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트 한채에 2만원 저금만 있었으면…”
1992년 원 단위에 사표를 내고 창업에 나선 최철영(1965년생)씨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그럴만 했다. 1986년 군대에서 제대하고 한 공장에 로동자로 취직했으나 로임이 보잘 것 없었다. 결혼하며 살림집을 마련할수 없어 세방살이로 신혼살림을 차려야 했다. 자기집 마련을 꿈꾸는 안해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애를 바라보면서 남아로서의 자책감을 느꼈다.
원 단위에 계속 눌러앉아있으면 평생 가도 소원을 풀것 같지 않았다. 고민 고민끝에 원 단위를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의 결단에 동조라도 하듯 지인이 신빈현체육운동위원회(현 신빈현체육국)에서 수익창출모식을 고민하고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때까지 구체적인 창업아이템이 없는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협상끝에 신빈현체육운동위원회 소속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신빈현의 특성을 고려해 먼저 석탄과 신빈특산품을 경영했다. 2년여만에 원 단위를 떠나며 품은 소원을 풀수 있었다.
허나 무역회사 경영이 순풍에 돛단격이 아니였다. 어느날 친구가 찾아왔다. 자기가 석탄을 팔수 있으니 먼저 외상으로 제공해달라고 간청했다. 마음이 약한 최사장은 90만원어치의 석탄을 외상으로 넘겨줬다. 친구는 석탄을 다 판매한 다음 10만원의 리윤을 합쳐 100만원 갚겠다고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지났어도 친구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주위로부터 그 친구가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사기당한것을 알았다.
2000년에 이르러 최사장은 신빈은 그리 크지 않은 현성이라 무역으로 더 큰 발전을 가져올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서 번개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번개탄제조공장을 세워 제조사업에 나섰다. 생산된 번개탄은 100% 한국으로 수출했다. 한동안 성장가도를 달렸으나 한국 수출을 전적으로 한국인 사장한테 맡긴것이 탈이 났다. 한국인 사장이 한국에서 판매액을 가로챈채 잠적했던것이다. 번개탄제조공장은 3년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두번의 실패로 최사장은 자신의 지난 길을 되돌아보았다. 사업을 하며 신용을 지키는것은 기본 자세이지만 금전거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피부로 느꼈다. 향후의 진로에 대해서도 사색에 사색을 거듭했다.
2006년 최사장은 무순시정원건축재료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벽돌을 위주로 각종 건축재료를 제조했다. 이 과정에 고객들이 문화석을 선호하는것을 발견하고 2013년에 무순시석흘천하문화석유한회사(撫順市石屹天下文化石有限公司)를 설립하고 전문 문화석 제조에 전력했다. 특히 최사장이 직접 "고안"해낸 수십년 내지 백여년 지난 수공벽돌들을 재가공하여 력사흔적과 력사적 미감을 살린 문화석제품은 시장에서 인기 짱이다. "건축페물"의 재탄생은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가져다주었다.
현재 평균 1천만원 이상의 년매출을 창출하고있는 이 회사는 “료녕성중소기업우수단위”로 전정되였고 지난해 전국적으로 진행된 장백산관광구 문화석 입찰 경쟁에서 우승자로 락점되면서 장백산관광구 중점프로젝트의 제품공급과 시공을 동시에 맡았다.
“24년동안 분투하다보니 비록 상처투성이로 되였지만 식구들이 잘 살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제품이 잘 나간다고, 경제환경이 어렵다고 제품질에 대한 요구를 낮추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최사장은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현장을 누비고있다. 최동승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