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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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새시대 민족문화의 전승과 발전 댓글:  조회:1410  추천:0  2022-04-22
민족문화라는 개념은 내용이 광범위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심의미는 그 민족의 언어, 가치관, 문화예술, 풍속습관 등 민족특성과 그들만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일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인간군체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중국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하나의 민족집단이다. 더 전개한다면 조선족은 자기의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하고 중국의 주류문화도 동시에 소유한 중화민족중의 이중문화민족이다. 력사적으로 중국과 조선 두 나라는 지리, 력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상생적 영향관계에 놓여있었고 정치, 외교 면에서도 리익이 서로 립체교차되여왔으므로 태생적인 선린민족 관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쉽사리 뿌리박을 수 있었던 천혜적 조건이였고 바로 이 천시, 지리, 인화(天时,地利,人和)  3대 요소가 결합된 터전은 우리가 중화민족의 우수민족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지정학적 터전이였다. 이러한 인문환경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문화의 계승성, 전통성과 발전성을 지켜갈 수 있었고 자기의 전통문화의 기초에서 발전적인 중국조선족문화를 형성하였다. 이 문화력이야말로  조선족 민족사회가 발전을 거듭하고 중국과 국제사회에서 력동적인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였다. 조선족의 이중문화 즉 조선족문화는 자신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중국의 주류문화에 부응하고 타민족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문화 속의 하나로 자리잡은 조선족 민족문화에는 타민족 문화의 영향이 깊이 침투되여있으며 선명한 중국문화의 락인이 찍혀있다. 반대로 조선족이 소유한 중국문화에도 선명한 조선족 민족문화의 흔적이 각인되여있다. 이런 환경에서 형성되고 생명력을 확보한 조선족문화는 융화적이고 개방적인 활성을 가졌으므로 하여 그는 민족사회가 존재하는 건실한 주축이 되였고 중국과  외국  및 그 전체 민족의 사이를 련결시키는 뉴대와 련결 고리가 되여왔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중국의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활발한 촉매제로서 작용하여왔다. 때문에 중국문화와 민족문화를 동시에 겸유한 즉 조선족문화라는 조선족만의 무가지보 재부인 것이다. 현재 조선족 민족문화는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각광을 받고 있으며 중화문화 속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선족은 이 전통문화의 포용성을 발휘하여 타민족 문화에서 자신의 체질에 부합되는 영양을 부단히 흡수하면서 민족문화를 풍부히 하고 발전시켜 왔다. 이리하여 조선족사회는 대대손손으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으며 주류문화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국내와 국제의 선두주자로 나아가는 저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 즉 민족문화는 조선족문화의 기반인 동시에 우리가 자기 이미지를 높혀가는 전제로 되고 있다. 주지하다싶이 조선족은 새 중국이 건립된 이래 줄곧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면서 우수민족으로 인정받아왔고 중국의 개혁개방 실현에도 중대한 기여를 하여왔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인류운명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서의 공헌으로 된다. 조선족이 장악한 이중문화에는 중국문화에 익숙하기에 민족문화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민족문화 에너지가 있기에 중국문화의 작용이 가배로 확장되는 특수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조선족문화 기능자가 되려면 반드시 민족문화를 고수하는 전제에서 중국문화의 습득에도 매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조선족이 되는 문화의 길이다   오늘 조선족은 인구의 급감과 문화, 교육의 쇠락이라는 와중에 깊숙이 빠져있다. 이제 새시대의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번영시켜야 할 력사적 사명은 해당 세대에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하는 이중문화 즉 조선족문화를 더욱 확고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조선족문화관을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중화민족의 수림 속에서 우수민족이라는 신성한 사명감을 지니고 민족문화를 전승하는 세기적 대사를 이어가야 한다. 연변일보 2022.4.20
203    상대적 빈곤,공동히 부유,공동한 행복 댓글:  조회:1222  추천:0  2022-02-24
상대적 빈곤,공동히 부유,공동한 행복 김인섭 최근 인터넷 응용앱(应用软件APP) 미편(美篇)에서 연변의 ‘연변대학최고경영자AMP 총동문회,연변민들레문화교류협회,연변애심어머니협회’등 민간 조직들이 춘절을 계기로 무의탁 로인과 어려운 가정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선 지원을 지속한다고 결의하는 모습이 유표하게 눈에 뜨이었다. 과거 연변의 여러 조직과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금품을 의연하고 자애심을 전달하여 뭇사람들의 감동과 공명을 일으키는 뉴스들을 많이 들어왔다.허나 우리나라가 절대적 빈곤이란 물질 부족 상황에서 벗어나 상대적 빈곤이란 빈부 격차 축소에 도전하고 공동부유 사회로 나간다는 시점에서 이 애심 인사들의 선행은 한결 가상해 보이고 새로운 시대적 높이에서 올리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작년을 끝점으로 전면적인 빈곤 해탈을 선언하였다. 이것은 중국 력사에서 리정비적 사건이며 전체 인민이 물질적 어려움에 종지부를 찍고 빈부 량극화에 도전하는 시발점으로 봐야 한다. 또한 우리 나라가 건설의 주안점을 물질 부족 해탈로부터  고품질 고효률적으로 생산을 발전시키는 기초에서 소득, 교육, 문화, 의료 등 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량극화, 불공정과 불평등을 축소하는 데로 방향키를 돌린다는 선언이다.결과적으로 전체적 물질 문화 생활수준을 제고하는 동시에 부동한 주체 간의 비교에서 생기는 차이와 심리적 차이감, 렬등감과 불만감을 해소하거나 좁혀가며 인민이 만족하는 행복사회를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는 어느 사회나 불가피한 현상이다. 현재의 소득 분배는 시장 법칙과 기여도에 따라 진행되는 협의 방식의 제1차 분배,정책 법규에 따르는 세금,공과금 등 강제 방식의 제2차 분배,공익사업과 사회,민간,기업체들의 자원적 력량에 의한 자선 방식 등 세가지 기능이 결합작용하여 실현된다. 그러나 각자의 능력이 부동하고 각자가 처한 자연,지리,력사,문화 환경이 천차만별인 원인으로 분배의 불균형과 소득의 격차는 영원히 불가피한 것이며 모종의 경우 확대될 가능성도 내포하게 된다. 그리고 년령,질병,실업,불가항력 재해,생리적 결함 등등 원인으로 취약 계층과 사회의존형 그룹도 부단히 생겨나게 된다. 만약 이런 불균형 상황을 방치한다면 사회정체 혹은 사회혼돈을 유발하게 되고 심지어 대항적 모순과 충돌이 발생하여 만복포식(满腹饱食)하면서 심신불안의 행복불감증 속에서 살아가는 악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때문에 소득분배에서 시장 원리, 행정 법률적 수단을 적극 리용해야 하지만 자선이란 이 도덕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켜야 량극화를 최대한으로 축소하고 민심이 안정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사회의 제1.2차 분배는 분배에서 주도적 작용을 일으키지만 이 두가지 소득 분배의 조건에서는 기필코 소득과 생활수준에서 격차를 발생시키고 취약 계층이란 사각지대가 이뤄지게 된다. 이 부분의 부족을 제3차 분배 즉 사회에 암장한 공익적 도덕적 력량이 벌충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조직,기업,개인들이 자원적으로 참여하여 자기의 재부를 헌납하고 약세 군체에 온정을 보내주고 도와 준다는 자체는 물질적 부조라는 의미를 초월하여 인간 관계를 돈독히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희망을 심어주고 불평등감을 정화시키는 특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취약 계층과 소외 계층에게 보내주는 이런 사회적 노력이 바로 공동히 부유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서 절대 불가결의 신선한 활력소인 것이다. 경제학적 의미의 상대적 빈곤 해결이란 결국 사회학적 의미에서 공동부유이다. 이것은 평균부유나 동시부유가 아닌 전체 인민이 경제상에서 유족하고 공공서비스를 공동히 향유하고 사회발전의 성과를 공동히 소유하면서 생활한다는 포괄적 의미인 것이다. 소득과 소비 격차가 엄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선은 물질적 분배를 조절하는 보충 작용도 있지만 부동한 계층간의 정감적 거리를 좁히고 빈부 사이의 대립 정서를 해소하고 사회 도덕을 정화한다는 데 더욱 큰 시대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되는 강력한 포용력과 감화력을 가지고 조화사회의 건설을 추진하게 된다 상대적 빈곤에 도전하여 공동히 부유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방향점이고 귀결점이다.‘부강、민주、문명、조화、자유、평등、공정、법치,애국、충직、성실、우호’이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가치관이야말로 전체 인민이 바라는 공동히 부유한 사회건설의 원동력이고 정신적 추구이다.공동한 행복은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부강,민족진흥,인민행복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가치 원경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나타난 민간 조직의 선남선녀들은 공동부유 사회건설의 선두주자요,공동행복 사회수호의 파수군이 아닐가 본다. 이 애심 모델들은 우리들이 영광을 안겨주고 귀감으로 해야 할 모범이고 모본이 아닌가 본다. 연변일보
202    박사생의 중학교 취직이 주는 계시 댓글:  조회:1487  추천:0  2021-11-08
박사생의 중학교 취직이 주는 계시 김인섭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심수의 어느 중학교에서 초빙한 교원 합격자 절반 이상이 박사생이라는 기사를 보고 이것은 새로운 시류를 예고하는 징후가 아닌가 곰곰히 생각했다. 박사생이 눈높이를 낮추고 중학교 교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간혹 들어왔지만 최근 들어 부쩍 많아지는데 이것은 학력 우선의 명분보다 실생활 위주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다는 함축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재래인식에서 박사졸업생이라면 당연히 대학 교수나 과학자 아니면 사회의 어느 요직에 기용될 것이라 생각하였었다. 물론 그들 자신도 고학위 공부에 발을 들여놓을 때 결코 중학교가 목표는 아니였을 것이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명당’자리를 노리며 청운의 꿈을 휘날렸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에 진출하니 초기 리상과 오늘 현실의 괴리가 너무 커 중학교 교직을 선택 한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전사회적 학력이 높아지고 박사생 인력이 해당 분야의 수요를 초과한다는 명증이 아닌가 본다. 물론 이들중 소수는 중학교 교육에 몸을 담그려는 리상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중학교 교원직이란 안정한 생활에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누구나 고중문을 나와 줄에 서는 것만으로도 대학진학은 가능하게 되여있고 석사생과 박사생의 수량도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중학교 같은 일반적 자리에 영입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대변화의 항로표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석박사가 고귀화되고 명리화되고 신비화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봐도 과분하지 않다. 때문에 누구도 고학력이면 가차없이 웃사람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기 삶의 기반이 되는 일자리를 우선시하면서 자아실현을 이루는 길을 걸어야 한다. 즉 일자리와 인생목표라는 두가지 선택에서 최선책이 안되면 차선책을 즉시 택하여 핸들을 꺽고 최적의 학행일치(学行一致) 림계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에는 정보통신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사회관리, 산업현장 및 모든 서비스 분야에서 무인화, 소인화, 로보트화, 지능화 물결이 세차게 일고 있다. 하여 인력과잉으로 인한 일자리의 불확실성이 상당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학력만으로 일생을 먹고살던 시대는 영영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고학력자란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고루한 의식을 버리고 물질생활과 사회생활이 동시에 유리한 일자리를 ‘주메뉴’로 선택해야 마땅하다. 지능사회의 미래상이 어떠할지 아직 불투명하지만 분명한 것이라면 현존하는 일자리가 지능기기에 대략으로 잠식되거나 절대 부분의 업무방식에도 상전벽해 변화가 일게 된다. 하여 일자리문제는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다른 면으로 지능기기의 도움으로 지식의 습득은 전례없이 빨라지고 간단해지고 있으며 업무의 진행속도도 전례없이 쾌속화되고 능률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극소수 첨단적 핵심인재를 제외한 절대다수는 하나의 직장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일생동안 두개 이상의 자리를 전전하거나 혹은 동시에 두 개 이상 직장에서 동시 근무하는 방식도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진출 이후에도 지속적인 학습으로 두개 이상의 기능을 키우는 것은 생활의 수요가 아닌 생존의 필수로 되게 된다. 미래의 학력은 대학이 최저선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일반 로동자의 자격마저 상실할 처지에 빠지게 된다. 사실상 대학에서는 일반적으로 규정된 전문지식을 배우는 데 무게를 두고 있으므로 동시에 기타 학과를 습득한다는 자체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능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정보의 수집능력과 분석능력, 인간과의 감성교류 능력을 키우고 부동한 문화세계를 결합하는 인문학 수준을 제고하는 노력만은 시종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오직 이래야만 미래의 순식 만변하는 직업세계에서 수시로 부딪칠 위기를 림기응변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총화해본다면 탄탄한 전문지식과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다양한 문화세계와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사회의 선두주자로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쉽게 배울 수가 없는 언어기능이 핵심이 된다. 그렇다면 한어와 조선어에 숙지한 조선족은 이 천혜의 문화조건으로 일자리라는 삶의 자리 선택에서 우수한 행운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기 민족문화에 자신을 가지게 되는 사실적 근거이다. 연변일보 
201    언어 씨앗의 파종은 동유기가 적기 댓글:  조회:1642  추천:0  2021-09-13
언어 씨앗의 파종은 동유기가 적기 김인섭 얼마전 두  조선족 구직 청년들과 만났는데 둘 다 같은 조선족학교에서 소학교부터 고중을 마치고 진학한 대졸생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조선어수준 차이가 현격하여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하나는 흑룡강성 어느 조선족 집거구에서 태어나 자라 이 동네에서 입학하였고 하나는 현지 조선족가정 출생인데 한어 환경에서 자라다 입교한 것이였다. 그들의 가장 큰 차이라면 전자는 가정의 부모들이 다부분 조선어를 구사하였으며 후자는 언어 환경이 미비한데다 부모들이 대화 다부분을 한어로 하고 간혹 조선어 대화도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적 언어 수준을 보면 한어와 영어는 엇비슷하였으나 조선어는 쓰기, 듣기, 읽기, 번역, 문법 등 기본 수준은 물론 글의 론리성도 뒤죽박죽이었다. 이 현상을 지켜보며 이전 들어두었던 이야기가 새삼스레 떠올랐다.인간의 대뇌피질에는 언어를 관장하는 브로카스령역(Broca’s area)이 있는데 이 구역은 대개 2세 좌우부터 시작하여 12세 좌우에 성숙이 완성되고 그 후부터  쇠퇴해 진다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말을 배우고 기억하고  발음을 시작하는데 다른 언어의 교란이 없기에 가장 쉽게 모방하고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 민감기로 정의하는바 이때 배우고 저장된 언어는 직접 브로카스령역에 저장되어 '모어' 즉 원어(原语)로 된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언어주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 공부일 수 밖에 없다. 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이때 인간에게는 3가지 언어를 동시 주입해도 원어민 수준에로 이르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생리적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동유기에 뿌린 언어 씨앗은 쉽게 싹트고 뿌리 착근(着根)이 강력하여 일단 박히면 사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연구자들이 일치하게 주장한다. 또한 이 성장기에 내린 언어 뿌리는 일생 동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모종의 경우 환경이 바뀌더라도 어느 땐가 풍조우순(风调雨顺)의 호천후를 만나면 재빨리 재생할 수 있어 원상 회복이 가능하다고 피력하였다. 때문에 동유기 언어 학습자는 언어를 습득하였다 하고  이 후기의 언어 학습자는 언어를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전자의 언어는 뿌리로부터 뿜겨나오는 것이고 후자의 언어는 언어중추 표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량자는 사유, 리해, 기억,재생, 표현, 발음 등 언어적 발휘에서 본질적인 높낮이 차이가 발생되는 것이다. 농사의 첫대목은 제철 파종인데 이 계절을 놓치면 무엇을 얼마 쏟아부어도 졸자라거나 헛자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태어나 언어를 배우는 단계 장악의 열쇠는 아이와 밀착 동반하는 부모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가정 밖의 언어 환경이나 텔레비죤, 라지오 등 공공매체 혹은 타인과의 교류도 부모들과 밀접한 련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제철에 심은 씨앗 뿌리는 깊고도 단단히 박힌 원뿌리로 되어 완강한 생명력을 지켜갈 수 있으나 철을 어긴 씨앗은 표면에 부착되어 곁뿌리를 형성하다 환경이 소실되면 따라 사라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언어 배움의 유일한 황금기인 동유기를 놓이면 일과성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남기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오늘날 조선족에게 있어서 급속히 발전하는 대국인 중국을 무대로 하고 두 민족의 문화를 에너지 원천으로 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경쟁력이다. 과거 조선족 사회가 발전을 이룩하고 나라와 세계에 공헌할 수 있었다면 바로 이 우월한 지정학적 지위와 문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번영하는 중국을 기반으로 세계로 나간다는 자체는 우리만의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이 무대의 주인공은 민족문화와 중국문화를 익숙히 장악한 이 사람들 뿐이다. 이 두가지 언어 자본을 소유한다면 적어도 값진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기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민족문화의 핵심인 민족어로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주류 문화의 핵심인 한어로서 중국공민의 정체성을 굳게 지켜가야 한다. 그렇다면 민족 인구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민족의 장점은 더욱 고양되고 민족의 이미지는 더욱 상승하고 민족사회는 백화가 더욱 만발하는 터전이 될 것은 틀림없다.   언어 씨앗의 파종은 동유기가 적기라는 자연철학은 교육자들과 기성세대 부모들의 좌우명이 되어야 한다. 내 아이에게 하나의 언어를 더 장악시킨다는 자체는 하나의 무진장한 보물광산 개발권을 안겨주는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조선족사회가 인구 격감으로 위축될수록 기성세대 특히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두개 언어를 동시 주입시키기 위하여 더 큰 노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면 후대들을 한어와 조선어 두 언어의 원어민으로 키울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또 그렇다면 아이들의 미래 무대가 더욱 광활해질 것이고 부모 자신도 상팔자 자식운을 들쓰는 행운아로 될 수 있다. 연변일보 
200    이상기후 알고 살기 □김인섭 댓글:  조회:1290  추천:0  2021-08-30
이상기후 알고 살기 □김인섭 지난 7월 20일 정주에서 발생한 특대폭우가 드리운 그늘은 아직도 가슴에 어둡게 남아있다. 인구가 천만을 넘는 도시에 물폭탄이 쏟아져 온 도시가 삽시에 물바다로 되여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고 억대의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3일 동안 내린 폭우가 1년의 강수량과 맞먹는다는 이번 물란리를 두고  일각에서는 천재일우(千载一遇)의 대폭우라 표현하고 저쪽에서는 5000년간 첫 기습폭우라 정의하기도 한다. 전대미문의 이 수재는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반적 결론이다. 인류 사회가 산업화로 발전하면서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를 과용함으로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대기층에 머물면서 대기온도를 개변시킨 업보라고 말한다. 현재 이상기후는 갈수록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북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장마 등 뉴스가 쉴새없이 전해오고 극렬 산불, 극지빙하 붕괴, 메뚜기떼 출몰 등 뉴스가 끊임없이 들려오는데  기사 제목의 거개에는 력대급, 사상 처음, 최장, 최고, 최저 등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일정한 온실가스는 지구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준다. 지구상의 생물체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여 대대로 번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18세기말 산업혁명 이후부터 화석연료를 대량 연소하고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개발하면서 대기중의 온실가스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계와 비행기, 자동차, 선박 등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대기 속에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천문수자로 뿜어냈고 다른 한편으로 온실가스의 가장 주요한 흡수원인 산림과 초원이 인간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였기에 가스 농도의 증가를 가속화시킨 것도 큰 원인이다. 인간이 진행하는 의식주행 활동은 거의 전부가 가스 배출과 직결되고 있다. 2020년의 지구 평균기온은 18세기말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2도 더 높아졌는데 이제 섭씨 3도가 오르면 인류의 생존은 결정적인 위협에 직면한다고 학자들과 지성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15년 전세계 여러 나라 대표들이 프랑스 빠리에 모여  지구기온 최대 상승폭이 최대 섭씨 2.0도라는 한계선을 그어놓고 가급적 섭씨 1.5도 이내로 통제한다는 제안을 발의하고 일치한 협의를 체결하였다. 그리고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산림과 록지를 최대한 보호하고 확보하며 다양한 신생에너지 개발과 활용에 박차를 가하고 친환경적 저탄소 록색혁명을 일으킬 데 관해 합의점을 찾았다.   이같이 이상기후의 정복은 전인류 앞에 놓여진 긴급사태임이 틀림없다. 현재 우리 나라는 지구온난화 대책의 주도적 지위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국가전략에 상정시키고 전민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되고 있는 이때 이상기후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하여 각자는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생태문명 규제를 바짝 따르는 것은 너나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심각한 화두이고 과제임을 명기해야 한다. 연변일보
199    고령자 취직 왜 필요한가 댓글:  조회:1440  추천:0  2021-06-03
얼마 전 고향에 일 보러 갔다가 퇴직자 친구들이 자기들은 상당한 로동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라리 치며 시간을 허송한다고 푸념을 털어놓는 것이였다. 로령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를 볼 때  그들의 이런 일욕심은 반드시 중시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 되여야 하지 않는가 고민하게 되였다.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여 인간 수명이 크게 늘어나는 데 더하여 출산률 저하까지 엇갈리면서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있다. 지금의 법정 퇴직년령은 남자 60주세, 녀자 50세이며 행정부문의 녀성은 55세로 규정되고 있어 퇴직하여도 신체는 기본상 건강한 상태이고 고강도 체력로동이 아니라면 많은 분야의 취직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그리고 60대 정도면 일반적으로 신체조건이 좋아 상당한 직종에 적응될 수 있으며 70대라도 로동의욕이 있다면 어지간한 서비스업에 종사해도 무리가 전혀 없다. 그중 지식이나 기술 경험을 소유한 전문형은 재취직이 기본상 어려움이 없으나 수자가 적다. 그리고 경제적 보충을 바라는 생계형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일자리 부족과 사회 관념의 결여로 하여 애로가 많다. 다음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나 로동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려는 근로형인데 그들은 자립성을 증강하고 유의미한 만년을 보내려는 욕망이 박절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들의 념원을 존중하고 실제 상황에 따라 분별 있게 분석하여 사회문제 해결 시스템에 도입시켜 지원하는 사업이 날로 필요해지고 있다 고령자 취업은 경제자립, 건강유지, 생활만족 등 개인적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그들이 취직 로동에 참여하고 수입을 증가하는 자체는 사회적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첫째, 그들의 소득 증가는 사회의 양로원가를 절감하게 하고 정부의 로후문제 해결에 관련된 재정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 둘째, 고령자들의 생활 의욕을 고무하여 로력을 활용하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데 유조하다. 셋째, 일정한 정도에서 소비인구가 생산인구로 전화하게 되여 사회, 경제의 량성 순환을 추진하는 데 유익한 작용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고령자의 취직 로동은 로인들의 경제수입 증가, 심신건강 증진과 더불어 국가 경제와 양로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보충으로 되며  로중청 세대간의 격차를 줄이게 되여 사회의 조화적 건설에서 긍정적 에너지로 전화될 수 있다. 인구 고령화는 산업구조, 사회관리, 문화생활 등 매개 분야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더구나 로년자 계층이 신속히 방대해지는 오늘에 그들의 사회 참여의 기회를 확대시키는 것은 그 삶의 질 개선에도 크게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직 발전단계이고 로동시장의 육성도 상당히 불충분한 상황에 처해있으므로 그들의 로후생활 특히 양로문제 해결에서 국가적 지원은 상당한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기 생활문제를 처리하려 노력한다면 이것은 나라의 양로사업에 대한 간접적 지원으로 되는 동시에 그들의 행복감과 긍지감을 높여주면서 전반적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지대한 추동력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시해야 될 점이라면 취직을 희망하는 다수인의 심적 기저에는 경제곤난이 깔려있다는 이것이다. 그러므로  고령층에 잠재하고 있는 로동생산성을 발굴하여 자기독립성을 제고시키는 것은 결국 빈곤을 방지하고 빈곤을 해탈하는 당과 정부의 전략적 발전방향과 일치하게 된다. 특히 로후대책이 부재한 부류에 대하여서는 빈곤층부축의 시각에서 그들의 취직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조직은 고령자 일자리를 빈곤구제라는 필수(必须)  사업으로 삼고 다양한 정책적 지원, 정보 제공, 로인 로동보호 관련 정책법규 제정 등 현실적인 대안을수립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종합해보면 로년 취직문제는 복잡하고 난해한 과제이지만 림시적 방편책이 아닌 장기적인 방침, 정책, 법규로 고착시키고 시달되여야 할 중대한 사업이다. 오늘날 청년취업이 정부사업의 중책으로 부과되는 시점에서 고령자 취직은 단순히 로동시장의 수요, 공급 관계의 조절 경로에 의거해서는 해결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주도하고 여러 사회단체들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일자리 창출, 기업을 통한 취업지원, 고령자의 인식 개선, 고령자 고용 관련 법규, 취업교육 프로그램 등 사업들이 련동하는 기제를 건립하고 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라의 사회 건설에서 새로 부상하는 필요한 사업일 뿐만 아니라 인구의 상당한 비례를 차지하는 로인들이 로후를 안심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보내게 하는 륜리적 성질의 성업(圣业)인 것이다. 연변일보 
198    비여가는 마을의 갈 곳은 어디에… 댓글:  조회:1566  추천:1  2021-05-20
비여가는 마을의 갈 곳은 어디에… 김인섭 고고성을 울리며 태여나 유소년 시절의 랑만과 청춘의 정열을 쏟아놓은 고향을 떠나 방랑한 지가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었는데 그동안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았어도 마음은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하여 간혹 고향 방문을 하게 되면 발 가는 대로 고향의 변화를 시탐하는 것이 고정 동작이 되여버렸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조상들의 말 그대로 그 사이 고향은 두 번 바뀌는 변화를 하고도  썩 더 변하였다. 그러나 화려한 발전모습의 뒤안에는 민족사회 공동체의 표지인 동네들이 해체위기에 처했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슴을 조이고 있다. 대략 20세기 90년대초부터 흥기한 고향의 인구의 대이동은 경지의 황페화로부터 시작하여 학교가 사라지고 생육기 부녀가 사라지며  아이 울음소리가 자취를 감추면서 동네의 공동화라는 우수수한 모습을 불러왔다. 수많은 마을들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심히 사라지고 고령자들이나 힘없는 약자들이  마을지기로 전락하여 동네 파수군으로 남아있다. 마을마다에 인적 없는 집들이 늘어만 가고 빈곤탈피의 전략으로 지어진 양옥 같은 주택들마저 하루 건너 비여가는데 주인들이 돌아온다는 희망은 묘망할 뿐이다. 젊은층은 눈을 씻고 봐야 한둘이고 리향자 귀환의 희소식은 거의 끊기다싶이 되였다. 남은 로인들도 어쩔 수 없이 자식 곁으로 가거나 타계하다 보니 이제는 텅 빈다는 공동화가 아니고 소실로 이어진다는 무거운 걱정이 앞서있다 . 도시와 이국의 매력은 농촌인을 무분별하게 흡수해가는데 약간 움직일 정도면 가차없이 자취를 감춘다는 얘기가 실말이다. 이대로라면 현재의 기층 조직도 ‘장수만 있고 군사가 없는’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가. 마을 소실의 엄연한 사실을 눈물겹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결코 손을 거머쥐고 지켜볼 일도 아니다. 인구의 일정한 규모를 형성하지 못하면 일자리, 교육, 의료, 교통, 서비스 등 사회 공급이 절대부족이 되거나 단절되여 사람들이 모여살 수도 없다. 공동화된 촌락, 비여가는 촌락, 소실위험 촌락들을 분별 있게 구분하여 소멸화에 대처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본다. 재생 불가능한 마을을  통페합하여 기존의 행정지역이나 지리적으로 적합한 지역을  선택하여 인구집중을 실현하는 방안이 최선책이 아닌가 본다. 현재 대량의 유휴 주택, 택지 및 인프라 시설들을 경제자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인구의 귀환을 고무하는 동시에 도시인들이 농촌에 가 생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모든 희망자들이 생활할 수 있는 방침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역의 경제발전과 인구증가를 실현하는 데 상당한 추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도시의 민간자본이 농촌에 투입되는 길을 열어 모든 유지인사들의 창업을 고무해야 한다. 산업개발은 자본과 인재를 동시에 수요하고 투자자본의 증식과 인재의 가치 실현은 서로 전제가 되는 것이다. 명기해야 할 점이라면 봉황새를 모시려면 둥지 뿐만이 아닌 먹이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도시 농촌의 자본과 인구가 쌍방향으로 류동하는 대통로를 열어주는 것은 개혁개방을 심화시킨다는 시각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이렇다면 농촌은 사회의 모든 경제요소들이 생산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될 것이고 일자리 형성, 인구의 증가, 주거환경 일신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리 나라는 물질적 결핍이란 절대적 빈곤을 해탈하는 력사적 장거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빈곤의 해탈이란 영원히 진행형으로서 물질빈곤이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면 또다시 빈부격차와 지역격차를 축소한다는 상대빈곤 해소의 대결에 돌입해야 한다. 물질부족으로 ‘배 고픈’ 시기를 뛰여넘어 빈부와 지역 격차로 인한 ‘배 아픈’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이것이다. 그러므로 비여가는 마을의 새로운 출로 개척은 상대빈곤과 싸우는 새로운 도전이고 시대적 수요라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비여가는 마을의 새 출로 개척, 이것은 장기적이고 과학적으로 전개해야 할 간고한 사업이다. 그러므로 지역의 합리한 통페합, 도시의 민간자본과 인재 류입, 현유 농촌의 주택 인프라 시설 및 토지자원의 활성화 등 3위 일체의 종합조치는 새 고향을 건설하는 실현가능의 활로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고향마을의 소실이 간단한 소실로 끝을 보지 않고 그것이 더 승화된 신형 촌락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더 수려한 도원경으로 꾸려진다는 희망이 과대망상은 아닐 것이다. 연변일보
197    문화 량극화와 삶의 질의 량극화 댓글:  조회:1375  추천:0  2021-04-25
문화 량극화와 삶의 질의 량극화 김인섭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체제 전환 및 생활양식과 의식형태 급변의 충격 속에서 조선족사회는 인구의 대이동과 리산이란 새시대를 맞아왔다. 력사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필연적이고 긍정적인 발전이지만 그의 부산물로 우리 민족은 인구의 급감과 문화교육의 쇠락이라는 사태를 맞아오게 된다. 하여 상당수 후대들이 민족교육에서 소외되거나 리탈하고 언어를 위시한 문화를 등지게 되였다. 결과 민족 내부에서 문화 격차가 발생하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삶의 질에서 극명한 고저차가 산생되였다. 오늘 우리 후대들의 문화 량극화가 산생시킨 삶의 차이라면 우선 생계와 직결된 일자리 선택에서 기회 절반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수입차도 상당히 크며 재취직시의 불확실성도 훨씬 더 크게 된다. 다음 정보능력과 인식능력 및 사고능력에서도 커다란 수준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창업, 업무수행, 시장확보, 사회교제 등 곳곳에서 높낮이를 형성시킨다. 그다음 일상적 려행, 문화생활, 해외교류 등 취미생활에서 수많은 즐거움과 환락을 잃게 된다. 이 현실과 교훈은 민족문화 교육의 생동한 교재로 되여야 한다. 인구의 부단한 감소와 이동 및 분산으로 하여 민족교육이 어려워지고 교육환경이 협소해지는 관계로 문화 량극화는 단시적으로 해소되기 어렵거나 심화될 수 있다. 또 인구의 감소와 분산이 진행의 일로를 걷고 있으므로 그 해결을 위한 사회 노력의 효과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라면 경제 량극화는 단기간내 해소가 가능하지만 문화 량극화는 일단 발생하면 경제격차의 해결보다 수십배의 노력과 자원을 수요할 것이고 민족 자체의 존속에까지 직접 위협을 조성하게 된다는 이 점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문화 터전에 세우고 생활의 모든 구석에서 문화 씨앗을 뿌려주는 노력이 더없이 시급해지고 있다. 사회가 현대적으로 갈수록 문화의 자본적 작용이 더욱 커지며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은 더욱 긴밀히 맞물리게 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사회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나 발전격차는 결국 문화격차로부터 기인되는 것이다. 문화의 락후성은 그 민족으로 하여금 사회 제반 령역에의 접근을 제한하고 자연 및 사회 자원의 리용을 방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 빈곤자들은 안목이 단시적이고 사고방식이 협소하므로 모든 배움과 실천에서 약자 처지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문화 무기가 있었기에 동북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나라의 발전의 선두에 서게 되였고 중국과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출중히 발휘하면서 자체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 문화 가치성은 앞으로 더욱 필요성 있게 될 것인바 또다시 조선족사회 발전에 무궁한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이토록 문화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화는 약화되고 민족인재는 량적으로 부단히 감소되고 있다. 이리하여 민족인재가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공급부족시장이 형성되고 인재 희소성 가치를 산생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민족문화를 고양해야 한다는 근본적 근거로 된다. 현재  조선족은 90여개 나라에 진출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족이 자신의 문화로 세계적 발전의 기반을 닦아놓았다는 명증이다. 이것은 조선족이 문화우세를 발전 자원으로 리용한 결과물이고 향후 발전에서의 민족적 지리자원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화 량극화가 삶의 질 량극화를 불러온 현실을 심각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선족사회는 인구의 격감, 문화인구 비례의 지속적 저하라는 심각한 딜레마(困境)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터전을 버리는 탈지역화 바람이 멈추지 않고 민족문화를 등지는 후대들의 수도 증가 일로를 걷고 있다. 이 안타까운 현상을 보며 연길의 한  지성인은 현유의 사회적 교육조건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 량극화 방지의 상당한 부분을 부모들이 짊어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자식과 함께 하는 모든 기회를 리용하여 민족 언어와 문화를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인생길 문열쇠는 부모들의 손에 쥐여져있다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더 가치 있는 삶터를 마련해주기 위해 어느 때보다 민족문화 교육에 더 정열을 쏟아야 한다. 연변일보 
196    적정 속도의 파악이 참삶의 근본 댓글:  조회:1220  추천:0  2021-03-30
'인생의 후회 씨앗은 젊은 시절의 실속(失速)이다'라는 선조의 잠언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최근 나이테 늘어가면서 과거날 내가 무작정 내달리며 저지른 실수나 과오들이 좌절과 실패를 자초하던 력사가 심심한 후회로 떠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이 교시 정확성의 명증이 아닌가 본다.이젠 나의 존재가 인생의 가을이 되어 사회의 변두리에 와 있다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수시로 팽배하는 무력감도 주체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젊은 시절의 그리움 때문일까.갈수록 이팔광음의 초상을 더듬어 보게된다.하여 내면 정신은 늘 생리 년령을 초월하여 새 세계를 바라보면서 삶에서 모아놓은 자아 성찰을 말하기 싶어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후회없이 잘 살도록 해라!  때늦은 후회는 다 소용 없어! 없지른 물인데..'와 같은 충고를 자구 보고 듣게 된다.그러나 현실적으로 후회가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없고 설혹 있다해도 그 생활은 불완전하거나 무의미했다고 말하게 된다.철학적 시각에서 보면 노력의 과정에는 성취와 실추가 동반하게 되고 환락 역시 고난을 상반(相伴)하며  긍지와 후회도 늘 영형상수(影形相随)로 동행하는 것이다.사람의 생애는 결국 성공의 평야과 실패의 굴곡을 지나면서 희노애락을 맛보는 과정이 되게 된다.모든 사람이 거의 겪게 되는 이런 지난날은 로년이 되어서야 늘 뼈저린 각성으로 되고 나이가 오를수록 더욱 감회로워 지고 있는 것이 일반 법칙이 되고 있다.이 위인은 최근부터 늘 과거날의 회한이 후대나 타인의 질곡을 풀어가는 량약으로 쓰이여 긍정적 에너지로 남아야 한다는 바람도 간절해 지고 있다.더우기 후세인들의 인생 패착을 방지하는 백신으로 작용하기 바라는 속마음을 떨칠 수 없다.   현대 사회의 관념 부산물의 하나가  ‘속도 숭배’이다.목적의 달성을 위해 너나없이 속도에 가속을 붙이며 달리려는 것이 오늘 세태가 아닌가 본다.결과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라면 필수적 과정을 무시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건너뛰기식 맹속 전진을 시도하는 것이다.살아가면서 속도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그 전진은 좌우전후와 조화되고 앞길에 숨어있는 걸림돌이나 수시로 복재(伏在)하는 함정과 수렁을 에돌아갈 수 있어 한다.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면 협력자들과 후원자가 함께 하는 속도여야 하는 점과 수시로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이토록 자기에게 조건에 알맞는 속도를 찾아내는 지혜와 변하는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슬기를 배워야 한다.무작정 나갔다 좌초하고 원점에 돌아온다면 이미 돌이킬수 없는 악과를 들쓰는 때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서둘러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결과 최대의 힘으로 최고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고집이다. 이리하여 힘과 속도의 평형감각을 잃고 질주하는 데만 주의력을 쏟아붓게 된다.마라톤 선수가 스타트 초기에  아무리 힘내어 빠르게 뛰어도 각 단계의 력량 분배가 잘 안 된다면 나중에 기맥 부족으로 뒤에 떨어지며 결코 우승을 기대할 수 없다.승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비축된 역량을 고루 나누어 발휘하는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자신의 힘 한계를 모르고 무턱대고 나갔다 나중에 주저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자기를 모르고 마구 짓달리는사람은 파멸의 함정을 앞에 두고 서슴없이 달리는 청맹과니와 다를 바 없다.   1912년 침몰한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은 과속 항해를 했기에 빙산을 돌연히 만났을 때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이다.인생의 배를 몰고 갈 때 속도를 설정하기 이전에 방향을 잘 선택하고 전방을 예리하게 주시해야 한다.인생의 행불행은 결국 방향과 목적의 성취에 있는 것이므로 일하는 속도의 느림과 빠름을 잘 핸들링하면서 나가는 방향이 바로 잡혔는가 수시로 파악해야 한다.속도를 낸답시고 방향을 잃고 미로에 들어간다면  삽시 사이에 인생을 말아먹는다는 사들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특히 금전만능의 세속에 물젖어 정의와 공공리익을 도외시하고 사회 륜리를 무시하는 속도 문란은 헛된 인생을 자초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점 명기할 바이다.   빠른 것이 늦은 것을 집어삼키는 사활적 경쟁은 오늘도 여전히 속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이리하여 모든 선의와 노력을 쏟아 붇고도 요절되거나 중간 랑패를 보는 수많은 사례들은 경종으로 울려오고 있다.그러나 부피의 크기, 힘의 대소나 속도의 쾌만에 의하여 성패가 결정되는 시대는 지나갔다.바야흐로 도래하는 지능화시대에서는 자신만의 적정 속도를 파악하고 전진의 방향타를 똑바로 잡고 있어야 성공의 기쁨과 행복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끝) 2021-03-25 연변일보
195    농촌 고령층의 정보교육 댓글:  조회:1421  추천:0  2021-02-26
현재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에는 스마트폰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이미 생활의 필요가 아닌 필수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능도 경이롭게 향상되여 사용 범위가 급속히 확장되는데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더구나 코로나가 만연하면서 비대면 서비스, 비대면 업무가 보편화되여 그 가치는 더욱 가파롭게 상승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지능화 변혁은 물론 시대발전의 표징이지만 농촌 로령자란 이 사회 취약계층은 적응부전으로 상당한 고민과 불편을 겪고 있다. 하여 이 디지털 락후상(落后相)을 해소하는 일환으로서 로인 상대의 스마트폰 교육이 새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략 몇년 전까지도 통신 위주의 용도로 쓰이던 스마트폰이 이젠 쇼핑, 결제, 금융, 시장개발, 화상회의,행정관리 등등 광활한 분야에서 불가무(不可无)의 만능도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리하여 다양한 원인으로 경상 접근이 어려운 농촌로인들이 사회생활에서 적지 않게 소외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한적한 농촌에서 생활하는 로인들의 불안감과 박탈감을 루적시키지 않는가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 로인들의 디지털 정보와의 괴리는 그들의 취약성을 가심화시켜 사회적 부담을 증가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로인들의 디지털 생활에서의 일탈이나 배제는 정보소유 격차로 인하여 그들이 현대생활을 바라만 보는 정보 빈곤자로 전락하는 요인으로 된다는 것이다. 고령층 정보 수준의 락후는 사회 발전에 따른 변화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어느 개인, 단체나 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정부의 정책적 추진이 앞서야만 근본적 해결 대책이 수립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로인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 리용, 활용, 접수 등 능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고 또 기층조직에 대하여 제창하는 구호가 아닌 즉 완성 기준이 확실한 의무로서 락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촌 실정에 부합되고 로인들의 출신별, 소득별, 학력별, 성별 등 특성에 부합되는 실시방안을 확립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로인 정보화 교육 사업을 농촌조직의 사회봉사체계에 납입하고 상규적 사업의 차원에서 필수(必须) 업무로서 립안되여야 함이 바람직한 추진방향인 것이다. 현재 농촌인구의 고령화가 지속되고 디지털과 실생활간의 관계가 날따라 밀접해지는 현실에서 고령층이 락후되는 비조화적 현상을 임의로 방치한다면 그들의 시운불행(时运不幸)이란 불안심리를 증폭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결코 외면되지 말아야 할 중대사이다. 때문에 그들이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신체적 불편이 존재하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지식의 가치를 고취하여 그들의 의욕을 환기시키고 이 교육을 집단모임의 여유를 즐기는 귀중한 기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도시와 농촌의 여가량극화(余假两极化)란 이 현대사회 새 모순을 축소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로년층의 정보화 교육은 로인들의 현대생활 동조, 사회소외 해소, 여가생활 쾌락, 사회부담 감소란 일석사조(一石四鸟)의 승수효과(乘数效果)를 일으킬 것으로 본다. 로인들의 정보화 교육에는 고령 수준에 맞는 교재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의 관련 부서에서는 다양한 교육방식을 홍보하고 서로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공공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테면 로인 정보화 교재편찬 같은 전문기구를 구성하거나 그 교육을 지원하고 점검할 수 있는 플랫홈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전통적 서비스와 지능화 교육을 결합시키면서 로인들 만년생활에 현대과학기술 내용을 주입하고 현대감, 행복감, 안전감을 숙성시키는 립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다. 오늘 로인들 대부분은 40, 50년대에 태여나 중국발전의 부동한 단계에서 파란만장의 간난신고를 거치며 헤아릴 수 없이 혈한을 쏟아온 계층이다. 이들을 현대사회와 적극적으로 융합시키는 것은 차세대들이 떠메야 할 사회적 책임이며 륜리적 책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질빈곤이란 절대빈곤에서 해탈하였다면 지금부터 빈부격차 극소화란 상대빈곤 해탈의 영구전(永久战)에 돌입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고령층의 정보교육을 ‘인민의 날로 증가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추구와 불균형적 그리고 불충분한 발전지간의 모순을 해결한다.’는 국가 전략의 시각에서 실천해도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연변일보 
194    코로나사태 후 다중언어 문화가치 급향상 댓글:  조회:1453  추천:0  2021-01-28
지난해초부터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가 국내에서 막바지인가 싶더니 겨울을 맞아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아직도 타국에선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일파만파로 전파되는 양상이 멈추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구석구석에까지 샅샅이 파고드는 이 병독은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인명과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고 온 세상은 대전이 방불한 고전을 치르고 있다. 그래도 나라마다 사회관리, 병독방치와 백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다 종합대처 경험이 쌓이고 국제협력이 강화됨에 따라 억제될 것이라는 희망 역시 현실화로 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역병에 대비하여 각국은 휴교, 휴업, 이동제한, 지역통제 등 초강력 조치를 취하고 집단모임을 자제하고 인간교제의 물리적 거리까지 규정하는 특단책도 서슴없이 강행하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들간의 직접 혹은 근거리 접촉이 대폭 줄어드는 대신 원격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비대면 교류 방식이 용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화상회의, 재택근무, 원격서비스, 인터넷 소비, 인터넷 비지니스 등 비대면문화 형태들이 전례 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이것이 바로 생동한 사례들이다. 이런 것들은 원래 재난을 탈출하는 궁여지책으로 떠오른 조치들이였는데 실천중에서 그 장점과 효과성이 실증되면서 향후 비대면, 비접촉 문화가 하나의 조류로서 인간생활의 전면에 고착될 강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에 동반하여 원격 정보수집, 부동한 문화세계와 원활한 소통 그리고 타인과 정감을 돈독히 하는 데서 필수인 감성교류 기능이 사업과 경영 및 일상생활의 첫째 수요로서 부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바라면 시중에서 강대한 생명력을 과시하던 디지털 정보기술이 갑자기 맹위를 떨치며 신선한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 사실이다.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은 코로나사태에서 나타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데서 기술 기반이 됨으로써 인간은 자체의 생물기능으로 도저히 수행할 수 없던 수많은 난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였다. 이리하여 4차산업혁명이 이끄는 디지털 지능화 기술이 코로나 방치라는 무대에서 전례없이 영향력을 확대해가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과학문화 전망을 펼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오늘 형성된 비대면, 비접촉을 특점으로 하는 새로운 삶의 수단들이 인류의 모든 생활에 정착하는 속도가 더욱 가속이 붙을 것도 사실화로 되고 있다. 대체로 무인화, 지능화, 원격화가 주도할 생활방식이 사회 움직임을 주도하면서 인류에게 새로운 생활이란 거시적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는 이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과 같은 다문화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군체들에게 있어서 타인보다 적어도 한배 넘는 활동무대를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접촉, 비대면 문화가 확장되는 현실은 지능화 새시대가 앞당겨 도래한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결과적으로 온라인과 디지털 정보기기에 의한 원격소통 방식의 생활은 더 빠른 속도로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리하여 생산, 교환, 분배, 소비 등 생산관계의 전반에는 걷잡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전반 사회적 운행 방식과 매개인 사고와 행동 방식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하게 된다. 사회의 상부구조에서 심각한 변화가 발생하는 오늘, 모든 사회와 개인은 새시대 환경에 적응할 리념적 및 기능적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 놓여진 침중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사태에서 축적한 교훈, 경험과 지식을 귀중한 자산으로 간주하고 현대과학기술을 더욱 잘 배움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급격한 변화는 불가피적으로 사회적 혼돈을 초래하고 미래의 불투명성을 확대하게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민족문화력을 향상시키고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드팀없이 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수시로 발생할 불측사변에 림기응변적으로 대처할 준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문화로 생존과 발전의 공간을 확대하는 동시에 나라와 세계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사실(史实)을 기억해야 한다. 이 영광은 민족 발전사에 남아있는 민족의 재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지능화 시대 도래를 력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인류가 참신한 발전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예고이다. 이러한 시대에 나라 발전, 민족 발전과 인류문명 발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최우선 과제는 이중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를 더 강력한 생산력으로 전화시켜야 한다는 이것이다. 오늘의 조선족사회는 인구의 대량적 이동과 감소 그리고 공동체 해체라는 위기를 겪고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민족문화 가치가 급상승하고 인구의 희소성 가치가 급상승하고 민족인재 수요가 급증한다는 기회가 동반하고 있다. 이런 력사의 갈림길에서 조선족은 시대의 맥락을 잘 파악하고 미래 지향적인 안목에서 이중언어를 핵으로 한 민족문화를 견정불이하게 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연변일보 
193    우수사원이 되는 것도 창업 댓글:  조회:1641  추천:0  2021-01-04
올해초 느닷없이 들이닥친 코로나사태가 우리 나라에서는 진정되고 있으나 세계적 팬데믹(대류행)은 거침없이 지속되고 있다. 인간세상에 헤아릴 수 없는 재난을 뿌리고 만 단위로 헤아리는 생명을 략탈하는 병독의 강타에 온 세상은 걱정 도가니에 빠져있다. 전인류가 피타는 싸움을 벌리고 있으니 어느 때인가 제압될 것이지만 그 끝은 어디이고 피해가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느 한개 나라에서만 소멸이 어려운 이 역병은 지구 땅 전부 구석에서 자취를 감춰야 하는 것이다. 금시초문의 역병 충격 속에서 생계와 직결된 일자리 부족이 상당한 걱정거리중의 하나로 되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경영을 축소하고 조업을 중단하거나 경영난에 빠져있고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회사도 비일비재이다. 기존의 일자리가 무수히 사라지는 것은 물론 새 일터의 탄생도 심한 산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기반이 탄탄하던 업체들도 생존을 위하여 세찬 몸부림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만들기는 겹겹한 장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직자들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시장에서 불확실성이 루증(累增)하는 불안 가운에서 백신과 새 치료약 개발에 대한 기대도 부풀고 있지만 역시 미지의 높은 산을  넘고 장막이 드리운 언덕을 지나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 신구 구직자 이중 구직이 난제로 산적한 가운데 정부는 여러가지 진흥책을 상정시키고 강력한 해결 의지도 내비치지만 자체가 난해한 난제라 그 해제(解题)에는 상당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오늘에 인공지능과 로보트가 대량 인력을 대체하면서 새 생산력시대의 탄생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여 취직은 정부와 각 분야의 노력과 더불어 구직자 매개인들의 적극적 자태와 명랑한 의지가 더욱 필요하게 되였다. 사회 경기의 여하를 불문하고 새 창업을 포함한 일자리 수요는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독자적 창업을 시도할 경우 자금, 인맥, 경험 등등 필수여건이 구비되여야 하며 시장의 복잡한 경쟁에 부응하는 주관적 소양이 뒤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절대다수가 창업에서 실패 혹은 중도포기로 매듭짓고 소수자만이 성공가도를 걷게 된다. 바로 이런 필연성 때문에 대다수 구직자는 회사 입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업이나 구직이나를 막론하고 우선 꼭 절대 필요조건이라면 당사자 자신에게는 남에게 유익한 가치를 창조해주어야 한다는 리념이 확립되여야 하고 사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 혹은 기능도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타인주의의 높은 자태로 사회에 나서야만 희망하는 사업을 성공하거나 우수한 사원이 되여 자신이 바라는 경제수익과 자기목표를 실현하는 이중목적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구직이나 창업이나를 막론하고 그 희망자는 사회와 타인에게 가치를 창조해주려는 고차원 인력으로 육성되여야 하는 것이다. 진정 이렇다면 그는 생계수단을 넉넉히 확보하고 신분상승도 선뜻 실현하는 시대의 선두주자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족하는 삶을 누리려 희망한다면 옳바른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사명관을 수립하여 자신의 륜리도덕수준을 높이고 실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 생활에서 자기의 노력 대가 이상의 가치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전제이다. 잘사는 인생의 불가결 요소는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타인 우선의 정신으로 사업에 림하여 상대방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한다면 남에게 리익을 안겨주고 그 리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목적하는 리익을 향수한다는 것이다. 결국 타인에게 리익을 주는 사람으로 사회에 각인된다면 나의 사회적 립지가 확고해진 것으로 되고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회기반이 구축되였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하여 자기의 성실성으로 회사 오너들이나 사회의 믿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수한 사업자와 성공적 창업자가 되는 절대조건이 되고 있다.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다면 창업에 성공하거나 우수한 사원이 되여야 한다. 이 론리에 따른다면 우수사원이 되는 것과 창업의 성공 사이에 등식을 세워도 과분할 것 없다. 우수 사원이 되여 회사의 두터운 신임  속에서 넉넉하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것도 창업의 목표와 동일하므로 모범자로 되는 것도 창업으로서의 좋은 선택이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로부터 류추하여 우수한 사원이 되는 것도 창업이라 단언해본다. “좋은 물건은 팔 걱정이 없다.”는 비즈니스리론을 인간사에 대입해도 틀림이 없다. 그리고 “남 돕기도 제 노릇.”란 속담이나 “성공하려면 남을 먼저 성공시켜라.”는 잠언도 곰곰히 새겨볼 말이다. 연변일보 
192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사고 댓글:  조회:2367  추천:1  2020-08-13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사고 김인섭 우리 나라의 개혁개방에 가속이 붙은 가운데 조선족인구 감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일로를 걷고 있다. 이 현상을 두고 정부는 의사일정에 상정시킨 지 오래고 여러 사회조직들과 수많은 지성인들이 부동한 분야에서 관심을 쏟고 있지만 뭇사람들은 막연히 지켜볼 뿐이다. 인구 급감으로 하여 많은 민족 관련 정책과 조치들이 늘 효과 반감이 되면서 민족자치지역의 존페까지 의심하는 쑥덕공론 소문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 갈음으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이중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다. 현재 나타난 조선족인구는 통계상의 수자로서 인구구조에서 혈연적으로 조선족이지만 민족교육을 리탈하였거나 민족어를 상실한 인구는 반영하기 어렵게 되여있다. 이들은 아직도 실질적 조선족으로 남았지만 민족문화 생활이 어려운 상당수의 부류이다. 허나 민족문화가 아직 몸에 배여있으면서 민족문화 완전 리탈의 한계선을 밟고 좌우동(左右动)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엄연히 직시해야 할 중대사항으로서 전사회가 념두에 두고 하나의 중요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민족교육 정책 수립에는 일반적 민족교육, 문화리탈의 방지, 산재인구의 문화교육, 여가의 문화교육, 탈민족문화 가능의 동아리들에 대한 문화교육이 병행하는 대책을 세워야 하고 문화문맹들을 민족문화 반렬에 복귀시키는 복합적 시책이 마련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조선족 문화인구의 실질적 감소를 억제하는 조치로서 인구감소를 방지하는 중요한 대비책이 된다. 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민족문화 리탈로 민족사회는 공동체의 공동화, 민족교육의 위축, 민족문화 쇠락이라는 3중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은 사회발전에 따른 시대적 아픔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 발생을 최소화하고 미래지향적 전략을 펴야 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타민족 학교에 진학시키거나 또 교육환경의 부족으로 아이들이 민족교육에서 제외되는 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것이다. 조건이 구비되였음에도 아이들을 민족문화와 격리시키는 단시적 행위와 어쩔 수 없이 후대의 민족교육을 포기하는 이 두 과제는 민족사회의 존속에 직결되는 중대사로서 장기적이고 치밀한 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세차게 일고 있는 제4차산업혁명은 바야흐로 지능화 시대를 당겨오고 있다. 매개인은 자기의 개성과 장점을 키우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플랫폼(平台)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변혁의 혼돈 속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가장 필요한 정보력, 사교력, 팀워크(团队合作)력, 리더십(领导力)  등 기질을 육성하는 데는 민족문화가 가장 적합한 정신 인프라(基础设施)라는 이 긍정적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 시대에는 고학력이나 고학위가 아니라도 여러 문화 터전에서 원활한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유연한 정서 지능을 지닌다면 어느 분야에서 최고로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생계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다. 한족과 조선족 이중문화가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 우세는 조선족만의 우수한 민족성이다. 우리 조선족은  나라에 기여하면서 중한 교류의 교두보  작용을 발휘하였고 민족사회도 발전시켜왔는바 이것은 우리 민족문화를 긍정할 수 있는 충족조건이 된다. 그런데 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대량의 후대가 민족문화를 리탈한 결과로 인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수급모순(需给矛盾)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인재의 량적 부족과 민족문화 수준의 저하라는 이중 부족 현상이 가져온 직접적 결과이다. 이것을 효용가치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면 민족문화와 민족인재의 희소성 가치가 급등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인간은 교류 기능이 능란하고 범위가 넓을수록 더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민족문화의 수용 능력, 자정 능력과 창조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기성세대는 후대들에게 민족문화의 길을 개척해주기 위하여 물심량면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진입 가능한 문화세계가 넓다는 의미는 목표 선택에서 선택지가 많고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립증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조선반도 남북과 동시에 교류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조선족만의 지정학적 강점으로서 반드시 반도의 평화 추세도 념두에 두어야 한다. 불원한 장래 이 시대가 도래하면 조선족사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민족사회 위기는 전화위복(转祸为福)이 되여 새 번영을 이룩하는 천재일우(千载一遇)의 호기로 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전제는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립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연변일보 
191    문화는 민족사회의 추진기와 안전띠 댓글:  조회:2390  추천:0  2020-05-07
국내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즘즈문하다 싶더니 국외에서 일파만파로 확산되며 세상인심이 바늘방석에서 내려 가시방석에 올라앉은 분위기이다. 이 역병이 몰고오는 인명과 재산 피해가 얼마이고 그 파장이  어느 때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남기는 고통과 후유증 무게는 천문학 단위로 헤아려야 할 것만은 틀림없다. 이 초유 병귀(病鬼)의 횡포에 질겁한 인류는 생존과 생업을 위하여 정보통신 시스템과  지능화 기기들과 각종 최신 과학 기술을 리용하며 아득바득 몸부림을 치고 있다.오늘 각 나라마다 국가동원의 체제를 발동하여 전쟁이 방불한 전역을 벌이고 있으니 언젠가 평온한 일상이 돌아올 것이다.다른 일각에서는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형성된 디지털 삶의 양식들이 인간의 일상 생활에 고착되고 있으며  참신한 삶의 모델들이 륜곽을 명료히 드러내고 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도의 비말 전파와 기타 신체적 접촉이 주되는 감염 원인이기에 마스크 착용을 위시한 각종 조치들이 두루 쓰이고 있지만 외출을 자제하고 대소 모임을 최대한 줄이거나 금지하고 사람간 직접 혹은 가까운 접촉을 피하는 이것이 결정적 대책이다.이리하여 정보통신기술과 지능 기기를 리용하여 원격 환경에서 역병을 관리하고 기존 업무를 대체하는 문화가 시운을 타고 확산되게 되는것이다.이것은 이례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홀출(忽出) 현상이지만 현대화 정보통신과  디지털 산업의 발전에 따라 구축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홈에서 실재화되고 현상화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오늘의 코로나 초기에 비상대응책으로 활용되던 이 정보사회의 성과들이 실용 과정에서 놀라운 효률성과 실효성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물론 아직 상당히 미숙한 초기 단계인 관계로 일정한 혼란도 로출되지만 신속히 익숙해 지고 친숙해 지는 단계에 진입하였다.제4차산업혁명의 산물인 정보통신기술이 원격 비접촉 문화라는 혁신적 변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류사회는 지능화 시대로 급속히 돌입한다는 명증이다. 미증유의 돌림병 공황이 우리 생활에 대한 충격이 장기화되고 있다.금번 사태에 대처하는데서 원격 비접촉이 필수인 원인으로 재래적 대면식 회의와 달리 화상회의와 원격치료와 같은 교류 수단이 광범히 리용되는 것이 새삼스럽다.코로나바이러스는 나라와 국경 그리고 민족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치명타를 가하는 포악한 괴질이다.그러므로 그의 예방과 치료에서 근본적 효과를 보려면 독자적 국가가 아닌 모든 나라들과 모든 인류가 손잡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역병과 싸움에서 자력갱생이나 각자도생이란 시도는 망녕된 시도란 그 이상이 될 수도 없다.이라하여 금번 코로나의 방역 싸움에서 이뤄지는 국제화 교류도 시류를 따르는 원격 비접촉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뤄지면서 디지털 문화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바로 코로나와의 전쟁이 인류 시대가 지능화 시대에로 비약하는 또 하나의 도약대가 아닌가 본다.  화제를 돌리고.코로나의 방지와 퇴치를 위하여서는 반드시 물리적 거리를 늘여야 하지만 인간 소통이란 사회적 거리는 더욱 가까이 하여야 실효를 보게 된다.위하여 비대면의 상황이라도 사회 교류는 더 활발하고 소통은 더욱 원활하고 협력 폭도 더 확장해야만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이 모순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바로 디지털 수단이다.향후의 인간 생활에 미지의 역병이 불시착으로 습격할 것은 의심할 바 없고 폭우,폭설, 가뭄,홍수,지진 등등 천재지변도 불가피적인 것이다.이러한 재난을 순조롭게 넘으려면 비접촉 생존 방식이 여전히 필요가 아닌 필수로 되게 된다.그러므로 비접촉 문화는 향후의  복잡한 경제,정치,문화 환경에서도 더 폭발적으로 보급해야 한다.오늘 코로나 재난을 헤치고 나가는 조선족 사회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문화력을 바탕으로 지능화 도구의 리용 효과를 가배로 늘리고 월등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다시 말하면 민족 사회의 근저에는 우리의 선진 문화가 튼튼한 저력이 된다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조선족은 지능화 시대에 있어서  사회의 재난 및 평온 여부를 불문하고 생존과 발전의 천혜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미증유의 역병이  원격진료, 화상회의, 원격교육, 공장 무인자동화, 물류 배송 체계, 재택근무 같은 디지털 문화를 조기 정착시키는 기폭제이자 신호탄이 되고 있다.오늘의 코로나 재앙의 고비를 우리는 문화력 탄력을 받아 무난히 넘을 수 있다면 향후 비접촉경제 시대에도 문화가 역시 강대한 생산력으로 승화되어 막대한 작용을 발휘할 것이다.우리가 이 새로운 년대에 민족문화로 더욱 큰 민족 활무대를 열어가자고 한다면  결코  '열에 들뜬 헛소리'가 아닌 현실적 가능서을 가지고 있다. 바야흐로 도래하는 비접촉문화와 비대면경제가 흥기하는 이 뉴노멀(新常态)  시대에 이중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는 혼란기의 생존 안전띠로, 안정기의 발전 추진기로 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연변일보 
190    칩거(蛰居) 중의 철학 사고 댓글:  조회:2296  추천:0  2020-03-20
 금시초문인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무가내로 덮쳐들어 올해 구정 이후는 그냥 공황과 미망 속 생활이 련속이다.원래 이 음력설은 고향의 맛집들을 찾아 백흘불염(百吃不厌)의 전통식을 만끽하며 즐기려 작심하였는데 지독한 바이러스의  '위협사격'에 기겁하여 집 안에 깊이 숨는 은둔의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 같은 칩거 나날에 바이러스 후퇴를 막연이 기다리며 매일 한다는 첫 일과가 인민일보 공식계정에 발표되는 역병 동태를 탐문하는 것이다.두문불출하면서 육신의 생명 유지가 절박하여 먹거리를 장만하려 시장을 나가도 사람들 서로가 흘깃거리며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조심한 태도와 수상한 표정을 보기가 민망하여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며 되풀이 순환이 하루하루의 삶이었다.문밖에 나서면 온역 속의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신기한 반응 양식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어쩔 수 없이 지구촌이란 땅떵이에서 동정식(同鼎食)해야 할 인간은 무슨 마음 자세를 가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는 난해한 과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면 동물처럼 집에 박혀 있다 밖에 나가면 나서면 마스크 너머로  하는 들숨날숨 호흡 동작이 무척 버거웠고  어디서 무엇이 덥치지 않느냐는 불안감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요즘은  여러 지역마다 도시봉쇄,가택격리,수용치료가 주종으로 된  초강력 조치로 대응한 결과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니는 바이러스가 숨을 죽여가고 있다.따라서 감염자들의 치유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타고 있으며 세간의 부산한 분위기가 수습되는 단계에 들어섰고 대중 정서도 소강 상태로 돌아섰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진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주변 나라들과 타 대륙에 이 바이러스가 확산되여 누그러들던 세간 민심이 다시 탕개를 조이고 있다.하여 우리 나라는 내부 확산과 전역을 벌리는 동시에 역류입을 막는 전선을 확대하고 외부 감염자들을 대처하는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가장 보귀한 생명을 겁탈당하는 재앙을 앞두고 각자도생으로 자기방어에 나서고 외국인이 우리를 기피하며 우리가 외국인을 금기시하는 생물적 자위본능을 잘잘못이라 말한다면 자연법칙을 떠나는 과잉 반응이라 봐야 마땅하다.인간의 정확한 자세라면 역병의 재난 앞에서 시비곡직의 옥신각신을 삼가하고 서로간 량해,협력,소통의 너그러운 정신으로 서로간 상호지원하고 자타간 절장보단(截长补短)을 해야 하는 것이다.정감도 적아도 국경도 불문하는 잔학한 미생물은 우리 모두에 대하여 동시  '무차별 폭격'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과 세상 만민은 나와 내나라 구출에 나서는 동시에 모든 타인과 손잡고 협동작전을 전개하는 통합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 유일한 바이러스 퇴치의 만전지책(万全之策)이다.내 나라에 잠입한 바이러스 소멸로 방역전이 끝날 수 없다는 이것이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닌가 본다.   불시에 엄습하여 극성을 부리는 바이러스 시달림을 겪으며 인간 본성의 명암이 적라라하게 드러났다.물질지상주의가 활보하고 내가 잘 살면 그만이라는 물욕 제일이 압승하는 세태지만  나라에 재난이 덮치고 공포가 휩쓸자 수많은 기업가들과 자선인들 그리고 사회 책임을 건뜻 감수하려는 솔선분자들이 백천만억을 단위로한 거금을 재해 구조에 기부하여 인민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가져다 준다.수천만의 의무 일군들은 생사를 도외시하고 역병의 최전선에 달려가 감염자 구출에 나서며 열혈 육신으로 생명 방어의 금성철벽을 쌓았다.그러나 수많은 영재들이 바이러스의 무자비한 공격에 격중되어 보귀한 생명의 끊을 놓아버렸다.이들의 폭발적인 헌신 정신은 바이러스를 절대 우세로 제압하면서  중국과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다.이것이 바로 인류가 지구에 정착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불가항력의 긍정적 에너지일 것이다.이 비장한 현상은 인간의 령혼 심처에는 얼마나 거대한 선량의 힘이 존재하는가를 과시하였다.그러나 만민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숱한 고귀한 생령이 생명 구출 작전의 마당에서 이슬로 사라지는 와중에 황급한 정서과 급급한 수요를 틈타 악덕 장사로 폭리를 취하는 얍삽한 간새군들이 나부댄다.자기 욕구만을 주장하며 타인의 공공질서를 헤집는 덜떨어진 불량자들도 꿈틀거렸다. 그리고 신성한 공직에서 기여할 대신 태만을 부리는 유효함량 미달자들이 눈에 띄이어 사람들은 눈을 흘겼다.거국적인 막대한 노력에 엇박자를 쳐대는 이런 추태를 보면서 재난은 인성의 미추선악 진면모를 말끔이 비춰내는 조요경이 아닐가 생각했다.어떠한 재앙이 들이닥쳐도 선두주자의 우수한 정신은 고양하고 조류를 거스르는 불합격자들에게 낯박살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공덕 수립과 부정 징계의 강력 시스템은 영원한 필요한 사회적 장치가 아닐가 본다.   바이러스 질풍은 인간 사회에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를 명시해 주고 있다.전 세계 주요 제조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자국으로 수입해 조립하는 공급망을 형성하였지만 금번 역풍을 맞으며 중국 내 납품 공장이 멈추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엉망이 되었고 그 련쇄 파장이 세계로 향해 퍼지고 있다.바이러스 확산으로 시장이 불안하고 미래가 암울한데다 협력의 틀에서 움직이던 수많은 기업들이 멈출 수 밖에 없는 어처구니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이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협력이 지속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향후를 살아가기 위하여 글로벌 경제, 글로벌 협력, 글로벌 문화에 적응하는 이것은 필요성이 아니라 필수성이 되고 있다는 현실이다.비록 자기 나라나 민족의 정체성에 기반한 분쟁과 충돌이 가시화되는 듯하지만 지구촌에서 나라와 민족을 가르는 물리적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고 교류와 상호보완이 활발해지는 추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 무역 장애의 완화와 국경을 초월한 기업 경영이 활발해지고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단일화되는 의존 관계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현재 바이러스와의 전역은 인류가 내 나라 혹은 내 리익이라는 협소한 리기적 범위에서 벗어나 전체가 소속된 공동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경고음을 날카롭게 울려주고 있다.혼자만의 삶이 있을 수 없는 인간은 일치한 보조로 질병의 진공을 막아야 세계화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아니라면 나의 재앙이 타인의 재앙으로 번지고 타인의 재앙이 나의 재난으로 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방의 존재가 바로 내 존재의 전제로 된다는 암묵적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공격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애국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인식을 심화시켰다.애국은 한 국가 국민이 자연 발생적으로 가지게 되는 군체 정감으로서 민족 자존심, 민족 자신심과 민족 리익의 극대화로 표현된다.이 본능 정신은 자국을 발전시키는 강대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그러나 애국 정감이 비리성적 민족주의와 민족배타주의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한 바 이런 애국은 나라 리익이라는 목적을 리탈하여 오국(误国) 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그러므로 애국 정신을 수립하는 동시에 타민족에 대한 존중과 인류애 정신을 동반시켜야 한다. 특히 배타적 반외 정감은 절대 자제해야 하는바 이런 막연한 애국심을 대중 속에 심어놓는다면 발전이라는 력사 조류를 거스르게 된다. 이 세계의 누구도 국가간의 윈윈(双赢) 합의와 서로간 우호의 정감을 배양하는 데 력점을 두지 않는다면 발전을 운운할 수 없고 도리어 퇴보를 초래하게 된다.정당한 민족 리익과 정체성을 고취해야 하지만 타국의 리익과 문화를 인정하는 공존의 방침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지속적으로 인민의 물질 문화 생활을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필요한 물자의 수입,선진적 과학기술의 도입,외국인 투자 유치, 외국인재유치 등의 내향적 세계화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해외 수출,자본의 해외 진출,인적 자원의 해외 이주 등 외향적 세계화를 견지하고 상시화해야만 한다.위하여 외국인과 외국기업이 가장 정착하기 싶어하는 나라가 되어 세계 환대를 받을 수 있도록 처사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 되는 것이다.또 이래야만 우리 자신이 세계의 환영을 받는 것이다.진정한 애국이란 타자를 배척하는 플랫홈에서 실현될 수 없는바 애타(爱他)가 애기(爱己)라는 철학적 의미는 곰곰이 음미해도 모자람이 없다.이번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나타나는 여러나라들 사이의 우호 협력과 상호지원의 장면을 지켜보며 '사랑도 엎음갚음'이란 리치를 명기해야 하고 하나의 엄격한 신조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퍼바이러스의 진공으로 세계가 난측의 혼돈 속에  빠져들고 인류는 생존을 위한 대싸움을 지속하고 있다.대개 16년 전 우리는 사스와 전쟁을 치른 침중한 교훈을 가지고 있다.당시 울려진 즉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창백하고 힘겨웠는가 하는 경종이 오늘의 바이러스 전장에서 또 굉음으로 재생하여 울리고 있다.또 이러한 재난의 가능성은 꼭 다시 나타날 현실성으로 우리앞에 부각되고 있으며 인류는 늘 준비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재난의 교훈을 흡수하지 못하고 아픔의 망각으로만 넘어간다면 다음의 재난은 더 큰 비극은 되풀이 시킬 수 있다. 인류는 다양한 재난을 무난히 뛰어넘기 위하여 인간애,세계화 그리고 관용과 포용력이 충만된 개방적 애국주의 에너지를 불가항력의 세력으로 키워가야 한다. (끝) 3월 12일 연변일보
189    도시 개발과 력사 보존의 사이에서 댓글:  조회:2409  추천:2  2020-01-08
일전 고향에 갔다가 연변 력사에 의미가 짙은 유적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려는 요량으로 원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 청사를 찾았다.그런데 유감천만하게도 맘속에 애장(爱藏)했던 건물은 언녕 철거되고 그 자리에 엄엄할 정도로 으리으리한 연길시 정부 청사가 우뚝 솟은 것이다.고향 수부의 발전을 표방하는 공공건물을 바라보며 사회의 급속한 발전 변화라는 감동이 앞서지만 고향의 극히 중요한 사회 전환의 현장이었고 연변 발자취의 새 장을 표징하는 력사부호가 운산무소(云散雾消)같이 사라졌다는 아쉬움과 유감을 던질 수 없었다.     이 귀중한 건축물을 철거하고 새 구조물로 대체하면서 아마 왈가왈부의 시시비비가 수없이 오갔을 것이고 최후의 취사선택 결정을 내리면서 뼈아프게 심난한 과정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그러나 연변조선족자치주 력사의 원천지었고 연변 발전의 지휘봉을 휘두르며 중차대한 결책을 수없이 내린 책원지었고 우리 민족 자치주의 참신한 기점에 되는 옛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연 부식으로 인한 붕괴나 불가항력적 안전 위험이나 사세부득이(事势不得已)한 원인이 아니라면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보류하고 보존해야 될 것이 아닌가! 애석한 마음이 물결처럼 일어났다.물론 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위하여 도시 건물에 대하여 끊임없는 존페신축(存废新筑)이 진행될 것은 불가피할 것이나 현대 도시의 건설에서 지역적,력사적,인문적 특성을 살려야만 비로소 문명사회의 수요에 부합되고 오직 이래야만 그 건설이 비로소 옳바르고 참된 발전이란 철칙을 명기해야 할 것이다.오직 이러한 개발만이 사회발전의 수요와 법칙에 부응하는 긍정적인 변화인 것이다.이런 견지에서 볼 때 력사 문화를 완벽히 보호하고 민족 특색을 살려야만 연변을 개혁개방의 튼튼한 전초기지와 세계화 교류의 생동활발한 지역으로 조성한다는 취지에 부합되는 것이다.   력사 문화재는 한 민족의 발전을 증명하는 문화 담체(担体)이고 그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의 정수를 육성하는 배양기(培养基)로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가치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오늘이다.한개 민족의 발자취와 령혼이 슴배인 유물에 대하여 우리는 엄격한 법률에 기초하여 행정적 민간적 등 수단으로 다층차 다차원적인 보호 우선의 전략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특히 200년의 짧디짧은 조선족 력사라는 현실을 보면 보호의 절박성이 더 매섭게 제기되여야 한다.우리는 중화민족 수림 속의 조선족 문명이라는 차원에서 기존의 력사 유물을 최대한으로 보호하고 후대에게 전승해야 한다.오늘날 조선족 문화가 중국과 세계 문명의 바다에서 무게가 날로 커지고 그 발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증대하는 점을 본다면 우리 민족문화의 보호는 세계 문명에 대한 기여로 봐야 한다.이리하여 력사가 짧고 실존량이 적은 이 문화 자원을 민족사회의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추진하는 동력원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력사 유산에 대한 보호 정도는 그 사회의 발전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단순한 경제 목적을 위하여 력사 유적을 분별없이 제거하였다면 이것은  발전이 아니라 발전에 대한 역행이거나 심지어 퇴보였다는 교훈은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바이다.즉 개발에는 력사와 문화 보호가 시종 관통되어야 하는 것이다.오늘 조선족사회가 인구의 격감,공동체의 해체,문화의 쇠락,교육의 위축이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 문화재 보호는 전례없이 절박해 지고 있다.오늘의 이 터전은 우리의 것만이 아니고 차세대에게 넘어가야 할 유산이기 때문이다.현 상황에서 보호 우선의 원칙이 무력화 된다면 원래 희소한 문화 자원이 잊혀진 기억과 어느 책더미의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력사 유산은 지역의 이미지를 급속히 높여주어 결국 경제 발전에 거대한 추동 작용을 하게 된다.문화 자원을 홀대하는 문화 빈곤의 자체는 사회 경제 발전의 상당한 제한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우리는 오늘의 력사 유산은 차세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사회적 화폭이고 민족의 미래 청사진을 실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문화재 보호를 외면하는 경제 개발은 결국 인간의 기본 수요를 리탈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문명 발전의 목표와 이배되는 것이다.문화유산의 가치는 무한량이고 그 가치의 증식도 무한대이다.그러므로 민족의 장원한 발전을 위하여 력사 유적들을 눈동자 같이 지켜가야 한다.   문화 유산은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특성을 가진다.그러므로 개발의 정당성을 들먹이며 불도저를 들이밀기 직전까지 나의 행위가 력사와 후대에 어떤 손실을 남기지 않는가 고민해야 한다.우리 고향민들은 자기 유적의 보호가 민족샇회 발전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불변칙으로 만들어야 한다.현재 고향에서 고고학 연구,박물관 및 기념관 건립,고건축과 력사유적의 보호 사업에서 끊임없는 진보를 이룩한다는 정보가 부단히 입수되고 있다.력사 문화 자원에 대해서 조사,발굴,연구,보호 등 일체화 방침을 실시하여 새 성과를 이룩한다는 소식도 끊임없이 전해 온다.향후에도 상황의 여하를 불구하고 시대의 전환과 발전을 상징하는 가동적 혹은 불가동적 그리고 유형적 혹은 무형적 유산에 대하여 보호한다는 철칙을 무조건 무턱대고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해도 과분하지 않다.   우리 민족은 기존의 유물을 보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산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엄밀한 보호를 진행하면서 질적 및 양적 쌍방향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이리하여 우리 고향이 문화부자(文化富者)의 반렬에 가입하려 한다면   ‘생각만 꿀떡’인 비망(非望)일가. (끝)   연변일보 2020-01-02
188    형님전 상서 댓글:  조회:2294  추천:0  2019-11-14
대련 김인섭 2019-10-26 형님,이번 한가위를 부모님 선산에서 보내며 보고 느낀 바를 적어 올리겠습니다..   그날 오전 부모님들께 제사상을 올리면서 작년 이맘때 영생의 길에 오르신 어머니를 아버지 유택에 합장하고 형님과 나란히 엎드렸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나이가 말미암인가요 어쩐지 지난날 굶주리며 헐벗어 배고프며 춥던 시절의 모진 사연들이 자꾸 눈앞에 떠오르며 우울해 지고 있습니다.부모님들이 우리 가족을 이끌고 보릿고개의 엉키고엉킨 가시덤불을 헤가르며 지어낸 만가지 고생담들이 가슴에서 교차되며 퍼그나 먹먹해 지었습니다.하산하는 산길에서 허허로운 벌판에 외홀로 서있다는 심란한 기분을 도저히 삭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날 제일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꼴불견이었다면 주위 선산에 온 제꾼 거의가 60대 혹은 70대인데 벌초객 중 젊은이의 모습은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간혹 로구(老躯)를 이끌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올라오신 존장(尊长)들과 갈 길 바쁘신 로인들이 가을 옷자락을 여미며 조상 영전에 엎드린 모습은 보기에 숙연했습니다.각자가 당신의 예정을 짐작하는 듯 숙배(肃拜)를 올리는 자태에 파란이 많았던 지난 세월의 세례가 슴배었다고 류추해보니 무척 가긍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형님,지금 문중벌초(门中伐草)의 분위기가 옛날과 완연히 달라졌습니다.화장이 법제화 된 현실에서 더 이상의 분묘를 들일 장소가 없다는 사실은 말말고 유구한 나날을 두고 전해오던 장묘의례(葬墓儀禮)가 사라지지 않는가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습니다.제사 흔적이 보이지 않는 묘소가 수두룩하고 가토 벌초를 했다해야 지난 시절과 대비가 안되는데 버려진 묘자리도 숱해였습니다.지난날 이랬다면 곱빼기로 욕을 얻어먹었을 행실이 오늘은 눈앞에 버젓이 펴져서 드러나 있습니다.오래지 않아 고향 산역을 주선하고 산소를 돌볼 후손이 씨가 말라가지 않겠는가 걱정했습니다.물질주의가 팽창하는 오늘 젊은이들에게 민족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핏줄을 근거로 사회를 전승시키고 조상과 고향을 습득시키기가 쉽지않을 같기만 합니다.뒤이어 들이닥칠 전환의 소용돌이는 우리 몫이 될 것만 같아서 당혹하기만 합니다.사뢰기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멀잖아 성묘의 발길마저 끊어질 고향의 선영들을 도대체 어찌 해야 할가요!?   이웃의 젯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옛날 번성하던 민족 촌락의 대부분에는 아기 울음소리에 이어 초등학생마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절반도 남지않은 가옥들엔 로년 어른들 아니면 당신을 숙명에 맏겨버린채 최후 행사만을 기다리는 외짝들이 거의 전부라는 이야기입니다.지난날 우리 시대에는 경조사 행사 때 각지의 피붙이들이 모여앉아 서로 안부를 전해가며 뉴대를 맺아가던 미풍은 오늘 젊은이들에게는 생업의 부담으로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혹시 참여한다 해도 그들에겐 강제로 불려나온 부역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입니다.세상살이가 치열해진 탓이라 체면차리기조차 어렵다는 세월의 개탄이기도 합니다만 세태가 그러하니 그들을 나쁘다고 일갈(一喝)할 일만이 결코 아닌 같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산 문제입니다.지금 넘들은 기껏해야 아들 딸 구별없이 하나만 생산하는데 자식이 둘이면 치다꺼리로 되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다는 리유입니다.웰빙이라는 시대의 화두 앞에서  물질 풍요를 자기들만 누리면 된다고 오도된 잘살기 폐해입니다.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 행복하거나 없어서 섭섭하다는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다는 이것입니다.이렇게 몇 세대가 내려간다면 어떤 집안은 절손(絶孫)의 화를 면할 수 있을가요.제 핏줄을 이어가며 건사한다는 가장 기본적 본능이 사라지고 있는 엄중한 현실입니다.이제는 친족들의 혈통 관리가 어려워지고 고향 마을도 선산과 함께 사라질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이제는 자식이 어미나 아비의 성에서 골라 달아도 문제시 되지않는 세월이 되었습니다.자식이 제 어미의 성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 합니다.김씨 피붙이가 리씨의 혈육으로 둔갑하고 내 자손이 생면부지 남의 후손으로 매김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어느새 사촌부터 가파로운 망각 곡선을 타는 오늘인데 형제 자매의 성이 이렇게 갈라진다면 사촌끼리 혼인을 한들 하등의 거리낌이 없는 세상이 아니 될가요!   형님,이제는 지나간 불효의 변명이나 유아적인 슬픔을 거듭하지 않겠습니다.세태 조류인 양 밀려드는 심란한 과제들이 하나같이 벅찬 탓입니다.불평을 부리기엔 너무도 힘겹고 다급합니다.적지 않은 나이를 먹고 이제 남은 시간마저 길지 않다는 각성 때문입니다.유사이래 전례없는 풍요를 누린다고 너나없이 호언하는데 밀어닥친 시대의 소용돌이가 원망스럽습니다.우리 등 뒤로 겹쳐지는 고향마을의 상실과 문화전통이 퇴락하는 정경이 흡사 시대의 종막인 양 비감스러운 것입니다. 하필 이 비운이 왜 우리 인생에 드리워 질가요?아닌게 아니라 원망스럽습니다.   형님,무심코 간지를 짚어 보니 나도 예순갑자를 한 바퀴 돌고도 일곱 고개를 넘었다는 각성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고 쌓여가는 나이 더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시계 시보판처럼 명백한 인생 단계의 확정 앞에서 아연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사실이 이러히 엄연하니 선배들과 부모님들이 지성으로 꾸려온 우리 민족사회가 우리의 손에서 거덜이 나지 않는가는 자책에 민망하고 무색해 지고 있습니다.   형님 늘 하던 버릇대로 수다가 도를 넘는 같습니다.이 생각 저 생각이 갈피없이 떠올라 되는대로 적었으니 괘념하지 마십시오.세월이 가는 대로 눈치나 보며 살다 보면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고 민족도 새 정착과 부흥을 이루겠지요.우리가 이러쿵저러쿵해도 력사는 그냥 자기 맥을 이어 가겠지요. 남의 뒤를 따르다 보면 새로운 질서야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형님,고향마을의 지난날들이 불현듯 그립습니다.그 공동체 속에서 동잇땀을 흘리던 나날의 어느 것이 그립지 않은 것 없습니다.더구나 농사의 계절마다와 설명절이면 동네 남녀로소가 모여 즐기었고 동네의 관혼상제 때면 좌상 어른들의 주선하에 제 풍속과 전통을 정연히 뽐내던 그 때가 바짝 그리워 지고 있습니다. (끝)
187    아이에게 행복의 코드를 쥐여주자 댓글:  조회:2801  추천:0  2019-10-28
      천하 부모들의 한결같은 희망은 자식이 유족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일념일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하여 풍찬로숙하며 허리가 휘여도 일신을 달갑게 들이미는 것이 부모의 일편단심이다. 인류 사회가 대승하며 력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무한한 시너지도 이 지고무상의 부모애에 담겨있다. 그러나 사랑과 행복은 직접 인과관계가 없는 두 개념으로서 부모사랑은 자식 행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때문에 부모사랑이 자식의 행복과 직결되지 못하고 도리여 자식의 성장을 억제하는 역현상도 비일비재로 보게 된다.   행복이란 사회의 물질문화생활에서 얻게 되는 만족정도와 희열의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행복기준은 각자의 인생관, 가치관과 개인성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각자의 능력과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행복에 대한 감수도 부동하기 때문에 부자들이 행복하지 않고 빈자가 불행하지 않은 상황이 늘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서 외관상에는 행복해도 내관상에는 불행한 사례도 수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이란 구체적일 뿐 누구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립증하는 것이다.   행복은 객관세계에 대한 주관적 감수로서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기 이전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갈 사회적 및 물질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행복을 위하여 우선 생활해 나갈 사회환경을 조성하고 행복을 창조하고 감수하고 좌우지해가는 기능과 정신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행복이 잠재한 적소(适所)를 발견하고 행복의 자원을 자기 행복으로 전화시킬 수 있다. 표면에서 보면 행복은 쟁취하거나 아니면 찾아오는 경우도 있으나 그 리면에는 누구를 물론하고 행복을 숙성시키는 기능을 갖추고 행복의 기회를 잡고 그를 판단하고 다루는 리지와 지혜라는 이 주관 전제가 구비되여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국경이 급속히 희미해지고 소통의 창문이 활짝 열린 공간으로 급전하고 있으며 지능화사회를 향해 나가는 물결이 세차게 일고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갈 후대들은 오늘과 전혀 다른 생활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목표하는 행복을 취득하려면 결과적으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사회무대와 자기에게 알맞는 일자리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에 부응되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 부모들은 오늘이란 협애한 공간을 벗어나 미래의 내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쉬임없이 가장 효률적인 가치선택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대략 10~20년 이후, 과학연구, 공무원, 의사, 법률 등 오늘의 인기직업들 상당부분이 지능화로 대체되고 모든 지식기술 집약형 일터의 진입 장벽도 대폭으로 낮아질 것이므로 그의 희소성 가치도 따라서 급락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观火)이다. 그 대신으로 타인과의 감성 교류를 진행하고 부동한 문화를 융합시키는 서비스업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직업에는 심각한 쇄편화가 발생할 것이고 일생동안 몇개 직장에서 근무해야 하고 심지어 두개 이상의 직장에서 동시 근무할 사회적 및 기술적 조건이 형성된다. 그러면 다양한 문화세계에서 자유롭게 활약하는 인재들이 시대를 주름잡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때문에 이중언어에 능란하고 다문화생활에 익숙한 조선족은 천부적으로 새시대에 부응되는 행운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생에서 소년기 이전의 진로배치는 부모들이 결정하게 되고 또 그 선택은 금후 삶의 호불호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내 아이를 어느 문화터전에 세우고 어느 출발선에 세우는가 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을 떠멘 부모들의 순간적 취사선택이 자식의 성불성(成不成)의 열쇠로 되고 행불행(幸不幸)의 코드가 된다는 경험과 교훈은 민족발전사와 현실에서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후대 행복이 우리 민족의 문화터전에 암장되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여 경시하고 포기하던 시대교훈을 명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족문화는 우리의 제일 자본이고 무한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생산력이며 조선족 문명의 빛나는 성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문화 세계는 하나의 행복 터전이다. 조선족은 두개 문화세계를 주름잡는 천혜의 민족이지만 그 주인공은 이중언어를 핵심으로 한 민족문화를 소유한 민족구성원만이 가능하다. 우리의 부모들은 얼낌덜낌 어영부영으로 는 식으로 자식을 조치한다면 그들의 인생에 뼈아픈 회한을 남긴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조선족문화를 지키고 그것을 후손에게 전승함으로써 중국의 우수한 소수민족으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성스로운 시대적 사명이다. 우리는 후대들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행복세계에서 천행만복을 누리고 그 행복을 타인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하여 조선족문화란 두개의 행복 코드를 굳게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흑룡강신문
186    부모의 지혜는 아이 행복의 씨앗 댓글:  조회:2782  추천:0  2019-10-08
현재 세계적 범위에서 제5대통신기술(5G)의 개발과 제품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는 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최신기술이 보급되고 상용화 되면 인간의 일상을 포함한 전반 경제, 사회와 상부구조에는 전복적인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그렇다면 대략 10~20년 이후에 다가올 참신한 생산력 시대를 대비하여 내 아이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는가 하는 침중한 과제가 기성세대 앞에 문제화로 제기된다. 정보통신기술을 위시한 제4차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지능화 사회초기 형태를 상징하는 무인 상점, 무인 매표, 무인 은행  등등 가시적 결과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스마트폰을 리용한 회의, 영업,결제, 쇼핑, 통신과 같은 신생사물도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 로보트기술, 생명과학과정보통신이  용합되는 조기단계를 선언하는 것이다. 지금의 신세대들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게임 대결을 IPTV(交互式网络电视)로 시청하고,  시리(智能语音助手)로 대화하고,  AR (增强现实)과 위치정보를 리용하여 기이한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우리가 얼떨떨한 사이에 아이들은 지능화사회를 파고 들고 있다는 명증이다. 새로운 미래가 급속히 다가오는 때 내아이들은 이 사회를 어떻게 무난히 맞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의 인생행로 내지는 생사화복에 직결된 중대사로  우리 부모들이 반드시 지상과업으로 마주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과학기술은 세상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가항력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와 같이 인공지능은 기계적인 측면에서 놀라운 기억, 계산, 분석과 론리사유 능력을 자랑한 뿐만 아니라 많은 측면에서 인간을 월등하게 초월하고 있다. 이리하여 과학기술, 산업생산 ,사회관리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대부분 업무를 대체한다는 사실도 현실화로 되여있다.   미래학자들은 새시대의 인재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불가결의 능력은 사회에 신속히 적응하는 정보 장악 능력, 대인 관계의 소통능력, 부동한 문화 세계에서 인맥을 넓혀가는 능력, 그리고 타문화공간에 진입하는 문화융합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령역으로서 이 기능을 구비한 인간은 인공지능 기기와의 결합을 통하여 자기 행복을 개척하는 방대한 에너지를 소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초행길을 부모에게 맏길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기성세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급선무라면 내 아이들이 자신의 장점과 경쟁력을 잘 알도록 하고, 자아개발 능력을 육성하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신속한 변화에 수시로 적응할 수 있는 기본기를 장악시키는 데 착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누구이고 내가 진정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 전에 나의 최고 경쟁력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아이들을 유도해야 한다. 이리하여 아이의 천부적 문화 조건과 기능을 찾아내고 자기만의 기능을 키움으로써 차별화된 인재로 되는 길에 오르도록 해야 한다. 대략 10~20년 사이에 현존하는 직업의 70%가 인공지능 기기에 대체되고 상당한 전문직과 그 대부분의 인공적 업무도 인공지능에 의해 수행되는데 대비하여 전혀 다른 서비스업이 대량 산생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보편적으로 장악해야할 전문지식 이외  반드시 정보수집 능력, 감성적 교제능력과  광범위한 협업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중국과 세계인들과 담합(谈合)하고 협력하는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이리하여 끊임없이 업종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다른 개인들과 감성적 교제를 진행하는 활동가의 기질을 갖추어야 한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 관계는 더욱 복잡해 질 것이므로 다양한 인맥을 구축하는데 능한 자가 경쟁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리고 타문화 세계에서 활동 공간을 넓혀가는 다문화인이야말로 세계화의 선두주자 자격자로 되는 것이다. 이중언어를 위시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이런 시대적 변혁에 절대 부응되는 원소로 충만되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성세대는 세계 과학기술과 산업 현장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념두에 두고 우리만의 ‘나무’를 키워야 하며 그들이 뿌리를 내릴 다양한 토양과 밑거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우리 문화의 장점과 우수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부동한 문화 세계와 소통하고 그 속에서 무난히 살아갈 기능을 키워 줘야 한다. 오늘날 지식의 유효기간이 30년이라면 새시대의 지식 수명은  3~5년 이하로 떨어진다.하나의 전문지식과 하나의 직장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시대는 영영 지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배웠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배움을 지속하는가가 참삶의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이 난국을 헤쳐가는 데서 전략적 무기가 되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문화는 지능화시대에 공감, 소통, 협업과 인맥을 넓혀가는 무기이고 그 토양과 밑거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부모가 이 참신한 지혜로 내 아이의 미래를 꾸며 갈 때 그것은 후대 행복의 씨앗으로 전화되기에 충분하다. 연변일보 
185    새 시대와 일자리 고민 댓글:  조회:2928  추천:0  2019-05-07
요즘 핸드폰 하나를 들고 다니면 정보수집,상품주문,은행거래,공과금(公科金)지불, 티켓구매,택시예약 등 일상사들이 24시간 전천후(全天候)로 가능하다.이것은 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명증인 것이다.현재 우리 주변의 공공서비스 상당한 부분이 이미 소인화,속도화,무인화 아니면 지능화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들이 서로 융합되어 인간생활에 파고 들면서 새로운 생산력의 대변혁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오늘의 이 변화를 인간의 생활이 자동화,지능화로 전화되고 생산 방식과 로동 방식이 송두리채 바뀌는 제4차산업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면 전통적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 형태와 서비스 분야가 대량 탄생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항간에서는 미래의 일자리가 갈수록 열점 화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일각에서는 로동력 과잉으로 하여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불확실성 시대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낡은 로동방식이 새 로동방식에로의 이전일 뿐 시장이 로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결국 로동의 성격과 로동자 자질에 대한 요구가 근본적으로 바뀔 뿐이고 수요량은 여전히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생산 과정이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첨단 기기가 정신로동과 체력로동을 대체하게 되면 로동 과정에서의 정신로동과 체력로동 구별이 희미해 지고 매개인은 정신로동자인 동시에 체력로동자로 될 조건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세계 과학계 거물인 스티븐 호킹(史蒂芬霍金)과 정보산업에서 거두인 빌 게이츠(比尔盖茨)는 향후 인공지능이 어느 한 림계점을 넘어서면 인류의 기능조차도 훨씬 릉가할 것인데 누가 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곧바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는 경고를 내렸다. 그러므로 미래를 정확히 보는 눈이 있어야 력사 주역이 된다는 교훈을 누구도 명기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 범위에서 신형 첨단기술인  제5세대(5G) 통신이 정보기술과 융합되면서 사회,경제,문화,교육,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는 새 질서를 다투어 만들어 가는 추세다. 바야흐로 원격 근 무.재택근무, 모바일 근무,모바일 사무실 등 시공간 제한이 없는 다종다양한 사무 방식과 근무 방식이 가능하게 되였다. 일부 선진국들과 우리나라 일부 대도시들에서 이미 새 로동 형태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가속도를 내고 있다.인공지능은 바야흐로 작업 및 고용 방식의 다양화를 촉발한다는 예고이다. 현재 자동차 공장의 대부분 작업이 로봇에 의해 완성되며 IBM(国际商业机器公司)의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이미 미국의 수십 개 병원에서 근무하며 그에 의해 조종되는 로봇이 의사들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며 심지어 수술에 참여하며 인간이 수행하기 어렵던 일을 대체하고 있다. 이렇다면 전문직과 연구직 분야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협업을 이루고 인력을 줄이면서 더 효률적인 과학연구와 제조,발명 그리고 기타 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면 일자리는 더욱 세분화 되고 로동자는 일생 동안 2개 혹은 더 많은 일자리에서 동시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서 활동 가능한 문화세계가 넓고 정보 파악 기능과 정서적 교류 기능이 우수한 자가 취직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긍정적 추론을 끌어내게 된다. 즉 접촉 가능한 무대가 넓고 우수한 교류 기능이  평생구직 시대를 잘 살아가는 최우선 조건이 되는 것이다. 새 새대의 조선족 장점을 말해 보고 싶다. 일자리는 생계유지의 원천이고 자아실현의 터전이며 사회지속의 주춧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인재의 성격이 바뀌고 일자리 수요가 바뀌고 인재 교육도 뒤바뀌는 혼돈의 시대라고 말해도 과분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에게 있어서 민족문화가 바로  일자리를 따내고 고부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감제고지(瞰制高地) 라는 이 점을 명기해야 한다.대략 10~20년 후 자기 자식을 사회에 진출시킬 기성 세대들은 그들의 행복한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하여 문화 전수가 필수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생계 유지가 우선이던 시대를 넘어 지능화시대를 맞이할 태세를 지금부터 갖춰야 하고 새로운 교육 방향과 방식을 확실히 수립하고 중조 이중언어를 중심으로 한 민족문화 전수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막강한 실천력을 수요할 것이므로 어떠한 곤난과 장벽이 있더라도 강력히 밀고 가야 할 것이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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