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구술82]은사 오봉협선생님을 그리며(박문일편5)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25일 20시42분    조회:91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82](박문일편5)

저는 지금 은사님 오봉협선생님에 대해 평전을 쓰고 있습니다. 오봉협선생님은 몸이 불편해 4년 남짓한 시간밖에 학교에 계시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서술한바와 같이 오봉협선생님은 연변대학 건교초기 57명 선생님 가운데 이름난 한분이십니다.

오봉협선생님은 1949년 4월에 학교가 개학한 다음 한달 후에 력사지리학과의 주임으로 임명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50년 1월에 특공상을 받은 분이십니다. 1952년 11월에 부교수로 승진했습니다. 오봉협선생님은 비록 학교에 계신 기한은 짧았지만 학교력사에 남긴 (그의)업적은 정말 풍부합니다.

젊은 시절의 오봉협선생.

오봉협선생님의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진정한 인생관을 수립하기에 몰두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가운데 다음과 같은 명언이 있습니다. 자기를 평가하건대 “나의 머리는 낡은 물건의 쓰레기통이다.” 머리에 낡은 물건이 가득 들어있는 쓰레기장과도 같은 것이라는거지요. 당시 사상개조 운동시기에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기 대단히 어렵다는거지요. 그래서 그 분은 전교에서 사상개조로 이름난 한분으로 되였지요. 머리가 쓰레기통인데 이걸 어떻게 하나 철저하게 청소를 해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사상개조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늘 “반드시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으로 무장해야 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에게는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무장하는 것을 생활화하고 취미화하고 모주석의 <실천론>을 잘 학습하여 실천에 옮겨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늘 “나는 앞으로 10년간 침묵을 지키고 말을 적게 하고 사상개조에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사회와 낡은 사회를 비교하는 문제에 대해 아주 중시를 돌렸습니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를 비교하는 것과 사회주의사회와 자본주의사회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 아주 중시를 돌렸습니다. 1952년도에 김시룡이 국가의 파견으로 쏘련에 방문을 갔다왔습니다. 쏘련에 갔다왔다는 소식을 알고 학교에서는 그 분을 학교에 모셔 쏘련 방문보고를 들었습니다. 그 때 오봉협선생이 보고회 장소의 앞자리에 앉아 필기장에 그 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다 적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사회주의의 우월성은 이렇구나,그렇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나라간의 상황차이는 어떤가? 제국주의의 정황은 어떤가? 이를 위해 오봉협선생님은 일본에 대한 사회조사를 여러 방면을 통해서 하고 미국에 대한 정황도 여러 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례를 든다면 미국 련방조사국의 보도자료를 찾아냈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것이 미국의 1952년 상반년 전국에 엄중한 범죄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필기장에 잘 기록해 놓았습니다. 수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면 12만 2310명이였습니다. 그리고 중대한 구타사건이 6분12초에 한차례씩 나온다, 그리고 강간사건이 36분에 1차씩 나왔다고 조사했습니다. 이 수자가 무엇을 설명하는가? 미제국주의의 암흑면을 말해준다는 것이지요. 조사를 하고 국내와 비교를 하면서 늘 자기 사상개조에 게을리 하지 않았지요. 이게 바로 은사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준 첫째로 되는 주요한 정신입니다.

50년대 연변대학 재직시절의 오봉협선생.

선생님은 늘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으로 꼭 무장해야 된다고 말했지요. 꼭 나를 비롯해서 너희들이 생활화하고 취미화 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두번째로는 은사님이 력사교수이신데 자기 전업, 력사에 대해 몹시 중시하고 력사를 거울로 삼고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몇년전에 “거울로 삼고 봐야 한다”는 것을 중앙에서 제출했지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때 우리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력사라는 것은 거울이다. 중국의 력사라는 이 거울을 우리가 잘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우량한 전통과 정신은 꼭 계승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사실 교육개혁에서의 선두자로 나섰습니다. 자기의 사상을 개조하는데서의 선두자로 나섰을 뿐만 아니라 교수면에서, 개혁면에서 도 선두자로 나섰던 것입니다. 그 분의 일기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명예, 체면, 형식을 버리고 오직 진실하게 교수를 하겠다.” 교수할 때 그는 맑스-레닌주의 리론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늘 우리에게 맑스-레닌주의 리론을 잘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력사연구에서 력사에만 국한하지 말고 련관되는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면서 학과와 학과간의 련계성에 대해 몹시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력사에 대해 특히 력사리론에 대해 아주 큰 중시를 돌렸습니다.

연변대학의 첫 론문, 오봉협선생의 론문 <한글하도기원론>이 실린교육통신》잡지.

세번째로 우리들에게 남긴 인상이라면 지식탐구의 모범입니다. 그 분은 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책에 깔리우고 책에 숨어서 진리를 알려고 한다. 책귀신이 꼭 되겠다…” 솔직히 말하면 오봉협선생님은 연변대학에서 지시탐구의 모범으로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자기 수준을 낮추 평가했지요. “나는 지금 당신들에게 중국력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중국력사를 지금 밭갈이 하고 있는 중이다.”고 했습니다. 밭갈이하면 곡식이 자랍니다. 그 다음 열매를 맺은 다음 가을에 걷어들이고 마당질까지 해야 하지요. 농사의 제일 첫 시작이 밭갈이지요. 은사님은 “마당질까지 하려고 하면 적어도 10년은 걸려야 할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ㅏ. 이 말씀은 학생들에게 많은 계발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10년, 30년 계획을 세우고 우선 앞으로 10년사이에 1200부의 책을 꼭 필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오봉협선생님은 중병에 걸려 연변병원에 입원하게 되였습니다. 병원을 가면서 책을 가득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 분은 치료를 하면서 책을 보았는데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책을 볼 때는 아픈줄을 모르겠다.” 책을 보면 통증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하면서 그냥 책을 보았습니다. 오봉협선생님은 “시간을 깎아서 써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특히 계발이 큰 것은 “우리가 책을 읽을 때 한책에만 몰두해서는 안된다.”그러니까 무조건 그 책의 내용을 몽땅 머리속에 넣어야 한다는것이 아니지요. 우리 왕왕 젊었을 때 책들을 보면 그저 단지 그걸 가지고 얘기를 하는 데 이걸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분석의 정신으로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1940년 만선일보 재직시절의 오봉협(뒤줄 왼쪽 네번째).

은사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인민의 벗이 되라, 인민이 부르는 곳에 가서 일을 잘하라, 바르게 가르치라”고. 이 말은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요. 학술에 대한 교육 뿐만 아니라 넓은 범위에서의 사상에 대한 교육, 인생철학에 대한 교육, 이러한 것이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습니다.

은사님은 례절에 대한 교육도 항상 중시했습니다. 오봉협선생님의 집이 공원다리를 지나서 서시장부근에 있었는데 학교에서 점심이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삼복지간에 길 앞뒤쪽은 모두 민가인데 적지 않은 집들에서는 모두 문을 열어놓고 삼복지간에 식사하고 쉬느라고 누워있군 했습니다. 어떻게 누웠는가 하면 다리를 밖에 내놓고 머리를 집안에 둔채로 누워서 잡니다. 은사님은 우리를 보고 “이렇게 휴식하는 것이 례절에 맞는가 안 맞는가?”고 물어 봅니다. “두다리를 손님들이 지나가는 밖에 펴놓고 누워있는데 이건 례절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을 가지고도 우리 학생들을 교육하느라고 애을 썼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놀라울 지경이였습니다. 선생님의 집에서 위생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빠른 길로 가면 100메터, 먼길로 가면 400메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봉협선생님은 항상 짧고 빠른 길로 위생실을 가는 것이 아니라 먼길을 통해서 가군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가요? 그 100메터 가까운 길에는 풀들이 많았지요. 그 풀들을 자주 밟고 가면 그 풀들이 제대로 자랄수 없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그걸 디디면 그 풀과 함께 공존하는 곤충의 생명을 끊어버릴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00메터 짧은 길을 안가고 멀리 돌아서 다녔습니다. 이렇게 은사님은 생명철학에 대해 몹시 중시하는 분이였습니다.

오봉협선생이 남긴 유서.

우리 동창생들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종생 머리를 숙여서 숭배하는 은사님”이라고 얘기들 합니다. 그런데 오봉협선생님이 우리들에 대한 부탁은 “너희들과 나는 늘 만나고 인사도 이제는 한두번이 아니다. 때문에 될수록이면 특수한 정황이 없으면 나와 만나서 인사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왜서 이렇게 말슴하셨냐하면 내 머리속에서 늘 생각하는 사유가 정지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책을 보면 볼 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본 다음에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꾸만 나를 보고 인사를 하면 “오-오”하고 대답하느라면 생각하던 것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있는 후배가운데 지금 년세가 제일 높은 분이 박진석교수인데 95세입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에게 인사를 하게 된다. 우물을 파느라고 고생했다고 … 우리 어떻게 하나 오봉협은사님을 잊지 말자, 그 정신을 잘 계승해 나가자”고 합니다. 이것은 박진석교수 한사람의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오봉협교수님은 연변대학에서 이름난 교수로 계셨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안상근

사진 동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파일 [ 1 ]

Total : 1576
  •   일전에 유엔교과문조직(联合国教科文组织)과 중국민속촬영협회 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제8기 국제민속촬영“인류공헌상” 년콩클(第八届国际民俗摄影人类贡献奖年赛)에서 료녕성조선족촬영가 리윤선의 “동북조선족전통기와집 및 와당”이 건축문화류 기록상을, 단동 강영철의 “농가주...
  • 2013-11-20
  •                                 지난 11월 15일 오후 3시 30분, 연변대학 미술학원 그림전시실에서는 서룡길교수의 제3회 그림전시회가 열렸다. 자전거와 인간의 삶, 그리고 예술작품의 만남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는 중요한 시각이다...
  • 2013-11-19
  •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녀성사업위원회는 지난 11월 15일 오후,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서 우리 민족문화체험활동을 다채롭게 벌렸다. 체험활동에 참여한 10여명의 회원들은 《민족전통문화를 계승하며 민족특색학교를 꾸려가는》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백정숙교장의 학교운영경험소개를 청취하였으며 ...
  • 2013-11-18
  • 널뛰기,그네 등 전통체육인재 유실 양성 저조,축구 하강선 그어 우려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단결사업성과가 시종 전국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14일에 있은 “길림성민족단결진보사업현장회”에서 밝혀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설립(1952년 9월 3일...
  • 2013-11-16
  • 민간예인 박경훈과 그의 십자수 작품   반년의 시간을 들여 수놓은   십자수   수놓이 하면 보통 부녀들의 섬세한 손재간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한족전통십자수나 조선족자수와도 차별화된 조선족특색 십자수를 개발한 남성이 있습니다. 박경훈은 일찍 중국전통매듭공예를 도입해 조선족특색 색실공예품을 ...
  • 2013-11-15
  •   안도현 내두산촌의 가을빛 전경.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대륙에 천입한 민족으로 강의 애환을 담고있는 민족이다. 그래서 유명한 가곡 “눈물 젖은 두만강”이 있고 조선족의 이민사를 담은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이 있다. 그러나 강을...
  • 2013-11-15
  • 한국에서 열린 2013년 추계 세계한인언론인대회 참가차로 7일, 기자는 경기도 양평군 마을 곳곳에서 소설 “소나기”의 흔적과 소설가 황순원의 삶을 엿볼수 있는 “소나기 마을"에 다녀올 행운을 갖게 되였다.…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표지가 있는 주차장을 지나 문학관앞에 이르니 소나기...
  • 2013-11-15
  • 사물놀이는 마을 단위의 공동로동조직이던 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놀이이자 축제다. 이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은 묵은 원을 풀고 더불어 하나되는 공동체 정신을 길러왔다.   징-사물놀이에서의 징은 긴 울림으로 하여 바람에 비유되면서 장단 전체를 감싸준다.   꽹가리-가장 작지만 소리의 기운이 가장 센 사물악...
  • 2013-11-15
  •   리영실PD(오른쪽)와 김홍화 아나운서(왼쪽)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리영실PD와 김홍화 아나운서가 제작한 《산동의 꿈은 계속된다》가 12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KBS서울프라이즈 경연대회”우수상을 수여받았다. 2013년11월12일, 한국KBS에서 주최한 “KBS서울프라이즈 경연대회”가 한국방...
  • 2013-11-15
  • 미국 우주항공역에서 찍은 천지와 장백산맥   사시장철 흰 비단필을 드리운 장백폭포--고도 68메터   백두봉 남쪽기슭의 대협곡--압록강 발원지 "압록"이란 말은 만족어인데 "땅의 변두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어에서의 해석은 다르다. 한자 그대로의 해석에 따르면 鸭绿江은 물빛이 맑고 푸르기를 오리의 청록...
  • 2013-11-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