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나윤정 기자]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너무 좋다.' 틀린 말이었다. '정말 좋다, 매우 좋다'로 써야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국립국어원이 부정적으로만 사용된 '너무'를 긍정적으로 쓸 수 있게 허용했다. 고백하건대 너무가 긍정에 쓰이든, 부정에 쓰이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부사를 기사에 쓸 일도 별로, 아니 거의 없다(기사체엔 형용사나 부사를 최대한 배제한다). 단지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구어적 표현일 뿐이었다. 말로는 "너무 좋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국립국어원의 발표에 쏟아지는 관심들. '맞춤법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신기하기도 하고 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너무 좋아요'가 넘치는 세상에서 '매우 좋아요' '정말 좋아요'로 고쳐 써야 맞다고 하는 건 '2% 부족한 맛'이었다고나 할까. 일단 국립국어원의 결정에 찬성이다. 이와 더불어 국립국어원은 '이쁘다' '니가'도 표준어로 등재하는 것을 고민 중이란다. 현실과 괴리된 부분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예쁘다' '네가'라고 안 써도 된다니…. 저 깊숙이 꽉 막혀 있던 체증이 단박에 뚫리는 기분! 두팔 벌려 찬성이다. 그런데 '가격이 착하다' '몸매가 착하다'처럼 유행어로 쓰이는 '착하다'까지 표준어로 고민해보겠단다. 좀 성급한 느낌, 뭔가 불편하다.
다른 말은 괜찮은데 유독 ‘착하다’에만 왜 민감하냐고 지적할 수 있겠다. 먼저 ‘가격이 착하다’를 보자. 보통 물건 가격이 쌀 때 착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럼 가격이 낮은 것은 좋은 상품이고, 가격이 높으면 나쁜 상품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몸매가 착하다’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멋진 몸매이니 여러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는 가치판단을 내포하게 되지 않을까. 이는 몸매가 나쁘다 즉, 뚱뚱한 건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정당하게 만들 수 있다.
‘착하다’의 사전적 뜻을 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의미다. 표준어를 정할 때 시대 변화에 맞게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을 유연하게 반영한다는 국립국어원의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이러한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전혀 상관없는 것들과 일부러 연결지어 생각하는 게 올바른 것은 아니지 않나. 유명 광고에 휘둘린 느낌, 어쩔 수 없다.
국립국어원도 나름 입장이 있다. 일단 '착하다'를 검토 대상에 넣은 건 몸매 얘기가 아니라 '가격이 착하다'라는 표현이기 때문에 확대 해석했다는 느낌일 것이다. 또 당장 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검토해보겠다는 정도인데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착하다'가 국립국어원의 취지대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써서 어쩔 수 없이 의미가 굳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너무, 이쁘다, 니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유행어에 지나지 않는데, 당장 저런 용어를 표준어로 지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다. '너무'엔 무디지만 '착하다'엔 날이 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