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언젠가 헤어질 날 오겠죠…일 년에 몇번은 꼭 만나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5월2일 11시00분    조회:192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mayseoul@naver.com
[토요판] 인터뷰 ; 가족
조선족 입주 도우미 ‘이모님’
▶ 육아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맞벌이 부부가 조선족 입주 도우미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입주 도우미는 ‘이모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돌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듭니다. 조선족 이모님은 어떻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을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방인’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까요. 이모님의 남편, 자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지우 아빠는 새로운 가족 ‘이모님’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가족은 혈연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달여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육아도우미를 구하자고 했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지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처가와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며 육아에 손을 벌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막상 복직 날짜가 다가오자 부모님에게 육아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 자식 된 도리는 아니라는, 부모님도 부모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출근은 빠르고 퇴근은 알 수 없는 회사의 특성상 아예 입주 도우미를 구하기로 하고 지금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조선족 육아도우미와 1년 남짓 같이 살고 있다.

 

좁은 집에서 남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걱정은 곧 사라지고 불편함은 금방 적응되었다. 이북 사투리를 간간이 쓰시지만 아이를 돌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부지런히 집안일도 해주시고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 솜씨도 수준급이다. 아주머니 잘 만나는 것도 오복 중의 하나라는데 우리는 정말 복이 많았다.

 

그렇게 한솥밥을 먹고 화장실을 같이 쓰며 ‘또 하나의 가족’으로 지내오면서 나는 문득 이모님에 대해, 그리고 이모님의 뿌리인 조선족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뉴스에 나오는 오원춘과 박춘봉 같은 흉악한 사람들이 아닌, 그냥 이모님과 같이 평범한 조선족이 궁금해졌다. 내년에 환갑이 되시는 이모님은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 출신의 중국 국적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족이다.

 

 

1년 남짓 한집 사는 ‘이모님’
흉악한 뉴스 보다 궁금증 일어
아들딸 생이별하고 타향살이
눈에 밟혀 어찌 지내셨을까

 

돌보던 아이 자라 입학하거나
비용 부담 탓에 나오기도
오늘도 지우는 이모님 찾는데
미래의 이별 감당할 수 있을까

 

 

한국에는 언제 처음 오셨어요?

 

이모님 1996년이었어요. 한-중 수교 이후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죠. 일자리도 많고 월급도 중국보다 훨씬 많았으니까요.

 

혼자 오셨어요? 96년이면 아이들도 초등학교 다닐 때 아닌가요?

 

이모님 딸이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데리고 들어올 수가 없어서 남편이랑 둘이 왔죠. 딸은 고모 집에, 아들은 할머니 댁에 맡겼어요. 애들 다 떼놓고, 모질었어요 참….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서도 퇴근할 때까지 지우가 눈에 자꾸 밟히는데… 중국에서 한국까지 생이별을 한다는 게 저로서는 상상이 안 가네요.

 

이모님 한국에 가면 몇 년씩 중국에 못 돌아갈 각오 하고 나와야 하는데… 매일 울었어요. 애들 보고 싶어서… 근데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리고 사는 게 한국이 훨씬 나았으니까, 나중에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도 그 아이들이 잘 커서 학교 졸업하고 지금 중국에서 회사 다니고 사업하고 잘 살고 있어요.

 

자제분들이 저와 같은 또래지만 참 대견하네요. 저 같으면 부모님이 외국에 일하러 가시고 친척집에서 눈칫밥 먹으면서 그렇게 못 살았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무슨 일 해보셨어요?

 

이모님 처음에는 식당 일부터 했어요. 여자들은 주로 식당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죠. 건설현장이 벌이는 괜찮은데 힘들어요. 농사일을 돕거나 간병인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아요. 식당 일을 10년 정도 하다가 비자 사정이 좀 나아지면서 육아도우미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중국과 러시아 동포는 방문취업비자(H-2) 혹은 재외동포비자(F-4)를 발급받아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내국인과 거의 동등한 자격이 주어지는 F-4 비자와는 달리, H-2 비자는 상대적으로 저임금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들이 정부가 지정한 38개 단순노무직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특별비자다. 하지만 이모님이 처음 한국에 오셨던 90년대에는 방문취업비자(H-2)라는 것이 없었다. 중국동포들이 F-4 비자를 받기도 어려워 대부분 3개월 단기체류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가슴을 졸이며 일하다가 걸리면 중국으로 추방당하곤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와서야 3년짜리 H-2 비자가 생기고 조건에 따라 연장을 하거나 F-4 비자로 전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육아도우미 일을 시작하신 것은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은 그즈음부터였다.

 

아무래도 다른 일들보다 육아도우미는 신분이 확실해야 하니까 그런가 보네요.

 

이모님 그렇죠. 옛날에는 일하다가 중국으로 쫓겨나는 조선족도 많이 있었어요. 옆 가게에서 장사가 잘되면 그 집에 불법체류자가 있다고 신고하고 그랬죠. 저도 조마조마하면서 15년 가까이 버텼는데 다행히 식당 주인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이 착해서 신고당한 적은 없었어요.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가요?

 

이모님 한번 추방당하면 돌아오기도 힘들고… 처음 한국 들어왔을 때 브로커 비용으로 중국돈 12만위안을 내고 나왔어요. 쫓겨나면 그냥 죽는 거예요. 갚을 방법이 없거든요. 12만위안이면 당시 한국돈으로도 천만원이 넘는 액수인데… 한국에 일하러 오는 조선족들은 대부분 돈이 없으니까 그 돈을 빌려서 마련하죠. 근데 정작 한국 정부에서는 3개월짜리 단기체류비자밖에 안 내주니까 그 돈 갚을 때까지 일하려면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와… 그렇게 15년을 버티신 거예요?

 

이모님 애들 낳을 때 제대로 조리를 못해서 원래 위가 안 좋고 두통도 잦았는데 그때 스트레스 때문에 더 심해졌죠. 그래도 겨울에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가는 흑룡강보다는 따뜻한 한국에 오니까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이모님의 부모님은 어느 지방 출신이셨나요? 일제 때 강제이주되거나 독립운동했던 분들의 후손이 지금 조선족의 상당수를 이루고 있다고 하던데, 혹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였나요?

 

이모님 할아버지가 함경북도 출신 독립군이셨어요. 60살 넘어서야 중국에서 독립운동 유공훈장을 받았죠. 아버지는 독립운동 유공자로 매달 60위안 정도 지급받았는데, 마을에서 공산당 당대표를 10년간 지내셨어요.

 

독립군 집안이셨군요.

 

이모님 뭐 다 옛날 얘긴데요.

 

지우가 몇 번째 돌보시는 아이죠?

 

이모님 네 번째예요. 지우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예요. 근데 아직도 보고 싶고 가끔 사진도 들여다보고 꿈에 나오는 애들이 있어요. 그애들도 저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군요. 육아도우미 일 하시면서 그런 일이 좀 힘드시겠어요.

 

이모님 네. 아무래도 애들이랑 헤어질 때. 그 집이랑 안 맞아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아이가 커서 학교에 입학하면 육아도우미가 필요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용이 부담돼서 그러는 경우도 있죠. 그러면 몇 년씩 정 주고 키웠던 애들이랑 생이별을 해야 하니까… 너무 슬프죠. 얼마 동안은 연락하고 지낸다고 하더라도 다른 집 들어가면 사실 다시 보기는 어려워요.

 

애들한테도 충격이 크겠어요.

 

이모님 그렇죠. 근데 저는 지금 지우네가 너무 좋아요. 전에 머물던 집들 중에는 인격적으로 대우를 안 해주거나 은근히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근데 지우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다들 이렇게 인간적이고 따뜻한 집이 없었어요.

 

저희는 그냥 상식적으로 대하는 것뿐인데… 그렇게 봐주시니 제가 감사하네요. 또 어떤 점이 힘드셨나요, 그동안?

 

이모님 예전에는 불법체류 신분이다 보니 의료보험이 안 돼서 아파도 병원에도 잘 안 가고 감기라도 한번 걸려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 병원에 가면 몇만원씩 깨지고 하니까. 근데 정식으로 비자 받고 일하고 나서는 매달 10만원 정도 의료보험료 내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어요. 많이 좋아졌죠.

 

조선학교에서 북한의 표준어이자 조선족의 기준어인 문화어로 교육받고, 조선족과 한국인들 사이에서 평생을 지내신 이모님은 중국어보다 우리말이 더 익숙하다. 20년을 한국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중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한국으로, 일본으로,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는 중국의 신도시들로 빠져나가며 공동화되고 있는 조선족 자치주에는 이제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도, 마땅히 할 일도 없다.

 

지우는 오늘도 이모님을 찾는다. 아빠한테 혼나면 울면서 이모님에게 달려간다. 지우처럼 이모님의 존재가 큰 아이한테 언젠가 닥치게 될 이모님의 부재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모님, 건강하시고 더 행복하시고 지금처럼 지우 잘 돌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먼 얘기 같지만 우리 사정으로 혹은 이모님의 사정으로 또 하나의 가족을 떠나보내야 할 날이 오겠죠. 그래도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명절이면 모이듯 일 년에 몇 번씩은 꼭 만나요.

 

지우 아빠

한겨레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손강은 우리 부녀의 구명은인이라오”  안도현공상국 회의실에는 “죽어 가는 사람을 구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도와준 간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어려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공상간부의 풍격을 보여주어”라는 글발이 적힌 두폭의 금기가 걸려있다. 심수의 장애민씨가 ...
  • 2014-03-27
  •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다.마음이 풍요롭고 넉넉해야 진정한 부자이다.” 주위 로인들한테 남다른 사랑을 베풀고있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로인협회 김금복회장(64살)의 나누는 삶의 신조이다. 설명절을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나들이를 하면서도 로인들 걱정으로 잠못 이룬다는 그를 만난...
  • 2014-03-27
  •  가목사시조선족중학교 김금녀선생님의 이야기      부모들의 기나긴 타향살이로 부모사랑에 굶주린 학생들을 놓고 말하면 김금녀교원은 담임교원이자 어머니이고 교육자이자 친구였습니다.      1990년 흑룡강성조선족사범학교 한어학과를 졸업한 그는 가목사시조선족중학교...
  • 2014-03-26
  • 연길시 리화촌에 자리잡은 향토식품공장, 3000평방메터 뜰안에 500여개 장독 줄줄이 연길시 리화촌에 자리잡은 향토식품공장 안뜰의 봄해살이 감빛으로 물들고있다. 이곳에서 아스라한 기억속에서나 떠올릴수 있는 전통장독들을 만날수 있다. 마당 가득한 장독, 마당 그득한 해빛, 투박하지만 정겨운 항아리들이 묵직한 된...
  • 2014-03-24
  • 《리춘자장학금》설립 및 제1회 장학금 수여식 영길조1중에서     교우 박철(오른쪽1)장학금시상식장에서 장학금 수상생들과 함께     2014년 3월 17일, 영길현조선족제1중학교에서 교우 박철의 어머니 이름으로  명명된《리춘자장학금》설립 및 제1회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영길조1중 교우인...
  • 2014-03-19
  • 요즘은 개성시대이다. 남들과는 다른 매력, 다른 특점들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력을 가지는것만큼 가족들도 각자의 개성이 뭉쳐 더 탄탄하고 경쟁력있는 가정을 이룰수 있다. 나는 지금부터 우리 집의 개성과 가족을 소개하려고 한다.     “기부천사”   오늘도 길가에 서있는 거지를 보자마자 지...
  • 2014-03-19
  •     지난  3월13일, 78세인 최인숙할머니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생사회구역을 찾아와 어렵게 살아가던 세월에 도움을 많이 준 이웃의 “주임”을 찾아 달라고 청들었다.    1978년, 최할머니가 흑룡강성에서 연길에 이주해와 쳘남의 룡남가두에 살게되였다. 지체장애인 아들과 손녀...
  • 2014-03-17
  • 흑룡강성 상지시의 김금란(45세)은 《명가떡집》을 꾸려 딸 류학공부를 시키고있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 돈벌 생각만 하지 말고 한가지 기술을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한 김금란은 떡집에서 떡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김금란은 귀국하여 동서가 꾸리는 떡집에서 배운 기술을 더 익히다 동서가 떠나고 그 떡집을 인계...
  • 2014-03-17
  • 왕뤼와 그의 아내 자오웨이웨이는 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해외로 휴가를 가게 됐다. 22개월이 된 아기와 함께 가는 해외여행에 신이 난 부부는 장인장모까지 초대해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성공한 경영컨설턴트인 왕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바쁜 업무에서 벗어나 일주일 간 휴가를 냈다. Drew Kelly for the Wa...
  • 2014-03-16
  •  심양시조선족산거지구로인련합협회 남세옥할머니의 가족사랑    일전 심양시조선족산거지구로인련합협회는 “3.8” 부녀절 경축행사에서 본협회의 남세옥할머니(79)를 “모범녀성”으로 선정하고 표창했다.   남세옥할머니는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를 18년, 뇌졸증으로 앓던 남편...
  • 2014-03-14
  •   날이 춥다. 경칩이 지났지만 밖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친다. 주말내내 방안에 콕 박혀있다가 심심풀이 삼아 오래만에 펼쳐든 사진첩, 그속에 흑백사진 한장이 눈길을 잡아 끈다. 뿌연 담배연기사이로 저가락이 휘어져라 두드려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를 선보이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
  • 2014-03-14
  • 황혼의 노을 보다 아름다와 - 전 화룡시인민법원 정치처 주임 윤동길씨 화룡시인민법원에서 정치처 주임, 당조성원을 담임하였던 윤동길(65세)씨는 퇴직후의 인생을 의의있고 다채롭게 보내고있다. 국가4급 고급법관인 윤동길씨는 퇴직한후 자신의 전문기능으로 사회를 위하여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있다. 퇴직후 그는 줄곧...
  • 2014-03-14
  • 동북군정대학 60주년 합영. (세번째줄 좌로부터 일곱번째가 아버지 신청송임) 사람들은 흔히 자식들을 따스한 품에 안아주시고 살뜰히 쓰다듬어주시는 어머니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비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자식들을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아버지를 우뚝 솟은 높은 산에 비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를 낳아주고 생명의 젖...
  • 2014-03-13
  • 21살, 최진영의 하루는 로어에서 시작해 로어로 마무리된다. 잠자리에 누운채로 하고싶은 이런저런 말들을 로어로 해보고 혹시 발음이 꼬이면 수없이 반복해 만족스러워야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일어난다. 식구들과도 로어로 아침인사를 하고 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부딪치는 생활용품들도 모두 로어로 한번 되새겨본다. 로...
  • 2014-03-11
  • 아들들의 안내로 성형병원을 찾은 83세 고령의 김경숙할머니(왼쪽 두번째)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면서 환갑을 넘긴 60대 아들이 83세 로모에게 미용성형수술을 시켜드린 이야기가 훈훈한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지난 2월 하순, 50~60대 두 남성이 한 할머니를 모시고 연길시에 있는 동창림의학미용병원에 찾아왔다. 80...
  • 2014-03-10
  • 황림봉이란 이름이 우리한테는 익숙치 않다. 하지만 검색창에 “중국소년패”와 함께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의 기사들로 도배된다. “조선족의 대표적인 무용가운데 하나인 상모춤, 국가급 무형문화재인 상모춤을 널리 알린 꼬마”, “웃음이 사탕처럼 달콤한 꼬마” , “세상에서 나...
  • 2014-03-10
  • 《3.8》국제부녀절을 맞으며 한국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와 명절을 축하드림과 아울러 지극정성으로 어머니의 자리를 메워주신 아버지께 진정 공훈메달을 드리고싶습니다. 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로 태여나 28년 동안 곱게 자란 저입니다. 제가 부모님의 곁에 오기까지 아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 2014-03-07
  • 연길시항정복장유한책임회사 최영희경리의 일가견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소규모의 기업을 중등기업으로 키워 나만의 특색,나만의 스타일로 갖춘‘영이네"브랜드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싶고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돕기 위한 사업에도 최선을 다 하고싶어요” 4일,사무실이전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
  • 2014-03-06
  •  연길 “흑기사” YES다 뷰티샵 사장 리화씨의 일가견      사진은 고객과 상담하는 리화사장(오른쪽)     이미지변신을 위해 며칠전 원래의 긴 생머리를 짧은 웨이브로 바꿨다는 헤어스타일, 하얀 셔츠에 긴 베이지색 민소매가디건을 바쳐입은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패션, 반달눈...
  • 2014-03-06
  • “음식업은 맛을 유지하는것이 관건입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량호한 봉사를 제공해주는 동시에 복무원들에 대한 인성화관리도 절대 소홀히 할수 없습니다.” 이는 리해옥장국왕 체인점을 운영하며 창업의 희열을 만끽하고있는 박영춘씨(32세)의 창업경험이다. 2월 25일, 기자는 연길시진학파출소 서쪽켠에 자리...
  • 2014-03-06
‹처음  이전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