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화려한 아나운서에서 소박한 호리원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월3일 15시08분    조회:131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는 박진화는 호리사업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자부심에 차있다.

청춘스타트, 우리네 동산 등 한 시대 청소년들의 성장을 동반했던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인기 프로에서 아나운서(1999-2003)를 맡았던 박진화는 결혼하면서 아나운서라는 화려한 직업을 접고 남편을 따라 타지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이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였고 고향에 돌아와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점점 자신을 깡그리 잊어버리군하였다. 애들마저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허전했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1년에 박진화는 연변주민정국에서 호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어릴적 부터 로인과 애들을 그토록 좋아했고 동정심이 많았던 박진화는 별다른 배척심이 없이 호리원이라는 이 직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육아에 전념하는 동안 공부할 여유가 없었기에 관련 지식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애들이 학교에 가고난 틈, 애들이 자는 틈을 타서 기초지식부터 착실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가면서 공부했던 그는 결국 원하던 일터에 합격되였다.

금방 사업에 참가한 박진화는 경험부족 등으로 일터에서 많은 곤난에 부딪치게 되였다. 특히 사랑만 받던 아나운서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묵묵히 헌신해야만 하는 호리원으로 전환하기에는 결코 쉽지는 않았다.

“5층의 창문유리를 닦게 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높은 곳에서 유리를 닦자니 정말 무서웠습니다.”라고 그는 그때 모습을 회억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서 곱게 자랐던 터라 높은 곳에서 창문을 닦을 일 같은 힘든 일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바닥 청소, 방 청소, 변기 청소 등 가장 어렵고 힘든 일부터 시작했다. 작업복마저 선임들이 두고 간 것을 입고 일했다. 예전의 그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바닥 청소를 하는 젊은 아주머니로 되였다.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 곱게 곱게 키워 놓았더니만 낮에는 변기나 청소하고 저녁이면 힘들어 옷도 벗지 않은채 침대에 쓰려져 자는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속상한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였다.

“왜 그렇게 사니?” 시어머니의 질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택했던 길을 포기 하지 않으려 했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우물도 물이 나올때 까지 파는 성격이라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끝까지 버텼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몰래 와서 보셨다고 하셨어요. 그러다 나중에 제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가족들도 감동받고 저의 의견을 존중할테니 한번 해보라고 지지하였습니다.’박진화의 말이다.

 

가족의 허락을 받은 후 그는 열성을 다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그는 우수한 호리원은 단지 열성 뿐만 아니라 뛰여난 호리기술과 로인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애심이 필요하다는것을 깨닽게 되였다. 그는 자신의 업무면의 부족점을 미봉하기 위해 호리지식을 익혔고 세부적인 동작마저 하나하나 반복적으로 련습하였다. 드디여 그의 변화에 대해 로인들이 만족했고 기타 호리원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호리사업은 고상하면서도 매우 번거롭다. 수력된 기술과 고도의 책임감, 사명감이 필요하다. 5년간 호리사업에 참가하면서 아침 일찍 나가서는 저녁 늦게 들어오는것이 일상이자 습관으로 되였다. 두 자녀의 엄마로서 육아의 중임도 제쳐놓고 일체는 로인들을 위하는 알뜰봉사에 정력을 물부었다.

연변사회복리원에는 고령의 로인들이 많다. 특히 특별호리구에는 치매에 걸렸거나 자립이 불가능한 로인들이 많다.

“늙으면 어린애와 같습니다. 때문에 애들처럼 달래주어야 합니다.”

박진화는 늘 로인들을 제집 식구처럼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대했으며 세심하게 돌보았다.

한번은 치매로 앓고 있는 할머니가 환각으로 부모님이 자기를 보러 왔다고 하면서 꼭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호리원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때 박진화는 할머니의 부모님들이 오는 길에 차가 막혀 좀 늦을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렸다가 내려가자고 하면서 할머니의 정서를 안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안정을 취하는 사이에 할머니의 환각증상이 완화되였고 더 이상 이상한 행동이 생기지 않았다.

어느 한번은 자기 담당구역의 할아버지 한분이 사망되였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눈을 뜬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걸 차마 볼 수 없어 박진화는 자기의 따스한 손을 내밀어 직접 할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렸다.

그래서 로인들은 매사에 세심한 박진화를 늘 “이쁜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다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학교때의 전공이 무용이였던 그는 다년간 갈고 닦은 춤실력으로 사회복리원내 각종 문예활동에서 늘 무용을 선보여 로인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과 각급 령도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고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원에 가입하였으며  2012년에는 특수호리구역의 주임으로 승진하였다. 주임으로 승진하면서 관리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고 압력도 느끼게 되였다.

부임 초기 여러면에서 주는 압력과 그에 대한 질의로 많이 힘들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원망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하면서 점차적으로 주변에서 주는 질의에 대해 회답했고 주변의 지지를 받게 되였다.

관리면에서 그는 인성화 호리를 견지했다. 로인들의 수요와 만족 및 호리원들의 만족을 원칙으로 책임을 세분화했고 봉사의 질을 높였으며 환경을 일층 개선하였다.

호리원들의 업무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문적인 강습을 강화했고 호리원들의 복리대우를 올려주었으며 근무제도를 세워 호리원들의 근무시간을 규범화했고 실제와 결부해 호리하는 과정에 생기는 문제와 대책들을 전수하여 그들의 응변능력과 대처능력을 일층 높였다.

주임으로 승진한지 일년도 안되여 그가 이끈 특수호리구역은 사회복리원 선진집단의 영예를 안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입당한지 2년만인 2016년에는 주민정국의 우수공산당원으로 뽑혀 표창받았다.

매일 하는 일들이 그토록 힘들고 고달팠지만 정연하게 정돈된 호실과 정신상태가 좋아진 로인들을 보노라면 하루의 피곤이 깡그리 사라지군 한다고 말하는 박진화다. 그러면서 그는 로인들에게 건강하고 즐거운 로후를 마련해드리는 것이 자기의 영원한 직책이라고 밝힌다. 

/길림신문 정현관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