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성이야기55]자전거를 타고 만 8천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7일 09시11분    조회:112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자전거기자 손화섭, 18년사이에 자전거 6대 바꾸다 

“자전거기자” 손화섭(오른쪽)이 취재하는 곳에는 늘 자전거가 따라다닌다.

76세의 고령임에도 열심히 기사를 써서 신문잡지에 발표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뻐스도 아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가 바로 여러 매체의 공동한 통신원이자 특약기자인 룡정시통신협회 손화섭 회장이다.

손화섭은 6살에 어머니를, 10살에 아버지를 여의면서 하루아침에 의지가지 없는 혈혈단신으로 되였다. 그때가 바로 1952년이였는데 한 마을에 살던 한화춘(52세)이라는 마음씨 고운 녀성이 그를 불쌍히 여겨 입양하여 키워주었다. 손화섭은 이렇게 그의 손에서 자라 장가를 가고 가정을 이루었다.

손화섭은 다년간 선후로 룡정시 용신향, 동불사진의 농전소 소장 겸 당지부서기로 사업하다가 1997년 8월에 정년퇴직하게 된다.

열심히 일해 오던 그는 정작 퇴직하게 되자 인생의 적막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자기를 인젠 성 쌓고 남은 돌신세로 생각하니 마음이 저으기 답답하고 불안해났다. 게다가 매일 아무일도 하지 않고 허무한 시간을 보내자고 하니 손에 당장 가시가 돋을 것만 같아 도저히 안절부절 못했다.

‘아직 기력도 좋고 정신력도 좋은데 무엇이든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가?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글쓰기에 흥취가 있었는데 글을 써서 신문사에 보내면 어떨가?’

2015년 년말총화모임에서 총화발언을 하고 있는 손화섭 회장.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였다. 그런데 신문기사를 쓰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정작 글을 쓰자고 하니 무엇부터 써야 하고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할지 궁리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그는 경험이 풍부한 통신원들과 글쓰기열성자들을 찾아 이것저것 물어 가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또 배웠다.

그렇게 쓴 글 <김기택로인 렬사기념비에 꽃과 나무를 심고>가 《연변일보》에 실렸는데 이것이 그가 쓴 첫 신문기사였다. 이에 신심을 얻은 그는 어디에 좋은 취재거리가 있다하면 아무리 피곤하고 바쁜 일이 있더라도 두말없이 자전거를 타고 취재길에 오르군 했다. 자전거는 그때로부터 그의 제일 친근한 “반려”로 되였다.

동불사에 있을 때인 2003년, 삼복철의 어느 날이였다. 룡정시 조양천진에 가서 취재할 일이 있었는데 뻐스를 타면 시간도 맞지 않거니와 뻐스에서 내려 또 여러 곳으로 다녀야 했다. 그는 아예 무더위를 피해 새벽 4시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물어 가면서 먼저 삼성촌 제6촌민소조의 김창순로인을 찾아 취재하였다.

김창순로인은 1982년에 호도거리를 시작하여서부터 염소사양을 하였는데 13마리의 염소를 300마리로 늘였으며 연변농학원 교수의 지도하에 염소의 우량종을 번식시키는 인공수정실험에 성공하여 국가 농업부, 상업부, 공업부로부터 <전국 염소사양기지건설 및 모범사양전문호>라는 영예칭호를 수여받은 분이다.

그 다음으로 조양천진에 가서 조양천진 로인협회 최려천 회장을 만나 로인협회를 룡정시 우수로인협회로 이끌어온 사적을 취재하였으며 그 로인협회를 통해 태동촌 로인협회의 활동이 아주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것과 광석촌에서 연길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리적 우세를 리용하여 남새농사를 잘 해 촌민들이 수입을 톡톡히 올리고 있다는 보도선색을 잡게 되였다.

손화섭은 그 이튿날로 또 다시 취재길에 올랐다. 역시 새벽 4시에 자전거를 타고 태동촌, 광석촌으로 향했다. 전공으로 일할 때는 체력이 좋아 매일마다 자전거를 탔고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60세가 넘은 나이에 수십리 되는 농촌길 그것도 울퉁불퉁한 흙길을 자전거로 이동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다. 련속 이틀간 자전거를 탄 손화섭의 손과 발에는 물집이 지고 허리가 시큰시큰해났으며 사맥이 나른해졌다. 그날 손화섭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만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온돌에 폭 꼬꾸라지면서 신음소리를 끙끙 냈다. 그때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의 안해는 참다못해 한마디 바가지를 긁었다.

왜 자기몸을 아끼지 않고 그렇게 무리하게 구세요?”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소? 농민들의 사적을 글로 쓰는 것도 나의 책임이요.”

손화섭은 이렇게 말하면서 두눈을 맥없이 내리깔며 꿈나라로 들어갔다.

그후 그가 매일같이 농촌마을을 누비며 취재해 쓴 수많은 기사들이《길림신문》,《흑룡강신문》,《중앙인민방송》 등 매체를 통해 륙속 발표되였다. 손화섭의 이름은 일약 신문지상을 통해 방송전파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

손화섭은 하면 할 수록 힘이 났다. 자전거는 타면 탈 수록 성수가 났다.

2003년 가을에 룡정에 이사온 그는 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신났다. 길도 좋고 취재거리도 많아진 것이였다. 자전거를 타고 룡정시내의 사회구역과 주변의 농촌마을들을 찾아 다니면서 10여년 사이에 수천편의 신문기사를 써서 발표하였다. 그는 약속한 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루는 법이 없었다. 비오는 날 비옷을 걸치고 자전거를 타면 바지가랭이는 물론 신발이 젖기 마련이다. 그는 바지를 무릎까지 쑥 걷어 올리고 신발은 벗어 비닐주머니에 넣고 맨발바람으로 자전거를 타군 했다. 모 진의 중학교에 취재 갔을 때 마침 비가 내렸는데 비에 맞아 꼴불견이 된 그의 모습을 본 접수실 당직일군이 아예 그를 학교에 들여놓지 않아 고생하던 일은 지금도 그의 기억에 생생하단다.

2011년 7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연변1중에 다니는 외손녀를 돌봐주느라고 량주는 연길에 가서 한동안 살았다. 그사이 그는 뻐스를 타고 룡정에 먼저 간다음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기층취재를 다니는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그가 룡정을 다녀간 차수가 40여차에 달해 지금도 룡정-연길행 뻐스운전수들은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단다.

자전거를 타고 룡정거리를 누비는 “자전거기자”손화섭.

취재 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인 사연이라면 그는 방천길의 사적을 꼽는다. 연변맹인협회 회장사업을 맡아하는 몇년사이에 아무런 보수도 없이 많은 장애인들의 구체곤난을 해결해 준 방천길의 감동적인 사적은 항상 그를 감동시킨다고 말한다.

방천길 회장이 다년간  100여명 장애인들의 최저생활보장수속을 해주었고 60여명의 안마강습반 학비를 해결하여 주었으며 600여명의 빈곤 장애인가족 자녀들에게 100여만원의 애심성금을 모아주었는데 그중 3명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였으며 지금 10명이 대학에 다니고 있다. 이러한 사적들은 모두 손화섭의 필끝에서 기사화되여 널리 알려졌다.

손화섭은 아무리 어려운 취재감이라도 마음만 딱 먹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끈질긴 성미의 소유자였다.《명의 특약신기계》잡지사 부주필, 《중국의약백과 정화총서》편집위원회 상무부주임위원, 타이전통의학연구회 리사인 김춘실 박사를 취재할 때였다. 김춘실 박사는 손화섭로인이 다섯번이나 찾아갔지만 번마다 취재를 거절하였다. 손화섭은‘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으랴’며 여러모로 수소문하여 그의 집위치를 알아냈고 그가 퇴근하는 시간대에 맞춰 길목에서 그를 기다려서 끝내 취재허락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2006년 283편, 2010년 271편, 2011년 255편, 2012년 312편, 2013년 273편… 이 수자는 손화섭이 매체에 발표한 년도별 수량이다. 기실 이만한 수량은 매체의 전문기자들도 따르기 힘들 정도다. 기력이 많이 떨어진 2016년에도 143편을 발표하였으니 매년 100편이상의 원고량을 올렸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 조양천진, 지신진, 동성용진은 모두 집에서 10리 이상 상거한 곳들이다. 보수적으로 손화섭이 일년에 백번씩 자전거를 타고 취재를 다녔고 하루에 평균 10여리씩 달렸다고 치면 해마다 1000리길을 자전거로 달린 셈이고 지난 18년간 만 8천리를 달린 셈이다. 그사이 그가 도적맞혔거나 낡아서 닳아떨어진 자전거만 해도 6대나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화섭을 “자전거기자”라고들 친절히 부르고 있다. 그는 자기를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항상 고마움의 눈길을 보내주었고 자신 또한 그것으로 인해 보람을 느꼈다.

2005년부터 그는 선후로《길림신문》,《연변일보》,《종합신문》,《현대가정》 등 신문의 통신련락소를 세웠으며 2012년에는 룡정시당위 선전부의 비준으로 여러 개의 통신련락소를 통합하여 “룡정시통신협회”를 건립하였다. 그가 회장직을 맡은 이 통신협회에는 룡정시에 거주하는 여러 신문의 특약기자, 통신원들과 글쓰기열성분자 16명이 있는데 지난 한해만 해도 395편의 기사가 여러 보도매체에 발표되였다.

손화섭의 노력을 헛되지 않았다. 손화섭은 2008년에 지역매체의 우수기사상, 우수통신원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2008년에는《길림신문》“인성교육상” 학부모부분 은상을, 2011년에는《길림신문》“고운남자 미운남자” 공모 금상, 중앙인민방송국조선어부와 《로년세계》잡지사의 련합으로 펼쳐진 “추억의 돛배” 공모 3등상을 수상했다.

통신협회 회원들과 부분적인 매체 언론인들과 함께(2016년 1월 6일).

허다한 로인들은 퇴직후에 할일이 없어 낚시질하거나 마작을 놀거나 혹은 그늘진 곳에 모여앉아 한담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손화섭은 “자전거기자”답게 매일이다 싶이 자전거를 타고 취재를 다니며 글쓰기로 자신의 황혼을 불태우고 있다.

80에 가까운 년령임에도 불구하고 손화섭은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취재길에 오른다. 석양노을은 불타오르고 자전거는 달리고 또 달린다.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주청룡특약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