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정률성의 절친한 낚시친구이고 중국가사계 태두로 불리는 교우를 인터뷰
정률성의 일생을 재현한 《정률성평전》이 정률성 탄생 100돐 되는 올해에 뜻깊게 출간됐다. 2011년에 벌써 정률성의 평전을 집필하고있다는 소식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리혜선작가는 책이 출간되면 그때 만나자고 미루었었다.
그리고 얼마전 《정률성평전》출판기념좌담회가 장춘시에서 개최된후 8월 29일 약속대로 리혜선작가를 만날수 있었다.
평전은 리혜선작가가 2008년에 준비를 시작해서 6년만에 완성한것으로 민족출판사와 연변인민출판사에서 공동으로 펴냈다. 거의 동시에 중문판도 번역, 출간됐다.
1986년, 정률성작품음악회가 연길에서 개최됐을 때 리혜선작가는 길림신문사 기자였다. 25년후 자신이 정률성의 평전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녀가 어느날 문득 강렬하게 정률성에 관한 책을 쓰고싶었던것은 순전히 정률성에 관한 전기가 중국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기때문이다.
정률성은 1938년 연안에서 “팔로군행진곡”을 창작, 새 중국 창건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명명됐다. 광복후 조선에 거주하던 시절 정률성은 또 “조선인민군 군가”를 창작했다. 이같이 한 사람이 두 나라의 군가를 창작한것은 류례없는 일이다.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작가는 2008년 2월에 무작정 정률성의 고향인 한국 광주로 떠났다. 전날 작가는 꿈에서 하얀 꽃이 가득 핀 밤나무를 보았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것이 막연했다. 하지만 2009년 정률성평전 집필이 중국작가협회 2009년 중점지원작품, 길림성정부 중점지원작품에 선정되면서 일부 취재경비가 조달돼 평전집필에 뒤받침이 생겼다. 장도취재길에 낯선 곳에서 새벽택시를 타면서도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던것은 정률성이라는 거목이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했기때문이다.
작가는 집필과정중에 정률성의 고향인 한국 광주를 2차 방문하고 그의 항일발자취가 남아있는 상해, 남경, 서안, 연안, 태항산을 답사했으며 정률성의 가족, 음악동료들과 친구들을 만나고저 북경, 할빈, 심양 등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1930년대 항일구국 가송운동의 앞장에 섰던 원 중앙선전부 부부장인 주위치와 원 중국음악가협회 부주석인 손신, 연안시기 정률성의 제자이자 원 중앙가무단의 부단장이였던 맹우, 정률성의 동료이고 원 중앙악단 단장이며 중국 최고 지휘가인 엄량곤, 원 중국가극무극원 원장이자 가사계 태두인 교우, 중앙음악학원의 량무춘교수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정률성의 부인이고 주은래의 비서였으며 녀성으로서 중화인민공화국 첫 대사로 있었던 정설송, 정률성의 딸이고 바로크합창단 단장인 정소제, 한국에 있는 정률성 누님의 딸, 형님의 손자 등 가족도 모두 만나보았다.
정률성본인의 서술과 부인의 서술로 된 가족사와 리혜선작가가 발굴한 한국신문자료와 일본인들의 공문서로 증명이 되였을 때, 수많은 자료들을 력사의 현장에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재구성해 정률성의 고뇌와 슬픔과 부끄러움과 기쁨이 어린 인생려정과 추구를 독자들에게 보여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기쁨은 작가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였다.
그렇게 하얀꽃이 울창한 한그루의 밤나무가 완성되였다. 리혜선작가는 미흡한 부분이 많을테지만 《정률성평전》이 정률성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기만을 바랄뿐이다.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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