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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깔개가 없으면 습기가 올라온다 댓글:  조회:3306  추천:3  2013-04-18
깔개가 없으면 습기가 올라온다 남영선 큰범위는 제쳐두고라도 지방의 “장”자를 가진 령도간부들의 순위를 놓고보면 농촌마을의 지서, 촌장이 제일 말등석임은 틀림이 없다. 비록 제일 말등석을 차지한 지서, 촌장이지만 전에는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촌민들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뛰여다니면서 로고를 아끼지 않고 많은 일들을 하였는데 그러다보니 많은 지서, 촌장들이 몸에 치유할수 없는 병을 갖고도 불평불만이 없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대가를 따지지 않았으며 그 직을 맡았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것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일해왔던것이다. 공신이란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면 어떨가. 이제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은것이 달라져가기 시작하였는바 제일 말등석에 쪽걸상을 가지고 앉은 한 마을의 지서, 촌장의 로고를 알아주기 시작하여 몇년전부터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일년동안의 수고비를 년말이면 괜찮게 지불해주어 그런대로 위안이 되고 또 일하는 지부서기나 촌장도 그런대로 자신들의 로고를 알아주니 힘을 갖게 된다고 할수 있다. 또한 현재 비여가는 마을을 지켜가면서 새 농촌건설의 선두에서 땀흘리며 달리고있는 이가 바로 지서, 촌장들이니 그들의 로고를 알아주는것은 천만 무방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나들이와 더불어 연해도시로의 진출로 우리의 조선족사회가 흔들리고있으며 우리의 조선족농촌마을들이 비여가고있는 현실쯤을 지금 조선족사회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비여가는 마을을 지키면서 마을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는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으며 이런 일들을 하고있는 이들의 가슴에 마땅히 꽃다발을 달아주어야 한다. 여기서 물론 말등석에 쪽걸상을 놓고 앉은 우리의 지서, 촌장들이 선두로 나서고 자신을 바쳐가고있어 다소라도 위안이 되여가고있으며 또한 앞날이 기대되기도 한다. 헌데 살펴보면 말등석에 쪽걸상을 놓고 힘다하는 지서, 촌장들의 뒤에 쪽걸상도 없이 쪼크리고 앉았지만 묵묵하나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촌로년협회회장들이다. 이제 어느 마을이나 찾아보면 젊은이는 지체자나 장애자를 제외하고는 근본 찾아볼수 없으며 중년이나 장년들도 쌀에 뉘격이며 오직 늙은이들뿐이다. 전에는 마을마다 청년조직이 있어 마을에 생기가 넘친것은 두말할것없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젊음이들이 힘차게 밀고나갈수 있어 참으로 든든하였다. 허나 이제 늙은이들뿐인 마을에서 그런대로 마을을 지키고 또 마을을 꾸리면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는 조직이 곧 로인협회인데 그 조직을 맡아 선두에 서서 모든 일들을 밀고 나가는 사람이 바로 로인협회회장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서, 촌장까지는 말등석의 위치에 놓고 쪽걸상이라도 주면서 로고를 알아주지만 로인협회회장만은 위치도 없고 로고도 말로만 진행되니 어딘가 서운한 느낌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 마을에서 평생을 살면서 잔뼈를 굳히고 갖은 풍상고초를 겪어온 분들이라 칭찬이나 로고를 따지는 일없이 오직 마을을 위한다는 그 한곬으로 마음을 쏟고있으니 참으로 감격한 일이 아닐수 없지만 경제사회이니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들의 로고를 알아준다면 어떨가? 그러면 그들도 그것이 자각이 되고 동력이 되여 더 열의를 쏟을것이며 비여가는 우리 마을들을 더 잘 보살필수 있을것이다. 자고로 한 사회나 한 단체를 이끌자면 사람마다의 위치가 달라야 함은 의심할바 없는 일이며 또 그 위치에 의하여 순위가 결정되는것이다. 푹신한 의자로부터 쪽걸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앉을수 있다는것은 보기 좋으나 깔개도 없이 앉은 사람은 보기 좋을수가 없다. 물론 순위가 없으니 걸상은 바라지 않지만 깔개쯤이라도 주어 습기가 올라오지 않게 해주면 좋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깔개가 없이 앉으니 습기가 올라오고 그 습기가 오래되면 앉을수 없을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년세가 있어 가지고도 한마음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위하여 헌신하는 로인협회도 돌봐야겠지만 그 선두에 서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일정한 대가가 차례진다면 힘이 되고 열이 될것이다. 마치 습기가 올라오지 않는 깔개에 앉은듯이 말이다.  
5    갈고 닦으면 쓸데가 있다 댓글:  조회:2003  추천:0  2013-04-15
갈고 닦으면 쓸데가 있다 남영선 전에 공부할 때 우리를 맡았던 지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전에 새롭다. 그때 선생님은 늘 “글을 배우고 재간을 닦아두면 언젠가는 꼭 사회가 알아줄것이며 쓸데가 있을것입니다” 아주 알아듣기 쉽지만 의미심장한 이 말을 그때는 미처 깊이 깨닫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피부로는 느껴보지 못하였다. 헌데 시간이 흘러 지천명의 나이에 이를때에야 피부로 실감할줄이야. 금년 여름 한국에 연수갔던차 한국생활을 피부로 체험하고싶은 생각으로 일하게 되였는데 내 힘에 알맞는 일이 주방설거지일것 같아 주방설거지일을 하게 되였다. 그날 내가 일하러 간곳은 용산역근처에 있는 드레곤 힐스파 일품면옥집에서 운영하는 치킨집이였다. 드레곤 힐스파는 1층부터 5층까지 모두 목용탕과 찜질방, 야외수영장, 놀이방으로 구성되였는데 일품면옥은 3층에 자리하고있었으며 치킨집은 5층에 자리하고있었다. 일품면옥에서는 한식을 위주로 한다면 일명 하늘정원이라고 이름한 치킨집에서는 닭고기튀김과 돼지고기구이인 바비큐를 하였었다. 하늘정원이라 이름한 5층의 치킨집은 밖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어놓아서 앉아 휴식하기에는 안성맞춤하였다. 그러니 드레곤 힐스파를 찾은 손님들은 목욕하거나 수영하고나서는 5층의 하늘정원으로 올라와서 휴식하면서 치킨이나 바비큐를 시켜 맥주를 마시면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군 하였다. 아직 손님이 들이닥치기전이라 주방설거지로 간 내가 좀 한가하게 보내게 되자 실장님은 나에게 칼로 바비큐로 나갈 돼지고기를 손질하는 방법을 배워주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는것이였다. 실장님이 하는것을 눈여겨보고 그대로 따라 하게 되였는데 칼이 말그대로 도끼등같아서 돼지살코기도 잘 베여지지 않았다.  “실장님, 칼이 너무 무디네요. 숫돌이 없나요” 무딘 칼을 들고 내가 실장님을 보면서 물었다. “왜요? 아저씨 칼갈줄 아나요?”실장님은 이외라는듯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면서 조금은 투박스럽게 물어보는것이였다. “한번 갈아보지요” 내가 자신있게 말하자 사장님은 한쪽켠에서 숫돌을 찾아 나의 앞에 내밀면서 역시 짧지만 굵게 말하였다. “자요. 갈줄알면 한번 갈아봐요” 실은 쟁기를 가는 일은 나로놓고 말하면 자신있는 일이였다. 전에 농촌에 있을 때 낫, 칼, 가위, 도끼는 물론 대패, 톱까지 나절로 갈아서 썼으니 칼을 가는것쯤은 말그대로 식은죽먹기였다. 나는 실장님이 내준 숫돌을 받아들고 칼을 갈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실장님은 여기저기서 다섯자루나 되는 칼을 찾아서는 나의 앞에 갖다놓는것이였다. 나는 아무말없이 한자루한자루 정성들여 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나 다섯자루의 칼을 몽땅 가니 실장님이 다가와 그중 한자루를 쥐고 칼날을 손톱에 대여보고는 다시 돼지고기를 손질해보는것이였다. “아저씨, 칼가는 재간있네요” 실장님은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띄우고 나를 바라보면서 너무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것이였다. “다른건 몰라도 쟁기를 가는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원체 쟁기를 가는 일은 손에 익게 해본 일이라 나는 실장님의 칭찬에 한수 더 올려붙이기까지 하였다. 그러고나니 자연 그제날 지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귀가에 쟁쟁히 울리는것 같았다. 그날 하루는 비록 힘들었지만 기분은 종잡을수 없게 흥분되여 있었다. 쟁기를 가는 재간은 뭐 자랑할만한 재간은 아니지만 농촌에 있을 때 배워둔 재간을 써먹게 되였는데 그것도 멀리 한국에 와서 써먹게 될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였다.  우리는 글을 배우거나 재간을 익힐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것이 그것이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수요하는것이며 또 능히 써먹을수 있을가 하는것이다. 물론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지만 배워둔 학문이나 익혀둔 재간을 잠시는 써먹지 못한다해도 속을 썩이거나 애를 끓이지 말아야 한다. 또 속을 썩이거나 애를 끓인다해서 곧 써먹게 되는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그 배워둔 학문이나 익혀둔 재간은 써먹게 될것이라는 굳은 신심을 가지고 더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둔다면 말그대로 갈고 닦아둔다면 어느날인가 정말 크게 쓰일데가 나타날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쟁기를 날이 서슬푸르게 갈았는데 그 쟁기를 쓸 일이 없어 한켠에 고이 보관해둔다해서 그 서슬푸르게 간것이 무디여지는것은 아닐것이다. 비록 겉보기에는 녹이 쓸어 보면 눈에 차지 않겠지만 그 쟁기를 쓸 일이 있어 쓰게 된다면 처음은 녹때문에 좀은 지장이 되겠지만 금방 그 서슬푸름을 자랑하게 될것이며 그 쟁기로서 할 일을 시원스럽게 마칠수 있게 할것이다. 학문과 재간은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는 쓸데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았다. 2012년11월7일 립동의 날에
4    고생은 생존의 밑거름으로 된다 댓글:  조회:1485  추천:0  2013-04-07
고생은 생존의 밑거름으로 된다 남영선 사회가 일사천리로 발전하니 갈수록 살기가 편해져서 좋지만 대신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전보다 훨씬 피곤해지고있는건 사실이다. 그렇지않으면 이 사회에서 자신의 립지를 찾고 살아갈수 없기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 전에 큰가마밥을 먹던 평균분배시기에는 늘쩡거려도 살수 있었기에 피곤하게 사는것이 무엇인지 감지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허나 시장경제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오늘은 늘쩡거리다가는 말그대로 밥도 먹기 힘들게 된다. 지난 여름 한국의 일식집에서 며칠동안 일하게 되였었는데 그때의 만났던 사람들과 일하던 전경은 지금도 눈앞에 그대로 삼삼히 떠오르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내가 일한 일식집은 한국에서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는 “보따쥬”라는 첫일식집이였는데 주방장과 부장님이 30대이고 그외 주방보조로부터 홀서빙에 이르기까지 모두 20대와 10대들이였다. 첫날 일식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너무나 젊어 나의 자식벌되는 그들을 보고 좀은 어리둥절했으나 영문을 알고는 항상 그들을 주시해보게 되였다. 20대초반과 곧 20대에 진입하게 되는 그들은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들이였는데 방학간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 중이였던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저녁10시까지 일하는 그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저 시키는대로 곰상곰상 일하였으며 정한 식사시간도 없이 늘 손님이 많아 주방에 들어가 잠간 서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또 일에 열중하는데 일하는 모습과 그들의 나이를 도무지 련계시켜 생각해볼수가 없었다. 그렇듯 피곤하게 일하면서도 항상 웃음띈 얼굴로 그 나이에 어울리게 희희락락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방학간 아르바이트로 새학기학비와 생활비에 보탬도 주고 또 사회생활도 체험하련다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는 우리의 학생들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의 초중학생이나 고등학교학생들 그리고 대학생들을 보면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학비나 생활비를 보태는 학생이 너무나 적어 정말 말그대로 쌀에 뉘격이라고 할수 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작은 현성 시내이지만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몇원씩하는 삼륜차나 택시를 리용하여 집으로 가거나 학교로 오는 일은 아주 정상이 아닌 정상적인 일로 되였으며 업간휴식시간에 간이상점으로 가서 먹을것을 몇십원어치씩 사서 들고 다니는것도 역시 보기쉬운 일로 되고있을뿐만아니라 산 물건이 입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예도 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것 역시 보기쉬운 풍경으로 되고있다. 학교에 매일 광천수를 운반해주나 그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병에 몇원씩하는 물이나 음료를 사서 마셔야 성차한다. 학교식당이나 기숙사에서 오히려 가정에서 먹을때보다도 더 잘해먹이건만 하루 소비가 20원에서 50원인 학생이 태반이니 정말 돈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건 생각없이 소비하는데는 달인이 되여간다고 해야 적절할것 같다. 집과 가까운 대학에 간 학생들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 황금휴가기라고  일컫는 “5,1”절과 “10,1”국경절에 며칠간 생활체험겸 돈을 벌 생각같은건 아예 하지도 않고 차비를 팔면서 집으로 달려온다. 하다보니 현재 대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보내여 4년간 공부를 시키려면 최저로 12만원씩 들어야 하니 그 돈을 들이대느라고 등이 휘여지는 우리네 부모들이 불쌍하기만 하다.  지금 많은 부모들이 말하고있다. 대학을 나와 사회에 진입하여 일자리를 찾아서도 얼마간은 돈을 보내줘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이 무엇과 련계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유치원부터 대학공부가 끝날때까지 부모가 대주는데만 의거하다보니 자립의식이 너무나 결핍한것으로 인한것이 아닐가. 자기의 두손으로 돈을 벌어보고 또 사회단련도 해보았더라면 돈도 아껴쓸것이고 그 어떤 곤난도 두려움없이 이겨나갈수 있을것이다.  온실안에서 바람한점 맞지 않고 자란 식물은 미끈하여 눈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일단 온실밖을 나서면 처음으로 맞이하는 해빛의 직사광과 바람에 의하여 인츰 시들어버리여 볼품없이 되고 만다. 허나 자연에서 떨어진 씨앗일지라도 바람에 여기저기로 구을러다니다가 흙이 조금만 있는 돌틈에 떨어진다면 인츰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우면서 나름대로 꿋꿋하게 자라는것을 우리는 심심치않게 볼수 있다.  학비와 생활비에 보탬을 주고저 방학시간을 리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국학생들은 곤난도 이겨나갈수 있었을뿐만아니라 사회도 료해할수 있었으니 참으로 일석이조가 아닐수 없으며 그것은 또한 그들이 앞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좋은 밑거름으로 될것이다. 우리도 이제 더는 우리의 학생들을 어리다고, 귀엽다고 쓰다듬고 끌어안는데만 그치지 말고 곤난을 겪어보게 해야 할것이며 우리의 학생들 역시 돈이 어디에서 오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고 곤난을 겪는것이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라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는 말은 곧 젊어서 겪는 곤난은 앞으로의 생존에 밑거름으로 된다는 뜻으로 리해하면 좋을것 같다.
3    한복의 의미 댓글:  조회:1677  추천:0  2013-04-01
한복의 의미 남영선 지난 8월말의 어느날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일본에서 사업하는 제자의 결혼식사회를 보게 되였다. 그날 사회때 새로 맞춘 하늘색 한복을 입고 나섰더니 모두들 한결같이 참 보기좋다고 입을 모았었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기분은 날듯이 좋아졌으며 다시한번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노라니 어쩌면 자신이 진정 백의겨레의 일원이 된 느낌이여서 설레여오는 가슴을 억제할수 없었다. 한복이라면 그저 우리 백의겨레가 입는 전통적인 의상쯤으로 알았지 그 기원이나 멋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하여서는 크게 생각을 가져보지 못하였기에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 연기자들이나 대형활동때 남녀가 입은 한복을 볼 때마다 한복을 입으니 참 보기좋구나 하는 생각밖에 해보지 못하였다. 지난 여름방학 한국재외동포재단의 요청으로 한국외국어대학 용인글로벌 캠퍼스에서 두주일간 연수를 받으면서 한복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그 진정한 의미도 나름대로 가슴으로 느끼였었다. 첫날수업은 시인이고 한국문화연대 대표인 고경희교수님의 “조선어교육의 중요성”이라는 강의였는데 고경희교수님은 고운 한복차림으로 강단에 나서서 참으로 의색적이였으며 보는 느낌이 너무나 푸근하고 정다웠었다. 고경희교수님은 자신은 일년사계절 한복을 입고 나서고있으며 한복만해도 보통의상과 같이 여러벌씩 된다고 하였다. 특히 출국할 때면 꼭 한복을 입고 나서는걸 잊지 않고있으며 그것도 여러벌씩 준비하여 갖고 가서는 자주 갈아입는다는것이다. 이는 자신이 자랑찬 한민족임을 과시하고 또 자랑찬 한민족이 된 자호와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낀다고 하였다. 그렇듯 화려한 미사려구가 아닌 말이였지만 고교수님의 페부에서 우러러나오는 진솔한 감정이 담긴 말을 듣는 순간 다시한번  님을 우러러 보게 되였으며 그 말이 여운이 되여 오래도록 가슴에서 메아리로 되여와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순간도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고있다.  연수중 전라북도 전주의 한옥마을을 참관하고 한옥마을에서 하루밤 체류하면서 체험생활을 하게 되였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은 일이라면 한복을 입는 방법과 자세를 배우고 직접 체험한 일이다. 그날 나는 강사님의 부름으로 연수생들앞에 나서서 한복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량반들이 쓰던 갓과 정자관을 쓰고 나서는 행운을 가지기까지 하였었다. 물론 그런 복색차림으로 나선 나는 평소와는 다른 나였기에 연수자일행들의 포복절도를 자아냈지만 난 그 순간이 어쩌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으며 지어 행복하기까지 하였고 또 그런 복색으로 당장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참으로 잊을수 없는 순간이여서 지금도 잊을수 없는 그날의 장면을 찍은 사진을 자주 보군 한다. 한복은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시기에 기원하였으며 그로부터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생활의 편리에 따라 개량되였다. 지금의 한복은 생활의 편리에 따라 많이 개량되였지만 전과 같이 가볍고 입기 편리한 특점은 여전히 변함없다. 특히 계절에 따라 색상과 원단이 다를뿐 평민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같은 한복을 입는다는것이 한복으로서의 특점이라고 할수도 있다. 한복은 지금까지 우리 백의겨레만의 복장으로서 입으면 반듯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주고있다. 귀국하기전에 서울 동대문시장을 돌아보게 되였는데 촘촘히 들어앉은 가게마다 각양한 옷을 전시한 광경이 눈길을 끌었으며 더우기 손님을 깍듯이 대하는 태도는 시장을 나오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 되게 하였다. 동대문지하철을 리용하려고 역에 들어서니 한복전문 매점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눈이 부시게 화려한 원단들이 눈길을 끌고 발목을 잡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거기다 온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원단과 한복의 종류를 설명하는 사장아저씨의 모습은 너무나 보기 좋았다. 연수에서 한복을 알게 되였고 또 한복에 갓과 정자관을 쓴 잊을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있는데다 원단 또한 너무도 좋아 결국은 하늘색 한복 한벌을 맞추기에 이르게 되였다.  비록 옛식이 아닌 개량한복이지만 색상이 우아하고 또 가볍고 입기 편하여 새로 맞춘 한복을 입어보는 순간 실로 말그대로 날듯한 기분이였으며 이름할수 없는 심정이였다. 집에 돌아와 한복을 옷장에 정히 걸어놓으면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복은 우리 민족 고유의 민족복장으로서 한복에는 민족의 넋과 얼이 그대로 슴배여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한복을 모르고 한복을 잊는다면 결국 민족의 뿌리를 모르고 민족의 정신을 잊는다는것과 다름이 없을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일제의 통치에 맞섰고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구국의 길에 나섰으며 한점 후회없이 젊은 청춘을 바쳤었다. 또한 한복자락을 날리면서 남부녀대하여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살길을 찾아 여기 만주로 건너와 삶의 터전을 닦고 이제는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 자신의 삶을 떳떳이 영위해나가고있다. 지금도 단오명절이나 추석명절 그리고 큰 행사나 모임, 환갑잔치나 결혼잔치때면 남녀로소가 한복을 입고 어울려 즐거움을 나누는데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며 타민족의 부러움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한복은 이렇듯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으며 또 지금도 함께 해오고있다. 나는 오늘도 옷장에 정히 걸려있는 한복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한복을 입는것도 좋지만 우리 민족의 넋과 얼을 잊지 않을것이며 더우기 우리 말과 우리 글을 가르치는 신성한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은 물론 우리 민족전통문화도 옳바로 전수하여 그들이 계승발전시키게 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복을 입어도 떳떳할것이며 또 한복을 입은 나를 보고 모두가 보기 좋다고 칭찬한다면 진정 마음으로 부끄럼없이 받아들일수 있을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복을 입는 나로서의 진정한 의미가 될것이다.
2    숨쉬는 솔방울 댓글:  조회:1939  추천:0  2013-03-29
숨쉬는 솔방울 남영선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접속하여 사이트에서 솔방울의 효능에 대하여 알아보게 되였는데 솔방울이 치통에도 고혈압에도 고혈지에도 좋으며7, 8월경의 솔방울은 술에도 담글수있고 가을의 솔방울은 천연가습기로도 제격이라는 글을 보게 되였다. 여름철이 지난 초겨울에 접어들다보니 솔방울술을 담글수는 없기에 일단 가습기로 사용해보기로 하고 등산도 할겸 솔방울을 주으러 가기로 작심하였다. 마침 난방이 되는때라 집안이 건조하여 가습기가 필요한데 솔방울이 천연가습기로 으뜸이라니 더는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소나무에 달려있는 솔방울은 색상도 곱고 깨끗하여 좋으련만  너무 높이 달려있어 할수없이 땅에 떨어져 가맣게 된 솔방울을 주어오는수밖에 없었다。땅에 떨어져 활짝 피여있는 솔방울을 주어다가 깨끗이 씻어서 참대바구니에 담은다음 화분에 물을 뿜어주던 분무기로 물을 듬뿍 뿜어주면서도 이것이 과연 가습기작용을 할가 반신반의였다. 저녁운동을 하는 내내 물을 뿜어준 솔방울이 어떻게 되였을가 하는 의문이였으며 운동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쫓기우는 사람처럼 숨돌릴 사이도 없이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오기까지 하였다.  집으로 달려와 문을 열고 객실의 한켠에 놓아두었던 참대바구니에 담긴 솔방울을 보는 순간 두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수 없었다. 활짝 피여있던 솔방울이 그사이 모두 원상태로 돌아가 오무라져 통통해 있었다. 너무도 신기하여 그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기까지 하였다. 그날저녁 은은한 솔향기가 풍기는 방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달콤한 잠을 자게 되였다. 그러면서 이제 래일 아침이면 솔방울이 어떻게 될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기 바쁘게 솔방울이 담겨있는 참대바구니앞으로 달려가 눈을 비빌 사이도 없이 솔방울을 바라보고 또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물을 맞고 원상태로 돌아가 오무라져 통통해있던 솔방울들이 모두 내가 줏어올때처럼 활짝 피여있지 않겠는가! 그후로 솔방울은 물을 뿜어주면 원상태로 돌아갔다가 물이 마르면 다시 활짝 피여있군 하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겨줄뿐만아니라 습도까지 더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가습기로서는 천연적이고 무공해여서 참으로 나무랄바가 없이 좋았는데 그보다는 물을 뿜어주면 원상태로 오무라들었다가 습기가 빠지면 다시 활짝 피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기는 솔방울이 숨쉬는것 같아 숙연해지는 마음이였다. 솔방울도 역시 꽃을 피우고 맺힌 열매이다. 소나무의 열매로 소나무에 달려서 소나무씨를 품고있다가 가을이 되여 활짝 피면서 자신이 품고있던 씨앗을 토해내고는 결국 소나무를 떠나 땅에 떨어지게 되는것이다. 이쯤이면 소나무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것이니 말그대로 땅에 떨어진대로 귀근하는 일만 남게 되였다고 할수 있다. 헌데 다시 물을 주니 원상태로 돌아가면서 솔향기를 은은히 풍기는것은 숨쉬는것이며 마지막까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각인시켜주는것이니 한낱 자연이 선사한 보잘것없는 물체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하였다. 예로부터 우리 말에는 “짐승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라”는 말이 있다. 이 땅우에서 사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는 생과 사가 있는 법이거늘 어느날인가는 이 땅을 떠나게 될것인즉 떠나기전에 값있게 살아 떠난후에도 누구인가 잊지 않게 살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이라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자신의 평생 글짓기작업에서 최소 한편의 글이라도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어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후에도 후대들이 즐겨읽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 글쓰기 작업을 하는 작자들의 공동한 마음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난 문호들의 글들은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지 몇십년 지어 몇백년이 되였지만 오늘도 우리들은 그들의 글을 읽고 감동을 금치 못하고있지 않는가! 몸은 비록 갔지만 그들이 쓴 글은 지금도 숨쉬고있으며 그 글만이 가지고있는 향기를 그대로 내뿜고있기때문이다. 이 시각 장편소설 “춘향”으로 제10회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을 획득한 조선족녀류작가 김인순이 한 말이 생각난다. “ 내가 죽은후에도 나의 소설이 단 몇편이라도 계속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는 우리 모든 글쓰는 이들의 바람이라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2012년11월7일 립동의 날에
1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없다 댓글:  조회:1691  추천:0  2013-03-28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없다 남영선   조선족들이 한국을 비롯한 외국과 연해도시로의 대거진출로 말미암아 조선족사회가 비여가고있으며 모진 진통을 겪고있음을 조선족사회인이라면 거의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러한 현실앞에서 우리 조선족사회가 어디까지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학자들을 비롯한 지성인들 나아가서 우리의 민족간부들까지 동참하여 참으로 보기좋은 풍경을 이루고있으며 또 여러가지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있어 앞날이 밝아져오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크고 작은 회의는 물론 작은 모임에서일지라도 민족의 앞날을 두고 열변을 토하는것을 심심찮게 볼수 있는데 그 문제의 해결책은 잠시후에 보더라도 민족에 대하여 관심하고있다는 자체부터가 참으로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렇듯 민족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민족문화사업을 위한 지방단체들이 우후죽순마냥 나타나 민족문화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것을 임무가 아닌 의무로 간주하고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일심으로 바쳐가는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정말 감동을 금할수 없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도 그대로 계승발전시킬수 있겠다는 신심이 북받쳐오르군 한다. 또한 많은 지성인들과 민족간부들이 자금을 인입하고 자금을 해결해주어 민족의 전통문화를 고양하는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개최하고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공신들이라고 해도 과찬이 아닌것 같다.   이렇듯 눈물나게 고마운 일들을 고마운 분들이 해나가고있어 자호와 긍지를 느낄수 있는 반면에 서운한 일들도 따라서고있어 말하지 않을수가 없다. 회의연단에서나 모임에서는 목에 피대를 세워가면서 민족사업의 중요성과 민족사회를 위하여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눈물이 날 지경이여서 참으로 감격을 금할수가 없으며 이런 민족간부들이 있기에 우리의 민족사업이 잘될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져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회의나 모임이 끝난다음이다. 지금은 그 어떤 일을 하려해도 제일 먼저 나서는 과제가 경비문제이며 경비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촌보난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지방단체에서 작은 일들은 사재를 털어가면서 진척하다 더는 해결할수 없을 때 회의나 행사에서 열변을 토하던 그분이 떠올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찾아 청을 들게 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싶게 백팔십도로 돌아서서 힘에 알맞게 하라고 되려 충고를 주면서 자기 고충만 한바탕 늘여놓는다니 참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에 찬물을 끼맞고 돌아서는 기분이 아닐수 없다고 한다. 하긴 우리의 민족간부들 역시 사업에서 많은 고충을 겪고있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민족을 두고 열변을 토할 때는 어느 때였던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든 사촌에게 기와집을 지어주는 큰소리쯤은 다 해볼수 있지만 말한것을 실행에 옮기는것은 결코 누구나가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하여 민족을 위하여 크게 말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실행에 옮길수 있는 말이라면 백번천번해도 좋으며 백성들은 바로 그런 말을 듣기를 원하고있다. 일단 지금 차지하고있는 자리를 떠나게 된다면 해보고싶어도 또 해주고싶어도 할수 없게 되거늘 있을 때 민족사업을 위하여 팔을 걷고 나서서 실행한다면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억할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저 세상사람이 되였거나 혹은 집에서 만년을 보내는 분들을 두고 그때 그분은 참으로 민족사업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하는 말을 듣게 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간혹가다 우리는 무더운 한여름에 맑고 푸른 하늘 저 멀리에서 우릉우릉 우뢰소리가 울리는것을 들을 때가 있는데 우뢰소리뿐 비는 한방울도 없어 너무 슴슴해나 허구픈 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우뢰가 울었으면 비가 와야지 우뢰소리뿐 비가 없으면 너무나 멋적기때문이다. 모난  그릇도 마찬가지이다. 둥근 그릇은 둥근 그릇으로의 미가 있다면 모난 그릇의 미는 모서리가 있는데 있는데 모난 그릇이 모서리가 없이 둥그스럼하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이여서 미는 둘째로 보기조차 흉할것이다.    살같이 달려가는것이 세월이라면 세월따라 늙어가는것이 우리 인간임은 속일수 없는 일이다. 민족을 위하여 일할 시간도 제한되여 있거늘 모난 그릇에 모서리가 있어 나름대로의 멋이 있듯이 민족을 위하여 말보다는 실행에 옮긴다면 그 업적이 각인될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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