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 이해응,'서울시외국인명예부시장'의 삶을 말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2월1일 07시25분    조회:210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이주민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 준 선물

이해응 (서울시 외국인명예부시장.조선족)



“고향이 어디에요?” 정체성 고민이 시작되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시절에 한 한국인 유학생이 나한테 던진 질문 한마디 때문이었던것 같다.

“고향이 어디에요? 중국 고향 말고 한반도 고향말이에요.”

중국에서 태어나 스무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 그제서야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아버지 측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북한의 평안북도 출신, 어머니 측의 외증조할머니의 고향은 한국의 전주 부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반도와 연결시킨 나의 ‘민족’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에 유학을 온 ‘한국인 동포’가 100여년 전 증조모부들이 중국에 정착하여 조선족 4세대가 된 나에게, 태어나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질문을 해주었기 때문에 시작된 고민이었다.

이후 중국의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유학으로 한국에 와서는 새로운 질문들을 받게 되었다. 외국인이냐, 동포냐, 다문화가족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한국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여성국회의원의 비율은 왜 이렇게 적냐고, 민족의 개념은 왜 국민의 개념과 같게 쓰이는가 하고.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조선족’이라는 신분
 

▲  한국에 온 지 8년차인 조선족 동포, 이해응씨 
 
이방인은 낯설다. 낯설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같은 ‘민족’에 대한 감정이 짙지만, 처음 만난 ‘낯선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나 ‘낯섦’이 새로운 질문을 가져오고 그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갖게 하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새로운 질문은 서로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 성장의 기회를 부여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가깝게 하기도 한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2001년이었고 재외동포법이 제정된 지 2년차 되던 해였다. 교환연구원 신분으로 연구비와 생활보조금을 받고 안정적인 연구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이라는 신분은 결코 환영받거나 자랑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위장결혼’을 한 사람, 식당 이모, 가정부, 건설노동자로서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교포’라는 이미지로 덮여있었다. 특히 한국에선 ‘연변족’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조선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팽배했다.

그에 따라 나는 “유학공부하러 왔어요”, “중국에서 왔어요”, “고향은 연변이 아니라 집안시예요”라는 방어적인 대답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건 말건, 나의 지도교수조차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그 외의 지역에 사는 조선족을 구분할 수 있었을 정도로 거의 모든 한국인들에게 조선족은 그냥 집단적인 하나의 정체성일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나는 한 개인의 존재감이 항상 상대방과의 연결 속에서 구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상대방의 시선에 따라 나 자신이 소극적으로 좀 더 나은 이미지로 이곳에 정착되기를 바라며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중심이 필요했다. 당사자로서의 주체성이 필요했다. 인간의 존재 자체는 항상 상대방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만, 주류 집단과 소수 집단 간의 관계는 늘 주류 집단의 시선 속에 소수 집단이 놓이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로 인해 소수 집단은 늘 주류 집단의 질문에 답해야 하지만, 역으로 주류 집단은 소수 집단의 관점을 잘 알지 못하며 이들의 질문을 잘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소수자의 위치에서는 중심과 주변의 사회 구조에 대해 더욱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유학공부를 하며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인 내 인식론의 변화이다. 여성학을 전공한 것은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질문들이 곧 연구 주제가 되었고, 논문이 되었고, 나를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게끔 이끌었다.
 

학생들에게 국적과 시민권에 대해 물었더니…

나에게는 ‘질문을 받는 사람’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를 보다 더 잘 알아야 하고 더 많은 한국사람을 만나야 했다. 또 한국에 온 많은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재외동포법에 조선족 동포와 고려인 동포는 왜 배제가 되었는지? 왜 지금까지 전면 시행하지 못하는지? 다문화가족의 정의가 왜 국적 중심으로 되는 건지? 나는 어느 정도의 시민권을 가져야 하는 건지? 등 나의 질문은 끊기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나는 늘 한국인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한국의 서울에서 15년 동안 살아왔고, 그렇지만 현재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선생님은 서울시민인가요?”라고. 그러면 90% 이상의 학생들이 “아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 이유는 ‘국적’과 ‘세금’ 때문이다.

중국에 가서 특강을 하게 된 기회를 얻었을 때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중국의 이 도시에서 15년을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은 베이징시 시민인가요?”라고. 중국인 학생들의 대답은 공통적으로 “아니다”였다. 그 이유도 ‘국적’과 ‘세금’ 때문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역사적 배경과 경험의 차이는 뚜렷하지만, 이주민들의 시민권에 대한 생각은 놀랄만큼 일치한다.

 

▲  2015년 서울여대 여성연구소 연수회에서 특강 중인 필자, 이해응(서울시외국인명예부시장, 여성학 박사)
 

작년 7월부터 서울시 외국인명예부시장으로 위촉을 받아 서울시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나로 하여금 가슴 뛰게 하는 시책들이 있었다. 2012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 제2조 2항에는 “시민이라 함은 시에 주소 또는 거소를 둔 사람, 체류하고 있는 사람, 시에 소재하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적혀있다. 나는 “체류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의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이와 비슷한 인권기본조례가 제정된 곳들이 있지만 서울시가 가장 포괄적인 것 같다.

한국 태생이 아닌 사람들, 혹은 한국 국적이 아닌 이주민들, 한국 국적이지만 완전한 한국인 시민권이 결여된 이주민 출신 모두가 이 조항을 근거로 귀속성을 가질 수 있고, 시민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다. 이주민들도 많지 않다. 이 조례는 나에게 서울시에 대한 확실한 애착을 갖게 했고, 강한 책임을 갖도록 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게 했다.

질문을 하는 능력에는 질문을 공유하는 의무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은 한국 국적이 아니지만 소비를 할 때 똑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낸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똑같은 기준으로 소득세를 낸다. 그 외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한국에 체류하는 비용을 낸다. 탈세나 범죄에 저촉된 일이 발각되면 즉각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이러한 사실을 공유할 때, 내가 국적과 세금 때문에 서울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던 대학생들 중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학생들 수가 많아진다.

 

이주민의 경험은 사회에 지혜와 상상력을 준다

질문을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통’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질문보다 훨씬 더 포용력을 가지는 내용과 형식이 있어야 한다. 지난 해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생각나무BB센터의 ‘다문화시민강사 양성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하고 진행했다. 강의안에 이주민에 대한 통념이나 편견을 깨기 위한 질문과 답변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10회가 넘는 워크숍을 통해 전략을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는 ‘소통’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나 통념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과 해석보다는 수강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할 수 있게 하는 형식을 택했다. 한국이 가진 우수한 면과 한국 사회에서는 낯설 수 있는 이주민의 본국과 한국에서의 교차경험 속에서 각자의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특강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   나는 외국인이자 동포이고 반(半)다문화가족이기도 하며 여성이고 서울시민이기도 하다.  © 이해응
 

이주민이 자라난 국가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소수민족으로서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상상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다문화적 이해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원되고, 백인 소수자가 왜 역차별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양측 모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이주민들의 위치와 감정들, 한국인들의 역차별 담론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올해는 ‘별별시민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그 특강을 이어가고 있는데, ‘시민’의 개념에 대해 서로에게 또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진행 중이다.

 

내 몸에 부착된 정체성 “복잡하지만 다 챙겨야 돼”

전 세계 3.2%에 해당되는 2억이 넘는 인구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1년 이상 살고 있고, 갈수록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다. 어디를 머물든 그곳의 지역적 시공간이 나의 귀속성이 될 수 있고, 나의 책임과 권리를 질문할 수 있는 그런 인식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국이 외부에서 오는 이방인에 대해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 갔을 때 요구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7년이란 시간을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살았다. 이제 8년차 외국국적동포신고증을 갖고 살고 있다. 한국에 귀화신청을 한 상태여서 한국 국적 시민으로 살아갈 미래가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동포이기도 하고, 반(半)다문화가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고, 서울시민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정체성들이 몸에 부착되면서 융합되기도 하고 또 분열적이기도 하지만, 내 정체성들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화교 신분으로 3세대인 분이 한 말씀이 생각난다.

“여행사를 운영하다보면 중국도 챙겨야죠, 대만도 챙겨야죠, 내가 태어나서 자란 한국도 챙겨야죠. 복잡하지만 다 챙겨야 되요.”

나의 몸에 통합되어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그것은 모두 ‘챙겨야 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에너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향이 집안시이지만, 연변 태생의 남편을 만났고, 한국에서 태어난 중국 국적의 아이와 함께 산다. 복합적인 정체성들을 어떻게 하면 융합된 긍정적인 에너지로 잘 이끌어갈 지에 대한 고민이 최근 나의 질문이다.

미디어일다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흰눈이 포근히 덮인 시골집 굴뚝에서 보기좋게 연기가 솟아오른다. 12월21일, 연길시 춘흥촌 신광5대 김종학대장의 집에서는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넘쳐났다. 전통명절 동지를 맞으며 팥죽잔치가 펼쳐졌다. 마을 지키는 노인들에 인근부락의 노인들도 청해와 신광의 입쌀, 찹쌀과 팥으로 동지 팥죽을 두가마 가득 지었다. ...
  • 2015-12-22
  • 지난12월 20일, 개원호텔에서 후사모(후대사랑협회) 송년회가 있었다.   송년회는 리경호 회장의 축사와 함께 시작되였다. 후사모는 올 한해 정말 많은 좋은 일들을 하였다. 120여명의 회원들로 이루어진 후사모는 매주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장학생들을 선정하여 지원하고있다.   후사모는 올 한해 총10회의 ...
  • 2015-12-21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헌 특약기자 = 일전 중앙문명판공실과 중국문명넷에서 공포한 '중국의 좋은 사람(中国好人)'추천,평의결과에 한 조선족가정이 '중국의 좋은 사람'에 들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화제의 조선족가정이 바로 목단강시 서안구 목단조선족가도 서장안사구의 주민 리봉구(李峰九,51세), ...
  • 2015-12-21
  • 17岁的叶石云是云和县崇头镇梅竹村人。   2009年秋,母亲石明秀和父亲叶明松在49天内先后因病去世,留下11岁的他和81岁的爷爷相依为命。   母亲去世前已生病多年,父亲为此欠下了总计3万元的债务——这些债务没有一张借条,但11岁的叶石云决定替父还债。   捡废品、干零活,6年来,叶石云共计挣到22800元。...
  • 2015-12-20
  • 민간기부단체인 '고사모(회장 한설화)'에서는 19일, 연길 천년웨딩홀에서 총화모임을 갖고 한해를 뒤돌아보고 새해를 기약하는 소중한 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주위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회단체가 참 많다 고사모도 그중의 한개 한체이다. 비록 설립된지 1년도 채 안되지만 그들이 불우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 여느...
  • 2015-12-19
  • 어릴때부터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꿈을 가진 연길시 의란진 금성촌의 주설매(23살)는 연변대학사범분원을 졸업하고 연변대학유치원의 선생님이 되여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주설매의 가정에는 잇달아 불운이 닥쳤다. 지난해 9월,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은 주설매의 어머니는 자궁내막암이라는 확진을...
  • 2015-12-17
  • 사진기를  메고  산과 들을  넘나들며          리해숙할머니. “인생에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이는 76세부터 회화에 전념하여 80세에 개인전을 열면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 미국 녀류화가 모지스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도리이다. 대기만성한 모지스 할머니...
  • 2015-12-15
  • 고향을 다시 찾은 박금숙 김창복 로인 내외분. 옛 인터뷰를 회고하면   《중국민족》잡지 2013년 2기에는 필자의 “하면 된다는 말을 팔순이 돼서야 실감하고 있어요” 란 제목으로 박금숙, 김창복 부부를 취재해 쓴 기사를 실은적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1993년 정년퇴직을 맞은 박금숙, 김창복 부부...
  • 2015-12-08
  • 李相富事迹简介       李相富,男,朝鲜族,1948年8月生,中共党员,延吉市灵通按摩院院长。       李相富是河南街道白玉社区居民,30年来,他独自撑起家庭重担,不离不弃、悉心照顾患病妻子,善行义举感动街坊四邻,成为一段佳话广为传颂。     &...
  • 2015-12-08
  • 영국아기 '호프 리'의 모습 세상의 빛을 본지 1시간밖에 안된 아기가 최년소로 장기기증을 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1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영국언론에 따르면 아기엄마인 에마 리와 아빠인 드루 리는 지난주 태여나 74분만에 숨을 거둔 딸아이 '호프'(Hope)의 신장과 간세포를 성인환자에게 기증했다. ...
  • 2015-12-03
  •                  (흑룡강신문=하얼빈)리강춘 특약기자=길림성 왕청현 신화사회구역 남산소구역에 살고있는 올해 102세에 나는 손춘영로인은 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손춘영과 남편 서위희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자식들은 모두 효성스러웠다. 딸들이 시집가고 아...
  • 2015-12-01
  • 이주민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 준 선물 이해응 (서울시 외국인명예부시장.조선족) “고향이 어디에요?” 정체성 고민이 시작되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시절에 한 한국인 유학생이 나한테 던진 질문 한마디 때문이었던것 같다. “고향이 어디에요? 중국 고향 말고...
  • 2015-12-01
  •   길림대학 연변항공승무학교(교장 최옥금)에서는 학교 설립 10주년을 맞으며 11월 26일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1만5천여원 쾌척하는 등 뜻깊은 행사를 개최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비상애심봉사단'을 내오고 사랑의 모금행사를 펼쳐 5천여원을 모금했다. 학생들의 사랑의 마음이 담...
  • 2015-11-26
  • 길림성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에서는 20명의 사회구역공작인원들과 주민지원자들을 조직하여 중국 중앙방송국 CCTV-13프로그램 촬영에 참여하였다. 이른 아침, 20명의 지원자들은  홍보영상 촬영을 위해 조선...
  • 2015-11-26
  • 애심천사원에 대한 연변무역인협회의 사랑은 오늘도 이어지고있다. 11월 26일 오전,  연변무역인협회(회장 허재룡)에서는 연길 발전에 위치해있는 '애심천사원'에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랑의 모금행사'를 펼쳤다.  무역협회에서는 2틀전부터 모금행사를 진행, 짧은 시간내에 양말, 피자...
  • 2015-11-26
  •         11월 19일 이른 아침, 연길시 건공가두 청산소구역의 한 할아버지는 살을 에워싸는 추위에도 꿋꿋이 홀로 눈을 치우신다.    올해 74세의 로당원이신 유영식 할아버지는 매번 눈이 내리는 날이면 주동적으로 눈을 치우시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구역내의 쌓인눈을 보시고는...
  • 2015-11-25
  •  11월19일 연길시에는 큰 눈이 내렸다.찬바람과 급강한 기온은 사람들로 하여금 추운겨울이 왔음을느끼게 해주었다.연길시 구조관리잠 사업일꾼들은 거리를 순찰하면서 구조활동을 펼치였다.  당일 8시쯤 시구조관리잠 사업일꾼들은 수상시장,서시장등 류랑구걸인이 비교적 집중된곳에 도착해 그들을 찾아나섰다...
  • 2015-11-24
  • 남돕는 즐거움을 보약으로 매일마다 짬만나면 지역사회를 돌아보며 이웃의 환자나 독거로인들을 살펴보는 백발로인이 있다.그가 바로 연길시 건공가두 장림지역사회의 72세 최복주이다. 일찍 연길시연남소학교에서 당지부서기로 사업하다 퇴직한 최선생은 퇴직하자 바람으로 자기를 지역사회에 맡기였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 2015-11-23
  • 11월18일 30여명의 독거로인들의 즐거운 모임이 연길시 공원가도 원월사회구역(园月社区) 양로활동실에서 열렸다.민족불문,나이를 불문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쳐흘렀으며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情暖夕阳红”을 주제로 한 이번 모임은 한 시간 정도 진행하였으며 사회구역...
  • 2015-11-23
  •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 봉사자들은 2011년“三帮扶”활동을 전개한 이래 줄곧 로인들을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기고 정기적으로 문전방문하여 각종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1월18일 오전,길림성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 "칠색무지개봉사센터" 봉사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70세 고령의 독거로인 리숙...
  • 2015-11-20
‹처음  이전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