의 입주를 늘릴 계획이다.
지린성 안투현의 백두산 자락 오지마을 출신인 그가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대학교수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학교로 부임한 조선족 화가 전동수로부터 소질을 인정받아 소묘·크로키·해부학 등 미술의 기초를 배우면서 화가의 꿈을 키운 그는 1982년 연변대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기성작가 들이 참여하는 연변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졸업 후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중국예총 산하 화가로도 활동했다.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29살에 중국 최고 권위의 미술대학인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주류 미술계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졸업과 동시에 중국국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초대전은 당시 미술계의 큰 화제가 됐다.
"보수적인 국립미술관이 30대 초반의 신예 작가를 위해 초대전을 열어준 것 자체가 파격이었죠. 조선족 화가가 초대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난해하다는 현대미술로 인정을 받은 것이라서 큰 힘이 됐습니다."
최 씨는 베이징에서 유학했던 한국인 화가의 초청으로 1997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입국 심사에서 간첩으로 오해를 받아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치면서 중국과 한국에서 경계인 취급을 받는 조선족의 현실을 실감했다.
상식과 표준으로부터의 탈피를 작품에 반영해왔다는 그는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살아왔고 모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아온 삶이 내 작품의 근간"이라며 "기존의 질서를 부인해 새로움을 모색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고 소개했다.
최 씨는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 여러 방면에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 10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부산과 광주의 비엔날레에도 참가했다. 2002년에는 재외동포재단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홍익대학원에서 미술 석사과정을 전공했고, 그 이후로 양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펼쳐오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거주지를 한국으로 옮겼다.
지난해 3월 서울 성곡미술관이 그의 대표작인 '자화상 시리즈'와 초서(草書)를 근간으로 했다는 '광초(狂草) 기법'의 작품을 전시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9월에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회담장에 그가 그린 '광초 100호'가 내걸렸다. 이후 회담장은 'G20 기념관'으로 지정됐고 '광초 100호'도 상설 전시되고 있다.
작품이 얼마에 팔리는지 묻자 최 씨는 "거의 팔지 않아 잘 모르지만 6년 전에 중국인 미술 애호가가 2억 원에 한 작품을 구매해 간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 예술인 마을 대지 근처에 임시 숙소를 짓고 창작 활동을 하는 그는 내년 초 중국 작가의 한국 전시를 주선하기 위해 종종 서울로 나들이를 한다. 베이징 유학 시절부터 양국 미술 교류에 앞장서 온 덕분에 그는 미술계 마당발로 통한다.
최 씨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조선족이라는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며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으로 성공한 조선족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제는 예술 분야로의 도전도 늘어나야 한다"고 후배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삶이 예술에서는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는 큰 힘이 됩니다.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피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자신감을 가지면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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