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리는 87시간,생사를 다투는 대구출 작전
훈춘고속철도 소반령 1호터널 붕괴사고 구조작업 실록
4월 2일 0시 40분, 콩크리트주입작업이 한창이던 소반령 1호턴넬 입구 1100메터 되는 곳에서 갑자기 붕괴사고가 발생, 2명이 즉시 탈출했지만 12명은 턴넬안에 갇혔다.
이 특대사고 관련 소식은 일파만파로 번졌고 사회 각계는 큰 관심을 보였으며 곧바로 대구출작전이 시작됐다.
4월 3일 오후 2시 40분, 붕락된 부분이 구멍이 뚫리면서 생명의 통로가 닿았고 내부에서 생명의 메시지가 전해왔다.
4월 4일 오후 1시 55분, 웨침소리를 통해 갇힌 12명이 생존해있다는 희보가 전해왔고 구조인원들은 고립인원들에게 좁쌀죽, 손전등 등 음식과 물품을 전해주었다.
4월 5일 오후 3시 08분, 첫번째 고립일군이 탈출한 뒤를 이어 3시 30분까지 12명 고립일군이 전부 훈춘시병원에 옮겨졌다.
열두번째 고립인원이 구급차에 옮겨지기까지 87시간 이어진 대구출작전을 통해 길림-도문-훈춘려객운수전용선 소반령 1호턴넬 붕괴사고로 고립된 12명 인원이 전부 구출됨으로써 턴넬붕괴사고 구조의 력사적인 기적을 만들었다.
소반령턴넬은 길림-도문-훈춘려객전용선의 세번째로 큰 턴넬이며 훈춘시 밀강향경내에 위치해있다. 턴넬 전체 길이는 6287메터이고 턴넬이 위치해있는 지층은 제4계파 홍적층과 결여비탈적층이며 지질조건이 복잡하고 시공난이도가 크다.
사고가 발생한후 길림성 지도자들은 제1시간에 앞장서 지휘했다. 각급 정부는 적극 호응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며 유력한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서는 일목료연하면서도 일사불란하게 구조작업이 펼쳐졌다. 구조를 시작하자 해당 부문은 조직조률총지휘부, 현장구조지휘부, 정부후근보장지휘부를 건립해 밀접하게 배합하고 협력했다. 4월 2일, 새벽 2시 41분, 훈춘시공안국지휘중심은 중국철도 19국의 사고관련 경보를 접수한후 관할구의 영안파출소 경찰들을 사고현장에 파견했다.
아침 6시, 리경호주장 및 해당 지도자들은 인차 현장에 도착, 즉시 응급대책을 가동하고 부주장 조리를 총지휘로 하는 지방현장구조종합보장지도소조를 세웠으며 제1시간에 공안, 소방, 안전감독, 위생, 통신, 훈춘광업그룹회사, 요천천연가스회사 등 해당부문과 기업의 구조력량을 조률해 구조작업을 협조했다.
오전 10시, 성당위 서기 왕유림, 성장 바인초루는 성정부 응급지휘중심을 찾아 현장응급지휘차를 통해 리경호주장의 사고정황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청취했다. 왕유림은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현장은 반드시 통일적으로 지휘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과학적으로 구조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중국철도 19국의 구조사업을 참답게 배합하면서 전 주, 정 성의 힘을 모아 고립인원을 구출해야 한다. 그리고 안전평가를 하고 과학적으로 연구, 판단함으로써 2차 재해가 발생하는것을 견결히 막아야 한다. 오후 2시, 전 성 안전생산전화TV회의가 열렸다.
4월 3일,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장안순은 사고가 발생한 턴넬에 도착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지도했다. 장안순은 구조사업의 안전을 확보하고 전문가의 의견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4월 5일 오후, 장안순은 가장 빠른 시간에 훈춘시병원을 찾아 성공적으로 구출된 12명 일군을 위문했다.
부성장 곡춘립은 현장구조지도 총지휘로서 시종 구조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곡춘립은 수차례나 붕괴현장에 심입하고 회의를 소집했으며 구조사업에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했다.
주급지도자들인 우효봉, 박송렬, 기개기, 주정부 비서장 비립발, 훈춘시당위 서기 고옥룡 등도 해당 부문 책임자들과 함께 현장에 심입하면서 시공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구조작업을 펼쳤으며 조직담보, 물질보장, 현장구조, 안전보장, 후근봉사, 의료위생, 가족배치 등 전방위적인 봉사를 제공했다.
국가안전감독관리총국 국장 양동량, 부국장 왕덕학은 붕괴사고와 관련해 구조사업은 과학적이고도 안전하게 전개하고 고립인원들을 하루빨리 구조하며 2차 사고가 발생하는것을 견결히 막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국가철도총국 국장 성광조,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부주임 장희무, 중국철도건설그룹 리사장 맹봉조, 총재 장종언도 지시를 내렸다. 심양철도국 국장 왕점주, 부국장 왕범, 중국철도 19국 리사장 갈영리는 현장에서 지휘했다.
전반 구조사업은 전문가결책과 과학결책을 부각시켰다. 사고발생후 현장에서는 즉시 국가안전감독총국, 심양철도총국, 중국철도건설총회사, 중국철도 19국으로 구성된 구조전문가소조를 설립하고 고립인원을 구출하는것을 우선목적으로 두가지 방안을 취했다.
첫째는 턴넬 왼쪽 천정 콘크리트를 주입한 곳에 인공으로 작은 구멍을 내여 구출통로를 내는것이다. 둘째는 수평천공기를 통해 산소공급통로를 내는것이다. 인공시공이 속도가 느려 고립인원들의 생명위험이 커질것을 대비해 전문가들은 액체압축지하도관기(液压顶管机)를 사용할것을 건의했다. 턴넬내 12명 고립인원들이 전부 생존해있음을 확인하고 음식을 보낼때 인신안전을 위해 전문가들은 원래의 원시적인 인공착굴방식을 취해 12명 고립인원들을 성공적으로 구출했다.
4일동안 구조인원들은 밤낮없이 악렬한 기후와 싸우면서 구조작업을 펼쳤다. 이곳에서는 지도자와 군중이 따로 없었고 목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곽밥으로 끼니를 에웠으며 피곤하면 차에서, 시공현장 간이숙소에서 잠깐 눈을 붙인후 계속해 작업을 펼쳤다.
생명을 최상으로 분초를 다투면서 구조작업 펼쳐
구조중건설측, 시공측, 지방당위, 정부는시종생명을최상으로 시간과 경주하고 분초를다투면서 고립인원을구출하기에 전력했다.
사고발생후 현장지휘부의 통일적인지휘하에 구조인원들은 제1시간에 통풍도관을 통해 산소를공급했으며 동굴밖에서 동굴내에 흙을보냄으로써 계속해 붕괴되는것을 막고 고립인원의 생명안전을 확보했다.
전문가들은 수평천공기를 통해 붕괴된곳에 산소공급 통로를 뚫음으로써 공기, 물자를 보내고 메세지를 주고받을것을 건의했다.
오후 1시, 연변요천천연가스회사에서 비굴착수평천공기를보내왔다. 전문가들은 붕괴부분의 웃부분에 구멍을 뚫을것을 건의했다. 저녁 11시경, 천공기가 15메터까지 뚫었을때 전방의 금속에 부딛쳐 드릴이 부러졌다. 이회사에도 부속품이 없어 구멍뚫기작업을 멈출수밖에 없었다.
4월 3일새벽 2시, 중국철도 19국은 또 두번째천공기를 배치해 다른부위에서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8메터까지 뚫었을때 또금속물체에 부딪쳐 드릴이부러졌다. 세번째 천공기를 배치해 7메터 좌우 뚫었을때 붕괴된 부분이 느슨함으로 인해 천공기로 빠져나온 쓰레기가 배출되지 못해 드릴이 또다시멈추었다. 때는 이미 아침 6시였다. 12명인원들이 이미 29시간동안 고립되였다. 구조지휘부는 인차 목단강-수분하철도시공에서 사용하고있는 이딸리아산 천공기를조률했다. 오전 11시에 이딸리아산 천공기가도착했다. 오후 2시 40분, 이딸리아산 천공기가 21메터까지 들어가자붕괴된 부분이 뚫렸고 구조인원들은 안에서 철관을 두드리는소리를들었다. 드릴을 뽑아낼때 구조인원들은 드릴에 철사가 감겨져있는것을 발견, 안에 고립된인원들이 살아있음을 알았다.
생명통로가 열리자 현장작업일군들은 약한 도관을 통해 안에 사탕물을 운송했다. 3일저녘, 현장에서는 지역에서 제작된도관을 사용하려했으나 강철이 단단하지못해 작업을 할수가 없었다.
4월 4일오전 10시, 전공기는 또다른곳에서 구멍을 뚫으면서 도관을 안장했다. 오후 1시 55분, 직경이 14센치메터되는 음식통로가 통한후 현장에서 구조작업을펼치던 심양철도국국장 왕점주는 인차 도관을 통해 고립인원들과 대화를 했다. 12명고립인원들이 모두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현장구조인원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였으며 저마다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구조일군들은 고립일군들에게좁쌀죽, 손전등 등 음식과물품을 전달했다.
총지휘부는 현장작업, 안전완충, 전문가연구, 기다림작업, 안전등 5개부분으로 나뉘여 매부분에 해당일군들이 대기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오후 2시, 산서태원에서 운송한 2대 액체압축지하도관기와 82센체미터 강철도관자동차가 사고현장에 투입되면서 두번째 생명통로를 뚫을 준비를 마쳤다. 이때 인공적으로뚫은 탈출통로가 이미 13메터까지 들어갔다. 저녁 6시, 15.7메터까지 뚫었을때 전문가들은 두번째 탈출통로를 뚫을것을 연구하면서 영양전문가의 의견에따라 고립인원들에게두번째로 음식을운송했다.
4월 5일아침 5시, 교대작업을 통해탈출통로가 18.1메터까지 뚫렸다. 두번째 탈출통로도액체압축지하도관기로 0.6메터정도 전진했을때 무너져내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전문가들은 두번째 탈출통로계획을 포기했다. 현장일군들은 고립일군들에게 연필, 종이, 손전등등을보냈다. 오전 9시부터 조금씩 뚫기시작해서 오후 1시에 이르자 빛을보았다는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구조지휘부는 고립일군들에게 또다시 좁쌀죽, 닭알, 햄, 바나나등 음식을 보냈다. 오후 2시 10분, 탈출통로를 뚫고있던 2명 일군이 갑자기 물살로인해 밀려나오자 전문가들은 작업을 정지할것을 명령했다. 오후 3시 08분, 구조일군들이 받침대를 세우고 구조작업을 펼치고있을때 탈출통로 통해 한사람이 기여나왔다. 탈출통로에서 빛을본 고립일군들은 다함께 큰돌을 옮긴후 안에서 기여나온것이였다. 현장에 배치되였던 12대 구급차가 턴넬에 들어가 12명 고립일군들을 하나씩 싣고 병원으로 옮겼다.
각지역의 사심없는 지원, 구원의 기적을창조
훈춘인민은 몇십년동안 철도개통을 고대해왔다. 구원과정에서 기관, 부대, 국가기업, 민영기업이거나 일반시민이거나를 막론하고 시종 한가지 신념으로 뭉쳤다. <<모든 대가를아끼지않고 훈춘을 위해서 철도를 부설하는 철도로동자들을 구출하자>>…
2일오전 9시, 소식을 접한 훈춘광업집단회사 사장 윤창승, 총공정사 황경은은3개대의 광구구조대원을 거느리고 3대의 광산응급차, 1대의지휘차량을 동원하여 현장으로 향했다. 부근에 있던 중철12국, 17국, 턴널국은 신속히 일군을 집결하고 긴장한 구조작업에 뛰여들었다. 연변요천천연가스회사가 룡정시에서 갖고온 천공기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오후 2시, 연변이동회사 부총경리 장희강은 공정기술일군을 인솔하여 붕괴터턴널에 도착하여1500메터의 광케이블을 부설하고 붕괴체부근에 림시기지국을건설함으로써 붕괴체내부와의 련계를 보장했다. 구조진척을 다그치기 위해 중철17국은 산서태원에서 대공률의수평식급양기와 직경이 820미리메터에 달하는 대공률기계를 동원했다.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펼치던 중철19국 5공구일군들은 인공으로한메터 한메터 진입했고2시간에 한번씩 교대작업했다. 외부에서 로동자들은 밤낮휴식이 없이 작업하면서도“사람을구하는것이중요하지요, 어찌휴식할수있습니까”하면서 분투했다.
훈춘시공안국은 순찰경찰, 교통경찰, 치안, 영안진파출소등을 포함한160명의 병력을 출동하고 시구역에서 100명을대기시켰으며35대차량, 4대의대형뻐스를동원하여 사고현장의 교통, 치안사업을 보장했다. 현장에는 또46명의 소방관병, 응급구조차량 8대, 연변소방지대, 연변특수근무대, 왕청소방대, 도문소방대도 일군과 차량을 출동했다. 안전감독부분도10명의 일군과 5대차량을 출동했다.
훈춘은“의료치료령도소조”와“의료치료전문가소조”를 구성했다. 사고현장과 주, 시의료기구의 정황에 근거하여 “4.02”의료구조예비방안을 제정하고 50명의 의료일군과 12대의구조차량을 출동했으며 현장에서 구조명령을 대기했다. 3박4일동안, 의료일군은 구조차량에서 생활했다. 훈춘전기공급회사, 훈춘농전회사에서도 최선을다하여 봉사를 제공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1000여명의 구조일군, 300여대의차량, 20여대의 구조장비가 현장에 투입됐다.
5일오전, 훈춘시예붕부동산, 룡달부동산, 길흥목업, 화서인삼업, 운달방직, 동양수산, 환구강구, 구아연변백화등 10여개 기업이 구조일군에게 음식을보내왔다. 71세의 조선족할머니 한정자는 훈춘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있는데 7명의 진흙투성이 인구조대원을 본후 정중한인사와 더불어 그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타드렸다.
구조된 12명은 신속히 훈춘시병원에 호송됐다. 현재, 12명의구조된일군의 생명증상은 안정적이다. 동시에 심리전문가도 심리치료를 대기중에 있다. 12명의 구조된 일군들이 훈춘시병원에 있다는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분분히방문하여 위문을전하고 병원의 복도에는 시민들이 보내온 꽃과식품들로 가득찼다. 생명보다 귀한것이 없고 사랑은 무한하다. 87시간의 구조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존중을 체현했고 보여준것은 사회의 긍정적에너지이다.
상항파기자 연변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