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박철원(연길)
지금으로부터 61년 전인 1956년의 고소 졸업장
1956년 7월에 소학교문을 나서며 받은 고소 졸업장을 보노라니 어느덧 60년 세월이 흘러 코 빨던 철부지가 할아버지로 되였구려.
내가 다니던 소학교는 흑룡강성 녕안현 록도(鹿道)라는 자그마한 철도역 마을이였는데 그 때 그 곳에는 소학교 세개가 있었다. 록도학교는 한족학교이고 록도단결소학교가 조선족학교, 그 외에 록도철도소학교(한족)가 있었다. 우리 학교의 원명은 ‘녕안현제16완전소학교’(16완소)였는데 1955년부터 ‘록도단결소학’이라 개칭했다. 내가 졸업할 때 우리 단결소학교는 재교생이 40명, 졸업반 학생은 6명이였다. 교원 4명에 공우 1명이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명함은 박일봉이였다.
졸업식 날 담임교원인 리동룡선생님이 나누어주는 졸업장을 보니 이름이 ‘朴喆源’으로 되였었다. 내 이름 ‘철’자는 ‘철학’이라는 ‘哲’자를 써야 하는데 길자 둘인 ‘喆’자가 되여 나는 내 것이 아니라고 떼질 썼다. 그것도 나의 형님의 이름이 ‘吉源’이다 보니 “형님이 둘이 됐다”며 울기까지 하였다. 선생님은 그럼 다시 하나 써줄게 하며 달랬지만 다시 만들지 못했다.
그 때 내 나이 12살, 졸업장에는 11살이라고 씌여있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내가 총기 좋다며 7살에 학교에 붙였고 또 4학년에서 6학년으로 뛰여올라가다 보니 실지 소학교를 5년 밖에 다니지 못했다.
나에게 원래 초소(4학년)졸업장도 있었는데 어느 때에 분실되고 지금 고소졸업장이 그 당시 4명 스승님의 사진과 함께 소장되여있다. 이 졸업장이 있기에 오늘도 그 시절의 추억이 따라서고 있는 것이다.
소년선봉대조직이 나올 때 우리 학교는 학생이 적어 한족학교에 대대부가 설치되고 우리 학교는 한개 중대로 되여 입대하던 날 한족 소선대원들이 와서 넥타이를 매여주었다. 우리 학교 보도원선생은 나에게 소대장 표식을 달아주면서 “사람은 일생에 3대 영광이 있어요. 입대하고 입단하고 입당하는 것입니다. 잘하세요.”라는 말을 하였다. 그 때에는 그 참뜻을 잘 몰랐지만 기억만은 생생해 1966년 21살에 입당하던 날 일기에도 적어보았다.
내가 넥타이를 맨 후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아버지가 개선하던 날 록도판의 전민이 기차역에 모여 환영식을 가졌다. 나와 한족학교 처녀애가 대표로 꽃다발을 들고 기차에서 내린 아버지에게 소선대 경례를 올리던 일이 제일 깊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 때 우리 학교는 일제시대의 학교건물이였는데 두면 널판자에 흙을 다져넣은 벽이였고 기와도 송목판 쪼박이였고 교실과 교실 사이도 널판자로 갈라놓았다. 학교 뒤에 우물 하나가 있어 그것을 길어다 청소하였고 학교 복도와 교실바닥은 모두 널장판이였다. 교원이 적다 보니 졸업반 외에는 모두 교실 앞, 뒤에 흑판 하나씩 건 복식교수였다. 어문시간에 ‘후회’라는 어휘를 해석하면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고 반복하시며 꼭 기억하라고 재삼 당부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보이는 것 같다.
산골의 학교이다 보니 한번은 운동장에 새끼사슴이 뛰여들어 아이들이 쫓으며 달아다니던 일도 있었다. 고장 이름 록도(鹿道)그대로 그 때에는 그 곳에 노루사슴과 곰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의 교가는 지금도 잘 기억된다.
앞에는 게양대가 높이 솟았고
뒤에는 교사들이 줄지어 섰네,
여기서 백만용사 길러내놓으니
크고도 높은 집은 우리 16교.
나간다 노를 저어 노도 헤치며
16완소 용사들이 합께 건넌다.
여기서 백만용사 길러내놓으니
크고도 높은 집은 우리 16교.
60년 전의 졸업장을 들고 록도촌을 찾아갔더니 지금은 모교는 언녕 력사에 사라지고 20명도 안되는 한족학교 하나 있었다.
그 때 우리 마을에는 고소졸업장을 들고 소학교에 선생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시대가 바뀌며 고소 졸업장이 그 무슨 도움을 준 일은 없었지만 그 졸업장이 바탕이 되여 중학, 대학의 졸업장 혜택도 받게 되였고 사회에 진출하여 경제사(经济师)라는 직함으로 자신을 기여하며 정년퇴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졸업장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61년이 지난 오늘 철부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던 스승님들의 영상이 더더욱 그리워지며 공산당원이라는 그 참뜻을 알게 되였고 넥타이를 매고 뛰놀던 동년이 그립기만 하다.
소학교 졸업시 나의 스승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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