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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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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일광산옛터에 피여난 진달래꽃 댓글:  조회:2512  추천:98  2008-04-08
2008년 4월 7일 올해 봄을 맞이하면서 처음 발견한  진달래꽃.수월스님옛터에서 활짝핀 진달래를 발견...
64    륙정산을 지나 동모산산성으로--성산자산성산행기 댓글:  조회:4913  추천:45  2008-04-07
  성산자촌에서 바라본 동모산전경   2008년 4월 5일 돈화 륙정산과 동모산성산행. 2008년 4월 5일 명상랑도네는 처음으로 연변여덟현시에서 가장 먼 돈화행 산행을 하게되였다. 돈화라고 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게 발해국이다. 돈화는  발해왕국의 건국터로 륙정산귀족무덤터와 대조영의  동모산성(일명 성산자산성이라고도 함)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그러니 이번 산행은 산행보다 답사로서 력사를 공부할수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수있었다.    돈화 륙정산전경.  아침여섯시반에 우리일행 여덟명은 기차역뻐스짬에서 뻐스를 타고 세사간거쳐 돈화에 도착하였고 그대로 륙정산정각사로 향하였다. 정각사를 잠간 둘러보고 우리는 직접 륙정산쪽으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정각사앞마당에서 호수를 사이두고 바라본 륙정산전경.  륙정산호수는 아직도 얼음이 채 풀리지않았지만 겨울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등산장비를 잘 갖추어 줄지어지나가는것을 보구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돈화는 높은산도 없는데 어느산을 오르냐, 어느 등산대냐... 그리고 우리가 손에든 지팡이를 보구 많은 사람들은 고기잡이 왔는가 묻기도 하였고 연길에서 걸어왔는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각사쪽으로 이어진 륙정산끝자락에서 우리는 직접 륙정산을 올랐다...  첫산마루에서 바라본 호수풍경과 정각사전경.  산능선을 따라 두개봉우리를 지나니 철조망이 나타났고 호기심이 어려 철조망을지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더니 발해고분군이라는 비석이 보였다.  마지막봉우리를 지나 서쪽으로 멀리 높은산 하나가 보였는데 바로 동모산이된다.  일행은 멋모르고 계속 산비탈을 따라 내렸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돌무지들을 발견하였다.  그중에 비석하나를 발견하였는데 정혜공주묘라고 씌여져있었다. 바로 발해왕 제3대문왕인 대흠무의 둘째딸 정혜공주묘이다. 화룡 룡두산에 있는 공주묘는 제3대문왕 대흠무의 네째딸인 정효공주묘가 되겠다.. 정혜공주묘를 지나 얼마떨어지지않는 곳에 대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1호묘지라는 비석과 륙정산옛무덤터란 비석이 세워져있었다... 원래 여기는 출입금지구역이였다.  비석의 글자를 아무리 읽어도 우리입맛에 맞지를 않았다... 돈화의 고적을 관리하는 사람중엔 아마 조선족이 없나보다...  일행은 무덤터를 지나 얼마가지않아 또 하나의 무덤터비석을 발견하고 쪼크리고 앉아 기념사진한장을 남겼다. 무덤터라고 송도님이 비석뒤에 숨어서 혀를 가로물고 있었다...ㅎㅎㅎ  륙정산을 뒤로 동모산을 향하고 있는 님들...  륙정산과 동모산사이 직선거리는 7키로. 아무리적어도 두시간은 걸어야 한다. 이날은 날씨도 어찌나 화창한지 다들 겨울용등산복을 입어 얼마걷지를 않아 땀벌창이 되였다. 평원이라 코앞에 잡을듯한 동모산이지만 한시간쯤 걸어도 하냥 코앞에만 있어보였다. 이리저리 굽은길을 에돌다 모두들 조금 지칠무렵 마침 소형차한대가 와서 누군가 앉아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얼른 앉으라고 친절하게 손짓한다... 얼마나 좋았던지 모두들 아우성치며 차에 올랐다.... 구불구불 평탄치 않는 농촌길을 차는 천근도 넘어되는 우리를 싣고 털렁대며 달렸다...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돌아올때에도 마음고운 차기사를 만나서야 돈화의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후덕한 사람들인지를 가슴깊이 느껴왔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몇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별님이 아까부터  흥분되더니 차를 타면서 더욱 흥분되였다. 이번에는 아예 맨땅에 들어누워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ㅎㅎㅎㅎ  사실 전혀 생각밖에 차를 만나 모두들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그런 차를 타고 농촌길을 달리고보니  즐겁지 않을수가 없었다.  앞에 방뚝하나 보이나싶더니 물량이 그닥 많지않은 강하나가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바로 경박호로 흘러드는 목단강이다. 다리는 찾을수가 없고 어차피지나야 할 강이니 내가 우선먼저 바지벗고 물을 건넸다. 두 발을 차거운 물에 잠구니 처음에는 시원하여 좋았다. 하지만 강중심에 갔을땐 두 발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듯한 차거움을 느끼면서 두발이 꽁꽁 얼어드는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악악 소리치며 강건느기에 정신없었다..강바닥은 자갈들로 쫙 펴졌으니 발이 아파 달을수는 없고 ...ㅋㅋㅋ. 하지만 강을 다 건느고 보니 차거움은 간곳없고 오히려 두 발이 열이 확확 나면서 시원한 느낌이 쫙 펴져서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일행을 보고 빨리건너오라 소리쳤지만 서로들 멍하니 서있기만 한다... 그러다가 바람님이 먼저 용기를 내서 건너오고 그다음엔 신벗님 뿌리님이 지나오고 별님은 아예 그대로 달려온다....     모두들 거이 건너왔는가 했더니 갑자기 별님이 팬티바람으로 저쪽으로 왁왁 소리치며 달려간다.... 분명히 바지올리고 건너왔는데 어느새 벗어버렸는지 완전 물에서 장난치는 개장구모습이였다...ㅎㅎㅎ    아~ 이제보니 수정님을 업으러 달려갔구만....ㅎㅎㅎ 그래도 별님이 별님이지~ ㅎㅎㅎ  강도 채 건느지못하였는데 별님은 수정님을 내려놓고 부랴부랴 저쪽으로 달려간다. 어느새 승풍무사님도 건너왔고 이번에는 무사님이 또 수정님을 업어드린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별님이 장난을 치는데  방금 건너와서 발이 시려 앉아있는 바람님을 허망 안아서는 물속에 집어던졌다.... 바람님이 애나서 물을 치려니깐 별님은 달아났다가는 이내 다시 달려가서 또다시 바람님을 물속으로 끌어드리련다...  용을 쓰는 별님과 않가겠다고 버티는 바람님...ㅎㅎㅎ  제법 두 력사가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다...  그러다가 별님이 두손을 활 놓으니 바람님이 홀랑 뒤로 번져졌고 두고보자고 손가락질한다...핳하하하  갑자기 또 첨벙첨벙 물소리나는가 십더니 이번엔는 웃도리까지 벗고.... 물속에 들어가 수영하는 별님....ㅎㅎㅎ 신벗님이 보다말고 젊음이 좋긴 좋구만 하하 웃는다....  다들 옷을 입고 강언덕에 올랐는데 별님은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다보니 혼자서 강심에 서있었다. 바람님이 언덕에 서서 별님을 약올린다.  손가락을 내밀어 담이 있으면 오라 오라 하니깐 별님이 웃음먹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난기가 차서  정말 정말 되묻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옷을 입고 배낭을 진채로 강을 향해 달려오는데.... 저런 저런 다들 혀만 끌끌 찬다....     물보라를 일구며 달려오는 젊은 용사.  물병아리되여 그래도 좋다고 달려오는 별님, 바람님은 종적없이 저쪽으로 달아나고...ㅎㅎㅎ  때는 열두시반도 넘었으니 우리는 강옆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점심을 다 먹고 과일에 커피까지.... 뿌리님이 먹는 모습을 찍는다고 손으로 입을 막는다...ㅎㅎㅎ  카아~ 시원해라.... 산행에서 식후의 커피맛은 오성급호텔에서 마시는 커피맛의 백배는 되리라....ㅎㅎㅎ  송도님도 싱글벙글...고뿌가 없어 광천수병을 절반 갈라 대용했으니 그것도 독특한 맛을 더 해주는듯 싶다.ㅋㅋㅋ  일행은 점심을 다 먹고 계속 동모산을 향하였다. 동모산을 갈려면 또 하나의 강-- 대석하를 건너야 했다. 물론 다리가 있어서 편리했다... 이 대석하를 옛날엔 오루하라고 불렀단다. 사실 정혜공주묘와 진릉을 비롯한 륙정산발해왕실공동묘지를 발견하기전에는 이 산이 대조영이 진국을 건립한 발해의 첫수도인 동모산성인줄은 몰랐다고 한다. 이 동모산을 현재는 성산자산이라고 부르고 산옆의 마을이름도 성산자촌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간 발해와 그 건립자 대조영에대해 알아보자.... 대조영에 관하여 야사로 전해진 이야기가 있다.  대조영이 당태종을 만났는데 당태종의 황제기질에 탄복하여 스스로 자신이 비길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둘은 서로 의사가 통하였지만  서로 적대관계이다보니 친구가 될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조영이 비록 당태종보다 황제상이 조금 못하였지만 그는 당태종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표달하였는바 언젠가는 동북에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면 그가 바로 나인줄로 알라고 경고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당태종이 늘 그 말이 우려되여 대조영을 뒤쫓았지만 끝내는 잡지를 못하고.... 후에 동북에는 발해왕국이라는 해동성국이 일떠섰는데 바로 대조영이 그 주인공이다.....   기원 668년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고구려의 족속세력이 동북에 여전했던터라 당고중은 고구려가 망한 그해 12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고자 했고, 아울러 고구려의 잔여세력을 강제로 분산시켜 거세하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강행하여 고구려 유민 3만여 호를 요하(遼河) 서쪽인 당의 영주(營州) 지방에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3만 호 중에 대조영의 일가도 끼어 있었다. 마침 이시기에 거란족의 추장이진충(李盡忠)이 반란을 일으켰고 대조영은  당나라 동북정책의 혼란과 이진충의 반란을 기회로 말갈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그 지역에 억류되어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각각 이끌고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으로 이동했다. 대조영을  쫗던 당나라군사는 천여리떨어진 천문령에서 대조영군사에게 크게 패배했고 대조영은 다시 천여리를 더 들어와 지금의 돈화시의 동모산에서 진(震)이라는 나리를 건립하였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때문에 동모산은 발해왕국의 첫수도가 된다.....후에 대조영은 돌궐과 손잡고 당나라와 신라사이의 원활한 관계처리로 자신의 력량을 키웠다. 후에 당나라도 부득불 대조영의 발해국을 승인하지 않을수가 없었으니 해동성국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발해국은 문화예술 방면에서 고구려의 계승을 이어받았으며 그 시기에 불교가 크게 흥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견한 대장경중에서도 발해대장경이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라한다. 그리고 한국의 팔만대장경도 발해대장경을 계승한것이라 한다.  우리가 동모산과 가까울수록 산마루를 가로지른 성벽터자리가 선명히 안겨오나싶더니 아니나 다를가 1메터좌우의 흙담이 앞길을 막고 있었다. 그 담을 넘으니 안으로는 성벽과 함께 긴 홈채기가 산꼭대기와 아래로 쭉 이어졌다.  성벽안쪽 홈을 따라 산성을 오르는 님들...  산마루에서 바라보니 돈화시와 륙정산이 한눈에 안겨왔고 대석하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낮은 언덕을 하나 오르니 또 하나의 산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성벽을 따라 걷고 있는 승풍무사님과 송도님.  산성내에서 발견한 그물에 걸린 새.  산성내에 몇십마리의 새가 이렇게 무리채로 생죽음을 당했다.....기분좋은 날에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맞부딪치고 나니 뭔가 차분한 사색을 주었다... 바꾸어놓고 그물 친 사람이 새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쩌면 남의 생명이 귀한줄 모르고 함부로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지... 저 그물에 걸린새가 불쌍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인과의 도리를 모르고 악행을 서스럼없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욱  불쌍하다...    산언덕에서 갑자기 신벗님이 뭔가 가리킨다. 기와장? 아니면...  정상을 지나 산성 서쪽능선에 들어서서부터 눈앞이 확 티이면서 가슴이 시원하게 부풀어올랐다. 왜냐하면 일망무제한 벌판이 한눈에 안겨왔기때문이였다. 아래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낮다란 산이 오르고 보니 이렇게 시야가 확 트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보다도 비옥한 땅에 유유히 흐르는 맑은 대석하를 보고나니 이 산에다 발해의 건국터를 세웠던 이유를 대츰 알수가 있었다....  산성북쪽아래로 흐르는 대석하.  확 트인 풍경앞에 입을 다물줄 모르는 님들...  혹 승풍무사님은 무슨 생각에 빠졌을가.... 오늘 발해왕 대조영의 기를 듬뿍받고 승풍무사님도 경제대국을 건립해야 하지 않을지...  산성서남쪽에 위치해있는 성산자촌마을  일행은 다시 성벽터를 따라 걷다말고 남쪽으로 훤히 뻗은 평원을 보고 두 팔을 펼치기도 야호를 부르기도 한다...  두 팔을 펼쳐 당금 날듯이 포즈를 펼치는 승풍무사님...  조금 내려가니 넘어진 산성비석이 보였고... 백여메터 아래쪽으로 새로 세운 성산자산성의 비석이 보였다.  비석을 엿보고 있는 신벗님.  송도님과 별님이 아까 마른풀우에 누워있더니 완전 대국의 꿈을 꾸고 있나 보군. 아무리기다려도 오지를 않으니 일행은 아예 비석옆에 편히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비석뒤의 사람은 산성을 지키는 산성지기라고 한다. 아까 우리가 좋아서 소리를 질렀더니 부랴부랴 우리쪽으로 달려와서 뭘하는 놈들이냐 물었다. 여기는 문물보호구라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나, 우리는 연길에서 등산하러 왔으니 올라도 괜찮겠느냐 상냥하게 말하니 그도 흉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뒷얘기지만 두넘은 정말 5분간 잠에 푹 빠져있었다고 한다. 산성의 포근한 마른풀우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불어와 어망간 달콤한 꿈속에 빠져들었는데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한다... 송도님과 별님이 오지를 않으니 그사이 나는 맞은 켠 촌마을옆 작은 산에 올라 동모산성원경을 찍고 싶었다... 다들 내가 산이 좋아 달려갔는가 했지 뭐~ ㅎㅎㅎ 산보다도 귀중한 사진 한장 더 남기고 싶었던 나의 심정이였다...  돈화에 돌아와서 우리는 또 강동의 24개 돌 유적터도 둘러보고 오동성유적지도 둘러보았다...  24개 돌 유적비문을 읽고 있는 님들...  오동성유적지에서...  돈화거리를 걷고있는 님들...  우리가 연길로 돌아올때는 이미 저녁노을도 불타고 있었다...  오늘 명상랑도네가 처음으로 돈화의 땅을 밟았던데 비겨 너무나 내용이 충실하고 원만한 산행이였다. 산을 다니는것도 좋지만 그 산과 관련되는 유구한 우리의 력사를 아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력사를 모르는 사람은 조상을 모르는 사람이고 조상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조상에 효도할줄 모르는 인간으로서 살아도 령혼이 없는 사람이라 하겠다....  정각사에서 선남선녀들...  2008년 4월 5일 륙정산에서....
63    일광산 화엄사의 봄 댓글:  조회:2692  추천:86  2008-04-03
2008년 4월 2일  일광산 화엄사사찰터를 다녀왔습니다.이날 사찰건립을 위해 간단한 일을 하면서 완연히 느껴온것이 약동하는 봄의 氣息이였습니다. 버들가지로부터 시작하여 움트는 새싹들... 무엇보다도 올해 봄에 들어서서부터 처음으로 일광산에서 봄을 알리는 활짝핀 복수초를 보았습니다. 일명 은련화라고도 하는 복수초는 보는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준다하여 복수초라 부른답니다.....ㅎㅎㅎ               봄의 소식과 함께 일광산 화엄사건설도 서서히 막을 열었습니다..... 일광산에  하루빨리 화엄사가 건립되기를 두손모아 기도합니다....    
62    구호동마을 지나며 댓글:  조회:2854  추천:72  2008-04-01
2008년 3월 29일, 구호동 마을에서
61    홀라당~ 댓글:  조회:2763  추천:62  2008-04-01
2008년 3월 29일 (토요일), 턱선이 부드러운 가을남자님의 송별산행이라해서리 명상랑도네를 따라나서기로 했지요~오늘의 산행지는 룡정 천보산 매바위~!오~ 산행예고에 올려진 사진보니 한번쯤은 꼭 가봐야할 산이었죠.그런데 뭡니까 글쎄...결과적으로 말하믄 홀라당~ 홀라당~ (속히웠남?벗기웠남?)매바위 산행한다는 명상랑도네분들이 불쌍한 다노를 끌고 온하루 생수같은데서 놀다가 돌아왔지 뭡네까 ?!@#$%^&*지금도 그 산 성함이 뭔지? 바위 성함이 뭔지 모른다 아임두?랑만팀에서는 그래도 인정이 많아서 이름 모르는 산 만나믄 척~ 성함부터 지어주는데...명상님 황패경고꾸마~~명심합소~ㅋ
60    가을남자님과의 아름다웠던 추억들... 댓글:  조회:4755  추천:45  2008-04-01
2008년 1월 19일 도문 전안산산행을 첫산행으로 두달반동안 가을남자님의 참여로 명상랑도네는 그 어느때보다도 즐거운 산행을 하였다. 그동안 가을남자님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음미해본다...  도문 전안산에서 명상랑도네와의 첫산행-- 사진배경은 대라자임    바람님의 등반시범을 기다리는 가을남자님.  평시엔  엄숙한 표정이다가도 웃으면 건들건들하고 시원한 가을남자.  그래도 항상 웃는 가을남자님이 좋다.  가을남자님의 등반표현  항상 열심히 사진을 찍어드리는 가을남자님.  사진찍는 그 자태도 사나이답게 너무 멋져!  그리고 일손이 빨라 항상 부지런하다.  웬간한 일은 소리없이 해치운다...  항상 주동적으로 일을 찾아나서는 가을남자님.  남자답게 힘도 무지 세다.  등반을 즐겨보는 가을남자님.  나도 한장 찍어줘! ㅎㅎㅎ  안도 오호령산행에서...  신벗님과는 항상 따당(파트너)이다.  오호령정상에서 가을남자님의 옆모습  벼랑을 내리는 가을남자님.  맞은켠 바위를 톱는 까만점이 곧 가을남자님임.  락타산산행에서  사진을 찍는 가을남자님의 뒷모습.  다노님의 말을 빌어 턱선이 부드러운 가을남자님! ㅎㅎㅎ  다정한 우리가족님들....  신벗님과 함께  과일을 드시면서도 풍경감상은 잊지 않고.... ㅎㅎㅎ  가파른 벼랑을 내리는 가을남자님.  아츠란 천산벼랑을 톱는 가을남자님-- 드디여 본때를 보여주어서 종이범의 가명을 벗어버렸음...  하하하....  때론 사나이도 무릎을 꿇을때가 있습니다.  가을남자님의 천리마포즈! ㅎㅎㅎ      백두산백운봉아래에서 가을남자님과 나. 가을남자님 그동안 수고많았습니다......
59    락타산과 천산산행 댓글:  조회:2894  추천:48  2008-03-24
2008년 3월 22일 왕청 춘양진 락타산산행. 2008년 3월 22일 새벽 2시반, 명상랑도네는 처음으로 시도해본 새벽산행이다. 이번산행은 가을남자님의 추천으로 이루어진것이다. 전번 오호령산행에서 9년만에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았다면서 다시 더 타보구싶다는 가을남자님! 그렇잖아도 왕청 천교령쪽으로 한번가보구싶었던터라 새벽기차얘기를 꺼내니 모두가 만장일치로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별님하고 송도님, 가을남자님과 신벗님은 애들처럼 좋아서 싱글벙글 어쩔줄몰라해했다. 새벽산행이 이렇게 유혹이 강할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일! 새벽 한시반부터 별님이 자다말고  흥분되여 전화왔고 두시에는 금강산님까지 전화와서 동참하련다고 알렸다. 금강산님은 엊저녁 밤늦게 랑도네산행예고를 보구 생각하다가 밤 열두시에 참석하기로 결정을 하고 점심준비까지 다 하고 새벽에 전화가 왔던것이다. 그래서 새벽 두시반에 신벗님과 만나 두분이 더 좋아하신다.... 신벗님은 그렇잖아도 젊은이들속에 끼여들어 년세때문에 조금 주춤했었다니... (신벗님두 별 생각을 다 하시지....ㅎㅎㅎ) 그래서 새벽기차를 타면서 두분은 년세가 비슷해서 서로 마주앉아 긴긴 얘기를 어찌나 재밋게 하시는지.... ㅎㅎㅎ  일행은 아침 일곱시가 되기전에 춘양진에 도착하여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락타산으로 향하였다.(락타산에도 기차역이 있었지만 새벽기차는 서지를 않아 부득불 춘양까지 갔었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곧 락타산이다. 두 봉우리는 락타등이고 락타머리는 앞쪽켠이 된다.    락타산을 직접 오르려다말고 락타산서쪽켠으로 이어진 산맥끝에는 또 하나의 벼랑이 있어 우리는 우선 그 벼랑을 오르기로하고 골짜기를 따라 빙빙 에둘로 산을 올랐다. 사진은 서쪽 벼랑쪽에서 바라본 락타산 뒷모습이다.    산맥을 따라 걷다말고 양쪽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구 모두가 환호소리를 질렀다. 날씨가 조금 흐려 눈이 올듯말듯 하면서 저쪽 산정상은 완전히 안개로 덮혀있어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다투어 사진을 찍는데... 오늘 처음으로 참석한 경미님의 밝은 표정-- 전번 백두산산행에서 이미 얼굴을 익혀온 분이였으니 스스럼없이 명상랑도네의 분위기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다음부턴 명상랑도네의 정식일원이 되겠다고 경건히 청구하시는 경미님!....  두손들어 환영이지요! 경미님!....ㅎㅎㅎ    바람님은 왜서 저렇게 즐거운 표정이지? ㅎㅎㅎ  총각이 엎드려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수가... ㅋㅋㅋ  바위로 이루어진 산맥을 걷다가 바위가 길을 가로막아 때론 옆으로 오르기도 했다.  오늘 내내 앞장서시는 신벗님과 가을남자님. 그것도 벼랑을 향해서...  뒷이야기겠지만 오호령산행에서도 볼수없었던 두분의 과감한 등반모습이다. ㅎㅎㅎ  혹시 명상랑도네는 모든 사람을 등반가로 탈태환골시키는게 아닐가... ㅋㅋㅋ  바위산맥을 따라 걷고있는 님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풍경. 자욱한 안개는 더욱더 보는 사람의 넋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신벗님은 무엇을 저렇게 바라보구 있을가?  소나무중턱은 말라서 죽어가는데 끝쪽은 파란 잎이 자라고 있었다. 바람님왈: 저의 상황과 똑 같아요~ 한때는 중한 병에 시달리다 겨우내 청춘을 되찾은 바람님의 감개무량! 나무에 매달린 봄비님과 바라보는 가을남자님. 봄비님은 벼랑이나 나무를 보면 손발이 근질거려 가만있지를 못한다. ㅎㅎㅎ 그리고 울긋불긋 님들의 선명한 옷색상은 자연과 어울려 더욱 화려한 풍경을 창출한다.  오늘 또 한분의 신참-- 금강산님! 예전에 연우와 함께 산행한 경험이 있었지만 명상랑도네에는 처음이다!  다노님과 경미님의 멋진 옆모습-- 모두가 만장일치로 눈길이 저쪽으로만 향한다...  유두봉(가을남자님의 말로... ㅎㅎㅎ)과 다노님.  매번 산행에서 빠질수없는 아니 무조건 향수하는 간식시간... 뿌리님의 干果, 금강산님의  토닭알, 바람님의 노배(무우) 그리고 기타기타...  얼마나 군침도는 먹거리들인지....ㅎㅎㅎ  벼랑중턱에 서있는 님들의 우아한 자태들...  별님은 저렇게 씽씽 날아다닌다니깐! ㅎㅎㅎ  역시 멋진 등반가인 별님!      소나무사이로 바라보는 락타산전경    가파른 벼랑이지만 무난하게 지나치는 님들...  아래로 내려다보면 보는 사람이 아찔~  우리가 올랐던 첫번째봉우리.    랑도네의 젊은 용사 -- 송도님.   구불구불 룡이 꿈틀거리는 듯한 산맥을 따라 한참 걸으니 드디여 락타산벼랑이 눈앞에 나타났다.여기에 도착했을땐 시간이 아홉시반도 되지 않았다. 아침산행은 정말 효률이 높았다. 평시에는 이때쯤이면 차를 타고 산행지에 도착할 무렵이지만 오늘은 벌써 한단락을 마무리!  락타산정상을 오르기도전에 눈앞에 훤히 펼쳐진 전경을 보구 금강산님이 환호성을 지른다...  락타산에서 발견한  성성이 얼굴의 묘한 바위(금강산님의 발견임!)  사진기가 많아 이것저것 대신해서  찍어주는데 신벗님도 불쑥 사진기를 꺼내들면서 왈: 내것도! ㅎㅎㅎ  그러면서 아직은 사진을 찍지않은줄로만 알고 님들의 서로다른 표정! ㅋㅋㅋ 신벗님은 내것도표정, 가을남자님은 무표정, 근데  바람님은 뭘 저렇게 두 눈이 동그래서 보는겨여?  ㅎㅎㅎ 그래도 경미님이 늘쌍 밝은 표정이 지속력이 강함! ㅎㅎㅎ  자~ 다들 여기를 봅시다.  처음 이렇게 벼랑을 타본다는 경미님.  명상랑도네에 오니 산을 타는게 완전 장난이네요! 와~ 정말 대단합니다! 두 손을 펼쳐들고 흥분되여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 경미님....ㅎㅎㅎ  내려다보면 완전 70도벼랑. 줄지어 내리는 개미군단. ㅎㅎㅎ  벼랑끝에 서서 즐거운 표정의 봄비님.  락타산 두개봉우리를 오르고 보니 배도 촐촐해났다. 정상은 바람이 세서 벼랑을 병풍으로 우리는 점심준비에 들어갔다.  가을남자님이 준비해온 서근반짜리 잉어탕이 끓자면 아직은 너무 이른듯, 그러니 또 황량몽이나 꿔봅세! ㅎㅎㅎ  다노님의 뒤에 엎드려 황량몽을 꾸고있는이는 누구일가요? ㅎㅎㅎ 그래도 다노님이 다정하시지! 바람이 불어 추워한다고 등을 지대고는 또 한쪽팔로는 등까지 감싸주는 다정한 다노님...  우리가 내린 락타산의 직선 벼랑!  저 벼랑을 내렸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말한듯하다...ㅋㅋㅋ  가을남자님의 맛나는 잉어탕을 배불리 먹고... 우리는 곧장 산을 내려 락타산역을 지나 두번째목적지인 천산을 향하였다. 도중에 흔들다리를 지나면서 동심이 행겨 장난치는 님들....  사람은 나이들어도 동심만은 영원히 잃지 않을듯.... 저렇게 흔들다리를 구르며 장난치는 님들을 보면서 나는 무지무지 행복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천산을 향해 돌진하는 님들....  락타산을 뒤로하고 아직도 녹지않은 감심을 걷고 있는 님들...  멋진 천산의 벼랑을 배경으로 또 하니의 기념사진!  오늘 신벗님은 정말 즐거워하셨다...  봉우리를 세개나 타고나니 모두가 지쳐서 천산을 오를가 말가 다들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을 떠받친듯한 벼랑이 눈앞에 펼쳐졌다.감탄에 차서 환호소리와 함께 ... 오늘 저 천주봉(天柱峰--내가지은 이름임)을 오르지않으면 평생 후회할거라면서 바람님이 가슴이 벌렁벌렁 흥분하기도하고 애원하기도 하는듯한 눈길로 우리들을 바라본다. 아까 벼랑을 지나면서 다들 지쳤으니 오늘은 오르지말자고 말했더니 정말 아쉬움에 차서 떨어지지않는 발길을 억지로 끄는듯한 바람님이였다. 그래서 내가 천교령쪽으로 걷다보면 또 하나의 멋진 벼랑산이 있다고 달랬는데... 저 천주봉을 보구 홀딱 반해서 그건 싫단다. 오늘 이것만 오르고 그대로 뻐스를 타고 집을 가잔다...ㅎㅎㅎ  원래는 저녁 여덟시의 기차를 타자고 계획했었는데... 낸들 오르고 싶지 않아서 그런줄 알아요? ㅋㅋㅋ 그래서 전체대원 돌격! 신벗님과 가을남자님이 앞장서서 씨엉씨엉 앞길을 헤쳐올랐다....  천주봉오르는 도중에 만난 멋진 소나무를 껴안고...  벼랑사이로 바라보이는 절경을 배경으로... 무지무지 행복에 겨워하는 바람님!  뿌리님도 좋아서 벙글벙글...  천주봉중턱에서 바라본 천산의 절경.  이건 무슨 바위라고 이름지어야 되는지...  벼랑끝에 서서 절경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는 님들의 표정.  먼진 소나무옆에 앉아 손을 흔드는 가을남자! ㅎㅎㅎ  세분은 나란히, 그리고 소나무옆에 걸터앉은 별님.  다정다감한 봄비님과 별님. 오늘 봄비님도 가슴이 울렁울렁 ㅋㅋㅋ  사진을 찍고보니 나 자신도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피부로 직접 느낄수가 있었다... 왕청 춘양에 이렇듯 멋진 풍경이 있을줄은 미처 생각못했던 나였으니 신대륙을 발견한듯한 기분에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소나무도 멋지겠지만 저 두분의 즐거운 표정을 보시라! 뿌리님과 신벗님의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가!    바위를 보기만해도 행복에 겨워하는 바람님.    천산의 벼랑절경.    산을 내려와서 강가의 벼랑끝에 서서 내려다본 풍경.    벼랑아래 강을 건느며...    돌아오는 길에 마을을 지나서 뒤돌아본 풍경. 우리가 올랐던 천산전경이다. 근데 지금 모두가 산을 가리키는 동작은 연기임! ㅋㅋㅋ 내가 사진을 찍는다고 산을 가리키는 포즈를 취하라고 하니 다들 취하는데 찍는 사람은 다 찍고 혼자서 젱젱 가버렸지만 이들은 한참이나 산을 가리키는 시늉을 하다말고 왜 이렇게 오라나 돌아다보니 사진쟁이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들끼리만 주고받고 했었다... 하하하하........  오늘 락타산과 천산산행은 정말 즐거웠다. 명상랑도네가 설립되여서 가장 일찍 떠난 산행이였고 또 가장 긴 산행이였으며 또한 가장 즐거웠던 산행이였다. 앞에서 말했겠지만 왕청 춘양진에 이렇듯 멋진 절경이 있을줄은 꿈에도 상상못했으니 언젠가는 꼭 다시한번 와야 할 산이였다. 다음번엔 코스를 다시잡고 산맥을 따라 천주봉정상에 오르리라....      2008년 3월 22일 명상랑도네 락타산산행에서.
58    락타산 2 댓글:  조회:3176  추천:66  2008-03-24
락타산산행
57    락타산 댓글:  조회:3114  추천:64  2008-03-24
명상랑도네 락타산 산행 참석인원:명상님,바람님,뿌리님,신벗님,별님,송도님,가을남자님,금강산님,봄비님,경미님,다노님~
56    안도 오호령산행 댓글:  조회:4114  추천:49  2008-03-16
2008년 3월 15일 안도 오호령산행. 안도 오호령은 연변의 금강산으로 불리울만큼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연변에서 이름이 있다. 안도에서 연길쪽으로 올려면 안도벌판이 끝나는곳에 부르하통강이 깊은 골짜기를 따라 흐르고 그 옆에는 높은 령 하나가 가로막고 있다. 그 령에는 다섯봉우리가 우뚝 서있어 마치 다섯호랑이가 쭈크리고 앉은듯한 모습이라하여 오호령이라 부른다. 오호령은 연길과 안도를 이어놓는 필경지로(必逕之路)로서 옛부터 군사요충지였으며  발해시기의 옛산성터도 찾아볼수가 있었다. 오호령은 작년 국경절에 한번 가보았데 두개의 봉우리밖에 오르지못했었고 또 대부분 회원님들이 참석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마침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오르게 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번산행을 경험으로 기차를 타고 유수천에서 내려 철로를 따라 걷다가 가장 낮은 봉우리로부터 다섯봉우리를 전부오르기로 계획하였다. 철길거리만 5키로, 그리고 작지않는 다섯봉우리를 한번에 오른다는건 어찌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항상 도전을 선포하는 명상랑도네.... 중도에서 포기하면 더욱 힘드니 죽어도 끝까지 견지해야 정상에 이룰수있는 법이다....     일행은 여섯명. 유수천기차역에서 내려 얼마걷지않아 우리앞에는 엄청난 산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호령의 남쪽지맥이였다.    한시간넘어 걸어서 오호령산맥이 끝날지점에서 우리는 강건너 멋진 벼랑을 발견! 오늘 목적이 오호령이 아니라면 무조건 올랐을 봉우리이다.  강가에는 갈대숲이 무성했으니 여기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걸어서 우리는 직접 오호령산맥을 올랐다... 앞장서는 신벗님과 가을남자님.  산능선에서 우리는 무더기로 넘어진 소나무시체를 발견. 흔적을 보아서는 벼락을 맞아 불탄 수림이였다. 아까운 백년송들이 수백대나 선채로 말라죽었고 대부분은 강한 골짜기바람으로 무더기채로 뭉텅뭉텅 잘리워 넘어져있었다....一把无名火能烧功德林 이란 말이 생각난다. 점잖던 사람이 한번의 화때문에 여직것 쌓아왔던 덕을 불살라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사람이란 근본이 있어야 바로 설수있고 나무도 뿌리가 든든하지못하면 설수가 없는 법.  그 뜻을 잘 나타내여 뿌리라고 이름지은 뿌리님은 어디를 갔나?  아직 저 아래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늘 뿌리님은 조금 힘든가봐... 전번 일광산산행에선 내가 가는 곳은 무조껀 따라나섰는데....ㅎㅎㅎ 노자왈: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첫번째봉우리를 거이 올라서...  저 아래 골짜기는 우리가 지나온 부르하통강.  첫번째봉우리정상에서...  첫번째봉우리는 그 전체가 암석으로 구성되였고 그 아래쪽으로 이어진 산맥을 바라보노라니 한마리의 룡이 꿈틀거리고 있는듯하였다.  첫번째봉우리 동쪽 끝은 아츨한 벼랑이라 옆벼랑을 타고 내려왔다.  우리가 벼랑을 즐기고 있는사이 신벗님과 가을남자님은 이미 두번째봉우리정상에 서있었다..  두번째봉우리를 오르다 또 다시 발견한 타나남은 소나무.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켜 원망하는듯한 형상같다.  소나무왈: 하늘에서 청천벽력이 내려 내가 이 모양이 되였소이다. 하늘이여 당신은 어찌하여 맑은 하늘에 청전벽력을 내려 나를 태웠소이까? 어찌 그럴수가 있단말이오이까!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그랬소이까! 하늘왈: 소나무여 하늘아래  벼락이 내리친건  내 뜻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이다.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야 만물이 성장하니 너의 존재도 그렇게 태여났다가 그렇게 죽는게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태여나서 죽지않는 사물이 없는데 너는  어찌하여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스스로 나고 스스로 성숙하며, 스스로 소멸하고 스스로 없어지는 법이다.      ㅎㅎㅎ  두번째봉우리정상에서...  두번째봉우리에서 바라본 우리가 올랐던 첫번째봉우리전경.  동쪽으로는 세번째 즉 가운데 봉우리가 엄청난 산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두번째봉우리를 내리자면 또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야 했다. 두번째와 세번째봉우리사이에 이르니 때는 이미 열두시를 넘고 있었다.  골짜기사이에 마침 큰 바위가 있어 바람을 막을수가 있어서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오늘 가을남자님께서 세치네탕을 준비해서 그것이 끓자면 한동안 시간이 걸려야 하니 셋은 점심을 준비하고 셋은 푹신푹신한 가랑잎우에서 잠간 눈을 붙히고 있었다. 하나는 나무에 기대고 둘은 뒤로 벌렁 누워서...ㅎㅎㅎ  이건 누구신데 달콤한  황량미몽(黄粱美梦)을 꾸고 있나?  ㅎㅎㅎ 중국역사에 이름있는 세가지 꿈이야기가 있다. 그중에 黄粱一梦이 가장 재밋는데 도인인 려옹(呂翁--呂洞賓)과 관계된다. 한 젊은 서생(卢生)이 과거시험치러 가다가 신선인 려동빈을 객점에서 만나게 되였는데 그는 자신의 빈곤한 처지를 탄식하였다. 물론 그 서생이 신선을 알아볼수는 없고... 마침 점심이라 좁쌀밥(黄粱飯)도 되지 않았으니 려동빈이 가방에서 베개하나를 건네주며 이 베개를 베고자면 일생의 부귀영화를 누릴수있으니 한번 자보라고 하였다. 서생이 그 말을 믿을리는 없었겠지만 밥이 되는 사이 잠간 피로한 눈이나 감아보자하고는 꿈나라에 들어갔다.... 그는 꿈속에서 이름있는 귀족집의 따님을 아내로 맞아하고 이듬해 또 과거에도 급제하였고 후에 또 절도사란 벼슬로부터 재상까지 그리고 연국공이란 칭호까지 받고.... 자식은 다섯, 손자들은 몇십명!  이렇게 그는 가족이 흥성하고 재물이 풍성하여 일생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어느덧 인생도 다 가고 나이 팔십이되여 인생을 마치니 잠도 깼다. 눈을 떠보니 그윽한 밥향기만 몰몰 피여올랐다. 그래 이게 웬 꿈이냐 이아해있는데 려동빈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꺼낸다. "그렇다네 인생이 별거 아니네~ 인생이 다 그런거라네..."  그 서생의 이름은 英이 자는 萃之라고 하는데 그는 인생이 꿈같음을 깨닫고 그길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려동빈을 따라 도닦으러 갔다고 한다....  어느덧 가을남자님의 구수한 세치네탕도 다 끓었는데요....  뿌리님 빨리 일어나세요.... ㅎㅎㅎ  일행은 여기서 구수한 세치네탕에 배불리 밥을 먹었고.... 또 뿌리님의 덕분에 구수한 황량몽도 꿈꾸었다... 이제 도닦으러나 가봅세...  언덕을 오르면서 삼총사..  내가 앞에서 걷다말고 봄비님이 산을 오르는 나를 보구 명상님 명상님 급히 부른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있은듯....  그래서 웬 일이냐 이아해서 다가가보니.....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올해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는 새 생명이다. 아! 인젠 정말 봄은 봄이구나!  봄이 참 좋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다니는 산행에 항상 새로운 봄소식을 접하고 봄의 기운을 받아 즐겁기만 하다. 전번에는 움트는 버들개지 오늘은 파릇파릇 새싹! 다음번 산행에는 혹 어떤 봄소식을 접할가?....  아직은 진달래가 피기는 이르다. 진달래피는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세번째봉우리에서 바라본 두번째봉우리산맥에 줄지은 벼랑절경!  절경이 따로 있나! 뿌리님이 멋진 풍경에 사로잡혀 주동적으로 바위와 소나무에 매달려 나를 부른다...ㅎㅎㅎ  우리는 가운데봉우리량쪽골짜기에서 옛성터를 발견하였다. 사실 아까 우리가 점심을 먹은 자리도 옛성터아래에서였다.  옛성벽을 걷고 있는 삼총사!  두번째봉우리에 올라 우리는 첫번째봉우리로 가지않고 산맥을 따라 줄느러니 들어선 바위벼랑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사진의 멋진 바위는 두번째봉우리산맥의 첫번째 바위이다.  근데 이는 또 누구인고? 나무에 매달려 뭘하고 있는게?   첫번째 바위정상에서 바라본 두번째 세번째바위.  봄비님이 즐거우면 항상 저 포즈이다. 신나면 헝하 소리치며 두손으로 아래배를 두드리고....ㅋㅋㅋ  소나무의 푸른색과  붉은색모자와 옷이 자연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봄비님이 느닷없이 손길을 내미는데.... 나를 보고 명상님 날아보세요.. 한다. 그래서 나도 흥이나서 두팔을 벌려 나는 시늉을 했다...  우리가 첫번째바위에서 내리는 도중 뿌리님이 어느덧 두번째바위를 톱는다....   어쩌면 다들 등반선수라니깐! ㅉㅉㅉ  이번에는 세번째바위를 마주하고....  세번째바위를 톱고있는 바람님과 봄비님.  세번째바위를 지나 또하나의 멋진 바위를 발견! 그 앞에서 동심이 발작하여 포즈를 취하는 봄비님!  셋이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생각을 할가?  우리가 선곳은 칼바위였고 앞은 좁다란 벼랑길-- 와들바위였다.ㅎㅎㅎ  바위구멍에서 내다본 안도벌판과 유유히 흐르는 부르하통강. 아직은 얼음이 완전히 녹지는 않았지만 물은 흐르고 있었다.  바람님은 어느덧 와들바위를 지나고 저쪽벼랑끝에 올라섰다.  사실 여기까지 세번째바위의 연속이였다.  좁다란 바위길을 앞에두고 봄비님과 뿌리님이 마주하고 서있다. 량쪽아래는 칠팔메터높이의 벼랑이다. 참선공부에 你過來 我過去 라는 화두가 있다.  옛날 참선을 하는 한 제자가 아무리 참선을 해도 도를 깨우치기 어려워 고민을 하고있었다....  어느한번은 비오는 날 외나무다리를 건느게 되였다. 자나깨나 화두에 몰두하면서.... 마침 앞에 스승이 마주오고 있었는데 둘은 피할자리가 없었다. 눈앞에 서있는 스승을 보구 화뜰 놀라서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스승이 느닷없이  你過來 我過去 하고는 두손으로 제자를 건뜩 받아안아 자리바꿈을 했다. 발이 땅에 닿이는 순간 그 제자는 아! 그렇구나!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내가 그 생각을 하고있는데 뿌리님과 봄비님이 동시에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뭘 달라고?   사진기를 달라고....ㅎㅎㅎ  나도 특별한 포즈하나를 취해볼가?  ㅎㅎㅎ  허공을 밟기!  直须悬崖撒手,自肯承当。 불교에 悬崖撒手라는 멋진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사람이 험준한 벼랑을  걷다가 잘못딛여 벼랑에 떨어지게 되였는데 마침 벼랑에 자란 나무가지를 붙잡게 되여 간신히 목숨을 구하게 되였다. 하지만 두발이 허공에 매달려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하였다. 마침 이때에 부처가 눈앞에 나타나여 급히 소리쳤다. 나를 구해주세요! 나를 구해주세요! 부처가 다가가서 그 사람을 보고 말했다. 당신을 구해줄수가 있소! 하지만 내 말을 들어야 하오! 그래서 그사람이 즉시 대답을 했다. 부처님왈:  당신의 손을 놓으시오!  하지만 그 사람은 만약 내가 손을 놓는다면 나는 영낙없이 이 험악한 벼랑에 떨어져 죽을것이다. 라고 생각되여 손을 놓으려 하지를 않았다. 부처님도 그사람을 구해주려했지만 구해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설수밖에 없었다.....    멋진 풍경에 사로잡혀 날고싶어하는 봄비님!  세번째바위에서 바라본 네번째벼랑바위. 우리가 벼랑을 즐기고 있는사이 가을남자님은 어느새 네번째벼랑바위정상을 오르고 있었다. 오늘 가을남자님과 신벗님은 우리와 멀리 앞서다보니 많은 사진을 찍을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지체해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 네번째벼랑바위한가운데 동굴도 있었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나혼자 그 동굴속도 들어가보았다...어떻게 들어가보았는가구요?  벼랑을 탓지요 뭐~ ㅎㅎㅎ 벼랑에 매달려 머리끼가 곤두섰으니 나도 혼났다구요...ㅋㅋ 다음번엔 우리도 바줄을 갖고 가야지...ㅎㅎㅎ  네번째벼랑바위정상에서 바라본  우리가 지나온 벼랑길  봄비님이 힘차게 야호~를 웨친다...  오호령첫번째봉우리와 두번째봉우리사이에 펼쳐진 골짜기수림.  하산!  하산길.  산을 내리다 또 얼음강판을 만났다. 겉면은 이미 다 녹아 즐벅했으니 다음번 산행에는 많이 녹겠다...  내려오다말고 뒤로 바라본 오호령절경!  신벗님과 삼총사.  우리가 산을 다 내려 신작로에 들어서니 따스한 날씨에 개울물도 조잘거렸고 충족한 수분을 흡수하여 버들개지가 다투어 움트고 있었다.... 봄은 참 좋았다. 봄산행은 참말로 즐겁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은 생기발랄한 생명을 연출한다. 오늘 오호령산행은 더 말치않아도 정말로 아찔하면서도 즐거운 산행이였다.  바람님왈: 명상님 오호령 정말 멋지군요! 지신의 오봉산보다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어요....ㅎㅎㅎ  
55    명상랑도네의 즐거운 3.8절 산행 댓글:  조회:2602  추천:54  2008-03-09
2008년 3월 8일 3.8절산행. 오늘은 3.8절. 정확한 명칭은 <3.8국제부녀절>인바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여성들의 명절이다. 3.8절의 유래:1903년 3월 8일, 미국 시카코시의 여 종업원들이 자산계급의 압박과 착취를 반대하고 자유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대 파업과 시위행진을 가졌는데 이 투쟁은 미국의 광범한 여성들의 지지와 열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0년 일부 나라의 여성들이 단마르크 수도 쾌하븐에서 제2차 국제사회주의 여성대표대회를 가졌는데 이 대회에서 해마다 3월 8일을 국제부텨절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1975년부터 유엔이 국제부녀절을 경축하기 시작했는데 이로부터 3.8부녀절은 전 세게 여성들의 명절로 급부상하게 되였다. ..........  아침 여덟시에 모임장소에 모이니 일행은 모두 여섯명, 남자셋 여성셋!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좋았다. 팔도 오봉촌에 이르러 차를 세워두고 일행은 금광쪽으로 향하였다. 앞에 보이는 골짜기 웃쪽켠산은 오늘 우리가 오를 산이다.    20여분 걸어 골짜기에 들어서니 겨울에도 샘물이 흘러나와 얼음강판을 이루고 있었다. 대원들은 미끌가봐 조심조심 한사람씩 얼음우를 오르기시작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허망 엉덩방아를 찧을 꽤나 가파론 얼음썰매장이다. 옆으로 오를수있겠지만 미끄는 얼음이 재밋다고 기어코 거기로 오르는 여성맴버들. 오늘은 3.8절이라 기분도 좋고 날씨도 제법 봄날씨라 다들 기분좋은 표정이다.  뿌리님이 길을 잘못들어서서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한다. 이때면 어쩌면 좋을가? 다시 내려갈수도 없고....ㅋㅋㅋ  지팡이를 내밀어서야 간신히 올라서 풀어진 신끈을 매고 있는 뿌리님.    골짜기를 오르다말고 평평한 산비탈을 보고 거기를 따라 첫번째정상에 올랐다.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서쪽켠의 팔도마을과 산넘어 북도끼봉과 독교봉이 한눈에 안겨왔다. 오늘은 날씨도 너무좋아 산을 오르고보니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아났다. 이 자리에 서니 봄바람도 선들선들 얼굴을 스쳐지나니 그 상쾌한 기분 이루 말할데 없이 좋았다.  다시 산능선을 따라 걸으니 벼랑이 나타났다. 얼씨구 좋아라 서로들 소리치며 벼랑을 톱았다....  벼랑우에 서면 항상 기분이 좋은듯... 봄비님의 환호소리와 기분좋은 동작.  눈앞에 훤히 펼쳐진 산야를 보고 진장님도 기분이 좋아서 심호흡을 하면서 두 팔으 펼친다... 몇달간 일주일에 한번씩 빠지지 않고 산행을 견지하니 약도 쓰지않았는데 높은 혈지가 평형을 이루었다며 흥에 겨워 말했다. 처음 명상랑도네와 합쳐 첫산행을 할때 힘겨워하는 모습이 아직도 보는듯하다. 그러던 진장님이 인젠 제법 산악인이 다 되여 웬만한 거리와 시간은 아무 지장없이 견지한다. 전번 청산리산행에서도 무릎넘는 눈길을 여섯시간씩이나 걸었다면 누군들 믿으랴만...ㅎㅎㅎ 철조망을 넘는 봄비님의 우습은 동작. 송도님 손을 댔을바에는 확실하게 눌러줄거지...ㅎㅎㅎ  벼랑을 지나 작은 산을 하나 넘고나니 평지가 나타났고 다시 수림을 지나면서 만난 철조망이다.  이번엔 송도님이 무슨 동작? 편안해서 휴식삼아 앉아있는가 했더니...  오~ 뒷사람이 편하게 건느라고....  그래도 송도님이 최고야...ㅎㅎㅎ  우리가 지나온 산봉우리. 이 주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산등성이를 내려오니 눈앞에 팔도금광이 나타났고 발아래는 아츠란 벼랑이였다. 오늘은 금캐러 여기를 왔는가 보다...ㅎㅎㅎ  벼랑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때라 일행은 여기서 짐을 풀고 점심준비.... 동쪽비탈에 모여앉으니 따스한 봄해빛만 충족했고 바람을 막아주어 좋았다...  오늘은 여성들 명절이라 남성분들만 맛나는 채와 밥들을 싸왔다. 특히 송도님이 너무너무 맛나는 음식들을 싸와서 밥을 먹으면서도 여성분들이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 즐거운 3.8절 축하합니다. 우리는 산악인이깐 산에서 명절을 축하해야지.... ㅎㅎㅎ  송도님이 싸온 맛나는 점심을 배불리 먹고 봄비님과 바람님이 너무너무 감사해서 송도님에게 손맛사지를 해드린다.며칠전 평시에 차지않던 축구를 불시에 차서 딴딴한 근육이 아직도 풀리지않은 송도님이였다. 그것을 알고 봄비님과 바람님이 성수나서 내손이 약손 내손이 약손 여자손은 약손 하면서 근육을 풀어줬다. 송도님이 좋아서 싱글벙글 입을 다물줄 모른다.... 남들이 보았으면 얼마나 부러워할가...ㅋㅋㅋ 작은 은혜도 감사히 여기는 사람은 큰 은혜는 더욱 잊을줄 모르는 훌륭한 사람이다...  다시 산비탈을 내려 골짜기를 따라 벼랑쪽으로 엄청난 바위덩어리가 두개나 있었다.... 작지만 엄청난 바위덩어리.  신나서 그 바위꼭대기를 오르는 뿌리님.  두번째바위는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동굴을 형성했다.  동굴안을 들어가보니 안은 꽤나 깊었고 천정은 꼭대기와도 통했다. 그걸보구 겁도 없이 등반을 시도하는 세 여성용사.  에구~ 겁도 없는 여자들이라니깐~ ㅉㅉㅉ 남자들은 겁이나서 슬슬 피하는데....ㅎㅎㅎ  카메라설정을 바꾸어서 사진을 담으니 광선이 퍼지면서 몽롱한 분위기가 제법 그럴듯하다.  꼭대기까지 거이 오르는 바람님과 봄비님. 아래서 쳐다보는 나까지도 손에 땀이 돋아났다...ㅎㅎㅎ  어두컴컴한 동굴안. 안으로부터 시원한 기운이 얼굴을 스쳐지났다.  동굴안에서 내다보니 송도님이 열심히 뭔가 카메라를 보구있었다.  내가 바위를 에돌아 반대쪽으로 건너가니 봄비님과 뿌리님이 어느새 정상에 올라 나를 보자마자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다시 이쪽으로 넘어서니 우리가 내려온 산비탈을 배경으로  명상랑도네 화이팅!  뿌리님왈: 찍지 말아요 나는 바위에 끼웠단 말이예요... 그러면서도 신나서 즐거운 표정인 뿌리님. ㅎㅎㅎ 님들의 이러한 즐거운 표정에서 나는 항상 행복감을 느꼈다. 산행은 산을 오르면 되겠지만 같은 산이면서도 어떻게 즐거운 산행이될가는 코스확정이 관건적이라고 본다. 산에 올라 정상에만 달랑 올라 고함몇마디지르고 그대로 내려온다면 산행의 진미를 다 느낄수 없을것이다. 산에 갔을바에는 될수있는한  산의 이곳저곳을 샅샅히 뒤져 즐거움느낄수있는 목표를 많이 찾아야 한다. 그러한 발견이 많을수록 산행의 즐거움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다. 아마 이것이 명상랑도네의 특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멋진 벼랑을 자꾸자꾸 되돌아보는 바람님.  다시 습지를 지나면서... 앞의 산은 금을 캐면서 뭉텅 잘라먹은 산.  봄비님과 송도님도 소나무숲을 지나 내려오고 있었다.  무성한 갈대숲을 지나는 봄비님과 송도님.  송도님도 멋진 벼랑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 남기지 않을수가 없지...  봄비님과 나 그리고 송도님이 늘쩡늘쩡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내려왔다. 그동안  앞선 세분은 어느새 그늘진 수림속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한담을 하고 있었다. 봄날씨가 제법 따스하여 여름같은 분위기이다.  일행은 다시 금광을 지나 북쪽켠골짜기를 들어섰다. 우에서 볼때는 작은 산이였는데 이렇게 도착하고 보니 엄청나게 높은 벼랑산.  깍가지른듯한 벼랑을 보구 뿌리님이 달려가 등반시도를 한다....ㅎㅎㅎ  어쩌면 명상랑도네의 여성분들은 한결같이 저렇게 등반능수일가....ㅋㅋㅋ 뿌리님 왈 청산리 일광산 그리고 오늘의 팔도금강(금광이지만 나는 금강으로 부르고싶다.)에 와서 멋진 풍경을 마음껏 즐길수 있었으니 명상님이 가는곳에는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시작부터 뿌리님이 항상 내 뒤를 떨어지지않았다...ㅎㅎㅎ  골짜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얼어든 내물바닥이 보기좋게 나타났다. 여기서 집체사진을 남기고 돌아서는데도 세미녀님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대로 점잖을 빼고 발에 못이박힌듯이 서 있기만 하는데... 그래서  (내가,  눈치없게스리...ㅎㅎㅎ)  제꺽 사진기를 꺼내들어... 찰깍했는데  얼마나 멋진 작품이 되였는지....ㅎㅎㅎ  뿌리님의 참석으로 명상랑도네의 미녀삼총사가 바꾸었나 보군! ㅋㅋㅋ  송도님도 걸으면서 쉴새없이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찍고는 제때제때 봄비님을 보여주면서...  오늘 봄비님이 송도님의 사진모델을 하기에 쉽지 않았겠는걸....ㅋㅋㅋ  얼음강판은 따스한 봄날씨에 조금씩 녹아 즐벅한 물바다를 만들고 있었다.... 얼음강판을 조금걷다말고 앞에선 여성분들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웬 일인가 보았더니 봄비님부터 나무가지사이로 재빨리 접근하는데...  도대체 뭘 보구 저렇게 놀란 표정들?  버들개지가 활짝 피어 눈을 즐겁게 했다! 그 보다도 인젠 봄이 다 되였구나 하는 즐거운 심정! 겨울내내 얼었던 만물이 인제 봄기운을 먹고 하나하나 소생하는 계절.... 참 기분좋은 계절이다.  봄나들이란 말은 아마 이러한 놀라움과 경악이 서로 엇갈려 더욱 멋진가 본다.  뿌리처녀에게도 봄은 찾아 왔는가....  뿌리님이 어여쁜 따님에게도 봄을 알려주겠다고 버들개지를 몇가지 꺽거 가방에 꽂으니 제법 멋졌다. 물론 너무나 사랑스런 봄버들개지 꺽기를 아쉬워하면서....   또 다시 나타나는 벼랑을 마주하고...  강옆으로는 무성한 갈대숲이 나타났고 뿌리님은 두말없이 다가선다...  강판을 걸으면서도 내내 갈대숲과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 뿌리님, 아마 갈대숲에게도 무한한 감정이 있는듯...  산비탈을 오르면서 다시 얼음으로 뒤덮힌 미끄러운 길을 오르게 되였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왼쪽으로 동굴이 보였는데 물은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동굴은 얼마나 깊을가.... 안에 대고 소리치니 깊은 동굴이 소리를 흡수해버리는듯...  다시 낮은 언덕길을 넘으면서.... 오늘 산행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랑도네다운 랑도네였다. 랑도네란 프랑스어에서 기원된 말인데 긴 산책의 의미가 담겨있다. 랑도네는 단순한 걷기운동보다도 산에가면 산을 알고 들에 가면 들을 알며 옛도시를 걸으면 그 도시에 관한 력사를 아는 걷기운동에 문화생활을 체험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산에가면 산새소리에 귀도 귀울이고 계곡에 가면 물소리에도 귀를 귀울이여 계절의 변화를 알고 산속의 생명도 알게된다. 저 새는 무슨 새이며 이 풀은 무슨 약초인가를 알게된다..... 그 보다도 인간은 산을 다니면서 자연을 알고 자연을 느끼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여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인생을 알게되는것이다....  언덕을 넘어서니 우리가 처음 올랐던 벼랑이 한눈에 안겨왔다.  걸으면서 살짝 얼굴을 돌린 뿌리님의 걷는 자태도 너무 멋지다.  무성한 소나무숲을 걷고있는 님들. 오늘은 산책같은 여섯시간산행. 산도 넘고 벼랑도 탔으며 눈도 밟았고 얼음위도 걸었다. 그리고  무성한 갈대숲에다 습지 그리고 또 동굴까지... 짧은 하루산행에 이렇듯 많은것들을 경험했다는건 말치않아도 너무나 멋진 산행이다.  두 다리는 조금 지친듯하지만 마음만은 즐거웠으니 늘쩡늘쩡 산책하듯이  명상적인 랑도네였다.!  오늘은 산행예고 그대로 산행의 진미를 그윽하게 느꼈으리라.... 명상랑도네의 원만하고 만족스러운 3.8절산행 여기서 그친다....랑도네님들 모두모두 즐거웠으리라 생각하면서....                                                                             
54    명상랑도네 일광산산행일지 댓글:  조회:2250  추천:65  2008-03-06
2008년 3월 1일 명상랑도네는 도문 일광산을 다녀왔습니다.일광산남쪽풍경은 북쪽에서 볼수없는 멋진 풍경이였습니다.명산이 따로 없는가 봅니다. 일광산에 화엄사까지 건립되면 명실공히 연변의 명산이 될것입니다....산행일지의 상세한 내용은  아래주소를 클릭해주세요~http://ckywf.com/news_2007/board.php?board=f_club11&act=view&no=286&page=1&search_mode=&search_word=&cid=
53    명상랑도네 청산리산행일지 댓글:  조회:2482  추천:92  2008-03-06
2008년 2월 23일 명상랑도네는 청산리를 다녀왔습니다.늦었지만 새로 장식한 조글로등산페지에 사진 몇장올려봅니다.상세한 내용은  아래주소를 클릭해주세요~http://ckywf.com/news_2007/board.php?board=f_club11&act=view&no=280&page=1&search_mode=&search_word=&cid=
52    눈물젖은 두만강의 유래와 그 노래에 얽힌 사연 댓글:  조회:3127  추천:89  2008-03-02
2008년 3월 1일 도문 일광산산행을 하면서 눈물젖은 두만강 기념탑을 지났습니다. 마침 이날은 3월 1일이라 비문에는 눈물젖은 두만강의 유래가 3.1독립운동이였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우연히 지나면서 다시읽게되였던 비문이지만 마침 이날도 3월 1일이라 더욱 감개무량했으니 보는 사람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뭔가 마음 한구석이 못내 슬퍼졌고 혼자서 눈물젖은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와 함께 그 유래를 여기서 올리니 독립투쟁으로 희생된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 잠시나마 노래와 함께 묵례하였으면 합니다.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눈물젖은 두만강의 유래: 1919년 조선3.1독립운동의 실패로 수많은 조선동포들은 원한을 품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연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1930년대부터 도문에는 두만강나루의 착선장이 생겼는데 이 곳이 바로 나라잃고 부모처자 생리별 하던 원한의 두만강 나루터였다.  1935년 가을 북간도(연변)순회공연차로 도문에 도착한 극단<예원좌>일행이 투숙한 려관에서 밤중에 만주(동북)땅에서 반일투쟁을 하다가 살해당한 남편을 그리며 통곡하는 녀인의 애절한 호곡소리를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작곡가 리시우 선생은 망국의 원한과 민족의 설음을 통탄하며 <눈물젖은 두만강>을 창작하였다. 도문 공연에서 극단의 소녀화술배우 장월성이 이 노래를 처음으로 부르게 되였는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절찬을 받았다. 서울에 돌아간후 시인 김룡호선생을 찾아 가사를 다듬고  가수 김정구 선행을 청하여 레코드에 취입하도록 하였다. 그 이후부터 이 노래가 민간에 급격히 류행되였는데 사람들은 조국이 그리울 때도 이 노래를 불렀고 떠나간 옛님이 그리울때도 이 노래를 부르게 되였다. 연변조선족전통문화연구쎈터 정리.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에 얽힌 사연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는 독립투사 문창학의 부인인 김증손녀(당시30세)가 상해 임시정부 시절 3.1독립운동에 참가한 남편을 찾아 중국 독립군이 있다는 곳이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10여년을 찾아 다니던 어느날 두만강가에 있는 용정(도문)에서 남편 문창학씨가 이미 사형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당시 머무르던 용정(도문)여관방에서 원망과 슬픔에 겨워 밤새도록 목놓아 통곡을 하였는데 당시 한국에서 유랑극단 생활을 하던 작곡가 이시우씨가 옆방에서 흘려 나오는 여인의 울음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 하였다가 이튿날 여인의 사연을 알아본바 너무나 가슴 아파 그 심정을 오선지에 담았는데 작사자 김용호 선생이 노랫말을 붙이고 김정구 가수가 부른 노래가 오늘날 불멸의 노래인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이다. 독립투사 문창학씨는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 출신으로 1921년2월2일 대한 군정서 김학섭의 인솔하에 소총10정,탄약150발,폭탄2개씩을 가지고 웅기항을 습격하고자 하였으나 일본군경의 경계가 심하여 2월5일 신건원주재소를 습격하기로 하고 오후8시에 신건원 주재소를 습격,일본순사를 사살하고 주재소에 폭탄2발을 투척한 후 일본군경과 교전타가 피신한 후 만주 훈춘에서 맹렬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1년 12월에 체포되어 압송된 후 1923년 12월20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꽃다운 청춘인 41세에 사형당하였다. 그후 문창학 가족 일부는 남한으로 내려와 생활 했으나 노래의 주인공인 김증손녀의 손부인 박인경 74세 할머니가 현재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 혼자 살고 있으나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만 나오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눈물젖은 두만강 / 이미자 *★PARK★* 눈물젖은 두만강 / 김정구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눈물젖은 두만강에 담은 민족의 애환과 독립의지 국민가요 ‘ 눈물젖은 두만강’은 1935년 여름, 악극단 예원좌의 일원으로 두만강 유역의 도문에 공연 갔던 작곡가 이시우가 만들었다. 당시 여관에서 쉬고 있던 이시우는 먼길을 찾아 와 독립군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접한 어떤 여인의 통곡에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심하게 흐르는 두만강의 정경과 여인의 통곡에서 민족의 한을 느낀 그는 멜로디가 떠올랐다. 공연 마지막 날, 소녀 가수 정성월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노래의 사연을 소개하자 공연장은 이내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일생의 역작을 작곡한 이시우는 이 노래를 정식 음반으로 남기고 싶어 인기 가수 김정구를 찾아갔다.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김정구는 작곡가 박시춘을 찾아가 음반 제작 허락을 받아 내고 작곡가 김용호에게 부탁해 1절밖에 없던 노래를 3절까지 완성시켜 취입을 했다. 노래가 발표되자 김정구는 무대에서 이 노래를 꼭 불러야 했을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김정구는 최초의 음반사의 전속연주단인 OK 연주단과 함께 전국을 순회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며 OK 악극단은 북경, 상해, 만주, 일본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는 한편 이름도 조선악극단으로 변경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멤버는 작곡과 반주 박시춘ㆍ 손목인ㆍ김해송, 가수 남인수ㆍ고복수ㆍ김정구ㆍ송달협ㆍ이난영ㆍ장세정ㆍ백설희 등 가히 최강의 라인 업이었다. 당시는 남인수와 김정구의 라이벌 시대. 두 사람의 공연 후에는 항상 장안의 기생 인력거가 길게 줄을 섰다. 김정구의 한달 수입은 당시 집 2채에 해당하는 거금 1,000원에 달했다. 그가 출연했던 서울의 명치좌(명동 국립극장 전신)과 부민관(구 국회의사당)은 입장권을 사려는 관객들이 건물 둘레를 뱀이 또아리 틀 듯 휘감았다. 그가 종로거리를 걸으면 거리가 마비되었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달리던 전차가 멈추기까지 했다. 두만강 부근 공연 때, 일본 경찰에 잡혀 남편이 옥사해 소복을 입고 있던 한 여성 관객이 사연과 함께 노래를 듣고는 두만강에 투신 자살을 했다. 이 사연이 알려지며 ‘ 눈물젖은 두만강’은 더욱 널리 불리워졌다. 이에 일제는 ‘ 민족 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라는 멍에를 씌웠다. 평양 금천대좌공연 때는 ‘ 낙화삼천’을 노래하자 조선인 일본 경찰이 “ 노래가 불온하다”며 경찰서로 끌고 가 사흘동안 고문을 했다. 또한 ‘ 타향술집’에선 “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이 우나니”라는 부분을 두고 “왜 외로이 우느냐?”며 문제 삼기도 했다. 무대 장치 가운데 태극선이라도 그려지면 무조건 문제 삼던 시절이었다. 동경 공연 때는 ‘ 유쾌한 봄소식’에서 “ 긴자의 버들이 넘실넘실”부분의 “ 넘실넘실”을 일본말이 아닌 우리말로 부르자 감격에 겨운 유학생들이 무대위로 올라와 그를 얼싸 안았다. 그 때문에 경찰에 끌려 가 조사를 받았지만 그의 숙소에는 유학생들이 가져 온 꽃다발이 넘쳐났다. 하지만 총독부의 강요에 견디지 못하고 전쟁을 독려하는 영화 ‘ 너와 나’에 백마강의 뱃사공으로 출연해 주제가 ‘ 낙화삼천’을 부르는 수모도 겪었다. 그는 일본 패망 직전인 동경에 볼모로 잡혀있던 조선 영친왕(이은)과 방자여사를 위해 열었던 아카사카 별궁 공연을 가장 잊지 못했다. 1943년, 27살의 청년 김정구는 춘천 처녀 조남진과 결혼을 해 2남 4녀를 두었다. 해방 후에도 영화 ‘ 눈물젖은 두만강’에 출연해 꺼지지 않는 인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형 용환과 함께 결성한 태평양가극단의 지방순회공연이 실패해 모든 재산을 날리는 좌절도 겪었다. 정부 수립에 이어 6ㆍ25 전쟁이 터지고 9ㆍ28 수복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그의 집에 날아든 두 발의 포탄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1ㆍ4후퇴 때는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풀 빵 장수를 해 연명을 했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외국 팝송과 현인, 박재홍 등 후배들에 밀려 입지를 잃어 갔다. 1961년, 한일관계가 새로운 장을 맞기 직전에 재일 동포 위문 공연을 떠나 동경을 비롯해 6개 도시 순회 공연을 열었다. ‘ 눈물젖은 두만강’, ‘ 왕서방 연서’, ‘ 바다의 교향시’ 등 700여 곡을 남긴 그는 1967년 서울시장공로상, 73년 국방부장관상에 이어 1980년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1976년 2월, 퍼시픽호텔 홀리데이인 서울에서 열흘동안 대중가요 사상 최초의 회갑 기념 공연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밤무대는 물론 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서 평양 공연, 87년 미주 해외교포 위문 공연 등에 참여했다. 87년 KBS 가요대상 원로가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90년 MBC TV ‘ 토요일 토요일은 胄탓?에서는 그의 55년 가요인생에 대해 특집방송을 했다. 하지만 92년 노인성 치매로 “ 이제는 눈물젖은 두만강 가사도 깜빡 깜빡한다”며 요양차 미국으로 건너갔다. 6년 후, 병마를 이겨 내지 못하고 98년 9월 25일 향년 82세로 LA에서 세상을 등졌다. 2000년 8월, 가수분과위는 두만강변에 연변조선족 전통문화연구센터를 세우고, 도문성 옛 두만강나루터에는 ‘ 눈물젖은 두만강’ 노래비 건립을 추진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개화기부터 60여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며 산증인 역할을 했던 국민가수 김정구. 고 현인도 “ 스타 이전에 인간적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셨고 노래에 앞서 항상 바르고 검소한 생활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고 생전에 회고했었다. 그의 노래 ‘ 눈물 젖은 두만강’"은 한국 대중 음악사상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으로 불멸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parent.ContentViewer.parseScript('b_1900624');
51    2월 16일 명상랑도네 토요산행공지 댓글:  조회:2640  추천:65  2008-02-14
돌아오는 토요일 (2월 16일)은 룡정 삼합의 한왕산성으로 갑니다!한왕산성은 누르하치가 청조제국을 발기한 발상지라고 할만큼 유구한 역사를 갖고있는 산성인데  산성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되였었고 현재에는 아직도 정교한 성벽담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모일지점: 로커윈짠 뻐스역모일시간: 아침 7.00시 (룡정에 8.00시에 도착해야 합니다!)주의사항: 아직도 겨울추위는 계속되니 옷을 든든히 차려입어서 랑패가 없습니다.  점심은 싸지말고 과일 쵸콜렛 빵같은 간단한 간식을 싸주세요~  가실분들 전화 혹은 꼬리글 부탁드립니다!전화: 13019180217
50    백두산 백운봉산행 댓글:  조회:3595  추천:55  2008-02-12
2008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백두산천지에서 내 생애에 최고의 3일을 보냈다. 그것도 우리뿐만 아닌 조글로산악연맹의 님들과 함께! 백두산의 기후변화는 변화무쌍하여 일년치고 개인날을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수십차 백두산을 다녀와도 우리가 천지에 오른 이날처럼 찬란한 해빛에 바람한점없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그것도 가장 추운 한겨울에... 아마 팀의 리더인 목장님의 정성과 조글로산악연맹의 모든 분들의 정성으로 정말 하늘을 감동시켰을가 복이 없이는 맛볼수없는 자연의 극치이다.  사실 이번 백두산시산제를 위해 나는 목욕재계를 하고 문장을 구상하고 붓을 들어 축문을 썼다.  성산으로서의 백두의 신령도 그러한 뜻을 알아봐준듯하다. 그래서 백두산에 머무는 사흘간 나는 내내 경건한 심정으로 이 신성한 땅을 밟았다....    엊저녁 천지의 날씨답지않게 바람한점없는 겨울밤을 보냈다. 텐트를 치지않고 그대로 침낭하나로도 밤잠을 잘수있을정도로... 나 혼자 이렇게 말한다면 누구도 믿지않을것이다. 겨울의 천지는 적어도 영하30도가 되는 극한이다. 동북삼성의 최고봉인 백두산에서 이러한 밤을 보냈다면 누군들 믿을냐만 혼자도 아닌 여섯사람이 증인이 되니 여직껏 천지에서 밤을 보낸 산악인들이 통곡할일이로다.... 엊저녁 별님하고 송도님이 자다말고 새벽세시에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놓는바람에 전체대원을 깨워 부들부들떨면서 야식을 먹고 두시간쯤 다시 눈을 붙힌후에  아침 여섯시에 휘뿜이 날이 밝기시작하여 내가 먼저 일어나 대원들을 재촉했다. 오늘 최고봉인 백운봉을 올라야하니 아침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별님(주: 별님은 백두산등산가이드로 몇년간 활약한 경험있는 산악인이다. 백두산을 제집나들듯 다녔으니 백두산의 정황은 손금보듯 하다.)의 경험으로 보아서도 무지어려운 산행코스로 점심전에 돌아서지않으면 위험한 산행이라하니 나부터 만단한 준비를 하지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일어나 침남을 챙기고 불을 지펴 뜨거운물을 끓이다말고 룡문봉을 쳐다보니 룡문봉정상은 이미 아침해빛에 황홀한 금황색으로 물들여 있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들어 동녘하늘을 바라보니 천문봉넘어 푸르른 하늘에 아침노을이 나타나기시작했다. 그래서 물을 끓이다말고 사진기를 들고 천문봉쪽으로 달려갔다. 사진을 찍다보니 천문봉을 오르기싶은 충동이 일어 백사불문하고 네발걸음으로 천문봉정상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단숨에 달려 산언덕을 하나 오르고 보니 아직도 천문봉은 아츨하게 보였다. 거기서 천문봉정상을 오른다는건 말도 않되는 소리고 그곳정상에서 한눈에 천지를 바라보는것만으로도 흡족했다. 그리고  오늘의 첫번째계획은 백운봉이니 나때문에 계획을  지체할수가 없어  다그쳐 내려왔다. 산을 내려오니 대원들은 이미 짐을 거이 챙기고 떠날준비를 하고있었다. 천문봉중턱에서 본 풍경은 나중에 따로 올리련다.(주: 우리가 텐트를 친 이곳은 천지에서 폭포쪽으로 흐르는 승사하(乘槎河)의 천지어구였다. 엄청난 돌바위들이 이곳저곳널려있어 작은 산을 이루었는데 여름이 되면 절반쯤은 천지물에 잠긴다고 한다.)  백운봉을 향해 가는 님들. 가운데 높은산이 곧바로 백운봉이다.  룡문봉아래를 지나는 님들. 그저 사진만을 보아서는 천지가의 16봉이 얼마나 높은줄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산아래를 지나는 개미같이 보이는 사람과 비겨 보면 조금은 느낌이 올것이다.   룡문봉의 한쪽귀퉁이의 바위뿐인데도 이렇듯 웅장하니 룡문봉전체는 얼마나 높을가!  삐쭉삐쭉 하늘을 향한 룡문봉의 잔 바위들. 룡문봉전체가 사진기렌즈에 들어오지않으니 부득불 천지중심쪽으로 한참이나 이동해서야 겨우 들어온다.룡문봉은 그 형상이 문과 흡사하다고 하여 룡문봉이라하니 백운봉을 오르자면 꼭 지나야할 문턱이 된다.鲤鱼跳龙门이라는 성구가 있듯이 무슨 일이나 관건적인 한 목을 건너야 일이 성사되며 자아분발하여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사람이 되는법이다. 룡문봉은 일명 차일봉이라고 하는데 해발2595메터이다. 백두산16봉중에서 비교적 낮은 봉우리이다. 사실 천지주변의 16봉은 천지물수평과 적어도 400메터는 떨어졌다. 그것도 모두가 엄청가파로운 벼랑들이니 보이지않는 위험들이 잠재되여있어 백두산천지에 올라 봉우리하나를 정복한다는건 정말 쉽지않는 도전이고 용기이다.  백운봉 아래에서 백운님!  이번 백두산산행을 거쳐서 이순지년에 가까운 백운님의 견강한 의력에 탄복을 하지않을수가 없었다. 룡문봉아래서 짐을 챙기고 있는데 송도님이 랑만팀이 이미 도착하였다고 전달이 왔다. 먼저 달려온 목장님을 보고 백운님께서 두팔을 벌려 포옹한다. 바람님과 기타 대원들도 서로 얼싸안고 만남의 희열에 흥분하고 있다.단 하루만의 만남이였지만 천지에서의 두팀의 상봉은 그렇듯 뜻깊다. 아마 이것이 우리 조글로산악연맹의 정이 아닐가....   짐을 챙기다말고  돌아선 우리를 향해 두팔을 벌리며 달려오는 랑만팀의 회원님들.  엄청난 산체를 마주하고 감탄만 하는 미소님의 어엿한 자태.  명상랑도네의 든든한 뒷심--등산경험이 풍부한 녀강자인  바람님인데 어찌 동북의 제일고봉인 백운봉을 앞에두고 둘이 함께 기념사진 한장 남기지 않을수 있을손가! ... 뒷말이지만 5호국경선을 넘다말고 혼 떨어진 바람님과 나! ㅎㅎㅎ  동북의 희말라야같은 백운봉을 마주하고 모두들 감탄에 감탄을 이어 흥분하여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면서 기념을 남긴다.  명상랑도네의 전업대원들! 장차 산행의 극치인 백운봉정복에 도전장을 던진 우리님들이니 인제부터 전업등산대원이라 불러야겠다.그렇찮아도 천지폭포를 오를때 백두산관리일군들과 여행을 온 사람들마다 우리를 보구 한국에서 오셨는가 하는 질문에 연길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놀란 모습이고 의아한 표정이다..... 연변에도 이렇게 훌륭한 전업대원들이 있는가고.....사실 우리는 누구의 후원도 받은적없이 자체의 힘으로 구성된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끌끌한 대오이다.백운님과 바람님께서 재차 제기하였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세계의 최고봉인 희말리야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3년내에 그 꿈을  실현해볼 계획이다.  별님과 바람님이 앞장서서 대오를 거느리고 백운봉을 향해 출발! 이번 설벽등반을 위해 송도님이 전업용바줄을 준비하고 별님께서 빙벽장비를 준비하였다.비록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도중에 철되하면서 도구를 활용못했지만 갖난 송아지 범무서운줄모른다고 그 정신만은 탄복할만하다. 아무런 설벽장비도 없이 설벽을 오를만큼 랑만팀의 님들의 담량이면 산악인으로서의 기본은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백운봉을 향해 걷는 끌끌한 대원들...  설산을 오르는 님들의 이러한 정경을 보노라나 앞으로 희말라야를 정복하는 우리님들의 모습이 보이는듯하다.  룡문봉과 그 뒤의 천문봉을 배경으로 스키님의 멋진 포즈! 항상 보아도 스키님은 스키타는 자세만은 흐트러지지않는다.  백운봉중턱인데도 그 아래로보면 사람은 보잘것없는 개미같은 모습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팀원들의 체력차이가 조금씩 차나기 시작했다. 이번 백운봉등반은 경험있는 별님과 바람님이 인도를 하는바람에 나는 안심하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말고 산을 오르는 도중 내내 백운봉의 장엄한 모습에 감탄이 가다보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룡문봉쪽으로 발길이 가게 되였다. 한발자욱이라고 높은 곳에 올라 백운봉의  장엄한 정경을 보고싶었다. 그래서 결국은 오르다보니 대오와 다른방향이 되였고 나는 룡문봉과 관일봉사이언덕을 거쳐 백운봉쪽으로 가게 되였다....    티없이 깨끗한 룡문봉언덕을 지척에 앞두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내 등뒤로는 엄청난 바람이 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언덕에 오르니 바람은 더욱  세찼다. 언덕우의 평평한 초평우에 누가 쌓아놓았는지 탑모양의 돌무지도 있었다. 아마 지난 산악인들이 정성스레쌓은 공덕탑이듯하다. 여기서 잠깐 공덕탑을 보구 생각나는게 있어 말하지만  일부 등산하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서 정상에서 남들이 정성스레 올려놓은 돌탑을 무너뜨리는 일도 있는데  내가 선경대에 한동안 머물면서 수차례이러한 경험을 하였었다. 내가 선경대주봉에 오를때마다  조금씩 돌을 주어 돌탑을 쌓아놓느라 하였지만 후날에 가보면 그 쌓아놓은 돌들이 간곳업이 사라진일이 많았다. 사실 그때의 심정만큼 실망감이 더 없었다.  엄격하게 얘기하면 남들이 의식적으로도 쌓아놓은 돌무지를 무너뜨리는 일조차도 결국은  남의 공덕을 회손시키는 행위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라도 베풀지 못할망정 어찌 저렇게 정성들여 쌓아놓은 공덕탑을 무너뜨릴수가 있단말인가..... 그래서 나는 작지만은 돌세개를 주어서 올려놓았다.....언젠가는 나의 뒤의 다른 산악인이 다시 몇개를 올려놓겠지....  룡문봉과 관일봉의 능선을 타면서 아래를 바라보니 아래의 팀원들도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관일봉에 거이 올랐을쯤에 아래의 팀원들도 이미 절반은 넘어 올랐다.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가장 가파른곳에 닿이게 된다. 이렇게 바라보니 엄청난 산체에 비겨보면 우리님들의 모습이 개미보다도 더 작아보였다...  나는 계속 능선을 타고 관일봉정상을 향해 올랐다.  관일봉을 오르다말고 돌아서서 보이는 천문봉과 기상대.  여기에 서서보니 왜서 이 봉우리를 관일봉이라 이름지엇는지 그 뜻을 알만했다.  관일봉중턱에서 바라본 백두산천지의 전경.  관일봉을 오르면서 다시한번 세찬 바람과 마주쳤고 눈덮힌 백설의 세계를 마주하여 무아의 경지를 느꼈다.  일망무제한 장백림해!  사진에서  저 멀리 오른켠절벽아래골짜기는  곧바로 천지폭포가 있는 북파의 골짜기이다. 관일봉정상에서서 일망무제한 북쪽의 장백림해를 마주하고 나는 흥분끝에 내 마음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인적없는 이 백두의 정상에 서서 나 홀로라는 생각에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도 된 기분이였으니 이루 언어로 어떻게 표달할 방법이 없다. 특히 광명찬란한 백설의 세계와 일망무제한 백두림해를 마주하고 또한 두발로 보송보송한 고산의 마른풀을 밟을수 있다는건 어찌보면 인생의 최고의 향락이 아닐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또 나 혼자만이 이러한 향락을 누린다는건 어찌보면 팀원들한테도 미안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왜서 한명이라도 불러서 함께 올라오지못했는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관일봉정상에 서서 북파쪽으로 바라보니 북파골짜기 위로는 천문봉을 오르는 차길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은 청산리의 베개봉까지 육안으로 볼수가 있었다...  관일봉에서 금병봉(錦屛峰)쪽으로 가면서 바라본 관일봉전경.  금병봉능선을 타면서 서북쪽으로 바라본 일망무제한 장백림해.  금병봉을 지나 녹명봉(鹿鳴峰)을 가면서 바라본 천지전경. 가운데 산봉우리는 조선의 비류봉이고 그 뒤로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해발 2750메터)이다.  금병봉끝에서 내려다본 산을 내리는 우리님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듣지를 못했다. 아니 들을수가 없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은 별님이 대오를 이끌고 오르다가 위험을 느껴 이유없이 철퇴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별님의 얘기에 따르면 대오전체가 오를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르고나서 내리는게 문제라고 하였다. 그 말이 경험자의 참말이였다. "설사 목적지를 지척에 두었다하더라도 팀의 안전에 위험이 되는일이라면 무조건 이유없이 철퇴하는게 길을 인도하는 리더의 책임이다." 여기서 잠시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희말리야를 수십차례정복한 한 등산가족 리더의 경험담인데 자신은 매번 희말리야정복에서 우에서 말한 그 원칙을 지켰기때문에 한차례의 실수도 없이 오늘까지 견지하여왔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희말라야를 정복하는데 첫번째로 찾는 사람이 자기가 될 정도로 산악회의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력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군인을 뽑으라면 제갈량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일생은 수십차례?전투를 벌렸는데 전승은 적고 대부분은 철퇴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싸움은 한판승부에 끝나는 법이니 사는가 죽는가는 두가지선택밖에 없다. 이기는것이 승리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알고 지혜롭게 철퇴하는게 가장 큰 승리라고 한다. 오후의 일이지만 바람님하고 내가 멋모르고  5호국경선산능선을 위험을 무릅쓰고 올랐다가 정말 큰 봉변을 당할뻔했다. 하늘의 뜻이 아니였다면 나와 바람님은 이미 크게 다쳤을것이다. 목적지를 지척에 두고 그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어 내가 주장하여  올랐는데 결국은 내려갈방법이 없었으니.... 사람이란 항상 관를 눈앞에 두고서야 눈물은 흘린다는 말이 맞는듯하다.  뒤늦게야 깨닫고 후회하는게 범부의 소행이라고  이번 백두산등정에서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 바로 이점이다.  행운은 행운으로 끝내야되고 앞으로 명상랑도네에서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명기해야겠다.    녹명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금병봉전경.  녹명봉정상에서 바위틈새로 바라본 전경. 나머지 팀원들이 안전하게 철퇴하고 있었다....  백운봉을 가려면 또하나의 엄청난 봉우리를 지나야 한다. 그 봉우리만으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하니 나 혼자만이 계속 더 갈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른켠으로 내리뻗은 저 언덕까지만 가보기로 하였다.  산능선에서 뒤돌아본 녹명봉전경  백운봉쪽에서 아래로 이어진 눈덮힌 산능선-- 백설의 세계!  언덕을 넘어서니 백운봉서남쪽으로  하나의 엄청난 계곡이 신기루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저 산멀리 눈덮힌 또 하나의 산체!  사진기렌즈를 당겨보니 한츰 더 선명해진 백운봉 저 멀리 남쪽으로 눈덮힌 산군체. 백두산하고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아마 저 산은 작은 백두산이라고 불러야 합당할듯하다. 사실 압록강변의 十五道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60리 오르다보면 저 산의 정상에 닿게 된다. 나의 산행계획중의 하나가 장백현의 압록강을 답사하고 저 산뒤로 60리 계곡을 밟아보는 일이다. 멀지않는 장래에 나는 그 뜻을 실현해보련다... 여기서 백운봉을 갈려면 아직도 멀다. 그보다도 백운봉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센지 정면으로 마주설 용기가 없었으며 또 팀원들과 기타부타 말없이 나 홀로 이 정상을 올랐으니 근심이 될가봐 시간을 재촉하여 하산을 해야 했다.  사진의 바위사이로 나는 하산을 해야 했다. 아이젠이 없이는 도무지 엄두를 못낼 가파로운 산비탈이다.    내려오다 뒤돌아본 녹명봉전경(해발2650메터)  산을 내려오니 아니나 다를가 다들 근심에 차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랑만팀은 이미 폭포를 내려갔고 나머지 팀원들은 백운봉을 정면으로 치다말고 내가 내려오는걸보구 함께 내려왔다.  별님하고 봄비님은 뒤로 벌렁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명상에 잠겼고 백운님은 그 뒤에 서서 뭔가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바람님은 아직도 산중턱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2008년 조글로산악연맹의 백운봉산행에서 기념사진. 아마 가장 성취감을 느낀것은 우리의 리더인 목장님인듯싶다. 아니면 어찌 저렇게 산악회기발을 휘날리며 두팔을 벌려 환호할수 있단 말인가....ㅎㅎㅎㅎ랑만팀과 연우팀, 그리고 중앙산악회의 두분의 참석으로 네팀의 합동산행은 여기서 마무리짓는다. 오후의 시간은 각팀의 단독산행이니 그 내용은 따로 올리련다.끝으로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번 백두산산행은 명상랑도네산악회가 성립되여서부터 천불지산새해일출산행을 뒤이어 가장 뜻깊은 산행이였다. 동북의 제일고봉인 백운봉에 도전장을 던질만큼의 용기라면 세상의 어느 산도 두려움이 없겠다. 그보다도 산행이란 산을 이기는것보다도 우선먼저 자신에대한 도전이고 자신을 이겨보는 일인만큼 산행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을 알게되며 자신의 극한을 알게된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내가 모르기때문에 생기는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모르면 도전을 해야하고 도전하다보면 알게될것이며 알고나면 세상에 두려운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앞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서 산을 오를때의 어렵고 간고한 정경만 생각하는데 결국은  오를념두도 못한채 주저앉고마는 경우가 허다하다(행동도 못한채).  그리고 어떤이는 자신의 능력을 무시한채 함부로 덤벼드는게 역시 자신도 모르는 큰 어리석음이라해야겠다. 길고 짧고는 재어보아야 알수있는법이고 자신의 능력은 도전해보아야 알수있는법이다. 그리고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은 시작하되 되고 않되고는 하늘에 맞기고 견지할수있고 없고는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산이 아무리 높아도 사람이 올라서서야 최고봉이 되는 법이니 산행이란 곧 인생이며 인생이란 바로 자신이라는 큰 산을 넘어보는 일이다!  
49    2008년 조글로산악연맹 백두산시산제의식 축문내용 댓글:  조회:2474  추천:54  2008-02-12
축문: 바야흐로 戊子年 希望을 밝히는 찬란한 새해를 맞으며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조글로山岳聯盟會員一同은  오늘 백두산 天池에서 酒果脯를 陳設하고 성스런 天地神明께 엎드려 告하나이다. 지난한해 조글로山岳聯盟은 세상에 고고성을울려 크게 번창하여 오늘과 같은 큰 가족이 이루어졌나이다. 지난 한해 우리들은 새로운 훌륭한 가족들이 늘어나는 기쁨과 함께 회원 모두 무탈하게 잘 지내왔으니  오늘 여기서 지난 한해를 감사하고 반성하나이다. 그리고 래일의 繁榮과 도약을 다짐하기위한 一念으로 전체 회원들의 精誠을 모아 오늘 성스러운 祭를 올리나이다. 예로부터 山紫水明한 白頭山은 백의민족의 聖山으로 자랑되어 왔으며 秀麗하고 莊嚴한 靈峰과 아름다운 溪谷은 悠久한 歷史의 흐름속에 우리민족의 生命의 根源이며 生活의 바탕을 이룩하여 왔던 것입니다. 우리 山岳會一同은 이러한 대자연의 精髓와 美의 極致속에서 自然을 欽慕하고 自然과 同化되며 꾸준한 山行을 통하여 忍耐와 協同으로 和睦과 團結을 배웠으며 素朴하고 俊嚴한 敎訓속에서 心身을 鍊磨하여 왔습니다. 天地間의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뜻이 있으며,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도 모두가 天地神明이 들어있나니. 우리들은 절대 그 터전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 않으며 새 한마리, 다람쥐 한마리와도 벗하며 지내겠나이다. 바라옵건데 올 戊子年 한해에도 自然을 사랑하는데 精誠을 다 바쳐온 우리 山岳聯盟一同을 굽어 살피시어 저희들 회원과 그 가족 그리고 여기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이  安全한 山行이 繼續되게 하시고 서로 화합과 사랑이 넘치게 하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 경영하시는 사업과 하고있는 업무가 순조롭게 발전하여  훌륭한 成果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그리고 훌륭한 인재들이 繁昌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받칠수있도록 끊임없는 加護가 있으시기를 懇切히 所願하나이다.  저희 회원 모두는 至善하고 바르고, 그릇됨을 밝게 가릴줄 아는 사람이 되어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건강해지는데 熱誠을 다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마지막으로 우리 조글로山岳聯盟 一同은 보배로운 이 江山을 알뜰히 가꾸어 子孫萬代에 물려줄 것을 다짐하면서 精誠을 다하여 이 盞을 올리오니 성스런 天地神明이시여 우리들의 이 精誠을 大禮로 欣快히 받아주소서.                2008년 2월 9일 조글로산악연맹일동
48    올 겨울에 눈이 안오려나...? 댓글:  조회:2613  추천:72  2008-02-06
아름다운 2007년이였습니다.잊을수 없는 2007년입니다.행복한 2007년이였습니다.2007년 감사합니다~2007년이여~안녕히^^
47    얼음우를 걷는 명상랑도네 댓글:  조회:2574  추천:49  2008-02-04
2008년 2월 2일. 마지막겨울도 다가는 이날 명상랑도네는 겨울에만 할수있는 강위의 얼음을 걷는 랑도네코스를 다그쳐 마련하였다. 아침 여덟시에 신화서점에 도착하니 가을남자님과 바우님께서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을 확인하니 나를 포함해 다섯명. 오늘 다른 특수한 사연이 없으면 꼭 참석하겠다던 청솔님은 소식이 끊겨서 일행은 그대로 떠나기로 하였다.  일행은 신화서점에서 14선뻐스를 타고 소하룡다리목에서 내려 수력발전소방향으로 걸었다. 얼마걷지않아 해란강변쪽으로 멋진 바위가 나타나 반겨주니 다노님이 사진기부터 꺼낸다.    비록 높지는 않지만 가파로운 바위--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아래로는 수력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얼지않고 유유히 흘렀다.    반시간쯤 콩크리트길을 따라 걸어서 수력발전소에 도착      겨울추위에 꽁꽁 얼어든 호수  오늘 랑도네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겨울에만 걸을수있는 호수위. 호수가운데 서니 시야가 확트이어 기분이 좋다. 그리고 발 아래는 반 투명한 얼음이다. 피뜩보기에는 당금 꺼질것같은 얼음이지만 갈라진쪽을 보아서야 서너뽐되게 얼어든 얼음층이라 차가다녀도 끄떡없다.  물아래서 올라오던 기포가 그대로 얼어들어 얼음예술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듯한 느낌.  호수가운데서 바라본 수력발전소 땜전경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않아 다들 호수가에서 걷다가 점차 호수가운데를 걷기시작했다.  저 멀리 안겨오는 해란강골프리조트건물. 호수가운데 누군가 텐트를 치고 고기잡이를 하고있었다. 얼음두께가 얼마나 되는가 물으니 80센치는 된다고 한다. 사람이 서면 배꼽이 닿일정도로 두터운 얼음이니 중형트럭이 지나도 문제없을 것이다.  호수를 따라 조금 걸으니 해란강골프장대문도 보였다.  해란강골프장건물아래까지 걸으니 열기에 몸도 후끈후끈해났다. 다노님이 얼음덩이를 들고 장난치니 다를 얼싸좋다 얼음뽈굴리기에 신나다.  가을남자님도 달려가 미끄로오는 얼음덩이를 받아 바우님쪽으로 굴린다. 발에는 아이젠을 찼으니 마음대로 달아다닐수가 있다.  굽인돌이를 돌아서니 오늘따라 유난히도 봄같은 날씨가 피부에 와닿는다. 이곳부터 바람한점 느낄수가 없으니 얼음위를 걷는다는 생각만 없다면 제법 화창한 봄날이다. 우리마음도 그렇게 따스한 해빛에 녹아들어 유연하기만하고 즐겁기만 하다....  오늘 강가에 텐트를 치고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내 짐이 크고 무거울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힘들었지만은 기분만은 즐겁다.  호수가를 따라 골프장잔디밭은 계속 이어진다. 소하룡에서 산을 타고 길을 따라 저 산능선을 타고 여기에 도착할수도 있다.  얼음위에서 40분정도 걸어서 잠간 휴식중. 바람님께서 천불지산산행때 갖고갔던 쵸콜레트를 꺼내 우리들에게 나누어준다.  얼음위에서만 볼수있는 전경.  해란강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다 만난 고기잡이사람. 얼음을 꺼서 구멍을 낸 후에 낚시줄을 느리고 있었다. 고기를 잡았느냐 물으니 아직은 못잡았단다.  가을남자님왈: 저사람들은 겨울낚시가 흥취고 우리는 산행이 흥취라 다들 추위를 잊고 즐기는 사람들이다....    얼음위를 걷는 느낌이 이렇게 좋을수가 있을가.... 빠작빠작 아이젠이 얼음에 닿이는 소리가 즐겁기만하다.  저쪽 산아래에 보이는 정자가있는곳이 해란강골프장의 끝이된다.  호수위의 부동한 지점에 따라 얼음이 진 모양도 다양하다.  또다시 호수를 에돌면서 보이는 작은 언덕. 여기서 서서히 산능선을 타면 수력발전소웃쪽의 정상에 오를수가 있다. 하지만 얼음우를 걷는 재미에 일행은 계속 강을 따라 걷기로 하였다.  굽인돌이에서 만난 얼음조각.  밑뿌리에는 나무. 인위적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묘한 작품이나올수가 있을가....   누워서 얼음조각을 사진찍는 바우님의 모습이 더욱 멋지다.  한해의 평안한 산행을 위해 간단한 시산제를 지냈다.  명상랑도네의 2008년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면서 비록 초라하지만 성의를 담아 간단한 식을 올렸다. 가을남자님께서 시산제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 많은 도움이 되였다. 시산제는 무엇보다도 산행을 하는사람의 마음가짐이라겠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것만큼 우리는 산을 다니면서 산속에 있는 생명을 가진 모든것을 해치지않고 또 나무한가지 풀한포기를 아끼는게 시산제의 의미가 아닐가 생각한다. 산은 우리들에게 주는것이 너무 많은 만큼 우리는 산에대해 숭엄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산을 마주하면 항상 마음이 울렁거리고 또 장엄하고 숙연하다. 산을 오를수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니 산의 모든것을 사랑하지 못할지언정 어찌 산의 생명을 해칠수가 있단말인가....  그래서 산에대해 숭엄한 감정을 갖고있는사람은 재(齋)를 지내듯 목욕재계를 하고 산을 다닌다고 하니 심히 존경스럽다. 재란 내가 지켜야 할 법도를 지키는 것으로 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건한 마음이다. 우리는 산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부모형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대하여서도 항상 재를 지키는 정성으로 살아가야한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계속 걷게될 해란강.  여기서 텐트를 치고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가을남자님이 풍성한 점심을 준비하여 와서 불을 지피고 뜨끈뜨끈한 청국장을 끓여먹었다. 텐트를 쳤지만 날씨가 하도 좋아 그대로 얼음우에 벌렁앉아 점심을 먹었다.  해란강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바위들  빠작빠작 아이젠이 얼음에 닿이는 소리 즐겁기만하다.  멋진 바위들  구룡에 이르러 산을 타기로 하였다. 보이는 건물은 罔球場. 저 건물뒤로 골짜기를 따라 길이 나져있었다.  바우님은 신벗님(한국에 가시다나니 오늘산행에 참석못했음)과 함께 과기대등산대의 지도원이자 창시자이며 교수이다. (오른켠분) 연변에서 가장 일찍이 등산문화를 보급시킨 원로이시니 등산활동의 대표인물이다.  과기대의 등산대는 이미 9년이란 세월을 맞이하게 되니 연변에서 가장 초기의 등산대가 된다.    작은 모래언덕을 오르는 대원들...  음달진 골짜기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다.  산을 오르다 돌아본 해란강과 그 뒤의 산맥  산고개를 넘으면서...  저 길을 따라 올라 산능선을 타고 오른켠뒤로 보이는 정상에 도착할수있는데 곧 연길시동남쪽산정상이 된다. 진달래피는 봄이면 멋진 코스가 될수있는 산이다.  고개를 넘으니 성자산이 한눈에 안겨온다.  봐도 봐도 멋진 성자산-- 유구한 력사가 배여있는 성자산은 이 땅의 역사의 견증이다. 어느쪽에서 바라보아도 장엄하고도 묘한 산세이다. 오늘 비록 인수는 많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속에서 산책을 하듯 걸음을 옮겼으니 즐겁기도하고 뜻깊은 산행을 하였다.
46    2월 2일 명상랑도네산행공지 댓글:  조회:2361  추천:62  200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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