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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원숭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6월5일 07시50분    조회: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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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부록 작가
그림 이부록 작가
[매거진 esc] 김연수의 ‘소년이로다’
70년대 추풍령휴게소 동물원 원숭이는 왜 ‘타잔’의 치타처럼 다정하지 않았을까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된 뒤 제일 먼저 건설한 휴게소는 추풍령휴게소였다. 왜 여기에다 휴게소를 만들었을까? 공식적으로는 총 428㎞의 중간 지점인 214㎞ 지점이기 때문이라는 안내가 있지만, 내가 태어난 동네의 설명은 다르다. 김천시 홈페이지를 따르면, “광천 1리 추풍령휴게소가 있는 곳은 <정각록> 비결에서 백년 뒤에는 뭇사람이 모여 논다는 곳으로 예언하여 다락곡(多樂谷)이라 했는데, 과연 고속도로 휴게소가 되었다 한다.” 어떤 신문에서는 휴게소 변천사를 다루며 1990년대 이전까지 휴게소는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 만한 곳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이 예언을 소개하던데, 그러면 곤란하다. 이 예언은 내가 꼬마였을 때 이미 다 이뤄져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 꽃그늘 아래가 놀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추풍령휴게소로 뭇사람을 끌어들인 데에는 벚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동물원이 큰 역할을 했다. 국가기록원에 보관중인 1974년 대통령비서실의 ‘소동물원 개원보고(추풍령휴게소 지역)’를 보면, 휴게소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볼거리 공간을 조성하고자 1973년 12월에 완공한 뒤 이듬해 110마리의 동물을 구입과 기증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또한 동물의 종류는 원숭이와 사슴 등 전체 16종으로 구성됐으며, 1974년 4월부터 6월까지 관람자 현황은 2만3400명으로 1일 평균 390명이었다고 돼 있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에 나오는 원숭이가 바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원숭이가 아닐까? 내가 추풍령휴게소에 가서 원숭이를 직접 본 건 1970년대 중후반이니까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다. 나는 이 원숭이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다.

 

내가 유인원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티브이 드라마 <타잔> 때문이었다. 타잔의 옆에는 늘 치타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붙어 다녔다. “왜 제인이 아니고 치타인가?” 그런 의문을 느낄 법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치타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치타는 상당히 인간적인 침팬지였다. 예컨대 타잔과 제인이 키스라도 할라치면 두 손으로 눈을 가리는 센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추풍령휴게소에 원숭이를 구경하러 갈 때에는 치타와 같은 재주를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연예인을 직접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환호했다. 내 생각대로라면 그 원숭이는 치타처럼 팔을 아래위로 흔들며 손뼉이라도 쳤어야만 했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처마 끝에 앉은 원숭이가 보였다
그 원숭이는 가만히 앉아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호응은 없었다. 티브이 속 인간적인 치타와 달리 그 원숭이는 동물적이었다. 우리 안을 뛰어다니며 깍깍대며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욱 험악해 보였다. 철창 사이로 새우깡을 건네주던 아이들은 그러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어떤 여자애가 선의로 과자를 내밀었다가 원숭이한테 엄지손톱을 뽑혀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원숭이는 오전부터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해대는 동네 아저씨와 비슷했다. 그 시절에 그런 사람은 근대화에 역행하는 사회악이었다. 그런 구폐를 없애려면 강력한 정신교육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다. 훈련을 받으면 치타처럼 티브이에도 출연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추풍령휴게소의 철창에 갇혀 아이들의 조롱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험악한 원숭이와 절대로 꼬리를 펼치지 않는 공작에 실망해서 동물원을 나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인터체인지를 형상화한 경부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 나왔다. 거기에는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 통일에의 길이다’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져 있었다. 이 ‘근대화의 길’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기념탑에 새겨진 이은상의 ‘고속도로의 노래’를 참조하면 된다. “세기를 앞당기는 고속도로/ 빛을 향해 달리는 우리 행진/ 뒷날의 역사는 증언하리/ 나약과 빈곤을 불사르고/ 고난과 시련을 이겼다고/ 달려라 승리의 길/ 달려라 통일의 길/ 역사를 창조하는 고속도로.” 즉 ‘조국 근대화의 길’이란 승리의 길, 그리하여 역사를 창조하는 길인 셈이다.

 

“왜 치타는 그토록 타잔에게 복종적이었는가?”를 내가 마침내 이해하게 된 건 영문학과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공부할 때였다. 그 수업에서 나는 그토록 다정했던 프라이디가 길들여진 식민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릴 때 즐겨 읽었던 소설인지라 그런 식의 분석에 바로 반감이 들었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늘 로빈슨 크루소와 동일시했지, 단 한 번도 내가 프라이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황인종이라면 프라이디에 더 가까울 텐데 말이다. 그건 ‘타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에 비하면 타잔과 로빈슨 크루소는 이성을 이용해서 고난을 이겨내고 자연을 정복한다. 그것이 바로 승리의 길, 역사를 창조하는 길, 그러니까 근대화의 길일 것이다.

 

2004년, <밤은 노래한다>라는 장편소설을 쓰려고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내가 쓰려는 소설 속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 소비에트를 결성한 공산주의자들이 서로를 일본군의 첩자라고 지목하며 죽이고 있었다. 심한 고문에도 끝까지 부인하면 그처럼 독하니 일본군의 첩자가 맞다고 했고, 살고 싶어서 인정하면 그러니까 일본군의 첩자가 맞다고 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브라이언은 손가락 네 개를 들어 보이며 윈스턴 스미스가 그게 다섯 개라는 걸 말하라고 고문하는데 그건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다. 실제로 다섯 개로 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가진 인간이 네 개를 다섯 개로 볼 수 있을까, 싶지만 내가 소설로 쓰려고 했던 민생단 사건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거기에 이미 답이 있었다.

 

그렇게 소설 쓰느라 밤을 꼬박 지새운 다음날 새벽, 창문을 열어보니 연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머리라도 식히고 싶어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숙소인 연변대학교에서 시내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왼쪽으로 동물원이 나왔다. 새벽인지라 아직 개장 시간이 아니었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 비 오는 날에는 동물들이 뭘 하면서 지내는지 늘 궁금했던 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럴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동물들은 우리 안에 다 들어가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우중산책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가다보니까 원숭이 우리가 나왔다. 이제 나는 어린 시절처럼 원숭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별다른 기대도 없었다.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 소설가
발길을 돌리려는데, 처마 끝에 앉은 원숭이가 보였다. 그 원숭이는 가만히 앉아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쓴 채 그 원숭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그러고 있을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로부터 10년 뒤, 나는 존 그레이의 <동물들의 침묵>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다가 그날 오전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허구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다. 이 허구는 단 한 종류의 삶에서만, 아니면 아주 소수의 비슷비슷한 삶에서만 당신의 삶이 꽃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어떤 원숭이도 길들여지거나 포악해지지 않는다. 역사든 에고든, 내가 뭔가를 창조하지 않는 한.

 

김연수 소설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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