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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아야(彩), 물론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나는 왜서 그녀의 눈길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단순히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나는 언녕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길을 다시 따스한 눈길로 되돌려놓을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호감을 사려는 노력같은 것은 진작부터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눈길로 나를 보는 그녀의 마음도 결코 나의 마음만큼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는 마치 급속도로 달리던 두 차가 격돌하면 양쪽이 다 파손되는 이치와 같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이 더 아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말 한마디면 장기쪽같이 우리 라인의 사원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사장이이라는 빽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 라인의 라인장이였다.
한때 나는 그녀의 눈길과 부딪칠 때마다 <차별>이라는 낫말을 떠올렸다. <차별>은 그녀가 나에게 쓸 수 있는 마지막 핵무기었다. 그녀는 내가 <차별>을 얼마나 싫어하고 증오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멸시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 그녀의 눈길 앞에서 나는 차별받는 쪽에 언제나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 짓눌려 신음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몸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양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아침에 그녀를 만나도 <오하요> 하고 인사하지 않았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인사는 필수의 필수이고 기본의 기본이다. 나는 바로 이 필수의 필수, 기본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써 그녀를 일단 무시해버렸다. 매번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와 지시할 때마다 나는 다른 사원들처럼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이,하이>한 것이 아니라 로보트처럼 뚝 버티고 서서 무표정한 기색만 지어보였다.
처음에 그녀는 나의 그런 급작스러운 대응에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당황한 눈빛은 너무나 빨리 원상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 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훨씬 잔인하고 야멸찼다. 너 정말 나 앞에서 손을 들지 않을거야?! 벼랑끝처럼 가파로와진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이런 강박을 해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미국 학자 비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을 연상했다. 비네딕트의 말처럼 그녀는 한 떨기 예쁜 <국화>이면서도 한자루 섬뜩한 칼이기도 했다. 우리의 냉전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기는 다만 시간 문제였다…..
한때 그녀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를 대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해빛같이 따스했던 그녀와의 지난 날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의 이해와 사랑, 그네들과의 교류와 접촉에 항상 목말라했던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감로수와도 같은 존재였고 천사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8백만 일본 신(神)들이 나에게 보내준 유일한 은총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처음 회사로 출근하던 날, 그녀와 나는 묘하게도 회사 주차장에서 만났다. 내가 주차장 한 모퉁이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막 자리를 뜨려 할 즈음,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쁘게 생긴 여인이 자가용차 도아로 머리를 내밀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왜서 그곳에 바이크를 세우지요?>
나는 일시 어떻게 변명했으면 좋을지 몰라 난감하게 웃기만 했다.
<이곳은 주린장이 아니라 주차장인데 왜 바이크를 여기에 세우냐 말이에요>
여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다시 소리쳤다.
<저─주린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요……>
나는 그때까지 나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녀를 향해 겨우 변명 한마디 했다. 사실 바이크를 주차장에 세웠다고는 하지만 다른 차들의 주차를 방애할만한 위치에 세운 것은 아니였다. 바이크를 세운 곳이 주차선 밖인 데다가 회사 바람벽 한 모퉁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녀 역시 자그마한 어긋남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딱딱한 일본인이였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은 채 내가 어서 바이크를 움직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린장이 어디에 있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손으로 회사 건물 뒷쪽을 가리켰다.
<저기 은행나무 보이죠? 저쪽으로 곧추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들면 주린장이 보여요>
은행나무를 가리켜보이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서 금반지가 빛을 발했다.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연푸른 잎새로 단장한 청초한 은행나무가 파아란 봄 하늘을 떠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그녀에게 인사하고 곧추 은행나무 쪽으로 바이크를 밀고 갔다.
그런데 그날 인사과 미야자키과장이 나를 이끌고 간 작업 현장에서 의외로 그녀를 다시 만날 줄이야. 내가 먼저 어색하게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녀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미야자키과장이 그녀 앞에 나를 내세우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야씨, 지난 번에 말했던 중국 유학생이에요.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데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조금 있는 모양이에요. 일본으로 온지도 몇년 잘 되고 우리 말도 참 잘해요. 오늘부터 매주 사흘씩 우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알아서 잘 가르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말을 마치자 미야자키과장은 <간밧떼네>(힘 내세요)하는 말을 나에게 남기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아야라고 해요>
미야자키과장이 자리를 뜨자 그녀가 나에게 곱싹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그녀를 따라 깍듯이 인사했다. 우리 말의 김씨는 일본 말로 <킨상>이 되기에 그녀는 그 후로 나를 킨상이라고 불렀다.
<이러고 보니 방금 킨상에게 많이 실례했네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까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례는 제가 했지요. 허나 그 일로 해서 우린 이미 구면이 되기도 했네요.>
나의 말에 아야가 웃었다. 기계로 정밀하게 가공한 듯한 그녀의 하얀 이가 이뻣다. 나는 속으로 아야는 웃으면 더 이뻐보이는 유형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녀는 오전 내내 나의 옆에 밀착해 서서 작업 요령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내가 맡은 일은 각 판매업체들에서 보내온 주문서에 따라 라인에 실려나오는 화장품들을 차곡차곡 상자속에 넣는 작업이였다. 화장품 종류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주문 숫자에 맞게 그것들을 상자에 넣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나는 어렵지 않게 일의 요령을 장악했다.
<역시 지식인이 다르긴 다르네요!>
내가 혼자서 척척 일을 해내자 그녀는 손벽까지 치며 환성을 질렀다. 남자로서 여자의 칭찬을 받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로 해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즐거워하면서도 나는 결코 그녀의 칭찬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의 오랜 체험을 통해 나는 일본인들의 칭찬이 우리의 칭찬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은 누구와 대화할 때 상대를 올리추고 치하해주는 것을 하나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날 아야는 일본인의 예의로 나를 칭찬한 것이지 우리의 상식으로 칭찬한 것은 결코 아니였다. 나는 아야의 칭찬에 들뜨려하는 나를 경계했다.
그날 그녀는 나를 데리고 회사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내가 출근하는 금,토,일에 회사 식당에서 어떤 음식 메뉴들이 나오고 그 중 어떤 요리들이 맛있다는 것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킨상은 일본 사시미를 좋아하세요?>
식사하는 도중에 그녀가 문득 이런 물음을 제기했다. <사시미를 좋아하는가>는 내가 일본인으로부터 자주 받아온 질문이었다.
<물론 좋아하지요>
나는 내가 왜서 <물론>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붙혀가면서 사시미를 좋아한다고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의 말에 그녀는 <그래요?!>하며 놀라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낫또(納豆)와 우메보시(梅干)는요?>하고 또 물어왔다. 나는 낫또는 좋아하는데 우메보시는 별로라고 했다.
<낫또마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나의 말에 그녀가 웃음으로 가늘어진 눈을 갑자기 커다랗게 떠보이며 놀란 어조로 되물었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본의 낫또는 삶은 메주콩을 벼짚꾸러미나 보자기에 싸서 띄운 것이기에 우리의 청국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르다면 우리는 청국장을 끓여서 먹지만 그네들은 낫또를 띄운 그대로 먹는 것 뿐이었다. 일본으로 온 외국인에게 와식(일본음식) 중에 가장 거부감이 가는 음식이 뭐냐고 하면 1호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낫또였다. 그런데 그런 낫또를 내가 좋아한다고까지 하니 그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에─!우리 일본 사람들 중에도 낫또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녀는 일본 말 특유의 경탄어인 <헤에─!>를 길게 뽑으며 말했다. 위로 약간 치뜬 그녀의 고운 눈이 나의 앞에서 진주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진주같은 눈에 홀리울 것같은 자신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관서지방 사람들이 낫또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는 낫또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왜서 좋아하지 않지요?>
그녀는 쿡 하고 웃음을 쏟으며 실처럼 길게 늘어지는 낫또의 찐득찐득한 풀기에 자기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 킨상은 왜 낫또를 좋아하지요?>
나는 그녀의 입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낫또라는 화제에서 어서 도망치고 싶기라도 하듯 더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런 물음을 제기했다면 나는 일본의 낫또와 한국의 청국장의 상사점을 설명하면서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까지 밝혔을런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킨상은 우리 일본 사람이나 다름없네요>
식당 문을 나서면서 그녀가 나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이나 다름 없다는 말도 이미 많이 들어왔지만 그녀가 한 그 한마디는 어딘가 빛갈이 다른 것같았다. 그 빛갈이 어떻게 다른지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혹시 그것은 다만 느낌으로만 알 수 있고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라인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나는 그 후에도 자주 회사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말이 점심이지 우리들이 마주 앉은 식탁에는 언제나 맛나는 요리보다는 재미나는 화제가 훨씬 많이 올랐다. 나는 그녀와 말할 때마다 나의 빈약한 일본어가 각별히 풍부해지는 것같은 느낌에 놀라군 했다. 그녀는 나의 머리속에 숨어있는 사어(死語)들을 되살려내는 요술사같았다. 그녀로 해서 나는 점점 대학원으로 가는 날보다는 회사로 출근하는 날을 더 기다렸다.
우리의 대화에 시샘이 나기라도 한듯 회사원들이 이따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농조로 <설마 두분이 국제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하고 골려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수줍음을 잘 타는 일본 여자답지 않게 태연하게 웃기까지 하면서 <보면 몰라요> 하는 말로 가볍게 맞대응하군 했다. 나는 <보면 몰라요>하는 그녀의 표현까지도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중국에 대해 참으로 궁금증이 많은 여자였다. 무릇 중국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나 다 알고 싶어할만큼 그녀는 중국의 일에 관심을 보였다. 지어 그녀는 나의 입에서 무심결에 튕겨나온 사랑할 아이(愛) 의 중국어 발음 하나마저도 알려고 욕심을 부렸다. 일본어에는 <아이>의 중국어 발음을 대체할만한 발음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
<이제보니 아야씨는 사랑도, 증오도 잘 못하는 분이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나의 말속에 담긴 이중의 뜻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했고 증오도 했어요>
그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인데도 그 목소리엔 진실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愛>와 <恨>의 발음만을 반복해서 배워주는 것이 조금 따분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我爱你〉(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我恨你>(나는 너를 미워한다)라는 실용적인 말도 배워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혀 짧은 소리로 <愛>와 <恨>을 이상하게 발음하던 그녀가 거의 완벽할만큼 <我爱你>와 <我恨你>를 발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신비해서 몇번이나 그녀더러 그 두마디 말을 다시 발음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어보다는 그녀가 가장 취미를 가졌던 것은 역시 중국에 대한 상식같은 것들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는가. 중국 사람들은 왜 아이를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가. 중국의 상점들에서는 왜서 고객한테서 세금을 받지 않는가. 중국 남자들이 가정에서 밥을 한다는 것이 정말인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모택동 초상을 천안문 앞에 걸어놓는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가. 중국에서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어떤 곳들이 있는가. 중국 사람들도 이혼을 많이 하는가. 이혼하면 아이는 어느 쪽에서 부양하는가.
그녀의 질문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실태래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중국에 대해 무작정 알고 싶어하는 그녀가 나는 처음부터 싫지 않았다. 아니,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향수였다.
<킨상의 말을 더 듣고 싶은데 참 아쉽네요>
매번 오후 출근 종소리가 울릴 때면 그녀는 항상 이런 말로 우리 대화를 매듭 짓군 했다. 진실보다는 예의를 더 갖추는 일본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그 말만은 믿고 싶었다. 만약 그녀의 말마저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일본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 때 아야의 마음과 나의 마음 속에는 우리의 헤여짐을 아쉬워하고 만남을 기대하는 하나의 작은 진실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진실이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과 불륜이라는 말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모른다. 나는 다만 우리가 향수하는 온전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 속에 진주처럼 빛을 발하며 들어앉고 있는 진실─이혼한 여자와 집을 멀리 떠난 남자가 서로 인간으로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진실─을 믿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점심시간만을 이용하여 대화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 한번 퇴근 후에 다시 만나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을 알리는 회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렸지만 그녀와 나의 귀가는 항상 어긋났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오후 5시만 되면 무작정 퇴근해도 됐지만 그녀는 사원이여서 퇴근시간 뒤에도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음에도 그녀는 퇴근시간보다 늘 한시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 중 그녀가 휴식하는 요일은 다만 수요일 하루 뿐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지난 여름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쏟아붓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도 끊힐 줄 몰랐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이크를 집에 두고 전차로 출퇴근하군 했다. 그날도 비가 왔기에 나는 전차로 출근했다. 하루 일을 다 끝내고 회사 밖을 나서니 비는 그때까지도 숙어들지 않고 계속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발표할 리포트를 써야 했기에 나는 겁없이 비속에 뛰어들었다.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자면 대개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회사 정문을 나와 10분 정도 걸었을가 할 때,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그 경적소리를 나더러 길을 비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유보도 섶에 더 바싹 다가붙어 걸었다.
<킨상─!>
갑자기 차소리와 빗소리를 꿰뚫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뒤돌아보니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가용차 안에서 아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녀는 어서 차에 올라타라고 힘차게 손짓했다. 나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차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집이 어디지요?>
그녀가 액셀러를 힘있게 밟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집까지 바래주겠다는 뜻이었다.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라고 하자 그녀 입에서 갑자기 <어머머머……>하는 놀라운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놀라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다음 그냥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니 나더러 한번 맞춰보라고 했다. 혹시 그녀의 집도 모토마치 고소아파트에 있는 것은 아닐가? 나의 머리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들어있는 아파트는 시에서 경영하는 아파트이기에 그녀가 살고 있을리 만무했다. 시영 아파트나 현영 아파트는 외국 유학생이나 수입이 적은 일본인들을 대상하는 일종 복리성적인 주택이였다.
<혹시 아야상의 집으로 가자면 꼭 내가 사는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를 지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가요?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이렇게 놀라는거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또 다시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헤에─?!>했다.
<절반은 알아맞췄네요>
그녀는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킨상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알아맞추지 못할거에요. 그래서 알려주는건데요. 우리 집은 킨상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킨상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보인다는 말이에요. 어때요. 놀랄만 하지요?>
그녀가 말하는 강이란 오타가와(太田川)를 말한다. 오타가와는 너비가 약 백메터 정도밖에 안되기에 이쪽 기슭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건너쪽 사람의 얼굴마저 선명하게 가려볼 수 있다. 만약 오타가와 강이 우리 사이에서 흐르지 않는다면 그녀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이름마저 같은 한 동네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지도 길지도 않은 오타가와 강 하나 때문에 그녀와 나는 모토마치쵸와 카미야쵸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각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꼭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이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마치 우리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아온 일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내가 어디에선가 몇번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나는 핸드를 잡고 신나게 차를 모는 그녀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다리위? 커피점? 산데이야쌍? 뽀프라? 쎄븐일레븐? 햐카다라면점? 공민관?.....
그녀의 제의로 그날 우리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아오이야마>(靑山) 커피점에 들러 커피 한잔씩 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홋또 커피, 나는 멕시코 냉커피를 각각 주문했다. 우리가 커피점에 들린 이유를 그녀는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가깝게 살아왔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로 하자고 말했다.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도 꼭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이유를 달고 커피를 마시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커피에 두 숟가락 분량의 프림을 탄 나와는 달리 그녀는 프림이나 설탕을 타지 않았다. 내가 왜 프림을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림이나 설탕을 타면 커피의 원래 맛이 사라져버린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백여년 동안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 땅에서 유일무이하게 남은 한점의 정토(淨土)를 발견한 듯해서 감동까지 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화할 때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그날 어색할만큼 말을 적게 했다. 그녀는 중국에 대한 질문을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다.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가끔 수심에도 잠기군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가담가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는 그때까지 내가 미처 몰랐던 슬픈 사연들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는 3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 다섯살에 나는 딸 하나만 데리고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출신은 원래 동경이였는데 8년 전에 남편과 결혼한 뒤 이곳 지방 도시로 옮겨오게 됐고 지금은 처지가 전도돼서 원래 지방 사람이였던 남편이 동경에서 살고 동경 사람이었던 자기가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이혼한 원인까지 들려주었다. 어느 날 친정으로 놀러갔다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로 있어야 할 남편 옆에 웬 여자가 누워있더라는 것이였다.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갑자기 그녀가 쓰겁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였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잔 옆 유리병에 꽂힌 빨간 장미가 슬프게 예뻣다.
<대학교 때 나와 한 합숙에서 살았던 동창이였어요─!. 우습지요?>
한참 후 그녀가 말했다. 아픈 사연을 말하는데도 그녀는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물론 냉소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하듯 남편의 외도를 쉽게 뿜어내는 그녀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가 이미 과거의 그늘에서 많이 벗어나있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킨상은 행복하겠죠?>
한참 후 그녀가 입술에 댔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한 동안 망설였다.
<거의 6년 동안이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내가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누구에게나 다 말할 수 없는 아픔같은 것들은 있는 것 아닐가요?>
<물론 그건 그렇지요>
그녀는 나의 아내나 아이가 다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녀도 많이 놀라했지만 그날은6년이라는 나의 말에 서글픈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였다.
<어서 학업 성취하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셔야 하지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물론 그래야 하지요>하고 말하면서도 <돌아가셔야 하지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할 수 없는 실의같은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주었다. 도중에 그녀는 강 넌너 쪽에 있는 자기 집 아파트를 가리켜 보이면서 자기는7층에서 산다고 했다. 7층이라는 말에 나는 <설마?!>했다. 묘하게도 나도 7층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7층에서 살기까지 한다는 근사점과 일치점을 놓고 그녀는 금방까지 슬픈 이야기를 했던 여자 같지 않게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나,나나(7,7)라?, 참 재미나는 숫자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서 <재미나는 숫자>라고 말하는지 그 뜻을 알 것같았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7.7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타나바다>(七夕)를 의미한다. 지금도 <타나바다>가 되면 일본의 일부 지역의 젊은 연인들은 연등이 밝게 켜진 아늑한 공원의 수림속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셔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야와는 달리 나는 <타나바다>와는 전혀 관계가도 없는, 중일전쟁의 심벌인 북경의 <7.7노구교사변>을 떠올렸다. <7.7>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일본 여자와 <7.7사변>을 떠올리는 중국 남자로 갈라져 있었다.
<아오이야마커피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은 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 갔다. 이전에는 서로 회사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중국 문제만을 화제거리로 삼았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화제가 서서히 사적인 생활에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뭘 했는가?><내일에는 뭘 할 타산인가?>를 묻군 했다. 물론 나도 그와 똑 같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나의 사생활을 캐고 드는 그녀가 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물으면 아침에 뭘 먹었고 어제는 어디로 갔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조금씩 확인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에 적당히 다가서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갈망하는 내가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러는 나를 가로막을만한 의지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틀, 대학원이라는 상자 속에서 항상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해오라기 날아예는 바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산이 솟고 강이 흐리고 들이 펼쳐진 육지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가 없던 과거에는 다른 통로들도 많이 보였었는데 그녀가 나의 앞에 나타난 뒤로는 그런 통로들이 다 막히고 오로지 그녀의 통로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서는 것을 알면서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녀가 도중에서 포기할가바 더 재미나는 화제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군 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내가 꼭 그녀를 육체적으로 점유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그때 일본인인 그녀가 나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녀의 기슭에서 내가 바장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 한번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오라고 청한 적이 없다. 밤에 함께 강가를 거닐자거나 여느 술집으로 가서 한잔 하자고 청한 적도 없다. 나는 일본인인 그녀와의 접촉을 강하게 원한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을 묻은 선산이 있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외의 날에는 나는 거의 두문불출하고 논문을 쓰기에 바빴다. 일본같이 민족차별이 심한 곳에서 내가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김사량, 김달수, 김석범, 리회성, 김학영, 이량지, 유미리…..<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문제연구>라는 나의 논문테마의 주역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국조선족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해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에게 있어서 고국이란 무엇이고 중국이란 무엇인가? 너는 왜서 일본까지 와서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하는가? 너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왜 일본 여자를 원하고 있는가? 똑 같은 고국을 놓고도 너는 왜 북조선보다 한국으로 더 가고 싶어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난센스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나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난감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살아갈 자격이라도 있는 것는 것일가.
나는 일본에서 많이 파괴되기도 했고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수립된다고 해도 나는 중국인인 나, 조선족인 나를 물갈이 하듯 갱신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중국인이요, 조선족인 운명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야는 내가 이런 불투명한 인간인 줄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기만 했다. 혹시 그녀는 내가 이런 모호한 인간이기에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그녀는 나에게 <킨상은 드놀지 않는 남자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에게 그녀가 왜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야와는 달리 아내는 늘 나를 <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떠돌이를 많이 했던 조상들처럼 나도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뜻이였다. 아내의 말처럼 내가 정말 나의 몸에 숨어있는 <랑자의 유전자>의 발란으로 일본까지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아야와 뿌리도 내릴 수 없는 금단의 길을 함께 걸으려 했던 것도 그 <랑자의 유전자> 때문이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있었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날 그녀는 술을 마신 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냥 울고 싶어서 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녀는 왜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느냐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과 말에서 취기가 흠뻑 느껴졌다. 한참 후 지금 당장 자기 집으로 와줄 수 없는가고 그녀가 물어왔다. 나는 왜 라는 물음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가볼 수도 있지 않아!) 나의 몸 어디에선가 이런 외침이 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와보면 알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다음 오고 안오고는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왜서 그녀 집으로 한밤중에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집문을 나섰다. 핸드폰으로 그녀 집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그녀의 문고리를 당겼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였다. 리빙 룸에 홀로 앉아 아야가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땅콩이 담겨있는 접시와 호두알이 담겨있는 접시 옆에 자그마한 생일 케익이 조금 몸을 뜯기운 채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케익 위에 꽂힌 촛불은 이미 꺼진지 오래된 것같았다. 조금 문이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자그마한 애 하나가 입을 하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애가 바로 아양의 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지요?>
내가 아야에게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야가 취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의 앞에 구멍 뚫린 캔 맥주가 북극의 펭귄새처럼 일렬로 서있었다.
<오늘 애와 함께 나의 생일을 �어요. 애가 웃고 떠들다가 저렇게 잠드니까 갑자기 내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다가 갑자기 킨상 생각이 나더군요>
아야가 머리에 손가락을 깊이 박으며 습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로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을 섹시하게 가리워주고 있었다. 아야는 그 머리 카락 사이로 당금 나를 흡수해버릴 듯 탐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킨상도 촛대에 불을 붙히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나 오늘 킨상의 축하를 꼭 받고 싶단 말이에요. 킨상의 축하를 받으면 중국의 축하를 받는 것이 되니까. 13억 중국인의 축하를……>
스스로도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그녀가 밥상 모서리에 머리를 비비며 키드득 웃었다. 손가락에 끼인 그녀의 금반지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금반지를 보면서 나는 어느 남자가 끼워준 것일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 남편이 아닌 또 다른 한 남자가 그녀의 생활 속에 뛰여들고 있는 것같은 생각에 나는 말 못할 질투심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미 타다 만 촛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억눌린듯 우울하고 막힌듯 답답했던 가슴이 맥주에 의해 일시에 활 열렸다. 그녀는 정신없이 맥주를 마셔대는 나를 말없이 뜯어보다가 흐트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킨상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했다. 처음 하는 말, 처음 듣는 말임에도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 좋아하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꼭 듣고 싶으냐며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윙크했다.
<두가지 점이에요.>
그녀가 손가락 두개를 나의 앞에 우습게 뽑아보였다.
<첫째는 스케베같은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나 스케베를 좋아하니까.>
스케베란 우리 말로 바람쟁이라는 뜻이였다.
<왜 스케베를 좋아하는가면 우선 건강한 남자니까. 그리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건강하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구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드니까 스케베가 된거지요. 스케베 남자는 그래서 여자가 만드는거에요. 이것이 어느 나라 사람들의 논리냐 하면 일본 사람들의 논리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긴 머리채를 흔들며 킥킥 숨이 넘어갈듯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쉬->하며 손가락을 입술 위에 곧게 세웠다. 애가 놀라니 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였다.
<두번째는….>
그녀가 숨을 죽이며 또 웃었다.
<두번째는 킨상의 오만한 눈빛이 좋아서에요. 중국에서 왔으면 중국에 어울리는 눈빛으로 일본을 쳐다봐야 하는데 킨상은 뭘 믿구 오만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가 말이에요. 그 오만한 눈빛에 눌려 나는 결국 작아졌고 내가 작아졌기에 킨상을 쳐다볼 수 있게 된거에요. 이건 일본의 논리인 것이 아니라 나의 논리에요>
그 말에 아야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그 <오만하다>는 말을 일본 여자 입을 통해 듣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중국에서는 그 점을 많이 고치려고 했지만 그날 아야 앞에서는 도리여 오만해서 다행이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야는 그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만큼 취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머리를 밥상위에 박고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다미 위에 눕혔다. 그 다음 술에 취해 네각을 벌리고 누운 그녀를 걸탐스럽게 훑어보았다. 아야의 육체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나의 남자는 술에 취한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육체를 더듬고 싶어하는 나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치를 끼웠다. 그 다음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 옆에서 홀로 서성거렸다. 타들어가는 담배불과 함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욕망도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결국 술에 취한 여자를 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술에 취한 여자와 하루 밤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등을 끄고 내가 소리를 죽여가며 문어귀에서 신을 찾고 있을 때,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야가 <잠간만요─!>하고 낮게 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다음 무작정 어둠속에 묻혀있는 나에게 안겼다. 아야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가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가. 두 손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섰던 아야가 손을 떼며 <이젠 가보세요!>했다. 아야는 어둠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날 밤 내가 그녀의 생일 케익 촛대에 붙힌 불은 그 후 그녀와 나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아야는 강 하나를 사이 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서로 똑 같은 7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그 절묘한 일치점을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라도 하듯 어느 수요일 날 오전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해왔다. 지금 자기가 베란다에 서서 우리 집 방향을 향해 손을 젓고 있으니 나더러 어서 나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베란다로 뛰쳐나가 보니 강뚝 너머에 높이 솟은 아빠트에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제가 지금 손을 젓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
그녀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보입니다. 눈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윤곽은 보여요>
나도 그녀처럼 소리 높이 외쳤다.
<눈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보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이지요? 출근도 하지 않고>
손을 젓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수요일이 잖아요. 요일도 잊고 사세요?>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제야 오늘이 그녀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면 내가 집에 앉아 논문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재일조선족문학에 관한 논문을 쓴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수요일에 그녀가 전화해오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킨상이 흔드는 손이 마치 중국의 오성붉은기같네요>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 말이 재미나서 나도 그녀를 본받아 <아야상이 흔드는 손은 일본의 일장기같군요>했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을 보면서 <오성붉은기>와 <일장기>를 상상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약과 과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파아란 하늘 위에서 둥둥 떠가는 쪼박 구름이 우리가 쳐든 깃발을 향해 웃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그날 무심히 외친 <오성붉은기>라는 말과 <일장기>라는 말이 뜻하지 않게 우리 사이에 엉뚱한 화제를 몰고 올 줄이야. 그것은 아야와 나의 관계 속에 정치가 개입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허나 그 때까지 우리는 전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장기와도 같은 손>과 <오성붉은기와도 같은 손>을 서로 뜨겁게 흔들어보이기에만 열중했다. 그날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타가와 강은 왜서 그렇듯 맑고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를 하나로 이어준 오타가와 다리는 왜서 또 그렇게도 단단해 보이던지. 그 아름다운 강과 단단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손을 저으며 자기 쪽으로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이 너무 넓어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다리가 무너질 봐 건너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둘은 또 웃었다.
<킨상이 건너오면 내가 강뚝까지 마중갈게요>
그녀는 내가 논문 때문에 건너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아야상이 건너오면 다리목까지 마중갈거에요>했다. 남자 혼자만 살고 있는 집으로 그녀도 올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말에 아야는 언제인가 내가 배워준 중국말로 <我恨你─!>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누구도 누구에게로 건너가지 못한 채 서로 작은 손만을 흔들어보이다가 자기 집으로 저마끔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회사 식당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그녀는 나에게 왜 중국의 국기는 오성붉은기냐는 질문을 문득 해왔다. 내가 별 다섯개는 오대주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어마나!>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놀라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붉은색이 피를 상징한다면 중국의 국기는 너무나 화약냄새를 많이 풍기는 깃발이라고 이마까지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은 평화시대인데 국기도 평화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피라니 너무나 끔찍하네요>
나는 원래 그녀의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풀이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그녀 자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그런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나를 앞으로 조금씩 떠밀고 있었다.
<그럼 일본의 일장기는 어때요? 일장기 한복판에도 빨간 색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나는 가급적 그녀 앞에서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나의 말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웃는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빨간 색이지만 그건 피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 거잖아요. 태양이란 뭐에요? 인간이나 자연만물에 따스함을 주는 신령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일본의 일장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점점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냥 너를 믿고 해보는 소리야)
나는 그때 분명히 나의 몸 속의 또 다른 한 내가 나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권고가 마음에 닿기도 전에 나의 입에서는 어느덧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일장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왜서 그 깃발을 휘두르며 과거 그렇듯 많은 아세아 국가들을 침략했을가요? 일본인은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반대로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거에요>
느닷없이 들이대는 나의 반론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입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요>하는 말이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새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그냥 쉽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풀이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한 말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엎지른 물인 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화제를 피합시다. 사실 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변명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담담히 웃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안한 침묵이었다.
<금방 저의가 정말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죄했다. 머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시츠레이시마시다>(실례했습니다)를 외치는 그녀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녀의 사죄, 그녀의 눈물에 나는 갑자기 한대 얻어맞은 것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일본 사람들은 <실례>라는 말을 우리 말처럼 사죄의 의미로도 쓰고 고별의 의미로도 쓴다. 나는 그녀의 사죄는 후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혹시 그녀는 정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안되는 말이였다. 그녀를 놓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금방 내가 한 말이 그냥 농담이였다는 것, 나라 국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웬 영문인지 나의 입은 얼어붙은 강처럼 꾹 닫힌 채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날 점심에도 여전히 나와 식탁을 마주해 앉아 변함없이 애교를 부렸다. 마치 전날의 불쾌했던 일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듯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를 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날 그녀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닌, 중국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물었고 만리장성에 대해서도 물었고 근간의 상해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웃기까지 하면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옆을 지나던 우야마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킨상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왔다. 금년에 나보다 다섯살 아래인 우야마씨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청년이였고 언제나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피하고 싶었다. 나의 말에 실망을 느꼈는지 우야마씨가 머리를 저으며 <알겠어요. 나로서는 너무 이해되지 않아서 물은거에요>하며 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야마씨가 던진 말이 아야와 나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했다.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중국에서 일으킨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킨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전적인 어조로 질문했다. 직설적인 표현을 가급적으로 삼가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돌한 의사표달이었다. 나는 아야가 왜서 갑자기 그렇듯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나에게서 당한 일이 분해서 보복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야씨, 나 어제 약속했지 않아요. 이제부터 정치에 대한 화제는 피한다구. 게다가 나는 정치맹(政治盲)이에요>
내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픽 실소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 상품이 좋다는 반증으로 되는 것이 아닐가요? 그런데 왜서 좋은 상품을 굳이 사지 않으려고들 하지요? 상품에도 무슨 죄가 있나요?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은 왜 대국답게 크게 놀지 못하지요?>
그녀가 다시 나를 허비듯 입을 열었다. 흥분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나에겐 칼처럼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중국에서 <반일교육>과 <애국교육>을 너무나 많이 받아온 때문이였을가. 조선족인 나에게 있어서 중국은 또 무엇인가.
<아야씨, 아야씨는 중국인들이 일으킨 그번 운동이 단순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이 일본 상품을 여전히 사주면서 그런 운동을 일으켰다면 일본으로서는 그 운동에 담긴 메세지같은 것에 조금은 주목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내가 끝내 한마디 뱉았다. 그녀처럼 나도 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즉각 반문했다.
<어떤 메세지인데요?>
<물론 일본인들더러 과거의 침략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라는 메세지겠지요. 요즘처럼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A급 전범에게 참배한다든지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친다든지 평화 헌법 제 9조를 개헌하려 한다든지 특별히 9.18만주사변 일을 택해서 중국 아가씨들을 매수하여 집단적인 섹스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아야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나는 이미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자제력을 잃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였다. 나 속의 다른 한 나였다. 아니, 나 밖의 다른 한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들을 그녀를 좋아하는 내가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오후 출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녀는 그날 이전과는 달리 나에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꽁꽁 여미면서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에서 찬 바람이 일고 있었다. 나는 그 찬 바람을 가을바람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정치적인 화제로 그녀를 괴롭히지 말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또 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 쪽으로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그 어떤 타력에 의해 앞으로 떠밀려갈 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그런 이야기가 결국 우리 사이에 마이너스를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욱 기승스럽게 우리 사이에 끼여들고 있었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마귀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말려들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번마다 충돌했던 것만은 아니였다. 예하면 그녀도 나처럼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었고 나도 그녀처럼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 과격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치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 채 그저 우리 곁을 스쳐지니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와 시야비야하면서 나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
나의 입에서 떠올려지는 중국은 어느덧 <우리 나라>로 다가왔고 일본은 <너의 나라>로 밀려났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과 일본도 <너의 나라>와 <우리 나라>로 각각 분렬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 보면 중국은 정말로 나에게만 속하는 나라, 일본은 그녀에게만 속하는 나라처럼 착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비는 자연히 중국은 다 옳고 일본은 다 틀렸다와 일본은 다 옳고 중국은 다 틀렸다의 흑백논리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아야라는 여자와 킨이라는 남자의 밀접한 만남이기만 했던 우리 사이가 어느덧 일본인과 중국인의 만남으로 소원해져갔다. 그 소원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나는 때로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왜서 밝히고 싶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조선족이기에 중국을 너무 편애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인이기도 하면서 조선족이기도 한 나의 이중적인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인(한국인)인이나 다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비록 이중인이지만 이중으로 받는 차별의 대상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 것을 알면 아야는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경우를 생각하면서 즉각 나를 중국 변두리인으로 취급해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입으로는 늘 정치인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는 정치인들이 판처럼 짜놓은 울안에서 앵무새처럼 자기 나라를 변호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나라를 변호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우리 둘 뿐이였다. 그녀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준 것으로 돼있었고 나의 상처는 그녀가 준 것으로 돼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 뿐만이 아닌 비애까지 느껴야 했다. 어느덧 우리는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는 악역으로 슬슬 둔갑해갔다. 점심휴식 시간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1시간의 만남에 아쉬움만 느꼈던 우리는 잠간의 만남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야의 눈에서 이따금 칼날같은 독기가 번뜩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야는 대학교 때 국제정치를 전공했었다.
서로가 그 무슨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국과 일본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을 걷어안고 티격태격 논쟁을 벌리던 그녀와 나는 지난 마가을에 끝내 서로의 분노를 터치고야 말았다. 그날 그녀는 나의 실수로 잠간 기계가 멈춘 일을 트집 잡아 온 회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쳤다.
<중국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일해요? 킨상은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킨상이 지금 일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일본이란 말이에요. 킨상이 상품을 잘못 취급하면 중국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체면이 깎인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그녀의 말은 나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중국까지 곁들여가면서 마구 폄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물을 배설하듯 되는대로 욕을 퍼붓고 나서 막 자리를 뜨려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불러세웠다.
<아야씨, 나 한 사람의 실수를 트집 잡아 중국까지 싸잡아 욕해대는 자신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야씨가 이렇듯 요사하고 비루한 인간인 줄 몰랐습니다. 좋아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본의 체면을 깎는 모양인데 이제 이틀만 더 참아줘요. 아야씨를 위해 다음주부터 내가 이 회사에서 영 사라져줄테니까. 이제 됐어요?!>
내가 꽥 소리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녀는 한동안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다음주부터 회사에서 사라져준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놀래우기 위한 엄포는 아니였다. 그 때 나는 회사는 물론, 일본을 떠나려고 손에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까지 쥐고 있었다.
자리에 뚝 굳어진 채 아야가 얼마나 긴 시간 서 있었을가. 멈춘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사원들이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일하는데도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그때까지 나만 노려보고 있었다. 독기로 섬뜩이던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물어지고 긴 눈초리가 처마처럼 곱게 드리운 눈에서 어느 한 수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잇빨로 지긋이 깨문 입술, 원망으로 가득 찬 눈, 나는 그때까지 그녀 앞에서 주먹을 으슬어지게 쥐고 서 있는 그 순간순간이 견딜 수 없게 힘들고 괴로웠다. 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구나! 허물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자 아프게 독백했다. 나만 노려보고 섰던 그녀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정말 실망했어!>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가 일본에서 떠나오던 그 전날은 아야가 휴식하는 수요일이었다. 정작 내일 6년 반이라는 세월을 살았던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중국이 옳니 일본이 그르니 하며 정신없이 아야와 자존심 대결을 벌려왔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부질없는 짓처럼 생각되어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일로 우리의 진정을 생매장한 자신이 나는 용서할 수 없을만큼 미웠다.
나는 그날 일부러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강가를 오래도록 홀로 서성거렸다. 혹시 만에 하나 그녀가 베란다에 서서 이쪽 강 기슭을 바라라도 본다면 그 동안 일본인으로 그녀를 밀어내치기만 했던 지난 과거의 비정을 후회하고 오직 인간 그녀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란다에 잠간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던 나의 상상을 깨고 그녀는 어느 한 순간 태양처럼 강 기슭에 나타나주었다. 나와 똑 같은 일직선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진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 몰랐다.
2005년 10월 28일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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