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감격과 영예의 졸업식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9월20일 15시02분    조회:154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1)

◇리종광(장춘)

필자 리종광씨가 소속 로인협회의 한 활동에서 2013년에 남긴 사진

나의 일생에서 아름다운 추억은 많고 많아도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금주기계공업학교를 졸업하던 제5회 졸업식이다. 나는 후에 대학도 다녔고 대학의 졸업식도 있었지만 그래도 금주기계공업학교가 더욱 생각나고 그 학교 졸업식이 가장 깊은 인상으로 뇌리에 뿌리박혀있다. 그 날을 회상할 때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중국의 사회주의건설과 공업현대화를 실현할 원대한 리상으로 가슴 벅찼던 그 날의 모습이 한결 그리웁다. 다만 당시에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후회가 막심할 따름이다.

금주기계공업학교는 중화인민공화국 제1기계공업부의 직속학교로서 원 장춘공업전문학교, 치치할공업기술학교와 금주공업학교가 합병된 학교였다.

우리의 졸업식은 1957년 7월 30일에 거행되였다. 그 날 공업학교 강당의 무대 웃쪽에는 ‘금주기계공업학교 제5회 졸업식’이라는 프랑카트가 정중히 걸려있었고 벽에는 ‘조국이 가장 수요하는 곳으로 가자!’, ‘당에서 부르는 곳이 곧 우리의 일터이다!’, ‘통일배치에 견결히 복종하자!’, ‘우리는 나라와 인민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서슴없이 달려간다!’ 등 표어들이 붙어있어 대회의 기분을 돋구었다.

학생들의 활기찬 〈청춘행진곡〉노래가 강당을 진동하였다. “피끓는 젊은이들 / 벅찬 가슴을 펼치라 / 우리 함께 노래부르자 / 청춘은 아침의 붉은 태양 / 그 해살 붉고 밝아 / 온 누리에 비추네 / 사막의 광풍도 / 바다의 격랑도 / 고산의 안개도 / 우리 앞길 막을소냐 / 청춘의 기발 높이 날린다!”

당시 우리 청년들은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졸업식은 장엄한 국가로 시작되였다. 졸업식에서 시초무(时超武)교장선생님의 연설은 6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귀가에 쟁쟁하다.

“…중국이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하고 부흥발전하려면 반드시 공업현대화가 실현되여야 합니다. 공업현대화의 중점은 전력, 강철, 기계, 석유 등 공업이며 그 핵심은 기계공업입니다. 오늘 우리 학교는 60명의 기계기술원을 양성하여 기계공업기지로 내보내게 되였습니다. 이는 우리 학교의 영광이며 여러 선생님들의 공로입니다. 오늘의 우리 졸업생들은 당과 인민이 준 학습임무를 완성하고 조국이 수요하는 곳으로 달려가 공업건설에 직접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졸업생들은 앞으로 현장에서 리론과 실천을 결합시켜 더 많고 더 깊은 기술지식을 배워 새로운 기계설계와 발명 및 기술혁신에 앞장서야 합니다. 당과 학교에서는 당신들의 희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졸업생들마다 무한히 빛나는 전도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우리들에게 더없는 고무와 격려가 되였다. 시초무 교장은 북경대학의 졸업생으로서 12.9학생운동의 지도자의 한 분이였다. 당시 료녕성교육청 부청장 겸 금주기계공업학교의 당위서기 겸 교장이였다. 때문에 우리 학교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며 우러러보았다. 우리가 졸업한 이듬해에는 성교육청 청장으로 발탁되였다. 교장선생님의 연설은 아직도 나의 령혼을 두드리며 나의 심장에서 맥박치고 있다.

교무주임이 우리들에게 졸업증을 발급하였다. 학교의 악단은 〈새 장정, 새 전투〉를 연주하였고 재학생들은 졸업생들에게 붉은꽃을 앞가슴에 달아주었다.

이어 전교 사생의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나는 졸업생대표 발언으로 무대로 나섰다. 나는 한없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여 격동된 심정으로 열변을 토하였다.

“저는 오늘의 전체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존경하는 시초무교장선생님과 전체 선생님들에게 경례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당과 나라와 인민에게 충성스런 건설자와 기술자로 길러내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심혈을 아낌없이 바쳐오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은공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우리들은 선생님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배운 지식과 기술로 사회주의건설사업에 이바지할 것을 맹세합니다. 위대한 수령 모주석께서는 새중국의 청년들에게 ‘세계는 당신들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구경에는 당신들의 것이다. 청년들은 아침 8, 9시의 태양처럼 생기발랄하며 한창 흥성할 때이다. 희망은 청년들에게 기탁한다. 미래는 당신들에게 속한다’고 의미심장하게 교시하셨습니다. 학우들이여, 우리들은 모주석의 희망을 한몸에 지닌 열혈청년들입니다. 중국의 혁명은 우리들이 계승해야 하고 중국의 부흥과 발전은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치여 앞에 놓인 장애물을 물리치고 새 사회의 건설을 위해 헌신적으로 분투합시다. 우리들은 일터에서 우수한 성적을 이룩하여 선생님들에게 회보하겠습니다.”

나의 답사는 끝났으나 격정은 계속 북받쳤다.

재학생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학교당위원회의 진명현 부서기로부터 구체적인 졸업배치를 공포하였다. 나의 동창생들은 모두 통일배치에 무조건 복종하여 조국이 수요하는 공장과 기업으로 갔다. 다만 나 혼자만이 동북공학원으로 추천되였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소학시절부터 대학을 꿈꾸었으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부득블 중등전문학교에 왔던 것이다. 정작 이 학교에 와보니 오히려 잘 왔다고 생각되였다. 학교에서는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며 교과서까지 무료였다. 학생들의 통일복을 1년에 한벌씩 발급하였고 매달마다 녀학생은 5원, 남학생은 4원씩 생활보조금을 발급하였다. 추석에는 월병 한근씩 나누어주었고 다른 명절날에는 물만두를 먹게 했다. 학급별로 밀가루와 속을 타다가 물만두를 빚었다. 그 장면은 과연 웃음 가득, 행복 가득이였다.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시절, 그 장면이 그리웁고 그 때 먹은 물만두가 가장 맛있게 생각된다.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가정이 빈한했기 때문에 우리 학교를 인간락원처럼 여기였다.

나는 당과 나라와 인민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4년 동안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배우고 단련하고 오락하면서 성장하였다. 나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또한 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은 영예는 더욱 잊을 수 없다. 나는 5호학생, 우수공청단원의 영예증서를 수여받았으며 영광스럽게도 유일한 대학추천 명액도 나에게 차례졌다.

80 인생길에서 나에게는 아름답고 회억할 만한 추억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추억 가운데서도 기억이 가장 똑똑하고 언제나 머리속에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날은 그래도 1957년 7월 30일 금주기계공업학교의 졸업식 날이다. 이날은 나의 인생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잊을 수 없으며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기쁨이 넘치던 날이다. 이날은 또한 나의 인생길을 전환시킨 날이기도 하다. 나는 본래 문학을 사랑하여 작가나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였지만 공업학교를 거치면서 나의 리상은 기사 또는 설계사로 변해버렸다.

시간과 세월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세월이 남겨놓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력사로 남아있을 것이며 사람이 살아있는 한 수없이 반복적으로 상기될 것이다.

나는 아직도 60년 전 감격과 영예로 벅찼던 그 졸업식을 추억할 때마다 더없이 감개무량하고 행복하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백성이야기65]  대련리공대학 부속고급중학교 김종식 특급교사의 성장이야기     수학교육연구에서 최고상인 ‘소보청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대련리공대학 부속중학교 김종식   락제생으로부터 수학교육연구분야에서 최고상인 ‘소보청(苏步青)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김종식(5...
  • 2017-12-01
  • 한 10년쯤전에는 고향의 지인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군 했었다. “일본에서는 밥 값을 제각기 낸다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 없어? 니들은 그러지 말라…” 물론, 우리도 아주 오래동안은 그것을 접수하지 못하고 고향친구들 모임에서 와리깡(割勘),즉 터치페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무사...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7) ◇김홍련(장춘) 장가계에서 려행 친구들 함께(앞사람이 필자 김홍련) 2011년 10월 25일, 열네살 천진란만하던 소녀시절에 만난 우리 동창생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낭을 메고 연길에서 떠나 천애지각 해남도까지 바라고 려행을 시작했다. 퇴직비로 생활하는 우...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6) ◇허인범(룡정)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서 평강벌을 내려다보며       /사진 신승우 찍음 9월 3일, 자치주 창립 65돐 경축의 기쁨을 안고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 올라서니 벼파도 설레이는 아득한 황금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여기가...
  • 2017-11-27
  • 일본 지진에서 맺어진 고마운 인연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역 지진은 그 후에 일어난 쓰나미, 그리고 빈번한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을 구축해왔던 기반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선 교통기관이 중단되였고 일부 지방의 통신이 차단되였으며 정전으로 모든 시설이 혼란상태에 빠졌...
  • 2017-11-24
  •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기억 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식사하는 손님들과 커피타임중의 손님들로 법석하였다. 오후 2시 40분 쯤 (후에 14시 46분으로 밝혀 졌음)되였을 때, 레스토랑 건물이 상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 2017-11-24
  •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의 '김치' 수업. 19일 아침, 스테인리스(不锈钢) 소재로 꾸며진 은빛 주방에 오미자, 둥굴레 등 약재와 고운 빛갈을 자랑하는 매실 효소, 사과 효소 등이 담겨진 유리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었다. 이곳은 바로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위치한 사랑난로 약선료리공방. 료리와 사...
  • 2017-11-23
  •     ▲ 사진, 동포언론사 및 동포단체 대표들이 17일 오후 포항시청을 직접 방문해 ‘포항지진 피해 사랑나눔 성금 접수처’에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재한동포문인협회 류재순 회장, 한중포커스신문 문현택 대표,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정룡 편집장, 포항시청 성금접수처 관계자, 중국동포한마음...
  • 2017-11-23
  •    (흑룡강신문=하얼빈)심양은 동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우리 나라 중심도시중 하나이다. 이 고유한 큰 도회지의 한 모퉁이에 조선족이 한데 모여사는 서탑거리가 있다.   나는 늙으막에 다병하고 고적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 따라 심양에 와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딸집 이웃에 집을 잡다보니 동릉의...
  • 2017-11-21
  •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한 상업거리(자료사진) 일본에서의 서비스업은 “손님은 왕이다”를 넘어 “손님은 신(神)이다” 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매일 오픈전의 미팅에서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 2017-11-17
  • 이 글은 현재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는 한 조선족녀성(필명: 小葵-작은 해바라기)이 자신의 위챗계정에 중문으로 올린 글이다. 우리는 그녀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한단락 경력을 빌어 우리들 인생의 깨우침을 공유하고저 이 글을 편역해 독자들에게 소...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3) ◇최선자(연길) 1987년 7월 22일 입당선서를 마치고 입당소개인 두분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당지부서기 경신성(한족), 필자 최선자, 교장 백경인(조선족). 1983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학교 령도로부터 절육수술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고 아연해졌다. &ldquo...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2) ◇박명규(연길) 할아버지를 모시던 세월의 필자 박명규와 태봉선 부부의 모습 “할아버진 내가 모셔야겠소.” 이것은 44년 전 내가 북경병원으로 확진하러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한 말이였다. 어쩌면 엉클어진, 엉망이 된 가문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 2017-11-14
  • 주로 중국음식과 한국음식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일본인들의 폭 넓은 음식 취향에 놀랐다. 호이꼬로(回鍋肉), 칭죠로스(青椒肉丝), 마보도후(麻婆豆腐) 등 중화료리의 료리명을 어린애들까지 술술 말하는 정도였고 처음 만나는 경우 교자(餃子)가 맛있다는 말로 수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마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일본인...
  • 2017-11-13
  • 소학교졸업식에서 마츠시마선생님과 함께 아들애가 태여나서 여덟달만에 탁아소 생활을 시작했던 연유로 일본에 오자마자 집단생활에 제법 적응한 아들애 덕분에 엄마인 나의 일본생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오늘날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아들애가 부모의 노력외에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고마운 일본인들과의 소중한 ...
  • 2017-11-13
  • 지도에 우리 민족 성씨로 명명된 행정촌이 있다는 사실에 언녕부터 호기심이 부쩍 동했는데 필자는 얼마전  박씨 두분 -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박호만회장, 룡정시 모 광고공사 박청수경리와 함께 말타고 꽃구경식으로나마 박씨 성으로 이름진 박씨 마을-료녕성본계만족자치현소시(小市)진의 박보(...
  • 2017-11-13
  • 1990년대에 일본에 류학온 중국류학생들이라면 한두번쯤은 겪었을 일이 있다. 국제교류협회에서 조직한 만찬회에서 만난, 매사에 적극적인 류학생과 친절한 일본인이 근 두시간 정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일본인이 말했다. “기회가 되면 우리 집에 꼭 놀러 오세요.” 너무 기뻤던 류학생...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
  • 2017-11-07
  • 일본의 여러 지역에 많이 분포되여있는 고우반 일본에 와 본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오면 편리한 점이라 할가, 친절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한자대국에서 왔기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자로 된 간판들이 보여서 생소한 감이 어느 정도...
  • 2017-11-02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