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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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00자소설]그때 그 할머니(외 1편) 댓글:  조회:348  추천:0  2017-10-09
    딸애가 고중 다닐 때다.   어느 하루, 나는 학부모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주석대엔 할머니 한분이 앉아계셨다. 교장선생은 십여년전 이 학교를 졸업한 할머니의 두 아들이 모두 청화대학을 나왔고 박사가 되였는데 현재 큰 아들은 미국에, 작은 아들은 캐나다에 있다고 소개를 한후 할머니의 경험담을 경청한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 말은 엉뚱했다.   -에그, 자식은 공부는 잘 하지 못해야 좋수다!   -제가 제일 후회하는게 뭔지 아세요? 두 자식 공부 너무 시킨겁니다. 제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 못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입니다. 못난 나무 산을 지킨다고 공부를 수수하게 하는 자식들을 보면 거의가 부모곁에 있더군요.   -저런 허튼 소릴 들으라고 우리를 불렀나?   그날 나와 여러 학부모들은 교장선생을 찾아가 항의했다.   20년이 지났다. 그사이 내 딸도 명문대를 나와 독일류학을 갔었고 후에는 그곳에 남아 독일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멀리 있으니 친 딸이 아니라 그저 반가운 '해외동포' 같았다. 이젠 외손주도 열살이나 되는데 그사이 딸네가 한번 놀러왔고 우리 부부가 한번 놀러가니 그만이였다.   언제부턴가 그때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고험     대학을 나온 딸애가 택시 모는 총각하고 사귄다기에 나는 그 녀석을 한번 만나보려고 마음먹었다.   어느 겨울 밤, 나는 술에 취한척 하고 그 녀석의 택시에 올랐다.   얼마쯤 가다가 오줌이 나오니 차를 세우라고 했다. 또 얼마쯤 가다가는 배설물이 올라오니 차를 멈추라고 했다.   녀석은 좋다궂다 말이 없었다.   차에서 내린 나는 입으로 왝왝 거리는척 하다가 눈판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녀석이 차를 몰고 도망을 쳤던것이다...   -그런 못쓸 놈하고 더는 사귀지 마!   내가 딸애한테 호통을 쳤다.   -듣고보니 아버지가 잘못하셨네요.   딸애가 머리를 저었다.   -아무리 어째도 이 추운 겨울에 손님을 팽개치고 도망가는 놈 이디있어?!   -아버지가 사람을 낮잡아보니 제가 전화로 도망가라고 시킬수밖에 없지요.   -뭐야?   -전 아버지가 그렇게 시시하게 면접시험을 보리란 걸 벌써 짐작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사진도 보여주었구요.   -고얀 놈들!   딸년은 이 애비보다 한수 우였다. 흑룡강신문
2    [미니소설] 얼굴 없는 녀인 댓글:  조회:915  추천:1  2014-10-16
[미니소설]   얼굴 없는 녀인      박 일   K현 대학입시현장. 오늘은 조선어문시험을 치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곱시가 넘으니 대문밖엔 학부모들과 수험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큰대문에는 어제 그제를 이어 오늘도 누군가 찰떡처럼 대학에 잘 붙으라고 햇솜처럼 흰 찰떡을 세덩이나 더덕더덕 붙여놓았다. 춘님이는 시험장소와 좀 떨어진 곳에 있다. 아름드리 백양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애처로운 눈길로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아들 동길이다. 이틀째 동길이는 이맘때면 아버지, 계모 그리고 소학교에 다니는 녀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웬 일인지 동길이도 그리고 동길이네 식구들도 전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동길이 왜서 안 올가?…) 시간이 흐를수록 춘님이는 초조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이때 멀리서 동길이가 나타났다. 동길이는 채양이 긴 모자를 벗어 얼굴의 땀을 닦으며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대문쪽으로 들어가고있었다. 백양나무에 등을 기댄채 두손을 꼭 잡고있는 춘님이는 그제야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우리 동길이, 제발 오늘도 덤비지 말고 시험을 잘 치게 해주소서!) 수험생들이 무리 지어 시험장으로 들어가자 춘님이는 념불을 외우듯 두눈을 꼭 감고 합장한 두손을 살살 비벼댄다. 백옥같은 얼굴에 몸매 또한 쭉 빠진데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불러 춘님이는 마을에서 일등처녀로 소문났었다. 그래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소학교에 배치를 받아온 월급쟁이― 지금의 동길이 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러던 춘님이는 동길이가 소학교에 금방 입학하던 그해 가을에 한국으로 나갔다. 한국에 가서 그만 남편을 배신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돈을 벌어 남들 못지 않게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나갈 때만 해도 불륜을 저지를 생각 같은건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정작 한국에 나가 홀몸으로 세월을 보내려니 밤이면 남편이 사무치게 그리운데다 성문화 또한 눈 띄게 개방된 환경이니 그런 유혹을 도저히 물리칠수 없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물에 밀리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고말았다. 처음에는 일하는 음식점 사장하고 눈이 맞았고 두번째는 이를 치료하러 치과의원 출입을 자주하다가 나이 지긋한 치과의사하고도 좋아했으며 나중에는 중국에서 건너간 한 외토리 남성하고 동거했다. 춘님이가 서울에서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은 종이에 불이 붙듯 고향마을에 쫙 퍼졌다. 그러니 부옇게 배신을 당한 남편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남편은 리혼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춘님이는 창피스러운 나머지 남편과 대화를 나눌 용기조차 없어 휴대폰번호마저 바꿔버렸다. 하는수없이 남편은 현법원에 단독 리혼신청을 했다(춘님의 불출석으로 반년후 두 사람은 자동리혼이 되였음). 불륜녀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 춘님이지만 한 아이 어머니로서의 절절한 모성애만은 유별나게 끔찍했다. 춘님이는 서울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자기 배속에서 나온 아들 동길이가 너무 보고싶어 울고 또 울었다. 동길이가 소학교 5학년인가 다닐 때 춘님이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친정오빠에게(춘님의 친정집은 시집마을에서 60리 상거해있었음) 책가방이며 겨울 외투며 그밖에 용돈도 푼푼히 봉투에 넣어보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마을 소학교에서 교장으로 승급한 동길의 아버지가 한사코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젠 동길이한테 새어머니에 녀동생까지 생겼는데 왜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한테 마음의 혼란을 주려고 하느냐며 펄펄 뛰더라는것이다. 그럴수록 춘님이는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하냥 아들 생각뿐이였다. 서울거리에서 동길이만한 사내애들이 옆으로 지나가는것만 봐도 춘님이는 동길이가 떠올라 가던 걸음까지 멈추군 했다. 《우리 동길이를 한번 품에 껴안고 자봤으라면… 내 손으로 동길이한테 따뜻한 밥 한끼 지어 먹여봤으면…》 이런 말이 그녀한텐 입버릇이 되였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춘님이는 마음먹고 한국에서 아들을 만나보러 왔었다. 그때 동길이는 벌써 초중 2학년이라 현성에 올라와 기숙사생활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동길이를 직접 만나는 순간, 그녀의 달콤한 꿈은 그대로 산산쪼각이 나고말았다. 어느 사이 아버지 키보다도 더 자랐고 코밑에도 수염을 깎은 자리가 시꺼멓게 난 동길이는 춘님이를 마주보는 그 눈길부터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동길아 내가 누군지 알아볼만 하니?》 《?…》 《엄마다! 너의 엄마!》 《누구신지 사람 잘못 찾으신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지금 집에서 녀동생을 돌보고계십니다.》 동길이는 말을 마치기 바쁘게 등을 홱 돌린다. 그리고는 씨엉씨엉 몇걸음 걷더니 등을 돌리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시는 저를 찾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동길이한테 랭대를 받고 다시 한국으로 나간 춘님이는 손맥이 풀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반시간이고 한시간이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기가 일쑤였고 밤이면 수면제를 한줌씩 먹어도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심한 우울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백 하고도 열몇근 되던 몸무게가 거퍼 팔십근도 채 되지 않았다. 역시 한국에 나가있는 친정오빠가 이 일을 알고 《가만히 놔뒀다가는 사람 잡겠다》며 무작정 춘님이를 끌고 중국으로 돌아와 친정집 부모들과 함께 있게 했다. 그런데 마음 편한 친정집에 와있으면서 좋다는 보약은 다 써도 춘님이의 몸은 전혀 호전될줄 몰랐다. 《휴― 저의 병은 제가 알아요. 매일 동길이 얼굴만 볼수 있다면 병이 뚝 떨어질것 같아요.》 춘님이가 하는 말에 친정집 식구들은 큰 계발을 받았다. 그래서 동길이가 공부하고있는 현성에 춘님이한테 자그마한 음식점을 차려주었다. 그때부터 춘님이는 거의 매일 한번씩 동길이 몰래 공부하는 학교주위를 돌군 했다. 시간이 흐르자 춘님이는 오전 사이체조시간이면 천여명 학생들중에서도 동길이가 몇번째 줄 몇번째에 선다는것까지 알수 있었고 매주 화요일 오전 제4교시와 목요일 오후 제6교시는 체육시간이여서 동길이가 뽈을 차고 배구를 치는걸 실컷 볼수 있었다. 미상불 겨릅대같이 바싹 말랐던 춘님이의 몸에는 어느새 다시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침내 동길이가 대학시험을 치는 날까지 오게 되였다. 시험장 큰대문에다 햇솜같은 찰떡을 세덩이나 붙여놓은것도 춘님이가 련속 사흘째 이른새벽에 남몰래 나와서 한 일이였다. 그랬다. 이제 동길이가 대학에 붙으면 그 대학이 어느 도시에 있든 춘님이는 바로 그 도시로 쫓아가서 음식점을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멀리서 사람들이 왁작 떠드는 소리가 났다. 백양나무뒤에 몸을 숨긴 춘님이가 고개를 쳐들고 보니 시험을 다 친 수험생들이 밀물처럼 밖으로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춘님이는 그속에서 동길이를 찾으려고 고개를 점점 높이 쳐들었다. 바로 그때다. 《어머니!》 등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춘님이는 그만 심장이 멎는듯한 충격에 돌부처처럼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글쎄 아들 동길이가 지금 지척에 와 서있었다. 《너… 동… 동길이…》동길이는 후들후들 떨고있는 춘님이의 팔을 두손으로 꼭 잡는다. 《어머니!》 《어허헉… 어허헉…》 춘님이는 소리내여 울었다. 《이 엄만 너를 볼 얼굴이… 얼굴이 없어 허헉… 이 엄마 밉지?…》 눈물범벅이 된 춘님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친어머니의 정겨운 눈길이 아들 동길이의 얼굴에 오랜만에 와닿는 순간이였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 배가 고픕니다. 빨리 어머니의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싶습니다.》 《내가 꾸리는 음식점 너도 알아?》 순간 춘님이의 두눈은 휘둥그래졌다. 《전 정말 어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자습시간만 끝나면 음식점문앞으로 달려가서 어머니를 보군 했습니다.》 《그래?…》 춘님이의 두눈은 당금 튀여나올것 같았다. 《너의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날텐데…》 《아닙니다. 실은 아버지께서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부터 저더러 어머니를 만나라고 하셨거든요. 그런걸 제가 이제 대학입학시험이 끝나면 만나겠다고 했지요.》 동길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춘님이는 사랑하는 아들을 두손으로 와락 끌어당겨 자기의 따뜻한 품속에 꼭 껴안았다. 
1    [소설] 반장선거 댓글:  조회:662  추천:4  2014-08-30
소설 반장선거 박일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렸다. “편부모 가정의 자녀교육 중시하자”는 글이다.   나는 아침에 신문을 받자 단숨에 세번 읽었고 오후 공원에 나가 장기를 두고 와서도 또 련거퍼 두번이나 읽었다. 나 절로도 자랑스럽고 큰일을 한것 같았다. 그러노라니 신문사 편집부에 조금은 불만도 생겼다. 내 문장은 교육면의 중간쯤에 박아넣고 톱에는 “귀한자식 매 한대 더 때려야”란 글을 실었다. 그러루한 말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건데 왜 생각이 깊은 내 글을 톱에다 올려놓지 않았냐 하는 그런 불만이였다.   “미애야, 할아버지 쓴 문장 신문에 났다.”   나는 하학하고 집에 오자부터 꿩처럼 머리를 틀어박고 무언가 쓰고있는 손녀에게 신문을 주었다.   “축하해요. 할아버지, 저 좀 있다 볼게요.”   손녀는 신문을 한옆으로 밀어놓는다.   “너는 뭘 쓰고있냐?”   나는 기분이 좀 그랬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남자애들처럼 성격이 활달한 손녀는 한창 쓰고있던 종이장을 들어 나한테 보인다.   “내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이란 제목이였다. 보아하니 초중2학년에 다니는 손녀는 반장경선에 나가려고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는중이였다. 그러니 손녀의 립장에서 보면 할아버지가 신문에 낸 글 한편 보다는 반장으로 당선 되냐 못 되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인것 같기도 했다.   “그래 너처럼 반장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은 몇이냐?”   “지금 후보가 넷이래요. 이제 1차 경선에서 두 사람이 떨어지고 입선된 두 사람은 2차 경선을 치러 최후 승부를 가르게 돼요. 그때는 전반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정마다 학부모대표도 한분씩 학생들과 같이 투표에 참가해요.”   듣고보니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반장경선에는 단결, 우애, 호상방조, 뭉친 힘, 이런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손녀는 그런 말은 소학생들의 반장선거에서나 나올 말이라며 우습다고 야단이다. 지금 애들은 왜 이렇게 제 잘난척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며칠후였다.   내가 공원에 나가 장기를 두다가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오니 미애가 자기 방에서 혼자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음- 보나마나 1차 선거에서 락선된 모양이구나.”   “아니래요.”   “아니면?...”   “전 1차 선거에서 입선 됐어요.”   “그런데 울긴 왜 우냐?”   “동수가 너무 사람을 헐뜯는게 괘씸해서 그래요.”   동수라는 남자애는 이번 반장선거에서 미애와 최후 승부를 겨루게 될 적수였다. 그런 동수는 1차 경선부터 미애를 넘어뜨리려고 미애의 흉허물을 전 반 학생들 앞에서 까밝아 놓았다. 그것인즉 미애는 득표를 많이 얻기 위해 녀자애 몇을 데리고 음식점에 가서 식사대접을 시켰다는 것, 또 수철이라는 남자애한테는 인심 쓰며 핸드폰도 선물로 주었다는것.   “며칠전에 순애 생일이여서 우리 몇은 음식점놀음도 했고 제가 돈을 낸것도 사실이예요.”   “왜서 그런 일 했지?”   “지난달 저의 생일때 순애가 돈을 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낸거래요.”   “그럼 핸드폰을 선물로 주었다는건 또 무슨 소리냐?”   “우리 반의 수철이란 남자애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길래 저한테 전에 쓰던 핸드폰이 있는걸 가져다주었는데 그것도 회뢰라고 하니 전 억울해서 못살겠어요.”   듣고 보니 손녀가 덮어쓴 루명이 애매한건 확실했다.    “그 동수란 애는 원래 심보가 그렇게 고약하냐?”   “아니요, 전엔 그런줄 몰랐어요.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착한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속다르고 겉다른 애였어요.”   “그럼 그 애 부모는 뭘 하는 사람들이냐?”   “걔 부모는 리혼을 했대요. 아버지는 한국에 나갔는데 별로 련계가 없고... 지금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어머닌 음식점을 차린대요.”   “어허, 부모가 리혼한 편부모 가정 자식이라... 그러면 그렇겠지.”   나는 신문에 낸 내 문장이 떠올라 무릎을 탁 쳤다.   “최후 경선연설문은 이렇게 쓰면 어떠냐?”   “어떻게요?...”   손녀가 귀를 기울인다.   “너는 어려서부터 기형적인 편부모사랑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거기다 할아버지까지 집안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고있다는걸 모박아 쓰거라.”   “그런 다음엔요?”   “그렇게 자란 너였기에 차츰 친구들을 사랑하고 베풀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여 핸드폰을 잃어버린 애한테는 자기 핸드폰을 선뜻 줄줄도 알게 되였고 또 친구가 그랬듯이 너도 친구의 생일을 명심하고 성의를 베풀었다고 하거라. 이러면 너의 루명도 벗겨지고 또 은근 슬쩍... ”   “OK!”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애가 손벽을 친다.   “호호 옛날 소학교 교장선생님이 다르긴 다르네요.”   미애는 좋아서 두 팔로 나의 목을 칭칭 감으며 볼에다 키스까지 한다.   드디여  최후 선거 날이 왔다.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인 내가 아들 며느리를 대신하여 손녀의 경선에 참가하게 되였다.   시 조선족중학교 초중2학년 1반교실에는 40여명 학생에 40여명 학부모들로 빼곡이 자리를 하고앉았다.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교무주임까지 렬석으로 참가한걸 보면 시골마을의 촌장선거 못지 않게 치렬할듯 싶었다.   담임교원이 사회를 했다. 반장 후보인 동수와 미애학생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에 제비를 뽑은 결과에 따라 미애학생이 먼저 경선연설을 하게 된다고 했다. 미애는 제일 뒤줄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핼쭉 웃었다. 나도 의미있게 미애한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바로 이럴 때 갑자기 앞에 나와 미애와 나란히 서있던 동수가 손을 들었다.   “경선연설을 시작하기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동수는 이러면서 담임선생을 쳐다본다. 담임선생이 머리를 끄덕인다.   (어린 애가 수작도 많구려.)   나는 못마땅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저는 여기서 먼저 미애학생에게 잘못을 승인하려고 합니다.”   실내는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저는 조사연구도 없이 누구한테 얼핏 들은것만 가지고 지난번 1차 경선에서 미애를 헐뜯는 발언을 했습니다. 순애의 생일날에 미애가 돈을 낸것은 친구들간에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일이였습니다. 그런것도 모르고 어리석은 저는 돈으로 경선표를 사려고 한짓이라며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곰곰히 살펴보니 미애는 전에부터도 남을 잘 돕는 애였습니다. 그랬기에 수철이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자 누구먼저 도움의 손길을 보냈던것입니다. 이런 학생은 비난이 아니라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미애야 죄송하다!”   동수는 옆에 서있는 미애를 바라보며 정중히 사과를 한다.   “이상입니다.”   동수의 발언이 끝났다. 실내는 얼마간 숨소리마저 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어느 학생인가 먼저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학생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학부모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났다. 편부모가정의 자녀교육은 몰밀어 비뚤게만 봐온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도 할말이 있습니다.”   이번엔 동수와 나란히 서있던 손녀 미애가 손을 들었다.   “저는 경선연설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반 반장자리는 동수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동수야 너 꼭 잘할수 있을거야. 화이팅!”   미애는 남자애들처럼 동수의 어깨를 툭 친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들을 향해 경례를 굽석 하더니 자리로 들어간다. 약속이나 한듯 이번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애를 향해 기립 박수를 친다.   순간, 손녀 미애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다 자란 처녀 같아 보였다. 어쩌면 15살난 애가 75살먹은 이 할아버지 보다도 경우가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내 앞줄에 앉은 몇몇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오늘 신문에 실린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려야’란 문장 봤지?! 그 문장 저 동수엄마 쓴거래.”   동수어머니 어디 앉았을가? 나의 눈길은 동수어머니라는 그 녀인을 찾아 헤맸다.               료녕신문 201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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