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두만강기획3]룡가미원이 품은 생태문화의 경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월11일 14시14분    조회:177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두만강은 말한다"-대형계렬보도 3
자연생태와 민족문화생태로 어우러진 룡가미원의 속셈을 읽는다.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한폭의 유화에 담아낸 50대 민족화가 리철호의 작품을 소개하고있는 필충극원장.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한폭의 유화에 담아낸 50대 민족화가 리철호의 작품을 소개하고있는 필충극원장.
연길에서 도문방향으로 옛 국도길을 따라 차를 달리는데 차창밖으로 늦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락엽이 지며 산야가 거칠어가건만 두만강반의 소나무숲은 푸르른 기상으로 더욱 완연하기만 하다.

약 40리 길을 달려 장안진룡가마을구간에 들어서자 《룡가미원》(龙家美圆)이라는 돌간판 하나가 도로변에 번듯하게 서있었다. 이곳이 바로 지난해 중국인류학민족학연구회민족관광전문위원회로부터 동북의 첫 《중국민족문화관광시범건설기지》로 지정된 《중국조선족생태문화원》— 연변룡가미원이다.

선학문(仙鹤门)과 룡두선(龙头船)

 
 

간판앞으로 꺾어들어 작은 목조다리를 건느고 오른쪽으로 휘우듬히 굽어드노라니 이상하리만치 특이한 대문과 마주하게 되였다.
문틀도 없는 대문은 량어구에 어마어마한 돌기둥만 하늘높이 치솟아있고 량기둥에는 나래가 돋혀있었다. 돌기둥의 높이는 9.3메터로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창립을 뜻하고있었다. 량기둥사이로는 푸르른 창공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흰구름 두둥실, 선학이 훨훨 날아예는듯했다. 문은 흔히 봉페된 공간을 뜻하나 대자연과 융합된 선학문은 마주하는이의 상상력을 무한히 동원하고있었다.

대문안으로는 하늘을 향해 건뜻 머리를 치켜든 룡두가 시야에 안겨온다. 거북선을 방불케하는 《룡두선》이 우람하게 자리잡고있었다. 《룡두선》은 문헌에 기재된 조선민족이 숭상하는 토템의 하나인 룡의 머리를 선두로 하고 민족기원을 상징하는 《곰》과 《범》을 태운채 뫼 《산》(山)자를 형상하는 큰 바위를 돛으로 올리고 먼 항행을 하고있는듯하였다.

거룩한 이 《룡두선》을 지켜보며 그 비범한 구상에 대해 다시 한번 음미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열린 미술관 그리고 백년의 정취

 
 

뒤머리를 약간 기른 어딘가 예술가적 끼가 풍기는 세련된 몸가짐의 주인장 필충극원장(71세)은 우리 일행을 반겨주며 우선 미술관쪽으로 안내를 하였다.

《중국조선족력대미술소장품전》이라는 간판을 건 미술관에는 필원장이 몸소 수집 정리한 중국조선족미술가들의 력대작품 200여점이 소장, 전시되여있었다. 워낙 연길시도시건설계획위원회의 책임자로 사업하던 필충극원장은 어린시절부터 미술에 뜻을 둔 분으로서 90년대초 조선족 수부도시인 연길시에 미술관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겨 《연변조선족화원》을 설립하고 이곳 룡가마을에 미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로부터 민간차원으로 조선족미술가들의 력대미술작품을 수집, 정리하였으나 《개인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오해로 작품수집에 어려움을 겪게 되였다. 그러자 그는 연변주정부로부터 비준문건(정함1998년 275호)을 받아쥐고 조선족미술사적체계를 이루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여러 원인으로 화가들의 원작들이 분실되거나 훼손되여 단층이 생기게 되자 그는 원로미술가들을 모시고 원작모사에 달라붙었다. 조선족 제1대 대표적 화가이며 중국미술협회 유일한 조선족리사였던 석희만선생의 50년대 대표작 《로인독보조》(1953년)를 모사하기 위해 림종에 이른 석희만선생을 휠체어에 모시고 미리 구도를 뜬 화판을 가슴앞에 받쳐놓으며 몇번이고 졸도를 하였지만 끝끝내 작품을 마무려냈던것이다.

조선전쟁이라는 이 세계사적, 민족사적 력사사건을 독보조로인들의 굳어진 표정으로 영원히 정착해놓은 이 작품은 석희만화백께서 생전에 손수 원작을 모사해낸것으로서 조선족미술사에서 조선전쟁제재의 공백을 메웠던것이다.

 
 

당년 연변미술계의 유명한 리론저술가 림무웅화백도 말년에 고골두무균괴사병으로 모진 고통에 모대기면서도 필원장의 도움으로 50년대 암석을 뚫어 홍기하수로를 빼는 사회주의건설현장의 열기를 반영한 유화작품 《물》(1958년)을 필사적으로 모사해내였다. 화백은 또 아들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수십년간 이불장뒤에 숨겨두었던 대표작 《밭머리씨름》이며 《봄날의 해란강》과 같은 작품들을 아낌없이 필원장의 앞에 밀어놓았다.

연원갑화가의 유족들도 조선족화가들의 작품전시관을 꾸리려는 필원장의 의지에 감동되여 농궤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고인의 유작 《친근한 사람-주덕해》,《탐구》등 작품을 고스란히 기증하였다.

당년의 정경을 새삼스레 떠올리는 필원장은 《원로화가들의 헌신적인 성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조선족미술사는 이토록 풍부하고 다채롭게 빛을 뿌릴수 있게 되였다.》며 감개무량해한다.

원로미술가들의 유작외에도 70대로부터 30대 현대미술인들의 대표작까지 빠짐없이 전시한 룡가미원은 《중국 55개 소수민족가운데서 력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전하게 집중해놓은 아직까지 한곳뿐》인 미술관이였다. 필원장은 《아무리 귀중한 문화유물일지라도 소장만 하고 전시를 하지 않으면 죽은 무덤이나 다름없다.》며 미술관문을 활짝 열어놓고있었다.

최근에는 또 조선족미술가들의 력대작품을 중심으로 126점의 대표작을 선정하여 《중국조선족력대미술소장품선집》을 출판하였다.

영원한 기억을 위한 로천조각기념관

 
 

미술관을 나서니 그옆으로 푸르른 소나무숲이 우거진 로천조각기념관이 있었다.

《저는 살길을 찾아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온 우리 조선족들에게 땅을 주고 호적을 준 모택동주석을 신처럼 받들어 모시면서 모택동주석조각기념비를 제일 먼저 세웠습니다. 》

필원장이 가리키는 기념비에는 모택동주석의 초상화와 함께 1950년 전국 제1차희곡회보공연회에서 제기한 《백화만발 추진출신》(百花万发 推陈出新)이라는 모택동문예사상이 아로새겨져있었다. 이 문예사상이야말로 문예창작일군들이 가장 생명력이 있는 작품을 창작하는 근본적인 문예방침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이 조각기념관에는 중국돈황고대벽화를 모사한 최초의 화가이며 키즐석굴을 발굴하고 연구한 고고학자, 항일에 앞장선 혁명가로서 20세기 중국의 피카소로 불린 한락연, 중국 신해혁명의 참가자이며 손중산의 절친한 벗으로서 피압박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대동세계를 수립하고 교육구국의 길을 창도한 시인 신규식, 중국 3대 음악가의 한사람이며 인민예술가로서 중국과 조선 두나라의 군가를 창작한 정률성, 불굴의 문학거장 김학철, 중국영화황제 김염 등 우리 민족 문화예술계의 위인들이 조각기념비로 우뚝우뚝 솟아계셨다.

조각기념비에는 위인들의 명예나 지위를 떠나 그들의 인적사항과 명언, 성과들만 수식없이 기록되여있다. 기념비중 정3각을 역으로 아슬아슬하게 세운 김학철문학비, 그가 쓴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는 위대한 명언앞에서 사람들의 발길은 굳어지고 자세 또한 숙연해진다.

필원장은 《수십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평생을 불의에 도전하며 살아온 투사의 삶은 편안할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 진리에 뿌리박은 그 삶은 영원히 넘어지지 않는 지평을 이룹니다.》라고 하며 문학비의 의미를 들려준다.

《우리 세대에 이분들을 기념하지 않으면 조만간에 우리 력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것입니다. 죽기전에 구상했던 모든 작품들을 꼭 완성해야겠는데…》필원장은 어느덧 고해희를 접한 세월에 한스러워하며 어쩔수 없이 조바심을 내비쳤다.

필원장은 자신의 20년간의 모지름에 가까운 노력과 분투, 가족의 헌신적인 지지와 사회 각계의 도움으로 오늘날까지 어렵게 버텨왔으나 지금쯤 한계를 느끼게 되는 시점에서 도문시에서는 도시건설 5개년계획으로 룡가미원의 생태문화건설을 밀고나아가게 된다면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신비를 품은 바가지섬의 전설

 
 

20년전, 필원장이 《연변조선족화원》을 꾸리고 미술가들의 창작기지를 구상하며 이곳을 찾았을 때는 나무 한대 없는 강변 자갈밭이였다.

불도저가 밤낮 없이 움직이며 남쪽강물을 에워내고 뚝을 쌓아 호수를 만들었는데 어느 한밤중에 곬물이 터지며 뚝을 밀어내고 호수를 모래자갈로 메워놓았다. 다시 기초를 다지며 폭 20메터, 길이 240메터의 뚝을 쌓고 바가지형 인공호수를 만들기에 꼬박 3년 세월이 흘렀다.

와중에 상류에서 모래공사가 벌어져 호수에서 노닐던 치어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린근 마을에서 땔나무를 한다며 람벌을 하니 수토류실이 엄중해졌다. 그걸 막자고 교섭하느라니 몸싸움이 벌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필원장은 장안진으로, 도문시로, 연변주 해당 부서로 발이 닳게 뛰여다니며 층층이 문건을 발부받아 12헥타르되는 룡가미원의 사방 2.5킬로메터 지역의 생태환경을 지켜내기에 무진 애를 썼다. 2007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의 문건으로《각급 지도간부들은 정확한 정치업적관을 확립하고 생태환경대가와 경제성장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룡가미원 관리규정 실시조치 첫 조목으로 규명하여 각급 지도간부들이 생태환경보호에 각성하도록 호소하였다.

한편 호수로 둘러싸인 바가지섬에는 적송과 흑송을 s자로 심어 음양구조를 이루고 장백산미인송 몇천그루를 심어 미원전체를 상록원으로 가꾸면서 줄곧 15년간이나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지금 이곳은 온갖 화초며 나무, 열매, 버섯들이 자라고 떠났던 물매미도 찾아들고 씨도 넣치 않은 조개며 새우, 말배까지 번식하는《무릉도원》으로 되였다. 계절 따라 철새들이 날아들며 신비한 자연회귀를 이루고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연생태가 깃든 곳에 창작화실도, 문예리론포럼장도, 조선족백년력사를 담은 벽화실도, 민속박물관도, 생태극장도, 민속음식원도 하나둘 생겨나면서 문화생태의 완벽한 구성을 이루어가고있다.

최근 룡가미원의 바가지섬어구에는 또 이색적인 돌바가지 예술조각품이 하나 새롭게 세워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측백기둥이 량측에서 하늘을 떠받치고있다. 《쪽박 차고 살길을 찾아온 우리 민족, 강산을 담은 돌바가지, 자손만대 대박나며 영원히 흘러흐르라.》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역시 필충극원장의 걸작이였다.

 
 

미술가, 조각가, 설계사로 활약해온 필충극원장은 자신의 모든 창작의 주선률은 《자애와 존엄을 후세에 전하고 중화를 떨치며 세상을 거닐자.》(熊慈虎威传后世, 弘扬中华游五洲)’ 라고 한다. 그는 《문화의 가치는 절대로 돈으로 계산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은 무조건 투자를 해야 하고 또 희생을 안받침해야 한다.》며 그 실천궁행(实践躬行)의 리유를 밝힌다.

투철한 민족의식과 력사적 책임감, 탁월한 예술재능으로 일떠세운 룡가미원의 진정한 문화함의를 읽을수 있는 또 하나의 대목이 있다. 룡가미원 건원 10돐을 맞으며 세운 기념비 비문에는 《룡가미원의 속셈》이 조한문으로 뚜렷하게 새겨져있었다. 그 《속셈》을 읽어내려가던 필자는 그만 이름할수 없는 감동에 눈시울을 붉히고말았다.

《한세기에 거쳐 우리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창립과 건설을 위해 갖은 피땀을 흘렸으며 심지어 아까운 생명까지 바쳐오면서 빛나는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피눈물로 얼굴진 투쟁의 력사속에서 그리고 미래로 향한 진실한 현실속에서 민족주체의식과 문화의식에 모박아가며 중국조선족문화권을 이뤄간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양한 민족문화의 다원공존의 시기에 전통에 뿌리박고 자연의 세례를 받으면서 자기 몰골을 뽐내가는 영원한 문화생태존재로 남으려 함이 룡가미원의 속셈이다….》
 
길림신문

 
Total : 1576
  •   일전에 유엔교과문조직(联合国教科文组织)과 중국민속촬영협회 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제8기 국제민속촬영“인류공헌상” 년콩클(第八届国际民俗摄影人类贡献奖年赛)에서 료녕성조선족촬영가 리윤선의 “동북조선족전통기와집 및 와당”이 건축문화류 기록상을, 단동 강영철의 “농가주...
  • 2013-11-20
  •                                 지난 11월 15일 오후 3시 30분, 연변대학 미술학원 그림전시실에서는 서룡길교수의 제3회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자전거와 인간의 삶, 그리고 예술작품의 만남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는 중요한 시각이다...
  • 2013-11-19
  •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녀성사업위원회는 지난 11월 15일 오후,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서 우리 민족문화체험활동을 다채롭게 벌렸다. 체험활동에 참여한 10여명의 회원들은 《민족전통문화를 계승하며 민족특색학교를 꾸려가는》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학교운영경험소개를 청취하였으며 ...
  • 2013-11-18
  • 널뛰기,그네 등 전통체육인재 유실 양성 저조,축구 하강선 그어 우려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단결사업성과가 시종 전국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14일에 있은 “길림성민족단결진보사업현장회”에서 밝혀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설립(1952년 9월 3일...
  • 2013-11-16
  • 민간예인 박경훈과 그의 십자수 작품   반년의 시간을 들여 수놓은   십자수   수놓이 하면 보통 부녀들의 섬세한 손재간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한족전통십자수나 조선족자수와도 차별화된 조선족특색 십자수를 개발한 남성이 있습니다. 박경훈은 일찍 중국전통매듭공예를 도입해 조선족특색 색실공예품을 ...
  • 2013-11-15
  •   안도현 내두산촌의 가을빛 전경.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대륙에 천입한 민족으로 강의 애환을 담고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유명한 가곡 “눈물 젖은 두만강”이 있고 조선족의 이민사를 담은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이 있다. 그러나 강을...
  • 2013-11-15
  • 한국에서 열린 2013년 추계 세계한인언론인대회 참가차로 7일, 기자는 경기도 양평군 마을 곳곳에서 소설 “소나기”의 흔적과 소설가 황순원의 삶을 엿볼수 있는 “소나기 마을"에 다녀올 행운을 갖게 되였다.…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표지가 있는 주차장을 지나 문학관앞에 이르니 소나기...
  • 2013-11-15
  • 사물놀이는 마을 단위의 공동로동조직이던 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놀이이자 축제다. 이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은 묵은 원을 풀고 더불어 하나되는 공동체 정신을 길러왔다.   징-사물놀이에서의 징은 긴 울림으로 하여 바람에 비유되면서 장단 전체를 감싸준다.   꽹가리-가장 작지만 소리의 기운이 가장 센 사물악...
  • 2013-11-15
  •   리영실PD(오른쪽)와 김홍화 아나운서(왼쪽)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리영실PD와 김홍화 아나운서가 제작한 《산동의 꿈은 계속된다》가 12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KBS서울프라이즈 경연대회”우수상을 수여받았다. 2013년11월12일, 한국KBS에서 주최한 “KBS서울프라이즈 경연대회”가 한국방...
  • 2013-11-15
  • 미국 우주항공역에서 찍은 천지와 장백산맥   사시장철 흰 비단필을 드리운 장백폭포--고도 68메터   백두봉 남쪽기슭의 대협곡--압록강 발원지 "압록"이란 말은 만족어인데 "땅의 변두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어에서의 해석은 다르다. 한자 그대로의 해석에 따르면 鸭绿江은 물빛이 맑고 푸르기를 오리의 청록...
  • 2013-11-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