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작가 김미루 개인전
요르단 사막서 2년째 원시의 삶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은 지루해"
2011년 8월 김미루(33·사진)는 요르단 사막에서 낙타를 처음 봤다. 무슬림 여성들의 삶을 다룬 한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중동 지역을 처음 여행했을 때다. 슬프면서 평화롭달까, 그의 눈에 비친 낙타의 표정은 그랬다. 낙타 옆에 벌거벗고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미 ‘나도(裸都)의 우수(憂愁)’(2008), ‘돼지, 고로 존재한다’(2012) 등의 사진 연작을 통해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린 그다. 거대 도시의 지하 세계에, 초대형 돼지 사육장에 알몸으로 뛰어들어 미와 추,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묻는 사진들이었다. 이번엔 낙타다.
27일부터 서울 소격동 트렁크갤러리에서 개인전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을 여는 그를 만났다.
- 왜 낙타인가.
“낙타는 사막에서 사는 포유류 중 가장 크다. 맹수를 피해 사막에 들어가 그곳의 환경에 맞게 제 몸을 진화시켰다.”
- 또 벗었다.
“사람의 원초적 모습,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은 바로 그런 곳에서 낙타에 기대어 배우며 살아온 것이다. 시각적으로도 저 사진 속에 사람이 없다면 관객은 그저 ‘어느 먼 나라 사막에 낙타가 있구나’ 했을텐데, 벗은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저기 내가 있다면 어떻게 느껴질까’하고 촉각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그는 이어 아프리카 말리에서 유목민 투아렉족을 따라 다니며 생활했고, 몽골에서도 그곳 사람들처럼 입고 먹고 마셨다. 요르단으로 돌아가선 수도 암만에서 차로 네 시간 떨어진 사막에 책상을 하나 마련했다. 뉴욕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곳에 터전을 만들어 2년째 살고 있다. 10분 거리 바위산에 올라가면 와이파이가 터지고, 태양열 전지를 충전하면 전구를 밝히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현지인조차 이해하기 힘든 생활이었는지, 요르단의 방송국에서 찾아와 다큐멘터리를 찍어가기도 했다.
- 왜 사막에서 지내나.
“삶의 과정은 퍼포먼스와 다를 바 없다. 낙타가 생존경쟁을 피해 사막으로 들어가 제 몸을 적응시켰듯, 나 역시 사막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좀더 느리고 명상적인 삶을 구현한다. 평화를 느끼는 일종의 장기 퍼포먼스랄까.”
- 도시 속 지하세계, 돼지 사육장에 이어 사막까지…. 굳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쾌적하고 안전하면 지루하지 않을까. 충분히 열정을 쏟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두려움에 직면하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나를 성장케 한다. 나 역시 겁이 많으며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낙타의 길’ 시리즈는 지난해 타이완에서 처음 전시했다. 아버지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막내딸의 타이완 개인전 도록에 이렇게 적었다.
“미루(彌陋)는 내가 지어준 이름대로 날로 날로 추해져 갔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세계의 반면으로 점점 깊숙이 천착해 들어간 것이다…미루의 예술이 추구하는 세계는 익(益)에 있지 않고, 손(損)에 있다. 그 어느 땐가 우리 모두가 무위의 밑바닥에서, 저(低)엔트로피의 공동체 속에서 손잡고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빈다.”
전시는 4월 29일까지. 02-3210-1233
권근영 기자
사진설명
말리의 사하라 사막에서 2012년 찍은 사진(101×152㎝). 김미루는 “사막은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낙타에 기대어 사막에 문명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진 김미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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