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반장선거
박일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렸다. “편부모 가정의 자녀교육 중시하자”는 글이다.
나는 아침에 신문을 받자 단숨에 세번 읽었고 오후 공원에 나가 장기를 두고 와서도 또 련거퍼 두번이나 읽었다. 나 절로도 자랑스럽고 큰일을 한것 같았다. 그러노라니 신문사 편집부에 조금은 불만도 생겼다. 내 문장은 교육면의 중간쯤에 박아넣고 톱에는 “귀한자식 매 한대 더 때려야”란 글을 실었다. 그러루한 말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건데 왜 생각이 깊은 내 글을 톱에다 올려놓지 않았냐 하는 그런 불만이였다.
“미애야, 할아버지 쓴 문장 신문에 났다.”
나는 하학하고 집에 오자부터 꿩처럼 머리를 틀어박고 무언가 쓰고있는 손녀에게 신문을 주었다.
“축하해요. 할아버지, 저 좀 있다 볼게요.”
손녀는 신문을 한옆으로 밀어놓는다.
“너는 뭘 쓰고있냐?”
나는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남자애들처럼 성격이 활달한 손녀는 한창 쓰고있던 종이장을 들어 나한테 보인다.
“내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이란 제목이였다. 보아하니 초중2학년에 다니는 손녀는 반장경선에 나가려고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는중이였다. 그러니 손녀의 립장에서 보면 할아버지가 신문에 낸 글 한편 보다는 반장으로 당선 되냐 못 되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인것 같기도 했다.
“그래 너처럼 반장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은 몇이냐?”
“지금 후보가 넷이래요. 이제 1차 경선에서 두 사람이 떨어지고 입선된 두 사람은 2차 경선을 치러 최후 승부를 가르게 돼요. 그때는 전반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정마다 학부모대표도 한분씩 학생들과 같이 투표에 참가해요.”
듣고보니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반장경선에는 단결, 우애, 호상방조, 뭉친 힘, 이런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손녀는 그런 말은 소학생들의 반장선거에서나 나올 말이라며 우습다고 야단이다. 지금 애들은 왜 이렇게 제 잘난척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며칠후였다.
내가 공원에 나가 장기를 두다가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니 미애가 자기 방에서 혼자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음- 보나마나 1차 선거에서 락선된 모양이구나.”
“아니래요.”
“아니면?...”
“전 1차 선거에서 입선 됐어요.”
“그런데 울긴 왜 우냐?”
“동수가 너무 사람을 헐뜯는게 괘씸해서 그래요.”
동수라는 남자애는 이번 반장선거에서 미애와 최후 승부를 겨루게 될 적수였다. 그런 동수는 1차 경선부터 미애를 넘어뜨리려고 미애의 흉허물을 전 반 학생들 앞에서 까밝아 놓았다. 그것인즉 미애는 득표를 많이 얻기 위해 녀자애 몇을 데리고 음식점에 가서 식사대접을 시켰다는 것, 또 수철이라는 남자애한테는 인심 쓰며 핸드폰도 선물로 주었다는것.
“며칠전에 순애 생일이여서 우리 몇은 음식점놀음도 했고 제가 돈을 낸것도 사실이예요.”
“왜서 그런 일 했지?”
“지난달 저의 생일때 순애가 돈을 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낸거래요.”
“그럼 핸드폰을 선물로 주었다는건 또 무슨 소리냐?”
“우리 반의 수철이란 남자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길래 저한테 전에 쓰던 핸드폰이 있는걸 가져다주었는데 그것도 회뢰라고 하니 전 억울해서 못살겠어요.”
듣고 보니 손녀가 덮어쓴 루명이 애매한건 확실했다.
“그 동수란 애는 원래 심보가 그렇게 고약하냐?”
“아니요, 전엔 그런줄 몰랐어요.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착한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속다르고 겉다른 애였어요.”
“그럼 그 애 부모는 뭘 하는 사람들이냐?”
“걔 부모는 리혼을 했대요. 아버지는 한국에 나갔는데 별로 련계가 없고... 지금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어머닌 음식점을 차린대요.”
“어허, 부모가 리혼한 편부모 가정 자식이라... 그러면 그렇겠지.”
나는 신문에 낸 내 문장이 떠올라 무릎을 탁 쳤다.
“최후 경선연설문은 이렇게 쓰면 어떠냐?”
“어떻게요?...”
손녀가 귀를 기울인다.
“너는 어려서부터 기형적인 편부모사랑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거기다 할아버지까지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고있다는걸 모박아 쓰거라.”
“그런 다음엔요?”
“그렇게 자란 너였기에 차츰 친구들을 사랑하고 베풀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여 핸드폰을 잃어버린 애한테는 자기 핸드폰을 선뜻 줄줄도 알게 되였고 또 친구가 그랬듯이 너도 친구의 생일을 명심하고 성의를 베풀었다고 하거라. 이러면 너의 루명도 벗겨지고 또 은근 슬쩍... ”
“OK!”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애가 손벽을 친다.
“호호 옛날 소학교 교장선생님이 다르긴 다르네요.”
미애는 좋아서 두 팔로 나의 목을 칭칭 감으며 볼에다 키스까지 한다.
드디여 최후 선거 날이 왔다.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인 내가 아들 며느리를 대신하여 손녀의 경선에 참가하게 되였다.
시 조선족중학교 초중2학년 1반교실에는 40여명 학생에 40여명 학부모들로 빼곡이 자리를 하고앉았다.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교무주임까지 렬석으로 참가한걸 보면 시골마을의 촌장선거 못지 않게 치렬할듯 싶었다.
담임교원이 사회를 했다. 반장 후보인 동수와 미애학생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에 제비를 뽑은 결과에 따라 미애학생이 먼저 경선연설을 하게 된다고 했다. 미애는 제일 뒤줄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핼쭉 웃었다. 나도 의미있게 미애한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바로 이럴 때 갑자기 앞에 나와 미애와 나란히 서있던 동수가 손을 들었다.
“경선연설을 시작하기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동수는 이러면서 담임선생을 쳐다본다. 담임선생이 머리를 끄덕인다.
(어린 애가 수작도 많구려.)
나는 못마땅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여기서 먼저 미애학생에게 잘못을 승인하려고 합니다.”
실내는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저는 조사연구도 없이 누구한테 얼핏 들은것만 가지고 지난번 1차 경선에서 미애를 헐뜯는 발언을 했습니다. 순애의 생일날에 미애가 돈을 낸것은 친구들간에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일이였습니다. 그런것도 모르고 어리석은 저는 돈으로 경선표를 사려고 한짓이라며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곰곰히 살펴보니 미애는 전에부터도 남을 잘 돕는 애였습니다. 그랬기에 수철이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자 누구먼저 도움의 손길을 보냈던것입니다. 이런 학생은 비난이 아니라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미애야 죄송하다!”
동수는 옆에 서있는 미애를 바라보며 정중히 사과를 한다.
“이상입니다.”
동수의 발언이 끝났다. 실내는 얼마간 숨소리마저 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어느 학생인가 먼저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학생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학부모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났다. 편부모가정의 자녀교육은 몰밀어 비뚤게만 봐온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도 할말이 있습니다.”
이번엔 동수와 나란히 서있던 손녀 미애가 손을 들었다.
“저는 경선연설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반 반장자리는 동수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동수야 너 꼭 잘할수 있을거야. 화이팅!”
미애는 남자애들처럼 동수의 어깨를 툭 친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을 향해 경례를 굽석 하더니 자리로 들어간다. 약속이나 한듯 이번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애를 향해 기립 박수를 친다.
순간, 손녀 미애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다 자란 처녀 같아 보였다. 어쩌면 15살난 애가 75살먹은 이 할아버지 보다도 경우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내 앞줄에 앉은 몇몇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오늘 신문에 실린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려야’란 문장 봤지?! 그 문장 저 동수엄마 쓴거래.”
동수어머니 어디 앉았을가? 나의 눈길은 동수어머니라는 그 녀인을 찾아 헤맸다.
료녕신문 2014.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