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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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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널 수 없는 강(김재국) 댓글:  조회:2266  추천:1  2009-05-16
그녀의 이름은 아야(彩), 물론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나는 왜서 그녀의 눈길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단순히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나는 언녕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길을 다시 따스한 눈길로 되돌려놓을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호감을 사려는 노력같은 것은 진작부터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눈길로 나를 보는 그녀의 마음도 결코 나의 마음만큼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는 마치 급속도로 달리던 두 차가 격돌하면 양쪽이 다 파손되는 이치와 같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이 더 아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말 한마디면 장기쪽같이 우리 라인의 사원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사장이이라는 빽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 라인의 라인장이였다. 한때 나는 그녀의 눈길과 부딪칠 때마다 <차별>이라는 낫말을 떠올렸다. <차별>은 그녀가 나에게 쓸 수 있는 마지막 핵무기었다. 그녀는 내가 <차별>을 얼마나 싫어하고 증오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멸시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 그녀의 눈길 앞에서 나는 차별받는 쪽에 언제나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 짓눌려 신음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몸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양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아침에 그녀를 만나도 <오하요> 하고 인사하지 않았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인사는 필수의 필수이고 기본의 기본이다. 나는 바로 이 필수의 필수, 기본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써 그녀를 일단 무시해버렸다. 매번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와 지시할 때마다 나는 다른 사원들처럼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이,하이>한 것이 아니라 로보트처럼 뚝 버티고 서서 무표정한 기색만 지어보였다. 처음에 그녀는 나의 그런 급작스러운 대응에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당황한 눈빛은 너무나 빨리 원상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 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훨씬 잔인하고 야멸찼다. 너 정말 나 앞에서 손을 들지 않을거야?! 벼랑끝처럼 가파로와진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이런 강박을 해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미국 학자 비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을 연상했다. 비네딕트의 말처럼 그녀는 한 떨기 예쁜 <국화>이면서도 한자루 섬뜩한 칼이기도 했다. 우리의 냉전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기는 다만 시간 문제였다….. 한때 그녀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를 대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해빛같이 따스했던 그녀와의 지난 날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의 이해와 사랑, 그네들과의 교류와 접촉에 항상 목말라했던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감로수와도 같은 존재였고 천사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8백만 일본 신(神)들이 나에게 보내준 유일한 은총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처음 회사로 출근하던 날, 그녀와 나는 묘하게도 회사 주차장에서 만났다. 내가 주차장 한 모퉁이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막 자리를 뜨려 할 즈음,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쁘게 생긴 여인이 자가용차 도아로 머리를 내밀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왜서 그곳에 바이크를 세우지요?> 나는 일시 어떻게 변명했으면 좋을지 몰라 난감하게 웃기만 했다. <이곳은 주린장이 아니라 주차장인데 왜 바이크를 여기에 세우냐 말이에요> 여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다시 소리쳤다. <저─주린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요……> 나는 그때까지 나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녀를 향해 겨우 변명 한마디 했다. 사실 바이크를 주차장에 세웠다고는 하지만 다른 차들의 주차를 방애할만한 위치에 세운 것은 아니였다. 바이크를 세운 곳이 주차선 밖인 데다가 회사 바람벽 한 모퉁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녀 역시 자그마한 어긋남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딱딱한 일본인이였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은 채 내가 어서 바이크를 움직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린장이 어디에 있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손으로 회사 건물 뒷쪽을 가리켰다. <저기 은행나무 보이죠? 저쪽으로 곧추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들면 주린장이 보여요> 은행나무를 가리켜보이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서 금반지가 빛을 발했다.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연푸른 잎새로 단장한 청초한 은행나무가 파아란 봄 하늘을 떠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그녀에게 인사하고 곧추 은행나무 쪽으로 바이크를 밀고 갔다. 그런데 그날 인사과 미야자키과장이 나를 이끌고 간 작업 현장에서 의외로 그녀를 다시 만날 줄이야. 내가 먼저 어색하게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녀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미야자키과장이 그녀 앞에 나를 내세우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야씨, 지난 번에 말했던 중국 유학생이에요.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데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조금 있는 모양이에요. 일본으로 온지도 몇년 잘 되고 우리 말도 참 잘해요. 오늘부터 매주 사흘씩 우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알아서 잘 가르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말을 마치자 미야자키과장은 <간밧떼네>(힘 내세요)하는 말을 나에게 남기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아야라고 해요> 미야자키과장이 자리를 뜨자 그녀가 나에게 곱싹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그녀를 따라 깍듯이 인사했다. 우리 말의 김씨는 일본 말로 <킨상>이 되기에 그녀는 그 후로 나를 킨상이라고 불렀다.  <이러고 보니 방금 킨상에게 많이 실례했네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까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례는 제가 했지요. 허나 그 일로 해서 우린 이미 구면이 되기도 했네요.> 나의 말에 아야가 웃었다. 기계로 정밀하게 가공한 듯한 그녀의 하얀 이가 이뻣다. 나는 속으로 아야는 웃으면 더 이뻐보이는 유형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녀는 오전 내내 나의 옆에 밀착해 서서 작업 요령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내가 맡은 일은 각 판매업체들에서 보내온 주문서에 따라 라인에 실려나오는 화장품들을 차곡차곡 상자속에 넣는 작업이였다. 화장품 종류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주문 숫자에 맞게 그것들을 상자에 넣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나는 어렵지 않게 일의 요령을 장악했다. <역시 지식인이 다르긴 다르네요!> 내가 혼자서 척척 일을 해내자 그녀는 손벽까지 치며 환성을 질렀다. 남자로서 여자의 칭찬을 받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로 해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즐거워하면서도 나는 결코 그녀의 칭찬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의 오랜 체험을 통해 나는 일본인들의 칭찬이 우리의 칭찬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은 누구와 대화할 때 상대를 올리추고 치하해주는 것을 하나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날 아야는 일본인의 예의로 나를 칭찬한 것이지 우리의 상식으로 칭찬한 것은 결코 아니였다. 나는 아야의 칭찬에 들뜨려하는 나를 경계했다. 그날 그녀는 나를 데리고 회사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내가 출근하는 금,토,일에 회사 식당에서 어떤 음식 메뉴들이 나오고 그 중 어떤 요리들이 맛있다는 것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킨상은 일본 사시미를 좋아하세요?> 식사하는 도중에 그녀가 문득 이런 물음을 제기했다. <사시미를 좋아하는가>는 내가 일본인으로부터 자주 받아온 질문이었다. <물론 좋아하지요> 나는 내가 왜서 <물론>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붙혀가면서 사시미를 좋아한다고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의 말에 그녀는 <그래요?!>하며 놀라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낫또(納豆)와 우메보시(梅干)는요?>하고 또 물어왔다. 나는 낫또는 좋아하는데 우메보시는 별로라고 했다. <낫또마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나의 말에 그녀가 웃음으로 가늘어진 눈을 갑자기 커다랗게 떠보이며 놀란 어조로 되물었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본의 낫또는 삶은 메주콩을 벼짚꾸러미나 보자기에 싸서 띄운 것이기에 우리의 청국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르다면 우리는 청국장을 끓여서 먹지만 그네들은 낫또를 띄운 그대로 먹는 것 뿐이었다. 일본으로 온 외국인에게 와식(일본음식) 중에 가장 거부감이 가는 음식이 뭐냐고 하면 1호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낫또였다. 그런데 그런 낫또를 내가 좋아한다고까지 하니 그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에─!우리 일본 사람들 중에도 낫또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녀는 일본 말 특유의 경탄어인 <헤에─!>를 길게 뽑으며 말했다. 위로 약간 치뜬 그녀의 고운 눈이 나의 앞에서 진주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진주같은 눈에 홀리울 것같은 자신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관서지방 사람들이 낫또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는 낫또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왜서 좋아하지 않지요?> 그녀는 쿡 하고 웃음을 쏟으며 실처럼 길게 늘어지는 낫또의 찐득찐득한 풀기에 자기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 킨상은 왜 낫또를 좋아하지요?> 나는 그녀의 입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낫또라는 화제에서 어서 도망치고 싶기라도 하듯 더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런 물음을 제기했다면 나는 일본의 낫또와 한국의 청국장의 상사점을 설명하면서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까지 밝혔을런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킨상은 우리 일본 사람이나 다름없네요> 식당 문을 나서면서 그녀가 나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이나 다름 없다는 말도 이미 많이 들어왔지만 그녀가 한 그 한마디는 어딘가 빛갈이 다른 것같았다. 그 빛갈이 어떻게 다른지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혹시 그것은 다만 느낌으로만 알 수 있고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라인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나는 그 후에도 자주 회사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말이 점심이지 우리들이 마주 앉은 식탁에는 언제나 맛나는 요리보다는 재미나는 화제가 훨씬 많이 올랐다. 나는 그녀와 말할 때마다 나의 빈약한 일본어가 각별히 풍부해지는 것같은 느낌에 놀라군 했다. 그녀는 나의 머리속에 숨어있는 사어(死語)들을 되살려내는 요술사같았다. 그녀로 해서 나는 점점 대학원으로 가는 날보다는 회사로 출근하는 날을 더 기다렸다. 우리의 대화에 시샘이 나기라도 한듯 회사원들이 이따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농조로 <설마 두분이 국제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하고 골려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수줍음을 잘 타는 일본 여자답지 않게 태연하게 웃기까지 하면서 <보면 몰라요> 하는 말로 가볍게 맞대응하군 했다. 나는 <보면 몰라요>하는 그녀의 표현까지도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중국에 대해 참으로 궁금증이 많은 여자였다. 무릇 중국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나 다 알고 싶어할만큼 그녀는 중국의 일에 관심을 보였다. 지어 그녀는 나의 입에서 무심결에 튕겨나온 사랑할 아이(愛) 의 중국어 발음 하나마저도 알려고 욕심을 부렸다. 일본어에는 <아이>의 중국어 발음을 대체할만한 발음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 를 일본식 발음으로 <아-이>라고 발음했다. 나는 그녀의 <아이>의 발음을 몇번이나 교정하여 주다가 불쑥 <아이>의 반의어인 증오(한스러울)할 헌(恨)자를 한번 발음해보라고 했다. 이라는 나의 발음을 모방하는 그녀의 입에서 <헨>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본어에서 <헨>은 이상하다는 뜻이다. <이제보니 아야씨는 사랑도, 증오도 잘 못하는 분이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나의 말속에 담긴 이중의 뜻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했고 증오도 했어요> 그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인데도 그 목소리엔 진실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愛>와 <恨>의 발음만을 반복해서 배워주는 것이 조금 따분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我爱你〉(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我恨你>(나는 너를 미워한다)라는 실용적인 말도 배워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혀 짧은 소리로 <愛>와 <恨>을 이상하게 발음하던 그녀가 거의 완벽할만큼 <我爱你>와 <我恨你>를 발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신비해서 몇번이나 그녀더러 그 두마디 말을 다시 발음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어보다는 그녀가 가장 취미를 가졌던 것은 역시 중국에 대한 상식같은 것들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는가. 중국 사람들은 왜 아이를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가. 중국의 상점들에서는 왜서 고객한테서 세금을 받지 않는가. 중국 남자들이 가정에서 밥을 한다는 것이 정말인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모택동 초상을 천안문 앞에 걸어놓는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가. 중국에서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어떤 곳들이 있는가. 중국 사람들도 이혼을 많이 하는가. 이혼하면 아이는 어느 쪽에서 부양하는가. 그녀의 질문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실태래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중국에 대해 무작정 알고 싶어하는 그녀가 나는 처음부터 싫지 않았다. 아니,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향수였다. <킨상의 말을 더 듣고 싶은데 참 아쉽네요> 매번 오후 출근 종소리가 울릴 때면 그녀는 항상 이런 말로 우리 대화를 매듭 짓군 했다. 진실보다는 예의를 더 갖추는 일본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그 말만은 믿고 싶었다. 만약 그녀의 말마저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일본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 때 아야의 마음과 나의 마음 속에는 우리의 헤여짐을 아쉬워하고 만남을 기대하는 하나의 작은 진실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진실이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과 불륜이라는 말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모른다. 나는 다만 우리가 향수하는 온전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 속에 진주처럼 빛을 발하며 들어앉고 있는 진실─이혼한 여자와 집을 멀리 떠난 남자가 서로 인간으로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진실─을 믿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점심시간만을 이용하여 대화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 한번 퇴근 후에 다시 만나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을 알리는 회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렸지만 그녀와 나의 귀가는 항상 어긋났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오후 5시만 되면 무작정 퇴근해도 됐지만 그녀는 사원이여서 퇴근시간 뒤에도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음에도 그녀는 퇴근시간보다 늘 한시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 중 그녀가 휴식하는 요일은 다만 수요일 하루 뿐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지난 여름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쏟아붓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도 끊힐 줄 몰랐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이크를 집에 두고 전차로 출퇴근하군 했다. 그날도 비가 왔기에 나는 전차로 출근했다. 하루 일을 다 끝내고 회사 밖을 나서니 비는 그때까지도 숙어들지 않고 계속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발표할 리포트를 써야 했기에 나는 겁없이 비속에 뛰어들었다.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자면 대개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회사 정문을 나와 10분 정도 걸었을가 할 때,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그 경적소리를 나더러 길을 비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유보도 섶에 더 바싹 다가붙어 걸었다. <킨상─!> 갑자기 차소리와 빗소리를 꿰뚫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뒤돌아보니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가용차 안에서 아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녀는 어서 차에 올라타라고 힘차게 손짓했다. 나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차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집이 어디지요?> 그녀가 액셀러를 힘있게 밟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집까지 바래주겠다는 뜻이었다.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라고 하자 그녀 입에서 갑자기 <어머머머……>하는 놀라운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놀라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다음 그냥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니 나더러 한번 맞춰보라고 했다. 혹시 그녀의 집도 모토마치 고소아파트에 있는 것은 아닐가? 나의 머리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들어있는 아파트는 시에서 경영하는 아파트이기에 그녀가 살고 있을리 만무했다. 시영 아파트나 현영 아파트는 외국 유학생이나 수입이 적은 일본인들을 대상하는 일종 복리성적인 주택이였다. <혹시 아야상의 집으로 가자면 꼭 내가 사는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를 지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가요?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이렇게 놀라는거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또 다시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헤에─?!>했다. <절반은 알아맞췄네요> 그녀는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킨상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알아맞추지 못할거에요. 그래서 알려주는건데요. 우리 집은 킨상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킨상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보인다는 말이에요. 어때요. 놀랄만 하지요?> 그녀가 말하는 강이란 오타가와(太田川)를 말한다. 오타가와는 너비가 약 백메터 정도밖에 안되기에 이쪽 기슭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건너쪽 사람의 얼굴마저 선명하게 가려볼 수 있다. 만약 오타가와 강이 우리 사이에서 흐르지 않는다면 그녀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이름마저 같은 한 동네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지도 길지도 않은 오타가와 강 하나 때문에 그녀와 나는 모토마치쵸와 카미야쵸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각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꼭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이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마치 우리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아온 일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내가 어디에선가 몇번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나는 핸드를 잡고 신나게 차를 모는 그녀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다리위? 커피점? 산데이야쌍? 뽀프라? 쎄븐일레븐? 햐카다라면점? 공민관?..... 그녀의 제의로 그날 우리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아오이야마>(靑山) 커피점에 들러 커피 한잔씩 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홋또 커피, 나는 멕시코 냉커피를 각각 주문했다. 우리가 커피점에 들린 이유를 그녀는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가깝게 살아왔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로 하자고 말했다.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도 꼭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이유를 달고 커피를 마시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커피에 두 숟가락 분량의 프림을 탄 나와는 달리 그녀는 프림이나 설탕을 타지 않았다. 내가 왜 프림을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림이나 설탕을 타면 커피의 원래 맛이 사라져버린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백여년 동안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 땅에서 유일무이하게 남은 한점의 정토(淨土)를 발견한 듯해서 감동까지 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화할 때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그날 어색할만큼 말을 적게 했다. 그녀는 중국에 대한 질문을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다.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가끔 수심에도 잠기군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가담가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는 그때까지 내가 미처 몰랐던 슬픈 사연들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는 3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 다섯살에 나는 딸 하나만 데리고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출신은 원래 동경이였는데 8년 전에 남편과 결혼한 뒤 이곳 지방 도시로 옮겨오게 됐고 지금은 처지가 전도돼서 원래 지방 사람이였던 남편이 동경에서 살고 동경 사람이었던 자기가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이혼한 원인까지 들려주었다. 어느 날 친정으로 놀러갔다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로 있어야 할 남편 옆에 웬 여자가 누워있더라는 것이였다.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갑자기 그녀가 쓰겁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였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잔 옆 유리병에 꽂힌 빨간 장미가 슬프게 예뻣다. <대학교 때 나와 한 합숙에서 살았던 동창이였어요─!. 우습지요?> 한참 후 그녀가 말했다. 아픈 사연을 말하는데도 그녀는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물론 냉소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하듯 남편의 외도를 쉽게 뿜어내는 그녀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가 이미 과거의 그늘에서 많이 벗어나있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킨상은 행복하겠죠?> 한참 후 그녀가 입술에 댔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한 동안 망설였다. <거의 6년 동안이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내가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누구에게나 다 말할 수 없는 아픔같은 것들은 있는 것 아닐가요?> <물론 그건 그렇지요> 그녀는 나의 아내나 아이가 다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녀도 많이 놀라했지만 그날은6년이라는 나의 말에 서글픈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였다. <어서 학업 성취하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셔야 하지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물론 그래야 하지요>하고 말하면서도 <돌아가셔야 하지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할 수 없는 실의같은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주었다. 도중에 그녀는 강 넌너 쪽에 있는 자기 집 아파트를 가리켜 보이면서 자기는7층에서 산다고 했다. 7층이라는 말에 나는 <설마?!>했다. 묘하게도 나도 7층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7층에서 살기까지 한다는 근사점과 일치점을 놓고 그녀는 금방까지 슬픈 이야기를 했던 여자 같지 않게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나,나나(7,7)라?, 참 재미나는 숫자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서 <재미나는 숫자>라고 말하는지 그 뜻을 알 것같았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7.7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타나바다>(七夕)를 의미한다. 지금도 <타나바다>가 되면 일본의 일부 지역의 젊은 연인들은 연등이 밝게 켜진 아늑한 공원의 수림속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셔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야와는 달리 나는 <타나바다>와는 전혀 관계가도 없는, 중일전쟁의 심벌인 북경의 <7.7노구교사변>을 떠올렸다. <7.7>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일본 여자와 <7.7사변>을 떠올리는 중국 남자로 갈라져 있었다. <아오이야마커피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은 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 갔다. 이전에는 서로 회사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중국 문제만을 화제거리로 삼았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화제가 서서히 사적인 생활에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뭘 했는가?><내일에는 뭘 할 타산인가?>를 묻군 했다. 물론 나도 그와 똑 같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나의 사생활을 캐고 드는 그녀가 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물으면 아침에 뭘 먹었고 어제는 어디로 갔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조금씩 확인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에 적당히 다가서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갈망하는 내가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러는 나를 가로막을만한 의지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틀, 대학원이라는 상자 속에서 항상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해오라기 날아예는 바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산이 솟고 강이 흐리고 들이 펼쳐진 육지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가 없던 과거에는 다른 통로들도 많이 보였었는데 그녀가 나의 앞에 나타난 뒤로는 그런 통로들이 다 막히고 오로지 그녀의 통로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서는 것을 알면서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녀가 도중에서 포기할가바 더 재미나는 화제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군 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내가 꼭 그녀를  육체적으로 점유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그때 일본인인 그녀가 나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녀의 기슭에서 내가 바장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 한번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오라고 청한 적이 없다. 밤에 함께 강가를 거닐자거나 여느 술집으로 가서 한잔 하자고 청한 적도 없다. 나는 일본인인 그녀와의 접촉을 강하게 원한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을 묻은 선산이 있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외의 날에는 나는 거의 두문불출하고 논문을 쓰기에 바빴다. 일본같이 민족차별이 심한 곳에서 내가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김사량, 김달수, 김석범, 리회성, 김학영, 이량지, 유미리…..<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문제연구>라는 나의 논문테마의 주역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국조선족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해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에게 있어서 고국이란 무엇이고 중국이란 무엇인가? 너는 왜서 일본까지 와서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하는가? 너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왜 일본 여자를 원하고 있는가? 똑 같은 고국을 놓고도 너는 왜 북조선보다 한국으로 더 가고 싶어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난센스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나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난감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살아갈 자격이라도 있는 것는 것일가. 나는 일본에서 많이 파괴되기도 했고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수립된다고 해도 나는 중국인인 나, 조선족인 나를 물갈이 하듯 갱신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중국인이요, 조선족인 운명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야는 내가 이런 불투명한 인간인 줄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기만 했다. 혹시 그녀는 내가 이런 모호한 인간이기에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그녀는 나에게 <킨상은 드놀지 않는 남자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에게 그녀가 왜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야와는 달리 아내는 늘 나를 <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떠돌이를 많이 했던 조상들처럼 나도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뜻이였다. 아내의 말처럼 내가 정말 나의 몸에 숨어있는 <랑자의 유전자>의 발란으로 일본까지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아야와 뿌리도 내릴 수 없는 금단의 길을 함께 걸으려 했던 것도 그 <랑자의 유전자> 때문이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있었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날 그녀는 술을 마신 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냥 울고 싶어서 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녀는 왜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느냐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과 말에서 취기가 흠뻑 느껴졌다. 한참 후 지금 당장 자기 집으로 와줄 수 없는가고 그녀가 물어왔다. 나는 왜 라는 물음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가볼 수도 있지 않아!) 나의 몸 어디에선가 이런 외침이 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와보면 알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다음 오고 안오고는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왜서 그녀 집으로 한밤중에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집문을 나섰다. 핸드폰으로 그녀 집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그녀의 문고리를 당겼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였다. 리빙 룸에 홀로 앉아 아야가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땅콩이 담겨있는 접시와 호두알이 담겨있는 접시 옆에 자그마한 생일 케익이 조금 몸을 뜯기운 채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케익 위에 꽂힌 촛불은 이미 꺼진지 오래된 것같았다. 조금 문이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자그마한 애 하나가 입을 하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애가 바로 아양의 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지요?> 내가 아야에게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야가 취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의 앞에 구멍 뚫린 캔 맥주가 북극의 펭귄새처럼 일렬로 서있었다. <오늘 애와 함께 나의 생일을 �어요. 애가 웃고 떠들다가 저렇게 잠드니까 갑자기 내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다가 갑자기 킨상 생각이 나더군요> 아야가 머리에 손가락을 깊이 박으며 습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로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을 섹시하게 가리워주고 있었다. 아야는 그 머리 카락 사이로 당금 나를 흡수해버릴 듯 탐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킨상도 촛대에 불을 붙히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나 오늘 킨상의 축하를 꼭 받고 싶단 말이에요. 킨상의 축하를 받으면 중국의 축하를 받는 것이 되니까. 13억 중국인의 축하를……> 스스로도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그녀가 밥상 모서리에 머리를 비비며 키드득 웃었다. 손가락에 끼인 그녀의 금반지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금반지를 보면서 나는 어느 남자가 끼워준 것일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 남편이 아닌 또 다른 한 남자가 그녀의 생활 속에 뛰여들고 있는 것같은 생각에 나는 말 못할 질투심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미 타다 만 촛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억눌린듯 우울하고 막힌듯 답답했던 가슴이 맥주에 의해 일시에 활 열렸다. 그녀는 정신없이 맥주를 마셔대는 나를 말없이 뜯어보다가 흐트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킨상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했다. 처음 하는 말, 처음 듣는 말임에도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 좋아하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꼭 듣고 싶으냐며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윙크했다. <두가지 점이에요.> 그녀가 손가락 두개를 나의 앞에 우습게 뽑아보였다. <첫째는 스케베같은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나 스케베를 좋아하니까.> 스케베란 우리 말로 바람쟁이라는 뜻이였다. <왜 스케베를 좋아하는가면 우선 건강한 남자니까. 그리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건강하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구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드니까 스케베가 된거지요. 스케베 남자는 그래서 여자가 만드는거에요. 이것이 어느 나라 사람들의 논리냐 하면 일본 사람들의 논리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긴 머리채를 흔들며 킥킥 숨이 넘어갈듯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쉬->하며 손가락을 입술 위에 곧게 세웠다. 애가 놀라니 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였다. <두번째는….> 그녀가 숨을 죽이며 또 웃었다. <두번째는 킨상의 오만한 눈빛이 좋아서에요. 중국에서 왔으면 중국에 어울리는 눈빛으로 일본을 쳐다봐야 하는데 킨상은 뭘 믿구 오만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가 말이에요. 그 오만한 눈빛에 눌려 나는 결국 작아졌고 내가 작아졌기에 킨상을 쳐다볼 수 있게 된거에요. 이건 일본의 논리인 것이 아니라 나의 논리에요>  그 말에 아야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그 <오만하다>는 말을 일본 여자 입을 통해 듣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중국에서는 그 점을 많이 고치려고 했지만 그날 아야 앞에서는 도리여 오만해서 다행이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야는 그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만큼 취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머리를 밥상위에 박고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다미 위에 눕혔다. 그 다음 술에 취해 네각을 벌리고 누운 그녀를 걸탐스럽게 훑어보았다. 아야의 육체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나의 남자는 술에 취한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육체를 더듬고 싶어하는 나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치를 끼웠다. 그 다음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 옆에서 홀로 서성거렸다. 타들어가는 담배불과 함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욕망도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결국 술에 취한 여자를 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술에 취한 여자와 하루 밤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등을 끄고 내가 소리를 죽여가며 문어귀에서 신을 찾고 있을 때,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야가 <잠간만요─!>하고 낮게 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다음 무작정 어둠속에 묻혀있는 나에게 안겼다. 아야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가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가. 두 손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섰던 아야가 손을 떼며 <이젠 가보세요!>했다. 아야는 어둠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날 밤 내가 그녀의 생일 케익 촛대에 붙힌 불은 그 후 그녀와 나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아야는 강 하나를 사이 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서로 똑 같은 7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그 절묘한 일치점을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라도 하듯 어느 수요일 날 오전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해왔다. 지금 자기가 베란다에 서서 우리 집 방향을 향해 손을 젓고 있으니 나더러 어서 나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베란다로 뛰쳐나가 보니 강뚝 너머에 높이 솟은 아빠트에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제가 지금 손을 젓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 그녀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보입니다. 눈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윤곽은 보여요> 나도 그녀처럼 소리 높이 외쳤다. <눈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보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이지요? 출근도 하지 않고> 손을 젓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수요일이 잖아요. 요일도 잊고 사세요?>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제야 오늘이 그녀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면 내가 집에 앉아 논문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재일조선족문학에 관한 논문을 쓴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수요일에 그녀가 전화해오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킨상이 흔드는 손이 마치 중국의 오성붉은기같네요>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 말이 재미나서 나도 그녀를 본받아 <아야상이 흔드는 손은 일본의 일장기같군요>했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을 보면서 <오성붉은기>와 <일장기>를 상상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약과 과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파아란 하늘 위에서 둥둥 떠가는 쪼박 구름이 우리가 쳐든 깃발을 향해 웃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그날 무심히 외친 <오성붉은기>라는 말과 <일장기>라는 말이 뜻하지 않게 우리 사이에 엉뚱한 화제를 몰고 올 줄이야. 그것은 아야와 나의 관계 속에 정치가 개입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허나 그 때까지 우리는 전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장기와도 같은 손>과 <오성붉은기와도 같은 손>을 서로 뜨겁게 흔들어보이기에만 열중했다. 그날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타가와 강은 왜서 그렇듯 맑고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를 하나로 이어준 오타가와 다리는 왜서 또 그렇게도 단단해 보이던지. 그 아름다운 강과 단단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손을 저으며 자기 쪽으로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이 너무 넓어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다리가 무너질 봐 건너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둘은 또 웃었다. <킨상이 건너오면 내가 강뚝까지 마중갈게요> 그녀는 내가 논문 때문에 건너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아야상이 건너오면 다리목까지 마중갈거에요>했다. 남자 혼자만 살고 있는 집으로 그녀도 올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말에 아야는 언제인가 내가 배워준 중국말로 <我恨你─!>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누구도 누구에게로 건너가지 못한 채 서로 작은 손만을 흔들어보이다가 자기 집으로 저마끔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회사 식당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그녀는 나에게 왜 중국의 국기는 오성붉은기냐는 질문을 문득 해왔다. 내가 별 다섯개는 오대주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어마나!>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놀라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붉은색이 피를 상징한다면 중국의 국기는 너무나 화약냄새를 많이 풍기는 깃발이라고 이마까지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은 평화시대인데 국기도 평화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피라니 너무나 끔찍하네요> 나는 원래 그녀의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풀이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그녀 자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그런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나를 앞으로 조금씩 떠밀고 있었다. <그럼 일본의 일장기는 어때요? 일장기 한복판에도 빨간 색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나는 가급적 그녀 앞에서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나의 말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웃는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빨간 색이지만 그건 피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 거잖아요. 태양이란 뭐에요? 인간이나 자연만물에 따스함을 주는 신령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일본의 일장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점점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냥 너를 믿고 해보는 소리야) 나는 그때 분명히 나의 몸 속의 또 다른 한 내가 나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권고가 마음에 닿기도 전에 나의 입에서는 어느덧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일장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왜서 그 깃발을 휘두르며 과거 그렇듯 많은 아세아 국가들을 침략했을가요? 일본인은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반대로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거에요> 느닷없이 들이대는 나의 반론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입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요>하는 말이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새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그냥 쉽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풀이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한 말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엎지른 물인 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화제를 피합시다. 사실 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변명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담담히 웃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안한 침묵이었다. <금방 저의가 정말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죄했다. 머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시츠레이시마시다>(실례했습니다)를 외치는 그녀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녀의 사죄, 그녀의 눈물에 나는 갑자기 한대 얻어맞은 것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일본 사람들은 <실례>라는 말을 우리 말처럼 사죄의 의미로도 쓰고 고별의 의미로도 쓴다. 나는 그녀의 사죄는 후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혹시 그녀는 정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안되는 말이였다. 그녀를 놓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금방 내가 한 말이 그냥 농담이였다는 것, 나라 국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웬 영문인지 나의 입은 얼어붙은 강처럼 꾹 닫힌 채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날 점심에도 여전히 나와 식탁을 마주해 앉아 변함없이 애교를 부렸다. 마치 전날의 불쾌했던 일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듯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를 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날 그녀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닌, 중국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물었고 만리장성에 대해서도 물었고 근간의 상해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웃기까지 하면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옆을 지나던 우야마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킨상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왔다. 금년에 나보다 다섯살 아래인 우야마씨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청년이였고 언제나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피하고 싶었다. 나의 말에 실망을 느꼈는지 우야마씨가 머리를 저으며 <알겠어요. 나로서는 너무 이해되지 않아서 물은거에요>하며 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야마씨가 던진 말이 아야와 나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했다.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중국에서 일으킨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킨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전적인 어조로 질문했다. 직설적인 표현을 가급적으로 삼가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돌한 의사표달이었다. 나는 아야가 왜서 갑자기 그렇듯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나에게서 당한 일이 분해서 보복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야씨, 나 어제 약속했지 않아요. 이제부터 정치에 대한 화제는 피한다구. 게다가 나는 정치맹(政治盲)이에요> 내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픽 실소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 상품이 좋다는 반증으로 되는 것이 아닐가요? 그런데 왜서 좋은 상품을 굳이 사지 않으려고들 하지요? 상품에도 무슨 죄가 있나요?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은 왜 대국답게 크게 놀지 못하지요?> 그녀가 다시 나를 허비듯 입을 열었다. 흥분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나에겐 칼처럼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중국에서 <반일교육>과 <애국교육>을 너무나 많이 받아온 때문이였을가. 조선족인 나에게 있어서 중국은 또 무엇인가. <아야씨, 아야씨는 중국인들이 일으킨 그번 운동이 단순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이 일본 상품을 여전히 사주면서 그런 운동을 일으켰다면 일본으로서는 그 운동에 담긴 메세지같은 것에 조금은 주목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내가 끝내 한마디 뱉았다. 그녀처럼 나도 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즉각 반문했다. <어떤 메세지인데요?> <물론 일본인들더러 과거의 침략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라는 메세지겠지요. 요즘처럼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A급 전범에게 참배한다든지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친다든지 평화 헌법 제 9조를 개헌하려 한다든지 특별히 9.18만주사변 일을 택해서 중국 아가씨들을 매수하여 집단적인 섹스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아야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나는 이미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자제력을 잃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였다. 나 속의 다른 한 나였다. 아니, 나 밖의 다른 한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들을 그녀를 좋아하는 내가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오후 출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녀는 그날 이전과는 달리 나에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꽁꽁 여미면서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에서 찬 바람이 일고 있었다. 나는 그 찬 바람을 가을바람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정치적인 화제로 그녀를 괴롭히지 말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또 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 쪽으로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그 어떤 타력에 의해 앞으로 떠밀려갈 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그런 이야기가 결국 우리 사이에 마이너스를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욱 기승스럽게 우리 사이에 끼여들고 있었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마귀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말려들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번마다 충돌했던 것만은 아니였다. 예하면 그녀도 나처럼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었고 나도 그녀처럼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 과격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치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 채 그저 우리 곁을 스쳐지니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와 시야비야하면서 나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 나의 입에서 떠올려지는 중국은 어느덧 <우리 나라>로 다가왔고 일본은 <너의 나라>로 밀려났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과 일본도 <너의 나라>와 <우리 나라>로 각각 분렬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 보면 중국은 정말로 나에게만 속하는 나라, 일본은 그녀에게만 속하는 나라처럼 착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비는 자연히 중국은 다 옳고 일본은 다 틀렸다와 일본은 다 옳고 중국은 다 틀렸다의 흑백논리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아야라는 여자와 킨이라는 남자의 밀접한 만남이기만 했던 우리 사이가 어느덧 일본인과 중국인의 만남으로 소원해져갔다. 그 소원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나는 때로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왜서 밝히고 싶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조선족이기에 중국을 너무 편애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인이기도 하면서 조선족이기도 한 나의 이중적인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인(한국인)인이나 다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비록 이중인이지만 이중으로 받는 차별의 대상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 것을 알면 아야는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경우를 생각하면서 즉각 나를 중국 변두리인으로 취급해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입으로는 늘 정치인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는 정치인들이 판처럼 짜놓은 울안에서 앵무새처럼 자기 나라를 변호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나라를 변호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우리 둘 뿐이였다. 그녀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준 것으로 돼있었고 나의 상처는 그녀가 준 것으로 돼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 뿐만이 아닌 비애까지 느껴야 했다. 어느덧 우리는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는 악역으로 슬슬 둔갑해갔다. 점심휴식 시간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1시간의 만남에 아쉬움만 느꼈던 우리는 잠간의 만남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야의 눈에서 이따금 칼날같은 독기가 번뜩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야는 대학교 때 국제정치를 전공했었다. 서로가 그 무슨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국과 일본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을 걷어안고 티격태격 논쟁을 벌리던 그녀와 나는 지난 마가을에 끝내 서로의 분노를 터치고야 말았다. 그날 그녀는 나의 실수로 잠간 기계가 멈춘 일을 트집 잡아 온 회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쳤다. <중국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일해요? 킨상은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킨상이 지금 일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일본이란 말이에요. 킨상이 상품을 잘못 취급하면 중국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체면이 깎인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그녀의 말은 나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중국까지 곁들여가면서 마구 폄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물을 배설하듯 되는대로 욕을 퍼붓고 나서 막 자리를 뜨려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불러세웠다. <아야씨, 나 한 사람의 실수를 트집 잡아 중국까지 싸잡아 욕해대는 자신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야씨가 이렇듯 요사하고 비루한 인간인 줄 몰랐습니다. 좋아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본의 체면을 깎는 모양인데 이제 이틀만 더 참아줘요. 아야씨를 위해 다음주부터 내가 이 회사에서 영 사라져줄테니까. 이제 됐어요?!> 내가 꽥 소리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녀는 한동안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다음주부터 회사에서 사라져준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놀래우기 위한 엄포는 아니였다. 그 때 나는 회사는 물론, 일본을 떠나려고 손에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까지 쥐고 있었다. 자리에 뚝 굳어진 채 아야가 얼마나 긴 시간 서 있었을가. 멈춘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사원들이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일하는데도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그때까지 나만 노려보고 있었다. 독기로 섬뜩이던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물어지고 긴 눈초리가 처마처럼 곱게 드리운 눈에서 어느 한 수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잇빨로 지긋이 깨문 입술,  원망으로 가득 찬 눈, 나는 그때까지 그녀 앞에서 주먹을 으슬어지게 쥐고 서 있는 그 순간순간이 견딜 수 없게 힘들고 괴로웠다. 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구나! 허물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자 아프게 독백했다. 나만 노려보고 섰던 그녀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정말 실망했어!>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가 일본에서 떠나오던 그 전날은 아야가 휴식하는 수요일이었다. 정작 내일 6년 반이라는 세월을 살았던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중국이 옳니 일본이 그르니 하며 정신없이 아야와 자존심 대결을 벌려왔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부질없는 짓처럼 생각되어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일로 우리의 진정을 생매장한 자신이 나는 용서할 수 없을만큼 미웠다. 나는 그날 일부러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강가를 오래도록 홀로 서성거렸다. 혹시 만에 하나 그녀가 베란다에 서서 이쪽 강 기슭을 바라라도 본다면 그 동안 일본인으로 그녀를 밀어내치기만 했던 지난 과거의 비정을 후회하고 오직 인간 그녀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란다에 잠간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던 나의 상상을 깨고 그녀는 어느 한 순간 태양처럼 강 기슭에 나타나주었다. 나와 똑 같은 일직선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진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 몰랐다.                                 2005년 10월 28일                                       북경에서
1    음성양쇠(陰盛陽衰)(장춘식) 댓글:  조회:1201  추천:0  2009-05-16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남들이 나의 안해를 지나치게 춰올리는게 그리 달갑지가 않다. 어떤 모임이나 사교파티같은데서 ꡔ사모님 믿진게 아니요? ꡕ 이렇게 나의 안해를 슬쩍 춰줄 때면 나는 슬그머니 한쪽 죽지가 축 처져내리곤 한다. 사교례절이라고는 하나 이때 내 안해라는 사람의 묘한 웃음---수줍은척하면서도 어딘가 시뚝해지는 그 표정이 가슴 한쪽을 섬찍하게 건드려놓기까지 한다.   솔찍히 말해서 지금의 안해와 사귀고 련애하고 결혼할 때 나는 이 녀자가 나에게 넝쿨채 굴러들어온 호박이라고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하도 밥맛이 없길래 가까이에 있는 랭면옥에 가서 랭면에다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있는데 우연히 말을 걸어와서 맺어진 인연이였다. 동북의 어느 대학교 외국어과를 나와서 북경에 있는 외국회사에 취직하고있다고 하였다.   ꡔ월금이 많겠네? ꡕ   나는 그러루한 회사원의 봉급이 꽤 높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는터라 얼결에 이런 말을 터뜨려놓았다.   ꡔ겨우 5백원인걸요. 먹고 입고 집세 내고나면 별로 남는게 없습니다.ꡕ   저그만치 5백원이란다. 졸업한지 겨우 일년도 채 안되는데 5백원도 ꡔ겨우ꡕ라고 하니 참 요즘 세월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취직한지 7년만에 강사 하나 요행 따내서야 백 몇십원꼴인 나에게는 그 ꡔ겨우ꡕ라는 말이 너무나도 분에 넘친다.   ꡔ난 명색이 강사라고 그래도 요즘 말로는 중급 인테리인셈인데 얼마를 받는지 알아요?ꡕ   ꡔ글쎄 말입니다. 직업마다 다르겠죠. 무료치료같은걸 말입니다. 그리구 선생님은 북경호적에 올라 있잖아요. 북경호적은 만원을 줘도 못산다지 뭡니까? ꡕ   그건 사실이다. 수십수백만이 호적없이 들어와 살아도 수도인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북경호적을 제한한다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호적이 무슨 대수야, 돈만 있으면 어데서나 내노라 하며 사는 이 세월에.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 없었다. 그 만원을  주고도 못산다는 북경호적외에 내겐 아무런 우월감도 없지 않은가. 학문? 어디 가서 입에 올려보아라.ꡔ웃기시네ꡕ다. 나는 시도 조금 쓴다. 하지만 내 시를 읽고 감동될 사람이 이 사회에 몇이나 될가? 또 ꡔ웃기시네ꡕ가 아니면 대접받은줄 알아라. 훈장의 똥은 더구나 개도 안먹는다더라.   맥주도 다 마시고 랭면도 다 먹고 육수까지 후룩후룩 들이킬즈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약간 망설이다가 ꡔ제 세집에 잠간 들렀다가 가시죠? ꡕ 이렇게 제기한다. ꡔ북경에서 조선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ꡕ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아가씨가 매력적이라거나 하다못해 하루저녁쯤 껴안고 자도 무방하겠다는 따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참, 한가지가 좀 끌렸다. 서른살의 로총각에겐 이 아가씨가 너무나도 새파랗다는 점.   내가 자전거를 밀고 나서니 그녀도 자전거를 밀며 뒤따랐다. 나의 골동품자전거에 비해 그녀의 자전거는 너무나도 새것이고 사치하였다.   ꡔ새 자전거로군. ꡕ   ꡔ녜. <태호공주>라고 외국기술제휴로 생산하는거래요.ꡕ   요즘엔 수입품이나 하다못해 기술제휴나 합자기업, 국내 외국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 인기이다. 순 국산품은 싸구려의 대명사쯤으로 되고.   ꡔ이것 보세요. 호적이 없으니까 자전거 등록도 안해주지 뭐예요. 선생님이 부러워요.ꡕ   ꡔ그것때문이라면 내쪽으로 등록해도 무방하겠지. ꡕ   ꡔ참말이예요? 꼭 그렇게 해주시죠? 제가 한턱 낼게요. ꡕ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적어넣는다. 그리고 이�날에는 내 이름으로 자전거를 등록하였고 약속대로 그녀가 한턱 내여 나는 꽤 얼근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다음에는 물론 나의 거처에 와서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맞춤하게 취했겠다, 거기에 학문이 돋보인다느니, 내 시고를 몇줄 읽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해볕도 못보고있는게 참 가슴아프다느니, 교원처럼 신성한 직업은 이 세상 더 없을것이라느니 하며 아가씨가 슬슬 춰주는 바람에 나는 퍼그나 들뜬 마음이 되여 사귄지 며칠 안되는 아가씨에게 그동안 쌓아두었던 학문을 한꺼번에 풀어놓기에 이르렀다. 그후에는 물론 한주일에 한두번 정도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영화구경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드라이브도 하였다. 그러나 련애를 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둬주일가량 데이트 약속이 뚝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몇달간의 데이트는 거개 그녀쪽에서 제의해온것 같았다. 그리움이라는것을 오래만에 느껴보았다. 가슴 어딘가 텅 빈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 짜릿짜릿 아려오는것 같기도 한, 뭉클뭉클 감상에 젖게 하는 감정이 점차 절실해지며 조바심마저 일게 하였다.   두루 불편스레 서성거리며 걱정을 하고있는판에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가? 문득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특별히 정성스레 다듬은 차림이였고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였는데 그 솜씨 또한 여느 전문 분장사 뺨치게 세련된것이였다. 그리고 손에는 먹을것, 마실것들이 한구럭 가득 들려있었다.   식탁이 그럴싸하게 차려졌다. 녀자의 솜씨가 역시 다르구나 하는 감동이 옛날 어머니가 보아준 생일상과 겹쳐져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ꡔ오래만인데 뭘 위해 들가?ꡕ   동시에 나는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ꡔ생각이 나는군. 오늘이 내 생일이군.ꡕ   그녀는 내가 ꡔ내ꡕ를 발음할 때를 기다렸던듯 ꡔ생일ꡕ을 합창한다.   눈물이 핑 돈다.   오래만에 가정의 따스함같은것을 느낀다. 술도 많이 마신다. 그녀가 손보아온 진 안주, 마른 안주도 안주려니와 그 고마움, 기쁨, 그리고 별 할일없이 지내온 30년 인생의 무상함, 슬픈 련정, 목마른 정욕이 다 안주가 되여 취할듯 말듯 둥둥 뜬 느낌이다. 그녀도 꽤 마신다. 말도 많이 한다. 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안주를 씹고 삭이면서 좋은 밤을 보내고있었다.   그녀는 놀이감같은 핸드백속에서 곱게 포장된 종이 박스를 꺼낸다.   ꡔ오늘 마지막 프로예요.ꡕ   손목시계다. 도금이 잘된 스위스제였다. 나는 문뜩 재작년에 출국했다 돌아오면서 사둔 녀자용 손목시계가 생각난다. 꼭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사둔건 아니고 어찌어찌 사다보니 남은 외화로 그걸 사두었었다.   서로 손목시계를 채워준다. 그리고 또 건배를 하고 안주를 씹는다. 술도 안주도 알맞춤해졌을무렵 그녀는 나한테 따가운 록차를 따라놓고 설걷이를 한다. 한동안, 내가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아래다리를 흔들거리며 ꡔ도라지ꡕ를 듣고 ꡔ아리랑ꡕ를 듣고 조용필을 듣고있는 동안 달그랑 절랑 쏴쏴 그릇 부시는 소리가 반주를 하다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조용해진다. 록음기를 끄고 주방쪽에 나가보려는데 그녀가 머리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들어선다. 들어와서는 샐쭉 미소하며 핸드백을 집어든다. 그 미소가 좀 수상쩍다.   ꡔ... 오늘 여기서 자고가도 되죠? ꡕ   나는 아연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꼭 껴안고 놓아주고싶지 않다.   다행히도 그녀는 처녀였다. 술이 얼근한데다 서투른 솜씨로 가지는 정사중에도 그것 한가지만은 잊지 않은건 본능때문이였을가?   그 뒤의 일은 별로 이야기거리가 될게 없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하고있는것처럼 우선 결혼등록을 하고 한동안 동거를 하다가 음력설에는 고향에 돌아가서 버젓이 식을 올렸다.   깨알까지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오붓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ꡔ만원 주고도 못사ꡕ는 북경호적도 중급지식인 정책에 힘입어 돈 한푼 팔지 않고 해결이 되였다. 물론 내가 근무하고있는 대학교 인사부문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그 덕에 그녀는 그 ꡔ겨우ꡕ 오백원 주는 회사에서 엉뎅이를 툭 털고 나와서 봉급이 ꡔ겨우ꡕ 정도를 훌쩍 뛰여넘는, 게다가 반쯤은 딸라를 내주는 ꡔ괜찮은ꡕ 외국회사에 냉큼 취직이 되였다. 조선어, 한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도 어지간히 하는 적임자가 그리 흔치는 않은것이다. 노란자위는 언제나 외국 ꡔ외ꡕ자에 있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수입은 늘어나고 가정기물도 하나 둘 불어갔다. 그러다보니 내가 출국했다 돌아오며 그래도 그때는 최신형이라고 사놓은 가전제품이 인젠 아득한 구식이 되여버렸다.   요즘의 가전제품이라는건 대체로 주방용품이 많아서 주방일이 점차 쉬워지고있다. 그런데 가정살림이 편해질수록 안해라는 사람의 불평은 오히려 더 늘어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신혼생활이 빛이 바래졌으니 여느 가정들에서처럼 인젠 부부싸움도 시작할 때가 되였나부다고 그 싸움을 오히려 가정 생활의 일부로 치부해버리고 체념했었다. 싸우고나서 안해가 눈물 코물 한주먹 두주먹 쥐여짤 때 살살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고 그래도 아직은 재미가 식지 않은 정사를 땀이 후줄근하도록 즐기고나면 이튿날에는 또 아기자기한 부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안해의 요구가 점점 한동안은 물의에 올랐다가 인젠 심드렁히 묵인이 된듯한 한족녀자들의 그것을 닮아가고있었다. 밥을 짓다가도 툭, 한족녀자들은 어쩌고저쩌고다. 그래도 나는 여직껏 닦아온 학문을 총동원하여 조선족 녀성의 미덕이 어디에 있는가를, 왜 녀자는 녀자다와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와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깨우쳐주었다. 하지만 안해의 분명한 도리앞에서는 허리힘이 쭉 빠질수밖에 없었다. 왜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고는 집안일은 녀자 한쪽의 의무가 되는가 하는 도리였다. 나는 자신이 너무나도 구식 사내로 된게 아닌가고, 남존녀비니 대남자주의니 그런 공맹지도쪽으로 죄상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깎듯이 술상을 보아주곤 하여서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에는 돈이 참 좋은 물건이 되였다. 그 개도 안먹는 종이장으로 사람 빼고는 뭐나 다 바꿔올수 있단다. 그러나 때로 그 돈때문에 걱정도 딸려온다. 안해는 그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옮겨앉은다음부터 늘 밤중에 귀가를 하곤 한다. 때로는 외박까지 한다. 이게 살림 하는 꼴인가고 따질라 치면 제쪽에서 오히려 ꡔ돈 벌려니까 그런거죠. 돈이 뭐 절로 지갑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는줄 아세요? ꡕ 이런다. 그런 로고때문인지 봉급 말고도 그녀는 슬슬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걷어들여왔다. 그럴수록 나의 불만도 더해가고.   그러던 어느 날 그 부풀고 부풀어오던 불만의 풍선이 펑 터져버렸다.   일은 량집 부모님들에 대한 부조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벌어졌다. 몇달전에 장인 어른 생신을 앞두고였는데 환갑땐 한창 공부중이라 술 한잔 못부어올렸다며 5백 하나는 부쳐보내야 하겠는데 하고 청을 들었다. 청을 드는것만 해도 고맙다. 딸 하나 대학공부 시키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ꡔ그것 참 잘 생각했군. 인젠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즐겁게 해드려야지. ꡕ 하며 맞장구를 쳤더니 그녀는 별로 반색도 없이 5백원을 송금해보냈다. 말이 5백원이지 벌써부터 준비해놓은 옷감, 선물따위---장인, 잔모님 몫은 물론 처남,처남댁,처조카들 모두에게 한두건씩---를 값으로 치면 거의 천원어치는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쩌다 한번이겠지, 그렇게 막막한 살림도 아닌데 그만한것쯤 뭐 대수냐고 말없이 지나버렸다. 그런데 이 녀자가 보자보자하니 시아버님 환갑이 래일모레인데 백원짜리 두장 달랑 던져주며 ꡔ생각대로 하쇼. ꡕ 이런다. 그래서 그땐 ꡔ시아버님 환갑땐 잘 해드려야지ꡕ 하고 헛말이나마도 아껴두었었군.   그대로는 지나버릴수가 없었다.   ꡔ여보, 당신 시아버님 환갑을 뭐 동네집 령감님네 생신쯤으로나 아는거여? 결혼식날 장인어른 뭐라고 부탁했는데? 시집왔으면 인젠 시집 사람인게지. 그것도 맏며느리가 아니면 말도 안하겠는데 신부상 맏며느리 대접은 기분 좋으라고만 차려준줄 알아? ꡕ   그녀는 내 말이 뉘 하품소리나 되는듯 심드렁해있다가는 알맞춤한때를 기다려 찔 눈을 흘기고는 한다는 소리가   ꡔ걷어치우쇼. 상,상, 참 큰상소리 요란스럽네. 그게 어디 먹으라고 차린 상이예요, 빛 좋은 개살구지. 돈이 없슴다! ꡕ   이랬다.   ꡔ그 저금통장은 뭐 할라고 쓰는건데? ꡕ   ꡔ없다면 없는줄이나 아쇼! ꡕ   점점 콕 막히는 소리만 턱턱 줴친다.   ꡔ이 녀자 보자보자하니, 그래 친정아버님 생신 차려드릴 돈은 있고 시아버님 환갑 차려드릴 돈이 없어? 좀 웃기지 말아. ꡕ   결김에 서방질이라고 하더니 나는 그만 결김에 하지 말아야 옳을 소리를 툭 질러버렸다. 사내녀석 옹졸하다고 서로서로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가는걸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젠 엎질러놓은 물이였다.   그래놓고는 안해가 찔끔찔끔 눈물이나 짤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하, 웃기시네. 이런 모양을 잔뜩 추슬려가지고 빤히 올려다보다가는 ꡔ돈 맘대로 벌어들이쇼. 벌어서 천이든 만이든 하고싶은대로 하쇼. 내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을께요. 돈 벌기가 뭐 식은죽 먹기나 되는줄 알아요? ꡕ   철썩! 귀뺨 하나 날아가 붙고 그녀는 ꡔ앙! ꡕ 하며 침대 구석에 엎어져 쿨쩍거린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되는 손찌검질이였고 또 한 남자에게 남은 마지막 솜씨이기도 하였다.   나는 문뜩 드팀없는 철리 하나를 터득한듯 싶었다. 돈이 량반이다. 학문이든 기술이든, 도덕적 인격이든 사회적 진리이든 돈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앞에서는 다 숙연해질수밖에 없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부부는 돌아서면 서로 남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너무너무 밉강스럽다. 당장 리혼을 하고 ꡔ바이바이ꡕ를 웨치고싶어진다.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여쭈어야 하는가? 그 무서운 산골에서 아들 하나 공부시켜 성공했더고, 대학생며느리를 보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며 즐거워하시던, 그리고는 잔치날밤 내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던 부모님들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는가? 더구나 그렇게 바라시던 학문을 닦은 연고로 녀펴네한테 굽석거리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 그렇게 굽신거리지 않으려고 리혼을 한다면...   꼬박 두시간동안을 쿨쩍거리며 엎드려있는 안해를 노려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키지 않지만 사과를 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화해를 할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리고 내키지 않으면서 애무를 시작한다. 상투적 수단이다. 꼿꼿하던 안해의 몸뚱아리가 점점 나긋해진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 내키지 않으면서 나긋나긋한 몸뚱아리를 범하려고 서두른다. 그런데 연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젠 생식의 몸짓만은 아닌 이상한 몸짓을 얼마간 허둥거리다가 툭 쓰러져버린다. 아차하는 사이 안해는 독스러운 눈길을 찔 갈기고는 저만큼 홱 돌아누워버린다.   그후에도 몇번 악을 써보았지만 내내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래서 아예 안해의 곁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주 신심가득하다가도 안해의 몸뚱아리가 기신기신 다가들어 불덩이가 될무렵이면 나의 연장은 영낙없이 놀란 달팽이마냥 쑥 움츠러들어가버리곤 하였던것이다.   약을 써볼가고도 생각한다. 요즘엔 그러루한 약이 약국마다 지천으로 쌓여있다. 하지만 정작 가격표를 들여다보면 좋다는 약은 눈이 휘딱 까뒤집어지도록 값이 엄청나다. 돈이야...   그래서 나는 또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멋있게 환상이 펼쳐지다가도 학문에 걸리기만 하면 단내나는 한숨 한웅큼으로 푹 김이 빠져버리고 만다. 학문과 돈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것이다.   집 근처에는 옛 북경성의 호성하(護城河)가 한갈래 지나가고있다. 그 옆으로는 원래 포장이 형편없는 도로가 나있었는데 지난 90년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고속도로가 번듯하게 빠져나갔고 오수구덩이던 호성하도 세멘트로 정리되여서 완벽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 고속도로와 세멘트로 정리된 강 사이에 인행도가 한갈래 새로 생겨났다. 비록 강이라는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큰 내물만큼이나 되고 게다가 반은 오수여서 퀴퀴한 오물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래도 쌩쌩 비명을 지르며 허둥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소리외에는 꽤 한적한편이여서 나는 학교에 교수를 나가지 않을 때면 늘 이 강옆의 인행도를 서성거리며 끈적끈적한 스트레스를 부스럼속에 모인 고름 짜듯 쥐여짜곤 한다. 요즘에는 더구나 서성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안해가 외박하는 날에도 그렇고 하루밤의 정사가 실패했을 때도 그렇고 안해의 직장 동료들이 제법 우리집에 모여들어 맥주잔을 떵떵 부딪칠 때도 그렇고...   정사쯤은 안해도 인젠 체념을 했는지 별로 대수로와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니까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안해의 동료가 다녀간후로는 정사라는걸 아예 가져보지 못한셈이다. 해서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건 다행이라 하겠는데 어쩐지 그 친구가 마음에 석연치를 않다. 그날 그는 두툼한 지갑을 툭툭 치며 시뚝해서 백원짜리 지폐 한장을 뽑아들고 맥주를 사오라고 안해를 심부름시켰었다. 주객이 뒤바뀐 꼴이였다. 게다가 맥주잔을 덜렁거리며 내 안해를 춰주는 꼴이 그야말로 꼴불견이였다. 그래도 그쯤은 하루 오후 호성하가의 인행도를 서성거리고나면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문제는 며칠후 그날 함께 래방했던 안해의 녀자 동료가 걸어온 전화내용이였다. 전에도 몇번 래방했던것이므로 그녀와는 꽤 익숙한편이였는데 ꡔ그 동성동본이라는 친구 그저 볼 사람 아녜요. 더러 신경 써두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ꡕ 라고 툭 까놓았었다. 그 친구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아니고 거래하고있는 다른 한 회사의 사장인데 두루두루 일을 만들어가지고는 내 안해를 자주 찾아온다는것이였다. 어쩌면 그 녀자 동료가 녀자들 거개가 있는 서푼짜리 질투때문에 안해를 헐뜯었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날의 꼴불견의 꼴을 당해본 나로서는 그렇게 단순한 아녀자들의 질투로만은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으로 안해를 닦아세웠다.   ꡔ그 친구 당신을 자주 찾아다닌다던데 반한건 아니야? ꡕ   ꡔ그 친구라니 누구 말이예요? ꡕ   ꡔ그 있잖아,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그 친구 말이야. 그쯤 하면 난 시뚝해 해야 도리가 되나? ꡕ   안해는 허리 부러질 소리라며 진짜로 킥킥 웃어제끼며 아예 딴전을 부린다.   ꡔ식초 좀 자그만히 자셔요. 시쿨어서 이가 다 시여나네. ꡕ   ꡔ식초를 먹는다ꡕ는 말은 ꡔ시기한다ꡕ는 말의 한어식 표현인데 요즘엔 그런식으로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지고있다.   나는 이쯤에서는 도무지 그만둘수가 없었다.   ꡔ이건 장난이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당신 요즘 외박이 잦아지고 귀가시간이 늦어져서 걱정중인데 동성동본은 웬 이 부러질 소리냐 말이야? ꡕ   ꡔ카라OK방을 하나 차려주겠다고 그래서 좀 자주 만났어요. 왜 안되나요? 융자금을 얻어주겠다고 그랬거든요. 꼭 카라OK방을 차려놓고말거예요. 어디 가서 20만만 대부를 해오세요. 그럼 당장에라도 래왕을 끊을게요. 곱다고 아첨하며 다니는줄 아세요? 그 신세에 그래도 남자라고 마음만은 살아서... ꡕ   나는 그만 입이 막혀버렸다. 돈과 성, 이 두가지면 나는 치명적이다. ꡔ카라OK방따위 싹 걷어치워! ꡕ 하는 따위 사나이의 호기는 벌써 기가 죽은지 옛날이다. 카라OK방이 돈벌이가 잘된다는걸 요즘 횡재에 초점을 맞추고있는 사람 치고는 모르는 이가 없는 형편인데 정말 안해가 거기에 성공하면 난 뭐가 되지? ꡔ내 시집 출간하는데 좀 선금할수 없겠어? ꡕ 이런 아첨은 퇴자 맞기가 십상이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돈에 눈을 더 밝히는게 ꡔ경제법칙ꡕ이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어도 돈에 눈을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돈이 있으면 성문제도 풀릴것이고 그러면 안해한테 언제나 지고들지 않아도 될것이다.   나는 또 퀴퀴한 냄새가 물큰거리는 오물구덩이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문뜩 이러다가 누가 지폐장이나 지갑같은걸 떨군게 있지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강가는 낮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밤만 되면 꽤 ꡔ호경기ꡕ인편이다. 집이 없는 련인들이 데이트를 하기에도 알맞춤하고 외로운 늙은이들이 서로 빨려들어가지 못해 애태우는 젊은 련인들의 몸짓을 짐짓 지켜보며 정양(靜養)을 하기에도 편리하며 더구나 요즘 부쩍 호경기가 된 암거래도 이런곳에서 더 안전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암딸라거래같은거.   나는 다리 부러졌던 사람이 걸음련습이나 하듯 느릿느릿 강가의 인도를 걷는다. 걸으면서 희끗희끗한것, 거뭇거뭇한것 하나 놓칠세라 두눈을 도사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희긋희끗한거라야 고작 빈 비닐봉지가 아니면 권연곽따위 밤손들의 쓰레기 정도이고 거뭇거뭇한건 고작 돌덩이나 어느 비새는 아빠트 옥상에서 바람에 날려온 펠트지쪼각따위들뿐이다. 어느 한길 되나마나한 측백나무옆에서 똥 한무지 발견한게 발견이라면 발견이라 할가. 이 도시에 아직 로천에서 똥 싸는 녀석이 있다는게 메스껍고 어쩌면 더러 희한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나는 단념을 하지 않고 무슨 악귀의 최면술에나 걸린 사람처럼 자전거를 잡아타고는 가까운 거리를 계속 어슬렁거린다. 원래 교수가 없는 날 내 생활코스라는게 집에서 호성하가의 인도, 그리고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드라이브하는게 전부였는데 거기에 한가지 내용이 불어난셈이다. 남이 떨군 돈을 주어보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   그러나 나에게는 그따위 유치한 행운도 차례지지 않았다.   안해는 여전히 그 모양 그 본새이다. 때로는 제쪽에서야 술냄새를 훅훅 풍기며 밤중에 귀가를 하고 외박도 비일비재다. 구태여 변화라는게 있다면 전에는 늦게 귀가를 하거나 외박 한번을 할 때면 두루 구실을 붙이던것이 요즘엔 제쪽에서 더구나 기고만장하여 ꡔ카라OK방을 할려고 뛰는중이라지 않아요! ꡕ 이렇게 야단을 칠 정도로 일약 승급을 한것일것이다.   이상한 일도 많다. 안해가 곁에 누워있을 때면 싸늘히 식어서 속만 안타깝던 몸이 안해가 외박하는 날이면 설설 끓어오르는건 왜서일까? 어제밤에는 더구나 꿈에서마저 곰같은 녀체에 깔려 흠씬 식은땀을 빼였다. 그렇다고 그 녀체가 안해의 몸뚱아리인건 아니고.   아침에 잠에서 깨여나서도 머리가 뒤숭숭하였다. 뭔가 잘못되여가는 느낌뿐이다.   또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 어처구니가 없는 행운이 떨어질리 없지만 그래도 그쪽에 신경이 씌여질 때에는 뒤숭숭하던 머리가 조금은 조용해진다.   한코스를 다 돌고는 자전거를 타고 두번째 코스를 돈다. 별 수확없이 후줄근해가지고 귀가할무렵 수위실 로파가 한족로파들 특유의 인정미 넘치는 수다스런 목청으로 불러세운다.   ꡔ마침 들어왔구만. 전화 받으시오 ꡕ   안해의 전화다. 또 외박이란다. 전날의 외박은 입치례로나마도 사과가 없다.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친구한테 간단다. 카라OK방 개업이 거의 돼가서 그쪽을 한턱 먹인단다. 적어도 2-3차는 걸쳐야겠으니 아무래도 려관방신세를 져야 할것 같다는 설명이 덧붙었을뿐이다.   나는 물론 이런 경우 내가 참석하도록 배려하지 않는 안해를 탓할수가 없다. ꡔ당신같은 선비님이 나서면 다 되던 일도 튈거예요. ꡕ 안해는 이런 태도다. 설혹 안해가 초청한대도 가고싶지가 않다. 그따위 서로 춰주고 헐뜯고 돈자랑이나 하는 친구들속에 앉아있으면 우선 공기부터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령감이 문뜩 떠오른다.   이상한 령감이다.   인젠 안해가 그런 술자리에 한두번 가는것도 아니고 동성동본이라는 친구와 함께 다니는것도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친구가 알선해주는 일이니 함께 갈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은 몰래 그 뒤를 밟아보고싶어진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다. 안해가 퇴근하기까지는 아직 반시간이 남았다. 외국회사라서 출퇴근시간이 아주 엄수되게 되여있다는걸 나는 안다.   회사는 호텔방 몇개를 세내서 쓰고있다고 한다. 십분쯤 지나니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밀려나오고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대문만 주시해본다.   담배 한개비 피우고났을즈음 안해는 아직도 나의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는 그 백색 ꡔ태호공주ꡕ표 자전거에 올라타며 대문을 빠져나온다.   나는 그 뒤를 따른다. 사복경찰이나 된듯한 느낌이다.   골목길을 오불꼬불 15분쯤 페달을 돌리니 5-6층짜리 벽돌아빠트들이 쭉 들어선 아빠트 단지가 나타난다.   안해는 두번째 아빠트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그녀가 동에 들어설 때 나는 잠간 망설인다. 그러다가 뒤따라 들어간다. 혹 들킬지도 모른다는, 들키면 아무런 리유도 댈게 없다는 걱정을 되록거리면서도 2층까지 따라올라간다. 물론 발자국소리를 죽이면서.   그녀는 4층까지 올라가서 노크를 한다. 그걸 나는 3층에 서서 비스듬히 올려다 본다. 뒤모습이 반쯤 보인다. 3층의 구조를 살펴보니 안해가 노크하고있는 문은 4층 1번일것 같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고 안해가 들어간다음 나는 4층에 올라가서 다시 그 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동을 나오면서 또 동 번호들을 차례로 재확인한다.  난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가? 리혼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갈라서면 정말 남이 되여버리는것일가? 리혼한다고 할 때, 처가집을 생각한다. 결혼식날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다, 부러워하며 축복해주던 동네어른들을 생각한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생각한다. 안해와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가 동을 빠져나올 때 나는 가슴이 뜨금해진다. 역시 그 사내였군. 제멋에 희희닥거리노라 머리만 돌리면 발견해낼 나를 그들은 발견하지 못한채 각각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멍청히 뒤를 따라 나온다. 깊은 생각을 할수가 없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돈이라는 개념과 이 길이 내 일상의 코스가 아니라는것을 떠올린다. 한동안 두리번거리다가(인젠 돈도 쓸데 없겠군.)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코스에 돌아와서 또 서성거린다. 그러나 인젠 돈이 쓸데없겠지. 밤중까지 서성거리다가 또 그 잘 확인해둔 아빠트단지에 들어선다.   안해의 백색 자전거가 보인다.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깊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4층 1번이라는 번호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문을 노크한다. 노크하며 무슨 리유를 댈가를 궁리한다. 아무런 리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될대로 되겠지.   ꡔ누구요? ꡕ   문은 열리지 않고 아직 잠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문 저쪽에서 들려온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여 서두른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한다.   다시 노크를 하며   ꡔ빨리빨리! 큰일났소, 빠리 문 여시오! ꡕ   그쪽에서도 서두르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자 다짜고짜 성큼 들어서며   ꡔ야단났소, 빨리!ꡕ   나는 잠옷바람의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직 닫겨져있는 사이문을 열어 제낀다.   담요로 가리울데만 가리운 내 안해가 아직 무슨 일인지 멋도 모르고 퀭해 나를 쳐다본다. ꡔ무슨 일이기에 야단났다고 그러는거요? ꡕ 이렇게 아직도 정신이 덜 든, 멋도 모르고 서두르는 사내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네깐 년놈들 지력이 안된지.   ꡔ내 안해가 발가벗고 외간사내와 한침대에 누워있다는것만치 야단난 일,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ꡕ   나는 또다시 나의 령감과 림기응변이 뛰여나다는데 놀란다.   리혼은 얼음에 박 밀듯 척척 진척이 되였다.   법적 수속이 끝나는 날, 나는 법원의 대문을 나서자 곧 하늘을 쳐다보았다. 역시 하늘은 푸른 하늘이였다.   ꡔ용서하세요.ꡕ   그녀가 뒤따라 나왔다.   ꡔ미안해요...ꡕ   ꡔ미안할것까지야 뭐. 우린 원래 남이였지 않아? 이제 또 남이 된거야. 녀자와 남자, 그저 그런거야...ꡕ   외롭게 세상에 와서 외롭게 살다가 또 외롭게 가는게 인생이겠지. 나는 뒤의 말을 내 마음속에서만 하였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나는 그 자전거가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나도 다 낡아버린 내 자전거에 올라탄다. 동시에 아까 법원에 들어올 때 경찰과 옥신각신하던 서너명의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자전거주차장에서였다. 나는 원래 그런 거리의 구경거리에는 취미가 없었는데 자전거를 세워놓으려니까 별수없이 한두마디 얻어듣게 되였다. 물론 구경군들은 그 옥신각신을 쭉 둘러서서 구경하고있었다.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모양이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법원대문앞에서 그 위험한짓을 하였을가? 눈알이 팽글팽글 잘 돌아가는 약삭바르게 생긴 젊은이가 주머니를 툭툭 두드리고는 경찰에게 두손을 펴보이고있었다. 아마도 경찰이 감춰둔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하는 모양이였다.   녀석들도 돈때문에 저꼴이 되였구나 생각하며 나는 법원에 들어갔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늘 두리번거리며 누비며 싸다니던 코스에 들어서자 나는 잠간 자전거에서 내려 벅작거리는 로천가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돈에 모든 신경이 곤두선 사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돈이라는게 생겨났을텐데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게 참 이상스럽다. 그러니까 돈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 거리에서 어디 구을러다니는 돈이 없을가고 두리번거린 자신이 참 어처구니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에 올라타려는 순간 난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것처럼 나도 자전거에 남새바구니를 달고다닌다. 좀 유다르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바구니를 자전거핸들앞에 매달아놓는 대신 나는 접었다폈다할수 있게 만든 바구니를 자전거 뒤쪽의 짐실이옆에 매달아놓은게 다르다고 할가. 그걸 펴서 밑에 비닐박막쪽박이나 신문지 한두장을 깔아놓으면 훌륭한 남새바구니가 되는것이다. 아까 법원에 갈 때도 나는 공문가방을 거기에 담아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바구니에 신문지로 꽁꽁 싼 물건이 댕그랗게 놓여있지 않은가, 심장이 뚝 멎는것 같다. 돈이였다. 부랴부랴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리고 아빠트 대문어귀까지 왔을 때 내집에 아직 ꡔ남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성하가의 그 한적한 인도에 간다. 두리번거리며 겨우 다 세여보았을 때, 천원도 더 되였다. 별 괴상야릇한 일도 다 있군. 필요할 땐(물론 아무때라도 있으면 나쁘지야 않겠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거푸 십전짜리 한장 눈에 뜨이지 않던것이 또다시 ꡔ혈혈단신ꡕ이 된 오늘 문뜩 나타난다는건 하나님의 조화랄밖에, 그것도 자그만치 천여원!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그 눈알이 팽이처럼 잘 돌아가던 약삭빠른 젊은이를 떠올린다. 그 녀석이 약삭바르게 림기응변하느라 슬쩍 숨겨둔것이라고 짐작하니 부담감도 별로 없다. 돈이야 똥이 묻어도 향기로운것이니까. 당장 그 돈이 쓰고싶어진다. 우선 식당에 들려서 한끼 먹는다. 전에는 네온싸인이 판들거리고 네면을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식당은 아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못내였었다. 그러나 정작 들어가보니 내 위로는 백원도 소화시킬수가 없었다. 또 자전거를 타고 두리번거리며 싸다닌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을 줏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주은 돈을 쓰기 위해서였다. 문뜩 붉은등이 켜져서 자전거를 멈춰세웠는데 바로 길옆의 전선주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것이 보였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에도 꼭 같은 간판이 하나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쪽에 걸음이 돌려진다. 그 카라OK방때문에 안해와 헤여진게 아닌가?   새빨간 꼬마전구가 간판밑에서 희미한 유혹을 빛으로 전하고있다.   복도가 오불꼬불 지옥으로 가는길 같다. 몇바퀴 에돌다가 역시 지옥의 길같은 계단을 오른다.   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밑에서는 역시 새빨간 꼬마 전구가 가물거리고있다. 아주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머리를 다소곳이 하며 ꡔ어서 오세요.ꡕ 한다. 카운터에서도 그보다는 좀 나이가 들어보이는, 주인인듯싶은 녀인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방안에는 온통 채색의 꼬마전구투성이이다. 음악이 은은하다. 빨간 미니 스카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일부러 패션모델들처럼 엉뎅이를 멋스레 내저으며 사뿐사뿐 오간다. 쏘파에 앉으며 난쟁이 차탁을 마주앉아있는 사내들을 본다. 모두 멋쟁이들이다. 차탁 맞은켠에 앉아서 술을 치는 아가씨들과 치근덕치근덕, 히히닥닥거린다. 나한테도 아가씨가 와서 시켜놓은 맥주를 따라놓고는 서먹서먹 눈치를 살피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별로 속에 찬게 없어 보인 모양이다.   나는 맥주만 줄창 홀짝인다. 그 사이 박수소리가 나고 방 곳곳에 매달린 텔레비가 켜지고 T셔츠를 입은 사내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나는 또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카라OK방이란 이런거였군.   내앞에는 술 쳐주는 아가씨도 없고 함께 술을 마셔주는 사내도 없다.   나는 신사 사내들의 본을 따서 손가락으로 딱딱 둬번 소리를 내본다. 아가씨가 온다.   ꡔ종이 좀 갖다주지? ꡕ   아가씨는 그대로 돌아가더니 OK가요 신청카드를 가져온다. 노래를 부를려고 종이를 요구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 카드에다 시를 쓴다.     별이 색바랜 날     꼬마전구들이 가물거린다     욕망들을 녹여내는 술잔     한컵 또 한컵     나는     외로움을 삼킨다   그리고는 또 맥주를 꿀꺽거린다.   아가씨가 다가온다. 술 치는 아가씨들과는 다른 차림이다. 온통 하얗다. 옷차림도 하얗지만 팔과 다리, 목덜미마저 눈같이 하얗다.   ꡔ잠간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ꡕ   목소리마저 하얗다. 그리고 나긋나긋하다. 손과 팔도 날씬하고 다리와 엉뎅이, 허리와 어깨, 목덜미... 한마디로 날씬하다. 가슴만은 팽팽한줄 알았는데 역시 날씬하다. 아무리 억세게 껴안아도 뼈가 상할것 같지가 않다.   그녀는 우선 내가 방금 써놓은 시를 들여다본다.   ꡔ얼마나 아름다워요... ꡕ   그녀는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눈길도 촉촉하고 날씬하다. 시를 쓴 종이카드를 건네줄 때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내 몸마저 나긋나긋해진다.   나는 또 시를 쓴다.     해질무렵     잔디밭은 아가씨다     나무와 잔디     고독을 감싸는     꽃의 훈향이 그립다   이건 아가씨를 노래한거야 하니 아가씨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는다. 너무너무 아름답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아가씨가 허리를 굽히며 뭔가 마루바닥에 떨어진걸 주을 때 야들야들한 유방이 들여다보인다. 나는 얼굴이 후끈해난다. 동시에 아래도리가 뻐근해진다. 이것도 아이러니야. 그리고는 집에 안해가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의 몸에 붙어있겠지.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욕망은 녹지 않는다. 기껏 마셨을 때 나는 욕망이 녹았는지 얼었는지도 모른다.   계산을 하고 비틀거리며 밖에 나왔을 때 아가씨는 잠간 머뭇거린다. 뻐스가 없을 시간이였다.   ꡔ데려다줄가? ꡕ   지나가는 택시를 요행 잡아탄다.   아가씨가 류숙한다는 아빠트 방에 들어섰을 때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취기와 졸음과 피로가 함께 몰켜든다. 아가씨는 ꡔ커피를 끓여올께요. ꡕ   하고는 주방에 나간다.   눈을 뜨니 이슬 먹음은 화초같이 싱싱한 아가씨가 새물새물 웃고있다. 쏘파에 기댄채 잠간 졸았던 모양이다. 아가씨는 하들하들한 비단가운을 걸치고있다. 카라OK방에서와 같은 채색 등불이 은은하다. 나는 빨려들듯 아가씨를 끌어안는다. 아주아주 녹신하다. 선률같은 등불과 탄력 좋은 침대, 날씬하고 비누향기가 그윽한 아가씨의 몸뚱아리, 4-5년동안 안해와 살을 섞으면서도 나는 한번도 그런 황홀경에 빠져본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무아의 경지다. 내 자신의 몸속에 아직 그토록 꿋꿋하고 탄력적인 정력이 잠재해있었다는데 놀랄 겨를도 없이 음과 양의 묘미와 절경을 만끽하고있었다.   잠에서 깨니 동창이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ꡔ잘 되였어요? ꡕ   아가씨도 깨여있었다.   ꡔ잘 됐다는게 뭐야? 아주 천당에 갔다왔어. ꡕ   그녀는 해죽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박씨같은 그 치아와 입술, 입귀에는 어쩐지 어색함이 은은히 드러나고있었다.   ꡔ그럼 백원만 놓고가세요. ꡕ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윽토록 그녀를 지켜본다.   ꡔ그럼... ꡕ   ꡔ그래요. 그걸로 밥을 먹는 녀자예요. 병은 없으니까 걱정마세요. ꡕ   나는 또 멍청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여 차탁우에 올려놓고 문을 나선다.   결국 그랬었군.   나는 방 번호도 뒤돌아보지 않고 동(棟)을 나선다. 거리에서는 사람의 물결이 흐르고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물결을 이루고있었지만 결국 남자와 녀자, 그렇고 그랬다. 그리고 부연 운무속에 빌딩들, 아빠트들이 우중충히 서있었다.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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