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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증서’에 깃든 문화교육 지향의 력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8월4일 23시29분    조회: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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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연변70성상]
 
‘식자증서'

가끔 주말이면 돌아보군 하는 연길고물시장가게에서 ‘식자증서'라는 다소 특이한 문화유물을 만났다. 1956년 10월18일에 리옥선이라는 사람한테 발급한 것이였다. 증서에는 연길현 지신향인민위원회 공인과 함께 교장 강희종의 성명과 인감이 찍혀져 있었다. 내용을 보니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현 지신향의 리옥선 학원이 문맹퇴치 단계의 과정을 전부 학습하였고 성적이 합격되였기에 졸업함을 증명함”이라고 적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는 일종 졸업증명서인셈이였다. 말 그대로 식자, 즉 글을 익혔다고 하는 증명서였다.

운 좋게도 마침 이날 지난 50년대 전국적으로 세차게 불어친 문맹퇴치운동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70대의 로인 한분을 만났다. 로인은 궁금했던 그 시절 력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

문맹퇴치운동시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 들려주는 리희윤(79세)로인

당시 화룡현 용화구 광흥촌(현 화룡시 남평진 흥화촌)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는 리희윤(79세)로인은 어제일처럼 그 시절 추억을 생생히 떠올리였다. 1950년대 중반쯤이였던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열서너살밖에 안되였던 리희윤도 학교의 포치에 따라 문맹퇴치운동중에서 한 마을에 살고있는 친척아주머니를 책임지고 배워줄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해방후 우리 나라의 인구는 5억 5,000만명이였는데 문맹률은 무려 80%에 달했다. 열에 여덟명은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문맹인셈이였다. 문맹은 당시 새 중국의 발전을 엄중히 저애했고 또 정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급한 난제였는바 새 중국의 성립과 함께 성세호대한 문맹퇴치운동이 전국적인 범위에서 폭넓게 펼쳐졌다. 문맹퇴치반은 공장, 농촌, 부대, 가두 등 전국의 방방곡곡에 우후죽순마냥 세워 졌으며 사람들이 문화를 배우는 열정도 전에 없이 고조되였다.

50년대 조선어를 배우고있는 녀성들

“보통 마을사람들이 낮에는 생산로동에 종사하고 저녁이면 등잔불아래에서 식자공부를 하였는데 마을에 배워줘야 할 사람은 많고 소학교 교육이라도 받은, 글귀나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아직 소학교 3,4학년밖에 안된 저같은 소학생들도 문맹퇴치운동에서 임무를 맡게 되였던 거지요” 리희윤로인의 해석이였다.

1952년 우리 나라에서는 제1차 대규모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시작했으며 1956년에 주은래 총리가 전국인민들에게 ‘현대과학문화를 향해 진군할 것'을 호소하면서 두번째 문맹퇴치 운동이 또다시 고조되였다.

전국의 문맹퇴치호소에 발 맞추어 연변에서도 성세호대한 문맹퇴치 열조가 일어났다.

《연변조선족교육사》의 기록에 따르면 1955년 겨울과 1956년 봄에 연변지구에서는 농업합작화가 실현되였는데 이 같은 형세하에서 중공 연변주위에서는 10만명의 학생에 1만명의 교원이 성인교육에 투입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광범한 로동자, 농민들은 이에 호응하여 문화지식학습의 새 고조를 일으 켰는데 당시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전주적으로 문화지식학습에 참가한 문맹과 반문맹은 무려 11만명이 넘었고 군중교원은 1만 101명이였는바 당해에 1만 5,400여명의 문맹을 퇴치하여 청년들가운데의 문맹은 기본적으로 퇴치되였다.

나머지 장년들중의 문맹은 대다수가 경상적으로 부업하러 외출하는 남성들과 가정부담이 많아 가정을 떠날 수 없는 다자녀 녀성들이였는데 이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청년 한사람이 문맹 한사람씩 책임지는 방법으로 1년간 노력하여 1957년 가을에 전주 장년들가운데서도 기본상 문맹을 퇴치하였다.

50년대 식자공부를 하고있는 연변지역 농민들/자료사진

“당시 농촌녀성들 가운데 특히 문맹이 많았는데 낮에는 힘들게 일하느라 피곤하고 또 애들도 딸려 있어 힘들었지요. 그러나 정작 글을 배워주러 가게 되면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고 애기를 안고서도 글을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했지요” 리희윤로인은 추억을 더음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지식분자들의 지위가 매우 높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웃옷 호주머니에 만년필이라도 하나 차고 다니면 그것이 바로 문화의 상징이였고 모두들 우러러 보는 지식인의 형상이였지요.” 그만큼 지식을 숭상하고 교육을 지향하는 사회분위기가 점차 형성되였다는 것이다. 어렸을때 농촌마을 항간에서 자식들이 공부를 싫어하고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면 ‘소궁둥이나 두드릴 놈'으로 많이 비유되였는데 공부를 안하면 힘든 농사일 외엔 별로 출세할 희망이나 전도가 없다는 뜻으로 리해되였다. 이것이 바로 집에서 키우던 전 재산인 소를 팔면서라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식공부 시켰던 우리 민족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향과 중시를 보여준다.

연변의 문맹퇴치가 전국적으로도 앞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각급 당위에서 고도로 중시하고 책임자가 직접 앞장서 지도한 등 경험이 중요했다.

자료에 따르면 1952년 11월에 연변에서 문맹퇴치운동위원회가 결성되였는데 주덕해 주장이 주임위원을 맡았으며 문맹퇴치운동 조직기구는 자치주로부터 각 향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다 조직되였다. ‘식자증서'에 찍힌 연길현 지신향인민위원회의 공인이 바로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연변의 문맹퇴치사업은 문화교육사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건설의 잠재적 원동력과 민족자질제고의 유력한 조치로 간주되면서 큰 중시를 받았는데 1957년도에 나온 중공연변주위의 결정에는 “각급 당위에서는 생산과 학습을 함께 틀어 쥠으로써 생산과 학습의 두 면에서 다 풍수를 거두어야 한다”고 적고 있었다.

연변에서는 맨 먼저 간부와 당원, 공청단원들중의 문맹을 퇴치하고 다음으로 청년들가운데의 문맹을 퇴치하고 나중에 장년들중의 문맹을 퇴치하는 절차를 취하였다. 년세가 많아 글을 배울  수 없는 로인들은 독보조를 조직하여 국내외의 형세, 당의 방침과 정책, 생산경험과 생활지식 등을 학습시키였다. 연변은 1957년도에 ‘전국에서 문맹이 기본적으로 퇴치된 첫 자치주'로 되면서 조선족 역시 문화자질이 높고 교육열이 높은 민족으로 이름났다.

1958년도에 연길현 동성향 려명농업사 영성작업구의 최룡진(77세)로인과 김병옥(78세)로인이 장기적인 문화학습으로 《연변일보》를 읽을수 있게 되였다는 내용을 담은 촬영보도가 신화사에 발표되기도 했다.

 
1958년도에 신화사에서 발표한 촬영보도 사진

식자교육단계를 넘은 뒤에는 로동공수기록, 간단한 회의기록 통속적인 신문기사 등 응용문 읽기와 쓰기 등으로 학생들의 학습흥취가 날따라 짙어졌고 학습열정도 더욱 높아졌다. 자료에 따르면 문맹을 퇴치한 후에 조선족청년들은 한어를 겸하여 학습 할 요구를 제기하였는데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위원회에서는 조선족과 한족 과외문화학교들에서 조선어와 한어를 겸하여 학습하는 것을 제창했으며 이로하여 조선족과 한족간부 및 군중들이 생산과 생활가운데서 서로 돕고 따라 배우는 새로운 기상이 나타났다.

자치주성립 70년, 연변의 발전변화는 한마디로 다 말할수 없이 너무 거창하고 화려하다. 물론 지금은 당과 정부의 따뜻한 혜택하에 전국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문맹이라는 단어 자체는 이젠 거의 자취를 감춰 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새 중국의 창건과 함께 한시기 수많은 사람들을 영향주면서 성세호대한 운동으로 남겨진 문맹퇴치의 력사는 문화와 교육에 대한 지향과 발전의 력사를 담고 있어 다시금 돌아볼 의미가 있다.

그때 농민들이 글을 배운후 단지 장부나 기입하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편지라도 쓸수있게 되였던 것이 문맹퇴치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아니였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식에 대한 존중과 문화에 대한 지향, 그리고 문화의 습득과 깨우침이 가져다 준 거대한 사회적 문명과 변화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세대에 이루지 못했던 교육의 희망을 후대에 기탁하고 이루어낸 우리 민족의 전국적으로도 으뜸가는 교육열과 자랑찬 성과들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비록 한장의 작고 낡아빠진 평범한 ‘식자증서'이지만 그것이 담고있는 우리 민족 력사의 문화교육적인 지향과 함의는 엄청난 긍정적 에네지로 이어질만하다.

“광흥촌은 화룡시에서도 80리나 떨어진 심심산골에 위치했지만 자치주 창립초기는 물론 개혁개방후에도 적잖은 대학생들이 나왔지요” 리희윤 로인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애쓴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평생 시골에서 살아온 리희윤로인 역시 아들을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워냈고 지금은 출세한 아들덕에 도시에서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면서 밝게 웃어 보였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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