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 지하통로를 걷다 보면 '서울시 명예의 전당'이 나온다. 소외 이웃을 돕는 데 헌신한 시민 10명을 선정해 동판 부조상을 나란히 새겨넣은 공간으로 지난달 제막했다.
100명이 넘는 후보 가운데 꼼꼼한 심사를 거쳐 '서울의 얼굴'로 뽑힌 시민 중에는 결혼이주여성도 한 명 포함됐다. 조선족 출신인 안순화(51) 씨.
그는 지난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명예의 전당'에 내 얼굴이 새겨진 걸 보니 뿌듯했다"면서도 "지금까지 한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에 오히려 책임감이 커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흔히 말하는 '성공'으로 보기엔 돈을 많이 번 것도, 고위직에 오른 것도 아니지만 안씨가 걸어온 길을 보면 맨손으로 시작해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은 '반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실제로 그가 한국에 처음 온 2003년 서울은 말 그대로 '낯선 땅'일 뿐이었다. 한국말도 거의 하지 못했고, 아는 사람도 한국인 남편 말고는 없었다.
"고향인 중국 하얼빈에서 한족 학교에 다녔거든요. 어릴 때부터 중국말만 하면서 컸죠. 부모님은 늘 '민족의 말'을 배우라고 강조하셨지만 그냥 흘려들었어요. 그땐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가서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안 씨는 오로지 독학으로 한국어를 깨우쳤다. 닥치는 대로 TV 드라마를 보면서 회화를 배우고, 길에서 나눠주는 광고 전단을 따라 쓰며 글자를 익혔다. 이때 "언어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2006년 여성부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에서 중국어 상담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도 당시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땐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 중에 한국어 교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어요. 저하고 비슷한 상황인 거죠. '후배'인 이주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중한(中韓)사전을 들춰가며 통번역에 매달렸습니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남편이나 시댁과 불화를 겪어야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이중언어 강사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이주여성 4명과 함께 매주 토요일 공부방을 연 것을 모태로 '생각나무 BB센터'를 세웠다. 7년째인 올해 강사는 20여 명, 누적 회원은 1천여 명에 달하는 눈부신 성장을 거뒀다.
"처음엔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엄마 나라의 말'을 가르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죠. 아이들이 엄마의 모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해 한국 사회에서 이중언어 인재로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또 엄마의 모국을 이해하게 되면서 사춘기에 겪을 정체성 고민도 줄어들 수 있고요. 공부방에 다녀간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생각나무 BB센터'는 '이중언어와 이중문화를 토대로 풍성한 생각이 열리는 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단체명의 BB는 'Bilingual'(이중언어)과 'Bicultural'(이중문화)의 이니셜이다. 안 씨는 상임대표로 센터를 이끌며 이중언어 교재 개발, 여성 창업 지원, 다문화 인식 개선 교육, 글로벌 전통문화 공연 등을 아우르는 단체로 키웠다.
11년째 한 길을 걷는 안 씨의 뚝심은 각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이주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 2013년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2015년 '세계인의 날' 법무부 장관상 등 민관을 넘나드는 수상 목록을 쌓았다.
하지만 봉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작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하루에 두세 시간을 잘 때도 잦았어요. 낮에는 다문화 강연을 하고, 밤에는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위원회, 서울시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선거연수원의 외국인 선거 강의 등을 준비하느라 뜬눈으로 보내는 날도 많죠. 중국에서 대학 시절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가끔은 '이렇게 무역업을 했으면 벌써 부자가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요."
안 씨는 그러면서도 "한국에 와서 돈보다도 사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센터로 찾아오는 다문화 이웃들을 보면 '이 공간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안 씨를 만나러 찾아간 중화동의 센터 사무실에서는 중국,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들의 발길이 북적였다. 이들은 책상에 앉아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안 씨는 "센터 운영비를 회원들의 자발적 회비로 충당하는 터라 매달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이주민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한 만큼 각계에서도 관심을 보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센터를 나서는데 문틈 사이로 안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어를 배우러 온 이주여성의 질문에 답을 하는 듯했다. "이 문장 말이죠? '괜찮습니다'. 발음이 어렵죠?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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