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강제 추방 명령 받은 어느 조선족아줌마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2월19일 23시20분    조회:48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조선족동포 도정애 씨, "한국에 입국하기위해 위명위조여권을 만들지 않았어요."

강제 추방 명령 받고 하루 하루 불안과 초조 가운데 살아가고 있어




▲ 아들이 한국에 입국하기위해 불법으로 위명위조여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중국조선족 동포 도정애 씨.

민족 고유 설 명절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설명절이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중국에서 고국을 찾은 중국조선족 동포들이다.

특히 중국 조선족 동포들 중에는 위조위명여권 불법입국자로 몰려 언제 붙잡혀 추방될줄 모르는 가운데 불안과 두려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자들이 있다.

위조위명여권 불법입국자들 중에서도 중국의 행정절차상 문제가 있거나 가정상 문제 때문에 사실면에서 위조위명이 아닌 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초청장을 받고 국내로 입국했으나 행정적으로 해명할 법적인 확인 방법이 없어 범법자로 몰려 추방될 위기에 몰려있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 중에는 중국의 허술한 행정력을 이용해 쉽게 이름을 바꿔 입국하는 일들이 있었으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에서 이혼하고 다시 재혼을 한 상태에서 자녀들의 성씨가 달라 억울하게 위명으로 몰린 사례가 있었다.

최근에 기자는 위명자로 몰려 강제 출국 명령을 받고 불안한 가운데 간질병을 앓고있는 아들과 함께 하루 하루를 고통 가운데 보내고 있는 도정애 씨를 설득 끝에 만났다.

현재 도정애 씨는 아들의 성씨가 남편과 달라 아들이 위명으로 초청되었다며 출입국관리소에서 강제추방명령을 받은 상태이다. 도 씨는 아들을 허위로 초청하기위해 허위서류를 제공했다며 ‘허위사실 제공자’로 강제추방 명령을 받은 상태이며, 영주권자인 남편은 신원불일치 아들을 위명으로 입국할수 있도록 친아들처럼 서류를 위조해서 초청했다고 벌금형 500만원을 받았다. 28세인 아들은 위명으로 신원불일치자가 되어 강체추방명령을 받은 상태이다.

    

▲ 2001년 외할머니 회갑잔치 때에 아들 서경배 씨(앞줄 왼쪽), 남편 서성재 씨(뒷줄 맨 오른쪽)가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도정애 씨(뒷줄 가운데 노란한복)는 이 사진을 보더라도 한국에 들어오기위해 위명한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업코리아.


도 씨는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중국에 출국해서 한 가족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떼서 가져오겠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필요없다며 무조건 출국하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이어 도씨는 “출입국관리소에서 남편과 내가 아들을 한국에 입국시키려고 아들의 ‘성’씨는 허위로 바꾸어 친아들처럼 꾸며서 초청했다고 몰아가는데 억울하기만 합니다. 한국에 입국시키려고 성씨를 바꾼 것이 아니라 전 남편과 이혼하고 재혼을 하다보니까 중국의 행정이 한국과 같이 발전되지 못해서 바뀌거나 편의대로 수정해주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적으로 재혼해서 가족으로 살고 있었는가가 중요한데 출입구관리소에서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무조건 위명해서 허위로 초청했다고 몰아가는 것이 억울합니다. 저희는 한국에 입국할려고 위명 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은 제 아들이 3살 때 재혼해서 28세인 지금까지 친 아빠 못지않게 키워왔습니다. 더욱이 제 아들은 간질병을 앓고 있어 하루도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간질증세를 보이곤 합니다. 이런 아들을 중국으로 추방한다면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하고 간질병 아들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고 눈물을 흘렸다.

도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의 생활이 행복했지만, 2013년 부터 출입국관리소에서는 나를 한국에 나오기위해 여권을 위조해서 위명했다고 몰아갔습니다. 위명자로 몰려 신원불일치를 납득할 방법이 없어 여러 가지 법적인 방법을 강구했지만, 오히려 브로커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돈도 모두 낭비하고 이젠 지칠대로 지쳐 죽고만 싶습니다.”고 하소연 했다.

현재 도 씨는 중국에도 갈수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에 돌아가도 살 집도 없고 간질을 앓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헤어져 중국에 돌아가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도 씨 아들 ‘서경배’는 호구책에서는 조택룡으로 되어있고, 소학교 학적부에는 서택룡으로 되어있으며,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서경배로 불러 여권에는 서경배로 되어있다.

중국에는 17세가 되면 신분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서보니 호구책에 ‘조택룡’으로 되어있어서 아들이 신분증을 만들기를 싫어했다. 아버지와 성씨가 다르기 때문에 창피하다고 했다. 그래서 새 아빠가 동의하면 호구책의 이름을 바꿀 수가 있어 서경배로 호구책의 이름을 바꾸었다.

도 씨는 “나하고 남편이 먼저 한국에 나오고 아들은 할머니가 있는 심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국생활에서 남편이 영주권이 나오자 아들을 초청했는데 F1비자가 나와 1년 뒤면 중국에 돌아가야 했다. 1년 생활할 즈음에 발목이 골절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연장한 이후 돌아간다고 했더니 다시들어오려면 친자확인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재혼을 한 상태이므로 친자확인서를 가져올 수 없다고 하자 ‘위명’쪽으로 몰고가 범법자가 되었다.”고 했다.

    
▲ 1997년 도정애(뒷줄 가운데)씨가 남편 서성재(뒷줄 왼쪽)씨 아들 서경배씨(앞줄 가운데)가 심양 소가훈 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업코리아.


도 씨는 한국 출입국관리소에는 아들이 중국에서 3살때부터 남편과 만나 가족으로 살면서 찍은 사진을 제시했으나 전혀 정상이 참작되지 않았다. 또한 중국에서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족으로 함께 살아왔음을 지인들이 확인해주는 서명지를 제시해도 소용이 없었다.

갈수록 중국조선족 동포들의 한국입국이 늘고있는 상태에서 정부의 현명한 정책들이 세워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중국동포 사회에 만연한 위명 여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나름의 해결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국정부는 위명 여권 전력을 자진 신고한 이를 출국시켰다가 짧게는 6개월 후에 확실한 신분으로 비자를 받게 해 한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1차 2차 자진 신고자는 5천886명에 그쳤다. 귀화자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중국동포가 70만명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과거 위명여권을 사용한 전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비춰보면 이는 매우 적은 것이다. 정부의 해법은 자진신고와 단속 및 페널티 성격의 일시 출국이었지만, 대부분의 신고 대상자들은 일시 출국이 자칫 영구 출국이 될 것을 우려해 아예 신고를 기피한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달 19일부터 3번째 자진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중국 주 선양총영사관 등 공관에 신고한 이들은 6개월 후, 국내 신고자는 일단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1년 후 재입국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동포들은 자진 신고 후 출국했다 1년 뒤 재입국할 수 있다는 정부의 유인책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믿고 자진 신고 후 중국에 갔다가 다시 입국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무부가 자진 신고자를 입국 규제 목록에서 내려도 비자 발급 업무를 하는 해외 공관에서는 실무적으로 위명 여권 사용이나 불법체류 전력이 있을 때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출국을 대신할 벌금형 등이다. 위명 여권 전력이 있더라도 현재 사용하는 인적 정보가 실제로 입증되면 과태료 부과 등의 경제적 처벌을 통해 국내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한다면 위명 여권 사용 전력자들이 자진 신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중국동포 위명여권 사용 단속에 따른 문제들이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상황속에서 정부가 중국동포의 체류권을 보장해주고 위명여권 사면에 대한 법무부의 적절한 대책으로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업코리아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백성이야기65]  대련리공대학 부속고급중학교 김종식 특급교사의 성장이야기     수학교육연구에서 최고상인 ‘소보청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대련리공대학 부속중학교 김종식   락제생으로부터 수학교육연구분야에서 최고상인 ‘소보청(苏步青)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김종식(5...
  • 2017-12-01
  • 한 10년쯤전에는 고향의 지인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군 했었다. “일본에서는 밥 값을 제각기 낸다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 없어? 니들은 그러지 말라…” 물론, 우리도 아주 오래동안은 그것을 접수하지 못하고 고향친구들 모임에서 와리깡(割勘),즉 터치페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무사...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7) ◇김홍련(장춘) 장가계에서 려행 친구들 함께(앞사람이 필자 김홍련) 2011년 10월 25일, 열네살 천진란만하던 소녀시절에 만난 우리 동창생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낭을 메고 연길에서 떠나 천애지각 해남도까지 바라고 려행을 시작했다. 퇴직비로 생활하는 우...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6) ◇허인범(룡정)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서 평강벌을 내려다보며       /사진 신승우 찍음 9월 3일, 자치주 창립 65돐 경축의 기쁨을 안고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 올라서니 벼파도 설레이는 아득한 황금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여기가...
  • 2017-11-27
  • 일본 지진에서 맺어진 고마운 인연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역 지진은 그 후에 일어난 쓰나미, 그리고 빈번한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을 구축해왔던 기반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선 교통기관이 중단되였고 일부 지방의 통신이 차단되였으며 정전으로 모든 시설이 혼란상태에 빠졌...
  • 2017-11-24
  •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기억 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식사하는 손님들과 커피타임중의 손님들로 법석하였다. 오후 2시 40분 쯤 (후에 14시 46분으로 밝혀 졌음)되였을 때, 레스토랑 건물이 상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 2017-11-24
  •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의 '김치' 수업. 19일 아침, 스테인리스(不锈钢) 소재로 꾸며진 은빛 주방에 오미자, 둥굴레 등 약재와 고운 빛갈을 자랑하는 매실 효소, 사과 효소 등이 담겨진 유리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었다. 이곳은 바로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위치한 사랑난로 약선료리공방. 료리와 사...
  • 2017-11-23
  •     ▲ 사진, 동포언론사 및 동포단체 대표들이 17일 오후 포항시청을 직접 방문해 ‘포항지진 피해 사랑나눔 성금 접수처’에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재한동포문인협회 류재순 회장, 한중포커스신문 문현택 대표,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정룡 편집장, 포항시청 성금접수처 관계자, 중국동포한마음...
  • 2017-11-23
  •    (흑룡강신문=하얼빈)심양은 동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우리 나라 중심도시중 하나이다. 이 고유한 큰 도회지의 한 모퉁이에 조선족이 한데 모여사는 서탑거리가 있다.   나는 늙으막에 다병하고 고적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 따라 심양에 와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딸집 이웃에 집을 잡다보니 동릉의...
  • 2017-11-21
  •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한 상업거리(자료사진) 일본에서의 서비스업은 “손님은 왕이다”를 넘어 “손님은 신(神)이다” 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매일 오픈전의 미팅에서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 2017-11-17
  • 이 글은 현재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는 한 조선족녀성(필명: 小葵-작은 해바라기)이 자신의 위챗계정에 중문으로 올린 글이다. 우리는 그녀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한단락 경력을 빌어 우리들 인생의 깨우침을 공유하고저 이 글을 편역해 독자들에게 소...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3) ◇최선자(연길) 1987년 7월 22일 입당선서를 마치고 입당소개인 두분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당지부서기 경신성(한족), 필자 최선자, 교장 백경인(조선족). 1983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학교 령도로부터 절육수술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고 아연해졌다. &ldquo...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2) ◇박명규(연길) 할아버지를 모시던 세월의 필자 박명규와 태봉선 부부의 모습 “할아버진 내가 모셔야겠소.” 이것은 44년 전 내가 북경병원으로 확진하러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한 말이였다. 어쩌면 엉클어진, 엉망이 된 가문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 2017-11-14
  • 주로 중국음식과 한국음식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일본인들의 폭 넓은 음식 취향에 놀랐다. 호이꼬로(回鍋肉), 칭죠로스(青椒肉丝), 마보도후(麻婆豆腐) 등 중화료리의 료리명을 어린애들까지 술술 말하는 정도였고 처음 만나는 경우 교자(餃子)가 맛있다는 말로 수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마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일본인...
  • 2017-11-13
  • 소학교졸업식에서 마츠시마선생님과 함께 아들애가 태여나서 여덟달만에 탁아소 생활을 시작했던 연유로 일본에 오자마자 집단생활에 제법 적응한 아들애 덕분에 엄마인 나의 일본생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오늘날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아들애가 부모의 노력외에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고마운 일본인들과의 소중한 ...
  • 2017-11-13
  • 지도에 우리 민족 성씨로 명명된 행정촌이 있다는 사실에 언녕부터 호기심이 부쩍 동했는데 필자는 얼마전  박씨 두분 -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박호만회장, 룡정시 모 광고공사 박청수경리와 함께 말타고 꽃구경식으로나마 박씨 성으로 이름진 박씨 마을-료녕성본계만족자치현소시(小市)진의 박보(...
  • 2017-11-13
  • 1990년대에 일본에 류학온 중국류학생들이라면 한두번쯤은 겪었을 일이 있다. 국제교류협회에서 조직한 만찬회에서 만난, 매사에 적극적인 류학생과 친절한 일본인이 근 두시간 정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일본인이 말했다. “기회가 되면 우리 집에 꼭 놀러 오세요.” 너무 기뻤던 류학생...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
  • 2017-11-07
  • 일본의 여러 지역에 많이 분포되여있는 고우반 일본에 와 본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오면 편리한 점이라 할가, 친절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한자대국에서 왔기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자로 된 간판들이 보여서 생소한 감이 어느 정도...
  • 2017-11-02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