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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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새봄맞은 찔레꽃 (6) 댓글:  조회:424  추천:0  2023-06-06
                                                                    새봄맞은 찔레꽃(6)                                                  10         순옥이는 네번째로 맞은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자 한국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연길로 돌아왔다. 연길로 돌아와서 집을 팔고 집판돈에 돈을 더 보태여 병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엘리 베이터가 설치된 호화로운 집 한채를 삿다. 시어머니와 함게 살자고 해도 시어머니는 기어이 경로원으로 가겠다고 하자 시어머니 요구대로 하였다.     순옥이가 한국에 가서 돈을 많이 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바람타고 쫙 펴지였다. 친척 친구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그와 가깝게 하려고 하였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은 대체적으로 순옥이를 만나자는 전화였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보면 거개가 돈에 대한 말이였다. 그런말을 들으면서 내가 뭐 은행인가? 자선가인가? 다들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리해가 안갔다. 이제는 돈에 대한 말이 나오면 신물이 날 지경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옥이는 전화를 받기가 싫어졌고 자기와 가까히 하려는 사람들과 거래하는 것조차 싫어졌다. 때론 그들에 대한 고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기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에는 골도 안 내밀던 사람들이 내가 돈을 좀 벌어 가지고 왔다고 하니 이제와서 아는척 하는지 머리를 젓게 했다. 한편으로 이런 이중적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고 만나주지 않았다. 차츰 가까히 보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몸에 달려있는 혹처럼 부담스럽게 여겼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혹같아 보이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자 홀가분해서 좋기는 한데 어쩐일인지 자신의 처지가 홀로 서있는 외톨이 나무와 같아는 생각이 들면서 허전하다는 감이 들었다. 한편으로 돈이 뭐길래? 수십년 사이좋게 지나온 이웃들과 거리를 두며 너무 야박하게 놀지 않았냐?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너무도 어려운 생활고를 겪다나니 고독이 먼지 모르고 지나왔는데 생활형편이 좋아진 지금 아무런 부담도 없이 홀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것이 아니였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고 홀로 산다는 자체가 불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홀로 사는 녀자들은 부담없이 홀로사니 좋다고 했다. 요즘 순옥이는 그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안에 들어서면 반기는 사람도 없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 어떤 때에는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집안은 마치 깊은 산속에 뭍쳐있는 절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순옥이는 고독하고 불안정한 심기을 풀기 위해 온 종일 공공뻐스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였다. 공공뻐스를 타는 것도 하루 이틀이 좋지 며칠 타고 나니 그것도 실증났다.    고심끝에 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무도장으로 갈가고 생각했다. 알아보니 무도장에 대한 사회여론이 그닥 좋지 않았다. 무도장으로 가려던 생각을 접고 명성이 높은 “아리랑 노래교실”로 가기로 했다. 아리랑 노래교실을 찾아가니 곱게 생긴 녀성이 반갑게 맞어 주었다. 그 녀자는 곁에 서있는 뚱뚱안 체구에 더부룩한 머리 발을 가진 남성분을 가리키면서 이분이 노래교실의 원장님이신 황선생님이라 소개하였다. 그는 황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후 황 선생님을 따라 노래교실로 들어갔다. 노래교실에는 수십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황선생은 순옥이를 학생들 앞에 인사를 시키면서 새로 오신 미녀신입생이라고 소개하였다. 황선생은 순옥이를 보면서 자아소개를 하라고 했다. 순옥이가 자아소개를 하자 장내에서는 열렬한 박수소리가 났다. 순옥이는 열심히 노래교실을 다니였다. 집에 있을 때에는 답답하던 것이 노래교실로 오면 마음이 즐거웠다. 몇 달 사이에 많은 학우들과 사귀게 되여 더 좋았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해주자 마음이 둥둥 뜨는것 같았다. 그는 처녀시절에도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촌의 문예선전대의 업여가수이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가정 살림살이와 배우자들이 련이어 사망하는 바람에 마음 편히 노래를 부를 겨를이 없었다.    그는 노래를 배우는 시간마다 선생님의 가르쳐 준대로 음절, 박자, 리듬을 명심하며 노래를 불렀더니 상상외로 노래가 잘 흘러 나왔다. 황선생님도 그가 노래를 정확히 잘 부른다고 여러번 칭찬하였다. 학우들도 노래를 잘 부른다고 높이 평가하여주자 신나게 노래교실을 다니였다.    순옥이는 한국에서 돌아 올 때 속으로 이런 맹세를 했다.    “이제는 절대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 네번 남편을 만나 네남자를 다 저세상으로 보냈으면 됐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여 또 남자를 친한단 말인가? 이제 또 남자에게 미련을 둔다면 성이라도 바꾸겠다.”    그는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노래교실을 다니면서도 남자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황선생과도 거리를 두었다. 어찌 할수 없는 상황에서 남자들과 교제하게 될 때에는 뒷말이 없도록 조심하고 조심하였다. 순옥이가 랭정하게 남자들을 대하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뒤에서 그를 가시돋친 찔레꽃이라 말했다.     남녀가 옷깃이 스치여도 인연이 맺어진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굳게 닫겼던  순옥이 마음이 해동하는 얼음장처럼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인연이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황선생과 자주 만나고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박한 처녀시절로 되돌아 가듯 싶었다. 어느사이 녀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감정이 싹트면서 섬세한 안광으로 황선생을 주시해 보게 되였다. 외모를 보아서는 멋진 남자라고 보이지 않지만 속에 들어찬 풍부한 음악지식과 시원하게 말하는 성격이 가슴속에 와 닿게 되였다. 황선생은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교학을 할때 보면 그심성이 곧잘 보이였다. 학생들이 선생이 배워준대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할때에는 짜증이 나겠건만 황선생은 항상 웃는 얼굴로 내심하게 차근차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였다. 황선생이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더구나 순옥이를 행하여 싱긋 웃는 모습은 보기가 참 좋았다. 그는 황선생이 자기한테 노래를 부를 기회를 많이 주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정확히 잘부른다고 칭찬 하는 것을 보면서 황선생의 일종의 암시를 나한테 보내는 신호가 아닐가? 생각했다.     어느날인가 황선생은 은근 슬쩍 순옥의 가정사를 묻기도 했다. 왜서 내 가정사를 물을가? 의심이 들었다. 때로는 내가 왜서 황선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매일 황선생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황선생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    어느날 순옥이는 황선생과 학우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학우들은 호화롭게 장식된 집안을 둘러보면서 순옥이가 좋은 집에서 호화롭게 살고있다며 부러워하였다.    학우들은 널직한 객실의 둥그런 상에 빙둘러 앉아 산해진미를 먹으면서 마셔라 부어라 하더니 흥이 도져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황선생은 가만히 남들이 눈을 피해 집안의 이곳저곳을 돌아 보았다. 황선생은 순옥의 침실로 가더니 살그머니 문을 열고 침실안을 들여다보았다. 침실안은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외국의 돈많은 회장님들의 침실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늑한 침실에서 녀자의 향기가 흘러나와 코를 심히 자극하여 아! 소리를 지를번 했다. 침실 정면에는 활짝 핀 찔레꽃을 그린 벽화가 유난히 눈에 안겨왔다. 그림을 보던 황선생의 눈에는 그 그림속의 찔레꽃이 순옥이 고운 얼굴로 바뀌더니 자기를 오라고 손짓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재빨리 침실문을 닫고 나서 집안 곳곳을 자세히 돌아보았다. 어느곳을 보아도 모두가 고급적으로 인테리어가 잘 되여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선생은 속으로 순옥이야 말로 예술적 소질을 갖춘 미모의 녀인일 뿐만 아니라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재산을 소유한 알짜박이 부자라고 여기게 되였다.     황선생은 순옥이네 집으로 갔다 온 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여짓껏 추구해 왔던 리상적인 배우자는 인물은 쑬쑬해도 대화가 잘되며 인품의 좋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외로 순옥이를 보고는 생각을 바꾸게 되였다. 고운 미모에 넉넉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마음이 좋아 보이니 정말로 구하기 힘든 배우자 감이라 생각하였다. 황선생은 한켠으로 달리 생각해보니 혼인이란 일방적이여서는 성사될수 없다고 여긴다. 자기의 판단으로는 순옥이는 둘도 없는 좋은 배우자 감이라 점 찍었지만 대방의 의사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일방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옥이를 만나 집적 묻고 싶었다.     어느 조용한 기회에 황선생은 순옥이를 보고 한번 만나서 긴요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순옥이가 수응하자 황선생은 순옥이와 같이 으로 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눈 후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황선생은 뚤어지게 순옥이 얼굴을 보다가 정색해서 이런  말을 했다.     “순옥씨는 저를 어떻게 보십니까?.”     “뭘, 그러세요.”     “어떤 남자로 보는가 말입니다.”     “탁월한 재주를 가진 훌륭한 선생님으로 보지요.”     “선생님 말고 , 순옥씨한테 알맞는 배우자로는 안됩니까?”     “선생님도 참,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선생님한테는 좋은 사모님이 있지 않나요?”     “오년전에 마누라가 저 세상으로 먼저 가고 저는 외톨이로 살아온지 여러해 됩니다.”     “정말!”     “녀사님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선생님을 안지는 오라지 않지만 선생님은 좋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호감은 가지만 남자복이 없는 저로서는 선생님의 호의를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저도 녀자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알고보면 우리 두 사람 다 싱글인데 뭘 론할게 있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사귀여봅시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어요.”     “녀사님의 좋은 답복을 기다리겠습니다.”     두사람은 몇 달간 대방에 대한 료해를 거쳐 대방을 신임하게 되였다. 서로가 자석처럼 대방을 끌어안더니 이제는 사제간으로부터 부부간으로 되기를 기약하였다.                                             에필로그       결혼식을 앞두고 순옥이는 지나온 인생길을 도리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인생이란 참으로 알고도 모를 일이다. 자신은 무엇때문에 살이센 녀자라는 말을 들으며 남다른 인생을 살아왔을가? 이번에 만난 남편과는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하늘에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였는데 그날이 바로 찔레꽃이 활짝핀 5월 5일이였다.   
18    새봄맞은 찔레꽃 (5) 댓글:  조회:231  추천:0  2023-06-01
                                        새봄맞은 찔레꽃 (5)                                                      9         순옥이가 왕서방을 잃고 슬퍼하고 있는데 한국에 있는 녀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니에 대한 정황을 알고 있다면서 중국에서 속을 썩이지 말고 한국으로 오라고 했다. 한국으로 갈가 말가 고민하다가 그래도 제일 믿을직한 사람한테 물어보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아들한테 전화를 하였다. 순옥이 아들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상해 모 연구소에서 사업하고 있었다. 아들한테 한국으로 가면 어떨가? 하였더니 아들은 어머니의 의사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는 빠른 시일내에 한국으로 가는 수속을 밟았다. 한국으로 가는 비자 신청을 하여 한달만에 한국 입국비자가 내려왔다.     사실대로 말하면 순옥이는 한국으로 돈 벌려고 가려고 떠난 것이 아니였다. 왕서방이 남긴 재산만으로도 로후를 얼마든지 잘 보낼수 있었다. 한국려행을 하면서 여지것 받아왔던 스트레스들을 풀어보자고 떠난 것이였다. 그는 떠나면서 집을 시어머니한테 맡겨놓았다.      순옥이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나온 인생 55년을 생각하면 악몽같기도 하였다. 남들의 상상도 못할 어려움과 깊은 상처를 받으며 지나왔다. 어쩌면 세 배우자를 만났는데 세 사람 다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으니 이놈의 팔자는 무슨놈이 개팔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설음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 도착한 후 동생집에서 며칠 머물러 있으면서 한국려행이나 실컷하자고 생각했다. 동생들과 함께 려행을 다니자고 하였다. 그런데 동생네 부부간은 일하려 다니느라고 마음편히 려행을 할 사이가 없다며 언니 혼자 다니라고 했다. 순옥이는 려행사를 통하여 한국국내려행을 하였다. 한달동안 혼자서 려행단을 따라 려행을 하고 보니 한국을 다 돌아본것 같아 더 돌고 싶지 않았다.      순옥이는 려행에 흥취를 잃게 되자 무료하게 놀것이 아니라 소일거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일을 하자면 한국 법무부와 로동부의 비준을 받어야 했다. 그는 법무부와 로동부의 규정에 따라 외국인들이 반듯이 받아야 할 강습반에 참가하였으며 법적절차를 받어 취업허가서를 받았다. 취업 허가서가 나오자 동생과 같이 서울 모 직업소개소로 찾아갔다. 직업소개소 담당자가 그녀를 보고 년세가 얼마인가 물었다. 그가 55세라고 하자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50세 이상이면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다 하면서도 젊게 보이기에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울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 담당자는 순옥이가 소지한 증건을 확인해 보더니 어떤일을 하시려고 하는지? 물었다. 그가 식당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담당자가 여러 곳에 전화를 하더니 경기도 화성시 모 음식점으로 가라고 했다. 그날 그는 소개비로 한화 2만원을 냈다.      화성시 모 음식점을 찾아가니 음식점 녀업주가 반갑게 맞어 주었다. 서비스산업을 하는 업주들은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고용 일군들이 젊고 얼굴과 몸매가 고울수록 채용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었다. 마침 일군이 모자라 일군 구입에 애를 먹고 있는데 이런 미인이 찾아오니 금상첨화가 아닐수가 없었다.     순옥이는 중국에 있을때 음식점에서 일을 많이 했기에 한국에 와서도 별로 어려울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정작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료리의 명칭을 잘 몰라 한참 애를 먹었다. 몇 달 지나고 보니 한국 료리와 음식메뉴에 대해 익숙히 알게 되였다.     순옥이가 고운 얼굴에 하냥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일하자 식당주인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들도 순옥에게 엄지척을 보였다. 한번 왔던 손님들은 재차 왔다. 재차오는 단골 손님수는 늘어났다. 사람들은 이 식당의 활기를 뛰게 된것은 미녀 영업원을 영입했기때문이라고 했다. 순옥이가 인기 인물로 등장하자 따라서 잡음이 많아졌다. 다행히 순옥에 대한 구설이 나돌 때마다 식당주인이 방패막이 되여 단호하게 막아나섰다.     순옥이가 한창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고운 녀자를 보면 오금을 못 쓰는 사장의 남편 정회장이 순옥이를 보더니 첫 눈에 반하여 눈독을 들였다.     어느날 순옥이가 퇴근하려고 식당문을 나서는데 순옥의 앞으로 승용차 한대가 오더니 칙 하고 멈쳐섰다. 차에서 정회장이 내리였다.    “순옥씨 퇴근시간이 늦었는데 이 차에 앉으시오.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소”    “저는 통근 뻐스를 타고 가겠으니 회장님은 볼일을 보려 가십시오.”    “우리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을 집까지 모셔 드리는 것이 달리 생각마시고 차에 오르십시오.”    순옥이는 회장님이 하도 차에 오르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차에 올랐다. 그날 이후 정회장은 여러번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차를 가지고 와서 순옥이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누군가 정회장이 차로 순옥이를 집까지 모셔갔다고 녀사장한테 일러바쳤다. 남편의행실에 대해 아니꼽게 보아오던 차에 남편이 녀종업원을 차에 태워 집까지 바래 주었다는 말을 들은 녀사장은 얼굴에 노기가 잔뜩 서리였다. 이상하게도 녀사장은 남편에게 분풀이를 하여야 할 대신 양같이 순진한 순옥이한테 분풀이 했다. 그것도 말로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칼로 무우를 베듯이 단호하게 순옥이를 해고시키였다. 연고없이 해고를 당한 순옥이는 억울함을 풀곳이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사장은 나를 해고 시킬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떠 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정회장의 차를 몇번 탄적이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이 사실을 밝힐가 생각했다가 밝혀보아야 좋은 말이 없으리라 생각되여 접고 말았다.     그후 순옥이는 음식점, 모텔, 경로원을 전전긍긍하면서 다니였다. 어디로 가나 그 못쓸 남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떼우곤 하였다.     이번에는 지인의 소개로 늙은 량주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사 도우미로 들어가게 되였다.     순옥이가 찾아간 집은 서울에서도 부자 동네라 불리우는 하남 대치동이였다.  5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였다. 소개자의 말에 따르면 이 주택건물주가 바로 허영택이란 사장님이였다. 사모님의 년세는 81세이고 사장님은 78세라 하였다.     순옥이가 찾아 갔을 때 안로인은 거동이 불편하여 침대에 누워 있고 바깥로인은 키는 작아도 허리가 곧고 이마가 벗겨졌는데 학자다운 감이 들었다. 사장님은 순옥이를 보고는 마음에 들어 순옥이를 데리고 건물 안밖을 돌아보았다. 허사장은 순옥을 보고 계약서를 쓰자고 하였다. 계약서에는 가사 도우미가 하여야 할 일들과 가사 도우미 월급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순옥이가 싸인을 하자 사장은 가사 도우미가 일을 잘하면 보너스까지 주겠다고 했다.     순옥이는 허로인을 사장님이라 불렀고 안로인을 사모님이라 불렀다.     순옥이는 자질구레한 집안 일에다 사모님의 병시중까지 돌보느라 바삐 돌아쳤다. 허사장은 순옥이가 바삐 돌아치며 힘들어 할때마다 곁들어 주었다. 허사장은 월말이 되면 꼭 월급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너스까지 가첨해 주었다.     순옥이가 그집에서 일한지 만 3년이 되던 날 사모님은 저세상으로갔다. 순옥이는 사모님이 돌아가시자 이 집에 있을 멋이 없어 이집을 나오려고 하였다. 순옥이가 이집을 나가겠다고 말하자 허사장은 순옥이 손을 잡으며 이집을 나가지 말고 계속 이집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럭저럭 몇 달이 지났다. 허사장은 순옥이를 보자고 해놓고는 이런 말을 했다.     “순옥씨가 우리 집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소. 나는 몇 년간 순옥이를 지켜보면서 보기 드문 참한 녀성이라고 보아왔소. 순옥이가 만약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곳에 계속 눌러 앉아 나와 같이 한집에서 살면 안되겠소.”     “나도 당분간은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장님과 계속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이 불편해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 새로운 분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장님께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날 때까지만 있겠습니다.”     “순옥이 다시 생각해 보오. 내가 이 나이에 새로운 배우자를 만난다는게 말이되오. 그러니 순옥이가 계속 가사 도우미로 있어도 되고 과분한 내 욕심인데 부부로 되여주면 어떻겠소.”     “사장님의 마음은 리해합니다. 사장님,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사장님과 저하고 나이 차이가 많아 부부로 되기엔 어려울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 내가 집에 남기를 원하시다면 그냥 가사 도우미로 있겠습니다.”     “순옥이 다시 생각해 보오. 보건대 내가 나이에 비하여 젊어보이지 않소. 난 아직도 순옥이를 사랑할만한 신체를 가지고 있소. 순옥이도 짐작했겠지만 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소. 무자식인 내가 이 많은 재산을 죽을 때 가지고 갈 수는 없으니 아무튼 누구한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순옥이가 나와 같이 산다면 돈 근심을 할 필요가 없고 앞으로 재산의 절반을 순옥의 명의로 전의하겠소. 그외의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겠소.”     “저– 는 사장님의 재산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사장님의 너그러우신 인품이 맘에 듭니다.”     “그럼 동의한다는 말이오.”     “사장님도 너무 급하시네요. 내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네.”     순옥이는 며칠 고민하다가 허사장의 간곡한 요구를 받아 주기로 하였다.      순옥이가 허사장이 청혼을 받아준다고 한 날 허사장은  꽃다발을 들고 순옥이 침실로 들어왔다. 젊은이들처럼 한쪽 무릎을 끌고 정중하게 순옥에게 꽃다발을 드리며 청혼을 받어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순옥이도 반겨주었다.     며칠후 허사장은 순옥이를 데리고 혼인 등록청에 가서 혼인 등록을 하였다. 혼인등록을 하자 정식으로 두사람은 호화롭게 꾸며진 신혼방에 자게 되였다. 신혼의 밤 허서방은 젊은이 못지지 않게 여러가지 동작으로 신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즐겁게 해 주었다. 신부는 너무도 신기하여 물었다.     “서방님은 년세가 많으신데도 젊은이 못지지 않게 힘있고 재치있게 여러가지 동작을 하네요. 어디서 배웠어요.”     “그일을 누가 배워주어서 안다던가. 나는 우리 허씨가문의 명의이신 허준선생이 쓴 을 읽고 그대로 하였을 뿐이네.”     “호호호 그런책도 다있네”     순옥이는 입을 싸쥐고 웃었다.    순옥이는 허사장과 같이 살면서 서로 호칭을 어떻게 부를가 생각 하다가 서방님한데 물었다.    “사장님, 우리는 이미 부부로 되였는데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가요?”    “그것은 당신이 부르기 싶은 대로 불러도 돼.”    “근데 그냥 사장님이라 부를가요. 아니면 령감님, 우리아저씨, 오빠, 여보, 서방님이라 불러야 하겠는데 제일 듣기 좋은 호칭은 뭐예요.”    “나야 여보거나 서방님도 좋지만 좋기는 오빠라고 부르면 제일 좋아하지. 나는 그렇다치고 내가 순옥이를 뭐라고 부르면 좋겠나?”     “그냥 순옥이라고 불러도 좋고 여보라거나 자기라고 부르면 편할것 같아요.” 두 사람은 집안에서는 남편을 오빠라거나 자기라고 부르고 안해를 자기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사람의 사이는 좋아만 졌다. 허사장은 젊고 이쁜 안해를 맞이하고 보니 세상이 모든것을 다 차지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안해와 같이 쇼핑하려 자주 다니였다. 허사장은 려행 다니기를 좋아했다. 젊어서는 돈을 버느라 려행을 자주 다니지 못하였다. 본댁과 같이 제주도 려행을 한것 뿐이였다. 이쁜 새마누라와 같이 려행을 하면은 자신의 품위가 올라 갈것 같아 려행을 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순옥이도 집에 파묻쳐 있는 것이 갑갑하여 어디로 려행이라도 갈가고 생각하던차 서방님이 신혼려행을 떠나자고 하니 선득 동의하였다.    처음에는 국내의 이름난 해변가나 명승지를 찾아 다니였다. 해변가나 명승지에 가서는 숙박시설이 제일 좋은 곳에서 신혼 부부가 랑만이 있게 보내였다. 려행지에서 사람들은 젊고 이쁜 녀인을 데리고 다니는 허사장을 보고 능력이 있는 남자라고 평가 하여 주자 신랑은 어깨가 으쓱해 졌다. 순옥이는 국내 려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려행단을 따라 다닐때에는 동반자가 없어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번에는 령감님과 함게 다니니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국내 려행에서 시야가 넓어지자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해외 려행을 떠났다. 첫 려행코스는 한국과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과 동남아의 싱가포르, 말레아시아, 태국 유람이였다. 순옥이는 처음으로 부부동반으로 해외 려행을 하고 보니 시야가 넓어지는 감이 들면서 려행도 일종의 학습이라고 느끼였다. 그는 점점 능력이 있는 좋은 남편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부부는 동남아 려행을 마치고 이번에는 서유럽의 독일, 이딸리아, 프랑스, 스위스, 빠띠노시국을 유람하였다. 연후 한차원 더 높여 대양주에 있는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를 유람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미국, 카나다, 멕시코, 하와이 려행을 하였다. 여러개 나라를 려행하면서 가장 살고 싶은 곳이 어딘가 묻는다면 서슴없이 물좋고 공기좋고 기온이 좋은 하와이라는 동일한 생각을 했다.     몇년간 허사장은 젊고 아릿다운 녀인과 세계려행을 하고 보니 기분은 좋았는데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여 불편하였다. 려행단체를 따라다니다 보면 항상 시간에 맞추어 다녀야하고 힘 있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힘겨웠다. 단단한 박달나무도 좀이 먹기 마련이다. 자신을 박달나무처럼 자부해 왔던 허사장도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이 따라가지 못함을 느끼였다. 이맘큼 해외려행을 하였으니 만족하다는 생각들면서 한켠으로는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여 더는 해외려행을 갈것 같지 않았다. 안해 순옥이는 남편이 려행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자 너무 무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해외려행을 그만하고 조용히 살자고 제의하였다. 허사장은 안해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외려행을 가지않기로 하였다.     좋은 세월은 빨리도 흐른다. 허사장이 순옥이와 결혼한지 5년이 되였다. 남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이쁜녀인을 좋아하는 근성을 가지고 있다. 허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늙은 마누라와 상징적으로 살아왔던 그가 젊고 어여쁜 녀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였으니 고목에 새싹이 돋듯이 새로운 기분으로 새 생활을 시작하였다. 어언 후처와 결혼한지 5년이 된다. 후처에 감투끈이 벗겨진다는 말이 있듯이 허사장은 5년동안 많은 정력을 후처에게 쏟아부었다. 좋은 일 뒷끝에는 불행이 닦쳐온다. 이제는 허령감의 체력이 고갈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허령감은 몸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운동을 열심히 하여 왔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나이를 먹고보니 그렇게 무병하다고 자신만만 했던 그가 신체의 여기저기에 고장이 나더니 병원출입이 잦아졌다. 안해가 아무리 남편한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마음을 즐겁게 해 드렸지만 남편의 로쇠는 막을수 없었다. 뒤돌릴수 없는 시간은 허사장을 죽음의 변두리에 몰아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무심한 하늘은 순옥이 네번째 남편에게 저세상으로 오라는 호출장을 내려보냈다.     림종을 앞두고 허사장은 안해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오래 살 것 같지 못하오. 당신을 만나 행복하게 보냈소.  당신한테 넘길 유산 상속서를 작성하여 놓았소. 그 유산이면 당신은 후반생은 근심걱정 없이 살것이오. 나 죽으면 내 골회를 강릉에 있는 우리허씨가문의 조상들이 계시는 선산에 묻어주오.” 허사장은 유서를 남기고 저세상으로 갔다. 순옥이는 남편의 유언대로 남편의 골회를 허씨가문의 조상들이 계시는 강원도 모 선산에 묻었다. 순옥이는 남편의 유골을 묻자 소리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순옥이는 한국 남편한테서 재산 상속을 넉넉히 받았다.  
17    새봄맞은 찔레꽃 (4) 댓글:  조회:217  추천:0  2023-05-27
                                                                                                              새봄맞은 찔레꽃  (4)                                                                                                                8         두번째 남편의 3년제를 지내고 난뒤 어느날 순옥이가 일하는 식당 주인 김사장이 순옥이를 불러놓고 정중하게 이런 말을 했다. “아주머니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직 젊으신데 재혼할 생각이 있는지요? 만약 생각이 있으시다면 제가 좋은 사람을 소개할가 합니다.”     “나는 아직 재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랭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아주머니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 갈길이 멀고도 먼데 좋은 배우자를 만나 지난 일을 잊고 후반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어디 나같이 팔자가 사나운 녀자를 맞아줄 남자가 있겠습니까?”    “어째 없겠습니까? 제가 소개하려는 사람은 건설업을 하는 돈많은 사장입니다.”    “돈많은 사람이면 더 안될것 같습니다. 돈 많은 남자들일 수록 따르는 녀자들이 많고 여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재산도 없고 아이 달린 녀자여서 돈많은 남자를 선택하기 힘듭니다.”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만나보면 알것 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순옥이는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새끼달린 녀자로서 혼자 산다는게 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아 자신은 남자를 떠나서 자립적으로 살것 같지 않다. 점쟁이 할머니가 내 팔자에 남자 여럿을 할것이라고 했으니 어차피 세번이면 어쩌고 네번이면 어쩌라 싶어 만나 보리라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사장이 순옥이를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하였는가 묻자 순옥이는 시원스럽게 답하였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사장님을 믿고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김사장의 주선으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였다. 순옥이가 만날 장소로 가니 거무틱틱한 얼굴에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와 있었다.그 남자는 반갑게 순옥이 손을 잡으며 억양이 약간 다른 조선말로 이렇게 인사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서가에 살고 있는 왕가복이라고 합니다.     “저는 북산가에 살고 있는 박순옥이라고 합니다.”     “김사장을 통하여 아주머니에 대해 알게되였습니다. 김사장의 말대로 아주머니는 대단한 미인입니다. 초라한 저를 만나 주셔서 반갑습니다.”     “지천에 미녀들이 널려 있는데 초라한 저를 미녀라고 하니 과분합니다. 혹시 가복씨가 한족이 아니세요.”     “네, 옳습니다.”     “한족인데 조선말을 곧잘합니다.”      “어릴때 조선족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선말을 별로 쓰지 않다나니 좀 서툴기는 합니다. 순옥씨한테 한가지 물어봅시다. 사랑에는 민족도, 국경이 없다고 하던데 순옥씨는 배우자가 한족이면 안됩니까?”     “아니예요. 내처지에 뭘 가릴게 있겠습니까? .”     “아, 그렇군요. 민족을 가리지 않는다니 다행입니다. 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뭔저 말씀하세요.”     인연이 되자고 그랬던지 그 두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번 만남이후 순옥이는 왕씨를 자주 만나게 되였다.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보니 왕씨는 겉 모양을 보아서는 거칠어 보이였지만 실상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순옥이는 왕씨에게 호감이 가면서 왕씨의 리력을 조사하여 보았다. 왕씨는 모 건축회사의 지배인이였다. 부자소리를 들을 만한 재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본처는 병으로 사망했고 자식 둘이 있는데 큰 자식은 외국류학을 갔고 작은 자식은 상해 모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왕씨는 처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후 여러 녀성들을 만났지만 마음에 드는 녀성이 없어 여지껏 독신으로 있다고 했다. 왕씨는 유별나게 조선족 녀성을 안해로 맞겠다고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     순옥이는 왕씨에 대한 조사를 한후 정식으로 왕씨와 사귀기로 하였다. 몇달간 사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대방에게 믿음이 가면서 서로 신뢰할수 있게 되였다. 한발 더 나아가 결혼을 하기로 언약을 했다.     결혼하기로 언약을 한지 한달만에 왕씨는 순옥이를 보고 결혼 등록을 하자고 했다. 순옥이는 너무 급하게 결혼등록을 하는 것이 이르지 않는가 하다가 아무래도 살봐엔 결혼등록을 하고 사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결혼등록을 하였다.     결혼등록을 한 후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였다. 결혼식을 올리여 얼마 안되자 왕서방은 한가한 겨울철이라 건설업계에서는 휴식하는 기간이여서 려행하기 딱 좋은 때라고 하면서 신혼 려행을 가지고 하였다. 남편이 신혼려행을 떠나자고 하자 순옥이도 얼싸좋다 신려행을 떠나는데 동의하였다. 순이는 쾌히 동의하였다. 왕서방은 려행을 떠나면서 겨울에 할 일들을 부하직원에게 맡겨놓고 안해와 같이 기분좋게 려행을 떠났다.      먼저 찾아 간곳은 만민의 꼭 한번은 찾아가 보려고 하는 곳, 호남성 장사시 소산충에 있는 모택동주석의 생가였다. 소산충으로 가기전에 먼저 모택동주석의 동상앞에서 참배를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택동 동상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곧추 모택동주석의 생가가 있었다. 의의가 있게 모택동주석이 생가를 돌아보고나자 왕서방은 순옥이를 보고 소산충에서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산을 가리키면서 이런말을 했다.     “여보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무슨 산인줄 아오.”     “산이름이 뭔지 모르겠는데요.”     “저산이 바로 풍류소자에 뭐산자를 가진 소산이오. 소산을 두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소.  풍수지리를 잘 본다는 외국인이 소산(韶山)을 보면서  “소산은 온후하고 강하여 위인이 나타날 곳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오. 그말대로 위대한 인물 모택동주석이 태여났다오.” 순옥이는 왕서방의 말을 들으면서 소산을 보니 정말로 위인이 나타날 산으로 보였다.      모택동 생가를 돌아 보고난후 그들은  천하제일경이라 불리우는 장가계를 찾아갔다. 소산에서 장가계를 가는 사이 차창으로 보이는 산은 높지 않은 야산이였는데 장가계입구에 들어서자 산발이 높아지면서 하늘을 찌르듯이 높고 웅장한 산들이 나타났다. 순옥이는 처음으로 이렇게 웅장하고 기괴한 산을 보고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장가계시에 도착하자 선참으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케불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랐다. 오르고 보니 마치 하늘 나라로 오르는 감이들었다. 산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다보니 기이한 산들이 석림을 이룬것이 가관이였다. 장가계에서 제일 인기를 끄는 곳은 천문동이라는 동굴이다. 동굴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자신이 하늘 나라로 왔다는 감이 든다. 순옥이는 보아도 보아도 신기하기만 한 장가계를 돌아 보고 나니 신선이 사는 나라로 다녀온 감이 들었다. 장가계를 돌아본후 그들 부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풍경관광도시인 광서쫭족자치구에 있는 계림시를 찾아갔다. 그들은 계림시 자연        풍경구를 돌면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수려한 푸른 산, 맑은 물, 기이한 동굴과 아름다운 돌, 그리고 산과 물이 어울린 이강을 보면서 아!소리를 련발했다. 계림시에서 맘껏 즐기고 난뒤 중국의 명산중에서도 명산이라 불리우는 황산을 찾아갔다. 중국의 명산중에서 으뜸이라 불리우는 황산에 오르고 보니 세상만물을 한품에 다 않은 감이들었다.     려행에서 재미를 붙친 그들 부부는 이듬해 겨울에도 유람을 떠났다. 이번에는 광주를 거쳐 해남도 유람을 하였으며 향항, 오문, 대만을 유람하였다.     왕서방은 이쁜 안해를 위하여 머슴이 되겠다고 하면서 유람길에서 안해를 공주처럼 모시였다. 유람지에 가서는 당지에서 나는 특산물과 귀한 장식품을 사서 안해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야기는 다시 그들 부부의 첫 날 이야기로 돌아간다. 결혼 첫날밤 왕서방은 신부를 건득들어 침대우에 눕혀놓고 애무해 주었다. 신부가 가는 신음소리를 내자 왕서방은 힘있게 신랑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왕성했던 그것이 10분이 되기전에 물렁해졌다. 왕서방은 신부의 몸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신부는 아직 쾌감을 느껴보기 전에 서방님이 주저앉자 실망감이 들었다. 풀이죽어 돌아눞는 왕서방의 우람진 체구를 보니 무기력한 존재로 보였다. 왜서 건장한 체구를 가진 왕서방이 그 방면에서는 이렇게 무기력할가? 혹 첫날이여서 긴장해서 그렇지 않을가? 아니면 몸에 병이나 있지 않을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이튿날 순옥이는 조용한 기회에 왕서방에게 어제 그 일을 그리 일찍 끝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혹시 몸에 병이 있지 않느냐고 살짝 물어보았다. 왕서방은 괴면쩍해하면서 미리 말못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은 오랜기간 고혈압에다. 당뇨병종합증이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꽃나무도 계절따라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락화한다. 순옥이는 왕서방을 만나 여지껏 누려보지 못한 향수를 실컷 누려 보았다. 비록 밤생활을 조화롭지 못하여도 여러모로 안해를 끔직히 아껴주는 왕서방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깊이 스며들었다. 왕서방의 도움으로 아들은 별고 없이 학교를 다니게 되였다. 시어머니 생활비도 넉넉히 드리였다.     누군가 인생은 처음에는 희극으로 연출되다가 후에는 비극으로 엮어지기도 하며 처음에는 비극으로 연출되다가 후반부는 희극으로 엮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결혼하여 5년이 되던 어느날 왕서방이 외지로 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왕서방이 쓰러졌다는 급보를 접한 순옥이는 눈앞이 캄캄해나며 단박 쓰러질번 하였다. 다행히 이런 급변을 여러번 당해 봤기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왕서방의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순옥이가 왕서방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보니 왕서방은 급진실에 있었다. 점적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순옥이를 알아보고 눈 인사를 하였다. 순옥이가 근심어린 눈길로  왕서방을 보자 왕서방은 손을 내밀어 순옥의 손을 잡고 큰 병이 아니니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며칠더 맞으면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갈것이라고 했다.       순옥이가 담당의사를 보고 왕서방의 병증세가 어떤가고 물었다. 의사가 하는 말이 환자는 과중한 로동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쇼크가 왔다고 했다. 다행히 병증상이 심하지 않아 치료를  받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 했다.    사람들은 흔히 여러가지 업종중에서 사장들이 수명이 짧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장들은 돈을 벌기위해 밤낮이 따로없이 과도하게 일한다. 그뿐이 아니다. 사업관계망을 넓히기 위해 술좌석에 빈번하게 앉게된다. 사장들은 누구보다도 과도한 일과 과음, 스트레스를 받게된다. 그런 스트레스들이 쌓이고 쌓여 일찍 죽는다고 한다. 왕씨도 사업을 하느라 바삐 돌아치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당뇨병에 걸리였고 고혈압환자로 되였다.     담당의사가 왕서방은 혈당수치가 높고 혈압이 정상이 아니기에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왕서방은 혈당 수치가 높고 혈압이 높은 것은 이전에도 있은 일이 기에 큰병이 아니라며 집에가서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하면 나을 것이라 했다. 순옥이는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것이 옳다며 입원수속을 밟았다. 입원치료를 받아 왕서방의 병세는 호전되였다. 입원하여 10일이 되자 출원하였다. 출원후 안해의 정성어린 간호와 왕서방이 몸관리를 잘하자 몸은 점점 나아졌다. 나날이 좋아지는 왕서방을 보면서 순옥이는 한숨을 돌리게 되였다.     몇달이 지나자 병세가 호전되자 왕서방은 회사로 출근하였다. 회사에 가서는 예전처럼 바삐 돌아쳤다. 또다시 피로가 겹쳐 왔다. 왕서방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혈당수치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혈압이 올라가면서 이번에는 가슴이 답답해 나며 숨이 막히는것 같다고 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전면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 혈앞이 높고 혈당수치가 높으며 심지어는 심장 박동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재차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한다. 수차 전면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었지만 병은 나아지지 않고 더해만 갔다. 하늘은 왕가복이를 부르고 있었다. 죽음이 림박해 왔다는 것을 안 왕서방은 변호사를 불러 재산의 일부를 안해 순옥에게 상속한다는 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유서를 작성하던 날 왕서방은 눈물이 글썽한채 아내의 손을 잡고 안해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먼저 떠나게 되였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유언장을 안해에게 넘겨 주었다. 왕가복이는6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순옥이는 왕서방의 유언대로 그의 골회를 경도릉원 납골당에 있는 본댁의 골회상자 곁에 안치했다. 무심한 하늘이 왕가복이를 일찍 하늘나라로 데려가자 순옥이는 또다시 살이센 녀자라는 억울한 루명을 쓰게 되였다.  
16    새봄맞은 찔레꽃 (3) 댓글:  조회:230  추천:0  2023-05-23
                                                새봄맞은 찔레꽃 (3)                                                               6         순옥이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는 순간에 졸도하였다. 그렇게 평화롭던 오씨 집안에 난리가 났다. 끌끌하던 아들이 하늘나라로 갔고 마음씨가 곱던 며느리가 졸도하여 병원에 입원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으랴… 백주에 오씨가문에 청청벽력이 떨어졌다.    남편이 사망한 후 순옥이는 그집에서 살 생각이 없었다. 밤마다 피투성이 된 남편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악몽을 꾸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다 보니 도저히 잠을 잘수 없어 몸은 수척해 갔다. 밤을 설치고 나면 온 하루 정신이 나지않고 흐리멍텅하였다.    순옥이는 시부모님한테 친정집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시부모님들도 며느리의 고운 얼굴이 이그러지는 것을 참아 더는 볼수가 없어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서 손자만은 두고 가라고 하였다. 애가 다니던 학교를 다녀야지 다른 학교를 다니면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라 하였다.    순옥이는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댁을 나와 친가로 조용히 갔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남편과 행복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비애의 눈물을 흘리 였다.    시집가서 얼굴이 밝아졌던 딸이 죄진 사람처럼 얼굴이 반쪽이 되여 친정집에 들어서자 그를 본 부모들의 가슴에는 문짝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친정에 온 후 얼마 안되여 순옥이는 연길로 올라와 세집을 잡아 놓았다. 친구가 소개해준 모 식당에서 일하게 되였다. 로동이란 힘들면서도 기쁨과 성취감을 주기도 한다. 순옥이는 로동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순옥이가 그 식당으로 간지 얼마 안되여 미녀 복무원이 식당으로 왔다는 소문이 소리없이 펴지였다.  미녀의 고운 얼굴을 보려고 우정 찾아 오는 엉큼한 남자들이 있었다. 한번 왔다간 손님들은 다음번에 올때에는 꼭 여러 사람을 데리고 왔다.  업주는 손님이 나날이 많아서 매출이 올라가니 좋아서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지만 반대로 순옥이는 손님이 많을 수록 몸은 지치였다.     순옥이는 집에 있을 때에는 온갖 잡생각을 하다가도 식당에 와서 일을 하면 잡념들이 가뭇 사라지는 것이였다. 식당주인도 열심히 일하는 그를 믿어주고 로임을 제대로 주었을 뿐만아니라 보너스까지 챙겨주었다.    식당일을 한지 삼년이 되던 어느날 순옥이는 출근 시간전에 식당에 와서 청소를 하고 밥상을 닦고 있을 때였다. 식당안으로 남자 손님 한분이 들어왔다. 그 손님은 식당안에 들어서자 사방을 휘 둘러 보고는 순옥이 앞에 와서 멈춰서더니 이런 말을 했다.    “저 – 어, 박순옥씨가 아닙니까?”    “네, 그런데요.”    순옥이가 언결에 대답하고 돌아보는 순간 그 사람이 먼저 그를 알아 보았다.     “순옥이가 옳구나!”     “아이, 깜짝이야! 오빠가 웬일로 오셨어요.”     “너를 만나려 왔다.”     “나를 만나려 왔다? 잠깐만. 오빠가 나를 찾아 왔을때에는 꼭 할말이 있어 왔겠는데, 이걸 어쩌나, 여기는 식당이여서 말하기 불편하니까 밖에 나가 이야기 해요.”     두 사람은 조용한 곳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가 나를 찾아온 리유는 뭐예요.”     “너는 아무때건 내가 너를 찾을 때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을거다. 나는 이미 네 남편이 사망하였고 네가 힘들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둘이 같이 살자는 말을 하려고 왔다.”     “뭐! 같이 살자구요? 그건 안돼요.”     “왜서 안된다는 거냐?”     “나는 이미 오빠를 배반한 녀자예요. 내가 무슨 면목으로 오빠와 같이 살수 있어요. 난 자격이 없는 녀자예요.”     “지금 형편에 뭘 자격을 론할게 있니, 니나 내나 다 홀로난 판에. 우리들에게 우리 자식이 있지 않니, 그러니 우리 함께 살아야 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 오빠 아들이라고 누가 그럽데까?”     “그 일을 구태여 내게 묻지 말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고 있지않니, 지나간 일들을 다 잊고 우리 함께 잘 살아보자.”     “자식을 위해서라도 우리 함께 살고는 싶지만 남편이 사망한지 겨우 3년밖에 안되는데 벌써 결혼을 하면 남들이 웃지 않겠어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그겠니? 남이 눈이 무서워 결혼 못한다는게 데려 우습다. 내 친구들 중 재혼 경험이 있는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과거 부부사이가 좋았던 사람들은 빨리 재혼하고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늦게 재혼을 하거나 아에 재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너네 부부 사이가 좋았고 우리 두 사람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니, 그러니 무얼 고려하고 깝자를게 있니 빨리 결혼 하자.”     “오빠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렇게 하거라”     철규는 매일이다싶이 순옥이 찾아갔다. 마치 총각이 처녀에게 구애를 하듯이 구애를 했다. 순옥이도 철규의 마음을 잘 아는터라 질질 끌지 않고 철규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순옥이가 같이 살기로 대답한 날 철규는 순옥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않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갈망하며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사랑이였던가? 물론 그날 두 사람은 두번째로 사랑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어떻게 할것인가? 결혼한 후 어디에서 살것이가? 를 의론하였다. 순옥이는 우리가 재혼을 하는 만큼 결혼식은 검소하게 하자고 제의했다. 애를 위해서는 교육시설이 좋은 연길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절대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할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철규도 순옥의 의사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농촌에 있는 집과 임대 받았던 과수원을 경매하기로 했다.     둘이 재혼하기로 약속 한 후 순옥이는 시어머니를 만나 뵈려고 명신촌으로 갔다. 몇년간 명신촌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마을의 길은 모두 포장도로로 되여 있고 집집마다 산듯한 새집에서 살고 있었다.     철규네 집은 마을 앞에 있었는데 널직한 터를 가진 70평방에 멋진 양식을 갖춘 벽돌집이였다. 겉만 보아도 집안은 잘 꾸리였으리라 짐작되였다.     순옥이가 선물을 들고 집안에 들어 섰을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옥이는 시어머니 앞에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머니 그간 안녕하세요. 저를 잘 아시지요. 오늘부터 제가 어머니 며느리로 되였습니다. 부족한 저를 잘 가르쳐 주세요.” 시어머니는 며느리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릴때부터 네가 자라는것을 보면서 내 며느리 감으로 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다만 세상일이란 어디 내 마음과 같이 되더냐, 이제는 네가 진짜 내 며느리로 되여 한시름 놓게 됐다. 반갑다. 우리 고부사이로 잘 지내보자.”     “네”     시어머니는 며느리 앞에서 십여년간 아들이 지나온 일들을 이야기 했다.     “네가 시집을 갔다는 소문을 들은 후 철규는 웬일인지 기분이 상해하면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더라. 불행은 엎친데 덮친다고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시교육국의 지시정신에 따라 각 촌에 널려있던 학교들을 집중하였고 정식교원만 남겨두고 민반 교원과 대과교원들을 다 내보내게 되였다. 철규는 민반교원이 였기에 학교에서 나오게 되였다. 아들은 학교에서 나온 후 한동안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철규는 죄지은 사람처럼 집안에 들어 밖혀있으면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친구들과 같이 놀려갔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맥없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풀이 죽어 지내는 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날 철구가 밤에 잠꼬대를 하던데 피뜩 들을라니 순옥이 네 이름을 부르는것 같더라. 쥐구멍에도 빛 들날이 있다고 어느날 촌장이 찾아와 철규를 보고 촌의 과수원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아들은 과수원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면서 한편으로 과수재배에 관한 많은 기술서적을 읽어 향내에서도 이름있는 과수 기술자로 되였다. 고진감래라 할가 아들한데 좋은 기회가 찾아 왔다. 농촌개혁을 하면서 도거리가 시작되였다. 아들은 선참으로 촌의 과수원을 도급 맡았다. 일이 잘 되자고 그랬던지 련속 3년동안 과수풍작을 따내였다. 그때 만원호라고 하면 대단하다고 할때 우리 집은 년간 수입 2만원을 올리였다. 돈을 벌자 아들을 마을에서 선참으로 이 집을 지었다. 그리고는 멋진 오토바이도 한대 샀다.     아들한테 여러번 혼사 말이 들어왔지만 아들은 다 거절했다. 내가 하도 장가를 가라고 졸라 대여 할수 없는지 안도현 복흥에 있는 한 처녀를 만나 결혼하였다. 아들이 장가를 가자 나는 어서빨리 손주를 안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하여 5년이 되여도 며느리가 생육하지 않았다. 둘이 몇번 병원검사를 받었는데 며느리가 생육할수 없다는 진단을 받었다고 하더라. 그후 아들 며느리 사이가 버성거리면서 리혼하게 되였다. 리혼한 후 아들은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더라. 내가 보건대 그때까지 철규가 맘속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더라.     요즘 철규가 갑자기 네가 내 며느리로 되였다고 하면서 기뻐 하더라. 더 좋은 소식은 어머니가 그렇게 안고 싶어 하던 친 손자를 보게 된다고 하더라. 나는 그말을 듣고 너무도 기뻐 친 손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철규가 하는 말이 네가 낳은 아들이 내 친손자라고 하더라. 순옥아 정말이지?. 애 이름이 뭐라고 했니? 다음에 올때에는 그녀석을 꼭 데리고 오너라. 내 손주가 어떻게 생기였는지 보고싶다.” “어머니가 보시면 알겠지만 아들애가 제 애비를 꼭 떼 닮았어요. 어머님의 소원대로 다음번에 올때에는 어머님의 손자를 꼭 데리고 오겠습니다.”     “고맙다 며늘아.”     순옥이가 시어머니를 뵙고 난후 철규도 순옥이와 같이 처가로 인사드리려 갔다.     장인 장모는 반가워 하시였다. 장모는 사위를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사위 미안하네 이렇게 될줄을 않았으면 반대하지 말아야 할것을 그랬네, 앞으로 네 식구가 오붓하게 잘 살게.”                                                               7         철규는 결혼식을 치른 후 태평촌의 집과 과수원을 팔고 철남에 세칸짜리 집을 장만해 놓았다. 세칸 중에서 해빛이 잘드는 남쪽칸은 아들의 방으로 정하고 조용한 북쪽칸은 어머님의 방으로 정하였다. 새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니 사랑이 한껏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철규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로무시장으로 갔다. 우연히 로씨야 장사를 갔다던 고향친구 신욱이를 만났다. 서로 말을 주고 받던 중 신욱이가 하는 말이 지금 많은 중국 사람들이 로씨야 변해지구에서 장사를 하여 적지 않은 돈을 벌어왔다고 했다. 친구 말에 귀가 솔깃해진 철규는 로씨야 장사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몽땅 외화로 바꾸어가지고 신욱이를 따라 로씨야 장사를 떠났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타향에서 3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어가지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먼저 철남 집을 팔고 돈을 보태여 연변제1고급중학교 근처에다 아빠트 한채를 사놓았다. 네식구가 한 집에서 오붓하게 사니 세상에서 부러울게 없는 것 같았다.     철규는 거저 놀기가 답답하여 자가용차를 사놓고 낚시질을 다니였다. 돈이란 많이 있어도 근심, 없어도 근심이 되는 요물같기도 한 존재이다. 철규는 몇 년간 돈을 벌지는 않고 벌어온 돈을 쪽쪽 쓰다보니 쥐가 소금을 야금야금 갈아먹듯이 돈뭉치가 줄어들었다.호주가 돈을 벌지 않고 안해에게 의거해 사는 꼴이 되니 철규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돈쓸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돈을 쓰다가 모아놓은 돈이 바닥이 날것 같았다. 철규는 다시금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돈을 벌가 생각해보니 외국으로 로무를 간다던가 아니면 남의 밑에서 일하여서는 큰돈을 벌것 같지 않았다. 지나온 경험을 비추어 보아 목돈을 벌려면 작던 크던 로반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벌이 중에서 제일 빠리 리득을 얻을수 있는 것은 장사라고 생각했다. 장사중에서도 제일 파악이 있는 장사는 로씨야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로씨야장사를 떠나기로 작심했다. 순옥이는 남편이 다시 로씨야장사를 가겠다고 하자 극구 말렸다. 로씨야 장사를 갔던 사람마다 로씨야 장사가 위험하더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였다. 중국에서 돈벌기 힘들면 한국로무를 가라고 했다. 안해가 그렇게 말리였지만 철규는 철규대로 타산이 있었다. 비록 로씨야 장사는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잘만하면 목돈을 쥘수 있다고 여기였다. 그는 기어이 로씨야 장사를 떠났다.     남편이 로씨야 장사를 떠난지 2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던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들어섰다. 눈만 내놓고 머리를 풍대로 칭칭 감은채로 지팡이를 집고 간신히 집에 들어섰다. 남편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순옥이는 억장이 무너지는듯하였다.     철규는 몸은 불구로 되였지만 정신상태는 괜찮았다. 순옥이 가 어떻게 된일인가 묻자 철규는 간신히 입을 열고 이렇게 말 했다.     “여보, 미안하오.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이렇게 되였소.  로씨야에서 돌아오던날 강도들한테 모아논 돈을 다 빼앗기고 맞아서 이렇게 되였소.”     알고 보니 철규는 로씨야에 가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귀국하려고 하던 날 밤 낌새를 알아차린 깡패놈들이 숙소에 들이닦쳐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다. 철규는 돈을 지키기 위해 반항하다가 그자들한테 맞아서 정신을 잃게 되였다.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병원에가 구급치료를 받어 목숨을 부지하게 되였다고 한다.     철규는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였다. 병원치료를 받아 다소 회복되는 것 같던 것이 출원하여 한달만에 병세가 악화되더니 그만 저 세상으로 갔다.     순옥이는 남편의 저세상으로 가자 하늘땅이 뒤집혀 지는 듯이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애타게 가슴을 쥐여 뜯으며 하늘을 향하여 하소연하였다.     “무정한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한테만 이런 불행과 고통을 안겨줍니까?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런 슬픔을 안겨줍니까? 이제 나는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순옥이는 이를 악물고 다시는 남편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어디 자기의 뜻대로 되던가? 다시는 남편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 허무한 맹세일줄은 어찌 알았으랴…  아들때문에, 살기위해 부득불 그 맹세를 포기 할수 밖게 없게 되였다. 아들이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으로 가게 되였다.  돈쓸일이 많아졌다. 순옥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아들의 뒷 바라지를 할것 같지 않았다.     순옥이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모가 찾아와 개산툰에 유명한 점쟁이가 있으니 한번 찾아가 보라고 했다. 이모의 말을 듣고나서 점쟁이가 뭘 안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내 앞날을 풀어 줄지 모른다는 무지개 같은 희망을 품고 점쟁이 집으로 찾아갔다. 생각외로 점쟁이 할머니 집으로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순옥이는 한시간을 기다려서야 점쟁이 할머니를 만나볼수 있었다. 순옥이가 점쟁이 할머니 앞으로 가서 공손히 앉으며 찾아온 리유를 말하고 나서 돈봉투를 내 놓았다. 점쟁이 할머니는 말하지 않고 막대기로 돈봉투를 자기앞에 끌어가면서 순옥의 얼굴을 깐깐히 훝어보는 것이였다. 그러던 할머니가 갑자기 순옥의 얼굴에 팥을 던지면서 천둥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살이 쎈 모쓸 년아! 남자를 둘이나 잡아 먹었지! 아직도 성차지 않아 또 몇을 더 잡아 먹겠으니 이를 어쩌노.”      순옥이는 어망간에 팥의 세례를 받고 얼굴을 감싸고 있는데 할머니가 자기의 뼈아픈 과거사를 말하자 어리둥절한채 말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조금지나 정신이 돌아오자 얼굴을 닦으며 점쟁이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길죽한 얼굴에 날카로운 세귀눈을 가진 얼굴이였다. 세귀눈에서 내뿜는 강한 눈빛이 나약한 먹이감을 노려보는 야수의 눈처럼 보였다. 할머니 얼굴을 보며 문득 머리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하루 보름에도 보지 못했던 이 할머니가 무슨 재주로 자신이 지나온 일들을 이렇게 속속 잘 알가? 사람들이 이 점쟁이 할머니가 신을 업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헛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뒷말은 하지 않고 슬그머니 뒷방으로 들어가면서 순옥이를 방으로 들어 오라고 눈짓하는 것이였다. 순옥이가 뒷방으로 들어가자 점쟁이 할머니는 부적을 주면서 잠잘때 이 부적을 베개속에 넣고 자면 잡귀신이 범접 못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길일을 택하여 방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순옥이는 할머니 말을 순수히 받아들이고 할머니한테 좋은날을 택하여 방토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서 아까 할머니께서 나를 보고 남자를 몇을 잡아먹을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겠는가 물었다. 점쟁이 할머니는 순옥의 귀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     “너는 타고 난 팔자가 남자 다섯을 하게 되여 있다. 이제부터는 액운을 피면하기 위해 타 민족이거나 외국인 남자와 살아라 그럼 조금이나마 액운을 피할것이다.”     “뭐! 다섯이나 한다고! ?”     순옥이는 남편을 다섯이나 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선득해 났다.     순옥이는 접쟁이 할머니가 정해준 날에 조용하고 비밀스런 곳에 가서 방토를 했다.  
15    새봄맞은 찔레꽃 (2) 댓글:  조회:235  추천:0  2023-05-19
                                      새봄맞은 찔레꽃(2)        총각은 첫눈에 처녀가 마음에 들자 매일이다싶이 처녀를 만나고 싶었다. 순옥이도 어느정도 마음이 통하였지만 아직까지 철규와의 관계문제를 매듭 짖지 않은데다가 서뿔리 다른 남자를 만났다가 철규가 알면 어쩌랴 싶어 량손에 떡쥔겪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었다. 순옥이는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면서 총각을 만나주지 않았다. 처녀가 만날 기회를 주지 않자 조급해 난것은 총각이였다. 하루가 삼추로 느껴지는 총각은 활짝핀 아름다운 꽃을 누가 먼저 꺾지나 않을가? 하는 근심을 하게 되였다.    영철이는 순옥이 고모를 찾아가 순옥이가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면서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혹 순옥이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지 않는가 물었다. 순옥의 고모는 조카는 절대 그런 애가 아니라 주동적으로 구애를 하라고 말했다.    영철이는 소개자의 말을 듣고 괜히 순옥이를 의심했구나 하면서 아직까지 처녀에 대한 구애가 부족하였음을 느끼게 되였다. 고심끝에 사내 대장부가 째째하게 대방을 의심할것이 아니라 대범하게 주동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뿔은 단김에 빼라고 이미 처녀에게 청혼의 뜻을 밝힌봐 하고는 그대로 방임 할것이 아니라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일마다 처녀한테 전화를 하였고 퇴근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처녀집으로 찾아갔다. 끈질긴 구애가 효과를 보았다. 꼭 잠겼던 처녀의 문이 살그머니 열리기 시작하였다. 순옥이는 영철이가 제기한 자주 만나자는 요구를 받아주었다.    그사이 순옥이는 철규를 만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오빠 미안해,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혼인을 할수가 없어요. 오빠 나를 진정 아낀다면 큰맘 먹고 나를 잊으세요.”    철규도 묵묵히 순옥이 말을 들으면서 이미 예고된 기정 사실이라 더 버틸힘이 없었었다. 간신히 한마디 하였다.    “잘 살아라.”    순옥이는 비록 철규와의 관계를 단절하였지만 흑판과 같은 인생에서 철규를 사랑했던 지난 날의 추억을 말끔히 지울수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약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철규의 빈자리를 오영철이가 채워주기 시작하였다. 순옥이는 인생의 흑판에 쓰여진 첫 사랑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우면서 오영철에게 사랑의 쪽문을 열게 되였다.    사랑은 사랑할수록 두터워지는 법이다. 남자들은 녀자를 사귀게 되면 그것부터 실험해 보려고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언약하여 며칠 안되는 어느날 영철이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 못하고 끝내 순옥이라는 문대를 향하여 힘차게 꼴을 집어 넣었다.    아들이 향 내에서 소문 높은 미녀와 약혼하였다는 말을 들은 총각 부모들은 너무 좋아서 아들을 보고 그 처녀를 빨리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독촉했다.    영철이는 부모님한테 약혼녀를 자기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좋지만 례의상 먼저 자기가 약혼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 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자 부모님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처사라고 했다.    이튿날 영철이는 례물을 푸짐하게 사들고 약혼녀 순옥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사위감이 찾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순옥이네 부모님들은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사위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꺽다리 사위감이 집안에 들어서자 집안이 대번에 환해지는 것이 였다. 사위감은 미래의 장인, 장모에게 넓적 엎드려 인사를 올리였다.    “아버님 저한테 고운 딸님을 보내 주십시오. 맹세코 딸님을 고생 시키지 않겠습니다.”    “자네가 내 딸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니 나는 자네를 믿겠네. ”    남편의 동의하자 순옥이 어머니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넘실거렸다.    인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술상을 갖추어 놓았다. 장인과 사위감이 술을 마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 성이 오씨라 하던데 본은 어디라오?”    “해주오씨 입니다.”    “나의 외조부도 해주 오씨였다오. 오씨남자들 맘이 곱지. 부모님들의 년세는 얼마오?”    “아버님은 오십오세이고 어머니는 오십삼세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와 동갑이구려, 자네는 군인생활을 몇해 하였소?”    “군복무를 삼년하였습니다.”    “남자로 태여났으면 군대를 갔다와야지. 나도 젊어서 지원군으로 조선전쟁으로 갔다 왔네.”    “존경합니다. 아버님, 저의 부친도 지원군으로 조선전쟁으로  갔다 왔습니다.”     “허허 후일 자네 부친을 만나면 군대갔던 이야기를 해야겠네”    두 사람은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진지하게 이야기 하였다.  장인과 사위가 술을 마실때 장모는 이야기 속에 끼여들어 사위, 우리 사위라는 호칭을 부르면서 안주를 연신 사위 앞에 놓으면서 많이 자시라고 하였다.    그날 영철이는 약혼녀의 집에서 진짜 사위 대접을 받고 보니 어깨가 으쓱해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며칠후 순옥이도 영철이네 집으로 인사 드리려 갔다. 영철이네 집은 마을 앞에 있었는데 널직한 앞 마당을 가진 2층 집이였다.    순옥이가 총각의 인도를 받아 시부모님들 앞에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드렸다.    순옥이는 인사를 드린 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가만히 훔쳐보니 두 분 다 인자해 보이였다. 마치 친정 부모와 같다는 감이 들었다. 키골이 장대한 시아버님은 풍채가 름름하며 의젓해 보였다. 웅글진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꼭 마치 판박이로 영철씨가 아버지를 꼭 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어머니 되실분은 너부죽한 얼굴에 뚱뚱한 몸매를 가지였는데 마음씨가 후더워 보였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감의 용모를 이리저리 보면서 흡족해 하시였다. 곱게 보아서 그런지 볼수록  티없는 옥처럼 복스럽고 귀엽게만 보였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감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어머니는 순옥의 손을 꼭 잡고 좋은 내 며느리로 되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순옥이는 처음으로 이런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그가 문을 나설 때 시어머니는 순옥의 손에 용돈까지 쥐여 주었고 자주 놀려 오라고 했다.                                                       4        영철이 부모님들은 한시 바삐 며느리를 맞고 싶어 서둘러 사돈 보기를 하였고 약혼하여 두달 만에 결혼식을 치르기로 하였다.    남자측에서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니 순옥의 부모들은 너무 서두르지 않냐고 하면서 잘 납득되지 않았다. 순옥의 부모님들의 견해로는 결혼식을 빨리하는가 늦게하는가는 결혼 당사자인 딸이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딸한테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는가 물었다. 딸은 부모님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딸이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태도를 보이자 순옥이 부모들도 결혼식을 속히 치르는데 동의하였다.    약혼하여 두달이 되자 결혼식 날이 왔다. 평소에도 이쁘다던 신부가 곱게 단장을 하니 하늘 선녀가 내려 온 듯이 아름다웠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넋이 나간 듯 신부의 몸에서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결혼식은 백산호텔에서 하였다. 결혼식 사회는 모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있는 권철이가 담당하였다.    경쾌한 음악소리가 울리자 사회자가 신랑 오영철씨와 신부 박순옥의 결혼식이 시작된다고 선포하였다. 열렬한 박수 속에서 꽃바구니를 든 남녀 아이의 뒤를 따라 선녀같이 아름다운 신부와 헌칠한 키골에 멋진 용모를 가진 신랑이 등장하였다.    결혼식에서 제일 인기를 끈 종목은 신랑신부가 식상에서 물 바가지를 아래로 던지는 종목이였다. 바가지를 던지기전에 사회자가 신랑을 보고 자식 몇을 낳겠는가 물었다. 신랑은 둘을 낳겠다고 대답했다. 사회자가 다시 신부에게 자식 몇을 낳겠는가 물었더니 신부역시 둘을 낳겠다고 대답했다. 사회자가 바가지를 들고 이 바가지는 일반 바가지가 아니라 행운의 바가지라고 하면서 던진 바가지가 원 형태로 있으면 아들을 낳고 엎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하였다. 신랑신부는 조심스럽게 식상에서 아래로 바가지를 던지였다. 바가지가 빙빙 돌다가 원상태로 됐다. 순간 하객들은 일제히 “아들이다.” 고 외치였다. 사회자는 다시 재차 던져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용케도 바가지가 뱅글뱅글 돌다가 엎어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딸이다.” 라고 외치였다. 사회자는 신랑신부가 바라던대로 자식 오누이를 낳게 된다고 하면서 축하 하였다.    요즘 세상엔 첫 자식은 딸을 낳고 둘째는 아들을 낳게 되면 백점짜리 부모라는 말이 돌고 있다. 앞으로 성철이네 부부는 어떤 성적표를 가질지 두고 봐야 했다.    결혼식 행사가 원만하게 끝났다. 저녁때가 되자 신랑의 집으로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이 축하파티를 한다며 우르르 몰려 왔다. 축하파티의 사회자로는 마을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높은 리영선생이였다. 사회자의 축하발언이 있은 뒤에 재미있는 오락회가 진행되였다. 사회자는 신랑신부에게 어느때부터 알게 되였으며 약혼은 어느때 하였는가? 만약에 강물에 어머니와 안해가 동시에 빠졌을때 누구를 먼저 건지겠는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알륵이 있어 다툴때 누구편을 들것인가? 등등의 까다로운 질문을 들이대자 신랑은 거침없이 대답을 했으나 준비가 미흡했던 신부는 떠듬거리며 대답했는데 손에 땀을 쥐였다. 사회자는 신랑신부더러 노래와 장끼자랑을 하도록 하였다. 신랑은 용기가 있게 노래를 불렀고 장끼자랑을 하였지만 신부는 얌전하게 노래만 불렀다.    신랑신부의 노래와 장끼자랑이 끝나자 하객들의 노는 시간이 되였다. 사람이 많다보니 별별 재간을 가진 재간둥이들이 다 있었다.       그들은 각가지 장끼를 부려가며 노래하고 춤을 추자 축하 파티는 고조로 올라 환희로 들끓었다.    새볔 닭이 울 때에야 축하파티는 끝마쳤다.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신랑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과분하게 술을 마시여 몸이 지칠대로 지쳐 녹초가 되였다. 신부도 지치였지만 술을 마이지 않았기에 다행이였다.     신부는 지친 몸을 달래며 신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려하는데 시어머니가 밤찬을 가지고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신랑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잠시후 신랑이 어머님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걸음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 그대로 꼬꾸라졌다.     어제 신부의 친정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한테 이런 말을 했다. 결혼 첫날 밤에는 신랑이 잠자리에 들기전에 신부의 옷고름을 반듯이 풀어 주느니라. 절대 신랑이 옷고름을 풀어 주기전에 옷을 벗지 말아라. 신랑이 어머니도 아들한테 첫날 밤 잠자리에 들기전에 신랑이 신부의 옷고름을 풀어 주는게 대대로 내려온 전통례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어머니가 아들한테 신신당부 했건만 그 놈이 몹쓸 술이 어머님의 부탁을 망각하게 하였다. 신랑은 어머님의 부탁을 망각한체 제 몸도 건사못하고 잠자리에 쓰러졌던것이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환히 비추었다. 그때까지 신랑은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준비를 마친 새각시가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그때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신랑은 새각시를 끌어 않으려 했다. 새각시가 아침을 자실 시간이 되였다며 거절했다. 신랑은 부랴부랴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옷을 입고 식사칸으로 들어갔다.     오씨 집안에서는 전통적으로 결혼식 이튿날에는 꼭 가문 잔치가 있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신랑신부는 전통민족복장을 입고 먼저 부모님들게 큰 절을 올리고 나서 차례로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올렸다. 큰절을 받고난 부모님들과 집안 어른들은 신랑 신부에게 사의금을 주었다.     가문잔치가 끝난 뒤 점심을 자시고 두루두루 하다나니 저녁때가 되였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자고 하니 시어머니가 못하게 했다. 시어머니가 말리는 데도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끝냈다. 설거지가 끝나자 침실로 들어 와 옷을 갈아입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밤도 신랑이 어제 밤처럼 지나면 어쩌라 싶었다. 그런데 웬걸 먼저 옷을 벗고 새각시를 지켜보던 신랑이 갑자기 호랑이 기세로 신부에게 덮치더니 신부의 입가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5         초혼 생활은 행복했다. 남편은 꽃같이 아름다운 녀인을 안해로 맞아 어깨가 으쓱해하며 마치 온 세상의 모든것을 독차지 한 기분으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불렀다. 안해는 자기를 정성껏 사랑해주는 믿음직한 남편한테 무한한 만족을 느끼였다. 남편은 매일 밤마다 안해가 지치도록 그 노릇을 하였다.몇 달이 지나자 남편의 열기는 차츰 식어가고 밤 생활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결혼하여 다섯달이 되자 순옥이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안해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안 남편은 너무도 기뻐 입이 귀에 걸렸다. 시부모들은 결혼한지 몇 달밖에 안되는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집안의 경사라며 너무나 좋아 기쁨을 금치 못했다. 시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며느리 입에 맞는 음식을 해주느라 분주했다. 성철이도 어머니 못지지 않게 안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사다주었다.     성철이는 안해가 어느때 임신하였을가? 손꼽으며 계산하여  보았다. 결혼식전에 임신한걸로 판단되였다. 어느날이 였던가? 생각해 보니 약혼한지 며칠 지난 어느날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 올났다. 그래, 바로 그날이다. 그날 자신이 축구 선수되여 순옥이라는 꼴 문대에 면봐로 한방에 꼴을 차넣지 않았던가…    며느리가 결혼 여덟달만에 금뚜꺼비 같은 아들을 낳자 시부모님들은 집안에 쌍 경사가 났다며 동네 방네에 자랑을 했다. 손주가 출생한지 100날이 되던 날, 온 집안이 모여 손주의 출생 100일 잔치를 베풀었다.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오덕수라는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    좋은 세월을 빨리도 흐른다. 아들이 세살이 되자 유치원으로 가게 되였다. 유치원으로 간 첫날 원장선생님은 애가 복스럽고 총명하게 잘 생겼다며 칭찬하였다.    애가 유치원을 4년을 다니고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아들애가 동갑내기 애들보다 키가 크고 총명한 재질을 보여 선생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학부모회의를 소집하였다. 학부모회의에서는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정황을 이야기 했다. 순옥이는 담임 선생님이 늘 자기 아들에 대하여 칭찬할때마다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학부모회의 때마다 어머니인 순옥이가 참가하였는데 그날은 다른 볼일이 있어 가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인 성철이가 가게 되였다. 성철이가 교실에 들어서니 선생님은 누구의 아버지인가 물었다. 성철이가 오덕수의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오덕수의 아버지라고 분명 말했는데도 선생님은 이상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는 것이 였다. 일반적으로 부자간은 어느모로 보나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집 부자간의 용모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눈치였다. 선생님의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자 성철이는 직감적으로 선생님의 그 눈길이 오히려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성철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서 담임 선생님이 내 아들이 아버지를 담지 않았다는 이상한 눈길로 나를 보았을가? 집에 돌아와 와 아들과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보았다. 자세히 사진을 보니 자신의 보건대도 확실히 아들은 아버지를 닯지 않고 제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으로 보였다. 저녁 밥상에 마주앉아 아들이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자기는 오른손 잡이인데 아들은 외손잡이였다. 의심의 병이라 아들이 행동거지를 보아도 에미 행동을 많이 닮은 것 같고 아버지인 자기 행동과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며칠후 성철이는 친구들과 모 식당에서 술을 마이고 있었다. 술을 한참 마시고 있는데 옆 칸에서 녀자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나 오늘 몇 년만에 박순옥이를 보았다. 순옥이가 남편과 함께 남자애를 데리고 백화상점으로 가는 것이 였다. 순옥이가 나를 보더니 제 남편과 아들애를 나한테 인사 시키더라. 그런데 애를 보는 순간 애가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고 제 어머니쪽을 닮았다는 감이 들더라.”     “나도 전번에 순옥이네 세 식구를 보았는데 네가 본 것과 같더라. 사람들은 모두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고 하던데… 혹 순옥이가 다른 남자의 애를 배지 않았을가?”     “야! 네가 무슨 천벌을 받을 그런 허무한 소리를 하느냐. 너도 순옥이를 잘 알지 않니 걔가 어디 그럴 애야.”     “하긴 니 말이 옳기는 한데 어쩐지 의심은 간다.”     그말을 들은 성철이 가슴에는 얼음덩이를 껴 않은듯 오싹해 났다. 머리속에는 안해에 대한 의혹의 불꽃이 튕기는 것이 였다. 며칠전에 학부모회의를 갔다가 선생님이 아들놈이 제 아버지를 전혀 담지 않았다던 눈길이 떠오르며 안해가 혹시 자기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지 않아냐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성철이는 옆칸에서 녀자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은 후 어쩐지 취하지 않고 도리여 정신이 올똘해 지는 것이였다. 친구들이 술을 더 마시자 해도 마시고 싶지 않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안해한테 진실을 묻고 싶은 생각 뿐이 였다.     술좌석에 있을 때에는 정신이 말쑥한것 같았는데 밖에 나와 찬공기를 마시고 보니 머리가 띵해 났다.    그는 도정신하여 오토바이를 몰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달리던 오토바이가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성철이 머리속에는 선량한 순옥이가 그런 일을 저지를리 없겠지? 아니, 절대 그럴리가 없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부정적인 의혹이 가첨되는 것이였다.     큰길로 한참 달려 주유소 앞까지 왔을 때였다. 난데없는 트럭이 앞을 가로 막았다. 갑자기 트럭에서 내뿜는 강한 불빛에 눈을 뜰수가 없었다. 방향을 잃은 성철이는 앗! 소리와 동시에 자동차에 부디치여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14    새봄맞은 찔레꽃 (1) 댓글:  조회:258  추천:0  2023-05-16
중편소설                                            새 봄 맞은 찔레꽃(1)                                                         1     올해는 유난히 찔레꽃이 곱게 피였다. 활짝핀 찔레꽃은 어려운 역경을 이겨온 아름다운 녀인 순옥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그녀가 다섯번째로 맞는 결혼식날이다.     그는 어설펐던 지난날을 잊고 새 아침을 맞는 기분으로 미용실을 찾아 갔다. 미용사가 준비를 하는 사이 그는 거울에 비낀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자세히 보았다. 티없이 말쑥했던 얼굴피부가 거칠어 졌고 주름살 하나없던 얼굴에 잔주름이 얼기설기 생기였다. 함치르했던 검은 머리는 어느덧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미용사의 정성스런 손길로  변모한 자신의 예쁜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    순옥이는 자신의 걸어온 인생길을 돌이켜 보니 고진감래의 인생길이 아니였나 생각되였다. 그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 어릴때에는 별로 큰 고생을 모르고 자라다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왼일인지 인생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꼬인 바줄처럼 배배 탈리기만 하였다. 다행히 석양에 접어들자 실타래처럼 꼬였던 밧줄이 서서히 풀리는 것이였다.    순옥이는 소녀 시절에는 아름다운 꿈도 많았고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순옥이가 초급중학교에 다닐때였다. 난데없는 정치운동이 시작되면서 한창 공부 할 학생들이 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아까운 시간을 허송 세월로 보내였다. 몇 해 지나 정치운동이 잠잠해 지자 나라에서는 고등교육 시험 제도를 회복하였다.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졸업반 학생들에게 참군, 상급학교 진학, 공장, 농촌으로 가는 길중에서 한가지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운수 좋게 현 소재지에 있는 모 화학공장으로 가게 되였다. 공장으로 간지 일년이 되는 어느날 공장측에서는 상급이 지시라며 농촌 호구를 가지였던 사람은 일률로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통지를 전달했다. 그녀는 울며 겨자먹기로 귀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스물 두살이 되던 해였다. 박철규와 오영철이가 그의 인생에 끼여들어 평온하던 생활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녀의 고향에는 큰 길을 사이두고 두 마을이 있었다. 박 철규는 남쪽 마을에 살고 그녀는 북쪽 마을에 살았다. 오랜전부터 두집 부모님들은 두집이 고령 박씨에 동성동본이라 가까히 보내였다. 철규는 그 녀의 오빠와 절친한 친구 사이여서 그녀의 집으로 자주 다니게 되였다. 순옥이는 어릴때부터 철규를 친척집 오빠라고 불렀다.     그녀는 철이 들면서 이성의 눈길로 철규를 보게 되였다. 그가 알고 있는 남자들 중에서 철규가 제일 돋보이였다. 순옥이가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돌아와 풀이 죽어 수심에 잠겨 있을때 부모님 못지지 않게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해준 사람도 철규였다. 철규는 인물 체격이 좋고 동네에서 수재라 할 만큼 말도 잘하고 필력이 좋아 마을 소학교에서 민반 교사로 있었다. 오라지 않으면 철규선생은 정식 교원으로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순옥이는 만약 철규 오빠가 정식 교사로 채용 된다면 당당하게 철규 선생님과 결혼을 할 꿈까지 꾸었다. 철규선생과 결혼을 한다면 사모님이란 호칭까지 받을수 있겠다는 좋은 생각을 하니 가슴이 활량거렸다. 하지만 고령박씨라는 벽이 가로 막을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철규도 처음에는 순옥이를 단순히 친척집 녀동생으로 생각했다. 한해 두해 철이 들면서 귀엽고 아름답게 변모해 가는 순옥이 고운 얼굴을 보면서 남성의 독특한 야성으로 눈여겨 보게 되였다. 철규의 눈에는 순옥이가 톡 하고 다치기만 해도 터질것만 같은 망울진 꽃봉우리로 보였다. 어느덧 망울졌던 꽃봉우리가 터지면서 한송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였다. 언제가는 저 아름다운 꽃이 누군가에게 꺾이고 말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오른 버들가지 같은 가는 허리, 이슬을 머금은 찔레꽃 같은 얼굴, 새하얀 맑은 피부, 봉긋이 솟은 앞가슴이 철규의 눈길을 자석처럼 끌어 당겨 뗄수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저 혼자만 흠상하고 저 혼자만 꺾고 싶은 욕망이 굴뚝같이 치밀어 올랐다.     남녀가 자주 만나게 되면 이성의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주 만나다 보니 두사람 사이에는 저도 모르게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 하였다.     어느날 철규는 그녀를 불러 놓고 넌지시 이런 말을 했다.     “순옥아 너는 나를 어떻게 보니?”     “어떻게 보다니요, 친척 오빠로 보지요.”     “친척 오빠 말고 어떤 남자로 보이는가 말이다.”     “녀자들한테 인끼를 끌만한 멋쟁이 선생님이지요.”     “이 멋쟁이 남자가 순옥이를 좋아해도 될까?”     “오빠가! 날 좋아 한다구? 호호호 우수워라.”     “웃긴 왜 웃니, 내가 너를 좋아하면 안되니? 정말이다. 진짜 너를 좋아 한다.”     “피-잇 거저 롱담이지요.”     “아니야 진심이다. 내 뛰는 가슴을 보여 줄가? ”     “아니, 난 아직까지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어요.”     “거짓말이지? 난 이미 네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 눈속에 나를 좋아하는 눈도장이 꼭 찍혀있는것이 똑똑히 보인다.”    “사실 나도 오빠를 좋아 해요. 하지만 아버지가 동성동본은 절대 결혼 못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고려하고 있는 중이예요”    “동성동본은 결혼 못한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이고 지금은 법률적으로 직계만 아니면 동성동본은 결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하고 다시 물어 보겠어요.”    “물어 볼것 없이 내 말만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순옥이 속내를 알아낸 철규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마음속 문을 노크하기 시작하였다. 온몸의 지력상수를 총 동원하여 아주 끈질기게, 재치있게, 사전에 있는 멋있는 말을 골라 가면서 듣기 좋은 말은 다 하였다. 사랑에 엇설눈이 튼 그녀의 눈에는 콩깍지가 끼워 철규에 대한 좋은 일만 보이고 나쁜일은 보이지 않았다. 련애를 하여 몇달이 되던 어느날 순옥는 자신을 책임져 주며 사랑한다고 한말을 진심으로 믿고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순옥이가 한창 철규와 사랑의 단 꿈을 꾸고 있는데 순옥이 어머니는 딸이 모르게 중매군을 통하여 사위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는 나날이 곱게 피는 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운 보배로 보이지만 왠지 딸이 고운 얼굴이 화를 불러 올 것 같은 우려가 심히 생겼다. 순옥이 어머니는 가만히 딸의 행동을 면밀히 주시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딸의 주위를 맴도는 총각들이 몇이 보이였다. 의심이 병이라 딸이 주위를 맴도는 총각들의 눈길이 모두 토끼를 노리는 승냥이 눈빛 같아 보였다. 자칫 하다간 딸한테 어떤 일이 벌어 질지 모르겠다는 위기심이 들었다. 하여 옛 사람들도 “과년한 처녀를 둔 부모는 우물 곁에 아이를 둔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순옥이 어머니는 이럴 때에는 근심할 것이 아니라 딸한테 무슨 변이라도 생기기 전에 딸을 지켜 줄만한 듬직한 대상자를 구해 주는게 상책이라고 여기였다. 그리하여 딸이 모르게 사위감을 물색했던 것이였다.     중매에 나선 사람은 향정부 소재지인 소영촌에 살고 있는 순옥의 고모였다. 올케가 시누이를 보고 딸이 나이 스물 두살이 되였는데 대상자를 구해야 할때가 되였다면서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청들었다. 순옥이 고모는 올케한테 한 남자를 소개했다. 그 남자는 고모네와 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그집 내막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총각이 이름은 오영철이라 하는데 현역군인이라고 했다. 금년 나이 스물네살인데 총각의 인물 체격은 나무랄데 없다고 했다. 총각이 아버지는 향정부에서 근무 한다고 말했다. 순옥이 어머니는 시누이가 하는 말이 귀속으로 쏙 들어갔다. 시누이는 올케한테 그 총각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사진을 찬찬히 보니 헌칠한 키에 잘 생긴 용모를 가진 군인이라 딸을 지켜 줄만한 대상자감이라 보여졌다. 순옥이 어머니는 당사자가 현역 군인이고 아버지가 향정부 간부라고 하니 좋은 혼처 감이라 생각했다. 그는 곧추 집으로 돌아와 남편 한테 오늘 시누이를 만나서 했던 말을 전하였다. 말수가 적은 남편도 안해의 말을 듣고는 만족해 하였다.     순옥이 어머니는 이렇게 속궁리를 했다. 당시 농촌 처녀들은 현역 군인한테 시집 가는 것을 선호하는데 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딸한테 군인 총각을 소개해주면 별일이 없으리라 여기였다.     이튿날 순옥이 어머니는 딸을 보고 농촌 녀자가 나이 스물이 넘었으면 시집 갈 나이가 되지 않냐고 물었다. 딸은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앞에 군복을 입은 의젓한 남자 사진을 보이였다. 딸은 어머니가 건너 주는 사진을 힐끔 보더니 괜찮은 사람인데 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사진을 어머니한테 돌려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미 마음속에 정해진 사람이 있어요.”    “뭐! 마음속에 정해진 사람이 있다니 누구냐?”    “철규 오빠예요.”    “철규 오빠! ? 그럼 앞 마을에 사는 박선생 말이냐.”    “네.”     그말을 듣고 순옥이 어머니는 당장 얼굴색이 검풀어지더니 언성을 높였다.     “안된다! 박철규만은 절대 안된다!”     “박선생이 왜 않돼요.”     “우리 두 집은 동성동본이니 안된다는 거다.”     “박선생이 그러는데 동성동본이라도 직계가 아니면 법률상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법이고 뭐고간에 내가 안된다면 안되는 거다. 네 아버지가 알면 큰 일 나겠다. 순옥아 그러지 말고 소영촌 고모가 소개해준 그 군인 총각을 만나봐라. 네 고모가 소개하는데 뭐가 잘못 될게 있겠느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엄마는 삐치지 말아요.”     “뭐!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삐치지 말라고! 자식일에 부모가 삐치지 않고 누가 삐치겠니. 옛날부터 녀자가 남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하였다. 앞으로 사람을 잘못 만났다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이 에미 말을 들어라.”     저녁에 순옥이는 조용히 철규를 만나 낮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철규가 날이선 말을 했다.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나야 오빠를 좋아하지만 엄마가 동성동본은 절대 안된다고 펄쩍 뛰니 어쩌겠어요?”     “내가 동성동본이라도 직계가 아니면 결혼할수 있다고 수차 말하지 않었느냐, 안되겠다. 래일 너히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     “그건 절대 안돼요. 사실 나도 이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것만 같아요. 오빠를 따르자니 부모님의 반대할 것이고 부모님의 뜻을 따르자니 오빠에게 상처를 주겠으니 이걸 어떻게 해요.  오 - 빠 내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렇게 해라. 하지만 나를 배반할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만약 네가 딴 맘을 가진다면 두말없이 부모님을 뵈려 가겠다.”   순옥이가 철규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여야 할가 고민하고 있는데 철규선생에 대한 불길한 소식이 전하여 왔다. 시 교육국에서 상급의 지시 정신에 따라 농촌에 흩어져 있던 학교들을 집중하며 농촌학교에서 채용하였던 민반교원과 대과교원들을 정간하게 되였다. 철규선생도 민반교사였기에 정간되였던 것이였다. 순옥이는 철규선생이 정간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였다. 부모님들의 철규선생을 사위감으로 받아줄수 없다고 구극 반대할때에도 철규선생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여 낼수 있었던 것은 철규오빠가 정식교원으로 될수 있는 가망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기둥처럼 믿어왔던 철규선생이 정간을 당했다고 하니 희망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2       며칠전에 소영촌에 있는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소영촌의 오씨 총각이 제대되여 집으로 왔다면서 시간을 타서 만나보라는 것이였다. 순옥이는 만나야 하나 만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번 쯤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영촌의 오영철이는 군복무를 마친후 제대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한후 얼마 안되여 향 농전소에 근무하게 되였다. 영철이 어머니는 아들한테 명신촌에 인물곱고 집안이 좋은 처녀가 있는데 만나 보라고 독촉했다. 영철이는 어머니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하여 만나보겠다고 했다.     순옥이는 고모의 주선으로 “매화” 다방에서 오영철이라는 총각을 만나기로 하였다. 순옥이가 제 시간에 매화다방에 도착하자 객실에는 고모와 그 총각이 이미 와있었다. 고모가 두 사람을 인사시키였다. 키꺽다리 총각이 각이나게 허리를 굽히며 솥뚜껑같은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였다. 순옥이도 얼른 섬섬옥수를 내밀었다. 집게같은 손이 순옥이 작은 손을 잡자 손이 부서질 것 같았다.    고모는 두사람에게 인사를 시키고는 자리를 떴다. 상을 사이두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순옥이가 정면으로 당사자를 보니 사진속의 사람보다 더 멋져 보였다. 머리 속에 그 남자와 철규를 대비해 보니 인물체격이 철규에게 짝지지 않고 오히려 더 멋져 보였다. 총각도 그녀의 고운 얼굴을 보는 순간 듣던 소문과 같이 정말 미인이구나! 헛 소문이 아니구나! 하면서 처녀한테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총각이 차물과 해바라기씨를 주문하였다. 두 사람은 차물을 마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총각이 말머리를 뗏다.     “순옥씨 가족은 몇분입니까?”     “부모님과 오빠가 있는데 오빠는 이미 결혼하여 딴 살림을 꾸리고 있고 부모님과 저하고 세식구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순옥씨 고모님한테서 들었는데 순옥씨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효녀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부모님의 시름꺼리로 되고 있습니다.”     “순옥씨가 이렇게 아름다운걸 보니 순옥씨의 부모님들도 멋지겠습니다.”     “어릴때부터 동네 분들이 우리 부모님들을 보고 궁합이 잘 맞는 부부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내가 보건대도 그런것 같기도 했습니다. ”     “순옥씨는 두분 중에서 누굴 닮았다고 생각합니까?”     “남들이 모두 나를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닮은 딸이 잘 산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덕에 별로 큰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영철씨네 가족은 몇분 입니까?”     “부모님과 누님이 한분이 계시는데 누님은 이미 출가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세식구가 합께삽니다. 순옥씨는 어떤 취미나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별다른 특기는 없지만 독서를 즐기고 음악을 즐겨 듣는 편입니다.”    “오! 그렇구만요. 저는 문학이나 음악예술에 대한 재능이 없지만 운동을 즐깁니다. 학생시절에는 축구선수였고 군대에 가서는 롱구를 즐기였습니다.”     “영철씨는 제대된후 농전소에 배치를 받았다고 하던데 부모님의 도움이 컸겠습니다.”     “내가 제대된후 얼마 안되여 농전소에 배치를 받자 아버지 후광이 있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내가 농전소로 배치를 받은 것은 아버지의 후광보다 특수병종으로 있었기에 특수병종으로 있었던 제대군인들을 우선적으로 직업안배를 한다는 정책에 의하여 배치를 받았을 뿐입니다. 내가 듣건대 순옥씨도 한때는 공장으로 배치를 받았다가 농촌호구때문에 농촌으로 내려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많이 속상했겠습니다.”     “물론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요. 처음에는 농민인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중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 전쟁에 참가한 분이 간부나 공인으로 되지 못하고 평생을 농민으로 있었다는 것이 안타가웠습니다. 더구나 농촌호구 때문에 공장에서 밀리워 농촌으로 쫒기여 내려 올때 억울하다도 생각했습다. 지금도 알록하기는 하다면 별수없지요. ”     “외람된 말이겠지만, 한가지 묻겠습니다. 순옥씨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아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솔직히 말하면 따르는 남자들이 있기는 했는데 모두 농민이여서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습니까?”     “영철씨가요! 첫 만남에 어떻게 태도표시를 할수 있겠어요. 그 대답은 후일로 미루면 좋겠어요.”     “그렇게 합시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였으니 저녁을 자시려 갑시다. “     “미안하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이튿날 고모는 순옥이를 불러놓고 그 총각이 어떠냐고 물었다. 순옥이는 괜찮은 사람이던데 하면서도 사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모가 총각을 만나 자기의 조카가 어떻던가? 물었더니 총각은 보기드문 미인이더라고 하면서 맘에 들더라고 했다. 고모는 총각에게 우리 조카는 야무진 애여서 걸케시 잡으려 해서는 안된다며 바짝 다가 붙으라고 튕겨주었다.  
13    쏙덕 령감 댓글:  조회:2588  추천:0  2018-02-19
단편소설                                                       쏙덕 령감           달동네 마을에 요즘 화제거리가 하나 생기였다. 3호동302호에 살고있던 쏙덕 령감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것이다. 쏙덕 령감의 실종을 두고 입가진 사람마다 자기의 견해를 내놓았다. 소식통이 밝다는 박령감이 말로는 쏙덕 령감의 로친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는것을 연길서역에서 본 사람이 있다고 했고. 자식덕에 미국려행을 하고나서 앉은 자리마다 미국려행 자랑을 하던 최령감은 자기딸이 그러는데 쏙덕 령감을 미국 샌프런시스코에서 보았다고  했다.                                                    1         대체 쏙덕 령감은 어떤 인물이였기에 동네사람들이 환심을 삿을가? 필자도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쏙덕 령감의 동네 사람들한테서 인기를 끈데는 세가지 독특한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쏙덕 령감이 머리칼과 수염이 특별히 수더기가 많아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둘째는 쏙덕 령감이 먹새가 좋아 “엄승냥이”란 별호를 가진것이고 셋째는 쏙덕 령감이 애처가라는 것이였다.      쏙덕 령감이 머리칼은 막말로 돼지 털같이 거칠고 꼿꼿하다고 한다. 쏙덕 령감의 이름은 엄승덕인데 이름보다 쏙덕머리가 더 인상이 깊어 마을 사람들은  부르기 좋게 쏙덕 령감이라고 불렀다 한다.      쏙덕 령감의 수염도 가관이라 한다. 수염이 어찌도 빨리 자랐으면 사람들은 쏙덕 령감이 먹은 음식물 영양가가 다 수염으로 갔다고 했을가. 쏙덕 령감이 면도하여 이틀만 지나면 온 얼굴에 까칠하게 수염이 돋았다고 했다.       몇년전 어느때였다. 쏙덕 령감은 머리와 수염을 깎지않고 길게 자리운적이 있었다 한다. 그는 몇달 머리를 깎지않고 길게 자리워 상투를 틀어 올렸고 수염을 한뽐넘게  자래웠다고 한다. 쏙덕 령감이 옛날식으로 상투를 틀어 올리고 수염을 길게 자리우니 “아반티” 같다고 했다. 그때 쏙덕 령감이 왜서 머리와 수염을 길게 자리웠을가? 알고 보니 쏙덕 령감이 머리와 수염을 길게 자리운 리유는 시 촬영가 협회의 청탁을 받았기 때문이였다 한다. 시 촬영가협회의 이름난 사진작가가 쏙덕 령감의 머리와 수염이 보기좋다는 소문을 듣고 쏙덕 령감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쏙덕 령감을 보고 자기가 금년에 북경에서 열리는 전국사진촬영작품박람회에 자기의 사진 작품을 보내려 하고 있는데 마침 선생님의 얼굴과 수염이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우리 조선족로인의 형상에 잘 어울린다고 하면서 로인님께서 조선족 로인을 대표하는 사진촬영모델로 되여 달라고 청을 들었다고 한다. 촬영이 잘되면 전국사진촬영박람회에 입선될수있고 상을 탈수도 있으며 민족화보에도 오를수 있다고 했단다. 쏙덕 령감은 거칠은 턱을 쓱쓱문지르면서 그런 사진을 많이 찍었다면서 심드렁 해 하며 거절했다 한다. 하지만 촬영가 측에서 간절하게 청구하자 할수없이 들어주었다 한다. 쏙덕 령감은 겉으로는 실은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조선족 로인을 대표할수 있는 적임자이고 앞으로 전국사진촬영박람회에 입선할수 있고 민족화보에 오를수 있다고 하자 어쩌지 못해 동의하는 척 하였다 한다.       쏙덕 령감은 그 사진작가와 잘 배합하였다 한다. 후에 정말로 우리 조선족 로인의 형상을 대표한 쏙덕 령감의 모습을 찍은 예술사진이 전국사진촬영박람회에서 입선되였으며  우수작으로 평의 되였다 한다. 쏙덕 령감은 전국 사진촬영박람회에 입선된 사진과 화보에 난 자신의 사진을 귀중한 보배처럼 잘 간수하고 있다 한다.       쏙덕 령감의 수염에 대한 재미 있는 일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번 촬영이 끝난후 쏙덕 령감은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르기가 시끄럽자 머리는 예전대로 쏙덕머리를 하고 수염도 말끔이 밀어치웠다 한다. 면도하여 며칠이 지나자 수염은 까칠하게 돋아났다. 쏙덕 령감이 머리를 쏙덕머리로 깎고 수염을 면도질하자 입이 가벼운 리령감이 쏙덕 령감을 보고  “엄승냥이가 털벗이를 했다”고 말하자 쏙덕 령감은 그말을 듣고 능그럽게  웃으면서 리령감을 붙잡고 “승냥이 털맞을 볼래”하면서 고슴도치 털처럼 까칠하게 돋은 턱으로 대방이 얼굴을 마구 비벼 됐단다. 그러자 대방은 아프다고 아우성 치고 쏙덕 령감은 좋아라 더 세차게 비벼 대여 보는 사람마다 허파가 터지게 했다고 한다.       이제는 쏙덕 령감의 수염얘기는 그만하고 “엄승냥이”란 말이 나온봐 하고는 쏙덕 령감의 “엄승냥이”란 별호를 가지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하기로 하자. 쏙덕 령감은 덩치가 큰 만큼 먹새도 좋았다고 한다. 쏙덕 령감이 이 마을로 오기전, 정확히 말하면 청년때부터 “엄승냥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한번은 마을 청년들 몇이 반두를 가지고 물고기 잡이를 갔다. 반두질을 잘하는 청년이 반두질을 하여 고기를 잡고 엄승덕이는 다래끼를 들고 고기를 담는일을 하였다. 반나절 고기를 잡고나서 고기를 잡던 그 사람은 잡은 고기가 얼마나 되냐?고 하면서 승덕이가 들고 다니던 다래끼 안을 들여다 보았다. 들여다 보던 그는 머리를 저으며 승덕이를 보고 왜서 큰 놈들이 보이지 않는가고 물었다. 승덕이는  시무룩히 웃으면서 펄펄뛰는 큰 놈들을 보니 생칠한게 먹고 싶어 보이는 족족 배를 따서 그 즉시 먹었다 했다. 그 말을 듣던 그 사람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에익, 승냥이 같은 놈”라고 욕했다고 한다. 이때로 부터 마을 청년들은 엄승덕을 엄승냥이라 불렀다 한다.       쏙덕 령감이 달동네로 이사를 온후에도 여전히 “엄승냥이”라는 말을 듣게 되였다. 마을 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쏙덕 령감은 식통이 어찌도 큰지 먹는다 소리가 나면 닭 한 마리를 통채로 다 먹었다고 한다. 닭 한마리를 혼자 먹고도 배부르다는 말을 안했다 한다. 쏙덕 령감은 이발이 어찌도 좋은지 닭이 종아리 뼈만 남겨놓고 뼈고 살이던 몽땅 먹어치웠다. 그래서 달동네 사람들도 쏙덕 령감을  “엄승냥이”라 불렀다 한다.       쏙덕 령감이 닭을 한마리 다 먹고도 배부르단 말을 안해서 “엄승냥이”란 별호를 가졌지만 진짜로 “엄승냥이”란 별호를 가지게 된것은 어느해 여름철이였다고 한다. 그해 마을 로인협회에서는 모아산 산놀이를 갔다. 산놀이를 떠날때 협회에서 술과 음료를 책임지기로 하고 음식은 개개인이 준비하기로 했다.      그날 사람들은 산주위를 한바퀴 돌고나 나서 산기슭에 있는 놀이터에 모여 앉아 점심을 자시게 되였다. 빙둘러 앉아 각자가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내 놓았다. 여러 사람들이 정성들여 준비하여 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보니 큰 연회상 못지지 않게 풍성하였다.  쏙덕 령감이 맨 마지막에 자기가 가지고 온 도시락을 열었다. 쏙덕 령감이 준비하여 가지고 온 음식을 보니 밥과 고추장, 오이, 생마늘, 물고기 튀김과 껍질을 벗기지 않은 닭알이였다. 음식을 자시기전에 로인회 회장이 술잔을 들고 여러사람들을 향하여 건강을 위하여 건배를 하자고 제의하였다. 쏙덕 령감도 술잔을 들고 여러사람과 마주치였다. 그는 기분좋게 술잔을 비우고는 먼저 껍질을 벗기지 않은 닭알을 입안에 집어넣고 우둑우둑 씹어먹는것이였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여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든 사람들이 눈길이 자기한테 쏠리자 쏙덕 령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입을 쓱 문지르고는 닭알을 껍질채 먹으니 더 고소 하다고 했다. 그날 부터 사람들은 쏙덕 령감을 진짜로 “엄승냥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한다.                                             2         달동네 사람들은 쏙덕 령감과 한 동네에서 여러해 살았지만 쏙덕 령감의 나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왜서 사람들은 한동네에 살면서도 쏙덕 령감의 나이를 몰랐을가? 필자가 동네 사람들한테 물었더니 쏙덕 령감의 금년나이 68세라는 사람도 있고 70이 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10년전 달동네 마을에 아빠트 단지가 생기면서 산지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때 쏙덕 령감이 첫 패로 이 아빠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아빠트단지의 주민호들을 보면 거개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나 몇해 한 동네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면목이 익혀지고 나이와 성씨를 알게 되였다. 그런데 쏙덕 령감은 어디에서 끄스러 먹었는지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거들먹 거리며 마을 사람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제만 잘난척하는 쏙덕 령감을 상대하기 싫어했다. 쏙덕 령감이 동네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였으니 자연 쏙덕 령감이 외돌림을 당한셈이였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 쏙덕 령감의 성씨와 나이를 제대로 알리 만무했다.      아빠트 단지가 커짐에 따라 이사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사회구역에서는 달동네로인협회를 설립하였다. 로인협회에서는 무릇 60세 이상이 로인이면 협회에 가입할수 있다고 하였다. 로인협회의 활동이 시작되자 쏙덕 령감도 로인협회에 가입하기를 신청했다. 처음 로인협회에서는 쏙덕 령감에 대한 여론이 좋지안차 회원으로 받기를 꺼려 했다. 하지만 협회 활동을 하다보니 협회에는 안로인들이 많고 밖갓 로인이 적어 집체 활동을 하기가 불편하였다. 더군다나 쏙덕 령감은 퉁소와 북을  잘 친다는 소문이 돌자 로인협회에서 받아주지않을 리유가 없었다. 로인회 회장은 웃는 얼굴로 쏙덕 령감이 협회에 참가하는것을 환영하였다 한다. 쏙덕 령감이 로인협회를 다니기는 하였지만 활동에 적극적이 되지 못하였다 한다.      쏙덕 령감은 남한테는 거칠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으나 안해 한테는 애처가란 말을 들을 사람이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쏙덕 령감의 마누라는 한때는 시에서도 이름있는 녀성기업가였다 한다. 몇년전에 중병을 얻어 병원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했다. 치료를 받아 좀 났기는 한데 완전히 근치되지 못했다 한다. 근래에 그녀는 바갓출입이 줄어들고 집안에 밖혀 있는 시간이 길다고 했다. 동네에서는 쏙덕 령감이 로친을 모시고 병원으로 자주 다니는것을 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쏙덕령감의 로친의 간호를 하다가 재작년부터 가사도우미를 두었다 한다. 가사도우미를 두었지만 그래도 령감으로서 할일이 따로 있다고 한다. 쏙덕 령감은 걷보기와는 다르게 로친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쏙덕 령감은 로친이 먹고 싶다는것이 있으면 머나다 구해 왔다고 한다. 환자들의 신체 회복에는 붉은 잉어탕이 좋다는 말을 듣고 쏙덕 령감은 사장에가 붉은 잉어를 사왔고 후에 시장에 붉은잉어가 들어 오는것이 없자 붉은 잉어가 있다는 저수지를 찾아가가 손수 붉은잉어를 잡아 로친에게 대접하였다 한다.                                             3         재작년에 시 공안국에서 퇴직한 허영철 처장이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 허처장은 평생 공직사업에 몸담구어 오면서 충실하게 사업해 왔다. 퇴직 후 여생을 느슨한 마음으로 보내니라 생각했다. 그는 퇴직하기 전부터 미리 낚시공구를 사두었다. 퇴직하자 우선 환경부터 고쳐 보려고 공기좋고 조용한 이 달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였다. 이사를 온후 낚시질을 다니였다.    재작년 어느날 허처장은 그날 따라 집안에 일이있어 늦게 낚시질을 떠났다. 자기가 맡아놓은 낚시터로 와보니 한마을에서 보아왔던 털보령감이 앉아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허처장은 자기가 맡아놓은 낚시터라고 헛기침하며 암시를 했건만 털보령감은 들은척도 안했다.      이 저수지는 고기가 잘 잡히며 특히 붉은 잉어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낚시군들이 많이 몰려왔다. 서로가 좋은 자리를 찾이하려고 신새볔에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있었다.       털보 령감 (쏙덕 령감)은 이런 주장을 했다. 다같이 돈내고 낚시질을 하는데 맡아놓은 자리가 어디있으며 먼저 온사람이 차지하면 그사람이 자리지 하면서 배심좋게 앉아서 낚시질을 했다. 허처장은 자기가 낚시질을 하던자리라 암시했는데도 털보  령감이 모르는척 하자 령감과 자리다툼을 하기실어 아쉬운대로 옆자리에 앉았다. 허처장이 드문드문 견눈질해 보니 털보령감은 신나게 고기를 낚고 있었다. 그날 허처장은 좋은 자리를 빼끼워서 그런지 그날따라 온 오전 한마리도 낚지못하였다. 고기를 낚지못해 기분히 상해 있는데 옆자리에 있는 털보 령감은 신나게 고기를 낚는 것이였다. 점심때가 되자 털보 령감은 슬렁슬렁 잡은 고기를 검질하고는 가지고 온 쟁갭에 넣고 끓이더니 고기가 익을때에 고추장과 호박, 닭알, 두부, 조미료를 넣는것이였다. 고기 익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오자 허처장은 자주 털보령감 쪽을 보게 되였다. 먹을 준비가 다되자 털보 령감은 허처장을 건너다 보며 말했다.      “옆집 량반 보자하니 한동네 사시는것 같은데 술 한잔 나누기오.”      “술을 못합니다. 혼자서 자시십시오.”      “산에가면 산사람과 친하고 바다로 가면 어부와 친한다고 하는데 낚시질을 다니면 친구가 되는게 아니겠소. 술을 못하면 물고기탕에 점심이나 자십시다.”      털보령감이 이렇게 털털하게 말하자 허처장도 거절할수없어 같이 점심을 자시게 되였다. 허처장이 술을 못 마신다고 했는데도 털보령감이 술잔에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인사나 하고 지납시다. 나 엄승덕이라 하오. 금년나이 륙십여덟이오”      “저는 허두남이라 합니다. 금년나이 예순두살입니다.”      “어디에서 사업하였소.”       “시공안국에서 사업하다가 작년에 퇴직하였습니다. 엄선생은 어디에서 사업했습니까?”       “시 객운공사에서 평생 차를 몰았수다… 허씨라 했지, 허씨네 남자들이 다 량반이지, 내 전우도 허씨오. 마음이 곱고 어려운 사람을 잘 돌봐준다고 하여 친구들은 모두 그를 허걱정이라 불렀소.”      “허걱정? 혹시 그분이 성함이 허두철이 아닙니까?”      “옳소. 허두철이를 어떻게 아오.”      “내 형님입니다.”      “두철이 동생이라!? 그렇다고 보니 형제간이 비슷하구만 허허허.”      “정말 우연입니다.”      “여기서 전우의 동생을 만나다니 반갑소. 동생 술한잔 같이 하기오.”      털보 령감은 허처장을 저례 동생이라 부르며 공안국을 다니는 사람이 술을 못하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하면서 술을 권했다. 허처장은 사양하다가 술잔을 받았다. 두사람은 술잔을 기울리면서 맞나게 점심을 자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철이는 나와 한 부대에서 5년동안 같이 근무하였소. 부대에서 제대된후 나는 시객운공사에 배치를 받았고 두철이는 왕청현 교통국으로 배치밭았지, 그후 우리둘은 가끔씩 만났소. 나이를 먹고 보니 만나는 일이 적어졌소. 두철이는 지금 뭘하고 있소?.”      “형님은 퇴직한후 지금 자식을 따라 북경에가 있습니다.”      “형님이 연길에 오면 나한테 알려주게.”      “네”      그날 이후 허처장이 쏙덕 령감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허처장은 이 마을로 이사를 왔을때 마을 사람들이 털보 령감을 쏙덕 령감이라 부르며 령감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않다는것을 알게되였다. 허처장도 털보 령감에 대한 여론이 좋지않자 모르는척하며 지나왔다. 그러다 그번 낚시터에서 털보 령감과 이야기를 나눈 후로는 다른 시각으로 털보 령감을 보게 되였다. 쏙덕 령감역시 허처장을 알게된 후로는 태도가 변화였다.       허처장은 동네 사람들 앞에서 쏙덕 령감을 엄기사님이라 불렀고 그를 만나면 형님이라고 깍드시 인사를 하였다. 허처장은  엄기사님은 자기형님의 전우라 하면서 엄기사님은 평생 시객운공사에서 뻐스운전기사로 근무하였으며 30년 무사고 행차를 한 분이라 하였다. 그말을 들은 후 마을사람들은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존경의 눈길로 쏙덕 령감을 보게 되였다. 따라서 동네 사람들도 쏙덕 령감이라 부르지 않고 엄기사님이라 불렀다.      후에 밝혀진 봐에 의하면 쏙덕 령감은20세에 참군하여 모 포병부대에서 5년동안 근무하였다 한다. 부대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부대 생활 5년만에 지방으로 제대되여 배치를 받았다 한다. 배치 받은 단위가 시객운공사라 한다. 쏙덕 령감은 수차 주교통처와 성교통청으로 부터 선진생산자란 영예칭호를 수여 받았다 한다.      필자도 쏙덕 령감의 래력을 듣고서 이렇게 훌륭한분이 어찌하여 허처장이 오기전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투박한 령감으로 보였을가? 의혹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쏙덕 령감의 거칠은 외모에도 문제가 있지만 주요한것은 그분의 직업과 련관되여 있다고 생각되였다. 정확히 말하면 운전수란 직업이  쏙덕 령감을 거칠은 성격을 가진 투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였다. 사람이 살다보면 환경이 지배를 받게 된다. 운전수들이 말을 따른다면 자동차 운전수들은 차를 몰면서 한쪽 다리는 병원에 있고 다른 다리는 감옥에 있다고 한다. 차를 몰다보면 수시로 위험한 일에 봉착하게 되고 이외의 사고를 저지르거나 당할수도 있다. 자동차 운전사들은 항상 조심성을 가져야 하고 혼자 차를 몰고 다니는 시간이 많고 고독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적다. 대화를 나누어야 소통이 잘되는 법이다. 소통할수 있는 시간이 적은 운전수들은 자연 말하기 실어하고 말을 한다해도 투박하게 말했다.      한때는 자동차 운전수들이 과장보다 급이 더 높다는 말이 돌았다. 교통이 불편한시기에 차를 몬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높을 때였다. 그런 시절에 차를 몰았으니 쏙덕 령감인들 성격이 유다르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4        쏙덕 령감의 실종으로 온동네가 다 디숭숭해 하는데 이상스럽게도 쏙덕 령감이 실종을 두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녀인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쏙덕 령감의 실종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그 녀인이 잘 알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함구부언하고 있으니 마을의 여론이 자연 그녀 한테로 쏠리게 되였다.      여론의 중심 인물은 채순복이라 하는 곱살스럽게 생긴 녀인이다. 나이 륙십이 넘었는데도 살결이 맑져 나이에 비하여 젊다고 할 그런 미모의 녀인이였다.      채순복은  s 무역회사에서 사장직을 맡고 있다가 은퇴한 사람이다. s 회사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는 동북삼성에 여러개 분회사를 두고 있었다. 주내의 각 시와 현에 분점이 있었다. 회사에는 현대식으로 된 대형 랭장창고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계울철이되면 국외에서 해산물들을 많이 구입하여 들여 오는데 어떤때엔 저장실이 넘어날 정도로 많이 구입하였다. 겨울에 구입한 상품들을 랭장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일년내내 소매 상인들에게 공급하고 있었다.      채순복사장은 나이 륙십이 넘자 회사의 사장 자리를 내려놓고 은퇴하였다. 그는 은퇴하면서 자기 자식한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고 쏙덕 령감의 아들한테 넘겨주었다. 사람들은 채사장이 은퇴를 하면서 왜서 자기 자식들한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타남인 쏙덕 령감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었을가? 의아해 하였다.       알고 보니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필자가 조사한데 의하면 채사장이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고 타남인 쏙덕 령감 아들한테 경영권을 물려준 리유는 이러했다.  워낙s 무역회사를 꾸린 원조는 쏙덕 령감이 부인인 정영숙회장이였다고 한다. 정영숙회장이 이 회사를 설립하고 꾸려나가다가 나이 륙십이 되자 불세로 병에 걸리여 회사를 제대로 출근할수 없자 회사의 부사장인 채순복 부사장한테 경영권을 위임하였다 한다.       s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정영숙회장과 채순복사장은 시 수산물회사에 같이 근무하였다 한다. 당시 정영숙회장은 업무과장으로 있었고 채순복사장은 일반  과원이였다.  정영숙과장의 보건대 채순복이는 일은 깔끔히 잘 처리하는데 왼 영문인지 과원들이 질투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왜서 그럴가? 분석하여 보니 채순복이 남다른 미모때문이였다. 미츨한 체격, 흰 살결, 초생달 같은 눈이 사람들의 의목을 끌에  녀인들의 시샘을 자아 낼 그런 미모였다.       정영숙이 채순복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도 채순복이를 신임하게 된것은 채순복 미모는 비록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기는 하지만 회사의 영업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보았기 때문이였다. 채순복을 만나 거래한 사람마다 채순복이를 좋게 평가하면서 그와 거래를 끊지않고 장기적으로 사업 거래를 하여왔다. 채순복에 대하여 뒤에서 수근 거리며 헐띁었지만 채순복이는 그런 헌담에는 아란곳 하지않고 엄무에만 집중하였다.  채순복의 이런 실정을 잘 파악한 정영숙과장은 이모저모 채순복을 믿어 주고 도와 주었다.       기업소 개혁이 실시되자 시 수산물회사도 정리 정돈을 하게 되였다. 정영숙은 선참으로 회사를 나와 s 무역회사를 꾸리였다. s무역회사는 정영숙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경영관리를 잘하여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정영숙회장이 회사를 꾸릴때 그의 한쪽팔로 되여 협조한 사람은 다름아닌 채순복이였다고 한다. 정영숙회장은 사업열정이 높고 물샐틈없이 까근히 일처리를 하는 채순복이를 마음에 들어 회사를 설립하자 선참으로 채순복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중임을 맡기였다고 한다. 정영숙회장은 출국할때나 주요한 일이 있을때에는 꼭 채순복을 데리고 다니였다. 수십년간 같은 사업터에서 일하였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대방을 믿고 신뢰하면서 사업을 잘하여 왔다고 한다. 채순복은 무역회사에서 사장겸 업무부 경리로 발탁되였다.        사람은 한치의 앞날을 내다볼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s무역회사가 한참 호황기를 누리고 있을때 난데없이 정영숙회장한테 액운이 덮쳐왔다.      사람은 나이를 못속인다. 박달나무 처럼 단단하고 명철한 두뇌와 강한 정신력으로 사업하던 정영숙회장이 나이 륙십이 되자 단단한 박달나무에 좀이 먹듯이 병마가 그의 몸에 덮쳐 들었다. 어느날 밤을 자고 나니 갑자기 온몸이 나른하고 눈앞이 캄캄해 나면서 정신이 흐리멍텅하였다. 무얼 하자고 해도 정신 집중이 안되였다. 너무도 이상스러워 병원을 찾아가 전면 검사를 하였다. 담당의사는 확진서를 보면서 환자분이 너무 과도하게 사업하여 피로로 인해 고혈압과 당뇨병합병증이 왔다고 했다. 정영숙회장은 그말을 듣고 깜짝 놀라 당황해 하자 의사는 피로로 온 병이기에 크게 근심하지말고 사업을 정지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라 했다.       정영숙회장은 이럴가 저럴가 고민하다가 할수없이 의사의 건의대로 사업을 중지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아 건강이 다소 회복되자 회사일이 근심되여 회사로 출근하였다. 출근하여 보니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않고 무겁고 정신집중이 되지않았다. 억지로 몇일 버티며 출근하고 보니 병이 다시 발작하는 감이 들었다. 이렇게 회사와 병원을 반복적으로 오가다보니 몸은 점점 허약해 졌다. 정영숙사장은 건강 악화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하였다.      누구에게 사업을 인계할가? 고려하다가 채순복 부사장한테 인계하기로 했다. 자기가 병원으로 다니는 사이 채순복 부사장은 사업을 깔끔히 잘 진행하고 있었다. 정영숙회장은 그런 채순복 부사장한테 회사의 경영권을 맡긴다면 마음이 놓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장정에 의하면 회사는 반드시 각자가 투자한 지분에 의하여 주주와 리사가 있게 되였다. 회사의 경영권은  주주회에서 결정하기로 되였다. 하지만 지분이 많은 대주주가 결정한대로 한다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정영숙회장은 대주주이기에 경영권을 누구에게나 위탁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정영숙회장도 자기 자식에게 우선적으로 경영권을 넘길 생각을 하지 않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어쩔수없는 상황이였다. 당시 정영숙사장의 아들은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였으므로 부모들의 사업을 인계 받을수 없었다. 아들이 학생이여서 승계를 할수 없었다면 남편에게 인계하면 안될가? 생각했다. 남편에게 인계 할수도 없었다. 평생 자동차 운전대만 쥐고 있었던 량반에게 불세로 상업관리를 하라고 하자니 말도 안되는 일이였다. 정영숙사장은 회사 인계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끝에 채순복을 지명했던것이다. 정영숙 사장은 채순복을 불러놓고 s회사를 맡아 달라고 청들었다. 채순복은 정회장이 회사를 맡아달라고 하자 자기 능력으로는 회사를 맡을수 없다고 하였다. 정회장이 여러차례 간곡히 제기 하자 할수없이 회사의 중임을 맡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언약을 하였다. 자기 나이 륙십이되면 회사의 모든권리를 포기하고 정영숙회장의 가족에게 인계하겠다고 했다. 정영숙회장도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5        세월은 류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채순복사장이 나이도 륙십에 다달았다. 그사이 정영숙회장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류학을 가서 경영관리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채순복 사장은 성숙한 정영숙회장의 아들을 보면서 회사 경영권을 정영숙회장 아들한테 넘길때가 돌아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영숙회장과 토의한후 주주회의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정회장 아들인 엄덕재에게  넘기기로 결정하였다. 정영숙의 아들 엄덕재는 채사장이 회사의 경영권을 맡으라 할때 경험이 없다고 하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회사주주회에서 자기에게 경영권을 넘긴다고 정식 결정을하자 쾌히 접수 하였다. 채순복사장은 엄사장의 제의에 의하여 고문으로 되였다.      사업상에서 두집사이가 이런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니 인간관계에서도 친형제처럼 가까히 보내였다. 채순복사장은 정영숙회장을 언니라 불렀으며 쏙덕 령감을 형부라 불렀다. 쏙덕 령감도 채순복이를 처제라고 불렀고 정영숙도 채순복을 동생이라 불렀다. 쏙덕 령감의 자식들도 채순복이를 이모라고 불렀으니 두집사이가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집작할수 있었다.      두집사이가 이만큼 가까운것을 아는 사람들은 쏙덕 령감의 실종에 대하여 채순복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기였다. 그런 채복순이가 왜서 함구부언하고 있을가? 필자도 궁금했다. 후에 그 두가정의 내막을 잘알고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채순복이가 쏙덕 령감의 행방을 모를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분석한걸 보면 표면상에서 보면 두집사이는 아주 화목하게 보낸걸로 보이지만 기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웬일인지 재작년부터 두집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생기였는지 채순복이가 정영숙의 집으로 다니는것을 보지 못했다 했다.      내가 가만히 조사하여 보니 그 두집에는 확실히 피치못할 문제가 잠적해 있었다. 어떤 문제일가? 분석하여 보니 두집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주요한 원인은 정영숙의 투병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변한데 있다고 한다. 정영숙이 사업할때 항상 흉금이 넓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말을 곧장 들어왔다. 그러던 정영숙이 투병생활을 하면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속 졻은 녀자로 변했다는 말이 돌았다.       병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 정영숙도 병으로 인하여 밖같 출입이 적어지고 만나는 사람이 적어지자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였다. 처음에는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 하였다. 의심병이 증폭되면서 수십년 같이 살아온 남편도 믿어지지 않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옛날에 어떤사람이 도끼를 잃어 버리고나서 아랫집 사람이 가져 간것처럼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아랫집 사람이 걸음걸이조차 자기 도끼를 흠쳐간것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영숙은 이제는 남편이 일거일동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간혹 남편이 웃는 얼굴을 하여도 위선적인 거짓웃음으로 보이였다. 사람의 죽을때가 되면 정이 멀어진다고 하던데 죽을 때가 가까워서 그런지 정영숙은 잔소리가 많아지고 남편이 말을 비꼬와 들으면서 앙키게 말했다. 그러니 자연 남편은 안해와 말하기 실어하고 안해 방으로 들어오기를 겁나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으리라 생각했는데 윈걸 시간이 지날수록 정영숙의 의심의 병은 점차 확대 되면서 처음에는 남편을 의심하던데로 부터 수십년 같이 동업하여온 채순복이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채순복은 처음에는 정영숙이 자기를 으심하고 허망 말을 하여도 병으로 그렇거니 하고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그러던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영숙의 말속에 어딘가 모르게 가시가 숨어있는것 같아 보이면서 정영숙이 곁으로 가기를 꺼려 했다. 정영숙이 때론 가슴에 못을 밖을 말을 불쑥불쑥 내 던질 때면 정이 팍팍 떨어지었다.       정영숙이 정신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 되면서 인제는 쏙덕 령감과 채순복이를 의심하던데로 부터 불륜관계로 까지 확대하여 보는 것이였다. 정영숙은 령감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는데 밤에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낯에도 령감의 밖으로 나가는것을 통제 하였다. 어디로 가던지 오후 세시전에는 집으로 꼭 들어오라는 계엄령까지 내리였다. 쏙덕 령감은 이런 마누라를 보면서 정말 이전의 정영숙이 옳은가? 의심 할 정도였다.       정영숙이 의심병은 점점 심해지면서 령감은 물론 자기가 가장 신뢰해 왔던 채순복까지 의심하게 되자 채순복이는 더는 참을수 없어 정영숙의 집으로 다니던 차수가 점점 멀어지더니 작년부터 아예 발길을 끊게 되였다. 발길을 끊었으니 채순복은 쏙덕 령감의 행보를 알리 만무했다.                                       6       세상일이란 요지경 같기도 하다. 오늘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 했다가도 래일이면 그일이 뒤집어 지는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다.      이야기 스토리가 쏙덕 령감의 실종으로 부터 시작되였는데 이제는 정영숙과 채순복의 관계까지 넘어갔다. 글을 쓰다보니 이렇게 됐다. 픨자의 견해로는 채순복이가 억울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들은 봐에 의하면 채순복이가 너무 억울하다고 볼수없다. 채복순 자체로는 정영숙과의 관계에서 꺼림직한 일을 한적이 없다고 하였지만 조사하여 보니 애매하게도 어떤 문제는 채순복이 책임져야 하겠다고 생각되였다. 들은 말에 의하면 정영숙이 채순복이를 의심하게 된 한가지 사건은 일이 꼬이자고 그랬던지 채순복이가 가지고 다닌 장갑과 정영숙이 장갑이 똑 같은 류형의 장갑이여서 정영숙이 의심을 사게 되였으며 모순의 격화된 시발점이 되였다 한다.     재작년 겨울 채순복은 손수담근 김치를 가지고 정영숙이 집으로 갔다. 집안이 더워서 바깟 날씨가 그렇게 추으리라 생각지 않고 옷을 엷게 입고 나섰다. 바삐나오느라 장갑을 끼지않고 맨손 바람으로 꾸럭을 들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씽하고 찬기가 몸에 덮치였다. 그때사 옷을 엷게 입고 나온것을 후회했다. 집으로 다시올라갈가? 생각했다가  정영숙의 집이 멀지 않으으로 빨리 가면 되겠지 하고 줄달음쳤다.      정영숙의 집으로 들어가니 쏙덕 령감이 맞아주었다. 쏙덕 령감은 채순복의 가지고  온 짐을 받으며 빨갛게 언 순복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처제 바깥이 무척 추울텐데 어찌하여 이렇게 옷을 이렇게 엷게 입고 왔소… 이것보지, 맨손으로 왔구만, 장갑은 어쩌고, 손이 다 얼었겠다. 쯔쯔. ”     “춥기는 무슨 춥다고 그래요.”순복이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손을비볐다.     “뭘 이리 많이 가지고 왔소”     “언니가 좋아하는 염채무우깍두기 김치를 가지고 왔어요.”     “김치야 따뚯한 날에 가지고 와도 델텐데 하필 이렇게  추운날에 가지고 왔소.  어서 빠리 들어와 몸을 녹이오.”     “빨리 오느라 나올때 홀 장갑을 잊고 나왔어요. 언니는 어떠해요.”      “요즘 좀 낳은것 같소.”     순복이는 김치를 쏙덕 령감한테 맏겨놓고 고추 정영숙의 침실로 들어갔다. 정영숙은 채순옥이가 들어오자 반색해하면 맞어주었다. 그는 이 추운날에 왜 와냐고 하면서 순복의 손을 잡았다. 순복이는 오늘 집에서 김치를 담구다가 언니가 염채김치를 좋아하던일이 생각나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말을 듣고 영숙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정영숙은 기분이 좋아 순복이와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다. 채옥이도 그날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 갔다.      설을 며칠앞둔 어느날 채순복은 설인사를 드릴겸 병문안을 하려고 정영숙이네 집으로갔다. 갈때 몸단장에 신경을 썼고 연한 화장을 하였으며 명절 선물도 푼푼히 장만하여 가지고 갔다. 정영숙이네 집에 도착하여 들어서니 가사도우미 아주마가 맞아주었다. 가사도우미 아주마가 짐을 들고 그를 안내하며 정영숙의 침실로 들어갔다. 마침 쏙덕 령감이 마누라의 어깨를 안마해주고 있었다. 순복이가 들어가자 쏙덕 령감 부부는 채순복을 보고 반가워 하였다. 가사도우미 아주마는 물건을 정영숙의 침대머리에 놓았다. 채순복은 정영숙의 한테 다가가며 “두분 새해에 건강하고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송구영신의 인사를 드렸다.  정영숙은 채순복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집에 일이 바뿔테데 왔소. 거저 올것이지 뭘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소.”      “언니 요새 건강이 어때요. 어니의 건강에 도움이 될지몰라  보건품을 삿어요. 다른 것은 형부에게 드리는 선물  이예요.”      “나한테 줄 선물을 가지고 왔다?고 무슨선물이오.”      “넥타이 예요. 색갈이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쏙덕 령감은 잽싸게 선물 꾸럭에서 넥타이를 끄집어 내고는 거울을 향하여 넥타이를 대 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순복이를 보고 고운것을 삿다고 칭찬하였다. 령감이 넥타이를 가지고 좋아하는 장면을 물끄럼히 보던 정영숙은 이런 말을 했다. “가득이나 몸치레에 신경을 쓰던 령감이 넥타이를 가졌으니 바람 나겠다.”      “언니도 참, 별소리를 다해요. 형부가 어디 바람쓸 분이예요.”       “사람일을 어떻게 앓어”      순복이는 대꾸를 하지않고 외투를 벗어 옷 걸개에 걸고 의자에 앉으며 장갑을 벗어서 의자 머리에 놓았다. 채순복이 의자에 앉자 두사람은 기분좋게 온갓 이야기를 다하였다.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정영숙이 채순복의 앉은 의자 머리에 놓인 장갑을 보더니  눈빛이 번쩍이며 말했다.       “동생 장갑을 좋은걸 삿구만 어디에서 삿소.”       “백화상점에서 삿어요. 언니 맘에 들어요. 내가 똑 같은걸로 하나 사줄가?”       ”아니, 나한테도 동생것과 같은 장갑이 있소”       그리고는  남편을 시켜 장갑을 가져 오라고 했다. 쏙덕 령감은 주춤하다가 책상 서랍을 열더니 거기서 순복이 장갑과 똑같은 장갑을 내놓았다.      “정말 내 장갑과 같은 것이네요 어느때 삿어요.”      “몇일전에 령감이 결혼 40주년이라며 이 장갑을 사왔습데”      “형부가?”      형부가 결혼 기념으로 사왔다는 말을 들는 순간 순복이는 속이 꿈틀했다.      “결혼기념으로 장갑을 산것 보면 형부도 참 멋진 분이예요”      “령감은 무뚝뚝해도 어떤때엔 어물하다니깐”      쏙덕 령감은 별거 다  가지고 그랜다고 하면서 시무룩히 웃었다.       그날 세사람의 점심을 같이 자시였는데 정영숙은 시개없이 여러말을 했다. 순복이는 듣고만 있고 별로 말하지 않았다. 순복이는 무슨 맛으로 점심을 자시였는지 몰랐다.      왜서 채순복이가 정영숙의 내놓은 장갑을 보면서 그렇게 놀라 했을가?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다. 며칠전에 쏙덕 령감이 결혼기념일을 맞으면서 안해에게 무엇을 선사할가? 생각하다가 “녀자들의 품위를 올려주는데는 깜찍하고 예뿐장갑이 제일 이다”라는 어느책에서 본 기억이 떠올라 깜짝 이변트로 장갑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백화점에가 장갑을 고르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예쁘고 깜찍한 장갑을 보았다. 강갑값을 치르려 하던순간 뭔가 머리에 떠 올랐다. 한달전에 채순복이가 장갑이 없이 맨손으로 김치를 가지고 왔던일이 떠오르면서 똑 같은걸로 하나 더 삿다. 그는 두개중에서 하나는 마누라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채순복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그일을 마누라에게 말하지않았다. 채순복이는 쏙덕 령감이 장갑을 주자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쏙덕 령감은 처제가 우리집을 위하여 많이 고생하였다면서 처음으로 형부가 주는 약속한 선물이지만 받아달라고 하였다. 순복이는 그말에 어쩔수가  없어 받았다.        순복이는 그날 정영숙 앞에서 형부가 사준 장갑이란 말을 안한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쏙덕 령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채순복이가 고지곳대로 형부가 장갑을  사주었다는 말을 했더라면 큰 일이 날번 했다. 병으로 신경이 예민할대로 예민하여진 정 영숙은 무슨 꼬트머리라도 잡으면 걸고 들려고 하였는데 꼬트머리가 잡히지 않아 다행이였다.       그날 이후 순복이는 정영숙의 집으로 갈때는 각별히 조심하였다. 정영숙의 병증을 아는 이상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가게 되였다. 같이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장갑과 같은 일이 우연히 나올수 있을수 있으니 될수있는한 정영숙과 만나지 않는것이 분쟁을 피면할수 있는 상책이라고 생각 하였다. 한편 쏙덕 령감에 대하여 주의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업관계와 인정관계로 형부라 불렀지만 어쩐지 쏙덕 령감을 가까히 할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숙이 투병생활을 하면서 부터 쏙덕 령감이 자기를 보는 눈길이 달라 보이였다. 거칠어 보이는 쏙덕 령감이 별로 살갑게 대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이번 장갑문제를 보아도 그렇다.     순복이는 쏙덕 령감의 어색한 행동을 보면서 “남자들은 젊으나 늙아나 늑대량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말이 생각났다. 그런 관점으로 쏙덕 령감을 보니 쏙덕 령감이  눈빛이 어디론가 음험해 보이였다.      사람의 감정변화는 누구도 막을수 없다. 채순복이가 쏙덕 령감에 대하여 경계할 남자라고 생각하고 조심했는데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그 령감에 대한 이상 야릇한 감정이 숨어 있음을 느끼였다. 쏙덕 령감의 건장하고 투박한 성격이 어쩜 남성이 기질이 아닐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6        쏙덕 령감과 채순복 사이에 잠재하여 있었던 장갑문제까지 이야기 했으니 이제는 끝을 맺어야 할것 같다. 본문의 서두에 쏙덕 령감의 실종을 언급했는데 이제는 진짜로 쏙덕 령감의 어디로 갔을가?하는 의문을 풀어야 할때가 된것 같다.      쏙덕 령감의 실종에 대하여 제일 잘 알 사람은 쏙덕 령감의 아들 엄덕재였다. 쏙덕 령감의 아들은 처음에 동네 사람들이 자기의 아버지의 행보에 대하여 이렇쿵 저렇쿵 뒷 공론을 하자 제밥먹고 할일이 없어 별 공론을 한다고 여기면서 침묵을 지키였다. 그러다가 동네 여론이 예사롭지않게 차차 확대 되면서 자기부모들로 부터 채순복 이모에게까지 전의되자 수수방관 할수 없었다.       결국 쏙덕 령감의 아들의 말문을 열었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헌독이 새독을 깨듯”이 그렇게 든든하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병시중을 들다가 몇달전에 지쳐서 쓰러졌다고 했다.  병원에가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담낭암 2기라 했다고 한다. 의사는 연변에서 치료하는것도 좋지만 큰 병원에가 다시 검사를 받아보고 치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건의 했다 한다. 그리하여 북경으로 가게 되였다 한다.  북경에서 치료받아 효과가 좋자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녀동생한테서 소식이 왔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미국에 오시여 료양하시면 건강 회복에 좋을것이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여 부모님들은 북경에서 집적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12    홍씨네 형제 (2) 댓글:  조회:1537  추천:0  2017-12-20
                                                 8        일식이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몸이 나기 시작했고 만사가 순리롭자  다리를 쭉 페고 잤다. 그런데  요즘 다리를 꼬부리고 잔다. 왼일인지 재작년 부터 가세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시름을 놓을수 없었다.     재작년가을이였다. 벼가을을 한창 하는데 벼수확기가 고장나 수리하느라 몇일 걸리였고 수확기를 수리하고 일을 시작 하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운전기사의 장모가 사망되였다는 급보가 왔다. 운전기사는 일이 바뿐줄 알면서도 할수없이 처가로 가게 되였다. 일식이는 다른 운전기사를 채용하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쉴참이 없이 분전하여 다수면적은 수확 하였는데 애꿋게도 큰 눈이 내려 눈을 펀히 뜨고도 적지않은 손실을 보았다.     일식이를 더 골치 아프게 한것은 정미소였다. 그렇게 잘되던 정미소일이 왼일인지 근래에 잘되지 않았다. 농장이 돈줄이나 다름없던 정미소 일이 잘 되지 않자 슬그머니 일식의이 근심거리로 되였다.     몇년전 어느날 일식이 처가 남편을 보고 이런 건의를 제기 했다.     “여보 우리네 정미소를 개조 하여야 할것 같아요. 지금의 낡은 정미기계로는 시장수요를 만족시킬수 없을것 같아요. 정미기와 기타설비를 현대식으로 바꾸어 봅시다.”     “아직은 몇해 더 써먹을수 있으니 그때 보기오.”     일식이는 그때 한창 목장일에 신경을 쓰다나니 안해의 건이를 밭아들일 여유가 없어 심드렁히 대답했다.     지금 후회 막급이다. 그때 안해의 말을 귀담아 듣고 일찍 손써 정미소를 개조하여도 이런 위기가 오지 않았으련만…     일식이네 정미소에서 그냥 구식기계를 사용할때 이웃 마을에서는 많은 자금을 들여 외국설비를 사들여 정미소와 가공공장을 새롭게 건설하였다. 기계가 좋으니 미질도 좋고 출미률도 높았다. 서비스가 좋아 이정미소를 찾는 손님이 많게 되였다. 일식이네 가공소로 오던 손님들도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일식이네 정미소로 다니던 단골손님들마저 하나 둘 그 정미소로 가다보니 일식이네 정미소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일식이는 정미소 설비를 갱신하여 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한발 늦은 감이든다. 정미소 설비를 다시 새것으로 바꾼다 하여도 이웃 마을의 정미소를 따를수 없다고 생각 됐다. 이미 그쪽으로 손님들이 쏠리였으니 다시 돌려세우기는 천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안해가 일찍 정미소를 개조하여야 한다고 한말을 무시하고 지나온 자신을 후회했다. 자기 주머니로 들어올 돈이 남한테로 흘러가는것이 가슴아픈 일이였건만 어쩔수가 없었다.      일식이가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가물이 단비인양 좋은 소식이 날아 왔다. 과학기술대학 최고경영자 연수생 동기인 정학룡한테서 전화가 왔다. 홍일식사장을 급히 만나자는 전화였다. 일식이는 바쁜 걸음으로 정학룡씨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부산돌솥밥집”으로갔다. 학룡씨가 만나야 할 용건을 말 했다. 학룡씨는 일식이를 만나자고 한 리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는 자기가 몇년간 한국에 가 있었는데 한국에는 커피문화가 상당히 발전 하였다 했다. 한국의 곳곳 마다 커피를 마일수 있는 장소가 있으며 커피자판기들이 있었다고 했다. 커피를 자시는것도 모두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귀국한후 국내의 큰 도시들을 돌아 보았는데 큰 도시들에서도 종이컵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더라고 했다. 자기가 분석하여 보니 종이컵을 만드는것이 시장 수요에 맞는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도 환경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종이제품을 사용하는것을 제창하고 비닐제품을 사용하는것을 제한 한다고 했다.     학룡씨는 선진국들에서는 이미전에 비닐로 음식물을 포장하는것을 금지 하고 음식을 포장할때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의 형세를 보아 종이컵은 상당할 정도로 인기 있는 상품으로 될수 있고 발전 전망이 있는다고 했다. 연변에는 근방 종이컵을 사용하기 시작 했지만 사용이 급속도로 발전할것이라 했다. 연변에는 아직까지 종이컵을 생산하는 공장이 없다고 했다. 정씨는 지금 종이컵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운다면 좋은 효과를 나타낼것이라 했다. 자기는 이런 정보를 알고 종이컵을 생산하는 공장을 꾸리려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여 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라 했다. 여러 사람들과 련계하는 중인데 제일 믿음직한 분은 홍사장이라 했다. 같이 해볼 의향의 있는지? 알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정씨는 솔직하게 자기가 기술과 기계설비를 책임지고 일식이가 공장 건물을 지을수 있는 자금을 돼 줄수있다면 합작하여 공장을 세워 보자고 했다. 일식이가 듣고 보니 정씨의 말에 일리가 있고 성공할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보이였다. 일식이는 정씨를 보고 자금이 얼마나 수요 되는가? 물었다. 정씨는 일차성적인 투자액이200만원 좌우로 들것으로 예산하는데 자기가 100만원을 책임질수 있다고 했다. 그외의 자금은 합작할 대상들이 투자하면 된다고 했다. 일식이가 가만히 따져보니 자기가 100만원을 부담해야 할것 같았다. 자기 몪으로 책임질 금액이 100만원이 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털컥 했다. 농사짓는 사람한테는 100만원이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100만원은 합작농장이 일년 수입보다 높다. 그는 그만  뒤주츰 했다.      정씨는 일식이 행동을 보고 일식의 마음을 헤아려 본드시 홍사장께서 마음에 안들면 합작을 안해도 된다고 했다. 정씨가 그렇게 말하자 일식이 쪽에서 오히려 돈을 벌수있는 좋은 항목을 노치는것 같아 조급해 났다. 그는 경제 머리를 돌려 보았다. 성공할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 큰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근심이 앞섰다. 그는 홍사장이라는 명예때문에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합작할 이향을 밝히였다.      일식이는 이튼날  농업 은행으로 찾아가 대부금 신청을 하였다. 은행대출과에서는 대출을 받아야 할 리유를 설명하라고 하였다. 일식이가 종이컵공장를 꾸리려 하는데 앞으로 전망이 있는 항목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대출과의 책임자는 일식이 설명을 들어보고 대출을 해 줄만한 항목이라 했다. 대출을 해 주겠다면서 시과학기술감독국의 감정서와 공장설계 방안과 구체 사항보고서를 가지고 와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출을 받자면 대출 보증을 위해 대출 금액에 해당되는 가옥소유증과 은행 저금카드, 자산등록증을  담보로 저당잡혀야 하며 담보인 두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식이는 그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짓껏 대부금이 먼지 모르고 지나온 터라 대출을 받는것만도 부담 스러운데 이렇게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들이 돼자 어찌 할봐를 몰랐다. 가옥소유증과 재산등록증을 저당 잡혀야 한다고 하자 마치 도박판에 끼여 든 감이들면서 섬득한 생각이 들었다. 대부금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범보다 무서운 리식이 서리여 있는 돈이다. 자칫 잘못 했다간 도박에 잘못 걸려들어 전 재산을 탕지하는 꼴로 되지 않을가? 하는 섬득한 생각이 들었다.     일식이는 저녁에 정씨를 만났던 일을 안해에게 상세히 말했다. 묵묵히 남편의 말을 듣고 있던 안해의 표정이 심각해 지더니 무겁게 말했다     “여보 들어보니 좋은 항목인것 같은데 우리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고 우리집 형편으로는 공장을 세우는 사업에 삐칠 처지가 아닌것 같아요. 지금 농장이 불경기에 처해 있는데 어디가서 그 많은 자금을 구한다고 그래요.”      “자금이야 은행 대부금을 맡으면 되지 뭘 근심할게 있소.”     “은행에서 거저 대부금을 준답 데다. 내 친구 영자네를 보세요 영자 남편도 사업을 하려고 가옥소유증을 담보로 하고 대출 받아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파산되면서 지금 거리바닦에 나 안게 되였어요. 제발 모험은 하지 말아요.”      “나 당신을 만나 여짓껏 살아 오면서 우리가 하자고 한일들이 다 성공하였소. 이번에도 꼭 성공할것 같소.”      “사람이 백번 잘하다가 한번  실수로 일생을 망치는 일이 흔히 있어요. 어쩜 이번일이 우리 가정과 농장의 운명을 뒤밖이게 할수 있다는 섬득한 예감이 들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일만은 접고 마세요.”     “뭐, 그렇게 까지 되겠소. 나를 믿어주오”     “당신이 정하고 싶으면 당신 혼자 해 보세요. 그러나 대출을 받아도 가옥소유증이나 재산등록증을 담보로 저당 잡혀서는 절대 안돼요.”      “그럴게.”     일식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은 했다만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대출을 받을가? 속 궁리를 했다.                                                       9       목장으로 간 이식이는 목장 확장건설에 힘과 마음을 다 바치였다. 수연이도 내조를 잘해 주었다. 이식이는 하는일이 순리로이 풀려 나가자 힘든줄 모르고 일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수연이가 반갑게 맞아 주었고 때마다 맛스런 음식을 갗추어 놓았다. 잠자리는 더 없이 화끈했다. 이식이는 웃음이 떠나지 않은 생활에 도취되여  늦게나마 사랑이란, 행복이란 무엇인가? 를 알것 같았다.     목장으로 간날 밤 두 사람은 한방에 들었다. 수연이는 결혼 하자는 언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방에 드는것이 마득치 않아 다른 방으로 가려고 했다. 이식이는 나가려는 수연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나가지마 오늘은 여기서 자."     "안돼요. 우린 아직 남이 잔아요."     "우리가 여기로 올때 결혼할걸로 예산하고 왔잔아 그러니 내말들어 ."     이식이는 힘있게 수연이를 잡아 끌었다. 수연이는 못 이기는 척 하고 주저 앉았다. 이식이는 그날 밤 처음으로 수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으며 녀자의 체취를 맛보았다.     목축장 사양실을 지을 때 단기 일군 몇사람을 썼다. 그 가운데 수연이 오빠가 있었다. 수연이 오빠는 다각다재한 사람이였다. 그는 목공, 철공, 미장공 어느것이나 막힘없이 척척 잘했다. 사양실 건설과 산 주위에 철조방을 늘이는 공사가 끝나자 단기 일군들을 돌려 보내게 되였다. 단기 일군들을 보내고 나면 목장에는 일식이와  수연이만 남게 된다. 강원도에서 온 기술자들은 시내에 주숙지를 잡아놓고 통근하였다. 이식이와 수연이 두 사람이 모든일을 맡아 하자니 힘들었다. 이식이는 생각하다 할수없이 고용 일군 한명을 두기로 하였다. 이식이는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수연이 오빠가 맘에 들어 그한테 여기서 같이 일하자고 청들었다. 수연이 오빠는 한참 생각하다가 집에 돌아가 집사람과 상론해 보고 답복을 주겠다고 하면서 직답을 피했다.     오빠가 돌아간 후 수연이는 묵묵히 말하지 않았다. 이식이가 왼일이가 싶어 물었더니 수연이가 뽀르퉁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왜 그랬어요. 일하자는 사람이 쐐고 버렸는데  하필 우리 오빠와 같이 하자고 했어요”     “수연이 오빠와 같이 일하자고 한것이 잘뭇됐나, 수연이 오빠가 일도 잘하고 마음도 고우니 같이 일해 보자고 그랜거지,  수연이도 오빠가 곁에 있으면 좋지 않아.”      “나도 오빠가 일을 잘하고 마음이 고운줄 알아요. 내가 오빠가 당신과 같이 사업하는걸 꺼려하는 리유는 다른게 아니예요. 사업을 하려면 가까운 친구거나 친척과 같이 동업하지 않는게 좋아요. 친구나 친척과 동업하면 잘 될것 같지만 오히려 남보다 못할때가 많아요. 아는 사이에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할말도 못해요. 그래서 난 오빠를 여기로 데려 오는걸 반대해요”     이식이는 수연이 말을 듣고 너무도 조리 밝고 오달처 보여 이마를 팅겨 주었다.  그는 인츰 수연의 오빠한테 전화를 걸어 리유를 대면서 함께 목장일을 할수없게 되여 미안 하다고 했다.  수연이 오빠도 자기도 그렇게 생각 했노라 하였다.     이식이가 딴 고용일군을 쓸 의향을 내놓자 이번에도 수연이가 반대의견을 내 놓았다.     “단기 일군이라도 사람 하나를 쓰려면 인건비는 물론 주숙을 우리가 책임져여야 하니 지출이 늘어 나지요. 부자로 된 사람이 깍쟁이란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깍쟁이 소리를 못듣고는 부자가 못돼요. 돈을 모으자면 지출구멍을 막아야 해요. 수입을 올리고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서는 될수 있는 한 고용일군을 쓰지 않는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해요.”     “당신 말엔 일리가 있소. 그렇다하여 단기일군을 쓰지않고 어쩌자고 그래오. 우리둘이 힘으로 감당해 낼것 같지않소.”     “고생할 각오를 하지않고 어떻게 돈을 벌어요. 내가 당신을 잘 협조해 줄터이니 우리둘이 힘을 합쳐 잘해봅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식이는 수연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였다. 이식의 눈에는 수연이가 형수님 못지지 안은 착실한 녀자로 보이였다. 인물이 곱고 남편 공대를 잘하며 남편의 사업을 지지하고 집안일을 깔끔히 잘 하는 형수보다는 좀 못하지만 일욕심이 많고 돈 계산을 잘하고 남자를 아끼고 사랑할줄아는 참된 녀자라 생각했다.     요즘들어 수연이는 가끔 음식물을 먹고나서 메슥메슥하다며 토하였다. 이식이가 왼일이가 싶어 어디가 아픈가고 물었다. 그럴때 마다 수연이는 음식에 체한것 같다며 약을 먹으면  낳을것이라고 했다. 수연이가 자주 토하자 이식이는 이상스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놓을수없었다. 그는 형수한테 전화를 걸어 수연가 요즘 위탈이 생긴였는지 자주 토한다고 말 했다. 시동생의 말을 듣고 형수가 곧 그리로 갈터이니 어디로 가지말고 했다. 형수는 빨리왔다. 형수는 오자마자 수연이를 데리고 다른 칸으로 갔다. 두 녀자가 한참 쑥덕 거리다가 나왔다. 형수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시동생한테 수연이가 임신한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이라니! 이게 왼일이야! 이식이는 잘못 듣지나 않았나 싶어 다시 형수한테 물었다. 형수가 임신한것 같다고 확신성 있게 말하자 이식이는 너무좋아 수연이를 않아주면서 고맙다고 했다.     형수가 시동생을 보고 래일 수연이를 데리고 병원에가 검사 받자고 했다.     이튼날 병원에가 검사하여 보니 임신이 옳다고 확인 됐다. 이식이는 너무도 좋아 풍풍 뛰였다. 뛰는 그 장면이 마치 곰이 춤을 추는것 같았다.     홍씨네 집안에는 경사가 났다. 장가를 못가 총각으로 늙어 죽을 것  같던 이식이가 고운 색시를 얻었고 임신까지 하였다니 경사가 이닐수 없었다.     이식는 서둘러 혼인 들록을 하고 결혼식을 올려 수연이를 안해로 맞아 들이였다.                                                               10       정씨가 자금 준비가 어떻게 되였는가? 자주 문의 하였다. 그때마다 일식이는 못하겠다고 단호하게 말을 못하고 은행 대출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하면서 얼버무렸다.      일식이가 대출을 받기위해 좋은 말로 안해를 구슬려도 구두쇠 같은 안해는 들는척도 않했다. 일식이는 아무리  머리를 쥐여 짜도 그렇게 큰 돈이 나올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단 한가지 가옥소유증과 재산등록증을 저당잡혀 대출을 받는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눈앞에 종이컵이 알랑거리며 종이컵을 사기위해 줄을서는 고객들 모습이 얼른거렸다. 종이컵을 생산하기만 하면 돈이 나비처럼 날아들어 올것같은데 좋은 기회를 놓치는것 같아 속이 바싹 말라들었다.      이럴봐에는 아에 모질게 마음을 먹고 안해 몰리 가옥소유증과 재산등록증을 훔쳐 은행에 저당을 잡히고 대출을 받을가? 하는 우둔한 생각까지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안해에게 일후의 희망을 걸고 말을 걸었다.     “여보 당신 한번 나를 믿어주면 안되겠소.”     “내가 언제 당신을 안 믿었어요. 당신을 믿어줄게 당신 하고푼대로 해 보세요 내가 당신 하자는 일에 안 삐칠게. 하지만 절대 가옥소유증과 재산등록증만은 다치지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길게 말할필요가 없어요. 당신 그 계획을 포기하고 농장일에나 힘쓰세요.”     안해가 칼로 무우 자르듯이 하자 일식이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세상일은 별랗게 돌아갈때가 있다. 광주에 있는 딸애가 해산달이라 하면서 어머니가 급히 와 달라고 했다. 일식이 마누라는 남편을 홀로 두고 자기 혼자 가는것이 마음에 놓이지 않았지만 자식이 어쩌다 도움을 청하는데 아니 갈수 없었다. 그는 딸의 전화를 받고 인츰 광주로 떠났다.     마누라가 광주로 가자 일식이는 일이 잘돼 간다고 생각했다. 에라, 마누라가 없을때 가옥소유증과 재산등록증을 들춰 가지고 대출이나 받아보자.     일식이는 집안을 샅샅이 둘추어 끝내 가옥소유증과 정미소  경영증을 찾아냈다. 일식이는 저금통장을 찾고 찾아도 찾지못하자 안해를 무서운 네편네라고 두덜됐다.      일식이는 가옥소유증과 정미소 영업증을 가지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은행으로 갔다. 이미 기술감독국이 감정서와 기타 서류들 준비해 놓았으므로 서류는 막힐게 없었다. 대출과에서는 서류들을 보고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대출액이 상당히 제한되여 있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대출도 단번에 대출해 주지않고 기를 나누어 준다고 했다. 또 은행에서는 은행제도에 따라 대부금을 쓴 령수증을 보내달라고 했다.     첫번에 대부금 50만원을 대출받았다. 대출을 받자 일식이는 날듯이 기뻐 정씨를 찾아갔다. 정씨도 홍사장이 몇일만에 50만원을 얻어온것을 보아 대단히 능력이 있다고 치하하였다.     대출받은50만원으로 먼저 공장 기지를 사고 공장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안휘성에서 온 건축대 한테 시공을 맡기였다. 인건비는 건축이 되는 정도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일이 뜻대로 진척이 되자 일식이는 흐뭇해 나며 긴장이 풀리는것 같았다.      반년만에 공장 건물이 완공되였다. 공장건물이 완공됨과 동시에 기계설비도 안장되였다. 시공을 시작하여 일곱달만에 생산라인이 정상으로 가동되였다. 종이컵을 만드는 기계를 만든공장에서 기술일군을 파견하여 기술지도를 하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척척 잘 진행되여가고 있었다.      일식이는 매일이다싶이 공장으로 출근하였다. 그는 흐뭇한 눈길로 작업실에서 종이컵이 생산되여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기대 마다에 종이컵들이 줄을 지어 나왔다. 나오는 종이 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보는것이 재미 있었다. 일식이 눈에는 그 종이컵이 일반컵이 아니라 자기들의 심열이 깃들어 있는 보배로 보였다. 그 보배속에는 빨락거리는 돈이 담겨 있다는 감이 들었다.      몇달이 지나 안해가 왔다. 안해는 싱글벙글 웃는 남편을 보고  물었다.      “여보,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렇게 좋아해요.”      “우리가 세운 공장에서 새 상품이 쏱아저 나오고 있소. 나 성공했소. 래일 같이 가 보기오. ”      “가보아야지요. 그런데 자금은 어떻게 해결했어요.”     비수같은 안해의 말에 일식이는 뒷말을 잊지못하고 무밋거렸다. 안해는 무밋거리는 남편을 보고 뭔가 이상스런 느낌이 들었던지 재빨리 비밀궤짝문을 여는것이였다. 궤문을 열고 뭔가 이리저리 찾던 그녀가 낯색이 배추떡잎처럼 퍼러딩딩 해 지더니 남편을 쏘아 보는것이였다.      일식이는 이런 일이 어느때던 발생하리라 각오하고 있던 터라 강 기침을 하고서 숨이 넘어가는 가는 소리로 겨우 말했다.       “여보 미안하오. 내가 당신몰래 그것을… 지금 공장에서 새 산품을 생산하니 올해안에 되 찾아올게.”      “내 이럴줄 알았어요. 당신이 그럴것 같아 가옥소유증만은 다치지 말라고 여러번 당부 했지요. 달팽이도 집을 같고 사는데 만약 공장일이 안되면 어떻게 하랍니까.”     “여보, 한번만 날 믿어주오. 꼭 성공할것이오.”     “그럼 좋아요 당신말대로 금년내로 해결못하면 그때는 우리가 갈라져야 한다는것을 알아요.”     “그렇게 까지야 될수없지. 두고 보오.”    일식이는 안해에게 두고 보라고 하고선 뒤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장일이 일식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상품을 생산하여 몇달이 지나도 종이컵은 쌓이기만 하고 팔리지 않았다. 여로모로 모색하고 판로를 열려고 하였지만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 왜서 그런가? 공장 령도에서 분석하여 보니 상품의 질과 가겪차이로 벌어진 모순이였다. 사실은 이러 했다. 상품을 생산할때 공장의 결책자들은 상품의 질을 높여 고객을 많이 끌리리라 계획했다.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질좋은 종이를 구입하여 다가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모양새도 곱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상품판매는 중개인을 통하여 팔기로 하였다. 상품중개인 구인광고를 내자 많은 중개인들이 찾아왔다. 헌데 중개인들마다 상품이 질이 좋다고 긍정하면서도 가격이 비싸다며 값을 나추어 달라고 요구했다. 판매를 책임진 정씨는 중개인들의 요구대로 최대한 가격을 나추었다. 가격을 나추고 보니  리윤이 한푼도 떨어질게 없었다. 그리하여 중개인을 쓰지않고 집적 판매를 해 보았다. 집적 판매를 하니 구매자 수자가 줄어 들었다. 왜서 그럴가 분석하여 보니 여전히 공장에서 생산하는 종이 컵은 생산 원가가 비싸 종이컵도 자연 가격이 높았던 것이였다. 여전히 가겪문제였다. 실천이 증명 하다싶이 중개인들이 값을 나추어 달라는데도 일정한 근거가 있었다. 종이컵은 일차성적인 것이기에 한번 쓰고는 버린다. 선진국들과 다르게 중국의 소비자들은 질과 량에 대하여 별로 중시 하지 않는다.     중개상인들은 가격에대한 협상이 되지않자 일식이네 공장의 종이컵을 구입하지 않고 남방에서 일식이네 공장에서 생산한 종이컵 가격이 절반으로 구매하여 왔다. 이렇게 되자 공장에서는 여로 모로 판매를 시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공장 결책자들은 고심끝에 부득불 생산을 중지하게 되였다.     공장이 시작 부터 이런 애로에 부디쳐 삐걱거리자 돈을 투자한 주주들은 안달아 났다. 그중에서 일식이가 제일 단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달복달 하였다.      일식이는 날이 지날수록 고민이 깊어갔다.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방책이 떠 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려운일이 생길때면 안해가 제갈량처럼 묘한 계책을 내놓아 어려운문제들을 슬슬 잘 풀어 갔는데 지금은 아니였다. 안해몰래 일을 저질렀으니 안해 도움을 청할수도 없다. 밤을 자고 나면 은행 리식은 늘어만 간다. 이걸 어쩌나 생각할수록 눈 앞이 캄캄해 났다. 사람이 심리고통은 정말로 무서운것이다. 일식이는 점점 식욕을 잃고 맥이 탁 풀리며 밥술을 들 힘도 나지 않았다. 그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드러눞게 되였다.     일식이 안해는 맥을 버리고 누어 있는 남편을 보고  물었다.     “당신 말하지 않아도 내가 다 앓아요. 공장일이 잘 안되지요. 공장일이 안된다 하여 이대로 맥을 버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방책을 대야 하죠.”     “당신 무슨 해결책이라도 찾아소.”     “아니, 공장일이 정말로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공장파산 신고를 하세요.”     “파산 신고를 하라니? 그건 안될일이오.”     “나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국면을 해결할 좋은 방법은 오로지 파산신고를 하는것이라고 보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금은 리식만 늘어 나지요. 그러니 빨리 파산시고를 하고 적임자가 나오면 경매라도 하세요. 손실은 있겠지만 큰 손실은 피면할수 있다고 보아요.”     “그래도 뻗치여 보다가 정 방법이 없을때에 그렇게 해야지.”     “어디 뻗치여 될 일이예요. 농민이 농사일을 떠나 기업을 한다는 자체 부터 잘못 된것이 예요. 지금이라도 서둘러 파산신청을 하는게 옳은것 같아요.”     일식이는 안해의 말을 들어보니 그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는 정씨를 찾아가 의론하였다. 정씨도 어쨌으면 좋을지 결론을 못 내리겠다고 했다. 결국은 그들은 변호사를 찾아 파산시청법리를 문의하고 공론끝에 기업파산 신고를 하고 자산을 경매하기로 했다.     그들은 공장을 세운지 1년만에 파산 신고를 하였다. 파산 신고를 하고 경매를 부치여 얼마 안지나 남방 한 기업가가 찾아와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 기업가는 투자의 절반 가격으로 공장을 인수하겠다는 것이였다. 협상을 거처 일식이네는 울며겨자먹기로 구매자의 요구대로 공장을 넘겨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일식이는 대출 받은 금액이 절반밖에 못 가지였다. 그래도 한시름 놓았다.      이상스런 일은 다음에 있었다. 일식이가 안해한테 공장이 파산된 사실을 이실직고 하였다. 일식이는 안해가 화를 내며 어쩔가 해서 조마조마 했는데 마누라는 화를 내지않고 잠잠히를 듣고만 있는 것이였다. 화를 내지 않고 모르는 척 하자 일식이 켠에서 더 난처하게 되였다. 한바탕 욕이라도 먹었으면 속이 풀릴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일식이는 요즘에 후회를 많이 했다. 안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일을 겪지 않았을 것을 그랬다고 참회를 했다. 장가를 가서 안해의 말을 들어서는 손해 본일이 없었다. 안해의 말을 듣지않고 자기 주장대로 과욕을 부려 이꼴로 되였으니 머라고 할말이 없었다. 이제 쏱아진 물로 되였으니 다시  담을수도 없다. 무슨일을 하자고 해도 손에 일이 갑히지 않는다.      끈내 일식이는 또다시 버티지 못하고 맥을 버리고 들어 눞게 되였다.     일식이 안해는 누어 있는 남편의 손을 잡아 끌어 안치면서   말했다.     “여보 이러지 말고 툭툭털고 일어나세요. 사람이 사노라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지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당신이 예전에 늘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다시한번 손을 마춰 궐기해 봅시다.”     “다 망한판에 이제 내가 무슨일을 하면되겠소.”     “우리에게 별 재주가 있나요. 농민이니 농사일을 하여야 하지요. 래일이라도 당장 농사일에 정력을 넣으세요. 그리고 이걸 받을세요.”     “아니 이거 저금통장이 아니오… 이많은 돈은 어디에서 왔소”     “아들과 딸이 아버지가 사업하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금을 보내 왔어요 그외 것은 내가 당신몰래 저금한것이예요”     “여보 고맙소..”     “이걸 가지고 래일 은행으로 가서 대출 받은것을 환금하세요.”     “여보 당신은 평강공주와 같은 사람이오.”     그날밤 두사람은 신혼 생활로 되돌아 가는 기분이였다.                 
11    홍씨네 형제(1) 댓글:  조회:1535  추천:0  2017-12-19
소설                                         홍씨네 형제        장신촌의 사람들은 흥일식 홍이식 형제를  두고 중국의 고전소설 “수호전”에서 나오는 무대랑과 무송 형제와 같다고 말하였다. 형 일식이는 작달만한키에 가마잡잡한 얼굴,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팔삭둥이였다. 대신 동생 이식이는 키가 구척이나 되고 몸집이 우람저 어느모로 보아도 그들 형제를 친형제라고 하기 힘들었다.      세상일이란 알고도 모를 일이 많다. 일식의 겉 모양을 보고서 누가 일식에게 그런복이 찾아 오리라 생각 했을가…일식이가 어릴 때 자주 앓음 자랑을 하자 일식 어머니가 답답하여 일식이를 데리고 관상을  잘 본다는 도사를 찾아가 일식이 사주팔자를 봐달라고 청들었다. 도사는 일식의 용모를 이리저리 훝어 보고 생년월일시를 묻고 륙갑을 세더니 얘는 원숭이띠라 신체는 약해도 총명한 재질을 갖추었고 이마가 넓고 귀방울이 커서 앞으로 안해복과 돈복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얘는 원숭이 띠이므로 우리가 큰 소띠거나 돼지띠 녀인을 안해로 맞으면 금상첨화라 했다. 그 말을 듣고난 일식의 어머니는 너무도 기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다.     도사의 판단이 빗나가지않았다. 일식이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호제가 찾아오더니 나중엔 호박이 덩쿨채 굴러오듯이 기적같은 좋은 일들이 련이어 찾아왔다.                                                     1       일식이가 스물여덮살 되던 해였다. 생각지 않는 혼처가 들어왔다. 배초구에 계시는 다섯째 이모 한테서 소식이 왔다. 이모가 살고 있는 마을에 23살(소띠)되는 고중을 졸업하고 농사를 짓고있는 인물체격이 좋은 처녀가 있는데 만나보라는 것이였다. 허물이라면 처녀집 가정성분이 “부농”이라고 했다. 일식이는 처음 처녀집 가정성분이 부농이라고 하자 송치벌레에 쏘이기라도 한듯 섬득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체신을 잘 알고있는 터라 처녀가 인물체격이 좋은데다 고중졸업생이라 하자 두말없이 처녀를 만나보겠다 했다. 만나 보니 처녀는 흠잡을데 없이 체격이 미끈하고 얼굴도 예뻤고 말도 조리있게 하였다. 일식이는 웬 복덩어리가 찾아왔나 싶어 대번에 마음에 쏙 들었다. 약삭바른 일식이는 자주 처녀집으로 다니면서 처녀한테 바싹 달라붙어 좋은 답변을 받아냈다. 소뿔을 단김에 뽑으라고 약혼하여 석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팔삭둥이 일식이가 나리꽃 같은 미인을 데려오자 마을 사람들은 입방아를 찢기 시작하였다. 일식이가 장가를 잘 갔다고 칭찬하는 사람과 저렇게 꽃같은 녀자가 못난 일식이 한테 시집을 온걸 보면 혹 무슨 문제라도 있지 않을가? 의심하는 사람, 미인을 데려다 놓고 일식이가 지켜낼가? 하면서 실없는 근심을 하기도 했다. 일식이는 호걸이 미인을 데리고 산 다면서 앞으로 미인 안해와 잘 살것이라 호언 장담을 했다.      일식의 가족과 친지들은 일식이가 예쁜 색시를 데려오자 가문이 경사라며 좋아서 야단인데 신부 측 부모들은 눈물을 삼키였다고 한다. 신부의 부모들은 그 못난 성분 때문에 딸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고 어렵게 고중 공부를 시키였는데 제 짝에 어울리는 총각한테 시집 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볼데 없는 팔삭둥이 한테 시집 보내는 것이 마치 귀한 물건을 도둑눔한테 도둑마치고도 할말이 없는 죄인 기분이였다고 한다. 가슴아픈 사연을 누구에게나 허타히 말할수도 없는 처지여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였다 한다. 딸이 그런 팔삭둥이 한테 시집보내는것이 야속하였지만 다행히 딸이 좋다고 하니 한시름 놓게 되였다.     일식이네 부부간은 겉 모양을 보아선 짝이 찌불어도 많이 찌불어 보이는데 살아가는것을 보면 오히려 제대로 궁합이 맞는 배필이였다. 일식이가 안해를 끔직히 사랑하는것은 물론, 일식의 안해 역시 남편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존중하며 공대를 잘했다. 일식이 안해는 남들의 남편을 없이 여길가 신경을 쓰며 남편을 존경하는것으로 남편의 위상을 올리였다. 일식이네 집으로 다녀온 사람마다 일식이네 집 밥상이 예전보다 풍성하다고 말하였다.     일식이는 장가를 가더니 몸이 푸들고 입고 다니는 옷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일식이 안해는 음식에 신경을 썼는데 때마다 남편에게 콩제품과 닭알 볶음을 대접하였다. 그는 남편의 옷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남편이 입고 다니는 옷은 언제나 깨끗하고 깔끔하였다. 예전에 키작고 볼품없어 보이던 일식이가 장가를 가더니 키가 더 커 보이며 눈에는 정기가 가득 했다.     일식이네 부부는 금술이 좋았다. 아들딸을 낳았는데 둘다 선남 선녀 같이 잘 생기였다. 그애들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일식의 자식들은 아비를 담지 않고 에미를 많이 닮았다고 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일식이는 내가 무엇이 못났냐 하면서 종자가 좋으니 좋은 자식이 나왔지 하면서 호기를  부렸다.                                                       2        일식이가 장가를 가서 10년만에 농촌개혁이 시작되였다. 농촌개혁의 첫 보조로 도거리를 시작하였다. 도거리를 시작하자 생산대에서는 집체로 다루던 밭을 개인에게 도맏기고 집체 공유 재산을 개인에게 분할하게 되였다. 어떤 방식으로 토지와 자산을 분할할까? 사람들은 심사숙고한 끝에 제비뽑기로 결정 하였다.  제비 뽑기는 제비를 뽑는 각자의 행운에 따르는 것이기에 누구도 불복할수 없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법이였다.    “행운아는 넘어져도 떡함지에 앉지만 재수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제비뽑기는 한 가족이 행운을 결정하는 시금석이였다. 제비를 뽑는 날은 마을에서 큰 대사를 치르듯 하였다. 제비를 잘 뽑게 해달라고 행운을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밭을 나누는 제비를 뽑을 때였다. 집집마다 호주들이 나서서 제비를 뽑게 되였다. 제비뽑는 순위를 결정할 때  일식이가 맨 마지막 순위였다. 일식이는 앞 사람들이 몽땅 좋은 땅을 차지하고 나뿐땅이 자기한테 채려지면 어쩔가? 마음을 조이며 기다렸는데 왼걸 제비를 다 뽑고보니 제일좋은 1호지 땅이 일식이 한테 넘어왔다.       집체 재산을 분배할때에는 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이번 제비 뽑기에는 일식이가 나서지 않고 일식이 처가 제비를 뽑게 되였다. 제비뽑는 순위를 결정할 때 일식이 처가 제일 먼저 제비를 뽑게 되였다. 제비를 다 뽑고 결과를 공포하자 모두다 아연실색했다. 일식이 안해가 뽑은 것이 생산대의 “보배소”로 불리우는 물레뿔 암소였다. 물레뿔 암소는 덩치가 크고 엉덩이가 넓으며 미황색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을 잘하고 새끼를 잘 낳아 생산대의 보배소라 불리웠다. 제비 뽑는 사람마다 다른 소보다 그 물레뿔 암소를 가졌으며 하는 행운을 바라며 조심스럽게 제비를 뽑았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기대가 허사로 되고 물레뿔 암소는 일식이네 외양간으로 가게 되였다.     그날 제비뽑기에서는 일식이네 부부가 좋은것을 다 챙긴 셈이였다. 그날 저녁 일식이는 너무도 기분이 좋아 안해와  땡! 소리나게 술잔을 마주 치였다.                                                      3        일식이네는 도거리를 시작하여 2년만에 향에서 선참으로 만원호로 되였다. 좋은 땅에다 하늘이 잘 마추어주어 일식이네는 년년 풍수를 거두었다. 일식이네는 농사를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동물 사양도 잘하였다. 물레뿔 암소가 일식이네 집으로 와서 석달만에 새끼를 낳았다. 매년마다 새끼를 낳았는데 3년사이에 5섯마리 새끼를 낳았다. 첫 번에 낳은 송아지도 부쩍 자라 세살박이 큰 암소로 되였다 그놈도 이젠 새끼치기를 할 잡도리를 하고 있었다. 소값은 3년전에 비하여 세배나 올랐다.       일식이는 미천이 있게 되자 소를 팔고 사는 장사를 하였다. 돈이 날개라고 돈이 있으니 장사도 잘되고 집안일도 잘 풀려나갔다. 일식이는 소에서만 하여도 몇만원을 벌었다. 그들은 굴함돼지 두 마리를 길렀는데 그놈들도 한해에 두배 새끼를 낳아 한해에 40마리 새끼를 팔았다. 닭을 20여마리 길러 식탁은 풍성하였고 소비돈도 넉넉하였다.      일식이는 손에 돈을 검어쥐자 통크게 다른 사람한테서 정미소와 야장간을 삿다. 정미소에는 여러가지 곡식을 가공할수있는 가공설비와 고추가루와 같은 부식품들을 분쇄할수있는 설비들이 있었다. 정미소 일은 내무대신인 일식이 처와 동생 이식가 맡아 하였다. 동생 이식이는 생김새와 달리 행동이 굼떠서 그렇치 일에 들어서서는 까근하고 재치있게 하였다. 힘든일은 시동생 이식이가 하고 돈관리와 소소한일은 형수가 맡아하였다. 그들은 서비스를 잘하여 본촌의 촌민은 물론 타곳이 사람들도 몰려와 가공하였다. 고객이 많으니 자연 수입도 높아졌다. 돈은 굴리는 눈덩이 처럼 커져만 갔다. 돈이 모아지자 일식이네는 보란듯이 마을 동구밖에 고래등같은 벽돌기와집을 지었고 정미소와 가공부도 새로 건설하였다.     일식이는 통크게 돌문안 골안을 도급맡고 목축장을 세웠다. 목축장에는 일식이가 소를 사다가 몇달 길러서 다시 파는 림시 사양실과 새끼치기를 할 암소들을 사육하는 사양실이 따로 있었다. 목축장 관리는 일식이 장인이 맡아 하였다.     일식이는 도거리를 시작하여 향에서 선참으로 만원호가 되였고 로동치부 모범이되자5년만에 입당하고 촌장선거에서 촌장으로 당선되였고 시인민대표로되였다. 일식이는 촌장이 되자 상급의 유관 부분을 뛰여 다니며 자금 지원을 받아 마을의 길을 닦고 집을 개조하는 공사를 벌리였다. 3년동안 분전하여 마을  길을 전부 포장도로로 만들었고 집집마다 양철 기와를 옌 새 벽돌집에 들게 하였다。     그는 농민들이 쌀팔기를 어려워하는 실정을 료해하고 촌에서 벼를 수구하고 가공하여 대리 판매를 해주어 농민들의 쌀팔기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이렇게 되자 일식이는 촌민들의 신임을 얻었으며 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장신촌의 뉴스인물로 되였다.     일식이는 밭일에다 촌장사업을 하려고 하니 매일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처야 했다. 비록 일에 지쳐 고달풀때가 있었지만 사업이 잘되고 보니 고달품을 잊고 열심히 뛰여 다니였다.     동네 사람들 한테서 팔사둥이라 불리웠던 일식이가 명인으로 되자 사람들은 일식이 안해를 평강공주와 같은 현숙한 녀인이라 치하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왕이 딸이였던 평강공주는 어릴때 너무 울어 왕이 딸을 보고 고 말했다 한다. 평강공주는 어릴때부터 부왕의 말을 가슴에 아로 새겨두고 있다가 성가할 나이가 되자 부왕에게 아버지 말씀대로 바보온달에게 시집 가겠다고 하였다. 딸이 말을 들은 왕은 대노하여 반대 하자 평강공주는 부왕을 보며 일국의 왕이 말씀은 법인데 어찌 그 법을 위반하느냐 하면서 기어이 온달에게 시집 갔다고 한다.      훗날 평강공주의 내조로 온달은 유명한 장군으로 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한다. 일식이는 온달처럼 그런 영웅 인물은 아니여도 안해의 내조를 받아 팔삭둥이로 부터 부자항렬에 들어섰고 촌장으로 되였으며 시인민대표로 되였으니 그의 안해를 평강공주와 같은 녀인이라 가히  평가할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일식이보다 안해 전월금이가 똑똑하고 돈복이 있는 녀자였다. 일식이는 머리는 팽팽 잘 도는데 진득하지 못하고 일을 벌려 놓을줄만 알았지 걷어들일줄 몰랐다. 대신 안해 월금이는 무슨일이나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일을 시작 하면 끝을 보는 끈질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월금이는 형세 판단을 잘했다. 월금이는 돌아가는 형세를 분석하면서 남편에게 모든일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리성적으로  머리를 써서 주밀하게 타산하여야 한다고 조언을 주었다. 일식이는 안해의 조언을 듣고 보면 모든일이 잘 풀려나가자 차근차근 사업을 잘 해 나갔다.     일식이는 집안에서는 안해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안해 자랑을 하지않고 자기가 모든것을 좌우지 한는 것처럼 즌 자랑을 늘여 놓았다. 일식이 안해는 남편과 달리 자기는 언제나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이라  말했다.     호도거리를 시작하여 몇해 지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국로무 수출을가게되였다. 그들은 외국으로 가면서 분여받은 땅과 가옥들을 다른사람에게 팔거나 양도를 하였다. 어느날 일식이 안해는 남편을 보고 이런 건의를 제기했다.     “여보, 내가 보건대 지금도 앞으로도 농사는 천하지대본이지요. 농사군이 농사라는 근본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에서 농업세를 받던것을 페지하고 오히려 농사짓는 농호에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호기에 땅을 사두는게 좋겠습니다.”     일식이는 안해의 말을 듣고 보니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금이 축적되는 족족 야금야금 외국으로 나가는 집들의 밭을 양도 받거나  토지를 사들였다. 처음에는 2 혁타르되는 밭을 경작하다가 후에는  20혁타르로 늘이였다.     농사일이란 하늘이 마추어 주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많은 밭을 부치였다 하여 다 부자가 되는것이 아니였다. 어떤때엔 밭을 많이 부치였다가 자연재해가 들어 털고 나 앉은 실례들이 있었다. 일식이네는 온당하게 자기 힘에 알맞게 생산을 확대했기에 모험성이 적고 피해를 적게 받었다.                                                        4        홍이식이는 형이 인물체격이 좋고 경제 핵산의 밝은 녀자를 안해로 맞자 부럽기도 했다. 자기도 형수 보다 못지지않은 좋은 녀자를 안해로 맞고 싶지만 운이 따라 주지않았다. 형이 장가를 갈때만 하여도 성분만 좋으면 얼마든지 장가를 갈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어느때인가, 혼인관계가 흔들리였다.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여 외국인 남자들한테 시집가는 바람이 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줄 모르고 지나왔던 순진한 농촌 처녀들이 개방이란 문을 열고 보니 꿈에도 상상못했던 그렇게 경제가 발전한 나라가 있으며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가? 하면서 부러워 했다. 그런 외국인에게 시집가 신세를 고쳐보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이 많고 담대한 녀자들이 외국인에게 시집을 갔다.     본국에서는 능력이 없어 장가를 못가던 외국 남자들이 중국에와서 농촌 처녀들을 이마를 튕겨가며 골라 갔다.     외국인 사위들은 중국 색시를 데려 간후 처가 부모들을 초청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딸 부모들은 외국 사위의 초청장을 받고 외국에가 몇해 있더니 뭉치돈을 벌어가지고 와서 돈 냄새를 풍겼다. 그 돈냄새가 사람들의 돈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사이 외국으로 시집가는 녀인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외국으로 가지않은 처녀애들은 연해지역과 남방에가 외자 기업소에 취직했다. 대학을 졸업한 처녀애들도 고향으로 돌아오지않고 남방 연해지역에서 직장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농촌에는 근본 처녀애들을 볼수없다. 이식이는 40살을 먹으면서 그냥 처녀가 없는 삭박한 농촌에 멀정하게 머물러 있다보니 장가를 갈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식이는 타민족 녀인이라도 안해를 맞이할가 생각 했다. 그런데 막상 타민족 녀인을 안해로 맞고 싶지만 그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돈이 날개라고 현실에는 돈버는 능력이 없이는 장가 갈 궁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식이가 손꼽아 헤여보니 자기가 모아논 돈으로는 타민족 녀자를 데려 오자고 해도 판 부족이였다.     이식이는 형이 장가를 가기전까지 어머니와 세 식솔이 함께 살았다. 일식이가 장가를 가고 아이들이 태여나자 부득불 분가를 하게 되였다. 일식이는 장가를가서 돈이 모아지자 새집을 지어놓고 이사를 하면서 살던 집에 어머니와 이식이가 그냥 살도록 하였다. 일식이는 자기가 맏 아들이므로 응당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했지만 이식이가 장가를 가지 않았고 어머니가 기어이 작은 아들과 같이 살겠다고 하시자 할수없이 분가를 하여 나갔던 것이였다.     분가를 하면서 일식이는 동생 앞으로 생산대에서 분당한 밭을 몽땅 동생 몪으로 하였고 돌문안 골에 있는 목장도 이식에게 넘기기로 하였다. 또 생산자금으로 쓰라고 현금 2만원을 주었다. 일식이는 형으로서 동생에게 이만큼 하여 준다면 섭섭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동생 이식이는 형의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형이 오늘날 잘살게 된데는 형수님과 형이 머리를 잘 쓰고 부지런히 일한데도 있지만 자기의 힘이 컸다고 생각했다. 형과 함께 살때에는 자기가 힘든일은 도맡아 하였고 형이 시키는대로  머슴이나 다름없이 일했다고 생각했다. 큰 돈은 형이 가지고 작은 돈만 자기에게 차려 지였다고 생각했다. 그런 형의 처사가 잘못 됐다고 꼴찌하게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그만하면 형의 처사를 잘했다고 형을 두둔해 나서자 불만이 있어도 참고 있었다.     이식이는 처음에 형이 분가하여 나가자 오히려 잘된일이라 생각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면 아무런 부담도 없고 자기 능력대로 잘 살거라고 자부 했다.    이식이는 보란듯이 잘살아 형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그렇게 하겠다고 해 놓고보니 애로사항이 이만 저만이 아니였다. 일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백가지 일들이 자기 손을 다 거처여야 되니 할일도 많고 어느것부터 착수하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사실 이식이는 여짓껏 형의 그늘 밑에서 형이 시키는대로 일하여왔다. 언제한번 독립적으로 일을 한적이 없었다. 이제와서 불세로 독자적으로 일을 하자고 하니 앞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이식이는 앞으로 하여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밤잠이 오지 않았다. 혼자서 어떻게 밭을 다룬단 말인가? 그리고 목장일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혼자힘으로는 당해 낼수없다는 주저심이 들었다. “베를 석자 짜도 틀은 틀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밭을 다루자면 있은것은 다 있어야 했다. 우선 농기구가 있어야 하고 생산물자도 준비돼야 한다. 그런 준비가 된것이 하나도 없다. 형한테 생산공구와 생산물자가 있으니 지원 받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였다. 이미 분가를 하였으니 집이 다르고 핵산이 다르다. 형이 생산 자금으로 2만원을 준 상태라 형의 도움을 청하자니 너무나 렴치가 없는 것 같았다.     목장이 더 큰 근심 거리다. 목장일에는 문맹이나 다름없어 어떻게 경영해 나갈지 파악이 없다. 분가하기 전에는 목장일은 형이 책임지고 형이 장인이 구체적으로 도와 나섰는데 막상 주인이 바끼여 이식이가 맡아 하게되면 사돈이 잘 협조해 줄가? 그것도 근심이였다. 사돈과 협의가 잘 안되여 혹 사돈이 목장을 떠나면 어떻게 할가? 사돈이 없으면 부득불 자기가 농사일을 파기하고 산골로 들어가 목장일을 관리해야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목장으로 가려고 하면 어머니가 절대 안 가실것이고 자기 혼자 가 있자니 그것도 안될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한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좋은 방법은 떠 오르지 않아 마치 고양이가 소대가리를 않은 둣 아름차고 막막하기만 했다. 이럴봐엔 아에 밭이고 목장이던 뭐고간에 다 팔아 버리고 외국이나 갈가, 아니면 그돈으로 타 민족녀인을 안해로 맞이해 볼가 생각해 보았다                                                        5         이식이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형이 찾아왔다. 살아갈 계획을 원만하게 세웠느냐? 고 묻는것이였다. 이식이는 아직 까지 어떻게 하여야 할지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일식이는 동생의 말을 듣고나서 심중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동생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동생과 함께 우리 촌에 주식형 합작농장을 꾸려보기오.”     “주식제 합작농장이라니!?”     “지금 농촌의 추세를 보면 개개인이 적은 땅을 부치던 데로 부터 소수 사람들이 기계로 많은 땅을 경작하고 있소. 앞으로 농촌마다        주식제 합작농장이 세워질 것이오 그때는 소수 사람이 많은 농토를 경작할것이오. 농민들은 소농경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도시로 진출할것이며 제 3산업 제4산업에 종사할것이오. 그러니 동생도 잘 생각해 보오”     “형님, 너무 급히 서두루지 않소. 집체화를 마슨지 얼마라고 또 다시 합작농장이란 타령을 하오.”     “동생, 내가 꾸리려고 하는 주식제식 합작농장은 이전의 집체화때 체제와 완전히 다르오. 그때는 정부에서 무조건 집단화길로 가게 했지만 지금은 자원 협의 원칙으로 하고 있소.”     “내게 무슨 주식이 있다고 주식제 농장에 들라고 하오.”     “동생에겐는 적지않은 밭이 있고 목축장도 있지않소. 그것을 값으로 매겨 주식으로 하여 투자하면 되오. 농장의 수입에 따라 주식투자를 한 맘큼 보상 받을수 있소.”     “생각해 보고 답복을 주겠소.”      형이 돌아 간후 이식이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형이 말대로 하면 주식제합작농장을 꾸리는것이 시대의 발전 추세이고 좋기는 한데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소수사람이 배부르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지금의 형태대로 개개인이 적은 땅에 매워 산다면 치부할수 없다. 어쨋던 기계화로 농사를 짓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소수가 많은 경작지를 가지게 되는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발전추세로 보아 농촌에서 주식제 합작농장을 세우는것은 옳은것 같은데 내가 만약 형님의 말대로 주식제합작농장에 가입하여 밭과 목장을 값을 처서 주식으로 한다면 어떻게 될가? 눈감고 아웅하는 겪으로 형님에게 속히우지나 않을지? 근심이 앞섰다.     다시 반복적으로 생각해 보니 가령 형님이 제기한 주식제 합작농장에 가입 하지 않고 지금 처럼 개체로 계속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형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농사도 짓고 목축장도 경영할 능력이 없다. 그럼 어쩌나, 에라 이참에 “믿저도 본전이라”고 형님의 말대로 밭과 목장을 주식으로 하겠으니 값이나 온천하게 처 달라고 해야지. 만약 내 요구대로 값을처주면 주식농장에 가입하고 그렇지 않고 헐값으로 칠때에는 가입 하지않고 내 밸대로 처분하면 될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6       이식이는 며칠 후 형을 만났다. 이식이는 자기가 생각한봐를 털어 놓았다. 한참 묵묵히 듣고 있던 형은 좋다고 하면서 합작농장의 주비회성원들의 모임에서 연구 처리하겠다고 했다.     형 일식이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였다. 언녕 동생이 생각한봐를 짐작하고 공을 주비회에 넘기였던 것이였다.    형을 만나 며칠후 농장 주비회회의가있었다. 주비회에서는 합작농장의 취지를 토론하고 신청자들의 자산을 값을 처 주식으로 매기였다. 주비회에서는 충분히 토론한 끝에 일식이를 합작농장의 지배인으로 선출하였으며 이식이 밭과 목장을 후하게 값을 처 주었다.     이식이는 통쾌하게 형이 주도한 주식제 농장에 가입하였다. 이제 부디친 문제는 농장에서 어떤 일을 맡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농장 관리위원회 회의에서 농장 책임자로 된 형은 동생을 보고 목장관리를 책임져 달라고 했다. 농장에서는 목장에 수요되는 물자와 자금을 제공하며 목장의 수익분배는 목장에서 나오는 수익의 80프로를 이식이 몪으로 하고 20프로는 주식에 의해 분배 하기로 하였다.     이식이는 형의 말을 듣고 보니 올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제 농장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식이가 제일 고민한것이 목장 경영 문제였다. 목장에서 수요되는 자금과 물자는 농장에서 책임져 준다고 하니 근심은 없는데 목장에 가 있을일이 제일 근심되였다.       목장기지가 집근처에 있지않고 마을에서 20리 떨어져 있는 돌문안 골에 있다. 목장을 책임지면 집에서 그곳으로 통근할수 없으므로 그곳에가 주숙해야 한다. 홀로 그곳으로 갈 일을 생각하니 귀양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문안이란 어떤 곳일가? 돌문안은 장신촌의 북쪽에 있는 곬이다. 돌문안이란 이름을 갖게 된것은 골 어귀에 널문같은 너럭 바위가 량쪽에 서 있다고 하여 돌문안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돌문안이라 부르지 않고 세호 동네라 불렀다. 돌문안은 이전에 10호가 감자농사를 위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작은 마을이였다. 돌문안 골은 장신촌에  속해 있은 한개 생산대였는데 지금은 달그당 세호가 남아 있다. 하지만 행정 구역으로는  오호툰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거리를 시작하면서 경제 머리가 튼 일식이는 돌문안 골에 눈독을 들이였다. 돌문안은 사방이 병풍처럼 산이 둘러 있고 골 중심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작은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돌문안에는 경작지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지를 가지고 있었다. 산, 초지, 밭, 물이 있어 그야말로 천연적인 목축기지였다. 일식이는 이런 좋은 곳에 목장을 세운다면 틀림없이 목축업이 잘될것 같은 희망을 보아 냈다.      일식이는 돌문안 골을 도급맡겠다는 제안을 박촌장에게 제기했다. 박촌장으로 놓고 말하면 돌문안골은 골치거리였다. 명의 상에는 돌문안을 한개 툰이라 하지만 세호 밖에 없는 동네다. 교통이 불편하여 누구도 그곳에가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세호도 교통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손에 쥔돈이 없어 어쩌지 못하고 깝자르고있다. 박촌장은 그 세호를 아래 마을로 이사를 시키려고 계획하고 있던 중 일식이가 그 골을 도급맡고 세호의 이사 안치비도 책임저 주겠다고 하자 촌장은 너무 좋아 한번 술상을 차리라고 하고는 일식에게 돌문안 곬의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일식이는 돌문안 곬을 도맡고 보니 일확천금을 얻은셈이였다.      일식이는 돌문안 사람들이 아래 마을로 이사를 갈때 말한대로 안치비를 푼푼하게 지급하였다.     일식이는 돌문안골을 도급맡고 목축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마을이 있던 터에 목축사양실로 만들고 산주위에 철조망을 두루기로 하였다. 자금이 되면 범위가 크고 현대적인 목장으로 건설하려고 계획을 했다. 그런데 자금이 딸리여 현대식 목장으로 건설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재래식 방법대로 새끼치기 암소와. 송아지와 여윈소들을 눅게 사서 몇달간 길렀다가 다시 고가로 팔았다. 그리고  새끼치기 암소를 20마리 길렀다.      주식제 합작농장을 세워서 얼마 안되는 어느날 일식이 한테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 손님은 다름아닌 한국 강원도 에서 대형 목장을 경영하는 김사장이였다. 김사장은 일식이가 한개 골짜기를 도급맡고 대형 목장을 건설하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고 했다. 김사장은 중국 진출을 하고 싶은데 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라 하면서 홍사장과 합작하여 목축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였다. 두사람은 서로 바라던 터라 궁합이 맞어 심중하게 토의하고 통합하기로 하였다. 충분한 연구와 협상을 거처 정식으로 중한합작목장을 꾸리자는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강원도 측에서는 일차적으로 건설에 쓸 융자금을 보내왔다. 그리고 기술자를 파견하여 주밀하게 설계 방안을 제기하였다. 설계에 의하면 낡은 집들을 허물고 그 집터에 현대식 목축 사양실을 건설한다. 앞으로 고 품질의 고기소와 젖소를 기른다. 우유를 짜고 가공할 공장을 세운다. 페경지와 초지에 소들이 즐겨 먹는 풀을 심어 놓고 산주위를 철조망을 늘이기로 하였다.    목장 령도 기구는 이렇게 짠다. 홍일식이 사장을 맡기로 하고 부사장겸 기술원은 강원도 측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목장의 실제 경영인은 홍사장 동생 홍이식이가 부사장 명의로 맡아 하기로 하였다.     이식이는 형이 말을 듣고 사색해 보았다. 형이 돌문안골의 목장을 책임지고 경영 하라고 하자 호미난방에 빠진 것 같다. 싫다고 하면 형의 명령을 거역 한것으로 되고 형의 명령대로 목장으로 가자고 하니 홀로 들어가 말못하는 짐승들과 같이 평생을 있어야 하니 앞길이 막막해 났다. 이일을 어떻게 한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7       동생이 이런 심리를 미리 짐작이라도 한것처럼 형은 동생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동생, 크게 고민하지마오. 내가 동생과 같이 목장에 가 있을 사람을 물색해 두었소.”     “누군 데?”     “동생도 잘 아는 사람이오. 우리마을에서 살다가 덕신으로 이사를 갔던 곽씨가 있지않소. 곽씨네 둘째 딸 곽수연이오. 걔가 3년전에 남편과 같이 연길로 와서 건축공지에서 일하다가 남편이 이외 사고를 당하여 죽었다오 자식은 하나 있는데 친가에 가 있다오 며칠전에 나를 찾아와 좋은 남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소 걔는 조선족 남자라도 꺼리지 않는다고 했소. 동생이 동의하면 같이 목장에 가 있소. 마음에 들면 결혼하여도 좋을것 같소.”     “곽수연… 수연이라면 한번 고려해 보겠소.”     “고려할 필요가 없소. 래일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오.”     이식이는 한참 생각해 보다가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했다. 이튼날 이식이는 곽수연를 만났다.  15년만에 만나고 보니 반갑기도 했다. 곽수연이는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수연이는 이식이보다 5년 년하였는데 조선족 마을에서 살앗기에 조선말을 잘했다. 민족이 다르지 않았으면 이식이 안해로 되였을지 모른다.      “수연이 오랜간 만이오.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     “오빠는 예전대로 예요. 일식 오빠 한테서 오빠의 정황을 들었어요. 돌문안에다 건설한 목장을 오빠가 책임지였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빠가 나를 꺼리지 않는다면 오빠와 함께 목장 일을 하고 싶어요.”     “수연이가 그렇게 하겠다면 나도 찬성이지.”     그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두 사람은 돌문안으로 같이 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식이는 목장으로 가기전에 어머니한테 수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니는 그말을 듣고 반가워 하면서 두말말고 오늘 당장 수연이를 데려 오라고 했다. 이식의 어머니도 아들이 여짓껏 장가를 못가 근심이 태산 같았는데 속내를 잘 아는 수연이와 인연이 되여 목장으로 같이 간다니 이게 웬 복인가 싶어 빨리 수연이를 데려 오라고 했던것이다.     이튼날 이식이는 수연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형수도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 왔다. 이식이 어머니는 수연이 손을 꼭 잡고  목장으로 같이 간다면서? 하고선 다짜고짜로 그럴봐엔 내 며느리로 돼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였다. 형수도 수연이를 보고 어머님 말씀대로 어머니의 둘째 며느리로 되여 달라고 부탁했다. 수연이는 갑작스런 일이라 하면서 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시간을 달라는 말 뜻에는 어느 정도 동의 한다는 뜻이 내포되여 있었다.       이식이가 어머니를 보고 목장으로 같이 가자고 하자 어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가는데로 왜 늙은게 가겠느냐 하면서 큰 아들 집에가 있겠으니 너히들이나 목장에가 잘 살라고 했다.      이식이는 목장에가 살 일을 생각하니 힘이 불끈 솟아 났다. 그는 서둘러 짐을 꾸려가지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수연이와 같이 목장으로 갔다.     목장에서 사돈에게 그간 목장에서 많은 수고를 하셨다며 사의를 표했다. 수연이를 인시시키면서 목장에서 함께 일할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돈과 함께 목장일을 하자고 제의했다. 사돈은 젊은 사돈이 목장일을 맡아하니 시름이 놓이다고 하면서. 같이 목장일을 하자고 하니 고맙게 생각하나 집을 떠난지 오래되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사돈의 제의를 받아 줄수없다고 했다.     며칠후 사돈은 일식이 한테 목장의 정황을 상세히 알려주고 배초구로 돌아갔다.    일식이는 동생과 수연이가 목장에서 손을 마추어 일을 잘 해내는것을 보고 만족해 하였다. 그는 두 사람이 앞으로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랬다.  
10    배신자 댓글:  조회:1700  추천:0  2017-11-17
미니소설                                              배신자       요즘 오빠는 외지로 갔다 오더니 기가 한풀 꺾기였다.      어제 나는 오빠에게 요즘 무슨 좋지않는 일이 있었는가? 물었다. 처음엔 내말을 못 들은것처럼 먼산을 보던 오빠가 내가 하도 검질게 묻자 할수없이 입을 열었다.      “영자야 너도 내말을 듣고 보면 생각날 것이다. 58년 전 우리가 살던 마을에 김정희란 처녀애가 있지 않았느냐, 니 언니와 동갑이여서 우리집으로 자주 다니던 애 말이다. ”      “김정희? 기억나요. 그런데 오빠가 왜 그 언니를 언급해요.”      “내가 며칠전에 길림으로 갔됐다.”      “길림으로? 무슨일로?”      “정희를 보고 싶어 갔다.”      “와! 정희를 보고싶어? 옳지, 오빠는 젊은 시절에 정희를  좋아했었지, 정희가 오빠의 첫사랑의 녀인이였지요.”      “그래 니 말이 맞다. 정희는 내 첫 사랑의 녀자였다.”      “정희언니가 길림에 있는 줄 어떻게 알었어요?”      “몇년전 어느날이였다. 나한테 이름모를 전화가 왔더라 전화를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아닌 50여년전에 갈라졌던 김정희였다. 내가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하였는가? 물었더니 정희가 하는말이 자신은 여짓껏 살아 오면서 나를 잊은적이 없다고 했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내 통신처를 알게 되였다 했다.”     “정희언니의 전화를 받고 무척 반가웠겠어요.”     “그래 좋았다. 그후 어느날인가 정희가 나한테 꼭 알려드려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내가 누군가? 물었더니 정희는  만나면 알려 드리겠다고 하면서 직답을 피하는것이였다. 나는 알려줄 사람이 도대체 누군인가? 재차 물었더니 정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미듯이 그 사람은 다름아닌 내 피줄이라 하는것이였다. 내 피줄이라니!? 나는 그말을 듣고나니 정수리를 한매 얻어 맞은듯이 어리둥절해 나면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추억이 실타래를 풀어 보았다. 추억의 몽롱한 안개속에 옛일이 서서히 떠 올랐다. 50여년 전 나는 확실히 김정희를 좋아 했다. 정희의 해맑은 얼굴, 정기가 가득찬 커다란눈, 어느모로 보나 빠진데 없이 고와보였다. 미인은 얼굴에 검은김이 있어도 보기좋다고 하는데 정희의 입술위에 작은 기미가 있는것이 인상적이였다. 그때 내 눈에는 정희가 보름달 같이 곱게 보였다. 그렇게 고운 정희를 안해로 맞으면 평생 행복할것 같았다. 내가 대학으로 가기 전날 밤 우리 두사람은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 넘지말아야 할 도를 넘었던 일이 어렴푸시 떠 올났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아무리 자식들이 천륜을 따른다고 하건만 어찌 단한번의 접촉으로 자식을 만들수 있을가? 하는 부정적 생각이 들면서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가 내 핏줄이라고 하는데  부정할수도 없었다. 나는 단박이라도 정희한테 달려가 친자 확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누라가 있고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정희 한테로 가며 확인 할수가 있었겠니, 나는 정희한테로 가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지만 참고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으로 산다더니 그말이 옳은것 같더라. 정희의 전화를 받은 후로는 자주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명상에 떠 오르면서 잊을래야 잊을수 없게 되였다. 사실 나는 정희를 무척 사랑하면서도 결국은 배신하고 말았다. 대학으로 가기전까지 정희를 내 동생처럼, 아니 동생으로가 아닌 내 안해로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대학으로 가서 네 올케로 된 녀인을  만난후 마음이 변하면서 정희에게 절교신을 보내였다.     겨울방학이되여 집으로 오니 그사이 정희네는 구태시로 이사를 갔더라. 이사를 간후 얼마 안되여 정희가 시집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첫 사랑이란 참으로 무서운것이다. 안해와 수십년 같이 살면서도 가끔 정희생각을 할때가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정희에 대한 나의 애절한 미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감촉하였다.”      “그후 자주 정희와 련계하였겠네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네 올케가 있는한 시름놓고 련계할수는 없었다. 네 올케가 사망하고 내가 홀로 있게 되자 자주 전화하였다. 내가 정희를 보고 지금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가고 물었다. 정희는 지금 아들을 따라 길림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정희에게 몇일후 내가 그리로 갈터이니 마중 나오라 했다. 정희는 내가 오는걸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구실을 대면서 두주일 후에 보자고 했다. 리유는 요즘 자기 몸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더 주요한것은 외국으로 간 아들이 두주후에 온다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두 주일을 내심하게 기다렸다.     두주일이 지나자 정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침 아들이 오늘 집으로 오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실때 고속전철을 타고 길림동역으로 오라고 했다. ”     “첫사랑 녀자를 몇십년만에 만나고 보니 어떠했어요? 랑만적인 상봉이였겠네요”     “무슨 랑만적 상봉, 만나고 보니 기대에 너무나 어긋나 그만 그자리에서 돌아섰다.”     “뭐! 돌아섰다? 그게 윈소리에요? 워낙 그 언니야 처녀때 얼마나 고왔는데요. 미인은 늙어도 곱게 늙는다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나도 정희가 옛 모습대로 곱게 늙었으리라 생각하고 정희를 찾아 갔됐다. 그런 정희가 나를 실망 하게 할줄이야 어찌 앓았으랴.”     “왜서요? 혹 정희의 자식들이 문전 박대를 했나요.”     “정희의 자식들한테 문전 박대라도 받았으면 속이라도 풀리겠다. 정희의 몰골이 너무나도 초로해서 억이 막히더라.”     “도대체 얼마나 변했기에 오빠가 억이 막혔다고 해요”     “내가 어지간해도 리해 할려고 했는데 내눈으로 더는 못 보겠더라”      “가만있자, 정희언니가 큰언니와 동갑이였으니 일흔 아홉살이겠네요. 그 나이가 되면 다 꼬부랑 할매가 되는건 당연지사지요. 오빠는 그런걸 몰라서 그래요.”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까지 변하리라 생각 했겠니. 그날 나는 내 핏줄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고 돈도 픈픈히 가지고 갔됐다. 내가  길림동역에 내려 정희한테 전화를 하였다. 정희가 내 전화를 받더니 지금 자기가 대합실 2호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였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2호 출구로 갔다. 출구에서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50여년전의 정희와 비슷한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 내가 한참 두리벙 거리며 사람을 찾고 있는데 내 마중켠으로 허리가 기억자인 할매가 지팡이를 짚으며 나한테로 걸어오더라. 그녀는 나와 멀지 않는곳에 와서 걸음을 뭠추고 굽은 허리를 페고서 사방을 두리벙 거리며 누굴 찾는것 같더라. 그러다가 나를 보고 급히 다가 오는것이였다. 나한테로 가끼히 와서 “황인철 선생이 아닌가요?”고 물었다. 내가 옳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반색해 하면서 “오  빠”하면서 나한테 안기려 했다. 나는 무의식간에 “당신 누구여” 하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자기가 당신이 찾고저 하는 김정희라고 했다. 김정희! 정말 김정희가 옳은가? 싶어 다시 눈여겨 보았다. 꼬부랑 허리, 쪼글쪼글한 얼굴, 무아재 입, 어느모로 보아도 옛날의 김정희 모습을 찾아 볼수없었다. 그러다 그녀의 입술위에 까만김이 있는것이 보이더라. 입술우의 그 검은 김이 김정희가 옳음을 증명해 주었다. 내가 재차 “당신이 정말 김정희가 옳소”하며 물었다. 그녀인은 옳다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였다.     “인철 오빠, 이게 몇년이야. 세월이 쉰 여덟해가 지났어요. 긴긴세월 나는 오빠를 잊은적이 없었어요. 오빠는 이전과 크게 변한게 없어요. 아직도 멋져요. 오빠를 이렇게 만나고 보니 반가워요.”      그녀는 반가워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갈구리같이 거칠은 손은 차가웠다. 그녀는 나를 올리 처다보는것이였다. 처다보는 애절한 눈길이 곱게 보일대신 반사적으로 그렇게 밉게 보일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겠니. 아름다운 환상에서 나를 실망하게 한것은 그녀의 변형된 몸매도 몸매이지만 보기흉한 무아재 입이였다. 그녀가 무아재 입을 련신 호물거리며 말을 했는데 도무지 무어라 말하는지 내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어둑 거둑해 서 있자 그녀도 내 눈치를 짐작했는지 다른말은 하지않고 내 손을 잡아끌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는 걸으면서 내가 듣던말던 상관하지 않고 제 말만 늘여 놓았다. 오늘 오후에 외국에 갔던 아들이 돌아오는데 당신이 가서 친자식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집은 뻐스역에서 73호 공공뻐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끌리여 가면서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실망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정희 우리 잠간 조용한곳에가 이야기를 나누기오.”     “그래요. 오빠가 하자는대로 다 할게.”     “우리는 역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황오빠 이런 몰골을 보여 미안해요. 며칠전에 치아가 다 빠져 지금 틀이를 마출준비를 하고 있어요. 틀이가 다되면 만나려고 했는데 오빠가 급히 만나자고 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이렇게 추한꼴로 나서게 되여 실망을 주었어요.”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오빠, 두 사람은 오빠의 핏줄에 관한 말을 안 했어요.”.    “물론 했지. 정희는 이제 집으로 가면 모든것을 다 알것이라 했다. 아들은 심통히 나를 닮았다고 했다. 그녀가 집으로 가서 보여줄것이 많다고 하여도 나는 어쩐지 그의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꼬물만치 없었다. 빨리 이 장소를 떠나고 싶은 생각 뿐이였다. 나는 점심밥을 먹으면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알수없었다.”     “정희는 그렇다 하더라도 오빠야 자기 핏줄을 찾아가 보는것이 옳지 않아요.”     “갈 생각이 나지 않더라. 정희의 추한 몰골을 보고 내 핏줄도 저렇게 미우면 어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줄이던 뭐던 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더라. 나는 정희가 점심을 먹기를 기다렸다가 정희에게 돈봉투를 건너면서 이돈은  아들에게 주는 나의 성의라 했다. 그리고는 집에 급한일이 있다고 하고는 일어섰다. 내가 일어나 가려고 하자 정희는 내손을 잡으며 애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황오빠 옛 정을 봐서라도 우리 집으로 갑시다.”     “내가 집에 급한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 참으로 랭혹한 사람이예요. 옛날에 나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해놓고도 나를 버리더니 이번에도 날 버릴 작정이예요.”     “나는 정희에게 “미안하다” 하고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정희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이렇게 늙고 보잘것 없지만 당신의 핏줄을 봐야 하지 않아요 갑시다.”     “나는 그녀가 어떤말을 했던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오로지 어서빨리 이장소를 떠나고 싶은 생각 뿐이였다. 나는 매몰차게 정희의 손을 뿌리치고 문밖으로 나왔다. 집안에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내가 뒤돌아 보자 정희가 돈봉투를 나한테 던지면서 악에 바친 소리를 질러됐다.”     배신자 같은 나쁜놈  황 인 철…  
9    그녀들의 운명 댓글:  조회:994  추천:0  2017-07-13
단편소설                                                그녀들의 운명                                                                  1       박씨는 몇년만에 어쩌다 아침산보를 나왔다. 오늘은 산보하는 첫날이라 멀리 가지않고 집 근방에 있는 연집강변길을 걷기로 하였다. 그는 오늘이 연집강변길을 걷는 마지막 날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후이면 정든 이곳을 떠나야 했다.     박씨는 우정 유보도길을 걷지않고 강변의 숲속 오솔길을 걸었다.  숲속의 오솔길을 걷노라니 숲속 여기저기에서 새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오고 새소리에 마추어 들려오는 물소리가 정답게 들리였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니 마치 어제날 고향의 개울가를 거닐던 기분이였다.     한때는 건설업자들이 모래를 채집하느라 연집강 강바닦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아 여기저기에 자갈무더기들이 쌓여있고 쓰례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스산한 연집강의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눈쌀을 찌프렸다. 시정부에서는 제때에  연집강을 다스리는 공정을 시작하였다. 먼저 강바닦을 고루 평해놓았고 강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물곬을 곧게 하였다. 강 량변에 높고 튼튼한 홍수방지 제방둑을  쌓아놓았고 그 강뚝위에 유보도 길을 닦아 놓았다. 강 기슭에는 버드나무, 키작은 잡목과 잔디를 심어놓아 옛날의 연집강의 모습을 재현시켜 주었다.     강기슭에는 드문드문 놀이터를 만들어 놓았는데 시민들이 자유로이 놀이터에서 놀며 운동을 할수 있게 하였다. 박씨는 놀이터에 설치된 운동기구에 매달려 운동을 하였다. 생각은 뻔한데 몸이 무거워 제대로 운동 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나니 가슴이 뻐근해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솟구치는 감이 들었다.                                                 2       박씨는 안도현 사람이였다. 친척이 소개로  로두구진에 있는 김정길이란 총각한테 시집왔다. 결혼하여 이십년간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딸라장사”를 하게 되였다. 처음 “딸라장사”를 시작할때에는 로두구에서 연길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였다. 통근하면서 장사를 한다는게 도통 말이 아니였다. 매일 교통비를 내야하고 시간에 딸려 때시걱도 제때에 먹을수가 없었다. 그는 남편에게 얼마 안되는 밭에 매달려 살지 말고 연길에가서 살자고 제의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머리를 저으며 반대의사를 밝히였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떠날때에는 잘살려는 의념이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올라  도시로 들어 갔지만  녹녹치 않은 도시생활은 그들의 뜻을 받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도시로 들어온후 생활형편이 낳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가지고 간 재산을 다 부려먹고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에 들어가 세방살이를 할것이면  차라리 농촌에 계속남아 다종경영을 하면서 편하게 사는게 났다고 했다. 승벽심이 강한 박씨가 그말을 듣고 가만 있을수없었다. 그는 남편을 보고 땅을 뚜지고 짐승개를 길러 언제 번신하겠는가? 하면서  한 마을에서 살던 최성국이네를 보라고 했다. 그들은 연길로 내려갈때 전 재산이 2만원이였는데 지금은 큼직한 아빠트 집을 장만했고 자가용차를 갖추어 놓고 버젓하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반박했다. 며칠 이사를 가는 문제를 두고 부부는 날카로운 시경전을 벌리였다. 박씨가 남편을 보고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혼자라도 연길에가 살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결국 어리무던한 남편은 손을들고 말았다.    그들은 농촌의 전 재산을 팔고 연길로 이사를 왔다. 가지고 온 미천이 짧아 집을 살수있는 여건이 안됐다. 할수없이 철남에다20평방이 되는 셋집을 맡았다. 박씨는 작은 셋집이지만 개의치않고 흡족한 마음으로 “딸라장사”를 하였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널직한 터전을 가지고 큰 벽돌집에서 살다가 작은 셋집에서 살자니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그런데다 일자리를 얻지못하고 비들빈들 놀자고 하니 속이 부글부글 괘는것 같았다.      안해는 보란듯이 가계부를 만들어 놓고 매일 수입지출을 적으며 흐뭇해 하였다. 안해는 나날이 불어나는 수입을 보면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데 남편은 일전한픈 벌지못하는 초라한 자신을 보노라니 어깨가 축처지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그래도 하늘은 공평하였다. 하늘은 어느사람에게나 세번쯤 좋은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 기회를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개개인의 운명이 달라진다. 어느날 박씨는 남편에게 용돈을 주면서 집에 들어밖혀 있지말고 돌아다니며 바람이나 쎄우라 했다. 김씨는 시내를 돌면서 광고 신문을 여러부 구해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와 자세히 신문광고를 보았다. “환구신문”에 로동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려 있었다. 로동자 모집 요구조건은 따로없이 용접을 잘 할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김씨는 즉시 광고에 실린 주소에에다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은 접수원은 취업할 의향이 있으며 래일 집적 회사를 찾아와 면담을 받으라고 했다. 소뿔은 단김에 뽑으라고 이튼날 김씨는 그 회사를 찾아갔다. 마침 면접관이 초중때 친구 리영찬이였다. 그날 리영찬경리는 정길이를 보고 용접할줄 아느냐고 물었다. 정길이가 할줄 안다고 하자 그는 더 말을 하지않고  “오케”하는 것이였다. 그리고선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리경리는 김씨를 보고 래일부터 출근하라고 하였다. 이튼날 정길이가 찾아가자 리경리는 부하직원에게 명하여 정길이를 모시고 건축공사장으로 갔다. 그날부터 김씨는 공사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였다.      이렇게 김씨는 친구의 덕으로 직업을 얻게 되였으며 짧잘하게 수입을 올렸다. 놀지않고 일하는데다 수입이 짧잘하니 정길씨는 안해 앞에서 당당해 졌다. 박씨 또한 남편을 떠 받들며 살들히 대하였다. 그들은 인생의 이부작을  시작하였다.     박씨는 여전히 “딸라장사”를 하였다. 원앙같은 이들 부부는 손을 마춰 돈을 버니 돈이 눈덩어리처럼 나날이 커갔다. 굳은땅에 물이 고인다고 세집살이를 하면서 아끼고 모아 1년만에 신풍에다 단층집 한채를 삿다. 비록 불때는 온돌집이라 해도 제집을 가지고 있으니 다리를 쭉 페고 잘수있었다.       장사도 기분에 따르는것 같았다 기분좋은 날에는 잘되고 기분 상한날에는 장사가 잘 안되였다. 새집을 산후 박씨는 마음편하게 장사를 하니 장사가 잘 됐다. 일이 잘되자고 그랬던지 단층집을 사서 10년이 되자 그들의 산 집이 도시 재개발 계획에 들어 파가이주호로 되였다. 집을 살때보다 10배의 높은 가격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들은 보상금외에 근간에 모아둔 돈으로  서시장과 가까운데 있는 5호동 아파트에 90평방되는3호집를 삿다. 3호집으로 이사를 온후 좋은일이 련이어 찾아 왔다. 제일 박씨네를 기쁘게 한것은 연길시호적에 올린것이였다. 박씨네가 연길로 들어 올때만 하여도 농촌사람이 도시호적을 올리는것은 하늘이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박씨네가 3호동 아빠트로 이사를 온후  연길시정부에서는 호적 개혁을 하여 누구든 연길시에와 아빠트집을사면 연길시 호적을 올릴수있다고 하였다. 박씨네도 그 정책의 우혜를 받아 선참 연길시민으로 되였다. 자식들도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으로 갔다. 일이 잘돼가니 가마잡잡하던 정길씨의 얼굴은 윤기가 돌았다.     박씨는 3호집으로 이사를 온후 장사를 하면서도 열심히 운동을 하였다.  3호집 근처에 연집강이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강가의 길을 따라 걷기운동을 견지하였다. 겨울철에는 스케트를 타는 운동을 하였다.                                                     3        불행은 눈섭아래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건강하던 박씨도 한번의 실수로 고행의 길을 걷게 되였다. 5년전 어느날 아침 박씨는 스케트를 타려고 강가에 설치된 빙상장으로 향하였다.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다가 그만 눈길에 미끌면서 허망 꼬꾸라 졌다. 넘어지면서 길옆에 불쑥 튀여나온 돌에 면바로 무릅을 밖았다. 순간 숨이 넘어갈듯한 진통이 느끼였다. 박씨는 아픔을 참으며 일어서 걷자고 하니 왼일인지 다리가 천근무게가 되면서 제대로 걸을수 없었다. 할수없이 걸음을 뭠추고 앉아있다가 아픔이 약간 진정되자 운동을 포기하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무릅은 퍼렇게 멍이들어있었다. 그는 생닭알을 가지고 멍든 부위를 문질렀다.   박씨는 생닭알로 아픈부위를 문지르면서 며칠 지나면 낫겠지 하고 지났는데 그냥 아파나자 더는 견딜수가 없어 연변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X광 사진을 찍으라 했다. 박씨는 사진을 찍었다. 이튼날 사진을 찾아가지고 의사한테로 갔다. 의사는 사진을 자세히 관찰해 보고나서 박씨를 보고 말했다.      “녀사님의 오른쪽 다리 마구리뼈가 심한 충격을 받아 입쌀알만한 작은 뼈쪼각이 떨어졌습니다. 걸을때 그 뼈쪼각이 신경을 자극하여 진통을 느끼게 합니다.”      박씨는 그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의사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가? 물었더니 의사가 하는말이 수술을 하여 그 뼈쪼각을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이란 말이 나오자 박씨는 더럭 겁이났다. 사실 박씨는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수술을 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박씨는 몸에 칼을 대는것을 제일 겁나하였다. 박씨는 의사 말대로 수술을 할가? 어쩔가? 하다가 결국은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무릅수술을 받아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무릅 수술은 간단하것 같지만 간단한 수술이 아니라고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앉은 뱅이로 될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다른수술은 하더라도 절대 무릅수술만은 하지말라고 권고하는것이였다.      박씨는 j골과병원으로 찾아갔다. 그곳 의사도 사진을 보고서 수술하여야 한다고 했다. 박씨가 수술하지않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수 없냐고 의사한테 물었다. 의사는 본인이 수술하기 싫다면 림시로 주사를 맞아보라고 했다. 박씨는 무릅주위에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보니 신통하게도 걸을 때마다 그렇게 아프던 무릅이 아프지않고 단박이라도 날듯이 다리가 가벼워지는것이였다.     그후 박씨는 무릅이 아풀때마다 주사를 맞았다. 다리병은 애꿋게도 박씨를 조롱하는듯 싶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아푸지 않다가도 날씨가 차거나 흐린날에는 바늘로 쑤시는듯 아파났다. 이렇게 몇년을 버티며 살아왔다. 그사이 다리가 부실하니 그렇게 애착해오던 “딸라장사”도 제대로 할수없었다. 다리가 탈이 생기니 몸전체가 부실해 지는것 같았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체중이 증가되였다. 몇년사이 체중이 10키로증가 되였다. 체증이 증가되니 볼봐엔 살집이 많아 주름살이 없어서 보기는 좋은데 부실한 다리가 몸무게를 당해내기 힘들었다. 몸이나니 혈앞이 올라가고 각종 질병들이 떠날줄 모른다. 오늘은 여기가 아팠다 래일을 다른 곳이 아파나면서 몸이 말째였다. 평생 강골이란 말을 들으면서 감기한번 하지 않던 그가 이제는 지나가는 감기소리만 들어도 감기에 걸리는 것이였다.      박씨는 다리병을 얻은후 “딸라장사”하지 못하게 되자 눈을 펀히 뜨고도 남한테 돈을 빼앗기기라도 한것처럼 못내 가슴이 아파했다. 돈생각을 하면 속이 마구 부글부글 끓는 것이였다.                                               4        박씨는 누어서 곰곰히 지나간 일들을 회상해 보았다. 박경숙(박씨)이와 장인숙이는 어릴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친구였다. 타고난 예쁜 몸매를 가진 장인숙은 스므살 나이에 연길시 모 공장에서 일하는 총각한테 시집을 갔다. 그 당시만하여도 농촌처녀가 도시총각한테 시집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출세했다고 여길때였다. 녀자들은 대학으로 가기보다 시집을 잘 가는게 났다는 말도 있었다.      친구 인숙이가 도시로 시집가는것을 보면서 경숙이는 무척 부러워 했다. 연분이 따로 있나보다. 도시로 시집가고 싶어했던 박경숙에게는 도시총각이 찾아오지않고 로두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정길이란 총각이 그의 인행행로에 끼여들었다. 어느날 로두구에 있는 고모가 찾아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조카와 배짝이될 좋은 총각이 있다고 하였다. 고모의 소개에 의하면 그 총각은 농민이라해도 군대에 갔다왔고 입당하였으며 체격좋고 마음씨 곱다고 했다. 여러형제중에서 세째라고 하면서 부모님을 모실필요가 없으며 둘이 손을 맞춰 잘벌면 잘 살것이라 했다. 농민이라고 하니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고모님이 하도 좋다고 하니 할수없이 만나보았다. 정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마음이 들었다. 인물체격도 좋거니와 책을 많이 읽어 유식하게 이야기 하는것이 맘에 들었다. 첫 만남 이후 석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30여년을 같이 살고 보니 남편을 잘 만났다는 감이들었다. 살면서 때론 티각태각할 때가 있었다만 다툼어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잊어지는것이였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벼기라 하겠다.        장인숙이 연길로 시집간이후 박씨는 한번도 장인숙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30년만에 중국은행 앞 거리에서 장인숙을 만났다. 그날 박씨는 외국으로간 딸이 보낸 딸라를 인민페로 바꾸려고  중국은행으로 갔다. 은행 문어귀로 들어가는데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꾹 눌러쓴 녀인들이 딸라를 바꾸라고 달라붙는 것이였다. 박씨는 딸라를 바꾸라는 녀인들이 말에 아랑곳하지않고 고추 은행으로행하였다. 그가 은행 대문가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한녀인이 알은체 하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박경숙이 아니오?”     “누구신지?”     “경숙이 옳구나 나 장인숙이다.”    “장인숙!?”    박씨가 의아해서 그녀를 처다보자 그녀가 마스크를 벗으며 얼굴을 보였다.     “인숙이구나! 오랜간 만이다. 어떻게 되여 이렇게 뚱뚱하니 몰라 보겠다.”     “무스게 뚱뚱하다고 그러니 이래봐도 칠십키로가 안된다.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다 몸이 나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경숙아 너는 아직도 옛날 그대로구나. 부럽다.”      “뭘, 부러울게 있니, 땅과 씨름하고 살았으니 많이 늙었겠지. 그런데 인숙아, 네가 시내로 시집가서 잘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되여  딸라장사를 다 하니?”     “나라고 왜 딸라장사를 못하겠니 돈을 벌수있다면 무슨짓이던 못하겠니.”     “그렇긴 하다만 허망에서 딸라를 봐꾸어도 되니? 경찰이 단속하지 않니? ”     “단속하기는 한다.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듯이 단속을 피하는 방법이 따로있다.”     “딸라장사를 하니 어떻니? 돈벌이가 되니?”     “제먹을 버리는 한다. 경숙아 외국돈이 있으면 나한테 바꿔라 은행보다 환률이 더 높게 해주마.”     “어쩌겠니 오늘은 은행에서 바꾸어 보겠다. 후에 보자.”     박씨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추 은행으로 들어갔다. 은행에서 외화를 바꾸는데 시간이 퍼그나 걸리였다. 외화를 인민페로 바꾸는 수속 절차가 까다로웠다. 그는 창구에서2만원이란 현금을 받는순간 누가 자기를 눈여겨 보지나 않냐싶어 곁눈질 해 보고는 잽싸게 가지고온 보자기에 돈을 둘둘말아 허리에 띠였다.      그가 은행대문을 나오자 그때까지 장인숙이 밖에있었다. 장인숙은 외화를 바꾸느라 여념이 없이 바삐 보내였다. 박씨가 인숙에게 간다고 인사를 하자 장인숙이는 후에 외화를 바꿀일이 있으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하면서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후에 박씨는 외화를 가지고 장인숙을 찾아 갔다. 장인숙이 한테서 외화를 인민페로 바꾸어 보니 확실히 은행보다 환률이 높았다. 박씨가 장인숙이를 보고 수입이 어떤가? 물었다. 장인숙은 하루에 보통 2백원을 벌수 있고 운수좋은 날에는 천원을 번다고 했다. 천원을 번다는 말을 듣고 박씨는 눈이 데꾼해졌다. 하루에 천원을 번다? 그럼 한달에 얼마나 벌가? 속으로 대충 계산해 보아도 만원이 넘는다. 만원이면 외국에가 힘들게 일하기보다 낮지 않는가? ...     장인숙의 말을듣고 호기심이 동한 박씨는 훗날 장인숙이를 보고 자기도 딸라장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인숙이는 별로 고려없이     “딸라장사”를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 딸라장사”를 하려면 우선 류동자금이 있어야 하고 자리위치를 잘 선택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화를 바꾸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외화를 바꾼후 모를것이 있으면 자기를 찾으라 했다.     박씨는 장인숙이 시키는대로 하남에있는  제2병원앞에서 “따라장사”를하였다. “딸라장사”를 시작한 첫날 그는 운수좋게 적지않은 외화를 바꾸었다. 첫 단추를 잘  꿔야 뒷 단추도 잘 꿸수 있다. 박씨는 첫 시작을 잘 떼서 그런지 매일마다 공백이 없이 외화를 바꾸었다. 며칠이 지나고 보니 수중에 있던 현금을 다 써버렸고 고스란히 외화만 남게 되였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돈은 기쁨보다 시름꺼리로 되였다. 외화는 바꾸었지만 대신 그 외화를 어떻게 다시 처리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박씨는 장인숙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장인숙은 집에 있었다. 장인숙의 집은 서시장 서쪽에 있었는데 집안은 널직하고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장인숙은 박씨가 가지고온 외화를 두말없이 인민페를 바꾸어 주면서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 했다. 박씨가 대충 짐작해 보니 며칠어간에 벌어들인 수입은 웬간한 월급쟁이 한달 로임에 맞물리는것이였다.     박씨는 그날 처음으로 장인숙의 남편을 보았다. 건장한 체격를 가진 장인숙의 남편은 쏘파에 비스듬이 누어서 텔레비죤을 보고 있었다. 인숙이가 남편에게 고향친구라고 소개하자 인숙이 남편은 바로 앉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고 보니 인숙이 남편은 무뚜뚝해 보여도 인정은 있는 사람이였다. 박씨가 돈을 바꾸고 돌아올때면 꼭 박씨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 가겠끔 도와주었다.  장인숙 또한  박씨를 믿어주고 잘 대했다. 때론 박씨가 현금이 부족할때에는 장씨한테서 돈을 먼저 선대해 썼다. 이렇게 여러해 거래하는 동안 박씨와 장씨는 서로 신뢰하며 장사를 하여 왔다. 박씨는 돈독하게 돈을 모으게 되였다.      장인숙은 그때 이미 “따로반”역활을 하고있었다. 장인숙이 수하에는 박씨와 같이 길가에서 딸라를 바꾸는 작은 “딸라장사”군들이 여렀이 있었다. 그들이 바꾼 외화들은 거개가 장인숙이네 집으로 들어왔다. 장인숙 부부는 모아놓은 외화들을 남방 상인들한테 넘겨주는 중개인으로 있었다.                                               5        박씨는 “딸라장사”를 시작 할때부터 “딸라장사”가 불법이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돈의 유혹에 불법이며 위험하다는것을  알고서도 시작하였다.      박씨는 “딸라장사”를 하면서 그로서의 인생철학을 찾았다. 돈을 빨리벌고 많이 벌려면 금할금(禁)가가 붙은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딸라장사”도 금할금자 범주에 속한다. 비록 “딸라장사”는 불법이기는 하지만 다른 금할금자보다 남에게 경제적 손실을 끼치거나  인명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의적인 장사라고 생각했다.      박씨는 “딸라장사”를 하면서 이런생각을 하였다. 부자행렬에 들어선 사람들 거개가 판단능력이 좋다고 보아왔다. 그들은 금융시장 동태를 잘 살펴본다. 그들은 돈버는 일이라면 은밀히 뒷거래를 하며 온갓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결단을 내고 용기가 있게 내민다. 박씨는 그들을 보면서 지혜가 있고 용기있는 자만이 부자로 될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박씨는 부자로 되는 조건에는 지혜로운자와 용기있는 자가 된다고 인정하면서도 부자로 될수있는 사람과 부자로 될수없는 사람을 구별할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은 별다른것이 아니라 매 사람마다 돈을 간수하는것을 보면 알수있었다고 단정했다. 부자로 될 사람은 돈지갑 잘 간수한다. 그들은 항상 돈은 꼭 지갑안에 넣고 다니는데 돈이 꾸겨지지 않게 정성스럽게 쪽 펴서 넣고 다닌다. 부자로 되지 못할사람은 지갑에 대해 무관심이다. 그들은 돈을 돈지갑에 넣지않고 무질서하게 호주머니에 놓고 다닌다.  그런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돈을 보면 구겨진것이 많다. 박씨는 돈을 잘 간수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부자로 될수없다고 여기였다. 장인숙을 보면 부자로 될것이 빤히 알리였다. 장인숙은 볼봐에 체격이 크고 건들건들한 성격을 가졌지만 돈을 건사하는것을 보면 달랐다. 장인숙이 같고 다니는 돈을 보면 언제나 새돈처럼 구겨진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딸라장사”장사군들은 돈을 여기저기에 감추어 두었지만 장인숙은 비밀금고를 갖고 있었다.      박씨는 “딸라장사”를 하면서 “딸라장사”자체가 위험을 같고 있다고 생각했다. 돈이란 그 자체가 흑심을 잃으키게 하며 불화를 조성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목격한데 의하면 “딸라장사”를 하던 사람중에서 강도들한테 강탈을 당하여 불구자로 되였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딸라장사”군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사람은 사법일군과 깡패무리다. 표면상에서는 “딸라장사”군들이 경찰을 깡패보다 더 무섭게 볼것 같지만  실제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박씨의 경험에 의하면 “딸라장사”군들이 경찰보다 깡패무리를 더 무서워 하고 있었다. 그 리유는 경찰들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일정한 범위내에서 불법장사군들을 단속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깡패무리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돈을 빼앗는것이 목적이기에 수법은 은밀하고 잔인하다. 그들은 어느때 어떻게 목표물을 습격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박씨는 “딸라장사”를 하면서 몇번 집법일군의 그물망에 걸려 붙잡힌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반성을 하고 벌금을 하거나 며칠간 감금생활을 하면 풀려 나오기도 했다. 경찰들은 대처할수 있지만 깡패무리들을 대처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깡패무리들은 정체를 나타내지 않기에  그들과 타협할수도 없고 대처할 방법도 없다. “딸라장사”군들은 저마다 깡패무리들이 강탈을 방지하는데 신경을 도사리며 살아야 했다. 근래에 사회치안이 잘되면서 “딸라장사”군들이 강탈을 당하였다는 소식은 없다만 몇년전만 하여도 여기저기에서 “딸라장사”군들이 강탈을 당하였다는 소식은 자주들려왔다. 박씨도 문단속을 잘하고 보안을 잘 했건만 깡패무리의 습격을 받아 남편을 잃는 참사를 겪었다.     8년전 어느날 그가 밖에서 외화를 구입하고 있는데 옆집 아주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네 집에 큰일이 생기였으니 빨리 집으로 오라는 것이였다. 박씨가 정신없이 집에 도착하여보니 집 주위를 노란 바줄을 둘러처놓고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 못가게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집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켜서서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말에 의하면 오후 세시경에 3층2호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 했다. 박씨는 3층2호실이란 말에 가슴이 섬득했다. 3층2호집이라면 분명 자기집이 옳은데, 살인 사건이라니? 죽은 사람은 누구일가? 혹시 남편이 아닐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사실 박씨남편 정길씨는 건축공지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안해의 뒷시발을 해주고 집안일을 맡아 하였다. 박씨가 황급하여 집으로 들어 가려고 하자 경찰이 지금 현장조사중이여 못 들어간다고 했다. 박씨가 집주인인 자기가 못들어가면 어쩌나고 하며 들어 가겠다고 행악질해도 경찰은 현장조사가 끝나기전에는 누구도 들어못간다고 했다. 한참 지나 가족들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였다. 박씨가 줄달음치며 집안에 들어갔을때 집안은 피 비린내가 났다. 마루 바닦 여기저기에 피가 뿌려져 있고 두개골이 깨여져 쓰려져 있는 남편과 그옆에 망신창이 된  녀동생이 시체도 있었다. 박씨가 남편의 시체를 않으려하자 경찰들은 흔적을 회손한다면서 제지하였다. 박씨는 두 사람의 시체를 보고 그만 그자리에서 졸도했다.      박씨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였다. 그가 어떻게 되여 병원에 오게되였나 남동생한테 물으니 남동생은 낮은소리로 말했다. 누님이 밖으로 나간후 매형과 녀동생이 집에서 딸라를 바꾸고 있다가 강도들한테 강탈을 당하여 매형과 녀동생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매형과 녀동생의 죽음을 보고 누나가 기절하여 쓰러졌다고 말했다. 박씨가 매형의 시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묻자 남동생은 매형과 녀동생의 시체는 이미 부검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하루가 지나 형사과에서 통지가 왔다. 부검이 끝났으니 시체를 가져가라는 통지였다.     박씨는 간신히 남편의 시체를 보았다. 부검이 끝난 시체는 이미 얼굴형태로 앓아못볼정도로 붕대로 머리를 감아놓아 형태를 알수없었다.     이튼날 박씨의 남편과 녀동생의 시체를 경도릉원의 화장실에서 화장을하고 날려버렸다. 박씨는 화장실 굴뚝에서 뿜겨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여 울고 울었다.                                                6       공안기관에서는 연길시에서 발생한 중대한 살인사건들은 기본상에서 파안하고 죄법들을 인츰 붙잡았는데 유독 “딸라장사”군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안건들은 잘 파안되지 못하고 미수사 사건으로 뒤로 미루는 일이 있었다. 공안 일군들이 말에 의하면 “딸라장사”군들과 련관된 중대 살인 강탈 사건들을 잘 파안 못하는 원인은 피해자인 “딸라장사”군들과 가족들이 공안기관에 제대로 제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또 사건현장에 감시카메라가 안장되여 있지않기에 범죄자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것은 피해자들이  공안기관에 잘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그들이 공안기관에 잘 협조하지 않은 원인은 ”딸라장사”자체가 불법이기에 사실대로 말하면 자기들의 숨겨진 불법장사비밀이 폭로되기때문에 사람이 죽어도 재대로 제보하지 않는다 한다. 어떤 피해자들은 사건제보를 아에 포기 하려고 하기때문이였다.      한번은 박씨가 급성맹장염에 걸려 연변병원에 입원하였다. 그가 수술을 한지 2일 되던날 새벽녘 그가 입원한 병실로  중환자 두분이 밀차에 실려들어 왔다. 두사람 다 코에 산소호흡기를 꼽은채 들어왔다. 머리를 붕대로 감았고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박씨가 아침에 밖으로 나가면서 그 환자의 이름표를 보고 두 환자중에서 한 환자가 바로 장인숙이라는것을 알게되였다. 장인숙을 응급실로 온것을 보면서 박씨는 장인숙이 틀림없이 깡패무리한테 강탈을 당했다고 추측하였다.    아침이 되자 의사가 들어와 두사람을 검사해 보고는 장인숙의 정신상태나 호급에 지장이 없다면서 산소호흡기를 철거했다. 하지만 장인숙이와 같이들어온 환자는 여전히 산소호흡기를 철거하지 않았다. 산소호흠기를 뗀후 장인숙은 몇시간이 자다가 방금전 정신이 돌아섰는지 눈을 뜨고 사방을 살펴보는것이였다. 그 장면을 본 박씨는 장인숙이한테 다가가 장인숙이 이름을 부렀다. 장인숙은 박씨를 알아보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였다. 박씨를 처다보는 장인숙이 눈길은 애처럽게 보였다. 마치 어린양이 구덩이에 빠져 구원을 청하듯 그런 눈빛으로 보였다. 그의 두볼로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박씨는 수건으로 인숙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위로의 말을 하였다.    오전 열시가 되자 사복경찰 몇이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장인숙앞으로 가더니 경찰증을 내 보이고서는 사건 파안을 위해 왔다고 했다. 피해자분께서 힘들지만 협조해 달라고 했다. 인숙는 입을 실룩거리며 말을 할수없다고 했다. 경찰들은 장인숙이가 말을 못한다고 여기고 밖으로 나갔다. 2시간후에 경찰들이 다시들어왔다. 이번에는 경찰이 장인숙을 보면서 곁에 있는분이 남편인가? 물었다. 그때야 장인숙이는 떠듬떠듬 옳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장인숙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드리됐다. 장인숙이는 낯을 찌그리며 어찌못해 대답하자 경찰은 장인숙을 보고 사건을 빨리 파악하자면 피해자 본신이 진술을 잘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장인숙은 죽는 시눙을 하면서 머리를 쏴쥐고 돌아누느며 대답은 하지않고 신음소리만 냈다. 경찰들은 여러번 설득하였지만 인숙이는 종시 입을 열지 않았다. 박씨가 보건대도 안타가웠다. 겨우 숨이 붙어있는 사람한테 진술을 하라고 하는 경찰들이 얄밉게  보였다. 하지만 경찰측에서는 이번에 발생한 사건은 중대 사건이므로 빨리 파악하려면 피해자가 피해를 당할 당시의 환경과 사건의 주모자들에 대한 특징을 제보하여야 하는데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답답해 하는 태도였다. 그날 경찰들은 장인숙한테서 좋은 답변을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튼날에도 여전히 경찰들이 찾아와 장인숙의 제보를 기다렸지만 좋은 답복을 받지 못했다. 그때까지 장인숙이 남편은 산소호흡기는 철거했지만 의식불명이였다.     이틀이 지나 박씨는 퇴원하였다. 퇴원한후 장인숙에 대한 소식을 모르다가 한달후 뇌과병원 대문가에서 쌍지팡이를 집고 서있는 장인숙을 만났다. 박씨는 장인숙을 보는순간 자기눈을 의심하였다. 그사이 장인숙은 몰라보게 수척하였다. 헝클어진 머리 수척한얼굴 흐리멍텅한 눈, 장인숙은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하였다. 장인숙은 박씨를 앓아보았다. 두 사람은 복도 의자에 앉아 그 사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장인숙은 반벙어리 신눙을 해가며 떠덤떠덤 말했다. 인숙의 말에 의하면 그의 남편은 그번 사건으로 인하여 정신장애자가 되였다고 했다. 지금 장인숙 부부간은 경로원에가 있다고 했다. 장인숙은 머리가 너무도 아파 뇌과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려 왔다고 했다.     세상일은 조석지변이라 하더니 누구도 자기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게 로련하고 든든하던 장인숙 부부가 장애인으로 될지 누가 앓았으랴?                                                    7        박씨는 이제는 “딸라장사”란 말만 들어도 실물이 난다. 비록 지금은 “딸라장사”를 하지못하여 아쉬움이 있지만 아직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는 남편의 사망사건과 장인숙 가정이 피해사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떤 사건들은 십년 이십년 후에도 해명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앞으로 꼭 공안기관에서 해명해 주리라 믿어왔다.      박씨는 “딸라장사”를 못하고 집에 들어밖혀 있자니 속이 썩는것 같았다. 활동하지 않고 집안에 있으니 몸이 점점 허약해 진다. 사람은 다리부터 늙는다는 말이 있다. 기계도 쓰지않으면 녹이쓰듯이 박씨의 다리는 점점 무맥해졌다. 다리가 성할때엔 그리도 잘 오르내리던 층층대가 무릅을 상한후로는 층계가 마치 앞을 막는 높다란 장성처럼 여겨진다. 다른 시체 부위는 큰 탈이 없는것 같아 오래 살것 같은데 요놈이 다리가 오래 버티여 낼것 같지않다는 우려가들었다.     이 근래 연길시에는 초고층건물들이 오후죽순처럼 일떠서고 있다. 건축물이 변화와 함께 사람의 주거환경과 의식도 변화되고 있다. 오두막에서 살던 사람이 벽돌집에서, 벽돌집에서 살던 사람이 아빠트집으로, 아빠트 집에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엘리베이터가 장치된 초고층 빌딩에서 살기를 원한다. 박씨도 보통아빠트단지에서 벗어나 초고층빌딩으로 이사를 갈때가 되였다고 생각했다. 박씨가 아는 사람마다 모두하는 말이 하는 다리가 부실한 로인네들은 엘리베이터가 장치덴 빌딩에서 살기가 편하다고 했다. 박씨는 다리가 부실하게 되자 자연 자기도 엘리베이터가 장치된 빌딩에서 살고 싶은생각이 부쩍들었다. 박씨는 외국에가 있는 자식들한테 자기 생각을 전달하였다. 자식들도 어머니생각이 그러시다면 집을 팔고 승강장치가 있는 빌딩으로 가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같은 값에는 분홍치마라고 빌딩에서 살봐하고는 환경조건이 좋은 빌딩에서 살고 싶었다. 박씨는 연길시에서 경치와 환경조건이 좋기는 부르하통하강 강변에 있는 빌딩이라고 생각했다. 박씨는 자기의 의사를 친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자매와 조카들이 나서서 집을 돌아보았다. 정작 자기 맘에드는곳에 집을 사려고 하니 환경조건이 좋은 집들은 다 면적이 큰 집들이고 혼자살기에 적합한 5-60평방되는 집들은 없었다.     마침 시조카댁 한테서 전화가 왔다.  백산호텔 아래에 있는 옛날 로동자구락부가 있던 자리에 새로 건설한 빌딩이 있는데 알아본데 의하면 그곳에 42평방되는 집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전에 숙모님과  같이 그 곳으로 가 보자고 했다. 박씨는 시조카댁이 전화를 받고 인츰 그곳으로 갔다. 그들은 먼저 건물 판매처로 찾아갔다. 판매처 일군들은 친절하게 그들을 접견하였다. 판매처 일군이 얼마만한 면적의 집을 요구하는가? 묻자 그들은 40-50평방되는 집을 요구한다고 하자 마침 25층에 42평방되는 집이 있다고 했다. 안내자가 카드를 엘리베이터에 전자판에 갔다대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를륵 열리였다. 엘리베이테에 올라 일분도 걸리지 않아 25층에 올랐다.  큼직한 유리벽으로 된 현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늘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한 황홀한 감이 들었다.     25층에서 내려다보니  7층짜리 집들은 앉은뱅이 집으로 보이였고 길가에 달리는 자동차가 석량갑 처럼 작게 보이였다. 길가로 다니는 행인들은 아주작게 보이였다. 머리를 들어 앞을보니 연길시의 삼면을 다 볼수있었다. 멀리 보이던 모아산을 한눈에 볼수있어 기분이 좋았다.     실내 장식은 하지 않아 스산해 보였지만 앞으로 아담하게 장식을 한다면 허물할게 있는것 같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오케” 하였다..                                         8        며칠전에 시 공안국 형사들이 박씨를 찾어왔다. 공안일군들은 박씨에게 사진 한장을 보이면서 이 사람을 알만한가고 물었다. 박씨가 사진을 찬찬히 보니 한 사람이 얼굴이 떠올났다. 자기한테 여러번 외화를 바꾸었던 낯익은 얼굴이였다. 그 사람은 박씨의 남편이 사망하기 며칠전에 박씨의 집으로 찾아와 외화를 바꾸어 간적이 있었다. 이상한것은 박씨가 오인숙의 집으로 갈적마다 그 사람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그 사람과 오인숙 남편은 형님동생하는 절친한 사이로 보였다. 그 두사람은 박씨가 가면 다른칸으로 옮겨가 무슨 밀담을 하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박씨는 고지곳대로 자기가 본 사실 그대로 공안일군들에게 들려주었다. 공안 일군은 그 사람은 강현욱이란 사람인데 한때는 오인숙의 남편과 외화를 밀매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지금 해외에 있는데 여러가지 범죄협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지금 공안기관에서 수배중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박씨 남편을 살해한 협의를 받고 있으며 오인숙부부를 강탈한 사건과도 련관되여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똑똑하게 증실해 달라고 했다. 박씨는 성의껏 진술하였다.      박씨는 래일이면 새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는 이사를 가기전에 정든 연집강변을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였다. 걸음걸이가 불편함에도 천천히 강변길을 걷노라니 찹찹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박씨는 연집강을 사랑하면서 연집강의 변화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연집강변3호집에서 산지 15세월이 흘렀다. 이 강변에서 생애를 마감하고 저세상으로 가려고 했는데 부득의한 경우에 할수없이 떠나야 했다. 정작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 났다. 박씨는 연집강을 떠나면서 "안녕"을 외치였다.
8    원점 댓글:  조회:2436  추천:3  2017-05-22
단편소설                                        원점                                         1     내가 연길시립병원에 입원하여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내가 자리잡은 침대 마중켠 침대로 머리발이 하얀 남성 환자가 왔다. 밀차에 실려온 그 환자는 다리를 풍대로 칭칭감고 있었다. 그 환자를 젊은 사람이 모시고 왔는데 정성들여 그분을 침대에 눕히면서 알뜰히 간호하였다. 나는 그 젊은이를 보면서 부모님께 효성하는 자식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환자가 입원한 이튼날 저녁때 허리가 곳곳하고  인상이 좋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녀인이 먹을것을 한 꾸럭 들고왔다. 그 녀인이 들어오자 아들로 되여 보이는 젊은이는 말없이 인츰 자리를 뜨는것이였다. 젊은이가 나가자 눈을 감고 있던 그 환자가 그 녀인을 보자 때뜸 얼굴이 환해 지는것이였다. 그 녀인도 반색해 하였다. 두사람은 크게 말을 하지않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을 보고 다정하게 보내는 부부라는 감이 들었다. 그 남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녀인이 가지고온 음식을 달게 자시였다.      그 녀인은 환자곁을 떠나지않고 뱅뱅 돌면서 호리를 하는데 때때로 두 사람은 낮은소리로 소곤대는 것이였다. 새볔녁이 되자 그녀는 침대곁에서 쪽잠을 잣다. 아침이 되자 젊은이가 왔다. 그 녀인은 부랴부랴 꾸럭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젊은이가 들어오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대뜸 사라지고 두 사람간에는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항거의 수단이기도 하며 불통이이기도 하다. 나는 침묵을 지키는 그들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서 그 녀인이 왔다가자 어두운 침묵이 흐를가? 효자같던 아들의 태도가 급변할가? 그들간에는 어떤 피치못할 사연이 있을가? 궁금해 났다.     나는 침대에 누어있기가 답답하여 현관으로 나왔다. 나는 복도로 왔다갔다 하다가 복도 한쪽켠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 내가 걸상에 앉아 있는데  그 젊은이가 나왔다. 그 젊은이도 나처럼 현관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내곁에 다가앉으면서 낮은 소리로 나한테 물었다.    “아바이는 입원한지 오래됩닙까?”    “며칠 되오.”    “어디를 상하였습니까?”    “며칠전 눈길에 번저저 그만 허리를 상하였소. 젊은이는 어제 입원한 분이 자제오?”    “네.”    “아까 왔던분은 어머니고.”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니라면?”    “말하기 난처한데 뭐라고 할가? 아버지의 애인 입니다.”    “뭐! 아버지 애인이라니!?”    내가 의아해 하자 그 젊은이는 더 험하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그 로친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바람을 피웠다니!? 그게 무슨소리오!? 그럼 자네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데두 그랬단 말이우?”    “아닙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지 몇년이 됩니다.”    “이사람이 말해도 분수가 있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몇년이 됐다면서, 아버지가 홀로있기 적적하여 녀자 친구를 사귀였겠는데 그게 무슨 바람이오. ”    “아, 아닙니다. 바람은 아닙니다. 나는 어쩐지 그 할망구가 내 새어머니로 되는것이 싫어서 그랩니다.”    “자식이 아무리 마음이 안든다해도 부친이 좋아한다면 찬성해야 하지않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어쩐지...”    말속에 가시가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아들의 말을 듣고나니 똑똑해 보이던 아들이 부실해 보이였다. 그가 내뱉은 말이 역작용이되여 효자로 보였던것이 단박에 불효자로 뒤밖기게 하였다. 아들이 말을 들어보면 그녀와 그 아들 사이에는 필경 말못할 앙금이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못난자식, 아비가 좋아 하는데 제가 뭐길래 반대하는거여”나는 속으로 그 젊은이를 질책하면서 그 젊은이와 더 말하고 싶지않아 호실로 들어왔다.    저녁이되자 아들은 집으로 갔다. 아들이 나가자 우리 두 사람만 남게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인사를 하였다. 인사를 하고 보니 그 사람은 성씨는 리씨였고 나이는 칠십이라 하였다.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였다. 동갑이라 하자 우리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리씨는 겉보기에  매까로운 사람으로 보였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서글 서글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리씨를 보면서 속으로 사람은 깔깔해 보이는데 왜 아들과 그 녀인 사이에 잠적해 있는 매듭을 풀지 못할가? 궁금해 났다.    내가 리씨를 보고 어제밤에 왔던 녀인이 마누라인가?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리씨는 정식 마누라는 아니지만 림시 마누라라했다. 정식마루라가 아니구 림시 마누라라니?  이게 또 무슨 귀신 낱알 까먹을 소리야? 나는 리씨를 보고 마누라면 마누라였지 림시 마루누가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리씨는 시무룩히 웃으며 그녀와 가정을 이루고 싶은데 이러 저러한 여건의 여의치 않아서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리씨를 보고 내가 볼봐엔 아들이 아버지 혼사를 달가워 하지 않느것 같아 보인다고 했더니 리씨가 하는말이 지금 아들집에 언쳐 사는 처지인데 혹 하나를 더 붙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것 같아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겠다는 말을 못했다고 했다. 나는 나같으면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자식들이고 뭐고간에 내 뱃장대로 딴 살림을 꾸리겠다고 했다. 여생이 얼마나 길다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지 자식이 책임지겠는가? 하면서, 자기 주장대로 살라고 리씨에게 권고 했다. 리씨는 내말을 듣고 한참 잠잖고 있다가 결심을 내린듯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    “동갑이 말이 옳소. 래일이라도 그녀를 보고 함께 살자고 제기를 해야겠소.”    “잘   생각 했소.”    나는 리씨의 생각이 옳다고 하면서 경제상에서 자립할수만 있다면 자식의 눈치를 볼게 없이 령감 로친이 오손도손 사는것이 옳다고 했다. 그러자 리씨는 자기는 자식들이 신세를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립할수있다고 했다. 자기는 비록 농촌 호구이지만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왔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로 당지부서기 수당금과 농업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녀인도 자식부담이 없고 자립할수 있는 경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2      이튼날 나는 조용할때 리씨를 보고 그녀를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 물었다. 리씨는 잠간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8년전이였소 내가 한국에서 몇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며느리가 한국으로 가는 수속을 밟았다면서 연길로 와서 손군을 맡아 키워달라고 했소. 자식들이 외국에가 돈을 벌겠다는데 어쩌겠소. 우리 부부는 할수없이 농촌의 재산을 처리하고 연길로 들어왔소. 일이 꼬이자고 그랬던지 연길에 들어와서 5년만에 마누라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사망했소. 로친이 병고로 사망했다는 부고를 받고 한국으로 갔던 아들 며느리가 돌아왔소. 로친의 장례를 치른후 얼마안되여 며느리는 돈을 벌려고 한국으로 다시 가고 아들은 아이들 때문에 가지못하고 집에 남게 되였소. 이렇게 되여 삼대가 한집에서 살게 되였소.    나는 홀애비로 되고보니 허전하고 갑갑해나며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소. 미우나 고우나 로친이 있을때에는 그래도 의지할데가 있고 할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누구와도 말할 사람이 없이 외롭게 묵묵히 지내여야 했소. 이전에는 손군들이 말동무가 되던것이 제 아비가 오고 학교로 가면서 손군들과 대화를 나눌사이가 없게되였소.      나는 차츰 농촌이 그리워졌소. 농촌에 있을때에는 도시 사람이 부러웠는데 정작 도시로 오고보니 농촌생활이 더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소. 도시는 농촌보다 편리한것이 많아 좋은데 평생 일로 살아온 내가 할일이 없어 빈들빈들 놀기만 하자니 답답 하기만 했소. 농촌에 있을때에는 일을 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보냈는지 몰랐는데 시내에 들어와서는 시간 보내기가 여간만 힘들지 않았소.     로친이 돌아간 그해 나는 한해 겨울을 갑갑한대로 보내였소. 긴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소.  날씨가 따뜻해지자 내마음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물거리기 시작했소. 나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정자로 갔됐소 정자에는 마을의 로인들이 모여서 놀고 있었소. 로인들은 대개 트럼프를 치지않으면 장기를 두거나 한담을 하고 있었소. 평생 소처럼 일만 하고 놀음에는 별로 흥취가 없었던 나는 그분들과 어울려 놀기는 했다만 어쩐지 허전한 마음을 달랠길 없었소. 어떻게 한담,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갈가?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농촌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었소.     내가 이럴가? 저럴가?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날 고향 친구가 나를 찾아왔소. 둘은 음식점으로 가서 술을 마이며 회포를 풀었소.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중 그 친구가 갑갑한 마음을 풀수있는 좋은곳이 있다고 말했소. 내가 어떤곳인가? 물었더니 그 친구가 하는말이 하남에 무도학습반이 있는데 거기로 가면 새 친구들을 사귈수 있다고 하였소. 내가 춤출줄도 모르고 무도에 대하여 흥취가 없다고 하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모르는것은 배우면되고 다니다보면 새 친구를 사귈수 있으니 답답한 속을 풀수 있다고 했소. 그러면서 그는 무도학습반으로 다니는 사람 대개가 퇴직한 종업원들과 외국으로 다녀온 년세가 있는 분들이라 했소. 무도학습반에서는 무도를 배울뿐만 아니라 등산도 하며 명승지 유람을 다니는 등 다양한 집체활동을 조직하고 있다고 했소. 나는 그말을 듣고 귀가 솔깃 했소.    이튼날 나는 그 친구가 알려준대로  하남무도학습반으로 갔됐소. 내가 등기처에가 등기를 하자 등기처 일군이 전화를 하여 무용선생이 오시였소. 선생님은50대로 되여 보이는 곱살스럽게 생긴 녀성 선생님이였소. 선생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소.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무용 련습실으로 갔소. 련습실에 들어 가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소. 학생들은 짝을 무어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었소. 내가 들어가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새로온 분이라고 나를 소개 하였소. 여러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였소. 인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나에게 한 녀인을 알선해 주면서 두분이 오늘 부터 춤짝이 되였다고 하였소. 그러면서 무도는 남녀가 짝을 무어 추는 춤이기에 반드시 남녀가 한짝이 되여야 한다고 했소. 나는 그 녀인과 춤짝이 되여 선생님의 하시는대로 따라 하였소. 그녀는 무도학습반을 다닌지 꽤나 오래였던지 춤동작에 익숙했소. 우리가 배우는 무용은 사교무였는데 사교무를 배우려면 사교무의 기본인 “부루스”를 배워야 했소. 내가 무용지도 교사가 시키는대로 한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않고서  춤을 추려는 순간 그녀의 얼굴모습이 어디에서 딱 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 누구일가? 생각해도 인츰 떠오르지않았소. 춤을 배우는데 열중하다나니 그녀를 어디에서 보았던지 생각할 여지가 없었소. 한시간 춤을 추고 휴식시간이 되자 모두다 걸상에 앉아 휴식하였소. 우리 두사람은 가까이 앉게 되였소. 우리 두사람은 정식으로 인사를 하게 되였소. 내가 먼저 철남에 살고 있는 리성태라 했고 그녀는 공원가에 살고 있는 오설주라 했소.  대방의 이름을 듣고 나도 그랬고 그녀도 놀라는 기색이였소. 오설주라? 많이 듣던 이름인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를 찬찬히 보았소. 그녀도 나를 빠금히 쳐다보는것이였소. 안개속에 잠겨있던 산봉우리가 서서히 륜각을 나타내듯이 내 기억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소. 그녀도 기억속에서 나를 앓아보았소. 우리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동시에 대방의 이름을 불렀소.    “설주!”    “성태 오빠!”    연분이 따로 인나 보오. 우리 두사람은 50년전의 옛 이름을 기억하고 으스러지게 손을 잡았소.    사실 설주와 나는 한고향 사람이였소. 어릴때 우리 두사람은 친 오누이처럼 각별히 사이좋게 지내였소. 후에 두집이 따로 이사를 가면서 몇십년간 서로 모르고 지나다가 우연히 모도학습반에서 만나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 우리는 부지련히 무도학습반을 다니였소. 우리 두사람은 그사이 그립던 이야기도 나눌수 있었소. 나는 인생의 모진 세파에 그을리고 패인 설주의 얼굴을 보면서 늙었구나 하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그 얼굴에서 먼가를 찾아냈소. 설주의 예뻤던 옛 모습을 찾아냈소. 설주의 옛 모습을 찾고보니 마음이 설레이였소. 나와 설주는 자주 지나간 세월 이야기를 나누었소 나는 설주가 남편을 잃고 홀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였소. 처음에는 설주가 남편이 있다고 하다가 하도 내가 다잡아묻자 할수없이 홀로살고 있다고 실토했소. 나는 설주가 홀로있다는 말을 듣고 옛 련정이 되살아 나면서 잊어버린 옛날로 되돌아 가고픈 생각이 들었소, 어떤의미에서 말하면 하늘이 우리 둘에게 준 인연이라 생각했소”   “듣고 보니 한편의 소설이야기를 들은것 같소.”   “뭘 그렇게 평가 할게 있겠소. 그런 사연은 누구도 다 있을 수 있는 일이오.”   “하긴 그렇기도 하지.”  여기까지 말했는데 그녀인이 들어오자 우리 두사람은 이야기를 끊었다.                                                   3      이튼날 우리 두사람은 이야기를 주고 받었다. 이번에는 리씨가 나를보고 무슨사업을 했는가? 물었다. 나는 간추려 말하였다.    “내인생도 평탄하지는 않았소. 나도 리동무처럼 농민의 자식으로 태여나 고생을 많이하며 자랐소.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공부는 잘했소. 고중졸업을 앞두고 “문화혁명”이 터지면서 나는 대학시험도 못 쳐보고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지었소. 몇해 농사를 짓다가 농촌소학교 민영교원으로 취직했소. 그후 추천을 받아  연변대학에서 꾸린 성인교육학원으로 가게 되였소 학원을 졸업한후 화룡시 3중학교에배치를 받아 그곳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소. 나이 쉰다섯살이 되던해 내부퇴직을 하고 안해와 같이 로씨야 장사를 갔됐소. 우연히라고 할까 로씨야 장사를 가서 한 녀인을 만나 돈을 적잖게 벌었소. 로씨야에 갔다온후  정식퇴직을 하고 자식들을 따라 연길로 들어왔소.”    “김선생의 말을 듣고 보니 김선생의 인생은 순이로웠다는 감이드오. 헌데 로씨야에가서 한 녀인을 만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는데 혹 그 녀인이 로씨야사람이였소?”   “아니, 조선족이였소. 길림지구 사람이였소.”   “ 어떻게 로씨야에가서 그 녀인을 알게 되였소? 들어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것 같소. ”   “그때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오. 솔직이 말하면 그때 나는 돈에대한 의욕이 강했소. 농민출신이 중학교 교원으로 되는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고 편안히 만년을 보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였소. 그당시 우리 조선족 사회에서는 로씨야에가서 장사를 하면 큰 돈을 번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펴지였소. 나는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하여 로씨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소. 로씨야 구경도 할겸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소. 그리하여 나는 학교에 내부 퇴직신청을 하여놓고  안해와 같이 로씨야 장사를 떠났소. 지금생각하면 순진하기도 했지, 교육자가 장사를 한다는 자체가 실패라고 생각되오.    생명부지의 땅에서 장사하기가 정말로 힘들었소. 우리부부가 2년을 열심히 뛰여다니며 장사하여 겨우 본전을 뽑았소. 2년을 장사하고 나니 로씨야 말을 대충할수있고 장사에도 미립이텄소. 이제 몇년 더 고생하면 몫 돈을 쥘것 같았소. 우리가 한창 장사에 열을 올릴 때 녀동생한테서 급전이 왔소. 자기들이 한국으로 가게되므로 우리 아이들을 더는 맡아 키울수 없으니 빨리 돌아 오라는것이였소. 나는 계속 남아 장사를 하기로 하고 안해는 아이들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소. 안해가 떠난후 나는 날개개 떨어진 새 신세가 되였소. 로씨야장사는 남자들이 혼자 하기 힘들었소. 나는 어떻게 장사를 할지 몰라 한숨만 푹푹 쉬였소. 근심이 태산같아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소.    어느날 나는 안해와 같이 장사 할 때 팔다가 채 팔지 못한 옷견지를 들고 장마당으로 갔소. 일반적 경우에는 로씨야에서는 옷을 파는것은 녀자들이 팔고 남자들은 뒷일을 거들었소. 나는 안해가 없는지라 안해가 하던대로 물건을 진렬대에 걸어놓고 손님이 오기만 기다렸소. 반나절이 지나도 나는 옷 한 견지도 팔지 못하고있었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였지만 속은 술비지처럼 부글부글 끓고있었소. 머리속에는 온갖 잡념들이 맴돌이치면서 나를 괴롭혔소. 나는 후회하기도 했소. 왜 하필 좋은 직업을 버리고 이국땅에 와서 말 못할 이 고생을 겪는가? 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덮쳐들면서 유리쪼각을 삼키기라도 한것처럼 쓰리고 아팠소.     내가 이렇게 골머리을 앓고 있는데 내가 옷을 팔고있는 저켠에 곱살그럽게 생긴 녀자가 옷을 팔고있었소. 조선족인지 한족인지 몰라도 하여턴 중국에서 온 녀자임은 분명했소. 넌지시 건너다보니 구매자들은 그 녀자의 애교에 반하였는지 같은 공장에서 나온 제품인데도 내것은 거들떠 보지않고 얄밉게도 그녀의 옷만 사는것이였소.    오후가 되자 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맥없이 숙소로 발길을 돌렸소. 고개를 수구리고 생각해보아도 어떻게 장사를 할지 별 뾰족한 수가 떠 오르지 않아 걸음걸이는 무겁기만했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녀자 파트너가 없이는 장사를 할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소. 내가 무겁게 발길을 옮기는데 “아저씨는 중국 어디에서 왔어요.” 하는 녀인의 애교스런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소.    나는 별 싱거운 녀자가 있다면서 뒤돌아 보았소. 바로 내 매장앞 저쪽켠에서 옷을 팔던 그 녀자였소.    “연길에서 왔소. 그런데는?    “오, 연길! 조선족이 많아서 좋았어요. 앞으로 돈을 많이 벌면 연길에가 살겠어요.”    “그쪽은 어디에서 왔길래?”    “길림시에서 왔어요. 아저씨는 저를 봤을거예요. 저는 아저씨가 옷을파는 매장앞에서 옷을 파는 사람이예요. 내가 보건대 아저씨는 파트너가 없이 혼자 장사를 하시더구만요. 남성분이 로씨야에와서 장사를 하려면 녀자 파트너가 있어야 해요. 파트너가 없이 장사한다는것은 불가능해요. 왜 파트너를 하지 않았어요?”    “나하고 무슨 사인데 내 일에 삐치오. 나혼자라도 얼마던지 잘 팔고있지않소.    “그렇게 잘 판다는 분이? 이 물건은 어쩌고? 오늘도 공백이나 다름없지요? 달리 생각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가 해서요.”    “뭘, 도와준다는게오.”    “아저씨 장사를요.”    “내 장사를? 소가 짖겠다. 내 일엔 상관말고 그쪽에서나 돈을 콱 버오.”    “아저씨 달리 생각지 마세요. 내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예요. 이국타향에서 한 동포로서 서로 돕는것이 인간 도리잖아요. 짐 하나를 주세요. 제가 들고 가겠어요.”     그녀는 비위좋게 내 짐을 빼앗다싶이 하면서 짐을 들고 나와같이 한 길을 걸었소. 나는 별난 녀자를 다 본다고 하면서도 어쩌못해 그런척 하면서 그녀에게 짐을 넘겼소. 내 숙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짐을 나한테 맡기고는 돌아섰소. 돌아서는 그녀를 보고 나는 그대로 가지 말고 집안에 들어가 커피한잔 나누자고 했소. 그녀는 그대로 갈척 하다가 집에 가도 크게 할 일이 없다면서 돌아서는 것이였소. 집안에 들어선 그녀는 이곳 저곳 흟어보고서 집안을 깔끔히 거두었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정결한 분이라 하였소. 나는 정결하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소.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소. 그녀는 요사이 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고 실토정했소. 내가 혼자서 힘들게 장사하는것이 보기가 구차하였다고 했소. 자기도 남편이 병환으로 귀국한후 혼자서 장사하기 어려워서 장사 파트너를 찾으려고 고려하고있는 중이라 했소. 나를 보면서 나의 외모를 보아 선비티가 나는데 장사를 할 기질이 아니지만 성실해보이더라고 했소. 그러면서 속으로 저런 순진해보이는 사람과 같이 손을 마춰 장사를 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소. 녀자로서 차마 먼저 장사를 같이 하고싶다는 말을 하지못하고 있었다고 했소.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보고 로씨야에 오기전에 무슨 사업을했는가? 이전에 같이하던 녀자가 보이든데 요즘에는 왜 보이지 않는가? 물었소. 나는 간약해서 그녀자는 내 안해라고 말했소. 그녀도 자아소개를 했소. 그녀의 이름은 천수옥이라 하는데 길림시 영길현사람이라 했소. 그는 농사를 짓다가 남편과 같이 로씨야장사를 왔다고 했소. 그도 처음에 로씨야에 와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고 했소. 하도 시간이 오라니 로씨야말도 제대로 하며 장사 미립도 텃다고 했소.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눈치를 보니 장사를 하여 뭉치돈을 번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 나는 그녀를 보고 내가 저녁 식사준비를 하겠으니 같이 저녁을 자시자고 청들었소. 하지만 그는 숙소에 할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떴소.”    “그후 어떻게 되였소.”    “그이튼날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녀는 심중한 모습을 지으며 입을 열었소.선생님, 같이 동업합시다.”    “뭐! 동업?”    “그래요 지금 선생님과 저의 처지가 비슷하지 않아요.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장사하는게 어때요.”    “장사엔 문맹인 내가 그쪽이 파트너로 될수 있겠소?”    “손벽도 마주치면 소리가 난다고 힘과 마음을 합치면 얼마든지 잘할수 있어요.”    “그럼 같이 해본다.”    그때 나는 그녀가 동업하자는 말에 어떻게 확답을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채 멍해있었소. 그녀는 어정쩡해하는 나를 보면서 동업하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잘 생각해보시고 대답해도 좋다고 했소. 나는 속 타산을 해보았소. 현실 내처지에서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였소. 사실나는 장사가 안되여 물에 빠진 사람이 짚으라기라도 잡을 처지였소. 이런 때 그녀가 동업하자는 말이 마치 가물의 단비라고 생각되였소. 나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장사를 같이 하는데 동의한다고 했소.    우리는 장사를 같이 하기로 합의한후 합의대로 리행해나갔소. 그녀는 옷을 팔고 나는 물건운수와 그녀의 안전을 책임져주었소. 그녀는 신나게 옷을 팔았소. 그녀가 어떻게 잘 파는지 곁의 장사군들이 시기할 정도였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녀가 장사를 잘한다는 소문이 펴지자 중국에서 온 큰 상인들조차 그녀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내 흔들었소. 그들은 그녀가 신용을 지킨다면서 도매가겪으로 물건을 넘겨주었소.     우리둘은 장사는 같이 하면서도 여전히 각기 딴 살림을 하고 있었소. 물건을 두곳에 보관하는것도 시끄럽거니와 두 곳에 세집돈을 내는것이 아까웠소. 신체가 펀펀한 사람들이 대방이 혼자 있는것을 빤히 알면서도 견우직녀처럼 독수공방하는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소. 남자의 본능인 늑대 량심이 나를 못견디게 했소. 나는 주동적으로 그녀를 보고 우리둘이 비록 남남이라 하지만 이미 동업한 이상 뭘 꺼릴게 있냐?고 하면서 동거를 하자고 제기했소. 동거하자는 말에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남이 눈이 두려워 그렇게 할수 없다고 딱 잡아뗐소. 나는 남들도 다 짝을 뭇고 사는데 우리는 외편이 부족해서 그렇게 할수 없냐고 구슬렸소. 아님보살하면서 안된다고 하던 그녀도 나의 설득에 끝내 손들고 말았소. 나는 두말 없이 짐을 꾸려가지고 그녀의 숙소로 갔소.     세월은 빨리흘러 눈 깜박할 사이에 3년세월이 흘렀소. 그녀를 만나후 장사도 잘되고 돈도 많이 벌었소. 나는 눈덩어리처럼 굴리면 커가는 돈을 보면서 프랑스의 고전소설 “우제니그랑데”에서 나오는 그랑데 령감처럼 돈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소. 그런데 웬일인지 쌓여지는 돈을 보고 웃다가도 한켠으로 위험을 느끼였소. 돈이란 애물이기도 했소. 돈이 많을수록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촉했소. 그때 로씨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며칠 건너 아무 아무곳에서 아무개가 강도들에게 강탈을 당하여 인명피해를 봤다는 소문이 부절히 들려와 내 마음을 불않게 했소. 생각할수록 쌓여지는 돈을 보면 웃음이 나오던것이 점차 시한폭탄과 같아 보이면서 어느땐가 터질것만 같은 우려가 들었소. 그녀는 총명한 녀자였소. 그녀는 돈이 모아지는족족 집에 두지않고 물건을 구입할만한 돈만 남겨놓고는 딸라로 바꾸어 놓고 중국에 송금하였소. 그녀는 그냥 수입에서 절반은 내앞으로 하였소.     우리가 동거한지 3년이 되자 그녀는 귀국하자고 졸라댔소. 나는 돈 욕심에 더 있자고 했소. 그러자 그녀는 사람의 욕심은 한정이 없다면서 너무 과욕을 부리면 탈이 생긴다고 했소. 그녀는 로씨야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내 돈이 아니라 하면서 집으로 갖고가야 자기돈이라 했소. 나는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귀국준비를 하였소. 총명한 그녀는 가만히 귀국준비를 하면서도 누구한테도 귀국한다고 알리지않았소. 귀국 날자가 림박하는데도 우리는 형식상에서 그냥 장사를 하는척 하였소. 세빠트처럼 돈 냄새를 잘 맡는 깡패무리조차 눈치를 차리지 못했소. 우리는 떠나는 전날밤에 안전한 곳으로 전이하였소. 짐은 간소하게하고 행동하기 편리하게 했소. 소문에 의하면 우리가 떠난 그날밤에 강도들이 냄새를 맏고 뛰여들었다가 헛탕을 쳤다는 소문을 들었소.”    “김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김선생은 돈과 녀자복을 다 가지고 있었구만 부럽소. 후에 그녀자는 어떻게 되였소?” .    “귀국하면서 그녀는 나를 보고 중국으로 돌아가서 쌍방이 리혼하고 정식으로 결혼을 하자고 했소. 나는 그렇게 할수없다고 했소. 리혼하는 문제는 심중한 문제로서 잘 생각해 보고 결혼하자고 했소. 그랬더니 그녀는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 보겠다고 했소. 후에 알고보니 그녀는 로씨야에서 돌아온후 인츰 일본에 갔다가 귀국한후 다시 한국으로 갔다가 는 소문을 들었소. 후에 여러번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됐소. 자기가 귀국하여 얼마 안되여 남편이 사망 하였다는 것과 자기가 일본에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간다는 전화였소.  그후로는 그녀에 대한 소식을 모르고 지났소.  지금도 가끔씩 그녀에 대하여 생각할때가 있소.”                                               4       이튼날 우리 두사람은 지나간 세월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이번에는 리씨가  리씨와 설주사이에 있었던 옛 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십년전 일이라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와 설주는 사춘기 시절을 겪으면서 풋사랑을 한것 같았소. 그때 고향마을 고성툰에는 오씨성을 가진 집이 두호가 있었소. 오씨네는 형제였는데 형이 되는 집에 귀엽게 생긴 딸이 있었소 그딸이 이름이 오설주였소. 우리둘은 소학생 때부터 초중학교까지 향소재지에 있는 학교를 같이 다니였소. 고성툰에서 향소재지까지 8리가 되였는데 마을의 학생들은 함께 학교로 가고 돌아올때도 함께 돌아왔소. 설주는 나보다 두살 아래였소.  설주한테는 나와 동갑인 오빠 철주가 있었소. 나와 철주가 사이좋게 지내다보니 우리는 두집을 오가면서 허물없이 보내였소. 설주는 오빠 친구인 나를 오빠라고 불렀소. 나는 은근히 설주를 좋아했고 설주도 나를 좋아하는 눈치였소. 초중을 졸업한후 나는 가정의 경제난 때문에 상급학교로 가지못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소. 설주가 초중을 졸업하던해 설주네는 길림시교의 한 농촌마을로 이사를 갔소. 설주네가 이사를 간 이듬해 우리집도 고성툰을 떠나 벌방지대인 태평촌으로 이사를 갔소. 이렇게 되여 나와 설주는 갈라지게 되였소. 설주네가 이사를 가기 전날밤 우리 두사람은 동구 밖에서 만난것으로 기억되오. 우리둘은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갈라 졌소. 그때 무슨말을 하였던지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앞으로 련락을 자주 하자는 말과 기다려 달라고 하는 말을 한것같소. 나는 떠나가는 설주를 보면서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소. 설주도 나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는 눈굽을 닦던 일이 생각나오.    나는 태평촌으로 이사를간후 부지런히 일하고 당조직을 따랐소. 태평촌으로 이사를가서 8년만에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후에는 촌당지부서기로 되였으며 촌 당지부서기 사업을 20년을 하였소. 나이가 많아지자 젊은 사람한테 당지부서기 직무를 맏기고 연길로 들어오기 전까지 촌 로인회 회장을 맡아하였소.”    “농촌에서 사업하느라 고생이 많았겠소. 리서기가 농촌에서 20년 지부서기 공작을 했다니 정부에서 주는 수당금을 얼마나 받고있소.”    “매달 500원을 받소이다. 지금돈 500원이 뭐요. 하지만 그만큼이라도 받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오. 고생을 겪은 사람이야 행복을 안다고 지금 젊은 이들은 우리가 젊었을때 고생했던 말을 하면 리해가 안간다고 하오.”    “내 자식도 그러오. 리서기는 어느때 결혼하였소.”    “천구백 칠십년도 였소”    “나와 같은해에 결혼하였구만 결혼하기 전에 설주씨를 만나 보았소.”    “설주네가 길림으로 이사간 후로는 소식을 모르고 지났소. 우리집이 태평촌으로 이사를 간후 3년만에 나는 한동네에서 사는 처녀와 결혼하였소. 내가 장가 가던날 친구 철주가 먼 길림에서 모처럼 오시여 내 결혼식에 참가하였소. 그날  철주한테서 처음으로 설주의 안부를 듣게 되였소. 설주네는 길림시교의 영길현으로 이사를 간후 설주는 초중을 졸업하고 몇해 농사를 짓다가 한 농촌소학교 교원한테 시집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소. 철주의 말에 의하면 설주네 부부간은 화목하게 잘 산다고 하였소.”     저녁때가 되자 설주녀인이 왔다. 어제와  다름없이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왔다. 리씨는 나를보고 함께 자시자고 했다. 그녀도 같이 자시라고 했다. 나는 이미 저녁을 먹었는지라 그들이 식사를 하는데 방애를 주지 않으려고 현관으로 나왔다. 현관걸상에 한참 앉자 있다가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로 들어가니 그들도 이미 식사를 끝마치고 마주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리씨는 나한테 그녀를 인사시키였다.    “설주 인사를 하오. 북산가에 계시는 김선생이오.”    “저는 공원가에서온 오설주라 합니다. 옛날에 이 오빠와 한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께서 우리 오빠를 잘 돌봐주십시오.”    “다 같은 환자인데 뭘 도와줄게 있겠습니까. 리서기 한테서 아주머니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리서기와 아주머니가 어린시절부터 한마을에서 살았고 두분사이가 각별히 좋은 사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두분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이고 옛날에 서로 사랑을 할만큼 가깝게 보내였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않으니 두분께서 부부가 되여 만년을 즐겁게 보내기를 바람니다. ” 그녀는 얌전하게 “네”하면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리씨를 처다보면서 투정삼아 한마디 하였다.    “오빠두 참, 벌써 우리의 옛날이야기를 다 했어요. 마치 우리가  부부로 되기라도 한것처럼 말이얘요”    “말한것이 잘못됐나 어차피 부부로 될텐데.”    “내가 언제 오빠와 결혼하겠다고 말했어요.”    “말은 안했어도 내가 결혼하자는 말을 하기만 기다렸겠지.”    “거짓말.”    “긴말 말고 내가 퇴원하는날 정식으로 결혼등록하려 가기오.”    “뭐가 그리 급해요. 먼저 자식들의 의사를 물어 보고 결정 합시다.”    “우리둘의 의사만 맞는다면 자식들이 다 뭐요. 내가 하자고 하는대로 따라 하오.”    “네, 그렇게 하겠어요.”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시계를 보더니 밖에가 무엇을 살게 있다면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이야기는 잠시중단 되였다.                                                  5      그녀가 나가서 한참지나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리씨를 보고 말했다.     “내가 보건대 두분이 신체 조건과 대화가 잘되는것을 보아 궁합이 잘 맞는것 같아 보이오”     “동갑이 보건대도 우리둘이 궁합이 잘 맞을것같소.”     “잘 맞구 말구, 그런데 두분은 궁합이 잘 맞는것 같은데 내가 보건대 당신 아들이 저 아주머니를 소가 닭보듯이 외면하는것이 보기 어색했소. 혹 아버지 혼사를 바대하는게 아니오.”    “동갑이 보건대도 그렇게 보입데. 나도 아들녀석이 설주와 응대를 하지 않는걸  보고 꼴 사납게 보았소. 그러면서도 한켠으로 아들이 초하루 보름에도 보이지 않던 녀인이 불세로 나타나 아버지 간호를 하니 리해가 안가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을 했소.”     “아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면 리동무가 아들에게 설주씨와의 관계를 똑똑히 알려주는게 옳지않소.”     “동갑이 말이 옳소. 언녕 아들한테 설주가 한고향 사람이며 서로 내속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하여야 하는데 말하지 않자 그걸 모르는 아들은 오해를 할수 있다고 생각되오.”    “내 생각엔 아들이 설주를 무도장에서 친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가? 생각되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았소. 아들은 설주를 내가 모도장에서 친한 “우발”이라고 생각 할수도 있소.”    우리둘이 여기까지 말하는데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리씨에게 드릴 보건품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내가 화제를 그녀한테 돌렸다.    “아주머니는 길림지구에서 살았다고 들었는데 언제 연길로 왔습니까?”    “연길로 들어온지는 10년이 됩니다.”    “연길로 온지 십년이면 꽤나 오랩니다. 연길로 온후 리서기를 찾았됐습니까?”    “나는 연길로 오면서 오빠의 행적을 찾았습니다. 내가 태평촌까지 갔됐는데 그때 오빠네 부부간은 한국로 가고 없었어요. 그후 나는 오빠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리서기한테서 아주머니와 리서기간에 있있던 지난 이야기를 재미 있게 들었습니다. 듣고 보니 궁금한것이 하나 있습니다. 실레이지만 아주머니는 길림지구로 이사를 간후 어떻게 보내였는지?”     “선생님이 알고싶다고 하니 할수없이 말해야 하겠어요. 우리집이 길림지구 영길현으로 이사를 가서 3년이 되던해 나는 스므살 나이에 나보다 5년 년상인 남편과 결혼 하였어요. 그분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어요. 그분과 결혼하여 자식 오누이를 두었어오. 여늬 가정과 다름없이 30년을 평범하게 살았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고향에 있을때 성철 오빠를 무척 좋아했던것으로 기억됩니다. 오빠도 나를 좋아 했구요. 하지만 그때는 학생 시절이라 사랑한다거나 사랑에 대하여 운운할 시기가 아니였어요. 다만 마음속으로 생각했으리라 짐작돼요. 지금 생각하면 만약에 내가 길림지구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두 사람은 부부로 되였을지 몰라요.      내가 쉰 살 데던해 한국에서 초청장이 왔됐어요. 남편의 고모님의 보낸 초청장이였습니다. 초청장을 받고 남편은 어떻게 할가? 고심하던 끝에 학교에서 내부퇴직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내부퇴직 비준이 내리자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한국으로 갈때는 친척 방문이였기에 비자기일은 석달이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처럼 한국에가 일하지않고 친척들의 배동하에 한국의 곳곳을 다니며 유람하였습니다. 귀국할때 친척들이 주는 약간한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번째로 한국으로 갈때는 산삼, 록용, 령지, 사향과 북경동인당 약방의 약과같은 귀한 약재와 약품들을 가지고 갔습니다. 기회를 잘만나 우리는 약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사람의 금욕이란 한정이 없었어요. 그만하면 만족해야 할터인데 돈을 더 벌려고 한국인들중에서 전문 조선족들을 상대로 하여 진행한 불법 (한국초청)사기군들과 손잡게 되였어요. 처음에는 부로그들이 진짜 초총장을 보내여 신용을 얻어 나도 적지않은 돈을 벌었어요. 그러던것이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자 부로그들이 위조 초총장을 보내 왔습니다. 가짜위조 사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보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리인으로 나선 우리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모아논 돈과 가정 재산을 다팔아 드리 댔지만 원체 피해 금액이 많아 다 보상할수 없었습니다. 우리집의 집과 재산은 몽땅 차압을 당하여 우리는 하루아침사이에 빈털털이로 나 않게 되였습니다. 그번 사건으로 인하여 남편은 병을 얻어 62세 되던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죄책감이 들어 자결까지 할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의 무휼금이 나와 일부를 빚을 무는데 쓰고 나머지는 내가 한국으로 가는 수속을 하였습니다. 나는 한국에가 8년동안 있으면서 별별고생을 다겪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초청사기로 인하여 피해를 본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습이 아픔니다.”                                                       6       이튼날  리씨는 아들에게 조용히 그녀에 대한 말을 간단히 하면서 병원에서 퇴원하면 그녀와 정식 결혼을 하고 림시 그녀의 집으로 가서 살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아들이 이상한 말을 했다.    “아버지, 다른 분과 결혼하시면 새 어머니로 받아줄수있지만 그분만은 안됩니다. ”    “안된다니?”    “그 리유을 알고싶으면 그분과 물어보십시오.”    “그분과 물어보라니!? 너 그럼 그를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냐?”    “네”    “알고 있으면서 왜 나 한테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그분과 한국초청사기를 한적이 있는가? 물어보십시오.그럼 알것입니다.”    “한국초청사기라니!? 그건 웬 뚱당지같은 소리냐?”    “그리고 천수옥이를 아는가고 물어 보십시오.”    “가도록 심산이라더니, 천수옥이란? 또 어떤녀자야?”    “내 장모입니다.”    “네 장모라니! 그럼 니 장모와 오설주간에 이미 잘 안는 사람이며 그들간에 어떤 말못할 사연이 있었단 말이냐?”     “네, 나한테 묻지마시고 그분한테 확인해보십시오.”    아들이 이렇게 말하자 리씨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리씨는 끙끙 거리며 깊은 고민에 잠겨 잠을 못이루고 있었다.    나도 “천수옥”이란 이름을 듣는순간 가슴이 덜컥하면 문짝이 떨어지는 감이 들었다. 천수옥! 내가 로씨야에서 친하였던 그 천수옥이 아닐가? 하는 느낌이 번개같이 스치였다. 나는 그 천수옥이 옳은지 묻고 싶었지만 참으며 내색을 내지않고 그들이 말을 귀담아 듣노라니 어쩐지 살얼음위로 걸는 기분이였다.     이튼날 저녘 종전대로 아들이 집으로가고 그녀가 음식꾸럭을 들고왔다. 그녀가 리씨를 보고 살짝 웃으며 인사를 하여도 리씨는 응대를 하지않고 그녀만 쳐다보는것이였다. 그녀의 몸에 숨겨놓은 비밀이라도 있는것처럼 아래우를 훝어 보았다. 그녀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지 리씨를 보면서 물었다.     “오빠 웬일이세요. 내 얼굴에 뭔가 묻었어요?”    리씨는 정색해서 말했다.     “아니, 설주한테 한가지 묻겠소. 제대로 대답해주오. 설주는 내 아들을 이미 알고 있었소?”     “오빠 아들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오빠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어 오빠 아들인줄 알게 되였어요.”     “설주는 모른다고 하고 아들은 당신과 물으면 안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판국이요. 다시묻겠소. 정말 내 아들을 모르오.”     “오빠도 참 답답해요. 내가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서 오빠는 내 말을 못믿어요.”     “그럼 좋소 설주한테 한가지 더 묻겠소. 설주가 한때 “한국초청사기”에 휩싸인 적이 있다고 하지않았소. 그때 사건에 련류된 천수옥이란 사람을 알고 있소? ”    “천수옥! 잘 아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빠는 왜서 그 천수옥이에 대해 물어요.”    “천수옥이가 내 사돈이오. 내 아들 장모오.”    “아들의 장모라! 세상이 좁다고 하더니 수옥이가 어떻게 오빠와 사돈이 되였어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소. 설주, 이제는 천수옥에 대한 얘기 해주오."    “워나 수옥이와 나는 영길현에 있을때 한 마을에서 살았어요. 내가 한국으로 가기전에 천수옥이네 부부는 로씨야 장사를 갔됐어요. 그때 소문에 의하면 수옥이 남편은 로씨야에 가서 강도들한테 맞아 죽다 살아났다고 들었어요 수옥이 남편은 할수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수옥이 혼자 남았는데 후에 장사가 잘되여 수옥이가 큰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수옥가 로씨야에서 돌아와서 얼마 안되여 수옥이 남편이 사망했어요. 수옥이는 일본으로 시집간 딸이 초청으로 일본에 가서 한국기업소에가 일하다가 석달만에 불법취업을 했다는 죄명으로 추방을 당하여 왔어요. 로씨야 장사를 가서 돈을 벌었는데 안되자고 그랬던지 그돈을 “다단계”사기군에게 사기를 당하여 미천을 다 날려버렸어요.     수옥이가 로씨야로 간사이 우리는 한국으로 갔다왔어요. 어느날 수옥이가 나를 찾아와서 자기를 한국으로 갈수있는 방법을 돼달라고 하였어요. 나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아는지라 저렴한 가겪으로 한국으로 갈수있는 수속을 해 드렸어요. 한국 에서 전문 조선족을 상대로 하여 불법으로 초총장을 보내는 부로그들에게 부탁하여 초청장을 보내왔던 것이였어요. 수옥이는 무사히 한국으로 갔어요. 한국에서는 외국인들이 불법취업을 하는것을 단속하고 있었어요. 수옥이는 2달만에 불법으로 식당에서 일하다가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강제로 추방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후 수옥이는 여러번 한국으로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히 불법체류자란  검은 딱지가 붙어 비자 신청이 기각되여 한국으로 갈수없었어요. 이렇게 이리 저리 돈을 뜯기우다나니 수옥이는 빈털털이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돈 욕심이 많았던 수옥이는 경제적, 정신적 타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하였어요. 후에 들은 말에 의하면 수옥의 유품에서 편지 한통과 사진한장이 있더랍니다. 그 편지와 사진이 한때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그 편지는 로씨야에 있을때 같이 장사를 했던 김모모선생에게 전하려고 했던 편지이고 사진은 그 남자의 사진이라고 들었어요. ”     나는 그말을 듣고 속이 꿈들하면서 얼음장이 떨어지는 감이 들었다. 분명 그 편지는 나에게 보내려던 편지였고 사진은 내 사진이였을것이였다. 나는 당황하여 어쩔봐를 몰라했다. 하지만 다년래 심리조절을 할줄아는 기능을 닦가온터라 당황한 기미를 보이지 않으려고 태연한척했다.     그런 나의 심리상태를 간파못한 리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듣고보니 설주의 잘못은 크게 없는것 같은데 왜서 우리 아들이 설주를 자기의 장모를 죽음으로 몬 장본인이라 여길까?”     “그러니 말입니다. 선의로 한일이 잘못되니 남의 탓으로 보기때문일것이예요. 앞으로 내가 아드님한테 잘 이야기 할터이니 오빠는 근심 말아요.”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책감에 들었다. 내가 가장 어려울때 수옥이는 나한테 따스한 손길을 보내여 나를 도와주어 궁지에서 빠저나오게 하였으며 어려움을 헤치고 치부하도록 도와 주었다.그러나 나는 수옥이한테 무었을 주었나? 할말이 없다. 받기만 할뿐 수옥이가 어려움에 처한줄도 모르고 무심히 지나왔다. 지난일들을 생각 하니 수옥에게 미안한 감이 들면서 자신이 파렴치한 인간이라 후회를 했다.                                                          7       뒷산에 살구꽃이 피는 어느날 리씨한테서 청첩장이 왔다. 오늘 설주녀인과 코스모스호텔에서 결혼식 한다면서 결혼식에 꼭 참가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점심때가 되자 불야불야 례식장으로 달려 갔다. 잘 꾸며진 례식장에 들어서니 이름모를 생화 향기가 풍겨나와 기분이 좋게 하였다. 식장에는 이미 많은 축객들이 와있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한복을 차려입고 나선 두 로신랑신부의 모습은 보기좋았다. 신랑은 벙글웃고 신부는 방긋웃었다. 량가의 자식들과 친척 친우들이 모이여 그들을 축하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눈길을 제일  끄는 사람은 다름아닌 리씨의 아들이였다. 아버지와 설주녀인의 결혼을 슬그머니 반대했던 그 아들이 오늘따라 태도가 달라졌다. 리씨의 아들며느리는 밝은 웃음을 짓고 손님을 맞이 하느라 바삐보내고 있었다. 더 인상이 깊은것은  량집의 자손들이 모두 참가하여 두분께 축하를 보내는 장면이였다. 량가의 자식들의 부모님들께 큰 절을 올려 축하였고 깜직한 손군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안겨드렸고 나풀 나풀 춤을추면서 조부모들의 결혼을 축하하는것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그날 나는 기쁜 심정으로 그분들의 결혼을 축하하였다. 결혼식상이 끝나자 나는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거리량켠에 있는 가로수들에서 떨어지는 아롱다롱한 색갈띤 꽃입들이 미풍에 날는것이 마치 원점으로 돌아온 리씨부부의 결혼을 축하하는것 같았다.    
7    꼬인 바줄 댓글:  조회:2482  추천:1  2017-03-09
    단편 소설                                                                                   1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나는 왜 할머니가 마씨라고 하면 달가워 하지 않았는가를 알게 되였다. 어떻게 하다나니 어머니도 내 안해도 마씨였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마씨인 어머니를 며느리로 삼을 때에도 할머니는 은근히 반대하였다고 한다. 내가 마씨집 처녀와 약혼하였다고 하자 “또 마씨야” 하면서 한숨을 쉬던일이 기억난다. 왜서 그러했을가? 나는 그 의문을 풀지못하고 있다가 할머니 장례날이 지나 알게되였다.       할머니는 98세의 고령에 타계 하셨다. 할머니의 장례날은 할머니의 너그러운 마음을 알아본듯이 유난히 따스하였다. 그날 많은 친척들이 할머니 장례에 참가하였다. 할머니의 골회는 고인의 유언대로 할아버지 산소에 합장하였다. 장례행사를 치르고 나서 친척들은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의 회포를 풀었다. 할머니 친가의 친지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김씨집으로 시집을 와서 많은 후손들을 남긴 공로를 찬양하였다. 그분들중에서 할빈에서온 할머니의 조카인 당숙이 제일 조리밝게 이야기를 하시였다. 나는 당숙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한테 할머니에 대한 의혹들을 묻는다면 오래동안 가슴속에 잠겨있던 의혹의 실마리를 풀것 같아 보였다. 또 할머니가 왜서 마씨라고 하면 싫어했던가? 하는 궁금증도 풀것같았다. 일이 잘되자고 그랬던지 당숙님은 할머니 장례가 끝나도 인츰 집으로 돌아 가려고 하지않고 왔던김에 며칠 놀다가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당숙님은 우리집에 묵게 되였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당숙님은 목이 컬컬하다고 하면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인츰 주안상을 가추어 놓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당숙님께 몇가지 물었다.       “할머니의 고향은 어디였는지 아십니까?”       “내가 알건대 조선함경북도 길주라고 들었소. 그런데 조카는 그걸 왜 묻소.”       “할머니가 생전에 옛 이야기를 많이 하시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향에서 발생하였던 사건을 이야기 하신것 같은데 할머니의 고향이 어디라고는 말한적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마씨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당숙께서 아시는것이 있으면 이야기 해 주십시오”        당숙님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천천히 말씀 하시였다.       “허허허 오랜 세월이라 나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부친께서 작은 고모(나의 할머니)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일이 기억나오. 작은 고모님의 본명은 리봉녀였다고 들었소.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옛날 함경도 길주읍에는 김씨성을 가진 부자와 마씨성을 가진 부자가 있었다오. 처음에는 김씨가 부자였는데 하늘의 조화라 할가? 어떻게 하다나니 후에는 김씨가 망하고 마씨가 길주읍에서 제일 잘사는 부자로 되였다오. 소문에 의하면 마씨의 땅은 얼마나 넓은지 사방 십리가 된다고 했소.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작은 고모는 어릴때 매우 어렵게 지냈다고 했소.       작은 고모에 대하여 말하자고 하니 먼저 우리 가족사를 말해야 할것같소. 전주리씨인 우리집은 워나 량반 가문이라 한때는 서울에서 당당하게 살았다오 그러다가 중조 할아버지때 당파싸움에 말려들어 왕실로부터 버림을 받어 함경북도 길주읍의 한 산골로 쫒겨 내려 왔다오. 평생 책만읽고 일을 못해본 중조 할아버지께서 일할줄도 모르고 돈벌줄도 몰라 가정살림은 가난하기로 말이아니였다오. 가난은 대물림으로 되여 할아버지 대에와서는 더 째지게 가난했다오. 그래도 아버지는 장손이라 하여 집에서 천자문이나 읽을 정도로 공부를 하였지만 작은 고모는 학교문앞에도 못가고 열네살 어린 나이에 마씨의 첩으로 들어 가게되였다오.”       “첩이라니요! 우리 할머니가 어떻게 남의 첩으로 되였단 말입니까?”       “내가 조카한테 이런말을 하기는 부끄러운 일이다만 오늘 처음으로 말하오. 이말은 조카만 알고 있소. 도리상으로 따져보면 근본이 량반이라 하는집 규수가 상놈집으로 시집간다해도 남들이 웃겠는데 큰댁도 아니고 첩으로 들어간다는게 말도 안될 소리지, 낯을들고 못다닐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였지. 하지만 돈이 날개라 당장 입칠할 쌀이 없는 형편에서 량반이요 상놈이라 가릴게 뭐가 있었겠소.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하여 할수없이 빚대신 딸을 부자집 첩으로 보내기로 했다오. 작은 고모가 마씨의 첩으로 들어간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우리 아버지와 자네의 조부였을 것이네. 작은 고모는 평생을 다른 사람한테 자기의 과거사를 이야기 한적이 없었지만 큰 오빠인 우리 아버지한테는 숨김없이 이야기 했다고 들었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가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일부이고 기타는 내 추측으로 한말이니 참고로 들어주오.      작은 고모는 리씨집의 다섯째로 태여났다오. 당시 가난한 집에서는 녀자들이 이름이 없이 되는대로 불렀다오. 작은 고모는 형제중에서 다섯째였으므로 달녀라고 불렀다오. 첩이란 본시 가난한 집안의 아녀자들이 부모들의 진 빚값으로 팔려간 사람이거나 혹은 씨앗밭이로 부자집으로 들어간 사람들이였다오. 작은 고모가 마씨의 세째 첩으로 가게된 사연은 이러 했다오. 할아버지는 마씨에게 진 빚 때문에 작은 고모를 마씨집 품팔이 일군으로 보내기로 해놓고는 후에는 마씨의 강요에 못이겨 마씨의 세째 첩으로 보내기로 했다오. 나의 아버지도 그때 작은 녀동생의 첩으로 들어 간줄은 모랐다 했소. 후에 그사연을 알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랐다고 했소.”     “할머니는 그때 마씨의 첩으로 들어간줄을 왜 몰랐을가요?”     “물론 몰랐을것이오 오빠인 우리 아버지도 몰랐으니 말이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작은 고모가 마씨집으로 빚갚으려 간다고 했다오. 할아버지는 작은 고모를 보고 빚 갚으려가니 빚을 다 갚으면 좋은집으로 시집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오. 마씨집으로 가던날 작은고모는 처음으로 고운 비단옷을 입고 갔다오. 작은 고모는 평생 입어 못보던 고운 옷을 입고 가면서 의심은 했다만 부모의 지시라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오. 작은 고모는 마씨집으로 간 다음에야 품팔이로 들어 온것이 아니라 마씨의 씨앗밭이로 들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오.”       나는 그말을 들으면서 너무도 어이가 없어 땅이 꺼지듯 긴 한숨만 쉬였다.                                                 2       당숙은 말씀을 끊었다가 술잔을 기울이고나서 다시 전기 소설같은 이야기를 계속 하시였다.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마씨는 그 당시 50이 다된 사람이였다오. 작은 고모가 마씨집으로 갔을때 마씨에게는 마씨보다 5년 년상인 본댁이 있었고 첩도 있었다오. 본댁에게서 난 자식은 모두 딸들이였다오. 본댁에게서 난 세째딸의 나이도 작은 고모와 동갑이였다오. 마씨는 아들을 보고저 첩을 맞아 딴 살림을 꾸려놓고 있었다오. 마씨는 아들이 없을 팔자였던지 첩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줄줄이 셋을 낳았다오. 어느날 우리 집으로 빚 받으려 왔던 마씨는 아직은 활짝 피지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단아한 작은 고모를 보더니 맘에들어 아들을 낳을 씨밭이로 데려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오. 마씨는 할아버지를 피박하여 빚값으로 작은 고모를 첩으로 삼겠다고 했다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어찌 자식에게 그런 루를 끼치겠는가 하면서 안된다고 딱 잡아 뗐다오. 빚진게 죄인이라 추상같은 마씨의 빚 재촉에 할아버지는 견딜수가 없어 승냥이에게 고기덩어리를 준셈치고 할수없이 승낙 하고 말았다오.       작은 고모가 마씨집으로 갔을때 마씨는 작은 고모가 들 살림방을 꾸려놓고 있었다오. 마씨는 작은 고모가 어디로 가지못하게 엄하게 단속하였다오. 작은 고모는 마씨집에서 감옥살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오. 심지어 자결까지 할 생각을 했다오. 죽으려 했다가도 자신이 죽으면 마씨가 아버지한테 빛 재촉을 할것이 겁나서 자결도 못했다오. 작은 고모는 명색이 첩이였건만 빚으로 데려온 녀자라 첩이 대우를 받지못하고 머슴살이나 달음없이 보냈다오. 마님은 마씨가 있을 때에는 끔쩍 못하다가도 마씨가 없을 때에는 독살을 피우며 작은 고모를 구박했다오. 마씨의 딸들도 여간만 사납지 않았다오. 그들은 작은 고모를 볼때마다 고리눈을 해가지고 “쌍간나”라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오.      어느날 밤이였다오. 작은 고모가 꼬부리고 잠들었는데 마씨가 슬금슬금 다가와 작은 고모를 와락 끌어 않았다오. 작은 고모는 너무도 놀라 도적이야 소리를 쳤다오. 마씨는 작은 고모의 입을 막으면서 도적이 아니라 서방님이라고 했다오. 작은 고모는 너무도 겁나 이불을 감싸않고 부들부들 떨었다오. 마씨는 작은 고모를 끌어않으며 조용히 달래였다오.       “달녀야 내말 듣거라 나는 네 남편이다. 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다. 네가 내 아들만 낳으면 머나 다 해줄게 응.”       “싫어요. 날 집에 보내줘요.”       “그건 안되지, 네 아비가 진빚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말고 달녀야 내 말만 들어라 네가 내 아들만 낳으면 너를 정실로 삼으마.”       “정실도 싫고 아무것도 싫어요. 빚만 갚아줘요.”        “그건 근심 말어라 내가 다 해결해주마.”        마씨가 빚을 다 해결해 주겠다는 말에 작은 고모는 끝내 마씨의 요구를 들어주었다오. 몇년이 지났지만 애는 생기지 않았다오. 마씨는 작은 고모가 자기 애를 배지않자 조급해 했다오. 자신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기력도 못해가니 자식을 만들 희망이 점점 희박해 졌기 때문이였다오. 처음에는 마씨는 작은 고모가 나이가 어리여 애를 배지 못한다고 여기였는데 몇해 지나도 여전히 애가 생기지않자 더 조급 해 하였다오. 마씨는 의원을 불러다 작은 고모의 몸을 진찰하고 잉태약을 썼지만 작은 고모는 원일인지 여전히 한강에 돌 던진격으로 임신하지 못하였다오. 그때 마씨는 50중반이 되자 생육할수없는 정도로 기력이 상실되였을 것이였소. 마씨의 큰댁은 작은 고모가 마씨의 애를 밸가봐 은근히 근심하였는데 오히려 작은 고모가 임신하지 못하자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오. 한편으로 작은 고모를 애도 못낳는 쓸모없는 년이라 하면서 마씨를 보고 작은 고모를 내쫓으라고 앙달복달 하였다오.”        나는 당숙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슴도치 털에 찔리가라도 한것처럼 몸이 오쌀해 났고 당숙이 한 말이 진실한것 같으면서도 거짓 같다는 감이들었다. 나는 궁금한것을 참을수가 없어 당숙님께 재차 물었다.        “할머니는 마씨의 첩으로 부터 어떻게 할아버지 한테로 시집을 왔습니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기오. 그분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한편의 소설로 될것이오”        당숙은 술 한잔을 기울이시더니 말씀을 계속했다.        “그때 마씨집에 김씨성을 가진 덜멍 총각이 있었다오. 어리숙해 보이는 그 사람은 일하는게 서투러 늘 주인한테 꾸지람을 받았다오. 후에 작은 고모가 들으라니 그 사람은 워나 읍내에서 일등 부자라는 김씨집의 장손이였는데 가세가 기울자 할수없이 마씨집의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오. 그 사람은 머슴이였기에 마씨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못하고 부엌에서 식사를 할때가 많았다오. 그렇다보니 작은 고모와 그 사람은 자주 만나게 되였다오. 작은 고모가 부엌에서 일할때 그 사람은 자주 작은 고모의 일을 곁들어 주었다오. 작은 고모도 은근히 그사람에게 동정이 가면서 주인이 먹다남은 음식이 있으면 좋은것을 골라 그 사람한테 주었다오. 이렇게 두사람 사이에 은근한 정이 쌓여졌다오. 가재도 게편이라고 가난한사람은 가난한사람과 마음이 통하는 법이라오. 작은 고모는 처음에 동정심으로 그 사람을 대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두분 사이에는 친숙한 사이로 되였다오. 작은 고모는 남들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을 오빠라고 가만히 부르기도 하였다오. 그 총각도 작은 고모를 평상시에는 “작은 마님”이라 부르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에는 다정히 녀동생이라 불렀다오. 그 사람은 작은 고모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였다고 했소. 그렇지만 작은 고모는 그분의 눈빛을 보고서 그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것을 알수있었다오. 작은 고모도 마음속으로 그분을 좋아하면서도 말못하고 있었다오.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마음이 설례이였다오.       그분과의 진정한 첫 만남은 구슬비가 줄줄 내리는 어느날 밤이였다오. 작은 고모가 잠들가 하는데 가볍게 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나더라오. 작은 고모는 마씨가 온줄로 여기고 옷을 여미고 문을 열었다오. 들어온 사람은 마씨가 아니라 그 사람이였다오. 작은 고모는 황급해나며 어쩔줄 모르다가 그 사람을 밀치며 마씨가 올때가 됐다며 나가라고 했다오. 그런데 그 사람은 나갈척 하지않고 태연하게 낮은 소리로 마씨는 오늘 외출하였고 마님은 딸들을 데리고 친가로 갔다고 했다오. 작은 고모는 그말을 듣고서야 후! 안도의 숨을 내 쉬였다오. 그날밤 작은 고모는 그 사람과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오.                                              3        하늘의 준 인연이라 할가? 그날 이후로 몇달이 지나자 작은 고모의 몸에는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다오. 음식을 먹으면 메석메석하며 구토가 나고 음식맞이 떨어졌다오. 작은 고모의 방으로 왔던 마씨가 작은 고모가 구토하는것을 보더니 눈빛이 번쩍이였다오. 작은 고모의 몸을 이상한 눈길로 훝어 보더니 탐문조로 물었다오.       “너 혹 애를 가지지 않았니?”       “나 몰라요. ”       “너 거저 일 같지 않구나 의원을 불러오마.”       마씨는 즉시로 달려가 의원을 모셔왔다오. 의원의 진맥을 해 보고는 “마선생 축하합니다.”하면서 작은 고모가 확실히 임신하였다고 했다고 말했다오. 그말을 들은 마씨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싱글벙글 웃었다오. 그날 저녘 마씨는 작은 고모 방에 찾아와 친절을 벼풀면서 무얼 먹고 싶은게 없나고 물었다오. 먹고 싶은것이 있으면 머나 다 사주겠다고 했다오. 작은 고모가 임신한것을 안후 마씨는 멀리 가지 않고 작은 고모곁을 뱅뱅 돌면서 작은 고모를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오. 심지어 안태약까지 지어와 작은 고모에게 먹였다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고모의 배가 점점 커지자 마씨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오. 그럴때마다 작은 고모의 가슴은 싹싹 말라드는것 같았다오. 작은 고모가 생각해보니 애는 분명 마씨의 애가 아니고 그 사람의 애가 옳은데 마씨 자식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찟어지는듯 아팠다오. 어느날 조용한 기회에 작은 고모는 그 사람에게 가만히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말했다오. 작은 고모의 말을 듣던 그 사람은 눈을 꼭 감고 한참 생각하다가 작은 고모의 손을 텁석 잡고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의 아이를 자기가 꼭 지켜주겠다고 했다오.”       “그 덜먹총각이 우리 할아버지가 올치요”       “옳네.”       “그후 어떻게 되여 중국으로 오게 되였답니까?”        “이제는 그분을 덜먹 총각이라 부르지않고 고모부라 부르겠네. 작은 고모는 고모부를 보고 이 일을 어떻게했으면 좋겠는가? 문의 했다오. 고모부는 고심한 끝에 애 아비로서 자식을 지켜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이집을 떠나는 길밖에 없었다고 했다오. 그러면서 작은 고모를 보고 함께 떠나자고 했다오. 작은 고모도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는 떠 날 준비를 하였다오. 마침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 마씨가 외지로 빚 받으려 떠나고 마나님이 병석에 누어 밖갓출입을 못했다오. 그날밤 두 사람은 가만히 집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향하여 떠났다오. 고모부의 9촌숙이되는 분이 북간도 연하동에 계시고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북간도를 향하여 걸었다오 낮설은 타향길을 임신한 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면서 먼길을 걸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려정 이였다오. 지금 상상해 보아도 작은 고모가 겪은 일을 그려보면 눈물이 아니 나올수없소. 두분은 이를 악물고 걷고 걸어 열흘만에 두만강변에 있는 회령에 도착하였다오. 회령에서 하루밤을 자고 이튼날에 두만강을 건너 삼합에 도착하고 삼합을 거처 아흔아홉고개라는 오랑캐 령을 넘어 이틀만에 연하동에 도착하였다오.”        나는 당숙님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괴나리 봇짐을 둘러멘 할아버지와 영양부족으로 얼굴이 눌구므레한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듯 싶었다.                                      4       당숙님은 계속 다음이야기를 하시였다. “두분이 연하동에 도착하여 구촌숙부님을 찾아 갔을때 구촌숙부님은 뜻밖이라 하면서 매우 반가워 하셨다오.        “아니! 이게 종손집 조카가 아니오.”        “네 숙부님 아녕하십니까?”        “무슨일로 조카가 이곳으로 오셨소.”        “숙부님 살려주십시오. 이못난 조카가 조상들이 물려준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살길을 찾아 왔습니다.”        “조상들의 물려준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시오”        “저의 안사람입니다. 여보 인사를 하오 구촌 숙부님이시오”        작은 고모가 숙부님 내외에게 큰 절을 올리자 숙부님은 여간만 반갑아 하지 않았다 한다. 숙모님은 작은 고모를 껴안아 주면서 고생이 많았겠다며 위안해 주었다오. 숙모님의 품에 안긴 작은 고모는 처음으로 넓고 따스한 품에 안겨 보았다오. 당숙은 인자한 눈길로 작은 고모를 보면서 물었다오.        “질부는 뉘집 따님이였소?”        “아래 마을에 살던 리첨지의 딸입니다.”        “아래 마을에 살던 리첨지라? 그럼 서울에서 내려온 리첨지가 아니오?.”        “네 옳습니다.”        “그량반이야 내가 잘알지, 그량반은 세월을 잘못만나 서울에서 살지뭇하고 억울한 루명을 쓰고 송남동으로 내려와 고생을 많이했지. 그런데 조카 어떻게 되여 그집과 사돈을 맺게 되였소.”       “내가 마씨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을때 알게 되였습니다. 그때 이사람은 마씨네 집에서 품팔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씨라니? 혹 큰집에서 마당쇠로 있던 마씨가 아닌가?”       “네 옳습니다.”       “상놈치급을 받던 마씨가 어떻게되여 부자로 되고 읍에서도 으뜸가는 부자라 소문높았던 우리 가문이 그렇게 되였소.”       “하늘의 조화라 할까 당숙님이 고향을 떠나신후 가계가 기울어 지기 시작하더니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전답이 다 마씨한테로 넘어가게 되였고 내 대에 이르러서는 집안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 혼자 남게 되였습니다. 나는 할수없이 마씨집의 달 머슴으로 되였습니다.”       “부귀 재천(富貴在天)이라더니 그말이 맞네. 어쩜 마씨가 부자로 되고 우리 가문이 장손이 머슴으로 되다니 하늘이 통탄할 일이오… 어쩌겠소, 하늘이 준 운명이니 할수없지, 누구를 탓하지 말고 이곳에서 다시 재계해 보기오.”       당숙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자기를 찾아온바하고는 힘을 합쳐 잘살아 보자고 했다네.       당숙은 학자이면서도 반일 활동가였다오. 중국으로 오기전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였고 그후 일본 류학을 갔다왔다오. 일본에서 류학생활을 하면서 망국노의 설음을 알게 되였다오. 귀국후 서울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반일선전을 하였다오. 일제는 조선의 지식인들에 대하여 감시를 하며 그들을 비밀리에 통제 하고 있었다오. 당숙님이 반일 선전을 하자 일본경찰은 당숙님을 체포하려고 했다오. 당숙님은 더는 조선에서 살기 어려워 야간 도주를 하여 북간도로 피신을 하였다오. 이렇게 찾아온 곳이 연하동이라오 . 연하동에서 당숙님은 학교를 창설하고 학생들을 교육하였다오. 당숙님은 룡정지역에서 이름있는 유지인사로 활약하고 있었다오.        작은 고모네는 그해 겨울을 숙부님댁에서 지냈다오. 마음씨고운 숙모님은 작은 고모를 친딸처럼 여기며 여러모로 보살펴주었다오. 이듬해 봄이되자 숙부님께서는 사랑채에 구들을 놓고 두분을 들게 하였다오. 그곳에서 자네 아비가 태여 났다네. 구촌숙부님의 알선으로 왕지주의 땅을 소작짓게 되였다오.                                      5       작은 고모가 도망친후 마씨는 할아버지를 매일 찾아가 행패를 부리면서 딸을 내놓으라고 야단쳤다오. 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아버지인지라 모른다고 하자 딸이 도망친것을 아비가 모를리 있겠는가? 하면서 호통을 쳤다오. 그러면서 마씨는 딸이 김머슴과 눈이 맞아 어디론가 도망첬다고 하면서 딸이 간곳을 대라고 협박하였다오. 버선목이면 번져 보일수 있지만 딸이 어디로 간줄 모르는 할아버지는 마씨앞에 무릅을 끌고 앉아 빌었다오. 마씨는 계속 딸이 간곳을 대라고 하면서 대지 않으면 경찰서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했다오 자칫하다간 류치장 신세를 질것 같았다오. 할아버지는 마씨의 성화에 못이겨 작은 고모가 떠난 이듬해에 결심을 내리고 도망가기로 결정했다오. 정작 도망을 가려고 해도 갈곳이 없었다오. 생각하다가 생각한것이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북간도로간 6촌동생이 생각나더라오. 그래서 무작정 가속을 데리고 떠났다오. 여러곳을 다니며 수소문 한끝에 6촌동생이 있는곳을 찾았다오. 우연이라 할가? 6촌 동생네 집에서 잃어버렸다던 딸을 만나게 되였다오. 이국땅에서 맞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는데 이곳에서 딸을 만났으며 의젓한 사위와 귀여운 손자를 보고 얼마나 반가워 하셨든지 모르셨다오.      작은 고모는 그립던 친가식구들을 만나고 보니 반갑기는 한데 불세로 친가 식구 다섯 사람이 오자 작은 고모네 집은 혼난에 빠졌다오. 게딱지만한 작은 집에 여덥식솔이 살자니 그 어려움이 어떠했겠소. 구촌숙님은 우리 할아버지를 보고 자기집에와 함께 살자고 했으나 작은 고모부는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했다오. 그해 계울 식량은 구촌숙님께서 도와준덕에 풀칠은 면했다오. 그해 계울을 이럭저럭 지내고 다음해 봄이되자 할아버지는 다른집을 장만하고 따로 나가셨다오. 두집다 왕가네 땅을 소작지었다오 몇년이 지나 긴근을 면할수 있게 되였고 작은 고모는 자식을 줄줄히 셋이나 낳았다오 큰 아들을 학교로 다니게 되였다오. 돈을 놓고 못웃어도 아이들을 놓고 웃는 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고모네는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라자 웃음이 그칠새 없었다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능구렁이같은 마씨가 작은고모네 집으로 찾아왔다오. 작은 고모가 밖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사립문 앞에 머리발이 하얀 로인이 서성거리며 누굴 찾고 있었다오. 그 늙은이는 안경을 걸고 개화장을 집고서서 위험을 보이며 (어험) 헛기침을 하고선 작은 고모부의 이름을 부르더라오. 작은 고모가 달려나가 누구를 찾는가고 하였다오. 그 사람은 작은 고모를 보고 이집이 김성환이네 집이 옳은가고 물었다오. 작은 고모가 옳다고 대답하자 그 사람은 안경넘어로 작은 고모의 아래우를 훝어 보더라오. 작은 고모도 그 사람은 보는 순간 아! 마씨구나 하며 새된소리를 질렀다오 작은 고모가 어쨌으면 좋을지몰라 주줌거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작은 고모를 알아 보았다오.       “너 달녀 맞지. 잘됐다. 면바로 만낮다. 성환이 그 자식은 어디로 갔니?”       작은 고모는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황급해 나면서 바삐 집안으로 들어갔다오. 그 령감태기는 작은 고모이 뒤를 따랐다오. 작은 고모는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급히 문을 다다걸고 문고리를 단단히 잡았다오. 마씨는 빨리 문을 열라고 소리치며 문을 당기고 작은고모는 견결히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오. 이때 일하려 갔던 너히 할아버지가 돌아왔다오. 할아버지는 그 사람을 붙잡고 백주에 무슨일이 있기에 남의 문을 열려고 하는가고 물었다. 그 사람은 돌아서더니 너히 할아버지를 찬찬히 보더니 인츰 알아보고 호통을 쳤다오.        “너 이눔. 잘됐다. 너를 찾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줄 아냐.”        작은 고모부도 마씨를 알아 보았다오. 작은 고모부는 랭정을 찾고 침착하게 말했다오.        “어르신님 오셨습니까? 어서 집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리고는 작은 고모를 보고 문을 열라고 했다오. 작은 고모는 할수없이 문을 열었다오. 작은 고모부가 마씨를 보고 구들에 앉으라고 하자 마씨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헐망한 오박살이 집을 휘둘러보더니 구들에 털석 안고는 다짜고짜로 네 할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내렸다오       “이 렴치없는 놈아 굶어죽는것을 살려주었더니 내 녀자를 차고 달아나? 이제는 어떻게 하겠느냐? 내 녀자를 내놓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달녀 애비가 진 빛을 물겠느냐?”       “어른신님 어른님이 볼봐에도 우리집 형편이 이렇게 궁한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내가 꼭 빚을 갚겠습니다.”       작은 고모부님은 사정 사정 하였다오. 마씨는 한참 생각하다가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거칠게 없는 작은 고모네집 형편을 아는지라 관행이라도 베풀듯이 이렇게 말했다오.       “좋다. 빗은 차차물기로 하고 대신 내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건 안됩니다.”       “안된다니? 내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는데 왼 상관이야.”       한참 두사람이 아들을 달라 안주겠다 하는데 밖에서 놀던 큰애가 왔더라오. 그애를 보고 마씨는 너무좋아 그애를 품에 않으며 중얼 거렸다오.        “내 아들아 아비가 이제사 왔서 미안하다. 나와같이 좋은 집으로 가자”        “아버지란 웬말이세요. 로인님 잘못 오시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내가 분명 네 아버지다. 이사람들은 다 가짜 부모다.”        마씨가 아들을 보고 친부모를 가짜라고 해도 작은 고모네는 뭬라고 할말이 없었다오. 작은 고모부와 작은 고모가 아무리 마씨에게 사정 사정하여도 마씨는 기어이 아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오. 빚진게 죄라 작은 고모네는 할수없이 울며겨자 먹기로 아들을 마씨에게 달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오.”        당숙은 말씀하시면서도 자주 눈굽을 닦았고 나도는 흐르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그후 그 아들은 어떻게 되였답니까?”        “물론 마씨를 따라 고향으로 갔지, 작은 고모는 아들을 보내고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오. 아들이 마씨를 따라 가서 몇년이 지난 어느날 그렇게 보고싶던 아들이 찾아왔다오. 광복이 나기 3년전이였다네. 열여덟살에 난 숙성한 아들이 찾아왔더라오. 아들은 그사이 잘 보냈는지 몸이 건강한 어엿한 젊은 이로 되였더라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마씨를 따라가자 마씨는 아들을 마가네 대를 이을 후계자라 하면서 환영잔치까지 베풀고 아들을 끔직히 사랑해 주었다오. 때마다 맛좋은 음식을 배불리먹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학교를 다니였다오. 마씨는 아들에게 모든 정성을 몰붓고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였지만 계모와 딸들은 제 자식인지 남의 자식인지 똑똑히 모르는 정체 불명확한 아이를 후계자로 삼는다고 하면서 아비가 환장했다고 비난했다오. 딸과 첩들이 어떻 하던지 마씨는 상관하지않고 아들을 보살펴주었다오. 마씨가 나이를 먹고 병석에 눞게 되자 마씨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유언장을 발표하였다오.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겼다오. 마씨는 죽기전에 아들이 장래를 위하여 열일곱살난 아들을 다섯살 년상인 군수의 딸한테 장가를 보냈다오. 마씨의 후실과 딸들이 아들이 많은 재산을 가진데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만 다행하게도 아들 처가의 세력이 크고 년상인 안해또한 똑똑하게 일처리를 잘하여 집안은 무사하였다오.       양부가 사망하자 아들은 생부모가 생각나 생부모를 찾아왔다오. 아들은 생부모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 가려고 하였다오. 그런데 부모님들은 지난날 고향에서 실물이 나도록 고생스럽게  살아왔던 옛 일을 생각하면서 고향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오. 아들은 부모님들이 고향으로 가려고 할때까지 기다리겠디며 연하동에 눌러 앉았다오. 생부모님들은 아들을 연하동에 눌러 안치려고 구촌수부한테 말하여 아들의 혼사를 치르도록 하였다오. 구촌숙부님의 주선으로 동성용에 있는 마씨성을 가진 처녀와 약혼하고 결혼까지 시켰다오.”       당숙님은 이쯤 말하고서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 내가 이쯤 말하였으니 자네도 알것이네 그 아들이 바로 자네의 아버지였고 부인이 자네 어머니였네. 그후 일은 나보다 자네가 더 잘알것이니 내말은 이만 끝이겠네.”       그날 당숙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6        이튼날 나는 당숙에게 한가지 더물었다.        “당숙님, 당숙님의 이야기를 들은후 나는 밤새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김씨가 길주읍에서 으뜸 부자였는데 할아버지 대에와서 가세가 갑자기 기울어 패망을 하고 할아버지가 마씨의 머슴으로 되였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김씨가문에서 머슴으로 있던 마씨가 어떻게 되여 부자로 되였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       “허허 이조카가 내 이야기 미천을 다 파고드네. 할수없지, 내가 아는 건만큼 알려주지.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릴때 내가 아버지 한테서 들었던 이야기오. 오랜전 길주읍에는 김씨성을 가진 부자가 있었다오. 조카네 선조들이였지. 김씨는 대대로 내려오면서 량반행세를 하며 살아왔다오. 김씨 부자네 집에는 마씨라는 머슴이 살고 있었다오. 어릴때에는 잘 몰랐는데 후에 알고보니 그 마씨가 바로 내가 말했던 작은 고모가 첩살이를 갔던 그 마씨의 할애비였소.       이야기를 하다보니 먼저 마씨에 대해 언급해야겠소. 마씨는 워나 왕씨였는데 마씨네 선조는 고려시기에 높은 벼슬을 하였는데 당파싸움에 밀리워 역적으로 취급되면서 파직을 당하게 되였다오. 임금은 왕씨에게 죄인이 왕족의 성을 따를수 없다고 하면서 왕씨성을 말(馬)마라는 성을 쓰도록 명하였다오. 고려시기에는 역적으로 몰린 사람의 성을 짐승의 이름을 단 성을 달게 하였다오. 마씨의 선조가 길주읍으로 류배를 오면서부터 마씨로 불리우게 되였다오. 마씨네는 죄인 가족이라 기를 못 페고 살았다오. 마씨네는 대대로 내려오면서 김씨집 땅을 부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오. 마씨 할아버지 때에는 아에 김씨집의 머슴으로 살아 왔았다오. 그런데 운명이 조석지변이라 하더니 사람취급에도 안가던 마씨의 조부가 비명으로 죽은 후부터 마씨네는 강성해 지기 시작 했다오.”        “마씨네 조부의 비명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 말을 하자면 기오. 마씨의 조부가 머슴으로 있을때 일이였다오. 어느날 조카의 중조 할아버지는 풍수지리를 잘 본다는 유명한 도사를 모시고 고조부의 묘자리를 잡기위해 사처로 다니였다오. 그당시 길주 지방에서는 웃 어른의 사망하기 전에 미리 묘자리를 봐두고 거기에 회집(림시무덤)을 만들어 놓는 풍속이 있었다오. 중조할아버지가 도사를 모시고 선친의 묘자리를 보려 다닐 때마다 마씨의 할애비는 짐꾼이되여 따라 다니였다오. 몇일동안 산과 강을 돌면서 명당지를 찾던 도사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언덕 바지에 올라 서더니 “과연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좋은 명당지로다.”하더랍니다 도사는 자기가 가르키는곳에 묘자리를 만들면 자손들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다고 했다오. 그말을 듣고 모두 기뻐했다오. 여러사람 중에서 도사의 말을 깊이 새겨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마씨의 할애비였다오. 마씨의 할애비는 도사가 가르키는 자리가 명당지란 말에 귀가 솔깃하여 도사의 말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오. 후에 김씨 가문에서는 도사가 가리켜준 자리에 회집을 만들었다오. 회집임자인 김씨의 고조할아버지도 몇번 회집에 가보았다오. 회집을 지어 몇해가 지나자 고조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오. 일가 친척이 모여 어른이 령구를 모시고 이미 파놓은 회집으로 갔다오. 령구가 도착하기전에 회집안을 청리하려 먼저 갔던 사람이 황급히 뛰처 나오면서 큰일이 났다고 아우성 쳤다오. 원일인가 하였더니 어른의 령구를 모셔야 할 회집안에 이미 해골로된 실명의 불명확한 죽은 시체가 하나가 있었다오. 모두다 달려와 보니 이미 죽은지 오래된 시체인데 살은 이미 다 썩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오. 그걸 본 사람들을 모두 소름이 끼치며 경악해서 뒷 걸음을 쳣다오. 김씨집안에서는 할수없이 조부의 령구는 다른 곳으로 옮기여 안치하였다오. 김씨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오. 어떤 못된놈이 한짓인가? 하면서 말이오.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가찬 일이였겠소”        “그 죽은 사람은 누구였을가요?”        “그 죽은 사람은 누구였겠소. 머슴살이를 하던 마씨의 할애비였다오.”        “마씨의 할애비였다! 못된 마가놈! 하필이면 고조 할아버지의 회집에서 죽을건 뭐람, 쾌씸한놈!”        나는 속으로 마씨를 저주하면서 다시 물었다.        “마씨의 할애비는 어찌하여 그 회집에서 죽었을가요.”        “훗날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마씨의 할애비가 자네의 고조할아버지의 묘자리를 찾을때 도사가 이 자리에 묘를쓰면 후손들이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릴수있는 명당지라 하던 말을 깊이새겨두고 후손들을 위해 큰 결심을 내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였다오.”        “마씨의 할애비는 어쩜 그렇게 독해요. 후에 마씨의후손들은 도사의 말처럼 번창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답니까?”        “도사의 예언이 맞았다오. 마씨의 후손들은 후일 길주읍에서 제일큰 부자로 되였다오.”        “마씨의 할애비가 죽은 그 사연을 마씨의 가족들은 알았을가요?”        “처음에는 마씨의 가족들은 자기 할애비가 죽은 줄도 몰랐다오. 마씨의 가족들은 자기의 조부가 그렇게 죽을 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오. 마씨의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간다온다 말 없이 사라지자 여러곳으로 탐문하여지만 몇달동안 찾지 못했다오. 그러다 자네 고조할아버지의 장례날에야 알게되였다오. 그 장례날에 말썽을 일으켰던 회집에서 발견된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의 할배인 줄 알았다오. 그들은 남들의 눈을 피하여 가만히 그자리에 할애비 무덤을 작게 만들었다오. 마씨의 할애비가 죽어 무덤을 만든후 어쩐일인지 마씨 할애비 무덤은 매년마다 다르게 커가고 마씨에 재산은 나날이 불어만 갔다오. 련이어 마씨네는 후손들이 많아지고 집안이 태평하고 강성해 지기 시작했다오. 마씨네 후손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원경성있게 머리를 쓰더라오. 그때 마을 앞에는 임자없는 늪이 하나 있었다오. 마씨의 후손들은 밭에나가 돌아올때에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고 돌과 흙을 담아다 마을 앞에 있는 늪을 메웠다오. 세월이 오래 흘러 그 늪이 평지로되면서 좋은 집터로 되였다오. 마씨네는 그 터에 집을 짓고 짐승개를 키우더니 살림살이는 나날이 피였다오. “3년 무병하면 부자로 된다.”는 말이 있소. 마씨네 후손들은 무병하며 황소처럼 든든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모이여 점점 재부가 축적 되였다오. 그들은 돈이 생기자 야금야금 땅을 사들여 땅을 한뺌한뺌 늘이여 점차 마을에서 으뜸가는 부자로 되였다오. 어떤사람은 돈은 써야 돈이 찾아 온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부자로 되자면 돈을 아끼고 굴릴줄 알아야 하오. 마씨들은 근검하게 살림하면서 아끼고 모은 돈으로 땅을 매입하고 변노이를 하였다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더니 마씨네는 10년사이에 엄청난 재부를 모았다오. 자산이 점점 늘어나 부자 행렬에 들어서게 되였다오. 자네 할아버지가 머슴으로 있었던 주인이였던 마씨 년대에 와서는 김씨를 깔아 뭉갤수 있게 되였다오.        “마씨는 할애비가 죽은 후 그렇게 번창했는데 김씨는 어떻게 되였답니까?”        “김씨네는 고조 할아버지 묘소를 옴긴후 어떻게 된 판국인지 똑똑한 사람은 먼저죽고 머저리 둔충들만 남았다오. 조카의 중조부때부터 가세가 와전히 기울면서 십년 사이에 그 많던 전답들이 다 마씨에게로 넘어갔고 조카의 중조 할아버지는 돈을 받고 마씨에게 량반 벼슬도 팔았다오. 그후 조카이 할아버지는 아예 마씨집의 머슴으로 되였다오.”       “아! 원통하다 하늘이여...” 나는 애환으로 가득찬 우리 가문의 래력을 듣고 보니 눈물이 절로 났다. 나는 여기까지 당숙님이 하신 이야기를 듣고보니 왜서 할머니가 마씨라하면 좋아하지 않은 리유를 짐작할수 있었다.                                          7       나는 어릴때 어머니한테서 이런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는 금술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때론 어머니 몰래 남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쉴때가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 생각으로는 고향에 두고온 부인 생각을 하는것이라고 했다. 말로는 고향에 두고온 전부인이 년상이여서 부부생활이 재미없었다고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첫 부인이였으니 생각을 안할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 많은 재산을 남겨놓은것이 못내 아쉬워 하는것 같다고 했다. 그후 아버지는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하시더니 홀로 고향으로 가시였다고 한다. 운명의 작란이라 할가? 아버지가 고향으로 가신지 얼마 안되여 일제가 투항하고 광복을 맞이하게 되였다고 한다. 광복을 맞아 몇달이 되였건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니 근심이 태산 같았다 한다. 할아버지도 아들이 소식이 없자 고향으로 찾아 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고향에 갔다온후 안색이 흐려지고 한숨만 풀풀 쉬였다 했다. 할아버지가  왜서 그러냐? 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가만히 하신 말씀인즉 할아버지가 고향으로 갔더니 아들은 보이지않고 빈집만 있더라고 했다. 동리 사람들한테 마씨의 가족이 다 어디로 갔느냐 ? 물으니 마씨들은 광복이 터지고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자 “청산”을 마즐것 같아 귀중한 물건만 챙겨 가지고 남으로 도망첬다고 하였다 한다. 할아버지는 고향사람들 앞에서 마씨로 된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 말못하고 그냥 쓸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고향으로 다녀온후 세상을 떠날실때까지 아들이 남으로 갔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않았다. 아들에 대한 말은 동네 사람들은 물론 며느리한테도 정확히 말하여주지 않았다. 남들이 물으면 아들이 죽었다고만 하였다. 어머니는 너무도 상심하여 남편을 찾아 가려해도 길이 막히여 가지못하였다. 이렇게 수십년간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있어서 실종된 사람으로 되였다.      어머니는 10년을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재혼하였다. 재혼할때 동생들은 어머니를 따라 갔고 나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나는 연하동에서 소학교 초급중학교를 다니였다. 초급중학을 졸업하고 몇해 농사를 짓다가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였다. 군대에 간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군인 생활을 하면서 입당을 할때 제일 골치 아픈일이 하나 있었다. 등기표에 가족관계를 밝힐때에 부친에 대하여 설명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등기표에다 고지곳대로 아버지가 남조선으로 갔다고 쓸수없어 거저 일찍 사망되였다고 적었다. 철이들면서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세월이 약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잃고 지나왔다.      세월은 류수같이 빨리도 흘러 내 나이가 쉰다섯살 되던해 우리집으로 이상한 편지가 왔다. 편지 봉투에 적혀있는 발신자의 주소를 보니 대한민국 속초시 000 동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신자의 이름을 보니 마청송이라고 쓰여있었다. 마청송? 누구일가? 나는 째빨리 편지봉투를 개봉하였다. 봉속에서 초청서류가 나왔다. 초청인은 마청송이고 초청접수인 이름에는 어머니 이름과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초청장외에 편지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어 보았다. 편지내용을 보면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간후 이러 저러한 여건으로 집으로 돌아 오지못하고 한국으로 가게된 사연과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여 죄송하며 안해와 자식을 돕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아비로서 죄송한 마음으로 안해와 아들을 한국으로 올수잇도록 초청한다고 했다. 나는 초청장을 받고서 눈물이 흘렸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며 그리웠던 아버지, 수없이 원망했던 아버지한테서 기뿐 소식이 오고 또 처 자식을 잊지않고 초청한데 대해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 한테 달려가 아버지한테서 초청장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어머니도 놀라하면서 꿈 같다고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으로갈 의도는 비치지 않았다. 나는 할수없이 나혼자 한국으로 가게 되였다.      내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출구를 나갈때 “김철석”란 패말을 든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사람 앞으로 걸어갔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달려오더니 “형님”하는것이였다. 그 사람을 보니 내 나이와 비슷한데 어쩜 내 얼굴과 비슷하다는 감이 들었다. 그 사람은 나를 데리고 머리발이 허연 로인 앞으로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키였다. 그로인과 나는 한참 말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 보았다. 나는 그분이 진짜 나의 아버지인지 알고 싶고 그분도 나를 진짜 아들인가? 확인 하고 싶었던것이다. 로인은 내얼굴에서 진짜 아들의 모습을 보아냈던지 나를 보고 “내아들아” 하면서 나를 끌어않았다. 나도 그분의 품에 안기며 울음석인 말로 “아버지!” 하고 높이 불렀다. 순간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동생은 부자 상봉의 장면을 사진 찍었다. 나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아버지 얼굴을 똑똑히 보았고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아버지는 년세가 많았지만 머리발이 허여서 그렇지 허리가 곳고 걸음걸이도 힘이 있었다.       아버지 집으로 오니 집 문패에 “마청송댁”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속으로 “마청송댁”이라 쓰지말고 “김청송댁”이라고 쓰는것이 옳지 않을가? 하는 내좋은 생각을했다. 집안에 들어가니 일가 친척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일가 친척들은 반갑게 나를 맞어주었다. 서로 인사를 하게 되였다. 아버지가 나서서 한사람 한사람 나한테 인사시키였다. 아버지는 년로해 보이는 안로인을 가르키면서 나의 큰 어머니라 했다. 내가 넓적 엎드려 “큰어머니 강령하오십니까?”하며 인사를 올리니 그분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먼길에 오시느라 수고 했다고 하시였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아버지와 내가 한방에 들어서 자게 되였다. 부자간은 수십년간 있었던 회포를 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버지를 보고 왜서 그냥 마씨성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버님은 한참생각하시다가 자신은 마씨성을 가져도 일없고 김씨성을 가져도 일없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호적에 올릴때 마씨로 올렸기에 그냥 그대로 한다고 하시였다.      나는 석달간 아버지와 동생들의 도움으로 한국의 이름난 명승지를 돌아보았다. 귀국 날자가 림박하자 나는 아버지와 동생들을 보고 중국으로 놀려오시라고 했다. 모두다 그러겠다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나는 아버지와 친척들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6    싱글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3120  추천:0  2017-02-12
단편소설                                                 싱글들의 이야기   1         환경조건이 좋아짐에 따라 사람들의 수명은 연장되고있다. 수명이 연장되여 좋은데 대신 일할 사람이 적고 부양인구가 증가되니 앞으로 사회지각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못할 일이다.       로인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싱글(독신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로인 인구가 증가되는것도 문제인데 늙은싱글, 젊은싱글들이 많아지고 있는것도 역시 피면할수없는 사회 현실로 되고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5년사이에 그렇게 빨리 변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는 며칠전에 사범학교 동창 모임으로 갔다. 5년만에 만나는 동창들이여서 그사이 어떻게 변하였을가? 궁금하기도 했다. 모임 장소로 가니 현숙이만 내놓고는 올사람은 다와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5년사이에 모두다 많이 변하였다. 남자들은 머리발이 희슥희슥했고 대머리가 아니면 한창 대머리로 변하느라 머리발이 듬성듬성하였다. 녀자들은 모임에 오느라 화장과 몸단장에 많이 신경을 썼겠지만 늙은티를 지울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으로 오기전에 세월이 좋아 친구들이 5년이 지났어도 아직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랴 생각했다. 그런데 크게 변모한 그들을 보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던 말을 실감하였다.        어떻게 보면 오늘 이 장소가 마치 로인협회 모임이 아닐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모두다70고개에 올라섰으니말이다. 사람의 몸은 늙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들 마음은 늙지않아 걸죽하게 롱담을 주고 받았다. 풍상고초를 겪으며 학문을 닦은 사람들인지라 언변도 좋고 자존심도 강했다. 대머리 남자들은 녀자들 앞에서 아직도 자신은 젊은이 못지지않은 완력을 가지고 있다며 호기를 부렸다. 녀자들은 남자들께 뒤질세라 할머니 소리를 듣자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아양을 떨기도하며 깔깔 웃어 돼기도 했다. 로인 모임이라기보다 젊은이들 모임처럼 화기애애한 기분이 감돌았다.         내가 누구, 누구는 보이지 않느냐? 물었더니 이번 모임에 오지않은 친구들중 몇은 외국으로 갔지만 그외는 모두 저 세상으로 갔다고 했다. 저 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보니 가슴이 덜컥했다. 내 나이가 벌써 저 세상으로 갈때가 됐나 싶은 느낌이 들면서 나에게도 어느땐가 문득 저승사자가 찾아 오겠지 하는 섬득한 생각이 들었다. 저 세상으로 먼저간 남자 친구들을 생각하니 핏득 떠오르는것이 친구들 거개가 젊어서 힘깨나 쓰고 술을 좋아 했던 체격 좋은 친구들이였다. 왜서 젊어서 건장하다고 뽐냈던 친구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갔을가? 잠시 그해답은  아래로 미룬다.        이번 모임 참석자 15명중 싱글이 여덟이나 되였다. 이상하게도 여덟명 싱글중에서 남자 싱글은 단 하나뿐고 녀자 싱글은 일곱이나 되였다. 가난한 시절에는 홀애비가 많았는데 지금은 녀성싱글이 많아지고 있다. 하늘은 공평하지 않게 왜 남자들만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는지 답답하다.        세월은 좋다고 하는데 왜서 녀성 싱글이 많아질가? 답은 하나다. 남자들이 녀성들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확실히 조선족 남자들이 수명이 짧다. 원인은 두가지라 할수있겠다. 하나는 유전적 인소가 있다. 어떤 가족을 보면 남자들이 60을 못  넘기고 저 세상으로 가는 단명인 가족이 있다. 다른 하나는 남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운데 있다고 본다. “술과 담배만 공제하여도 수명을 10년을 연장할수 있다.” 는 도리는 누구도 알고있다 하지만 그 도리를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것이 문제다. 어떤 사람은 사업관계로 피치못해 억지로 “술거래”를 하는 이도 있다. 술로 거래를 하다보면 어느사이 자기의 몸을 망치게 된다. 사회여론에 의하면 “사장”의 수명이 업종중에서 제일 짧다고 한다. 왜서 사장의 수명이 짧다고 할가? 사장들은 너무 무리하게 사업한데서 피로가 루적되고 있으며 술 좌석이 너무 빈번하며 술자리에 앉으면 너무 과하게 술을 마시게되고 담배를 많이 피운데 있다고 본다.        그날 참석자들은 좋은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그머니 이야기 줄거리가 “싱글” 문제로 넘어갔다. “싱글” 문제는 미묘한 문제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싱글이라는 것을 감추려 하고 어떤 사람은 기어이 캐고 들려고 한다. 그날도 감추려 하는자와 캐려고 하는 사람지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젔다. “싱글” 문제에서는 그래도 남자 싱글중 한사람인 호남이가 솔직하였다.  호남이는 남자답게 직설적으로 자신이 싱글이라 공개하면서 좋은 녀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까지 했다. 호남이가 그렇게 말하자 정숙이가 소개할게 뭐 있나하면서 녀자들을 가리키면서 이속에서 맘대로 고르라고 했다. 호남이는 능청스럽게 빙둘러 보는척하다가 구석에 앉은 해옥이 한테가서 눈길를 뭠췄다. 일시에 사람들이 시선이 해옥이한테로 집중되였다. 해옥이는 처녀때처럼 부끄럼을 타는듯 얼굴이 빨갓케 상기되였다.       녀자 싱글들은 처음에는 남편이 있다고 우기다가 후에는 스스로 남편없는 과부라고 자인하는것이 우숩기만 하였다.                                             2          우리가 한참 열을 올려 싱글 이야기를 주고 받을때 현숙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서는 현숙이를 보고 모두 하던말을 끊고 현숙이를 바라보았다. 현숙이는 류행에 따르는 검은 모피외투를 입고 채양이 없는 둥근 모자를 걔우등하게 쓰고 목긴 구두를 신고 있었다. 차림새가 깔끔하고 운치가 있어 보였다. 보기좋은 옷에 어울리는 단아한 얼굴 모습이 잘 어울렸다. 현숙이는 머리를 숙여 늦게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이번 동창모임에 참가한것이 10년만이라 하면서 감회가 깊다고 했다. 그는 그사이 친구들한테서 동창모임에 참가해 달라는 련락을 수차 받었으나 하는일이 바빠 참석못하여 죄송 하다고 했다.        내가 현숙이를 못본지 40여년이 된다. 현숙이와 나는 사범학교 동기동반이였다. 졸업 한후 한번도 보지 못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보게되였다. 졸업후 나는 이란진의 한 농촌소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고 현숙이는 하향하는 아버지를 따라 돈화시로 내려갔다. 동창들은 사범학교를 졸업한후 저마다 딴곳으로 가게 되였다. 사업터에서 하는일들이 바빠 동창모임이란 엄두도 못내며 지나왔다. 그러다 나이를먹고 정령퇴직을 하자 동창모임이 슬그머니 등장했다. 10년래 사범학교때 동창모임이 여러번 있었다. 내가 동창모입에 갈때마다 현숙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숙이가 동창모임에 불참하자 뒤에서 의론이 몇번 있었다. 현숙이가 자식을 따라 외국으로 갔다는 소문과 지금 연길에 있기는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는 말들이였다. 나는 현숙이가 도대체 무슨일을하기에 그리 바빠 동창모임에 불참하는지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학생때 나는 현숙이를 좋아했다.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못하고 헤여졌다. 각자가 사회와 가정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바삐보내고 보니 서로가 통신련락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왔다. 비록 현숙이와 통신련락이 없었지만 나의 가슴속 한 구석에는 현숙이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잠적해 있었다. 몇번 현숙이와 가까히 보냈던 영희에게 현숙의 안부를 물어본적이 있었다. 영희가 알건대 현숙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돈화시 어느 농촌으로 갔다가 거기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후에 길림사범대학으로 갔다는것만 알고 있다고 했다. 후에 들을라니 현숙이는 퇴직하고 연길로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숙를 몇번 만난일이 있지만 현숙이가 지금 무슨일을 하는지 똑똑히 모른다고 했다.         영희가 동창모임이 있을때마다 현숙이를 보고 꼭 참가해 달라고 통지를 했는데 번번히 일이 바빠 못 오겠다고 하였다 했다. 영희의 말을 듣고 보면 현숙이가 후반생을 의의 있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퇴직하고 나면 성쌓고 남은 돌이라 생각하며 할일이 없어 매삼거리며 허송세월을 보내는데 현숙이만은 사업하느라 바삐 보낸다고 하니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늘 현숙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은근히 기뻐났다. 현숙이를 만나고보니 현숙이는 내 상상보다 멋지고 젊어보이였다. 현숙의 그 모습을 보노라니 옛 기억이 떠 오르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성큼 현숙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현숙이 오랜간 만이오.”        “누구던가?”        “나를 모르겠소 전영택이오.”  현숙이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처다 보았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보더니 기억이 나는지   “전영택이구나. 어쩜 그렇게 멋지던 영택이가 이렇게 변하였네.” 하면서 두손으로 내손을 꽉 잡았다.       “현숙이는 어디에가 있었소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나를요?”       “그렇소, 나는 학생때 현숙이를 무척좋아 했소. 사범학교를 졸업한후 현숙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려고 했소.”       “거짓말, 여하튼 나를 좋아했다고 하니 감사하오. 나를 좋아했으면 일찍 나를 붙잡지 왜 가만 있었소.”        “지금생각하면 내가 바보였지, 그때 현숙이를 붙잡고 내 마음을 고백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이 얼마나 후회 됐는지 모르겠소.”        “바보같은 남자, 그때 나를 찾아왔더라면 내가 영택씨의 마음을 받어줄지 모르지, 호호호.”        “그럼. 이제라도 고백을 해 볼까?.”        “늦었어도 한참 늦었어.”.        “허허허 맹랑한 녀자.”        우리들의 대화는 여기에서 잠간 끊었다.        현숙이는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현숙이가 자리에 앉자 경옥이가 가까히 다가가 앉으며 현숙에게 물었다.        “현숙아 너를 못본지 20년이 넘는구나 너 금년에 몇살이지?”        “우리둘이 동갑이 아니였니. 그런데 왜 나이를 묻니?”        “네가 하도 젊게 보여서 말이다. 사람들은 너를 60으로 보겠다.”        “괜한소리. 할머니가 된지 오래다. 대학을 다니는 손군이 있다.”        “대학을 다니는 손군이 있다? 너는 어느때 결혼하였니? ”        “1969년도였다.”        “나보다 한해 앞섰구나 남편은 뭘하던 사람이야.”        “그분도 교육사업을 하던사람이였다”        “남편이 생전이야”  남편이 생전인가 하는 말에 현숙이는 무밋거리며 대답을 하지않았다. 현숙이가 대답하지않고 무밋거리자 경옥이는 재차물었다.         “네가 대답하지 않은걸 보아 너도 싱글이된 모양이구나. 싱글이 된지 몇년이야?”        “몇해 잘된다.”        “재혼은 하지 않았니?” 대답은 하지않고 흘겨 보았다. 현숙이는 이좋은 날에 그런 시끄러운 말을 끄집어 낼게 뭐람 하는 아니꼬인 태도였다. 경옥이는 인츰 알아 차리고 말머리를 돌렸다.        “현숙아 너는 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니?”        “퇴직한후 어려운 애들를 돕는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자선사업, 좋은일을 하고 있구나 퇴직전에는 무슨일을 했니?”        “나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돈화시 현유향 어느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3년간 농촌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추천을 받아 길림사범대학으로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돈화시 1고중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거기에서 길림사범대학시절의 선배님이였던 김선생님을 만나게 되였다. 김 선생님은 그때 나와 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시 교육국으로 전근하였다. 나는 김선생님과 부부인연을 맺었다. 돈화에서 우리 부부는 40년을 함께 보내였다. 퇴직한후 연길로 오게되였다. 연길로 온후 로인대학을 꾸리게 되였다. 로인대학을 창설한후 많은 국내외 인사들을 알게 되였고 후원자들이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의 평생교육원과 자매 결의를 맺고 문화교류를 하였다.”       “너의 모습을 보니 너는 고생이란 겪어본것 같지않구나” 경옥이가 재차 물었다.       “나라고 왜 고생을 안 했겠니 다른 사람에 비하여 고생을 좀 적게 한셈이다. 내 인생길을 도리켜보면 나의 인생 전반기는 순리로웠는데 후반생에 들어와 불행한 일들이 많이 겹쳐왔다. 우리가 로인대학을 꾸리여 얼마안되여 어느날 남편은 중풍을 맞아 반신불수로 되였다. 나는 몇년동안 남편의 병 간호도 하며 로인대학 사업도 하였다.  나는 너무도 힘겨워 로인대학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남편이 사망된후 혼자힘으로 가정 살림을 꾸려 나갔다. 자식들은 모두 성가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남편에게 많이 의존하면서 생활해 오다가 급작스럽게 싱글로 되고 보니 눈앞의 캄캄 하였다. 처음 남편을 잃고나서 고독감을 느끼며 삶이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였다. 제일 고통스러운것은 고독이였다. 남편없이 홀로 살자니 얼마나 고독했으며 심리적 고통이 있는지를 누구도 모를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반기는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였다. 밥상에 앉아도 밤먹을 생각이 없다. 대충 때를 에울때가 일수였다. 저녁이되면 조용한 방에서 혼자 있으니 허전함과 고독감, 허탈감이 겹처들었다.        몇년이 지나자 외국에 있는 자식들이 어머니가 홀로 쓸쓸이 보낸다면서 자기들한테 와서 같이 살자고 했다. 나는 자식들과 함께 살기를 거절했다. 자식들은 더는 함께 살자는 말을 하지않고 어머님께서 마음이 편한대로 사시라고 했다. 남자친구를 사귀라고까지 했다. 친척들도 더 늙기전에 재혼하라고 권고 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남편이 사망된후 3년은 눈물로 보냈고  그후 3년은 그리움과 추억의 3년이였으며 후 3년은 원망 3년이라 했다.” 내가 지나온 경과를 도리켜 보니 그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물로 추억으로 세월을 보낼것이 아니라 한가지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그 눈물과 추억을 머리속에서 지워 버리리라 작심했다. 그래서 시작한것이 자선 사업이였다.”       “그후 다른 남자를 만나적이 없었니?”      경옥이가 또 물었다.       “몇번 만난적이 있다. 남편이 사망된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새로운 이성과 접촉하고 싶었다.  허지만 남자 친구를 사귀거나 재혼한다는게 그렇게 수헐한게 아니였다. 몇번 남자를 만났지만 이상스럽게 사망한 남편과 대비를 하게 되였다. 신체, 학력, 재력을 선제 조건으로 내세우게 되면서 대비해 보니 남편과 상대될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 어쩌다 괜찬은 남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보면 안해를 두고도 엉큼하게 친구로 사귀자는 것이였다. 간혹 조건이 쾐찬은 남자 싱글을 만나도 어쩐지 부부로 되고푼 생각이 없었다. 정말로 그 사람과 부부로 된다고 가정해 보면 강한 내 자존심을 떠나 그 남자에게 종속되여야 하며 지금처럼 자유로이 살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껄끔한 생각이 나더라. 그 사람은 부부로 못되여도 친구사이로 지나자고 하여도 나는 그러고 싶지않아 거절했다.         나는 자선 사업을 하면서 어럽게 사는 애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은 웃음을 짓는것을 볼때 마다 기쁨을 느끼였다. 자선사업은 어려운 사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자선사업을 하면서 자선사업은 내 로후에 더없이 좋은 사업이며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삶이 가치를 높일수 있는 긍지감을 느끼였다. 자선사업은 내 생활에서 떼여질수없는 일부분이라는 감을 느끼게 되였고 제2직업을 얻었다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자선 사업을 하면서 국내외 지성인들의 도움과 후원을 받아 지금 자선사업은 잘 되고있다.” .      현숙이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물 한컵 마시였다. 나는 현숙에게 물었다.       “현숙이, 현숙이가 꾸린 자선단체에서 직원을 쓰지 않소.”       “그렇지 않아도 비서가 한국으로 가다나니 나 혼자 일상 엄무를 처리하자니 애가 타오. 나이가 듬직하고 글을  잘쓰며 자원봉사를 할 의향의 있는 분을 비서로 채용할가 해요.”       “잘됐구만 현숙이도 알지만 내가 글을 잘 쓰지않소. 그러니 나를 비서로 채용하오.”       “영택씨가, 내가 꾸린 자선단체는 사단법인 민간 단체이기에 비서라해도 월급이 없소. 그걸아오. 비서는 컴퓨터를 잘 다루어야 하는데 영택씨는 컴퓨터를 다를줄 아오.”       “월급은 없어도 일없는데 컴퓨터를 사용할줄 알아야 한다니 안되겠소. 난 컴퓨터, 그 방면은 문맹이오.”       “그럼 컴퓨터사용기술을 배운후 찾아오오” 나는 현숙이와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기위해 그말을  했는데 본전도 못찾고 말았다. 내가 뒷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경옥이가 내 체면을 살려주면서 다른 말로 화제를 유도했다..       “현숙아 넌 앞으로도 계속 싱글로 살래?”       “이좋은 때에 왜 혼자살겠니? 좋은 남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현숙이는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의 싱글 생활에 만족해 하는것 같아 보였다.                                    3         현숙이가 오기전에는 경옥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모임에 참가한 녀성중에서 제일 젊고 색시해 보이고 활역도 좋았다. 경옥이는 학생때 반급에서 “노란나리꽃”이란 별호를 가진 미모의 처녀였다. 그는 학습은 수수해도 음악과 무용에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의 문예활동때마다 특기를 보여 동학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의 아름다운 미모와 예술재능에 반한 남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경옥에게 친구로 사귀자는 대담한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옥이는 남녀간의 애정 문제에서는 “랭담”한 녀자란 평판을 받는 매몰찬 녀자였다.        그날 현숙이가 경옥이를 보고 어떻게 아름다움을 가꾸며 살아왔냐? 물었다. 경옥이는 잠간 생각하다가 자기 경과사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범학교 졸업생들은 운이좋았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하향지식청년으로 농촌으로 내려갔지만 사범학교 학생들은 농촌 소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나는 훈춘시의 한 농촌 소학교 교사로 배치를 받었다. 교원으로 있던중 지인의 소개로 변방부대에서 근무하는 한 군관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자식둘을 낳았는데 오누이였다. 결혼후 나는 훈춘시 중심학교에 전근하였다. 30여년간 교직생활을 하다가 정령퇴직하고 남편과 함께 연길로왔다. 연길에다 예술문화쎈터를 꾸리였다. 나는 예술문화쎄터 건물의 한칸을 내여 예술인과 문학인들의 모일수있는 활동장소를 마련하였다. 하여 예술문화쎈터는 많은 예술인과 문화 애호가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우수한 무용가들과 대학 교수님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하게 하였다. 예술과 문학을 배우려는 학도들이 강의를 들으려고 많이 몰려왔다. 나 자신도 시간을 타 글을 써서 문단에 발표했다. 이렇게 되자 우리 예술문화쎈터는 흥성흥성하여 경기가 좋았다. 나는 자금 축적이 많아지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에도 후원금을 지원했다. 사회에 공익한 일을 많이 하여 한때 나는 시 정협위원으로 되기도 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불행은 눈섭아래서 떨어진다더니 어느 하루 우리집에 날벼락이 떨어젔다. 그렇게 끌끌했던 남편은 심양으로  갔다 오던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나는 남편이 사망하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한시기 정신분렬증이 생기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치료를 받아 지금은 원상태로 돌아섰지만 과거처럼 활기있게 사업할수 없었다. 나는 할수없이 모든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바삐 모라치던 사업을 포기하고 느슨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굳치였다. 나는 느슨한 생활을 하겠다고 해 놓고는 수십년간 굳어온 규칙적인 생활 일정을 버리지못하였다. 교사때처럼 스케이줄을 짜놓고 그 일정에 따라 행동했다. 유람을 다닌다. 사화구역에서 조직하는 자원봉사활동에 참가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노래교연실로 다닌다. 한달에 한번 도서관으로 간다. 그외 시간은 등산을 한다는 스케이줄을 짜놓았다. 이렇게 물샐틈없이 빳빳하게 스케이줄을 짜놓고 그 스케이줄에 따라 행동을 하려고 하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바삐 보내였다.        내 신체가 이만큼 좋은것은 많이 운동 한데 있지만 긍정적인 마음 가짐을 가진데 있다고 본다. 등산을 하다보면 마음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운동과 결합하여  하루 세때를 꼭꼭 챙겨 먹었다.”        경옥이가 여기까지 말하고 물을 마실때 잠잠히 듣고만 있던 해옥이가 깜짝 질문을 드리됐다.       “경옥아 너는 돈도있고 자식 부담도 없고 신체도 건강한데 그냥 싱글로 살 작정이야. 싱글로 세월을 보내는게 아깝지 안니?”       “나라고 왜서 싱글생활을 즐기겠니. 싱글로 후반생을 보내는게 아깝다만 별뾰족한 수가 어디있니. 이 나이에 리상적인 남자를 만나는게 하늘이 별따기다.”       “네가 너무 눈이 높아 문제지. 눈 높이를 한층 낮추어 봐라 그러면 너를 따를 남자가 많을거다.”      “나도 네 말처럼 그렇게 생각해 봤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이에 걸맞을 꼴꼴한 남자가 어디있니. 나는 꼴기없는 령감한테 시집가려면 열번도 갔겠다. 홀로 살면 살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령감들과는 단 하루도 못살겠다.”      경옥이가 이렇게 말하자 해옥이가 다시 깜짝 놀랄 말을 했다.       “경옥아 며칠전에 모아산에서 네가 어떤 남자와같이 다니는것을 보았다. 여러번 다른곳에서도 네가 그 남자와 다니는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누구야? ”       “그분 말이야, 그 분은 시정부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조선생이다. 내가 등산협회에 참가하여 등산을 하면서 그분을 알게 되였다. 같이 등산을 하면서 사진도 찍고 글을 쓰다보니 그분과 나는 가까운 사이로 되였다. 그분은 나한테 자신은 퇴직한후 집에서 장기환자인 안해를 돌보면서 답답하게 몇년을 보냈다고 했다. 안해의 병이 호전되자 답답한 기분을 풀기위해 등산활동에 참가했다고 했다. 몇달 그분과 함께 등산활동을 하다보니 그분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였다. 그분은 인물체격도 좋고 건강하며 말도 잘하고 지식수준도 높았다. 그분은 나보다 두살 년하였다. 나는 저도몰래 그분에게 호감을 가지였다. 그분도 나를 보고 친구사이로 지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등산협회의 동료로서 가까이 보낼뿐 가까운 친구사이로 보내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세상은 요지경 같기도 하다. 남편이 있을때에는 남자들과 허물없이 말도하고 웃기도 했지만 곁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것이 내가 싱글로 된 다음에는 나를 보는 눈길이 달랐다. 내가 남자들과 친절히 이야기를 하여도, 같이 걸어도, 심지어 남자들 앞에서 웃어도, 모두 이상스런 눈길로 나를 보는것이였다. 나는 언어와 행동에서 주의하게 되였다. 그분과도 거리를 두고 경계하며 지나왔다. 나는 그분과 단둘이서 음식점으로 가거나 같이 다닌적이 없었다. 간혹 음식점으로 갈때가 있었다만 그럴때에는 여러사람과 같이 다니였다. ”       “경옥아 솔직하게 말해라 너는 그렇게 말해도 내가 보건대 너와 그 사람 사이가 보통사이가 아닌것 같더라.”       “보통사이가 아니면 어떻길래 내가 뭣이 모자라 그 사람이 유부남인줄 알면서 친하겠니. ”       “그래도 어쩐지 보통사이가 아닌것 같더라”       “그건 니 생각이고 나는 그 분과 나 사이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는것만 밝히겠다.”       나는 그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요즘 세월이 좋아 백세 시대로 간다고 야단이다. 과거에 비하여 사람들의 건강하며 오래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 나이 칠십이면 속을 다 파먹은 호박 껍데기나 다름없다. 친구들을 보면 거개가 겉모양은 펀펀해 보이지만 속병이 있어 약덕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간혹 나이에 비하여 젊어 보이고 속병이 없이 발이발이한 남자들이 만에 하나 있기는 하다만 그들은 다 부인이 있다. 험하게 말하면 잘났고 건강한 남자는 밖에 애인도 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신체가 건강하고 돈많고 사업능력이 있는 리상적인 남자 싱글을 만난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로 되고있다.        지금 사회일각을 보면 녀성 부자싱글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녀성 싱글들중에서 로인 부자싱글이 많아지고 있다. 국가 공무원이거나 교사와 같은 좋은 직업에 종사하여 재직시 높은 로임을 받았고  퇴직후에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양로보험금을 받고 있는 녀성 싱글들이 있다. 그들은 넉넉히 나오는 양로보험금을 자기혼자 다 못쓰는데 남편에게서 상속받은 유산이 많아 그들은 진짜 알부자들이다. 어떤 녀성 부자싱글의 자산은 수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경옥이도 그런 부류의 싱글에 해당된다.       보편적으로 녀성 부자싱글들은 재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녀자를 자기의 종속물로 만들려고 한다. 반면에 돈많은 녀성싱글들과 자립할수 있는 녀성싱글들은 남자의 지배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독립을 주장하며 독자적 권리를 향수할려 한다. 권력과 재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상층 녀성 싱글일수록 재혼하기 힘들다. 반면에 경제상에서 자립하기 어려운 싱글들은 생존을 위하여 부득불 재혼하려고 한다.       경옥이는 그날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일부 싱글들은 결혼등록을 하지않고 사실상의 혼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집을 합치지 않고 두집을 오가면서 친구 처럼 보내기도 한다. 그들은 결혼등록이란 사슬에 억매우지않고 자유로이 생활할수 있기를 원한다.”       경옥이는 그렇게 말하여도 속내는 자신도 그런 적임자를 찾고 있는것으로 보이였다.                                     4          동창 모임이 있은후 나는 친구 호남의 집으로 놀려갔다. 호남이네 집안으로 들어가니 집안 환경이 확 바끼였다. 나는 여러번 호남의 집으로 간적이 있다. 호남이는 홀로살면서도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깔끔하게 집안 장식을 하여 놓고 살았다. “홀아비집은 이가 서말이고 과부집은 은 서말이다” 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본 호남이는 이가 서말인 허름한 홀아비가 아니라 신사다운 사나이였다. 그는 몸관리를 잘하였다. 그는 매일 걷기운동을 하며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좋아 구미에 맞게 음식을 해 먹었다. 그는 어디를 나갈때 꼭 하얀 와이서즈에 무니가 고운 넥타이를 매고 정복차림을 하고  다니였다.        내가 좋은 기분으로 집안을 둘러보는데 안방으로부터 곱게 단장을 한 녀인이 나한테 다가오면서 인사를 했다.       “영택씨 오셨습니까.”       “아니,이게 해옥이가 아니오. 무슨일로 호남이네 집으로 왔소.”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호남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해옥이가 내 각시로 되였다.”      “각시라니!? 너희들이 언제 결혼했니?”      “미안하다. 워나 결혼식에 친구들을 청하려 하다가 내가 여러번 결혼한터라 해옥이와 상론하고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였다니 축하한다.”      내가 축하한다고 하자 두 사람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해옥이는 술상을 갖추어 놓겠다며 화식칸으로 들어갔다. 나는 호남에게 물었다.       “학생때 네가 해옥이를 좋아하는 눈치가 보이더라. 왜서 학교를 졸업하고 해옥이와 결혼을 하지 않고 이제야 결혼하니?”      “예전에 네가 본것이 맞다. 사실 해옥이는 나의 첫 사랑의 녀자였다. 나는 사범학교를 다닐때 은근히 해옥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해옥이를 내 안해감으로 점 찍었놓고 졸업하기만 기다렸다. 졸업하고 배치를 받으며 해옥이를 붙잡고 내 마음을 고백하려고 했다. 운명의 작란이라 할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다른 고장으로 배치받아 가면서 우리둘은 피치못할 다른 운명이 길을 걷게되였다. 우리둘이 각기 다른길을 걷게 된데는 내 책임이 있다. 나는 배치를 받아간 삼년만에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 녀 교원과 번개식 결혼을 하였다. 결혼하면서 해옥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내가 결혼한 이듬해 해옥이도 결혼하였는데 왕청림업국에서 사업하는 한 과원한테 시집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후 우리둘은 서로 련락을 하지않고 지나왔다.   몇해전에 우연하게 해옥이 소식을 알게 되였다.  해옥이가 결혼하여 10년만에 남편과 리혼하였다는것과 후에 여러번 재혼하였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해옥이 고달프게 보낸 인생살이 이야기를 듣고서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2년전에 해옥이가 왕청에서 연길에 있는 딸집에서 손군을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해옥이를 찾아갔다.       해옥이를 보는 순간 나이에 비하여 늙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늙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회 하게 되였다. 왜 일찍 해옥이를 붙잡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지 못했을가? 내가 그때 해옥이를 내 안해로 맞아들었다면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 저리게 후회를 했다.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이제라도 늦지않으니 해옥이 만년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해옥이를 보고 같이 살자고 청들었다. 하지만 해옥이는 다시 한번 고려해 보자고 하면서 확답을 주지 않았다. 내가 하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설득하자 해옥이는 한달전에 내 청혼을 받아 주었다.”       우리둘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해옥이가 술상을 차리였다고 하면서 식사칸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술상에 마주앉자 해옥이를 보고 물었다.       “호남이 한테서 두사람이 겪은 소설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소. 해옥이는 사범학교를 졸업한후 어찌하여 호남이와 결혼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소?”       “그때일을 생각하면 어설픈 연극같기도 하지요. 그 당시 호남씨가 나를 꽉 붙잡았으면 몰라도, 붙잡지 않은걸로 보아 호남씨와 제가 부부로 될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영택씨도 알지만 저는 고아로 자라 학교에서 발급하는 조학금으로 학교를 다니였고 호남씨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서 가정 생활 형편이 어려웠어요. 그때 나는 만약 우리둘이 결혼한다고 하여도 가난의 멍에를 벗을것 같지않아 망서렸지요. 그 문제를 두고 한창 고민하고 있을때 호남씨가 먼저 결혼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배신감이 들면서 다른사람 한테 시집가게 되였어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호남이와 결혼하고 보니 어떻소?  신랑이 해옥이를 잘 대해주오?  혹 구두쇠질 하지않소.”        “호남씨가 “구두쇠”로 되였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른 녀인들과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나 나한테는 통큰 남자, 멋진 남자이지요. 나는 요즘 호남씨를 일찍 만났더라면 내 일생도, 행복도, 일찍 찾아왔었으리라 생각해요.”          해옥이가 행복에 도취된 눈길로 호남이를 처다보자 호남의 입은 귀가에 붙었다.        나는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자 옛날 생각이 떠 올랐다. 나는 누구보다도 호남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건댄 호남이는  싱글 생활을 한지 10년은 잘 되는것 같다. 우둑진 체격을 가진 호남이는 남자답게 생기였다는 말은 들으나. 어쩐지 녀자복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호남이가 첫 장가를 갈때 친구들은 향당위서기의 딸한테 장가를 간다고 하자 모두다 부러워 하였다.       하늘이 조화라 할가? 호남이가 결혼하여 5년만에 안해는 아이 둘을 남겨놓고 산후풍으로 저 세상으로 갔다. 그후 호남이는 여러번 후실들을 맞아 들이였다. 처를 여러번 하다나니 사람의 성격도 변하는것 같았다. 워나 성격은 좀 까근한편인였는데 처를 여러번 하다나니 속 졻은 남자로 변하였다. 무슨 원인인지 후실로 들어온 녀인들마다 호남이와 오래 살지못하고 갈라졌다. 오래 산 녀자도 일년을 못 넘기였 다. 후실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녀인들마다 하는소리가 호남이가 “덩치값을 못하는 한심한 구두쇠”라 하는것이였다. 후실로 들어 왔던 세번째 녀인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했다..        “남편은 어떤 구두쇠인지 생활비도 따져가며 주고 심지어 밥을 지을때도 남편이 쌀을 떠주는 만큼 밥을 지어야만 했다.”        내가 보건대 호남이는 녀자복은 없어도 돈복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교원으로 부터 시정부 외사 사무소로 전근하였다가 후에 대외무역회사로 전근하였다. 대외무역회사를 다니면서 외국 나들이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사이 적지않은 자금을 축적 하게 되였다. 자금이 축적되자 시교에다 단층집을 여러채 사놓았다. 몇해지나 집값이 몇십배 오르면서 그는 일약 부자행렬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는 우리동창생들중에서 제일 먼저 치부한 사람으로 되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있다 호남이가 부자라는 소문이 펴지자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젔다. 녀성 싱글들도 호남에게 호감을 가졌다. 심지어 남편있는 녀인들도 훌럭거렸다.      호남이는 재혼을 여러차레 하였지만 재혼한 상대를 믿어주지 않았다. 여러번 후처를 맞아 보아도 조강지처처럼 마음이 합심되는 녀인은 없었다. 재혼한 사람들은 거개가 이런 말을 했다. 재혼하고 보니 재혼한 남녀들은 모두 동상이몽(同床二夢)이의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한 침대에 올라서도 두 사람다 자기 낳은 자식들이 있으므로 각기 자기들의 자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남이는 해옥이를 견결히 믿고 싶었다. 가령 해옥이가  동상이몽이 꿈을 꾸고 있어도 개이치 않다고 생각했다. 수십년간 해옥에게 주고 싶었던 간절한 사랑의 념원을 해옥에게 몰부어주고 싶었다.        나는 호남이와 해옥이가 다시찾은 행복을 기원하며 밖으로 나왔다.  마침 석양의 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5    신이 준 선물 댓글:  조회:1847  추천:0  2016-08-19
단편소설                               신이 준 선물                                                         1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나는 자신의 일생에 무슨 기적같은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적이 한번도 없었다. 녀인으로서 한평생 한이 된 일이 있어도 신의 선물같은 기적을 바랄수는 없었다. 그만큼 주어진 숙명대로 살아온 나였다. 그런데 인생의 만년에 정말 기적이 생겨 신의 선물을 받아안을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사람은 인연으로 살며 인연에 울고 웃는다더니 내 생애에 기적을 예시한 사람은 참으로 하늘이 점지해준 은인이 아닐수 없다. 그는 다른 이가 아니라 대성스님이라 부르는 스님이였다. 원래 불교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오다가 한국에 나갔는데 우연 한 기회에 대성스님이란 분을 알게 되였다.       나는 내 인생살이가 너무나 고달파 지인에게 하소연하다가 대정산 정토사에 유명 한 스님이 있으니 찾아가면 도움을 줄수 있을것이라고 권고하였다. 나는 그말을 반신 반의 하면서도 정토사를 찾아갔다. 물에 빠진놈 짚오래기라도 짚는다는격인가! 그렇 게 유명하다는 정토사를 찾아가니 허명무실이 아닌듯싶었다. 절은 불공을 드리려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처럼 무지개같은 희망을 품고 온 정치인, 경제인들, 불우한 운명을 한탄하던 사람들이 불도의 힘을 빌려고 정토사를 찾아왔던것이다.     그러다보니 여러 날을 기다려서야 법술이 유명하다는 주지스님을 뵙게 되였다. 나는 주지스님이라고 하면 홍안백발의 도고한 로승일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정작 만나고보니 너무 의외였다. 내앞으로 오신 주지스님은 40대의 젊은스님이였던것이다. 젊음도 젊음이겠지만 대번에 나를 현혹하게 한것은 미인미남들이 지천인 속세에서도 보기 드물게 희한한 미남이였다. 대성스님이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나의 우둔한 생각에는 절에서 목탁이나 두드리고 념불하는 스님으로 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였다. 나는 주지스님을 훔쳐보면서 이렇게 젊고 청수하게 생긴 분이 어찌하여 스님으로 되였을가?하는 의혹을 물리칠수 없었다. 주지스님은 언녕 나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으련만 내색을 내지 않고 소탈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나를 마주하고 인간세상을 구제하는 불도를 설파하였다.       며칠간 대성스님의 지도를 받아가며 부처님께 성심성의를 다하여 기도를 드리고 스님과 상담하였다. 대성스님은 박식한데다가 구술도 좋아서 알아듣기 쉽고 조리있게 얘기하였다.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스님의 말을 듣고보니 내 고민이 점차 해소되는 듯 싶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대성스님을 하늘님처럼 받들며 따르게 되였다.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걸 들을라니 정토사를 찾아와 대성주지스님의 도움을 받은 사람마다 정토사로 올때에는 마음의 상처가 깊었는데 부처님께 불공한 후에는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다 치유되였다고 하였다. 나도 그러했다. 절에 올때에는 머리가 복잡하고 고민이 많았는데 대성스님의 지도에 따라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고 상담을 하였더니 절을 떠날때에는 머리속에 잠겨있던 고민을 다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싶게 흐려있던 마음의 하늘이 활짝 개였다        정통사에서 대성스님을 알게 된후 불교에 대한 나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였다. 이전에 스님이라면 목탁을 두두리고 념불만 외우는줄 않았는데 알고보니 대성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대성스님은 유식한 분이였다. 스님은 불교경전을 통달하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정치, 문화, 지리, 력사, 철학등 여러가지 학문에 대하여 조예가 깊었고 종잡을길 없는 속세의 인정세태와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인간적으로도 넓은 아량과 고상한 성품을 지닌 인격자였다. 그는 시간을 짜 내여 속세의 여러분야의 사람들과 심리상담도 하며 강연도 하였다. 심리상담을 할 때 는 심리학자같았다. 상담과정에 별별 까다로운 질문이 있었지만 내심하게 차근차근 잘 해석해 주었다. 결혼은커녕 련애도 안해보신 분이 련애문제, 결혼문제, 고부갈등 문제, 부모자식간의 문제 등 인간의 삶의 세부적 문제를 잘 료해하시였고 그런 문제 의 해결방법을 제시하는것을 보면서 자연히 감화되고 탄복하게 되였다.        대성스님이 사회의 여러 학교에 가서 강의하였는데 나도 들은적이 있다. 풍부한 지식으로 조리밝게 강의하시는 스님을 보면 스님이라기보다. 력사선생이나 철학을 전공한 교수님과 같아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날이 감에 따라 더욱 대성스님을 숭배하 게 되였다. 스님이 원래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며칠새 무랍없는 사이가 되여 스님과 스스럼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눌수 있었다. 나는 대성스님을 보면서 속세를 떠나 지 않았다면 멋진 인생을 살 분인데 스님생활을 하는 그가 안타깝게 생각되였다. 나는 벼르고 벼르던 말을 털어놓았다.         “속세에서도 멋지게 사실 분이 어떻게 되여 스님의 길을 택하였습니까?”         “나의 팔자가 스님으로 되고 부처로 되는것인가 봅니다.”         “그러면 언제 출가하였습니까?”         “열여덥살 때입니다.”         “열여덮살이면 한창 고중시절이였겠는데 학업을 페지하고 출가하니 부모님들이 극구 반대하셨겠네요.”         “물론 절대 반대였지요. 그러나 부처님을 모시고 불도의 진리를 터득하려는 저의 의지는 누구도 막을수 없었습니다.”         “녀자를 사랑해 본적이 있습니까?”         “녀자! 사랑이요! 허허허”        스님은 소탈하게 웃고는 정숙하게 대답했다.         “한때는 마음속에 사랑하는 녀자가 있었습니다. 불교에 귀화하면서 그런 마음을 싹 털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속세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없나요?”         “속세의 유혹은 난당이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대성스님의 불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알자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불교를 신앙하지 않는다. 불교에 호감이 있다고 하여 불교 신자로 되고픈 생각은 없다. 불교를 신앙은 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불경을 읽어본적이 없지만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과 사람들이 불교를 신앙 하는것을 보면 불교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들로서는 리해할수 없고 느낄수없는 진리가 담겨있으리라 생각했다.                                                          2         어제 저녁에 생각밖에 대성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스님은 자기가 기를 모아 북쪽을 비추어 보았더니 나의 몸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것이 보이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내몸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고 물었다. 내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자 자기가 본것이 옳다고 하면서 내 몸에 이상한 기류가 나타났을 때 제때에 막지 않으면 액운이 닦쳐올것이라했다. 급히 자기한테 련락하는게 좋을것이라며 신신당부하였다.       나는 대성스님의 전화를 받고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수천리 밖에서도 내 영상을 보았다니 정말로 천리안을 가진 신선이라고 할만도 하다. 보통인간은 가질수 없는 특이공능을 가진 초인간적인 생불님이 틀림없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나도 내 몸에 나타난 이상한 변화에 불안해 하고있다. 늘 차갑던 손발이 혈기많던 젊은때 처럼 따스해지고 늘 식욕이 없어 고생했는데 요즘은 별스레 구미가 버쩍 당기는 음식이 많아지고 몸이 풍만해지는것이였다.        인생에 고래희라는 70고개에 올랐건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밭고랑 같 던 주름이 엷어지면서 얼굴피부가 윤기나기 시작하였고 김빠진 고무풍선같이 축 늘어 졌던 젖가슴이 팽팽해 진것이다. 더구나 나를 당혹하게 한것은 페경이 언제였는데 월경까지 있게 되였으니 남들이 알면 기절초풍하지 않겠는가? 저절로도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면서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였다.        며칠전, 여느때처럼 소변을 보았는데 소변이 아니고 피가 나왔다. 피를 보자 깜짝 놀랐다. 련사흘동안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나는 그만 못쓸병에 걸리지나 않았냐?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덜컥했다. 내가 이 일때문에 한창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대성스님은 귀신같이 이일을 알아내고 전화를 하였던것이다. 신선이 아니고야 어떻게 수천리밖에서 내 일을 똑똑히 알수있겠는가? 나는 입속으로 대성스님을 여래 불의 혼신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닐가 생각하게 되였다.         나는 죽을 병에나 걸리지 않았나? 하며 잔뜩 겁에 질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산부인과를 찾아갔더니 50대의 남자의사가 병증을 묻고는 화험해 보라고 했다. 하루 가 지나 화험단을 가지고 의사한테로 갔더니 의사는 화험단을 보면서 눈이 화등잔같 이 되였다가 입을 가리고 히쭉히쭉 웃었다.        “축하합니다.”        “축하라니요? 몹쓸병에 걸렸겠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합니까?”       내가 화난 어조로 말하자 의사는 무슨 병이 아니라 월경기능이 재생되였다고 하였다. “월경이라니!” 나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가슴이 다 먹먹해졌다. 의사는 나더러 전면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의사는 보기에도 겁나는 의료기구에 눕혀놓고 이리저리 살피는듯 싶더니 또 한번 롱담이라도 과할 말을 하는것이였다.        “허참, 이런 기적이라구야, 녀사님은 신체가 대단히 좋습니다. 녀사님의 생육기능은 30대의 녀성과도 같습니다. 질벽도 좋고 자궁안도 매우 깨끗합니다. 내가3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녀성들을 보았지만 녀사처럼 생리구조가 이렇게 좋은분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자궁이 깨끗하고 손상이 없는것을 보아 녀사님은 한번도 생육을 못해보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예ㅡ 한번도 생육을 못하였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나 녀사님의 지금 건강상태로 능히 생육할수 있습니다.”         “생육이라니! 듣자하니 점잖은 의사선생님이 너무 하시는구만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녀사님은 년세가 많지만 신체조건이 특수하여 기적을 창조 할것 같다는 말입니다.”        (기적을 창조할수있다?!) 나는 들을수록 어리둥절해지며 제정신이 아니였다. 란잡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정밀검사를 해보겠다고 제의했다. 의사도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3일후 정밀검사 결과가 나왔다. 정밀검사를 하여도 여전히 병이 아니고 오히려 질과 자궁이 순도가 A급이라는 판정이 내렸다. A급이면 임신을 할수있는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의사는 정밀검사 결과서를 들여다 보며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엉뚱하고 황당한 물음을 던져왔다.         “녀사님께서는 임신하고싶은 생각이 없습니까?”         “임신이라니요? 이 선생님이 정말…”         “헛소리가 아닙니다. 녀사님의 신체조건으로 임신할 가능성이 풍부합니다. ”         “아무리 내 신체가 좋다해도 그렇수 없습니다. 젊었을때도 임신못한것이 늘그막 에 와서 임신한다는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달리 영양공급이 좋아 늙은녀성들에게 불가사한 일들이 적지않게 나타납니다. 아직 중국에는 없지만 세계적으로 나이70에 생육한 녀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내 판단으로는 녀사님은 중국에서 첫기적을 창조할것 같습니다.”        고목봉춘이란 말은 흔히 듣는 말이지만 그게 실제상에서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기적! 기적이 어디 흔해빠진게라구 나에게서 일어난단말입니까?”        “저를 믿으십시오, 절대 가능합니다.”        의사가 듣고 모를 의학용어를 써가며 한동이나 설명했지만 그저 머리가 뻥해나서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사가 제말을 듣고있는가고 물어서 정신이 들었다.        “천하에 둘도없는 거짓이지만 남편과 상론해 하겠습니다. 사실 나도 임신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녀자로 세상에 태여나 여짓껏 자식을 낳지 못한것을 죄처럼 여기며 한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언제라도 꼭 자식을 낳을수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여태껏 살아왔습니다. 하늘은 야속하게 나에게 자식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았습 니다. 선생님이 말씀대로 내가 임신할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하니 한번 실험하고 싶습니다만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난다고 우리집 량반이…”        “남편이 생육능력이 소실되였다해도 녀사님의 기어이 임신하고싶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귀신듣게 떡소리를 말랬던가? 사실 귀가 솔깃해지는것을 말릴수 없었다. 그만큼 자식낳이는 내 평생의 소원이였고 마침내 이루지 못하게 되자 풀리지 않은 앙금으로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는터였다. 녀자로 태여나서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완정된 녀자라고 말할수 있다. 아이한번 낳아보지 못한 자신은 어디까지나 절반 녀자 이고 인류의 가장 위대한 감정이라는 모성애를 가져보지도 못한 녀자이니 녀자로서는 철저히 실패한 인생이 아닐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였던지 다른 녀자들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거나 아이의 손 목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을 볼때마다 부럽다못해 질투심이 온몸을 불살랐다. 귀엽거 나 못생겼거나 따질 여유도 없이 그저 제 아이만 하나 키울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생각만 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게 되고 막 미칠것만 같았다.        그러다보니 젊었을 때는 앉으나 서나 임신할 욕망으로 나날을 보냈다. 한편 속타 는 마음을 달랠겸 임신에 관한 책들도 적잖게 보았다. 불임의 원인은 남자측 요인이 30를 차지하고 녀자측원인이 50를 차지하고 원인불명도 20%정도고 녀자측 원인은 배란장애가 절대다수고 통과장애, 착상장애 등 여러가지 인소가 있다는 설명을 보고 남편을 의심할 생각에 앞서 못생긴 자신을 얼마나 탓했는니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남들이 천생배필이라고 부러워할만큼 찰떡궁합에 금슬도 좋았고 건장하게 생긴 남편이 밤일에도 그렇게 극성이였는데 남들은 무우뽑듯이 아이를 뽑아내는데 왜 자신의 자궁속에서는 발동이 걸리지 않는지? 누구의 탓이든간에 자식낳이를 하지 못했으니 남편과 가족에게 죄를 진것같아 큰기침 한번 하지 못하고 청춘이 저물었다.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결국 내 탓으로 돌릴 일만도 아니였던것이다.        결혼하여5년이 지났는데도 아무소식이 없자 마음이 너그럽기로 한량없는 남편은 안해를 의심하기전에 혼자 병원에가 진찰받았다. 검사결과 남편에게 정자결핍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은 체면도 체면이려니와 나를 잃을가봐 나한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평생을 가슴에 그 비밀을 묻어두고 살아왔던것이다.         나도 병원에가서 검사해보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것을 확인한후 남편의 탓이라고 믿었지만 결혼해서 하루같이 뜨겁게 사랑해주고 지극정성으로 대하기에 운명이거니 하고 네탈내탈 할세라 자식말은 입밖에 내놓지 않고 오손도손 살아왔다. 제배가 아 프게 애를 낳을수 없다는것을 확인하게 되자 내가 먼저 아이를 입양하자고 제기했다. 남편은 두말없이 동의했다. 수소문끝에 남자아이를 하나 입양했다. 남편은 제새끼처 럼 아이를 고와하였다. 낳은정보다 키운정이 더 깊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3            사람의 욕심이란 참으로 끝이 없는가보다. 뻔연히 알면서도 그냥 외곬으로 빠지는 욕심을 떨쳐버릴수 없어 불쑥 애원 비슷한 말이 튀여나갔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나요?”        “임신하는데 제일 요긴한것은 남녀쌍방이 신체조건이 좋아야 하고 궁합이 맞어야 하며 녀성측에서 임신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임신을 하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임신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수정입니다. 인공수정을 하려면 돈 이 많이 들고 수정과정이 힘들고 또 임신확률도 높지 않습니다. 초보적 통계에 의하 면 임신확률이 10퍼센트미만이라 합니다. 제일 좋기는 자연수정을 하는것입니다. 자연수정이 구비되지 못할 경우에는 할수없이 막부득이한 선택을 할수도 있습니다.”        “막부득이한 선택이라니요?”        “참, 면전에서 말하기가 별로인데요. 말하자면 도덕과 륜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녀사님이 선택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임신하고 싶어도 륜리도덕이야 내버릴수 없지요.”        내가 단마다 안짝에 거절하자 의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녀자로서 임신을 하고 자식을 낳는 일은 나개인을 놓고 말하면 일생대사이다. 어떻게 할가? 자연임신을 할가? 그것은 안된다. 그럼 인공수정을 한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친다. 주착머리없이 어느때라고 인공수정을? 말도 안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의사의 말대로 딴남자와 사통한다?. 나중에 밝혀지면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의사가 말했지만 건강한 남자의 씨를 받으면 임신확률이 90%라 한다. 체면이고 도덕이도 다 팽개치고 눈을 지긋이 감고 그짓을 할가? 되짜듯 말짜득해도 도무지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과 상론하여야 했다. 나는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남편한테 말했다. 식물인이나 다름없던 남편은 그말을 듣더니 정신을 버쩍 차리는것이였다. 내몸을 이리저리 훝어보더니 긴 한숨을 쉬였다. 아마도 의사의 말대로 내가 정말 임신할것 같은 예감이 든 모양이였다.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꿍끙거리는것이 환히 보였다. 남편도 갑자기 이런일에 부딪치니 갈피를 잡기 힘든 모양인지 도리머리를 했다.        무거운 침묵에 숨이 막힐듯했다. 드디어 남편은 철문처럼 무거운 입을 열었다.        “여보, 내 불찰로 당신에게 평생 자식을 못낳다는 루를 끼쳤소. 미안하오. 의사의 말이 정말이라면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오. 당신이 하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덕을 쌓은 덕분인가 보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당신의 소원을 풀어보오.”        사실 나는 남편에게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하려고 하다가 주춤하였다. 만약 의사가 말한대로 내가 임신할수 있다고 하면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가? 믿어줄가? 반대할가? 동의할가? 응당 반대하리라 예견했다. 그런데 내 생각밖으로 남편은 큰 결단을 내렸다. “당신소원을 풀어보라”고 한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젔다.         비록 남편의 동의를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다시 생각하여 보니 임신 한다는 자체가 함부로 결단을 내릴수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남편은 이미 완전히 생육 능력을 상실하였다. 내가 만약 탈선하여 남의 씨를 받는다면 내게는 소원성취이지만 남편은 마음이 좋겠는가? 생각하면 후과가 두려웠다. 남편이 허락했지만 정말로 내가 임신하였을때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나올지 모른다. 남자의 자존심때문에 치욕으로 느낄것이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뒷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남의 씨를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앞으로 애를 키울문제가 더 큰 문제이다.        생각할수록 고민만 깊어갔다. 처음엔 임신할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하자 20대의 녀자처럼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내 신체조건으로는 90프로로 임신할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잔뜩 열이 올랐다. 황소같은 남자를 만나 얽히면 단방이라고 걸릴것같은 허무한 생각도 했다. 그러다 다시 랭정하게 생각해보니 임신하는 문제가 말처럼 식은죽먹기가 아니였다. 지나온 경과가 충분히 설명하여준다. 나는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늘은 우리부부에게는 무어나 다 주면서도 유독 자식을 낳을 기회는 주지않더니 이번에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줄가? …        이번에 재생한 생육기능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하늘이 준 선물 을 받아들이지 않고 놓쳐버린다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임 신을 하고 자식을 낳고싶은 욕망이 기름을 끼얹은 모닥불처럼 확 일어섰다. 늦게 나마 찾아온 이 기회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 무슨 수단을 가리더라도 잡아야 한다. 이번 기회는 하늘이 준 천재일후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기회는 다시오지 않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주먹은 그러쥐였지만 실천에 옮길수 없었다. 건강한 남편이라도 모르겠는데 그 나이에 녀자를 임신시킬수는 없으니  자연임신은 백프로 불가능하다. 그럼 의사말대 로 인공수정을 해본다? 인공수정을 하려면 돈도 많이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보배를 얻을수만 있다면 그까짓 돈은 문제가 아닌데 어려운 고비를 넘길지가 또 천근같은 근심이다.       만약 인공수정을 하려다가 몸을 망칠질수도 있다. 몸이 망가질것을 생각하니 가 슴이 떨린다. 가슴이 떨리고 힘들어도 참을수 있는데 인공수정을 하면 임신할 확률이 10프로도 안된다고 하니 참 코막고 답답한 일이 아닌가, 너무 답답하여 녀동생한테 말하였더니 절대 인공수정을 하지말라고 한다. 인공수정을 하다가 병든 사람도 있다 고 했다. 동생은 아저씨가 동의했으니 좋은 남자를 만나 자연임신을 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어떻게 한담? 정답을 찾지못하여 밤잠도 제대로 잘수 없다. 내가 이렇게 결단을 못내리고 고민하고 있을때 의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녀사님 결정을 하였습니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녀사님 우리집으로 오십시오. 다시 한번 깊이 상담해봅시다.”       나는 이것저것 고려할새없이 의사선생님의 집으로 갔다. 집안에 들어서니 객실 은 널직하였고 깔끔하게 정리되여 있었다.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턱에는 노란 개나 리꽃과 무궁화꽃이 활짝 피여있었다. 벽에는 값진 유화들과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내가 방안을 둘러보는 사이 의사선생님은 커피를 끓여오고 과일을 탁상우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오랜 지기나 되듯이 쏘파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고귀한 분을 이런 초라한 집으로 오시라 하시여 미안합니다. ”         “무슨 말씀입니까? 너무나도 정갈하게 꾸미였어요. 내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녀사님을 오라고 한것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전번에 말하였지만 녀사님의 의사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나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남편한테 내가 임신할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말하자 희소식이라면서 내 소원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 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은 이미 생육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내가 만약 륜리도덕을 버리고 외간남자와 그런다 는것도 말이 아닙니다. 인공수정을 할가 생각해도 보았지만 너무도 힘들것 같아 포기 했습니다. 아무래도 모든것을 포기해야 할것같습니다.”         “포기하다니요? 좋은 기회를 놓치는게 아쉽습니다. 한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나도 솔직히 말하면 녀사님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녀사님 처럼 70고령에 생리기가 왔다는것은 중국에서도 보기드문 일입니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금년에《새 시대 녀성들의 로년기에 나타나는 생리현상》이란 론 문을 준비하고 있는중입니다. 녀사님의 생리현상이 내 론문에 론거로 될수있습니다. 부디 녀사님께서는 하늘이 준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주십시오.”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 눈빛에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뜻이 담겨있었다.        “다시 한번 고려해 보지요. 그런데 사모님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        “사실 처는 8년전에 미국으로 갔습니다. 자식들도 다 외지에 있고…”        “남자가 혼자 살려면 무척 힘들텐데요?”        “인젠 습관이 되여 괜찮습니다.”        “늘그막에 제일 힘든것이 고독이라 하는데 선생님은 참 용합니다. 혹 선생님이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어 갈증을 말리는게 아닌가요?”        “그러지 않아도 동료들이 애인을 구하라고 권고합니다.”        “애인을 찾지않고 사모님이 올 때를 기다리렵니까?”        “인제 기다릴 일도 없습니다. 재작년에 리혼을 하였습니다.”        “어머, 리혼요? 그럼 이 좋은 조건에 새 부인을 맞아야 하지요.”        “정작 새 사람을 만나자니 어디 생각대로 됨니까.”        “선생님의 조건으로는 얼마든지 이마를 튕겨가며 고를수 있겠는데. 선생님이 눈이 너무 높은가 봅니다.”        “아닙니다. 나는 조건이 높지 않습니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대화가 잘 될수 있 는 녀자면 됩니다. 그런데 아직 그런 녀성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남자들 모두 우선 인물만 보는가 했더니 그렇지 않습니다예?”        “물론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구 고운 녀자에게 호감이 가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 만 내 체험으로는 진정 사랑하고싶은 녀자는 얼굴보다도 마음이 하나로 융합되여 말 썽없이 인생길을 동행할수 있는 녀자입니다. 녀사님과 같은분 말입니다.”        “아이구나, 좋게 평가하여주니 고맙습니다만 나는 이제는 잔소리 많은 할망구에 이제 보이는것은 북망산인데 무슨 그런 해괴한 말씀을 다…”        “아니요, 녀사님의 말씀하는것을 보면 로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정밀검사를 하여보니 녀사님의 신체조건은 50대에 해당됨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아이고, 그렇게 젊게 봐주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의사는 말을 하면서 능글맞은 눈길로 부푼 내 가슴을 훔쳐보는것이였다. 나는 녀자의 본능으로 슬그머니 손으로 가슴을 가리웠다. 시계를 보니 저녁 여섯시였다. 내가 자리를 뜨려는데 의사선생님은 어쩌다 오셨는데 저녁을 자시고 가라고 극구 만류했다. 나는 더는 거절할수 없어 식탁에 마주앉았다. 맛스런 료리에다 향그런 술을 마시고 나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즐겁게 보냈다는 기억만이 어렴풋하다.                                                        4.         누군가 인생의 전반부는 비극으로 엮어지다가 후반부는 희극으로 나타난다더니 내 인생이야말로 만년에 희극을 연출하게 되였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말 이다. 할미꽃도 꽃이라지만 호호백발에 남자친구를 만났다니 그야말로 울다가 웃을 희극이 아니겠는가? 역시 인연으로 얽히는 인생이지만 딴 남자가 생길줄은 몰랐다.        나는 매일 아침 연집강 뚝길을 걷는 운동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맘때면 꼭꼭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공원다리에서 북으로 향해걷고 그 사람은 어디서 오는지 그냥 남쪽으로 향해 걸어온다. 원래 길을 갈 때 곁눈질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걷는 습관이 있다 보니 정면에서 마주오는 그 사람의 얼굴을 흘려버릴수 없었다.        어느날 그 사람이 갑자기 내앞을 턱 막아서며 환성을 올렸다.        “아니 이게 영희가 아니야?! 야, 참! 오랜간만이다.”        “영희요? 저는 영희가 아닌데요.”       내가 아니라는데도 그 사람은 내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나도 본능이 시켰는지 어망간에 그의 커다란 손에 손을 맡겨버렸다.       “너 영희가 맞구나, 세린하 문하동에서 살던 신영희말이다.”       “미안합니다.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영희가 아니라구요? 내가 잘못 볼리가 없는데…”      내가 매몰차게 손을 빼며 아니라고 하자 그 사람은  뒤통수를 긁었다. 나는 낯 모를 남자와 긴 말을 섞고싶지 않아 가던길을 재촉했다.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초면강산인 남자이면서도 어느 기억의 구석에서 튀여나올듯 한 보던 얼굴같기도 했다.       이튿날 약속이나 한것처럼 그 남자를 또 만났다.       “어제는 실수했습니다. 량해하십시오. 녀사님의 모습이 내 기억속에 신영희와 너 무나 신통해서 그런것같습니다.”       “사노라면 그럴수 있지요? 세상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푸술하니까요.”       “리해하신다니 감사합니다. 헌데 혹 옛날 세린하에서 살지 않았습니까?”       “네. 어릴때 세린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럼 문하동에 있던 신영희를 모르십니까?”       “동성동명도 많으니 딱 그인지 모르지만 내 사촌동생도 신영희입니다.”       “신영희가 사촌동생이라면 나를 모르겠습니까? 리화동에 박형국입니다.”       리화동의 박형국? 기억의 테푸를 재빠르게 돌려보아도 아무 영상도 떠오르지 않 았다. 세월의 물결에 떠내려간 영상들이 아무리 많아도 한번 새겨진 모습은 잘 잊는 내가 아니였다. 그런데 박형국이란 이름조차 떠올려지지 않았다.        “미안해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주 어릴때 연길로 왔습니다. 오랜 일이라 고향분들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되여 영희를 아십니까?”      “영희와 나는 소학교, 중학교 동창이였습니다. 나의 첫사랑이기도 하였습니다.”      “나와 못하는 말이 없는 영희가 그런 사연이 있다고 말한적이 없었는데… ”      “영희도 나를 무척 좋아했지요. 그런데 피치못할 사연으로 영희는 삼도만 탄광의 로동자한테 시집을 갔습니다. 그후 나는 군대에 갔다가 제대되여 향정부 무장조리 원으로 있다가 추천을 받고 지구당교에서 학습하였습니다. 후에 줄곧 현정부에서 사 업하다가 정년퇴직했습니다. 첫사랑이란 참으로 끈덕진 감정인것 같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두었지만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영희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재작년에 안해가 먼저 가고나서 더구나 영희가 생각났습니다. 수소문해보니 영희 도 남편을 잃고 자식을 따라 한국으로 갔답니다. 사처에 부탁해서 영희의 전화번호를 알고 전화를 했더니 그도 나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가 영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좀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인지…녀사님을 처음 보는 순간 영희라고 단정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그냥 지나치다가 어제는 큰 마음을 먹고 확인해보려 했던것입니다. ”        “참 안되였어요. 영희는 2년전 서울서 교통사고로 잘못되였습니다.”        “뭐라구요?! 그럼…아, 그래 소식이 없어구나.”        그 사람은 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눈굽을 찍고 있는듯싶었 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만나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익숙한 사이가 되였다. 어느날 그는 한번 식사나 같이 하자고 청들었다. 나는 한참 고려하다가 영희의 인정을 생각 해서라도 거절할수 없었다. 고인이 된 내 동생을 사랑했던 사람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전주비빔밥집으로 갔다.       “영희때문에 매우 상심하시는데 인연이 닿지 못한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아주머니는 나의 첫사랑의 영희에 대한 감정을 알수 없지요. 이렇게 된 마당 에서 영희마저 먼저 갔으니 다른 녀자가 마음에 들어설수 있겠습니까? 혹 아주 머니와 같은 분이라면 몰라도.”        “나를요 ? ”        “네 그렇습니다. 지금 내눈에는 아주머니가 그냥 영희처럼 보입니다.”        “정 그러시다면 내가 영희대신 선생님의 친구로 되여줄가요?…”        그날부터 우리는 교제가 빈번해졌다. 인정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리해와 신뢰이다. 그 사람과 교제하면서 우리 둘사이에 대화가 너무나도 잘된다고 생각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젊은시절을 되찾은듯한 느낌속에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받아들 이게 되였고 날이 갈수록 서로를 밀착시키고 있음에 놀라웠다.         마침내 그 남자가 나를 공원에 불러내더니 백합꽃 한묶음을 안겨주며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사랑이란 말이 아무리 흔해빠진 세상이라도 우리 나이에 사랑이란 말이 오고간다는것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이는 이정도만큼으로 만족하는게 좋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 말과 마음은 다른것인가? 사실 말은 그렇게 매몰차게 하였지만 가슴마저 매정해진것은 아니였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든 인생의 주어가 아닌가? 녀자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랑한다는 말에 무감각할수는 없다. 얼굴이 붉어 지고 가슴이 쿵쿵거리지는 않더라도 듣기만해도 기분이 들리는 말이 아닌가!        그 남자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마음 이 야릇해지는것을 보면 내가 정말 회춘해서 젊은녀자의 생리를 가져서일가? 나는 아 직 죽을 나이가 아니다. 나는 이제라도 사랑을 할수 있다고 내심으로 소리치고 있는 듯싶다. 아이한번 낳아보지 못하고 훌쩍 가버린 내 청춘이여서 마음마저 싹 말라버렸 다가 이제 다시 뜨거운 피가 거꾸로 흐르게 되였는가?                                                            5         나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느라 하였지만 남녀의 본성은 늙을줄 모르는듯 그렇게 자주 만나고 친밀해지다가 마침내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되였다. 늦바람 이 곱새를 벗긴다더니 한번 달아올랐던 몸은 그냥 뜨겁게 달아오르기를 바라고 있어 나 자신을 다잡을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오히려 주동이 되여 그를 찾았다.       사람의 정력은 쇠퇴하지만 성애에 대한 갈망은 나이를 모르는 특수한 남자들도 있는듯싶다. 그 남자가 나보다 세살 아래이지만 그렇게 정력이 왕성한데는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남이야 어찌 생각하든 둘이 하는 일은 그렇게 재미날수가 없었다. 나 는 마흔에 만득자도 아닌 고래희에 아이를 낳아보려는 욕심을 앞세우고 젊은녀자처럼 몸을 한껏 달구다보니 남자도 덩달아 성애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렸다…        그렇게 황혼열련에 빠져들어 날이 가는줄 모르다가 내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 난것을 발견하고 끔쩍 놀랐다. 자도자도 잠이 모자라고 몸은 천근인양 무겁고 사각이 나른한게 도통 맥이 나지 않는다. 입덧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속이 자주 메슥메슥하면 서  구토가 났다. 정말 임신일가? 불안과 위구심고 요행심리가 고패치면서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착잡해진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아가니 남자주임의사는 보이지 않고 젊은 의사 가 있었다. 내가 주임의사를 찾았더니 학술론문을 발표하려 북경에 갔다고 했다. 좀 서운했지만 엎딘김에 절이라고 젊은의사에게 보였다. 의사는 마치 내가 우주인이 아 니면 괴물이기라도 한듯 데꾼해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상야릇하게 웃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임신한것 같으니 초음파를 해보라고 했다. 임신이 옳았다. 그렇 게 바라던 일이 결국 현실로 되였지만 나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것처럼 몸을 가눌수 없었다.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였던것이다. 이일을 어쩌나? 임신한것을 먼저 누구에게 알려야 할가? 누구누구해도 남편에게 알려야 했다.        나는 큰맘먹고 남편한테 임신했다고 실토했다. 내말을 듣던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누웠다. 그런데 새벽이 되여 괴상한 소리가 나기에 깨여나보니 거의 경직 되여 있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급해난 나는 120에 전화를 걸었다. 구급차가와서 남편을 병원으로 실어갔다. 남편은 병원으로 가서 구급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못하고 충격으로 인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중 남편이 쓴 유서를 발견하였다. 삐뚤삐뚤 쓴 글을 보니 직전에 쓴것같았다. 자신이 남편구실을 제대로 못하여 미안하다는 말과 앞으로 애가 태여 나거든 자기의 성을 따라 함씨를 달라는 부탁이였다. 나는 유서를 채읽지 못 하고 구들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다섯달이 되여서부터 나는 제법 임신부의 모양을 갖 추었다. 신은 늦게나마 나에게 자식을 못낳은 한을 풀어주고 귀한자식을 선물로 주었 을가? 하늘에 감사하기 그지없다. 선물을 받고보니 온세상의 복과 기쁨을 나혼자 독차지 한것처럼 흐뭇해 났다. 나는 점점 커가는 배를 보면서 기뻐하면서도 남들에게 드러나고야말것때문에 문밖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때론 혼자서 애비없는 애를 키울 일을 생각하면 근심이 태산처럼 막아섰다. 그래도 이미 그런 어려움을 다 감당하리라 각오를 한터라 결코 후회하는 마음만은 없었다.        아들며느리는 사연이야 어찌 되였든 불문하고 정성껏 보살펴주었다. 시에미가 임신한 며느리를 돌보아주는것이 상례인데 며느리가 시어머니 시중을 들게 되였으니 세상은 희비극이요 사람의 앞일이란 참으로 알길없다는 말이 그른데 없다. 뒤공론이 무성해지고 아무도 상상해낼수 없는 “기적”을 창조한 이 늙은에미에게 가타부타 말없는 아들,며느리가 고마웠다. 아들은 어머니의 평생의 한을 풀게 되였으니 마음을 푹놓고 몸조리를 잘하라고 신측할뿐이였다.        드디어 두렵고 기대되는 해산달이 다가왔다. 나는 필생의 힘과 정력으로 신이 준 선물을 무사히 받아안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한편 애가 세상에 태여나면 어떻게 이름성명을 달가 생각했다. 자식은 애비의 성을 따르는것이 원칙이다. 애아버 지가 누구라고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나는 애가 태여나면 이름이야 어찌 짓든 성씨만은 함씨로 정하기로 하였다.        의사선생님도 내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적을 창조하였다고 하면서 자기 가 쓴 론문이 특등상을 탈것이라 했다. 아이를 키울 때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를 찾으 라 했다. 남자친구는 두말없이 정정당당하게 결혼하자고 했다. 나는 대성스님한테도 사실을 알렸다. 대성스님은 내가 임신하였다는것을 언녕 알고있었단다. 스님은 앞으 로 애를 키우기 힘들면 한국에 나와 자기에게 애를 맡기라고 했다.        해산날이 다가올수록 기적의 아이는 세상에 빨리 내보내달라고 떼질을 쓰는지 태동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들은 나를 미루 주원시키려 했다. 그런데 주원수속을 하려고 하니 보호자부터 찾았다. 내가 남편이 외출해서 잠시 보호자가 없다고 했더니 산모가 초산이자 나이가 많아 순산하기 위험하니 절개수술을 해야 한다며 후과를 책임진다는 보호자의 담보서가 있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제일 보호자인 남편이 없으니 누가 나서야 하는가? 아들이 나서서 보호자란에 싸인하려는데 남동생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제가 싸인하는게 순리라며 아들을 밀쳤다. 남동생이 필을 들고 막 싸인하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들어서며 “잠간!” 하고 소리치 더니 남동생의 손에서 원주필을 빼앗아내서 싸인하려고 했다. 필을 빼앗긴 남동생은 버럭 성을 냈다.        “초하루 보름에도 본적이 없는 당신이 뭔데?”        “나 저사람이 남편될 사람이구 애 아빠로 될 사람이우”        “뭐! 우리 누님의 남편될 사람? 애아빠로 될 사람이라구?”        “그렇소 알고싶으면 누님과 물어보오.”        그리고는 부랴부랴 싸인하였다. 동생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씩씩거리며 천장만 쳐다보았다. 나는 그 사람의 애아빠라고 싸인을 했지만 앞으로 누가 또 애아빠라고 나설지 근심되였다. 누구누구 해도 진정한 애아빠는 나만 알고있는 비밀이다. 내가 산실로 들어간후 형제들과 그 남자는 언제 다투었냐싶게 이심전심 내가 무사하게 해산하기만 바라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  나는 제왕절개수술을 하지않고 순산을 하기로 하였다. 정말로 기적우의 기적을 창조할 판이였다. 나는 의사의 지도대로 호흡조절을 하면서 기를 모아 아래배에 힘을 주었다. 초산의 고통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나로서는 죽을맛이였다.        드디어 하늘땅이 뒤번져 지는듯한 동통과 함께 거대한 힘이 모아지더니 내몸 아래에서 “으앙” 소리가 터저나왔다. 그 소리는 마치 비상 싸이렌 소리처럼 요란했다. 나는 눈을 번쩍 떳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병원 산실이 아니고 나의 침실이였다. 고고성을 지르던 아이는 보이지 않고 내가슴에 커다란 인형이 말없이 웃고있었다.  
4    단편소설 붉은기미 댓글:  조회:2153  추천:6  2016-04-27
단편소설                                   붉은기미        아들이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어오던 유씨가 오늘따라 언성을 높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녀를 내 며느리로 받아 줄수없다.”       “왜서 받아 줄수없다는 겁니까?.”       " 그녀는 내 마음에 안든다.”       “그녀를 어머니가 좋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불세로 마음에 안든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처음에 나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 혼사만은 그만 두어야 할것 같다.”       "그녀에게 새로운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면 문제지, 내 아들이 애달린 녀자한테 장가를 가는게 문제지.”       “어머니도 참, 그녀가 애달린 녀자라는걸 이미 알고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말을 끄집어 낼게 뭠니까?”       “내 다시말하마. 그녀를 내놓고 다른데 혼처를 정하면 안되겠니?.”       “안됩니다. 나는 이미 그녀한테 장가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다른말을 하지마십시오. ”       “그럼 애는 어쩔작정이냐?”       “애야 어쩔게 있습니까? 우리가 키워야 하지요.”       “봐라 그래서 내가 반대한거다. 남이자식을 어떻게 키운다고 그러니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게 말이헐치 어디 그리 수훨한줄아니 두고 봐라. 네가 후회 할때가 있을게다. 다시 생각해 봐라, 네가 정 그녀를 데려오겠다면 그애를 시집에 두고오면 안되겠니?”       “어머니도 참, 립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십시오. 그녀한테 제 살부치를 떼놓고 어떻게 시집오라고 말하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유씨는 아들이 태도가 견결하자 그만 손들고 말았다.      "됐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듣지 않으니 별수없지. 다 니 팔자이니 니 맘대로 해라.”      “어머니 시름을 놓으십시오. 우리가 꼭 남부럽지않게 잘 살것입니다.”      “그래라.”      아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유씨는 “고집이 세기루 어쩌면 담지 말라는 제 아비 고집을 똑 떼닮았네.” 하면서 허글픈 웃을을 지었다.      유씨는 아들한테 태도 표시를 하여 놓고도 어쩐지 마음을 종잡을수없었다. 불현듯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여보 어떻게 하던지 성국이를 장가보내주오. 나는 성국이 일때문에 눈을 감을것 같지않소.” 간암 말기에 이른 남편이 마지막 부탁이였다. 그때 유씨는 그말이 천근보다 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의 마지막 소원이라 할수없이 수긍하고 말았다.       아비로서 아들을 장가를 보내지 못한것이 얼마나 가슴에 얼이 맺쳤으면 그말을 남기였을가? 유씨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리였다.      세상일이란 자기의 뜻대로 되는일이 없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던 아들이 이제는 나이 서른여덥살이되였다. 아들은 인물체격이 못났거나 장가를 갈 돈이 없어 그런것도 아니다. 문제는 알맞는 녀자가 없는것이다. 무슨놈이 세월인지 조선족 처녀들은 어디로 갔는지 마을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에게 혼처가 여러번 들어왔다. 거개가 장애인이 아니면 나의많은 과부들이였다. 어쩌다 남방의 외자기업소에서 사업한다는 대학을 졸업한 과년한 녀자를 만났다. 그 녀자는 아들을 만나보고는 제 체신을 모르고 대화가 잘 안된다며 “안녕’하고는 달아났다. 그후로는 아들은 녀자소리만 들어도 머리를 저었다. 그런 녀자들은 열드럼이 와도 싫다는 것이였다.      인년이 따로 있나보다 녀자소리만 들어도 싫다고 하던 아들이 그 녀자에 대해 말을 하자 선듯이 만나 보겠다고 하는것이였다.                                             2         을미년 벽두에 희소식이 유씨한테로 날아왔다. 화룡에 있는 가까운 친척한테서 좋은 소식이왔다. 자기가 살고 있는 이웃에 남편을 사별한 한 젊은 녀인이 있는데 인물이 곱고 똑똑하며 려행사를 다닌다고 했다. 허물이라면 자식하나를 두고 있다고 했다. 개인집이 있고 경제상에서 여유있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씨의 아들과 그녀의 궁합을 마추어보겠으니 아들이 생년월일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들이 장가가는 일 때문에 속에 재만찾던 유씨는 그 소식을 듣고 가물에 단비를 만난듯 기분이 좋았다. 똑똑하고 인물곱고 직업도 좋다고 하니 허물할것 없는데 애가 달려 있다고 하자 그만 어름덩이를 않은듯 섬득해 났다. 아무리 지금세월에 총각이 과부한테 장가를 가는것이 비일비재라 하지만 정작 내 아들을 애달린 녀자한테 장가를 간다고 생각하자 무슨 귀중한 물건을 홀랑 잃어버리기라도 한것같은 그런 맹랑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선듯이 답복을 주지못하였다.       어떻게 할가? 이궁리 저궁리 생각해 보아도 인츰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싫다고 할가? 생각해보니 그것도 안될 일이였다. 사십을 먹어가는 아들이 이조건 저조건 따지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때를 노친다면 자칫 아들이 총각으로 늙어죽을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처녀가 금싸락같이 귀하고 녀자들이 몸값이 점점 올라가는 세월에 뭘 따질게 있냐 싶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아들이 나이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때가 아니다고 생각되였다. 에라 과부면 어떻고 애달린 녀자면 어떠랴? 우선 장가부터 보내고 보아야 하지, 그러면서 유씨는 속으로 수판알을 튕겨 보았다. 좋게 생각하니 애달린 녀자를 며느리로 맞는다해도 믿질게 없었다. 총각의 과부한테 장가를 간다고 하면 남들이 어떻게 볼지몰라도 처녀들이 금싸락같이 귀한판에 뭘 가릴게 있냐? 고 앞발명 할수있다. 좋게 생각하니 오히려 결혼전과가 있는 녀자와 결혼하면 좋은점이 있을것 같았다. 그런 녀인과 결혼하면 혼수감과 결혼비용이 적게 들것이다.            녀자측에 집이 있고 경제상에서 여유롭다고 하니 살림집을 장만할 필요가없고, 생육을 하였으니 불임을 피면할것이며 결혼경험이 있으니 남편공대를 잘할것이다. 애때문에 말썽은 있겠지만 녀자측이 애이니까 녀자가 항상 그애 때문에 남편한테 지고 들것이라생각했다. 유씨는 이쯤 생각해보니 마음이 한결 개운해 지는것이였다.       유씨는 중매를 선 친척한테 아들의 생년일을 알려 드렀다. 며칠이 지나자 친척한테서 좋은 소식이왔다 그녀와 아들의 궁합을 맞춰보니 금상첨화라 하면서 둘이 짝을 무으면 돈도 많이 벌고 자식도 여렀을 낳을것이라 했다       유씨는 그말을 듣고 좋은 기분이들자 즉시 한국에 있는 아들한테 전화를 하였다. 전화를 받고 아들은 군말없이 그녀자를 만나보겠다면 부랴부랴 돌아왔다.       아들이 여러번 그녀한테 갔다오더니 얼굴이 웃음꽃이 피였다. 평상시 행동이 금뜨다는 말을 듣던 아들이 이번에는 속도를 가했다. 만난지 몇번이라고 그녀를 척 데리고 왔다. 그녀는 집안에 들어서자 곱게 인사를 드리였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평생 어머니란 말을 들어볼것 같지않던 유씨가 어머니란 말을 듣고 너무도 반가워 그녀의 손을 덥석잡고 와주어 감사하다고했다. 그리고는 어서앉으라고 권했다. 유씨는 앉아있는 그녀를 찬찬히 보았다. 마춤한키에 해맑은얼굴, 오똑한 코마루, 새물새물웃는 눈은 정기가 돌았다. 남자들의 환심을 살만한 그런 얼굴이였다. 이래서 아들놈이 홀딱 반하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유씨는 살그머니 눈을 떳다감는 그녀의 눈길에서 뭔가 이상한 감촉을 느끼였다. 어디에서 많이 보아온 눈길이였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재빠르게 기억의 터프를 돌려보아도 인츰 떠오르지않았다.       “집은 화룡에 있소.”       “네”       “누구와 같이 있소?”       “시부모님과 같이 있다가 그분들이 외국으로 가면서 딸과 같이 있습니다.”       “화룡이 고향이오?”        “아닙니다. 저는 연길시교 춘흥촌에서 태여 났습니다. 결혼하고 화룡으로 갔습니다.”        “성이 박씨라했지?”        “네.”        “춘흥촌에 박씨가 여러호 있었는데 아버지 성함은 ?”        “저의 아버지 성함은 박현진입니다.”        “박현진! 혹 아버님은 춘흥촌에서 서기로 있지않았소?”        “네, 내가 태여나기전에 아버님이 춘흥촌에서 당지부서기로 있었다고 합데다. 어머님께서 울 아버지를 아십니까?”       “아니, 잘 알지못하오. 내가 40년전에 그곳으로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 간적이있었소 그때 박현진서기가 있었소. 아버님은 생전이오?”       “아버지는 몇해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음씨곱던 분이 일찍 돌아가셨구만.”       유씨는 박현진이 돌아가셨단 말을듣고 하마트면 앗!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세상에 이런일이? 예비며느리가 박현진이 딸이라고 하자 가슴에 널장이 떨어지며 철렁했다. 놀랐던 가슴이 다행히 박현진이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자 다소 마음이 진정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백현진이가 죽었다니 가슴이 쓸쓸해 났다.        산전수전을 겪을대로 겪은 그는 자기의 감정을 억제 할줄 앓았다. 그는 자기의 감정을 로출시키지 않으려고 예비며느리 앞에서는 태연한척 하였다. 태여한척 하자니 오히려 가슴이 갑갑해나며 당장이라도 미여질것 같았다. 그는 더 예비며느리와 말하고 싶지않았다.       그는 점심준비를 해야겠다며 화식칸으로 들어갔다. 그는 화식칸에 들오자마자 휴! 한숨을 내 쉬였다. 그랬더니 다소 긴장이 풀리는것 같았다. 유씨는 다소 긴장감이 풀리였으나 어쩐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것 같았다. 자기의 얼굴을 꼬집어보니 아팠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였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세상이 졻기로사 이렇게 졻을줄이야! 어쩜 박현진의 딸이 내며느리로 되다니? 드라마나 소설같은 일이다. 이걸 어쩌나? 박현진이 딸이라는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를 내 며느리로 받아줄가? 아니면 이혼사를 구만두어야 할가? 어떻게 하여야 할지 두서가 잡히지 않는다.       그는 채소를 썰려고 칼질을 하여도 칼질이 잘 안된다. 그는 칼을  놓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슴을 두두렸다. 생각할수록 복잡해 지기만 했다. 그냥 과거사를 모르는척 덮어놓고 박현진의 딸을 며느리로 받어주자고 하니 아무때건 박현진이와 있었던 불민스러웠던 과거사가 폭탄처럼 터질것만 같았다. 터지기만하면 그 뒷 수숩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생각해도 아찔해나며 등곬이 섬득해 난다. 에라 이혼사를 막아보자 막기만 하면 작탄속의 뢰관을 뽑아 치우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뢰관을 뽑자고 하니 아들이 뽑지못하게 할것이다. 어떻게 한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호미난방에 빠졌다.                                         3         유정금이가 열여덥살되던해 그는 하향지식청년으로 시골마을 춘흥촌으로 내려갔다.       그때 춘흥촌에는 박현진이란 30대의 젊은 당지부서기가 있었다. 본촌에서 태여난 그는 초급중학을 졸업하고 농사를 짓다가  참군하였다. 부대에서 입당하고 귀향한후 촌의 공천단 지부서기로 부터 당지부서기로되였다.       유점금이네가 춘흥촌으로 내려오던 날 촌간부들은 소수레를 가지고 뻐스역까지 와서 그들을 영접하였다. 박현진서기는 햐향지식청년들의 손을 일이리 잡아주면서 농촌생활이 간고하지만 힘을 합처 춘흥촌을 잘 건설해 보자고 했다. 어떻게 되다나니 맨 나직막에 유정금이와 박서기가 악수를 하게 되였다. 박서기는 솥 뚜껑같은 큰 손으로 보들보들한 정금이 손을 잡았다. 살짝 잡는것 같았는데 손이 부서지는듯하였다. 정금이는 처음으로 억센 남자의 손아귀맞을 보았다.       박현진서기는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였다. 그는 수시로 집체호를 방문하면서 지식청년들이 곤난이 없는가? 묻곤 하였다. 곤난이 있으면 자기능력대로 도아주었고 돕기힘든일은 상급에 제기하여 상급의 도움을 받았다. 정금이는 자상해 보이는 박서기를 보면서 남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현진 서기는 운동을 즐기였다. 그는 춘흥촌을 농사도 잘 짖고 문명하고 체육활동을 잘하는 선진촌으로 만들기위하여 공력을 들이였다. 하향지식청년들이 이촌으로 내려올때 상급에 제기하여 운동을 잘하는 애들을 골라왔다. 박현진서기 본신도 운동을 잘하였다. 그는 어릴때부터 축구를 즐기였다. 가정조건이 허락치 않아 주 체육학교로 가지못하였지만 향에서는 이름있는 ‘뽈개지”라 소문이 높았다. 매년마다 향정부에서는 9.3을 맞이 운동대회를 열었다. 축구시합에서는 언제나 춘흥촌이 일등을 하였다. 비록 농촌 운동대회였지만 구경할만했다. 전업대 축구보다 못지지않게 인기를 끌었다. 호랑이와 같이 날쌘 청년들과 우두머리 호랑이 박현진서기가 발을 맞춰 적진을 행해 돌진할때의 기세는 대단했다. 선두에서서 뽈을 몰고 돌진하는 박현진서기를 보고 모두 그를 “땅크”라고 불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정금이는 목이터지도록 응원했다.        춘흥촌의 녀자배구도 만만치 않았다. 유정금이도 배구를 잘쳤다. 학생때 학습은 쑬쑬해도 체육과목만은 잘하였다. 그는 학교의 배구대에 들어 배구훈련을 받았는데 체육선생님이 칭찬소리를 많이들었다. 춘흥촌에 내려온 후에도 아침 저녁으로 마을청년들과 같이 배구를쳤다. 향에서 조직한 운동대회 때마다 정금이는 배구를 잘치여 소문이 났다. 박서기도 여러번 정금이가 배구를 잘친다고 칭찬하였다.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 하향지식청년으로 올때의 꼬맹이들이 이제는 늠늠한 젊은이들로 되였다. 정부에서는 하향지식청년들에게 공장, 학교, 상업, 공공기관, 군대로 갈수있는 기회를 주었다. 향정부에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지식청년관리소조를 구성하여 그들의 생활과 그들이 학교 공장,  상업, 공공기관으로 가는 사업을 맡아서 도와주도록하였다. 상급에서는 여러부분에서 수요되는 인원 명액을 향정부 하향지식청년관리소조에 내려 보내면 향지식청년관리소조에서도 그 명액을 골고루 각촌에 내려 보내였다. 촌에서는 그 명액을 각 집체호에 배당하였다. 배당된 인원들도 형식상 먼저 빈하중농의 추천을 받고 촌당지부서기가 동의하면 된다고 하였지만 실제는 향정부 하향지식청년관리소조에서 주관하고있었다. 향정부 지식청년관리소조에서 내려보내는 명액에는 이미 누구 누구는 어떤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보안이 있었다.       추천을 받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다. 한사람의 일생과 관계되는 주요한 문제였다. 농촌에 내려올때는 농촌에 영원히 뿌리를 밖겠다고 맹서했던 젊은이들이 먼저 농촌을 벗어나려고 눈에 불을 켰다. 서로가 빨리 농촌을 떠나려고 은근히 골머리를 앓았다.       어떤 청년들의 부모들은 일찍손써 현정부내의 지식청년을  관리하는 부분과 향정부지식청년관리소조를 다니며 련줄을 달았다. 부모가 권력이 있는자는 별로 힘들지않고 추천을 받고 좋은곳으로 갈수 있었지만 능력없는 부모들은 아예 모르는척 하였다.       유정금이는 부모가 보통 로동자였으므로 그런 헤택을 받지못하였다. 부모의 덕을 받지못한 애들은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원망했지만 별 뾰족한수가 없었다. 부모덕을 못본 애들은 자연 토황제같은 박서기한테 눈길을 돌렸다. 낮은 처마에 머리를 숙인다고 촌 당지부서기 권력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촌에서는 누구도 당할수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민간에서는 “관리로 되자면 입당하여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입당을 하려면 반드시 박서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추천 문제를 놓고 봐도 그러했다. 당지부서기의 권력은 향지식청년관리소조와는 비길수 없지만 추천 명액이 촌으로 내려온 다음에는 서기의 손에서 달려있었다. 지식청년들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다 박서기한테 잘보이려 했다. 박서기도 사람이니깐 그도 자기 눈에 잘 보이는 애와 부모가 권력이 큰 애들을 중시하였다.       정금이도 추천을 받는문제를 고려하지 않는것은 아니였다. 내색을 내지않어서 그렇지 속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그는 고심히 생각해 보았다. 권력이 없고 능력이 없는 부모를 탓할것이 못되지만 자기 자신도 따지고 보면 무얼 특별히 내놓을만한것이 없다고 여기였다. 내세울것이 없다고 생각 했지만 그래도 튼튼한 신체가 있어 다행이였다. 하여 그는 부지련히 일하고 자습하면서 기회를 기다릴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사원들은  부지련히 일하고 회의에 잘 참가하는 그를 좋아했다. 차츰차츰 사원들의 위신을 얻어 농촌으로 내려온지 3년만에 생산대 부녀대장으로 되였다 그는 알심차게 노력하여5년만에는 입당하고 부녀회주임으로 되였다. 그가 여기까지 온데는 주관 노력도 있지만 박현진서기의 도움을 떠날수없었다. 박현진서기는 그에게 입당동기를 명확히하며 입당지원서를 잘쓰라고 했다. 그가 입당할때  박현진서기는 그이 입당소개인으로 되기까지 하였다. 정금이는 박서기의 처사가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로동자 모집 추천명액이 내려올때마다 정금의 이름을 번번히 빠젔다.        어느날이였다. 정금는 길가에서 박서기가 안해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는것이 보았다. 급히 가는것을 보아 병이 위중한것 같았다. 정금이는 그장면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그는 인츰 병원으로 달려 갔다. 의사는 진찰하여보고 박서기의 안해는 심장병이 엄중한데 병원에 입원하여 병치료를 받으라 했다. 서기의 부인이 입원하자 정금이는 자주 병문안을 갔다. 호주머니를 털어 병원비에 보태쓰라고 돈도 내놓았다. 물론 박서기는 거절하였다. 하지만 자기의 성이라고 하자 할수없이 받아주었다. 박서기는 그의 소행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       어느날 박서기와 같의 향에서 소집한 회이를갔다. 회의가 끝나 돌아오는 길에서 박서기는 이런 말을 했다.       “정금이는 학교로 가고싶지않소?”       “왜 가고싶지않겠어요.”       “나도 정금이 심정을 모르는것이 아니오 정금이와 같은 인재들은 대학으로 가야 마땅하다고 보오. 정금이를 로동자 모집이 왔을때 우선적으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아까운 인재를 로동자로 되게 하느것이 아쉬워서 로동자 명액을 정금에게 주지않았소.”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정금이 힘을내오 꼭 좋은날이 올것이오.”       정금이는 박서기가 한 그말을 진심으로 믿고 대학으로 갈수있는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렸다. 어느날 친구한테서  동북사범대학에서 학생을 모집하는데 학생명액이 향에 둘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그 두 명액중에서 한 명액이 춘흥촌에 내려왔다는 것이였다. 정금이는 그 명액이 틀림없이 박서기한테 들어갔다고 판단하였다. 정금이는 추천명액이 박서기한테 들어갔으니 영락없이 자기에게 주리라 믿었다. 박서기는 정말로 말하면 말한대로 하는 사람이였다.  정금이가 그 소식을 들은지 얼마 안되여 박현진서기는 정금이를 불러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좋은소식이 왔다고 말했다.        “정금이 정금이만 아오. 어제 향정부 지식청년관리소조에서 통지가 왔됐소. 동북사범대학 학생모집 명액이 향으로 왔는데 우리촌에 추천명액 하나를 주었소. 그것도 체육학부라오. 그러니 정금에게 딱 어울리는 학부오.”        “어마나! ”        “너무 놀라지마오. 아직은 결정된것도 아니니깐, 내 생각엔 정금이를 내놓고 누가 되겠소. 내가 꼭 되도록 노력할게.”  정금이는 박서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듣고 단방이라도 된것처럼 너무 좋아 퐁퐁 뛰였다.        그날저녁 박서기는 지부위원회를 소집하여 정금이가 동북사범대학으로 갈수있는 추천 결의안을 무사히 통과시키였다. 며칠후 박서기는 정금이를 만났다.       “정금이 축하오. 오늘 향에서 정금이를 동북사범대학으로 추천하는데 동의 한다는 소식이 왔소. 정금이는 꼭 대학으로 갈것이오.”       “감사해요 서기님.”       “나에게 감사할게 뭐 있소 다 정금이가 노력한덕분이지.”       “내노력이 아무리 있다고 해도 서기가 추천하지 않으면 어떻게돼요.”       “하긴 그렇기도하지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주관노력이 없고서 어떻게 되겠소.  모두 정금이 노력한 덕분이오.”        “박서기의 은공을 어떻게 보답할가요?”        “은공은 무슨 은공 내가 할일을 했을뿐인데 뭘.”        한달 이지나자 정금이한테 동북사범대학 입학통지서가 왔다. 그날 어슬녁에 정금이는 너무 감동되여 자신을 억제하지못하고 박서기를 찾아갔다. 마침 향으로 회의를 갔다가 돌아오던 박서기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정면에서서 마주보며 다가 갔다. 정금이는 반짝이는 눈길로 박서기를 처다보았다. 박현진씨도 번쩍이는 눈길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정금이 왼일이오?”       “저를 대학으로 가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박서기의 은공을 어떻게 보답할가요?”       “은공은 무슨 은공 내가 할일을 했을뿐인데 뭘.”       “박서기를 오빠라고 부러도 될가요?”       “될수있지.”       그말이 떨어지자 정금이는 와락 박현진의 목을 끌어 않으며 “오빠”라 불렀다. 너무도 급작스런 일이라 현진이는 멍하니서서 정금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현진이도 남자인지라 다른것을 생각하지않고 정금이를 끓어 않았다. 그러면서 정답게 정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살그머니 거칠은 입술을 달이오른 야들야들한 정금의 입술에 갇다됐다. 정금이는 처음으로 남자의 애무와 키스를 받고보니 피가 솟구치면서 말로서 표현못할 이상야릇한 강한전류를 느끼였다. 그들은 감정을 억제 못하고 풀숲으로 들어갔다.       낯말은 새가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안될놈은 뒤로 번저저도 코가 깨진다. 그들이 그장면을 집적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정금이를 짝사랑했던 한 남자가 그장면을 목격하고 즉시 공안기관에 제보하였다. 제보를 받은 공안 기관에서는 조사를 하였다. 정금이가 그런 일이없다고 하여도 제보자의 증거가 똑똑하여 박현진이는 사실앞에서 승인 할수밖에 없었다. 그 한번 실수로 두사람은 다년래 쌓아온 성적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법정에서는 박현진이를 지식청년을 강강하였다는 죄명으로 유기도형 5년으로 판결하였다. 현진의 처는 화병으로 저세상을 갔다. 정금이는 그번 사건으로 인하여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 그렇게 존경하고 흠모했던 한 남자를 자기로 인하여 패가망신하게 하였으며 그남자의 일생을 망치게 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듯하였다. 자신은 그래도 “피해자”였고 지식청년이란 신분이여서  대학을 갈수 있어 다행이였다. 하지만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 그는 힘들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돈화시의 공상부분에 배치를 받았다. 좋은 직업을 얻었지만 그의 혼인사는 어수선 하기만했다.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번마다 박현진씨와이 불민스러운 일이 말밥에올라 퇴자를 맞군하였다. 할수없이 그는 자기보다 10년 년상인 현 축산국의 홀애비 수의사한테 시집갔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인정머리 없는것 같아도 정금의가 아들딸을 낳아주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남편은 과중한 사람이였다. 정금의이 가슴아팠던 과거사는 절때 입밖에 내지않았다.        정금이는 썩 후에 박현진이가 만기석방되였다는것과 후처를 얻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였다. 그는 악몽같았던  그때일을 가슴속에 묻고 세월과 함께 삭이고 있었다.                                   4        유씨는 박현진이와 자기 사이에 저질러 놓았던 불민스러운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듯하였다. 하여 그는 견결히 이 혼사를 반대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 혼사를 막을 리유도 힘도 없었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이 이 안타까운 사실을 어느 누구한테도 말할수 없고 자식들께도 말할수없다. 오로지 자기 혼자서만 꿍꿍 앓기만 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였다. 몇일 앓고나니 해법을 찾았다. 옛날에 있었던 그번사건의 당사자인 박현진이가 이미 죽었고 그의 딸은 딸이 태여나기전 일이라 그번 사건을 잘 모르고 있으며 정금이 아들도 모르고 있지 않는가? 나만 알고있으니 모르는척하고 지나면 다라고 생각했다. 이쯤 생각하니 머리가 맑아지는감이 들었다.       그는 아들을 보고 이 혼사를 동이 한다고 말했다. 아들은 너무좋아 입이 귀에 붙을 지경이였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꼭 정애씨와 잘 살겠습니다. 보십시오 앞으로 정애씨는 어미니 맘에드는 좋은 며느리로 될것입니다.”        “내 근심은 말고 너희들이나 잘 살아라.”        이렇게 되자 유씨는 한시름 놓았다. 그는 서둘러 아들의 혼사를 치렸다. 유씨는 련애는 짧게 결혼식은 빠르게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옆집의 리씨네 아들은 약혼하여놓고 몇년을 끌더니 결국은 파혼하고 말았다. 옆집의 일을 빤히 알고 있는 유씨는 약혼하였으면 빨리 결혼식을 치르는것이 옳다고 여기였다.        며느리는 애달린 녀자이지만 아들은 총각이므로 제대로 결혼식을 하였다.       옛적부터 쌍희사란 말이 있다. 운이좋을때에는 좋운 일이 겹처온다고 한다. 김씨네 집에 경사가 났다. 장가가기 어렵던 아들이 결혼하였고 결혼식을 올려 다섯달이 되자 며느리 배가 불룩해진 것이다 며느리 불룩한 배를 보자 유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뜬금없이 별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지 몇달이라고 며느리 배가 저렇게 클가? 대충 날자를 꼽아 보아도 맞지를 않는다. 그는 며느리한테 임신한지 몇개월이 되는가? 슬쩍 물었다. 며느리는 일곱달이 되였다고 했다. 이게 왼일이야!? 결혼하지 다섯달밖에 안되는데 일곱달이라니?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맞지않는다.        의심이 병이라더니 의심할수록 점점 더 의혹이 커갔다. 그는 이상한 눈길로 며느리를 훝어보았다. 맑쑥한 살결과 잔잔한 호수같은 그윽한 눈은 남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다. 혹 며느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배고 바빠서 결혼을 서두루지 않았냐? 의심이 들었다.       다른측면으로 보니 선이 곧고 도고해 보이는 코마루는 그런 추잡한 일을 저질을 녀인이 아님을 암시하기도 했다.       옛날 시아버님은 소사를 대사로 만들지말고 대사를 소사로 만들라고 여러번 당부하시였다. 이일도 그러했다. 며느리를 의심하면 할수록 일은 점점 복잡해진다. 입이 관청이란 말이 있다. 만약 며느리에게 그런일이 있다고 쳐도 자기만 알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만사대길이다. 괜히 없는 일을 있는것처럼 의심하는 자신이 가소롭게 생각되였다.       유씨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기년대의 사람들은 보통 결혼식을 올려야 살석임을 했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결혼전에 먼저 그것부터 실험하는것 같았다. 내 아들도 그랬을가응성이 풍부? 했다. 그렇다하여도 아들한테 물어볼수 없는 일이라 묻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몇달이 지나자 며느리는 해산 하였다. 왕뚜꺼비같은 손자놈을 낳았다. 유씨는 세상복을 다 않은 기분이였다. 남편이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장가 보냈고 대를 이을 손자를 보았으니 세상 복을 저 혼자만 가진것 같았다.                                           5         유씨는 부랴부랴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부유병원으로 달려갔다. 며느리에게 빨리 음식이 식기전에 먹으라고 권했다. 맞나게 음식을 먹는 며느리가 볼수록 귀엽게 보이였다. 어디서 저런 복이 굴러왔냐? 생각할수록 흐뭇해났다.      유씨는 며느리곁에 서있는 아들을 보고 물었다.       “애 이름을 지었느냐?”        “성명사한테가 이름을 다섯개를 지어왔는데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온다음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생전에 손자가 있으면 재덕(財德)이라고 짓겠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어쩜 내 생각과 같습니까? 나도 다섯개 이름중에서 재덕이란 이름이 제일 맘에 들었습니다.”        “그럼 잘됐다. 오늘부터 요놈을 재덕이라 부른다.”        며느리가 음식을 자시는 사이 유씨는 손자를 보았다. 아무리 뜯어 보아도 제 아비 어릴때 모습이 심통하다. 웃음을 담고 손자녀석을 보는데 손자녀석이 오줌을 쌌는지 꿈틀거리였다.       “요놈이 오줌을 쐈나봐, 우리 재덕이 고추를 볼까?” 하면서 유씨는 손자의 귀저기를 바꾸어주었다. 오줌에 젖은 귀저기를 갈아주고 새귀저기를 바꾸어주려고  고추밑을 닦아주던 유씨가 새된소리를 질렀다.       “애비야 여길봐라 재덕이 고추밑에 뭔가 있다.”      재덕이 애비도 어머니가 가리키는곳을 보았다.      “어머니도 참, 별게라구, 붉은기미가 있구만.”      “별게 아니라니? 이상하지 않니 네게도 있고 재덕이게도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게 어디있다고 그러십니까?”      “아니다. 그럴수없다 네게 꼭 있었네라.”       며느리가 있는지라 시어머니는 뒷말을 하지않았다. 유씨가 말한데는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재덕이 아비 성국이가 태여나서 몇일이 안되는 어느날이였다. 유씨가 잠간 눈을 부치였는데 남편이왔다. 성국이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눈을 감고 있던 유씨는 아들이 소리에 눈을 떴다. 아이가 우는데도 남편은 웃으며 아이만 바라볼뿐이였다.       “여보 성국이가 오줌을 싼나봐요 귀저기를 바꾸어주세요.”       남편은 자상한 편이였다. 살살 애 옷을 벗기고 귀저귀를 바꾸어 주려고 하였다. 옷을 벗기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기지개를 페는것이였다. 남편은 살짝 애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그리고는 귀저기를 바꾸어 주려고 하다가 왼일인지 귀저귀를 바꾸던것을 뭠추고는 작은 고추밑을 유심히 살펴보는것이였다. 유씨가 눈을 뜨고 보니 남편은 히적 웃는것이였다.       “여보 당신 귀저기를 바꾸어주지않고 뭘하고 있어요?”       “허허허 그럼 그렇겠지. 여보 여길보오. 뭐가 있소.”      유씨가 남편이 가리키는곳을 보니 별것이 아니였다. 쪼꼬만 자지밑에 작은 붉은기미가 있었다.       “별거 아니구만 작은 기미가 있구만.”       “별것이 아니라니 이것이 곧 우리김씨가문의 대대로 내려온 훈적이오. 이 기미를 보는것이 우리가문이 내려오면서 지켜온 전통이오.”       “그럼 당신한테도 있단 말이오?”       “있구말구 당신 여짓것 멀했소. 남편한테 그것이 있는줄도 몰으고? 지금 내것을 보겠소.”       남편이 정말 바지를 벗으려고 했다.       “망칙해라 누가 그까지꺼 볼라구 저리피켜요.”      유씨는 수십년 남편과 한 이불을 덥고 살면서도 남편한테 그 붉은기미가 있다는것을 모르고 지나다가 그날 처음으로 보았다..       유씨는 그때일을 생각하고 나서 피식웃었다.       손자의 그 붉은기미를 보고나니 그사이 며느리를 의심했던일이 봄날의 눈처럼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이였다. 
3    첫사랑 댓글:  조회:2198  추천:0  2015-01-07
     며 칠 전에 사촌형님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와 백산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니 꼭 와 달라는 것이였다.     누구의 결혼식일가? 조카들은 이미 다 결혼을 했는데...            의아해하는 나에게 형님이 허허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소, 달리 생각 말고 와주오. 와서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요.”            그야말로 무슨 영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례식장에 들어서니 식상에는 “ 허만철 정연자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합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정연자라니? 누구일가?           형님은 곱게 늙은 한 안로인과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얼굴에 만족의 웃음이 어려있었다. 안로인도 가끔 사촌형님을 훔쳐 보군 했는데 그 눈길에는 사촌령님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칠십을 넘긴 사촌형님의 결혼식은 그렇게 사실로 생생하게 내 앞에서 연출 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칠십을 넘긴 로인네가 그처럼 당당하게 결혼식장에 들어 설수 있다 는 게 그저 신기 할 뿐이였다.          결혼식이 시작되였다.         사회자도 로인님들의 결혼식사회는 처음이라면서 참으로 뜻깊은 자리라고 감탄을 련발했다. 사회자는 어떻게되여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였는가를 말씀해보라며 형님에게 미이크를 돌렸다. 형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흠-”하고 건 가래를 떼며 입을 열었다.         “ 사실 이 사람은 나의 첫사랑입니다. 우리는 51년 만에 다시 만나 부부로 되였습니다.”         형님의 말을 들으며 하객들은 모두 “아! 아!”하고 감탄을 했다.         평소 제 살기가 바쁘다 보니 자주 련락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릴 때 한 마을에 살았던 사촌형님에게 이런 잊지 못할 첫 사랑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였다.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새 형수의 얼굴은 종시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사촌형님의 혼인도 행복했다고는 할수없었다.  원래 형수는 우리와 한 마을에서 살던 이웃 이였다. 결혼 전 형수님은 마을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사촌형님은 할빈공업대학을 다녔였다. 두집 부모들의 사돈을 맺자고 결정하여 사촌형님은 어쩔 수없이 형수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던 것 이였다.         결혼은 했지만 사촌형님은 형수를 그렇게 달가 와 하지 않는 눈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촌형님은 할빈의 한 과학연구소에 배치를 받았다. 형수는 사촌형님을 따라 할빈으로 전근하려 했지만 전근수속이 되지 않았다. 젊은 부부가 갈라져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다. 형수가 전근하지 못하게 되자 사촌형님은 연변으로 나오게 되였다. 대도시의 큰 단위에 있다가 작은 도시의 건축 설계원에서 사업하게 된 사촌형님은 늘 그 불만을 형수에게 쏟는것 같았다. 이렇게 사촌형님은 형수와 35년을 힘들게 살다가 형수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그 혼인을 결속 지었던 것이다.         형수가 세상을 뜬후 사촌형님은 홀로 적적하게 보냈다. 퇴직금도 높고 인품도 좋은 사촌형님에게 안로인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사촌형님은 번마다 도머리를저었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해도 사촌형님은 여전히 혼자 사는게 편하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결혼식이 있었던 그날 밤 나는 새 형수에게 정식으로 인사도 드릴 겸 사촌 형님네 집을 찾았다. 술잔을 나누며 나는 새 형수에 대해 다시 물었다. 사촌형님은 나를 바라보며 정말 새 형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가고 물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떠오르는 얼굴이 아니였다.         그러자 사촌형님이 감개무량한 얼굴을 하고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 동생은 50년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 이사를 왔던 “연길선생”이 기억나나?”             형님의 물음에 나는 깊은 추억을 더듬었다. 기억의 운무를 타고 고향마을 제일 아래 끝 초가집에 살던 하얀 머리칼의 년세 많은 선생님이 떠올랐다.         어릴 때지만 나는 선생님이 우리 곁을 지날때마다 “연길에서 오신 선생님이구나!”하고 생각하며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연길선생”에게 예뿐 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새 형수가 된 사람이요”        사촌형님은 두 눈을 쪼프리고 벙글벙글 웃으면서 새 형수를 가리켰다. 그러자 새 형수는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실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세월이 무섭다더니...그때 나는 오라버니를 “눈망울이 큰 애”라고 불렀됐는데.”          “ 허 허 허 . 지금도 눈망울이야 크지.” 새 형수의 말에 사촌형님이 허허허 웃으며 동을 달았다.             “아!”         그제야 나는 늘 얼굴에 방실방실 웃음을 달고 다니던 하냔 얼굴을 떠올랐다. 옳았다. 새 형수가 된 사람은 분명 연길에서 이사온 “예뿐 누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마을 누나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터실 터실 하고 불깃 불깃 했는데 연길에서 이사온 그 누나만은 얼굴이 밀가루처럼 한 얀 데서 우리또래들은 그를 “예뿐 누나”라고 불렀다.         사촌형님은 얼굴에 넘실거리던 웃음기를 거두고 잠간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아래 말을 이었다.       "정선생님은 정직하고 솔직한 분이셨소. 그때 선생님은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엄하게 요구 했더랬소. 내가 리해하기 힘들어하는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은 나를 집에 불러다가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 더랬소. 그때마다 지금 자네의 새 형수가 된 정선생의 딸 연자가 내 곁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았더랬소. 나는 웬지 공부에는 마음이 가지 않고 연자에게만 눈길이 가더구만… 이듬해 내가 대학에 붙었더랬지. 대학교에 가서 많은 녀학생들을 만났지만 여전히 고향에 있는 연자의 예뿐얼굴이 내 머리속에 사라질줄 몰랐다오.         첫 방학이 되여 내가 집에 돌아와 선생님을 뵈려 가니 연자가 문을 열어주더군. 나는 가슴이 막 뛰구 얼굴이 붉어져 어쩔바를 몰랐다오. 나의 표정이 변하는것을 읽었던지 연자도 얼굴을 붉히며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는것이였소.          그날, 내가 선생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오는데 연자가 살며시 나를 따라나오더니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가고 묻더구만, 우리는 잠간 걸으면서 대학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소. 나는 학교에 가서도 재미나는 일이 있으면 편지로 알려주겠다고 연자와 약속했다오.         우리는 이렇게 편지거래를 시작했소.         나는 방학이 못 견디게 기다려 졌다오. 다음 방학에 집에 돌아온 나는 남몰래 연자와 만나서 강뚝을 걸으면서 리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미래의 꿈에 대하여 속삭였다오.          연자는 자기도 꼭 대학에 붙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오. 하지만 무정한 세월은 연자의 고운 꿈에 서리를 내렸다오. 당시 불어치던 “반우파투쟁”은 내가 그처럼 존경하던 정선생님을 파멸에로 몰아갔던거오. 정선생이 길 닦기 공사장으로 끌려가 로동 개조를 시작한 후 조직에서는 가족들에게 “우파분자”와 계선을 나누라고 압력을 가했다오.         당시 우리 아버지가 공작대로 학교에 파견 되였는데 정선생을 투쟁하는 운동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소.        후에 아버지가 좋은 혼처가 나졌으니 나더러 결혼하라고 했소. 하여 나는 아버지에게 연자와의 사이를 털어 놓았더랬소. 그러자 아버지는 펄쩍 뛰면서 우파분자의 딸은 절대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고 했소.          나는 결국 아버지의 압력에 손을 들고 말았소.         정선생님은 로동 개조가 끝나자 가족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사를 갔었소. 나는 이렇게 첫사랑을 잃고 아버지가 정해주는 마음도 없는 녀자와 결혼을 하게 된것이요.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첫사랑 연자를 잊을수 없었다오. 하여 은근히 연자의 소식을 알아보았는데 연자가 심양교외의 한 소학교에서 교원사업을 한다는 것이 였소.         애 에미가 세상 뜬후 나는 연자가 사업했다는 그 학교에 편지를 띄웠됐소. 하지만 강물에 돌 던진 격이였소. 그러던 지난 여름 어느날, 뜻밖의 전화가 왔는데 자신이 정연자라는것이였소.          연자도 평생 가슴속에 나를 잊지못하고 살았다고 했소. 몇 년 전에 나의 편지를 받았지만 몇 십년을 함께 해온 남편에게 미안해서 회답을 못했던거라 하더군. 그러다가 남편이 병으로 돌아가자 많은 고심끝에 결심을 내리고 나를 찾게 된 거라오."         사촌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한 부의 감동적인 사랑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이였다.         아, 첫사랑이란 과연 무었일가? 무었이기에 수 십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고 다시 피여 날수 있을가?         나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내 가슴 어딘 가에도 수 십 년간 고이 간직되여 온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작은 꽃이 숨어있지 않을가 살펴보았다.        그랬다.        첫사랑은 누구의 가슴에나 숨어있는 그런 평범한 꽃이 아니였다.
2    황혼의 로맨스 댓글:  조회:2188  추천:1  2014-12-19
황혼의 로맨스             그날 처음으로 콩나물을 사려고 서시장으로 갔다.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장사군들은 자기것을 사라고 야단법석이였다.  돈의 유혹에 장사군들의 얼굴은 장마철 날씨처럼 변덕이 많다. 자기 앞으로 오는 손님에게는 해맑은 웃음을 짓다가도 일단 손님이 자기 물건을 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사면 대번에 얼굴이 흐려 지며 입을 삐쭉 거린다.      나는 콩나물을 훝어 보다가 몸집이 실팍 한 장사군 녀인앞에 멈췄다.      “ 한근만 주십시오”      멀리서부터 나를 눈 박아 보던 그 장사군 녀인은 인상 좋게 웃으면서 잽싼 솜씨로 콩나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저울에 달아보고는 나에게 넘겨 주었다. 내가 돈을 치르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  아저씨, 혹시 영란 오빠가 아니세요?”     “  그런데.”      언결에 대답하면서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허지만 누구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내 녀동생 영란이 이름을 부르는걸  봐선 나를 잘 아는 사람 같은데? 누구일가? 이 시장에는 아는 사람은 없는데?        나는 어정쩡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영란이 친구 봉숙 이예요, 한 마을에서 살던 봉숙이를...”       뭐! 봉숙이?    정말 이녀인이 봉숙이란 말인가? 나는 두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뜯어보았다. 옳았다. 세월과 더불어 많이 변하긴 하였지만 처녀때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처녀때 그토록 내가슴을 들먹이게 했던 그녀, 허지만 결국 사랑의 호수에 파문만 일으켜놓고 훌쩍 떠나가버지 않았던가?       어젠가 꼭 만나리라고 믿어왔다. 헌데 그만남이 이렇듯 우연히 이루어질줄이야? 처녀때 버들가지처럼 날씬하고 예쁘던 그녀가 얼굴이 부석부석하고 몸집이 실팍한 아낙네가 되여 내앞에 나타났다. 눈에는 피발까지 선걸 보아 어쩐지 고달픈 인생을 사는것 같았다.      “봉숙이 옳구만. 하마트면 앓아 못 번 했소, 봉숙이를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저도 오빠를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이게 몇해만이요? 한 30년 넘었지?”       “그렇게 됐을거예요, 오빠는 그냥 룡정에 살아요.”     “아니, 연길로 이사 온지 꽤 오래되오”     “우리도 연길로 온지 5년이 돼요. 헌데 한시내에 있으면서 왜 보지 못하였을까? 집은 어디에 있어요.?”     “북대에 있소.”     “오빠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아직도 젊었을 때 그대로얘요”     “괜한 소리를 마오. 나도 인젠 늙었소. 헌데 봉숙이가 콩나물 장사를 하다니?”    “왜요? 내가 콩나물장사를 하면 안되나요?”    “좋은 남편을 만나 좋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멋 있게 사는줄로 알았는데?”    “쓴 소리 말아요, 일에 귀천이 어디 있어요, 돈만 벌면 되는 세월에.”    “하기야 그렇지, 허허허.”     더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후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나는 시장에서 나와 곧추 집으로 향하였다. 아직도 옛 모습대로 아름답고 싱싱하리라 믿어왔는데 변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그야말로 세월이 무정 고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 갔다.다. 꽃 망울 졌던 20대의 나이가 50살을 넘으니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리 있겠는가? 특히 녀자들은 살면서 열두번 변한다는데 항상 처녀시절의 그녀만 기억하고있는 내가 어처구니없는 거지.내 기억속의 그녀는 한송이”장미꽃”였다.      30년 전 마을에는 끌끌 한 남녀 청년이 20여명의 있었다. 산수가 좋아 그런지 총각들은 대나무처럼 훤칠하고 처녀들은 꽃처럼 아름다왔다. 허지만 처녀들중에서도 “장미꽃”이라 불리 운 김봉숙이가 제일 예뻤다. 술고래로 소문 높은 김세흥 령감이 입만 열면 아들타령을 하였지만 마누라는 낳으라는 아들은 낳지 않고 딸만 줄줄이 일곱을 낳았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칠선녀 집이라 하였다.      막내로 태여난봉숙이는 “칠선녀”중에서고 단연 돋보였다. 호리로리한 몸매, 새하얀살결, 호수같이 그윽한눈...한번 본 사람은 꼭 다시 뒤돌아보개 되는 미모의처녀였다. 허지만 봉숙이는 몸이 허약하여 늘 앓았다. 봉숙의 부모들은 그녀의 장래에 대해 근심이 태산같았다. 큰딸을 제외하고는 모두 땅을 뚜지는 농민한테 시집을 가서 고생하는걸 보면서 봉숙이의 부모들은 그녀를 꼭 월급쟁이한테 시집 보내려고 하였다. 찬찬히 보면 봉숙이 얼굴에서 제일 매력적인 것이 오른쪽 눈이 조금 더 큰 것이 였다. 보조개를 파며 살짝 웃을 때에는 그윽한 눈은 잔물결이 이는 호수 같았다.  총각들의 봉숙이를 보면 싱숭생숭하여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동네 총각들은 그와 은근히 가까이 보내려 했다. 이웃 마을 총각들도 그녀에게 련애 편지를 보내왔다. 총각들의 힌틀을 받으면서도 봉숙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부답 태도를 표시를 하지 않았다. 원숭이처럼 약아빠진 영식이가 몇번이나 그녀에게 추근대다가 된욕만 먹고는 닭 쫓던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되였다. 앙앙불락한 영식이는 뒤에서 봉숙이를 가시가 돋친 “장미꽃”이라 히면서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리하여 봉숙에게는 “장미꽃”이란별호가 뒤 따르게 되였다. 아련해 보이면서도 도고한 그녀는 대체 어떤 대상자를 구하려고 그러는지? 어떤 녀석이 따 갈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고운 꽃도 꺾어야 내 것으로 된다. 마을의 여느 총각들처럼 나도 봉숙에게 눈독을 들였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은근히 그 “장미꽃”을 꺾을 적임자라고 스스로 여겨 왔다. 인물체격이 좋은데다 마을에서 “수재”라 불리 울 정도로 글을 잘 쓰니 허물 할 것이 없다고 여기였다. 단지 허물이라면 집의 가난 한 것 이였다. 가난은 둘이 손을 맞추어 잘 벌면 될 것이니 별 것이 아니라 여기 였다.  여러 차례 봉숙에게 내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쓸까? 하다가도 한 마을에서 살면서 편지는 무슨 놈의 편지 말로 집적 하면 될 것을 가지고 그랬다고 여기였다. 녀 동생을 통하여 봉숙에게 내 뜻을 전달할까? 그것도 비겁한 행동이였다. 아예 사내답게  집적 당사자에게 말 하는 것이 바람 직 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말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현 에서 조직한 농촌 문에 콩클에 참가하기 위하여 촌에서는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문예선전대를 꾸렸다. 인물 체격이 좋은 나와 봉숙이는 선전대에 들었다. 우연이라 할까 선전대 대장은 우리 둘에게 쌍무를 추라고 하였다.  우리둘이 한쌍이되여 빙글빙글 돌면서 부지련히 무용련습을 하였다. 다른청년들이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마냥 좋아서 싱글벙글하였다 봉숙이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춤을 추노라니 해맑게 웃는 그녀가 정말로 한송이 꽃으로 보였다.     그녀는 평시에는 나를 영란 오빠라 부르다가도 같이 걸을 때에는 영란이란 말을 쏙 빼고 오빠라고 불렀다. 그런 때에는 정말로 봉숙이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군 하였다. 가끔 무용련습을 끝마치고 달빛을 즈려밞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면 더욱 가슴이 쿵쿵 뛰고 이름할수없는 욕망이 불끈불끈 솟구쳤다. 정말이지 그녀를 꽉 붙잡고 “너를 좋아한다”고 실토정을 하고 싶었으나 평시에는 다른 말은 술술 잘하다가 왼 일인지 그 말을 하자니 혀끝에 추돌을 달아 맨 것처럼 입안에서 뱅뱅돌면서 나오지 않았다.      그날도 무용련습이 끝나자 나는 봉숙이를 보고 같이 걷자고 청들었다. 봉숙이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청춘남녀가 달 밝은 밤길을 남녀가 어깨나란히 조용한 걷노라니  디숭 생숭 해 났다. 가까이 걸으니 봉숙의 몸에서 향기로운 내음이 흘러나와 내 코를 자극하여 와락 끌어않고싶은 충동까지 생겼다. 나는 달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봉숙이 저 달을 보오, 저 달 속에 누가 있을가?”     “계수나무와 상아 선녀가 있겠지요 ”    “옳소. 그런데 저 달 속이 상아아씨가 인간 세상에 내려 왔 구 만.”    “피 – 거짓말? “    “거짓말이 아니오, 지금 내 앞에 서있지 않소?”      “호 호 호 그럼 내가 상아란 말 이예요? 어찌 나를 상아에 비길 수 있어요.”  봉숙이는 깔깔 웃으며 손으로 살짝 얼굴을 가리였다. 그 동작이 여간만 귀엽지 않았다.     “왜 상아에 못 비긴단 말이오. 내 눈에는 상아도 봉숙이를 보고 울고 갈 텐데?”    “아이 참, 민망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겠어요. 제가 상아라 하면 오빠는 뭐얘요?”    “나야 상아를 기다리는 나무꾼이지.”      “나무꾼과 상아아가씨?” 그녀는 방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봉숙이, 우리 사귀지 않겠소? 난 오래전부터 봉숙이를 좋아했소.”    “그... 그건 ...”    “망설이지 말고 속시원이 말해보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봉숙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도 오빠를 좋아해요. 그러나 오빠의 마음을 받을수 없어요.”     “왜?”     “오빠의 마음을 받으면 평생 땅을 뚜지며 살아야 하겠으니 나는 그렇게는 살지 못 하겠어요, 그리고 전 맏며느리 감이 아니얘요. 용서하세요.”     봉숙이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울었다.     “평생을 땅 뚜 지기 싫어서? 맏며느리가 되기 싫어서?”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순순히 내 청혼을 받아주리라 믿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 나올줄이야. 청천벽력이였다. 나는 떡메에 정수리를 얻어 맞은듯 눈앞이 아찔해났다. 김 빠진 공이 되여버린 나는 맥 없이 그녀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싫다는 그녀를 강요하고싶지 않았다. 봉숙이의 마음도 모르고 나름대로 제 좋은 생각만 한 자신이 가소롭게 느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봉숙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녀와 나를 저울질해보니 둘이 인물체격은 꽤 어울리고 독서와 예술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있었지만 몸이 튼튼하지 않은 그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것 같지 않았다. 그녀더러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라고 하는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였다. 게다가 내가 형제 중에서 장남 이여서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데 병약한 그녀가 이런 시련을 이겨낼수 있겠는가? 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쉽개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리해 한다고 하면서도 고운 꽃을 꺾으려는 사나이 욕망은 포기 할 것 같지 않았다. 기어이“장미꽃”을 꺾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내가 고통에 모대기고있을 때 봉숙이가 얄밉게 약혼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야속했다. 어찌 내 가슴속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대못까지 박는단 말인가?    “두고보라지, 꼭 너보다 더 좋은 녀자를 얻어 너히 코대를 꺽어 놓을것이야.”     나는 오기가 생겨 서둘러 장가 갔다. 인물은 봉숙이보다 못하였지만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체격이 좋은 처녀를 안해로 맞았다.     얼마후 봉숙도 시집 갔다. 동네 총각도 아니고 이웃 마을 총각도 아닌 외지 총각한테 시집을 갔다. 신랑은 현성의 제지공장에 출근하는 월급쟁이였다. 허지만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못생겨 봉숙에게 비하면 너무 짝이 기울렀다. 마치 닭과 봉황 같았다. 시집가는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면서 소리없이 가슴을 쥐여 뜯었다.    허지만 봉숙이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 였다. 당시의 사회 현상을 보면 성향 차별이 심하였다.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이 아주 심해 얼굴이 반반한 농촌처녀들은 너나없이 도시총각과 결혼하지 못해 매삼거렸다. 오죽하면 농촌처녀들속에서 “5원짜리 월급쟁이한테도 시집 가겠다”는 말이 나돌았겠는가? 성향 차별로 하여 농촌 처녀들은 가난을 밥 먹듯 하였고 어려움을 실물 나게 맞보았다.     농촌 처녀들은 모두 농촌을 떠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 라도 잡는 격으로 월급쟁이 한테 시집가지못해 애를썼다. 월급쟁이 한테 시집가는것이 농촌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였다. 때문에 농촌처녀들이 자기보다 못한 도시총각한테 시집가는 일은 비일비재였다. 아울러 도시 총각들도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며 농촌 처녀들을 손가락으로 튕겨가며 골라갔다. 가난을 밥 먹듯하고 농사에 신물이 난 농촌처녀들은 신랑이 아무리 자기만 못해도 시내로 시집 간다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여기였고 큰 출세로 여겼다.    나는 봉숙이 한테서 받은  큰 충격으로 농민이라는 딱지를 벋어버리려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는 연변대학 통신학부 수업을 마치고 중학교 교원으로 되였다. 그후에는 직업학교에 전근 되여 퇴직 전까지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첫 사랑이란 참으로 미묘한것이다. 결혼을 하였고 자식을 두었지만 나의 첫 사랑이 고질 병처럼 남의 사람이 된지 오랜 봉숙이를 그리는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여오르고 있었다.      콩나물을 파는 봉숙이를 보니 나한테 시집 왔더라면 콩나물 장사야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자주 봉숙이의 콩나물 매장을 찾아가 콩나물을 삿다. 봉숙이를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였다.   어느날 나는 봉숙이를 보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자고 하였다. 봉숙이는 머 뭇 거리다가 동의하였다.     콩나물은 이틀에 한번씩 륜번으로 팔았다. 하루는 팔고 하루는 키워야 하기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이름있는 “백옥”꿤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 따라 그녀는 옷차림에 신경을 쓴것 같고 얼굴 화장도 정성껏 하였다. 옷은 날개였다. 풍만하고 단아한 모습이 자못 운치가 있었다. 콩나물매대에 서서 사구려를 부르던 초라한 녀인이 아니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오빠네 식구는 콩나물을 즐겨먹나봐요?”     “왜?”      “번번이 많이 사가니 말이얘요. 식구는 몇명이얘요? ”     “한명.”     “독신?”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 졌다.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됐소, 개도 안 먹는 그 돈 때문에 집사람은 한국으로 갔고 아들놈은 미국에, 딸년은 일본으로 갔소. 우리 집은 리산 가족이오.”     “아! 이제야 알만해요, 그래서 나를 돕느라 콩나물을 자주 삿 구만. 오빠는 혼자 적적해 어떻게 살아요? 홀로 사는 남자들을 보면 어떻게 사는지?”     “이제는 단련이 되여 대수롭지 않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먹고 해 먹기 싫으면 사먹으면 되는걸 가지고 뭘, 봉숙이 남편은 잘 있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어두어졌다.     “그분은 3년 전에 돌아갔어요.”       “뭐! 이미 돌아갔다구? 난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      “그분이 명이 그만 한걸…”     “누구와 같이 있소?”     “딸이 일본으로 가다나니 혼자 살아요.”     “허허, 봉숙이도 나와 같은 처지구만. 살기 어렵지않소? ”     “매일 바삐 보내 다니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람집엔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남자라면 질색이 나요, 그렇잖아도 남편이 돌아가기전부터 얼썽거리는 남자들이 있었어요 남자들은 다 엄큼한 늑대얘요.”     “무작정 남자들을 욕하지 마오 요즘 남자들은 얼마나 힘들게 사는 줄 알기나 하오?”      “그래도 전 남자들은 싫어요”      “나라면 사귈 생각이 없소.”     “오빠라면 옛날을 봐서라도 한번 고려해 보지요. 하지만 집의 사모님은 어쩌고?”     “리혼하면 되지.”     “천벌을 받을 소리, 오빠네 부처간의 금술이 좋다면서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수십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오빠, 부탁인데 무던한 안해를 두고 딴 궁리 하지 말아요”     “허지만 봉숙이만은 례외요. ”   자 과부문전에 시비가 많다고 전 남의 말밥에 오르는게 딱 싫어요.” 만히 사귀면 되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바람새지않은 벽이 없대요. 그러니 마음을 잡으세요.”  “나도 다 사연이 있어서 그러는거요. 아무튼 강요하지 않을테니 천천히 두고보기요.”      봉숙이의 태도가 하도 단호해서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서시장에서 봉숙이를 보았을 때 깜짝 놀랐소, 시내의 월급쟁이한테 시집가 잘 보낼줄 알았는데데 콩나물 장사를 하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소. 남편과 생활은 재미 있었소. ”     “그분과 살면서 후에 없이 살았어요, 내가 선택 하였으니 후회를 안 했지요.”     그녀는 술잔을 들어 나와 건배하고는 천천히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평생 농민이 되는 것이 싫어서 오빠의 청혼도 마다하고 조건부가 크게 없이 그 총각이 성시 호적을 가진 로동자라 하여 시집갔어요. 물론 부모님들은 신랑감이 키가 작다 하여 서운해 하셨지만 별로 말리지 않았어요. 시집이라 와 보니 생각과 천양지차였어요. 시댁은 시내가 아닌 현성과 수 십리 떨어진 시골 덕수동이 였어요. 시집살림은 째지게 간난했고요. 시시콜콜 않는 시아버지와 어린 시동생들이 줄줄이 다섯이나 있었어요. 저는 숨이 꽉 말히는것 같았어요. 다행히 남편은 도시에 호적이였기에 우리는 시내에 살림집을 꾸릴수 있었어요. 우리는 공장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신혼생활을 하였어요      그의는 키는 작지만 신체 소질이 좋아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 하였대요. 입대하여 1년이 지난 어느 날 비밀리에 월남에 파견 되여 월남을 도와 미군과 싸우는 전쟁에 참전하였답니다. 월남 전쟁이 끝나고 3년간의 군 복무 기한이 끝나 제대 되였대요. 제대 된 후 고향에 남지 않고 월남 전쟁에 참전 하였다는 그 조건으로 b제지공장에 배치 받았답니다.      비록 남편은 외모가 그닥잖고 키가 작았지만 속이 여문 사람이 였어요 직장에서 일을 잘하여 매년 선진생산자로 되였구요 저도 꿈직이 사랑해 주었어요. 남편이 받는 월급으로 제 살림을 하기도 빠듯한데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와 여러 시동생들을 도와야 하니 돈잎이 말랐어요.      80년대를 잡아들면서 농촌개혁을 이어 공장도 구조조정을 했지요 잘 나가던 제지공장이 불경기의 직격탄에 맞아 파산되는 바람에 남편은 정리실업을 당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가 림시로 다니던 가두공장이 부도가 나서 월급도 못받고 나왔어요. 하여 궁여지책으로 시작 한 것이 콩나물장사였어요. 콩나물 장사에 미립이 트고 자금이 축적되자 더 크게 해보려고 인구가 많은 연길로 왔어요. 그이는 부지련히 내 뒷시중을 하였어요.  볼 바엔 콩나물 장사는 보잘것 없는 것 같지만 잘하면 수입이 짭 잘 했어요 몇 년 사이 콩 나물 장사로 아빠트도 사고 딸도 일본 류학을 보냈어요.       헌데 호사다말고 인제야 살만하니 남편의 교통사고로 돌아갈줄이야. 사람이란 참 요상한 물건이얘요. 남편이 돌아가고나니 문득 오빠생각이 나던군요. 때로는 제가 오빠한테 시집갔더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어요. 자, 인젠 제 이야기를 그만 하고 오빠가 살아온 과거지사를 말해줘요.”  나는 그녀의 지청구에 못이겨 이왕지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해 주었다. “ 내가 그토록 믿었던 봉숙이마저 나를 버리고 떠나자 오기가 생겼소. 나도 꼭 월급쟁이가 되여 보란듯이 봉숙의앞에 나서고싶었소. 나는 이를악물고 부지련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으로 연변대학 통신학부 수업을 마치고 당당하게 교원이 되였소...줄곧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얼마전에 퇴직하였소. 퇴직 후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소. 현숙한 안해를 맞아 자식 일 남 일 녀를 두었소. 행복한 가정이라고 할 만큼 잘 보냈소. 하지만 첫 사랑 이였던 봉숙 에 대한 련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소.     “ 나를 정말 못 잊고 있었어요.” “그렇고 말고 봉숙이는 나에게 어떤 존재라고.” “오빠를 배척한 저를 잊지 못했다니 감사해요 오빠가 퇴직 후 글을 쓴다고 했는데 어떤 글을 쓰세요.”     “심심풀이로 글을 쓰고 있소 지나온 인행행로를 적은 글을 쓰고 있소. 봉숙이는 청년 때 독서를 즐 기였는데 지금은 책을 보오.” “네 자주 봐요. 오빠가 쓴 글을 보이세요.” “보여주지.”   그날 그녀와 허심탄이 속사정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3     몇 일 후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헌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깔려있었다. 나는 저으기 불안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만 무슨 일이라도 있소”     “남편이 사망된후 외사촌 동생 정실이와 같이 하다가 그애가 한국으로 가자 할 수없이 단기일군을 쓰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 더 할 것 같지 않아요, 콩나물 장사는 잘만 하면 외국에 나가기 보다 못하지 않은 벌인 데 구만 두자니 아쉬워요” “내가 도와 줄 터이니 걱정마오.” “오빠가! 아니, 그건 안돼요. 선생이 어떻게 이런 천한 일을 해요.” “선생이라고 콩나물을 키우는 일을 못 한다는 법이 어디 있소? 이 팔뚝을 보오 힘이 불끈 솟고 있지 않소. 봉숙이가 동의 한다면 래일 이라도 같이 하고 싶소.”     “ 마음 만은 고맙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 왜?” “ 말하기 구차해요.” “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지말고 어서 말해보오.” “ 오빠가 정 나와 같이 일할 의향이 있다면 한가지 조건을 들어 주어야 해요”  “ 뭔데, 다 들어줄게” “ 콩나물 장사를 하려면 질 좋은 콩을 사야 하고 콩나물을 잘 키워야 해요. 콩을 사는 것은 내가 알아서 사면 되지만 콩나물을 잘 키우는 것은 사람의 정성에 따라요. 걸 핏 보기엔 키우기는 간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소홀히 관리 하면 왜 자라거나 썩기도 해요. 콩나물을 제대로 잘 키우자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물을 주고 온도 조절을 해야 하오. 그러자면 관리일군들은 륜번으로 붙어 있어야 하지요. 평생 선비로 살아온 오빠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유부남과 한 집에 있어야 하니 남들이 말 밥에 오르지 않겠어요.”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소? 쾐한 걱정은 안해도 되오” “ 무슨 뜻이얘요?” “ 난 이미 리혼했소.” “ 뭐라구요? 이미 리혼 했다구요?” “ 그렇소. 이미 우리 부부는 이미 리혼한지 오래되오. 안해가 한국으로 가면서 우리 부부는 협의 리혼을 했소.” 봉숙이는 반신 반의 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 봉숙이 나를 믿어주오. 절대 거짓말이 아니오.”  나는 봉숙이 어깨를 으스러지게 부여잡았다.     “ 좋아요, 오빠를 믿을게요.”     “ 고맙소.” “ 오빠 먼저 몇 일을 실험 삼아 해보세요.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어도 돼요.” “그만 둔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마오. 두고 보오. 내가 얼마나 잘 하는가를.”  봉숙이는 젊은이들처럼 나와 손을 마주쳤다. “ 오빠 손을 마춰 잘 해봅시다.” “ 그래 잘해보자.”말해놓고 봉숙이와 알콩 달콩 지낼 일을 생각하니 웃음 주머니가 흔들흔들 하였다. 빙그레 웃음짓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럼이 바라보노라니마치 처녀시절의 “장미꽃”이 다시 피여난것 같았다.        4     남자가 혼자 살기란 참혹하였다. 자고로 과부는 금이 서말이고 홀애비는 이가 서말이라 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것이 그 꼴이다. 불차고 가정 살림을 하기란 정말로 힘겨웠다. 낯에는 그래도 이리 저리 시간을 보내지만 밤이면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안해가 한국에 간지 10년이 넘는다. 이제는 명색이 남편이고 부부라 해도 기실 남남이 된지 오랬다. 10년 사이에 안해가 두번 잠간 왔다간 것이 다다. 추긴 목에 물 한 목금 먹은 셈이였다. 처음에는 전화도 조심스럽게 받던것이 이제는 뜸 해 졌다.                   정식 리혼을 한 사이인데도 그녀가 쉽게 돌아올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기대를 걸었다. 가끔 너무 외로와 바람을 피울 생각도 해보았다. 허지만 그런 불장난은 나에게 어룰리지 않았다. 리혼하고서도 안해를 기다리는 남자, 참으로 슬펐다. 나는 마치 내가 병신이 된 기분이였다. 쥐구멍에도 별들날이 있다고 봉숙이를 만난 후부터 나는 안해에게 더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애당초 리혼한 녀자한테 미련을 가진 내가 바보였다. 이미 깨여진 그릇을 다시 붙이려고 했으니 얼마나 미련한가.     소뿔은 단김에 뽑으라고 봉숙이 마음을 열었으니 빨리 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봉숙이와 의논하고 내 집을 세를 주고 그녀의 집으로 옮겨가서가서 살기로 하였다. 나는 간단히 짐을 꾸려 가지고 쾌 자를 부르며 봉숙이 집으로 찾아갔다. 봉숙이 집은 교외에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 봉숙이는 집안을 가리키면서 “장사하면서 살다나니 집이 엉망이얘요. 이 루추한 집에 오빠를 모셔와서 미안해요.”하면서 송구스러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가 아무런 부담이 없는 복덩이를 만났다고 감사하게 생각 되였다.  집안을 휘 둘러보니 봉숙이가 말 한 것처럼 그렇게 초라한 집이 아니였다. 200여 평방메터가 되는 큰 집이 였는데 침실과 작업실이 따로 있었다. 안온한 기분을 주는 미황색으로 꾸민 침실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어 안온한 느낌을 주었는데 녀자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침실을 벗어나면 작업실이 있었다. 작업실 안은 훈훈하고 깨끝하였다.  짐을 정돈 한 후 우리는 조용히 마주 앉았다. 홍조가 어린 봉숙이의 얼굴은 마치 활짝핀 빨간 장미꽃을 방불케 하였다.   “이렇게 봉숙이를 보니 30년 전에 둘이 함께 무용련습을 끝마치고 나란히 밤길을 걷던 일이 생각나오.”  “저도 지금 그때로 돌아간듯한 기분이얘요.”  “내가 봉숙이를 상아아씨에 비하던 일이 생각나오.”  “그럼요. 오빠는 상아씨를 기다리는 나무꾼이였구요.”  “늦었지만 인제는 상아아씨를 절대 놓치지 않는 나무꾼이 되겠소.”   나는 슬며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봉숙씨 사랑하오.”   그녀도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행복에 도취 된 목소리로 화답했다.   “나도 오빠를 사랑해요, 오빠, 오빠가 추구했던 옛 장미꽃은 오빠를 버렸지만 오늘의 이 장미꽃은 영원히 오빠의 품을 떠나지 않을어예요.””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으스러지게 포옹하였다.        5      다시 만난 첫 사랑은 꿀처럼 달콤하였다. 좋은 생활은 빨리도 지났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보냈다. 어느 날 봉숙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우리 이대로 살지 말고 정식 혼인 등록을 하는게  어때요.” “좋은 생각이오. 나도 그 말을 하려던 참이였소. 당신 말대로 혼인 등록을 하고 떳떳하게 살기오. 엎딘김에 절이라고 래일 당장혼인 등록을 하러 가기오.”  “당신도 참, 번개 불에 콩을 복아 먹겠네, 내일은 콩나물을 파는 날이여서 안돼요. 다음 주일에 갑시다.”  “그럼 그럴가?”      “그리고 또 한가지 있어요. 요즘 재혼한 사람들이 모두 법적으로 각자의 재산을 등록하고 혼인신고를 한대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물론 해야 하지, 하지만 우리가 일심동체가 되고 한 집 식구가 된봐하고는 따로 경제장부를 만들지말고 공동관리를 하면 어떻소?”  “저도 생각해 봤어요. 당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 올 문제를 고려해서 한 말이 예요. 우리가 백 년을 살수 없지 않아요 우리 둘이 같이 죽을 수 없고요. 아무튼 한 사람이 먼저 죽게 되면 반드시 두 집 자식들이 유산문제를 두고 시비가 있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앞으로 닥쳐 올 시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자의 재산 등록을 하는 것이 바람 직 하다고 봅니다.”    “당신 말에 일리가 있소.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하였소. 그럼 혼인 들록을 하기 전에 미리 각자 재산등록부터 하기오.” 재산등록과 혼인등록을 하여 놓고 보니 한 시름 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결혼식을 치르는 문제만 남았다. 비록 재혼이라 하지만 봉숙이는 나의 첫 사랑의 녀자이므로 결혼식을 멋 있게 치르고 싶었다. 허나 봉순이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둘의 감정 대라면 멋있게 치르고 싶지만 량가의 자식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면서 검소하게 치르자고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 되여 그녀의 생각대로 검소하게 치르기로 합의 하였다.   내가 재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은 엄마가 있는데 어찌 함부로 다른 녀자와 결혼하느냐 하면서 펄쩍 뛰였다. 아들도 말로는 아버지의 심정을 리해한다면서도 어머니와 다시 재결합하면 안되겠는가고  옆구리를 찔렀다. 결국은 반대한다는 뜻이였다. 허지만 녀동생은 달랐다. 결혼식날 녀동생 영란이는 봉숙이를 끌어않고 “ 봉숙아, 나는 언젠가 네가 꼭 내 올케가 될줄을 알았다. 뒤늦게 맺어진 사랑인데 행복하게 살아야 돼.” 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식이 끝나자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어느날 내가 한창 콩나물을 차에 싣고잇을 때였다.  “철수 아버지.”  느닷없이 등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콩나물 상자를 든채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았다. 다름아닌 한국으로 간 전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로 왔소?”  “제가 뭐 못 올데라도 왔나요?...”  “온다는 기별도 없이...”  “동생집에 왔다가 당신을 만나고싶어서 찾아왔어요.”  “찾아주니 감사하오만 오래동안 기별조차 없던 사람이 갑자기 웬일이요?”  “수십년을 한집에서 산 사람인데 어떻게 그리쉽게 잊겠어요?”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잖소? 당신과 나는 이미 남남이 되였소.” 우리가 남남이 된것이 어찌 다 제탓이겠어요? 그 돈때문에 가정을 위해 제가 한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부부사이가 깨지게 된것이 아니예요?” “물론 나도 책임을 회피하고싶지 않소. 당신이 협의리혼을 하자고 할때  말려야 하는데... 허지만 인제는 쏱아진 물이 돼버렸소.”  “꼭 말씀 드려야 할게 있어요. 여기는 불편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요.”  “내가 이 콩나물을 시장으로 가져가겠소 다시 올테니 기다리오.”  이때 집안에서 차림새를 끝마치고 나한테로 오던 안해는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의심스런 눈길로 보았다.   “이분은 누구신지요.”      “여보 인사하오. 이분은 이전의 영란이 올케오.”         “영란 올케? 알만해요. 처음 뵙습니다.”  “그쪽은 누구신지?”  “저는 지금 영란 올케입니다.”  “아, 그럼 갓 결혼했다는 분이겠구만요.”  “네. 외란된 말쓰입니다만 무슨 일로 여기로 저의 남편을 찾아 오셨는지요?” “영란 오빠와 상론 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그럼 두 분이 이야기를 나 누십시오. 전 먼저 갈게요.” 봉숙이는 부랴부랴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봉숙이와 같이 시장으로 같다. 시장으로 가는 도중 봉숙이는 한참동안 잠잖고 있다가 너지시 입을 열었다.  “그 녀자는 왜 왔대요?”  “모르겠소 아마 재산 분할 문제겠지.”  “다른 문제는 없고요? 그 문제라면 원만히 맺고 끊으세요.”      “걱정마오.”  나는 짐을 부린 후 인차 돌아왔다. 그녀는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아리랑” 다방으로 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말자 비아냥 거렸다.   “여보, 아니 인제는 여보라고 부를수없지. 웬 일이세요. 당신이 결혼생활이 깨가 쏟아질줄 알았는데 체신에 맞지 않게 콩나물장사를 하다니?”  “나는 콩나물장사를 하면 안되오? 이제는 내가 뭘 하던 당신이 산관할바가 아니오. 어서 나를 찾아온 리유나 말하오.” “제가 아직도 당신에게 미련을 가지고있나봐요. 기실 우리는 감정상에 문제가 있어서 헤여진게 아니라 돈을 벌어 잘살자고 협의리혼을 한게 아니예요? 저는 한국에서 갖은 수모를 다 당하면서 피땀으로 돈을벌어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출국시켰지요.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할만큼 했다고 봐요. 그러나 제가 한국남자와 법적으로 결혼하고 당신도 다른 녀자와 결혼하였으니 우리는 남남이 되였지요. 하지만 우리사이에는 자식들이 있어요. 철수 아버지 제가 한국쪽의 혼인을 정리하겠으니 우리 자식들을 봐서라도 다시 재결합하면 안될가요?”  “미안하오. 당신이 가정을 위해 고생한건 나도 인정하오. 허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이미 건널수없는 강이 생겼소. 그러니 운명이거니 생각하고 이대로 살기오.”  “저도 알아요. 재결합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그래도 한번쯤 다시 생각하면 안되겠어요?”  “재혼 문제는 두 말을 말아주오”  “정 그렇다면 할수 없지요. 그럼 우리의 재산은 어떻게 하겠어요?”  “재산은 재혼 할 때 이미 각자의 재산 등록을 하여 놓았소. 그러니 시끄러울 것이 없소. 재산 분배 문제에서 당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소.”   재산분배문제에서 원만히 아퀴를 짓게 되자 그녀는 퍼그나 만족스러워하였다. 저 녘에 봉숙에게 전처를 만나 나누었던 말을 고스란히 들려 주었다. 내가 하던 말을 귀담아 듣던 그는 긴 한숨을 쉬면서 나를 나무람했다. “너무했어요 수 십년을 살면서 쌓은정을 그렇게 냉혹하게 뿌리칠수 있어요. 제가 양보 하겠으니 그분과 재 결합하세요.”      “무슨 귀신이 씨앗을 까먹는 소리를 하오? 그녀인도 한국에 엄연히 남편이 있소. 나의 유일한 안해는 당신뿐이오.”  “그럼 재산분배에서라도 당신이 양보하세요. 그재산이 아니라도 우리둘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잘살수 있으니 모든 재산을 그분에게 주세요.”  “여보 봉숙이 정말 고맙소. 당신이 마음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소”    나는 힘껏 봉숙이를, 아니 안해를 포옹하였다.  창밖 너머로 바라보이는 서쪽하늘에서 저녁노을이 빨갛게 불타고있다. 바야흐로 도래하게 될 황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가…  
1    마음이 돌고 돌아 댓글:  조회:1775  추천:0  2014-12-16
                                                                     며칠 전에 원고료 500원을 받았다.      원고료를  어디에다 쓸가? 생각 해 보았다. 생각하다가 결국은 깜짝 이벤트로 안해에게 수요되는 요긴한 물건을 사주기로 했다.      쑥스러운 말이지만 우리집의 경제권은 안해가 장악하고 있다. 가정의 수입과 지출은 안해의 가계부에 기입된다. 이전에 나는 월급봉투를 받을 때에는 어디 어디에다 썼다고 하면서 조건을 만들어 용돈을 챙겨 썼지만 지금은 저금카드에 집적 입금되무로 어떻게 손쓸 사이가 없이 안해의 손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간다. 가정의 경제권을 안해에게 맏긴 나는 안해한테서 용돈을 받어 쓰는 신세다. 안해는 월급이 나오는 날이면 용돈을 2백원을 주며서 알아서 쓰라고 했다. 지금 세월에 한달 용돈이 2백원을 가지고 어느코에 바르겠는지 모르겠다. 2백원은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의 담배값이나 될 정도다. 나는 용돈이 작다고 여기지만 돈을 가지고 안해와 옥신각신 다투지 않았다. 그저 안해가 주는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알아서 쓰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해가 주는 용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내 맘껏 쓸수있는 추가 수입이 있었다.       안해는 내 월급외의 수입은 상관하지 않았다.      요즘 안해는 어느 친구가 멋진 핸드빽을 들고 다닌다는 말을 자주 중얼거렸다. 나를 들으라고 한 소리인데 나는 못 들은척 귀등으로 흘러 보냈다. 오늘 불현듯 안해가 하던말이 떠 오르면서 안해에게 가방을 사주려고 마음 먹었다.      요금 세상에 멋진 남자가 되려면 고급 허리띠와 멋진 구두를 신어야 품위가 오른고 녀자들은 입은 옷이 주요하지만 갖고 다니는 가방이 멋이 있어야 숙녀로 된다는 정설이 아닌 정설이 돌고 있었다.       나는 안해에게 500원을 건네주면서 호기를 부렸다.       “옛소. 내가 주는 용돈이오. ”       “아니, 이게 웬 용돈이예요. ”       “몇일전에 받은 원고료오. 이돈으로 당신이 사고싶어하던 가방이나 사오.”       안해는 너무기뻐 어쩔바를 몰라했다.       “여보 고마워요. 내 꼭 예쁜가방을 살게.”       “당신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많았소. 수십년 살아오면서 변변한 선물하나 못주어 미안하오. ”       “뭘요 오히려 당신이 고마워요.”      안해는 밝은 웃음을 짓고 련애 할때 나를 흠모하던 그런눈길로 쳐다보았다. 안해의 밝은 웃음을 보면서 나는 부부일지라도 정은 오고 가는데서 깊어간다고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며칠후 안해가 나를보고 같이 쇼핑하려 가자고 끌었다. 그동안 같이 소핑 다닌적이 없는 우리 부부였지만 오늘 만은 안해말을 따랐다. 나는 안해의 뒤를 따라 백화상점으로 갔다. 뒤에서 보니 안해가 입은 옷은 보기 쾐찬았지만 들고있는 핸드빽이 색갈이나 모양이 류행에 뒷떨어져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양복에 헌겁신을 신은것처럼  보이였다.          "여보, 어째 새 가방을 들고 안 다니오?”       “새 가방이라니? 내게 어디 새 가방이 있다구 그래요.”       “당신 내가 지난번에 준 돈으로 가방을 산다지 않았소?”       “그돈 다른데 썼어요. ”      안해는 돈을 어디에다 썼다는것을 밝히지않았다. 나도 더 알려고도 하지않았다. 안해는 상점안을 이리 저리 돌다가 혁띠를 파는 매장 앞으로 가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어떤 판국인지 몰라 어정쩡 서있었다. 안해는 나를 보고 맘에드는 혁띠를  고르라고 했다.       “아니, 난 필요 없소. 지금 띠고있는 혁띠도 새것이나 다름없다구.”       “두말 말고 좋은걸루 고루세요.”       나는 이것 저것을 보면서 색갈과 질이 좋아 보이는 미황색 혁띠를 골랐다. 안해는 그 혁띠를 띠여보라고 했다. 거울에 빛추어보니 내 스스로봐도 내 품위가 한층 오르는는것 같았다. 안해는 내 아래우를 훝보더니 매우 흡족해 하면서 혁띠를 띠니 한물 오른다고 하였다. 내가 혁띠의 가격표를 보니 500원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무슨놈이 혁띠가 이렇게 비싸지 하고 중얼거리며 주춤했다. 안해는 진작에 내 마음을 꿰뚤러본듯 돈 걱정은 하지말라고 눈짓했다. 평상시 구두쇠 같던 안해가 그날따라 통이 크게 노는것이 수상쩍었다. 나는 안해에게 어디서 공돈이 생겼나 싶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쩍 물어보았다.        “당신 어디서 공짜돈이 생겼어? ”        “공짜 돈이라면 공짜라 할수 있지요. 사실 어제 서나가 나한테 용돈으로 쓰라고 500원을 주었어요.”        “뭐, 서나가! 걔게 무슨돈이 있다고 당신한테 용돈을 다 준다오.”        “알고 보니 걔 생일날에 아버님이 준 돈이래요.”        “우리 서나가 다컸구나. 할아버지한테서 받은 돈을 에미한테 다주구 말이야.”        “서나도 그렇지만 아버님이 처사가 더 고마워요. 사실은 내가 당신이 준 돈을 아버님께 용돈을 쓰시라고 드렸어요. 아버님은 그 돈을 한푼도 쓰지않고 서나를 주었돼요.”        “아버지도 참, 며느리가 주었으면 쓰실것이지… 여보 그러구보니 결국은 돈이 제자리로 돌아 왔구려. 그러지말고 백화상점으로 되돌아 가기오.”        “왜요?”        나는 가보면 알것이라고 하면서 싫다는 안해를 억지로 끌고 백화상점으로 갔다. 고추 가방을 파는 매대앞으로 간 나는 안해더러 제일 멋진 가방을 고르라고 했다.         안해는 눈이 데꾼해지면서 당신한테 무슨 돈이 있냐고 하였다. 나는 원고료를 모아둔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 근심은 하지말고 맘에 드는 근사한 가방을 고르라 했다. 이것 저것 가방들을 훝어보던 안해는 마침내 가방을 골라들었다. 안해의 어굴은 대뜸 밝아지더니 동산 산마루에 떠 오르는 아침해마냥  해맑아졌다.       나는 새 핸드빽을 들고 신나서 걸어가는 안해의 뒷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란 무었일가 자기한테 물어보았다. 사랑이란 믿음과 아껴주는것이다. 오랜 부부간에도 서로간 숨김없이 아껴주고 보듬어 준다면 사랑은 더 두터워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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