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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바랜 사진을 따라 찾은 옛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5월5일 09시19분    조회: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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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54] 색바랜 사진을 따라 찾은 옛 이야기 

림춘애: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제일 큰 소원은 모주석을 만나는 거였지요.

 


1957년 주중유고슬라비아 대사관의 연회에 참석한 중앙민족학원 소수민족학생들, 첫줄 왼쪽 첫번째 학생이 림춘애.

지난 력사의 한 장면은 문뜩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실은 림씨 성의 지인이 무심코 상기한 흑백사진의 이야기 때문이였다. 그 사진에는 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나타나고 있었고 또 애젊은 조선족 소녀가 있었다는 것.

“그맘 때라고 하는데요, 큰 고모는 또 모(택동)주석에게 꽃묶음을 드린 적 있다고 합니다.”

소녀는 바로 림씨가 말하는 그의 큰 고모, 림춘애였다. 큰 고모는 말이 소녀이지 지금은 여든 고개를 넘은 로인이였다.

우리 일행은 내몽골 중부의 편벽한 도시 포두(包頭)에 가서 주인공 림춘애를 만났다. 10대의 나이에 나라의 지도자들과 함께 섰던 그녀는 지금도 사진 속의 그날처럼 행복한 듯 했다.

포두의 자택에서 일기장을 찾아 옛 기억을 더듬는 림춘애.

“딸과 아들은 아직도 리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제일 큰 소원은 모주석을 만나는 거였지요.”

림춘애는 사물함에서 옛 사진들을 찾아 일일이 내놓았다. 색바랜 오랜 사진에는 그녀의 소중한 옛 기억이 담겨 져 있었다.

"8.15"광복에 즈음하여 림춘애는 여덟살을 먹던 해에 가족과 더불어 압록강을 건넜다. 그때 엄마는 두부를 앗고 콩나물을 기르고 국수를 삶아먹으며 생계를 간신히 유지하였다.

1955년 7월, 림춘애는 고중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초급사(初級社) 즉 개인경제에서 집체경제에로 과도하던 시기였다. 마을에서는 아직도 인력과 땅의 크고 작음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친은 탈곡기에 손을 다쳐 불구가 되였고 동생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나니 집안일은 전부 다 엄마의 몫이였다. 림춘애는 이른 봄이면 살얼음을 헤치고 도랑을 팠다. 너무 맥이 진해 저녁이면 구들에 오르기도 힘들었다. 딸애의 하얀 다리에 흐르는 빨간 피를 보고 엄마는 불쌍하다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저는 그렇게 일을 잘해야 언제인가 북경에 가서 꼭 모주석을 만나 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림춘애는 학교시절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은 우등생이였다. 그녀 뿐만 아니라 세 오누이 모두 통화조선족중학교에서 하나처럼 유명한 우등생이였다. 그들은 각자의 학급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림춘애가 학교를 떠난 후 그녀의 대대장 완장은 둘째 동생 림형섭에게 돌아갔고 림형섭이 학교를 떠나자 이번에는 또 막내 동생 림춘자가 완장을 꼈다. 부친은 세 자식을 잘 키운 보람으로‘우수학부모’로 학교의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구름이 없는 하늘에 비가 내릴까.” 꿈같은 소원은 불현듯 그녀에게 지척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1956년 여름, 림춘애에게 문득 중앙민족학원의 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바로 그녀가 촌의 대표로 추천되여 현 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다. 전국 각 지역의 소수민족 가운데서 도합 100명이 선정되였는데 조선족은 림춘애가 유일했다.

중앙민족학원에 입학, 떠나기전에 가족과 남긴 사진,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림춘애.

“그날이 1956년 8월 22일이였지요, 일부러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림춘애는 수도 북경에서 공부하는 한편 국가 지도자들과 만나며 보귀한 사진들을 남긴다. 그때 그 시절, 소수민족 대학생들은 특별초청으로 국내외 지도자를 마중하고 배웅하며 연회를 마련하는 장소에 자주 참석할 수 있었다.

이윽고 림춘애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행복의 순간을 맞는다. 1957년 5월 26일, 림춘애는 모택동 주석을 지척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북경공항에서 외국의 지도자를 배웅하던 그날 림춘애는 그이에게 꽃묶음을 직접 올리게 되였다. 만약 세상에서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손바닥의 따스한 체온으로 느끼던 감동의 그 찰나를 시계추처럼 영원히 멈추게 하고 싶었다.

북경 민족문화궁 부근에서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소수민족학생들. 뒤줄 왼쪽 첫번째가 림춘애.

그날 저녁, 림춘애는 기숙사에 돌아온 후 그날의 흥분을 일기장에 또박또박 적었다.

하지만 한가지 유감이 남았다. 바로 그날의 잊지 못할 그 시각을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다니던 의학예과반은 1956년에 소수민족 의대생을 위해 중앙민족학원 예과부에서 특별 개설한 유일한 반급이다.

해마다 국경절, "5.1"절 등 대형 행사 때면 중앙민족학원의 소수민족학생들이 의장대처럼 대오의 전렬에 서서 천안문 앞을 행진했다. 외국 수반을 환영하고 배웅하는 공항의 행사에도 소수민족 학생들이 참석했다. 일부 학생은 국가의 공식행사에만 6,7차 참석했다.

림춘애가 대학시절에 받았던 중국정부와 외국 대사관 연회의 초청장 일부.

의학예과반에는 이런저런 특혜가 제공되고 있었다. 전부의 학생들에게 이불과 담요, 치솔 등 도구가 차려졌다. 민족복장 역시 학원에서 특별히 개개인에게 맞춤복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대학 3년 동안 각기 세 벌씩 발급했다.

예과반 생활에서 제일 인상 깊던 건 그래도 고추라고 림춘애가 회억했다. “제가 조선족이라고 해서 매운 음식을 잘 먹는걸로 알고있었겠죠, 끼니마다 고추가 식탁에 올랐지요. 그런데 그 고추는 너무 매워서 도무지 견딜수 없었습니다.”

그 고추는 묘족들이 애용하는 토종 고추였다. 림춘애는 고추를 맛보다가 눈물까지 찔끔 짰지만 그들은 끼니마다밥처럼 씹어 먹고 있었다.

그때 학원에는 식당 다섯개가 있었는데 한족료리, 서장료리, 이슬람교와 회족료리, 조선족과 묘족, 나시족, 쫭족을 비롯한 다민족 료리, 종합료리는 식당마다 각양각색이였으며 와중에 2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좌석에는 또 여러 가지 짠지도 미리 준비되여 있었다.

“명절 때면 조선족들은 찰떡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김치는 없었지만 늘 매운 짠지가 있었지요.”

림춘애가 말하는 찰떡은 쫀득쫀득하게 찰진 떡이 아닌 중국식의 튀김 찹쌀떡을 말한다. 그래도 료리사의 정성 때문에 옛 고향의 맛을 맛볼 수 있었다. 김치며 랭면 생각이 나면 서단(西單) 귀퉁이에 있는 조선족랭면집에 가서 먹군 했다. 중앙민족학원에서 수학(修學)을 하고 있던 연변지역 조선족간부들은 늘 림춘애를 함께 불러 맛좋은 음식을 사주었다.

“그런데 그 고마운 분들과 기념사진 한 장도 남기지 못했지요. 정말 유감스러웠지요.”

나중에 의학예과반의 100명 학생 가운데서 50명이 승진, 북경의학원에서 림상의학 등을 배웠다. 이 의학원이 바로 지금의 북경대학 의학학부이다.

1965년 9월, 림춘애는 남편을 따라 내몽골 중부의 포두(包頭)에 전근되였다. 포두는 철강의 도시를 건설하면서 생긴 전형적인 이민도시이다.

“제가 올 때 포두에는 조선족이 100명 정도 살고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때 포두의 조선족은 대부분 기술자였다고 합니다.”

일찍 1939년에 포두에는 조선인 64명이 살고 있었으며 1950년대 초에는 오히려 34명으로 줄었다고‘내몽골조선족연구회’가 밝히고 있다. 1953년 중앙정부에서 포두에 철강공업기지의 건설을 결정하면서 포두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대에는 포두의 조선족인구가 5백여명이였다.

2001년 포두 로동공원에서 조선족들과 함께 유식의 한 때를 즐기는 림춘애(파란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람.)

림춘애는 포두의 편벽한 산골에 의사로 배치되였다. 위생소(衛生所)는 시내에서 70키로미터 상거한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의료의기는커녕 의학서적도 없었고 신출내기인 그녀를 가르칠 전문의사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려움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직원들을 인솔하여 창업하고 최종적으로 위생소의 모습을 일변시켰다. 1980년 시내의 철강종업원병원 피부과에 전근한 후 림춘애는 또 독립적으로 연구하여 난치병 등 10여종의 희귀병을 진단, 치료하는 놀라운 실적을 올린다.

“제가요, 나라의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꼭 보답을 해야 하지요.” 림춘애는 의례히 해야 할 일처럼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남을 돕는 그런 활동을 하고 싶은데요, 나이 때문에 생각처럼 안돼 안타깝습니다.”

림춘애는 퇴직한 후에도 공익활동에 적극 투신, 지진지역을  지원하는 등 좋은 일을 하여 세 번이나 모범으로 당선되였다. 그래도 림춘애는 아직까지 너무 부족하고 또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흑백사진에 실린 소녀의 옛 숙원은 60여년 세월이 지난 오늘 날에도 푸른 하늘처럼 변치 않고 있는 듯 했다.

(글/사진 북경 국제방송 김호림)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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