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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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 댓글:  조회:2830  추천:43  2009-03-19
★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중국통 김준봉의 실전투자 노하우 ★ 그는 이 책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중국 부동산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북경올림픽 이후 30~40% 오른다. 둘째, 세계의 자금이 중국으로 모인다. 셋째, 급격한 도시화로 가치상승폭이 높다. 넷째, 경제발전은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킨다. 다섯째, 환율절상으로 환차익이 생긴다. 여섯째, 장기저리융자가 부동산을 폭발시킨다.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 :    김 준 봉  지음 * 보도자료 및 표지 이미지는 웹하드(www.webhard.co.kr) 접속 후 id : jssa2002 password : 2002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 보도자료 폴더>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부동산 투자 원칙>(출판사: 지상사, 정가:12,000원, 저자 :김준봉) 출간일: 2007년 9월 5일 북경공업대학 건축성시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있는 김준봉교수가 최근 <중국 부동산 투자 원칙>(지상사간, 정가:12,000원)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물론 개인재산권의 행사나 부동산 거품론, 환금성 문제 등으로 비관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최근 몇 년간의 지표들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다양한 부동산정책에도 불구하고 공급물량이나 가격 면에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어 성장 낙관론이 더 힘을 받는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는 북경공업대학에서 건축학과 부동산 석사과정 연구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안을 기초로 하였는데,  중국 정부 부동산정책 실무자들이 밝히는 실질적인 정책과 향후 전망, 그리고 부동산개발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얻은 생생한 정보는 물론 중국에 진출한 우리기업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담고 있다. 부동산투자는 원론도 중요하지만 각론이 훨씬 더 중요하고 몸에 와 닿는다. 언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여 얼마나 벌었는지, 어떻게 투자하였기에 실패하였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본서는 중국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자 하는 개인 및 기업에게는 투자와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교수이자 성공한 건축가이고 기업가이다. 15년 중국생활을 통해 부동산 매매는 물론 인테리어, 건축설계, 투자자문에 이르기까지 중국 부동산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정책과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론과 실전경험을 겸비한 전문가 중에 전문가다. 부동산과 관련한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는 중국 부동산의 현 상황에서 언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투자지역, 투자규모, 투자대상에 따른 실전투자 노하우를 이 책에서 밝힌다. 권말 부록으로 한국정부의 對중국 정책을 위한 제언과 부동산 거래관련 세금과 부동산 관련법령, 부동산중개인 자격취득 및 영업 관련 사항과 현장 실무에서 쓰이는 부동산용어를 총 정리하여 실무자나 초보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제별 분류       경제/경영 > 재테크 > 투자가이드 > 부동산       경제/경영 > 투자 > 해외투자 > 해외 부동산       비즈니스/경제 > 투자 > 부동산투자 > 중국 부동산     지상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7-1 두꺼비빌딩 1204호       전화 : 02) 3453-6111       팩스 : 02) 3452-1440       이메일 : jhj-9020@hanmail.net       담당 : 김낙현 김종석       면수 : 288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90994-58-5  03320       발행일 : 2007년 10월 10일       값 : 12,000원     실제 배포일 : 8월 31일에 배포됩니다. ▶나는 집 사러 중국에 간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다음의 이유를 들어 중국 부동산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첫째, 북경올림픽 이후 30~40% 오른다. 둘째, 세계의 자금이 중국으로 모인다. 셋째, 급격한 도시화로 가치상승폭이 높다. 넷째, 경제발전은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킨다. 다섯째, 환율절상으로 환차익이 생긴다. 여섯째, 장기저리융자가 부동산을 폭발시킨다. 물론 개인재산권의 행사나 부동산 거품론, 환금성 문제 등으로 비관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최근 몇 년간의 지표들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다양한 부동산정책에도 불구하고 공급물량이나 가격 면에서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어 성장 낙관론이 더 힘을 받는 상황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중국 부동산에 투자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경제발전에 따른 인구의 도시집중,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쾌적한 주거환경의 추구, 도농 간 격차 해소를 위한 도시화의 추구 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킬 요인이 된다. 물권법이 통과되고, 외자부동산금융의 이용이 실질적으로 가능해졌으며, 투자자금의 조달과 이익환수 및 법적인 과실송금 절차가 대폭 완화된 지금이 바로 중국 부동산에 투자할 적기이다. ▶중국 대학원생들이 배우는 중국 부동산 투자전략 교과서 본서는 저자가 북경공업대학에서 건축학과 부동산 석사과정 연구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안을 기초로 하였다. 중국 정부 부동산정책 실무자들이 밝히는 실질적인 정책과 향후 전망, 그리고 부동산개발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얻은 생생한 정보는 물론 중국에 진출한 우리기업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담고 있다. 부동산투자는 원론도 중요하지만 각론이 훨씬 더 중요하고 몸에 와 닿는다. 언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여 얼마나 벌었는지, 어떻게 투자하였기에 실패하였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본서는 중국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자 하는 개인 및 기업에게는 투자와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중국통의 실전투자 노하우 지금 중국대륙은 대도시와 지방 소도시를 막론하고 모두가 거대한 건설현장이다. 어느 성을 가더라도 도심에는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올라가고 재개발 공사판이 펼쳐져 있다. 돈과 사람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중국의 부동산시장이다. 저자는 교수이자 성공한 건축가이고 기업가이다. 15년 중국생활을 통해 부동산 매매는 물론 인테리어, 건축설계, 투자자문에 이르기까지 중국 부동산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정책과 시장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론과 실전경험을 겸비한 전문가 중에 전문가다. 부동산과 관련한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는 중국 부동산의 현 상황에서 언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투자지역, 투자규모, 투자대상에 따른 실전투자 노하우를 밝힌다. ▶극심한 변환기의 해법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부흥을 뒷받침하는 법률과 더불어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속속 마련되면서 중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부동산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부동산재벌이 탄생했다. 또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외국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중국 부동산개발에 뛰어들어 막대한 개발이익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의 양적 성장과 함께 부동산경기과열로 인한 난개발과 과당경쟁, 중복투자, 금융부실화 등 시장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저해하는 각종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부동산의 과잉개발 억제와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한편 부동산거래의 선진화와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평가사, 부동산중개사, 부동산관리사 등 관련분야 전문가를 육성하고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중국 부동산시장은 지금 극심한 변환기를 맞고 있다.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은 개인 및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부동산의 차이점, 정책의 흐름과 향후 전망, 성공한 투자사례를 분석하여 변환기의 투자해법을 제시한다. ▶저자 소개 김준봉(金俊峰) 북경공업대학 교수/ 공학박사/건축사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 청화대학 건축과 연구교수, 북경건축대학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북경공업대학 건축도시공학부 교수 겸 석사연구생 지도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연세대학교 건축도시공학부 객원교수,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겸직교수로 석박사생을 지도하고 있다. 2002년 중국에서 국제온돌학회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초대회장으로서 온돌의 세계화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중국 세계문화유산보호연구센터 특별초빙고문을 맡고 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건축사사무소 소장으로 건축설계를 담당했고, 미준건설(주)과 위가건축(주)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도시주거환경설계연구소장으로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금호관, 조각공원, 심양시 서탑교회 양로원 수양관, 연변 두래마을, 심양시 동북신학대학, 호남성 장사호텔 리모델링, 북경 신한그룹 리조트 등을 설계했으며, 2001년에는 제11호 대한민국 과학기술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중국 투먼시 두만강노래비 및 민속촌 국제현상설계에 당선되었고, 중국 산동성 펑라이시 신도시계획과 2008년 북경올림픽 배드민턴경기장 설계에 참여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주)공간건축의 중국대표를 맡았다. 주요 저서로는 《다시 중국이다》《중국 속 한국 전통민가》《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등이 있고, 《중국 경제성장의 비밀》《호설암의 기회경영》등을 공역했다. ▶추천사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 및 수많은 개인들이 왕래를 하고 있고, 2004년에는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입 교역량이 미국과 일본을 앞질러 제1의 교역국으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때에 시의 적절하게 발간되는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통해 중국과 관련 있는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재중한국인회 회장                                                                              김희철 오늘의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나 역시 중국과의 진한 인연으로 중국방문이 잦은데 그때마다 변화를 체감한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현장의 시각으로 집필한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은 중국에 투자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하며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중국 정법대학 명예교수                                                   재단법인 국제법률경영연구원 이사장                                                           로펌 티엘비에스 대표변호사                                                                             정영환 ▶책 속으로 일반적으로 2008년 북경올림픽 이후 중국의 부동산가치가 30~4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비록 자본주의 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공권력이 막강한 공산주의 국가이며, 구소련이나 스페인 등은 올림픽 이후 침체의 늪을 걸은 사례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p.30 중국 부동산의 거품론을 얘기하는데, 즉 규모의 경제가 아닌 무분별한 개발계획으로 인해 사무실과 아파트 등의 미분양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을 든다. 현재 지방의 경우 일부 상품형 아파트 혹은 사무용 건물들의 공급초과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국은 계획경제체제이므로 공급과잉현상에 대해서는 시장의 조절기능에 맡기는 것 말고도 규제정책을 통한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p.34 실제 거래되는 토지의 시세는 토지의 용도, 개발 인허가 가능성, 인프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여 결정된다. 특히 용적률로 토지가격을 계산하여 결정하는 방법이 일반적인데, 이 용도에 따른 용적률이 가격결정의 가장 큰 변수가 된다는 점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p.45 우리의 부동산에 해당하는 중국의 방지산이란, 방산(房産)과 지산(地産)의 합칭이며, 방옥(房屋:건축물)과 토지(土地)는 경제관계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자산의 범위에 속한다. 법적으로 말하면 토지와 방옥(건축물)은 유형물 형태로서의 자산을 의미한다. 방옥(건축물)과 토지는 물질의 속성과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며, 방산과 지산은 상응하는 생산관계(즉 소유권, 사용권, 저당권, 처리권 등 법적인 권리)를 갖게 된다.                              p.61 중국에서는 토지가격의 계산을 한국과는 달리 평당 건축면적에 대한 토지가격, 즉 누면(樓面)가격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는 매 평방미터당 건축면적이 부담하는 토지가격을 지칭한다. 즉, 토지 총 가격을 총 지상건축면적으로 나눈 것으로 표현되며, 혹은 단위토지가격을 용적률로 나눈 것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한국에서와는 달리 건축 연면적이 증가하면 토지가격도 증가하게 된다.                                                                  p.65 북경의 왕징 지역이나 상해의 롱커우 지역, 청도의 한인타운 등은 어느 아파트단지이든 임대가 잘 나가고 임대가격도 타 지역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시기에 따라 고급 형태로 변화해가는 속도도 가장 빠르고 이 지역의 국제적인 관리관례도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투자처로 적당하다.                                                              p.87 합자는 외국자본이 49%를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업체들이 '프로젝트(항목) 합작경영회사'의 형태로 개발 사업에 참여한다. 프로젝트(항목)합작경영회사로 참여하면 90% 이상의 주식을 사 들일 수 있다.                                            p.100 중국의 부동산시장은 토지사용권을 거래객체로 하는 토지사용권 거래시장과 주택 등 건축물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거래객체로 하는 건축물 매매 및 임대시장으로 구성된다.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고 건물소유권은 법인 및 자연인이 보유하는 분리소유의 형태이다.  p.135 부동산개발회사를 설립하려면 최저 자본금이 인민폐로 100만 위엔 이상이어야 한다. 단, 외국기업은 독자적인 설립이 불가능하므로, 중국 기업과 합자, 합작의 형태로 진출할 수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화교계 외국기업들이 부동산개발업체를 설립하여 입찰, 경매 등에 참여하여 부동산개발 사업을 하는 사례는 있지만, 그 외 외국기업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토지사용권을 받은 중국기업과 합자하거나 합작하여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다.                p.173 판매관리 전문회사는 분양뿐 아니라 입주 이후 시설물 관리도 해주기 때문에 한국의 유명 건설회사의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회사 인지도가 분양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현재 중국에는 외국계 부동산판매관리회사가 많은데, Century21 부동산체인점이나 CB Richard Ellis 등이 대표적이고, 화위엔(華遠) 부동산그룹이 중국 토종기업을 대표한다.                                                                                    p.203 ▶목차 *프롤로그 중국 부동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중국 부동산 개발의 현주소   중국 부동산 열기   대륙에 부는 부동산 바람 01중국 부동산의 원칙과 편견 낙관론(6가지): 서울․동경에 비해 많이 싸다   북경올림픽 후 오른다   세계는 중국으로 모인다   도농 간 격차가 생길 것이다   경제발전은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킨다   환율절상으로 환차익이 생긴다   장기저리융자가 부동산을 폭발시킨다 비관론(3가지): 거품으로 폭락할 수 있다   개인의 재산권행사가 불투명하다   공급 과잉현상이 벌어진다   환금성이 떨어진다 오른 임대료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가 투자성을 높인다   중국은 자금의 출처를 문제 삼지 않는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임대업도 승산 있다 골프장은 적자난, 그래도 투자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골프장은 대박으로 가는 길목   골프장이 다 대박은 아니다. 검토 또 검토 레저 개발은 금맥일 가능성이 높다   레저 붐! 가파른 성장 예측 중국의 토지가격과 전망   북경 도심 평당 2천 5백만 원   2007년 북경 한인타운의 아파트 실례   최근 5배 정도가 올랐다   중국의 아파트가격 결정요인 2007년도 부동산시장 10대 예측 02중국 부동산 개요 중국에서 부동산이란 용어의 정의 왜 중국에서는 부동산을 방지산(房地産)이라 하는가? 부동산가격의 구성에 대하여   부동산가격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   부동산가격의 유형   토지소유권가격과 토지사용권가격   토지 징용가격(征地價格)ㆍ임대가격(批租地價)ㆍ양도가격   총 가격ㆍ단위(单位)가격ㆍ지상단위건축면적토지가격 토지가격과 건물가격의 관계에 대하여 중국 토지사용권가격의 실제 중국 부동산업 행정관리   부동산 행정관리기구   부동산 산권 관리 03중국 부동산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어떻게 중국 부동산에 투자할 것인가? 중국에 송금하기 투자자금 조달 방법   개인인 경우   법인인 경우 개인의 해외부동산 취득 허용범위 중국에서 집사기   상품방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상가나 오피스를 구입해서 임대하기   상품방 아파트와 상가의 재임대사업에 대하여   사무실 혹은 상품방 아파트 구매 후 판매 상가 임대 시 유의사항 인테리어 및 리모델링 사업 실제적인 부동산 개발사업과 투자에 대하여 북경 한인타운 왕징 지역을 중심으로 한 투자전략 중국은 '다른 나라'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다른 세계'이다   임대 전문대리업체의 횡포에 대하여 권중부록 : 사례연구 성공사례 실패사례 중국 부동산 성공투자 7가지 원칙 중국에서 부동산으로 망하는 14가지 방법 중국에서 성공한 한국기업   무영건축   (주)창조E&C   북경 건양부동산 유한공사 04중국 부동산의 투자와 개발 중국의 토지 개념   국가가 강제로 환수할 수도 있다 중국 부동산은 분리된 소유권   중국에서의 건물 매매 중화인민공화국 토지관리법   중국에서 토지의 가치   개발 목적과 규모에 따라 사용료가 변한다   토지의 사용권과 사용기간 중국에서 부동산 투기를 보는 시각 05중국의 토지제도 토지사용권   토지사용권의 사용기한   토지사용권의 양도   토지대금 지급방식   토지가격   토지의 용도   토지사용권에 대한 재산권 행사   토지사용권 취득시의 유의사항 외국투자 기업의 중국 토지 취득방법   국유토지사용권 취득   집체 소유토지의 사용방법 토지시장의 종류   1급 토지사용권 시장   2급 토지사용권 시장   농촌 토지징용 시장 06중국의 주택제도 주택의 종류   상품방(商品房)   경제적용방(经济适用房)   염조방(廉租房)   안거주택(安居住房)   방개방(房改房)   미리방(微利房)   해곤방(解困房) 외국인 주거용 부동산 매매   아파트 구매 및 판매 관련규정   신축아파트 예약구매   기존 아파트 구매 외국인 주거용 부동산 임대 주택 구입관련 세금 및 비용   주택 구입시의 세금 및 비용   주택 보유과정의 세금 및 비용   주택 판매시의 세금 및 비용 07중국 부동산 개발 절차 부동산개발이란 부동산 개발기업 프로젝트 설정 및 기업 설립 기본계획 설계 토지사용권의 획득 수용토지 철거 및 이주 보상 공정건설 시장판매 사후관리 08중국 부동산의 아주 짧은 역사 개발 붐, 거래 붐, 투자 붐! 부동산시장 형성과정   중국의 주택보급률   월급이 적은데도 비싼 집을 사는 중국 사람들 한국인의 중국 부동산 투자   1차시기(1992년〜1996년)–초기 탐색시기   2차시기(1997년〜2000년)–초기투자 몰락기   3차시기(2001년〜2005년)-건설사와 시행사 재진입기   4차시기(2006년〜현재)-외국인 투자 제한과 정착준비 베이징의 대형 개발프로젝트 사례들   왕푸징(王府井)주변개발   창안지에(長安街)의 동방광장   차오양(朝陽)구의 중심상업구역   북경 남부의 BDA(Beijing Development Area) 속출하는 부동산 재벌   짧은 시간 엄청난 발전 그리고 산통   중국 부동산에 투자 잘하면 세계 갑부된다 부동산시장으로 몰려드는 돈   건설현장은 만만디가 없다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드는 인재들   초호화 고가아파트 봇물   우리가 중국 가서 배운다   중국 사람들 부동산 열공 중 09중국 부동산정책의 흐름 중국의 대책 부동산의 금융조절 및 통제 부동산의 개발과 투기억제정책 10중국 부동산의 미래 전망 중국 부동산시장의 미래   인구증가와 도시화   주택의 자연적인 수요 *에필로그 중국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투자의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중국은 극심한 변환기이다   변환기에는 분명 기회가 숨어 있다   현지화는 매우 중요하다 *특별기고 한국정부의 對중국 정책을 위한 제언 권말부록 부동산 거래관련 세금   보유단계   매입단계   양도단계 부동산 관련법령  《중화인민공화국 도시부동산관리법》  《도시부동산 개발경영관리조례》 부동산중개인 자격취득 및 영업 관련 사항 북경 유명 아파트단지 부동산용어 10여년째 중국과 인연을 맺고 중국을 몸으로 체험한 전문가다운 충고들로 가득한 ‘다시 중국이다’가 중국을 제대로 알고 싶은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저자에게 100통 가까이 온 이메일들 중에는 “진작 이 책을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탄식 어린 찬사들이 수두룩하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던 김 교수가 처음 중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선양(瀋陽) 동북신학대학 건물 설계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연변과학기술대 건축과 객원교수 신분으로 건축학을 가르쳤고 대학 졸업 후 한때 연극판에 몸담았던 ‘전력’을 살려 연극반 지도교수로도 활약했다. 지금 그는 베이징공대 초빙교수다. 한 달에 3~4회씩 중국을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2003년 ‘사스’ 파동이 났을 때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베이징에 잔류하면서 한인 교회와 함께 구호활동에 힘썼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보다 2~3배쯤 많은 사람을 만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숱한 ‘펑요우(朋友·친구)’들과 ‘?시(關係·관계)’를 맺었다. 그는 “중국은 이미 ‘더럽고 무식하고 못 사는’ 나라가 아니며 중국인들이 겉으로는 엉성해 보여도 나름대로의 합리적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중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21세기에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중국과 함께 뒹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과 북한, 재중·재미·재일동포로 구성되는 ‘한민족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조선족 10만명을 한국에 데려와 ‘한·중 전문가’로 키우자는 ‘신(新)십만양병설’을 내놓기도 했다.
72    다시 중국이다 댓글:  조회:2261  추천:43  2009-03-19
약간 엄한 교수님 같은 인상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면서 금세 연극배우 같은 표정으로 바뀐다. 김준봉(48) 교수에게는 표정만큼 다양한 직함이 있다. 연세대 객원교수이며 베이징공업대학 교수, 동북아 도시주거환경연구소 소장, 중국 세계문화유산 보호연구센터 고문, ㈜공간 건축사 사무소 중국대표에 재미있게도 ‘국제구들(온돌)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며 연극반 활동을 열심히 했고, 앞으로 영화배우가 되는 꿈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김 교수가 최근 엮어 ‘다시 중국이다’란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성공적으로 정착해 사는 반면, 가까운 중국에서는 자리잡고 사는 이들이 적어요. 사업 실패해서 오도가도 못하는 한국 사람들, 각개격파로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들,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중국인들과 아무것도 못하는 한국영사관, 이런 것이 답답해서 책을 쓰게 됐지요.” ‘중국서 이 정도면 완전히 망한다’든가, ‘중국인이 미움받는 14가지 이유’ 등 잠언식으로 이뤄진 그의 글은 읽기엔 틀림없이 재미있지만, 중국에서 산다는 것을 ‘공포’스러워 보이게 한다. “중국은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나 선진국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돈을 내야 하죠. 그래서 정이 떨어질 때가 있지만, 그것을 그 나라의 문화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실력자이자 우리의 파트너로서 다시 가깝게 지내야 할 상대라고 믿고, 1998년부터 온 식구와 함께 옮겨가 살고 있다. ‘다시 중국이다’에는 중국 투자 방법,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 등이 박력 있는 에세이 스타일로 쓰여 있고 중국에서 성공한 기업의 ‘비법’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또 중국식 계약서 쓰는 방법까지 부록에 실어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이나 자녀의 중국 유학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끝) *《다시 중국이다》 보도자료 및 표지 이미지는 웹하드(www.webhard.co.kr) 접속 후 id : jssa2002 password : 2002 <다시 중국이다 보도자료 폴더>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중국이다(개정증보판)               떠오르는 거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서                                                       김 준 봉  지음     ▶주제별 분류       비즈니스/경제 > 경제 > 중국경제     역사와 문화 > 동양문화 > 중국문화     지상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7-1 두꺼비빌딩 1204호       전화 : 02) 3453-6111       팩스 : 02) 3452-1440       이메일 : jhj-9020@hanmail.net       담당 : 김낙현 김종석       면수 : 598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90994-60-8  03810       발행일 : 2007년 12월 26일       값 : 17,000원       실제 배포일 : 11월 26일에 배포됩니다. ▶떠오르는 거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서 중국에 한 달간 다녀오면 중국 박사가 된다. 중국에 3개월을 살면 중국 석사가 되고, 중국에서 2~3년을 살면 중국 학사가 된다. 그리고 중국에서 5년 이상 살면 중국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나라라고 토로하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중국통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한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민족도 다양하며 변화와 발전 속도가 너무도 빠르기 때문이다. 어제의 중국은 이미 과거의 중국일 뿐이다. 중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중국을 바다 건너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한중수교와 함께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또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옮긴 책이다. 현장에서 중국인들과 직접 살을 부대끼며, 놓치기 쉬운 현재의 중국인과 중국사회, 중국문화를 바른 통찰력으로 꼬집어 낸 현장 보고서이자 거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서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한국인이 그리고 한국기업이 기회의 대륙에서 어떻게 하면 단단히 뿌리내려 함께 성장해 나가고, 중국동포를 포함한 우리 한민족의 번영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왜 다시 중국인가? 올해로 중국과 수교한 지 15주년이 되었다. 현재 한국의 대 중국 지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제 중국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눈에 비친 중국은 무식하고 더럽고 못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중국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우리가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될 동반자가 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야 할 나라가 된 것이다. 중국의 발전은 라인 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고 눈부시다. 중국은 더 이상 무식하고 더럽고 못사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툴 유일한 나라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런 중국의 성장을 위기로 볼 것인가, 기회로 볼 것인가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준비에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중국이라는 변수는 현재 우리에게 위협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비록 위험적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우리 한국으로 보면 충분히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넓은 국토와 13억 인구는 우리의 공장이고 노동자이자 우리의 시장이고 고객이다. 당면한 문제는 중국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여 어떻게 하면 중국의 거침없는 성장을 위협이 아닌 우리의 기회로 삼느냐에 있다. ▶현장의 시각으로 중국을 말한다 매년 5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중국대륙을 방문하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저마다 중국전문가를 자처하고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정보 중에 중국의 개요와 전반적인 사항들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는 많지만, 정작 중국에 진출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많지 않다. 외국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는 실제적인 사업이나 생활과 관련된, 우리가 흔히 한인타운에서 보는 생활정보지나 벼룩시장에 실린 정보다. 그래서 본서는 철저하게 경험위주의 스트리트 레벨 뷰의 시각을 잃지 않고 기술하였다. 물론 중국의 정책이나 사상, 경제생활과 밀접한 사항은 원론에 입각해 기술하였고, 그 원론이 중국의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다시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간 많이 쓰인 일반 중국 안내서와는 뚜렷한 차이를 두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유학을 하거나 아니면 외교를 하거나, 중국의 현주소를 가장 정확히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생생한 현장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김준봉(金俊峰)  북경공업대학 교수/공학박사/건축사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 청화대학 건축과 연구교수, 북경건축대학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북경공업대학 건축도시공학부 교수 겸 석사연구생 지도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연세대학교 건축도시공학부 객원교수,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겸직교수로 석박사생을 지도하고 있다. 2002년 중국에서 국제온돌학회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초대회장으로서 온돌의 세계화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중국 세계문화유산보호연구센터 특별초빙고문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다시 중국이다》《중국 속 한국 전통민가》《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등이 있고, 《중국 경제성장의 비밀》《호설암의 기회경영》등을 공역했다. ▶추천사 중국에 진출하기 전에 매우 유용한 지침서가 될 이 책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횃불과 같은 존재다. 중국의 교수로서, 그리고 중국에서 실제 사업을 하는 한국인으로서 중국에서 몸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놓아 쓴 글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 가치가 발휘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놓치기 쉬운 지금 중국의 모습을 바른 통찰력으로 꼬집어 낸 김준봉 교수의 식견과 집념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이 바람직한 미래 한중관계를 이끌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혀지길 바라는 바이다. 현재의 중국에 대한 정보가 갈급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보가 쏟아지는 시기에 올바른 정보를 취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권하고 싶다.                                                                   전 국무총리  이수성 올해로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았다. 한국은 추격해 오는 거대한 용으로 비유되는 중국에 깜짝 놀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에 대한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많은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있으며 진출하려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중국 진출이 중국을 제대로 알고 중국에서 무엇인가 성취하려고 하는 경우보다는 그래도 중국이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싸니까’ 하는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중국에 사업을 하러 가서, 또는 유학을 가서 패가망신한 한국인들이 속출한다. 《다시 중국이다》는 이미 10여년 넘게 실제로 중국을 오가며 필자가 몸소 체험하고 느낀 점을 총망라해 정리한 책이기에 망망대해와 같은 중국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곧 중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시행착오를 덜 겪게 해주는 필독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동포타운신문 발행인 겸 편집국장  김용필 ▶책 속으로 중국이라는 변수는 현재 우리에게 위협은 아니다. 비록 위험적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우리 한국으로 보면 충분히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현재 팽창주의적인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주 많기 때문에 중국의 위협론은 그만큼 설득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은 변화의 중심에 있다. 물론 중국을 우리를 뛰쳐나온 맹수로 볼 때 그 위험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볼 때 북한처럼 고립되거나 막가파는 분명 아니다. 중국의 경우 맹수가 자기 영역에서 나와 다른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중국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p.45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없는 것(無)이 두려운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不均)이 두렵다고 했다.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은 요즘 말로 유통이며 그것을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상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사람들은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재능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중국대륙의 상업은 우리에게 뒤져 있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곰에다 비유할 수 있다. 곰은 미련한 동물 같지만 물고기를 잡는 데는 수달 못지않은 민첩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곰은 훈련만 시키면 재주까지 부릴 줄 아는 영특한 동물이기도 하다. 즉 곰에게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이제 갓 동면에서 깨어난, 훈련을 거치지 않은 곰이다. 따뜻한 봄이 되고 정식 훈련과정을 거칠 때 그 곰은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같은 중국 사람인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익히 알 수 있다.                                              p.104 우리는 같은 입사 동기면 웬만하면 같은 조건의 급여를 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아무리 입사 동기라 하더라도 일의 성과나 일의 양에 따라 반드시 급여에 차이를 둔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영업직원이 아닌 일반직원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영업사원들을 두고 기업을 경영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훨씬 더 능력급과 성과급 제도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서 영업사원을 뽑아 보면 영업을 해본 경험이 없거나 영업에 관한 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초보자들이 대부분이다. 인력은 많지만 숙련된 인력을 찾기는 그리 만만치 않다. 일자리에 비해 워낙 인구가 많고 넓은 지역인지라 지역을 떠나면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p.228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지방자치가 확보되어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물론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강한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지방분권 또한 잘 되어있어 지방보호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다. 연고 없이 타 지역의 식품이 해당 지역에서 팔리려면 적지 않은 진입장벽을 거치고서야 가능하다. 물류비용 또한 적지 않아 오히려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이 원가 면에서 부담이 적은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방경제의 발전이 해당 지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타 지역의 기업에서 만든 물품이 자기 지역에서 잘 팔릴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역으로 이런 지방보호주의를 활용하는 전략도 펴봄직 하다. 즉 해당지역에 진출하여 지방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정책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을 활용하는 것이다.                p.244 조선족 통역을 쓸 경우 우리말(특히 외래어)을 잘 몰라서 통역이 안 될 때가 많다.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모르거나 잘못한 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국문화에 젖어 습관적인 것도 있고 창피하기 때문이다. 외래어를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조선족 통역을 쓸 경우 한 단어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통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대화는 번역해서 문서로 하는 것이 확실하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제품의 칼라, 개수, 납기일, 정확한 사이즈 등을 정확히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꼼꼼함이 없으면 언젠가는 고생하게 된다. 자주 체크하여야 하고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다른 통역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것도 요령이다. 중요한 일을 하면서 한 사람의 통역만 믿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계약은 꼭 서류를 작성하여 서면으로 해야 한다.                                                                                  p.281 총경리가 생산직 직원의 문제를 1대1로 직접 처리하지 말자. 그리고 총경리는 절대 전면에 나서지 마라. 중국에서의 총경리는 전권을 가지고 경영을 책임진 최고의 권위자로서 그 권한을 인정받도록 자신이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중국의 사정을 잘 모를 때 직원들과 친해지고 가족과 같이 지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총경리인 필자가 너무 많이 앞에 나서고 중국어가 된다고 직원들의 일을 일일이 처리한 결과 상투를 잡히고 말았다. 아직 이곳의 직원들(특히 현장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고와 수준이 발전되어 있지 않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중국 시골의 현재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그런 모습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보기 쉽다.                                                        p.310 중국인은 혼자서는 식사하기가 편치 않기 때문에 별로 친하지 않아도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느 나라의 사람들도 마차가지겠지만 그저 ‘認識(알다. 서로 통성명하고 얼굴을 아는 정도에 그침)’일 뿐인 사람에게 흉금을 터놓는 일은 절대 없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好朋友(하오 펑요우-좋은 친구사이)와 老朋友(라오 펑요우-오랜 진짜친구) 사이로 발전해야만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다. 중국인들은 한 번 ‘老朋友’나 ‘自己人(쯔지런-자기사람: 믿을 수 있는 관계)’이 되면 상대방이 배신하기 전에는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친구로서 의리를 저버리거나 배신하면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보복을 하여 가슴에 쌓인 ‘氣(분노, 恨)’를 쏟아 낸다. 그래서 쉽사리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용서하는데도 대단히 인색한 편이다. 잘못을 시인하면 용서 받기보다는 벌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p.329 한국국제학교의 입학자격은 조금 까다롭다. 이는 무분별한 중국 조기유학 붐 때문이다. 부모와 같이 살지도 않고 학업능력도 처지는 일부 학생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오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는 부모 중 한 분 이상이 정상적으로 중국에 거주하는 경우에만 입학을 허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북경 한국국제학교는 학생이 전학을 올 경우 고등학생들은 일정한 시험을 치러 수학능력을 인정받고 담임선생님의 면접을 거쳐야만 입학을 허가한다. 이는 전혀 수학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들어와 기존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것을 염려하여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고육책으로 내놓은 방법이다. 학비도 싸고 안전하고 한국이나 중국 또는 다른 외국의 대학에 진학하기에도 좋은 곳이 중국 현지의 인가받은 한국국제학교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한국국제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은 대부분 HSK성적이 중국 대학에서 요구하는 등급을 취득하기 때문에 중국어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p.387 ▶목차 찬사의 글 추천사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CHAPTER 1 왜 중국인가 중국은 위험한 존재인가, 위협적인 존재인가? 중국의 영향권에 대하여 중국으로 왜 가야 하는가? 동경시(時)에서 북경시(時)로 중국의 미래 그리고 한국 중국의 지속성장을 낙관하는 20가지 이유 CHAPTER 2 이것이 중국이다 중국인을 이해하는 열 가지 단서 명함은 바로 이력서 이것이 진짜 남녀평등 미국보다 훨씬 더 좋은 중국 여성의 지위 중국인의 합리적인 요령 단체로 기합 받는 휴대전화 충청도 청주 VS 중국 북경 중국인의 핑계는 가장 무서운 흉기 차이나 타임 그리고 기자회견장의 난동 중국인이 미움 받는 14가지 이유 & 추악한 중국인 장보고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CHAPTER 3 조선족은 중국인이다 재중동포 VS 재미동포-교포와 동포의 차이에 대하여 조선족은 우리의 아군 피는 물보다 진하다 중국의 조선족 역사 조선족을 내편으로 만드는 비결 8가지 출가외인 CHAPTER 4 중국에서 성공은 그리 멀지 않다 CEO의 조건과 바람직한 합작방법 10가지 성공하기 위해 꼭 해야 할 5가지 원칙 좋은 파트너를 만드는 10가지 방법 중국에서 성공하는 14가지 비결 중국인들의 꽌시(關係)와 한국인들의 관계 중국에서의 성공은 결국 영업에 달렸다 중국에서 우리가 해야 할 34가지 CHAPTER 5 중국투자 이렇게 하라 중국에서 투자 지역 선정하기 중국투자 피해방지 10계명 안전한 중국투자를 위한 10계명 중국 부동산 구입에 관하여 [성공사례①] 오션윈과 노용악 회장 그리고 維亞灣 주거단지 개발사업 [성공사례②] 요녕성 심양시 SR 국제신성 CHAPTER 6 중국에서 실패는 무척 가깝다 중국에서 망하는 13가지 비법(?) 조선족과 통역 중국에서 이 정도면 쉽게 망한다 중국에서 이 정도면 완전히 망한다 중국에서 한국인이 미움 받는 12가지 이유 중국에서 하지 말아야 할 23가지 CHAPTER 7 중국에서 살아가기 중국에서 성공하는 생활 중국인과 친구하기 중국인들의 식생활 습관 중국에서 물건 사는 요령 한국에 온 중국인 접대방법 CHAPTER 8 천재라면 중국으로 유학간다 우리 정부는 중국 전문가를 키우려는 의지가 있는가? 한국 정부의 대 중국 정책을 위한 제언 10가지 신 십만양병설 중국 조기유학의 질을 한 차원 높이자 성공적인 중국 조기유학을 위하여 중국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 내 조기유학 학교 정보 현지 학부모의 조언 중국 유학 이렇게 하면 망친다 중국 유학생활 10계명 글로벌 기업체들의 인재선발 노하우 중국에서 만난 제자들과 사람들 부록 1-중국에서 계약하기-합동서 기본 요령 2-중국합자계약서(중문) 3-중국합자계약서(국문) 4-주택임대차계약서 5-막 배우는 중국어-저자의 체험 중심으로 6-중국 정부기관 홈페이지 주소
71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 ‘온돌(Ondol) 그 찬란한 구들문화’ 댓글:  조회:2626  추천:55  2009-03-19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  ‘온돌(Ondol) 그 찬란한 구들문화’ 개정증보판  김준봉․리신호․오홍식 지음  국회의원 김재윤 추천 ▶ 주제별 분류: 기술/공학/의학 > 건축/인테리어 > 건축일반 > 한국건축 자연․교양과학 > 교양과학 > 건축사 > 한국건축사 청홍(지상사)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7-1 두꺼비빌딩 1204호 전화 02)3453-6111 팩스 02)3452-1440이메일 : jhj-9020@hanmail.net담당 : 김낙현 김준균 면수 : 496 페이지 판형 : 신국판(152*225mm) 양장ISBN : 978-89-90116-31-4 03540 발행일 : 2008년 2월 20일 값 : 36,000원실제배본일 : 2008년 1월 28일 ▶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개정증보판 온돌이 우리 한민족의 문화적 뿌리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의식주 문화의 근간이 바로 온돌이기 때문으로, 우리 한복은 온돌 문화에 적합하게 발달해 왔고, 우리의 발효음식 문화는 따뜻한 온돌과 관계가 깊다. 우리의 한옥은 온돌을 빼어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돌의 보호하기 위해서 한옥이 지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100% 온돌에서 사는 민족은 지구상에는 우리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온돌은 한민족 문화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그 유래가 깊고 넓으며 그 영향 역시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돌에 관한 서적이 많지 않은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 이 책은 지난 2006년 과학기술부로부터 우수도서로 인정을 받았으며, 그동안 온돌과 구들에 관해 궁금해 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의 개정증보판이다. 지난 판에서는 너무 이론에 치우친 탓에 정작 온돌의 구조와 원리, 그 시공법 등이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었다. 또 다양하고 유서 깊은 우리의 여러 종류의 온돌에 대해 두루 이야기 하지 못한 내용도 많았다. 저자는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대폭 증강시켰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우리 온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칠불사 아자방에 대해서 소상히 기술하고 있으며 또 온돌의 용어 정리, 다양한 온돌방 만들기, 온돌과 보건의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새로 내용을 추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온돌을 지키고 발전시켜 세계화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10가지 제안을 주창하고 있다. ▶ 우리 민족의 독창적이면서도 독자적인 발명품 ― 온돌(구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족과 민족은 그들의 자연여건에 맞춰 오랜 세월 동안 형성시킨 독특한 생존방식과 의식주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한 의식주 중 주에 해당하는 중요한 실내 난방으로 우리 민족은 바닥난방법 기술인 온돌(구들)을 계승해왔다. 바닥난방은 가장 합리적인 난방방법으로, 특히 온돌난방은 아궁이에 열을 가하면 방바닥 아래의 공간(고래)을 따라 열이 이동하면서 바닥에 열에너지가 저장되고, 이 축열된 에너지가 서서히 방열(放熱)하면서 실내를 따뜻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는 바로 복사와 전도, 대류라는 열전달의 3요소를 모두 갖춘 독특한 방법으로써, 인류 역사와 첨단과학을 걷는 현대사회를 통틀어 봤을 때 우리 민족만의 독창적이면서도 독자적인 난방방법인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한국 사람은 온돌방 아랫목에서 태어나 그 자리에서 자라며 늙고 병들었을 때 역시 아랫목에서 치료받았다. 죽은 뒤에는 아랫목을 잠시 떠나지만, 제사상을 받을 때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아랫목과 밀착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어렸을 적 시골 고향집을 떠올려본다면, 온돌방 아랫목에는 항상 이불을 깔아 보온을 유지했고 손님이 오거나 외출했던 가족이 돌아오면 앉기를 권하던 자리로, 밥도 이불 속에 묻어두어 온기를 유기시켜주었다. 또한 식구들의 의식주나 예의범절 등을 잘 꾸려가도록 이끌어주는 안주인의 자리이기도 했다. 이것은 비단 농사짓던 옛날 고향집의 이야기만이 아닌, 지금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대식 주택에 살아도 방 하나 정도는 온돌로 시설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유이다. ▶ 우리가 온돌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 요즘 출간되는 영한사전을 펼쳐보면 온돌이 ‘하이퍼코스트(Hypocaust)’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은 로마시대의 바닥난방 형태로 마룻바닥에 수로(水路)를 설비한 후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던 시설인데, 우리의 전통온돌(구들)처럼 축열이나 취사 겸용 등의 복합적인 구조도 아닐 뿐더러 열기가 직접 전해지지도 않는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우리 고유의 온돌이 이러한 것과 비교되면서 그것의 명성과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록매체에서 온돌을 매도하고 있다고 분노하기 전에 앞서, 먼저 우리가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옷처럼 직접 살갗에 닿는 난방시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책에서 저자들이 언급한 바, 우리 온돌의 우수성을 일찍 깨달은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은 그것을 주택난방에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모든 삶의 영역에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그네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작게는 건축물 증후군의 검은 손을 떨쳐버림으로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을 물려주는 것은 물론, 크게는 온돌 종주국의 자존심을 되찾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해본다. 책에 수록된 온돌의 역사와 그것의 변천, 그리고 예전 온돌방 형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기존 온돌의 효용성에 바탕하여 현대화와 미래화를 추구하는 서술은, 건축학 전문가와 생태환경 전문가의 폭넓은 식견과 높은 지식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이다. 또한 이 책의 별미는, 현장조사를 통해 엄선한 사진과 그림, 도면뿐만 아니라, 정독한 후에는 내 손으로 직접 웰빙(Well-Being) 온돌(구들)바닥을 놓을 수 있는 상세한 설명과 실제 시공 장면을 수록하였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실용서인 셈이다. ▶ *추천사* 우리 민족의 주거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대작업 - 김재윤 의원의 추천사 중에서 구들은 우리 주거 문화의 고향이요 향수이다. 우리의 구들에 대한 연구는 과거의 역사적 업적뿐만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사라져가고 있는 뿌리를 찾는 작업이며, 그 동안에 연구해 왔던 인류학적이고 민속학적인 연구와 더불어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연구를 더하여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에 널리 전파해야 할 우리의 찬란한 민족 유산이다. 사실 우리의 구들은 근대화로 인해 점점 그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물론 서구화나 도시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 전통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금할 길이 없다. 지금 우리 전통의 좋은 것은 살려 후손에까지 물려주는 지혜를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찾지 않으면 안될 때라는 점에서도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국제온돌학회는 우리 전통문화인 온돌의 연구와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도 많은 힘을 쏟고 있으며, 본인은 국제온돌학회 상임고문자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특히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번 발간을 통해서 동아시아에서 우리 민족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가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 개정증보판의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이 책이 부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온돌과 전통민가 살리기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08년 1월 김재윤 국제온돌(구들)학회 상임고문/대한민국 국회의원/문학박사 ▶ 저자 소개 김준봉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공학 석사와 경영학 석사,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변과학대학기술대학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북경공업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3년부터 연세대학교 건축도시공학부 객원교수와 국민대학교 출강을 겸하고 있다. 현재 국제온돌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다시 중국이다》, 《중국부동산 투자의 원칙》, 《중국 속 한국 전통민가》 등이 있다. 리신호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농업시설 및 환경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농업건축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조교수와 주임교수, 부교수를 거쳐 현재 지역건설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온돌학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부정정 구조물 해석과 설계》 등이 있고, 농림부장관 표창(2002), 한국농공학회 학술상(2002) 등을 수상한 적이 있다. 오홍식구들문화연구원 원장. 강원도 문막 구들협회 구들박물관을 설계 및 시공했으며, 강원도 문막 푸른솔 팬션 황토구들방, 경기도 양평 용두리 불암선원, 강원도 춘천 의병마을, 경상북도 문경 여우목 산장, 강원도 봉평 황토구들 마을 등의 구들을 시공했다. 현재 구들협회 정규 구들학교 및 충북 나찾사 마을, 경기 귀농사모 등에서 구들 교육과 시공에 힘쓰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이제는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온돌을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민족문화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 때다. 우리가 어물어물 우리 고유의 온돌 문화를 널리 알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자기들 중심으로 이미 바닥난방 설비의 독자적인 ISO기준을 우리 대한민국을 배제한 채 만들고 있다. 서양에서 지금 한창 연구하는 생태환경을 고려한 바닥난방의 근원이 우리 민족의 온돌임을 정확히 알리고 더 늦기 전에 온돌의 현대화와 산업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p. 8 ▶ 불목하니라는 말은 아궁이에 불을 때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예전에야 행세깨나 하는 집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지경에 방도 여럿이 있어 추운 날 아궁이마다 불을 때는 일도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역사에 남은 불목하니 중에도 색다르게 유명한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송강 정찰과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등이 등장하는 임진란 때의 이야기나 초의선사와 함께한 추사 김정희 이야기에서도 나와 있다. -p.54 ▶ 온돌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조선왕조실록>인데 세종 실록 7년 을미 7월 병진이며, 바닥에 본격적으로 장판을 깐 것도 이때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구들은 순 우리말로 구운 돌이란 의미에서 발전하였고 지금까지 넓게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온돌은 한자로 따뜻할 온(溫)자와 돌출하거나 발산한다는 돌(突)자를 쓰는데 이같이 열석이라고 쓰지 않고 온돌로 쓰는 데는 이미 따뜻한 복사난방의 의미를 두고 조합해놓은 단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은 온돌의 의미를 단순히 돌바닥을 뜨겁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닥복사 난방과 열을 저장하는 의미를 넣어 용어를 정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p.72 ▶ 내 손으로 놓은 구들방 위에서 지낸다는 것은 그냥 집만 짓고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 있다고 한다. 마치 엔진이 설비된 느낌이랄까,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들고 문화의 뿌리를 잡는다는 자긍심도 가지게 된다. 줄고래구들 중에 구들개자리를 벌려서 만든 것 하나와 구들개자리 없이 직접 고래로 연결되는 형식을 시공 예로 들어본다. 집이 지어져 있는 상태와 새로 짓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4, 5평 정도 크기의 구들방을 대상으로 전개해 본다. -p.168 ▶ 경남 하동군 칠불사에는 아자방이란 구들이 있다. 이 아자방은 우리 전통 고래온돌 중에서도 가장 과학적인 온돌이다.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선사가 아(亞)자 모양으로 구들을 만들어 그렇게 불리는데 한 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이나 따뜻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불이 오래 타는 땔감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숯가마처럼 불을 꺼트리지 않는데 그 비밀이 있다. 이 아자방 고래온돌이야 말로 우리 선조가 남겨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가장 효율적인 그래서 가장 과학적인 난방법임을 입증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p. 238 ▶ 그 후 라이트는 그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한국인의 방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난방방식이다. 이것은 태양열을 이용한 복사난방보다 훌륭하다. 발을 따스하게 해주는 방식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난방이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바닥에 깐 돌 사이로 온수파이프를 통하게 하는 패널난방법을 개발하여 그의 주택작품 전반에 보편적으로 채용하였다. -p.384 ▶ 고유가시대를 맞이한 지금, 화석연료인 석유를 사용하는 기름보일러의 온수온돌보다는 심야전기를 이용하는 전기고래온돌로 하면 1/4 정도의 난방비용이면 훨씬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추위가 심해 연료를 많이 사용할수록 비용 차이는 더욱 커진다. 심야전기를 이용하게 되면 오지농촌의 경우에도 겨울철 기상상태에 따른 난방연료 공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농촌에서 살림집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 농업부산물과 산림활용 측면에서 불을 때는 구들방 하나 정도는 꼭 둘 필요가 있고, 나머지는 경제성과 안전성, 편리성 등을 고려하여 전기고래온돌을 설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462 ▶ 목차원색화보/고래온돌(구들) 놓기 개정판 서문 : 한글, 금속활자, 그리고 온돌 추천사 : 우리 민족의 주거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대작업 책을 열며 우리의 전통문화 구들 우리 민족 최고의 발명품인 구들 독특한 구들난방의 문화적 가치 온돌의 과학은 서양보다 1000년 이상을 앞선 발명 온고지신, 온돌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 현재 외국의 바닥난방 발전현황 국제온돌학회, 가장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제1장 한민족의 독창적인 문화유산 구들 한민족 구들 문화의 형성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아날로그 문화 구들은 좋은 것이여 구들의 문화적 의미 역사 문화 속의 구들과 인물 이야기 고래 온돌-구들의 과학적 의미 현대생활에 꼭 필요한 구들방의 효용 구들과 민족문화 제2장 고래온돌(구들)의 용어 정의와 구조특성 온돌 혹은 구들에 대한 용어 정의 국내 온돌난방의 변천 고래온돌의 구조특성 구들의 구성 구들의 재료 구들의 종류 참고 제3장 고래온돌(구들) 놓기 구들(고래온돌) 놓기의 실제(설계와 시공) 기초 공사 구들방 불 때기 아궁이 청소와 관리 초보의 쉽고 간단한 3, 4평 친환경 구들방 만들기 내 손으로 구들방 만들기 함실 아궁이 줄고래 개량구들 함실 아궁이 줄고래구들 부뚜막 아궁이 줄고래구들 입고래 원형구들(방 지름 4,3m) 입고래 원형구들(방 지름 5.8m) 선고래 원형구들(방 지름 4.0m) 제4장 온돌과 보건의학과의 관계 전통온돌의 보건의학적 의의에 대하여 온돌은 보건의학을 포함하는 문화이다 구들과 인간의 상호관계 현대주택과 새집 증후군 두한족열과 수승화강의 원리를 따르는 온돌 한국의 온돌과 건축문화 수맥에 따른 보건의학 수맥과 뇌파 결론적으로 온돌은 건강이고 전통이고 문화이다 제5장 만주지방 민족별 구들 비교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만주지역 고구려 역사세우기의 기본은 온돌(구들)문화 세우기 조선족․만주족․한족의 유래 조선족 민가의 기본형식 조선족 민가 만주족 민가 한족 민가 민족별 구들평면의 구성방식 민족별 구들형식의 기본형 생활관습 및 세부처리 방식 각 민족 구들형식 변화와 상호 영향관계 제6장 고래온돌 아자방 이야기 우리의 전통 고래온돌-아자방 아자방 온돌의 개요 아자방의 축조연대 칠불사 아자방 내력 아자방에 관련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들 아자방의 건물 구조 중건 및 수리 내역 아자방의 학문적 의미와 문화재로서의 위상 한민족의 불의 이용과 종의 주조능력 아자방 온돌의 해체 복원 당시의 구조 경기도 양주 회암사 터에서 발굴된 구들 빛나는 선조들의 유산인 아자방 구들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제7장 고래온돌(구들)의 역사 그리고 발해사의 의의 수경주에 기록된 구들 ≪신당서≫와 ≪구당서≫에 기록된 구들 그 외 다양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구들 ≪보한집≫과 ≪삼국유사≫에 기록된 구들 유구를 통해 본 구들의 역사 고래온돌의 보고-궁궐온돌 조선시대의 온돌 온돌에 관련된 조선시대 책자와 내용에 대한 고찰 온돌에 관련된 서양인들의 기록에 대한 고찰 서양 로마시대 유구를 통해 본 바닥 난방에 대한 고찰 중국의 온돌에 대한 고찰 일본의 온돌에 대한 고찰 온돌과 생활문화 아직도 연구해야할 많은 문헌과 유구 발해사의 의미 제8장 현재의 온돌 구들의 우수성 패널 난방의 수입 패널 난방의 구조 및 방식 바닥 온수 난방(온수온돌) 배관 및 시공 시방서 제9장 우리나라 근대 온돌 발전사 1960년대 이후 다양해진 난방방식 서구문화의 유입과 조정 서구주택의 유입과 기거양식 아파트에서의 온돌제거 현재 외국의 바닥난방 발전현황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제10장 온돌과 황토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생태주택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생태주택의 전통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집 사람은 집을 짓고 집은 사람을 짓는다 집열판 보급보다 에너지 절약형 건물이 먼저 생태주택은 친환경, 친인간, 경제성 갖춰야 조선족 마을에서 찾은 생태주택 귀틀집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집 생태건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실험주택들 생태주택은 독립적인 생명체가 되도록 지어야 한다 제11장 생태환경주택과 황토온돌의 적용 환경생태주택이란 무엇인가 환경생태주택과 구들 황토온돌의 적용 온돌의 열원 변화 온돌의 건축적 측면 황토온돌 적용방법 자생능력을 가진 환경생태건축 제12장 온돌의 현대화 및 미래화 전망 농촌살림집의 난방 고래온돌(구들) 기술의 현대화 고래온돌(구들) 기술의 미래화 각 온돌의 특징과 제언 _Gudle(A.K.S Ondol), Korean Panel-Heating System _韩国的传统文化:炕, 溫突 -韩民族最伟大的发明 _책을 마치며_참고문헌 <朝鮮族 民居> 출간 안내 한국의 민가는 '조선의 민가'라는 이름으로 일본인 野村孝文이 쓴 책이 있다. 우리민족의 주거문화이지만 일제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다 훼손되었거나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무자비하게 전통문화의 하나인 초가를 없애버렸기 때문이기도하다.   비록 한국의 민가는 일본인에의해 쓰였지만 중국에 있는 조선족의 민가만큼은 우리 민족의 손으로 작업을 해야하지 않을 까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중국도 남방과 내륙의 민가는 많이 소개가 되었지만 우리 조선족민가는 홀대받아 거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연구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민속이나 인류학적인 연구가 있기는 하나 주로 항일혁명위주의 기록이 태반인 가운데 이번에 한국 국제규류제단의 도움으로  '조선족민거'를 출판하게되니 기쁘기 한량없는 마음이다.  두루 알리고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저자 김준봉(북경공업대학 건축성시학원교수) jbkim@yonsei.ac.kr ●≪中國 朝鮮族民居≫ 김준봉 지음|중국민족출판사|466쪽|48元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비롯, 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동포들의 전통 민가를 통해 한반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주거의 원형을 찾고자 한다. 그림과 사진·도표가 풍부해 이해하기 쉽다. ▶ 우리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책 - 이수성 전 국무총리 추천사 중에서 우리 한민족은 현재의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 특유의 근면, 성실함과 높은 교육열은 중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한민족의 특성인 것 같다. 중국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중국어판 ≪中國 朝鮮族 民居≫는 앞서 언급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한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한인동포인 조선민족의 전통민가에 대한 책이다.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민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실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자세한 설명 및 분석과 함께 다양한 그림과 사진, 도표 등의 자료를 싣고 있다. 그래서 건축학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뿐만 아니라 책 전체를 통해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 역경을 꿋꿋이 헤쳐 왔으며, 한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지켜왔는지도 알 수가 있다. 이 책을 쓴 북경공업대학교 김준봉 교수는 현재 중국의 현직교수이면서 한국 연세대학교에서도 객원교수로 건축도시공학부 대학원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데 벌써 10년 이상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비단 대학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힘차게 활동하는 그야말로 민간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다. 특히 국제구들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우리 전통문화인 구들의 연구와 전파에 열성을 가지고 그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김 교수의 전작인 ≪다시 중국이다≫ ≪중국 부동산 투자의 원칙≫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중국유학 성공 14가지열쇠≫와 번역서인 ≪호설암의 기회 경영≫ ≪중국경제성장의 비밀≫을 읽은 분들은 중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올바른 한중관계 및 그 발전방향에 대한 김 교수의 비전에 감동과 놀라움을 함께 느끼리라 생각한다. 본인 역시 동북아 특히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김준봉 교수의 시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번 ≪중국속 한국 전통민가≫ 발간을 통해서도 동아시아에서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우리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새롭게 정립하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의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이 책이 부디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민가 살리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와 중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인동포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7년 11월 이수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고문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  전 국무총리, 서울대학교 총장 ▶ 한반도 주거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자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는 서사 - 안길원 무영건축 회장 추천사 중에서 이번에 김준봉 교수가 중국과 한국을 수시로 왕래하면서 강의와 연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하나의 책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中國 朝鮮族 民居≫ 중국어 판으로 중국 민족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은 본인과도 조금은 관련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김 교수의 연구를 직, 간접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경공업대학에 재직중인 김준봉 교수와는 1997년 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당시 본인은 해외시장 진출에 관심이 있던 터라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었고 당시 연변과학기술대학교에 재직중이던 김 교수와의 만남도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의 재정이 여의치 않아 교사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김 교수의 말에 본인이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다 부족한 강의실 및 교수연구동 신축설계를 도와주겠노라고 제안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만에 신축건물은 들어서게 되었고 잦은 만남과 왕래를 통해 김 교수에게 깊은 신뢰와 교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김 교수가 중국 연변 등에 산재해 있는 조선족 민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1999년 말부터 2년 간 나는 전폭적인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김준봉 교수는 그 넓은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 민가를 여러 차례에 걸쳐 철처히 연구수행을 하였고 그 결과물을 본인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이렇게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다듬어져서 책으로 나오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국 조선족의 주거연구는 한반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주거의 원형을 찾는 작업이자 우리 민족의 주거 역사를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다시 한번 김준봉 교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주거관련 분야의 전문가와 학생 그리고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일독을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2007년 가을 안길원 무영건축 회장 ▶ 한국의 전통민가를 찾아 중국 동북지역으로… ≪중국속 한국 전통민가≫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김준봉 교수가 이미 한국에서는 사라져버린 우리 민족의 전통민가를 찾아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역을 10년에 걸쳐 직접 조사한 기록의 산물로 3,000여 점에 가까운 사진 및 그림 자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표와 그래프 등이 있어. 현재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한국 전통민가를 손에 잡힐 듯이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에 사는 한인동포들의 지역을 크게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 연변을 제외한 길림성, 요녕성 지역, 흑룡강성 지역, 백두산 주변마을로 나누어 그 곳에 사는 한인동포들 민가의 특징을 설명하고 실측을 통해 얻어진 도면 및 사진을 분석하여 각 지역별 민가의 일반적 특성을 도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통민가에 대해 진행된 한국, 북한, 일본의 연구사례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비단 건축에 관련된 특성뿐 아니라 조선말 우리 민족이 중국에 건너가게 된 시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인동포들이 중국에 건너가서 삶을 개척해온 과정이라든지 한인동포가 살고 있는 전통민가에 얽힌 이야기, 조선족 자치촌의 유래 및 각 지역의 인문적인 지식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자세히 풀어나가고 있으며 권말 부록으로 방대한 양의 전통민가 도면과 사진 자료를 싣고 있어 보는 이에게 도움을 준다. ▶ ≪中國 朝鮮族 民居≫발간이 가지는 의미 우리 한민족은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 만주 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 등 세계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전체 해외동포의 수는 500만 명 정도로 그중 250만이 미국, 일본 등 민주국가에 그리고 나머지 250만 명중 200만이 중국에 구소련 지역에 50만 명이 살고 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통일이 어려운 현재의 배경 아래서 저자는 조선민족의 밀집도가 높은 중국 동북지방 실태조사를 통하여 우리 한민족의 주거문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전통민가에 대한 바람직한 미래 농촌마을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최근 민가 건축에 대한 연구가 건축 역사 연구에서 새로운 초점이 되고 있는데 이는 민가가 인류 가정생활의 물질적인 환경일 뿐 아니라 인류 생활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종 정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급속한 경제발전에 편승하여 주거문화의 해체가 빨랐던 우리의 실정에서 중국 동북3성 조선족 주거문화에서 그 원형을 추적하고 변화의 대응방식을 살펴봄으로써 한민족 주거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위한 대비에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조선족 마을을 중심으로 한 10년에 걸친 현장 조사 이 책을 위한 조사방법은 철저한 현장조사와 문헌 자료 검토를 통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민족의 주거문화에 관한 연구는 중국 현지 정황 때문에 거의 주관적인 관찰에 의존한 것이어서 불가피하게 그 대표성과 타당성에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관찰의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저자인 김준봉 교수는 한정된 지역이나 가옥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연변 지역 8개 시, 현 전체와 요녕성 심양시 만륭촌 지역, 흑룡강성 4개 시, 6개 촌 지역, 길림성 5개 시 및 8개 현 지역을 고루 답사하여 현존하는 전통민가를 현지 중국 학생들과 함께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특히 백두산 주변 수전촌 마을의 경우는 성균관대 건축역사연구실과 심양시 만륭촌 마을은 인하대 이동배 교수팀과, 흑룡강성 홍성촌 마을은 인하대학교 이문섭, 한동수, 구영민 교수팀과 협력 연구를 하여 조사의 질과 객관적인 면에서 더욱 신뢰도를 높였다. ▶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전통 이 책에서 저자는 서로 다른 문화가 병존할 때 필연적으로 문화접변 현상이 일어나며 상호 작용을 미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언어나 문자, 음식, 의상 등 외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질이나 사고방식에까지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족 동포들이 알게 모르게 중국 한족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한족 역시 우리 민족의 집 모양새가 어둡고 침침한 한족 집보다 밝고 산뜻하고 아담하며 미려하다는 이유로 우리 전통민가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집뿐만 아니라 구들, 이불장, 옷장, 가마까지 조선족 식으로 갖추는 한족도 많은데 이는 외적 미와 형식을 추구하는 조선족의 문화심리가 한족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접변 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주문화 특성을 계속 지속시키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온돌 방식과 그에 따른 자식생활, 그리고 실내 탈화습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 조선민족이 온돌을 단순한 난방방식으로 보지 않고 온돌 자체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으로 중국 한인동포의 몸과 마음에 깊숙이 배어있는 쉽게 소실되지 않는 문화의 지속성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中國 朝鮮族 民居≫
70    제32계:수비할 군사가 없는 성의 성문을 열다 댓글:  조회:4171  추천:50  2009-03-18
제 32 계 : 수비할 군사가 없는 성의 성문을 열다(空城計 공성계)  해 설 : 실로 단순하게 행동함으로써 적이 의심하도록 한다적으로 하여금 당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도록 한다 삼국 시대, 유명한 전략가인 제갈 량은 그의 성이 자기 보다 훨씬 강력한 적군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이 계책을 써서 포위된 성의 성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적들이 봤을 때 성 안에는 열린 성문으로부터 먼지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람뿐 아무런 무장도 되어 있지 않은 텅 빈 거리만 보였다. 필시 다른 계책이 있다고 판단한 적은 포위를 풀고 물러 갔다. 시범 공장을 방문했을 때 "모든 것이 OK입니다" 라고 하거나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는 말은 때때로 투자자를 끌어 들이기 보다는 투자자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곤 한다. 서방 측은 열심히 협상에서 설명하고 협상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중국 측은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흔히 보는 협상장의 풍경이다. 그러나 서방 측은 상대방이 동의 했다고 생각한 계약 조항 어느 부분에 대해서도 향후 중국 측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에서 "예(yes)"라는 것은 다양한 중국 측 대답을 번역한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아마도, "예,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는 의미이거나, 조금 좋게 보면 "괜찮은 것 같군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제 2 부 예라고 하는 기술 참조) 중국 측과 기술 이전 계약을 맺으려 하는 어느 외국 회사의 예를 들어 보자. 그 회사 대표단은 그 시의 시장과 중국 파트너와 함께 밤 늦도록 연회를 가졌다. 그들은 "시장이 연회 내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협상이 타결 되었다고 확신하고는 베이징으로 돌아 와서 변호사들에게 계약서를 만들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시장이 자기들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중국 측 공장의 회장도 "모든 것이 OK"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현재 상황 하에서는 모든 것이 OK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많은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그래서 이전에 동의했던 계약 조건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또 다시) 협의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의 "예 (Yes"s)" 보다 그들이 다른 이유를 댈 가능성(But"s)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69    제31계:미인을 써서 유혹하라 댓글:  조회:4292  추천:52  2009-03-17
제 31 계 : 미인을 써서 유혹하라(美人計 미인계)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시간이나 정력을 뺏기는 일에 빠져 들게 해서 투지를 잃게 만든다 동한 시대, 어린 천자를 대신해 국정을 맡았던 재상 동탁은 방탕한 독재자였다. 당시 왕 윤은 동탁을 처치할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왕 윤은 그의 어여쁜 딸을 그 계획에 끌어 들였다. 왕 윤은 그의 딸을 동탁과 그의 충성스런 군대 사령관 여포에게 주겠다고 동시에 약속했다. 그의 딸은 미모를 이용해 두 사람 모두에게 애교를 부렸다. 동탁은 재상으로서 여포에게 그 녀로부터 손을 떼도록 명령했다. 군대 사령관이었던 여포는 동탁을 살해하고 만다. 왕 윤의 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것은 오래 된 계책이다. 중국 사람들은 20대의 새파란 미녀를  중년의 경영진 통역으로 회의에 내 보내는 것을 좋아 한다.  이렇게 되면 그 경영진들도 마음을 열어 이야기 하게 되고 통역들은 사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된다. 이 계책은 중국 측이 외국 측의 관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합작 회사 이사회에서 거론하기는 곤란할 때 그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외국인이 중국에 단신으로 너무 오랜 동안 있게 되면 실수를 하기 쉽고 경찰에 쉽게 포착된다. 매음하다 걸리면, 경찰은 "호색한"이라고 여권의 매 페이지마다 스탬프를 찍어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통해 그를 불명예스럽게 추방한다. 어느 호주 경영진은 중국에서 "성범죄"로 걸린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며 그 여권을 액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68    제30계:손님의 위치에서 주인으로 바꾸다 댓글:  조회:4852  추천:39  2009-03-16
제 30 계 : 손님의 위치에서 주인으로 바꾸다(反客爲主 반객위주) 해 설 : 장소/위치를 바꾸어라 상황을 반전시켜라   유방과 항우가 진(秦) 나라 천자에 대항한 반란을 성공했을 때, 항우(유방보다 세력이 훨씬 컸다)는 아직 지방에서 작전을 마무리하느라고 바쁜 틈을 타, 유방이 먼저 천자의 대궐을 점령하게 되었다. 유방이 대궐에서의 첫 날 밤, 쫓겨 난 천자의 궁녀들과     함께 잠 자리에 들려 할 때, 그의 신하 한 명이 그에게 간했다. 내용인즉슨, 항우는 당시 유방보다 4배나 군대가 많고, 유방은 단지 "손님"일 뿐이며 항우가 돌아 오면 그가 진정한 "주인"이 될 터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방은 그의 말을 따라서 대궐을 떠났다. 항우가 돌아 와 궁녀들과 대궐의 환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 편, 유방은 군사를 키워 세력이 커지게 되자 돌아 와 항우를 대궐에서 몰아 내었다. (항우와 그의 애첩은 달아 나다가 둘 다 모두 목을 끊어 자살하고 말았다) 손님에서 주인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은 위치를 뒤집어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고전적인 전략이다. 중국에 온지 4년이 넘었던 어느 독일 회사의 현지 대표인 칼 하인쯔 에게(Karl Heinz Ege)는 중국 관리들과 끊임없이 연회에서 간베이를 계속하는데 질린 나머지 마침내 독일 슈납스(Schnapps; 역자 주: 독일의 전통적인 과일 증류주로서 40% 정도 내외의 독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수도 없는 마오타이 간베이 후 모두들 정신이 없을 때 칼 에게는 테이블 밑에 보관해 두었던 종이 백에서 슈납스 한 병을 꺼내서 "독일 마오타이"를 마셔 봐야 한다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중국 관리들은 슈납스를 목으로 털어 넣으면서 모두들 오만상을 찡그렸다. 얼굴들이 처음에는 빨갛게 나중에는 하얗게 변했다. 앞 다투어 간베이하던 술 자리는 점잖은 얘기를 주고 받는 자리로 변했다. 손님에서 주인으로 처지가 바뀐 가장 그럴듯한 경우는 아마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로비 팀을 파견해 지방 성장을 만나기로 한 어느 유럽 회사의 경우일 것이다. 그 유럽 회사의 사장은 현지 대표에게, "이 번은 정말 아주 중요한 회의" 이니 "중국 관리들과 연회도 피하고 술도 마시지 말도록 할 것"과, "우리도 매우 심각하게 행동하고 현안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할 것"을 신신 당부하였다. 현지 관리자들이 사장의 회의 참석을 위해 지방 정부 관리들과 협의를 하자, 그 지방 정부의 외사부는(물론 외국 측이 연회 비용을 부담할 것을 기대하면서) 우선 "당신들이 초청하는 성장 참석 연회 식당을 우리가 예약할까요, 아니면 당신들이 직접 예약할건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자기네 사장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기가 곤란해진 그 회사 직원은 그냥 그들 보고 예약하라고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유럽 회사의 사장이 "심각하고 중요한 공식적인 의견 교환"을 위해 도착했었지만 그 회의는 고작 15분 만에 끝났다. 성장은 간단했다:"나는 당신 회사의 프로젝트를 지지합니다. 이제 연회장으로 옮겨서 술이나 듭시다." 사장은 나중에 보니 자기 회사가 수 많은 지방 정부 관리들이 마신 여러 병의 XO와 값 비싼 곰 발바닥 요리 등을 포함한 모든 연회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 지방 정부가 성장과 만난 회의실의 비용까지 그 회사에 청구한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67    제29계:가짜 꽃으로 나무를 장식해라 댓글:  조회:3940  추천:48  2009-03-13
제 29 계 : 가짜 꽃으로 나무를 장식해라(樹上開花 수상개화)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당신이 아주 강력하다고 믿도록 오도하기 위해 과장해라   수 나라 양제는 중국 경제를 강화 시키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했다. 더 나아가 그는 외국 사절단들에게 식사 비용을 받지 말고 대신에 " 중국은 부자이기 때문에 식사 비용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도록 식당들에게 명령했다. 겨울에는 수도 낙양거리의 귤나무들을 비단 꽃으로 장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외국 사절들은 낙양을 떠날 때,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보게 되고 비단 꽃은 그저 보여 주기 위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객들이 중국에 도착하게 되면 때때로 유치원 어린이들이 깃발을 흔들고 환영의 노래를 부르면서 환영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 투자자가 오게 되면, 공장 방문을 하게 되고 잘 조직된 생산 팀, 그리고 그 공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등을 보여 주게 된다. (가끔 지방 정부 관계자가 그 기업을 칭찬하고 외국인이 투자하게 되면 가능한 많은 특혜 조치를 해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중국인들은 손님들에게 멋진 쇼를 보여 주는데 전문가이다. 국가 원수가 방문하게 되면 환영군중이 동원되고 거리도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당연히 인상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외국 다국적 기업의 회장이 방문하게 되면, 공항에서의 VIP 대접에서부터 시작해서 벤츠를 대절하고 경찰이 에스코트해서 붉은 카펫과 아주 이국적이고 값 비싼 중국 예술품들로 장식 된 인민 대회당으로 모셔지게 되는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제 투자하고자 하는 공장의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것이다. 다음은 어느 외국 회사의 중국 대표가 한 말이다: "가장 말려야 할 일은 회사의 CEO가 특정 의제 없이 중국을 방문해서, 감동한 나머지 함부로 약속을 하고, 현지 대표로 하여금 그 세부 내용을 협상하도록 하고 떠나는 것이다"
66    제28계:올라간 다음에 사다리를 치운다 댓글:  조회:4034  추천:45  2009-03-12
제 28 계 : 올라간 다음에 사다리를 치운다(上屋抽梯 상옥추제) 해 설 : 적을 함정으로 유인 한 후 퇴로를 차단한다 이 계책은 삼국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한 젊은 장군(역자주 : 유표의 장자 유기)이 가족 간 분규에 빠져 당시 유명한 책사 제갈 량의 조언을 듣고 싶어 했으나 제갈 량은 남의 가족 문제에 끼어 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갈 량은 마지 못해 그 사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그 일에 관여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장군은 꾀를 써서 그가 소장한 희귀 고전 책들을 보여 주겠다는 핑계로 제갈 량을 2층에 있는 서재로 안내했다. 제갈 량은 서재로 올라 간 후 사다리가 치워진 것을 알았다.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게 되자 그 장군에게 조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오쩌둥은 "적을 깊숙하게 유인해서 적의 주력을 피해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하는" 전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마오쩌둥은 여러 차례 창카이섹(역자 주 :장개석)의 군대를 "홍군 기지"로 깊숙하게 유인하는 전략을 사용했는데, 그들이 직접적으로 밀고 들어 오면 깊숙하게 유인해 함정에 빠트렸다. 마오쩌둥은 수호지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이 전법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이 권투를 할 때, 현명한 선수는 처음에 조금 양보를 하는 반면, 어리석은 선수는 시작하자마자 맹렬하게 달려 붙어 모든 힘을 다 소진하고 만다. 그래서 끝에 보면, 그는 처음에 양보했던 사람에게 얻어 맞게 된다. 수호지에 보면, 훈련 선생 항(Hang)이 차이 진(Chai Jin)의 영지에서 린 총(Lin Chong)에게 도전하면서, "붙어 봐!, 붙어 봐!" 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결국, 뒤로 빼던 린 총이 항의 약점을 파악하고 한 방에 그를 때려 눕힌다." 쟈르딘 매더슨 지주회사의 한 직원이 볼 베어링 구매를 위한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 겨울에 시엔판(Xianfan)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공장을 방문하니 공장 측은 놀랍게도 다시 가격을 올리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가격 협상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주 추운 날씨였습니다. 공장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더운 물과 샤워도 없었습니다. 식당에서도 장갑을 껴야 했습니다,"라고 그는 후일 이야기 했다. 그가 보기에 협상이 더 이상 진전이 없다고 판단 되어 그는 그 곳을 떠나기로 했다. 최소한 그는 떠날 자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장 측은 그에게 열차 표를 사는 것을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편을 구해 역으로 가서 자기가 직접 표를 구해 보기로 했다. "미안합니다. 공장 버스는 다른 일로 바쁩니다,"라고 공장 측에서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그대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공장 버스는 그가 새로운 가격 조건에 동의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날 이후 며칠 간 계속 "바빴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날 공장은 꽁꽁 언 그를 버스에 태워 역으로 보내 주었다. 아마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65    제27계:일부러 바보인 척 하라 댓글:  조회:4426  추천:43  2009-03-11
제 27 계 : 일부러 바보인 척 하라(裝聾作啞 장롱작아 역자 주 假痴不癲 가치부전이라고도 한다)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하라   삼국 시대, 사마 의는 일부러 바보인 척 해서 조상으로 하여금 사마 의는 병약하고 쓸모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마 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조상이 방심함을 틈타 그를 죽이고 자기가 병권을 차지하였다. 중국에서 협상하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잔뜩 차려 입고 중국에 도착한 서방 협상 팀은 회의장에 도착해서 상대방이 청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대는 것을 보고는 상대를 깔보게 된다. 중국 측은 서방 측 보다 멋지게 보이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서방 측이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서방에 대해 알고 있다. 70년 대 후반, 중국은 문화 대혁명의 충격에서 벗어나, 80년 대에 들어 와서는 새로운 경제 성장의 시대에 접어 들게 된다. 그 때에는 서방에서 들어 온 것은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서방 사람들은 그냥 서양적이기만 해도 쉽게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1988년, 일단의 홍콩 비즈니스 사절단이 샹하이를 방문했었다. 그들은 부시장이 운동화를 신은 채 회의장에 들어 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마 그는 현장 방문 후 바로 회의장으로 온 것일 것이다). 번쩍이는 롤렉스 시계를 찬 홍콩 비즈니스맨들은 서로 수근거리면서, 홍콩에서 배운 영국식 액센트로, "정말 못 봐 주겠군! 오, 저 꼴 좀 봐! 정말 못 봐 주겠다니까!" 하고 속삭였다. 그들은 당시 샹하이 부시장이었던 주 롱지(Zhu Rongji)가 5년 후에 제 1 부총리가 되어 중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금융 개혁을 단행할 "금융 황제"가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외국에서 온 관리자들은 경영 기법이나 분석 능력은 뛰어 나지만, 막상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 벽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 파트너가 중국의 각 성끼리의 보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개발해 놓은 유통과 판매 기법, 그리고 국내 시장을 뚫고 들어 가는 데 필수적인 "'쑞�(guanxi), 즉 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방에서 온 비즈니스맨이 최신 컴퓨터에 통계 숫자를 제시한다고 해도, 판매량과 이익에 관한 전망치는 비현실적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중국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해 개발한 일종의 "뒷 거래(backdoor)"기술(시장 가격을 낮추기 위해 원자재에 국가 보조금을 받아 낸다던가 하는 등)을 알지 못하고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4    제26계: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꾸짖는다 댓글:  조회:4158  추천:35  2009-03-09
제 26 계 :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꾸짖는다(指桑傌槐) 해 설 : 반대를 나타내기 위한 구실로 어떤 대상을 사용한다   명 나라 헌종 황제 시대, 왕지라고 하는 못된 환관이 있었다. 왕지는 황제와 특히 가까웠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었고 이 것은 명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아 초우(A Chou)라고 하는 궁궐 광대가 궁궐에서 공연을 했는데 거기서 그는 술 주정꾼으로 나왔다. 주정꾼 역이었으므로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공연 내용 중에, 높은 자리의 대신이 공연장으로 오고 있으니 노래와 춤을 멈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 대해 아 초우는 "나는 높은 대신 정도는 무섭지 않다" 라고 말하면서 춤을 멈추지 않고 익살을 계속했다. 다음에는 황제가 지나 간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익살을 떨면서 그는 황제라도 두렵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자 환관 왕지가 온다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아 초우는 황급히 무릎을 꿇으면서, "죽어 마땅합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저는 황제도 두렵지 않습니다만, 환관 양지 나리는 무서워합니다"라고 넉살을 떨었다. 여기서, 황제 보다 환관을 더 무섭다고 말함으로써, 아 초우는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왕지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과 황제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렸던 것이다. 또한 교묘하게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황제의 어리석음도 꾸짖고 비평한 것이었다. 이 계책을 쓴다는 것은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 관계가 없는 다른 것을 빌리거나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책을 쓰는 좋은 예는 미국 중국 간의 무역 분쟁이다.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꾸짖는다"는 계책은 원래 옛 중국의 격언이었지만, 미국 무역 협상단은 이미 이를 훌륭하게 배워서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말로 번역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가리키면서 중국의 외환 시스템과 지적 재산권 문제를 꾸짖는다" 미국의 급증하는 대 중국 무역 적자를 줄이는 협상에서 적당한 방법이 없으니까 미국은 네가티브 작전으로 나가는 것이다. 지난 여름 미국 재무부 차관 로렌스 섬머스는 중국이 외환 시스템을 조작해서 효과적인 지불 내역 조절이 어려워 졌다고 중국을 비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국의 GATT 가입을 막겠다고 경고했다. (역자 주 : 1995년의 상황이다)  
63    제25계 : 보와 기둥을 몰래 썩은 나무로 바꿔 치기 한다 댓글:  조회:3889  추천:48  2009-03-04
제 25 계 : 보와 기둥을 몰래 썩은 나무로 바꿔 치기 한다(偸樑換柱 투량환주)          해 설 : 적의 중요 지원을 제거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한다   송 나라 진종 시대, 황후는 임신이 되지 않는데 궁녀 하나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것을 알게 된 황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약 궁녀가 사내 아이를 낳으면 황후의 자리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계략을 세워 베개를 옷 밑에 넣고는 자기도 임신한 것처럼 꾸몄다. 마침내 궁녀가 사내 아이를 출산하자 황후는 심복을 시켜 그 아이를 몰래 훔치고는 고양이를 대신 갖다 놓았다.   영국은 곧 넘겨 줄 식민지에 이러한 계책을 쓰기로 유명하다. 인도, 피지, 말레이지아 및 싱가포르에서 그들이 독립하기 직전, 재정을 고갈시키고 현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식민지 유물이었다. 홍콩 반환 직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를 마감할 때의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주변 국가들의 식민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영국 식민 당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전에 홍콩 정부의 "기둥을 바꿔 치기 해서""썩은 나무로" 대체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 정부가 중국과 협상하면서 가장 중시한 것은 거대한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홍콩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섬에 위치한 관계로 연결 도로와 연결 철도를 건설하는데 엄청난 투자가 필요했고 따라서 누가 봐도 이 것은 애물단지였다. 중국이 보기에 기존의 홍콩 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카오, 선전, 주하이, 광조우에 이미 국제 공항이 있기 때문에 신공항의 필요성이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그 프로젝트를 밀어 부쳤다. 남들이 보기에, 그 의도는 공사를 영국 건설회사들에게 맡겨 홍콩의 잔여 외화를 소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홍콩에 외화가 소진되고 난 후 새 공항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확실치 않다.(역자 주 : 1995년 당시의 작가 생각이었으며, 그 이후 상황 발전에 따라 다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영국은 "통과 열차(through train)" 정부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 말은 홍콩 입법원 의원의 임기를 1997년 홍콩 반환 이후까지 걸치게 하자는 것이다. 중국이 걱정하는 것은 홍콩 정부 내에 더 많은 "썩은 목재"를 식민지 유물로 물려 받게 되는 것이었다.
62    제24계:괵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안전 통로를 빌려라 댓글:  조회:3966  추천:42  2009-03-03
제 24 계 : 괵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안전 통로를 빌려라(假道滅虢 가도멸괵 역자 주 :道(도)대신 途(도)를 쓰기도 하고 滅(멸)대신 伐(벌)을 쓰기도 한다) 해 설 : 약자가 위협적이지 않으면 약자를 도와 그들의 지원을 얻어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와야 한다   춘추시대, 진(晉) 나라는 늘 괵(虢)  나라와 우(虞)를 정복하려 했다. 진 나라의 모사 순식은 우 나라 왕에게 뇌물을 줘서 괵 나라를 치기 위한 통로를 빌려 주도록 제안했다. 우 나라는 탐욕 때문에 어리석게도 그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괵 나라를 침략한 후 진 나라는 군대를 돌려 우 나라도 멸망시키고 말았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와 당 대 당의 관계를 분리하는 외교 정책을 써 왔다. 이런 관계로, 중국은 여러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유지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 나라의 공산당을 지원하곤 하는데 그 나라 공산당의 정책은 가끔 그 나라 정부의 정책과 다른 경우가 많다. 바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그러한 케이스인데 중국은 이들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정부에 반대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공산당을 지원하였다. 또 다른 경우에 있어서, 중국은 제 3 세계와 개발 도상국들에게 혁명과 경제 개발을 위한 원조를 제공해 주었다.(역자 주 : 오늘 날에는 혁명을 위한 원조는 거의 없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이 전쟁을 도발했을 때, 중국은 엄청난 손해를 무릅쓰고도 북한을 도왔다. 당시 상황에서는 형제 사회주의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었고 이는 그 이후 중국의 주요 정책 기조가 되었다. 물론 그러한 원조를 통해서 중국은 그 국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찬 가지로, 중국은 베트남 전쟁 중에는 많은 고문단을 북 베트남에 보냈을 뿐 아니라, 북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와 남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되는데 엄청난 규모의 원조와 지원을 보냈던 바 있다. 중국은 라오스 독립을 위해 파테트 라오(Pathet Lao; 역자 주: 라오스의 공산주의 운동)를 지원했고 나중에는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까지 지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한 나라들을 도와 준 결과,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서 전략적 접근권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대단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61    제23계:이웃 나라는 공격하되 먼 나라와는 친선을 댓글:  조회:4266  추천:33  2009-02-27
제 23 계 : 이웃 나라는 공격하되 먼 나라와는 친선을 맺는다(遠交近攻 원교근공) 해 설 :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잠정적인 동맹이 될 수 있다. 너무 많은 적을 동시에 만들지 말아라. 다른 표현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은 불을 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화급한 위험은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국시대 때, 유능한 책사였던 범수는 진나라 왕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도록 건의했다. 진 나라 소양왕은 책사 범수의 계책을 옳다고 판단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진 나라는 그 후 한, 조, 위, 초, 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나라를 패배시키고 마침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2 km에 이르는 국경 분쟁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중국은 베트남 정부와 군부에게 대단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를 통해서 베트남의 고급 관료들은 베이징에 자주 왔었으며, 중국 기술자들이 후방에서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베트콩을 지원하였다. 인도 차이나 반도에서의 오랜 동안 반미 전쟁 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 및 남 베트남의 진지에서의 삼국 공산당 관계가 너무도 긴밀하였기에 호 치 민(Ho Chi Min)은 한 때 그들의 관계를 "순치지간(脣齒之間)"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1979년,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이공이 베트콩에 의해 안전하게 해방된 후 호치민 시로 이름이 바뀌고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의 장악 하에 들어 가게 되자 인도 차이나의 공동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베트남 공산당과 크메르 루즈는 경제 개혁과 영토 문제 등의 정책에 있어서 더 이상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폴 포트가 "대 원년정책" (Year Zero ; 역자 주 :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 달력의 Year One을 본 따서 만든 정책. Year Zero 이전의 모든 역사와 인민들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모두 숙청하고 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750,000명에서 많게는 1,700,000명(당시 총 인구의 26%)에 이르는 인민들이 학살 당했다.) 을 도입하고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대학살(나중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까지 확대 되었다)하게 되자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악화 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 베트남과 긴장 관계에 있던 중국은 크메르 루즈에게 손을 내 밀었다. 폴 포트가 캄보디아의 정글에서 나와 최초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이 1970년, 바로 베이징의 수도 국제 공항에서 화 구오 펑(Hua Guo Feng)의 영접을 받은 것이었다. 1979년 크메르 루즈가 남쪽 베트남 국경을 침공하자 베트남이 반격에 나섰다. 캄보디아에 진격해 가면서 베트남 군은 무수한 집단 학살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캄보디아에서 자행되었던 만행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 군은 프놈펜까지 진격하여 폴 포트를 태국 국경 쪽으로 축출하였다. 중국은 멀리 떨어 진 크메르 루즈와 친선을 맺은 후 "베트남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 위해" 이웃에 있는 베트남을 공격하게 된다. 1979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으로 쌍방 모두 무수한 사상자가 났으며 양국 간 협력 관계도 깨어 졌다. 중국은 크메르 루즈가 태국 국경 부근에 있는 정글에서 계속 투쟁하도록 엄청난 지원을 계속했다. 베트남은 전선이 양 쪽으로 전개 돼 막대한 자원이 군사비로 지출 되었다. 더 이상 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베트남은 마침내 캄보디아에서 철군을 단행했다. 1992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양국의 당 대 당의 관계가 복원되었고 현재는 엄청난 국경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60    제22계:도적을 잡기 위해서는 그 문을 꽉 닫아라 댓글:  조회:3902  추천:21  2009-02-26
제 22 계 : 도적을 잡기 위해서는 그 문을 꽉 닫아라(關門捉賊 관문착적)          해 설 : 약하거나 숫자가 적은 적을 철저히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도망 갈 구멍을 남겨 둬서는 안 된다. 만약에 약한 적이 도망가게 놔 두면 나중에 골치거리가 되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역자 주 : 여기의 적(賊)은 게릴라 같은 적을 의미한다. 지금은 세력이 약하지만 놓아 주거나 그냥 놔두면 기습 공격과 같은 골치 아픈 일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뿌리를 뽑도록 철저히 대처해야 된다는 뜻이다.)          BC 260 년, 진(秦) 나라가 조 나라와 전쟁 중에 있었다. 진 나라의 장군 백기는 적은 군대를 준비해 조 나라의 사령관 조괄을 유인해 내라고 명령했다. 조괄이 진 나라 군대를 추격해서 창비(Changbi)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백기가 쳐 놓은 포위 망에 걸려 들고 말았다. 조괄의 군사들은 보급과 증원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전멸하게 된다.(역자 주 : 유명한 진 나라와 조 나라 사이의 ‘창평 대전 Battle of Changping’이다.) 중국 측의 홈 그라운드에서 협상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든다. 중국 측의 경영 팀은 아무 때라도 회사 일로 협상이 중단 되고, 이러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명분 하에 아무 때나 협상장을 떠나곤 한다. 때로는 외국 측으로 하여금 그들이 협상장에 돌아 올 때 까지 꼼짝없이 협상장에 며칠 씩 그냥 쳐 박혀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일례로, 어느 외국 협상단이 한 겨울에 중국 측과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추운 회의실에 쳐 박혀 있은 일이 있었다. 협상은 매일 아침 식사, 점심 식사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한다고 중단되곤 했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 독한 현지 독주를 끊임 없이 간베이 하곤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공장 소유의 카라오케에 가서 시시콜콜한 얘기로 자정까지 있기가 예사였다. 중국 측은 반으로 나뉘어, 반은 외국 팀을 따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술도 같이 마시고 디스코와 카라오케에도 함께 따라 다니는 가 하면, 다른 반은 다음 날 협상을 위해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중국 측은 언제나 정신이 말짱했지만 외국 측은 언제나 지쳐서 정신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외국 팀은 중국 팀을 중립적인 도시, 즉 베이징으로 초청해서 협상을 계속했다. 외국 측은 중국 측의 호텔 방을 예약하고 식사도 예약했으며, 협상이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협상 시간 계획을 미리 확정해 놓았다. 이 번에는 중국 측이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외국 측이 호텔 방 값과 식사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중국 측은 별 수 없이 협상장에 머물러 그 거래를 끝내야 했던 것이다.   제 23 계 : 이웃 나라는 공격하되 먼 나라와는 친선을 맺는다(遠交近攻 원교근공) 해 설 :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잠정적인 동맹이 될 수 있다. 너무 많은 적을 동시에 만들지 말아라. 다른 표현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은 불을 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화급한 위험은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국시대 때, 유능한 책사였던 범수는 진나라 왕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도록 건의했다. 진 나라 소양왕은 책사 범수의 계책을 옳다고 판단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진 나라는 그 후 한, 조, 위, 초, 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나라를 패배시키고 마침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2 km에 이르는 국경 분쟁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중국은 베트남 정부와 군부에게 대단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를 통해서 베트남의 고급 관료들은 베이징에 자주 왔었으며, 중국 기술자들이 후방에서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베트콩을 지원하였다. 인도 차이나 반도에서의 오랜 동안 반미 전쟁 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 및 남 베트남의 진지에서의 삼국 공산당 관계가 너무도 긴밀하였기에 호 치 민(Ho Chi Min)은 한 때 그들의 관계를 "순치지간(脣齒之間)"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1979년,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이공이 베트콩에 의해 안전하게 해방된 후 호치민 시로 이름이 바뀌고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의 장악 하에 들어 가게 되자 인도 차이나의 공동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베트남 공산당과 크메르 루즈는 경제 개혁과 영토 문제 등의 정책에 있어서 더 이상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폴 포트가 "대 원년정책" (Year Zero ; 역자 주 :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 달력의 Year One을 본 따서 만든 정책. Year Zero 이전의 모든 역사와 인민들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모두 숙청하고 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750,000명에서 많게는 1,700,000명(당시 총 인구의 26%)에 이르는 인민들이 학살 당했다.) 을 도입하고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대학살(나중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까지 확대 되었다)하게 되자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악화 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 베트남과 긴장 관계에 있던 중국은 크메르 루즈에게 손을 내 밀었다. 폴 포트가 캄보디아의 정글에서 나와 최초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이 1970년, 바로 베이징의 수도 국제 공항에서 화 구오 펑(Hua Guo Feng)의 영접을 받은 것이었다. 1979년 크메르 루즈가 남쪽 베트남 국경을 침공하자 베트남이 반격에 나섰다. 캄보디아에 진격해 가면서 베트남 군은 무수한 집단 학살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캄보디아에서 자행되었던 만행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 군은 프놈펜까지 진격하여 폴 포트를 태국 국경 쪽으로 축출하였다. 중국은 멀리 떨어 진 크메르 루즈와 친선을 맺은 후 "베트남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 위해" 이웃에 있는 베트남을 공격하게 된다. 1979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으로 쌍방 모두 무수한 사상자가 났으며 양국 간 협력 관계도 깨어 졌다. 중국은 크메르 루즈가 태국 국경 부근에 있는 정글에서 계속 투쟁하도록 엄청난 지원을 계속했다. 베트남은 전선이 양 쪽으로 전개 돼 막대한 자원이 군사비로 지출 되었다. 더 이상 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베트남은 마침내 캄보디아에서 철군을 단행했다. 1992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양국의 당 대 당의 관계가 복원되었고 현재는 엄청난 국경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59    제21계:도망할 때에는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하라 댓글:  조회:4048  추천:36  2009-02-20
 제 21 계 : 도망할 때에는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하라 (金蟬脫殼 금선탈각)          해 설 : 도망할 때에는 겉으로 들어 내지 말고 은밀히 해야 한다. 적이 추격하지 않도록 가짜의 요새를 만든 후 껍데기만 남긴 채 조용히 철수한다 삼국시대, 여포는 원소의 수하에 있었는데 원소는 여포를 결코 신임하지 않았다. 후일 여포는 원소를 떠나기로 했으나 원소는 군대를 보내 그를 죽이려 했다. 여포는 원소가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침소에 사람이 아직도 자고 있는 것처럼 만든 후 살며시 빠져 나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손자는 일찍이"강할 때 약한 척하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가끔 자기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정장한 미국의 상업 은행원이나 발끝까지 차려 입은 홍콩의 비즈니스맨들은 회의장에 노타이 차림이나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중국 측 사람들을 가끔 무시하곤 한다. 오늘 날의 중국은 지난 날의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청바지나 슬리퍼를 신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들은 휴대폰은 물론 벤츠를 타고 다니며, 세계 최고의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는 제 3의 세계 경제 대국에 걸맞게 최 첨단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전 세계 주식 시장에 상장했을 뿐 아니라 채권도 발행하는 등 중국 기업들은 이 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고 회의실 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커피잔과 찻잔에 담배 꽁초가 수북하게 쌓이고, 협상 쌍방이 주요 쟁점에 관해 접점을 찾지 못하게 되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 명백해 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것을 타개할 간접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장소를 바꿔 모든 것을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방 투자자들은,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서 협상장을 빠져 나와 식당이나 카라오케에서, 소위 "우호적인 토론과 상호 이익"의 정신으로 간접적인 협의를 한 후에 가끔 협상이 타결되는 것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장소를 바꿔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것은 협상 쌍방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게임 방식이다. 협상이 도무지 진척이 없게 되면, 외국 측은 토의를 끝내고 중국 측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카라오케를 같이 가는 것이 협상 테이블에서 계속 밀어 부치는 것 보다 어느 정도 그 쟁점에 대해 상호 이해를 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중국 측은 집단을 이뤄 협상을 한다. 조금씩 다른 여러 의견들이 있을 경우, 팀 압력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하기가 힘들어 진다. 이러할 때, 장소를 바꾸게 되면 훨씬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디어를 상대 팀에게 개인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고, 상대 팀의 생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모두가 협상 테이블에 다시 돌아 왔을 때에는 상대 팀이 점차 다른 입장에 근접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 협상하러 가게 되면, 중국 측은 자기들이 가난하고 개발 도상 국가인 만큼 여러분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전에 일본도 가난하다고 엄살을 떨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어느 협상 전문가가 말했다.  
58    제20계: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기가 쉽다 댓글:  조회:3899  추천:31  2009-02-19
제 20 계 : 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기가 쉽다(混水摸魚 혼수모어) 해 설 : 혼탁한 물에서는 고기가 방향을 잃고 당황하게 된다 따라서 쉽게 잡을 수 있다.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하라, 적은 이 상황에 대처할 만큼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거나 깊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삼국시대, 유비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금주를 차지했다. 나아가, 유비는 적 진영의 내부 투쟁을 틈타 또 다른 전략 요충을 점령했었다. 미국의 대기업 AT&T는 중국 시장에서 10년 넘게 혼란 속에서 고생을 했다. 그 회사의 문제는 1980년대 초 중국이 선진 디지털 교환기 시스템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기술 이전을 위해 미국을 찾았지만 AT&T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현재는 세계에서 제일 큰 전화와 교환기 시장이며 향후 30년간 계속 그러할 것으로 전망된다) 놀랍게도 AT&T가 최신 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이에, 프랑스의 Alcatel, 독일의 Siemens, 그리고 일본의 NEC가 시장에 뛰어 들어서 중국 내 3대 장비 공급상이 되고 말았다. 중국이라는 "혼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은 것은 바로 Alcatel, Siemens 그리고 NEC였다. 1980년대 중반, AT&T도 미국 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장이나 중국인들의 전화 사용 습관에 대한 연구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중국 시장에 뛰어 들었다. 당시 중국은 전화가 아주 귀했고 서비스도 비교적 열악했다. 사람들은 공중 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려야 했고, 차례가 와도 라인이 연결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교환기는 중국 시장에서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특수하게 제작되어야 했다. AT&T는, 그러나, 미국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는 재고품을 그대로 중국에 실어 보냈다. 우한(Wuhan)에 설치 된 첫 번째 교환기는 곧 과부하가 걸려서 중국 내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중국 소비자들과 전화 사용자들은 전화통신부에 항의했고 전화통신부는 홍콩에 있는 AT&T 사무실을 통해 AT&T에 항의하게 되었다. 중국 사업을 하겠다는 AT&T가 중국 내에 사무실 하나 조차 없었으니 또 하나의 전략적 실책이었다. 홍콩 사무실은 당연히 그 문제들을 처리할 수 없었으므로 부품들과 기술자들을 모두 미국에 요청해서 중국으로 실어 보냈다. 몇 달 동안 AT&T는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시간만 가고 중국 내 다른 곳에 설치된 AT&T 교환기도 문제가 생겼다. Alcatel이나 다른 경쟁자들은 이미 중국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원도 대기하고 있어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현지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처리하였지만 AT&T는 중도에서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 회사를 잘 아는 사람이 말했듯이, "AT&T는 마치 아이오와에 교환기를 파는 것처럼 생각했다" AT&T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AT&T는 매 번 거래를 순수한 상업거래로만 생각했지만 중국은 장기간의 사업 관계를 위한 기초를 놓는다고 생각했었다. AT&T의 태도에 실망한 중국은 1980년대 말에 마침내 그들로부터 교환기 구매를 중단하고 말았다. 1990년에 들어 와서, AT&T 부회장 랜디 토비스가 비싼 비용을 들여 2년 동안 뉴욕과 베이징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한 후에 겨우 AT&T의 소동들을 해결하였다. AT&T는 마침내 중국에서 디지털 교환기를 생산하는 합작 법인을 포함한 잠정 합의를 베이징 당국과 체결하였다. 그 법인은 중국 내 400여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원해서 문제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57    제19계:솥 밑의 타는 장작을 제거하라 댓글:  조회:4020  추천:26  2009-02-18
제 19 계 : 솥 밑의 타는 장작을 제거하라(釜底抽薪 부저추신)  해 설 : 적을 공격하기 전에 그 자원을 먼저 고갈시켜라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서 재발을 방지하라 송 나라 때, 금 나라는 송 나라를 정복하고자 하였지만 송에는 그들이 이기기 곤란한 유명한 장군 악비가 있었다. 금 나라는 악비를 먼저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송 나라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반간계를 써서 악비를 암살한 후에 송을 정복하였던 것이다. 서방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중국에서의 협상은 마치 오래 끄는 게릴라전과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대부분의 서방 비즈니스맨들이 조급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확정된 시간 계획을 가지고 중국에 오게 된다. 호텔과 비행기 표는 모두 사전에 예약되어 있다. 회의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미리 약속이 잡혀 있다. 최소한 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까지는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그들은 정말로 중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때 차관이었던 리차드 H. 솔로먼이 1975년 베이징의 수도 국제 공항에 내렸을 때 겪은 내용인데 당시 그는 어떤 코뮤니케를 협상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다른 국무성 관리들과 마찬 가지로 내리자 마자 바로 업무에 들어 가서 온갖 "좋은 내용들"이 포함된 그러한 코뮤니케를 협상하려고 서둘렀다.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솔로먼의 첫 번째 일정은 협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를 서쪽 왕릉으로 소풍을 데려 갔습니다. 키신저는 미치려 했었지요" 라고 솔로먼은 후일 당시에 대해 말했다. 중국 측은 미 국무부 사절단이 다음 일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안절 부절하게 만들었다. 미국 측은 일정 내내 실질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국 측은 매사에 질질 끌었지요" 라고 솔로먼은 회상했다. 중국 측은 미국 측이 미국 측 스스로 설정한 시한에 쫓겨 먼저 양보할 때 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 한 밤중에 받아 들일 수 없는 협상안을 키신저에게 전달한 겁니다." 서방 비즈니스맨들을 보면, 왕왕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너무 떠벌리거나 계약서에 서명하겠다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 중국에 오는 경향이 있다. 중국 측이 외국 측이 정해 놓은 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싸움의 반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저 시간을 끌면서, 중국 측은 외국 측을 몰아 부쳐 외국 측 스스로 자신이 정해 놓은 시한에 몰리게 만든다. 일례로 어느 미국 다국적 기업이 중국 측에게 어느 때까지 생산이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고 순진하게 말했다. 중국 측은 바로 그 때부터 계약 조건들에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표준 중국어 계약서 초안을 미국 측에게 전달하였다. 미국 측이 그 서류에 대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중국 측은 팔짱을 낀 채, 만약 미국 측이 스스로 정해 놓은 시간 계획대로 생산을 개시하기를 원한다면 그 초안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미국 측은 깜짝 놀랐고 중국 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기고만장 떠들었다.
56    제18계: 적을 칠 때는 대장부터 먼저 잡아라 댓글:  조회:4000  추천:36  2009-02-16
적을 칠 때는 대장부터 먼저 잡아라(擒賊先擒王 금적선금왕) 해 설 : 사람을 잡으려면 그가 탄 말을 먼저 쏴라 삼국시대, 조조는 아주 총명해서 한 나라 천자 헌제를 이용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조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에는 천자를 이용해서 칙령을 내리곤 했으므로 아무도 감히 조조에게 도전하지를 못했다. 중국에서는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 간의 네트웍인 '관계(guanxi)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쑞챨� 어떤 리더의 결정권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들곤 한다. 알다시피, 리더들은 또 자신의 상사가 있고 지휘계통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강력한 사람이 더 강력하게 보이기도 한다. 만약에 지휘계통 상의 최 상급자로부터 승인(그 승인 받은 내용이 아무리 엉터리라 할지라도)을 받게 되면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따르게 된다. 최소한 그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리더쉽 역할이야 말로 중국에 있어서 복잡한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상의 권력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해방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확고한 지도자로서 그는 비현실적일 만큼 불가침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여러 상황에 따라서) 특정 사건(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같은)에 무한한 권위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밑에서 정치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마오의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그리 고 최종적인 해석이 나올 경우 누가 유리할 것인가 등이 중요했다. 그리고는 덩샤오핑(Deng Xiao Ping) 도 역시 그와 유사한 위치를 차지했다. 덩은 모든 공식적 자리에서 물러 났었지만, 군, 당 그리고 관료 사회에서의 그의 경력을 고려 할 때, 또한 모두를 이어 주고 연결해 주는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의 다양함을 감안해 볼 때, 덩은 개괄적인 원칙만 말해도 명실공히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미쳤을 뿐 만 아니라, 밑의 사람들은 그의 말에 기준해서 모든 일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국영기업들의 이사회 회장이나 책임자 중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 상사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갖추어서 그 회사의 의사 결정에 대단한 지도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때로 중국에서는, 특히 대기업이 실제적으로 한 마을 전체를 차지하는 농촌 지역에서는 그 기업의 이사회 회장은 하나의 "지역 황제(Tu Huang Di : 역자 주 : 土皇帝)나 마찬가지이다. 텅(Teng) 회장도 바로 그러한 지역 황제의 한 사람이었는데 중부 중국 후베이(Hubei) 성의 조그만 도시를 이루고 있는 직원 1,500 명의 화학 공장의 지도자였다. 그 회사 운영에 관해서는 텅 회장이 말하는 것은 바로 법이었다. 어느 유럽의 다국적 기업이 합작 회사 설립을 위해 그 화학 공장과 협상을 시작했을 때, 매 번 협상 때 마다 유럽의 협상 팀을 상대한 것은 텅 회장의 예하 직원들이었다. 협상은 중요 사항들에 대해 하나도 해결되는 게 없이 마치 양쯔(Yangtze)강의 바지 선처럼 진척 없이 질질 끌었다. 해결을 더욱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중국 측 핵심 협상 팀 내부의 파워 게임이었다. 누구는 텅 회장과 인척 관계인가 하면 또 누구는 다른 동료들 보다 텅 회장 밑에서 오랜 동안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한 편, 텅 회장은 공장 본부의 푹신한 가죽 소파에 깊숙이 앉아서 직원들의 보고를 받거나 그저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협상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나아 질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유럽 측은 쌍방의 금융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인근 도시에 마련했다. 양 측의 협상 인원들이 4성급 호텔의 맨 꼭대기 층에 모두 틀어 박혔을 때, 유럽 측의 사장은 이 책의 저자와 함께 차를 타고는 그 공장을 방문해서 텅 회장과 직접 담판을 벌였다. 문제들이 하나 하나 협상 테이블에 올려 졌고 텅 회장도 기본적 인 걱정 사항들을 털어 놓았다. 텅 회장은 유럽 측의 관심사들에 대한 자기 수하 직원들의 보고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바로 휴대폰으로 공장의 경리 책임자를 협상 중에 불러 내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지시했다. 유럽 측 사장은 다음 날 점심 시간 겸 마지막 협상 시한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텅 회장이 그저께 미리 결정했던 대로 주요 사항들이 그 회의에서 해결되었음은 물론이다. 중국 옛 말에, "황제가 ‘죽어라’ 라고 명령하면 신하는 죽을 수 밖에 없다" (君要臣死, 臣不得不死) 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일을 성취해 내려면, 때로는 지도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는 법이다.  
55    제17계:옥을 얻기 위해 벽돌을 던진다 댓글:  조회:4482  추천:41  2009-02-12
  抛砖引玉 포전인옥  해 설 : 큰 것을 얻기 위해 (비슷해 보이는) 미끼를 사용하라 당 나라 태종은 전설적인 서예가 왕희지가 쓴 유명한 서예품을 탐내었는데 그 작품은 어느 스님이 아주 신경을 써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 태종은 꾀를 내어 한 신하로 하여금 다른 왕희지의 작품을 갖고 가서 서로 비교해 보도록 했다. 비교가 끝난 후, 신하는그 스님에게 스님이 보관하고 있는 작품은 가짜이며 왕희지의 진짜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실망한 나머지 별 신경을 쓰지도 않고 그 작품을 그냥 놔 둔 채 다른 일을 보러 나갔다. 신하는 그 틈을 타서 그 진짜 작품을 슬쩍 해서 가버렸다. 이 계책은 홍콩 재벌들이 중국 시장을 파고 들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그들은 상당 기간 동안 아무런 반대 급부도 요청하지 않고 여러 가지 기회를 이용해서 중국에 기부를 한다. 그리고 나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에 행동을 개시해서 그들의 투자를 위한 필요한 조건들을 요청하게 된다. 중국 관료들은 오랜 동안 받는 입장에 있었기에, 심리적으로나 실지로나 도와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다. 나머지는 다 알만한 것이다. 홍콩의 가장 유명한 현지 재벌 리카이싱(Li Kai Shing)을 예로 보자. 오랜 동안 리카이싱은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거절해 왔다. 실지로 그의 투자는 대부분 홍콩에서 이루어졌으며 나중에 카나다에도 투자를 했었지만 중국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투자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첫 행보는 기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주로 학교에 기부를 했다. 이 곳 저 곳에 기부를하면서 언제나 호의와 친선의 이름으로, 어디를 가던지 친선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다급한 손들은, 내일 무엇을 그들에게 요청할지 오늘은 당장 모르는 것이다. 그의 다음 번 행보는 정치권에 호의와 친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989년, 6.4 사건이 나자 홍콩의 다른 재벌들은 중국을 소리 높여 비난하기 바빴지만 리카이싱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국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어 1990년 대에 들어 와 붐이 일어 나자, 1989년 여름 그렇게 중국을 비난했던 기업가들은 중국에서의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을 때, 리카이싱은 이미 중국에서 존경을 받는 위치에 굳건히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문제에 관해서 중국 당국과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의 신용은 이미 확고했다. 1994년, 그는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유명한 창안(Chang An) 가와 베이징의 5번 가인 왕푸징(Wangfujing)을 마주 보고 있는 베이징 중심의 방대한 땅을 요청했다. 베이징 시 정부는 미국의 패스트 푸드 체인인 맥도날드가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베이징 호텔 건너 편 코너-사실 상 가장 가치가 높은 땅-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리카이싱은 자기 방식을 고집했다. 그로서는, 그렇게 많이 중국에 기부를 했고, 또 그렇게 많은 각종 관계를 위해 투자를 해 왔으니-그것도 아무런 반대 급부도 요청하지도 않은 채-즉, 그렇게 많은 벽돌을 던졌으니 이제야 말로 옥(玉)을 찾아 올 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맥도날드가 차지 하고 있는)그 코너를가질 수 없다면 중국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겠다" 라고 베이징 시 정부 당국에 말했다고 한다. "맥도날드는 반드시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고 그는 밀어 부쳤다. 그래서 베이징 시 당국은 맥도날드에게 그들의 20년 사용 계약을 수정해서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점포를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에서 떠나 가도록 요청하게 되었다. 국제 사회가 이 일에 대해서 모두 비난했지만, 리카이싱은, 지나 간 시절 무보상으로 그가 베풀었던 자선과 기부를 이용해서,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요청해서 마침내 얻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54    은퇴를 공부하자 댓글:  조회:5707  추천:54  2009-02-12
은퇴는 미리 준비할수록 성공    최근 은퇴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하는 일들이 일어 났다.  은퇴한 선배들을 만나면서 과연 나는 10여년 후 은퇴하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대기업의 사장으로 혹은 중역으로 평생을 지내다가 은퇴한 선배를, 그리고 교수 혹은 전문직으로 바쁘게 살다가 은퇴후의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며 나의 은퇴는 과연 준비되고 있는 가를 돌아본다.   "은퇴후에는 편한히 세계여러곳을 다니며 여행하며 살리라" ---이러한 계획은 실천에 옮겨지기 어렵다. 아무리 은퇴전 여행지를 답사하고 갈 곳을 보아 두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어서의 여행은 체력적으로 고생일 따름이다. 더우기 단순한 휴식을 위한 먼 곳의 여행은 더욱이 현실적이지 못하다. 결국 여행은 아무리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젊어서 튼튼하고 호기심 많은 때에 할 일이지 은퇴후에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은퇴후에는 전원생활을 하며 농촌에서 살리라" ---이 계획 역시 일견 현실적이어 보이지만 은퇴후 막상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경우를 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근거지를 마련한다는 것이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낯선곳에 대한 적응등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생활에 익숙한 모습에서 하루아침에 불편한(?) 농촌생활을 감내하는 것도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이지 수년동안 할 일이 못된다. 혹 친구를 만나거나  서점이나 흔한 문화시설을 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맘먹고 어렵게 준비한 전원 주택도 은퇴후 처음에는 자주 머믈다가 조금지나면 주말마다 나중에는 한 달에 한두번 가는 곳으로 변한다. 비용과 시설의 낭비가되고 유지보수역시 쉬운일이 아니어서 결국 그림같은 전원주택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은퇴 후에는 저술작업과 휴식으로 소일하리라" ----은퇴후의 삶은 길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과 사회에 공헌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30세 전후 이고 은퇴는 65세 전후이다. 대학 4년을 공부하고 전공을 살려 30여년을 그것으로 먹고산다고 할까? 65세에 은퇴해도 아직 남은 생은 30년정도가 된다 그 긴세월을 그냥 휴식하면서 할 것인가?      은퇴하면 혼자서 해야할 일이 많아진다. 은퇴후 남은 30년을 위해 당연히 대학4년 정도의 공부를 다시해도 결코 많은 투자가 아니다. 은퇴후의 전원생활을 위한다면 은퇴전 10여년은 전원생활에 적응훈련을 해야한다. 하드웨어를 준비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전원생활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준비해야할 것이다. 농촌의 사람도 사귀고 전원의 맛도 익숙하게 말이다. 시골의 문화시설도 사용해보고 관공서도 친해져야한다. 후퇴 후에는 너무 늦다. 은퇴전 매년 30일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사람은 익숙한 곳이 편하다 은퇴 후 저술 활동을 하려면 먼저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직장과 평소 기업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기 개인이 할 수 있는 익숙한 환경을 만들고 적은 훈련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를 위해 은퇴 10년 전부터 혼자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혼자서 버스도 타보고, 타자도 해보고, .... 관련 공무원도 만나보고 실골 이웃도 만나보고...,  새로운 전공과 취미를 위해 책도 보고 학원도 다니고 전문학교든 학사편입이나 사이버대학도 다녀보기를 권한다. 이 모든 것은 은퇴 전에 해야할 일들이지 은퇴 후에는 너무 늦고 능률도 오르지 않고 경쟁력도 현저히 떨어진다.   필자는 퇴준비를 위하여 충북진천에 전원 마을을 구상하고 있다. 땅작업은 물론 20년 전에 준비해 놓았고 지금이 은퇴 15년 전으로 보고 매년 방학을 이용하여 시설를 준비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자연환경생태건축연구소"이다. 물론 저술작업도 준비하고. 해외 선교사를 위한 은퇴후 시설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전원생활을 계획하는 은퇴10여년이상 남은 친구들과 이일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회사의 중역들이고 가장바쁜 생활을 하고있는 50대 초반이다. 가장 바쁘지만 가장 은퇴준비하기에 경쟁력이 있는 나이 이기도하다.   여러분은 은퇴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하며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가. 우울한 노후냐, 안락한 노후냐는 준비에서 갈린다. 준비하는 사람에겐 달콤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통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지금 당장 은퇴준비에 나서야 합니다.” 얼핏 보면 은퇴 관련 금융회사들이 내보내는 광고문구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최고의 은퇴설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은퇴준비는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재룡 한국펀드연구소장은 “서양에서는 20대의 젊은 사람이 직장에 취직하자마자 곧바로 은퇴준비에 나선다”고 소개한다. 이런 선진국형 은퇴준비 문화는 아직 우리와는 거리가 멀다.  은퇴준비가 왜 중요한 것인가? 과거와 달리 고령화,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단순히 국민연금에만 기대어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명이 늘면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는 점도 은퇴 후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은퇴준비 필요성의 가장 큰 요인으로 고령화와 저금리를 꼽았다. 은퇴 이후에도 살아갈 날이 많아졌기 때문에 저금리 시대를 극복하면서도 안락한 노후를 위해선 은퇴 전에 자금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특히 고령화가 ‘무서운’ 요인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65세 정도가 평균수명이었지만 이젠 다르다. “현재 나이 60이면 기대여명이 남자는 30.75년, 여자는 36.63년이나 됩니다. 남자는 91세, 여자는 97세까지 산다는 얘기지요.” 은퇴 후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조경만 엉클조 아카데미 원장은 노후생활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얹혀살기, 국민연금을 더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노후자금이 없어 부부가 탑골공원에서 살기,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 내 돈을 모아서 살기’다. 이 중 가장 현실적인 게 바로 마지막 방안이다.  일반 대중이 고통스럽지 않게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은퇴설계는 이젠 필수다. 은퇴설계를 하려면 보험이나 저축, 투자 같은 재무상담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김지영 PCA생명 상무는 “개인이 혼자 이 같은 일을 처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전문가들을 찾아 은퇴설계 상담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은퇴준비 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인생 단계별로 얼마의 자금이 필요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현재 갖고 있는 돈이 얼마고, 은퇴 전까지 모을 수 있는 자금은 어느 정도며, 은퇴 후에는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한가를 계산해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보험사나 은행, 증권사의 전문 상담원과 상담한 뒤 노후설계를 짜는 게 좋은 전략이다. 그 다음에는 사안별로 목표시기를 정해야 한다. 주택구입비, 자녀교육비 같은 목돈이 필요하다면, 그 시기를 설정하고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이어 목표를 장기 혹은 단기로 할지 정하고, 필요한 금액과 본인의 투자성향에 맞는 금융상품을 찾아 투자와 저축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 같은 은퇴준비 원칙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 은퇴 시점에서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다. ‘일 준비’가 ‘돈 준비’만큼 중요    은퇴 견적을 산출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은퇴 후에 과연 내가 얼마가 필요한가를 알아야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울 것인지도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재테크에 관심이 높지만, 매우 단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도 사실이다.소득의 일정액을 꾸준히 저축하되, 장•단기 목적으로 각각 얼마씩 투자해야 하는지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은퇴 준비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상품은 나이별로 조금씩 다르다. 김지영 상무는 “20~30대는 은퇴까지 여유가 있으므로 가능한 한 빨리 투자를 시작해 목적자금을 준비하되, 활동이 왕성한 시기이므로 사고와 질병에 대한 보장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40~50대는 준비된 목적자금을 자녀의 교육 등에 활용하고, 노후 소득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의료비가 은퇴자금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예기치 않은 노후 질병에 대한 준비도 착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은퇴상품이라면, 저축이나 부동산을 떠올렸지만 이젠 저금리 시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창희 소장은 “저금리 시대인 만큼 은행상품으로 은퇴에 대비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은퇴설계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각종 보험상품을 유력한 은퇴상품으로 거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부터 은퇴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 우재룡 소장은 “과감하게 20대부터 은퇴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전기보  행복한은퇴 연구소장도 비슷한 생각이다. 은퇴준비는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낫고, 요즘엔 은퇴준비를 하는 주력층이 기존의 40대에서 20대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작년에 진행한 은퇴설계전문가 과정에 20대 대학생 커플이 등록해 전 소장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전 소장이 당시 그 젊은 커플에게 왜 은퇴준비를 20대에 하느냐고 물었는데, 커플의 답은 이랬다.“인생에서 1막, 2막, 3막(은퇴 후 인생)이 있다면, 2막을 거치지 않고 1막에서 바로 3막을 준비하고 싶었어요.”  노년학 전공 박사인 송양민 가천의과학대 보건대학원장은 “적어도 30대부터는 은퇴에 대비한 재정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준비하는 기간만큼 탄탄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30대부터 30년간 은퇴준비를 하면, 은퇴 후 30년간 안락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시장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2007년 12월 발표된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6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이 남자는 75.74세, 여자는 82.36세로, 2005년에 비해 각각 0.60년, 0.48년 늘었다. 연령별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것도 금융회사들엔 호재다.  2006년 현재 기준으로 30세 남자는 46.7년, 여자는 53.2년을, 45세 남자는 32.6년, 여자는 38.6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 시대다. 전통적인 부동산투자나 은행저축으로 은퇴에 대비를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이에 따라 보험상품에 눈을 돌리는 은퇴설계자가 부쩍 늘었다.  이런 잠재가입자를 선점하려는 금융회사들의 발걸음도 더 빨라졌다. PCA생명은 은퇴시장의 선구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 회사는 2005년 당시 업계 최초로 은퇴에 관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 캠페인을 진행했고, 은퇴상품 포트폴리오, 은퇴견적 산출서비스, 은퇴준비를 위한 재테크 도서 출간, 은퇴 세미나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전문적인 재정설계를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9월부터 5차 은퇴준비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밖에 삼성생명은 ‘퓨처50’이란 은퇴설계 전략을 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대한생명도 ‘골드에이지 플랜’이란 슬로건으로 은퇴상품 가입대상자 공략에 나섰다. 미래에셋생명은 은퇴설계 슬로건인 ‘러브 에이지’를 앞세워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은퇴설계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들기도 했다. 은퇴 후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돈(재무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긴 시간을 보내는 방법(비재무적 요소)이다. 먼저 재무적 요소에 필요한 상품부터 살펴보자.   전기보 행복한은퇴연구소장은 “은퇴 후에는 10억원짜리 부동산보다는 매월 500만원이 나오는 연금이 더 좋다”면서 종신형 연금상품을 눈여겨보라고 제안한다. 그는 또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일시납을 통해 즉시 연금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즉시연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창희 소장은 “은퇴 전에 목돈 마련도 중요하지만 금융상품을 통한 돈 관리, 은퇴준비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국민연금은 기본이라며 동시에 퇴직연금, 변액연금보험도 추천한다.  우재룡 소장은 자식에게 과다하게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보험 중에서도 특히 투자성격을 갖춘 변액유니버셜보험이나, 연금 성격도 갖춘 변액연금보험에 들 것을 권한다.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전기보 소장은 은퇴 후 ‘일’을 강조한다.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창희 소장은 은퇴 후에 해야 할 일을 은퇴 전에 준비하라고 한다.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자원봉사를 해서 유명해진 해비탯(사랑의 집 짓기) 운동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서는 정년 이후 불쑥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면서 찾아온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은퇴 전 자원봉사를 한 이들만 받는 것인데, 이는 은퇴준비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양민 대학원장은 은퇴 전에 문화에 대한 공부도 미리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은퇴 후 인생을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꾸미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모차르트나 브람스 명곡을 듣고 이해하려면, 또 야수파와 인생파 그림을 보고 이해하려면 은퇴 전에 정신적, 문화적 교양을 미리 쌓아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10대 은퇴 준비 원칙  -가족, 특히 자녀들을 모아 놓고, 부모의 노후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져라. 자녀 교육비도 중요하지만 은퇴준비 자금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잊지 말라.  -자녀교육비와 은퇴자금을 적절하고 균형감 있게 분배하도록 부부가 함께 먼저 의논하라. 부부의 취미를 서로 공유하고 서로 친구가 되어야한다.  -매년 15-30일은 은퇴주비생활의 적응을 위해, 매월 30만~50만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은퇴준비자금으로 사용하라.   -은퇴 후 할 일을 먼저 생각하고 계속 현실화를 위하여 그 생각을 발전시킨다. 바뀌는 생활과 자금상황에 따라 은퇴 후에 할 일을 계속 구체화시켜야 한다. 은퇴후를 준비하면 지금의 생활이 즐겁고  더 윤택해 진다. 은퇴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의 도피가 아니고 현실을 더 충실히 하는 것이다.  -은퇴 후에 가 볼 곳을 은퇴전에 반드시 미리 가보고 조금씩 준비한다. 여행은 은퇴전에 할 몫이다.  -은퇴 후에 필요한 제2의 직업을 미리 준비하라. 젊었을 적에 은퇴준비를 하고, 은퇴준비기간으로 최소한 10년 이상을 들여라. 새로운 전공을 반드시 하나 더 준비하기를 권한다. 남은 삼십년을 위하여 학사편입을 해서라도 3년은 새로눈 전공을 해야하지 않은 가?  -전원생활, 해외생활도 가능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라. 그리고 은퇴전에 일전에 5-10%의 시간과 물질을 할애하여 은퇴생활을 준비하라 아니 은퇴생활을 미리 시작하라.   -은퇴시점의 자산규모를 예측하고 예상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라. "돈은 버는 것은 기술이고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다" 그러나 돈을 쓰면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바람직하다.  -체력을 비축하고 건강을 발전시켜라. 인생은 길다. 마라톤 경주다. 은퇴후를 건강하게 살지 않으면 은퇴후는 자기에게나 가족에게나 최악일 뿐이다. 건강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급한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은퇴 준비를 위해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 할일, 그리고 기본 생활자금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금 부터 준비 해야한다. 은퇴 15년 전은 1%를 은퇴 14년 전에는 2%를 .....은퇴 2전에는 14%를 은퇴 1년 전에는 15%의 시간을 은퇴에 준비하자. 익숙한 것이 가장 생산성이 높고 편하다. 은퇴후 할 일에 대하여 익숙해 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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