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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 합류한 히라노(오른쪽)는 일도 서툴고 힘도 부족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은 그를 기다려줬고, 지금은 제 한 몫을 해내는 일등 직원이 됐다. 박철현씨 제공
“16일? 잠깐만. 음, 이 날은 힘들겠는데, 다른 날로 다시 정해서 알려줘.”
페이스북에서 알게 된 친구들끼리 소소한 송년회를 하려고 날짜를 정하는데 꽤 어렵다. 겨우 4명이 만나는 데도 각자의 일정을 고려해야 한다. 단체 채팅방을 보니 11월 중순부터 송년회 날짜를 고심한 흔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송년회라는 단어도 약간 어색하다. 일본에선 너나 할 것 없이 망년회(忘年会)라 불러서다. 그런데 이건 한국식 표현인 송년회가 맞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들에게 망년회와 송년회의 차이를 말하면 다들 송년회 편을 들었다. 좋은 일 나쁜 일 상관없이 모조리 잊어버리는(忘) 것 보다 지나간 1년의 과거가 자신을 이루는 역사의 일부니까 그 자체로 보내주는(送) 것이 낫지 않겠는가.
◇1인당 평균 20장 발송, 연하장의 전통
아무튼 올 한해도 무사히 보냈고 그 덕분에 수많은 다른 회사의 송년회에 참가해야 했다. 일본에서 결혼식과 송년회는 미리 참석여부를 결정해서 알려줘야 하는 이벤트다.
물론 결혼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결혼식의 경우 참석한다고 해 놓고 가지 않으면 인연이 끊어질 수 있다. 결혼식 피로연 초대장은 보통 두어 달 전에 날아온다. 동봉된 답장용 엽서에 참석여부를 체크해 바로 보내야 한다.
일단 초대장이 이쪽에 배달되면 엽서에 ‘불참석’이라고 표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재혼, 삼혼도 식을 올리는 경우는 있지만 피로연을 여는 경우는 드물다) 피로연의 초대장을 보내 왔는데, 참석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어떻게 하나. 실제로 불참석이라고 표시했다가 연이 끊어진 사람도 있다.
송년회는 결혼식만큼 엄격하진 않지만 그래도 참석하겠다고 말을 했다면 가는 게 예의에 맞다. 몸이 아프거나 가정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곤 가야 한다. 만약 아무 말 없이, 시기적으로 나중에 약속 잡힌 다른 송년회에 갔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인테리어 업체의 실적이 두 배로 늘었으니 송년회 자리도 딱 그만큼 늘었다. 새 거래처에서는 한 달 전부터 송년회 참석 여부를 물어왔다. 되도록이면 참석해야 하지만, 더 빨리 물어본 다른 회사의 송년회 일정과 겹쳐 정중히 거절한 곳도 두 군데나 된다. 그런 곳에는 따로 미안하다는 엽서와 함께 연말선물(お歳暮)을 보낸다.
‘오세이보’라 불리는 연말선물과 연하장 엽서는 일본 특유의 문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연하장 엽서는 많이 줄긴 했다. 하지만 주식회사 일본우편 집계를 보면 2019년에만 23억장이 발행됐다. 최고 기록이었던 2003년 44억장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인구를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1인당 평균 연하장 20장은 쓴다는 소리다.
뭐 하나가 유행을 탄다고 해서 이미 정착된 어떤 전통이 갑자기 쇠퇴하지 않은 일본사회 특유의 습속이, 연하장 문화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러한 습속은 엄청난 속도로 진보하고 있는 제조업 및 정보통신기술 등 산업적 측면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꽤나 짙은 긍정적인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멀리 떨어져 있어 일 년 동안 얼굴 한번 못 본 친구들과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통신수단 연하장을 통해 잘 살고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 뭔가 로맨틱하지 않은가.
딸 유나와 아내가 일본인 친구들에게 받은 연하장들. 일본인들은 평균 20장의 연하장을 보낸다. 박철현씨 제공
◇“송년회는 개인의 성장을 확인하는 자리”
아이들도 연하장을 쓴다. 내일 학교가면 다 만나볼 친구들인데도 그렇게 한다. 이해가 안돼서 작년에 5학년이던 둘째 유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훌륭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서로 다른 중학교로 갈 수 있으니까 앞으로 만나기 힘들 수도 있잖아. 연하장 있으면 나중에 추억할 수 있고, 또 매년 연하장 보내서 안부도 물어볼 수 있고, 또 만약 친구가 다른 곳에 이사가도 이 친구가 우리 집 주소를 아니까 연하장 보내주면 내가 새로운 주소로 답장을 보낼 수 있지. 연하장은, 한번 맺은 인연을 끊기지 않게 해 주는 도구?”
아무튼 유나의 말을 빌리자면, 송년회도 인연을 이어가는 모임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여긴 ‘혼자’가 기본이다. 인연은 생활하면서 만들어 나간다. 직장동료들이 그렇고, 거래처가 그렇다. 그들과 땀 흘리며 보낸 일년, 그렇게 성장한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 그리고 그간 맺은 인연, 이런 것들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송년회라 생각한다.
지난 16일, 본사 송년회를 했다. 참석한 13명이 돌아가며 간단한 스피치를 했다. 일부러 회사 이야기는 안 한다. 회사 실적이야 서버 들어가면 다 확인할 수 있다. 사적인 포부를 밝히는 것이 본사 송년회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들어온 지 7개월 된 도미타 씨는 “내년엔 꼭 결혼을 할 것이다”라 말했다. 나는 “올해 바빠서 자격증을 하나도 못 땄는데 내년엔 자산관리사 딸 생각”이라고 말했다. 회장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음질 좋은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미국 싱어송라이터 존 덴버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억지로 술을 강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이 싫은 친구는 마시고 싶은 소프트 드링크를 마셨고, 다른 약속이 있는 친구는 먼저 자리를 떴다. 참석한다 해 놓고 참석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 일단 참석만 하면 각자의 개성과 음주습관, 다른 약속들을 인정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이지만 송년회 불참은 눈총을 사는 일이다. 다른 일이 있어 금방 자리를 뜨더라도 얼굴을 비추는 게 예의다. 사진은 연말 사람들로 붐비는 도쿄 우에노 거리. 박철현씨 제공
◇일이 서툰 일본인 직원, 한국인의 정으로 품다
그 후 매일 각양각색의 송년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21일 토요일, 공식적, 마지막 송년회를 열었다. 1년간 고생한 우리 목수님들과 함께 하는 자리다.
면면을 훑어보니 참 국제적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고, 네팔인 2명, 중국인 2명, 마지막으로 일본인이 1명이다. 여기 현장도, 현장 자체는 한국과 별다를 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들어온다. 더 좋은 대우를 해 주는 곳이 있으면 말도 없이 휙 사라진다. 그럼에도 1년간 남아 있어 준 고마운 분들이다.
유일한 일본인, 히라노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코리아타운 오쿠보의 월세 3만엔짜리 허름한 쪽방에 살던 그가 누군가의 소개로 우리 현장에 찾아온 것이 올해 4월이었다. 면접을 해 보니 기술도 능력도 별로 없다. 허우대가 멀쩡해 힘은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25㎏짜리 시멘트를 들어보라 시켜보니 자세가 영 아니다. 등을 쭉 펴고 앉아 수직으로 허리와 등이 같이 올라와야 하는데 허리만 굽혔다. 저러면 열 포대 나르고 허리 나간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국 목수 형들이 “저래 가지고 여기 아니면 딴 데 갈 수도 없을 거 같은데, 살살 일 가르쳐주고 운전시키고 그러면 안되겠나?”고 했다. 히라노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피폭 지역 중 하나인 이와키 시(市) 출신이어서다. 고향에서 부모 도와가며 농사짓고 살다 강제로 나온 것이다. 그 후 7년 동안 이리저리 떠돌며 낭인처럼 살던 그를, 불쌍하게 여긴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정이었다.
‘기본급 30만엔에 수당은 별도’ 조건으로 채용했다. 그 뒤 8개월이 지났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여전히 일머리가 없고, 답답한 구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줄곧 공부해 지금은 꽤 능숙하게 쓴다. 국제적(!) 현장이니 말이라도 잘 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정리, 정돈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현장이 쾌적해졌다. 이쪽 일 하는 분들은 다들 알 것이다. 정리, 정돈만 잘해도 작업능률이 30%는 올라간다. 피곤하고 귀찮으니까, 소규모 현장에서는 알면서도 안 된다. 그 부분을 히라노에게 맡겼다. 개인 물품은 놔두고 현장을 항상 깨끗하게 치우라고 시켰다. 그는 소처럼 성실하게 일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 우리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꾼이 되었다.
송년회가 끝나고 지하철 쪽으로 히라노와 나란히 걸었다. 별 뜻 없이 “우리 회사에서 보낸 올해 어땠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항상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겉치레 인사일 수도 있지만, 묘한 감정에 빠졌다. 나도 처음 일본에 와 막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히라노에게는 어쩌면 우리 회사가 그런 곳이지 않을까. 그래, 내년에도 열심히 하자. 그래서 꼭 내년 송년회도 같이 보내자. 서늘한 바람이 일순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런 좋은 겨울 밤이었다.
박철현 작가
박철현 작가는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게임플래너,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뒀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같은 에세이를 냈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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