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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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봉해라
2018년 08월 03일 09시 36분  조회:490  추천:0  작성자: 박일

이상하게도 서울에서 가지는 고중졸업 서른돐 기념 동창모임에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단위에 일이 많아 몸을 뺄 수가 없다고 핑게를 댔다. 그랬더니 벌둥지가 터졌다.

“지질국 국장이 그렇게 대단하냐? 네 눈엔 옛날 고중동창들은 다 시시해보이겠구나?”

“야 최진수! 너 이번 행사 파토 놓을 작정이야? 글쎄 우리 반 반장이였던 니가 안 온다는 게 말이 되니?”

하는수 없어 나는 점심만 먹고 돌아서려고 오전에 서울로 날아가서 저녁에 할빈으로 돌아오는 당일 왕복 비행기표를 끊었다.

인천공항에 이르니 덕호가 마중나와있었다. 옛날 중학교 다닐 때 덕호, 나 그리고 성규 셋은 문학동아리 성원들이였다. 거기에 지금은 성규의 안해로 된 아래반 민자도 있었다.

“진수야, 너 요즘 성규하고 련락이 있니?”

덕호가 자가용승용차를 운전하며 나한테 묻는다.

“없어,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위챗에 글을 띄워도 대답이 없어.”

“그럴 것 같아 물어본 거다. 얼마 전에 성규하고 술을 마셨는데 걔 너한테 많이 서운해하더구나… 재작년에 너의 딸 대학 간다고 너 마누라와 딸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성규네 부부가 울릉도요, 제주도요 하며 일주일이나 함께 다닌 걸 너도 알지?”

“알구말구, 그때 우리 집사람이 유람경비를 주려고 해도 한사코 받지를 않고 몽땅 걔들 부부가 돈을 썼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얼마 전에 민자가 시어머니, 그러니까 성규 어머니를 모시고 네가 사는 할빈으로 갔었다며?…”

“잠간! 성규 어머니도?… 그 말은 너한테서 처음 듣는다. 민자 혼자 나를 찾아온 적은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단위에 급한 일이 생겼고 집사람도 의료봉사대로 어느 시골에 내려가 있다보니 성규 처 민자한텐 정말 미안하게 됐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덕호를 따라 모임 장소라는 대림동의 어느 식당에 들어서니

한구들 앉아있던 동창들이 반갑다고 란리였다. 그런데 성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성규는?…”

“글쎄다. 그 녀석 사는 집은 여기서 멀지도 않은데…”

동창들은 성규네 부부는 금슬이 좋아 대낮에도 끌어안고 자는지 모르겠다며 떠들어댔다.

연회가 시작됐다. 덕호가 사회를 맡고 내가 첫 사람으로 발언을 했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치며 방이 떠나가게 “위하여!”를 웨쳤다.

이때 성규가 방에 들어섰다.

“지질국인지 지랄국인지 왔구나!”

성규는 어디서 술을 잔뜩 마신 것 같았다.

그는 곧추 나한테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최진수! 너는 의리가 없어!”

동창들이 욱- 일어나며 말리려 하자 성규는 맥주병을 쳐들고 누구든 말리는 놈은 대갈통을 묵사발 만들겠노라고 했다. 내가 모두들 자리에 앉으라고 눈치를 주는 순간, 성규는 상 우에 있는 컵을 손에 들더니 그 속에 그득 담긴 맥주를 내 얼굴에 쫙- 뿌렸다. 내 얼굴은 단통 구정물에서 꺼낸 걸레가 되여 거품이 묻은 맥주물이 구질구질 흘러내렸다. 성규는 그 다음은 자기 머리를 나의 턱밑으로 들이밀었다.

“너도 한매 때려!… 안 때려?… 그럼 나 간다!”

성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서 나갔다.

“자 무슨 술 저렇게 마셨다니?”

동창들이 혀를 차며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세면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콸콸 나오는 물에 머리를 통채로 들이밀었다.

두달 전 어느 날, 성규 부인 민자가 갑자기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오빠!”

“어?…”

나는 손을 뻗어 민자와 악수를 청하려는데 민자는 향수냄새를 풍기며 나의 품에 와 안겼다.

“어쩌다가 기별도 없이 이렇게?…”

“호호… 오빠 보고 싶어 왔지!”

“이거 어쩌지, 집사람이 지금 외출해서… 그렇지 않으면 곧추 우리 집 가면 되겠는데…”

“호호, 난 무조건 오빠네 집부터 구경할 거야.”

이때 사무상 우의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그 벨소리가 구명은인이 부르는 소리처럼 반가웠다. 그렇게 얼굴이 뜨겁던 사무실에서 나왔다.

순간, 지난 겨울 서울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성규네 부부가 나를 초대했다. 우리 셋은 반가워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런데 성규가 화장실로 간 사이 민자가 나의 곁에 바싹 다가앉으면서 “오빠! 난 기실 옛날부터 우리 봉이 아빠보다 오빠를 더 좋아했어요”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왜 갑자기 오빠로 변했지? 민자 술이 과했네.” 하면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성규와 어깨겯고 술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시골로 의료봉사를 내려간 안해에게 성규 부인이 왔다고 했더니 안해는 오늘은 안되고 래일 돌아오겠노라고 했다.

뜸을 들여 사무실의 쑈류란 처녀애를 뒤에 달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민자를 보고 상급에서 갑자기 조사조가 와서 오늘은 몸 뺄 수가 없으니 이 애가 호텔도 잡아주고 식사도 같이 할 거라고 말했다.

이튿날 안해가 돌아왔다. 그런데 민자의 폰은 꺼져있었다. 쑈류가 마련한 호텔로 가봐도 민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쳐들고 마주 있는 거울을 보았다.

“이런 말을 내가 성규한테 할 수 있냐? 없지?? 그지?!… 동창들한텐 더구나 할 수 없는 거고… 맞지?? 그지?!”

내가 머리를 끄덕이자 거울 속에서도 머리를 끄덕였고 내가 머리를 가로 젓자 거울 속에 있는 나도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덕호가 웬일이냐 싶어 세면실로 찾아왔다.

“저런 봉변을 당하고도 찍소리 못하는 걸 보면 진수 쟤가 무슨 죄를 져도 단단히 진 게 분명해!”

“전에부터 급이 높아지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 있잖아.”

최진수란 내 이름이 술상의 안주가 되고 있었다.

“무슨 허튼 소리들이야!”

덕호가 동창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동창들도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이윽고 나는 이상한 눈길로 나를 뜯어보는 동창들과 리별하고 택시에 앉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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