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4분기 “내 고장 훌륭한 이”칭호를 수여받은 화룡시 팔가자림업유한회사병원 림상과의 양금하(40세)의사는 10일 이같은 다짐을 했다.
“1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쳤습니다. 고향분들이 아니였더라면 저의 오늘이 없었습니다. 고향분들의 양육의 은혜를 보답하고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양금하가 굳게 다지는 리유이기도 했다.
1997년에 연변의학원 단과를 졸업한 양금하는 큰 도시 병원에 추천하는 지도교원의 성의를 완곡히 거절하고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고향에 돌아와 화룡시 팔가자림업유한회사병원에 취직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그날부터 양금하는 “의사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치료해야 할뿐만아니라 정신적인 위로도 안겨줘야 한다”는 태도로 사업에 림했다. 매일 병마로 인해 고통에 시달려 신음하는 환자를 마주하다보면 동정심도 사그라질수 있었지만 양금하는 “내가 만약 환자라면?” 하는 생각으로 자기를 단속해왔다.
심장병으로 팔가자림업유한회사병원에 입원한 김종관(77세)환자는 자녀 모두 외지에 있다보니 간병할 사람이 없었고 생활도 매우 곤궁했다. 어느날 병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양금하가 들어가보니 김로인이 수척한 손으로 눈굽을 찍고있었다. 돌봐주는 혈육이 없어 온종일 식사도 못했다는 말에 양금하는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즉시 식당에 가서 밥과 반찬을 타다 김로인에게 드리고는 비싼 의료비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김로인을 위해 단위 지도부를 찾아가 부분적 비용을 감면해주도록 신청했다.
남들이 민족도 다른데 왜 그렇게 관심해주느냐며 의아해할 때면 양금하는 “민족, 신분을 떠나 이들은 모두 저의 환자입니다”고 대답한다. 주전갑, 박옥희 로인은 자주 심장병이 도지군 하는데 년세가 많은데다 길이 울퉁불퉁해 병원 가기 힘들 때가 많다. 이럴 때면 양금하는 환자집에 찾아가 진료를 해주군 한다.
어느해 겨울 밤, 박옥희로인의 가족으로부터 로인이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공교롭게도 양금하의 어린 아들애가 된감기에 걸려 열이 심했다. 고열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아들애가 “가야 해요?”라며 간절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볼 때 양금하는 마음이 아파났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이런 밤이 얼마나 되는지 그녀로서는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양금하다.
의료사업에 종사한 20년간 양금하는 뇌경색환자를 사경에서 구조하기 위해 련속 16시간 맴돌아친적도 있고 환자를 위해 잔업을 펼친적도 수없이 많다. 그녀의 사업정신에 감동된 환자들이 선물이나 돈을 드리면 그녀는 환자를 위해 봉사하는건 의사의 직책이라며 일절 사절했다.
“의사는 교원들처럼 많은 학생들을 양성하는것도 아니고 연예인처럼 화려한 아우라를 갖고있는것도 아니며 많은 보수를 받는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직책은 환자를 구조하는겁니다. 제가 선택한 직업인만큼 이 새하얀 가운에 한점의 부끄러움 없도록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충실하게 살렵니다.” 그녀의 확고한 프로정신을 느낄수 있는 순간이도 했다.
연변일보 최미란 기자 김명란 실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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