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삶의 여열 불태우는 로당원 할머니-리옥금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1월13일 20시22분    조회:954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89세 리옥금 녀사의 이야기

 “당과 인민을 위해서라면 세상에 두려울게 없었다.”

"우마보다 못한 머슴살이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인된 행복이 목숨이상으로 귀중했다.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다."

이는 일생을 나라와 인민을 위한 사업에 바쳐온 리옥금(89살)할머니의 페부에서부터 우러러나오는 말이다.

1922년 7월에 룡정의 한 농촌에서 태여난 그녀는 한평생 일을 손에서 놓지않았다.  길림성정협 위원, 길림성부녀위원회 집행위원으로까지 당선되였던 그녀는 나라와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섰다. 파란만장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그녀는 가난한 머슴살이소녀로부터 어엿한 혁명자로, 전선지원모범으로, 전국로력모범으로, 전국3.8붉은기수로 성장했고 모택동주석의 접견만 해도 네번이나 받았다.

1942년, 촌농회 부주임으로 당선된 그녀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토비숙청의 승리를 위해 선후로 남편과 세 시동생을 동원하여 전선에 내보냈으며 1947년 남편이 소가툰 마안산전투에서 희생되자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촌 부녀들을 이끌고 억척스레 농사를 지었다.

당시 시부모와 시누이 그리고 자식까지 아홉 식솔의 대가정을 거느린 그녀는 가사만 돌보자고 해도 힘에 부칠정도였지만 지주, 한간주구 청산과 토지개혁에 적극적으로 뛰여들었으며 호조조를 무어 생산발전과 전선지원을 추진하였다. 그해 11월, 그녀는 생산모범, 렬사유가족모범, 전선지원모범으로 길림성로력모범대회에 출석했고 이듬해 28살의 나이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리고 1949년 3월 24일, 전국제1차 부녀대표대회에 출석해 모주석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대회 이튿날인 25일 모택동주석을 비롯한 중앙지도자들이 처음으로 북경에 입성하는 날, 녀성대표대회 주석단 성원으로 비행장에 나간 그녀는 영광스럽게도 꿈에서 그리던 모택동주석을 면전에서 만나보는 영광을 지니게 됐다.  그날, 모택동주석은 맨 앞줄 첫자리에 선 그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옆에 있던 통역이 그녀의 남편이 전선에서 희생되고 시동생 셋이 전선에서 싸우고있다고 소개하자 "남편의 뒤를 이어 혁명을 끝까지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며 다시한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장알이 박인 그의 손을 보면서 "진정 농민의 손입니다"라고 하며 등을 다독여주기까지 했다. 격동의 순간은 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또 전국 각지에서 온 일곱자매와 함께 두시간동안이나 모주석의 접견을 받았고 전국녀성대표대회가 끝나는 날 친선모임에서 또다시 모주석, 류소기, 주은래, 주덕 등 지도자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녀는 모주석의 간곡한 부탁을 받들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1949년, 그녀는 중국녀성대표의 신분으로 북경에서 열린 아시아녀성대표대회에 참석했고 50년대초에는 두차례나 길림성 1등로력모범의 영예를 따냈으며 1962년 3월 중화전국부련회로부터 첫패로 "전국3.8붉은기수"칭호를 수여받았다.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그녀는 당중앙의 호소에 호응하여 전선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오빠 넷이 모두 항미원조에 참가하도록 지지했다. 그녀의 세 시동생가운데서 둘은 조선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영예를 지녔지만 그녀도 전례없던 동란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반란파들은 그녀의 목에 "녀자본가", "당내의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라는 묵직한 패쪽을 걸고 전 촌을 돌아다니며 비판투쟁하였다. 어떤 때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 땅바닥에 엎질러놓고 발로 마구 짓밟았다. 머리가 무더기로 빠지고 숨쉬기도 바빴으나 그녀는 "내 손을 보아라. 모주석께서는 내 손을 진정 농민의 손이라고 하셨다. 자본가를 했다면 내 손이 어찌 이럴수 있겠는가?"며 반박해나섰다. 이렇게 그녀는 2년 반 동안이나 투쟁대상이 되여 시달림을 받았다.

불요불굴의 의지로 준엄한 시련을 이겨낸 그녀는 그후 드높은 열정으로 농업생산에 뛰여들었다. 1978년 봄, 그녀는 길림성녀성사회주의건설열성자로 표창받았고 그해 9월에는 연변녀성대표의 신분으로 제4차 전국녀성대표대회에 참가했으며 "전국3.8붉은기수"란 칭호도 재차 수여받았다.

학력은 없지만 오로지 당과 인민에 대한 충성심과 일욕심으로 살아온 그녀, 누구도 엄두를 못내는 불길속에 뛰여들어 가스통을 건져내 한차례 악성사고를 방지하고 홍수때 2000원의 손실을 보면서까지 자기 집 새 담장을 허물어 옆집으로 흘러드는 물길을 자기 집에 끌어들인 그녀는  당원의 본색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사업하였으며 만년에는 무보수로 가두조장사업에 종사했다.

90 고개를 바라보는 그녀이지만 "아직도 집안의 가사를 도맡아하고 지부대회나 부녀대회에 꼭꼭 참가한다"는 그녀, "나이가 많아 더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할수 없다는것이 마냥 안타깝다"는 그녀는 "움직일수만 있다면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해결하련다”면서 한 로공산당원의 아름다운 형상을 보여주었다.

연변일보    차순희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06-14 김창영 기자]자서전 《고난의 발자국》에 그려진 리수철선생의 삶의 궤적                이 세상을 떠난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된다면 그 사람은 값진 삶을 살았다고 할수 있다. 취재차 봉성시조선...
  • 2011-06-15
  • 민족을 빛낸 당원들(10)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13) 북경화공대학 박사생 지도교사, 학술위원회 주석 김일광교수 (1933년생)는 ‘군자론’ (群子论)을 창시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널리 응용하여 독특한 연구성과들을 거둔 저명한 학자이다.그는 2009년, 공화국 60주년 공훈인물 60명에 선정돼 기념우표에 ...
  • 2011-06-14
  • 북경 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 공신ㅡ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 이끌고 7년 땀동이 [길림신문 2011-06-14 리철수 기자]북경의 조선족동네로 소문난 망경, 매주 토, 일요일이면 중앙미술학원 교내운동장에서는 어김없이 여섯 게임의 순 조선족축구선수들로 무어진 축구시합이 조직된다. 전원 조선족들로 무...
  • 2011-06-14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0)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에너지는 마음속에 있다서울성형외과 김금화 원장 인터뷰     김금화 원장 프로필   1987년9월~1991년 9월 가목사의학원 졸업   1994년 하얼빈시미용과학기술연구회에서 진수   1998년~2002년 한국 여러 성형미용...
  • 2011-06-12
  • 개혁개방 1번지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 심수월드옥타 남기학지회장을 만나[인터넷료녕신문 2011-06-10 리덕권 기자]지난 4월, 한국 서울에서 있은 월드옥타대회기간 기자는 월드옥타 심수지회 남기학지회장을 만나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의 상황을 소개받았다.   개혁개방전, 자그만한 어촌이였...
  • 2011-06-10
  •      (흑룡강신문=하얼빈) 고 정판룡 교수( 1931. 10 -2001. 10)는 연변대학의 첫 박사생지도교수로서 20명의 문학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고 연변대학을 현대적인 종합대학으로 일떠세우는데 거대한 기여를 했다.   1949년 17세 나이에 연변대학에 입학,1980년 연변대학 부교장으로 임...
  • 2011-06-09
  • 연매출 1600억원 비결? 현지에 맞추되 끌려가진 말라한국서 들여온 LCD에 소프트웨어 결합 판매빠른 정보망 부품 표준화로 중국 시장에서 정면 승부"중국에 진출한 한국 IT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경영기법을 더 진화시켜야 합니다.삼성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5점 만점에 1점도 주기 어려워요"최근 서울 광진구 워커힐...
  • 2011-06-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02)1936년 5월 25일 새벽, 할빈기차역에 도착한 렬차에서 지식분자 기질이 다분한 젊은 부부가 내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조직이 할빈에 파견한 김문철(조선족), 도개손 부부이다.   이때부터 김문철은 중공할빈시위서기를, 도개손은 시위선전부장을 맡았다.   1934년 4월 당조직이 파괴...
  • 2011-06-02
  • [길림신문 2011-06-02 박명화 유경봉 기자]농민기업가에서 그룹회장으로 되기까지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8) 장춘대화그룹 리사장 리규광을 만나    리규광(李奎光) 프로필 1952년 5월 22일 길림성 서란시 출생 1969-1980 농업기계공장 로동자 1981-1984 길림성농업학교 학생(일본어 학습) 1985-1986 일본자비...
  • 2011-06-02
  • 청도 조선족들에게 예술의 향기 주고저 [길림신문 2011-06-01 통신원 손운관 ] -청도시조선족진달래예술단 엄정숙단장의 이야기 청도시에는 근 20만명에 이르는 조선족이 살고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많이 살고있는 곳에 우리 민족 예술단이 없다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엄정숙은 청도시 조선족들에게 우리 민족 문...
  • 2011-06-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