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는 대림중앙시장. 한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28일 낮 12시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33㎡(10평) 남짓한 크기의 약국에 마스크를 찾는 손님 10여명이 몰렸다. 이미 흰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은 마스크 50개가 든 상자를 사기도 했다. 약국만이 아니었다. 화장품 가게와 식료품점 등에서도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12번 출구 쪽에 있는 대림중앙시장 등 사람들이 밀집한 다중이용시설에는 오가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는 평소보다 한산하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대림동에 12년째 살고 있는 50대 중국동포 ㄱ씨는 이날 시장에서 <한겨레>와 만나 최근 겪은 일을 털어놨다. ㄱ씨의 아들은 지난 4일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다쳐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설 연휴 직전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황급히 퇴원시켜야 했다. 아들이 환자들이 많이 오가는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에 걸릴까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더 두려운 건 중국 동포를 향한 혐오 정서였다. “원래도 우리에 대한 차별이 심한데, 괜히 병원에 있다가 병에라도 걸리면 또 ‘조선족’이라고 뭐라고 할 게 뻔하지 않나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도 가짜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도 똑같아요. 중국 동포 차별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ㄱ씨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옆에 있던 동네 주민은 ㄱ씨를 가리키며 “이 언니는 거의 한국인인데…”라며 혀를 찼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병했다는 신종 코로나가 국내에 있는 중국 동포를 향한 ‘포비아’로 확산하면서 ‘서울 속의 중국’이라 불리는 대림동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누리꾼들은 포털 사이트와 각종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하며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3일 한 커뮤니티에는 ‘우한 폐렴 걱정인데 ‘조선족’ 도우미 아주머니 그만 오시라고 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쓴 누리꾼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이번 명절에 중국을 가시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걱정된다”며 “집에 어린아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조선족’ 도우미들 귀국하면 (중국 동포 도우미가 많은) 강남부터 증상 오고 난리 날 거다. 미리 신고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조선족’ 식당 직원들이 침 튀길 거 생각하면 식당도 못 가겠다”며 혐오 정서를 드러냈다.
대림동에서 만난 중국 동포들도 이런 여론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종 코로나 얘기를 꺼내니 낯빛부터 어두워졌다. 지난해 한국에 왔다는 중국 동포 ㄴ씨는 “(신종 코로나와 중국 동포 연관성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속상하다. 그 부분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돌아섰다.
대림동 상인들은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림동에 화장품 가게를 연 지 1년된 중국 동포 이아무개(49)씨는 “억울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시로 매장을 청소한다. 화장실에 손 소독제도 구비했다”며 “서로 조심해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림중앙시장상인회 총무인 김연아(49)씨도 “신종 코로나가 중국 동포들 탓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중국 동포들은 위생관념이 우리와 비슷하다. 원래 중국 동포에게 깔려있던 혐오 정서가 신종 코로나를 발판삼아 더 심해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1월20일 이전에 중국에 다녀오지 않은 중국인은 한국인과 발병 가능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 동포, 미국인, 한국인 모두 위험지역을 다녀온 분들이나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며 “증상 없는 사람들과 접촉했다고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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