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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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국 동북지역의 미래 가치와 조선족 댓글:  조회:2586  추천:2  2015-08-18
중국 동북지역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곳이다. 애써 고중세의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곳엔 근현대 한민족 슬픈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일제강점기 선열들은 나라를 찾기 위해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항거했으며 광복 후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정주한 사람들은 역내(域內) 질서의 재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그 후손인 조선족 동포들이 이 지역 곳곳에 터 잡고 중국 공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 동북지역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미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지역의 지정학적·지경제적·지문화적 가치를 고려하면 중국 동북지역은 향후 한반도 혹은 한민족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이 지역은 냉전과 탈냉전이 공존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이중구조 해체를 견인할 심장지역(heartland)이며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내용과 범위 모두 제한적이다. 이 지역과의 적극적인 관계 맺기도 탈냉전시대가 도래하고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뒤에야 시작됐다. 관계 맺기의 시간적 지체로 인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관심의 내용은 과거 이 지역과의 인연을 되새기거나 이곳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연민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룬다. 관심의 범위 역시 과거 지향적이거나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우리는 과거의 인연이나 조선족 동포와의 연관성 속에서 중국 동북지역을 바라보던 한계를 넘어 이곳이 한반도의 정세 변화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견인할 더 의미있는 곳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 지역의 지리적 가치를 좀더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조선족 동포들의 가능한 역할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지금 중국 동북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세계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세계화, 인터넷 세상, 다문화 등의 말에서 그 다름을 실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는 틀’로서 지리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는 지리학이 현시점은 물론 미래까지도 바라보게 한다며 지리학적 통찰이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임을 강조한다. 중국 동북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조선족 작가 유연산은 중국 동북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의 이주 역사와 삶을 조명하기 위해 두만강 1천리, 압록강 2천리, 송화강 5천리, 흑룡강 7천리를 답사했다. 과 이 그 결과물이다. 1994년부터 4년여 기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답사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조선족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상이 다가 아닐 것이다. 유연산은 중국 동북지역 곳곳에 터 잡고 살아가는 조선족의 역사를 통해 이들의 질긴 생명력, 이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 그리고 한민족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광복 70주년이 주는 역사의 무게가 특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며 지나간 일들을 성찰하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도래할 70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말은 넘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은 한반도 통일을 이루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의 가치를 평가하고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을 제고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곽승지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교수, 정치학박사 한겨레 2015-08-17 18:38
8    올해 ‘3.13만세운동’ 기념행사가 갖는 의미 댓글:  조회:2656  추천:3  2015-03-23
올해 ‘3.13만세운동’ 기념행사가 갖는 의미   곽 승 지 (정치학박사/ 연변과기대 교수)   역사는 흐른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로 이어진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되새기는 것은 단지 그 사실을 들추어내어 당시를 회상하려는 소극적 행위가 아니다. 현재는 물론 미래를 위해 그로부터 더 큰 교훈을 얻으려는 적극적 행위이다. 3월 1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지신진에 위치한 ‘반일의사릉’ 앞에서 열린 ‘3.13만세운동’ 96주년 기념행사는 지난 역사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면면이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 참가한 250여명의 대중은 한 마음으로 96년 전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무참히 쓰러진 영혼들의 넋을 달래며 그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3.13만세운동은 일제의 핍박을 피해 혹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연변 땅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던 조선인들이 서울에서 열린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분연히 일어선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연변지역에 거주하던 조선인 2만여 명이 참여해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조선의 독립을 외친 이 운동은 이 지역 조선인들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알리고 이후 지역 내 독립운동을 견인한, 항일 독립운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정표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3.13만세운동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의 3.1운동이 중국에서 일어난 반일운동인 5.4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5.4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진독수(陳獨秀)는 북경에서 발행되던 주간지 매주평론(每周評論)을 통해 3.1운동은 세계 혁명사상 신기원을 열었다고 격찬했다. 5.4운동을 이끈 한 학생대표는 북경대학 학생 잡지에 게재한 글 에서 3.1운동을 크게 평가하는 가운데 중국 국민과 학생들이 3.1운동에서 새 교훈을 얻어 총궐기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3.13만세운동이 3.1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3.13만세운동이 연변에서 조선인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하여 이를 연변지역과 조선인에 한정하여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서울에서의 3.1운동이 연변지역에 까지 확장된 의미를 헤아리고 이러한 열기가 중국 전역에서 반일운동의 불길을 지피게 되는 과정이었음을 직시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반파쇼 전쟁 승리 및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중국과 한국 정부가 3.13만세운동 기념행사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 의미가 부각되었다. 일본이 현재까지 동아시아 침략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와 같이 중국과 한국이 함께 반일운동의 역사를 되새긴 것은 일본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히 의미있다. 이는 중국과 한국 정부가 앞으로도 3.13만세운동 기념행사에 함께 나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1박2일 간 일본을 방문해 일본이 동아시아 침략 역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데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메르켈 총리는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일본이 독일과 달리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은 채 역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데 대해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비교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의 행보에 대해 고마워하고만 있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민망함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아픈 역사를 가진 중국과 한국이 그 역사를 함께 되새기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의 하나이다.
7    중국인의 꿈 그리고 조선족의 꿈 댓글:  조회:3363  추천:5  2014-06-18
"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근대 이래 가장 위대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꿈(中國夢)'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처음 한 말이다. 2012년 11월 29일 베이징 천안문광장 옆 국가박물원에서 열린 부흥지로(復興之路)란 전시회를 참관한 직후 행한 시 주석의 이 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국 또는 중국인의 미래를 점치는 단서가 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듬해 3월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中國夢에 대해 재차 언급함으로써 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중국은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한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역대 지도자들은 다양한 표현을 통해 중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비전을 말해 왔다. 후진타오(胡錦濤)의 조화사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비전을 넘어 중국인의 꿈(희망)에 대해 최고지도자가 언급한 것은 시 주석이 처음이다. 시 주석의中國夢에 대한 말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시 주석이 말한中國夢의 핵심은 '다 같이 부유해 지는 것'이다. 청화대 리시광(李希光) 교수는 시진핑의中國夢의 핵심내용이 다 같이 부유해지는 것으로 다수의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고 말한다. 중국공산당이 절대다수 인민대중들의 강렬한 요구인 '다 같이 함께 부유해지는 개혁발전의 길'로 나아가 인민대중들이 진심으로 공산당을 옹호하게 만드는 것이中國夢이라는 주장이다.   주목되는 것은 시 주석의中國夢이 미래의 중국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동양적 화합과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홀로 7%대의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이 더불어 잘사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中國夢은 중국인의 화합과 조화를 넘어 전 세계의 화합과 조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시 주석의 결의에 찬 표정에서中國夢이 꿈을 넘어 현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 믿음은 중국인들 스스로 그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추동할 것이다. 그래서 꿈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몫이라는 말 또한 꿈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미래는 다르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물론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꿈을 향해 부단히 앞으로 나아갈 때만 현실이 된다. 그러나 당장은 꿈을 꾸고 그 꿈을 말해야 한다. 꿈을 이루는 방법의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며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막연하나마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을 꾸며 살아간다. 비록 당장의 삶이 고단해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갈지라도 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러면 조선족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꿈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조선족의 진취적 기상과 적극성으로 볼 때 중국공민으로서 조선족 개개인의 미래는 창창할 것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미래에 대해서는 기회론과 위기론이 맞서고 있다. 조선족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급변하는 시대상황 하에서 조선족 개개인만 있고 집단으로서 조선족의 미래에 대한 꿈(비전)을 그리지 못한 탓은 아닐까? 흑룡강신문 2014년 6월 18일자
6    교양, 교양과목 그리고 교양 있는 사람 댓글:  조회:2697  추천:2  2014-03-24
서둘러 인생 1막을 정리하고 연변에서 그 2막을 열며 학생들에게 ‘교양(敎養)’을 가르치는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금년 3월부터 연길에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양학부에 소속돼 이른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개강 첫날, 처음 만나는 ‘신입’ 교수에 대한 호기심 가득찬 학생들에게 교양학부 소속 교수로서 교양과목이 전공과목보다 더 중요하다는 등 일방적으로 내 주장을 늘어놓았다. 학생들이 내 생각을 읽어주길 바라면서....   학생들 역시 교양과목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을 터인데 되풀이해 강조한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개인이 갖춰야 할 교양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소학교 및 중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하지만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소 다르다. 대학이 교양학부를 두고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이들이 지식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함양해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하며 모범적인 생활을 하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다.   교양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이다. 이는 “사회생활을 품위 있게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폭넓은 지식” 정도로 재정리할 수 있다. 이를 확장하면 대학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춘 품위 있는 생활을 하는, ‘교양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교양과목을 가르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사회에 나가 올바른 사회인이 되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화되고 사회가 분화된 오늘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개개인만을 생각하며 타인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교양을 앞세우는 것은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이 거듭되면 성인군자도 “교양이 밥 먹여 주냐”며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세계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배우고 익혀야할 지식이 넘쳐나 교양을 쌓는 것이 지난한 일이 되고 있다. 교양과목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넘쳐나는 지식을 어떻게 다 배우고 익힐 수 있냐고 푸념할 만하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교양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 누구나 교양 없는 사람(?) 때문에 기분 잡친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의당 뒤에서 그 사람의 교양 없음을 나무랐을 것이다. 상황을 바꾸어 누군가 나의 교양 없는 행동(?)에 기분 나빠하며 험담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교양 없는 사람 때문에 기분을 잡쳤을 때보다 더 기분 나쁘지 않을까?   교양을 갖추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각하고 삶을 풍성하게 하여 세상을 보다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교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내면의 발전을 통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여 사회 안에서 진정한 자기 실현을 완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양 있는 사람의 가장 큰 덕목은 타인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일 것이다. 흑룡강신문 3월 24일자
5    연변 발전을 조선족사회 발전에 활용해야 한다 댓글:  조회:3243  추천:24  2011-09-06
연변은 여전히 거침없는 발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채 10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았는데도 달라진 모습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두드러졌다. 주도인 연길시는 물론 지방의 중소도시, 그리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 및 도시 외곽의 다양한 건설현장 등 연변지역 곳곳에서 그런 모습은 쉽사리 확인할 수 있었다. 연변지역의 경제성장률을 통해서도 그곳의 발전이 다른 지역에 비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금년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9% 증가했다. 이는 금년 상반기 중국의 GDP 성장률 9.6%를 크게 웃도는 것일 뿐 아니라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천진의 16.6%보다도 높은 수치다.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발전하는 연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실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족자치주인 연변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해외에서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돈을 송금하며 연변의 발전을 견인해온데 대한 자부심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갖가지 아픔과 설움을 견디어 냄으로써 숙명처럼 끌어안고 살았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됐다는 기쁨을 확인하는 실증적 사례로도 받아들여 질 것이다.         ▲ 번화한 연길시 로짠버스터미널 지역   이는 연변 출신이든 아니든 모든 조선족동포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조선족동포들은, 연변이 지리적으로 중국 동북지역의 변방을 지칭하지만 지문화적으로는 조선족동포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대해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연변과 비연변으로 나누어 서로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만 연변은 조선족동포들에게 있어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인 것은 분명하다. 이방인인 필자 역시, 단지 조선족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러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변은 하나의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조선족동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삶의 터전으로서 조선족사회를 지탱해온 핵심지역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그런 감정에 기여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인 필자에게는, 연변의 이러한 가치를 생각하면 할수록, 연변의 급속한 발전에 가려진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 크게 느껴진다. 연변의 발전 속도에 비례해 조선족동포들의 위상과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연변의 발전은 그 자체로도 마땅히 평가받아야 하지만 조선족동포들이 그 중심에 서 있어야만 의미있다. 조선족자치주인 연변의 발전은 당연히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추동하고 조선족동포들의 행복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연변을 방문하는 동안 발전하고 있는 연변의 모습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조선족동포들의 위상은 작아지고 역할 또한 위축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연길시 신축천지교   창지투선도구개발계획과 연룡도일체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선족동포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대부분의 동포들은 아직 적극 나서지 않는 것 같다. 어디를 가도 사람은 넘쳐났지만 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연길시에서 조차 전체인구의 57% 이상을 차지한다는 조선족동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거리에서도 시장에서도 조선족동포들은 이미 소수자로 전락한 듯했다. 실제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의 수가 호구를 근거로 한 인구조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던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인식하면서도 대안을 마련하는데 소홀히 하며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조선족동포 중에는 연변과 특별한 인연이 있고 그동안 연변의 발전을 견인했기 때문에 연변의 발전은 응당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조선족동포들은 연변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연변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변지역의 지경학적 가치와 중국의 정책을 보면 이곳은 앞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 것이 분명하다. 조선족동포들은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연변의 발전이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견인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여야 한다.
4    조선족 J형에게,신묘년 새해 인사에 붙여 댓글:  조회:3687  추천:34  2011-01-03
J형에게, 신묘년 새해 인사에 붙여 곽승지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정치학박사J형! 다시 한해가 저물어가고 사람들은 습관처럼 새해맞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누구는 아쉬움 속에 한해를 돌아보며 새해에는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다잡는가 하면 누구는 입가에 미소 지으며 새해에 이루려는 또 다른 계획들을 글로 적어 책상머리에 붙여놓습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연례 의식과도 같은 이런 일들에 우리들은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면 뭔가 허전하고 마치 새해를 맞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 양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지요. 저 또한 새해맞이를 위해 황망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J형에게 편지를 씁니다. 느닷없이 쓰는 편지여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J형이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저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편지가 J형과의 소통을 늘리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기를 바라며 J형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담아 2011년 신묘년(辛卯年)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J형! 어느 시인은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세월은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지요. 사람들이 편의를 위해 세월에 경계를 그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구분하고 가는 해와 오는 해를 나누어 놓았지요. 인위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편리한 규칙이 있어 사람들은 세월을 가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가늠해 보면 제가 J형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10여 성상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세월을 보낸 지금에 이르러서야 J형이 한국사회에서 또는 한국사람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힘들고 아픈 날들을 짐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인생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하며 위로한들 J형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J형이 새해에는 지난 세월에 겪었던 아픔은 물론 그로 인한 원망마저도 모두 내려놓음으로써 의연하게 세월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J형이 조상 대대로 이어온 백의민족의 선함과 연변의 푸른 하늘보다 투명하고 순수한 성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려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J형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J형! 저는 당신이 겪은 아픔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픈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J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아픔을 이겨내고 상대에 대한 원망을 거두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마음의 문제인 동시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J형이 한국사회는 물론 한국사람과 보다 좋은 관계를 맺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로 말미암아 오랜 기간 떨어져 다른 제도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지난 역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모든 문제는 우리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능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힘을 합해 우리들의 좋은 관계맺기를 방해하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다시 한민족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J형이 보다 밝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흔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현재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미래지향적 동물입니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하여 현재에 안주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때 더 큰 행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기실 어느 누구도 과거의 흔적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과거에 겪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용서를 통해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자신을 힘들게 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까지도 받아들임으로써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레드 러스킨이 말한 것처럼 용서는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새로운 열쇠를 제공할 테니까요. J형! 새해를 맞이하여 더 큰 용기로 과거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을 거두세요.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세요.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더 큰 행복을 찾아 미래를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용기있는 자만이 용서할 수 있고 또 진정한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J형! 신묘년 새해에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당신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당신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를 생각하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못지않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 역시 힘겨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시작이듯 이제는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혹여 무엇을 먼저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J형이 중국동포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앞장서 그들을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렵니다. 지도자 없는 대중은 불행하니까요. 2011년 새해에는 J형이 보다 많은 꿈을 꾸고 그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동북아신문
3    조선족사회는 당신의 리더쉽을 원합니다 댓글:  조회:3462  추천:67  2009-11-12
조선족사회는 당신의 리더쉽을 원합니다 곽승지1. 왜 지도자가 필요 한가 - 우리의 모습이 제각각이듯이 사람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다릅니다. 누구는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세상만사 모든 것을 귀찮아하며 온통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는 가난하지만 베풀면서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이는 부유하게 살면서도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삶의 모습이 이렇듯 다양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 개인적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현상도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와 비교할 때 현대인들이 더 복잡하고 각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한 예입니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은 필연적으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깁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환경은 필경 타인을 배려하거나 전체를 생각하게 하기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럴 경우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기 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연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1세기 정보시대에는 무엇보다 박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주위의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들과 함께 사랑을 가꾸어 가지 않는다면 21세기가 그 어느 시대보다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말이지요. -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좋든 싫든 주위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타고 낳습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야만 합니다. 역으로 내가 행복하여야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 지겠지요. 따라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망각하면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불행해 지니까요. -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분명한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는데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어떻게 하면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 사랑이 넘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들 스스로가 자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에 눈떠야 합니다. 스스로 못한다면 올바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인도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가리켜 리더(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지도자를 애타게 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누가 지도자인가 - 저는 한때 조선족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도자 없음을 한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 없음을 탓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직시하며 혁혁한 지도자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조선족동포 모두가 지도자 후보가 되어 지도자와 같은 역할을 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 그런데 지도자의 역할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도자는 이러이러해야한다고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지도자는 이러이러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직한 지도자상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스스로 지도자 후보가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마음가짐과 그것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 또 지도자의 범주도 다양합니다. 국가적‧민족적 차원의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작은 집단의 지도자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라는 말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그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지도자의 반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당신도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도자 역할의 막중함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어 자신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지도자로서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자세란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소임을 다하려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지도자에게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 그러면 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지도자는 우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고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가치있게 만들어가려는 긍정적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역사의 발전은 사람들의 긍정적 힘이 가져온 결과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미래지향적 사고를 통해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꿈과 희망, 또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또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이타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도자로 추앙해온 사람이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상황을 접하면 더 없이 슬퍼지는 것도 지도자에게서 이타적인 행동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를 더 보탠다면, 소통의 기술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또 배려하여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상대의 주장에 귀 기울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설득할 줄 아는 소통의 기술을 지녀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지도자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도자 부재를 말하는 것은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도자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그 길을 가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지도자연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만 믿고 따를 만한 진정한 지도자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선족사회에 지도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평가하고 따를만한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는 말이지요. - 지도자는 다수의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대중의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는 대중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그들과 함께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파트너쉽). 또 대중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서번트쉽). 이런 일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어야만 가능합니다. 대중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 과거 권위적이고 수직적 사회에서 지도자는 대중 앞에 서서 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과거의 지도자는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탈권위적이고 수평적 사회인 오늘날 지도자는 옆에서 도와주고 뒤에서 미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당연히 권력과 권위보다는 화합과 소통의 상징이 되어야 합니다. 21세기 정보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시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흔히 탈권위주의를 말합니다. 탈권위주의란 정보와 권력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 대중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에는 대중이 지도자에게 힘을 부여하게 됩니다. 과거의 지도자는 혼자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오늘날의 지도자에게는 세속적 힘이 없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아 그들과 함께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해 나가야 합니다. - 오늘날을 정보시대 및 소통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정보시대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일 뿐 아니라 정보가 중요한 세상임을 말하며, 소통의 시대는 소통이 원활히 될 수 있는 세상일 뿐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1차적 정보는 상식에서 시작됩니다. 상대를 포용해야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소통이 중요한 만큼 오늘날의 지도자에게는 소통의 수단으로서 컴뮤니케이션(대화)의 능력이 특별히 요구됩니다. 아울러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안철수 교수가 지도자의 모델로 제시한 A형인재의 덕목으로 전문성 및 상식과 포용력에 컴뮤니케이션을 포함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저는 오늘날의 지도자상으로 A형인재에 비전(꿈/ 희망/ 꿈너머꿈)을 더하고 싶습니다. 현재를 너머 미래를 지향하여야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러한 비전을 통해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역사 속에서 보는 지도자 상 - 지도자의 이런 덕목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혁혁한 지도자들의 삶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의를 위해 개인적 욕심을 과감하게 떨쳐버린, 이타적 대승적 위인으로 불립니다. 영국식민지 상태에서 미국을 건국한 후 초대 대통령이 된 워싱턴은 대통령을 연임한 후 주변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미국정치사에서 단지 연임만 허용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과 현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로부터 우리는 지도자 개인의 꿈이 집단적 꿈으로 승화되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현상을 목도하였습니다. 킹은 1960년대 초 흑백차별이 엄중했던 미국사회에서 약자인 흑인들이 강자인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의 꿈은 곧 수많은 흑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흑인 모두의 꿈이 되었고 드디어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를 백인중심사회인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지도자의 꿈이 40여년의 세월을 거쳐 현실이 된 것입니다. - 세종대왕이 세계적 발명품인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화합을 위한 소통의 리더쉽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쉽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음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지도자의 따뜻한 품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재필 박사의 삶을 통해서는 지도자 개인의 꿈이 자라나 대를 이어 확장됨으로써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안중근의사로부터는 자기희생의 리더쉽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조선족 지도자로 살아가기 - 조선족사회는 전환기에 처해 있습니다. 전환기에는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가 중첩되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날 조선족사회는 모든 면에서 전환기적 현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선족사회의 미래와 관련해 불확실성에 따른 위기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며 이를 반박하기도 합니다. 90년대 초까지 95%이상의 조선족동포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집거해 살아왔으나 지금은 이 지역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정도로 줄었습니다. 조선족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돈을 좇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면서 가족해체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당연히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사회적 일탈현상도 심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족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환기적 현상은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부에서 기회론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 조선족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중국의 거주지 내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미 전체 조선족동포들의 3분의 2가 기존 거주지에서 벗어나 중국내 개방도시와 한국, 미국, 일본 등 타국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이 경우 새로운 거주지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동포들의 내부 문제, 적응문제, 새로운 관계맺기 등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족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조선족동포 또는 조선족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거대담론에서부터 소집단 내에서 나타나는 미시적인 문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조선족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엄중하고 또 복잡하지만 지혜를 모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회론을 말하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누가 나서서 어떻게 답을 찾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야 합니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문제해결을 위한 어떤 방법이 있는지 등등.... 다음은 조선족동포들 모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하는 일입니다. 어떤 이는 문제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어떤 이는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어떤 이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한다면 문제해결은 지난할 겁니다. -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조선족동포사회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절박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갑론을박하거나 일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사례는 매우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말과 글 또는 개별적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을 통한 실천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문제를 앞장서 풀어가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은 아닌가요. 저는 이와 함께 조선족동포들 스스로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는 데서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조선족 지도자로 살아가야하는 고단함을 회피하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 이제 여러분 모두가 조선족사회의 지도자 또는 지도자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지도자로 나서십시오. 그런 다음 주변의 유사한 집단들과 연대하여 관심의 범위를 넓히십시오. 조선족동포들 모두가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동포사회의 미래를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면 조선족사회의 미래는 창창하게 빛날 것입니다. 흔히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적어도 조선족사회에는 그렇습니다. 조선족동포들 중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역사가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때 거기서 무엇을 하였느냐?”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본 글은 지난 8일 오후 2시, 귀한동포연합총회의 초청을 받고 연합뉴스 곽승지 영문팀 팀장이 '조선족 사회는 당신의 리더십을 원합니다'란 제목으로 행한 특강의 전문이다.
2    남북통일과 조선족의 역할 댓글:  조회:3438  추천:54  2009-07-29
남북통일과 조선족의 역할 곽 승 지 정치학박사/ 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Ⅰ)   역사가들은 전통적으로 역사를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초자연적인 것과 인간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구분하여 인식해 왔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새로운 역사적 현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초자연적인 역사적 현상을 제외하면 역사는 인간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믿어왔지만 인간의 의지가 미치지 않는 새로운 역사적 현상이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헤겔의 ‘이성의 간지,’ 칼 맑스의 ‘인간 소외론’ 등이 그것이다.    한 달 후면 남북한이 분단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64주년이 된다. 남북한이 각각 단독정권을 수립해 정치적 분단의 길로 들어선 지도 61년째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무리하기 위한 휴전협정을 조인한지도 56년째를 맞고 있다. 남북한은 이렇게 긴 분단의 역사를 살아왔다. 이로 말미암아 한민족이 20세기에 겪은 슬픈 역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기약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슬픈 역사를 끝내지 못하는 것도 단지 인간의 의지가 미치지 않는 새로운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대립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며 여기에도 인간의지가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인간의지를 뛰어 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역사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 역사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강한 의지가 역사를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의지 부족이 역사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Ⅱ)   <단상 1> = 북한 노동신문은 6월 14일 새삼스레 ‘사회주의 동방초소’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 표현은 냉전시대 북한과 동독이 각각 동방과 서방의 최전선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맞서고 있음을 강조하며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이다. 북한은 이 시점에서 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일까.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관계를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리려 한다는 의구심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서방초소로 역할했던 동독은 이미 통일을 이루어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동유럽에서의 민주화 도미노를 가져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11.9)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단상 2> = “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 층을 더 오른다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후진타오 중국 당총서기가 지난 5월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본토를 방문하고 있는 우보슝 대만 국민당 주석과 만나 읊은 당나라 시인 왕즈환(王之煥)의 시구다. 후주석은 지난해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가진 중국 공산당-대만 국민당 간 영수회담 이후 양안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양안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눈높이가 높아야 한다며 이 시구를 인용했다. 중국과 대만은 이제 사회적 통합을 넘어 경제통합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위안화와 대만달러는 공히 대만과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2007년 대만의 대중국투자는 100억달러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중국과 대만간 경제통합화에 관한 한 보고서에서 양안관계의 개선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남북경협의 확대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국과 대만의 이 같은 관계진전은 좋은 관계맺기를 위한 30년여 간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임을 주목해야 한다. 독일통일 역시 오랫동안 서로 신뢰를 쌓으며 통일을 준비한 결과이다.      <단상 3> = 남한의 민주평통 자문회의가 지난해 11월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국민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 55%가 북한을 ‘포용하고 함께 살 상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함께 살 상대’로 인식하는 응답자도 28.8%나 됐다. 북한을 ‘함께 살 상대’로 인식한 국민이 83.8%에 이르렀다. 민주평통이 금년 3월에 실시한 또 다른 조사는 국민의 80.4%가 남북통일을 ‘중요한 국가현안’이라고 응답했다. 남북 간 관계가 경색되고 남한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확산되고 있지만 국민은 여전히 북한을 함께 살아갈 통일의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 64주년을 맞으며 그래도 위안이 되는 대목이다.    (Ⅲ)    분단 64주년을 앞두고 다시 통일문제를 생각한다. 통일은 무엇인가. 통일은 왜 해야 하나. 통일은 가능한가. 그럼 왜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했나. 기초적인 문제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남북통일 과정에서 조선족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토대가 될 것이다.   ▢ 통일은 무엇인가 = 올해는 남한정부가 통일문제를 제도권 내에서 논의하기 위해 최초의 정부기구인 국토통일원을 설립한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 기구는 1990년대 초 통일부로 명칭을 변경하며 부총리급 기구로 격상됐다가 현재와 같은 장관급 기구로 정착되었다. 정부기구의 명칭 및 위상 변경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에서는 통일문제와 관련한 부침이 거듭되어 왔다. 통일에 대한 인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토통일원이라는 명칭에서 엿볼 수 있듯이 초기에는 북한이라는 실지(失地)를 회복한다는 의미의 국토통일의 관점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했다. 즉, 통일의 개념을 분단 이전 상태로의 복원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단지 국토회복의 차원에서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갖는 문제를 인식, 보다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통일을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비전으로 확장하려 한 것이다. 이른바 민족통일의 개념이다. 이것은 아직 유효할 뿐 아니라 북한지역 외의 동포들까지를 포용할 수 있도록 더 확장되어야 한다.   ▢ 통일은 왜 해야 하는가 = 통일은 남북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은, 작게는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이지만, 크게는 한민족의 슬픈 역사를 극복하고 그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는 한편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을 꾀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즉,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민족문제를 극복하고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냉전과 탈냉전이 공존하는 유일한 지역이다. 또한 페르시아반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이다. 따라서 남북통일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불안정성을 제거함으로써 역내에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 통일은 가능한가 = 한국민 80% 이상이 북한을 함께 살아 갈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통일을 국가적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다. 통일을 위한 토대와 명분은 이미 확보된 셈이다. 그러나 통일은 원한다고 되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트렌드(추세)에 비추어 보면 통일은 필연이다. 언제 어떤 통일을 맞을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보다 간절히 염원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간절함과 적극적 노력 여하에 따라 통일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면 왜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했나 =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민족국가는 6개이다. 그 중 4개 국가는 이미 통일을 이루었다.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나라는 남북한과 중국-대만이다. 그런데 중국-대만은 이미 경제통합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사실상의 통일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남북한만이 아직 통일의 전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다. 6.25전쟁을 경험하는 등 분단이후의 극단적 갈등을 경험한 것이나, 분단구조의 복잡성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남북한 공히 진심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며 경쟁하여 온 상태에서 이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진심을 다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한은 지금껏 스스로 반성하는 데 인식한 반면 상대를 탓하는 데는 너그러웠던 것 같다. 상대를 탓하게 되면 좋은 관계맺기를 할 수 없다. 당연히 주변을 활용하려는 노력도 소홀하게 된다. 통일을 위해 남북한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진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맺기를 하여야 한다.    (Ⅳ)   조선족은 한민족에게 있어서 역사적 현실적 측면에서 모두 특별한 존재다. 이들은 20세기 우리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를 온 몸으로 견뎌 냈을 뿐 아니라,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의 변방에서 살아가면서도 민족 문화와 전통을 오롯이 지켜왔다. 그들은 모진 세월을 견디며 중국 동북지역에서 당당하게 자리잡고 살아가고 있다. 조선족의 이러한 역사적 현실적 의미는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족은 지난 역사의 결과로 심정적으로는 북한과 가깝다. 그러나 오늘날의 새로운 상황에서는 남한과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같이 남북한 모두와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온 조선족은 남북한 주민들 간 소통을 위한 매개자이다. 그리고 조선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동북지역은 남북한 관계를 이어주는 새로운 통로이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조선족은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남북한 주민 간 소통을 매개하고 동북지역은 남북한 관계를 이어주는 통로로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족은 동북지역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남북통일 과정에서 조선족의 역할은 조선족의 문화적 특성과 중국 동북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여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족이 거주하는,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동북지역은 지정학적 요충지다. 이 지역의 지정학적 가치는 19세기 말 근대화 과정에서 열강이 이곳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이곳은 한민족은 물론 일본 등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관문이다. 또한 중국 동북 내륙지역과 러시아 몽골 등이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출로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국의 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21세기의 새로운 역사적 경향을 감안할 때 이 지역은 새롭게 각광받게 될 것이다. 즉, 단절된 상황에서 변방은 말 그대로 변두리에 지나지 않지만 소통의 시대에 변방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소통을 위한 중심이 된다. 연변과 그 주변지역은 21세기 새로운 소통의 시대에 즈음한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부각될 것이다. 세계적인 지정학자 매킨더가 20세기 초 동유럽의 지정학적 가치를 언급하며 심장지역(heartland)으로 묘사했던 것에 견주어 볼 때 연변과 그 주변지역은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심장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 선생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을 간동(艮東)으로 부르며 새로운 시대의 중심지역으로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북통일 과정에서 조선족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보다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한민족이 추구하는 민족통일에 대한 당위성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어떤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인식에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조선족동포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심정적으로는 북한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남한중심의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족내부에서 어떤 통일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통일을 위해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활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변을 포함한 동북지역의 지정학적 가치가 통일과정에서 조선족의 역할을 견인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 조선족동포들의 확고한 위상이 정립되어야 한다. 조선족 동포들이 동북지역에 자리잡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이 지역이 남북한 관계를 잇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기에 그러한 조건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가지 더한다면, 한민족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과 조선족동포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인과 조선족 간의 갈등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조선족동포들이 통일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과 조선족동포 간 갈등을 해소하고 민족애를 향유할 수 있는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조선족동포들은 통일 과정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선 자본주의를 먼저 경험한 입장에서 북한사회에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주민들에게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대한 경험을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통일이후 북한주민들의 사회화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족동포와 북한주민들 간의 이러한 특별한 관계는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사회의 불안을 불식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사회 내부에 이같은 변화가 추동된다면 동북아시아지역의 역내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공동체 건설이 현실화되면 조선족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활용해 남북관계를 넘어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가교로서 새로운 차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만들어 질 때 조선족동포들이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적 유대를 얼마나 견지하느냐 하는 점이 될 것이다. (끝)주: 이 글은 2009년 7월 17일 연길서 열린 GKFN 제2차 총회서 행한 발표문입니다.
1    중국 조선족에게 연변의 의미와 가치(곽승지) 댓글:  조회:4037  추천:109  2008-10-10
제1회 조선족발전포럼-"연변의 의미와 가치 좌담회" 발표문중국 조선족에게 연변의 의미와 가치 곽승지 정치학박사/연합뉴스 영문북한팀장      1. 지금 왜 연변을 말 하는가; 변화의 시대를 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저절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가 시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변화의 양과 질이 늘 같지는 않다. 변화를 초래하는 원인에 따라 그리고 그 힘의 크기에 따라 변화의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세상에서의 변화는 더욱 그렇다. 사람은 주체적 능동적으로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의 크기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변화의 시대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변화의 크기와 속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핵심적인 요인으로 다음의 두 가지 이유를 들곤 한다. 하나는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탈냉전체제에 의한 정치경제적 소통의 시대가 도래 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정보통신 및 교통의 발달이 소통의 시대를 추동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늘날의 변화하는 세상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변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다. 변화의 크기는 물론 그 결과 또한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화의 방향을 미리 가늠하여 변화의 길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와 개별국가 그리고 지역국가 간 관계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변화의 내용과 속도를 감안할 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자칫 소홀히 할 경우 시대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당연히 조선족과 연변지역도 그러한 변화의 대상이다. 조선족사회와 연변지역의 지문화적 및 지정학적 상황을 감안하면 조선족과 연변지역은 단순한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핵심적 변화 대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정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미치는 파급도 훨씬 클 것이다. 조선족동포들도 이미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며 주목해 왔다. 조선족사회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관심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조선족사회와 연변지역에 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실로 엄청난 것이다. 변화의 물결이 지니고 있는 위력이 큰 만큼 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냉정하면서도 열린 자세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리고 다가올 변화의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그 물결이 미칠 파급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따지는 일은 지엽적인 문제이다. 어느 경우이든 구성원들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족사회와 연변지역이 당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선족동포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연변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것도 그러한 작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 연변을 연변에 한정할 것인가; 열린 연변을 지향하다    연변의 의미는 복합적이다. 지역적 개념으로서 연변은 중국 동북지역의 연길을 중심으로 한 변경지역을 일컫는다. 규범적으로는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줄여서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연변을 단순히 사전적 규범적 의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그 의미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연변이라는 말이 생성되고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설정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연변은 조선족동포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시대적 상황적 필요에 의해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한정할 필요에 따라 연변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지고 지역적 범주가 설정되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조선족동포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짙게 깔려있다.   따라서 연변이라는 명칭이 지닌 함축적 의미를 헤아릴 때 연변은 특정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뿐 아니라 중국 내에 조선족동포들이 집거해 살고 있는 지역을 보편적으로 가리키는 보통명사로도 해석해야 한다. 이럴 경우 연변의 의미는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타 지역으로 이주하기 이전 조선족동포들이 주로 살았던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산재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연변의 의미를 광의로 해석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것은 협의의 의미에서의 연변, 즉 연변조선족자치주가 비연변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동포들의 삶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연변이 하나의 독립되고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조선족동포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며 그들의 삶을 이끌어온 핵심지역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변은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타지역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는 점에서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경우 연변의 범주는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정할 경우 명백해 진다. 적어도 연변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족동포들이 지금과 같이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구현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명백하다.   오늘날 조선족동포들이 거주지를 중국전역으로 확대해 가는 상황에서 민족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지리적 행정적 거점으로서 연변의 가치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조선족동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가는 한 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연변이 그 역할을 더욱 충실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변이 조선족자치주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족사회 내에서 연변과 비연변지역으로 갈리어 지역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을 드러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연변지역 조선족동포들은 동포 집거지 출신으로서 산재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반면 비연변지역 동포들은 연변지역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곳에 사는 동포들의 역할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연변을 독립되고 단절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주변지역을 연결하는 소통의 축으로 인식하려는 것은 장차 동북아시아공동체가 형성될 때 연변지역이 한반도와 중국은 물론 주변국가들을 잇는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도 맞닿아 있다. 연변은 당장은 조선족동포들 간의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지만 미래에는 그 지정학적 지문화적 가치로 인해 동북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갈 미래의 공간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연변을 사전적 규범적 의미로 한정하여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연변의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 무리일지라도 조선족동포들 모두가 연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면 그 의미를 확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연변과 조선족은 결코 분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분리해서도 안 된다. 3. 연변의 미래가치를 직시하자; 연변이 희망이다   0. 연변은 역사의 땅이다 (역사성)연변은 역사의 땅이다. 연변은 그냥 무심히 스쳐 지나쳐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사의 우여곡절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중세사는 물론 근현대사에 이르기 까지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연변은 특히 우리 선조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곡의 우리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온 삶의 무대였다.여기서 역사를 말하는 것은 역사논쟁에 불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다. 연변이 조선족동포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당위성을 지니고 있음과 함께 조선족동포들이 있어 그 역사성이 빛을 발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즉 연변의 역사만으로도 조선족동포들이 연변에 거주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만일 연변에 조선족동포들이 살지 않는다면 한민족과 결부된 연변의 역사는 단절되어 그야말로 역사로서만 의미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동포들이 연변에 살고 있음으로 해서 연변의 역사는 한민족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런 역사로 되살아나고 있다. 0. 연변은 한민족 교류의 장이다 (현재성)연변에는 4부류의 한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 북한 국적의 조교, 남한 국적의 한국민,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제3국 국적의 재외한인 등이 그들이다. 조선족을 제외하면 한국민 2만여 명, 제3국 국적의 재외한인 수백 명 등 그 숫자는 미미하지만 그들이 연변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한민족이 지난 세기에 겪은 아픔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이들 중에는 20세기에 한민족이 겪은 질곡의 역사가 남긴 상흔 --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남북분단 등 -- 을 여하히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 돌파구로서 연변을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연변이 한민족의 아픔을 보듬고 또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장소인 셈이다. 연변에 이와 같이 다양한 한민족이 모여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은 연변의 역사성과 함께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해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철조망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연변지역은 제한적이지만 북한과의 직간접적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변이 북한으로 통하는 우회로로 기능하고 있는 이유이다.이에 따라 연변은 남한과 북한 간의 소통을 위한 교류와 협력의 장소로 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상봉이나 학술교류, 그리고 대북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연변을 무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변은 또한 북한으로 가는 통로로서 기능한다. 2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데 하나는 대북교역의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폐쇄사회인 북한에 새로운 문물과 정보를 전파하는 대북 정보 및 문화 전달의 측면이다. 남한이 휴전선에 가로막혀 북한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연변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연변이 한민족교류의 장으로서, 북한과의 소통을 위한 통로로 역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선족동포들은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특별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자부심의 원천이 연변의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0. 연변은 미래의 땅이다 (미래성)연변은 역사의 땅일 뿐 아니라 미래의 땅이다. 연변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기회의 땅이다. 당장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저발전의 낙후된 모습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있지만 오히려 온갖 오염으로부터 벗어난 청정지역으로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다. 연변은 또한 근현대 동북아시아 갈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갈등의 역사를 치유할 희망을 잉태하고 있다.연변이 동북아시아지역의 갈등의 역사를 치유할 미래의 땅임은 21세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헤아릴 수 있다.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를 마감하며 인류는 새로운 역사를 준비해 왔다. 인류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탈냉전체제에 따른 소통의 역사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지구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유무상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지역 내 국가들이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동북아시아지역의 역내 사정으로 인해 아직 그러한 움직임은 제한적이지만 경제공동체 안보공동체 형식으로 학자들 간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지향하는 모델은 유럽공동체이다.이 같은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비록 아직 논의단계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건이 성숙되면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의 움직임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이 구체활 될 경우 연변은 가장 각광을 받을 곳이다. 연변은 중국의 동북지역에 위치한 변방이지만 동북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중심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과 관련해 연변이 주목받는 이유 중에는 이곳에 조선족동포들이 자리잡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족동포들은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추동할 중심국가인 한국 및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어 양국이 절충점을 만들어가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족동포들이 연변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것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도 중요하다.동북아시아지역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은, 갈등으로 점철된 이 지역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역내 국가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꿈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 조선족동포들을 포함한 한민족 모두를 위해, 그리고 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들을 위해 반드시 그 꿈을 이루어야 한다.연변의 지정학적 가치와 조선족동포들의 지문화적 가치를 감안하면, 연변지역과 조선족동포들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작은 열쇠 하나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0. 연변은 변방이 아닌 중심이다 (지정학적 가치)연변의 지정학적 가치는 이미 근현대 이 지역을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을 통해 입증됐다.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 단적인 예이다. 영국의 지정학자인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는 유럽중심의 지정학적 가치를 평가하면서 이른바 ‘심장지역(heartland)’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서 그는 “동부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역을 지배하고 심장지역을 지배하는 자가 월드 아일랜드(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하며 월드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동부유럽이다. 맥킨더의 심장지역 이론을 동북아시아에 원용하면 연변지역이 동부유럽에 해당한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연변지역은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핵심인 것이다.맥킨더가 활약했던 19세기말의 지정학과 오늘날의 지정학은 확연히 다르다. 오늘날의 지정학이 더 이상 국가 중심적이 아니라는 것에서 달라진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 과거의 지정학이 국가전략에 의한 단절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주변과의 소통을 도모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연변을 맥킨더의 동부유럽에 비유한 것은 단지 지리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연변지역은 단절의 역사에서는 갈등의 장이였지만 소통의 역사에서는 화합과 교류의 장이 될 것이다. 연변은 한반도와 접해 있으며 러시아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동해로 진출할 경우 일본과도 마주보고 있다. 통상 동북아시아공동체 대상국가로 남북한과 러시아 일본 몽골 그리고 중국을 말하는데 연변은 이들 국가 모두와의 지리적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중심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다. 연변은 바로 그러한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그래서 20년, 혹은 30년 후쯤 동북아시아공동체가 구체화될 경우 연변이 공동체의 수도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른다. 연변은 동북아시아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4.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세계질서는 획기적으로 변했다. 탈냉전적 상황은 그 폭발성만큼이나 국제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단절의 시대에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소통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점이다.소통의 시대는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추동하고 있다. 이른바 탈영역화와 재영역화가 그것이다. 즉 구질서 하에서 획정됐던 영역들이 신질서 속에서 새로운 관계맺기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변 역시 탈영역화의 도정에 있다. 냉전체제하에서 철저하게 사회주의진영 내의 중국영역에 갇혀 있던 연변이 탈냉전상황에 따라 한중수교 등 이 지역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세상과의 관계맺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연변에서의 탈영역화는 아직은 경제적 영역과 문화적 영역에 한정되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연변을 오가고 조선족동포들이 취업을 위해 한국을 찾는 것도 탈영역화 과정의 하나이다. 현재로서는 연변에서의 재영역화 과정 역시 경제적 문화적 영역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조선족동포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조선족동포들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현실적 정치적 정체성을, 한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이중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바이다. 조선족동포들의 재영역화는 동북아시아공동체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변지역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화두인 소통의 가치를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연변지역이 단절되지 않고 지정학적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거듭날 수 있어야만 연변의 미래가 밝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변의 미래를 위해서는 또한 조선족동포들이 연변의 가치를 인정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그 가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희망이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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