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國의 삶의 현장, 동포들의 喜怒哀乐을 살펴보다>
이화진 기자의 現場목소리 시리즈 2
현재,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개미군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약 20만 명, 이들의 작업 현장과 실생활은 어떨까?… 필자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법과 제도의 테두리 밖에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노동환경과 생활의 현실을 재조명하고자 이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주> 지난 10일(일요일) 오후, 나는 철근공으로 뛰고 있는 김 팀장네 팀원 박 씨가 8년간 카지노에 출입하면서 알뜰살뜰 모은 돈에다 빚까지 내어 생돈 1억 원 이상을 날리고 아직까지 대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카지노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생 처음 카지노를 찾아 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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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진기자 |
서울역 8번 출구 근처에는 이미 왜소한 체구에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박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2011년 겨울, 카지노에서 월급은 물론 고국의 가산마저 탕진한 중국동포가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했던,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아깝게 죽어 갔을 뿐, 일확천금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요녕성 선양 출신인 박(52)씨는 매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열심히 철근현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피땀 흘리며 번 돈을 손에만 쥐면 “어느새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마음은 자제하리라 다짐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하는 목적이 카지노에 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박 씨는 2011년에 이곳을 찾아 재미삼아 슬롯머신에 손을 댔다. 잃을 때도 딸 때도 있었지만, 그리 큰돈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블랙잭, 바카라 등 다양한 게임에 빠져 배팅이 커지기 시작하였고, 힘들게 일해서 모아둔 돈은 물론, 월급마저도 ‘카지노’라는 블랙홀에 죄다 쏟아 붓게 되었다.
이날 카지노에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 외국인들이 일각에 2~3명꼴로 입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전날은 사람이 너무 많아 다닐 길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중에 ‘한탕’을 꿈꾸는 중국동포들은 얼마나 될까?
서울 시내 세 곳의 카지노에는 내국인은 입장이 불가능하지만, 외국인은 외국인등록증만 있으면 상시 출입 가능하다. 한국에서 항상 이방인으로, 색다른 눈길을 의식해야 하지만, 이곳에 오면 사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현란한 등불 아래의 호화로운 분위기, 드라마에서만 보아 왔던 젊고 아름다운 딜러들의 현란한 손놀림, 배팅할 자금을 가지고 자리하나 꾀 차면 드라마의 멋진 주인공이 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카지노는 이론이 존재하지 않고 고수나 프로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자아만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주관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그때의 흐름에 따라 빨리 적응하고 순응해야 살아남는다. 아무리 감이 좋고 흐름이 보여도, 무조건 전주가 배팅하는 대로 때라 배팅해야 한다. 시드머니대비 10%미만에서 잠그고, -30%를 최대 손절로 한다. 밑천의 10%를 따거나 30%를 잃으면 무조건 일어’서야 한다.
그날 나는 직접 체험을 하고자 10만원을 밑천으로 게임좌석에 앉았다. 박 씨가 더 달라고 판을 두드리라고 하면 두드리고, 아니라고 손을 저으라면 젓고, 판에다 손으로 줄을 그으라하면 그으면서 게임을 했다. 어느덧 나도 동석한 이들과 같이 딜러의 손 움직임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되었고, 바카라 카드 오픈 직전이면 긴장감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노래졌다. 실지로, 판돈 큰 게임에서는 쇼크가 와서 병원에 실려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나는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10만원을 거덜 내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후줄근해서 좌석을 빠져 나왔다. 나는 딜러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이런 슬픈 현실도 있구나’하고 개탄을 했다. 누가 돈을 잃든 말든, 설사 10만원 아니라 1억을 날린다고 해도, 서로가 눈 깜박하지 않을 정글세계 같았다.
현재 국내에는 총 16개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있다. 서울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카지노워커힐은 2011년 한 해 동안 33만9000명이 입장해 344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카지노 업계에서는 이곳 주말 손님 2천여 명 가운데, 10%를 외국인 노동자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동차나 귀금속 등을 담보로 밑천을 대주는 이른바 ‘꽁지(노름판 뒷돈을 대주는 사채업자)’들도 성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땀 흘려 모은 돈을 몽땅 날리는 것은 물론, 고향의 가산마저 탕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돈을 모두 날릴 경우, 불법 체류를 비롯해 자칫 강력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처음 건설현장을 취재할 때 보았던 박 씨가 아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일만 하던 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게임엔 왕 초보인 필자 앞에서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모시듯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며 흥분에 들떠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고마움보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기는 만원부터, 저기는 5만원부터, 저 곳은 VIP들이 모여 있는 곳, 하루에도 몇 십억씩 오간다면서,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빈 종이컵을 딜러한테 던지며 치워달라고 호령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손을 때야지 않겠냐고 묻자 “중국 돌아가도 도박판에 박혀있을 텐데, 여기가 너무 좋다. 하루 삼시 세 때 밥이 나오고 음료수 맘대로 마실 수 있고 환경 좋고, 놀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눈치 안 보고 놀 수 있고,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며, “술도 안마시고, 남들처럼 여자에게 관심도 안 갖는데, 내가 이것까지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반문했다.
같이 입국해 돈벌이 하다가 불법체류로 입건되어 강제출국 당했다는 아내 보기가 미안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심양에 아파트 있고 딸이 다 커서 제 밥벌이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고,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카지노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그래도 한순간에는 안타까운 기색이 엿보였다. 지금까지 9년 가까이 건설현장 을 다녔지만 10만원 적금통장도 없다고 한다. 중국의 아파트도 아내가 벌어서 샀단다. 그 집까지 팔아버릴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빚은 빚대로 커져만 갔다. 그러다 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죽으면 다”라며 서글프게 웃는다.
그로서는 “승부도 빠르고 유독 분석적인 자기 성격과도 딱 부합되는, 놀이 겸 벌이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화려한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인생베팅’, 재산을 탕진하고 한숨을 쉬면서도 욕망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줄도 모른 채, 재기를 노리는 이들이 너무 가련해 보였다.
사회는 이곳에서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을 인생의 패배자로, 도박중독증 환자로 여긴다. 이곳에서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갈리고, 다양한 만남과 이별과 사별이 따른다. 카지노는 한번 손을 대면 끊기 어렵다. 한번 빠지면 인간성은 황폐되고, 인간관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과 거리를 두면서 완전 고립에 이르게 된다. 절제를 모르면 영혼도 파멸되고 만다.
당신한테도 당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와서 공연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붉은 카펫 위에서의 삶은 이제는 그만하기를 기도해 본다.
(다음에 계속)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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