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선생님의 향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7일 09시12분    조회:168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의 손 잡고 학교를 가는 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여있다 .

나는 이 모습을 넋없이 바라보며 잊을 수 없는 내 동년에 황홀한 꿈을 심어주었던 선생님의 향기를 찾아 행복했던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우리 집은 오빠와 언니 둘 그리고 남동생과 녀동생에 나까지 모두 여섯남매였다.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는 장기환자였고 아버지 한분의 로동력으로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였다. 어릴 때 나는 언니들이 물려주는 옷을 기워입었고 새옷은 언제 입어봤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 해 돈화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령하 30도가 넘을 때가 많았다. 소학교는 마을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학 후 집으로 돌아갈 때면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에 어느새 눈섭은 할아버지 눈섭으로 되였고 입은 얼어서 말도 더듬거리며 잘하지 못하였다. 맞받아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뒤걸음치며 걷다가 넘어지기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한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귀가 얼어서 벌겋게 부었고 살짝 건드려도 떨어져나갈 것만 같이 꼬댕꼬댕해있었다. 어머니는 감짝 놀라시더니 터밭에 나가 눈속에서 가지대를 가져다 끓여서 그 물로 씻어주셨다.

소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우리 학급에는 김련숙선생님이 담임선생님으로 오셨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인자한 모습이여서 우리들은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학급 학생들의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엷은 옷을 입고 항상 추위에 떨며 옹송그리는 나를 발견하고는 난로 곁에 앉히였다.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만 같아 너무 행복했다.

어느 하루, 하학 후 집으로 오려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오셨는지 나를 지켜보시던 선생님께서 “수건이 온기가 없겠구나, 춥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추워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주저없이 자신이 두르고 있던 토색 목도리를 나의 머리에 포근히 감싸주셨다. 그리고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추운 겨울이니 꽁꽁 잘 감싸고 다녀라. 잘 견디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금새 마음속에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이 물결치고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을 바라보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따뜻한 향기를 선물하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사랑의 눈길, 사랑이 손길, 그 마음에서 뿜어져나오는 따뜻한 향기는 엄동설한의 추위를 다 몰아내고 나의 마음과 교실을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로 가득 채워 훈훈하였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사랑은 추위에 떨고 있는 가녀린 나에게, 가난하게 살아 주눅이 들어 움츠리고만 있던 나의 소심한 성격에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때부터 나는 선생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하고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목표와 꿈이 있게 되였다.

“나도 열심히 공부하여 꼭 선생님과 같은 향기 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소학교도 졸업 못한 애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나 나는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를 마음에 담고 열심히 공부하여 학기마다 우등생이 되였다. 초중도 4키로메터 되는 거리를 통학하면서 열심히 다녔다. 추위와 가난에 떨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는 언제나 나를 감싸주었고 그 향기는 그 어떤 어려운 상황도 극복하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닥쳐오자 나의 꿈은 산산이 짓부셔졌다. 오빠, 언니처럼 대학에도 가고 담임선생님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건만 모두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비록 나의 꿈은 이루지 못하였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향기를 생각하면서 자녀들을 꼭 훌륭한 선생님으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살았는데 애들을 맡겨놓고 일할 생각으로 여섯살, 일곱살 된 두 딸을 일학년 한반에 입학시켰다. 학생이 모두 여덟명이였는데 선생님 한분이 어문, 수학, 한어를 모두 가르쳤다. 마을엔 소학교도 졸업 못하고 중퇴하는 애들이 많았다. 이곳에 계속 살다간 애들을 선생님으로 키우기는커녕 눈 뜬 장님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맨주먹으로 큰언니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도시에 와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나가고 저녁달을 지고 돌아오면서 일하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으로는 도저히 고급학년으로 진학하는 애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로씨야행을 택하였다. 시베리아의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와 생명의 위험까지 더불어 삶에 지쳐 살아갈 용기를 잃어갈 때 선생님께서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잘 견디다 보면 어느샌가 따뜻한 봄이 온단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나의 귀전을 두드린다. 시베리아의 허허벌판에서 버려진 것 같은 나에게 선생님의 사랑의 따뜻한 향기는 내가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였고 인생의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는 데 등불이 되여 나의 갈길을 밝혀주었다.

삼년 반 동안 열심히 일하여 두 애의 학비를 모두 마련하였다.

큰딸은 공부를 잘하여 연변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통지서를 받아쥔 나의 눈은 어느새 기쁨의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아! 우리 딸도 이젠 선생님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김련숙선생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어른거린다. 큰딸도 나의 담임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엄마와도 같고 언니 누나와도 같은 자상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원했다. 작은애는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류학 가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두 자녀는 지금 각자의 일터에서 충실하게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추위에 떨고 있는 나를 감싸준 선생님의 따뜻한 향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던 나의 담임선생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손자손녀들에게 들려준다.

선생님의 사랑의 향기, 그 향기는 나의 파란만장한 인생길에서 등불이 되여주었고 활력소가 되여주었으며 이순이 넘는 오늘까지도 나와 함께 동행한다.

생활고를 벗어난 나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듯. 학원 선생님은 자애로운 분으로서 학원생들에게 아낌없이 배려해주시고 알쏭달쏭하여 잘 깨닫지 못하여도 차근차근 가르쳐주신다.

김련숙선생님의 향기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백성이야기65]  대련리공대학 부속고급중학교 김종식 특급교사의 성장이야기     수학교육연구에서 최고상인 ‘소보청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대련리공대학 부속중학교 김종식   락제생으로부터 수학교육연구분야에서 최고상인 ‘소보청(苏步青)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김종식(5...
  • 2017-12-01
  • 한 10년쯤전에는 고향의 지인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군 했었다. “일본에서는 밥 값을 제각기 낸다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 없어? 니들은 그러지 말라…” 물론, 우리도 아주 오래동안은 그것을 접수하지 못하고 고향친구들 모임에서 와리깡(割勘),즉 터치페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무사...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7) ◇김홍련(장춘) 장가계에서 려행 친구들 함께(앞사람이 필자 김홍련) 2011년 10월 25일, 열네살 천진란만하던 소녀시절에 만난 우리 동창생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낭을 메고 연길에서 떠나 천애지각 해남도까지 바라고 려행을 시작했다. 퇴직비로 생활하는 우...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6) ◇허인범(룡정)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서 평강벌을 내려다보며       /사진 신승우 찍음 9월 3일, 자치주 창립 65돐 경축의 기쁨을 안고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 올라서니 벼파도 설레이는 아득한 황금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여기가...
  • 2017-11-27
  • 일본 지진에서 맺어진 고마운 인연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역 지진은 그 후에 일어난 쓰나미, 그리고 빈번한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을 구축해왔던 기반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선 교통기관이 중단되였고 일부 지방의 통신이 차단되였으며 정전으로 모든 시설이 혼란상태에 빠졌...
  • 2017-11-24
  •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기억 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식사하는 손님들과 커피타임중의 손님들로 법석하였다. 오후 2시 40분 쯤 (후에 14시 46분으로 밝혀 졌음)되였을 때, 레스토랑 건물이 상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 2017-11-24
  •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의 '김치' 수업. 19일 아침, 스테인리스(不锈钢) 소재로 꾸며진 은빛 주방에 오미자, 둥굴레 등 약재와 고운 빛갈을 자랑하는 매실 효소, 사과 효소 등이 담겨진 유리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었다. 이곳은 바로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위치한 사랑난로 약선료리공방. 료리와 사...
  • 2017-11-23
  •     ▲ 사진, 동포언론사 및 동포단체 대표들이 17일 오후 포항시청을 직접 방문해 ‘포항지진 피해 사랑나눔 성금 접수처’에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재한동포문인협회 류재순 회장, 한중포커스신문 문현택 대표,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정룡 편집장, 포항시청 성금접수처 관계자, 중국동포한마음...
  • 2017-11-23
  •    (흑룡강신문=하얼빈)심양은 동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우리 나라 중심도시중 하나이다. 이 고유한 큰 도회지의 한 모퉁이에 조선족이 한데 모여사는 서탑거리가 있다.   나는 늙으막에 다병하고 고적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 따라 심양에 와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딸집 이웃에 집을 잡다보니 동릉의...
  • 2017-11-21
  •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한 상업거리(자료사진) 일본에서의 서비스업은 “손님은 왕이다”를 넘어 “손님은 신(神)이다” 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매일 오픈전의 미팅에서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 2017-11-17
  • 이 글은 현재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는 한 조선족녀성(필명: 小葵-작은 해바라기)이 자신의 위챗계정에 중문으로 올린 글이다. 우리는 그녀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한단락 경력을 빌어 우리들 인생의 깨우침을 공유하고저 이 글을 편역해 독자들에게 소...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3) ◇최선자(연길) 1987년 7월 22일 입당선서를 마치고 입당소개인 두분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당지부서기 경신성(한족), 필자 최선자, 교장 백경인(조선족). 1983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학교 령도로부터 절육수술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고 아연해졌다. &ldquo...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2) ◇박명규(연길) 할아버지를 모시던 세월의 필자 박명규와 태봉선 부부의 모습 “할아버진 내가 모셔야겠소.” 이것은 44년 전 내가 북경병원으로 확진하러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한 말이였다. 어쩌면 엉클어진, 엉망이 된 가문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 2017-11-14
  • 주로 중국음식과 한국음식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일본인들의 폭 넓은 음식 취향에 놀랐다. 호이꼬로(回鍋肉), 칭죠로스(青椒肉丝), 마보도후(麻婆豆腐) 등 중화료리의 료리명을 어린애들까지 술술 말하는 정도였고 처음 만나는 경우 교자(餃子)가 맛있다는 말로 수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마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일본인...
  • 2017-11-13
  • 소학교졸업식에서 마츠시마선생님과 함께 아들애가 태여나서 여덟달만에 탁아소 생활을 시작했던 연유로 일본에 오자마자 집단생활에 제법 적응한 아들애 덕분에 엄마인 나의 일본생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오늘날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아들애가 부모의 노력외에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고마운 일본인들과의 소중한 ...
  • 2017-11-13
  • 지도에 우리 민족 성씨로 명명된 행정촌이 있다는 사실에 언녕부터 호기심이 부쩍 동했는데 필자는 얼마전  박씨 두분 -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박호만회장, 룡정시 모 광고공사 박청수경리와 함께 말타고 꽃구경식으로나마 박씨 성으로 이름진 박씨 마을-료녕성본계만족자치현소시(小市)진의 박보(...
  • 2017-11-13
  • 1990년대에 일본에 류학온 중국류학생들이라면 한두번쯤은 겪었을 일이 있다. 국제교류협회에서 조직한 만찬회에서 만난, 매사에 적극적인 류학생과 친절한 일본인이 근 두시간 정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일본인이 말했다. “기회가 되면 우리 집에 꼭 놀러 오세요.” 너무 기뻤던 류학생...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
  • 2017-11-07
  • 일본의 여러 지역에 많이 분포되여있는 고우반 일본에 와 본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오면 편리한 점이라 할가, 친절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한자대국에서 왔기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자로 된 간판들이 보여서 생소한 감이 어느 정도...
  • 2017-11-02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