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로맨스
그날 처음으로 콩나물을 사려고 서시장으로 갔다.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장사군들은 자기것을 사라고 야단법석이였다. 돈의 유혹에 장사군들의 얼굴은 장마철 날씨처럼 변덕이 많다. 자기 앞으로 오는 손님에게는 해맑은 웃음을 짓다가도 일단 손님이 자기 물건을 사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사면 대번에 얼굴이 흐려 지며 입을 삐쭉 거린다.
나는 콩나물을 훝어 보다가 몸집이 실팍 한 장사군 녀인앞에 멈췄다.
“ 한근만 주십시오”
멀리서부터 나를 눈 박아 보던 그 장사군 녀인은 인상 좋게 웃으면서 잽싼 솜씨로 콩나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저울에 달아보고는 나에게 넘겨 주었다. 내가 돈을 치르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 아저씨, 혹시 영란 오빠가 아니세요?”
“ 그런데.”
언결에 대답하면서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허지만 누구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내 녀동생 영란이 이름을 부르는걸 봐선 나를 잘 아는 사람 같은데? 누구일가? 이 시장에는 아는 사람은 없는데?
나는 어정쩡해서 오리무중에 빠졌다.
“영란이 친구 봉숙 이예요, 한 마을에서 살던 봉숙이를...”
뭐! 봉숙이?
정말 이녀인이 봉숙이란 말인가? 나는 두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뜯어보았다. 옳았다. 세월과 더불어 많이 변하긴 하였지만 처녀때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처녀때 그토록 내가슴을 들먹이게 했던 그녀, 허지만 결국 사랑의 호수에 파문만 일으켜놓고 훌쩍 떠나가버지 않았던가?
어젠가 꼭 만나리라고 믿어왔다. 헌데 그만남이 이렇듯 우연히 이루어질줄이야? 처녀때 버들가지처럼 날씬하고 예쁘던 그녀가 얼굴이 부석부석하고 몸집이 실팍한 아낙네가 되여 내앞에 나타났다. 눈에는 피발까지 선걸 보아 어쩐지 고달픈 인생을 사는것 같았다.
“봉숙이 옳구만. 하마트면 앓아 못 번 했소, 봉숙이를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저도 오빠를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이게 몇해만이요? 한 30년 넘었지?”
“그렇게 됐을거예요, 오빠는 그냥 룡정에 살아요.”
“아니, 연길로 이사 온지 꽤 오래되오”
“우리도 연길로 온지 5년이 돼요. 헌데 한시내에 있으면서 왜 보지 못하였을까? 집은 어디에 있어요.?”
“북대에 있소.”
“오빠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아직도 젊었을 때 그대로얘요”
“괜한 소리를 마오. 나도 인젠 늙었소. 헌데 봉숙이가 콩나물 장사를 하다니?”
“왜요? 내가 콩나물장사를 하면 안되나요?”
“좋은 남편을 만나 좋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멋 있게 사는줄로 알았는데?”
“쓴 소리 말아요, 일에 귀천이 어디 있어요, 돈만 벌면 되는 세월에.”
“하기야 그렇지, 허허허.”
더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후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나는 시장에서 나와 곧추 집으로 향하였다. 아직도 옛 모습대로 아름답고 싱싱하리라 믿어왔는데 변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그야말로 세월이 무정 고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 갔다.다. 꽃 망울 졌던 20대의 나이가 50살을 넘으니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리 있겠는가? 특히 녀자들은 살면서 열두번 변한다는데 항상 처녀시절의 그녀만 기억하고있는 내가 어처구니없는 거지.내 기억속의 그녀는 한송이”장미꽃”였다.
30년 전 마을에는 끌끌 한 남녀 청년이 20여명의 있었다. 산수가 좋아 그런지 총각들은 대나무처럼 훤칠하고 처녀들은 꽃처럼 아름다왔다. 허지만 처녀들중에서도 “장미꽃”이라 불리 운 김봉숙이가 제일 예뻤다. 술고래로 소문 높은 김세흥 령감이 입만 열면 아들타령을 하였지만 마누라는 낳으라는 아들은 낳지 않고 딸만 줄줄이 일곱을 낳았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칠선녀 집이라 하였다.
막내로 태여난봉숙이는 “칠선녀”중에서고 단연 돋보였다. 호리로리한 몸매, 새하얀살결, 호수같이 그윽한눈...한번 본 사람은 꼭 다시 뒤돌아보개 되는 미모의처녀였다. 허지만 봉숙이는 몸이 허약하여 늘 앓았다. 봉숙의 부모들은 그녀의 장래에 대해 근심이 태산같았다. 큰딸을 제외하고는 모두 땅을 뚜지는 농민한테 시집을 가서 고생하는걸 보면서 봉숙이의 부모들은 그녀를 꼭 월급쟁이한테 시집 보내려고 하였다. 찬찬히 보면 봉숙이 얼굴에서 제일 매력적인 것이 오른쪽 눈이 조금 더 큰 것이 였다. 보조개를 파며 살짝 웃을 때에는 그윽한 눈은 잔물결이 이는 호수 같았다. 총각들의 봉숙이를 보면 싱숭생숭하여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동네 총각들은 그와 은근히 가까이 보내려 했다. 이웃 마을 총각들도 그녀에게 련애 편지를 보내왔다. 총각들의 힌틀을 받으면서도 봉숙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부답 태도를 표시를 하지 않았다. 원숭이처럼 약아빠진 영식이가 몇번이나 그녀에게 추근대다가 된욕만 먹고는 닭 쫓던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되였다. 앙앙불락한 영식이는 뒤에서 봉숙이를 가시가 돋친 “장미꽃”이라 히면서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리하여 봉숙에게는 “장미꽃”이란별호가 뒤 따르게 되였다. 아련해 보이면서도 도고한 그녀는 대체 어떤 대상자를 구하려고 그러는지? 어떤 녀석이 따 갈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고운 꽃도 꺾어야 내 것으로 된다. 마을의 여느 총각들처럼 나도 봉숙에게 눈독을 들였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은근히 그 “장미꽃”을 꺾을 적임자라고 스스로 여겨 왔다. 인물체격이 좋은데다 마을에서 “수재”라 불리 울 정도로 글을 잘 쓰니 허물 할 것이 없다고 여기였다. 단지 허물이라면 집의 가난 한 것 이였다. 가난은 둘이 손을 맞추어 잘 벌면 될 것이니 별 것이 아니라 여기 였다. 여러 차례 봉숙에게 내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쓸까? 하다가도 한 마을에서 살면서 편지는 무슨 놈의 편지 말로 집적 하면 될 것을 가지고 그랬다고 여기였다. 녀 동생을 통하여 봉숙에게 내 뜻을 전달할까? 그것도 비겁한 행동이였다. 아예 사내답게 집적 당사자에게 말 하는 것이 바람 직 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말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현 에서 조직한 농촌 문에 콩클에 참가하기 위하여 촌에서는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문예선전대를 꾸렸다. 인물 체격이 좋은 나와 봉숙이는 선전대에 들었다. 우연이라 할까 선전대 대장은 우리 둘에게 쌍무를 추라고 하였다. 우리둘이 한쌍이되여 빙글빙글 돌면서 부지련히 무용련습을 하였다. 다른청년들이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마냥 좋아서 싱글벙글하였다 봉숙이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춤을 추노라니 해맑게 웃는 그녀가 정말로 한송이 꽃으로 보였다.
그녀는 평시에는 나를 영란 오빠라 부르다가도 같이 걸을 때에는 영란이란 말을 쏙 빼고 오빠라고 불렀다. 그런 때에는 정말로 봉숙이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군 하였다. 가끔 무용련습을 끝마치고 달빛을 즈려밞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면 더욱 가슴이 쿵쿵 뛰고 이름할수없는 욕망이 불끈불끈 솟구쳤다. 정말이지 그녀를 꽉 붙잡고 “너를 좋아한다”고 실토정을 하고 싶었으나 평시에는 다른 말은 술술 잘하다가 왼 일인지 그 말을 하자니 혀끝에 추돌을 달아 맨 것처럼 입안에서 뱅뱅돌면서 나오지 않았다.
그날도 무용련습이 끝나자 나는 봉숙이를 보고 같이 걷자고 청들었다. 봉숙이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청춘남녀가 달 밝은 밤길을 남녀가 어깨나란히 조용한 걷노라니 디숭 생숭 해 났다. 가까이 걸으니 봉숙의 몸에서 향기로운 내음이 흘러나와 내 코를 자극하여 와락 끌어않고싶은 충동까지 생겼다.
나는 달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봉숙이 저 달을 보오, 저 달 속에 누가 있을가?”
“계수나무와 상아 선녀가 있겠지요 ”
“옳소. 그런데 저 달 속이 상아아씨가 인간 세상에 내려 왔 구 만.”
“피 – 거짓말? “
“거짓말이 아니오, 지금 내 앞에 서있지 않소?”
“호 호 호 그럼 내가 상아란 말 이예요? 어찌 나를 상아에 비길 수 있어요.”
봉숙이는 깔깔 웃으며 손으로 살짝 얼굴을 가리였다. 그 동작이 여간만 귀엽지 않았다.
“왜 상아에 못 비긴단 말이오. 내 눈에는 상아도 봉숙이를 보고 울고 갈 텐데?”
“아이 참, 민망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겠어요. 제가 상아라 하면 오빠는 뭐얘요?”
“나야 상아를 기다리는 나무꾼이지.”
“나무꾼과 상아아가씨?”
그녀는 방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봉숙이, 우리 사귀지 않겠소? 난 오래전부터 봉숙이를 좋아했소.”
“그... 그건 ...”
“망설이지 말고 속시원이 말해보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봉숙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도 오빠를 좋아해요. 그러나 오빠의 마음을 받을수 없어요.”
“왜?”
“오빠의 마음을 받으면 평생 땅을 뚜지며 살아야 하겠으니 나는 그렇게는 살지 못 하겠어요, 그리고 전 맏며느리 감이 아니얘요. 용서하세요.”
봉숙이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울었다.
“평생을 땅 뚜 지기 싫어서? 맏며느리가 되기 싫어서?”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순순히 내 청혼을 받아주리라 믿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 나올줄이야. 청천벽력이였다. 나는 떡메에 정수리를 얻어 맞은듯 눈앞이 아찔해났다. 김 빠진 공이 되여버린 나는 맥 없이 그녀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싫다는 그녀를 강요하고싶지 않았다. 봉숙이의 마음도 모르고 나름대로 제 좋은 생각만 한 자신이 가소롭게 느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봉숙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녀와 나를 저울질해보니 둘이 인물체격은 꽤 어울리고 독서와 예술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있었지만 몸이 튼튼하지 않은 그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것 같지 않았다. 그녀더러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라고 하는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였다. 게다가 내가 형제 중에서 장남 이여서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데 병약한 그녀가 이런 시련을 이겨낼수 있겠는가? 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쉽개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리해 한다고 하면서도 고운 꽃을 꺾으려는 사나이 욕망은 포기 할 것 같지 않았다. 기어이“장미꽃”을 꺾고 싶었다. 어떻게 할까? 내가 고통에 모대기고있을 때 봉숙이가 얄밉게 약혼하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야속했다. 어찌 내 가슴속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대못까지 박는단 말인가?
“두고보라지, 꼭 너보다 더 좋은 녀자를 얻어 너히 코대를 꺽어 놓을것이야.”
나는 오기가 생겨 서둘러 장가 갔다. 인물은 봉숙이보다 못하였지만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체격이 좋은 처녀를 안해로 맞았다.
얼마후 봉숙도 시집 갔다. 동네 총각도 아니고 이웃 마을 총각도 아닌 외지 총각한테 시집을 갔다. 신랑은 현성의 제지공장에 출근하는 월급쟁이였다. 허지만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못생겨 봉숙에게 비하면 너무 짝이 기울렀다. 마치 닭과 봉황 같았다. 시집가는 그녀를 먼발치에서 보면서 소리없이 가슴을 쥐여 뜯었다.
허지만 봉숙이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 였다. 당시의 사회 현상을 보면 성향 차별이 심하였다. 도시와 농촌간의 차별이 아주 심해 얼굴이 반반한 농촌처녀들은 너나없이 도시총각과 결혼하지 못해 매삼거렸다. 오죽하면 농촌처녀들속에서 “5원짜리 월급쟁이한테도 시집 가겠다”는 말이 나돌았겠는가? 성향 차별로 하여 농촌 처녀들은 가난을 밥 먹듯 하였고 어려움을 실물 나게 맞보았다.
농촌 처녀들은 모두 농촌을 떠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프라기 라도 잡는 격으로 월급쟁이 한테 시집가지못해 애를썼다. 월급쟁이 한테 시집가는것이 농촌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였다. 때문에 농촌처녀들이 자기보다 못한 도시총각한테 시집가는 일은 비일비재였다. 아울러 도시 총각들도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거리며 농촌 처녀들을 손가락으로 튕겨가며 골라갔다. 가난을 밥 먹듯하고 농사에 신물이 난 농촌처녀들은 신랑이 아무리 자기만 못해도 시내로 시집 간다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여기였고 큰 출세로 여겼다.
나는 봉숙이 한테서 받은 큰 충격으로 농민이라는 딱지를 벋어버리려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는 연변대학 통신학부 수업을 마치고 중학교 교원으로 되였다. 그후에는 직업학교에 전근 되여 퇴직 전까지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첫 사랑이란 참으로 미묘한것이다. 결혼을 하였고 자식을 두었지만 나의 첫 사랑이 고질 병처럼 남의 사람이 된지 오랜 봉숙이를 그리는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여오르고 있었다.
콩나물을 파는 봉숙이를 보니 나한테 시집 왔더라면 콩나물 장사야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자주 봉숙이의 콩나물 매장을 찾아가 콩나물을 삿다. 봉숙이를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였다.
어느날 나는 봉숙이를 보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자고 하였다. 봉숙이는 머 뭇 거리다가 동의하였다.
콩나물은 이틀에 한번씩 륜번으로 팔았다. 하루는 팔고 하루는 키워야 하기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이름있는 “백옥”꿤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날 따라 그녀는 옷차림에 신경을 쓴것 같고 얼굴 화장도 정성껏 하였다. 옷은 날개였다. 풍만하고 단아한 모습이 자못 운치가 있었다. 콩나물매대에 서서 사구려를 부르던 초라한 녀인이 아니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오빠네 식구는 콩나물을 즐겨먹나봐요?”
“왜?”
“번번이 많이 사가니 말이얘요. 식구는 몇명이얘요? ”
“한명.”
“독신?”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 졌다.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됐소, 개도 안 먹는 그 돈 때문에 집사람은 한국으로 갔고 아들놈은 미국에, 딸년은 일본으로 갔소. 우리 집은 리산 가족이오.”
“아! 이제야 알만해요, 그래서 나를 돕느라 콩나물을 자주 삿 구만. 오빠는 혼자 적적해 어떻게 살아요? 홀로 사는 남자들을 보면 어떻게 사는지?”
“이제는 단련이 되여 대수롭지 않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먹고 해 먹기 싫으면 사먹으면 되는걸 가지고 뭘, 봉숙이 남편은 잘 있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어두어졌다.
“그분은 3년 전에 돌아갔어요.”
“뭐! 이미 돌아갔다구? 난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
“그분이 명이 그만 한걸…”
“누구와 같이 있소?”
“딸이 일본으로 가다나니 혼자 살아요.”
“허허, 봉숙이도 나와 같은 처지구만. 살기 어렵지않소? ”
“매일 바삐 보내 다니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람집엔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남자라면 질색이 나요, 그렇잖아도 남편이 돌아가기전부터 얼썽거리는 남자들이 있었어요 남자들은 다 엄큼한 늑대얘요.”
“무작정 남자들을 욕하지 마오 요즘 남자들은 얼마나 힘들게 사는 줄 알기나 하오?”
“그래도 전 남자들은 싫어요”
“나라면 사귈 생각이 없소.”
“오빠라면 옛날을 봐서라도 한번 고려해 보지요. 하지만 집의 사모님은 어쩌고?”
“리혼하면 되지.”
“천벌을 받을 소리, 오빠네 부처간의 금술이 좋다면서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수십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오빠, 부탁인데 무던한 안해를 두고 딴 궁리 하지 말아요”
“허지만 봉숙이만은 례외요. ”
자 과부문전에 시비가 많다고 전 남의 말밥에 오르는게 딱 싫어요.”
만히 사귀면 되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바람새지않은 벽이 없대요. 그러니 마음을 잡으세요.”
“나도 다 사연이 있어서 그러는거요. 아무튼 강요하지 않을테니 천천히 두고보기요.”
봉숙이의 태도가 하도 단호해서 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서시장에서 봉숙이를 보았을 때 깜짝 놀랐소, 시내의 월급쟁이한테 시집가 잘 보낼줄 알았는데데 콩나물 장사를 하다니? 잘 믿어지지 않았소. 남편과 생활은 재미 있었소. ”
“그분과 살면서 후에 없이 살았어요, 내가 선택 하였으니 후회를 안 했지요.”
그녀는 술잔을 들어 나와 건배하고는 천천히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평생 농민이 되는 것이 싫어서 오빠의 청혼도 마다하고 조건부가 크게 없이 그 총각이 성시 호적을 가진 로동자라 하여 시집갔어요. 물론 부모님들은 신랑감이 키가 작다 하여 서운해 하셨지만 별로 말리지 않았어요. 시집이라 와 보니 생각과 천양지차였어요. 시댁은 시내가 아닌 현성과 수 십리 떨어진 시골 덕수동이 였어요. 시집살림은 째지게 간난했고요. 시시콜콜 않는 시아버지와 어린 시동생들이 줄줄이 다섯이나 있었어요. 저는 숨이 꽉 말히는것 같았어요. 다행히 남편은 도시에 호적이였기에 우리는 시내에 살림집을 꾸릴수 있었어요. 우리는 공장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신혼생활을 하였어요
그의는 키는 작지만 신체 소질이 좋아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 하였대요. 입대하여 1년이 지난 어느 날 비밀리에 월남에 파견 되여 월남을 도와 미군과 싸우는 전쟁에 참전하였답니다. 월남 전쟁이 끝나고 3년간의 군 복무 기한이 끝나 제대 되였대요. 제대 된 후 고향에 남지 않고 월남 전쟁에 참전 하였다는 그 조건으로 b제지공장에 배치 받았답니다.
비록 남편은 외모가 그닥잖고 키가 작았지만 속이 여문 사람이 였어요 직장에서 일을 잘하여 매년 선진생산자로 되였구요 저도 꿈직이 사랑해 주었어요. 남편이 받는 월급으로 제 살림을 하기도 빠듯한데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와 여러 시동생들을 도와야 하니 돈잎이 말랐어요.
80년대를 잡아들면서 농촌개혁을 이어 공장도 구조조정을 했지요 잘 나가던 제지공장이 불경기의 직격탄에 맞아 파산되는 바람에 남편은 정리실업을 당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가 림시로 다니던 가두공장이 부도가 나서 월급도 못받고 나왔어요. 하여 궁여지책으로 시작 한 것이 콩나물장사였어요. 콩나물 장사에 미립이 트고 자금이 축적되자 더 크게 해보려고 인구가 많은 연길로 왔어요. 그이는 부지련히 내 뒷시중을 하였어요. 볼 바엔 콩나물 장사는 보잘것 없는 것 같지만 잘하면 수입이 짭 잘 했어요 몇 년 사이 콩 나물 장사로 아빠트도 사고 딸도 일본 류학을 보냈어요.
헌데 호사다말고 인제야 살만하니 남편의 교통사고로 돌아갈줄이야. 사람이란 참 요상한 물건이얘요. 남편이 돌아가고나니 문득 오빠생각이 나던군요. 때로는 제가 오빠한테 시집갔더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어요. 자, 인젠 제 이야기를 그만 하고 오빠가 살아온 과거지사를 말해줘요.”
나는 그녀의 지청구에 못이겨 이왕지사를 간추려서 이야기 해 주었다.
“ 내가 그토록 믿었던 봉숙이마저 나를 버리고 떠나자 오기가 생겼소. 나도 꼭 월급쟁이가 되여 보란듯이 봉숙의앞에 나서고싶었소. 나는 이를악물고 부지련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으로 연변대학 통신학부 수업을 마치고 당당하게 교원이 되였소...줄곧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얼마전에 퇴직하였소. 퇴직 후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글을 쓰고 있소. 현숙한 안해를 맞아 자식 일 남 일 녀를 두었소. 행복한 가정이라고 할 만큼 잘 보냈소. 하지만 첫 사랑 이였던 봉숙 에 대한 련정을 가슴에 품고 있었소.
“ 나를 정말 못 잊고 있었어요.”
“그렇고 말고 봉숙이는 나에게 어떤 존재라고.”
“오빠를 배척한 저를 잊지 못했다니 감사해요 오빠가 퇴직 후 글을 쓴다고 했는데 어떤 글을 쓰세요.”
“심심풀이로 글을 쓰고 있소 지나온 인행행로를 적은 글을 쓰고 있소. 봉숙이는 청년 때 독서를 즐 기였는데 지금은 책을 보오.”
“네 자주 봐요. 오빠가 쓴 글을 보이세요.”
“보여주지.”
그날 그녀와 허심탄이 속사정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3
몇 일 후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헌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깔려있었다. 나는 저으기 불안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만 무슨 일이라도 있소”
“남편이 사망된후 외사촌 동생 정실이와 같이 하다가 그애가 한국으로 가자 할 수없이 단기일군을 쓰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 더 할 것 같지 않아요, 콩나물 장사는 잘만 하면 외국에 나가기 보다 못하지 않은 벌인 데 구만 두자니 아쉬워요”
“내가 도와 줄 터이니 걱정마오.”
“오빠가! 아니, 그건 안돼요. 선생이 어떻게 이런 천한 일을 해요.”
“선생이라고 콩나물을 키우는 일을 못 한다는 법이 어디 있소? 이 팔뚝을 보오 힘이 불끈 솟고 있지 않소. 봉숙이가 동의 한다면 래일 이라도 같이 하고 싶소.”
“ 마음 만은 고맙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 왜?”
“ 말하기 구차해요.”
“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지말고 어서 말해보오.”
“ 오빠가 정 나와 같이 일할 의향이 있다면 한가지 조건을 들어 주어야 해요”
“ 뭔데, 다 들어줄게”
“ 콩나물 장사를 하려면 질 좋은 콩을 사야 하고 콩나물을 잘 키워야 해요. 콩을 사는 것은 내가 알아서 사면 되지만 콩나물을 잘 키우는 것은 사람의 정성에 따라요. 걸 핏 보기엔 키우기는 간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소홀히 관리 하면 왜 자라거나 썩기도 해요. 콩나물을 제대로 잘 키우자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물을 주고 온도 조절을 해야 하오. 그러자면 관리일군들은 륜번으로 붙어 있어야 하지요. 평생 선비로 살아온 오빠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유부남과 한 집에 있어야 하니 남들이 말 밥에 오르지 않겠어요.”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소? 쾐한 걱정은 안해도 되오”
“ 무슨 뜻이얘요?”
“ 난 이미 리혼했소.”
“ 뭐라구요? 이미 리혼 했다구요?”
“ 그렇소. 이미 우리 부부는 이미 리혼한지 오래되오. 안해가 한국으로 가면서 우리 부부는 협의 리혼을 했소.”
봉숙이는 반신 반의 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 봉숙이 나를 믿어주오. 절대 거짓말이 아니오.”
나는 봉숙이 어깨를 으스러지게 부여잡았다.
“ 좋아요, 오빠를 믿을게요.”
“ 고맙소.”
“ 오빠 먼저 몇 일을 실험 삼아 해보세요.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어도 돼요.”
“그만 둔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마오. 두고 보오. 내가 얼마나 잘 하는가를.”
봉숙이는 젊은이들처럼 나와 손을 마주쳤다.
“ 오빠 손을 마춰 잘 해봅시다.”
“ 그래 잘해보자.”말해놓고 봉숙이와 알콩 달콩 지낼 일을 생각하니 웃음 주머니가 흔들흔들 하였다. 빙그레 웃음짓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럼이 바라보노라니마치 처녀시절의 “장미꽃”이 다시 피여난것 같았다.
4
남자가 혼자 살기란 참혹하였다. 자고로 과부는 금이 서말이고 홀애비는 이가 서말이라 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것이 그 꼴이다. 불차고 가정 살림을 하기란 정말로 힘겨웠다. 낯에는 그래도 이리 저리 시간을 보내지만 밤이면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안해가 한국에 간지 10년이 넘는다. 이제는 명색이 남편이고 부부라 해도 기실 남남이 된지 오랬다. 10년 사이에 안해가 두번 잠간 왔다간 것이 다다. 추긴 목에 물 한 목금 먹은 셈이였다. 처음에는 전화도 조심스럽게 받던것이 이제는 뜸 해 졌다.
정식 리혼을 한 사이인데도 그녀가 쉽게 돌아올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기대를 걸었다. 가끔 너무 외로와 바람을 피울 생각도 해보았다. 허지만 그런 불장난은 나에게 어룰리지 않았다. 리혼하고서도 안해를 기다리는 남자, 참으로 슬펐다. 나는 마치 내가 병신이 된 기분이였다.
쥐구멍에도 별들날이 있다고 봉숙이를 만난 후부터 나는 안해에게 더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애당초 리혼한 녀자한테 미련을 가진 내가 바보였다. 이미 깨여진 그릇을 다시 붙이려고 했으니 얼마나 미련한가.
소뿔은 단김에 뽑으라고 봉숙이 마음을 열었으니 빨리 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봉숙이와 의논하고 내 집을 세를 주고 그녀의 집으로 옮겨가서가서 살기로 하였다. 나는 간단히 짐을 꾸려 가지고 쾌 자를 부르며 봉숙이 집으로 찾아갔다. 봉숙이 집은 교외에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 봉숙이는 집안을 가리키면서 “장사하면서 살다나니 집이 엉망이얘요. 이 루추한 집에 오빠를 모셔와서 미안해요.”하면서 송구스러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가 아무런 부담이 없는 복덩이를 만났다고 감사하게 생각 되였다.
집안을 휘 둘러보니 봉숙이가 말 한 것처럼 그렇게 초라한 집이 아니였다. 200여 평방메터가 되는 큰 집이 였는데 침실과 작업실이 따로 있었다. 안온한 기분을 주는 미황색으로 꾸민 침실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어 안온한 느낌을 주었는데 녀자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침실을 벗어나면 작업실이 있었다. 작업실 안은 훈훈하고 깨끝하였다.
짐을 정돈 한 후 우리는 조용히 마주 앉았다. 홍조가 어린 봉숙이의 얼굴은 마치 활짝핀 빨간 장미꽃을 방불케 하였다.
“이렇게 봉숙이를 보니 30년 전에 둘이 함께 무용련습을 끝마치고 나란히 밤길을 걷던 일이 생각나오.”
“저도 지금 그때로 돌아간듯한 기분이얘요.”
“내가 봉숙이를 상아아씨에 비하던 일이 생각나오.”
“그럼요. 오빠는 상아씨를 기다리는 나무꾼이였구요.”
“늦었지만 인제는 상아아씨를 절대 놓치지 않는 나무꾼이 되겠소.”
나는 슬며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봉숙씨 사랑하오.”
그녀도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행복에 도취 된 목소리로 화답했다.
“나도 오빠를 사랑해요, 오빠, 오빠가 추구했던 옛 장미꽃은 오빠를 버렸지만 오늘의 이 장미꽃은 영원히 오빠의 품을 떠나지 않을어예요.””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으스러지게 포옹하였다.
5
다시 만난 첫 사랑은 꿀처럼 달콤하였다. 좋은 생활은 빨리도 지났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우리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보냈다.
어느 날 봉숙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보, 우리 이대로 살지 말고 정식 혼인 등록을 하는게 어때요.”
“좋은 생각이오. 나도 그 말을 하려던 참이였소. 당신 말대로 혼인 등록을 하고 떳떳하게 살기오. 엎딘김에 절이라고 래일 당장혼인 등록을 하러 가기오.”
“당신도 참, 번개 불에 콩을 복아 먹겠네, 내일은 콩나물을 파는 날이여서 안돼요. 다음 주일에 갑시다.”
“그럼 그럴가?”
“그리고 또 한가지 있어요. 요즘 재혼한 사람들이 모두 법적으로 각자의 재산을 등록하고 혼인신고를 한대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가요?
“물론 해야 하지, 하지만 우리가 일심동체가 되고 한 집 식구가 된봐하고는 따로 경제장부를 만들지말고 공동관리를 하면 어떻소?”
“저도 생각해 봤어요. 당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 올 문제를 고려해서 한 말이 예요. 우리가 백 년을 살수 없지 않아요 우리 둘이 같이 죽을 수 없고요. 아무튼 한 사람이 먼저 죽게 되면 반드시 두 집 자식들이 유산문제를 두고 시비가 있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앞으로 닥쳐 올 시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자의 재산 등록을 하는 것이 바람 직 하다고 봅니다.”
“당신 말에 일리가 있소.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하였소. 그럼 혼인 들록을 하기 전에 미리 각자 재산등록부터 하기오.”
재산등록과 혼인등록을 하여 놓고 보니 한 시름 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결혼식을 치르는 문제만 남았다. 비록 재혼이라 하지만 봉숙이는 나의 첫 사랑의 녀자이므로 결혼식을 멋 있게 치르고 싶었다. 허나 봉순이는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둘의 감정 대라면 멋있게 치르고 싶지만 량가의 자식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면서 검소하게 치르자고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 되여 그녀의 생각대로 검소하게 치르기로 합의 하였다.
내가 재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딸은 엄마가 있는데 어찌 함부로 다른 녀자와 결혼하느냐 하면서 펄쩍 뛰였다. 아들도 말로는 아버지의 심정을 리해한다면서도 어머니와 다시 재결합하면 안되겠는가고 옆구리를 찔렀다. 결국은 반대한다는 뜻이였다. 허지만 녀동생은 달랐다. 결혼식날 녀동생 영란이는 봉숙이를 끌어않고 “ 봉숙아, 나는 언젠가 네가 꼭 내 올케가 될줄을 알았다. 뒤늦게 맺어진 사랑인데 행복하게 살아야 돼.” 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결혼식이 끝나자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어느날 내가 한창 콩나물을 차에 싣고잇을 때였다.
“철수 아버지.”
느닷없이 등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콩나물 상자를 든채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았다. 다름아닌 한국으로 간 전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로 왔소?”
“제가 뭐 못 올데라도 왔나요?...”
“온다는 기별도 없이...”
“동생집에 왔다가 당신을 만나고싶어서 찾아왔어요.”
“찾아주니 감사하오만 오래동안 기별조차 없던 사람이 갑자기 웬일이요?”
“수십년을 한집에서 산 사람인데 어떻게 그리쉽게 잊겠어요?”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잖소? 당신과 나는 이미 남남이 되였소.”
우리가 남남이 된것이 어찌 다 제탓이겠어요? 그 돈때문에 가정을 위해 제가 한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부부사이가 깨지게 된것이 아니예요?”
“물론 나도 책임을 회피하고싶지 않소. 당신이 협의리혼을 하자고 할때 말려야 하는데... 허지만 인제는 쏱아진 물이 돼버렸소.”
“꼭 말씀 드려야 할게 있어요. 여기는 불편하니 조용한 곳으로 가요.”
“내가 이 콩나물을 시장으로 가져가겠소 다시 올테니 기다리오.”
이때 집안에서 차림새를 끝마치고 나한테로 오던 안해는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을 의심스런 눈길로 보았다.
“이분은 누구신지요.”
“여보 인사하오. 이분은 이전의 영란이 올케오.”
“영란 올케? 알만해요. 처음 뵙습니다.”
“그쪽은 누구신지?”
“저는 지금 영란 올케입니다.”
“아, 그럼 갓 결혼했다는 분이겠구만요.”
“네. 외란된 말쓰입니다만 무슨 일로 여기로 저의 남편을 찾아 오셨는지요?”
“영란 오빠와 상론 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그럼 두 분이 이야기를 나 누십시오. 전 먼저 갈게요.”
봉숙이는 부랴부랴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봉숙이와 같이 시장으로 같다. 시장으로 가는 도중 봉숙이는 한참동안 잠잖고 있다가 너지시 입을 열었다.
“그 녀자는 왜 왔대요?”
“모르겠소 아마 재산 분할 문제겠지.”
“다른 문제는 없고요? 그 문제라면 원만히 맺고 끊으세요.”
“걱정마오.”
나는 짐을 부린 후 인차 돌아왔다. 그녀는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아리랑” 다방으로 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말자 비아냥 거렸다.
“여보, 아니 인제는 여보라고 부를수없지. 웬 일이세요. 당신이 결혼생활이 깨가 쏟아질줄 알았는데 체신에 맞지 않게 콩나물장사를 하다니?”
“나는 콩나물장사를 하면 안되오? 이제는 내가 뭘 하던 당신이 산관할바가 아니오. 어서 나를 찾아온 리유나 말하오.”
“제가 아직도 당신에게 미련을 가지고있나봐요. 기실 우리는 감정상에 문제가 있어서 헤여진게 아니라 돈을 벌어 잘살자고 협의리혼을 한게 아니예요? 저는 한국에서 갖은 수모를 다 당하면서 피땀으로 돈을벌어 집도 장만하고 아이들도 출국시켰지요.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할만큼 했다고 봐요. 그러나 제가 한국남자와 법적으로 결혼하고 당신도 다른 녀자와 결혼하였으니 우리는 남남이 되였지요. 하지만 우리사이에는 자식들이 있어요. 철수 아버지 제가 한국쪽의 혼인을 정리하겠으니 우리 자식들을 봐서라도 다시 재결합하면 안될가요?”
“미안하오. 당신이 가정을 위해 고생한건 나도 인정하오. 허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이미 건널수없는 강이 생겼소. 그러니 운명이거니 생각하고 이대로 살기오.”
“저도 알아요. 재결합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을, 그래도 한번쯤 다시 생각하면 안되겠어요?”
“재혼 문제는 두 말을 말아주오”
“정 그렇다면 할수 없지요. 그럼 우리의 재산은 어떻게 하겠어요?”
“재산은 재혼 할 때 이미 각자의 재산 등록을 하여 놓았소. 그러니 시끄러울 것이 없소. 재산 분배 문제에서 당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소.”
재산분배문제에서 원만히 아퀴를 짓게 되자 그녀는 퍼그나 만족스러워하였다.
저 녘에 봉숙에게 전처를 만나 나누었던 말을 고스란히 들려 주었다. 내가 하던 말을 귀담아 듣던 그는 긴 한숨을 쉬면서 나를 나무람했다. “너무했어요 수 십년을 살면서 쌓은정을 그렇게 냉혹하게 뿌리칠수 있어요. 제가 양보 하겠으니 그분과 재 결합하세요.”
“무슨 귀신이 씨앗을 까먹는 소리를 하오? 그녀인도 한국에 엄연히 남편이 있소. 나의 유일한 안해는 당신뿐이오.”
“그럼 재산분배에서라도 당신이 양보하세요. 그재산이 아니라도 우리둘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잘살수 있으니 모든 재산을 그분에게 주세요.”
“여보 봉숙이 정말 고맙소. 당신이 마음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소”
나는 힘껏 봉숙이를, 아니 안해를 포옹하였다.
창밖 너머로 바라보이는 서쪽하늘에서 저녁노을이 빨갛게 불타고있다. 바야흐로 도래하게 될 황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