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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문화상 응모글 10] 아빠의 빈자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29일 09시18분    조회: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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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빈자리
청목

 
나의 직업은 의사이다. 그것도 하루에도 몇번씩 수술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외과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참 매력적인 직업일지는 모른다.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수입도 괜찮고 참 이처럼 완벽한 직업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매력뒤에 숨겨진 고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매일 아침 7시가 되기전에 나는 집에서 떠나야 한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침회의가 끝나면 곧 수술실로 향해야 한다. 간단한 수술이면 인차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수술실에서 온 하루를 버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녹초가 되여버린 몸을 겨우 지탱하며 수술실밖으로 나오면 또 산더미 같은 병지들이 나를 기다리고있다. 집에 돌아와서도 제대로 시름 놓고 잘수가 없다. 환자들의 전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위급하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새벽 2~3시라도 헐레벌떡 일어나 병원으로 뛰여가야 한다. 다람쥐 채바퀴 돌듯 돌아가는 똑같은 일상속에서 가끔씩 확 때려치고 떠나고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때마다 떠오르는것이 안해와 딸애의 얼굴이다.

나의 직업이 이렇다보니 집안일과 육아는 거의 안해가 혼자서 도맡아한다. 병원에서 쌓인 스트레스때문에 나는 집에만 오면 스마트폰을 손에 쥔채 몸을 쏘파에 맡겨버린다. 지금 생각해보니 딸애가 태여나서 여직껏 우유를 타본적도 없었고 딸애의 기저귀를 갈아준적도 없었던것 같다. 맞벌이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안해는 그동안 내조면 내조, 육아면 육아 모든 면에서 잘해왔던것 같다. 딸애도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젠 유치원에서도 잘 적응하고있다. 주말에도 거의 병원에 붙어있다싶이 하다나니 딸애랑 놀아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딸애가 원하는것이면 무엇이든 사다주었다. 하지만 딸애는 나를 별로 따르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면 안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고 잘 때도 내가 옆에 누우면 이건 엄마 자리라며 날 밀어내군 하였다. 그럴 때면 살짝 섭섭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크면 다 리해하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 있는데 안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에 딸애의 유치원에서 아빠참여수업을 하는데 모든 아빠들이 3시까지 꼭 참석해야 한다는 호령이였다. 스케줄을 체크해보니 오후에 수술이 잡혀있었다. 나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수술이 있으니 못 간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전화 한켠에서 한참 침묵이 흐르고 안해가 그럼 장인어른더러 대신 참석하라 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날도 저녁 늦게까지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했는데 웬 일인지 딸애가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 딸애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깜찍한 발을 내 발등우에 올려놓고는 두팔 벌려 내 허리를 안은채 집을 두바퀴나 돌았다. 그리고는 나를 엎드리라 하고 내 등우에 올라앉아 신나게 소리치며 놀았다. 결국 나는 딸애한테 붙잡혀 한시간 동안이나 “체조”를 당했다. 알고보니 이 모든것이 오후에 있은 아빠참여수업때 했던 활동이였다. 안해의 말에 의하면 딸애는 오후에 아빠참여수업에 장인어른이 온것을 보고 순간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애들은 다 아빠가 왔는데 왜 나만 할아버지가 왔느냐는 불만에 대한 발설이였던것 같았다. 그리고 반시간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아빠참여수업이 끝날 때까지 얼굴에는 먹장구름이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딸애가 저녁 내내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렸던 리유도 유치원에서 했던 유희들을 아빠와 함께 하고싶어서였던것이다. 안해의 말을 들으면서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뿐이였고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쏘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때까지도 나는 나의 불참이 딸애한테는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깨닫지 못했다.

며칠후 친구내외가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놀러 오게 되였다. 마침 딸애와 친구네 아들도 같은 유치원의 한반에 다니고있는지라 두 집안이 더 돈독한 사이였다. 나는 안해한테 병원일때문에 한시간 정도 늦는다고 미리 귀띔해주었다. 수술을 다 끝내니 약속보다 두시간 더 늦어진것 같았다. 총총히 집에 들어서니 그때까지 딸애가 문에 기대여서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안해가 아빠가 늦게 온다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딸애는 곧이듣지 않고 아빠가 곧 올거라며 기다렸다는것이다. 딸애는 갑자기 나한테로 달려오더니 다짜고짜로 내 손을 잡아끌고 자기 친구앞으로 다가가는것이였다.

“이거 내 아빠야, 이거 혜진이 아빠야, 혜진이한테도 아빠가 있어.”

딸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것이였다. 딸애의 돌발적인 행동에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다들 곧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해가 내옆으로 다가오더니 딸애는 친구네가 와서부터 내내 문쪽만 바라보고있었다고 했다. 애가 어려서 말은 못해도 얼마나 친구한테 자기 아빠를 자랑하고싶었겠는가. 아빠참여수업때처럼 아빠가 또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근심했는데 내가 집으로 들어서니 딸애는 너무도 신났던 모양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났다. 아빠의 빈자리가 딸애한테 그렇게 큰 실망을 줄수 있다는 생각을 나는 여태껏 해본적이 없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였던 이 한시간이 딸애한테는 기나긴 기다림이였던것이다. 그날 저녁 딸애는 뭐가 그리 신났던지 내내 깔깔거리며 웃어댔고 밥상에서도 내 무릎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저녁에는 내 손을 꼭 잡고 침대로 가더니 “오늘은 아빠랑 잘거야.” 하며 평시에는 절대로 내주지 않던 엄마의 보금자리를 톡톡 치며 “아빠 여기 누워.” 하고 말했다.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딸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비싼 음식, 비싼 옷, 비싼 놀이감 그리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딸애가 행복하다고 착각을 했다. 내가 없어도 이 모든것이 내 빈자리를 채워줄수 있다고 믿었다. 돈 벌어주는 몫을 다하였다고 핑게를 대며 안해에게 모든것을 떠맡긴채 나는 거목이 되고 우산이 되여야 할 아빠라는 이 직책에 빈자리만 가득 남겨놓았던것이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딸애가 태여난 그 순간부터 나의 이름은 “아빠”가 아니였던가? 어느 순간 딸애가 훌쩍 커버려 내 품을 떠날 때에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아빠다운 모습으로 그 빈자리를 하나하나씩 채워가야 할텐데…

그래, 래일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더라도 딸애를 데리고 놀이터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손에 있던 스마트폰을 고스란히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청년생활> 잡지 2016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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