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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믿음은 믿어주어야 믿음이다 댓글:  조회:1876  추천:0  2013-07-04
금년들어 나라에서 농촌지역학교에 대대적인 지원으로 신형의 멀티미디어와 그에 따르는 흑판들을 새롭게 맞추어 보내줌으로써 우리의 교수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참으로 감회가 새로울 뿐만 아니라 효과도 좋았다. 헌데 그런 신형의 멀티미디어와 그에 맞춘 흑판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멀티미디어에 따르는 컴퓨터와 음향설비들을 교탁처럼 만들어 파손되지 않게 하였는데 거기까지는 참 빈틈없이 잘 설계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컴퓨터를 넣는 교탁과 흑판에 무려 다섯곳이나 설치해놓은 자물쇠를 보고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보관상자를 든든하게 만드는 건 보관상 편리하기 위해서나 파손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어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저기 열릴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자물쇠를 설치해 잠그게 만들어 놓은 건 아무리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가장 중요한 원인이 우리의 학생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귀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신생사물이여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보편화되고 있어 아이들은 마치 필통에 들어있는 학용품을 대하는 것과 같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미 사용에 들어갔지만 어느 학생도 컴퓨터를 열어놓고 장난치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열려있는 보관상자의 문을 닫아놓고 관리를 더 잘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생활하면서 자물쇠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어떻게 어디에 이용하고있든 자물쇠를 이용하는 건 그 안에 든 것이 중요한 것도 있지만 더욱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안에 든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믿음이 있다면 절대로 자물쇠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헌데 반대로 아무리 평범한 것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자물쇠를 이용하게 되면 자연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가져오게 될 수도 있으며 원래는 관심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바 그러다 결국 자물쇠를 망치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생활에서 보이는 자물쇠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자물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과의 교제를 싫어하고 혼자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하며 마음의 빗장을 열라고 한다. 그 말의 뜻인즉 마음의 대문에 자물쇠를 설치했다는 것인데 자물쇠를 없애면 서로의 소통이 잘될 것이고 그로부터 믿음이 생기게 될것이라는 말이 아닐까. 마음에 자물쇠를 설치한 사람들 거의가 주위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보이는 자물쇠든 보이지 않는 자물쇠든 총체적으로 자기를 제외한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 것이다. 타인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면 구태여 자물쇠를 설치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헌데 믿음이란 말로만 해서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믿어 줄 때만이 진정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미래의 주인공을 육성하는 신성한 일터이다. 그들에게 믿음이 어떻게 생기고 또 어떻게 믿음에 보답해야 하는가 하는 걸 배워주고 깨우치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 다가오는 미래사회를 더욱 조화롭고 더욱 돈독하게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열릴 수 있는 곳마다 다 자물쇠를 설치해놓은 물건들을 내놓는다면 그들도 필경은 믿음보다는 의심에 대하여 더많이 생각하게 될 것인즉 앞으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자물쇠를 많이 설치하려고 할것인 바 그러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사이에는 믿음이 점점 메말라 갈 것이다.   이제 우리의 학생들을 믿어보자. 믿어보면 그들도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게 될것이며 그것은 무언의 가르침이 되어 그들도 타인을 믿어줄 것인바 그런대로 발전해나간다면 이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가 서로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정말 말그대로의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구축될 것이 아니겠는가.   믿음은 믿어주어야 진정한 믿음임을 학생들이 실제로 깨치게 하는 것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의 임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5    의심은 불화, 믿음은 조화 댓글:  조회:2163  추천:1  2013-07-02
전에 한 부부가 있었는데 서로가 속이 좁고 의심이 많기에 작은 일로도 늘 다투군 하였다 한다. 어느 하루 안해가 색다른 음식을 갖추고나서 고방에 놓아둔 술독의 술을 푸려고 술독을 들여다보는 순간 술독에는 한 녀인이 있었는데 자기를 빠끔히 올려다보고있었다.  술독의 녀인을 보는 순간 안해는 남편이 자기몰래 외간 녀자를 데려다가 술독에 숨겨놓은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되였으며 그런 의심이 드는 순간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것 같았다. 하여 남편앞에서 악을 쓰면서 욕을 퍼붓기 시작하였는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남편이 급히 안해가 가리키는 술독을 들여다보니 그번에는 술독에서 한 남자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있는것이였다. 안해가 자기 몰래 외간 남자를 술독에다 숨겨놓았다고 생각하니 남편 역시 노기충천하게 되였다. 하여 부부는 서로 삿대질하며 목에 피대를 세워 욕하던데로부터 손찌검을 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판가름이 나지 않자 결국 관청을 찾게 되였는데 판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짐작되는바가 있어 라졸들을 시켜 그 문제의 술독을 메여오게 한다음 쇠망치로 술독을 부수어 버리게 하였다. 독이 깨지니 독에 있던 술이 땅바닥에 와르르 흘러나오게 되였으며 부부가 그렇게 의심하던 외간 녀자, 외간 남자도 그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실로 배를 끌어안고 웃을 일이 아닐수 없이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게 한다. 그들은 왜 술독에 비친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란걸 생각하지 못했을가? 바로 마음에 의심이란것이 작간했기에 미처 다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것이다. 의심이 생기면 여러가지로 억측도 생기게 되는데 억측이 생기면 따라서 마음도 점점 좁아지게 될것이다.  그러노라면 눈덩이 굴리듯 의심에 의심이 겹치게 될것이며 의심에 의심이 겹쳐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일도 아주 큰일로 치부하고 생각할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리지를 잃는 수가 있으며 리지를 잃으면 이외의 액운을 불러오는 수가 있다. 반대로 그 어떤 일에 부딪칠지라도 억측에 앞서 “아무렴 그럴수가?”라는 생각을 하고 믿음을 앞세운다면 그 어떤 일도 가볍게 지나칠수가 있으며 모든것은 봄눈녹듯 사라질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할지라도 의심보다는 믿음을 주었기에 오히려 대방이 부끄러움속에서 자신을 반성해보게 될것이며 그것을 촉매로, 거울로 서로의 사이가 더 돈독해질수도 있을것이다.  살아가노라면 부부사이, 동료사이, 친구사이, 상사사이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길수 있는것은 불가피면적이다. 일이 생길 때마다 믿음대신 나름대로 억측을 하고 의심을 한다면 서로의 사이가 긴장해질것은 불보듯 뻔한바 그러면 불화만 불러오게 될것이나 그 어떤 일에서든지 서로가 의심에 앞서 우선 믿음을 주고받는다면 서로의 사이가 긴장된 사이가 아닌 조화로운 사이로 거듭날것인즉 흐린 날보다는 맑고 화창한 날이 더 많아질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의심은 불화를 불러오지만 믿음은 조화를 불러오기에 항상 믿음을 앞자리에 놓고 살아가는것이 보다 현명하고 명지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24    우리 몫에는 내 몫도 있다 댓글:  조회:2518  추천:2  2013-06-26
내 기억에는 80년대 중하반기까지만해도 개는 다만 집을 지키는 동물로서 밖에다 만든 굴에서 자면서 집을 지키는데 충성하는데 그쳤으며 종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헌데 그후로 특히는 이 근년에 개의 종류는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많아졌으며 개의 위치와 지위도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고있다. 전에 그렇지 않던것이 이렇게 된데는 아마도 물질의 풍요성을 말해줄뿐만아니라 더우기는 국계를 넘어 받아들인 문화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해본다. 나는 매일 이른 아침이면 강변으로 나가서 조깅을 하고는 아침시장을 한바퀴 돌아 집으로 오군하는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청신한 아침공기를 마실때면 말그대로 상쾌한 심정이며 비록 북적대는 아침시장이지만 싱싱한 남새를 마주할 때면 싱그러운 흙내가 그대로 풍겨와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흥분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건강을 념두에 두고 평시에 관리하느라고 열을 올리고있기에 강변은 아침 조깅을 나온 사람들로 시장못지 않게 흥성거리고있는데 그속에는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끌고 나오는 개들도 눈여겨보면 종류도 여러가지인바 주먹만한것들로부터 거의 송아지만큼이나 되는것들로 비단옷에 신까지 해신은 개들이 있는가 하면 머리에 예쁜 리봉까지 단 개들이 있는데 어떤이들은 한마리로 성차지 않는지 두세마리씩 끌고나와서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여기저기를 초점없이 눈빗질한다. 아무리 작은 개이든 큰개이든 사람을 보면 코로 냄새를 씩씩 맡으면서 다가오려고 하거나 또는 컹컹 짖어대기도 하며 생면부지의 저희 족속들을 만났다고 짖어대며 딩굴기도 하는데 때로 개가 가꺼이 다가올 때면 공연히 경계심이 들면서 상쾌하던 아침이 침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쯤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한참을 제멋대로 올리뛰고 내리뛰면서 부산을 피우던 개들이 그동안 장운동이 활발해서인지 아무곳에나 배설하기 시작하는데 귤색옷을 입은 청소공들이 이른 새벽부터 땀흘리며  청소한 대가를 무참히 짓밟는것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그래도 주인들은 그러는것이 아주 정상이기나 한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여유작작하게 개를 끌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리를 뜬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북적이는 시장에서도 개목에 맨 바줄을 잡고 보란듯이 걸어다니는가 하면 털갈이를 맞아 털이 물물 빠져나오는 개를 안고 다니는데 비좁은데서 개를 끌고가니 곁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는가 하면 개털이 다른 사람한테까지 날려다니니 기분이 잡치기는 강변과 매일반이였다. 자신의 애호나 취미에 따라 개를 기르던 쥐를 기르던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소유하고있는 울타리안에서만 하는 일이지 공중장소에까지 와서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흐릴 리유가 없으며 또 공공장소를 어지럽힐 권리는 더구나 없는것이다. 자신의 집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공중장소에 들어섰다는걸 알아야 한다. 공중장소는 나혼자만 공유하는 공간이 아닌 여럿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니만큼 여럿이 함께 가꾸어야 할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게는 이 세상, 작게는 우리가 함께 하는 공간들의 환경을 잘 가꾸어가려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것이다. 어느 한사람이라도 왼새끼를 꼰다면 미꾸라지가 맑은 물을 흐리워놓는 격으로 될것인즉 함께라는걸 잊지 말아야 한다. 깨끗하게 청소한 장소에 자기의 취미대로 개를 끌고 나와서 멋대로 배설하게 한다면 그건 곧 맑은 물을 흐리워놓는 미꾸라지가 아닐가? 함께 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말로 되는데 우리의 몫에는 내 몫도 있음을 잊지 말고 내 몫을 착실히 해나간다면 살맛나는 터전이 될것이다.
23    뒤늦은 소망 댓글:  조회:1650  추천:1  2013-06-25
언젠가 장마당을 돌아보다가 수산물매대에서 그물망태에 가득 담겨져있는 개구리들을 보게 되였는데 그물망태속에 있는 개구리들은 그속을 뛰쳐나올 심산으로 쉬임없이 올리뛰고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력을 다해 노력해보아도 그물망태속을 빠져나오기란 말그대로 하늘에 장대겨룸격으로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정경을 보면서 그때 그물망태속의 개구리들은 아마도 평시 사람들한테 잡히지 않게 천만 조심해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와 더불어 이제 다시 빠져나갈수만 있다면 다시는 잡히는 일이 없게 신경을 도사리고 살아야겠다는 소망도 가지지 않을가 하는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낚시질에 여념없이 보내는 나는 매번 고기를 낚아올려 그물다래끼에 넣군 한다. 헌데 그 그물다래끼에 들어간 고기는 처음에는 물속에 그대로 담가져있으니 몰랐는지 즘즘하다가 조금 지나면 그물다래끼안에서 펄떡펄떡 뛰면서 용을 쓰는데 아마도 그때는 넓은 수면이 아니라 좁은 다래끼안임을 직감하고 그속을 뛰쳐나오려고 모지름을 쓰는것일것이다. 그때 그물다래끼안의 고기도 미끼에 현혹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는데 하는 후회의 마음과 더불어 이제 다시 뛰쳐나가기만 한다면 절대로 미끼에 현혹되는 일이 없이 물가운데서 여유작작하게 살아갈것이라는 소망을 가져볼것이다. 갇혀서 뛰쳐나오려는 몸부림과 함께 그물안에 갇히기전의 일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더는 이룰수 없는 소망을 가져보는 (물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지만)개구리나 물고기가 너무도 측은해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과 련계시켜보게 되는건 어쩔수가 없다. 언젠가 간암으로 투병중인 환자를 방문한적이 있는데 자신의 병증을 알고도 소탈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으며 눈물겨웠다. 그때 그는 한 3년간 술을 너무 과음하였었댔는데 그때 좀만 절제했더라면 이 지경으로까지는 되지 않았을것이라고 후회하면서 이제 만약 정말 건강을 되찾을수만 있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이 매사에서 건강을 챙기는 일일것이라고 자신의 작은 소망을 구김없이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얼핏 생각해보면 아주 쉬운 말같지만 죽음의 신이 당금 손을 부여잡을 순간까지도 희망을 갖는 그 마음에 눈물이 나지 않을수 없었다. 몇년전 친구가 위암으로 돌아가자 오래전에 그와 리혼한 친구의 원안해가 머나먼 길도 불구하고 찾아왔었는데 생각외로 애간장을 끓이며 너무도 구슬프게 우는 그 전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긁어내렸었다. 사람이 이렇게 오래도 살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질줄 알았으면 애초에 서로 참고 양보하면서 리혼이나 하지 않았을걸 하는 후회와 더불어 친구가 몹쓸 병으로 누워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라도 다시 부부사이를 회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다짐하였었다는것이다. 비록 이루어질수는 없었지만 그 말은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니여서 우리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이러루한 일에 봉착하게 되거나 또 이러루한 일을 범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사람사는게 다 그렇고 그런거다”라고 말하군 하는데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어디까지나 감정동물이지 기계가 아니기에 이럴때도 저럴때도 있기 마련인것만은 부정할수 없기때문이다. 성인도 후회되는 일을 범하는 수가 있을라니 평범한 인간임에 더 말해 무엇하랴. 헌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사는게 다 그렇다”는 한마디로 일축해버리는건 어딘가 자아위안이고 현실도피가 아니겠는가 하는것이다. 하다면 그런 앞에서 자아위안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 근원을 똑똑히 밝혀내고 심각하게 분석한다음 다시는 그런 일을 범하지 않도록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일것이다.  병상에 눕기전에 과음은 목숨을 앗아갈수 있는 원흉으로 될수 있다는 도리를 깨쳤더라면, 함께 하는 순간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잊지 못할 순간임을 가슴으로 느꼈더라면 그렇듯 가슴아픈 후회나 이루지 못할 소망을 가지는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것이다. 문제는 보다 일찌기, 보다 똑똑히 깨우치는것이다. 쑨죽이 밥이 될수 없듯이 모든것이 더는 만구할수 없는 막바지에 이른다음의 후회는 마음만 아플뿐이고 가져보는 소망은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말것이다. 후회가 없거나 적다면 가져보는 소망도 이룰 가망이 있을것이며 이루게 된다면 더없이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갈것이다. 그물망태속에서 사력을 다하여 뛰는 개구리를 다시한번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름대로의 삶을 잘 설계해보리라 다져보았다.  
22    거창하기보다는 소박했으면 좋겠다 댓글:  조회:1928  추천:0  2013-06-20
우리는 지금까지 왕왕 누구를 위하는가 하면 꼭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하거나 혹은 집단 더 크게는 조국과 인민을 위한다고 자랑차게 말한다. 전보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항상 내가 아닌 남을 위하는 정신을 갖추고 행동해야 하며 항상 자신이 속한 집단과 나아가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여야 한다고 정치사상교육을 진행하고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 마음상 평형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자신을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을 생각할줄 알며 집단을 위하고 나아가서 나라나 인민을 위할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또 대학입시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며 대학입시도 학교의 영예를 위하여 잘 치여야 한다고 할 때가 많다. 내가 보건데는 공부를 잘하고 대학시험을 잘 보는것 모두가 우선은 자신을 위한것이라고 본다. 공부를 잘하면 앞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할수 있을것이며 또 대학시험을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갈것인바 그러면 앞으로 자신이 사회라는 이 넓은 무대에서 출연을 담당하기 쉬울것이니 그래 자기를 위하는것이 첫째가 아닌가? 또 그렇게 우선 자신을 위한다음에라야 진정 학교를 위하여 영예를 떨칠수 있고 또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것으로 될것이다.  일요일저녁마다 한국KBS에서 방송하는 “도전! 골든벨”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우선 자신의 부모님들께 속심말을 하는데 그 진솔한 말은 너무도 마음에 쉽게 닿아서 좋았다. 또 매주 월요일마다 한국KBS에서 방송하는 “우리 말 달인”프로에 등장하는 선수들이 차례지는 상금을 어디에 쓰겠냐는 아나운서의 물음에 가족유람을 가고싶다거나 부모님을 유람보내고싶다거나 마음드는 가전제품을 사고싶다는 소박한 말을 하는데 그말은 참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의 념원과 같을수가 있어 마음에 닿았다. 만약 그때 “도전! 골든벨”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학교의 영예를 위하여 꼭 힘다하겠습니다”라든지 혹은 “우리 말 달인”에 나오는 선수들이 “그 돈을 사회에 공헌하고싶습니다”라고 소박한 말을 떠나서 거창한 말을 하였다면 어떨가? 누구든 진실이 아닌 꾸밈이나 위선을 좋아할리 만무한것인즉 소박한 말을 들었을때보다는 기분이 탐탁치 않을것이다. 그렇다고 매사에서 너무 자기만 위하자는것은 결코 아니다. 너무 자기만 위하면 그건 자사자리나 리기적으로 될수 있기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리타주의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여야지만 소박한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는것이다. 나를 돌볼줄 모르고 나를 위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타인을 사랑할줄 알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감내할줄 알겠는가? 더우기 이런 사람이 아무리 남을 위하여 헌신할수 있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바칠수 있다고 목청높여 거창하게 말한다할지라도 믿음을 줄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자기를 돌볼줄 알고 자기의 가족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줄 알고 집단을 위하고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수 있을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너무도 거창한 말은 결국은 진실이 되지 못하고 내심의 발로가 되지 못한다. 소박한 말은 실제적인 말이기에 행동에 옮길수 있으며 또 그것이 루적된다면 곧 거창한 일을 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거창하기보다는 소박한 교육이 필요하며 그로부터 소박한 언어로 자신의 내심을 말하는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적이지 않을가? 
21    가을앓이 댓글:  조회:1903  추천:1  2013-06-18
어릴적부터 나는 일년사계절중에서 가을이 제일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해왔으며 글을 지으나 어떤 공식적인 장소에서 말할 때면 항상 하늘은 높고 푸르며 물은 맑고 그윽한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극구 찬미하여마지 않았었다. 하긴 가을이 되면 어느사이엔가 하늘이 보다 높아지면서 한결 푸르러지고 물도 따라서 맑아지게 되며 만물이 수확을 재촉하기에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은 마냥 부풀어오르면서 즐거워났기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나는 가을을 이정도로만 생각해왔다함이 합당할것 같다. 얼마전 책상에 마주앉아 하는 일에 골몰하고있는데 옆의 동료가 밖을 내다보면서 “벌써 락엽이 지네요”하는 말에 얼핏 밖으로 눈을 주었더니 아니나 다를가 비술나무, 수양버들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한잎두잎 쉴새없이 떨어지고있었다. 그런 정경을 바라보노라니 어쩐지 그순간만은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나면서 전처럼 가슴부푸는 가을이 아니였다. 한잎두잎 잎사귀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저 나무들의 마음은 어떠할가? 봄부터 여름내내 저 잎사귀들을 피여올리느라구 얼마나 많은 힘을 들여왔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건 어쩔수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반추해보게 되였는데 그건 아마도 불혹의 나이를 마치고 곧 지천명의 나이에 올라설 때가 되였음일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나름대로 부끄럼없는 삶을 살아보려고 헐레벌떡 동분서주해왔다고 해도 될것 같다. 그렇게 부끄럼없는 삶을 살려고 하다보니 자연 남들보다 못지 않게 되여야 한다고 자신을 편달해오게 되였으며 그 편달이 때로는 욕심을 낳기도 하지 않았을가 생각해보게 된다. 남들이 가지는건 자신도 가지려고 애를 썼으며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공연히 배가 아파 모지름을 썼다. 정말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파나는 격이였었다. 실은 남들이 가지는걸 다 가져보아도 별다르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그렇게 하고싶어지는게 인간의 욕심이고 마음인것 같다. 또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서 살다보면 어차피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되고 마찰이 생기면 조화롭지 못하게 될건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앙금이 쌓이면서 미운 마음만 더해져 가게 되는데 미운 마음이 더해져갈수록 공연히 피곤해져가기만 하였다. 언젠가 책에서 본 글귀인데 가렵다고 자꾸 긁으면 가려운데가 부스럼이 되여 더 힘들게 되지만 가려워도 슬쩍 다치고 지나가든지 아니면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려운데가 금시 없어지듯이 밉다고 항상 미운것만 생각하면 갈수록 미워지지만 반대로 미워도 그 마음을 지워버리면 금시 새롭게 다가선다는것이다. 참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말이다. 지난 일년은 모든 면에서 자신을 단속하면서 한정도 휴일도 없는 소유욕을 달래고 잠재우느라 힘을 들여왔는데 여간만 홀가분한 마음이 아니였다. 그렇다하여 모든 일에 진취심이 없어진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하고싶은 일은 열심히 해가면서 모든 가지려는 마음을 미련없이 훌훌 버리고 만족할줄 알기에 힘을 넣었더니 생각과는 다른 날듯이 홀가분한 마음이였으며 미운 사람도 생기지 않고 조화로와 즐거웠다. 세상의 모든걸 다 가지고 싶고 또 다 가지는 순간 그것이 진정 자신의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는 말의 함의를 진정으로 깨치게 되였으며 법정스님의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수 있으며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 를 마음으로 터득하게 되였다. 나같이 미소한 존재가 뭐 크게 얻거나 세상을 얻는데까지는 비춰보고싶지 않지만 마음에 채우기위하여 가지려고 애를 쓰면서 살기보다는 마음을 비우면서 사는것이 훨씬 더 홀가분하고 즐거운 일이며 그 홀가분하고 즐거움을 느낄 때 진정 무엇인가 마음으로 얻는것이 보이리라 믿는다. 창밖의 나무들은 쉼없이 잎사귀들을 떠나보내고있다. 자기 몸의 일부를 떠나보내야 하는 나무이고보면 마음이 그렇게 흡족하지만은 않을것이다. 허나 모든 잎사귀들을 다 버려야만 다시 새로운 변신을 거듭할수 있으니 아무런 미련도 없이 버리는것이리라. 그것이 진정 얻기위한 버림이 아닐가 나름대로 생각해보노라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기보다는 비우는 계절, 버리는 계절이라는것이 어쩐지 더 합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실실 웃어대기까지 하였는데 옆의 동료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걸 의식하였다. 이 가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계절병을 앓아보았는데 앓아볼만한 앓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에서 하는 공부가 참으로 의미있는 공부라는 자아감각에 깊이 빠져보기도 하였다.
20    홍콩,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반짝이는 세계 댓글:  조회:2817  추천:0  2013-06-13
지난 겨울 선전에 있는 동생네 집으로 갔던 차에 홍콩으로 다녀오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부터 홍콩이란 이름만 머리에 떠올려도 공연히 마음이 부풀면서 설랬다. 전에는 홍콩이라면 실로 세외도원 같아 머리로만 그려만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공안국에서 발급한 통행증만 소지한다면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본래부터 중국 영토의 일부이었지만 당시 조정의 무능함으로 150여 년이나 영국에 넘겨주었었다. 정말 금만 건느면 닿을 수 있게 너무도 가까웠지만, 그렇지 못하여 너무도 멀리 있었던 것 같다.   홍콩이 중국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해관검사 쯤은 아주 쉽고 빠를 것이리라 생각했었는데, 정작 부딪쳐 보니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선전 황강해관의 크지도 않은 대청에는 몇십 개의 여행사에서 조직한 여행팀들로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안 처럼 빼꼭했었다. 큰 숨도 바로 쉬지 못할 정도로 몰려서서 한 시간이나 단지고음을 하고 나니 정말 홍콩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났다. 그래도 여행사 측이나 해관 측 공무원들은 낯색 하나 변치 않고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정말 '태연자약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 듯 싶었다.   한 시간동안 단지고음을 당하고 당금이라도 그 자리에 물러 앉을 것 같은 상황에, 겨우 해관검사가 시작되었는데 또 반시간이 걸렸다. 특히 마약밀매로 하여 해관검사가 각별히 까다로웠는데 그건 이해가 갔지만, 그 서비스 태도는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돈 팔고 좋은 유람을 가자고 온 것인데 그들의 나무람을 듣고 괄시를 받고 보니 기분이 너무 찜찜했다.   황강해관에서 홍콩해관까지는 버스로 3분거리 밖에 되지 않았다. 홍콩출입국사무소의 검사창구는 모두 22개였는데, 그가운데서 18개가 가동되었지만 역시 반시간이 걸렸다. 재차 까근한 검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다시 뻐스로 2분을 가니 락마주황바역이였는데, 때는 10시20분이다.   아침 6시에 집을 떠나서 장장 네시간반이나 걸렸는데 차타고 걸린 시간은 집부터 시작해야 반시간도 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곧게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생각해도 허구픈 웃음만 나왔다.   락마주황바역에서의 법륜공선전과 반공 삐라들을 보면서 한 나라 두 가지 제도라는 의미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10시35분에 황바역에서 다시 홍콩 여행버스에 탑승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정식 여행가이드가 나오고 모든 것이 편해졌다. 여행 가이드는 이제 20세초반의 처녀인 듯 싶었는데 성은 왕씨로서 보통 한어를 아주 유창하게 잘하였다. 친절하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임을 인차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차에 오르자 그는 우선 차번호와 자신의 핸드폰번호를 알려주면서, 혹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조급해 말고 연락을 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를 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홍콩은 260여 개의 크고작은 섬들로 이루어졌는데, 총 면적은 1100평방키로메터이고 인구는 700만으로서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들어선다고 했다. 산으로 이루어진 섬에 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땅값이 금값보다도 더 비싸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아파트 한평방에 2,5000원이고 고층은 한평 방에 십만 위안도 하는데, 보통 면적이 40평방이고 제일 큰집이라야 80평방인데 부자들이 산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홍콩의 아파트들은 거의 모두가 베란다가 없는데 거리를 가다도 머리를 들어 쳐다보면 모두가 바지랑대에다 옷을 걸어서는 창문에서 밖으로 내밀어 말리우는 정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정경을 보노라니 앞뒤로 베란다가 두 개씩이나 있는 나의 집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자연 어깨가 으쓱해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홍콩에서 보통 월급이 7000원 이하는 저수입계층이라고 하는데, 홍콩에서 자기의 집을 장만하고 산다는 건 참으로 힘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으며, 평생의 꿈이 아닐 수가 없다. 세집은 40평방 짜리가 한 달에 5,000원이라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버스를 타고 좁은 길에 들어설 때면 일부러 목을 빼들고 아파트의 창문으로 들여다 보이는 집안을 살펴보면 평수가 정말 작아보였다.   홍콩은 우리와 달리 좌측 통행을 하고있었는데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이든 모두 일차선으로서 오가는 차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땅이 귀하니 자연 3,4차선으로까지 넓힐 수가 없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좁은 길에 그렇게 많은 차량과 행인들이 다니고있었지만 한번도 차가 막히거나 접촉사고가 나는걸 보지 못하였으며 모두가 질서정연히 경적소리도 없이 잘도 빠져나고 있었다.   홍콩의 영화나 연속극을 보면 도처에 경찰이고 도처에 악한들이었는데, 정작 홍콩에서는 경찰제복을 입은 사람을 보자고 눈을 씻었지만 볼 수 없었으며 악한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리의 작은 음식점이나 즉석음식을 파는 곳에는 모두 조용히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정경을 볼수가 있어 자연히 머리가 숙여지군 하였다.   홍콩에서는 거리에서도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일단 그 누구나 이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제보하면 2천 원의 홍콩돈을 벌금해야 한다. 하기에 상점문앞이나 수리부문앞 같은데는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그 쓰레기통 위에 담배재털이가 달려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며 피워도 재털이에 담배재를 털고 비벼꺼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그런데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았지만 많지는 않았으며 함부로 피우는 사람은 종일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나도 돌아가면 꼭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나름대로 다져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홍콩은 땅이 귀한 곳이기때문에 집들을 산꼭대기 위에도 지었는데, 그런 정경을 볼 때마다 참 사람이 못하는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태평산정은 해발 550메터의 높이인데 그런 산꼭대기까지 고층건물을 줄을 지어 지었으니 말그대로 감탄만 흘러나왔다. 더욱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태평산정의 집은 한평방에 50만원이란 것이다. 산꼭대기까지 오르자면 많은 굽이를 돌아야 하는데 매 10초에 굽이가 하나였는바 올라 갈 수록 밑을 굽어보면 아찔하여 손에 땀이 날 지경이였다.   여행이란 건 모두가 알다싶이 면세점에 가서 면세품을 사는 것은 필수인 만큼 우리도 면세점에 가야 했다. 나는 면세점에 들어가지 않고 그 시간에 면세점 근처의 골목들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반갑게도 우리 글로 된 음식점 간판들을 보게 될 줄이야. 아마도 한국인들이 차린 음식점 같았다. 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서있다가 아쉬운대로 돌아서서 몇걸음 걷는데 너무도 귀에 익은 우리 말이 들려와서 머리를 돌려보니 스무나문살 쯤 되는 처녀애 둘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걸어가고있었다.   우리 말을 들어보지 못한지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꼭 마치 몇십 년만에 들어보는 것같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무작정 그들을 향해 달려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공연히 의심을 사서 애매하게 몰리지는 않을까, 하는 위구심이 들어서였다.   다시 차가 세워져있는 면세점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달려가는 공공버스의 밖에 광고로 씌여진 글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목단강경박소진'이라고 씌어져 있었던 것, 목단강경박소진은 내가 사는데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는 곳이였기 때문이다. 차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난 그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하나가 되고 지구가 촌으로 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어떤 사업에서든지 광고의 효능이 얼마나 큰가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구룡도와 향항도사이의 부두에서 배를 타고 홍콩도와 구룡도의 야경을 보는 멋은 참으로 무어라 형언할 수 없었다. 항구로 살아가는 부두인데 그 맑고 깨끗함은 그저 한마디로 푸르고 순수하다면 어떨가? 색다른 전등으로 조화된 야경은 많이는 광고판이였는데 삼성이나 LG같은 한국기업의 광고판도 보여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였다.   지난 20세기 아세아 네 마리 룡중의 하나로 급부상하여 우리에게는 말 그대로 천국이나 다름없이 안겨 왔던 홍콩이 지금은 우리의 곁에 있으며 천국도 지옥도 아닌 너무도 평범한 곳이라는것을 나는 실감하였다. 그러면서 심심하게 느낀 점이라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란 무엇이며 양자는 상부상조, 불가분리의 관계여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결론도 가져보았다.   멀리 있지 않고 실제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서로 배우고 교류하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19    힘들어도 해야 한다 댓글:  조회:2304  추천:0  2013-06-05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마냥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이 귀여우면서도 가엷기까지 하였다. 헌데 몇몇 학생들은 왜 그런지 전보다 더 정서가 메마르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안타까우면서도 의문스럽기만 하였다. 결국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조용히 찾아 알아보게 되었는데 눈에 눈믈을 가득 채우고 하는 말은 너무도 뜻밖으로 “시험날짜가 닥쳐올수록 너무 외로운 감이 듭니다”라는 말이었다.   원래는 이랬다. 부모가 모두 한국으로 가 있는데 전에는 그런대로 용케 견디고 참아왔으나 대학입시를 앞두고 일부 친구들의 부모들이 시험을 앞둔 얼마동안 시험날만은 자식과 함께 하면서 힘과 용기를 주려고 귀국을 했으며 일부 학생들의 부모들은 오지 못하는데 부모들이 곁으로 돌아와 정신적으로나마 힘이 되어주니 얼굴에 웃음이 가실 줄 모르는 친구들을 바라보노라니 너무도 부러우면서 외로운 느낌이 들어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세상에 부모사랑만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굽히지 말고 드팀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판에 박힌 격려의 말밖에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건 또 어쩔 수가 없었다.   전에는 한국이 그렇게도 가기 힘들어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여차하면 일락천장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설쳤지만 중한수교 20년이 되는 지금은 한국이 더는 신비한 존재가 아니며 거의 모두가 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에 가야 돈이 되고 또 자식들의 뒷바라지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가니 한국 가서 돈버는 일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90%도 넘는 부모들이 자식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가 있는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줄곧 부모가 없이 홀로 있는 학생들, 중학교 때부터 홀로 있는 학생들, 남의 집에 얹혀있는 더부살이 신세의 학생들로 어쨌든 거의 다 곁에 부모가 없이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다.   한 사람의 성장에서 가정은 제1학교이며 가정교육은 선차적인 교육으로서 자못 중요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일이며 양호한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은 우선 참된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데 기초가 될 것이다. 마치 한그루의 과일나무라고 할 때 시기에 맞추어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보다 크고 맛있는 과일이 열리듯 어릴 때부터 참된 인간이 되는 도리를 깨친다면 베풀 줄 아는 밝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헌데 부모가 곁에 없다보니 가정이라는 제1학교가 폐교되어 첫수업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 모두가 부모사랑에 굶주려 있고 그 굶주림이 오래가다보니 결국 사랑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다. 사랑에 인색해지니 더불어라는 개념은 생소한 단어가 되고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하루하루 자리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부모의 모습도 희미해져가고 있으며 부모가 간혹 전화로 부탁이나 기대를 해오면 그말이 오히려 잔소리로 들려 들을 때뿐 바로 귀밖으로 흘려버리고 만다. 부모들도 자식 뒷바라지를 목적으로 집을 떠났지만 – 어떤 사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 자식의 대학입시에도 오지 않으니 부모자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또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이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후대들의 심신이 어떻게 자랄까 걱정뿐이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제2학교로서 덕, 지, 체, 미, 노 등 방면에서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덕육을 앞에 놓은만큼 참된 인간양성을 첫자리에 놓고 행해 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나 가정교육처럼 그렇듯 세세하게 하기는 어딘가 힘에 부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학생들이 보다 바르게, 보다 밝게 자라게 하려면 우리의 교육이 참된 인간양성에서 학생들을 보다 세세히 살펴주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이러자면 학교 교육뿐만 아닌 가정교육까지 다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니 힘들겠지만 우리의 교육이 이 짐을 맡지 않는다면 우리의 학생들은 심성이 바르지 못할 것인즉 그 결과는 상상히기도 힘들게 될 것이다. 힘들더라도 우리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정감교육, 사랑주기교육을 하여 학생들이 보다 밝고 바르게 자랄 수 있는데 한몫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8    뒤모습 댓글:  조회:2871  추천:1  2013-06-03
신도림전철역을 나서서 곧바로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면 대형 디큐브백화점이 있는데 그 백화점의 5층은 모두 음식점들로 되여 있다. 백화점에 쇼핑왔던 사람들 혹은 일부러 음식점을 찾아온 사람들로 5층은 항상 인파로 북적이였으며 음식점들 또한 한식으로부터 일식, 중식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구전하였다. 5층은 음식점들로 즐비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었지만 대형백화점이라 오가는 손님들이 많아 항상 경기가 호황을 이루고있어 어느 집이나 모두 일손이 부족하다 아우성이였다. 하다보니 어느 음식점이나 다투어 파출부를 부르지 않을수 없었다. 옥실이도 처음에는 신도림역과 가까운 곳에 집을 잡다보니 디큐브백화점안의 “사리원소반” 한식점을 찾아 파출부로 일하다가 자리잡은 집과 가깝다는 리유에서 결국 월급으로 물앉게 되였다. 그렇게 일한지가 어제같은데 벌써 일년에 가까워오고있으니 세월이 빠르기는 빠르다. 이 일년사이 "사리원소반"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많이 바뀌였지만 옥실이만은 드팀없이 견지해왔으며 작아도 해반주그레한 얼굴에 늘 애교까지 머금고있어 이제는 홀의 박과장과는 너무나 익숙한 사이가 되였다. 게다가 한국생활 십년에 가까워오다보니 자신은 스스로 이제는 한국사람이 다되였다고 자부하고있으며 낯모를 사람이 물어오면 한국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군 한다. 그날 아침도 옥실이는 박과장과 함께 수저를 정리하고있는데 “일하러 왔습니다”하는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머리를 들어보니 왜소하면서도 강마르게 생긴 50대의 아저씨가 문옆에 서있었다. 더 물을 필요도 없이 교포가 틀림이 없었다. 요즘은 일손이 부족하여 늘 파출부를 부르는데 거의 교포들이 와서 하루씩 일하고는 돌아갔었다.  “사리원소반”은 설거지 일군이 부족한터라 아저씨는 실장님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 설겆이일을 하게 되였다. 그날 늦은 점심식사때 “사리원소반” 식구들 모두가 한자리에 앉게 되여 알게 되였는데 아저씨는 사고로 많이 앓다보니 현장일을 나갈수 없어 식당파출부로 다니고있다는것이였다. 많이 앓았다더니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식사도 얼마 하지 못하는 검스레한 얼굴에 강마른 아저씨를 바라보는 옥실이는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남편을 잠간 떠올려보게 되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백화점안에 있는 음식점이라 토요일과 일요일은 정말 말그대로 개미채바퀴돌듯 숨돌릴 사이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 그날 점심식사때 부장님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저씨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달하는것이였다. “아저씨, 오늘은 손님이 많으니깐 오후 다섯시부터는 홀에 나와서 서빙해요. 내가 부르면 나와서 하면 돼요” “그럼 설거지는 어쩌나요? 그리고 저는 홀서빙을 못해보았는데요...” 아저씨는 너무도 뜻밖이여서 수저를 든채로 부장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설거지는 그런대로 주방에서 서로 방조하면서 할것이니 아저씨는 홀에 나와요. 그리고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되니 걱정말아요” 부장님은 아예 그루를 박아 말하였으며 아저씨는 더 말없이 묵묵히 하던 식사를 마치였다. 그날 오후 다섯시가 되자 부장님은 어김없이 아쩌씨를 홀로 불러내왔으며 아저씨는 좀은 굼뜨고 서툰 솜씨로 손님들이 물러난 상을 치우기에 땀을 흘리면서 서둘렀다. 주일날 다섯시면 손님이 끊임없이 들이닥치는때라 옥실이도 가랭이에 불이 달릴 지경으로 뛰여다녀야 했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에게 식사후 얼음을 탄 매실차를 공급하는데 무더운 삼복철이라 물통에 부은 매실차는 금방 바닥이 나군하였다. 밑반찬을 가져올라 주문을 받을라 거기다 손님들의 잔심부름까지 할라 참으로 눈코뜰 사이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매실차를 담은 무거운 물바게쯔를 들어 물통에 붓기가 쉽지 않았는데 키가 작은 옥실이에게는 그것이 실로 버거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때 마침 옥실이의 눈에 아저씨가 비껴 들어왔다. “아저씨, 매실차 좀 가져다가 부어줄래요?” 옥실이의 말에 아저씨는 흐르는 땀을 훔치고는 인차 주방쪽으로 달려가 매실차를 가져다 건뜩 들어서 물통에 부어주었다. 그러는 아저씨를 보노라니 옥실이의 눈은 금시 반짝 빛났다. "아저씨, 밑반찬 좀 가져다 줄래요?"  옥실이는 다 떨어진 밑반찬소반을 가르키며 또 아저씨를 불렀다. 이번에도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밑반찬이 가득 담긴 소반을 가져다 주는것이였다. 그날 옥실이는 시도 때도 없이 쉬임없이 아저씨를 불러 매실차와 밑반찬 심부름을 시켰지만 아저씨가 아무말없이 그대로 가져다주는  바람에 여느날보다 다리를 쉬울수 있었다. 헌데 옥실이가 아저씨에게 련이어 심부름을 시키자 다른 일군들도 덩달아 아저씨를 불러 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아저씨는 여럿의 심부름에 응하면서 거기다 손님이 물러간 상까지 치울라니 온몸이 땀벌창이 되여 돌아쳐야 했다.  "참, 얘들이 왜 이래?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 왜 자꾸 아저씨를 불러 시키는거야?"박과장의 새된 질책이 들리였다. 서로가 아저씨를 부르다보니 박과장의 눈에 띄운것이다. 박과장의 독기어린 눈을 보고 모두 눈을 다른데로 돌렸지만 옥실이만은 해반주그레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박과장을 살짝 훔쳐보았다. 박과장과는 언녕 언니 동생으로 통하니깐 자신있었던것이다. 이튿날 그 시간이 되니 실장님은 또 아저씨를 불러내와 서빙일을 시키게 되였는데 전날 박과장의 말에 무엇인가 알아차렸는지 간혹 다른 일군들이 아저씨를 불러도 아저씨는 매서운 눈으로 찔 흘겨보고는 자기 일만 묵묵히 하는것이였다. 그렇게 되니 좀은 무엇해난 일군들은 더는 아저씨를 부르지 못하였다. 허나 아저씨로 하여 전날 다리를 많이 쉬운 재미를 본 옥실이는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또 아저씨를 부르게 되였다. "아저씨, 매실차 좀 가져다줄래요?" 옥실이의 부름에 아저씨는 옥실이를 흘깃 보고 조금은 뜸을 들인후 늘쩡늘쩡 주방으로 걸어가서 매실차가 담긴 바게쯔를 들고와 물통에 부어넣고는 옥실이곁에 와서 낮으나 갈앉은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같은 교포니 해주는겁니다.”  “전 교포가 아닌데요...”아저씨의 말에 옥실이의 낯은 금시 벌개났지만 그래도 입에서는 말이 흘러나왔다.  “똑똑히 아는게 좋을것 같아요. 우리는 같은 교포라는걸 잊지 마세요"  날이 선 눈으로 옥실이를 바라보면서 칼칼하게 그루를 박아 말한 아저씨는 스적스적 걸어가서 자기가 할 일을 계속하였다. 비록 아주 잠간 사이에 있은 일이지만 옥실이로서는 가슴이 섬뜩해나면서 쿵쿵 뛰였으나 (같은 교포면 어째서?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거지. 않그러면 아예 오지 말든... 내가 누구라고 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하고 속으로 혼자 공연히 주절거려 보았다. 그 일이 있고난후 아저씨는 다시 주방설거지일을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게 되였으며식사때 잠간씩 마주할수 있었지만 과묵한 아저씨는 묵묵히 다른 사람의 절반이나 되나마나하게 식사를 마치고는 인차 자리를 뜨군하여 말을 걸어볼 일도 없었지만 또 말을 건네볼 사이도 없었다. 간혹가다 옥실이는 아저씨의 검스레하면서도 강마른 얼굴과 날이 선 눈을 마주할 때면 인차 다른데로 눈길을 보내군 하였으며 일부러 박과장곁으로 다가가서는 별일도 아닌것을 가지고는 서울말투를 본따 수다를 떨었는데 그 가살은 듣는 사람이 닭살이 돋을 지경이였다. 그렇게 십여일 지난 어느날 늦은 아침식사를 하려고 모두가 한자리에 앉게 되였는데 그날은 마침 중복이 시작되는 날이라 식사메뉴는 미역국에 굴비를 구운것이였다.  "아유, 오늘 누구 생일인가요? 미역국에 굴비네요" 옥실이가 공연히 부산을 피우면서 자리에 앉자 박과장이 옥실이를 흘깃 째려보면서 말하였다. "날자가는것도 모르고 사냐? 달력 좀봐" 박과장의 말에 좀은 무안하여 얼굴을 붉히려는 옥실이였는데 옆에 앉아있던 찬모가 "오늘 중복이 시작되는 날이네" 라고 한마디하여 다행히 숨돌릴수 있었다. "저 부장님, 미안합니다. 저 래일부터 나오지 못할것 같습니다" 아저씨가 부장님을 향해 좀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실은 제 몸이 좋지 않아서 아무래도 귀국하여 치료해야 할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별수 없지요. 그동안 수고많았어요" 부장님은 아저씨의 검스레한 얼굴을 흘깃 쳐다보면서 너무도 간단히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의 말을 들은 옥실이의 가슴이 이상해났다. 자기도 모르게 아저씨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걸 다른데로 돌리기에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않되였다. 그때 마침 구운 굴비를 담아온 소반에 굴비가 남아있는것이 옥실이의 눈에 들어왔다. 옥실이는 인차 일어나 굴비를 집어 아저씨의 그릇에 담아주면서 말하였다. “천천히 더 드세요” 옥실이의 뜻밖의 행동에 아저씨는 휘둥그런 눈으로 옥실이를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저는 많이 먹지 못해요” 아저씨는 역시 짧게 말하고는 옥실이가 집어준 굴비를 그대로 집어서 소반에 놓았다. 그러니 오히려 무안해난것은 옥실이였으며 공연히 화가 올리 치미는걸 겨우 참아냈다. (쳇, 그래도 생각해서 주니깐...” 밤 열시가 가까워올 때 일을 마친 모두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아저씨는 어느새 문을 나고고있었는데 여럿을 돌아보면서 얼굴에 실웃음을 띄우고 말하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짧은 한마디를 남긴 아저씨는 엘레베트쪽으로 종종 걸음을 옮기는것이였다. 비록 짧은 아저씨의 인사였지만 모두가 반갑게 받아주었다. 모두들속에 끼워 멀어져가는 아저씨의 왜소하면서도 강마른 뒤모습을 바라보는 옥실이의 마음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웠다. 하루 일에 지친 몸뚱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옥실이의 마음은 예전같지 않게 삼검불처럼 엉켜지면서 공연히 우울해났다. 옥실이가 자리잡은 집근처의 골목길에 꺾어드는데 멀리서 거쿨진 사내가 절룩거리면서 걷는 뒤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무심중 눈여겨보니 어쩌면 남편같아보여 뒤따라잡으려고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옮기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 절룩거리는 사람이 남편같아보여 더 조바심이 났지만 소리쳐 불러보기도 그렇고 하여 헐떡거리면서 뒤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옥실이의 남편도 한국에 온지 여러해가 되는데 원래 술을 반기는데다 일하고 돌아오면 고달프다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매일 참이슬을 두병씩 까더니 얼마전에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한동안 일도 못하고 집지킴을 하다 며칠전부터 용역으로부터 일자리를 주선받아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용역이라 매일 새벽에 나갔다가 늦어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돌아올 때마다 어디서 저녁을 걸치는지 술내를 풀풀 풍기였으며 잠꼬대처럼 혀꼬부라진 소리로 이놈저놈 돌아가면서 욕해보다가 그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자군 하였다. 그러는 남편을 볼 때마다 옥실이는 어서 한국생활을 접고 돌아가고싶었지만 아직 커가는 아들놈의 집장만까지 보태려면 더 벌어야 했기에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물앉군 하였다. 잰걸음으로 다가갈수록 남편이 틀림없었다. 거쿨지나 강마른 체구의 남편이였다. 헌데 아침까지 멀쩡하던 남편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걷는 뒤모습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당신 왜 이렇게 걸어요?” 남편임을 확신한 옥실이가 다가가서 팔을 부여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편의 겨드랑이에 닿을만한 키였지만 절룩거리는 남편의 팔을 잡아 자신의 어깨에 걸치면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남편에게서는 또 역겨운 술내와 함께 종일 흘린 땀내까지 합세하여 시큼하면서도 이상한 냄새가 그대로 풍겨나왔다. “어, 왔어? 나 오늘 재수없이 참 더러워서...”남편은 또 혀꼬부라진 소리로 뜬금없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러구려 옥실이는 힘에 부쳤지만 그런대로 남편을 부축하여 집에 들어섰다. 남편은 집에 들어서자 그대로 쿵 하고 무너지더니 또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개놈새끼, 교포면서도 교포가 아니라구? 나 원 더러워서 퉤!” 남편은 안방도 일터로 여기는 양 걸직한 가래침을 제딴에는 시원하게 방바닥에 아무런 꺼리낌없이 내뱉는것이였다. 처음이 아닌 경상적으로 있는 일이지만 남편의 행동이 오늘만은 례사롭지 않고 또 절룩거리던 남편의 뒤모습이 생각나 남편의 발을 들고 양말을 벗겨보니 벌겋게 퉁퉁 붓겨있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있었나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나요?” “괜찮아, 그놈때문에 나 오늘 재수없이...” 남편은 그때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두덜거리였다.  “천천히 말 좀해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옥실이의 다급한 재촉에 남편은 맥없이 점점 흐려져가는 눈으로 옥실이를 보면서 말하였다. “오늘 일은 아파트공사가 마무리된 현장청소였어. 난 비자루로 청소하는 일을 맡았는데 내가 일을 끝내고 담배쉼이라도 좀 하려면 나보다 열살은 어릴 놈이 반장이랍시고 자꾸 일을 시키는거지. 내가 보기에는 교포가 분명한데 자기는 교포가 아니라면서 꼬박꼬박 반말로 시키잖아. 퇴근전에도 내가 일을 끝내고 옷을 털려는데 각목을 마저 날라라고 하지 않겠나. 그걸 나르다 결국은 발을 다친거야. 하, 고놈 분명히 교포인데... 덜되먹고 못돼 먹은 놈이야! 나 래일가면 가만있지 말아야겠어. 같은 교포끼리 좀 살펴주면 어때서... 나쁜 놈, 더러운! ...” 점점 힘없이 말하던 남편은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그자리에 병든 닭처럼 고개를 탈고 누워서 집이 떠나라 요란하게 코를 곯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남편을 바라보는 옥실이는 무더운 삼복철과는 달리 대소한날에 홑옷바람으로 밖에 나선것마냥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남편에게 베개를 가져다 주어야 했지만 좀처럼 움직일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그냥 오늘 저녁 “사리원소반”에서 인사하고 돌아가던 왜소하면서도 강마르던 아저씨의 뒤모습과 방금전 거쿨진 체격에 절룩거리던 남편의 뒤모습이 클로즈업되여 어른거리면서 귀에서는 웅웅 소리까지 났다. 
17    물에 빠져도 정신만은 잃지 말자 댓글:  조회:1769  추천:1  2013-06-03
코리아드림으로부터 이어진 세계로의 진출과 연해도시로의 대거이동으로 우리 조선족사회는 잃은것도 많지만 얻은것도 또한 적지 않다고 봐야 할것이다. 다른건 다 제쳐두고라도 지지리도 가난했던 어제와 시원히 손저어 작별하고 떵떵거리며 살수 있게 되였다. 해외에서 연해도시에서 이를 악물고 갖은 수모를 참아내면서 돈을 모아 제일 처음 생각하는것이 아마 년로하신 부모님과 자식일것이다. 그렇게 피타게 벌어 모인 돈이다보니 짠돌이, 짠순이란 말을 들으면서 웬만해서는 지갑을 열지 않다가도 부모님이나 자식에게만은 주고도 더 주고싶은 마음이다. 하다보니 지금 호주머니에 돈이 떨어지지 않고 소비를 할수 있는 계층이 어쩌면 늙은이들과 아이들이라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것이다. 이런 실제를 엿본 장사치들은 늙은이들과 아이들의 호주머니돈을 후려내려고 갖은 방법과 수단을 아끼지 않고있다. 현실적인 시점에서 늙은이나 아이들이 자식이나 부모님이 피땀으로 번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는 부모자식사이의 감정세계에 자못 중요한 역할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여기서 아이들은 잠간 제쳐두고 늙은이들을 말해보기로 하자. 세상이 점점 살기가 좋아지면서 늙을수록 너나없이 건강하게 살려는 념원을 가지고 자기에게 알맞는 운동을 하고 보건품을 복용하고있는데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수 없다. 가는 세월과 늙음을 어찌 막을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좀은 건강하고 깨끗하게 늙는다면 자신은 물론 집떠나간 자식들이 시름놓을수 있으니 자식들을 위한것도 될것이다. 헌데 문제는 늙은이들이 건강만 념두에 두다보니 잠간 눈이 어두워진다는데 있다.  늙은이들이 호주머니에 돈이 그립지 않고 또 건강을 챙긴다는 심리를 리용하여 장사군들이 침을 흘리고 갖은 방법을 다하고있는 현실을 정시하지 못하고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제 한국인들까지 바다건너 여기까지 와서 무슨 보건약품이요, 심장약이요, 고혈압약이요, 불면증을 치료하는 깔개요 하는 늙은이들이 선호할만한것들을 가지고와서 늙은이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면서 그들의 호주머니 돈을 자기들의 호주머니에 흘러들게 하고있다. 큰음식점의 홀을 세내여 장소로 정하고 처음에는 아주 듣기 좋은 말로 구수하게 일장연설을 늘여놓은다음 한국의 싸구려 치약이나 치솔, 세수비누를 무료로 증송하여 더 많은 늙은이들이 다음날 모여들게 만드는데 그 방법과 수단이 너무도 교묘하여 늙은이들로서는 미혹되지 않을수 없다. 그다음부터 자신들이 가지고온 약품과 물건을 홍보하면서 팔기 시작하는데 그 가격은 몇백원에서 몇천원선까지 실로 만만치 않다. 허나 건강을 념두에 두고 또 구수한 말에 미혹된데다 호주머니에 자식들이 보내준 돈이 두둑한 늙은이들은 아무런 주저도 없이 사들이는데 산 약이나 물건이 효험이 없거나 혹은 효험이 있다할지라도 너무 높은 가격에 산것이 되니 결국 속임수에 든것이 되고말게 된다. 장사군들이 돌아간 후에야 알고나면 말그대로 행차뒤의 나발이요, 뒤늦은 후회라 속만 끙끙 앓게 되는데 건강을 챙기려다 심리적부담으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꼴이 되고 만다. 듣는바에 의하면 어떤 늙은이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부어넣고 사다보니 심리상 타격이 너무나 커서 층집에서 투신자살하기도 하고 또 심장병이 발작하여 불귀의 혼이 되기도 하였다하니 참으로 억이 막히지 않을수 없다. 건강을 챙기는것은 참으로 선견지명이 아닐수 없으며 자식들도 이 사회도 다 두손들어 찬성이다. 허나 일사천리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를 감안한다면 과학적인 정밀검사와 그에 따른 과학적이면서도 합리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것도 무시하지는 말아야할것이다. 단순한 홍보에 미혹되여 사들이는 약과 물건은 결국 건강을 챙기려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된다는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듯 좋은 약이고 좋은 물건이라면 왜 병원이나 약국, 상점에는 없고 그들이 신고스레 두발로 다니면서 그것도 전문 늙은이들만 상대하겠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아마 인차 미혹되지 않을것이며 후회되는 후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것이다. 우리 말 속담에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있으면 산다”, “열번재고 가위질은 한번하라”, “물에 빠져도 정신만 잃지 말라”는 말이 있다. 매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미혹되지 않으면서 옳곧게 일을 대하고 해결해나간다면 실패가 없을것이라는 철리를 깨우쳐주는 말이다.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겪은 늙은이들이니 조금만 신중해진다면 후회하는 일이 없이 자신의 건강을 과학적으로 챙길수 있을것이며 만년을 진정 행복하고 즐겁게 보낼수 있을것이다.
16    이와 입술의 사이 댓글:  조회:2167  추천:1  2013-05-27
한사무실에서 일보는 젊은 동료의 아이가 이번학기 소학교1학년에 입학하였는데 요즘들어 소선대에 가입한 뒤를 이어 소대장까지 되여 팔에 두줄배기를 달고다니니 젊은 동료는 입이 헤벌쭉해서 벙어리 례단받은듯 그저 웃음뿐이다. 매일 하학하고는 넥타이를 팔랑거리며 두줄배기가 달린 팔을 휘젓고 가방멘 어깨를 달싹이며 학교와 가까운 아빠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어설 때면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돌도 귀여워서 다시 한번 더 쳐다보게 되며 어쩌면 젊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아이를 키워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서기도 한다. “아, 그때 리혼하지 않기를 천만 잘했습니다” 사무실에 나와 젊은 동료 두사람만이 조용히 있을 때 젊은 동료가 걸어오는 말이였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난 그 동료를 다시한번 쳐다보면서 시간의 흐름이 사람을 성숙으로 이끄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였다. 몇년전 젊은 동료는 안해와 작은 일로 다투게 되였는데 둘다 젊음의 오기와 자존심으로 서로 구부러들지 않아 작은 일이 점점 크게 번져지게 되였었다. 결국 리혼이라는 막바지까지 닿게 되여 나도 찾아 이야기를 하게 되였다. 부부가 살면서 싸울수도 있는데 절대로 승부를 가르는 싸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것, 서로 한발작씩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금시 풀릴수 있다는것 등으로 내가 걸어온 길과 더불어 이야기를 했으나 그 당시로서는 그들 서로의 귀에 들어갈리가 만무하였다. 당시 그들은 서로 한발작도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으니깐. 하다보니 단위의 령도를 포함하여 모두가 알게 되였으며 거듭되는 조해로 리혼만은 피하게 되였다. 그렇게 리혼을 피하고 차츰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이 다시는 얼굴을 붉히며 싸운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으며 지금은 가방멘 아이를 학교에 함께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좋은 풍경을 만들어가고있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실은 부부란 남남이 인연이 되여 연분을 맺은것이다. 우리 말 속담에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과 같이 그만큼 부부는 일단 갈라서면 완전히 남이 될수도 있지만 때로는 싸우더라도 조금만 양보를 하면 금시 싸웠던가싶게 원래로 돌아갈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보게 된다. 매일과 같이 함께 하는 부부일지라도 한번도 싸우지 않는다는건 현실을 떠난 이야기이며 오히려 싸우지 않는것이 더 정상이 아닌 이상이다. 왜냐하면 서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면 싸울 일이 없을것인즉 그러면 그건 이상이 아니겠는가. 입안의 혀도 씹을 때가 있고 이발이 입술을 씹어놓을 때도 있는데 하물며 감정동물인 남녀가 함께 서로를 관심하면서 살다보면 모순이 생기지 않을수 없다. 그러니 모순속에서 서로의 정이 돈독해지고 두터워진다면 어떨가? 문제는 서로의 위치를 알고 서로 존중해주는것이 아닐가 생각한다. 부부사이를 어쩌면 이와 입술사이같다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이와 입술은 어찌보면 서로 각자의 일만 하면 될것 같지만 서로 없어서는 않되는 존재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려서 어쩔수 없을것이며 이가 없다면 입술이 안으로 오그라들어가서 보기가 흉하게 될것이다. 하기에 이와 입술은 서로 잘 맞추어가고있다. 때로는 이가 부주의로 입술을 씹어놓을 때도 있지만 몸의 그 어디에 난 흉터보다도 재빨리 아물어지며 입술이 초들초들 말라있으면 이는 혀를 재촉하여 입술을 추겨주게 하고  입술은 모든걸 개의치 않고 항상 이에게 바람이 들어갈세라 든든히 막아주고있다. 생을 함께 하려고 언약을 맺었다면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서로가 함께 해야 할것이며 항상 서로를 리해해주고 믿어주면서 보다 넓은 마음으로 포섭해주어야 할것이며 항상 양보할줄도 알아야 할것이다. 또한 서로의 고충과 고통을 함께 해야 할것이며 항상 자신을 바쳐 대방을 위한다면 리혼이란 말은 절대로 쉽게 나오지 않을것이며 부부라는 그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갈것이다. 
15    깨알도 줏기 나름이다 댓글:  조회:2242  추천:1  2013-05-27
어릴때 읽은 동화인데 제목은 기억되지 않으나 매미와 개미의 이야기임은 틀림없으며 내용도 기억에 또렷하다. 매미가 온여름 나무그늘밑에서 노래로 세월을 보낼 때 개미는 작은 먹이일지라도 부지런히 메여날라 굴에 저장하였으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닥쳐오자 매미는 먹을것이 없어 결국 개미네 집을 찾아 먹을것을 동냥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그늘밑에서 목청껏 노래부르는 매미는 작은 몸뚱이로 작은 먹이일지라도 쉬임없이 부지런히 메여나르는 개미를 보고 즐기며 살줄 모른다고 웃었을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개미는 한겨울에 뜨뜻한 집에서 이미 저장한 먹이로 근심걱정없이 보낼수 있었으나 매미는 함박눈을 헤가르며 먹을것을 얻어러 다녀야했으니 동화로서는 너무도 의미심장하고 마음에 닿는다. 우리 집 근처에 대형슈퍼가 있어 간혹 들러보는데 언젠가 돼지고기 정육매대에서 월로임 1200원에 일군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걸어넣고있어 눈에 띄였었다.  썩후에 가보아도 역시 그대로 걸려있기에 물어보았더니 응시자가 없고 있다해도 마땅치 않다고 하는것이였다. 정육매대를 떠다는 나의 발걸음은 자연 무거워졌었다. 작은 현성에서 월로임 1200원이면 너무 적은 돈은 아닐텐데 응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니 나로서는 리해가 가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내가 살고있는 아빠트단지에 거의 다달을 때 보니 기패실(棋牌室)이라고 간판을 건 집안에서 서너팀이 앉아 한창 마작놀이에 열을 올리고있는것이 얼핏 눈에 띄였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서 복도에 들어섰을 때도 마작섞는 소리가 층계복도에까지 요란스럽게 들려왔었다. 그때 어쩌면 동화속의 매미가 다시 떠오르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출국하면 고생하더라도 돈을 빨리 벌고 많이 버는것만은 의심할바 없는 현실이다. 하기에 이미 나가서 많이 벌어온 사람도 있고 또 나가서 벌려는 사람도 있다. 벌어온 사람은 벌어왔다고, 벌러 가려는 사람은 갈때를 기다리느라고 매일과 같이 하는 일이 마작에 혼을 빼앗기고 마작과 씨름하는것이다. 모두가 큰것을 바라고있으며 그 큰것을 바라고 작은것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으며 큰것을 쥐였다고 또 작은것은 성차지 않아하는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큰것을 벌어와도 가만히 앉아서 허문다면 금시 곰이 옥수수를 따는 격이 될것이며 아직 큰것도 벌지 못하고 그걸 바라고 앉아있는 사람은 결국 작은것을 메여나르는 개미를 웃다가 개미한테 동냥을 간 매미의 신세처럼 될것이다. 큰것도 좋지만 작은것도 모아지면 큰것이 되는것은 정해진 도리이다. 그런데 첫눈에 크고작기가 눈에 뜨이게 알려서 사람들은 왕왕 큰것에 눈을 돌리고 작은것은 홀시하거나 아예 눈길도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작은것은 항상 외면을 당하기가 일쑤이다. 모두들 작은것을 주어 모은다면 쉽게 없어지지 않지만 큰것은 빨리 이루어지는만큼 없어지는것도 빠르다는걸 때로는 홀시할 때가 있다. 비록 힘이 들더라도 큰것이 차례지기전까지는 작은것을 주어모은다면 후날 큰것이 차례지지 않는다할지라도 삶의 방법과 지혜를 터득한만큼 두려움이 없을것이며 비록 작은것이라도 주어서 모아놓았기에 걱정은 없을것이다. 큰것이 있다고 곰이 옥수수따기가 되지 말고 작은 것이라고 눈길을 돌리지 않는 매미대신 작은 몸뚱이로 작은 먹이라도 부지런히 메여나르는 개미가 된다면 행복도 이어질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깨알도 부지런히 줏는다면 넘쳐날때가 있음을 명기하자.
14    간판이 얼굴이라면 언어는 생명이다 댓글:  조회:2885  추천:0  2013-05-20
음식점을 꾸리든 회사를 꾸리든 모두가 간판에 무척 신경을 쓰게 된다. 한것은 간판은 이제 곧 시작하게 될 그 업종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특히 봉사항업인 음식점일경우에는 음식점의 맛과 특점을 간판에서 그대로 보여주기위하여 천방백계로 특색을 요구하는데 그 취지는 참으로 좋으며 경영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헌데 문제는 간판의 언어가 너무도 규범화되지 못하여 얼핏 보는 순간 낯이 뜨거워지다가 찌프려지면서 마치 맛갈좋은 음식에 재수없게도 파리가 떨어진 껄끄럼한 기분이 되는건 어쩔수가 없다. 내가 살고있는 이곳도 이 몇년간 음식점을 비롯한 호푸집, 술집들이 하루밤만 자고 나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있다. 일상을 보내다보면 간혹 음식점이나 호푸집으로 드나들 때가 있는데 그때 간판에 우리의 말을 함부로 옮겨 쓴것을 보면 금시 가슴이 무거워나면서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게 된다. 한번은 산보겸 간판도 보려고 시내를 한바퀴 돌게 되였는데 틀린 글들이 많아 말그대로 엉망진창이라면 가장 적절할것 같다. 하여 일부러 업주를 찾아서 글이 틀렸다고 말해주면서 고쳤으면 좋겠다고 덧붙여 말하기까지 하였었는데 업주들은 휘둥그런 눈으로 나의 아래우를 훓어보고는 별 싱거운 사람 다 있다는 식으로 코방귀를 뀌면서 글이야 어떻게 되였든 장사가 잘되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는 휭하니 바람처럼 자리를 뜨는것이였다. 가장 대표적인 례로 소학교 유치원생이라도 알수 있는 “맛좋은 채소, 비빔밥”을 “맞좋은 채소, 비빔밤”으로 “술집”을 “슬집”으로 써서 버젓하게 걸어놓았으니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 아닐수 없다. 그외 한자를 조선어로 번역한것도 역시 틀린것이 적지 않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우리 글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배우기 쉽고 아름다운 글이다. 더우기 우리 말과 우리 글은 하루가 다르게 인기도가 높아져 국내의 많은 대학에서 전문학부를 설치하고 다투어 배우는 열조가 일어나고있는것은 자타가 다 아는 일이다. 헌데 이런 우리의 글을 제마음대로 엮어서 걸어놓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어도 한참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틀린 글을 올린 사람은 몰라서 그랬다치더라도 그런 글이 바뀌여지지 않고 그대로 버젓이 걸려있는것이 문제다. 누구도 거기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참여하지 않는것이 더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될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있는데 실제행동으로 한결같이 지키는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가. 아직까지 이런 상관부서가 없는것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우리의 민족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유관부문과 교섭하여 부끄럽게 씌여져 버젓하게 걸려있는 간판언어의 규범화를 촉구하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업주가 자신의 영업장소에 걸려있는 간판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어는 한민족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의 글을 그렇게 엉터리없이 만들어 놓는다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나 우리의 글을 아는 타민족에게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다듬는데는 리해가 가지만 자신의 생명을 아낄줄 모른다면 리해가 가지 않을것이며 생명인 언어를 금싸락같이 아껴야 민족의 자부심도 높아갈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13    마음을 열면 고마움이 보인다 댓글:  조회:1875  추천:0  2013-05-20
지난주일 어쩌다 휴식일이 차례졌는지라 낚시질을 떠나게 되였는데 정작 떠나려고 보니 오토바이에 기름이 부족하여 결국 먼저 주유소로 향하게 되였다. 주유소에서 바게쯔에 기름을 받아 오토바이에 넣게 되였는데 오토바이의 기름통에는 기름이 거의 차가고있었지만 바게쯔에는 기름이 퍼그나 남게 되여 공연히 기분이 잡치였다. 그때 나이 지숙한 분이 걸어와서 내가 기름넣는걸 바라보고있었다. 흘낏 바라보니 그도 기름을 넣으려고 온 모양인데 저쪽에도 바게쯔가 있건만 하필이면 내가 쓰는 바게쯔를 기다리고있는듯 하였다. 기름이 남게 되여 가뜩이나 기분이 잡쳐있는데 그 남은 기름을 탐내서 온듯 싶어 볼부은 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저쪽에 바게쯔가 있잖아요. 하필이면 이 바게쯔를 기다릴거 있나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넣으세요” 그 사람은 나의 퉁명스런 말에는 상관없이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상냥스럽게 말하면서 더 다가오는것이였다. 그는 나의 오토바이기름통을 들여다보더니 “뒤바퀴가 들려있어 그렇네요”하면서 오토바이의 뒤를 눌러주는것이였다. 그렇게 되자 바게쯔안에 남아있던 기름을 기름통에 깡그리 쏟아넣을수 있었다.  “자, 어서 덮개를 닫아요. 흘러나오지 않게 말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기름통덮개를 다 닫은후에야 누르고있던 오토바이뒤를 천천히 내려놓는것이였다.  나는 바게쯔를 들고 돌아서는 그를 넋놓고 바라보다가 어망결에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였는데 그 순간 얼굴은 화가마같이 화끈거림을 어쩔수 없었으며 그렇듯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그날 낚시질은 참으로 재미가 좋았다. 한창 신나게 낚시에 열을 올리고있는데 핸드폰이 울릴줄이야. 낚시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낚시에 열을 올릴 때 핸드폰이 울리는것도 귀찮은 일이다. 그런대로 핸드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니 참으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일줄이야. 대방은 남방말투였는데 아무개의 가장이 아니냐, 자기는 아무개의 반주임인데 아무개가 오늘 점심에 식당에 식사하러 갔다가 불시로 쇼크하여 넘어가서 병원에 호송한 결과 급성으로 위에 구멍이 났는데 지금 대수술을 해야 하므로 돈이 수요된다는것이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금방 대학공부를 시작하였는데 대수술이라니? 나는 금시 눈앞이 새카매났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좀후에 집에 도착할테니 다시 전화하자고 약속하고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보니 옆에서 낚시질을 하던 20대의 젊은이가  나의 통화를 듣고 어느사이 나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오래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그 젊은이를 넋없이 쳐다보았다. “여보세요. 마음을 갈아앉히십시오. 그말을 그대로 곧이듣지 말구 우선 아들한테 전화를 해보십시오”  젊은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충고를 주면서 지금 너무도 많은 사기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니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하는것이였다. 그 젊은이의 말을 듣고나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급급히 핸드폰을 꺼내 아들에게 전화를 넣게 되였다. 결국 아들은 무탈하게 있었으며 걸려온 전화는 사기전화임이 드러나게 되였다. 나는 그 젊은이가 너무도 고마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에 이르렀었다. 그후에도 사기전화는 련속 걸려오게 되자 그곳에서 낚시하던 낚시군들 모두가 나에게로 다가와서 여차여차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는데 그들 모두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전같으면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원망하겠지만 그날은 나에게 충고와 가르침을 주는 그들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만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있다. 헌데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가 말그대로 쉽지만은 않다. 그 주요한 원인은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가기때문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항상 드바쁜 일상에 쫓기여 살다보면 자기위주가 되고 또 자기위주가 되다보니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때문에 마음을 쉽게 열지 않게 된다. 마음을 연다면 함께 어울리기도 훨씬 쉬워질것이고 또 매일, 매 순간마다 고마움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내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을 때도 조금 남는 기름이 탐나서 다가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좀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혹은 “절 도와줄수 있나요”하는 느긋함을 보여주었다면 그분과의 어울림도 훨씬 윤활해질수 있을것이고 고마움도 훨씬 더 마음에 닿을수 있었을것이다. 사기전화를 받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더니 낚시군들 모두가 다가와서 중구난방으로 하는 말도 너무 고맙게 느껴졌던것이다. 검은 안경을 걸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어둡겠지만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울것이며 고마움이 다가오게 될것이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아래에도 양지와 음지가 있듯이 이 세상 곳곳도 밝지만은 않은것이다. 그렇다하여 항상 검은 안경을 걸고 본다면 마음을 열수가 없을것이지만 맑은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아름다움과 고마음을 마음으로 느끼게 될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여는것이 아닐가. 이제부터라도 항상 마음을 열고 고마움을 느낄뿐만아니라 고마움을 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리치를 깨닫고보니 마음은 즐거움이 한가득 괴여올랐다.
12    고향의 영웅 댓글:  조회:1901  추천:0  2013-05-15
“영웅”이란 단어를 사전에서는 조국이나 사회를 위하여 뛰여난 공을 세운 사람을 일컬어 말한다고 하였은즉 영웅이란 단어는 여러분야에 두루 쓰인다고 할수 있다. 나는 오늘 그 “영웅”이란 단어를 지금 고향을 말없이 굳건히 지켜가고 또 건설해가는이들에게 주고싶어 이 글을 쓴다. 얼마전 흑룡강신문에 녕안시 와룡향 근로촌의 리광진당지부서기가 고향건설에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1만원을 기부하면서 촌민들을 이끌고있다는 기사가 실리였다. 지난해 녕안시 민족종교사무국의 주최로 열린 녕안시조선민족간부사업좌담회때 취재로 참가한적이 있다. 그날 회의에서 리광진당지부서기는 벼합작사경험을 소개하였었는데 촌의 흩어진 토지를 거두어 들이고 통일적으로 관리하면서 규모화, 기계화, 유기농농사를 해나가려고 모지름을 쓰는 그 마음이 회의참가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었다. 그날 회의에서 리광진당지부서기는 고향건설목표와 계획을 내놓으면서 이제 꼭 강서촌을 따라배울뿐만아니라 따라잡겠다고 다지기까지 하여 회의참석자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금년 청명에 고향에 있는 아버지산소에 다녀오면서 고향에 어머니와 녀동생앞으로 있는 땅을 양도하게 되였는데 친구형님의 일에 감동을 먹기까지 하였다. 고향으로 떠나기 며칠전에 전화로 사연을 이야기해놓았더니 고향에 도착하여 십분도 걸리지 않아 친구형의 주선으로 땅을 양도해줄수 있었다. 친구의 형은 촌의 모든 일을 떠맡고 매일과 같이 자기의 오토바이를 타고 향정부로 오르내리면서 촌민들의 일과 촌의 일을 봐주고있다고 한다. 고향이라야 모두 떠나고 이제 정말 오십여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친구의 형마저 관계치않거나 떠나가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그런데 친구의 형 이 하는 한마디말에 나는 사뭇 존경어린 마음으로 그를 다시 쳐다보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든지 한국에 갈수 있지만 다 포기하고 말았어. 이제 나까지 떠나면 이 마을은 누가 관계하겠나? 마지막까지, 모두가 돌아올때까지 지켜보련다” 그 어떤 미사려구도 없는 소박하고도 진실하며 꾸밈없는 말이면서도 또 내 고향을 지키려는 드팀없는 신념도 내비쳐지는 말이다.  고향마을이 비여가는 현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하여 고향마을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에 대해서 리론적으로는 많이들 풀이하고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잘 되여가고있지 않다. 가장 좋기는 귀향객이나 귀농객이 많았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것도 잘 되지 않고있는 현실이고보면 고향을 건설하고 고향을 드팀없이 지켜간다는 자체가 말그대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리광진당지부서기나 나의 친구형같은 분들은 모든 곤난을 박차면서 묵묵히 해나가고있다. 그들이 바라는것은 무엇일가? 오직 하나, 내 고향을 지키고 내 고향을 건설하자는것이며 이제 멀지 않아 꼭 귀향객과 귀농객들이 늘어 그들을 맞이하려는것뿐일것이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간혹 고향을 들려볼수 있지 않는가! 나는 이들에게 영웅칭호를 수여하고 영웅훈장을 드리고싶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고향을 위하여 공을 세우고있는 사람들이며 영웅이란 이름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이런 영웅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고향의 미래 또한 더 밝을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11    따뜻한 품 댓글:  조회:1925  추천:0  2013-05-10
언젠가 미술잡지에서 본 한폭의 그림인데 너무도 인상적이여서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대로 생생히 떠오른다.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품고있는데 어미품에 안긴 병아리들이 어미닭의 날개털사이로 노란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있는 그림인데 따뜻한 엄마의 품에 안긴 병아리들이 너무 좋아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면서 마치도 “삐약, 삐약”거리며 흥얼대고있는것만 같았다. 간혹 이 그림을 떠올릴 때면 지난해 여름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생생히 살아나는건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다. 지난해 여름 한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였는데 외국으로 떠나고 또 체류할 시간도 꽤 되기에 바퀴달린 큼직한 트렁크를 끌고 아빠트문을 나서게 되였다. 그때 마침 한 아빠트에서 사는 할머니가 예닐곱살되는 녀자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고있었다. 한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할머니도 잘 알고 할머니가 손잡고있는 녀자애도 잘 알고있었다. 녀자애는 이제 유치원에 다니고있는데 엄마아빠 모두가 한국으로 가다보니 부모들이 전에 한마을에서 살았던 이 할머니를 믿고 전탁으로 맡겼던것이다. 엄마의 품속에서 응석과 재롱을 부리면서 자라나야 할 어린나이에 생면부지의 집에 더부살이격으로 얹혀 살면서 생면부지의 할머니가 유치원에 데려가고 데려오고있었는데 그날도 유치원으로 데려가려는 중이였다. “어데로 가시나요?” 한 아빠트에서 살다보니 할머니와는 아주 익숙한 사이였는데 바퀴달린 큰 트렁크를 끌고 나서는 나를 보고 조금은 이상한듯 물어왔다. “아, 한국에 연수로 다녀오려구요” 나는 대답하면서 머루알같이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길로 나를 빠끔히 쳐다보는 녀자애가 귀여워 한발 다가서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잘 다녀와요” 할머니는 아빠트를 나와서 갈림길에서 갈라지면서 인사하고는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녀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고맙습니다. 그사이 건강하세요!” 할머니의 고마운 인사에 나도 답례하였다. 그러면서 트렁크를 끌고 둬발작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있는 녀자애가 그때까지도 머리는 나쪽으로 돌리고 그 머루알같이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있었는데 그 눈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나로서도 무어라 형언할수 없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나의 옆자리에는 할머니와 손주로 되여보이는 예닐곱살 됨직한 남자애가 이미 올라와 앉아있었는데 마침 같은 민족이여서 참으로 반가웠다. 어린 남자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다가는 다시 기창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였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였는데 남자애는 할머니의 손주가 아닌 한마을의 애였다. 엄마아빠가 다 한국으로 나가고 이모할머니네 집에서 생활하다가 려행으로 엄마아빠보러 가게 되였는데 마침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게 되여 이렇게 맡게 되였다는것이다. 이제 인천에 도착하면 엄마아빠가 마중나와 있을것이니 거기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면 된다는것이다. 새까만 눈을 깜빡이면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남자아이는 그때뿐 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이면서 “이제 얼마 더 가야 해요?” 하고 물어오기에만 신경을 썼다. 그러는 남자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웬지 그날의 비행기속도가 굉장히 늦지나 않나 의심해보기까지 하였다. 연수중 한국전라북도 전주한옥마을에서 생활체험을 하게 되였는데 한옥마을어귀에서 본 은행나무는 지금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고있다. 백년도 더 되는 은행나무는 어른이 셋이서 팔을 벌려 안을만큼 굵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였다. 헌데 그보다는 그 굵은 은행나무와 한뼘 간격을 두고 팔뚝만큼 실한 은행나무가 자라고있었는데 당지의 가이드말에 의하면 은행나무가 새끼를 낳아 품에 안고 키우고있다는것이다. 두 나무의 친자감정을 해보니 확실하다는것이다. 생물학적연구나 해석은 그만두고 나무의 바로 밑에서 심지도 않은 나무가 자란다는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수 없으며 더우기 품에 안듯이 그렇게 좁은 간격을 두고있다는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에는 너무도 충분하였다. 한옥마을을 떠나기전 나는 다시 그 은행나무를 찾았으며 품에 안겨있는 어린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엄마은행나무를 따라서 무탈하게 백년이고 천년이고 살면서 또 새끼은행나무를 낳아 키우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언젠가 책에서 본 이야기이다. 부주의로 닭들이 사는 헛간에 불이 나게 되였는데 닭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이때 수탉을 비롯한 다른 닭들은 모두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품에 병아리를 품은 암탉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결국 암탉은 까맣게 타죽고 대신 어미닭의 품에 든 노란 병아리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미물인 짐승도 엄마품이 그렇듯 따스하고 좋은데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이 엄마품이기에 동양이든 서양이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인가 본다.
10    재미있는 공부, 신나는 공부 댓글:  조회:1788  추천:1  2013-05-10
일전에 한사무실에 있는 젊은 동료교원이 하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지기까지 하였었다. 이제 겨우 유치원에 다니는 그 동료선생의 아이가 월요일만되면 “왜 월요일은 이렇게 빨리도 찾아옵니까? 월요일이 없고 일요일만 있는 주일은 없답니까?”하고 말한단다. 너무도 천진란만한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심사숙고해보지 않을수 없다. 생각대로라면 월요일아침이 되면 “왜 월요일아침이 이렇게 늦게 찾아옵니까? 일요일이 없는 주일은 없답니까?”라는 말이 나와야 할텐데 말이다. 아이가 그렇게 말한 내심은 즐겁게 뛰논 일요일이 지나간것이 너무도 아쉽고 다시 학교로 가야 할 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기때문이였다. 집에 있는것이 싫어서 학교로 가고파해야 할 대신에 학교가기 싫어 근심하는 아이가 어쩌면 불쌍하고 가엾기까지 하다. 시 중소학생문체예술절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집체무를 련습하게 되였는데 평시에는 오후 자습시간을 점하다가 마지막 총련습때는 별수없이 수업시간도 점하게 되였다. 생각같아서는 학생들이 학습시간을 떼워서 아주 가슴아파할것 같았으나 그것이 아니였다. 뙤약볕아래에서 살갗이 타지만 그래도 집체무련습이 공부하기보다는 더 재미있다는것이였으며 얼굴에서 싫어하는 빛을 조금도 찾아볼수 없었다. 고중3학년을 맡았을때도 보면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있다할지라도 일단 휴식만한다면 학생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웃음꽃이 활짝 피여올랐으며 휴식일이면 교실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는 학생은 정말 말그대로 쌀의 뉘격이였다. 공부가 얼마나 힘겹고 지겨웠으면 학생들이 “고학3년, 행복일생(苦学三年,幸福一生)”이라고까지 써놓고있겠는가! 사실 따져보면 우리의 학생들은 말그대로 교과서와 련습집에 파묻혀서 숨도 바로쉬지 못하고있다면 가장 적절할것이다. 좋든 싫든 아침에 학교로 와서 아침랑독으로부터 시작하여 해넘어갈때까지 줄곧 교과서를 읽고 문제풀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또다시 학교로 달려와서 밤늦게까지 자습에 참가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학교와 숙사(집), 화장실사이의 행동반경이 끝날때였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언제 신문한장 제대로 읽어보거나 읽고싶은 책한권 읽을수가 없으며 뉴스도 시청할 사이가 없다. 조선어문과에서 론설문을 쓰게 되면 읽어본 책이 없기에 사실적론거를 들수가 없으며 거기다 장악한 어휘가 없다보니 글이 깡깡 메말라 읽을 맛이 없다. 소학교도 천진란만한 아이들의 특점을 떠나다보니 실제능력을 운운하기 어렵다. 모두가 학생들을 종일 붙잡고있으니 나혼자만 그러지 않을수 없는 현실이고 또 교수조건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일은 해도해도 싫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어떤 일은 왜 해도해도 싫증이 나면서 하기 싫어지는가? 그건 바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였기때문이며 재미가 없기때문에 해도 신날수 없다. 공부는 정신적활동으로서 재미를 느끼는가 느끼지 못하는가가 자못 중요하다. 일단 재미를 느낀다면 신날것이며 신나면 그 효과도 좋을것이다.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는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주객관에 다 달렸겠지만 배워주는 우리의 교육이 우선 아이들에게 배우기 싶어하고 배울수록 즐거워서 신나는 배움이 되게 해야 할것이다. 계속되는 피로전보다는 효률을 높이기에 더 치우치고 정해진 수업후에는 학생의 실제에 따라 장기를 배양하는데 모를 박는다면 발전도 좋고 효과도 좋을것인바 학생들의 개성배양은 물론 심신도 즐거울것이다. 요즘 진행되고있는 과정개혁의 궁극적인 목적도 학생들이 진정 배움의 주인이 되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리해하기 쉽게 재미나는 공부, 신나는 공부로 만드는것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9    배려는 자기를 잊어야 댓글:  조회:1505  추천:0  2013-05-07
지난 7월중순 어학연수기회가 차례지여 며칠동안 강의를 듣게 되였는데 그때따라 삼복의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라 곤혹을 겪게 되였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강의를 듣는 회의실에 에어콘장치가 잘되여서 강의를 듣는 시간에는 무더위를 피할수 있었다. 매일 아침 점심 시간맞추어 회의실에 들어서면 관리일군이 에어콘을 켜놓고 조절하여놓았기에 서늘한 감을 주어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에어콘의 조절기가 자주 변하여 돌려질줄이야. 강의를 들으려고 밖에서 금방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은 금방 땀을 흘렸으니 에어콘이 작동하고있었지만 큰 감촉이 없는지 들어와서 걸상에 좀 앉았다가는 인차 일어나서 에어콘조절기가 있는데로 가서 다시 자기에게 맞게 조절하는것이였다. 그렇게 좀 지나자 조절한 에어콘은 좀전보다는 더 서늘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좀 일찍 와서 자리잡고있은 미니스카드나 짧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곧바로 에어콘조절기있는데로 가서 다시 조절하는것이였다. 물론 서늘한 감을 줄이려는것이였다. 이렇게 에어콘의 조절기는 하루에도 몇번씩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변해야 하였는데 조절하는데따라 실내의 온도는 오르내리였으며 그렇게 빈번히 오르내리니 사람들의 에어콘적응력도 떨어지게 되였다.  그런 정경을 말없이 지켜보노라니 어쩐지 저도 모르게 나의 낚시친구가 떠오르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언젠가 함께 낚시를 갔는데 그날따라 고기가 잘 물리여 저녁늦게까지 낚시질을 하게 되였다. 낚시를 해본 사람은 거의 알지만 낚시군들 거개가 담배를 피우며 또 낚시를 하면 담배를 더 피우게 된다. 그날은 늦게까지 낚시질을 하다보니 가져간 담배가 다 떨어지게 되였는데 담배인이 올라와 결국 참을래 참을수 없어 친구한테 어색하게 담배청을 들게 되였다. 그때 친구의 담배곽에는 담배가 한대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그 한대뿐인 담배를 나한테 건네주는것이였다. 그때 친구도 담배생각이 간절했겠는데 말이다. 하긴 담배가 몸에 나쁘지만 인이 박혀 담배생각이 간절할 때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담배를 나에게 건넬수 있은것은 친구가 자기를 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회의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들을 때는 관리일군이 여러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또 체감적응력을 고려하여 에어콘을 조절하였을것인데 자기만 생각하고 조절기를 돌리니 실내의 온도는 오르내릴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자기 중심적이였기에 배려라는 말은 하기가 어렵게 되였던것이다. 배려라는 말을 하기 어렵게 되니 조절기는 제멋대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고 또 베풀면서 덕을 쌓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종종 말하군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고있음도 속임없는 현실이라고 할수 있다. 실은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가면 그렇듯 즐거운데 말이다. 헌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자기를 잊지 못하고 본의아닌 본성으로 자기를 내세우기에 배려가 따라가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아주 사소한 작은 일에서일지라도 자기를 잊는다면 남을 먼저 생각할것인즉 그러면 배려나 베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것인즉 그 순간은 스스로가 느끼지 못한다할지라도 타인은 그대를 우러러볼것임은 의심치 않아도 될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자기를 잊는 습관을 가져보자. 그러면 우리의 생활이 더 활력적일것이고 더 즐거울것이다. 나 역시 이제부터 나를 잊고 우선 남을 떠올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여 나름대로 보다 즐거운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임을 이실직고하는 바이다.
8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댓글:  조회:2329  추천:1  2013-05-06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남영선 우리 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뜻인즉 겉모양이 보기 좋으면 그 내용도 충실하다는 말로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겉모양도 보기 좋아야 함을 비겨 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용이 충실할바에야 겉모양도 보기 좋으면 더 좋지 않을가 하는 말로도 해석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는 아침장마당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장마당 한귀퉁이에서 울려오는 우리 말 사구려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발목이 잡혀 끌려가보게 되였다. 가보니 여러가지 김치, 된장, 고추장, 청국장, 김밥 등 우리 민족음식을 벌려놓고 팔고있었는데 순수한 우리 민족이여서 너무도 반갑고 보기가 좋았다. 하여 난 사지도 않으면서 넋을 놓은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게 되였는데 생각보다는 사는 손님이 적어서 저으기 아쉬웠으며 매장을 차린 그들을 대신하여 마음이 아파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매대를 차리고 파는 모습을 보노라니 자연 나로서의 생각이 파고 들었다. 그들은 각종 김치나 장류를 그대로 통에 담아 벌려놓은채로 팔고있었으며 김밥도 그대로 펼쳐놓고있다가 요구하면 팔군하는것이였다. 그러는것이 어쩐지 나의 눈에도  마땅치 않게 안겨왔으며 께름직해났다. 거기다 그들이 입은 옷 역시 평시 입는 옷이여서 사람들의 눈길도 끌지 못하고있을뿐만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되여 인상이 좋지 못하였다. 김치류의 각종 짠지는 물론 장류와 김밥에 이르기까지 알뜰하게 포장하여 판다면 어떨가? 물론 접시에 시식으로 갖가지를 조금씩 담아놓고 손님들로 하여금 맛보게 한다음 포장한것을 판다면 보기도 좋고 위생적이기도 하지 않을가? 옷도 그렇다. 평시 옷보다는 흰가운을 입고 머리에도 흰 위생모를 쓴다음 이쁜 앞치마를 두른다면 볼바에도 정갈해보여 손님들의 눈길을 끌것은 물론 정신상으로도 시원한 느낌을 줄것이며 위생적으로도 합격일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깨끗한 민족이 아닌가! 그렇게 깨끗한 차림으로 우리 민족 음식을 깔끔하게 포장하여 판다면 아마도 잘 팔릴것은 물론 수입도 배로 늘어날것이리라 생각해본다. 그러노라니 한국 TV에서 자주 보아오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의 농산물들도 별다를게 없지만 그들은 어느것 하나 그대로 들고나가서 무더기로 무져놓고 파는것이 아니라 알뜰하게 정선한다음 깔끔하게 포장하여 시장에 내놓는데 얼핏보기만해도 눈길이 가고 저도 모르게 손이 가서 덥석 잡게 될것 같았다. 우리가 늘 접하는 부추 한단, 파 한단도 모두 정성들여 알뜰하게 포장하는 그들이 생각하는것은 무엇일가? 바로 보기 좋아야 팔기도 좋을것이며 사는 사람도 사기가 좋아야 먹기도 좋을것이라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짠지나 장류를 파는 경우는 더 말할것 없다. 그대로 다 펼쳐놓고 판다면 위생적으로도 너무 불결하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장거리여서 병균이 류행되지 않는다고 결단할수 없는만큼 펼쳐놓기보다는 포장한다면 보기가 좋은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위생적이여서 더 좋을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는 먹기위하여 먹는것보다는 따져서 먹는 쪽으로 나가고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음식점의 경우도 음식점의 음식이 맛좋아야 하지만 그 분위기도 따라가야 손님들을 끌수 있음을 이제 우리는 너무 쉽게 알고있다. 음식점 복무원들의 옷에 때가 덕지덕지 가득하고 음식그릇이 이가 떨어지고 음식점의 벽에 파리똥이 가득 게발려있으며 파리가 윙윙 기승을 부린다면 그집 음식이 아무리 맛좋다할지라도 손님들은 기절초풍하여 돌아설것임은 가히 상상해볼수 있다. 반대로 음식점 복무원들이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고 식기도 하얗게 깨끗하며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잘해놓은데다 음식맛도 좋다면 아마도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라도 그집 음식을 먹으려 할것이다. 그러니 내용도 좋아야겠지만 겉모양도 좋아야 할것이다. 내용물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겉모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비위에 거슬린다면 좋은 내용물이 제 빛갈을 발산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러한것이 장사의 노하우란것을 모르는 이가 없지 않겠지만 아무리 작은 장사에일지라도 모두 적용되지 않을가 싶어서 한마디 해보는것인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으며 먹기 좋은 떡일바에야 보기도 좋으면 먹는 기분도 따라서 좋아질것이 아니겠는가!
7    마음이 곬을 이루면 하는 일이 신난다 댓글:  조회:2053  추천:0  2013-04-22
마음이 곬을 이루면 하는 일이 신난다 남영선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건 그만두고라도 전에 현시마다 있던 조선족가무단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에 따라 조선족문화관들의  사업에 많은 애로점들을 가져다준것도 사실이다. 조선족들의 출국붐과 더불어 남방으로의 대거진출로 피페해져가는 농촌은 물론 도시에도 조선족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게 되였는데 이런 현상들을 어느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돌려세우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우리의 조선족문화관들에서 불리한 여건들을 극복하면서 사력을 다해가고있어 참으로 보기 좋았을뿐만아니라 너무나 감동적이였다.  녕안시문화예술센터에 자리한 녕안시조선족문화관을 오전에 찾아가면 흥겨운 가락에 땀벌창이 되여 춤연습하는 장면을 볼수 있는데 이는 바로 녕안시조선족예술단성원들의 하루 일과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것은 이 예술단이 민간단체라는것이다. 애초에 예술단을 발족할 때는 2명의 악단에 몇명밖에 되지 않는 무용수들이였지만 지금은 14명의 악단에 26명의 무용수들로 구성되였으며 악단의 평균년령은 62세이고 무용수들의 평균년령은 60세이다. 지금 무슨 일이든 하자면 경비난으로 몸부림쳐야 함은 누구나 다아는 일이다. 이 예술단 역시 악기와 음향설비 그리고 무용복에 이르기까지 준비하려니 만만치 않았지만 예술단성원들이 한결같이 하나의 마음이 되여 사재를 털어 지금은 비교적 구전하게 갖추게 되였으며 매일 반나절씩 아무런 보수도 요구없이 연습을 하고있다. 얼핏 보면 세상을 놀래우는 큰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자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마음이 통일되니 그것이 곧 행동으로 옮겨지고 서로가 손맞추어 일하니 자못 신나게 된것이다. 이러한 단체는 녕안뿐만 아닌 곳곳에 있는데 노을예술단도 좋고 문학가협회도 좋고 모두가 민간단체로서 자체로 묶어졌으며 한사람이 아닌 회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여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 하나가 되였으니 그 어떤 난관도 모두 뚫고 나갈수 있으며 모두가 사재를 선뜻이 털어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해나가고있으며 불평이란 단어는 잊고 오직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빛내는것밖에 모르고있다. 그러니 비록 민간단체지만 문화예술사업이 차질없이 적극적으로 진행될뿐만아니라 우리의 문화전통도 그 맥을 잃지 않고 전해내려가는데 크게 한몫하고있다. 이런 민간단체들이 용솟음치고 또 민족문화예술발전에 한몫할수 있게 된것은 한 사람이 아닌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마음이 하나가 되고 또 그 하나가 된 마음이 힘이 되여 곧 행동에 옮겨지게 되였으며 신나게 되였던것이다.  한줄기 작은 시내물이 제아무리 돌돌 소리내며 구을러 흘러도 망망대해로 가는 도중에 말라버리고 말것이지만 여러개의 시내물이 모여 하나의 강을 이룬다면 사품치면서 흘러 종당에는 망망대해로 흘러들어갈것이다. 같은 도리로 우리의 민족문화사업을 위하여 한두사람이 발바닥이 닳게 뛰여다니고 비지땀을 흘린다면 노력과 성적의 비례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지만 하나의 조직을 이루어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면 일의 진척도 빠를것이고 그 효과는 더 말치 않아도 알수 있을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뜻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이루며 또 그 조직이 한사람같이 단합되여 마음이 곬을 이루게 하겠는가 하는것인데 취미와 애호도 좋지만 사명감도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일단은 취미와 애호로 시작할수 있지만 사명감이란것을 자각하고 의식한다면 마음은 쉽게 하나로 될수 있을것인바 그러면 모든 일의 진척이 빠를수 있을뿐만아니라 모든 곤난도 무난히 넘길수 있을것이다. 문화대건설을 호소하고있는 오늘이지만 아직도 많은 면에서 여건이 여의롭지 못한바 뜻을 모아 우리의 문화예술사업을 발전시키고 민족문화전통을 이어간다는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 아닐수 없다. 마음이 곬을 이룬다면 하는 일이 신날것인바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어려운 여건들을 이겨나가면서 우리의 민족전통문화를 그대로 계승발전시키는데 한몫한다면 후날 되돌아보아도 자랑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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