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봉림양로원 림계화원장의 이야기
양로원의 로인들에게 친딸처럼 극진한 림계화원장/사진 김성걸기자
사람이 살면서 오복(五福)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종명(考終命)이다. 고종명이란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죽는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잘 죽는 것이 바로 고종명이다. 인생의 마지막길을 편하게 가는 일도 오복의 하나로 들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일것이다.
연길시봉림양로원의 원장 림계화는 양로원에 온 로인들과 중환자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가는길을 보다 편안하게 보내드리려고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않고 나서서 훈훈한 감동을 주고있다.
특히 시대가 변하면서 자식들과 친척, 친우들이 뿔뿔히 흩어져 살고있는 마당에 주변에 돌볼사람이 없는 소외된 로인들과 중환자들에게 림계화원장은 친인못지 않은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몰부어 찬양받고있다.
7월23일, 짙은 록음으로 우거진 모아산기슭의 봉림양로원을 찾았다. 봉림양로원은 지난 2003년도에 세워졌는데 정상적인 로인들을 대상하는 양로원이 아니라 치매, 알콜중독, 여러가지 중질환으로 앓고있는 중말기환자 등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군체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양로원에는 37명의 환자들이 장기입주해있다.
치매환자거나 중환자들은 자립의식과 능력이 없는 약소군체이다. 생활에서의 자립이 불가능한 이들은 전부 전문 간호일군들의 보살핌이 있어야 식사도 하고 대소변도 해결할수있다.
정상적인 로인들도 아니고 치매나 중질환으로 앓고있고 또 주변에 돌볼사람마저 없는 로인들을 보면 측은함과 함께 따뜻히 보살펴드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림계화원장은 말했다.
그의 이같은 충동은 아직 자립하지 못한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변변히 부모님한테 효도하지 못해본 안타까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감정이기도 하다. 더우기 연변위생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오래동안 사업해오면서 환자들을 많이 접촉해온 림계화원장은 자립할수없는 환자들과 로인들에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처음에 양로원을 시작할때는 농촌에 계신 시부모님들을 모셔오면서부터였다. 봉림촌에 새집을 짓고 그동안 고생하신 시부모님들을 모셔왔는데 시부모님들이 적적해하면서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한것이 시작이였다. 그때는 생활을 자립할수있는 정상적인 로인들을 몇명 받아서 양로원이라고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의지가지 할데없고 또 도움이 필요한 치매, 알콜중독, 중증환자 등 로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생활을 자립할수있는 로인들보다 바쁜 생활절주속에서 가족이나 사회의 보살핌을 받을수없는 로인환자들을 소외시킨다는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회와 가족들에 소외된 로인들을 돌보는 양로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 간호지식이 풍부한 림계화는 자립능력이 없는 로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수한 양로원을 꾸리게 되였던것이다.
《2003년에 봉림양로원을 꾸리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미 적어도 100명에 달하는 로인들의 림종을 제가 지켜보았을것입니다.》 림계화원장의 말이다.
양로원에 온 로인들이 거개가 고령의 치매환자거나 중증질병환자들이다보니 로인들의 후사를 준비하는 일은 아무때건 있을수있는 일이 되였던것이다. 양로원에 실려온지 불과 12시간도 안돼 돌아간 로인도 있을라니 그동안 로인들의 마지막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지샌 밤이 얼마인지 그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림계화원장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나 두렵고 외로운것입니다. 운명직전의 로인들에게 따뜻한 위안과 보살핌을 주어 로인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도록 해드리는 일은 그래서 저에게는 보람차고 의미있는 일이지요.》 림계화원장은 특히 가족이나 친인들이 옆에 없이 세상뜨는 로인들에게는 며칠이고 운명직전을 함께 하면서 로인들이 편안히 생을 마감하도록 극진한 안위와 보살핌을 주군했다.
《고맙게도 많은 로인들의 림종을 지켜준 림원장은 이제 영낙없이 복받을거요》 주변의 양로원로인들이 입버릇처럼 그녀에게 하는 말이다.
림계화원장에게도 죽음은 두렵다. 그러나 죽음 역시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일진대 기피한다고 찾아오지 않고 두렵다고 회피할수있는 자유의 것이 못된다.
지난 2012년 8월24일 림계화원장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유방암진단을 받게 된다. 유방암이 이미 림파에까지 전이된 상태라는것이였다. 안해를 아끼는 남편은 당장 가산을 탕진하면서라도 큰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양로원은 어떻게 할것인가? 그리고 아직 4살밖에 안된 둘째딸은 어쩌고?...
간호원시절 암에 걸리면 항암치료를 받다가 병상에서의 투병생활만을 유지하다가 결국 반년도 못돼 사망하는 많은 암병환자들을 그녀는 기억하고있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항암치료를 거부하였다. 병상에 누워 피동적인 항암치료를 받아야할 형편이 아니며 또 그렇게 하기 싫었다. 그대신 그녀는 더욱 열심히 가족을 사랑하고 양로원로인들에게 정성과 진심을 다했다. 비록 암병으로 살아있는 시간이 제한되여있을지라도 투병생활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의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싶었던것이다.
현재 림계화원장은 유방암진단을 받은지 이젠 2년이 다 돼오지만 특별한 항암치료없이 기적처럼 버텨내고있다. 병원검사에서는 암전이가 멈췄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에 양로원의 로인들은 《림원장이 허다한 로인들이 가는 마지막길을 잘 지켜드려 복받은것》이라고 말했다. 림계화원장은 《아플새가 없이 바삐 돌아치면서 암병도 미처 돌볼새가 없어 아마 가버린것 같다》고 웃었다.
림계화원장의 아직 어린 딸 지영이는 엄마와 한방에서 자보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림원장이 위급한 양로원로인들때문에 밤에도 자주 방을 비우다보니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아직 6살밖에 안되지만 지영이는 어머니가 양로원로인들에게 머리도 빗겨주고 손발도 씻겨주면서 극진히 공대하는것을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자라서인지 이제 커서 엄마가 로인이 되면 엄마를 잘 모시고 돌봐드리겠다고 말하군 한다. 그것이 림계화원장에게는 병환에 있는 몸이고 또 어려운 양로원경영이지만 모든 일을 잘 극복하고 지탱해나갈수있는 희망이고 위안이기도 하다.
림계화원장이 양로원로인들에게 정성을 쏟는것은 단지 금전적인 부분만은 아니다. 양로원을 꾸려서 지금까지 림계화원장은 양로원에 장부를 앉히지 않았다고 한다. 장부를 앉히게 되면 수지평형과 리익관계를 따지게 되고 자칫 금전적인면에 마음이 흔들릴수도있기때문이다.
《다년간의 간호원리력으로 내가 도울수있는 간호능력이 있을때 단 한분의 도움이 필요한 로인들이라도 더 보살피고 돌보는것이 바로 내가 병든 몸에도 지금껏 양로원을 견지하고있는 리유》라고 림계화원장은 말했다.
림계화원장의 사적에는 사람을 놀래우는 큰 공적은 결코 없지만 자립할수없는 우리 사회의 병든 로인들을 친부모처럼 돌보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편히 보내드리려고 노력하는 지극한 효심과 정성이 돋보여 진한 감동을 남긴다.
로인들이 사망했을때 어떤 가정에서는 제때에 오지 못하여 림계화원장이 로인들의 후사처리까지 가족을 대신해 몽땅 도맡아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로인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깨끗하고 유감없이 가실수있도록 따뜻이 보살펴드리고 싶습니다.》봉림양로원에서 로인들이 유감없는 고종명을 맞게 해드리는것이 바로 림계화원장의 소박하고 진솔한 마음속 소망이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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