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조선에서 왜놈들의 구두발에 짓밟혀 산전수전 다 겪다가 나라 잃은 민족의 설음을 안고 두만강을 건너 동녕현에 정착한 김병섭은 1988년에 동녕현 수리국에서 퇴직했다. 절주 빠른 세월에 많은 중청년들이 외국과 남방으로 빠져나가고 우리민족의 풍속습관과 전통문화가 날로 사그러져가는 현실을 가슴아프게 지켜본 김병섭 로인은 혼자서 근 50만자에 달하는 “동녕현 조선족 100년사” (초고)를 집필하는 한편 조선족무형문화재유산을 개발하려고 작심했다. 허지만 일찍 연변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에서 많은 무형문화재들을 걷어갔고 많은 조선족들이 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진귀한 무형문화재들이 분실된 형편에서 다시 개발한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김병섭로인은 80고령에 허약한 신체로 전 현 10개 조선족마을을 빗질하면서 조상들이 사용하던 쪽지게, 오지단지, 방치, 함지등 조선족무형문화재 86점을 수집했다. 특히 한 농가에서 얻은 방치는 5대를 내려오면서 물려받은것으로서 황금으로도 바꿀수 없는 진귀한 문화유산이 아닐수 없다. 뿐만아니라 김병섭로인은 동녕현 조선족 로인협회의 로인들과 학생들을 조직하여 전람관에 전시한 문형문화재들을 참관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자비로 도시락을 싸들고 조선족력사를 조사하고 무형문화재 전승(传承)에 비지땀을 흘리는 김로인을 보고 “퇴직금으로 편안하게 만년을 보낼거지 하필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소?”하고 비웃지만 김로인은 허허 웃으면서 “전통과 풍속이 없는 민족은 력사의 버림을 받게돼요!”라고 말하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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