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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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미래 일자리의 열쇠 댓글:  조회:1964  추천:2  2017-03-29
인공지능을 표지로 하는 제4차산업혁명에 가속이 붙으면서 국내외 매체들이 미래의 일자리를 자주 주제로 다루고 있다.일부 선진국들은 이 이슈 단계를 넘어 실제적 개발과 적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미래의 일자리 변화와 파생하는 사회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안을 제시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사물인터넷、3차원프린트、자율자동차 등 새 사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새 시대가 10~ 20년이 아니고 당장 2~3년 이후라는 긴박감을 가지게 한다.작년 12월 미국 아마존그룹은 시애틀에 대형 무인마트인 '아마존고(AmazonGo) 매장을 선보였는데 넒은 마트에서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거친 뒤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된다.구매품은 컴퓨터 센서(传感器)가 기록하고 대금은 고객이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로 자동 지급이 된다.이 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미국 내 일자리 350만개가 사라진다는 계산이다.독일 아디다스는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트、로봇이 결합된 로봇 곳장을 현지에 세우고10명의 인력으로 년간 생산량 50만쌍의 신발 공장을 세우고 가동에 들었갔다. 인공지능 의사로 불리는 ‘왓슨’은 환자의 진료 기록과 증상을 근거로 방대한 자료들에서 최적의 치료법 제안을 도출하는데 웬만한 전문 의사보다 월등한 병진단과 치료 방안을 낸다고 말한다. 기존 일자리가 대량으로 인공지능 기기에 대체되면서 물량이 크고 매출을 오르면 고용 증가와 이어지던 법칙이 옛일이고 명문대 졸업이면 상등 직종을 차지하던 시대가 바야흐로 지나가고 있다.   작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7세의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면 65%가 지금 없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예측이다.이것은 미래의 일자리에 대하여 충분한 준비를 가져야 한다는 경종이다.이것은 새 시대를 앞두고 기성 세대들은 내 후대를 육성한다는 시점에서 심각히 고민해야 할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그러므로 력사의 맥박을 짚어보며 자식의 인생 첫걸음을 어느 길의 출발선에 세워야 하는가는 단안을 내려야 한다.    지능화시대는 과학기술의 대융합 시대로서 전문가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은 융합적 지식과 기능의 소유자여야 하고 동시에 몇개 부문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인공지능의 뒷바침으로 지식의 장악과 연구개발은 전례없이 빨라지고 쉬어지며 전통적인 생산、유통、분배、소비 구조가 뿌리채로 바뀌고 사회관리 방식의 전환도 사실화로 되고 있다.노동자는 일생 동안 적어도  두개 혹은 3개 이상의 직업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근무시간、근무장소、근무규제 등 근무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하루에 두개 이상의 직장 근무도 가능하게 된다.전제라면 융합형 전문지식과 기능을 소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능사회에서 상기의 기본기능 이외의 핵심적 경쟁력은 무엇일 것인가?즉 기계가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령역인 언어、사유、감성교류 능력과 능동적인 정보의 수집 및 활용 능력이다.또 여기의 핵심 인프라는 인간의 사유와 교류 도구로서의 언어 기능의 고저이다.인류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는 이유는 언어에 의한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언어의 장악과 활용이 인류 발전의 열쇠이고 인류의 최강의 무기이다》는 잠언은 정확한 론단이다.초고속으로 운행되는 지능사회에서 언어 기능과 범위에 따라 그의 발전 터전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결론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로 부터 추론하여, 제4차산업혁명 시대의 조선족의 경쟁력 우위라면 조손이 전승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중한 이중언어이다.최근 매체에서 료녕성 조선족 후대들이 대량적으로 민족교육을 이탈하고 있다는 멧세지를 보았다.여기에는 사회원인、경제조건、거주조건、교육환경 등 복잡한 원인이 작용할 것이지만 부모들이 조선어에 대한 ‘평가절하’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아직도 진학 유일이란 진부한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변해가는 세상을 외면하고 있다.지난 날 민족어에서 이탈시킨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후회막급하는  심성(深省)의 볼멘소리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의 어떠한 신통한 기능도 결국 인간이 설정한 기능의 반복이다.그의 어떠한 마법도 인간 언어를 대체할 수 없다.조선족의 이중언어는 타민족이 침을 흘리며 선망하는 대상이 된지 오래다.언어 가치가 폭등하는 시대에 조선어는 일자리를 파고드는 만능열쇠는 아니라도 천능열쇠 쯤은 충분히 되고도 남음이 가득할 것이다.  (끝)   2017-03-27 길림신문  
123    민족문화의 고지에로… 댓글:  조회:2152  추천:2  2017-03-17
중국슈퍼리그의 절정기가 지난지 이슥한데 연변축구의 잔열(残热)을 뜨겁게 느꼈다.   며칠 전, 몇몇 동인들이 술놀음을 하다가 화제가 연변축구에 돌아갔다.그런데 동석하여 잠자코 가만있던 숙녀급 색시가 내 차례인 듯 불쑥 끼여들더니 링아나운서(擂台司仪)  어투로 말문을 연다. 고 열변을 쏟는데 그 수준은 축구 전문가 뺨을 올리치고 내리치기에 충분하였다.격렬한 남성화 운동에다 가냘픈 령부인을 잇놓을려니 언짢았는데 암튼 수준급의 축구 마니아(狂热者)가 틀림없었다.그의 남편이 몇 마디 끼어들었다고 기염을 토하며 문다져버리니 찍소리도 없이 기죽어 김빠진 뽈이 되는 그 맵시도 볼만했다.지난 봄여름 연변 뽈쟁이들이 축구기를 곳곳에서 자랑하고 무리 지은 팬들이 뒤따라 가세해 들썩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감동했는데 또다시 연변축구가 스포츠문화의 고공에서 행진한다고 새삼스레 느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열애는 그 민족사회 발전의 활력소로 전화된다.조선족문화는 중국의 문화 속에 뿌리박고 발전한 민족 성격과 특색이 선명한 력사적 산출물이다.이 성과는 민족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중국과 세계의 발전에도 불후의 기여를 하여 왔다는 사실은 공론되는 력사적 평가이다.60년대에 연변 축구팀이 전국 우승을 따내 연변인들의 흥분신경 흥분을 유발했고 80,90년대에는 연변의 소년 축구가 국가 우승을 부지런히 탈취하여 지역민들이 기쁨을 고조시키던 장면이 새삼스럽다.가무 문화는 내놓고 80년대 연변의 만명당 인구의 대학생 수가 196몀을 차지하여 전국 평균수 3배를 초과하였으며 제3차 전국 인구조사에서도 역시 전국의 3배를 초과하여 교육 민족으로 소문이 파다했다.오늘 비록 이산되고 분산되는 고배를 마시고 있지만 이미 누적한 우수한 문화 밑천은 력사의 질곡을 헤쳐나갈 강력한 소프트파워(软实力)라는 점은 긍지를 가져야 할 바이다.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조선족 사회를 보며 디아스포라(大流散犹太人)의 력사를 짚어 본다. 유대인들은 고향에서 쫓겨난 2000여년 동안 추방、유배、학살、박해 등등 인간 언어에 있는 모든 고난과 재앙을 수없이 겪어왔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독일나치스들에게 600만의 대도살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참변을 당하였다.그러나 오늘 그들은 재난의 터전에서 국제 금융시장을 만두반죽 주무르듯 해대며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군사력、경제력을 쌓고 중동의 거인이 되었으며 미니(小型) 초대국의 별호를 달고 있다.노벨상의 30% 이상이 세계 인구 0.3%인 유대인 손에 넘어 갔고 세계의 모든 첨단과학 성과에서 유대인의 그림자가 언뜰거린다.유대인이 노벨상의 단골 손님이 되고 경악할 사회 발전을 이룩하는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가 곰곰히 생각해 볼 바이다.   유대인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민족 문화에 대한 불요불굴의 신념이다.기나긴 공포、고난과 슬픔의 파도를 헤치면서도 그들은 자기 전통을 철석같이 지키고 눈동자처럼 간주하여 왔다.그들은 후대들에 대한 문화 전승을 필생의 성사(圣事)로 완수하고 있으며 엄마들은 자기 뼛속의 문화를 아이의 골수에 심어주기 위하여 고난에 찬 민족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 준다는 이야기다.동시에 그들은 소재국의 문화 정수를 흡수하여 자기 문화를 세련화시키며 가는 곳마다에서 선진 생산력으로 발돋음하고 있다.그리고 이 땅에 알알이 흐트러진 그들은 자신만의 촘촘한 네트웍을 구축하고 상호협력의 튼튼한 뉴대를 가지고 있다.만약 조선족이 유대인의 반의반 강타를 맞았다면 어떠할가? 사람들은 문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140여개 국가에 600여만 명이 거주한다는 얘기이다.시대적 사연에 따라 체제나 이념, 력사와 가치관이 판이한 다른 나라에 거주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국경을 문지방 넘나들 듯이 누비며 교류하는 시대가 열리었고 조선족은 개혁개방이 길을 재촉하는 중국 땅에 서있다.우리들도  유대인의 문화 정신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나라와 민족의 발전에 거대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않을까! .아직도 명암(明暗)으로 테로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대인들보다 우리에게는 월등한 국내 국제적 환경이 있다는 얘기다.우리가 나라의 전략에 따라 문화 발전을 위해 새 철학을 결집하고 실천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제 사회에 공헌하고 민족의 웅비를 다지는 초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이중 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 문화를 고도의 수준면에서 건설해야 함을 되풀이함이다.   중국 특색의 조선족 문화는 강열한 민족성과 시대감각을 가져야 세계 속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매력적 가치를 창조한다.우리는 모범 공동체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축구문화 열기의 향상과 더불어 문화 전체를 더욱 높은 고지에 떠밀어 올려야 한다.정신문화강족、물질문화강족、민족문화강족、민족교육강족、민족단결문화강족으로 되자고 외친다면 누군가 고 비아냥거리며 야유할가!? (끝) 연변일보 2017-3-15
122    스마트카(智能汽车)에 대한 기대 댓글:  조회:2183  추천:2  2017-03-01
오래간만에 차를 몰고 나섰더니 찻길이고 보도이고 구석이고 구석의 구석까지 차들로 차 있었습니다.주차가 안되어 헤매다가 벌금에 얻어 맞을 비장한 각오로 서는대로 세워놓고 볼일은 두루마리 말듯 말아 버리고 돌아왔습니다.사무실에 돌아와 창문 너머에서 뭉기적거리는 차량 물결을 보며 과유불급(过犹不及)이란 리치를 되새기며 다만 거대한 물량만을 쳐들고 발전했다고 부르짖는다면 적어도 발전이란 개념에 대한 무지나 곡해(曲解)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되풀이 하게 되었습니다.오늘날 주장하는 인본주의(以人为本)의 원칙이 차문화에도 관철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자원절약、지속적발전、에너지절감、환경보호、교통개선、관념승화 등등 과제들을 풀어가기에는 슬기로운 해법이 절박하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게 유인(诱因)이었던지 요즘 인공지능 스마트카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작년 미국의 구글그릅(谷歌集团)이 개발한 스마트카가 300만 킬로를 하나의 작은 접촉 사고를 냈다는 옥하금뢰(玉瑕锦纇)의 결과로 운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인간이300만 킬로 무사고 운전이란 있었던가요? 만약 스마트카들만의 도로라면 900만Km 주행에서 사고 확율이 0.5%라 합니다.지난해 싱가폴에서도 세계 최초의 스마트택시를 시범 운행하였는데 원만한 성공을 거두고 바야흐로 정식 운영체제에 착수한다고 합니다.환상 속의 무인차가 만져지고 보여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스마트카는 자율주행차(无人驾驶车)라고도 부르는데 5가지 급수로 나뉜다고 합니다. 제1급,자동긴급제동장치 등 2개 이상의 자동  기능이 탑재된 것; 제2급,핸들조작、차선유지 등에서 자동이 가능하나 사람 개입이 필요한 것; 제3급; 자동화 시스템이나 긴급 상황에서 브레이크、핸들에 인간 조종이 필요한 것; 제4급, 사람이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적 판단으로 주행하는 것;  제5급, 사람없이 자동적으로 주행하는 등입니다.현재 구글의 수준은 이미 제4급에 이르렀고 2018년부터 상용화에로 돌입하려는 계획이라 합니다.5급 단계라면 따르는 사회적 관리시스템과 인프라 건설이 구비되는 그 때라 합니다.확실히 실질적 스마트카 시대가 도래하였고 이 산업 분야는 업체들간의 경쟁 격전지(激战地)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다녀야 산다는 견지에서 볼때 스마트카는 우리 생활을 뿌리채로 바꾸게 됩니다.우선 끼어들기、꼬리물기、과속운전、란폭운전、음주운전、대리운전 등 현상이 없던듯이 사라지고; 자가용차도 자기 이용 외의 시간은 택시 이용이 가능한데 자연 자원과 공공자원 그리고 에너지 절감이라는 효과를 발생하고; 택시의 개념에 질적인 변화가 생기고 택시회사는 앱(应用软件) 하나로 수만대의 차를 배차가 가능하여 차량 활용의 극대화와 교통체증의 불식과 온실가스 배출의 극소화란 실효를 발생하며; 차량관리、교통감독、사회정책 등 상부구조가 원래 양태를 철저히 쇄신하고 행정원가의 최적화와 행정효율의 최대화 목표를 실현하게 됩니다.따라서 인간이 차량 소유와 사용에서의 관념도 천지가 바뀌듯 변하게 됩니다. ​ 물론 스마트카의 대중적 보급、생산、판매는 시간을 소요됩니다.기술적 개발은 완료되어도 복잡한 환경에 적응 시키려면 시간을 검증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운행에 대한 사회적 확신이 뿌리내려야만 구매 의욕을 일으키게 됩니다.그리고 새로운 기기에 적응하는 사회 인프라 건설도 뒷따라야 합니다.더우기 사고 발생 이후의 원인 및 책임 소재의 확정과 상응하는 법제 및 윤리적 규정이 뒤따라야 합니다.일부 나라들은 이미 제도적 장치의 정비와 새 문명의 기기가 몰고올 충격과 마찰을 극복하는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확장이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 않지만 시대 표지로서의 스마트카는 제4차산업혁명이란 지능화 시대의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창이라 하겠습니다. 그 탄생을 바라보며 소수 사람들이 자기 소견대로 이런저런 논단을 펼치고 있지만 아무튼 미래의 변수에 대한 대처 방안들은 그 시대를 맞이하는 모두들이  고민하고 이해해야 할 론제입니다.이것이 바로 역사를 맞이하는 슬기로운 자태이자 자세라 하겠습니다.   촌사람이 자기 높낮이도 모르고 시대요 혁명이요 들썩거리지만 평안만을 바라는 초민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한다니 궁금증이 도지니 말입니다. 스마트카가 인간을 기계로부터 해방시키는 신비한 다른 세계가 저절로 눈앞에 언뜰거립니다.이제 육신의 쇠약이나 지체의 부자유로 운전이 불가능할 때 혹은 체내의 어느 부품이 노화되어 어정거리는 때라도 누구의 신세가 없는 나들이가 충분할 같습니다. 그러할진대 락빈가(乐贫歌)를 부르며 안빈락도(安贫乐道)의 나날을 보내도 결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부귀영화가 부럽지않을 것입니다.  (끝) 길림신문 2017-2-28
121    제4차 산업혁명시대, 조선족의 긍정적에너지 댓글:  조회:2020  추천:3  2017-02-15
작년 1월, 스위스에세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산업혁명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였다.새 시대를 맞이하여 독일、일본、미국 등 선진국들은 참신한 문명리기들의 개발과 적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사회교육 혁신、사회구조 조정、법규정책 제정 등 상부구조의 건설에 서두른다는 멧세지들이 부지런히 전해온다.그런데 혁명이란 물결이 파고(波高)를 높히며 몰려오고 남들은 보폭을 넓히며 빠른 행보를 보이는 때 우리의 준비 수준은 덤덤한 급수에 머무른 상태이다.급물살을 탄 력사 항선에 우리는 즉각 승선의 차비새로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해 독일의 스포츠제품 업체인 아디다스는 중국、베트남 등 저임금 나라를 전전하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10명의 인원으로서 로봇과 3D프린터(立体打印机)를 주축으로 한 년생산량이 50만 켤레인 공장을 본국에 세우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투입하였다.24시간의 작업체제로 운영되는 이 공장은 건물 면적이 4800m2일 뿐이고 소비자들은 홈페지에서 직접 디자인、색깔、깔창、신발끈 등을 직접 선택하는 주문이 가능하다.따라서 시체 변화에 즉시 대응하고 납기를 대대적으로 단축하고 한 켤레 단위 오더의 생산을 진행한다.수백명의 로동자를 요하던 노동집약형 산업이 자본 및 첨단기술 집약형으로 전화하는 일대 혁신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플랫폼(平台)에서 인트라넷(局域网) 기술을 이용하여 사물인터넷 정보 체계를 도입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된 이 공장은 차세대 기업들의 경영방식 개모(概貌)를 보여준다.물론 이 신생 사물은 어느 한 기업에서 발생한 일 것이나 새 산업시대를 예고하는 싸이렌으로 봐야 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그 사회의 특징이라면 디지털、생물학、물리학 등 개별 학과들이 융합되고 사회의 경제、문화、정치 생활의 매개 단위들에 인공지능이 보편적으로 주입되어 자주적으로 내외부를 연결하며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즉 인공지능 기기들이 임의의 시간에 지역、분야、업종의 제한을 넘어 자체로 인간이 지정된 과업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기술 혁명을 통하여 자연 조건과 육체 및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문화를 창조하고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다.그러나 새 기술의 도입은 동시에 로동력을 배제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인공지능(IA)도 인간의 체력과 지력을 대대적으로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와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위기감이 일각에서 고조되기 시작하는 현실이다.미국에서는 2020년까지 500만개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전망이다.향후 20년간 아시아 노동자 1억3700만명이 로봇에 일자리를 떼운다고 소문도 있다.생계와 직결되는 취직이 인류가 바로 직면하게 될 엄연한 도전이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의 뉴스가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남의 뒤만 따른다는 우리 나라 업체가 전체 참여자의 1/3을 차지하고 세계의 최고를 겨루는 성과를 수두룩히 내놓아 참여자가 아닌 주인의 지위에 섰다는 것이다.이 사실은 우리도 나라와 함께 변혁의 맴돌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방증이다.이 새로운 경쟁 속에서 우리의 결정적인 무기는 무엇일 것인가?더 말없이 역사적으로도 현재로도 실증되고 실증하는 즉 두 문화 세계에서 자유내왕하고 두 부류의 문화인과 동시 소통하면서  타인의 신뢰를 받도록 하는 중한이중문화 이것이 답이다.우리는 지속적으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하는 조선족 문화、특유한 서비스 민습、우아한 예절 전통 그리고 민족융화 정신이 넘치는 을 추구해야 한다.조선족 발전사를 보면 이 문화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이고 초강력 소프트파워(软实力)였다는 사실(史实)을 손금보듯 할 수 있다.   새 시대에도 걸출한 엘리트가 박절히 수요될 것이나 강대한 인공지능의 작용으로 수요량은 급감할 것이고 전통적인 일자리가 다부분 사라지는 대신 신형의 서비스 업종이 줄줄이 생기고 소통능력이 뛰어난 노동자를 대량으로 수요하게 된다.그리고 사람마다 일생동안 적어도 몇개의 일자리를 전전해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무성하다.이에 적응되는 인간의 기본기(基本功)은 천차만별일 것이나  골자 인프라(基础设施)는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이해하고、접수하고、해석하고 무수한 타인과 수시로 교류를 전개하는 기능이다.그렇다면 이중언어를 기본으로 하는 민족문화로서 경쟁력을 결집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조선족 삶의 탄탄대로일 수 밖에 없다.   정보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지식과 업무의 습득은 날로 간단해 지고 있다.그러나 언어와 문화의 습득은 독특한 환경에 물젖으며 연마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조선족은 자신만의 긍정적 에너지-민족문화로서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바로 문화의 전승과 발전이 유비무환(有备无患)이란 최상급 대비책이다.   조선족은 명견만리(明见万里)의 선견지명까지 필요가 없고 명견백리(明见百里)의 문화적 안목만 있어도 잘 살기에는 애당초 문제가 없다.. (끝) 길림신문 2017-2-14
120    불원장래의 직업세계 댓글:  조회:2046  추천:3  2017-02-13
2016년 1월,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世界经济论坛)에서 제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면서 전 세계는 미래의 생활상에 대하여 다각적 분석을 거듭하고 있다.그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직업에 대한 여러가지 예측들인데 누가 이렇다 할 미래적 세분도표(细分图表)를 제기될 수는 없겠지만 전통 사회에 파괴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직업구조에 격변이 일게 된다는 추론만은 틀림이 없다.   세계 근현대사상의 3차례 산업혁명, 즉 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관 탄생을 표지로 한 제1 차산업혁명,19세게 전반기의 전동기 탄생을 표지로 한 제2차산업혁명,20세기 후반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을 표지로 하는 제3차산업혁명을 이름하는 것이다.이 매 한차례의 혁명은 인류 문명의 거대한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세계력사를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 올리었다.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의 기초 우에 발명된 지능화 기기들이 결합되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자동화시켜 산업 현장과 생활 영역의 틀 전부를 전복적으로 세대교체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 존재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독일의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가 600여명 노동자 규모이던 중국 신발 공장을 철수하고 독일에 10명의 노동자로 연간 50만 켤레 생산량을 완수할 수 있는  로봇 공장인 스피디팩토리를 가동하였다. 사람 대신 로봇이 재단하고 3D프린트(立体打印技术)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고 납품한다는 것이다.고객이 인터넷으로 맞춤형 운동화를 주문해도 5시간 이내로 납품한다는 참신한 경영 모델이다.그 동안 저인건비를 찾아 한국→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나라들 사이로 철새처럼 오가던 기업이 로봇으로 자기 안방에서 생산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이제 과학연구 분야를 포함하여 전통적인 모든 일자리의 인력이 대량적으로 줄고 직업 구조는 아연하게 바뀐다는 명증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려명기를 맞으며 창조와 변혁의 물결이 거침없이 몰려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인공지능、3D 프린팅、빅데이터(大数据)、사물인터넷(物联网)、클라우딩(云计算) 등 제3차 산업혁명에서 탄생한 디지털 정보통신 기기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구조적 혁신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인간의 일상 생활이 바뀌우는 것은 물론 인류의 생산,류통,분배,소비의 생태계가 완연히 뒤집어지고 사회 관리시스템도 여지없이 교체되는 혁명기가 도래하게 된다.지금은 기계력과 정보력 수단으로 밥을 먹는다면 오래지 않아 정신력을 가진 기계들의 자동 운전을 뒤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 변혁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고도의 압축성 융합과 결합으로 하여 자본이나 지식의 양적인 작용보다 개방、협력、교류가 훨씬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공동한 인식이다.이 무한 련결 시대에서 우리 매개인은 세계적인 네트웍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능의 하나는 국제적 교류、타문화와 융화、원활한 의사소통이다.일자리를 말하면 지능기기가 대체 불가능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간 대 인간 즉 인간 중심적 사업에 투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산업세계의 변화에 따라 부동한 문화 인간과의 사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여야 한다.그렇다면 교류와 연결의 매개물인 다종 언어능력 보유자와 다문화 소유자가 우선 선택이 된다는 판단이 도출된다.   결국은 미래 직업 세계에서 고급인력을 요하는 직업은 지능화 기술에 의하여 고도로 압축되고 정밀화되어 극소수의 최정예 엘리트들의 몫이 될 것이고 일반 사회의 최우선 적격자의 인프라는 언어이고 문화지식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판단이다.그러나 변화는 이러할진대 선택은 여전히 인간 자신의 몫으로서 가 된다.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남의 뒤를 무작정 따르며 거친 파도에 휘말리어 자기 문화를 홀대하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어려운 시절 문화만으로 생계 걱정이 해소되던 력사가 있지 않았던가.미래의 중국 땅이란 무대에서 우리 문화를 자본으로 해야 할 고부가치 사업이 산적하여 대기하고 있다.   제4차산업혁명을 향해 중국도 한국도 세계도 다급히 발전하는 변화를 거듭한다.조선족은 천시,지리,인화(天时地利人和)의 도원경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숱하다.조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문화(조한융합문화),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발효하는 배양기이고 민족의 복지를 량산하는 플랫홈(平台)임을 새겨지도록 기억하자. (끝) 흑룡강신문 2017-2-13
119    정유년의 소망 댓글:  조회:2108  추천:0  2017-02-09
정유년이 박두하니 사람들이 자기의 리념과 포부에 따라 가지가지 념원을 피력하는 연례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음력설을 전통 명절로 하는 나라의 수뇌들은 대체로 국가적 념원으로서 국태민안(国泰民安)이나 부국륭성(富国隆盛)이나 평화발전을 기조로 하는 축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기맥이 상통하는 여러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치 철학에 따라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추앙하는 숭배물이나 가상세계를 향해 절절한 희원을 설파하거나 독실한 기도를 올릴 것이다.사람마다 처한 립지나 상황이 천태만상이고 사상도 제각각이니 그 희망도 천차만별일 것은 자명한 리치이다.그러나 누구를 불문하고 행복에 대한 갈망이라는 이 범위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새 해 나더러 나라를 위해 기원하라면 아래 몇 가지다. 우선, 기준 함량에 미달된 공직자들이 인민이 준 권력을 팔아 리속을 채우는 부정부패를 더 세차게 척결하여 공직사회가 문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된 정토락원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것이다.그리고, 가난을 떨쳐내는 발빈(拔贫) 전쟁이 대첩(大捷)을 올리고 돈이 없어 학교문을 등지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눈물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다음,지난해 억울한 죄명을 덮어쓰고 법정의 기계에 생명을 잃은 몇몇 젊은이들이 오명이 소설(昭雪)되고 무죄로 평반(平反)이 되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어 사람들을 희비가 교차된 사색에 몰아 넣었었다.재심하고 결백을 선고했다는 자체는 나라의 법제 건설이 진보의 길에서 질주한다는 명증이겠다.그러나 자식을 잃고 거친 비명을 지르며 피맺힌 절규를 터트리는 부모들의 슬픔을 보며 번영하는 법치사회 건설이 속도를 더 내고 이런 참사들이 다시 재연되지 말라고 빌고 싶었다.내 나라가 개혁개방의 길에 쌓인 수많은 골칫거리들을 씻은 듯이 풀어버리고 대명천지의 태평성세를 향해 매진하는 닭해이기를 바라는 진심이다.   해마다 빌어도 그 발원이 허공 삿대질이 되는 게 있다.지극히 간단한 지배의 야망와 이데올로기 갈등이 원한의 씨앗이 되어 원쑤를 갚는다는 무차별 테로 참극이 지구촌의 구석구석에서 끊임없다는 것이다.심지어 8세되는 친딸까지 자폭에 내몰며 영웅성을 과시하는 전사도 있다하니 벌어진 입이 닫기지 않는다.피눈을 부릅뜬 열혈 전투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존 기능이 최하급수인 가련한 로약자、부녀자들과 엄마 품속의 여린 생명들이 터전을 잃고 기한에 떨다가 무참히 살해되고 아사(饿死)한다.야만시대 원시부족들의 적수 소멸 야성이 깡그리 전승되고 적나라하게 발휘되어 나와 내 무리를 위하여 네죽고 내죽는다는 판가리 싸움이 지속되고 복수극이 곰비임비(此起彼伏) 일어나는 것이다.인류 복지에 이용되어야 할 최신 기술과 문명의 리기(利器)들이 동류의 살륙에 꺼리낌없이 투입된다.잔학한 야생동물 세계에 이 같은 동종 학살이 있었던가! 대립을 대화로 바꾸고 대결을 협력으로 교체하는 지혜가 인간에게 없을 것인가!그 세월이 요원하기만 하다.   무심한 세월의 꽁무니를 숨 가쁘게 따르며 락오자 무리에 끼이지 않으려고 바등거리다 거울을 보니 어느새 서릿빛 감도는 상발(霜发)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 사이 나름대로의 목표를 견주며 올리 뛰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고초와 인고(忍苦)의 고개를 넘으면서 희노애락의 맛들을 고루 보며 살아왔다.이젠 부질없는 번뇌나 망상을 비워버리고 엉뚱한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는 맥락에서 나의 참모습을 다시 랭엄하게 지켜볼 심사이다.해해년년 진한 감동이나 간절한 념원을 곱씹어도 바라는 것은 묘하게도 나를 비켜가고 오는 것이란 우연히 왕림하더라는 인생 경험이 있다.그러니 는 어리석은 과욕은 가슴의 한 구석에 처박고, 목표의 성불성(成不成)은 시간과 창조주에 떠맡기고, 매일을 열심히 살며 인생의 뒷모습 치장에나 전념하려 한다.   그래도 자기 소원이 따로 있다는 진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어느 쪽에서 봐도 모난데 없고 요란한 경력도 쌓지 못한 밋밋한 인물이라 으리으리한 희망을 토한다면  분수를 몰라도 웃기게 모른다고 믓사람들이 입을 싸쥘 것 당연하다.그러거나 말거나 다만 일개의 민초 둥지인 내 일가에 그저 평안무사란 사자성어가 명실공히 도사리고 정주(定住)했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2017-2-9  
118    민족 요람의 수호자들 댓글:  조회:2107  추천:2  2017-01-25
정유년 닭해를 맞아 회사들이 송구영신 파티를 벌이기에 열을 올리며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을 뛰어넘어 제구포신(除旧布新)한다며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나라가 펼치는 뉴노멀(新常态) 시대의 새로운 전략에 부응하여 회사의 위기 상황을 반전하여 새도약의 기회로 만들어 회사를 리드해 간다는 단골말들도 부지런히 등장한다.그런데 제살이가 시급하여 사고팔고(四苦八苦)의 난항을 겪으면서도 민족 후손들의 성장에 온정을 보내주는 회사들과 모임들이 이 동네에 여럿이 있다.   요즘 어느 회사의 년말 총화 모임에 참가하여 하루를 보내였었다.대낮 행사를 마치고 저녁은 뜨거운 기분을 무르익히며 파티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마지막은 느닷없이 몇몇 명가들의 명화 몇점을 경매에 내부치는 절목이다.결국 여러 지성인들의 을 거쳐 경매를 낙찰시켜 몇만원의 경매액을 실현하였다.이 금액은 이 동네 조선족학교와 에 지원금으로 보낸다는 것이다.이 회사 뿐만이 아닌 여러 회사들과 단체들이 늘 여러가지 방식으로 모금하여 지원한다는 멧세지이다.내 식구와 내 무리들과 민족문화 발전을 동시에 아랑곳하며 후대들에게 애정과 격려를 보내는 진정에 감동 이외의 찬사가 따로 없었다.   이 동네 조선족 학교는 력사가 오래고 진학율이 높아 지역 이미지가 쏠쏠하다. 학교는 어느 구석에 숨어있고 건물은 보잘것없이 쑬쑬해도 미래에 대한 동경과 희망이 꽉 찬 누구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성당이다.그는 국가 민족정책의 지원과 이미 쌓아진 기반에다 교직원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교육의 선두를 달리지만 조선족의 대량적 류입으로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자금이 부족한 시련을 톡톡히 겪고 있다.옹달샘한글학교는 누군가가 무료로 제공하는 림시 교실을 철새같이 찾아다니는 이다.지리적 상황으로 조선족학교 입학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말 시간에 민족 언어와 춤노래를 가르치는데 15명의 열성자들이 무일푼으로 무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후대들에게 문화를 전파하는 착한 천사들과 지역 사회의 지원이 학교가 버티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세월의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소슬한 바람을 실컷 마시며 민족의 새순을 틔운다는 기특한 선생님들의 포부야말로 지선(至善)에 푹 젖은 선녀의 마음씨이다.   우리 민족이 시대의 격변 속에서 민족 교육의 쇠락과 가치관 혼돈의 고전을 겪고 있는 때 문화의 전승을 위하여 후대 육성에 사회적 관심을 모은다는 사실은 황페한 터전에 내리는 가물의 단비가 아닐 수 없고 고민에 찬 민족교육가들께 보내는 설중(雪中)의 송탄(送碳)이 아닐 수 없다. 문화 다양성의 보존이 나라와 세계적 과제로 제기되고 우리의 민족문화 가치가 끊임없이 평가절상(升值)이 되는 때  교육은 도리어 가장 위험한 형세라고 곳곳에서 경종을 두드린다.문화의 보존과 부가가치 창출은 민족 존재의 필요조건이다.문화 전승이 없으면 민족이 사멸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 문화가 타인의 외면을 당하면 민족은 존재의 기반을 잃게 된다.문화 기갈이 든 요람의 수호자들을 바라보니 백화총중(百花丛中)의 백미(白眉)로 도두보인다.   해외 한민족의 일반적 여론을 보면 조선족 사회를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서의 무형자산이라는 시점에서 주시하고 있다. 만일 조선족 문화가 없었더라면 헤아릴 수 없는 기회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 일반론이다.물론 조선족도 전체 한민족의 중국내 전략적 자원이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기 발전을 실현하고 있다.그러나 오늘 조선족의 앞에는 타지역 한민족의 협력자로만 되던 시기를 뛰어넘어 중국과 유러시아 대륙에서 나라와 세계의 발전 조류에 합류하여 독자적인 우수한 민족으로 발돋움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부과되고 있다.위해서는 조선족 스스로가  문화 교육을 발전시키는 과업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고 절박하다.   세계화 물결과 자신이 처한 지정학적 원인으로 이 동네 조선족의 인구수는 끊임없이 늘고 내 아이가 민족문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이 씨앗들이 뿌리내릴 토양을 만드는 역할은 기성세대의 몫이요 신성한 의무이다.미래 세상을 알 수 없는 천진한 아이들,오늘은 좌충우돌하며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지만 이 동자소랑(童子小娘)들이 다가오는 시대를 짊어지고 풍미할 인재들이고 그들의 희망과 가치관은 우리의 내일을 가늠할 잣대이고 평가기준이 된다.오늘 이 요람을 지키며 돈을 모으는 지성인들이 이 미래 세대의 영광을 공유할 지배주주(控股股东)들이다. (끝) 2017-01-24길림신문
117    송구영신과 선물 댓글:  조회:2147  추천:1  2017-01-06
매일없이 택배물을 수거하는 순풍 택배원에게 장사 형편을 물었더니 일단 생계유지는 문제없는데 매출이 하락의 일로를 걷고 있다는 이야기다.과열되었던 시장 경기가 주춤하고 경쟁자가 많아지는 구조적 변화가 근원이지만 주고받는 선물이 급감하는 물종(物种) 구성의 변화도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최근 몇년간 선물이 해마다 전년대비로 반쪽이 되더니 올해는 있으나마나 할 정도라는 것이다.중앙의 반부패 시책과 일벌백계(一罚百戒)의 추궁이 특효를 낸다는 실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원초적인 선물은 앞문으로 들어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당당함이 특성이다.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인간 관계 속을 살아가면서 문안、감사、격려、위로、칭찬、지지、신뢰 등 인정나눔의 목적으로 촌지를 돌리며 돈독한 정의를  표시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문화 속에 아름다운 소행으로 자리잡고 있다.이러한 선물은 분명히 아름답고 따스한 심정의 표현으로서 시비 대상이 될 수 없다.이러한 선물 거래가 없다면 아마 인정이 매마르는 야박한 세월이 된다고 모두가 수런거릴 것이다.   그러나 천박한 금전숭배의 만연으로 순수해야 할 선물이 뢰물로 변질되어 사화 문제가 된지 오래이다.사익을 위하여 권력자에게 선물의 명목으로 재물을 넘겨주며 은밀하게 뒷문으로 거래하는 부정 행위는 법제와 규제를 능멸하는 행악으로서 사회 여론과 매체들이 지탄하고 적발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주는 자는 그 반대급부로 뒷문 열쇠를 넘겨받고 받는 자는 공권력을 남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다.선물의 외피를 쓰고 공여되는 이런 금품은 여자수자(与者受者)가 동시에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침식하는 부패균으로 전화되고 있다.인민이 부여한 권좌에서 알량한 권세자들이 로 전락되고 부정축재를 감행하는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며 인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현실 생활에서 선물과 뢰물 사이의 선을 확실하게 긋기가 애매하기에 선물을 정중히 전달한다는 자체도 그리 록록치 않은 문제인 것이다.비록 사교적 명목이고 관습적인 사례(谢礼)로 제공되는 금품의 수수(授受)라도 대가 관계가 발생되는 경우라면 뢰물로 규정된다.이러한 회뢰 방식으로 사회의 공익과 법제를 무시하는 위법행위가 시장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대량 존재하며 권력자들은 친분이라는 뉴대를 통하여 수뢰 목적을 달성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이러한 불투명한 직무범죄는 합법 혹은 불법의 정성(定性)에서 상당한 혼란을 조성하게 되고 동시에 사법 행정에서의 난제로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선물에 대한 유연한 사고방식이 공직 사회의 금품 수수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어느 나라에서는 (일명-김영란법)란 법률을 제정하여 공직자가 원활한 직무수행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발생하는 사교의례、부조 등의 목적으로 접대하거나 제공되는 금품의 상한액을 설정하고 관련 공직자들을 규제하면서 부패 방지의 일정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문이다.장기적인 사회적 효과에 대하여 두고 볼 일이지만 부실한 공직자의 아집을 다스리는데서 참고로 두고볼 조치이다.아무튼 부패 방지의 고민이 절실한 현실에서 자정청렴이란 공직관이 재정립되어야 할 과제가 우선이지만 선물과 뢰물에 대한 대중적 관념의 쇄신도 청렴사회 건설의 중요한 문화적 기반이 된다.   선물과 뢰물이 뒤썩이고 사례와 매수가 햇갈리는 일그러진 선물문화가 상품사회에서 부패를 키우는 부식토로 되고 있는 오늘이다, 선물의 외피를 쓴 뢰물의 환부를 도려내는 제도적 장치 다시 말하면 권력이 해빛 아래서 운행하도록 새장 속에 가두는 개혁적 조치,공직자들이 부패와 절연한다는 결연한 의지, 나라를 정화한다는 참뜻이 슴배인 대중의식이 삼위일체를 이룬 이성적인 선물 문화가 이 땅에 정착되기 바란다. (끝) 2017-01-05 길림신문
116    진정한 애족(爱族). 댓글:  조회:2685  추천:3  2016-12-14
인습에 굳어진 관념의 뿌리를 뽑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요즘 사이트를 들여다 보니 우리 민족의 단점을 지적하고 병폐를 까밝힌다고 반민족이요 반역자요 등등 옛날 들을 비판 투쟁할 때 써먹던 독설이 유령처럼 떠돌아 기분이 씁쓸했다.그들의 근거라면 자기를 비판하였으니 죽어야할 놈이고 덮어진 치부(耻部)를 까밝혔으니 불공대천의 원쑤이다라는 이것이다.력사담 속에 깊이 묻혀졌던 덤터기와 오명을 주어들고 을러메는 작태를 보며 조선족의 발전을 저해하는 반문화적 언어도단이라고 의식했다.   어느 민족의 내부에나 다 부동한 가치관과 견해의 충돌이 불가피적으로 존재하는데 이것은 가타부타 여지없이 정상적으로 당연하다.인간는 이런 갈등 속에서 부단히 합의하여 의견일치를 가지거나 구동존이(求同存异)하며 진보를 이룩하는 것이다.여기에서 호상비판은 모순 해결의 자연발생적 선수단(善手段)이고 집사광익(集思广益)으로 난제를 풀어내는 최고의 해법이다.허심탄회하게 비판을 주고받는 민족이어야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원동력을 극대화시켜 인류 진보의 앞장에 서게 된다.세계가 일체화로 나가는 마당에서 부동한 나라와 민족 사이의 자본、지식、정보、인재 등등 자원적 요소들은 서로 활발하게 융합되어 발전하고 있다.우리가 비판으로 자기의 환부를 치유하고 면역성을 제고하는 것은 이 력사적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우선,반격자들의 반박 론리를 보면 부동한 개념을 혼동하거나 슬그머니 바꿔가지고 둘러방치기(偷梁换柱)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대는 것이다.선의적인 비판인데도 나를 반대하고 증오하는 것이라며 어거지를 쓰거나 민족을 해치는 고의적 가해행위라며 억지감투를 씌우며 적대모순을 조장하는 것이다.거기다 니는 흰색이 아니니 꼭 흑색이라는 조폭한 이분법을 치켜들고 상대를 죽으라고 파몰아치며 여론을 오도하고도 그 호의에 대하여 어정쩡(模棱两可)한 선입견으로 엉터리방터리 결론을 내려버린다.이런 지레짐작으로 타인의 진언을 속단하고 정문일침(顶门一针) 충고에 단세포적으로 되트집을 잡는 소행이 애족인가?를 스스로가 생각할 바이다.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부족점과 결함이 있을 것은 당연이고 지어 결함투성이인 경우도 많고많다.다만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그를 묵살하고 방관시한다면 적어도 부작위적 소극 행위일 것이고 만약 다수가 묵시하고 페목(闭目)하며 방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잠재한 민족 위기이다.례하면 우리 민족의 결함으로 거론되는 원칙보다 편법을 추구하고、근면보다는 한탕치기에 열중하고、정의보다 물질유혹에 쉽게 끌려가며、내면보다 외면을 중요시하고、상생보다 질시와 헐뜯기를 잘하고、문화정신보다 물질주의가 팽배하는 등등 부끄런운 폐단들이 수두룩한데 이를 털어내고 비판하여 반복을 막는 것이 반민족이라 찍어말한다면 얼토당토도 아니하다.   우리의 민족 사회가 해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민족의 취약점을 보강하고 재도약을 실현하는 것이 시급하고 시급하다.민족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우리는  자체 민족 특색의 변증적인 비판관을 민족 의식에 뿌리를 심어야 한다.자기 민족에 존재하는 흠결이나 착오에 대하여 비판의 날을 세운다면 이것은 냉철한 사랑이다; 민족의 융성발전에 찬사를 올린다면 이것은 자긍스러운 사랑이다; 민족의 수난이 비통하다면 이것은 련민의 참사랑이다.지구촌이 한 부락으로 되어가는 때 단점을 감싸안고 숨긴다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남에게 따돌림을 당해 패전하는 온상이 된다.민족의 사멸이란 남에게 소외되어 돌림쟁이가 되였다면 시작이 걸린 것이다.   우리는 수시로 자기를 반성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예지로서 민족사회의 강인한 체질을 확보하고 민족의 이미지와 가치를 제고시켜야 한다.우리는 나라 땅에서 세계 한민족의 교두보로 되어야 하고 중국이 세계 한민족과 교류하는 전진기지로 되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위하여 신랄한 비판정신, 이것은 우리가 세계 민족의 수림 속에 서 있을 수 있는 필수적 내공이고 기본기임을 명기해야 하겠다.   민족의 융성발전을 위하여 생동활발한 조선족의 비판문화를 수립하고 정착시켜야 한다.우리의 문화 화원에 이성적이고 자연스러운 비판、자아비판과 역비판의 현대문명  화단을 꾸리려 한다면 부질없는 시도일가!? (끝) 흑룡강신문 주일특간 2016.12.3
115    불원장래의 직업세계 댓글:  조회:2157  추천:2  2016-12-06
2016년 1월,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산업혁명을 주제로 토론을 벌이면서 전 세계는 미래의 생활상에 대하여 다각적 분석을 거듭하고 있다.그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직업에 대한 여러가지 예측들인데 누가 이렇다 할 미래적 세분도표를 제기될 수는 없겠지만 전통 사회에 파괴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직업구조에 격변이 일게 된다는 추론만은 틀림이 없다.   세계 근현대사상의 3차례 산업혁명, 즉 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관 탄생을 표지로 한 제1 차산업혁명,19세게 전반기의 전동기 탄생을 표지로 한 제2차산업혁명,20세기 후반기의 컴퓨터와 인터넷 발명을 표지로 하는 제3차산업혁명을 이름하는 것이다.이 매 한차례의 혁명은 인류 문명의 거대한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세계력사를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 올리었다.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의 기초 우에 발명된 지능화 기기들이 결합되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동시에 자동화시켜 산업 현장과 생활 영역의 틀 전부를 전복적으로 세대교체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일자리는 거의 대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그 존재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독일의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디다스가 600여명 노동자 규모이던 중국 신발 공장을 철수하고 독일에 10명의 노동자로 연간 50만 켤레 생산량을 완수할 수 있는  로봇 공장인 스피디팩토리를 가동하였다. 사람 대신 로봇이 재단하고 3D프린트(立体打印技术)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고 납품한다는 것이다.고객이 인터넷으로 맞춤형 운동화를 주문해도 5시간 이내로 납품한다는 참신한 경영 모델이다.그 동안 저인건비를 찾아 한국→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나라들 사이로 철새처럼 오가던 기업이 로봇으로 자기 안방에서 생산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이제 과학연구 분야를 포함하여 전통적인 모든 일자리의 인력이 대량적으로 줄고 직업 구조는 아연하게 바뀐다는 명증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려명기를 맞으며 창조와 변혁의 물결이 거침없이 몰려오고 있다. 인공지능、로봇、인공지능、3D 프린팅、빅데이터、사물인터넷、클라우딩 등 제3차 산업혁명에서 탄생한 디지털 정보통신 기기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산업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구조적 혁신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인간의 일상 생활이 바뀌우는 것은 물론 인류의 생산,류통,분배,소비의 생태계가 완연히 뒤집어지고 사회 관리시스템도 여지없이 교체되는 혁명기가 도래하게 된다.지금은 기계력과 정보력 수단으로 밥을 먹는다면 오래지 않아 정신력을 가진 기계들의 자동 운전을 뒤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 변혁의 본질은 생산수단의 고도의 압축성 융합과 결합으로 하여 자본이나 지식의 양적인 작용보다 개방、협력、교류가 훨씬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공동한 인식이다.이 무한 련결 시대에서 우리 매개인은 세계적인 네트웍 속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고 진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기본기능의 하나는 국제적 교류、타문화와 융화、원활한 의사소통이다.일자리를 말하면 지능기기가 대체 불가능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간 대 인간 즉 인간 중심적 사업에 투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산업세계의 변화에 따라 부동한 문화 인간과의 사교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의 폭과 깊이를 확보하여야 한다.그렇다면 교류와 연결의 매개물인 다종 언어능력 보유자와 다문화 소유자가 우선 선택이 된다는 판단이 도출된다.   결국은 미래 직업 세계에서 고급인력을 요하는 직업은 지능화 기술에 의하여 고도로 압축되고 정밀화되어 극소수의 최정예 엘리트들의 몫이 될 것이고 일반 사회의 최우선 적격자의 인프라는 언어이고 문화지식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판단이다.그러나 변화는 이러할진대 선택은 여전히 인간 자신의 몫으로서 가 된다.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시대의 주체가 되기 위해 남의 뒤를 무작정 따르며 거친 파도에 휘말리어 자기 문화를 홀대하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좋다.어려운 시절 문화만으로 생계 걱정이 해소되던 력사가 있지 않았던가.미래의 중국 땅이란 무대에서 우리 문화를 자본으로 해야 할 고부가치 사업이 산적하여 대기하고 있다.   제4차산업혁명을 향해 중국도 한국도 세계도 다급히 발전하는 변화를 거듭한다.조선족은 천시,지리,인화(天时地利人和)의 도원경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숱하다.조한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한 조선족문화(조한융합문화),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발효하는 배양기이고 민족의 복지를 량산하는 플랫홈(平台)임을 새겨지도록 기억하자. (끝) 길림신문 2012-12-5
114    제4차산업혁명을 안아오자 댓글:  조회:2095  추천:1  2016-11-25
요지음 대졸  구직자 주류는 90년대 초반의 출생들이다. 이들은 개혁개방이 질주하고 민족의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이 생계유지와 돈부자 꿈을 이루려 이국으로 도시로 향해 지리멸렬 헤쳐지던 시기의 산아들이다. 때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으킨 정보화 물결이 세상을 휩쓸고, 민족인구의 격감이 시작되고 민족교육이 곡저에서 떨어지고 민족교육에서 아이를 이탈시키고 민족사회가 절딴난다고 울부짓던 혼돈의 란시판 이것은 그들의 요람기었고 피치 못할 불확실시대였다.   그들중 두사람과 한담의 기회를 만들었다. 한사람은 왕청의 어느 림장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조선족이 희소하고 학교가 없는 까닭으로 조선어는 백판생판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 민족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한국의 언어연수를 결행하였다. 현재 이 동네 외자 기업의 주력 사원으로 떠받들리며 향복(享福)을 한다. 다른 한 친구는 길림시의 어느 조선족 동네의 태생인데 유치원부터 민족 교육을 이탈해 조선어가 새까맣다. 부모들이 아무쩡에도 못쓰는 조선어는 왜 배우냐며 자초에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 차이로 양자의 취직、승진、급여、지위 등 생활에서는 천양지차가 생기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포부도 운니지차(云泥之差)로 크다. 민족문화 문맹을 벗어 내친 이중 문화인과 내 선택이 아닌 누구 때문에 민족문화를 잃은 단일 문화인, 이 두 사람의 거취로부터 유자 부모들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내가 고민했다.   1990년대, 정보통신 산업의 흥기를 선두로 일어난 제3차산업혁명은 세계를 국경이 없는 인터넷 동네로 만들어 놓고 이 땅에 디지털(数字) 디엔에이(遗传基因)를 무차별적으로 퍼트려 인류 생태계를 마구 허지버려 놓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디지털 인공지능 기기들이 인터넷과 야합하면서 또 제4차의 산업혁명이 일으키는데 15~20년 이후면 사회는 또 상전벽해의 소용돌이에 말려 든다며 소문이 자자하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들과 약싹빠른 일본 기업들은 언녕부터 참신한 연구개발에 천문학적 투자를 퍼부으며 새 문명을 영접하기 위해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우리가 어리벙벙하는 사이에 인공지능 문명 리기(利器)들은 마구 융합되면서 새 산업 시대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사물인터넷(物联网),빅데이터(大数据),립체프린터(3D打印),로봇 등등 이름 모를 디지털 발명물과 기기들은 산업변혁의 거대한 츠나미(海啸) 를 응축하고  있는 현실이다.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무언의 경고를 주고 있다. 맑스의 말대로라면 새 생산력은 생산방식, 경제토대, 상부구조와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세계 구도마저 송두리채 바꾸게 된다. 비록 지구촌의 곳곳에서 억압、정복、점령、이데올로기(主义)를 위한 테로、전쟁、살륙과 대립이 끊임없이 처절히 자행되어도 매정한 력사법칙은 일체를 불문하고 자기 론리로 새 시대를 몰아온다.   그런데 어정거리는 우리들 속에서 이 앞날이 아직도 옛말처럼 들린다. 미구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변화에 대비하여 기성 세대들과 태몽을 꾸어가는 커플(情侣)들, 더우기 민족 문화를 홀대하는 어시들은 즉각 신조류에 동참해야 하고 후손들 교육에 대해 왜곡된 미래관과 세계관을 가졌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날 근시안적 생각에 아이들을 도구시(道具视) 하던 교훈을 살려 민족문화의 긍정적에너지(正能量)를 아이들이 자력갱생하고 입신출세하는 동력원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물론 애들에게 과학、근면、사랑、희생、봉사、배려과 같은 인간 본연의 정신을 주입해야 한다. 동시에 천부적인 민족언어와 문화로서 동양미 특색을 지닌 새 력사의 인류로 키워야 한다.   인공지능을 표지로 한 새 시대가 되면 인간 로동력 중심의 산업은 막을 내리고 기존의 과학연구와 생산제조 방식에는 천지개벽이 생기게 된다. 사회는 극소수의 최정예 인력과 무수한 신형의 지능화 서비스 인재들이 결합하는 노동구조를 형성하게 되고 인간 욕구의 중심은 물질생활에서 정신생활에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면 고급 엘리트는 물론 레저,관광,오락 등 산업과 사람을 마주하는 대인 서비스 산업이 폭발적 수요를 일으킨다고 미래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이 때의 인간은 우선 자신의 언어와 문화의 깊이와 폭에 따라 활동 영역을 선택하고 점령하게 된다. 더 말하면 일반적 기능 이외에 여러 문화와 언어를 소유한 자가 남보다 한 배 되는 생활 공간과 발전 기반을 가지게 된다.   새 시대 무대에서 이중언어와 이중문화 강족(强族)인 우리 민족구성원들은 가 될 결정적으로 충분한 가능성이 주어지고 있다. 이 변곡점(变曲点)에서 후대 양성에서 내 패착으로 내 아이를 문화장애자로 만들었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민족 교육에 만강의 열심과 고심을 경주(倾注)해야 한다.   새 력사를 앉아서 맞지 말고 달려가 안아와야 한다. 연변일보 2016-11-23  
113    늦가을 서정 댓글:  조회:1983  추천:0  2016-11-23
달의 운행 궤도에서 성공과 원만을 상징하는 만월은 선조적(线条的)적으로 기우는 만월(弯月)과 공존하기에 거룩하고, 바다의 미세기(潮汐)에서 파죽지세를 상징하는 밀물의 만조(满潮)는 썰물의 미련없는 퇴조가 있어 도도하게 장엄하다.가을이 저물어가니 수목들에 붙딸리어 살던 잎새들이 한살이 사명을 마치고 착생하던 가지를 별리(别离)하며 서슴없는 리별을 선고한다.나무는 오는 엄동을 대비하여 묵은 이파리를 떨어내고 나목으로 되며 환생을 위한 동면의 초읽기로 들어간다.사철의 리듬에 맞춰 버림과 부활을 거듭하는 나무의 야멸찬 용단을 만월이나 만조의 숭엄한 자태에 슬그머니 비견해 보게 된다.   요즘은 일교차가 심하여 해가 떨어지면 아쓸한 한기가 몰리는데 건넛산 상록수들은 아직도 녹색 풍경을 고집하며 도고한 생명을 뽐내고 있다.그러나 이 동네의 가로수 주력인 은행나무과 단풍나무는 잎에다 노란연두와 연황동 물색을 잔뜩 올리며 늦가을의 물후(物候) 풍경을 연출한다.그들은 봄여름의 햇빛 속에서 산소를 방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광합성 작용으로 병육(并育)하던 나무에 연륜을 쌓아놓고 락엽귀근(落叶归根)이란 갸륵한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아직도 취동(吹动)에 우슬거리며 조락을 강열히 저항하는 잎사귀들의 모습은 한생의 대미(大尾)를 화려하게 장식 못한 아픔을 감추려는 몸부림이 아닐까.때가 되면 비장히 작별하는 수엽들이 무아주의와 애타주의를 실천한다고 인간화하여 음미해 보니 남에게 행복을 반납하고 자연에 회귀하는 당돌한 소행을 지켜가는 그 생명철학에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싶다.   수목들의 세계에서 잎의 령락은 새로운 생과 사를 거듭하는 숙연한 륜회 법식의 순간이다.그들은 천리에 따라 자기를 비우고 포기를 선택하며 또 다른 봄언덕을 바라며 새 생명의 유신(有娠)을 꿈꾸는 계절잠의 세계에 몰입한다.그럴진대 세월의 춘하추동의 세파를 감내하며 신진대사의 철칙으로 참삶을 이뤄가는 나무들의 생애야말로 소행은 범상해도 생명의 명상적인 선율이 아니겠는가.락목한천(落木寒天) 삼동의 동해를 피하려 몸에 달린 군덕지들을 떨어버리는 결행은 위급하면 꼬리를 자르고 내빼는 도마뱀의 눈물겨운 생존전략과 일맥상통하다.나무의 금과옥조(金科玉条) 같은 삶의 신조와 가치철학은 인간들이 음미하고 재음미해야 할 오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만추를 일년의 계절로 가름하면 늦가을이고 하루의 시간대에 견주면 보리저녁인데 인간의 일생일대(一生一代)에 투영해 보면 로연에 흡사하지 않을까.요즘 어떤 사람들이  이순이 인생의 늦가을이라 되뇌이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그런데 회갑 개념이 없는 어느 나라에서는  65~75세까지를 은퇴활동기라고 부르고 있다.비록 은퇴지만 사회활동에는 충분한 나이고 로인이란 별칭이 딸리면 신수가 불길하고 재수가 날아난다며 질색을 부린다.혹시 75세 넘어가면 시니어시티즌(资深公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혜와 경륜을 많이 쌓은 원로에 해당된다.사람의 인생에는 영원한 노동과 창조가 따라야지 세월아 네월아 운수타령을 부르며 어험대면 꼴불남에 꼴불녀라라는 게다.   세월은 필경은 사람 편이 아닌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로쇠를 부인하는 부실한 고집이 있다.육체적 년령은 외면하고 정신적인 젊음만 있다면 영원한 청춘이라며 우쭐댄다.경쟁과 생계의 곤혹으로 혼돈스런 현실에서 20세 청년보다 70세라도 분발하면 그게 청춘이고 전자가 로인이라는 아집이다.이젠 80인 고령인데 좀 쉬세요!라는 아들의 권고에 라고 퇴박을 주며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그의 오상고절(傲霜孤节)은 동네 로인들의 귀감에 되어 있다는 전언이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것은 인간의 본성인데도 내가 그게 아니라고 고집하면 말공부질이라 반상(反想)할 것이지만 인생의 길에서 한탄과 회한을 숨기고 상실의 아픔도 달갑게 감내하면서 그냥 매진하면 이것은 또 하나의 인생이 아닐가고 생각한다.만약 당신의 생애가 외나무다리를 건너야할 운명이라면 다리가 떨려도 그 독목교를 즐겁게 걸을 때 그 모습 역시 천사의 자태라고 간객들이 찬미할 것이 당연할 것이다..   늦가을의 결실과 풍요를 만끽하면서 창백한 기억、애틋한 동경、지절한 기대를 미련없이 내쳐버리며 그냥 새 삶을 엮어가는 늦가을 나무의 경전적인 참삶, 인생도 이대로라면 구경꾼의 갈채가 쏟아질 무대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 (끝) 2016-11-09 연변일보
112    고향을 잃는 아픔 댓글:  조회:2004  추천:2  2016-11-11
내 고향 마을이 개발의 물결에 휘말려 통째로 도시 밑층에 깔려 들어간다. 부모님들이 적성으로 가꿔오시고 내가 태어나자란 고토가 아주 자취를 감춘다는 소식에 이름할 수 없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된다.고향이 하는데 힘없는 누구는 찍소리도 야무지게 못하고 완벽한 실향자가 되고 있다. 지난 세기 30년대 우리 부모님들이 조선반도를 탈출하여 중국의 어느 산골에 정착하시면서 우리 가족의 력사 장막을 올리셨다.새 중국의 건립 직후 아버님께서는 철부지 아이들을 보며  란 생활철학을 주장하시며 시내로 오신 것이 내 고향의 발단이다.그 후 부모님들은 이 땅에서 토지개혁、호조조、합작사、3폭붉은기 이벤트(총로선,대약진,인민공사)、、개혁개방 등 격변의 나날을 맞이하시고 인간의 모든 고초를 경험하시며 지나온 것이다.혹시 한가하여 그 나날들을 되새길 때면 기근과 추위와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고 형극으로 꽉 막혔던 세월의 터널을 부모님들이 어떻게 헤치고 나오셨는지 불가사의하다.열애의 마음을 쏟아붇고 자식들의 미래를 심어주던 이 땅에는 부모님들이  력사를 창조하는 인민 대렬을 따라가시며 남겨놓으신 영욕、희비와 고난에 찬 피어린 사적(史跡)의 편린(片鳞)들이 산적(山积)하여 있다.그 시기 부모님과 수천만 로동인민들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던 행복의 열망이 개혁개방의 장엄한 서막을 열었으리라. 내가 태어나 청춘을 보낸 안태고향(安胎故乡). 내 유소년 시절에 우리 초가집에서 부모님들이 가족의 생계와 집단사업을 위하여 분주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그대로 남아있다.보릿고개 춘궁기때면 영양 실조로 얼굴이 프러누렇게 변색하시고 추위가 몰려오면 온몸을 웅크리고 다니셨는데 부모님들의 지친 그 육신에서 그 힘이 어떻게 나왔는지 실로 신비한 생명현상이다. 형님 누나들이 앉을 자리가 모자라 베개를 걸상으로 무릎을 책상으로 공부에 정진하던 희한한 장면도 눈앞에 삼삼하다.더 넓은 세상을 만들어 가려고 지혜와 생산성이 무시된 무식한 집단로동의 나날은 얼마였고 청운의 꿈을 휘날리며 주경야독(昼耕夜读)으로 지새운 밤은 얼마였던가.바로 이 력사의 땅이 깨끗하게 사라진다.그래도 조석으로 바라보던 고향 산맥이 예전같이 의연하고 부모님의 핏물과 눈물과 땀물을 바다로 실어보내던 고향 하천이 예와 같이 흘러흐르기에 고향 산천이 남았다는 위안이 남아있다. 타향살이의 허구한 날 무시로 고향을 건너보며 를 얼마나 들먹였는지 모른다.초가지붕에 박넝쿨이 매달리고 울바자에서 나팔꽃풀들이 꽃을 피운 봄날이면 늘찬 제비들이 처마밑에 둥지를 틀고 애기를 키우다 강남으로 가는 광경을 상상하기도 했다.혹시 나들이로 갔다가 고향의 옛모습이 콘크리트숲 밑으로 퇴각하는 장면을 보며 개발자들의 현대화 블도저(推土机)가 미워도 어지간히 미웠다.인간의 과거사와 추억을 산산히 지우는 행동을 감행할 때 한 쪼각의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쯤의 유적이라도 남기려는 문화적 아량이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조화롭게 연결되는 고향 도시가 되리라는 푸념도 쏟아냈다.  경세(警世)의 명인도, 명품도, 명물도, 명승지도 없는 촌락에 뭔가 남겨달라 애걸한다면 가소롭지만 력사와 현대가 어울려야 현대화 도시라는 누구의 리론을 실제에 결부시킨다면 일부러 찾아서라도 뭔가를 남기는 것이 리치일 것이다.물론 기획자는 개발 발전의 당연성을 들고 개발자는 매매 성립의 당위성을 핵무기처럼 들고 을러메며 어느 민초가 애절한 향수(乡愁)를 누리도록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다만 팽배하는 돈의 힘 앞에서  실향의 못된 아픔이 있다고 무력하게 호소할 뿐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문화 본성이고 고향을 동경하고 그 유전자를 차세대에 전승하려는 희망도 인류의 본능이다.이런 리유로 과거,오늘과 력사를 상생시키면서 선배의 발자취를 현시대 속에서 이어간다면 이는 금상첨화가 아닐가 생각하니 몸부림도 나갔다. 외형적인 멋진 변화와 육욕의 포만감을 위하여 문화와 력사가 걸레로 취급되는 이른바 발전은 발전이 아니고 발전에 대한 조롱이고 오만이라는 비평도 하고 싶다. 고향 땅에서 고고성을 울리고 륙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오니 내 인생의 정원에 가을이 왔다. 나이와 실향의 아픔은 정비례라 말한다.그러나 발전하는 세월이 사람들께 남기는 영원한 아픔은 이라 하였으니 이 아픔은 마땅한 아픔이고 잊어야 할 아픔이겠다.그래도 실향의 상흔은 만지면 아픔이 묻어나며 아프지 않을 때가 없다. (끝) 2016-11-10 연변일보
111    뉴노멀시대(新常态)의 조선족 댓글:  조회:2307  추천:1  2016-10-31
메마른 일상을 되풀이하다 보면 바깥세상의 유혹에 끌려 문뜩 어디를 가는 때가 있다.지향없이 돌아다니며 길가 난전의 주전부리(零食)를 사먹는 재미도 쏠쏠하고 요용건(要用件) 물건값을 입빠이 내리깎고 사고나면 희열이 문자그대로 최고 그것이다.천자만태 구색의 류행복으로 개인성을 자랑하는 현대인들과 막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우수(忧愁)에 잠긴 민초 백성들의 침울한 모습에서 세태의 무상함도 절감하게 된다.새록새록 쏟아지는 새 상품들, 길을 메우는 차량들, 땅을 차고 서있는 고층건물들, 일신월성(日新月盛)하는 도시 면모에서 세상이 소문보다 빨리 변한다는 감수를 사무치도록 받게 된다.   오늘도 원인 불명의 충동에 끌리어 발 가는대로 나갔더니 이 동네서 황금지대를 자랑하던 상업거리였다.원래 여기는 상업 겸 관광쇼핑 지역으로서 평일 휴일을 막론하고 인파를 이루던 곳이다.그런데 행인 전부라 해야 손가락셈으로 충분한데 길바닥을 채웠던 가게가 그림자를 감췄고 즐비하던 점포들에도 줄잡아 절반이 문열쇠가 잠겨있다.영업 중의 가게들 다수도 페업 덤핑(甩卖)이라며 법석을 부리는데 비어가는 너절청한 건물들은 멋갈없는 무졸장군을 련상시킨다.백화점에서 지인을 만나 장사 사정을 물었더니 경기 악화는 보는 바와 똑 같고 사장님의 고민은 란마같이 얽히어 말이 아니란다.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이것이 뉴노멀(新常态) 시대의 불가피 현상이라고 랭철하게 생각했다.   나라는 압축성장을 위하여 대량의 자원과 자금을 퍼부으며 투자,수출을 위주로 하던 량적성장으로부터 효과성을 중심으로 록색환경보호,수급평형유지,지속균형발전을 맥락으로 하고 구조개선, 소비우선과 내수진작을 골자로 하는 질적성장에로 발전 방향을 돌리었다.이리하여 기존의 방침과 정책에는 전례없는 제도적 개편이 실시되고 기업은 기제(机制) 전환의 진통 속에서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그 와중에서 불황을 헤가르고 새활로를 찾는 조선족 친구들이 있다.   한 해운물류 경영자는 불경기 한파가 불어오자 즉시 기존의 시장네트웍(网络)과 경영노하우(经营诀窍)를 들이밀고 동네의 대형항구와 련합으로 합작경영 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일본,한국,중국과 유러시아 대륙을 가로 지른 물류 코스를 구축하였다. 그들은 연선의 지역과 나라들을 상대로 해륙공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금방 시작부터 승전가를 울리며 본격적으로 운영되어 나라의 일대일로(一带一路) 건설에서 하나의 모델로 된다며 수근거린다.항구의 보스(老板)는 이라며 입이 째지고 있단다.   어느 외자기업에서 일하던 사원인데 회사가 경영부진으로 철수하게 되니 모수자천(毛遂自荐)으로 자진하여 중국 시장의 개발과 서비스를 담당하였다.그들 부부는 자택에서 시장개발을 펼치며 본사의 지시 사업을 원만히 완수해 나간다.철수한 그달부터 고객 주문을 줄줄이 받아내고 거액의 매출을 착착 실현하여 본사 대표자는 머리를 긁으며 이상해 하고 있다.제로원가(零成本)로 길을 열어가는 개척자와 버젓한 사무실에서 통역을 대동하고 와자자하면서 돈만 축내던 안하무인격 사장님과의 대비에서 뭔가 터득했을 것이다.                                                                이 두 친구들에게 무슨 묘수가 있는 지는 모르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하나는 문화자본이다-중한 두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두나라 법률,정책과 사회 관습을 정통하고 두 나라의 미래에 대한 리해가 깊다. 그다음 도덕자본이다-호혜호리와 포용적 원칙을 시종 관철하는 윈윈(双赢)의 현대적 비지니스 정신의 수립자이다.다다음은 신용자본이다-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미 내린 승낙이라면 자기 손익(损益)의 여부를 불문하고 일언중천금으로 실행한 력사기록이 있다.하여 동반자들은 너와 손잡으면 반드시 리익을 본다는 확신이 있다는 이것이다.이 친구들은 위의 3대 자본을 소유하면 어느 사회의 그 어떤 사경에서도 탈출한다고 자신한다.   ​시대는 GDP(국내총생산)을 주요 발전지표로 하던 올드노멀(旧常态)에 종언(终焉)을 선고하고  GNH(국민총행복)을 창조해가는 새 단계에 들어섰다.정보사회의 디지털화와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뿌리채로 개변시키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신구사물의 교체가 끊임없고 새로운 기회의 출몰도 거듭된다.이러한 변천 속에서 새로운 시대감각과 사고방식으로 생존과 회생의 기회를 노리지 못한다면 전환이란 여울에서 뉴애브노멀(新非常态)의 혼돈 속을 헤매일 수 밖에 따로 없다.   변화의 물결 위에서 파도가 일고 강풍이 몰아쳐도 방향타를 굳게 잡고 사회의 맥박을 기지롭게 진맥하면서 윈윈하는 두터운 내공(内功)을 쌓았다면 그가 바로 시대의 기수가 될 수 있다.이 마당에서 조선족이 우수한 문화적 민족으로、확고한 도덕성 군체로、확실한 신용성 그룹이 되었을 때 그는 세계화적 개혁개방의 전위부대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끝) 연변일보 10월 26일자
110    더듬어 본 오복관(五福观) 댓글:  조회:2005  추천:2  2016-10-24
서울에서 친구들과 술놀음을 하고 취기에 풍악놀이를 즐기고 돌아와 잠에 골아떨어졌다.이틑날 아침 공항 출발이란 전화 소리에 번쩍 깨어나니 앞이 샛노랗고 일신이 비리비리하는데 그래도 가야 하니 침대 머리를 잡고 이를 물고 일어났다.정신이 들락날락 하는대로 집에 돌아와 뭔가 대충 끓여먹고 들어누웠는데 이튿날도 삭신이 쩌릿쩌릿하고 사지가 옥신옥신하며 백해구통(百骸俱痛)이 여전하고 나간 넋이 안 돌아온다.   지독히 마신 술도 아닌데 어쩐지 증후가 이상하다.원래는 이 정도 숙취면 한잠에 말끔히 사라지었는데 술기가 그대로 남고 다리마저 말 안듣고 후들거린다.피할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게 나이인데 이것이 체내의 생물시계가 송파(送波)하는 내구년한(耐久年限)의 경고 신호로 판단했다.왠지 마음이 시들시들해나며 뭇사람들이 쩍하면 들먹대는 오복이란 대체 무어냐!는 생각이 달처럼 떠올라 캐보기로 작심하였다.   첫째 복은 장수이다.옛날에는 회갑、회혼을 지났다면 거의 만수무강이라 말하였다.이젠 물질 생활의 제고와 과학의 발전으로 백세 인생은 단골소리고 옛날의 복운장수가  오늘의 박명단수(薄命短寿)이 되어버린다.시이사왕(时移事往)으로 고령사회라는 오늘에는 불로장수에 별 재미가 없어지고 건강을 앞세우는 무병장수가 가담항설이고 컨센서스(共识)로 형성되고 있다.인간 수명을 둘러싼 해묵은 론쟁이 불쑥불쑥 재연되지만 비들비들 천년을  살아야 들숨 날숨이나 헐떡이는 생물 생명이지 결코 인간적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 복은 부유이다.부자는 고대광실(高台广室) 저택에서 주지육림(酒地肉林)을 헤매다 죽으면 광광한 유택을 가지고 행복한 영생을 누리는 같다.대비하여 가난한 백성들은 초가삼간에서 애옥살이를 하다가 척지(尺地) 땅에 오척 단신을 눕히거나 싸늘한 벌집 납골당에 유령을 의탁하지 않던가?그러나 육체적 복、정신적 복과 물질적 복을 교차시켜 따져보면 누가 더 행복했을가 하는 판가름이 어렵다.만약 약두구리에 매달리거나 수술대를 오르내리며 살았다면 그 복이 얼마일가?    세 번째 복이 강녕(康宁)이다.옛날에는 육신이 강건하면 건강이라 하였었다.그러나 무한경쟁이라는 환경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인의 건강이란 질병 해탈뿐이 아닌 정신적으로 안녕한 상태에 있어야 건승을 누린다고 말한다.아무튼 육체의 건강을 우선으로 하겠으나 안심이 없는 겉맵시나 뻔뻔한 외화내빈의 건강이다.정신적 불안이 없어야 정상건강 몸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복이 인덕(仁德)이다.덕을 쌓고 베풀고 남의 덕을 입는 것이다.남에게 착한  이것이 남의 덕을 입을 수 있는 기본 전제이다.위하여서는 건강해야 한다.아무리 위대한 독지가라도 몸이 아파 대굴거리면 어진 마음이 나올 확률이 너무 낮고 남의 덕을 입어도 복이 없다.덕이 깊은 선인들도 무병한 건강체여야 덕을 주고받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위인이 되려해도 건강체가 뒤를 떠받쳐야 한다.   다섯 번째 복이 선종(善终)이다.사람 인생의 운명(殒命)은 자신의 선택 사항일 수 없는 창조주의 몫이다.영생불멸이나 비명횡사나 생명박탈이나 와석종신(臥席终身)이나 다 곰곰히 생각하면 결국 운명에 맞겨야 할 프로그램이다.완미한 선종은 결국은 무탈한 자연사인데 애매하게 말하면 여유롭게 살다가 고스란히 무병 무통 속에서 이승의 삶을 접는 것이다.이런 복을 지녔으면 분명 축복이다.   우리 민족의 전설에는 치복(齿福)、처복(妻福)、자식복、사위복 등등이 오복에 속한다는 설법이 있으나 온전한 정설이 없다. 중국에도 이 오복이라는 다른 주장이 있다.이러고 보면 행복이란 제가끔 인식하는 기준에 따라 천변만화이고 천자만태이고 내용 역시 제각각이다. 오복에다 모든 행복을 망라시킬 수 없고 그것을 그저 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행복의 무한집합으로서 간단히 이해하는 것이 정론일 것으로 본다.   디지털 생산력이 인간의 생활을 뿌리채로 변화시키는 오늘 모든 사람이 수용할 행복 철학이 있을 수 없고 어느 성인이 그 오복을 정립하려 해도 역부족일가 완전 불가능이다.오로지 건강만이 천복만복을 풀어내는 행복의 핵이고 공분모이다.육신이 들차야 희망이 발광(发光)하고 사는 맛이 있다는 도리를 몸살풀이를 하며 터득했으니 거저 건강이라는 일복(一福)이 나의 진솔한 야망임을 고백한다.   몸이 찌근대고 정신도 제정신이 아니니 만사가 귀치않다.백년을 잘 산다며 호들갑을 떨어도 몸이 말째면 부질없는 공염불이다.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끝)   길림신문 10월 21일자  
109    마이크로시대(微时代)의 후시대 댓글:  조회:2061  추천:3  2016-10-14
요즘 사무실의 종이、통신、볼펜、출장과 접대 등 비용이 급감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인턴넷 기능의 비약적 향상 그리고 이동통신의 번영과 더불어 업무 속도와 효률은  빨라지고 사무 처리가 편리할 뿐인데도 비용이 원래의 반전(半钱)이 되나마나하다.핸드폰 하나로 임의의 곳에서 무료통신、정보수집、서류작성、자료저장 등 조작이 지장이 없고 음성、영상、동영상이 촬영하는 동시에 송수신이 가능한가 하면 폰 액정  화면에서 그룹 회의도 무난히 진행하는 세월이다.하여 지금을 마이크로시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애플리케이션(앱-应用软件)들이 거침없이 등장하며 작을 미(微)자를 전치하는 신조어들이 쉴새없이 불거지는 오늘이다.트위트(微博)、마이크로뉴스(微新闻)、위챗(微信)、힌트픽션(微小说),마이크로영화(微电影)、마이크로동영상(微视频)、마이크로게임(微游戏) 등등 신형 가상물들이 인터넷과 합류하여 현존하는 출판、도서、신문、방송、텔레비 등 매체에 강펀치 충격을 주고 있으며 전통적인 사회、산업、문화 구조와 가치관도 어쩔수 없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인터넷 정보 전달의 편의성、순간성、이동성、연동성은 사회 생활을 풍부히 하고 인간의 창조 활동의 대활약을 부추기는 동시에 사회관리방식의 혁신을 불어 옴으로 하여 사람들의 사상 세계에는 신구 이념이 혼류되는 새 가치관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새 매체의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살포되는 정보의 다반이 쇄편화되고 완전한 표술과 세밀한 론리성이 결여하여 객관적 판단이 어려워지고 대중의 착각을 일으키는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그리고 허위적 정보와 립증이 없는 소문과 해롭고 저급한 멧세지들이 란무하여 사회적 불안과 충격을 조성하는 사건들도 빈발하고 있다.더구나 어떤 불측한 친구들은 그가 은페성이 강하고 대중 이해가 부족한 틈을 타 범죄 수단으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난제도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사람들은 깊은 사색이 필요없는 마이크로표달(微表达)에 습관화되고 있으며 책을 들고 내용을 음미하며 열심히 필기하던 장면은 아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모두가 핸드폰만을 들고 세상 뒤를 덜렁거리며 따라가는 모양새이다.   매체의 마이크로적 변화와 동시에 세기의 발명품들이 출시되여 인류사회 혁신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빅테이터(大数据)、클라우드컴퓨팅(云计算)、3차원프린터(立体打印)、 가정로봇(家庭机器人)、사물인터넷(物联网)의 등 첨단 기술이 제품화로 전화되었고 대중적 보급이 시간적으로 얼마간 남아 있을 뿐이다.지금까지 정보통신 기술은 사람과 사물의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다음에는 사물인터넷 환경을 구성하고 사물 스스로가 인간이 설정한 기능에 따라 정보를 수집 가공하고 인간의 개입없이 스스로 혹은 저들끼리 결탁하여 의사결정도 내리며 임무를 완성하게 된다.오늘의 마이크로시대 현상은 이 지능화 시대에 바야흐로 돌입한다는 전주곡인 것이다.    오늘 사무실 비용에서 반영되는 수치들 역시 새로운 문명 시대에 들어선다는 예고이다.최근에는 회사 업무를 재택근무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서서히 증가되고 인터넷 쇼핑도 세찬 물결을 이루고 있다.도어투도어서비스(门到门服务)와 방문판매가 급속히 발전하여 아예 문밖 출입을 체념하고 두문불출(杜门不出)하는 젊은 세대가 급속히 불어나 폐칩남녀(宅男宅女)라는 무리들이 량산되고 있다.사람 손이 가야하던 일자리가 대량적으로 사라지고 인간은 육신이 무골이 되고 사지가 무력한 동물로 진화되거나 차라리 컴퓨터 식물인이 될 것이라 잘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가부간 사회는 누구의 시시비비를 불문곡직하고 자기 궤도만을 따라 급급히 가고 있다.   이 사회의 생산방식,사업방식,로동방식,관리방식에서 전면적인 변화가 일고 기존의 직업 대량이 소실되고 신종의 서비스 직업이 우후죽순으로 탄생하고 있다.이 충격적 변화 속에서 오래지 않아  인력에 대한 최우선 요구는 언어기능이고 특색이 선명하고 심미적 쾌감과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대인 서비스 기능 즉 맨투맨(面对面)서비스라고 미래학자들이 말한다.그때 가면 이 두가지 기능 소유자가 구인자들이 눈을 뒤집고 쟁탈하는 대상이 될 거라는 그들의 판단이다.그렇다면 오래지 않은 미래의 사회에서 조선족이 이 최요(最要)의 두 기본기를 타고난 소유자라 단언하여도 공념불은 아닐 같다.   이중언어 즉 두개 외국어 언어기능과 전통적으로 전승되고 현대적으로 계승되는 고상하고 고아한 대인 서비스 문화는 누구도 대체 못할 우리의 민족 자원이다.조선족 민족사회는 이중언어와 민족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사업에 주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선족의 최우선 생존법、발전법과 영생법이라 할 수 있다. (끝) 2016-10-13 흑룡강신문
108    막말 무단투기 댓글:  조회:2316  추천:5  2016-10-11
  사이버 공간에서 리플(评语)은 사물의 시비곡직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찬반양론을 진행하는 건설적 기능의 하나이다.그는 사이트에 오른 글에 대하여 자기 인식과 의중을 표출하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 네티즌들에게도 확산되면서 상호교류와 공생발전의 거센 추진력이 되고 있다.그러나 구조적으로 조성된 은밀한 구석에 숨어서 뭔가 눈에 거슬리면 시름없이 가시 돋친 험담이나 배설물 같은 추담(丑谈)을 퍼붓거나 정의마저 스스럼없이 조롱하는 위인들이 비일비재하다.이런 부류 독설가들이 일어탁수(一鱼浊水)  민폐를 끼치는 소행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이즈음 네티즌(网民)들은 사이트에서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평등한 권익을  만끽하고 있다.각자가 보고난 어떤 글에 대하여 서로 부동한 견해을 가질 것은 물론이고 리플을 달아 자기 관점을 제시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나아가 다투는 식의 논쟁을 하거나 판이한 가치관을 궤적으로 하는 열띤 토론을 벌여도 이상할 것 없다.이런 댓글들은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며 인식을 제고하고 여론을 정화하는 선플(好评)로 봐야 한다.이 중의 많은 의견들은 정부 부서에 수렴되어 착오를 시정하고 정책 방침을 제정하는 근거로 되기도 한다.인터넷에서 약동하는 이런 견해들은 긍정적 에너지로 전화되어 사회의 새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찬양、비판이나 선의적인 반박글 대신에 의견을 달리한 대방에 대하여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고 독기 서린 험담을 퍼부으며 사경에 처넣으려는 유언비어나 비방중상 언사들이 겹쳐나타나 민망스러울 때가 많다.거기서 격한 기분으로 격돌하거나 무심중에 꼬집는 행실은 아이들 싸움 장난으로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도덕과 사회 관행을 무시하고 대방과 양립할 수 없는 원쑤의 입장에서 싸움을 걸고드는 친구들의 언설이 말썽거리다.이러한 독선적이고 단세포적인 사고로 내던지는 세기말적 언어도단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바로잡아야 할 일그러진 단면이다.   인터넷 공간은 우리가 살아갈 또 하나의 공간임에 틀림없다.세상에 유아독존이 있을 수 없으므로 타인도 나처럼 자아를 소중히 간직한다는 이해심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심임을 명기해야 할 바이다.오늘 세상을 살아가려면 상생을 위한 공존 방식을 해아리는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 단순한 흑백 논리와 이분법 사고로 투쟁을 벌이는 비교육적 자세는  네가 죽고 내가 죽고 공멸을 불러오는 독침일 수 밖에 없다.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제적인 윤리와 처세술이 나에게 정립되었는가 누군가 반성해야 될 것이다.특히 자기주장을 승리 깃발처럼 쳐드는 논설자나 언론인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명지(明智)로서 순화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책임임을 숙지해야 한다.   사이트에서 익명이 가능한 원인이 생각을 여과없이 내던지도록 부추기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심중에서는 대중 앞에 로출되지 않았기에 불이익이나 처벌이 면제된다는 방만한 심리가 활약하며 악플(恶评)을 달아놓는 경우가 절대 다부분이다.이러한 부류들의 내심에는 원색적 욕설과 비방을 해도 무사할 것이라는 발양망상(发扬妄想)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나라는 이런 악플의 대응으로 실명제、신고제、감독제 등 법제적 타률적 조치를 의무화로 시행하고 있으나 결코 만능약이 될 수 없었고 결국 자률적 의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요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악플을 다는 모양새가 그냥 가관이다.민족사회의 재건을 떠메고 차세대를 이끌고 갈 대인다운 모습과 정반대 방향이다.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논리로 상대방을 정복하는 정중한 모습으로 나타나도 손해날 것 없다.찬양도 비판도 옥신각신하는 설전도 다 좋은데 폭언과 육악담(肉恶谈)이나 악담 따위의 무단투기(无断投弃)만은 금물이다.손가락을 쳐들고 셈따지기 해봐야 몇이 안되는 겨례들인데 물거니 뜯거니 동종상쟁은 진소위(真所谓)  꼴불견이다. (끝). 2016-10-10 흑룡강신문  
107    조선족의 <문화 성역> 확장 댓글:  조회:2328  추천:4  2016-09-01
지난 7월1일, 이 대련에서 있었다. 회의에는 중국 각지의 조선족 경영자, 차세대 유지자들과 향항, 일본, 한국 등 나라와 지역의 사업자 60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란 슬로건을 걸고 인맥을 익히며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간의 미래적 발전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론하였다. 그중 민족사회를 발전시키려는 공동한 의지를 확인하였다는 점이 특히 의미심장하다. 참가자들의 상당수는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 금융보험업, 유통업, 무역업, 의약산업 등 분야의 재력가들이였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로 진출하고 한국과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하여 지평을 넓혀가는 개척자들도 있었다. 또한 중한수교 초기의 짐군으로부터 한국제품의 중국 진출을 주도하면서 자문, 수입, 류통, 최종소비까지 1인 4역(一人四役)을 거뜬하게 해내는 자수성가(自手成家) 노력가들도 수두룩하였다. 조선족들이 중국이란 광대한 시장을 발판으로 거족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회의 전반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사업 기반을 다진 지성인들이  민족사회 재건에 주력하며 지역간의 뉴대를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열의가 뜨겁게 감지되였다. 그들의 노력으로 조선족의 집거지마다 이미 여러가지 협회, 교우회, 향우회, 동호회 등 모임이 설립되였을뿐만아니라 사회  공헌을 목표로 하는 공익단체들도 다수 건립되여 민족의 존재를 과시하고있다. 민족의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아우성이속에서 조선족의 긍정적에너지(正能量)가 급증하고 문화 이미지업(形象提升)이 가속화되는 현실과 조선족의 경제적 유형자본과 문화적 무형자본 총량은 감소가 아니라 대폭 증가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수 있었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만큼 경제성과를 이룬 민족이 없고 짧은 시간에 그처럼 민족사회를 공동화시킨 민족도 없다.이라며 훼방하는 량반들과 무득무실(无得无失)의  나무아미타불이라며 뒤발질하는 개그맨들도 있지만 필경 조선족은 개혁개방의 선봉대였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라에 공헌하는 민족임이 틀림없다. 비록 오늘은 민족 리산의 고배를 마시고 있으나 이는 선진사회로 나가는 과정의 필납(必纳) 통과료일 뿐 퇴보도 후퇴도 아니다. 는 대회 호소는 전체 민족의 향상심과 사라져가는 민족영광을 원상회복하려는 념원을 표출한것이다. 우리 민족이 격변기의 역경 속에서도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원기는 민족문화 그 자체에 나온 것이다. 다민족 국가에서 형성된 민족단결의 가치관 및 공존공영의 리상, 불모지지(不毛之地)의 개척정신, 조선족 특색의 미풍량속과  문학예술, 중화민족으로서 인문적 특성 등등  정신문명은 민족의 가난을 풀어가는 였고 타민족과 영합하는 이였고 세계화로 추동하는 이였다. 특히 우리의 이중언어, 풍속습관, 도덕규범, 집단의식은 토착민의 지역주의를 초월하여 중국에서 한 민족 교두보로 되여가는  발전엔진이였다는 국제적 가치로 조명되고 있다. 민족사회의 뿌리는 전통이고 근간은 문화이다. .우리들이 전통문화를 더욱 잘 계승하고 승화시켜 지역 단체들마다 충실한 책임자가 되여야  할 것이다. 우수한 민족구성원이라는 찬양 속에서 자긍심을 키워온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문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떠받친 튼튼한 지레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여 자기 문화를 홀대하는 악습, 한탕치기 돈벌이 관념, 참을힘 부족의 쟁개비열정 등 고질적이라는 저급문화의 잔류물을 털어버리고 인류의 공동자산인 우리의 고유문화를 꽃산으로 번영시켜야 한다. 21세기는 문화가 선도하는 시대이다. 현재 지리적으로 표시되는 국경과 지역 계선은 인터넷 충격에 어쩔수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세계는 개방과 일체화 일로로 나가고 있다.인류는 현대의 문명 리기(利器)들에 떠밀려 현실공간으로부터 전파통신 속의 가상공간 속으로 마구 끌려들고 있다. 핸드폰 화면에 지구상  임의의 지역 친구를 집결시켜 사이 버사회를 만들어 가는 이 생산력 단계에서 디지털 지능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필수(必须必需)로 되여있다. 우리는 전통사회의 지역공동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 현실공간+가상공간 즉 혼성공간(混成空间)에서 불멸의 를 건립하는 실천의 길에 올라야 할 관두에 서있다. 문화는 조선족이 에 투자할 최고가의 주식(股票)이고 리익분배에 참가할 최대치의 주주권(股权)이다. 조선족은 견정불이하게 민족문화의 브랜드전략(品牌战略)을 실시하고  집거지마다를 우리의 로 꾸며간다면 조선족사회는 력사를 따라 일취월장(日就月将)하는 신형의 백의민족커뮤니티(共同体)로 거듭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참가자들이 지능화 시대의 민족사회를 건설하는 최우수 전사와  최정예 부대가 되기를 바란다. 연변일보 2016-8-31
106    진화하는 소비자 댓글:  조회:2045  추천:6  2016-08-22
삶이 윤택해 지고 과학이 약진하면서 사람들의 소비수준이 급격히 향상되고 소비문화도 하루 다르게 변하고 있다.지난 시기 의식주행의 소비수준을 지출의 절대 금액으로 정도를 가늠하던 성향이 바뀌어 이젠 동일한 가치로 더 좋은 물건을 입수하고, 시간과 비용을 최대로 절감하며, 최고의 편리성을 도모한다는 스마트소비(智能消费) 기준이 확산되고 있다. 요즘 오랜 친구를 만나 술대접이나 하려고 단골 식당을 찾아갔다. 이 동네서 지역민의 입맛을 꿰뚫으며 먹거리를 만들어내 소문을 내는 오랜 가게이다.그런데 평일이면 북적거리던 장면은 가뭇 사라지고 넓다란 객석에는 몇 팀이 않아 식사를 하는 정도인데 웨이트리스(女服务员)들의 뜨거운 응접도 온데간데 없다.그러나 주방에는 오히려 료리사와 시중군들이 여럿이 증가되여 부지런히 서두르는데 스테인리스(不锈钢) 박스를 들고 반찬 배송을 대기하는 사이클배달자들이 4,5명 대기하고 있었다. 카운터 담당자는 손님 결제를 받는 한편 핸드폰과 사이트로 주문을 받고 완성 즉시 배달자를 출동시킨다.경영이 변해도 작게 변한 것이 아니다. 사장과 한담을 나누었다.지금의 소비자는 옛날처럼 밥먹으려 거리를 헤매이는 경우가 훨씬 적어지고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급증하고 있단다. 소비자들은 사이트에서 건강성,경제성과 편의성을 이상할 정도로 추구하고 있으며 인트넷 주문 방식의 가족연회를 열고 싱글족(单身族)과 맞벌이 부부들은 매식에 편향하는 경향이 신기루마냥 솟아나고 있다.회사들의 오찬도 인터넷 주문이 류행되는데 이 전통적인 가게는 이 시장 개발에 주력하여 톡톡한 매츨을 올리고 있다.년말이 되면 련쇄점 2개를 확충한다고 선언한다.인터넷 기기에 물젖은 소비자들, 그들이 인터넷에서 음식의 검색、비교、주문、확인、결제까지 원스톱(一条龙)으로 해 버리는 정보화 식사 시대이다.식사、건강、절약、편의、감독이 한방의 온라인에 겹쳐진 고객이 하느님이신 시대에 들어섰다.이 시류를 따르지 못하는 장사군은 엄동에 동사(冻死)하지 않으면 고한(枯旱)에 고사(枯死)하게 된다.사장님의 단언이다. 시장의 변천에 따라 공급자는 소비자가 살아가는 방법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동승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오늘 식당의 정보통신화적 변화 추세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경제생태와 사회생태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시사(示唆)하고 있다.층생첩출(层生叠出)하는 정보통신 수단은 생활도구가 아니라 이미 삶의 불가결인 공기와 물과 토양이란 생태환경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백성들은 과거처럼 얻어들은 정보로 섣부른 결정을 내리는 어영부영 추종자들이 아니라 사물을 꿰뚫듯 렴탐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현인군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거, 소비자는 선택 범위가 비좁고 시간 공간적 제한을 심히 받으며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존재였다.현재는 누구나 쪽걸상에서 침묵으로 일관해도 세상만사를 속속들이 살피며 천하를 한눈에 보는 엉큼대왕임을 알아야 한다.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며 그를 깔보고 덤비다간 랑패를 보기가 일수이다.그들이 어느땐가 능동적으로 백전백승의 기세로 따지고 들지 모른다.그러므로 소비자의 수요를 따른다는 도리를 철저한 결심으로 실천하지 않고 외면하면 패업하고 몰락한다는 절박한 현대의식과 위기의식을 수립해야 한다.아니면 적어도 찬밥신세나 쪽박신세로 살아야 한다. 정보통신이 변화를 거듭하며 그 파장역(波长域)을 어딘지도 모르고 넓혀가고 있다.식생활이 외식화에로의 변화는 그 분야 자체에서만 아니고 사회적 지각에 변동이 일고 있다는 방증이다.모든 경제、문화 분야와 사회관리행정 전반에서 인터넷+를 강요하는 시대, 더 말하자면 오늘은 정보지능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생산력 변혁이 몰아오는 이 시대 소비자의 사상혁명에 따라 새마음으로 새행동 무대에 오른 자에게 나 차례진다. 공농상학병관(工农商学兵官) 전민은 자기의 제조상품과 서비스상품을 사가는 소비자들이 바야흐로 지능화 시스템으로 완전무장하고 디지털화(数字化) 특기로 일신을 꾸둥친 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을 꼼꼼히 새겨봐야 한다. (끝)
105    빈곤자의 권리 빈곤 댓글:  조회:2145  추천:5  2016-07-21
손가는 대로 인터넷을 뒤적거리는데 한 토막기사가 내 가슴을 흔들었다.하북성 기주시의 한 가난한 집 부녀(父女)가 노가다 판에서 밀린 품삯을 받으려 보스를 찾았다가 또 얼떨떨한 리유를 주어대며 미루는 사절을 당했다.동반했던 13세의 딸이 그 자리에서 옥상에 뛰어올라 몸을 날리어 불귀(不归)의 길에 오르는 인생의 라스트신(最后场面)을 연출한다.속세의 단맛도 모르고 명계로 떠나는 가련한 모습을 보며 누리꾼(网民)들이 떼를 지어 탄식한다.가난이 원죄인가,누구 죄를 들쓰는 대속(代赎)인가.가난이 파생한 이런 참사의 재연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 나라는 2020년까지 7000만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가난에서 해탈한다는 정준구빈(定准救贫)의 슬로건을 들고 소강 목표를 향해 라스트스퍼트(最后冲刺)에 돌입하고 있다.난의포식(暖衣饱食)를 중심으로 하고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하는 생계형 빈곤은 미구에 력사의 장막 속에 사라지게 된다.30여년의 고도성장으로 이뤄진 탄탄한  물질문화적 사회 인프라 위에서 목표의 달성이 어렵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현대화 건설의 창세적 성과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빈곤 문제는 사회의 영원한 딜레마(困境)로서 모든 사회의 자초지종(自初至终)에 속재(续在)하며 산지사방에 산재(散在)하게 된다.물질 결핍이란 절대빈곤에서 해탈한 후에는 수입의 다소로 계산되고 빈부격차 행복지수에 따라 반영되는 소비형 상대적빈곤이 존재한다. 때문에 사회가 부유하지만 누구도 빈곤자로 전락할 확률이 커지게 되며 빈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이 공동 부유라는 명제로서 제기될 란마같은 빈곤은 그 현명한 해결 방법이 법제 건설이고 빈곤자의 권리 부축이다.현재 약자들이 권리에서 배제되어 빈곤에 전락하는 권리빈곤이 대두되는 현실이다.   풍요 시대의 빈곤에는 다양한 변수와 난해한 미지수가 헷갈리어 다만 부조라는 경제 카드로는 해결이 전혀 불가능하다.그러므로 지속 발효(发效)가 가능한 비경제적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로동,교육,의료,양로,건강 등등의 면면에서 빈곤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법체계의 건립에로 사업 중점을 전향해야 한다.더우기 립법 수단으로 빈곤자의 취약성을 보강해야 하며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약자들에게 법보호 장벽을 쌓아야 한다.서두에서 발생된 재난에서 보여주는 고용자와 로동자 관계에서의 약자가 렬세에 처하는 법적인 허점을 사전에 미봉해야 하고 피고용자 권리의식 쇠약증을 치유해야 한다.   사회보장은 헌법으로 규정된 공민의 신성한 권리이다.지난날 생계가 급하여 돌볼 겨를이 없었다면 지금은 합법적 권익이 보장되는 법제 구빈의 제방을 쌓아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매개 공민들이 법의무를 이행하고 부여된 권리를 자유롭게 추구하는 법이 주축이 된 탈빈곤 체제를 정착시켜 국가,고용자,로동자가 3위일체로 작동되는 기틀을 형성시킨다면 이것이 현대 사회의 기본 륜곽이다. 그러므로 사회보장에서 약자들 자신이 과감히 권리를 제출하는 고무적 환경을 마련해 주고 약자가 권리로서 빈곤을 퇴치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결국 빈곤 해탈은 법적인 구조로 대응할 문제이다.공민들이 법제 무기로 자아보호를 할 수 있고 자체로 조혈(造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안전망 속에 집결시키고 혹세무민(惑世诬民)의 도덕불감증 경영자들과 법제를 릉멸하는 약육강식의 악덕 장사군들은 가차없이 추상같은 법도의 초롱 속에 몰아넣어야 한다.이리하여 부자가 빈자의 고혈을 짜먹는 불평등을 해소시키며 가난이 절망의 자폭장치(自爆装置)로 되는 비극의 근원을 잘라야 한다.그러면 빈곤은 희망의 자생지(自生地)가 되고 탈빈을 위해 분발하는 기폭장치(起爆装置)로 될 수 있다.권리빈곤이 잉태한13세 소녀의 불행은 영원한 력사로 되게 된다.   가난을 소멸한 극락세계는 없다.집행자의 법제의식의 결여,고용자의 법의무 외면,서민의 법리념 결여란 이 빈곤에서 해탈하는 구빈 전쟁을 전쟁을 벌여야 할 때이다.이 권리구빈(权利救贫) 사업이 사회의 조화운동으로 진행될 때,법사상이 사회 의식형태에  뿌리 내릴 때,권리가 침묵하는 다수 약자가 살아가는 비상수단이 되고  역할을 할 때 이 사회는 공정한 사회, 즉 풍요로운 태평성대이다. 연변일보 2016-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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