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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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디아스포라와 조선족 댓글:  조회:4450  추천:2  2012-05-22
디아스포라와 조선족                                                                                                           김인섭   2012-05-10 요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가 그다지 생소하지 않다.그의 기본 의미는 리산(離散)이지만 지금은 불행한 력사적 원인으로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점차 고착되었다. 최근에는 자기 국가 혹은 공동체를 떠나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외연이 확장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수천 년 동안 받은 박해,류배,축출,도살의 액운은 인류사상 류례가 없다.특히 2차세계 대전 기간에 나치스에게 600만이나 학살 당한 참사는 지금도 사람들을 공포의 나락에 떨어뜨린다.그러나 그들은 그 팔한지옥에서도 민족의 신념과 문화 강산을 철석같이 지키며 세세대대로 분투하여 옛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우는 숙원을 끝내 이룩하였다.    이스라엘은 650만(국내) 인구의 소국이지만 주변 적국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하여 세인을 놀래우고 있으며 세계인구의0.3% 안팍인 나라에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국력을 키워 세계 경쟁에서 늘 불패를 자랑한다. 북미와 유럽에서 금융시장을 떡주무르듯 해대는 그들에게 강대국들도 늘 주억주억할 수 밖에 없다.문자 그대로 가난하고 말끔한 장대촌지(掌大寸地)에서도 세계의 면면에 거센 제어력과 추진력을 뽐내는 데는 유대인의 특유의 문명이 밑거름이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식이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민족의 자부심과 꼭 성공한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한다.민족의 비장한 력사에 대한 숭상과 역경 속에서도 그 전통를 고양하는 유대인의 뒤에는 철상철하의 교육이 뒷받침 되어있다.교육에 대한 국가적 노력과 투자도 세계적 으뜸인 바 줄곧 국가예산의 10%를 웃돌고 있다.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중 35%가 1700만 유대인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교육에 내재한 저력이 얼마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각설하고,유대인의 민족적 자부심.범민족적 대화합, 후대 양성에 대한 집착,타민족과의 조화 등이 이스라엘의 휘황을 이룩시키는 벋팀목이 되었다면 바로 이것이 리산,분화,조합의 미궁에서 갈팡질팡하는 조선족에게 거울로 되지 않을가?   개혁개방의 쾌거와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조선족 사회는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전체적인 발전은 더 말할 것 없지만 인구 이동,인구 격감,공동체 해체,교육 위축,문화 산실,가치관 요동 등 반동 작용이 급물살처럼 뒤를 따라 이 약소 민족이 소실의 직전에 이르렀다는 소리도 부풀부풀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시대적 고민이다.하여 유대인의 양상에서 이 난제를 풀어갈 몇 가닥의 계시라도 받을 수 있을가 싶다.   유대족의 의지와 자신심이 그들의 약진을 부추긴 냅뜰힘이었다면 조선족의 비전과 발전의 좌표는 어디 있을가 넘겨다본다. 중국은 조선족의 영원한 삶터이고 조선족의 천혜의 재산이다.이 땅에서 민족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 조선족의 제일 장점이고 잘 살고 빨리 발전하는 지름길이고 중국과 한민족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광활한 천지이다. 우리가 중한 두 민족의 문화를 꿰찼다는 감점(强點)은 이 땅에서 우수한 민족 구성원으로 되고 세계 한민족의 걸출한 집단이 될 수 있는 충분한 리유가 된다.   결코 장밋빛만이 아닌 거대한 중국의 광명한 미래와 조선반도의 필연적인 발전추세는 조선족에게 무한한 도전의 기회를 안겨 줄 것이다.뿐만이 아니고 한민족과 중국간의 교류에서 누구도 대체가 안되는 천부적 독점지위가 부여되어 있어 숱한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귀영달의 발판을 딛고 있다.이는 우리의 뱃길에 투영된 가시적인 추세로서 조선족의 참된 노력은 민족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적 영예를 따내는 일석삼조의 시너지 효과를 발생할 수 있는 값진 로동이라는 명증이다. 민족지리의 산맥에서 문화민족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영예로운 삶의 고지를 점령하는 탄탄대로임을 조선족은 명기하여야 한다.   교육이 조선족 사회의 계승과 발전의 요충지임을 강조하는 말이다.교육은 이 사회의 존속과 발전의 기본 조건이고 만년 대계이다. 후대에게 민족의 앞날을 제시하고 민족 문화의 가치를 습득시키며 타민족과의 화합,공존의 지혜를 키워주고 역경속에서 사는  처세술을 잘 가르쳐야 한다.가정,사회가 일치로 교육에 핵에너지를 퍼붓는 유대인을 따라 배워야 한다.   마우스의 간단한 클릭으로 의 저애없이 실시간으로 오갈 수 있는 오늘이 디지털 시대이다. 중국 속의 조선족 사회가 7000여만 인구의 의 튼실한 플랫홈이 된다면 무진장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않을까 싶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어도 한결같이 지역의 환경에 걸맞는 민족적 정체성을 이루고 상호 련계의 네트웍을 이루는데 그 범민족적 결속력은 엄청난 부를 창조하고 있다.   는 명구를 상기한다.격변의 소용돌이를 무난히 헤쳐가고 미래의 웅비를 다지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삶속에서 뭔가를 훔쳐서라도 배워야 한다는 절감이 맘속에 서려 있다. (끝)  
43    (수필)석별의 아픔 댓글:  조회:3846  추천:2  2012-04-07
                                                    석별의 아픔                                                       2012-02-29    김인섭   공항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써늘한 한기가 몸통을 감싸며 썰렁한 집안에서 울적한 기분이 부걱부걱 솟아올랐다.   휘영휘영한 가슴속을 갈앉히려 뒤산의 놀이공원으로 올라갔다.바다를 향해 남으로 탁 트인 전경은 예와 같이 변함없을 터인데 보고봐도 안개 속마냥 시뿌옇기만 하다.세차게 쏟아지는 해빛도 서서늘한 등곬을 덥히기엔 역부족이다.어제였다면 텃새들의 반겨맞는 소리도 더없는 축복이었을  것인데 그저 귀찮은 지청구로 들릴 뿐이다.숲속으로 쭉 벋은 산릉선을 따라 터덜터덜 걸으며 오래도록 원생태의 공기를 실컷 마시는데 답답한 가슴은 답답한 그대로다.    이것도 인생에서 맛 보아야만 할 고배란 말인가! 텅 빈 뇌리에서 한가닥의 불평이 야기부리는데 막을 수도 없었다..   이국 땅에서 금방 태난 외손자를 데리고 잠시 함께 있던 딸애가 인젠 됐다고 불불이  동경의 벌이터로 떠난 것이다.딸이 15살 나는 해 나는 기나긴 타향살이에 나섰었다. 이 사이에 간혹 내가 귀성하거나 그들의 방학이면 놀러와 잠간 만나보고 푼돈이나 쥐어 주었을 뿐 다망을 핑계로 단란지락의 분위기를 만들어 본 일이 없고 훈훈한 환담도 나눠본 기억이 없다.그 새에 애는 대학에 진학하고 외국 류학을 선택하여 전전하다가 근간에 신생아의 양육기를 집에 와 보냈는데 고작해야 일년이 안된 일일편시이다.객지에 내 보내고 각거하고 살면서 이번이 17년을 지나고 제일 긴 함께 있은 시간이다. 일생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같이 하는 날들이 얼마일가! 손을 꼽아도 몇 개가 안 꼽힌다.   덧없는 시간이면서 친자식과 외손자를 데리고 천륜지락을 누리던 잔재미란 비길 데 없었다.집에 들어서면 바지가락을 잡고 안으라 졸라대던 외손주 놈의 되알진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놈의 놀소리 여음도 그냥 귀청을 간질인다.   이젠 돐생일이 지났으니 또다시 생계 전쟁에 돌입해야 하는 내 딸이다.애시부터  내 길은 내절로 걷는다고 강퍅을 부리며 자기 나름대로 세운 목표에만 집착하던 모습이 기특하면서 늘 뒷걱정하며 지켜 보았다.그래도 올곧게 잘 자라 감사하기만 하다.인생이란 란마같이 얽히고설킨 형극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초발심을 버리지 말고 신실한 자태로 일상일사를 다잡으며 나간다면….내 딸은 꼭 이렇게 하리라 굳게 믿는다.   요즘, 조용할 때면 늘 딸애의 뒤바라지를 변변히 못한 후회가 맴돌군 하였다.내 일생에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못했다면 이것이 더 없는 유감이다.는 말마디를 들었을 때 수통(羞痛)에  이 가슴이 얼마나 갉혔는지 모른다.   오늘  이국 땅에 등을 밀어 보내는 이 가슴이 또 아팠다. (끝)  
42    불가불언,불가부지야(不可不言,不可不知也.) 댓글:  조회:4181  추천:3  2012-04-02
2012年3月26日 저녁,CCTV 핫이슈담론(焦點訪談) 시간에 백암송(白巖松) 아나운서가 말문을 열었다.   3월 23일 에서 18세 되는 청년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일사삼상(一死三傷)의 참안을 빚었다는 찌르릉한 뉴스였다. 지극한 사소지사로 인명에 칼부림을 들이대어 메체는 가 물론 만민이 우끈하고 불안의 나락에 떨어졌다.한심한 것은 턴센트 홈페지(騰訊網TENCENT)에서 사건의 앙케트 조사로 동 사건에 대해 희비 양자택일의 코너를 만들었는데 참가자 6161명 중 기쁨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4018명인데 자그만치 65%란다.다른 말빠른 친구는 (应该举国欢庆啊!鞭炮响起来!小酒喝起来!音乐开起来!)는 을 올렸는데 36100개의 중에서 하나지만 쾌재를 부르며  맞장단 OK를 친 어른들이 5172명이란다.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생사람이 생벼락을 맞았는데도 고소해 하는 세상이다,한참은 노이로제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 사망자 학교에서 추모회를 여는 동시에 위생부 고관이 범법자를 엄벌하라고 호소했다는 기사가 보이기에 리플란을 번졌더니 3만여개의 리플이 쇄도하였었다. 아닌 게 아니라 거개가 쓴소리고 간혹 반론도 뒤섞이어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데 내용은 대체로 병원이 환자를 볼모로 돈 짜내기에 혈안이고 죽는 사람에게도 약바가지를 가차없이 씌우는데 왜 이건 외면하고 분개한 사람만 그르다는가?는 주문이다. 상상의 극치인 병원 부패부터 징벌하라는 요청권의 행사였다.그 진의를 자세히 음미해 보니 비아냥거려도 죽음에 대한 찬사는 아니고 그것이었다.   병원에 가면 약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터무니없는 돈을 털리우고 가난하면 병원 엄두도 못내는데 의사가 약으로 뒷돈을 챙기고 외과의사는 사례금을 꿀꺽하고 돈이 없으면  짐승 취급을 받는다는 등등, 아무튼 병원의 비리에 대한 소문이 항간의 풍경이 된지 오래다.테레비,신문 지상에서 일부 병원이 검은돈 챙기는 비리를 적발한지 한두 번이 아니다.우선 사실의 진부는 차치하고 참사 앞에서 만민이 이런 악평을 내놓는다는 자체는 누구도 한 번 쯤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가 싶다.장엄한 생명 찬가가 울려야 할 병원이 중인의 안목에 음지로 되었다면 조화사회는 멀어도 한참이다. 슬쩍 넘어 갈 일이 켤코 아니다.   의료 부패는 소수인에게 발생한다고 변명하며 자위(自慰)하는 부류들도 꽤 있었다.진짜 말이 말도 아니었다.론리적 시야비야를 떠나 례를 들어 보자.당신 밥공기의 밥이 10000 알이라 한다면 4999알이 모래라도 소수이다.당신의 소수란 무슨 개념의 소수인가?  그 밥에 모래알이 10개라면 0.001%인 극히 극소수인데 당신은 그 밥을 그냥 먹을 것인가?만약 당신의 육신에 돌을 삭이는 효소가 없다면 완전히 돌밥이라고 와락 쏟아버릴 것이다.이것이 인간사이다.의료 부패를 이 돌밥 원리에 대입해 보라.평가를 내려보라!   물론 동 사건은 의료 분규가 아닌 악성 형사사건인 만큼 범법자의 치죄는 물론이고 야멸찬 랭소를 퍼부운 네티즌들도 시비의 판가름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귀책사유를 당사자의 잘잘못으로만 치부말고 사건 발생의 역사적,사회적 원연과 근인,현상의 내인과 외인 전부를 미시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옮음직 하다. 제도의 미비,공정공평의 이상(異常),인문정신의 부족,사회신임의 결손,빈부격차의 확대,자률정신의 결여,법률의식의 약화,의료분야의 부패 등 다수 요소들이 복합한 결과일 것이다.아까운 생명의 타계,노축암(怒蹴巖) (분한김에 바위를 찬다.) 만용을 부린 유치한 범죄자,몽니부리는 네티즌들의 가시 돋친 말 속에서 우리는 차분히 성찰해야 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가! 이런 철학으로 사건의 종횡을 조감한다면 가해자,피해자와 전민은 나란이 피해자 반렬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보기가 비싸고 어렵다는 난제를 푼다고 외친지도 오래다.의료위생 분야의 주요 모순도 여기에 있다.물론 국가의 대량적인 투입과 정부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병원을 법제화된 민주 감독의 시야에 놓인, 련민과 사랑이 넘치는 천하백성의 성역으로 탈바꿈하고 자격 미달자는 즉시 수시로 몰아내는 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다. 좋은 제도가 있으면 악인도 호인이 될 수 있고 제도가 부실하면 호인도 악인으로 쉽게 변질한다. 생명의 수호천사 앞에서 암만 우직한 울뚝배기도 공격의 예봉만은 움추릴 것이다. 곤봉을 찬 엄엄한 경비원을 잔뜩 늘리고 번뜩이는 감시카메라를 대고 장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참신한 의료체제의 확립, 오직 이것만이 위생사업 발전의 탄탄대로이다.   어느땐가 해맑은 새 제도가 건립된다면 병원은 전민의 성당이 되고 병원직이 숭봉하는 성직이 되고  의사는 하느님의 사자로 추대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민의 갈망이고 력사의 필연이다.세상을 들썽한 이번 사건의 처리가 간단히 범죄자의 치죄로 끝내는 룡두사미식 마무리가 되지 말고 인민병원의 지붕에서 찬란한 인간애 기발이 휘날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끝)
41    일 루 여 망(一缕余望) 댓글:  조회:8350  추천:1  2011-12-23
                                                    김인섭2011-12-16 아침,사무실에 새 달력이 걸려왔다.신구물을 엇바꿔 짚어보니 연말연시가 바로 박두하고 토끼공 신묘년도 달포에 더하면 룡어른의 임신년으로 쳐들어가게 된다.   아! 석화광음(石火光陰) 속에서 또 한 살의 고개티에 오르는구나! 이 시각의 용심은 달력을 봄이 아니라 세월을 개키는 아릿한 마음의 안추름이다.이것은 나이테가 둘러짐을 애석해 하는 동연배들의 고질병일가! 소시적엔 아득히 길던 일 년이 말 그대로 았!하는 사이에 지나 버린다.   사람이 60을 바라보니 세월이란 무지하게 무정해도 그 흐름은 사무치게 가석하다. 나잇수는 자연법 범법으로 되고 사회의 가장자리에 밀려나는가 박두하여 앞뒷 눈치를 챙기느라 제정신이 아닌데다 애들까지 을 선포하고 이국 땅으로 가버리어  외로움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애처로운 모습이 차례지는 숙명이다. 소주 한 병 쯤엔 멀쩡하던 몸통도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울려오는데 내구년한(耐久年限)의 예고가 아닌지도 모르겠다.음식이 잘 안 씹히고 글이 잘 안 보이고 여자가 선거우면 인생도 말로라던 일본 친구의 말을 되새기니 나도 이게 아니냐?고 주새없는 장탄식이 흘러 나온다. 바야흐로의 취급을 당할 신세라 간데족족 망양지탄이다.   인생은 결국는 속마음도 비길 데 없다. 나 같은 범민은 돌려놓고 만민을 타고앉아 이게 내 세상이라!며 고래고함 지르는 통치자들, 너희들 날 봐라!고 억만 재부를 휘두르는 거부들도 결국 생계에 쫓기는 서민들과 오십보백보의 나이대접을 받는 상수(常數)일 것이다. 증년하며 치미는 서운한 감수는 불로를 갈망하는 오상(誤想)이 발원지인데 로약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위인을 본 기억이 없다.인생은 결국은 허무이면서 가지려고 헤매는 건 본성이 아닌가 싶다.   천명을 안다고 지천명이라 부르는데 들고보니 여태껏 뭘 하였나?는 감구지회만 얹혀지는 심통은 왜서일가? 돌아보니 내라는 사람은 기황의 년대에 태여나 기한에 짜들며 자랐고, 10년엔 섬뜩한 공포,절망과 미망속에서 헤매였고, 개혁개방의 긴 나날은 선와 속을 우와좌왕 걸어왔다.액운이란 액운은 혼자 들쓴 기분이다.   가난과 인간 정신을 두고 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나다.거듭되는 세파 속을 아버지가 주신 뼈만 붙잡고 나갔고 애로와 풍파에 부딪쳐도 성무를 다한다는 의지로 앞으로만 나아갔다.다만 여들없는 팔푼이라 지나새나 진로가 경색 만판이고 수확고란 순소득+잡소득하고 봐야 뭇사람들의 일소를 사고는 나머지가 없었다. 걱정하는 곁사람들이 늘 나무랜다. 질둔하고 제노릇을 못한다고…. 가슴이 찔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간혹 친구들과의 술자리라면 나는 잘 살지 못해도 깨끗하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한다.그래도 어느새 인생의 석양에 끌려가니 무성과 인생이란 생각에 자기 주체가 곤란하다.   세상이 록록한 줄 알고 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 두 번 없는 세월을 그렇게도 멋모르고 지내왔다.하여간 엄벙덤벙 기여오른 삶의 길에서 나름대로 인생 요령을 해석하며 산전수전을 거쳐왔는데 모년이 원인인지 조용할 때면 기대→실망→기대가 이어오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심중한 기쁨과 회한이 어기채기 연발한다.   세월이 아쉬워하는 소리다. 지나온 내 행길에서 수많은 친인, 친구들이 성원과 지원을 보냈었다.빈 주머니를 털어가며 도와주던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아버지의 등을 보며 자라는 사랑하는 아이들, 그들에게 추레한 모습을 남긴다면 이 육신은 신진대사→생로병사뿐만인 생물체 종말이라고가 되잖을가고 가슴에 그늘이 진다. 오로지 견마지로의 정성만이 인생의 를 값아가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하다.   나는 무심히이란 어느 교수의 문집에서 글줄을 더듬었다. 적중한 말이다. 내게는 아직 자유의지와 인의지정이 있다. 철의 흐름도 모르고 뛰던 날에 그래도 세상살이의 순수경헝을 다소나마 포개둿고, 사상과 현실을하는 기술도 적이나마 터득했고, 운동과 정지의 변증법도 얼마쯤은 더듬어 보았겠다. 이것을 바탕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로인생(草露人生)의 격파에서 통타의 고전을 겪었으니 이젠 탐욕과 아집의 구각을 벗고 겸양과 포용과 공존의 아량으로 먹으면 영양이 되고 심으면 씨앗이 될 무언가를 가꾸려는 희망이 피어난다.참숯불 같은 서녘의 지평선에 농향형만숙종(濃香型晩熟種) 화원을 가꾸면 어떨가? 여기서 나는 향기도 진한 화향(花香)일텐데… .   
40    <탈조선족>족 댓글:  조회:8589  추천:1  2011-12-19
족   -族            2010-10-29   조선족과 혈맥상통이라도 조선어가 생무지라면 조선족의 문화 인구에서 삭제 처리를 감행하여도 지탄을 받을 소행은 아닐 것으로 생각을 들먹이며 회사의 5명 조선족 직원 중 한 남아의 신세를 해아려 본다.   그는 행실이 점잖고 움직임이 걸싸고 이해심이 좋아 직원들은 최고점 100점 위로 평점하고도 더 가산한다.그의 결점을 집어내려 해도 여직원 포위군들은 물샐틈없는 방어벽을 쌓고 완강한 저항으로 지켜주는 대졸 27세이다.허나 흠절이 자기 언어,문화에 문맹자인 것이다.회사의 대부분 거래처가 한국 업체 혹은 관련 업체인 관계로 업무 매개에 조선어가 절실히 필요하므로 주요 부서에는 조선족이 배치되지만 그만은 제외된다. 그래도 그는 노력파의 끈기를 자랑하는 남아의 천골로서 배가의 노력으로 근무하고 일사불란하게 조선어 공부에도 정진하는 낙천적인 모습이 기특하여 연민의 정에 가슴을 저미기도 한다.   걔의 조선어에 감감한 원인은 썩 간단하다.중국인이면서 한어면 되지 웬 조선말냐! 며 아버지 고집으로 학교가 있으면서도 소학교부터 한족 학교에 보냈다는 옛말인데  약삭빠르게도 84년도에 그 의  발상으로  아이의 일생 향배에  대못을 꽉 박아 놓아다는 역사 기록이다.   이 남아의 하소연을 들어보았다. 가짜가 없는 말이다.   조선족의 문화적 이탈의 주원인은 어디 있을가? 물론 시세에 따른 인구의 대이동,산업구조의 질변,민족 공동체의 위기,인구의 격감 등등도 지적되지만 지리적 불가피성을 제외한다면 급소는 부언낭설(浮言浪說)에 쉬이 휘청대고 열냉반응에 과민한 습관이 뿌리가 아닌가 본다. 가시적인 이득과 임시적 방편책에만 급급한 소탐대실의 근시안적 사고가 이를 꼬드끼는 주적이 아닐가.   한민족을 유태족과 대비하여 운운하는 사람들고 있지만  어림도 없는 유비이다.유태족은 자기의 특유한 선민의식으로 자기의 문화 강산을 철석같이 다지며 나간다.제2차세계대전 시기 총인구 1800만 인구중 나치스에게 600여만이 학살당하고 터전을 잃고 세계의 찬구석을 전전걸식하면서도 민족 문화의 보루를 지켜내며 거듭되는 발전을 이룩하여 오늘은 세계 금융시장을 떡 주무르듯 해대며  힘장수로 버티고 서 있는다.다름 아닌 민족의 문화적 신념이 그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조선족이 이런 강타를 받으면 무슨 모습일가?   이런 현상에 대비한 핵심 대책안을 그려본다.   우선은, 민족의식구조의 재건이다.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숙명에 따라야  하지만  이것이 조선족만에 지어진 유리한 고지이다.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조선반도의 역사적인 발전 추세,생생 발전하는 한민족 경제,중국 대지의 급성장 등 전부가 조선족이 을 가진 청정수역이다.여기의 상등 무기는 조선족의 골수에 묻힌 언어를 기반으로 한 문화이다.우리가 진정 지혜를 결집하여 이 천혜 자원의 개발에 돌관 작업을 벌인다면 우리는 중국의 민족 수림 속에서 우수한 구성원으로 되는 데는 틀림이 있을가!급변하는 시대에 걸맞는 과학적 민족 가치관의 확립이 급선무이다.   다음은, 조선족 공무원들이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고차원에서 민족문화의 홍보와 그 질적 향상을 위하여 분발해야 한다.무한경쟁의 국제무대에서 이들이 중한 두 민족의 문물에 밝은 장점을 슬기롭게 발휘하여 민족사업을 망라한 사업에서 전체 대중의 귀감이 되고 난공불락의 민족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한다.력설의 되풀이만 조선족 공무원들의 타민족과의 공존공영, 민족과 나라의 공동발전을 조화시키는 묘기백출(妙技百出)의 탁월한 지혜가 여지없이 필요한 오늘이다.조선족 공무원들이 사회의 모범이 되고 민족사업의 선봉이 되라!   그담은.교육부대(敎育部隊)이다.교육은 말 그대로 자손만대가 아닌 억대의 막중대사이다.발전중의 대국인 중국에서 민족교육의 발전을 국가의 부축에 의지해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희망은 과만한 욕심일 것이다.력사적 변혁의 엄연한 현실에서  민족교육도 변화의 고비를 재치있게 넘어야  한다.기본은 범민족적 노력으로 최정예 교육 그룹을 조성하는 것이다.가뭄든 교육의 터전에 관개 용수를 거침없이 내뿜는 칠칠한 원예사들에 의해서만 후계 질서가 정연한 민족사회의 재축이 가능하다.교육의   건설에 핵에너지를 퍼부어도 과당하다는 아쉬움은 부질없을 것이다.교육  동아리의 기운차고 찬란한 모습이 조선족의 청사진임이 영락없다. … 족들, 이들은 결코 나무랄 대상이 아닌 시대적 산물이다.류추로 조선족 사회의 재조합과 재번영 역시 역사 발전의 필연이다.이 합법칙성이 조롱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조선족의 오아시스가 중화의 땅우에 드솟는  날  족들이 언제가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추진력으로 민족의 화원에 회귀하리라는 단꿈도 섬광같이 번뜩한다. 
39    독선 절단의 참마검(斩马剑) 댓글:  조회:6222  추천:3  2011-12-14
지난 11월21일부 에서, 오기활 선생의 일문을 보고 제기된 문제들이 현실에서 많이 부각되는 심각한 화제들임을 재확인하였다.독선적인 사고는 독단주의,관료주의로 나타나는데 이 독버섯 같은 사업기풍이 당과 인민의 사업에 끼친 위해는 너무도 크다.특히 고도의 과학성과 계통성을 요구하는 오늘에 민중의 사업을 우격다짐식으로 끌고 가는 이런 행위는 어느때보다 큰 피해를 가져오므로 이 악풍의 근멸은 전례없는 절박성이 호소되고 있다.   오늘 등소평이 1980년8월18일에 발표한 이란  명저를 되읽으며 그 명견만리 사상의 정확성과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등소평은 력사를 회고하면서 고 엄숙히 지적하였다.   등소평은 또 관료주의를 방지하는 제도 건설의 방향에 대하여고 피력하였다. 여기서 등소평은 인민민주가 안정단결이 된 생동활발한 정치 국면을 형성하는 전제임을 력설하였음을 알게 된다.   민주는 독선의 천적이며 그 예방과 치료의 특효약이다.사회 사업이 정상 궤도에서 운행하려면 우선 실행이 가능하고 법적 보증이 있는 민주적인 결책,집행 제도를 건립하고  법적으로 의무화하여야 한다,그리고 이것을 지도자의 자격,직무의 존폐와 직결시키고 위반하면 에누리없이 법적 책임을 져야하는 동시에 권좌에서 떨어지는 사회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인민의 건의,감독,비평,검거,파면 등 법권을 구체화하고 전문 기관은 추호의 구애없이 그 집행을 감독,검사,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사회의 공감을 받는 이런 제도의 건립은 독선 제거의 근본성을 띤 사업이다.   권력의 행사가 투명해야 한다. 대중이 권력 행사의 전반 과정을 완전히 저애없이 알도록 해야 하며 대중의 액세스권(access권-알권리)을 명법화로 보호하고 누가 방애한다면 즉시 위법행위로서의 추궁을 받아야 한다. 이는 또한 부패를 근본으로부터 방지하는 최상의 예방책이다. 햇빛은 최대의 방부제라는 점은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선이다.   2004년 2월 17일에 반포된 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책임자를 당내 감독의 중점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는 바 당외도 역시 마찬가지다.그는 부문의 핵심으로서 그 일거수일투족은 전반 국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 결정적인 역할을 일으킨다.오로지 법제화된 민주제도만이 주요 책임자로 하여금 착오를 적게 범하게 하는 최선책이다.력사의 교훈을 명기하고 지도행위를 법률의 틀에서 규범화시키고 권리,의무,위법,착오에 대해 확실한 계선을 그어야 한다.    여론 매체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시켜 정확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사회에 전달되도록 해야한다.그는 지도자들의 인식을 제고시키고 결책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판단 착오와 시행 착오를 방지하고 권력의 오용,람용을 효과적으로 제지시키는 동시에 대중의 정확한 판단을 유도하게 된다.매체의 합법적인 보도자유 역시 사회의 진보와 공정을 실현하는 필수의 리기이다.   오기활 선생이 제기한 현실 문제와 우리가 지나 온 역사적 교훈을 새겨 보면 등소평의 이 저작은 독단주의,관료주의와 권력부패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사회주의 민주법치 제도를 건설함에 있어서 불후의 지침이 될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2011-12-08                                                                   
38    도시의 고차압증(高車壓症) 댓글:  조회:4596  추천:0  2011-11-30
도시의 고차압증(高車壓症)                                                                              2011-11-19  대련에서 일을 보려면 대부분 운전하거나 뻐스, 택시를 리용하게 되는데 요즘은 날로 더 심해 지는 교통경색에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급한 일로 나가야 될 때면 조급한데도 교통체증으로 어쩔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고혈압증 비슷한 증세가 일어난다. 평일이면 에누리없이 3번 닥치는 교통 침체인데 차속(車速)은 문자그대로 무릎걸음이고 혹시 도로에서 사고라도 생기면 꼼짝 못하고 의 맛을 톡톡히 봐야 한다. 교통두절로 비행기 시간을 잃는다는 딱한 사정, 시보판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샐러리맨들. 생계 걱정에 앞이 새까만 사람들이 되풀어대는 푸념도 야멸차다. 그냥 이러면 어떻게 사느냐구…! 굼벵이를 비웃던 사람이 되려 우스울 지경이다. 골목골목 인행도는 차들이 차지하고 사람이 되려 행차로를 걷는 진풍경이다. 어디라 없는 불법주차, 경찰들은 뜬금없이 들이닥쳐 벌금고지서를 끊으면 차주인들은 도대체 그럼 어디다 어떻게 세워야는가며 분노를 분출한다. 그래도 법조문을 들이대면 쪽도 못쓰고 벌과금을 바친다. 상용되는 택시 타기도 헐찮은 일이다. 한참 기다려 행선지를 알려주면 못간다는 리유를 주워대며 내뻬는 계산 빠른 약보들도 늘어난다. 알고 보니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란다. 언제부턴가 정차 대기면 요금이 가산되는데 시간, 비용이 동반상승하여 늘 바가지를 쓴 맹랑한 기분이다. 택시의 면모가 도시교통의 투영인 것 같다. 정부가 진력하는 모습도 대견하다. 경찰의 증원이 력연하고 매스컴이 교통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며 애면글면하는 모습도 돋보인다. 도로확장, 지하철, 도로교, 터널, 도시 전철 등 신축 공사들의 규모도 해마다 수위를 높혀간다. 허나 그 효과는 무지한 증차에 상쇄되고 심해지는 가속도만 그대로이다. 길이 막혀 일어나는 사회관리의 부담과 부존자원,배출된 가스의 대기환경에 대한 역작용과 흘러버린 시간적、물리적 랑비는 계산치는 계산할 필요도 없다. 교통체증이란 현대병은 인민의 안락이란 최고의 리익을 위하여 꼭 치워야 할 걸림돌이다. 아니라면 앉은뱅이 로 돼버린다. 아름다운 대련이 교통으로 미모에 먹물이 뛰고 있다. 교통혼잡, 주차장 부족, 불법주차, 교통사고, 대기오염, 에너지 혼란 등이 으로 인한 에다 에 걸린 것이다. 하여 병명을 본따 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둔다. 인프라 증축에 기를 올리는 장면이 눈에 띄게 많아 지지만 이로서 교통체증을 푼다면 너무도 단순하다. 지금은 계획생차(计划生车),계획양차(计划养车)를 병행한 과학적 인도와 이성적 제한이 발본적인 대책인지 싶다. 이리하여 대중 교통을 주체로, 택시차 리용을 권려(勸勵)로, 자전거타기를 제창으로 하는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흑백시비가 많은 공무차와 자가차는 그의 구매、사용과 에너지、환경、사회 수요간에서 조화되는 림계점을 부단히 찾아 재치있게 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진정 서민의 생활에 편리한 교통 도구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길도 교통 혼잡이 날로 심하지만 도로 모습의 개선도 체감한다. 그래도 우리는 타지역을 타산지석으로 차량 관리를 질적인 삶을 향한 미래지향적 법제의 궤도에 올려야 한다. 틀리면 고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버리고 정책의 출범전에 반드시 력사에 책임지는 입장에서 민주적,철학적,론리적인 분석을 거치고 공정하고 투명한 과학적 론증을 해야 한다. 남의 비만에 매료되지 말고 허우대 것치장은 삼가하고 후대와 민생과 발전을 위해 시책을 펴야한다. 길위의 차들이 거침없이 흐르고 대중 뻐스가 정시간 발착하고 자전거 위의 시민들이 맑은 공기 속을 유유히 달릴 때, 이것이 강산풍월 속의 모범자치주 참모습이라면 기쁘겠다.  
37    한민족의 렬근성? 댓글:  조회:4415  추천:4  2011-11-13
한민족의 렬근성?  김인섭 2011-11-06 세간에 나가면 한민족들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흠절을 지칭하여 어느어느 것은 민족 렬근성의 발로라고 망평하는 의론조를 자주 듣는다. 민족의 특성에 대하여 타고난 형질인 듯이 선입견으로 긍정판단을 허투루 내뱉는 새 까먹은 소리다.경모(輕侮)적이고 자조적이고 민족성에 대한 축소해석 속내가 담겨있는데다 론리마저 어설퍼 숙시숙비(孰是孰非)에 단안(斷案)을 내려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몇 번 생각했다.   렬근성이란 타고난 근성이 나쁘다거나 혹은 악습의 뿌리가 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물론 위의 경우 엄격한 의미를 떠나 몇몇 사례를 일반화하여 격하게 발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례하면 냄비근성이라는 빨리빨리,집안싸움으로 표현되는 내분(內紛),즉효성만 노리는 근시안적 작태 등등을 구설수에 싣고부리는 장면들이다.허나 어떤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 력사와 사회적 요인을 당연히 우선시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부터 보면 그 설법이 사람 사이의 가름막을 만들며 지어는 음모의 여부까지 의심시키는 악음악으로 들린다.   사람의 사회적 존재 즉 그 시대의 생산방식이 사람의 의식을 결정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존속하는 그 시대의 생활유습(生活遺習)을 쳐들고 그것이 민족의 유전자인양 꺽죽거리며 인습화된 탈선적 언행의 근원이 객관요인과 무관한 주관성에만 있는 듯이 본말을 전도하는 중생들이 확실히 적지 아니하다. 간단히 말하면 편협한 사고로서 인간 공동체의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성향을 이 민족에만 존재하는 듯 폄하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민족성의 여하는 고도의 복합적인 사회적 결론이어야  할 명제인데도 데등대등 방담(放談)하니 속으론 늘 반박이 저절로나갔다.   나라와 민족의 명암이 헷갈리고 구명도생에 분주하던 시대,기근과 생명의 위협이 수시로 덥치던 풍찬로숙의 나날에 정처없는 우리 선조들에겐 땔거리를 쉽게 주어 음식을 빨리 익히고 식히는 냄비가 절대 긴요한 취사도구였다.그는 암울하던 나날에 생존투쟁의 위대한 무기였고 한많은 한민족 생활상의 축소판이고 민족의 꿋꿋한 자생력의 물증이기도 하다.     기나긴 나날, 우리 민족은 국제정치의 분쟁에 말려들어 땅이 찢기고,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강제이주를 당하고,하여간 나락속을 쩔쩔매며 범민족적 단합을 시도할 틈도 새도 없었다.목을 옥죄는 근근득생(僅僅得生)의 세월에 애처로운 선인들은 행방없이 뒤쫓기는 세파속에서 성찰과 속도 조절은 말말고 죽재도 죽을 겨를마저 없었다.그야말로 고난의 험산을 넘어 아득한 감탕길 만리를 걸어왔다. 시급한 초미의 기아에 시달려 멀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파란만장의 거친 파도속에서 조상들의 빨리빨리 해내려는 사명감, 위험을 탈출하는 순발력,후대를 위한 불타는 념원이 오늘 한민족 사회를 이뤄놓은 밑거름인지 싶다.이것이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우근성(優根性)이었다.이 어기찬 정신에 매달려 오늘날 우리 삶의 터전이 이뤄지고 보신처가 세워진 것이다.   허지만 어떠한 성약(聖藥)도 약독이 따르 듯 그 특수한 노력으로 거둔 성과에 따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졸부(猝富)근성,속도지상주의,결과지상주의,불화와 각축의 빈출(頻出),근시안적 사업성이 그 단적인 표현이다. 과거 시대에 반상적이던 현상이 지금에는 한민족의 이미지 추락과 더불어 민족 대발전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은 전지구가 세계화로 나가는 신시대이다.  여시구진(與時俱進)의 가치전환을 정갈하게 실현해야 할 급선무가 우리에게 성화를 댄다. 소위 렬근성이라 부르는 물건짝들이 그 때엔 피할 수 없었다면 일취월장하는 오늘은 급열보다 오랜 숙성을, 반목과 질시보다 범민족 대화합을,오늘만이 아닌 장구한 발전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빨리빨리해야 할, 기성세대들이 완수해야 할 무한 책임이다.여기서 는 옛말이 독약이 된다.빠를수록 좋다.   에피소드라면,정의와 진리의 규명에 당연히 필요한 론쟁도 내분으로 몰아부치는 입살이 센 소리도 수두룩히 들린다는 말이다. 민족의 의로운 기질도 쩍하면 병집이라 몰아치며 정당한 요구를 막으려 훌뚝질하는 무리들도 있다. 자유토의는 한민족의 발전에서 필수(必須)이고 필수(必需)라고 언성을 높여 언명하기 싶다.       한민족은 평화와 발전, 단합과 상쟁의 파도 위에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과업은 태산같고 나갈 길 역시 가파른 구곡양장이다.그래도 민족을 경멸하는 이 정의를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층샛돌이 되고 민족화합을 실현하는 시금석이 되었으면하는 바램이 이 길손의 속말이다.                                                                                   
36    조선족의 적응부전(适应不全) 댓글:  조회:3924  추천:2  2011-10-28
일전, 연길에 갔다가 조선족들이 타민족 학교에 많이 간다는 사실이 풍문보다 심한 참담한 현실을 보며 격세지감 때문에 얼마간 허우적거렸다. 원래 출산률이 낮아 교육이 심한 진통을 겪는데다 학생원이 다량 류실되여 후대 양성이 난행고행(难行苦行)이란다. 자민족 문화의 의식적 리탈로 봐야 하는 희한한 분화 현상을 두고 원인 규명으로 잠간이나마 머리를 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조선족 사회에는 천지지변이 일어났으며 오늘 역시 변화의 진행형이다. 경제의 장성, 사회의 선변(善变), 부의 축적은 물론 사회 전체도 괄목하는 발전을 이룩하였다. 허나 인구의 격감, 공동체의 요동, 정체성의 혼란 등등 부수적 부작용도 동반하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출생률의 비정상 하강으로 학생원이 급감하고 학교수도 일소(日少)의 일로를 걷고있다는것이다. 전통적 교육체제의 동탕(动荡)으로 그 마당이 그야말로 만목황량이라는 문자 그대로다. 이는 신구 체제의 교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겠지만 지켜보는 시선들은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공직자들과 교원, 지성인들은 여전히 많은 우수한 인재들을 육성하는 가시적 성과를 냄으로써 민족의 영광방(荣光榜)에 이채를 띠우고있다. 호요방(胡耀邦) 전주석의 휘호(揮毫)대로 민족인재를 힘써 배양하는 쾌거를 일궈내는 그 모습이 실로 가상하다. 맹랑하게도 국가의 민족인재 수요와 자기의 발전우세를 내치고 시대와 역행하는 민족어포기의 선택을 민족민 상당수가 감행하니 미상불 유감이 남는다. 중한 두 민족 문화를 몸에 지닌 조선족에 있어서 중국과 조선반도간의 상호협력, 장길도개방전략의 실시.7000만 한민족의 글로벌 네트웤 이것은 누구도 대체 못하는 다락같은 플랫폼이다. 게다가 정부의 방침으로 쌍어(双语)교육의 전략을 실시하는 오늘인데도 고유어를 내버리니 골수에 박힌 겨례문화를 차단하는 우행일뿐 미행(美行)일수 없다. 빈곤탈출에 로심하던 때의 고착관념으로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고 눈앞의 리익에 집착하면서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침착성을 잃는 것이 조선족 일부의 슬픈 현실이다. 발전하는 중국이기에 민족어공부에 정진해야 마땅한데 이런 가치혼돈이 자식의 민족문화원의 출입을 봉쇄하는 성급한 행동을 유발하는 기폭제인지 싶다. 한 개 문화 값의 시세는 간단한 가격법칙으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그냥 외면하는 무분별한 처사가 백출(百出)하는 원인이 무엇인가는 반성이 누구나 필요되는 요즘이다. 우주관광도 꿈꾸는 시대인데 문화가치의 보존이 얼마마한 가치확장을 가져오는가는 선견지명도 갖춰야 한다. 쌍어를 겸비하는 항선으로 방향타를 돌려야 마땅하다는 동어반복이다. 불연즉(不然卽) 민족사회에서 도태된다. 민족어의 류의적 포기는 민족문화와 민족성의 포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현상을 《물경천택, 적자생존(物竟天择,适者生存)》이란 다위니즘의 생존경쟁원리에 대입해 잣대질에 저울질 해도 도태라는 내적인 리유는 발견하지 못한다. 선배들이 남긴 물질문화적 기초, 나라의 방침정책, 국가발전의 수요, 민족집거 인문환경, 이 활무대라면 넉넉한 발전의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 아니겠는가! 소견이 짧다는 아쉬움이 있다. 실로 민족어가 무용이라면 잠꼬대이고 두개 언어의 장악이 어렵다면 군소리다. 해서 오늘 로출되는 민족어 리탈은 이슬로 사라진다는 도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적응이상(適應異常)으로 유발된 적응부전(適應不全)이란 《진단서》를 떼고 싶다. 우리는 조선족교육력사의 이 한고비를 슬기롭게 넘기 위해 근대의 어렵던 나날에 첩첩한 형극(荊棘)을 헤쳐오던 력사정신을 되살려 꼭 해야 한다는 사명감, 꼭 할수 있다는 신념, 꼭 해나간다는 강인한 의지로 후대교육의 전당을 《민족명품생산》의 궤도에 끌어넣어야 한다. 위하여서는 우리의 기성세대(교육사업자,교원)와 갑남을녀들이 민족적리념을 업그레이드(승화)하는 사업이 최우선 과제로 되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의 리념 1.발전좌표 중국 발전의 선두에 선 문명한 집단으로, 세계의 모범적 지구인으로, 중국과 이국 본민족 간의 교류에서의 걸출한 사자(使者)로 되여야 한다. 2.생존철학 시대를 따르면서 창조성을 잃지 않고 조류에 따르면서 와중에 말리지 않고 리성적이면서 유연성을 잃지 않는 기지를 갖춰야 한다. 3.가치관 우리 문화를 중국 실제에 맞게 개화 발전시키며 중화민족의 우수한 민족구성원으로, 범민족중의 뛰여난 군체로서 사회무대의 전면(前面)에 서는것이다. 4.이미지 창조성과 홍익인간(弘益人间) 정신이 넘치는 중한 두 민족문화에 정통한 례의가 밝고 포용력이 큰 민족이여야 한다. 슬로건은 거창해도 민족교육은 여전히 혹한의 시련기에 있다. 허나 주천(周天)에 따라 소만왕림(扫万枉临)하는 화창한 봄날이 오면 거칠던 터전에서 오곡백과가 다시 무르익을 것임이 틀림없다.
35    초 춘 서 회 (初春敍懷) 댓글:  조회:4533  추천:1  2011-10-14
초 춘 서 회 (初春敍懷)                                                                                                                 김인섭2011-02-19 지겹던 동빙한설의 여한이 폼을 잡고 떨뜨리는데 어느새 대동강이 풀리고 봄바람이 살랑거린다는 우수 절기를 맞았다.   오래만에 숲속을 거닐어보니 동한의 잔해는 아직도 서성대며 햇살을 내쏘며 무찔러 오는 봄의 습격에도 무겁하게 버티고 있음을 실감했다. 나무 밑의 적설은 엄한이 방불한 한기를 내뿜으며 스치는 마파람을 가차없이 내쳐버린다.청각과 촉각을 동시에 살려봐야 환절의 파열음은 깜깜무소식이다.전세월이라면 나무숲 사이로 새어내리는 일색(日色)에 산설이 녹아내리는 낌새도 확연하였으련만 가뜩 우줄거리는 동장군의 후예는 주천(周天)을 따라 어김없이 찾아온 봄철을 기탄없이 릉멸하며 만물을 숫제 잠재우려는 거친 강세를 자랑한다.   겨울은 열을 올리던 지난날들을 잠재우고 지나온 절기마다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대(四大)※의 새 발진과 새 생명의 수태고지(受胎告知)를 암시하는 호시절이다. 우리 선조들은 겨울을 풍년을 기원하는 시제(時祭)의 한 계절로, 송구영신의 뜻깊은 계절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대를 이어 내려왔다. 그는 무정하고 잔인한 듯하지만 계계※의 세서천역(歲序遷易)※에서 봄과 언제나 손잡고 돌고도는 친절한 이웃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동삼은 왜 봄에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을까? 흥분으로 맞아야 할 봄의 문턱에 동심(冬心)이 똬리를 틀고 미동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기상 이변이다.   지난 겨울 사람들의 흉벽은 자연의 지독한 충격에 어룩더룩 얼룩져 있었을 것이다. 남북 반구에서 엇갈아 번져지는 폭설,폭한,폭우,폭서에다 수재,한재,산사태가 엎친 데 덮치는데 터졌다 하면 급살탕 같은 비보였다.수선스러운 재해 보도의 거개는 사상 극치를 갱신했다는 천재지변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은 삶의 터전을 잃는 태재태재(殆哉殆哉)※한 나락의 변두리에 이르렀다는 명증이다   지구촌의 어디서나 지난 삼동은 세기적 엄동이라 꺽죽거리는데다 어떤 괴짜 무리들은 인류의 종말이라고 비양대며 입을 삐죽거린다. 천칙(天則)을 꿰뚫었다하는 가라성급 거물들도 가지가지 주견을 피력하고 있지만 기후의 변화로 인간이 생존 극점에 이른다는 다급한 비명만은 한결같다.냉철이 묵상해야 할 적신호임을 명지하게 된다.   인간계를 보라면 감은 눈을 뜨기도 송구스럽다.저쪽 동네들에선 오싹하는  테러와 학살이 자행되고 무력 분쟁과 침공으로 피비린 도살이 그치지 않는다.이쪽에서는 탐욕에 찌든 인간들이 서로 더 가지고 남의 위에 군림하여 젠체하기 위하여 전쟁이 방불한 살인적 경쟁을 벌려가는데 거기서 파생하는 추태,요태는 입 하나를 가지고는 말도 못한다.집값의 폭등으로 이게 웬일이냐 구설이 무성하고, 병고로 몸부림 치는 친인을 보며 돈이 없어 가슴피를 흘리는 양민이 욱실거리고, 생필품,식품에다 뭐뭐가 값이 뛰어 만백성이 못살겠다 고함치는데 함량미달의 공직자들이 권세를 빌어 남의 금품을 천만대도 아닌 억대로 꿀꺽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린다.   살펴보니 이런 데퉁바리의 작태가 결과적으로 지구를 겁탈하고 온실가스를 내뱉는 경합으로 엎어지어 이 대행성을 인간 불가생존의 열도가니로 만드는 비참한 결과로 이어진다.이 떨떠름한 현실이 바로 현재 진행형이다.   허영,허세,허욕을 채우기 위한 인간들이 부정과 비리도 서슴없이 감행하여 천혜의 땅과 공기를 마구 찟고 더럽히고 휘정거려 놓고있다. 겉보기에 말짱한 갑남을녀들은 기탄없이 이 땅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엄청난 페기、페수、페물을 종작없이 토설해내고도 오존층을 뿌시거뿔어※ 놓는다. 바로 그들이 잘살기란 이유를 주워대며을 부르는를 대기에 살포한 원인으로 인간은 자업자득의 자멸을 불러온다고 세간이 왁자지껄하는 게 오늘이다.양극의 빙하가 용화에 가속이 붙어 바야흐로 칠성판에 오르는데도 자연 섭리의 본궤도로 핸들을 꺽는 사회 동향은 별로 안 보인다. 점령과 점유를 목표로 아득바득하는 다인수들은 유아독존의 근성을 팽개치고 차분한 금시작비(今是昨非)의 자아성찰이 있어야만 연명이나 된다는 현인들의 입찬소리에 귀를 활 열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심드렁한 겨울의 꼬리를 밟고 있어도 춘심(春心)은 나더러 바깥 세상을 여겨보게 한다.   내 사는 집 뒤는 정정한 나무들이 우거진 물매 낮은 산인데 그 허리엔 커다란 놀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양달진 비탈의 밋밋한 자리는 뒷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삼면을 나무숲이 푹 싸놓은, 바다를 향해 탁 트인 명당이다. 거기다 지역은 북온대의 대륙성,계절풍성,해양성이 더불어진 곳이라 눈비만 없으면 첫새벽부터 늦저녁까지 노니는 주민들로 가득차 활기 넘치는 명소기도 하다.   오늘도 숲속의 찬기운은 맵짜지만 뭇까치들이 대기속을 설치면서 허둥대는 모습이 유별나게 돋보인다.짝지은 쌍쌍들이 나무가지를 물어나르며 둥지의 신축,개축,보수공사에 전념하는 모습이 실로 앙증스럽다.이 텃새들이 새 생명의 산식(産殖)을 준비하고 있음을 단박 알아차렸다.앙상한 가지에 걸려진 그 까치집은 우리 눈에야 엉성한 수지(樹枝) 뭉치겠지만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후대를 낳아 기를 성전일 것이 분명하다. 자유롭게 날아예는 이 애물들이 적막한 수림속을 약동하는 유원지로 되게 하는 푸근한 봄기운을 영글리어 가고있다.   머지 않아 이 산금들이할 때면 대지의 소생을 알리는 파란 풀싹이 앞다퉈 올라오고 나무들도 선록색을 올리며 새순을 틔울 것이다. 천신지기(天神地祇)※가 창천을 쫘악 펼치면 태양신도 예와 같이 따사한 양광을 내리쏟아 우수가 깃든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기를 띄워주고 내일의 꿈을 그리도록 변죽 칠 것이다.도처의 인간 집단들은 봄날의 조건반사로 또 한 차례의 작위, 부작위의 맹세를 내리며 라침판 조절에 북새질을 할 것이다.   다만 수런거리는 이 봄을 보며 자기 탯자리에 불지르는 인간의 자학행위가 되풀이 안되는가는 기우같은 수심만을 떨칠 수 없다. 인류는 공존공영의 이념으로 비좁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글로벌리즘[globalism]의 댐을 쌓고 지구촌을 지켜야만 하는 위급존망지추에 서있다.무한경쟁,적자생존의 괴리만을 떠벌이는 구태의연한 양상이라면 새봄은 인간이 자멸의 화염지옥에 들어서는 초읽기로 될게 아닐가?   올해의 봄이 진정 자연과 사회의 조화가 이뤄지는, 지구를 살리는 봄이라면 좋겠다.   주석: 1. 태재태재[殆哉殆哉]:명사- 아주 몹시 위태로움. 2. 뿌시거뿔다: 완전히 파괴하다. 3. 천신지기[天神地祇]: 명사-하늘의 신과 땅의 신 4. 세서천역[歲序遷易] : 세월의 차례가 옮겨져 바뀜. 5. 계계[繼繼]: 차례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 모양. 6.금시작비[今是昨非]: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을 이제야 비 로소 깨닫게 되었음을 이르는 말. 7.사대[四大]:≪불교≫ 세상 만물을 이루는 땅·물·불·바람의 네 요소.     
34    귀성후 후미(厚味)와 후미(后味) 댓글:  조회:4014  추천:1  2011-10-14
일전, 어느 수상식 참가차 고향인 연길로 갔다. 시간이 빡빡하여 호텔에 들자 바로 옷주름을 펴려고 세탁소를 찾았다. 주인은 40대로 보이는 한족 녀성이였는데 약 20분 들여 반듯하게 다려내는 로련한 직업인이였다. 품삯을 물었더니 5원이란다. 너무 헐값이라 내가 되려 무안하여 10원을 반억지로 건네 주었다. 아주머니는 감사말을 되풀며 묻지 않는 말로 연변경제는 조선족들의 해외진출과 대외적 활약이 없다면 뒤죽박죽일 것이란다. 자기 고객도 대부분 조선족들인데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매출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며 반색을 내보인다. 사업전망도 밝아 연변에서의 앉은 장사가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고 감격을 토한다. 고향에 내리자 타민족간의 끈끈한 금란지계(金蘭之契) 뉴대가 피부에 와 닿았다. 가식없는 진솔한 페부지언으로 받아들이며 심기도 꽤 훈훈하였다. 모범자치주라는 영예는 실로 여러 민족의 공동번영을 바탕으로 한 튼튼한 국기(國基)우에서 실덕으로 따온 계관이리라! 이 아줌마의 소박한 몇마디가 바로 연변의 민족경제발전과 민족단결의 축도였음을 실감하였고 민족간의 후의(厚誼)는 사회발전과 더불어 시민사회에 더 깊이 뿌리박을것이라는 심증을 굳히였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주덕해를 위시한 우리의 선배들과 수천수만의 지성인들이 당의 령도와 민족구역자치법과 민족정책에 힘입어 끈질긴 노력으로 연변을 건설하고 우리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 바로 이 기반이 있었기에 조선족은 시류에 초승(超乘)하는 쾌거로 탄탄한 안거락업을 이룩할수 있었다. 연변의 건설을 위해 로심초사하던 창도자들에게 숙연히 머리가 내려진다. 불필재언(不必再言)으로 이 민족의 터전과 문화적 보루가 있었기에 조선족은 개혁개방의 선두에서 자기의 발전상을 세상에 과시하고 민족단결의 모범으로 자리매김을 한것이다. 그런데, 저녁의 연회석 간담에서 한가지 얘기가 귀구멍을 비집고 들어 귀청을 쌀쌀하게 만들었다. 인구의 급감으로 조선족교육이 고전을 치르는데다 조선족애들이 소학교부터(지어 유치원부터) 대량 한족학교에 진학하여 민족교육은 설상가상의 고생바가지를 쓰고있다는 실화다. 주요 리유라면 사는 땅이 중국이니 조선어는 별로여서 한어만 잘하면 족하다는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환경의 미비로 민족교육의 기회를 잃는다면 부득이한 상황이겠으나 빠짐없는 인문적 여건에서 조선족교육을 포기한다면 문자그대로 민족의 본바탕을 버리는것이다.중국의 신속한 발전과 급속한 성장, 조선반도의 력사적 변화, 전지구적 세계화의 물결, 7000만 한민족의 글로벌 네트웍, 이것은 조선족에게 차례진 무한한 자원이다. 언어를 위시한 조선족 문화와 생리별한대도 권리행위일 것은 당연하지만 가 가능한 멋진 와 결별하는 우행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싶다. 인구의 급감으로 미구에 조선족 인재의 수요가 급증한다는 판단도 무성한데 언어포기를 감행하는것이다. 조선족은 자신의 천부적인 문화로도 넉넉히 남의 존중을 받으며 잘 살수 있는 충족조건이 있는데 말이다. 적어도 발빠르게 발전하는 우리 나라의 시대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조선어를 더욱 잘 배워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면 틀림이 없다. 조선족은 새로운 안목에서 자신의 높낮이를 가늠해야고 력사의 흐름을 따른다는 여사구진(與世俱進)의 지혜로 자기 발전의 좌표를 다잡아야 한다.중국조선족문화를 단순한 민족의 생존과 발전이란 협애한 테두리에서 벗어나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중화민족의 수림속에서 우수한 민족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양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어진다. 부모들이 후대더러 자기 민족문화를 내치게 하는 분별없는 행위에 리해를 보낼수 없다. 친구들과 이 말거리를 집어내였더니 몇몇은 조선족은 원래 이런 역발상에 유명하다고 두덜렁거리며 한심하다는 탄사(嘆辭)를 련거퍼 내쏜다. 정적(靜的)만 보고 동적(動的)은 못보고 산마루만 보고 산너머는 못보는, 근시안적인 왜냄비적 성격이 확실히 우리 민족의 렬근성이 아닐가하는 생각이 눌러눌러도 자꾸 솟아 올랐다. 적어도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塞翁之馬)란 필연성을 념두에 둬야하고 자식의 미래에 여러갈래 선택의 립지를 마련해주는것도 부모로서의 사명이 아닐가하는 안타까움도 돋아난다. 하물며 우리 민족의 문화는 그 개화성과 대중성으로 세인들에게서 일진일신(一進一新)으로 평가절상을 받는 오늘이다. 애자지정에서 우러나는 무아애겠지만 쉽사리도 천부적인 문화토양과 분리시키는 거친 결단이 애들의 돌이킬수 없는 후회로 남는다면 이 은 어찌 할것인가! 일각에선 조선족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맞각에선 민족리탈에 신경을 도사리니 단맛과 쓴맛의 운니지차(雲泥之差)가 원인인가, 고향행에서 받은 호인상과 악인상이 머리서 맴돌며 떠오르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수 없다.  
33    술상에서 족(族)을 잃는 조선족 댓글:  조회:4911  추천:2  2011-09-26
술상에서 족(族)을 잃는 조선족                                                       김인섭     2011-06-14 애시적 내 동네는 한족 마을과 이웃하였었는데 두 민족 생활습성 차이에서 도두보이는 것이 술습관이었다.아무튼 음주의 차수,명목,수량이 한족들보다 많은 것은 물론술뒤의 행태도 환하게 게저분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민족의 특성으로까지 여론화되는 판국이다.이 경관도 현재 변화를 보이나 결과적으로 구습을 벗어나기는 고사하고 더 저속한 역방향으로 나가는 양상이고 술놀이에 민족이 망한다는 가슴소리도 높아가는 현실이다.   술은 원초로부터 노동후의 긴장을 풀어주고 노이로제를 완화하고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 외 대인관계를 돈독히 하는 촉매로서 사회성 생활의 호물(好物)로 상승작용을 하여 왔다. 적량의 술은 신체에 유리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휴머니즘을 돋우는 뉴대로 되어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조성(助成)하며 물질,문화적 재부를 창조하는 동력에도 가세하게 된다. 허나 도를 넘으면 인체에 손상주고 대뇌피질의 흥분 억제의 밸런스를 박살내어 심각한 건강문제와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는데 오늘 조선족의 술은 이런 부식제로 일변하여 민족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한결같은 구설이 분분하다.   조선족은 술을 모르면 인맥이 소원해 진다며 차수가 많고 과음하고 강권하는 것도 당연시하며 돈독한 인연을 위해선 얼큰해도 무방하다는 사고가 깊숙히 박혀있다. 아무튼 취중의 웬만한 잘잘못도 술을 탓하며 푼더분한 관용을 보인다.  허나 오늘은 부재차한(不在此限)의 지경에 이르렀다. 먹고 마시고 농땡이를 친다는 이메지는 항간의 구문인데 가장 심각한 화두는술에 잠식되어 리지를 잃고 시간을 잃는 와중에서 자기의 사회적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조선족 집거지인 연변에서 그의 음주 행태와 기막힌 부산물을 본다.   일자리가 책상 머리라는 사람들은 출근해 일을 좀 보다10시가 넘으면 술자리를 만들고는 다시 딴판을 벌리는 건 거의 묵시적인 생활이 되었는데 적은 수도 아닌 상당수이다.사무는 본다 쳐도 그 마인드로 하면 얼마하랴는 지레짐작이 간다.사무실 부재의 원인을 물으면 그럴사한 이유를 주워대는데 곁에서 열심이 일하는 사람들이 되려 무안할 정도이다.   술좌석 명목도 파다하다.명절,경조사는 제외하고 고향 사람, 한집안 사람, 동창생, 동갑, 전우모임에다 네 생일 내생일 등등이 연방 술좌석으로 이어지는데 하루가 멀다이다. 하도 많으니 인젠 다수가 질색이면서 무작정으로 끌려다니는 양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로 양반 의식이 팽배한 문화 습속이 원인인가?! 드러내기 좋아하고 체면치례에 자상한 의식 구조와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는 성격,왜냄비식 근성의 외적 표현이 술놀이인 듯 싶다.   연변에서 접대를 그뜩 받고도 질탕한 음주행이였다고 볼멘소리를 치며 연변 사람들은 가짜도 조짜도 아닌 진짜 술김치라고 욕보이며 너스레를 떨던 한 외국인의 넋두리가 귀에서 쟁쟁하다.귀가 따가왔지만 멀퉁하게 보면서 주억주억하기만 했다.대접하는 사람들도 정성을 들이며 지쳤을 것이지만 돈을 팔고 시간을 깨고 몸을 까고 욕을 사는 것이다. 별법(別法)이 없을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인이 모인 전당(殿堂)도 가찹은 양상인데 한 학자는 내가 연변에 있었더라면 그 많은 공부를 했을 리가 만무하다고 부수지소[膚受之愬]를 되풀이한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학자들이 다수 있을 테지만…   술과 관련된 부조돈도 엄청나다. 월급이2,000∼3,000원인데 매번 적어도100∼200원이고 좀 가까우면500∼1,000원인데 이틀 바쁘게 이어지는 술행사에 돈을 디밀어야 한다.북경의 한 학자는 80년대부터 30여년간 낸 부조가 단51원이라는데 체면을 지키는 데는 지장이 없었단다.만약 연길이었다면 한 달에 두 번쯤 참가해도800여번인데 적어도 소주400근은 마셨고, 부조12여만 원은 냈고, 1600여 시간은 허비했을 것인데 흐린 정신에 랑비된 시간은 더구나 아스라하게 많았을 거란다.조선족들이 무엇을 하였을가는 회의가 늘 맴돈다. 해야하고 피치 못할 상황도 많겠지만 연변의 풍토는 한계선을 훌쩍 넘은지 한참 된다.   이런 악재가 지속된다면 조선족이 곤난하다는 말밖에 없다. 객지에서 들어보면 사람들이 연변으로 가기 싫어하는데는 여러가지 여건 부족도 탓이겠으나 술놀이를 위시한 사회 분위기에 생을 망친다는 공동어가 있다.연변의 술바람은 돈이 독이 되고 금석이 석돌이 되는 큰 소지이기 때문이다.연변의 악브랜드라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 흉상이 바로 우리들 사회에서 만연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약소민족이 근대의 가난과 억압이란 기나긴 생사경에서 헤갈며 서로간 괴로운 마음을 달래느라 술접촉이 많은 것이 다음(多飮)의 주원인일 것으로 판단한다.그것이 또 구연세월(苟延歲月)중 생활화, 풍속화, 문화화로 고착되었으리라 어루더듬는다. 오늘은 올곧은 가치관을 확립하기 앞서 부유한 환경과 맞닥드리니 갈팡질팡하며 먹어댄다는 곧이듣기는 바깥소문이 수풀처럼 무성하다.   그러나 력사는 자기 흐름대로 쉬지 않는다. 급속한 사회변화가 조선족을 어느 민족보다 빠르게 진화시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마땅하다. 이 시류에 동승하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된다는 철리를 풀어보래도 어렵지 않다.    해외로, 도시로의 대거 진출로 민족공동체의 공동화와 해체, 학교의 폐쇄, 정체성의 요동, 교육체계의 붕괴, 문화영토의 상실, 출산인구의 기하급수적 감소 등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조선족 사회는 존재와 해체라는 딜레마에 푹 빠지었다.그런데도 음주로 인한 돈까기,시간낭비.건강부식,사업지체,가정불온 등 기형괴상이  산적하기만 한다.여기의 급소는 생활의 정도(正道),지혜,의지,신념,기치관이 걸레쪽 같이 내팽개쳐지고 멋지던 문화적 인간형이 굴왕신같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라태와 허망에 뒤따르는 과소비,과사치,과유흥 등등이야말로 조선족을 장식하는 허화한 거품양으로 번뜩거리는 경색이다.   이 다급한 죽살이 기로에서 술문화 개변은 민족의 존망에 직결되는 상당한 무게를 가진다는 확론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고쳐야만 하는 민습(民習)인 것이다.상처를 도려내는 극통을 감내하면서 병소(病巢)를 긁던지 자르던지 퇴치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어이해야 할고!   우선, 조선족 공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거룩한 권력을 넘겨받고 인민의 혈세를 받아쓰는 공복들이 자기의 권리,의무,영예와 량심으로 틀어진 술문화를 개조하는 진두에 서야 지당하다. 하물며 간부들이 술먹기에 앞장서고 공짜술을 먹어대며 관혼상제를 차리면 떼돈을 번다고 술렁거리는 세태인데 이것은 결코 간과하여야 할 공뜬 랑설(浪說)이 아니므로 당신들이 솔선하여 적게 마시고, 적게 차리고, 적게 참가해야 한다.한 사회 현상의 개조는 옳바른 정책적,가치적 지향이 있어야 할 뿐만아니라 모델이 될 본보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해야 하고 잘 해야 할 분들이 옥대(玉帶)를 띤 민복(民僕)들이다.이런 호소(呼訴)를 말실수라 꼬집는다면 쉬운 반박이 절대 가능하다.   다음, 지성인들이 문명한 음주 문화의 정립을 위한 보루를 다져가야 한다.이건 한순간의 돌관작업이 아니고 긴 나날을 수요하는 체계적인 역사(役事)이다.지성 사회가 민족문화의 오아시스로 되고 인텔리겐치아들이 매스컴에서의 견인차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이다.    그담, 교육이다.금지옥엽들의 영혼을 키우는 학교에서 도덕 교육의 일환으로 건전한 술문화의 주입에 진력해야 한다. 교사들이 조선족 특색의 새 문화화원의 가꾸기에 정진한다면 이야말로 민족 발전의 백년대계라고 역설하고 싶어진다.   본일, 이 땅의 술상에서 내 민족의 얼굴에다 얼까지 사라진다고 근심천만하여 골방에서 긍긍거리며 끙끙거린다.만약, 어디서 웬눔이 엉큼한 험담을 퍼붓느냐!며 멱살을 잡혀  드잡이를 당한다면고 강변을 부리며 봉변을 모면하려 한다.   
32    집괭이 순치(馴致)가 주는 고지(告知) 댓글:  조회:4318  추천:4  2011-09-20
 기업들이 사원에게 교육을 진행하면서란 등소평의 명구를 인용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었다. 허나 여기에 내포된 유물사관적 원리를 왜곡하고 부조리를 막론하고 돈벌이만이라는 속물주의적 인식을 주입하는 경우도 많이 비친다. 이러한 저차원의 부정경쟁 의식으로 회사원들의 준법정신을 흐리우고  도덕관념을 희석시키며 심지어 범법의 줄타기도 묵시하거나 사주하는 경우도 빈발하는 현실이다.결과로는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타인의 불신을 야기시켜 참담한 역효과를 거두거나 지어는  회사가 거덜나는 결과로 마무리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보아왔다.    탈시대적인 유치한 발상이고 시류에 대한 불감증이라 진단해도 과분하지 않을 같다. 자기의 충욕(充慾)에만 급급하고 사회와 타인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견리망의(見利忘義)의 비행도 감행하도록 넌지시 변죽을 쳐주는 방임행위라는 것이다.직설한다면 생물적 욕망의 여과없는 발로이고,부정 축재로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야기하고, 조급증으로 미래를 말아먹는 자신방매 우행이외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생활에서 인간의 감각기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고양이 본능 중의 하나가 쥐잡인데 기타 본성과 외적인 필요조건을 무시하고 쥐잡이만 바란다면 그건 오로지 허황한 과욕일 뿐이다. 여러가지 욕구가 동시적으로 꿈틀거리는게 동물의 공통성이다. 현실속의 고양이를 고찰해 본다면 결코 임의대로 안 되는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고양이를 선택할 때 색갈,체격 등 천부적인 요소가 우선시 되나 쥐잡이가 당연히 주목적이다(애완이 아니라면). 허나 명기해야 할 요주의 점은 그들이 비록 쥐잡이 유전자를 지니지만 그 기능의 호불호는 특정된 예외를 제외하고는 주요하게 생활 환경의 조성, 습관성의 순치(馴致)와 일상적 감호(監護)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것이다.   고양이에게 있어서 쥐잡이는 그의 생계에서 비차막가(非此莫可)의 원천일 때 그 충동이 일어난다.먹이를 너무 잘 주거나 많이 주면 입맛이 바뀌어 쥐잡이는 한낱 소일에 불과하고 지어 쥐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고양이에게는 집 병아리를 잡고 다락의 생선도 훔쳐먹는 본성도 가지고 있다.만약 대비책이 설피면 쥐를 잡으려다 쌀독을 깨는 소탐대실 격이 되고 만다.     모든 고양이는 집안의 먹을 것이 발견되면 언제나 날름거리며 훔칠 기회를 노리면서 쥐잡이를 외면한다.  는 속담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탁월한 쥐잡이 고양이도 지킴이가 허술하다면 도둑으로 변질할 개연성이 거의100%이다. 약삭빠른 만큼 도둑질도 멋스럽게 해 재낀다.   타고난 좋은 고양이란 따로 없으며 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좋은 고양이이다.제멋대로 방치하거나 선택,길들이기,사육 관리 등 어디에서도 차질이 생기면 다 나쁜 고양이로 된다.건전한 환경과 필요한 관리가 늘 뒤따라야만 진정 쥐잡이 능수가 될 수 있다.   고양이에 사람을 견주어 론한다면 류비가 안 될 교량이지만 엄연한 객관사실이라면 인간도 천성적으로 생물적인 욕구를 가진 동물이라는 이 점이다. 매 인간은 모두가 공동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성원이다. 만약 이들이 사회적 속성의 이성적인 작용과 제약에서 해탈된다면 본능이 능동적 관념의 지배하에서 우세를 차지하게 되는데 자칫하면 사회를 해치고 타인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가 나타나게 되고 심지어 무염지욕(無厭之慾)을 부리거나 동물적 야성을 훨씬 능가하는 잔학성을 부리게 된다.   기업이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함은 당연하지만 이를 위하여라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분한 욕망을 눌러버리고 상부상조하고 공공적 리익을 엄수하는 인성화된 윈-윈의 정신으로 노동의 대가를 취득함을 권려해야 마땅하다. 바로 인성속에 숨어 있는 정의,선량,자비지심을 최대한으로 발양하도록 인도하고 격려해야만 회사가 진정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사회에서 입지가 굳어진다.   한개 조직이라면 반드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로 메카니즘을 잘 장치하여 매사람의 행동을 규범화하고 생활을 윤리화 해야지 수단의 가부는 분별이 없이 재부의 점유만을 선양하는 것은 자체의 조직을 부식하는 잠재 위기가 되고 만다. 돈벌이만!이라는 론리대로 류추한다면 결국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식의, 공리와 질서를 무시하는 가치관의 주입인데 이는 조만간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심중한 재난의 불씨라고도 봐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한결같이 사리사욕과 사회규범이란 모순 속에서 공과 사,준수와 위배,욕구과 억제의 양면적 성격을 지니게 되므로 자율의 이전에 강제적인 법율이 선행하고 비행을 저지르면 징계를 받고 심중한 대가를 치른다는 현실적 위협과 사회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이 앞서야 한다.이래야 옳바른 길을 선택하고 상애상조와 겸양의 자태로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의 유자격자로 될 수가 있다. 이점은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시종 금과옥조로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이념적 스타트라인으로 삼고 사원들을 교육하고 감독하고 편달해야 한다. 감성적인 물욕만을 채우기에 황급한 조직체에서 인재가 육성된다면 한낱 오상일 따름이지 되려 호인도 악인으로 전화하게 된다.   집괭이 순치에서 끌어낸 분석으로 기업내 인력관리의 한 개 단면을 유추한 비론이 회사와 조직의 관리에서 어떤 플러스되는 계시로도 되지 않을가 싶다. 2011-07-29                                                                          
31    고소-고연소의 악순환 (高燒-高燃燒의 惡循環) 댓글:  조회:4129  추천:1  2011-08-24
20여일간 음습다우하던 날이 개이자 아침의 하늘은  한가을인양 거뜬 들리고 시원한 하늬바람이 온몸을 쓸며 지나간다.침침하고 무덥던 나날이 돌연히 건드러운 맑은 날씨로 일변하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야릇한 감흥이 피어나고 타분하던 가슴도 확 풀리어 하루 일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른다.   정반되게,저녁에 버릇처럼 보는 CCTV의 뉴스에서는 사천과 중경의 어디가 8월초부터 37℃ 이상의 날씨가 지속되는데 최근은 40℃를 넘어서고 중경시 어디는 43.5℃로 올라가 기상 기록을 쇄신했다는 귓맛이 얼얼한 멧세지가 튕겨나왔다.승용차 안에 놓은 닭알이 익어 번진단다.거기다 남방의 여러 지역들도 37℃이상의 고열에 시달리며 식물이 빠싹 마르고 음료수와 가축의 물 때문에 고역을 치른다는 부연 뉴스를 달아 놓았다.오싹해 나더니 무엇인가 와 소리를 내 목으로 내보냈다.   1982년 8월 항주에 일 보러 갔다 상해에 들럿을 때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 일정에는 이틀 묵을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높은 습도에 대낮 온도가 34℃인데다 밤의 온도 역시 29~30도란다. 낮은 그런대로 찬물을 들이켜고 두툼한 땀수건으로 씻으며 움직거리면 되는데 밤이 되어 선풍기 밖에 없는 방에서  잠을 청하려니 땀구멍이 제어 기능을 완전 상실하여 구슬땀이 줄쳐 내리는데 견디는 별수가 없었다. 내 죽는다고 허겁지겁 야밤에 급탈출 하던 기억이 삼삼 거린다.그 혹서의 시련에 질겁하여 여름철 상해라면 아릿한 여겁이 지금도 맴돌이 친다.건데 43.5℃라! 사람이 그 속에서 산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살림집들은 일제히 에아컨을 돌려대고 대중서비스 업체들과 모든 고층 빌딩들이 찬바람 불어넣기에 숨가쁘다.생산 업체들은 전기 부족으로 애간장을 태운다.일거에 전기 사용량이 대량 증가되는 것이다.전력회사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최대의 마력을 풀어 화력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한편 초부하 송전을 이기지 못하는 시설들의 미비로 연달아 되는 화재,설비 손상의 주의보도 내린다.등한하면 방치같은 욕설과 비평이 쏟아질 건 당연하다.   일각에서는 황소 영각을 켜는 소리도 은은히 들려 온다. 석탄 업자들은 돈 되는 호기라며 죽어라고 파내어 값을 올리며 돈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에아컨 메이커와 판매업자들은 돈벌이 호황이라 즐거운 비명을 질러댄다. 피서 제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목돈에 혈안이 된 장사치들은 고가 전략의 머리를 초고속으로 굴려댄다.죽어라고 석탄을 태운다는 반증이다.   인간들이 잘 사는 전제인 석탄, 석유의 소비는 해마다 가파른 상승선을 타고 있다.그가 뿜어놓은 가스는 대기 온도를 급속도로 밀어올리고 그 대책으로  만중이 역시 시름없이 광물 연료의 연소를 되풀이 하는 게 오늘의 사회 생활이다. 이 불가재생 자원량이 급한 내리받이에 떨어져 소진 한계가 불원하다는 아우성도 높아만 진다.   게거드랑,그 앞날이 어디까지일꼬?  인간이 가진 외계온도의 감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 아둔한 머리로선 알 길이 없으나 오래잖다는 소리만에도 앞이 막연하다.집안을 식히려고,덥히려고, 더 잘 살려고 지구를 달궈 놓는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는 몰라도 가소롭다는 이외는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고소-고연소의 악성적인 순환이다.   최근에 소말리아를 위시한 동아프리카의 세기적 대가물을 맞아 발생한 저참한 광경이 우리와도 멀지만 않은 같다. 극심한 기아로 품속에서 뛰놀던 귀여운  아기의  삶의 끈을 빼앗기고 전률하는 어머니들의 생생한 장면을 보며 이것이 누가 지어낸 걸작인가를 사람들은 차분히 반성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량산하여 지구의 온난을 불러온 반대급부로 폭한,폭서,폭우,폭설,폭풍,구풍,태풍,우박,불가물 같은 푸짐한 을 받고 있는 게 오늘 지구촌의 주인들이다.인류는 자연의 조물주에게 멱살을 단단히 잡혀 있다.무력분쟁,종교분쟁,테러보다 더 무서운 기후재앙이 바로 앞에 보이는 제일의 인류 재난이다.   생산력이 미증유로 발전하여 전대미문으로 잘 살아간다고 사람들은 와그르르 하는데 화석 연료의 연소가 전대미문의 증가 일로인(지구 온도의 상승을 동반하여…) 이 자가당착적 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한 개 나라가 아닌 전 지구인이 일제히 궐기해야 될 일일 것만 틀림없다. 내 후손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앞이 아리까리할 뿐이다. 2011-08-20
30    묘론 찬평(猫論 讚評) 댓글:  조회:5185  추천:6  2011-08-13
묘론 찬평(猫論 讚評)                                                              2011-07-20 최근 인터네트에서 등소평의 백묘흑묘론(白猫黑猫論)을 곡해하고 폄하하는 글들이 오른 것을 보고 거부감을 떨칠 수 없었다. 주요하게 심각한 빈부격차,만연하는 부패악상과 도덕심의 하락,상대적 행복감의 저하 등등 현상을 백묘흑묘론에 원인을 귀착시키면서 개혁개방의 성과를  축소해석하는 것이다.   반대로 묘론의 본의를 왜곡하고 그의 실질과 의의에 대해 뒤틀린 평결을 내리는 유상(謬想)이 일그러진 사회의식과 그릇된 정책의 근원으로 되어 오늘 사회에 만연되는 반사회적, 반시대적인 탐오,회뢰,자원낭비,환경파괴,민생민권의 침해 등등의 부산물을 양산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온 일인로서 력사의 진실을 피력하는 것이 서로간의 인식을 소통시키고 바른 사상을 가지는데 유조하다고 생각하였다.   백묘흑묘론의 유래   지난 세기 50년대 말-60년대 초, 중국은 제도적으로 고착된 탈현실적인 리상주의 리념과 관료주의적 관리 방식에 의해 경제는 엄중한 침체되었었는데 특히 농업 생산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농촌에서는 여러가지 채산 형식이 유행되었어도 특히 가정도급식의 방식이 인기가 높고 유력시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최고 지도층 내부에서는 큰 시비거리여서 다부분 맴버들은 입조심 말조심하며 회피책을 대는 형국이었다.   바로 그때의 1962년7월7일, 등소평은 공청단중앙제3기7중전회의 대표들을 회견할 때 농업생산책임제의 가부 선택에 대하여 대답하면서 어느 것이 그 지방에서 생산을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곧 좋은 형식이다.만약 군중이 그것을 수요한다면 곧 채택하고 비합적인 것을 합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그리고 혁명 전우인 류백승의 란 경구로 형상적인  설명을 가하였다.이것이 저명한 백묘흑묘론의 유래이다.   말의 진의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생산 발전을 저애하는 구식을 개변하고 경제 수준과 군중의 요구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여  생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특정된 의미었다. 오늘 보면 그지없이 간단한 말마디도 당시에는 해직당하고 정쟁의 몽둥이 세례를 겪을 각오가 없으면 조련히 던지지 못하는 험언(險言)이었다. 등소평은 감히 내뿜었다. 세계는 등소평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후의 정치 풍파, 특히 (1966년)가운데서 등소평의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사업 풍격은 정치적으로 이단시되어 강서성의 어느 시골의 공장에서 류형 생활을 하게 된다.등용되어 복직한 후 등소평은 붕괴의 변두리에 이른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자기의 이념을 되살리어 최대의 노력으로 가능한 한도내에서 혼란을 정돈하는 용단을 내리었다.하여 재차 정면 공박을 받았는데 최고 지도자까지 백묘흑묘론이란 례화(例話)로 들고 그에게  비판을 가한데다 정치 궁노수들의 밀집한 화살 강공을 받고 또 자리에서 쫓겨나고 전국적인 비판을 받는 원죄를 들쓰는 불우의 변을 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이 거셀수록 등소평은 철석간장의 호남아로 득명되고 군계일학의 실재론자로서 더더욱 유명해졌고 민심은 일거에 등소평에게 쏠리었고 세계는 중국의 운명을 등소평의 부침과 연계시키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때부터 백묘흑묘론은 그의 사상의 대명사로 되기 시작하였다.   白猫黑猫설이 론에로의 전환   문화혁명의 종식으로 중국은 새 시대에 진입하였다.그러나 장시기를 거쳐 형성된 경직된 사고방식과 그 정책의 뿌리는 너무도 깊었다.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기로에 이르렀다.   이 관두에 등소평을 대표로 한 개혁의 주력들은 라는 테마의 이론적 대토론을 전국적 범위에서 벌리었다.이는 당시의으로 표현된 개인 숭배를 종말 짓고 미신을 타파하고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사상로선을 확립하는 전민적 사상의 일대 력사적 전환이었다. 위대한 사상해방운동이라 불리는 이 의식형태의 혁명은  1978년 12월에 열린 중공11기3차전회를 위해 리론적,사상적 기초를 다짐으로서 중국공산당은 력사의 항선을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한 개혁 개방에로 돌리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 회의에서 등소평이 선포한 개혁개방의 선언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보면 중국공산당의 탄생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을 이은 후 중국의 천재를 개벽하는 하나의 위대한 력사적 사변으로 평가된다.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목표가 확실시 되는 때 중국의 정치,사상 분야에는 재차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하는 사상 혼돈이 발생하고 이데올로기의 론쟁이 다시 벌어졌다.   1992년초,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간결하고 결정적으로 론단을 내리었다. 계획 혹은 시장의 다소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를 정성하는 구별점이 아니다.어느 것이 정확한가 하는 판단 표준은 그것이 사회주의 생산력의 발전에 유리한가,사회주의적 국가의 종합적 실력을 제고하는 데 유리한가,인민의 생활수준 제고에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다분한 철리와 박력있는 촌언는 또 한차례의 이념적 분쟁을 종식하고 사상적 질곡을 부심으로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건설에로!라는 방향을 기치 선명히 확립하고 국가의 건설을 정확한 발전 도로에 진입시켰다. . 이 두 단계를 거치면서 정설화되고 구체화된 명쾌한 유물사관의 산물인 등소평의 리론은 백묘흑묘론을 그 징표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개혁개방을 이끌어낸 묘론의 중심중부(中心中部)는 생산력 향상과 전체적 국력의 향상,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 사회주의 현대화에로의 매진 등으로 요약된다. 백묘흑묘론의 의의   백묘흑묘론은 역사의 수요에 부응하여 기운찬 론리적 힘으로 중국의 낡은 구조를 개축하고 나라의 대문을 전세계로 열어놓는 금열쇠로 작용하였다. 중국 사회는 이미 튼튼한 물질적,정치적,문화적,외교적 기반을 마련하였을 뿐만아니라 세계화로 향하여 나아가는 불가역적인 중국 특색의 발전 도로에 올라섰으며  세계와 공동히 발전하는 견고한 기틀을 잡아 놓았다.   등소평이 20여년 사이에 13억을 이끌고 곤궁을 빠져나간 자체는 인류의 기적이 아닐수가 없다는 것이 세론의 일치한 평가이다.락후한13억 인구대국, 극심한 지역 격차, 복잡한 지리 환경, 정치,경제,문화,외교,민족 등 모순이 얼기설기 교착된 나라에서 이미 달성한 성과만으로 세계가 괄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백묘흑묘론의 발전   중국은30여년의 건설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국제 사회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정보사회,지식사회를 대변하는 문명의 리기(利器)들은 사회의 일사천리 발전을 떠밀고 나간다.시장경제의 기본 구조가 확립되었고 사람들의 정치사상,경제사상,법률사상,문화사상은 전례없는 변화를 가져왔으며 문명 대국의 건설은 장엄한 중반전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잔여가 아직도 넓은 터전을 지키고 있으며 새로 나타나는 다량의 반시대적 우수마발[牛溲馬勃]과  시류를 역행하는 반작용력도 거센 힘을 자랑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실천으로 현란한 옥석혼효(玉石混淆)의 신구물속에서 요용건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뭇사람들이 교아절치(咬牙切齒)하는 부패물도 새 제도의 확립으로부터 발본적인 제거책을 찾아야 한다.   중국은 새로운 시대적 높이에 올라섰다. 지난날의 낙후한 경제와 인민의 물질적 수요간의 절박한 모순이 확연히 해결되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경제,정치,문화,환경개선,자원보호,지속적 발전 등등의 제반에서 균형적,전면적,지속적인 발전을 요하는 력사 시기에 들어섰다.변화에 걸맞는 리론,정책,방침과 조치들이 실천의 무대에 올라야 한다.   대안이라면 백묘흑묘론에 내포된 변증유물론 정신을 계속 지양하여 현시대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경제토대와 상부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 리론을 중국 특색에 맞게 독창하여 나라를 끌고가는 것이다.국보간난(國步艱難)의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더없이 어려워도 진행해야 한다.아니라면 역수행주,불진칙퇴(逆水行舟,不進則退)가 된다.   오늘 당중앙이 제출한 과학적 발전관을 관철하는 전민적 노력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민주적이고 번영하는 참신한 사회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상해방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29    한국어의 이형(異形) 댓글:  조회:4669  추천:4  2011-06-28
한국문을 보고 한국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중국의 지명과 인명이 외래어로 취급되어 현지음을 따르고 글과 말,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표기법과 표달이 생기면서 고민을 할 때가 많았다. 례하면 대련(大連)하면  한글에선 혹은 이라 쓰인 경우가 있다.그리고 한 이름을 어떤 때는 한자음으로 어떤때는 중국음으로 기록이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한다.례하면 상해(上海)는 어떤 때는 고 어떤 때는 이다. 대화에서는 중국어 발음을 어설프게 본뜬데다 이질적인 악센트까지 부착되어 닭알인지 오리알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민망함을 자주 보인다.   언어를 관장하는 어느 거물들의 걸작이겠지만 생계에 쫓겨 다니는 샐러리맨으로서는 겪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오늘 그때그때 떠오르던 생각을 주워 글로 꿰본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잇대인 나라로서 몇천년을 내려오며 정치,경제,문화로부터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밀접한 교류를 진행하며 서로 침투하면서 각자의 독특한 민족 문화를 창조하여 왔다.이 과정에서 한자는 중국어란 의미를 떠나 자기의 한자음을 가진 완전한 한국어의 일부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한 역사적 산물인 한자를 외국어로 취급하는 리유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한국어에서 한자는 거의 전부가  자체의 한자음을 가지고 있다.지금 한국의 절대 부분의 지명과 인명은 대칭되는 한자가 있다.그런데 중국의 지명과 인명만이 현지음으로 읽어 진다면 이는 혼란이외 다른 것은 아니다. 일률적으로 한자음을 쓴다면 더욱 편리하고 역사적 관습에도 부합되고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어 현지음을 끌어들이는 저의에 도통 이해가 안 간다.   한자의 한자음에는 함축된 한민족 특색의 력사적,문화적 함의가 있다. 그런데 중국어 지명,인명에서만 한자음을 분리시킨다면 문화의 계승성에 혼선이 생기고 세대로 내려가며 혼돈이 발생하여 한글의 정체성에 큰 흉터를 만들게 된다.   중국의 인명 지명이 원 한국어 한자음으로 표기 되어야 교육과 매체에서 한국어의 순수성이 고양될 수 있다. 일본은 1945자의 당용한자를 당당하게 법적인 형식으로 교육에 침투시켜 자기의 전통적인 한자음을 고수하고 국어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시기에 맞춰 필요한 증감을 진행한다.배워야 할 바이다.   현재 한국어에서 중국의 인명,지명은 중국어 발음대로 한다고 하지만 아주 동떨어진 발음 구조이다.례하면 모택동(毛澤東)은 모저뚱인데 마오저뚱, 등소평(鄧小平)은 떵쑈핑인데 떵쌰오핑이라 말한다.이상한 반상반하 혼혼의 극치이다.일률적으로 원래의 한자음을 쓴다면 이런 미스터리도 어색함도 전혀 없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인들은 한국어에서 이런 쓰임에 상당한 곤혹을 느끼고 있다.한국의 지명,인명은 한자음인데 중국어권의 기타 지역,이명 이름들이 현지발음이니  자꾸 헷갈리는 곤욕을 치른다고 투덜대는 이들이 다부분이다.반대로 한국인이 한자를 배우는데서도 저애가 된다.중한교류에서의 인위적인 장애로 봐야하지 않을가!   우리의 조선어는 특수한 정치,역사,지리 환경에서 보존되고 발전되어 왔다.그는 중국어와의 긴밀한 결합속에서 자체의 우수한 문화적 특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한국어의 체계에서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어 있다.앞으로 국제교류의 발전과 더불어 동족어인 한국어와의 상호보완으로 그 변화도 불가피하겠으나 상황의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말의 역사적인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민족언어 발전에서의 정신골자라고 본다.   몇 세대의 땀과 심혈로 이뤄진 조선어를 연구하는 전문기관들이 더욱 권위성이 있는 보루로 되고 그가 진정 조선어의 규범성,순결성과 발전성을 수호하는 구심점으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짧은 생각을 적으면서 정통한 어른들의 도움말도 많이 들어보고 싶다. 2011-06-25  
28    문병객의 심통(心痛) 댓글:  조회:2860  추천:2  2011-06-26
 문병객의 심통(心痛)                                                               2011-06-15   며칠전, 아침 출근길인데 한 직원의 아버지가 각혈로 응급치료를 받는다는 전언을 받았다.원래 잘 아는 사이라 바로 달려가 보니 당신은 중태에서 격렬한 구토 반응을 보이며 쉴새없이 몸을 뒤채고 있었다.대량의 수혈을 위시한 여러가지 비상약들을 대량 투여하는데도 상태는 악화 일로라는 것이다.   그 병원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확실한 진단과 치료의 추이를 알아보라 부탁하였더니 잠간후 회답을 보내왔다. 심한 간경변으로 인한 내장 출혈인데 소생할 가망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수수한 소식이었다.   잠간 후 주임의사가 와서 두렷거리더니  알부민(albumin-白蛋白)이란  구급약이 있는데 주사하면 어떠냐고 가족의 의견을 묻는다.부연하여 당신들은 공비 치료가 아니고 전부 자비 치료인데 그 상당한 가격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발을 달았다.나는 확인으로 물었다.환자의 이 상태에서 효과가 있을 것인가.구명이 가능할 것인가? 의사는 우물주물 말끝을 얼버무리며 요구가 있으면 찾아와 말하라!고는 가버린다.가족들도 그 질문을 들으며 망설이었다. 곁에 있던 기사는 나를 눈짓하며 잡아 끌어다 환자가 이 상태인데 저 사람들은 약을 팔기 위해 수작을 쓴다고 귀띔하며 그네들은 약장사의 리베이트를 챙기려는 속셈이 있다며 분노를 터트린다. 나는 간대로야 하며 입을 막아버렸다.망설거리는 중 환자는 다시 세차게 들썩이더니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의사, 호사들이 달려와 구급은 하였으나 결국 만류하지 못하고 말았다.   가난한 시골서 태나 자라 다리 장애의 몸으로 가정도 꾸리고 생산대장으로 15년 세월을 보내면서도 아들딸을 진학시켜 사회 진출까지 마무리 지었다.요즘은 대련의 아들 집에 와 손자를 보며 여가를 즐기는 나날이었다. 한평생 고생이 질펀한 감탕길에서 걸어온 58세인데 아까운 나이로 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말을 잊지 못하는 마누라의 넋두리다 .   나는 돌아섰다.내 아버지도 이런 인생을 보내지 않았던가!   병원문을 나서니 가슴이 무거워 났다. 인생의 최후인데 의사가 제시한 약이나마 대접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이건 적어도 한 생명에 대한 례의이고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제구실인데도 돈 때문에 망설이다 말다니!가슴에 만감이 서렸다.   옥생각도 갈마들었다.   의사의 말대로 분명 자기의 돈을 안쓰거나 적게 쓰고도 호사스러운 치료를 하는 귀인들이 많다고 많이 들어왔다.물론 어떠한 룰이나 정책에 따라 받는 특혜라 하겠으나 분명 자기 것이 아닌 누구의 돈이다. 그런데도 그 부류에게는 씌여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게 되는 것이다.그러면 어떤 돈이데 어떤 사람은 무료고 어떤 돈없는 사람은 되려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끗발이 세고 약바른 용사들만 특수로 공금을 겁없이 쓸 수 있다면 어디가 좀 잘못돼 있는 같다. 유족한 자가 자기의 돈을 쓴다면 이외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이들은 비록 약세지만 사회의 평등한 유권자이고 인구의 대다수이고 사회를 떠받친 침묵하는 기층(基層)이다. 명명한 사회의 주인들인데 평등한 주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로선,방침,정책의 확립을 먼발치서 바라본지도 오래다.이런 시책의 출범은 만약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일촌간장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질질 끌거나 뒤로 미룰일이 아님을 호소하고 싶다.우선 제반 방침의 제정과 실행 과정을 투명한 유리 박스에 넣어 만중에 투영되도록 하고, 대중들과 한 약속을 짬짜미로 눙치지 말고, 결코 유야무야로 만들지 말아야 인민 공복들의 공신력이 세워질 것이다.비분한 욕심이라 남을 웃길 지는 몰라도.....。   의료 분야의 비리도 뉴스로 들어둔 지 오래다.항간에는 병원만 가면 약을 들이 안기고 바가지를 씌운다고 분기가 충천한다.병원은 병원대로 약을 많이 팔기를 암묵적으로 격려하고 의사는 의사대로 약을 팔면 짭짤한 리베이트를 챙긴다는 소문은 오랜데도 무성해 지기만 한다. 이는 치료 비용를 끌어올리고 나라의 지원금을 무효화 시키고 진부한 의료체제를 개혁하려는 중앙 로선에 대한 역행으로서 틀림없는 악행이다.더구나 병고에서 해탈하려는 조급한 마음이 축재의 호기로 되고 병에 시든 생명이 볼모로 되어 돈을 뜯기고 돈이 없으면 애처로운 대접을 받는다면 이건 뭐가 어디가 어째 이렇다고 설명해야 하는가!?     의료보장,간병난간병귀(看病難看病貴)를 해결한다는 슬로건은 소소리높이 걸린지 오래다.오늘의 이 그늘받이에도 어느땐가 칠색양광이 비쳐 올 것이다.물론 이 공공사업은 어느 개인이나 특정한 병원이 아닌 의료의 구조,체제로부터 수술을 진행해야 할 어려운 사회 개혁의 일부분으로서 구축하기도 어려운 시스템 공사이다.허나 이 시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친인의 생명을 구하려 엷은 포켓을 털고 있으며 돈이 모자라 위태로운 생명을 보며 가슴속의 피를 흘릴 것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사업에서 인민을 대표한 립안자,결책자와 실행자들이 진정 인본주의 리념으로 현대화 빌딩이 줄느런한 중심가의 저쪽에 구태의연한 힘없는 다수 서민들이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할 일이 태산 같고 갈 길이 아득한데 비바람 또한 세차다. 그렇다면 빈촌의 빈민들은 이 가파른 고생길을 언제까지 걸어야 하겠나?                                                                                
27    외조부의 기도 댓글:  조회:2838  추천:13  2011-06-04
외조부의 기도                                                 2011-06-03 지난 3월11일 오후,모니터에서 일본의 특대지진-쓰나미의 뉴스가 불쑥 뛰어나왔다.곧바로 동경 번호를 눌렀더니 거친 전류의 소리뿐인 불통이다.혹시나고 뭇생각이 뇌리서 세차게 맴돌며 안절부절이 나갔다. 그 땅에는 내 아들과 딸가족에 출생 11일인 외손자가 딸려 있었다.간대로야면서도 한근심에 시보판을 쉴새없이 보며 시간이 멈췄다는 체험도 맛보았다. 밤 10시경이 되었나 벨소리에 수화기를 넙적 들어보니 알아들릴락말락한 무사합니다!는 사위의 평신이 줄을 타고 건너온다.열기운이 터지는 풍선인양 페문을 열고 나오며 다리맥이 풀렸다.이 세상 부모의 본능일가? 난생 처음으로 정신애을 골수에 묻어놓은 나를 만나보았다.   이튿날 또다시 놀라운 소식이 건너왔다.어디의 원전이 폭발되었는데 핵먼지의 위협 때문에 내일 아이를 대련에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절박한 멧세지였다.   외손자와의 조우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강보에 쌓인 외손자를 처음 들여다보니 내가 외할아버지가 되었다는 희열과, 내 생명도 격세로 이어진다는 감동과, 후세에 대한 자애지정이 물결치며 전률하는 가슴안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올해 91세 되는 모친도 4대가 한자리에 모이는구나!며 감개무량한 내심을 내비친다. 녀석의 훌부드르르한 손을 만지니 무슨 알음장인지 꿱꿱 소리를 질러댄다. 운다는게 이게란다. “하 죄꼬만 눔이  목소리는 꽤 우렁차구나. ”   다다음 날, 룡정에 있는 조부모들이 손자 보려 달려왔다.방에서 일가가 피덩이를 둘러싸고 들여다 보고 있는판국인데도 보기에 조급하여 들락날락거리는 민망함을 보이면서 주책없는 줄은 아는데 다리가 통 시키는 말을 안 들었다.   친구들과 한담할 때도 세월의 아쉬움은 숨기면서 자랑빛을 내며 인젠 외손자를 둿다고 말한다.한국의 친구는 외손자와의 만난 경위를 듣고 너는 하느님의 축복을 듬뿍 받았다며 하느님이 내리신 은정인데 기도를 많이 하면 아기의 장래가 좋다고 재삼 타이른다. 생뚱맞은 소리, 생면부지인 하느님이란 사람이 내가 뭐 대단하다고 그 귀한 선물을 준단 말이야? 하물며 딸애의 산고 끝에 본 귀염둥이 아냐? 웃기는 소리,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흐무뭇하게 기쁜 것은 태여난  42일만에 인생의 환한 첫 웃음을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제 어미고 누구도 외면하고 나에게만 보내주는 것이다.놈과 나 사이의 이심전심이라는 정신감응이 특히 끈끈한 모양이다.놈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파란잔디와 녹색수림이 진록을 펼쳐간다. 날이 따스해 졌으니 조부모님들과 회동하려 출발하게 되었다.시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나며 백화원속에서의  제일 명화는 이라는 말을 만들어 놓았다.재회를 약속하는 마음으로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았더니 여석은 나더러 친구의 말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이란 사람에게 기도하고 싶게 하였다.   애들이 좋다는데 주저할 리유가 없잖은가? 전에 남들이 하던 기도를 흉내내며 속으로 들먹이었다.   하느님 선생님!   친구의 권려에 고무를 받아 참마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사중에서도 무류무비하게 귀한 외손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정의에 심심한 사의를 드립니다.선생님의 사랑 선물로 보내주신 무가의 생명이오니 이 어린 영혼이 살아가야 할 긴나날에 항시 님에게 기쁨을 안기시고 그 거룩한 기대에 부응하도록 가리치며 지나새나 조신하게 키우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영광은 광야같지만 오로지 외손자가 잘 나가면 가슴의 기쁨이 더없다는 일념으로 죄송죄송하면서도 더 많은 보살핌을 내리시기를 기원하여 마지않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아무튼 요놈을 창송취죽처럼 올곧고 들차게 자라도록 늘 재촉해 주시며, 록죽지절을 온몸으로 껴안은 이 땅의 영광스런 역군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금전이나 지위나 영화보다  근면한 로동만이 삶의 길이고 남에게 유익함이 최고의 명예임을 알게 해 주시며, 각고면려하는 공력으로 담금질에서도 끄떡없는 금강석이 아니면  감탕밭 속에서도 티없는 해맑은 수정으로 되게 해 주십시오.   어둠속에서 길을 아는 외손자, 고난속에서 버틸 줄 아는 외손자, 형극을 넉넉히 헤치는 외손자로 되어 인생 고비의 하나하나를 슬기롭게 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이 애에게 한생의 모든 날에 시비곡직을 신통히 가려내는 영재를 주시고 사회의 면면에서 권리보다 의무 완수가 대단하다는 이치를 알도록 해주시며 마라톤 선수의 끈기와 인내로 인생의 길디긴 구곡양장을 쉬임없이 달리도록 가르켜 주십시오. 대체로 언제 어디서나 열정과 지혜가 넘쳐나는 외손자로 되게 하시고 남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의 마음과  찬미의 실천이 샘솟는 영혜한 인간이 되도록 교도하시며 단 한번의 무상한 삶을 면구없는 락천의 생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이상 삼가 기도를 올리는 바입니다.   선생님: 기성세대도 물론 자래움에 게으름이 없을 터이지만 축복의 한맘으로 과욕을 전달하니 엄책은 하시되 괘념하지 마시기를 삼가 바라오며 재삼 부탁드리겠습니다.                                                                                    
26    재난이 남긴 동심(動心) 댓글:  조회:3206  추천:14  2011-05-24
재난이 남긴 동심(動心) -일본 3.11지진-쓰나미 후의 술회                                                     김인섭  2011-03-24 일본 도호쿠(東北) 해저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지난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기상청은 즉시 지진-쓰나미 경보를 내렸다.  NHK(日本广播协会)의 헬리콥터는 즉발하여 무지한 쓰나미가 선박,전신주,건물,차량과 가련한 생명들을 싹싹 쓸어가지고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장면을 직사(直寫) 그대로 생중계하였다.   10m 높이의 흉흉한 파도는 뭍에 닿자 시커먼 흙탕물로 일변해 해안의 주택가와 전야를 뒤덮는다. 기겁하여 속력을 올리는 자동차들도 삽시에 말려 들어간다.미증유의 공포 장면은 인간이 떨뜨리는 컴퓨터의  3D동영상도 아니고 예술적으로 각색한 시나리오도 아닌 리히터 9의 지진을 동반한 금시초문의 쓰나미 그대로였다. 이는 지역민만이 당하는 재앙이였지만 해안선을 통째로 옮겨 놓았다는 이번 강진은 일본 열도 전체를 수월하게 들썩여 놓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온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별세계의 누군가가 부리는 횡포가 아닌가!가공할 자연력은 인류 문명의 한계점을 적라라하게 적출(摘出)하였고 인간에게 너는  얼마나 무한소의 미물인가를 알라!는 알음장을 주었다. 사람이 기존의 처세술대로라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경종이 아닌지도 모른다.   대해진이 세계 경제에 던진 충격파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급성장으로 GDP(국내총생산치)가 세계 3위로 밀려났지만 경제 강대국의 위치만 확고히 지키고 있는 일본인데 이와 같은 파괴성적 하락 후의 추이를 세계는 불안히 지켜보고 있다.세계화로 급진하는 오늘 한나라의 재난은 즉시 전 지구적 재난으로 일파만파 전해진다는 반증으로도 되는 것이다.   금시초유의 특대 재난을 앞에 두고 한심하게 냉정하고 침착히 대응하는 일본인들의 자태도 강렬히 다가온다.발생 당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도쿄 시민들.마치 야간 축구 경기장에서 통터져나오는 관중들로 착각할 정도였으나 뛰고 소리치고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누구 하나도 없었다. 경황,혼란,무질서,비통,처참은 재해 현장의 회피부득의 사태이고 맡은 이들의 현지 안내와 구제 호소 등은 우리들에게는 당연히 느껴지는 화면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이보다는 전체 국민의 태연하고 냉정한 모습이고 미리 짜놓은 듯한 하나같은 움직임일 뿐이었다.    나라적 슬픔의 무게도 엄청나다.허나 각자는 자기 몫을 숙명적으로 홀로 삭이며 집단적인 관행에만 절대적으로 동조할 뿐이다. 그들도 비통하고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절박하련만 냉정과 체면을 절대 잃지 않는 별간장(別肝腸)들이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 나타내는 자세와 인내,용기에 세계가 감동하고 있다.그 극단적 절제는 감탄을 일으킨다. 세계는 이 특유한 문화를 높은 감도(感度)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숨은 힘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일본은 자기의 국격과 이미지를 새롭게 드러낸다.남에게 페를 안 끼치고 수치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관념이 남김없이 작용한다고들 말한다. 절규와  호들갑에 익숙한 우리에게 쇼크가 아닐 수 없다..     완벽한 질서 의식과 배려 정신은 거대한 재앙을 흡수하고 극복하는 일본 국민의  원동력인 듯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차롓걸음은 경이롭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슈퍼마켓에서 장사진을 치지만 누구도 하루만 버틸 최소한의 수량만 잡는 그들,새치기와 사재기는 볼 수도 없거니와 자기의 행위가 이웃에 주는 불편의 유무를 늘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운신한다.도쿄전력이 제한 송전을 하자 피해 지역의 우선 송전을 위하여 시민들은 일제히 자기 집 플러그를 뽑는다. 무료전화 부스앞에서 장사진을 짓고 누구도 간단한 전달과 문의가 있을 뿐 서로 독촉도 조급함도 없다.  긴급 파견된 식수차 앞에서 '조금 더' 말 한 마디도 없다.  '나 먼저'란 난리도 없고 다만 옥상에 'SOS'를 써놓고 구조대를 차분히 기다린다. 긴급용 우동 그릇이 앞에 와도 너나없이 뒤로 뒤로의 ‘양보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들의 일매진 행동은 누구의 지휘에 따른 것도 아니고 요란스런 본보기의 선전이나 굉장한 도덕 교육, 이론 교육에 의해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맘속에 심어진 무언가에 의해 재앙이 발생하는 순간에 암묵적인 만민일치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극단적일 정도로 일본인들은 침착했다'고 전했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시민 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거듭되는 천재지변과 이름 못할 패전의 재더미속에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에너지원이 바로 누구의 강요도 없고 누구도 예외가 아닌 일본인들의 한결같은 이런 귀태(貴態)가 아닐가?! 국민의 수준은 재난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고들  말한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미워하던 나라들도, 무심히 바라보던 나라들도 모두가 재난 속의 일본민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 가슴을 일시에 열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 천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역사적 아픔이 극심하데다 독도 분규로 분노하던 한국인들과 조어도 다툼으로 으르대던 중국인들도 일제히 난민을 위해 도움과 고무를 주며  재난의 땅을 향해 마음과 손길과  발길을 돌리었다. 생명에 대한 자비와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하는 지구촌의 한 식솔이라는 거센 멧세지를 보내주었다. 전쟁 속의 군인들에게 끌려 성노예로서 청춘을 무참히 짓밣히고 치욕으로 얼룩진 가슴을 뿥안고 여생을 살아가는 할머니들도 휄체어를 타고 생명 구호의 진두에 나섰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영영 지났간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공존공영의 공동체적 시스템에서만 이뤄지고 발전한다는 가시 신호이다. 일본인들은 늘 우리는 길동무도 없는 나라라고 비관해 왔으나 이 참변에서 나의 이웃들은 아픈 상처를 어루쓸어 줄 현량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금번의 대진에서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고지서라면 일본도 누구도 독서(獨棲) 불가능이 아닌 독서 불능이라는 옐로카드(yellow card)였다.사정없는 자연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무가내하임만을 본 것이 아니다.이 땅위의 민족들은 비록 각자의 양식대로 모이고 복잡한 리해관계로 끼리끼리 살다가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하나로 뭉치는 괴력을 발견하였다. 이 힘이야말로 인간만세(人間萬世)가  이상향(理想鄕)으로 갈 수 있는 저력인지 싶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이 지구인의 천량(天良)을 불렀듯이 커지기만 하는 재난 속에서의 인류의 유일한 빠짐길은 애타심으로 이어지고,생의 공감과 협력의 지혜에 의해서 구축된 만민 대화합 이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날려본다.    오늘 세계인들이 맞선 상대는 지진-쓰나미뿐만 아닌 환경 쓰나미, 금융 쓰나미, 테러 쓰나미,불신 쓰나미,살육지변(殺戮之變) 쓰나미 등의 대적이다.이 난문제를 풀어가는 비결은 돈도 힘도 아니고 일본인들의 신기한 국민성도 아닌, 무아애(無我愛)란 이 보이지 않는 실로 짜여진 글로벌적 철벽 댐(dam)이라는 점을 되풀이하게 된다. 얼기설기 맺혀 있던 원한, 알륵과 갈등이 인명 앞에서는 얼마나 부질없는가 머리를 안 굴릴 수 없다.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생해야 한다는 이념의 재부활만이 조과지도[調過之道]이다.하물며 이 애정의 유전자가 사람의 가슴마다에 뿌리박고 있는데야.... 이것을 부질없는 과대망상이라 한다면 누구를 인류의 류적(類籍)에서 삭제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오늘, 무량세계의 전민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지구주의(globalism) 로 요새를 둘러쌓아야만 인간에 덮쳐올 검은 파도를 이겨나고 살아남는다!는 호소를 어쭙짢게 해본다.                                                                                    ※:주 1.조과지도 [調過之道] :살아가는 길. 2.별간장     [別肝腸] :이상한 성격. 또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 3.인간만세 [人間萬世] :만대나 계속되는 영원한 인간 세상. 4.이상향     [理想鄕]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5.살육지변 [殺戮之變] :사람을 마구 죽이는 변고. 6.천량         [天良] :타고난 착한 마음. 7.옐로카드[yellow card]:축구에서 고의로 반칙한 선수에게 주심이 경고로 보이는 종이 쪽지.(黄牌)
25    GDP 와 GNH 댓글:  조회:3175  추천:11  2011-02-19
                                                    2010-12-04   지난 달 25일, 조글로 홈에 기재된 이란 표제인 비평 취지의 진문장을 내리읽고 뱃속에 유감이 남는다.   지엄한 주 당위서기의 3차례 지시까지 무시하고 시공을 강행했다는 데다가 거물급 전문가들의 아주 대표적인 라는 혹평이 내려져 있었다..   동인을 보니 도문시의 유관 책임자들이 국내생산총액 즉 GDP(Gross Domestic Product)를 증장시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욕심의 발로가 감행의 원인이란다.서분한 생각을 거둘 수 없었다.   이른바 GDP란 시장가격에 의해 계산된 한개 나라 혹은 한개 지역의 일년내 그 경내에서 생산된 최종제품과 로무의 시장가치의 총화를 말하는 략칭이다.지난 긴 세월을 두고 어디가 잘 산다거나 못산다 혹은 발전했다 낙후하다는 징표를 GDP의 고저 다소로 평가하여 왔고  어디의 치적이 어떠어떠하다는 데는 이 절대가격으로 논공행상을 해 주고 절대평가를 진행하는 강대한 관성이 오늘까지 상습으로 작용하여 오는 모양이다.   도문시의 관련 지도자들께서도 아마 이 고착관념의 추동과 GDP뒤좇기 경합이란 대기후속에서 어디가 돈이 벌어진다는 고취악에 홀딱 반하여 앞만 보고 내뛰다 서슬 푸르른 국가 거시조절의 상한라인인 고압송전선의 전격을 당하는 낭패를 보며 시야비야를 주문하는 같다.거기다 위엄찬 상사의 지령까지 불고하는 만용을 부리면서…   GDP는 오래 전부터 경제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씌여오면서 각국 정부도 경제성장률(GDP증가율)을 주요 목표로서 정책을 펴왔으나 사실상 GDP 주체의 문제점은 노출된 지도 퍽 오래다. 예컨대 기업이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해도 GDP는 여전히 늘어나고 불량 역사의 파괴-재축으로 투자가 생겨도 GDP는 증가한다.허나 여기에 빈부격차와 분배 불공정등 문제와 전민적인 복불복과 행불행의 여하의 표시가 안 된다는 이 점은 공동 인식이 성립된 지가 오래다.   최근 들어 국제사회는 개인 행복이나 삶의 질을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사회발전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도 과학적 발전관을 제시하고 민생,교육,의료,환경,자원절약 등등의  종합적인 발전을 골자로 한 참신한 실현 목표를 제정하였다.이는 력사적인 진보이고 발전의 필연이다.오늘 이런 심오한 문제를 무지한이 론한다면 남을 웃길 일이니 차설하고 일취월장을 거듭하는 오늘에 발전을 표방한다는 GDP란 을 누가 우러보는지  모르지만 양적인 팽배와 금전의 산술적 절대수만 뒤쫗는 현실을 보면서 이리저리 생각이 감돌아진다.   까놓고 말하면 내같은 범골이 보고보는 것은 화려한 별장이 아니고 자그마한 주거 취사가 가능한 동온하청의 안식처이고 자동차가 꽉 찬 도시 풍경이 아니라 밝은 햇빛,끝없이 푸른 하늘을 떠인 산야이다.미네랄 건강 음료수가 조화론 사회의 표지가 아니라  붕어、모래무지、종개가 즐겁게 노니는 샛말간 하천이 진정한 행복의 징표라는 것을 재인식해야 하는 오늘이다.하이클래스 패킹(High-class  Packing)으로 무장한 고급 영양제는 결코 건강의 상징이 될 수가 없다.흙냄새가 풍기는 장바구니,겨먼지 풀풀 날리는 쌀자루가 어지럽다고 나무릴 현대인은 자기가 먹고 마시고 들이 마시는 공기속에 뭔가가 들어있지 않냐 새새봐야 한다고 권고한다.내가 더더욱 바라는 것은 즐비한 고층 건물이 아니라 아해들이 시름놓고 공부하는 아담한 교실이다.   희망이라면 지도자들께서 어마어마한 물량의 생산보다 인민의 삶의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이 민중의 희망이 정책적 입안에서 출발점이 되고, 량적인 계산에서 기산점인 동시에 만료점이 되고, 실행중에서도 시간,장소,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삼일치법칙적 만세불변의 가시목표로 되었으면 하는 주제없는 욕심이다.   이것이 나 혼자 뿐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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