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군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밭 옆의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책망조로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네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농군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밭은 분명 자기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늙은이가 노망 났나부다 하고 투덜거리며 계속 돌들을 밭 옆 길에 내다버렸습니다.
몇 년 후 농군은 외국에 돈벌이를 가느라고 그 밭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몇해 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닌 그 밭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그는 예전에 자신이 길에 내다버렸던 돌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 때서야 그는 전에 그 할아버지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위 이야기에서는 사유재산은 소유권이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히 내것이라 할 수 없지만, 공공재산은 어느 한 개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그야말로 진정한 내 재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책, 가방, 시계, 컴퓨터, 자동차, 집 등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폐기처분될 것이 대부분이요, 누군가에게 팔리는 순간 더 이상 우리 소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로, 공원, 학교, 하천, 철도, 문화재, 사적지, 명승지, 도서관, 극장 등등은 영원한 우리의 재산입니다. 공유 재산이라 아무도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연길공원이 담장을 헐어버리고 문표도 취소했습니다. 한차원 승격된 공공성이 확보된 것입니다. 출퇴근 길에 산책 삼아 공원을 가로질러 다니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큰 공원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의 경제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름다운 공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정원을 소유하고 누린다니 얼마나 뿌듯한지 정말이지 옛날 임금님 부럽지 않습니다. 저 말고도 공원에서 산책하고 운동하는 많은 시민들이임금님 부럽지 않은 이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공원이 공유 재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정부에서 많은 인력, 재력을 들여 공원에 유보도를 새로 깔고, 조각상 마을을 만드는 등 일련의 보수공사와 미화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젓한 풍경 속을 거닐다가도 참으로 흉물스러운 풍경들에 쓴 입맛을 다실 때가 많습니다. 입구에는 분명히 “일체차량 출입금지”라는 패쪽을 세워놓았건만, 오토바이로부터 고급승용차, 화물트럭, 봉고차에 이르기까지 활개치고 다니는 무단출입차량들 성화에 새로 깐지 1년도 채 안 되는 유보도가 울퉁불퉁 변형되고, 바닥벽돌이 금이 가고 깨져서 볼품없이 되었는가 하면, 동물원우리와 유보도 사이에 산뜻하게 세워놓은 흰색 바자가 몇달 못 가서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부러져 있고, “동시마을”에 가면 유리가 깨지고 시문(詩文)마저 찢겨 나간 헐망한 전시판들이 가을 끝난 논밭의 허수아비처럼 쓸쓸히 서있는 풍경이라니…
무단출입차량 차주(車主)든, 파괴를 일삼는 얼간이들이든 그것을 “내 재산”, “내 소유”라고 생각했더라면 이 같은 파괴행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내 집 정원”, “내 집 바자”를 파괴하면 정말이지, 한사하고 덤벼들 것입니다.
아름답고 문명한 도시가 되려면 공중시설이 많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소질 내지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꾸준히 돈을 들여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도 한쪽에선 파괴행각이 그치지 않는데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까 이야기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아, 왜 자넨 자기 소유가 아닌 밭에 있는 돌들을 영원히 자네 소유인 공공도로에 내다버리는 건가?”
하고 책망하던 할아버지의 질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것입니다. 우물에 침을 뱉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그 물을 마시게 되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