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병인 -조선족 특등 전투영웅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3월23일 09시23분    조회:2089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특등 전투영웅 리병인(1995년)

[길신 2011-03-22 리영춘 글] 조선족 특등 전투영웅 리병인은 1922년 5월 24일에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서 태여났다. 2004년 4월 26일 도문시에서 82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리병인은 해방전쟁시기 이름난 특등 전투영웅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지방에 돌아온후 자신의 사적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에 대하여 별반 아는것이 없고 조선족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리병인의 아버지 일가는 원래 조선 함경남도 리원군 리원리에서 살다가 20세기 초기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화룡현 서성향 장항촌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었다. 그때 장항촌 촌민 대다수가 조선에서 건너온 리씨성을 가진 사람들이였기에 그곳 이름을 리원촌이라 불렀다 한다. 리병인은 바로 이 리원촌에서 태여 났다.

14세 되는해에 그는 부모를 따라 지금의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에 이사 하여왔다. 그가 14세 되는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16세 되는 해에 어머니도 세상을 하직하였다. 고아로 된 그는 한동안 형님의 집에서 살았다.

1945년 10월 6일 리병인은 룡원촌에서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여 6퇀3영9련에서 선후로 전사, 패장, 대리련장직을 담임하였다. 그는 선후로 부대를 따라 화전자 쟈피거우(桦甸夹皮沟)전투 삼도만 토비숙청 전투, 사평 2차전역 등 여러차례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어느 한차례의 전투에서 리병인은 첨도패(尖刀排) 패장을 담임하고 부대의 제일 앞에서서 적들을 진공하였는데 수십명의 적들을 소멸하여 전반 전투의 승리를 위하여 관건적인 앞길을 헤쳤다. 하지만 그는 그번 전투에서 적들의 폭탄파편에 왼쪽 팔을 잃었고 눈도 부상을 당하였다. 당시 《길동보》신문은 리병인의 사진과 더불어 그의 영웅사적을 소개하였으며 부대의 간보도 그의 사적을 올렸다.

1947년 5월 1일, 길림성 돈화현에서 《동북민주련군제1차영웅모범표창대회》가 열렸는데 그번 대회에서 리병인은 동북민주련군 총사령부 총정치부로부터 《특등전투영웅》 영예를 수여받았다. 그번 대회에 친히 참석한 당시 길림성 성장이며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인 주보중장군이 직접 리병인에게 영웅훈장과 영예증서를 발급하였으며 붉은 꽃도 달아 주었다.

1947년 5월 1일, 돈화에서 거행한 《동북민주련군 제1차영웅모범표창대회》시 소속부대에서 파견한 호송인원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사람이 리병인임.

그후 리병인은 비록 한쪽팔을 잃었고 눈도 상하였지만 부대를 떠나지 않고 계속 부대를 따라 전투에 참가 하였다.

1948년 10월 12일 리병인은 부상된 상처때문에 부대에서 지방에 전업하였으며 그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지방에 돌아온후 그는 민정부문으로부터 일등잔페전업군인으로 인정받았으며 여러번 《우수공산당원》영예칭호를 수여 받았다. 리병인은 지방에 전업하여 온후 주요하게 림업계통에서 사업하다가 1983년 1월 5일에 리직휴양(离休)하였다.

리병인은 부대에서 지방에 돌아온후 항상 전우들을 잊지 않았는데 특히 함께 전투하다 희생된 렬사들을 더욱 잊지 못하였다.

그는 항상 《전쟁마당에서 희생된 렬사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이고 행복한가》라고 말한다. 전쟁의 나날은 리병인으로 하여금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수없는 기억을 남기게 하였다.

1981년 60세 생일에 남긴 사진

부대가 사평전역에 참가한후 연통산에 돌아와 휴정(休整)할때다. 남태봉이라고 하는 어린 통신원이 임무를 집행하다가 불행이 적들의 폭탄에 맞아 부대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에 또 파상풍에 걸려 죽었다. 리병인이 소식을 듣고 다급히 병원에 찾아 갔을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되였는데 어린 통신원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어린 통신원은 화룡현 복동향에서 참군하였는데 고아이며 희생될때 20살도 되지 않았다. 그때 리병인도 상한 몸이였지만 전우들과 함께 희생된 어린전사를 반석(磐石)의 한 철도다리옆에 묻었다.

해방후 리병인은 여러모로 렬사의 친척을 찾았는데 끝내 렬사의 녀동생을 찾아 렬사가 희생된 경과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반영하였는데 그의 노력으로 렬사가 희생된 30여년후인 1978년도에 화룡현정부는 렬사의 녀동생에게 《혁명렬사》증서를 발급하였다.

1950년초 리병인은 한 부대에서 희생된 렬사 박창준의 두 남동생이 어렵게 살고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아보니 하나는 소학교에서 잡일을 하고 다른 하나는 거리에서 밥을 빌어 먹는 거지가 된것이다. 리병인은 즉시로 거지가 된 렬사의 동생을 자기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다.

리병인은 결혼한 후에도 그 렬사의 동생을 자기 집에서 함께 있게 하였다. 또 렬사의 동생에게 직업을 찾아주었다. 그후 렬사의 동생은 조선에 가서 인민군에 가입하여 조선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인민군 군관이 되였는데 한번은 경위원 두명과 함께 리병인을 찾아온 일도 있다.

1987년 렬사의 동생들과 함께. 앞줄 왼쪽으로부터 렬사의 큰 동생, 리병인, 렬사의 작은 동생.

이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리병인은 자신의 사적을 별로 말한적이 없다. 다행히도 1981년도에 룡정 료양원에서 료양하던중 《연변일보》사의 한 부주필이 리병인의 사적을 알고 본인의 저술에 따라 몇만자에 달하는 회억록 《내가 걸어온 길》을 집필하여 주었다. 이 회억록이 리병인을 알아보는 유일한 재료로 되었다.

1987년 조선에서 온 렬사의 동생과 함께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06-14 김창영 기자]자서전 《고난의 발자국》에 그려진 리수철선생의 삶의 궤적                이 세상을 떠난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된다면 그 사람은 값진 삶을 살았다고 할수 있다. 취재차 봉성시조선...
  • 2011-06-15
  • 민족을 빛낸 당원들(10)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13) 북경화공대학 박사생 지도교사, 학술위원회 주석 김일광교수 (1933년생)는 ‘군자론’ (群子论)을 창시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널리 응용하여 독특한 연구성과들을 거둔 저명한 학자이다.그는 2009년, 공화국 60주년 공훈인물 60명에 선정돼 기념우표에 ...
  • 2011-06-14
  • 북경 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 공신ㅡ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 이끌고 7년 땀동이 [길림신문 2011-06-14 리철수 기자]북경의 조선족동네로 소문난 망경, 매주 토, 일요일이면 중앙미술학원 교내운동장에서는 어김없이 여섯 게임의 순 조선족축구선수들로 무어진 축구시합이 조직된다. 전원 조선족들로 무...
  • 2011-06-14
  • 중국조선문 3대 언론사 특별기획―중국조선족 기업인(10)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에너지는 마음속에 있다서울성형외과 김금화 원장 인터뷰     김금화 원장 프로필   1987년9월~1991년 9월 가목사의학원 졸업   1994년 하얼빈시미용과학기술연구회에서 진수   1998년~2002년 한국 여러 성형미용...
  • 2011-06-12
  • 개혁개방 1번지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 심수월드옥타 남기학지회장을 만나[인터넷료녕신문 2011-06-10 리덕권 기자]지난 4월, 한국 서울에서 있은 월드옥타대회기간 기자는 월드옥타 심수지회 남기학지회장을 만나 심수에서 활약하는 조선족기업인들의 상황을 소개받았다.   개혁개방전, 자그만한 어촌이였...
  • 2011-06-10
  •      (흑룡강신문=하얼빈) 고 정판룡 교수( 1931. 10 -2001. 10)는 연변대학의 첫 박사생지도교수로서 20명의 문학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냈고 연변대학을 현대적인 종합대학으로 일떠세우는데 거대한 기여를 했다.   1949년 17세 나이에 연변대학에 입학,1980년 연변대학 부교장으로 임...
  • 2011-06-09
  • 연매출 1600억원 비결? 현지에 맞추되 끌려가진 말라한국서 들여온 LCD에 소프트웨어 결합 판매빠른 정보망 부품 표준화로 중국 시장에서 정면 승부"중국에 진출한 한국 IT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경영기법을 더 진화시켜야 합니다.삼성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5점 만점에 1점도 주기 어려워요"최근 서울 광진구 워커힐...
  • 2011-06-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02)1936년 5월 25일 새벽, 할빈기차역에 도착한 렬차에서 지식분자 기질이 다분한 젊은 부부가 내렸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조직이 할빈에 파견한 김문철(조선족), 도개손 부부이다.   이때부터 김문철은 중공할빈시위서기를, 도개손은 시위선전부장을 맡았다.   1934년 4월 당조직이 파괴...
  • 2011-06-02
  • [길림신문 2011-06-02 박명화 유경봉 기자]농민기업가에서 그룹회장으로 되기까지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8) 장춘대화그룹 리사장 리규광을 만나    리규광(李奎光) 프로필 1952년 5월 22일 길림성 서란시 출생 1969-1980 농업기계공장 로동자 1981-1984 길림성농업학교 학생(일본어 학습) 1985-1986 일본자비...
  • 2011-06-02
  • 청도 조선족들에게 예술의 향기 주고저 [길림신문 2011-06-01 통신원 손운관 ] -청도시조선족진달래예술단 엄정숙단장의 이야기 청도시에는 근 20만명에 이르는 조선족이 살고있다.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많이 살고있는 곳에 우리 민족 예술단이 없다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엄정숙은 청도시 조선족들에게 우리 민족 문...
  • 2011-06-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