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국베이비,조선족 "이모님"과의 동거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7월4일 10시47분    조회:221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워킹맘들에게 조선족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동거인. 그녀들은 나보다 더 현실적인 모성애로 24시간 아이를 돌보는 대리‘엄마’이자,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고용된 헬퍼’다. 교포이자 외국인인 이상한 나라의 이모님이 일으킨 삶의 유쾌한 파장.
내 아이는 다른 사람 손에게 맡기고 백인의 아이를 돌보는 기분은 어떤가요?” 영화 <헬프>는 백인 여성의 돌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순간 어퍼컷을 맞은 것 같았다. 저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잖아! 출산 후 조선족 입주 베이비시터(일명 ‘이모님’)에게 육아를 맡기면서 나와 그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당신은 나와 무슨 인연이 있어 바다 건너 이곳에 와서 내 아이를 돌보고 있나요? ‘내가알기론 현재 내 가족은 조선족 이모님이 돌보고, 천진의 이모님 가족은 중국인이 돌보고 있었다. 이모님은 종종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국제전화를 했다. 수화기에 대고 “우리 큰손주! 사랑해! 할머니가 많이많이 사랑해!”라고 애타게 목청을 높였다.

영화 <헬프>는 1960년대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미국의 흑인 가정부들 이야기다. 할머니, 엄마의 대를 이어 가정부가 된 그들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 식탁은 물론 화장실도 같이 못 쓰면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자기를 키운 유모를 다시 못되게 부려먹고는 했다. 모성애가 부족해 보이는 엄마가 히스테리를 부릴 때 지혜로운 흑인 유모는 아이를 끌어안고 눈을 맞추고 속삭였다. “넌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아이야!” 영화를 보며 나는 저 금발머리 아기는 자존감 있는 건강한 아이로 자랄 거야,라고 생각했다. 인종차별이 있던 1960년대 미국의 팔자 좋은 백인 엄마들과는 다른 이유로 2000년대 대한민국에는 유모가 필요하다. 한국의 워킹맘이 선택 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시댁과 친정의 도움을 받든가, 입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든가. ‘이모님 시스템’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자, 많은 동료 워킹맘들이 조언했다. “이제부터 맘고생이 시작됐어요. 아마 여러 번 사람 바꿀 각오를 해야 될 거예요.” “조선족은 한국인과는 영 딴판이죠. 청결하지도 않고 고집도 세요.” “그 사람들은 돈이 최고예요. 다른 집에서 10만원만 더 준다고 해도 애 놔두고 나간다고 할걸요.” “CCTV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 봐요. 섬세한 감시가 필요하다니까요.” “겪어 보면 알겠지만 이모님 시집살이가 따로 없어요. 이것 저것 반찬도 신경 써야지… 생활비가 배는 더 들어요.”

아이 키우는 친구들 집에서 가끔 얼굴을 본 조선족들은 광대뼈가 두드러진 검은 피부에 1970년대풍의 촌스러운 옷을 입고 마른 입술과 여윈 몸으로 집안을 종종거리며 다녔다.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바지런한 중국 여자 ‘오란’이 떠올랐다. 엄마들은 대체로 친절했지만, 안주인과 고용인이라는 상하관계는 분명히 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조선족과는 함께 식사하는 법이 없었다. 아기 엄마를 ‘사모님’이라고 깍듯이 높여 부르는 집도 있었다.

우리 집에 이모님이 처음 왔던 날이 기억난다. 산후조리 한 달 동안 ‘산모는 황후처럼 대접 받아야 한다’며 정성껏 돌봐주던 산후관리사가 떠난 다음날이었다. 사람꼴도 못 갖춘 아기를 앞에 두고 몸과 마음이 연약해진 나는 이별의 순간에 고아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옛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남은 내게 새사람이 고울 리 없었다. 게다가 내 동포도 아니고 말만 통하는 외국인 조선족이 아닌가. 육십이 넘은 이모님과의 생활은 처음엔 불안과 의심으로 시작되었다. 첫 며칠은 “아기가 꽤 무거워요”라든가 “이 빨래를 꼭 삶아야 하나요?” 같은 사소한 언급에 맘이 상했다. 자연히 ‘저 사람이 과연 내 집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새 며느리 감시하는 시어머니 심보가 앞섰다. 내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낮에 그 옆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아기가 새벽에 깨서 우는데 듣지 못하고 코를 골며 자는 것도 둔해 보였다. 낯이 설어선지 목욕통에 똥을 싸며 우는 아기를 보면 내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몰래 전화통을 붙잡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해고 사유를 찾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교포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도 두려웠다.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녀는 “미안합니다~”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내가 이모님에게 마음을 연 건, 어느 날 오후의 대화 때문이었다. “이모님은 어떻게 한국에 나오게 되셨어요?” 직업적인 기질이 발동한 나는 진지한 인터뷰어로서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젊은 시절 시집 와서 아들 둘을 낳고 일찍 남편을 여읜, 고생이 곧 인생인 어머니 세대의 스토리가 펼쳐졌다. “북한을 드나들며 장사도 했어요.” “북한에 가 봤다구요?” “북어며 옷가지며 보따리 이고 지고 국경을 넘어가서 물물교환을 했죠. 저는 사람 뼛가루도 먹어봤어요.” “뼛가루요?” “위가 너무 아파 죽겠는데, 화장터의 뼛가루를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그걸 먹었는데 신기하게 나았어요. 애들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 해본 게 없어요.” 간간히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서서히 우리 ‘이모님’에게 정을 붙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처음에 갓난아이를 받아 들고 두려운 마음에 딱 도망가고 싶더란다. 다행히도 이모님은 성품이 바르고 천진난만했고, 작은 일에 행복해 했다. 아이와도 금세 사랑에 빠졌다.

생활비는 늘어나고 통장 잔고는 줄어갔지만, 이모님 등에 업혀 깔깔깔 웃는 딸아이를 보면 가슴이 벅찼다. 밥과 김치로 소박하게 식사하는 그녀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건 치킨. 치킨을 사서 집에 가는 날엔 허둥대며 걸음이 바빠졌다. 외롭게 이 도시를 떠돌던 남편과 나는 중국어로 ‘사랑합니다’와 ‘잘 먹겠습니다’를 배우면서 한 명보다 두 명이, 두 명보다 네명이 더 행복하다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그 중심에 선하고 부지런한 ‘이모님’이 있었다.

나는 어느 날 최정례 시인의 시 ‘늙은 여자’를 읽었다. 책 읽는 내 옆에서 이모님이 아기를 등에 업고 창가에 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 “한때 아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늙었다/ 한때 종달새였고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가 빠졌다/ 한때 연애를 하고/ 배꽃처럼 웃었기 때문에/ 더듬거리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내 옆의 늙은 여자를 보았다. 순간 이모님과 아가가 한몸처럼 보였다. 할머니 등에 붙은 아기는 어린 할머니처럼 의젓해 보였고, 아기를 등에 업은 할머니는 나이 든 아기처럼 천진해 보였다. 할머니는 점점 종달새, 풀잎, 배꽃처럼 웃었고, 아기의 분홍 잇몸에선 새싹처럼 이가 나기 시작했다.

늘 평화만 지속된 건 아니었다. 긴장이 조성된 건 ‘이모’와 ‘고모’ 사이였다. 남편의 누이이자 딸아이의 고모는 우리 집안의 어른이자 그간 살림살이의 카운슬러였다. 그런데 고모가 시장을 봐서 냉장고를 정리해주면 이모는 은근히 싫은 티를 냈다. 부엌 지휘권자는 한 사람이어야 했다. 고모는 이모가 젖병 소독하는 방법이 맘에 안 들었고, 이모는 고모가 가끔 와서 잔소리만 한다고 입이 나왔다. 예전엔 고부 간 갈등이 문제였다면, ‘이모님’ 시스템이 정착된 지금은, 방문 가족들과의 관계 균형을 찾는 지혜가 필요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이모님’이라는 존재는 외부자다. ‘식모’라는 이름으로 1960년대 도시로 유입된 농촌 처녀 이후 새롭게 대한민국 가정에 이식된 바다 건너 객식구. 문득 새로운 안주인으로 군림하려는 농촌 처녀의 욕망과 한 중산층 가정의 파멸을 그린 공포영화 <하녀>가 떠오른다. 부르주아 가정에 잠입해 가정을 해체시키는 수상한 식모들의 행각을 그린 박진규의 소설 <수상한 식모들>도 오버랩 되면서. 그녀들은 가사와 육아를 돕는 ‘메이드’인 동시에, 남편의 성욕을 자극해서 언제든 집안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젊은 도전자로 주부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 가정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을 성적인 라이벌로 생각하는 주부는 없다. 그러나 간혹 그녀들이 아파트 놀이터에 삼삼오오 모여 ‘주인집’ 흉을 보며 정보를 공유할 때는 괜스레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 민족끼리도 ‘교포’와 ‘한국인’으로 계급이 나뉘고, 급여와 휴가 문제로 사소한 노사갈등도 생긴다. 어쨌든 국가가 해결해주지 않는 대한민국의 육아돌봄 시장에서 그들은 없어서는 안 될 인력이다. 조선족이 없었으면 워킹맘들은 어떻게 애키우며 회사를 다녔을까 싶을 만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온 이모님에게 ‘친정 엄마’나 ‘친이모’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친구들도 의외로 많았다. 싱글맘인 친구는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10년이 넘도록 이모님과 살았다. 자신을 남편처럼 의지하던 이모님이 어느 날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는 이혼청구서를 받는 것 같았다고 했다.

“말인즉슨, 자기는 한창 돈을 벌어야 하는데 아이가 커서 할 일도 없는 이 집에서 월급 올려달라고는 차마 못하겠다. 그러니 나가겠다는 거지.” 친구는 화가 났지만, 잠시 후 냉정을 찾았다. “월급을 올려주는 대신, 한동네 사는 동생네집 아이를 며칠 더 봐주는 걸로 처리했어. 한편으로는 씁쓸하더라구. 10년 넘게 한집에서 살아왔어도 남은 남인 거지.” 반대로 이모님과 오손도손 잘 살았어도, 이쪽 사정으로 내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땐 마치 큰이모 시집 보내는 심정이 돼. 좋은 가정 만나서 맘 붙이고 다시 정착하길 바라면서.”

조선족 이모님과 관련된 사연 한두 가지 없으면, 진정한 워킹맘이 아니라고도 한다. 후배는 처음엔 젊은 이모님이 너무 맘에 들어 ‘언니 동생’처럼 지냈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분이 결벽증을 드러내며 우리 가족한테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거에요. 할 수 없이 해고했죠. 그런데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 가관이예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세탁기 사용법도 몰라 끙끙대다 줄행랑 치는 사람, 나중엔 옴이라는 병을 가진 사람까지 왔어요. 별별 사람을 다 겪은 후에야 그 이모님께 전화해서 ‘돌아와달라’고 읍소했죠. 물론 저는 그 뒤 청소하는 파출부를 따로 고용해야 했지만요.” 아이가 이상한 말을 해서 녹음을 해봤더니 매일 낮에 이모님이 자기 남편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는 이야기, 이유식 투정하는 아이에게 욕설을 퍼붓더라는 등의 ‘이모님 괴담’은 끝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 불운은 생의 양념처럼 있다. 나에게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 다행히도 나는 이제까지 큰 탈 없이 이모님과의 동거를 유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아파트에 조선족들이 많아지면서 좋거나 싫거나 이모님이 브리지가 되어 전에 모르던 ‘이웃’이 부활되었다는 것이다. 이모님을 통해 6층 승희네가 해외로 휴가를 갔다거나 9층 민수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도 안다. 3층 애기 엄마는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해서 그 집 이모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다 다리를 다쳤다거나, 허리가 꼬부라진 청소 할머니는 손자와 둘이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 우리는 서로 이웃 이야기를 하면서 장단 맞춰 칭찬도 하고 흉도 본다. 그렇게 차가운 시멘트 아파트에 저녁 불빛처럼 이웃의 온기가 돌았다. 한번은 5층 여자가 나 몰래 경비 아저씨를 통해 우리 이모님을 스카우트 하려다 들통나 이웃끼리 얼굴 붉힐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어떻게 몰상식하게 내 ‘나와바리’의 식구를 ‘건드리나’였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내 딸은 이모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하루에 채 2시간을 못 보는 나보다 24시간 붙어 있는 할머니가 ‘엄마’로 보이는 건 당연지사. 섭섭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이모님이 딸아이 얼굴에 볼을 부비며 “하율아! 사랑해!”라고 할 때마다, 그 제비 같은 입에 이유식을 떠먹여줄 때마다 나는 내가 아기가 된 듯 행복감을 느낀다. 영화 <헬프>에서 “넌 친절하고 똑똑하고 소중한 아이야!”라고 일깨워주던 흑인 유모처럼, 우리 이모님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존감을 딸에게 불어넣어 줄 것을 믿으며.

VOGUE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결혼 76년,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랑 모든 것이 판타지 같지만 실재하는 이야기다. 모든것이 아름다움을 넘어 감동 그 자체를 말한다. 이야기는 한국 강원도 횡성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나무꾼 처럼 "건장"해 보이는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수줍은 공주" 89세 강계열 할머니, 노부부는 겨울에 눈싸움을 하고...
  • 2015-08-02
  • 초록과 붉은 태양이 행운을 안겨주는 7월 5일 75기 화룡2중 3학년 6반(1975년 졸업)  동창들은 존경하는 한영헌담임을 모시고 아름다운 삼동리조트(도문 마패위치)에서 고중졸업 40주년 경축모임을 성황리에 가졌습니다.  반장 김승원을...
  • 2015-07-28
  • 원제: ‘박카스 아줌마’는 어떻게 ‘박카스 할머니’가 되었나? "나는 진짜 삶이 급해. 돈이 급해서 여기 나오는 거야. 다른 일은 몸이 아파서 못해. 당뇨도 심하고, 위염도 있고. 팔다리도 저리고 눈도 시리고. 약을 달고 살아. 자식? 있지. 그런데 걔들도 힘들어. 돈 달란 말은 못하겠더라고." 지난...
  • 2015-07-12
  • [여성조선] 김태원 아내 이현주의 가족 소통법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아내 이현주 씨가 엄마들과 시간을 가졌다.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과 독한 사춘기를 겪은 딸을 키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많은 엄마가 공감했다. 전라남도 여수교육지원청 강의실. 특수교육 학생과 그 가족의 소통 이야기를 ...
  • 2015-07-12
  •   직업녀성의 당당함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배움의 전당에서 쌓은 지혜와 수양으로 나눔의 행복을 가꾸어가는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연변대학 녀성평생교육총동문회 녀성들이다. “녀성시대 직업녀성의 앞선 의식과 매력,헌신정신을 한껏 보여줄것입니다…” 1999년에 직업녀성들의 종합자질을...
  • 2015-07-02
  • (흑룡강신문=하얼빈) 28일 오후 “내 친구 국량이를 살려주세요~”라는 애처로운 글이 위챗모멘트에 급속도로 퍼졌고 이어 국량이 살리기에 팔을 걷고나서는 조선족젊은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우리 사회에 찐한 감동을 주고있다고 료녕신문이 전했다.   “무슨 병인지 정확한 진단도 내리지 못했고 온 몸...
  • 2015-07-01
  • 연길시 화린무역회사 리덕봉사장(우)과 김복순할머니   지난 6월 29일, 연길시 화린무역회사 리덕봉사장과 연변비암미디어 홍욱사장일행은 연길시 신흥가두 민안사회구역 리마화서기의 안내로 로당원 김복순할머니를 위문했다. 올해 90고령인 김복순할머니는 리덕봉사장과 홍욱사장의 손을 꼽 잡고 “찾아주셔서...
  • 2015-07-01
  • —생태미술에 희망을 건 중국조선족민속촌 목수집 주인장 오운봉씨의 이야기 얼마전 가랑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 기자는 정식개원을 앞둔 중국조선족민속촌을 거닐다 《목수집》이라는 간판앞에 발길을 멈췄다. 담너머로 들여다보니 뜨락에는 온통 각이한 뿌리조각공예품들이 진렬되여있었다. 《구새목》(굴뚝)에...
  • 2015-06-27
  •      신수리를 하느라 점심식사도 미룬 전영춘씨      3일 오전, 연길시 8중 맞은편에 위치한 애심신수리부에 도착했을때 한창 솔로 바닥의 먼지를 꼼꼼히 털어내고 있던 전영춘(55세)씨와 그의 안해 김화(51세)씨는 어서 들어오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연길시 신흥가두 민화사회구역의 ...
  • 2015-06-04
  •           “내 팔뚝 좀 만져보오, 이런 알통 만져봤소?” 거짓말 안보태서 주먹만한 근육이 불끈 솟아오른 서영옥할머니의 팔뚝, 올해 76세라고 소개했을 때 놀라고 팔뚝을 만져보고 두번 놀랐다. 록두가루와 살구씨기름을 파는 할머니라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할머니, 그냥 보따...
  • 2015-06-03
  • 김광선성형미용병원 김춘자실장의 삶의 지혜   “인생은 가치투자여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비전이 있어야 하지만 사랑하고 성취감느끼고 행복을 느끼는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삶의 가치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김광선성형미용병원(이하 미용병원) 김춘자실장의 삶의 가치관이다. 김춘자실장은 나이 60에 가...
  • 2015-05-29
  • 지난 5월 23일 연길시 연신소학교 1학년 3반 학생들은 김향선담임선생님과 함께 룡정시 광신촌에 위치한 "도촌자애원"에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부동한 년령단계의  오갈데가 없는 20여명의 지체장애자들이 있는 도촌자애원에서 원장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제일 오래 있은 아이는 15년이 되였...
  • 2015-05-28
  •   '서로 다른 장애 보완하고 배려하며 살아야죠' 26일,맹인들한테 나누어줄 옷들을 챙기러 달려온 룡정4급 지체장애인인 주순옥(51살)씨가 맹인사업을 도와나서게 된 동기를 이같이 겸손히 터놓았다. 식당을 경영하다가 그만둔후 우연한 기회에 맹인들과 인연이 닿아 8년전부터 맹인돕기사업에 나서게 되였다...
  • 2015-05-28
  •   올해11살인 추해도는 엄마아빠사랑을 잃고 할아버지막벌이로 공부하는 한족어린이이다.    2012년부터 연길시로인뢰봉반의 조선족할머니 김봉선의 “손자”로 되면서부터 사랑의 품을 느껴보게된다. 김할머니의 추천으로 중국국제방송국조선어부의 김동광주임도 해마다 추해도에게 1000씩...
  • 2015-05-26
  •       아이들에게 전통교양을   “6/1”국제아동절을 맞으며 연길시 신흥가두 민창지역사회에서는 22일 “5로”들을 모시고 신흥소학교 6학년 5학급에가  “전통 배우기”로 아이들과 명절맞이 기념활동을 벌였다.   일찍 항미원조전쟁에 참가...
  • 2015-05-26
  • 들의  “6.1”선물    5월19일 연길시의 들인 리성복 김봉숙 왕효평 세 로인은 연길시 연남소학교에 찾아가 뢰봉정신을 전파하며 별장학금을 발급하여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큰 꿈을 키워주었다.   세 모범로인은 모두 연길시 북산가두의 뢰봉자원봉사자이다.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그들은 연...
  • 2015-05-22
  • 이름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흔다섯 살 주부의 고민이 한 줄 올랐다. 몇 십 년 만에 나간 초등학교 동창 모임. 한 남자가 "네가 나의 첫사랑"이었노라 고백했단다. 외모와 직업 번듯한 데다 자상하기까지 해서 모임 끝나고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더란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댓글이 와르르 달렸다. 부러움 ...
  • 2015-05-21
  • 올해74세인 김월선할머니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지역사회에 사신다. 자식들이 외국돈벌이 나가고 집에서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는 하루도 쉴사이 없이 동네로인들의 도우미로 나서 “이웃사촌”이라 불리며 로후를 즐겁게 보내고있다.  김월선할머니도 퇴행성관절염을 앓다보니 허리도 휘고 걸음걸아도 퍽 불...
  • 2015-05-14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5년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조직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활동을 전개한이래 전국적으로 많은 가정의 적극적인 참여와 추천을 받았다. 주최단위에서는 그 기초상에서 층층의 선발을 통해 도합 300호의 가정을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가정'후보명단에 입선시켰다. 그중 조선족 김미란...
  • 2015-05-07
  • 5.4청년절을 맞으며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 AMP 총동문회 산하조직인 축구협회(회장 리덕봉)에서는 축구시합, 기부 등 다양한 행사로 5.4청년절을 뜻깊게 맞이했다. 축구협회에서는 5월 3일 신라월드 5층 회의장에서 좌담회를 열고 5.4청년절의 의미와 애국운동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
  • 2015-05-05
‹처음  이전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