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은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주는 것이 시”라고 말한다. 반비 제공
시, 좀 더 넓게 이야기하자면 문학이 외면 받거나, 혹은 엔터테인먼트처럼 가볍게 취급받는 시대다. 그래서 ‘시의 힘’이라는 책 제목은 낯설다.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사상가’로 통하는 서경식(64·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은 이미 국내에서 많은 에세이를 출간해 나름의 독자층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문학에세이는 처음이다.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프랑스 문학)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 때 소설을 썼고, 고 3때 첫 시집을 냈으니 문학에세이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은 에세이를 넘어 비평집에 가깝다. 그는 시대의 격류와 그 흐름에 휘말린 개인사를 녹여내며 ‘국민 문학’을 넘어선 ‘보편적 세계 문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가볍지 않은 주제다. 그런 사유의 세계로 이르게 된 이유와 배경을 간결하면서도 겸손한 문장과 명징한 언어로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관성적 사고를 돌아보게 한다.
그의 첫 시집은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 첫 경험을 담고 있다. 고1 때인 1966년 재일교포학생 모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찾은 경험이다. 이어 대학시절에 일어난 친형 서승과 서준식의 재일교포 간첩단 투옥사건, 귀화 재일교포 학생의 분신 사건….
일련의 충격적 사건들은 그가 조선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선택’하는 계기가 된다. 아랍 출신 미국인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1967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으로서의 자각을 분명히 한 것처럼 말이다.
그가 책에서 식민지 기억을 공유한 동아시아 문학의 보편성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윤동주, 한용운, 중국의 루쉰의 삶과 문학을 언급하는 것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뿌리 의식에 연원을 두고 있을 것이다.
경계인이라는 특수한 지점에 서 있는 그는 우리가 ‘국민주의’의 틀 안에서 살며 당연시해온 ‘한국문학’이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예를 들어 윤동주가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 옌벤조선족자치주에서 생활했다면 그의 문학은 한국문학인가, 중국문학인가라고 묻는다. 누구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공감한다. 그는 문학적 공감이 ‘우리 국토’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겼다’는 고통의 핵을 인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당연한 수순처럼 홀로코스트, 동일본대지진, 원전피해 등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문학이 가져야 할 보편성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입을 빌어 “지식이 세분화되고 부품화된 아카데미즘의 존재방식에 대해 비판하면서, 지배층 이야기에 피지배층의 대항적 이야기를 대치하는 것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보편성을 구축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문학)가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이렇게 답한다. “우리를 끝없이 비인간화하는 이 시대야말로, 더 시와 문학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루쉰의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 때문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